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서!! 룻기!!

[스크랩] 시편개요

하나님아들 2015. 2. 1. 23:12

시편개요

 

 

 

 

 

?시편 개관?

 

 

 

 

 

 

 

1. 시편의 명칭과 표제

 

 

 

 

 

 

 

1) 시편의 명칭

 

 

 

시편 전체를 대표하는 실제적인 명칭이 시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하 히브리어로는(테힐림)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이 말은 '찬양'이라는 뜻을 가진다. 또 칠십인역(LXX)에는 (프살모이)라고 정하였다. 이말은(프살모스)의 복수형으로서 '줄을 튕기다'를 뜻하다가 현악기의 '연주'를 뜻하는 말로 되었다. 이것은 시편에 50회이상 사용되었다. 또한 필로(phillo)는 시편을 나타내기 위해(휨노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알렉산드리아와 바티칸 사본에는 '현악기의 음악'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으며, 이것이 찬양의 노래가 되었다. 시편(Paslms)이라는 단어는 영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성경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72:20에 나타나 있듯이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혹은 역대기(대하29-30)'다윗과 선지자 아삽의 시'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것도 시편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볼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기에 적합한 것은 이 시편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표현이기에 히브리어 명칭인 테힐림이라는 명칭이 무난할 것이다.

 

 

 

 

 

 

 

2) 시편의 표제

 

 

 

시편에서 말하는 표제란, 히브리 본문의 첫 절에서 따온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그 시의 내용이나, 저자, 또는 그 시가 어떻게 쓰여졌는가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특히 그 시의 형태나 특징에 대해서도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면 rmrm(미즈몰)57편에 나타나는데, 이것은 악기를 잡아 당긴다는 뜻이다. 5 7편은 악기와 함께 노래되는 것임을 알 수 가 있는 것이다. 55편의 표제로 나타나는 림나체라 하는 음악 예배와 관련하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편의 표제는 150116편에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시편 속에 나타나는hls(셀라)라는 말의 뜻에 대해 몰(moll)'음성을 들어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150편중 39편에서 71번에 나타난다.

 

 

 

 

 

 

 

2. 시편의 저자와 기본구성

 

 

 

 

 

 

 

1) 시편의 저자

 

 

 

시편의 저자는 모두 일곱 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다윗은 73편을, 아삽은 12편을, 고라의 자손은 11편을, 솔로몬은2편을, 모세는 1편을, 에스라인 헤만은 1편을, 에스라인 에단은 1편을, 각각 지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중에서 다윗의 저작권에 대해 몇가지 증거를 나타내보면, 먼저 성경 자체가 다위의 저작권을 증거하고 있다. 18편의 표제가 그러하고, 13편의 시는 다윗의 생애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신약에서도 그 증거들을 찾아볼 수 있다(22:42-45 4:24 4:6 4:7). 그리고 그의 인격에 비추어 볼때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으며,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자임을 알 수 있다.

 

 

 

 

 

 

 

2) 기본 구성

 

 

 

시편의 구성은 모세오경의 구성과 비슷한 유형을 갖추었다. 그 주제와 내용에 따라 총 다섯권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러한 구분은 모세오경에 나타난 각 책의 주제들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1권은 창세기에 대응하며, 주로 나타나는 내용은인간에 대한 것이다. 2권은 출애굽기에 대응하며, 주요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것이다. 3권은 레위기에 대응하며, 주요 내용은 성전에 관한 것이다. 4권은 민수기에 대응하며, 방황과 불안에 관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마지막 제5권은 신명기에 대응하며, 주요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이다.

