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주일설교
제목 / 마음에 천국을 지으려면
설교자 / 류현수 목사
본문/ 누가복음 17장 20-25절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니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그)인 (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 23 사람이 너희보고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 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 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면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서론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 임할 것이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이 그 천국이 임하는 장소라고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헤 바실레이아 투 데오스’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입니다. 이는 또 다른 하늘인 ‘우라논’과는 차별을 두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재림 장소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재림과 함께 땅이 멸망하고 이루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천국!!
예수님은 그 하늘나라를 묻던 바리새인들은 제쳐두시고 제자들에게 그 하나님의 나라(神國)가 마음에 임하는 과정을 설명하십니다.
22절의 ‘인자’는 ‘투 휘우 투 안드로푸’이고 ‘하루(미안)’은 하루가 아니라 ‘처음 하나’로 반복되지 않은 것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는 첫 날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22절은 <너희가 그 사람의 그 아들의 첫날>라고 해석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아들이란 지금 천국을 기다리는 자이며 그 천국이 마음에 임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의 첫날을 설명한 것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그 인자를 단순하게 풀어놓음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의 모습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날 십자가에 달리신 그 일을 본 자가 아무도 없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2000년 전의 예수가 아니라 그 천국을 소망하는 자를 뜻하며 그 천국이 마음에 세워지기 위한 신앙의 첫날에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에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교회다, 기도원이다, 어느 목사에게로 가야 한다, 우리들이 사는 국가를 신정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한 동네를, 한 시를 어떤 구역을 등등, 이거다 저거다 말을 많이 하지만 속지 말고 오직 그 나라는 개인적으로 한 사람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믿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24절에 기록된 ‘하늘’은 ‘우라노이스’로 ‘하나님의 권능, 천상, 행복, 복음’이 있는 장소로 창세기 1장 1절에 창조되어야 할 그 하늘 즉 사람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번개(아스트라페)’는 ‘하늘에서 흩뿌려진 별, 빛나다’라는 뜻으로 머리에서 번쩍하고 떠오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보통 말하길 <뇌리를 스쳐가는 그 어떤 것들>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그 아들 즉, 마음에 천국이 임하길 바라는 그 신앙인은 그런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깨달음들이 번개 같은 현상들과 같이 나타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25절의 말씀으로 보아 그 깨달음이 하나님께 허락 받으려면 먼저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자가 이 세대에게 버림을 받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세대(게네아스)’는 ‘양식, 무리, 다양성’이라는 뜻으로, 그 때 자기가 구축하고 있는 신앙의 어떤 틀을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고난은 인자가 받는 것이며 그는 지금 하늘의 집이 자기의 마음에 지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즉 버려져야 할 대상은 ‘인자’이고 그 인자를 버리는 세대란 하늘의 집을 마음에 짓고자 하는 열망의 세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5절의 내용은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받는 마음의 나라를 세우려면 ‘인자’는 버려져야 하고 그 인자를 버리려면 그 인자가 버려지게 되는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26-37절로 나타나는 고난들로 그 내용을 보면 노아나 롯의 때에 임한 그 심판들이 지구의 끝에 나타날 심판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천국이 임하는 것 즉 한 사람의 마음에 천국의 집이 지어지기 시작 할 때 그 기초 작업으로 인간중심의 그 어떤 것들이 모두 사라지게 하시는 현상으로 기록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론
우리는 누구나 마음이 천국과 같이 되어 기쁨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그 어떤 것들이 가득하여 하나님의 집이 아닌 자기의 집만 단단하게 쌓아 철옹성을 만들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철옹성 쌓기를 그치고 마음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26절이 설명하는 노아와 롯의 시대를 통한 비유의 말씀을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다른 말씀을 설명하기에 앞서 37절을 설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여 풀어봅니다.
죽은 시체란 신앙인이 버린 믿음이나 행실 등 그 인자가 가지고 있던 것들입니다. 그런 것을 버리고 나면 그것들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신앙인이 그것을 생명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그 시체를 먹기 위한 독수리가 있습니다.
‘독수리(아에토스)’는 ‘바람 같은 비행으로부터’라는 뜻으로 ‘공기, 호흡, 숨쉬다 호흡하다’의 ‘아엘’에서 유래 되었으며, 히브리어의 ‘독수리(네쉐르)’는 ‘찢어내다’라는 뜻으로 우리의 죽은 것들을 우리들에게서 찢어내어 버리고 영을 숨 쉬게 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뜻합니다.
이는 같은 시체를 먹는 까마귀는 ‘거래를 위한 하나님의 보증’이란 뜻으로 우리를 보증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에 천국이 지어지길 바란다면 우리는 우리의 육적인 믿음들(인자)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그 시체들이 내게서 떨어져 없어져야 합니다.
