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주일 설교문
제목 / 겉 사람과 속사람으로의 야곱과 이스라엘의 차이
설교자 / 류현수 목사
본문 / 이사야 44장 1-5절
1 나의 종 야곱아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그를) / 2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 3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 4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물들의)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 5 혹이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요, 혹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칭할 것이며 혹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칭호하리라.
서론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 바로세우기란 뜻으로 번제단에서 있어야 할 일을 설명하는 대선지서에서 그 시작인 이사야는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중심의 예배에 대한 죄, 그리고 생활중심의 마음의 예배를 주장합니다.
‘종’이라는 뜻은 ‘일하다, 봉사하다’이고, ‘야곱’은 ‘발꿈치, 발꿈치를 잡다’라는 뜻입니다.
‘택하다’는 ‘사이에서 구별하다’라는 뜻이고, 접속사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통치하다, 하나님과 싸워 이겼다’는 뜻입니다.
‘들으라’는 ‘경청, 부르다’라는 뜻입니다.
여기 1절에 있는 단어 하나가 전치사로서 남성 3인칭 단수인 ‘그를’이라는 ‘בו’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다시 표현한다면 <나의 종 야곱아 이제 들으라 이스라엘 그를 (내가) 구별하였다>라고 해석함이 옳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국가나 민족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한 개인의 자격으로서 신앙의 격을 갖춘 신앙인을 지칭하는 말이 됩니다.
2절에서, ‘지었다’는 말은 ‘번제단’에서 제물이 되기까지 하나님이 만들어 왔다는 뜻이며, ‘조성하다’는 ‘압축하다’는 뜻으로 고통을 주어 납작 엎드리게 한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태’라는 말은 ‘가슴’이라는 말로 애정을 가지고 키웠다는 것이며, ‘여수룬’은 ‘곧은’이라는 뜻으로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외길을 간다는 뜻입니다.
3절에서, 갈한 자에게 물을 준다는 것은 창조 사건의 둘째 날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빛 된 생활을 찾아 자기의 사상이라는 물에 생각을 두고 하나님의 법을 찾으면 영을 위한 복을 구하게 하는 위의 물을 그 생각에 두고 하늘이라 칭하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마른 땅에 시내가 내리게 하신다는 말씀은 창조 셋째 날의 모습으로 위엣 물은 하늘이 되고, 아래의 물은 바다가 되는 그 사이에 남게 되는 뭍(마른 땅이라는 뜻)을 생각하게 되면서 그 가운데 흐르는 새 물이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게 하기 위한 새 물을 연상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신’은 ‘하나님의 분노’를 뜻하는 것이고, 그 신이 내리는 ‘자손’이란 ‘육체적인 열매’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보시는 마음에 존재하는 육체적인 행동에 하나님의 분노를 쏟아 더 이상 할 수 없게 만든다는 뜻이 됩니다.
‘복’이란 ‘번성 선물, 관대함’이란 뜻이며, 복을 내리는 ‘자손’은 ‘소출, 생산 밖으로 나오는 자손’이란 뜻으로 그 육신중심적인 행위에 관하여 더 이상 하나님이 징계하지 않고 관대함으로 베푸신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3절로 설명되는 새로운 마른땅에 흐르게 되는 시내의 새 물이란 육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던 행위를 버리게 하는 새 물로 창조 3일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무기자루인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연상하게 하고 있습니다.
4절은 3절의 연속인데, ‘풀’은 ‘집합체로서의 무성한 풀’을 뜻하며, ‘가운데서’는 ‘구별하다’는 뜻이 강하며, ‘솟아나다’는 ‘(새로운)싹이 트다, 싹이 나다, (열매를)맺다, 자라게 하다’라는 뜻으로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것과 구별되는 또 다른 새싹이 틔여 오르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상징으로 설명되는 ‘버들’은 ‘혼합하다, 무역하다, 스스로 섞이다, 담보물이 되다, 담보물을 주다, 서약하다, 보증이 되다, 보증을 서다’ 등의 뜻으로, 개인으로서의 한 신앙인이 새것을 얻기 위해 옛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림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5절은 1-4절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새로운 믿음을 바라는 것의 발꿈치를 잡고서 자신의 것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야곱이라 칭한다는 말씀이 됩니다.
‘손’이란 ‘쥔 손과 구별되는 것으로 편 손을 말하며 절대적인 힘’이라고 그 정의가 설명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기록한다는 것은 자신이 여호와께 속하였다는 것을 생각에 새기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있는 힘을 다하여 육신의 소욕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고 있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이름으로 자칭한다는 것은 ‘자신은 늘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이 소망이 되어서 육신의 일을 포기하고 그 그릇된 믿음을 따르는 행위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자기와의 전쟁을 벌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는 뜻이 됩니다.