 

 

 

 

 

 

 

3. 시편의 특징과 목적

 

 

 

 

 

 

 

1) 시편의 특징

 

 

 

성경 총66권 중 시편에는 가장 짧은 장(117)과 가장 긴 장(119)이 나란히 기록되어 있으며, 가장 많은 저작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예배시 찬양이나 기도 혹은 낭독으로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탁월한 음악성을 지니고 있는데, 여기에 나타나 있는 믿음의 표현들로 인하여 당시 신앙의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구약성경 가운데 신약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인용해 왔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시편이 뛰어난 예언서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시를 통한 신앙고백이 곧 우리의 고백이요, 찬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2) 시편의 목적

 

 

 

인간의 감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을 든다면 시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시가 구약성경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시편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하나님 백성들이 지닌 감정과 신앙에 대해 알게 된다. "시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객관적이 아니고 주관적임을 시사한다."라고 프란시스 브라이쉬(Francis Breish)는 말한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의 내면 깊숙이 들어오셔서 우리의 사고와 사상을 주관하신다는 뜻인 것이다. 따라서 시편은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게끔 하는 신앙 지침서요, 신앙 고백서이며, 기도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4. 시편이 주는 영적 의미

 

 

 

 

 

 

 

시편은 이제 단순한 시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경배하였던 조상들이 겪었던 시련과 고통들을 가장 현실성 있고 실제적인 모습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는 시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때 시편은 곧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신앙의 끈이 이 시편을 통해 끊임없이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5. 내용분해

 

 

 

 

 

 

 

. 1(10-41)

 

 

 

무명의 시(1, 2, 10, 33), 다윗의 시(329, 11-32, 34-43)

 

 

 

. 2(42-72)

 

 

 

고라 자손의 시(42, 44-49), 무명의 시(43, 66, 67, 71), 아삽의 시(50), 다윗의 시(51-65, 68-70), 솔로몬의시(72)

 

 

 

. 3(73-89)

 

 

 

아삽의시(73-83), 고라 자손의 시(84, 85, 87, 88), 다윗의 시(86), 에단에 마스길의 시(89)

 

 

 

. 4(90-106)

 

 

 

모세의 시(90), 무명의 시(91-100, 102, 104-106),다윗의시(101, 103)

 

 

 

. 5(107-150)

 

 

 

무명의시(107, 111-119, 135-137), 다윗의시(108-110, 138-145),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120-134), 할렐루야시(146-150)

 

 

 

 

 

 

 

?[연구1] 1권 다윗의 시(1-41)

 

 

 

시편을 연구하는 방법에는 책별, 주제별, 저자별의 세 가지가 있다. 이중에서 책별로 나누어 보녀 모두 5권의 책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 제 1권에 해당하는 본문은 그 내용상 창세기에 대응하고 있으며, 그 주제는 피조물인 사람들에 관한 내용들을 다르고 있는 것으로 불 수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가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렇게 나누어지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각자 하나님께 어떠한 모습으로 보여지며, 참된 신앙을 갖추는 삶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복 있는 사람과 악인(1-13)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인간에게 축복을 내리셨다(1:28). 이러한 축복에 반해 저주라는 말은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3:14-19). 창조된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각자의 모습대로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 모습인지를 망각한 채 살고 있다. 즉 이 세상의 삶이 복 있는 사람으로서의 삶인지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 있는 사람과 악인은 각각 어떠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인가?

 

 

 

 

 

 

 

1)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사람과 심판하시는 사람

 

 

 

성도들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첫 걸음을 내디딜 때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죄를 벌하지 않아야 한다(1:1). 이것은 세속과 분리된 생활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들의 생활이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1:2). 이러한 모습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다. 반면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으로서 우리들에게 보여지고 있다(1:5). 이들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들의 경험을 의지하며(20:27), 또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물질적인 삶에 대해 신경쓰고 있다(6:5). 결국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악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참된 성도의 삶

 

 

 

자칭 그리스도 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의 삶을 진정한 그리스도의 삶이라고 인정할 수 는 없다. 의인의 길은 하나님께서만 인정하신다(1:6). 여기서 인정하신 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크나큰 사랑으로 늘 인도하시고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뜻한다.

