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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악에대한 이해

하나님아들 2012. 9. 3. 23:25
 

                   악에 대하여


  우리들이 아무리 악의 존재를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 가는 예가 인류 역사에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먼 옛날의 이야기를 들추어 낼 필요도 없이 근년에 일어난 예를 든다면, 히틀러는 육백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했다. 스탈린과 모 택동은 공산주의를 신봉하지 않거난 반대한다는 이유로 수천만의 러시아인과 중국인을 살해 했다. 김 일성은 적화통일을 꿈꾸어 6․25동란을 일으켜 5,6백만명의 동포를 희생시켰다. 일본인은 아세아 전역을 지배하려는 야욕 때문에 수천만의 동남아인을 살상했다. 현재도 독재자들에 의하여 수 많은 정적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수억의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습니다. 병원마다 원인 모르게 중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이 수없이 있으며, 정신병원에는 날 때부터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무의미한 삶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악이 존재하고 있음은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신을 선한 신이라고 믿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악의 존재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하여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초대 교회 때부터 여러 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견해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락탄튜스(Lacantius, 240-320)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첫째, 신은 악을 막으려고 했으나 막지 못했다. 둘재, 신잉 막을 수는 있었으나 그것을 원치 않았다. 셋째, 신은 악을 막을 수도 없었거니와 막을 것을 원치도 않았다. 넷째, 신은 막을 수도 있었고 그것을 원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그대로 두었다. 이렇게 다각도로 고찰했으나 분명한 설명을 주지 못했다. 초대 교회의 신학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이레네우스(Irenaeus, 130-200)

는 신은 무슨 일이든지 강제로 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악에 대해서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고 함으로써 악이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고함과 동시에 신의 전능도 인정했다. 이와는 달리 터툴리아누스(Tertullianus, 160-225)는 인간이 창조주로부터 받은 자유를 오용함으로서 악이 조성되었다고 함으로써 인간이 자기는 자유의 한계성과 악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을 분명히 밝혀 준다.

   이러한 여러 신학자들 중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354-430)가 가장 적극적인 해결을 시도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신은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가 하신 모든 일은 선하다고 전제하고, 신의 창조 중에는 악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한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다 선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성서적 근거를 디모데전서 4:2에서 발견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한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De natura boni : 선의 본질)." 악이란 창조 질서에는 없었다. 오히려 그것에서의 이탈을 의미하며, 선의 결여가 곧 악이라고 할 수 있다. 악이라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이란 실체적 존재에 결합이 생긴 것을 악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어거스틴는 악의 존재를 부인하고 신의 신성과 그의 창조물의 신성을 극구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를 다시 「신국론」에서 ”두나라(Civitas Dei et civitas terrena)“에 언급하면서 지상의 나라가 악한 것이기는 하나 악이란 실체가 있어서 악한 나라가 된 것이 아니라 악적인 의지에서 그러한 세력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De Civitas Dei,X, p17)

   종교 개혁자 루터는 악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은 그 악을 통하여 선을 이루게 한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신은 두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신다. 본래적인 방법(opus proprium)과 비본래적인 방법(opus alienum)이다. 본래적 방법을 통해서 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적 계시를 나타내시고 그의 말씀을 통해서 그의 완전한 사람과 의를 나타내신다. 비본래적 방법을 통해서 그는 사람의 상싯과 이성에 의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한다. 악의 존재도 이 비정상적인 방법의 역사에 속한다고 말했다. 악의 문제에 대햐여 칼빈이나 칼빈주의자들은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최근에 이르러 이 문제를 다시 심각하게 취급한 신학자는 브루너와 바르트다. 부루너는 신의 우주와 세계와 인류 역사에 대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사역을 강조한다. 이것을 그는 신의 통치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는 악에 실재를 인정한다. “악은 신의(神意)에 대립된다. 신도 그것에 대립된다. 그것은 신으로부터의 탈락의 결과다. 창조된 신의 질서를 전도시킨 것이다. 인간의 자유를 요용한 것이다”라고 말한다.(부르터의 교의학 2권 180p) 부르너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인간이 주어진 자유를 오용하는 일에 대하여 신은 방관하시지 않는다. 그 반신적 행동을 심각하게 취급한다. 그의 사랑과 의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 겨로가 십자가가 나타났다. 이 십자가 위에서 분명히 나타난 것은 신은 악을 원치 않으시는 동시에 그것을 행치도 않으신다는 것과 신은 또한 악을 극복할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신은 그 악을 구의 구속 사역의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신의 자비와 그의 의와 전능과 전지가 통합이 되는 것을 볼수 있다. 이 십자가의 중심에서 악의 문제는 해결된다.”(182p) 이것이 브루터의 악의 존재 문제에 대한 해석이다.