본론
43장의 끝을 보면 똑같은 이스라엘과 야곱이 나오지만 그 야곱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배도하고 패역을 일삼아 성소의 어른 같은 그 믿음을 욕보이게 하는 하나님을 만나는 야곱과 이스라엘,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괴롭게 한 야곱과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의 제물을 바치지 않는 자들이라고 설명되고 있습니다(22-28).
야곱과 이스라엘, 같은 이름을 가졌으나 43장의 외면적인 야곱과 이스라엘과 완전한 차이를 보이는 44장의 야곱과 이스라엘은 분명 내면에서 찾는 이름으로 마음중심의 예배를 알게 되는 신앙인의 자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보이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람에게 내는 향기를 발하기 위하여 자기 것을 드리고 하나님의 것을 사지도 않았고, 자기를 죽이기 위한 기름부음을 원하지도 않았으며, 육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구하여 하나님께 자기의 죄 짐을 얹어드리고, 그 육신의 문제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그 죄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고 합니다.
육신의 현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찾는 그들, 육적인 야곱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의 기쁨을 위하여 하나님의 희생을 강요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인간중심의 방법으로 교회에서의 예배를 중시하여 마음으로 드려야 할 생활예배를 알지 못하는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義)로움이라는 돈의 의미를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던 인간방식의 의로움이 자신이 가진 돈이라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그 인간적인 의로움이 하나님이 보시는 악과 죄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그 인간적인 의를 제물로 삼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로움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을 사야합니다.
그것이 내면적인 야곱이 되는 길이며 이스라엘이 되기 위한 일입니다.
그 길은 오직 하나님과 하늘나라만을 목적으로 하여 죄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이 가야 하는 외길이며, 흔들릴 수 없는 곧은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심의 목적이 하늘나라에서 살게 될 미래만을 생각하여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심인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그 일들을 사람들이 주는 괴로움 안에서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으로, 천국에는 절대 가지고 갈 수 없고 그 것을 가지고서는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는 죄들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여기에서의 복은 세상이 주는 고통 안에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을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더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에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하리요(히1:14-2:3)≫
더 하지 않아도 성경의 핵심은 사람이 하나님의 온전하심 같이 마음이 변화 받고 행실이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사랑으로 완성되는 온전함이 나오게 하시기 위함이며, 그 방법은 원래부터 불순종과 불법 된 자기중심의 요소들을 마귀를 통한 환경의 변화와 병, 그리고 그 마귀에게 미혹되어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느니라≫
히브리서 2장의 말씀이 계속되는 중에 잇는 이 말씀은 그 천사를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가 찔림을 받고 쪼개짐을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소리마저도 육의 눈이 아닌 영의 시각으로 보고 그 사람의 소리나 환경이 주는 고통 그 안에서 자신의 영이 가지고 있는 잘 못된 것들을 발견하고 고백하고 고쳐달라고 부르짖고 행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위한 하나님의 소리로 듣고 자기의 마음을 찢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들을 봅니다,
마음 안에서는 욕심이 있어 영적 간음을 하면서 밖으로는 타인들이 영적 간음을 한 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지금 드러난 열매들을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신앙인이나 비 신앙인이나 불 신앙인이나 똑같이 욕심대로 살 뿐으로 육신적인 열매들만 보일 분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영의 눈으로 본다면, 아니 제3자의 눈으로 보는 그들의 행위 속에는 자신이 전파하고 싶어 하는 하나님을 싸우라고 부추기는 하나님으로 광고를 하고, 문제만 생기면 배신을 밥 먹듯 하라고 가르치는 하나님이라고 광고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귀신만 생각해도 두려움의 대상으로 믿지만, 교회들이 하는 법정싸움이나 편을 만들어 세를 불리는 그 행동에 우주의 최고의 신이신 하나님, 우주의 유일한 재판자는 재판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세상만이 교회들의 재판자라고 하는 말이 들립니다.
설교석상에서는 사랑의 하나님을 외치지만 그들의 몸짓에서는 사랑? 사랑은 무슨 개뿔! 자신을 대적하면 끝까지 찾아내어 죽이라고 가르치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설교석상에서, 또는 전도를 한다고 하는 자리에서는 화목을 말하지만, 목회자들끼리 자기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갈라지면서 교단들이 만들어지고 또 교단 연합체들이 갈라지는 그 모습을 보노라면 그들의 하나님은 너의 목적을 위해서는 피 터지도록 싸우고 그러고도 목적이 성사되지 않으면 통일은 무슨 통일, 찢어져서 서로 싸우라고 가르치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교회의 주장이 자기 눈에 보이는 타인의 행동을 똑바로 하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라고 가르치기도 하며 설교도 합니다.