 

 

 

 

 

 

 

2. 참된 목자와 양떼들(14-25)

 

 

 

 

 

 

 

피조물로서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관계를 성경에서는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10:11-15). 관계성이 파괴되거나, 잘못된 관계로 이루어질 때 목자와 양은 고민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따라서 목자와 양의 진정한 관계를 알아보고, 하나님과 성도들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1) 목자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소유

 

 

 

여기서 말하는 목자는 삯군 목자(14:12)가 아니라 선한 목자이다. 그러기에 양들은 목자들을 따라 가기에 두려움이 없어야한다(23:4). 목자들은 양 떼들 앞에서 가야 하며 양들은 그를 따라가는데 있어서 조금도 의심이 없어야 한다. 목자에 대한 양들의 순종의 모습이 있을 때 양들에게는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23:1). 왜냐하면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2) 푸른 초장과 물가에 거하는 성도의 삶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그의 보호를 받았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돌보는 참된 목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성도들의 삶을 인도하시게 되며, 성도들은 그분의 인도하심에 모든 것을 의지해아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공의로우심(26-46)

 

 

 

 

 

 

 

다윗의 생애는 배신과 좌절의 연속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자신의 아들인 압살롬의 반역(삼하15:7-12)과 세바의 반역(삼하20:1-22)으로 인한 그의 괴로움은 상당히 컸었다. 이럴 때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처한 상황을 아뢰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다. 그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떠하였는가?

 

 

 

 

 

 

 

1)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함

 

 

 

다윗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환난에 처해 있을 때 자신의 떳떳한 신앙생활을 말하며(26:3-8),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렸다. 그리고 악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보응을 간구하였다(28:3-5 31:14 34:15-22). 이렇게 간구하는 가운데 그는 하나님의 응답과 악인에 대한 의인의 승리를 확신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질 수 있었다(27:13-14 31:19-22). 결국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험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주장하시며, 자신을 연단 하시기를 원했던 것이다.

 

 

 

 

 

 

 

2) 신앙으로 고난을 극복

 

 

 

다윗은 자신에게 다가온 신앙의 연단들을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으로 극복하였다. 우리는 흔히 고통을 당할 때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망각한데서 오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세상이 가져다 주는 환난을 나의 신앙에 성숙을 가하는 채찍질로 여기고 잘 극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본 서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 중에 닥칠 수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과 목자와의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자신 있는 신앙의 모습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고 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의 모습들이 자신 있는 모습이 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보다 서글픈 일은 없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서글픈 것은, 그리스도인이면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구2] 2, 다윗과 고라의 시(42-72)

 

 

 

2권에 해당하는 이 부분은 출애굽기의 내용과 비슷하며, 그 중심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것이다. 죄악으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간들에게 구원이라는 놀라운 은총을 주셨다. 성도들은 그 은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때로는 고난에 처할 때가 있다. 그 고난은 외적일 수도 내적일 수도 있다. 본 서에서는 이러한 고난의 삶 속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사역을 발견할 수 있다.

 

 

 

 

 

 

 

1.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42-50)

 

 

 

 

 

 

 

인간들에게는 목마름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에도 쓰인다. 본 서에서 저자는 자신의 목마름을 표현하면서 세상사람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42:3,10)고 조롱할 때 자신에게 오는 고통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 어떻게 헤어나 올 수 있었는가? 만약 이러한 소리를 듣는 성도들이 있다면 본 서의 저자처럼 고통스러워 할 신앙의 자세가 도어 있는가? 있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그 고통을 해결하겠는가?

 

 

 

 

 

 

 

 

 

 

1)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된 삶

 

 

 

시인은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 한다(42:1). 즉 자신이 당한 어려움이나 괴로움으로 인해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찾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절대 신앙인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세상의 가치들을 의지한다면 그것들로 인해 도리어 멸망하고 말 것이다(8:20). 인간의 영혼에 관심을 두고 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이 이루어질 때 그러한 목마름은 깨끗이 사라질 것이다.

 

 

 

 

 

 

 

2) 헌신적인 삶의 실천이 필요

 

 

 

물질 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간소외 현상이 극도에 치닫고 있으며, 인간들의 삶은 절대적인 신에 의지하기보다는 물질에 의지하는 경향이 짙어져 가고 있다. 자연히 진리의 말씀은 허공을 치는 메아리와 같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시편 기자의 헌신적인 삶의 실천(42:8 63:63)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진단해 보아야 할 것이다.

