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한 주 앞 둔 이번 주일에는 며칠 전 기도하다 이 말씀이 감동이 있어 마태복음 21장 28-32절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먼저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마21: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마21:29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마21: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마21:31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21: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은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대답은 “가겠소이다”하였으나 가지 아니하였고, 둘째 아들은 대답은 “싫소이다”하고 하였으니 후에는 뉘우치고 갔는데,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는지 묻는 예수님의 비유적인 질문이지요.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은 대제사장이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 즉 겉으로 외식하며 거룩한 모습으로 보이나 실제로 내면에 진실과 행함이 없는 그들과, 삶의 모습은 한 때 손가락질 받고 조롱받아 마땅한 삶을 살았으나 뒤에는 실제로 뉘우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세리와 창기가 더 나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됨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렇지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제가 나누고 싶은 주제는 역사적인 이러한 상황과 그에 따른 해석보다는, 우리가 말씀을 듣는 사람에서 끝나지 말고 행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는 사람이 되자는 주제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통하여, 또는 예배를 통하여, 또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으며 또한 주님을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듣는 자리에서 끝나지 그 말씀을 가슴에 생명처럼 품고 인내하며 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 모두 첫째 아들처럼 듣고는 아멘!으로 화답하는 자리에서 끝나지 말고, 아멘의 화답과 아울러 실제로 지키고 행함의 자리로 나아가는 복된 사람이면 싶습니다.
요즈음은 제가 체력적으로 많이 곤하다보니 예배를 위한 많은 여러 준비와 기도, 그리고 심도 있는 교통의 시간을 가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과 간단히 교통하고 조금은 간단히 설교를 마치고 예배를 마칠 때가 많습니다. 속히 건강과 체력을 회복시켜 주셔서 마음껏 주님과 교통하며 찬양하고 설교하고 싶은 날을 주님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본문을 통하여 간단히 세 가지를 감동하셨습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말하면 주님의 감동하시는 요지를 세 가지 정도 교통하는 차원에서 설교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첫째, “말씀은 생명과 복의 근거라”라 감동하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이하를 보면,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3장 16절 이하를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지요.
히브리서 4장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우리의 혼과 영 및 관절과 골수까지 찔러 쪼개어,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하며 생명을 얻게 합니다. 궁극적으로 성경은 생명을 위한 생명의 책이지요.
또한 디모데후서 3장의 말씀처럼 성경 안에는 생명의 길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케 하며,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고 복된 생을 살아가는 길과 지혜를 담고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며 읽고 들으며 또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지켜 행함이 소중하다”라 감동하셨습니다.
주님의 감동하심이 마치 초등학교 아이도 본문에서 추론할 수 있는 요지처럼 너무도 단순하지요. 실제로 주님과 교통하여 보면 그분의 가르치심은 복잡하거나 현학적이지 않습니다. 너무도 단순하고 분명한 진리를 말씀하시고 또한 반복하여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현학적인 가르침보다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빛을 얻게 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 이하를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그 말씀은 듣는 것으로, 또한 보는 것으로도 복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결국은 지켜 행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것처럼, 지켜 행함이 없이 듣기만 하고 보기만 한다면 그 말씀이 무엇으로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복을 누리게 하겠는지요?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실제로 듣기는 들어나, 보기는 보나, 행함이 있는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어쩌면 행하기는커녕 듣거나 보는 자리에도 열심이 그다지 없지요.
어쩌면 오늘 설교는 여러분을 위한 것보다 저 자신을 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깨어 있으라” 명하시면 얼마나 그 말씀을 붙잡고 애썼던가, “사랑하라”명하시면 또한 그 말씀을 붙잡고 얼마나 애썼던가, 때로는 주님의 말씀하심을 내 마음의 선택에 따라 골라 취하며 행하지 않았던가!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의 경우와 출애굽의 역사 등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복 주시기 이전에, 영적으로 더 깊은 자리로 인도하시기 이전에 순종의 연단과 훈련을 반드시 하심을 성경은 보여주지요.
아브라함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이지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말없이 순종할 그리스도인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요?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할 때 하나님께서 네 아내 사라의 말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 행할 때, 비록 종된 여인과 자식이지만 그 말씀에 순종함이 과연 쉬웠을까요? 창세기21장 11절은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라며 인간적인 깊은 고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어 쫓으라 명하실 때, 이삭을 바치려 순종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이” 오직 떡과 물 한 가죽부대만을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 쫓아내며 순종하지요. 비록 종을 통해 난 자식이지만 그도 자신의 씨일진대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라는 표현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만나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으로 그들을 내어 쫓음이 쉬웠을까요?