이를 보면 하와를 미혹한 옛 뱀, 마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품을 무슨? 하나님이 보시는 마음은 생각하지 말고 사람에게만 착한 것으로 보여서 개폼만 잘 잡으면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한편에서는 타인들이 자신에 대해 무어라고 평할까를 생각하며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정당성을 변명하고 남들에게 동의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그 현상을 하나님보다 사람의 평가를 더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진단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님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말고 사람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물로 본다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진정 지금의 교회들의 상태가 하나님을 우주에서 유일한 신이라고, 우리의 마음에 천국을 이루어주시는 분이라고, 세상을 하나로 통일시키시는 분이라고, 화목과 화평을 제일의 모토로 삼는 분이라고 증거 하는 신앙이 있는가?
본문 이후의 말씀을 계속 더 보면, 새로운 싹이 없는 풀을 의지하며 사는 자들, 육신적인 야곱과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을 배척하는 자들 반역하는 자들에 대하여는 세상이 자기의 생각대로만 변하기를 기대하여 사람에게 자기의 소원을 빌고 하나님을 희생시켜 자신의 욕구대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우상숭배자요(9), 자기의 치부를 가리고자 변명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남을 칭찬하는 것은 장색으로(10), 남의 사상이나 믿음을 죽이고 타인의 행위를 비난하는 살인무기를 만드는 철공이며(12), 남을 가르치기 위해 타인의 굳센(백향목) 생각이나 믿음을 부수고, 자기의 말에는 복종하는 자를 만들어(디르사나무), 열심(상수리)을 내게 하는 목수라고 책망하시면서 그 생활의 방법에는 하나님이 정한 벌을 받게 하신고 하셨습니다(9~17).
이제 우리는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서 타인을 상대로 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싸우고자 하는 것이나, 자기를 입장을 밝히기 위한 그 모든 것, 하늘의 생활을 목적으로 하여 하나님만 바라보는 오직 한길 곧은길을 외면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벌을 자초하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해야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를 알고 더러운 행실의 풀 가운데에서 새싹을 다시 틔우듯이 하나님의 이름을 참람되이 일컷던 그런 자신의 행위에서조차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죄들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하면서 행위나 성품을 고침받기위한 일을 하는 것을 참 복으로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믿음을 따라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자라고 말하며, 새로운 생활의 열매가 있기를 바라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야곱이 되기를 바라고, 자기의 마음에 자신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심비에 새겨 기록하여 항상 잊지 말고, 해결하기 힘든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하고자 하는 생각과 싸워 이기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참 이스라엘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의 법에서 자신을 밝히는 방법은 자신의 입으로 증명을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 안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길은 하나님께 먼저 인정을 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완전한 복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하심을 따라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시는 그날입니다(히2:5-10).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완전한 복을 받아 사람들에게 존귀한 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사람들을 자기의 말로 다스리고 통치하여 그들과 싸워 이기는 외면적인 이스라엘이기를 포기하고 자신과 싸워 이기는 내면적 이스라엘, 속사람으로서의 이스라엘이 되기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5절로 설명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인정 속에 자부심을 찾게 되는 속사람으로서의 이스라엘이 되기를 소원한다면 그 믿음의 끝을 붙잡는 힘을 가지고 육체의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환경을 통해 당하는 모든 고통들을 하나님의 편지를 전하는 우체부로 믿고 감사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하나님이 보시는 마음인 영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성품에 대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귀를 세우십시오.
그런 믿음의 복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감사하고, 그 어쩔 수 없던 자신의 영이 새로워 질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소망에 기뻐하며, 발견된 자신을 위해 항상 몸으로 기도하시는 귀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이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음카페 http://cafe.daum.net/todauddmlrkd에 오시면 더 많은 자료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제목 / 남자를 낳아야 할 여자의 역할 (0) | 2012.09.01 |
---|---|
[스크랩] 제목 / 우리가 버려야 할 본성의 주인은 사탄이다.(1월16일 주일 설교문/설교자 / 류현수 목사 (0) | 2012.09.01 |
[스크랩] 제목 / 내 안에 있는 족속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본문 / 마태복음 28장 16-20절설교자 / 류현수 목사3월 27일 주일설교문 (0) | 2012.09.01 |
[스크랩] 제목 / 마음에 천국을 지으려면/설교자 / 류현수 목사/5월 15일 주일설교 (0) | 2012.09.01 |
[스크랩] 주일 설교-하나님의 처소가 되기 위하여 (0) | 2012.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