 

 

 

 

 

 

 

2.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51-61)

 

 

 

 

 

 

 

아담이 지은 최초의 죄악으로 인해 생긴 하나님과의 단절된 생활(3:23)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짓는 모든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59:1,2).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성 파괴는 인간 자체의 파멸을 가져오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회복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1)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해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51:4)라고 고백하고 있다. 사실은 다윗은 밧세바를 간음하였고(삼하11:1-12,13), 그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로 내보내 죽게 하였다.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죄악은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 너무나 큰 탓에 그것에 의해 가리워지고 만 것이다 .어쨌든 다윗은 자신의 죄악성을 하나님께 아뢰며 용서를 구하고 있다(51:2-9), 회개치 않는 삶은 죽은 삶인 것이다.

 

 

 

 

 

 

 

2) 구원의 확신을 갖고 간구

 

 

 

위기에 처해 있는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께 의지하게 된다(54:4). 그러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이 간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흔히 간구 하면서도 정말로 응답해 주실까? 라는 의심을 갖곤 한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모든 것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고 한다(55:22). 인간사에 펼쳐지는 질고 속에서도 끝끝내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고 확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3. 하나님 절대의지의 신앙(62-72)

 

 

 

 

 

 

 

성도들에게 주어진 삶의 최대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이나 물질에 자신들의 가치관을 두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이 말이 생소하게 들린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5:2). 왜냐하면 목적을 잘못 정했을 때 오는 좌절은 결국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1) 하나님은 나의 구원

 

 

 

시편 가지는 하나님을 가리켜 자신의 구원자이시며, 산성이시다(62:2)고 한다. 그리고 어려울 때 피할 수 있는 피난처라고 한다(51:13). 이 세상의 구원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밖에 없다(4:12). 그 누구도 인간들을 구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을 주시는 그분에게는 참된 소망이 있다. 이 소망은 인간들에게 즐거움을 주는(10:28), 부활에 대한 소망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인간의 생사 화복이 달려 있는 것이다. 죄악으로 더러워진 이세상의 구원자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2)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인간의 삶 가운데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생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떠나지 말기를 간구하는 시인의 모습(71:9), 세상적인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즉 세상에서의 인간의 노년은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지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은 노년이 되어갈수록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광스러운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축복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셨다(71:20)고 하였다. 특히 우리라고 표현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의 연합체로 본 것이다. 이것은 결국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도들이 살아가는 과정 속에는 고난이 따르게 된다. 하지만 그 고난이 따르게 된다. 하지만 그 고난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부패되고 타락되었다. 따라서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주셨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영적인 구원 외에 외적으로는 구원을 말하면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다.(72:14).

 

 

 

이 부분을 가리켜 칼빈(Calvin)"이 세상의 의인들이 악인들에게서 겪는 억압과 핍박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구속 사역의 성격을 암시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나의 구원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들을 구원하고 계신다.

 

 

 

 

 

 

 

?[연구3] 3, 아삽의 시(73-89)

 

 

 

3권은 아삽의 시로서 레위기가 그 배경으로 쓰여졌다. 쓰여지는 주요 단어는 '성소'이다. 그 내용은 한 인간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적인 모습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말하고 있다. 시인은 외적으로 보이는 행운이나 복에 대해 유혹을 느끼며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불평을 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에 대해 바른 자세를 갖고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1. 하나님 앞에서 모순은 있을 수 없음(73-75)

 

 

 

 

 

 

 

아삽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한 번쯤 던졌을 질문에 대해 시원한 답변을 하고 있다. 그 질문은 아마도 예수를 잘 믿고 순종 잘하는 성도들의 삶과 그렇지 못한 불신자들의 삶의 차이에서 오는 모순에 대한 갈등에 관한 것일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통을 받을 때 비그리스도인들은 왜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16:19-31). 이렇게 불공평한 현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다루시는가?

 

 

 

 

 

 

 

1) 멸망의 종국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시인의 판단이 성전에 들어설 때에 비로소 바로 설 수 있음을 고백한다(73:17). 인간의 이성이나 생각만 가지고는 올바른 행복을 맛볼 수 없다. 결국 신앙이 필요하다. 시인은 모순된 현실의 대답을 성전의 파괴와 연관짓고 있다(74:7,8). 당시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회당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회당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행해지던 곳이다. 그러나 이러한 회당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그 드려지는 예배 위에 하나님께 대한 바른 신앙이 없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을 보여 준 예라 할 수 있으며, 또 악인은 반드시 그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75:825:15).