  바르트라는 신학자는 인본주의자들이난 낙관주의자들의 악에 대한 이해를 다음과 같이 비난한다. 그들은 인간 사회안에 있는 악과 죄와 죽음과 같은 인간 사회의 그늘진 면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은다. 그들은 현실 세계를 긍정하거난 너무나조 무감각적으로 취급한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우는 자와 같이 울고 웃는 자와 같이 웃는 심정으로 이 세계를 보아야 한다. 그들은 신이 우주를 완전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 안에 불완전이라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Yes와 No를 말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무신론자들과 자기에 대하여 지나친 자신을 가진 사람들과 불안이 항상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계에 대하여 Yes라고 해야 하난 그 Yews는 No를 동시에 생각하는 Yes며, No를 내포하고 있는 Yes다. 이 Yes가 No를 극복하고 초월한다. 이와같이 바르트는 현실 세계안에 악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악을 전능하신 하난미이 극복해서 신의 섭리 수행에 이용하신닥 생각한다(바르트의 교회교의학4권1장 388-414p).

   지금까지의 여러 가지 해석을 정리해서 다섯 가지 가능성으로 줄일 수 있다. 첫째, 선만 존재하고 악은 하나의 환상이다. 크리스챤 사이언스교도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이들은 악을 생각지 않음으로써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첫째와 정반대되는 해석으로서 악만 실재하고 선은 현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있다. 모든 종류의 비관주의와 말세주의가 그렇게 생각한다. 셋째, 선악이란 개념을 완전히 초월하고 존재 전체를 하나의 신비적 총체로 보려는 견해가 있다. 넷째, 선악을 역사를 진행시키는 항구적인 2대 원동력으로 보는  이원론에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와 동양의 음양론이 있다. 다섯째, 선만 영원한 실체적 존재이나 악은 피조 세계 안에서만 존재하는 현실적 실재로 보는 견해가 있다. 마지막 견해가 기독교적 해석에 가깝다.

  우리는 위에서 기독교 신학과 일반 종교인들의 악에 대한 이해를 개관해 보았다. 통일된 견해는 없으나 대체로 악이란 세력이 실지로 작동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일부의 종교인과 철학자들이 악의 실재를 부인하려고 하기는 하난 경험적으로 악의 현실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 기독교를 위시한 대다수의 종교인들의 견해다. 더 적극적으로 악의 작용이 부정적이긴 하난 신의 섭리를 수행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에 고찰해 보고자 하는 문제는 악의 군원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창세기에 보면 전능하신 신이 6일간에 모든 것을 만드신 후에 그것ㄷ르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다(창1:31). 그러므로 악은 신이 지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신이 악을 지었다고 하면 신 자신이 악한 성품을 내표하고 있는 것이 되므로 이것은 신의 본성에 맞지 않는 말이다. 신에게는 악이라곤 일체 없다. 따라서 그가 하신 일에도 악한 것이 없다.또한 신은 악의 군원이 되거나 악을 조장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다. 신은 선 자체이다. 그런데 창세기 3장 1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아, 뱀이 악의 대명사락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악한 뱀이라 할까 또는 악 자체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위에서 미이 지적한 것과 같이 하나님은 악이나 죄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 악은 하나님의 우주 창조 역사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일부 반신론자들은 악의 존재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에게로 돌리려고 하난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악의 존재 원인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때까지 지적되어 온 통설에 의하면 사단이라든가 마귀라든가 악마라고 불리는 악은 타락한 천사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에베소 2장 2절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라는 말이나, 베드로후서 2 : 4에 “하나닙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나하시고”라는 말이나, 유다서 6절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하는 말은 토대로 악은 타락한 천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설이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악의 존재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하나님이 벗을 수는 있으나, 천사가 타락해서 악이 되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어지럽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을 괴롭게 할 천사들의 만행을 저지하지 않고 그대로 버려 두었다는 데 대한 책임은 역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천사들이 타락해서 여러 가지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것을 막을 만한 힘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며, 만물을 창조하실 만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데 천사읭 타락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은 당치 않는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이해한다. 천사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상대적 존재라른 것을 먼저 인정하면서,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유한한 것인 동시에 불완전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피조자의 본질적 특징의 세 가지를 지적한다. 그 세 가지란 상대적이란 것과 유한하다는 것과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 반대할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피조자가 상대적이고 유한하고 불완전하다면, 그러면 본질에서 산출되는 행동의 결과도 상대적익 유한학 불환전한 것일 것이다. 사람의 생각을 위시아여, 미에 대한 감각, 음악에 대한 평가, 정말하게 만들어진 기계 등 모든 것은 다 상대적이고 윻나하고 불완전 것임에는 틀림없다. 볼완전하다는 것은 변화와 부패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리적 교훈도 한 시대에는 절대적 가치가 있으나, 그 시대가 지나고 문홪거 환경이 달라지면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완전하고 영원한 것을 선이라고 한다면, 불완전하고 유한하고 상대적인 것을 선의 반대, 즉 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악이나 죄라는 것은 피조물에게 본유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모든 피조물은 그 자체 안에 악과 불의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세상에 있는 죄나 악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이 질 수 없다. 그러한 것은 피조물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피조물은 그것이 피조물이기 때문에 피조물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모든 피조물은 죄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용서와 용납과 축복을 받지 않고는 그 자체가 구원을 얻거나 완전한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존재는 선 자체이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며 계속해서 그의 심판과 용서와 인도를 받아 가면서 살아야 한다.

출처 : 샬롬
글쓴이 : 작은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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