비록 본처를 통하여 난 자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몸을 통하여 늦게 얻은 그 아이를 아버지로써 사랑하였을 터이고 재롱과 자라감에 인간적인 정도 깊었을 터, 그 순종함이 과연 쉬었을까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저 자신을 돌아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위대한 믿음과 순종에 숙연해지고 머리가 숙여집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향하여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말씀 하시며,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축복하여 주셨지요.
오늘 본문의 설교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이 가슴 속에 같이 깊이 새겨보고자 하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듣는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보는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본 받아 주의 말씀이 무엇이든지 지켜 행하고 순종하는 자리에 나아가자 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읽고 들으면 그것을 생명처럼 가슴에 품어 지키고 순종하기 위해서 애쓰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복된 생이 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하여, 결국 그 말씀을 품고 인내하고 “끝까지” 지켜 행하지 못하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함을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말씀을 품고 인내하며 지켜 행하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거둘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저와 여러분 모두 말씀을 품고 인내하며 지켜 행하며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갔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날마다 말씀을 듣고 읽으라” 감동하셨습니다.
세 번 째 주제는 왜 그래야 하는지 잘 아실 터, 또한 곤하여 조금 간단히 논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타락한 본성으로 인하여 잠시의 틈만 생기면 우리의 마음은 타락한 본성인 육을 좇아 흐르지 거슬러 영을 좇아 흐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함으로 항상 깨어 있으라 하신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듣고 읽으며 가까이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지켜 행하려면 듣는 것과 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요.
늘 말씀을 듣고 읽어야 하며, 늘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 안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혼자 나중에 기도하는 가운데 본문에 관한 주님의 감동하심이 있어 그것을 적으며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러한 감동하심은 기도함으로 영의 의식세계로 들어가면 육이 아닌 영, 곧 마음으로 들려옵니다. 한 구절 감동하시면 적고 또 기도함으로 들려주시면 적절한 표현으로 적고 그렇게 하지요.
주님의 감동하신 말씀 가운데서와 그리고 위에서 말씀드린 설교본문을 통하여, 말씀을 지켜 행함의 소중함을 가슴에 새롭게 품고, 듣고 보는 자리에서 나아가 지켜 행하는 성숙한 자리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성령 안에서 감동하시며 이르시되..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 생명이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을 늘 유의하며 가슴에 새겨라. 순종하는 자는 마음의 평강과 주님의 능력을 맛볼 것이며, 불순종하는 자는 마음의 공허와 곤고함이 깃들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을 유의하라. 그 말씀을 생명처럼 품으라. 그 말씀이 네 영혼을 소성케 하며, 삶의 복된 열매가 가득하게 하리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뇨! 그 말씀과 계명을 지켜 행함이 아니뇨! 그러므로 무릇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말씀을 유의하며 지켜 행하느니라”
“날마다 말씀을 읽으며 익히라. 그것이 너로 복되게 하리라. 말씀을 가까이 두고 가까이 하라. 말씀이 너를 주관하게 하라. 그러한 삶이 너로 밝은 눈을 지니게 하며 명철을 얻게 하리라.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 그 말씀의 참된 생명됨을 가슴으로 알게 되며 그 마음엔 언제나 생명수가 흐르리라”
“무릇 천지만물은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셨나니, 모든 만물은 그분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경외함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은 그 뜻대로 무엇이든지 행하시는 전능자,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복 주시는도다. 그러므로 모든 만민들아, 주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은 오늘도 만물을 통하여, 너희의 마음(양심과 직관)을 통하여 가르치신다.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신다. 무릇 그 음성에 화답하는 자, 순종하는 자, 그 생이 복되리로다. 생명과 평안을 얻으리로다”
“이 세상에 주께로 말미암지 않음이 그 무엇이더냐! 하나님은 그 능력으로 하늘의 축을 세우셨고 그 음성으로 온 세계를 펼치셨도다. 날마다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도다”
“그러므로 모든 만민들아, 주를 경외하라! 하나님이 모든 것들의 근원이시요, 복원근원이시도다. 당신을 경외하는 자 복 주시되 그 자손에게 면면히 주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끝이 없도다”
“시가와 노래와 찬미로 주를 경외하라. 그분은 찬송받기에 합당하시니 이는 하나님은 선하심이라, 사랑이심이라”
“세상 만물을 바라보라. 그 분의 지혜와 지식의 무궁함이 어떠하뇨! 눈을 들어 하늘의 뭇별을 바라보라. 그분의 광활함이 어떠하뇨! 그러므로 만민들아, 주를 경외하라. 그는 우리를 지으신 분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나님의 것이기에 당신께로 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을 들으라. 아멘으로 화답하며 겸손히 그 말씀에 순종할지어다. 이는 너로 하여금 생명과 평안을 얻게 하리라. 세세토록 영광과 찬송과 존귀하심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원히 있을지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