 

 

 

 

 

 

 

2) 공의의 하나님을 찬양

 

 

 

시인은 자신의 간구(74,75)가 이루어짐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심판 날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75:4-8). 즉 악인에게는 영원한 형벌을, 의인에게는 영원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바라본다. 오늘날 수없이 많이 드려지는 예배 가운데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신뢰하는 자세로 드려지는 예배가 얼마나 될까? 만약 이러한 진정한 예배의 자세를 지니지 못한 자들은 그 종말이 형벌로 끝나 버릴 것이다.

 

 

 

 

 

 

 

2.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당위성(76-78)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교훈을 주신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하면서부터 시작되고 있다(78).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78:2)라는 말은 누구든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고 관심을 가져도 될 가치 있는 진리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난 과거를 회상하게끔 하셨을까?

 

 

 

 

 

 

 

1) 참소망을 하나님께 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 은혜를 체험하고도 계속하여 범죄하였다(78:9-64). 이것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필요하게 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필연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구속 하역의 대상인 인간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수행해나가시는 놀라운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3:25 3:5).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선조들의 죄악성을 보여 주면서 성도들은 그러한 어리석음을 답습하지 않기를 원하고 계신 것이다(78:1-8). 그리고 하나님 자신에 대해 참소망을 두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2)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

 

 

 

시인은 시78:69"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으셨으며"라고 한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 곧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 산다'는 뜻이다. 이 땅의 성도들도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는 없으며, 때로는 하나님께 범죄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성도들은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사실을 증거하는 복음의 사역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28:19,20 딤후4:2).

 

 

 

 

 

 

 

3. 민족구원을 위한 타원

 

 

 

 

 

 

 

위기에 처한 양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양 떼를 지키는 목자뿐이다. 양은 자기 목자를 알며, 목자 또한 자기 양을 안다(10:14,15). 그것은 천국 공동체의 사랑의 관계를 상징한다. 시인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하나님의 눈에 비친 그 공동체의 모습은 어느 정도로 비참해져 있는가? 비참해진 현실속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 황폐된 포도원 같은 이스라엘

 

 

 

시인은 이스라엘 민족을 포도나무에 비유하고 있다(80:8). 이 포도나무는 애굽에서 가져왔음을 나타내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의미하며, 그 사건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옮겨 놓으신 포도나무를 하나님께서는 황폐케 하셨다(80:12).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백성의 타락과 그 비극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79:17, 18),그러나 종국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2) 회개와 구원을 호소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시기를 간구하고 있다(85:4-7). 이스라엘 백성으로 상징된 포도밭이 황폐한 이유를 알고 거기에 따르는 회개의 기도를 하면서 구원을 호소하고 있으며, 자신들을 괴롭히는 재앙을 거둬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79:5-12). 이처럼 성도들은 자신의 과오와 잘못을 늘 살피고 그것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본 서에서 시인은 세상의 모순으로 인한 불공평함을 토로하며 민족의 구원을 호소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불공평한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의지하고 그분께 참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지혜인 것이다. 개인의 삶과 한 민족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인생 중에 가장 절망적일 때가 오더라도 참 소망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연구4] 4, 저자 미상의 시(90-106)

 

 

 

본문의 주요 내용은 삶의 대한 방황과 불안이다. 이 세상에는 악인과 의인이 살고 있다. 악인으로 인해 의인은 불안에 떨며, 악인이 받는 행복에 의해 신앙의 방황을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통치에 맡기며 참 기쁨의 찬양이 넘쳐남을 얘기하고 있다. 세상에 살면서 불안해 본 적은 없는가?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신앙의 갈등을 느껴본 적은 없는가?

 

 

 

 

 

 

 

1. 심판주 되시는 하나님(90-92)

 

 

 

 

 

 

 

인생은 나그네의 길이며, 그 끝은 결국 죽음이다. 모세는 인생의 연수를 70이라고 했다(90:10). 누구나가 한 번 태어났다가는 반드시 죽게 되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게 됨(9:27)을 알수 있다. 이 심판은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심판사실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의인과 악인은 각각 어떠한 심판을 받을 것인가?

 

 

 

 

 

 

 

1) 악인에게는 징벌을, 의인에게는 구원을 주심

 

 

 

죄의 열매는 죽음이다. 이 죽음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1:14), 그 이유는 주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악인은 종국에 가서는 멸망하고 만다(92:7-9). 특히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흩어진다'(92:9)라는 표현은 심판날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의미로 본다. 또한 시인은 의인을 종려나무와 백향목에 비유하고 있는데(92:12), 이것은 결국 의인의 승리적인 삶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16:33).

 

 

 

 

 

 

 

2)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확신

 

 

 

성도들은 어떠한 위치에 처하든지 늘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려고 하나님께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오른손으로 성도들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94:18).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 성도들은 늘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2. 여호와의 통치(93,94)

 

 

 

 

 

 

 

세상은 죄악의 만연으로 이해 인간성 상실과 가치 판단이 흐려지고 있다. 성도들은 세상의 권력에 순응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죄악으로 치닫고 있다면 대항할 의무 또한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절대 주권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99:1).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때 세상의 모습은 어떠할까? 또 자신의 이성과 경험에 의존해 살 때와 하나님께서 주관하실 때의 차이는 어떠할까?

 

 

 

 

 

 

 

1) 요동치 아니함

 

 

 

세상의 상황은 의인들을 대적하는 무리들로 가득 차 있다. 자연 세계 중 인간들에게 공포심을 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물과 큰 파도일 것이다(93:3,4).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93:30)가 의미하는 것은 이 땅의 악한 세력들이 하나님의 왕권에 도전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적들 보다 더 크신 능력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이시다(4:4-6). 따라서 이 세상의 거센 물결이 휘몰아칠지라도 결코 흔들림이 없는 것은 주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감사

 

 

 

불안과 공포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는 것이다(11-28). 주님께서 내 마음을 주관하시도록 비워놓아야 한다. 예수그리스도를 떠난 삶은 무의미하다. 만약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이 없다면 시련을 겪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다만 현실에 만족하는 어리석은 죄인들과 같은 것이다(고전15:32). 주님이 다스리는 인생의 기쁨이요, 보람이며, 가치있는 삶인 것이다.

 

 

 

 

 

 

 

3. 감사와 찬양(95-106)

 

 

 

 

 

 

구속의 궁극적 대상인 인간들이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것은 바로 찬양이다(19:5).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102:18). 그리고 이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신앙의 성장을 가져오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제물보다 찬양을 기뻐하고 계신(69:30,31).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찬양을 하나님께 직접 드린 것을 볼 수 있다(14:26). 그렇다면 이러한 찬양은 어떠한 모습으로 드려야 하는가?

 

 

 

 

 

 

1) 영혼에서 우러나는 감사와 찬양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의 우리의 모습은 늘 감사하는 모습이 되어야한다(95:2). 여기서 감사라는 것은 '서두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신속히 나가야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해야 한다(96:1). 이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새로운 심령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죄악에 물든 심령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성도들의 찬양은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총을 날마다 깨닫고 부르는 은혜의 찬양이 되어야 한다(42:10 14:3).

 

 

 

 

 

 

 

2) 매일의 삶 속에서의 찬양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형식적인 찬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예배시에 드려지는 찬양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져야 할 것이다(4:24). 왜냐하면 찬양도 예배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칼빈(Cal-vin)은 시편 95편을 가리켜 '예배시에 사용된 감사 예배'라고 하였다. 이처럼 중대한 찬양은 그저 입술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마음과 온 영혼을 다해서 드리는 생활의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민과 걱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로 인해 방황하며 두려워할 때도 있다. 그러나 참된 성도라면 하나님의 궁극적인 공의를 믿어 그의 통치에 의존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삶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보여지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인정하심이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을 주님의 통치에 맡겨 버릴 때 기쁨이 넘쳐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적인 이성이나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5] 5, 다윗의 시(107-159)

 

 

 

시편의 마지막 책인 본 서는 신명기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주요 단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명기에서는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바벨론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 땅에서 인간들이 경배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한 분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하며, 계시로 보여 주신 진리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구원하여 주신은혜에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 준다.

 

 

 

 

 

 

 

1. 경배의 대상인 하나님(107-118)

 

 

 

 

 

 

 

인간들의 삶의 제일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 스스로의 삶으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으로 그 구원을 행하신다(115:1).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보다는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에게 신성을 부여하여 그것들을 의지하려고 한다. 따라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만든 우상에게 신성을 부여하는 사람이다(115:8).

 

 

 

 

 

 

 

 

 

 

1) 유일한 경배의 대상인 여호와

 

 

 

하나님께는 인생들에게 땅을 주셨다. 그것은 곧 이 땅에서 인간 자신들의 삶을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이 우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시편 기자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죽은 우상을 신뢰하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며 의지하라고 한다(115:9-11). 의지한다는 말에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보호자요, 방패시며, 상급이 되신다는 뜻이 암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죽은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여호와만 의지하라

 

 

 

지혜롭게 되기를 원한다면여호와를 의지해야 한다(111:10).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12:1-3)을 이루어 나가시고 계신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축복이 주어진다. 이 축복의 조건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사람들에게 국한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하심은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118:2-4).

 

 

 

 

 

 

 

2.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119-140)

 

 

 

 

 

 

 

성경은 인간들의 삶 전반에 관여한다(딤후3:16).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생활은 풍성하다. 우리는 계시된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가 있다. 이처럼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시편 기자는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그리고 인간들의 생활 속에서 그 말씀은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1)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물이요, 생명을 줌.

 

 

 

물이 육체를 깨끗게 하듯(15:3l 5:25) 말씀은 속사람을 깨끗게 한다(119:9-16). 말씀은 꿀이며 등불로(119:103, 105, 130), 이세상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것이다(119: 14 ,72, 162). 하나님의 말씀은 송이꿀(19:10)보다도 더 달다고 고백한다. 어두워진 인생에 참 인도자가 된다. 또한 성경은 그것을 소유한 삶들에게 참 생명을 주신다(119:25,37,9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4:12)이기에 좌절하고 실의에 빠졌을 때 참 생명과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다(119:133).

 

 

 

 

 

 

 

 

 

 

2) 말씀에 비추인 우리 삶의 모습

 

 

 

본 서에서 말씀을 묵상하는 시편 기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119:148). 묵상한다는 것은 '몸과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펼친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신뢰하고 묵상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야 하며, 또 그것을 실천해야 함을 의미한다. 일상 생활 가운데서 주의 법도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시편 기자의 모습은 오늘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3.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141-150)

 

 

 

 

 

 

 

성도들은 삶 속에서 하나님을 우러러 보아야할 때가 있으며, 때로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할 때도 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들에게 안정과 평화를 주신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피조물인 인간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행동은 무엇인가? 그 행동을 하는 데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가? 왜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야 하며, 왜 굳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아뢰야 하는가? 시편 기자는 이러한 일련의 질문들에 대해 상세히 답하고 있다.

 

 

 

 

 

 

 

1)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장 간단히 답할 수 있는 것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이다(146:1). 이 찬양은 시인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찬양은 인간에게 드려질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국에 가서 죽게 되고 (3:20), 생전에 인간들에게 부여된 권력이나 명예도 죽음과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12:16-21). 따라서 찬양은 영원 무궁하신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께 드려져야 함이 마땅하다(148:1-14). 또한 찬양을 할 때에 모든 종류의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하여야 한다(150:3-5).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악기로 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2)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편 기자는 마지막으로 호흡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여호와를 찬양할 것을 시사한다(150:6).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돌보시고(144:3),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생각하며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자연을 포함하여-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의무요 책임이다(148:1-14). 오늘날 수업이 많이 외쳐지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우리의 호흡이 끊어지는 그 날에는 결코 주를 찬양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진리 말씀 속에서 평안을 얻으며 구원의 은혜를 맛보며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를 깨닫을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모든 존귀와 영광을 그분께 돌려야 할 것이다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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