‘노아’는 ‘위로, 위안, 안식, 휴식’이라는 뜻이며, ‘방주’는 ‘궤, 언약궤’라는 뜻입니다. 이는 자기가 변화 받는 부활을 끝내고 가르치는 자가 되기 위한 안식에 이르러 타인의 죄를 위해 일하는 대제사장이 되어 지성소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버려져야 할 그 시대 사람들은 육신을 위해 게걸스럽게 먹고(먹고), 인간의 사상을 빨아드리고(마시고), 자기의 의로움을 위해 타인에게 자기를 의롭다고 인정해 달라고 빌고(장가가고), 자기의 믿음이 좋게 보이려고 노력하는(시집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노아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 마음에 지성소를 완성하고 법궤로 들어가던 그 날에 그것들이 멸망 받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천국이 세워져야 하는 그 마음에 롯의 가족이 있었습니다.
‘롯’은 ‘어두움의 물’이라는 뜻이며 그는 애굽을 에덴과 같이 생각하는(창13:10) 자로 자신이 타인을 가르침으로 그 자신의 행복을 느끼는 천국을 사는 자였습니다.
‘소돔’은 ‘화산에 의한, 역청질, 불타다, 그슬리다’라는 뜻이며 이사야 1장 10절로는 고모라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땅입니다.
그 소돔은 죽어야 하나님의 소금창고가 되어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땅으로 사해(死海)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해(死海)가 된 그 땅 옆에는 예루살렘이 있고 베들레헴이 있습니다.
롯이 소돔에서 나간다는 것은 소돔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롯이 있어 그 이름이 소돔이었던 그 땅에 롯이 나가므로 그 소돔은 하늘에서 내리는 불과 유황으로 멸망을 당하고 그 땅은 소금 바다가 되었습니다.
롯이 그 땅에서 나오기 전, 거기에도 죄에게 구속되어(사다) 바쁘게 다니면서(팔다) 땅에 뿌리를 박고 땅의 신조를 주입시키면서(심고) 사람들에게 확고히 자기를 각인시키는(집을 짓고)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두음의 행실인 사람의 의를 타인에게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을 삼던 롯과 같은 생각이 그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복음이 있고 그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행복이 있는 그 생각(하늘=복음, 행복, 천상)에서부터 오직 하나님만 할 수 있다(불)는 믿음과 하나님의 특별하신 감동(유황=신성, 신격, 번쩍임) 그 마음을 흠뻑 적시어 씻어내고(비오듯하여) 롯과 함께 있던 그 인간중심의 모든 것, 어두움 중심의 모든 것을 멸하여 청소하시는 것입니다.
30절에서 ‘나타나는’이라고 해석한 ‘아포칼맆토’는 ‘덮개를 벗기다, 폭로하다, 나타내다’라는 뜻인데 이 문장에서는 <사람의 그 아들과 같은 믿음을 폭로하고 그 인자라는 덮개를 제거하는 날도 이러하니라> 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는 인자라는 덮개를 폭로하는 것이 소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고, 그 모습을 드러낸 후 벗겨내 제거하는 것이 하늘에서 내리는 불과 유황에 의해 멸망당하는 소돔이기 때문입니다.
31절은 그렇게 멸망당하는 날에 해야 할 일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날에 하늘을 바라보기 위해 자기의 집 지붕(꼭대기) 위에 있으면 옛날로 돌아가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는 그 열망이라는 그 집의 '세간'을 버려야 하고, 그 마음에 천국이 생기게 하기 위해 자기의 마음을 인도하고 싶고 권유하고 싶어 하는 그 믿음의 상징인 '밭'에 있어도 돌이켜 다시 그 소돔으로 회복시키지 말고 롯을 불러들이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밤에 있는 남자(남성형 듀오)는 그 고난 중에 있는 영의 생각으로 육신으로 살고 싶은 생각과 마음에 천국을 짓고 싶어 하는 생각이 다툼을 벌이다 결국 영을 위한 생각은 천국으로 올라가지만 육을 위한 생각은 버림을 받아 죽어 없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34절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매를 가는(알레도=갈다, 감다, 밀가루를 가는) 것은 말씀을 가는 것으로 마음에 천국이 임하게 하는 말씀을 사모하면서 그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것을 상징하는데 그 신앙의 상태를 여자로 설명했습니다.
이 여자는‘여성형 듀오'로 그 천국에 관한 말씀이 있으나 아직 갈지 못한 여성으로 그 말씀을 갈면서 육신중심의 말씀들을 버리게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롯의 일가적인 믿음들을 버려야 하고 소돔이라는 이름을 듣고 있는 마음 상태를 버려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천국을 이루고 싶다면 노아시대 그 방주라는 마음의 언약궤 짓기를 반대하던 네피림이라는 믿음을 버려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독수리 앞에 자기의 육적인 요소들을 시체로 내어놓을 수 있습니까?
고난이나 비방하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고소고발을 밥 먹듯 하는 지금 교회, 자기의 육체로 보이는 유익을 위해 타인들을 격하시키고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지금의 교회, 자기만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의인인 것처럼 행세하며 자기와 함께 하는 예배나 강의 외에는 전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말하는 교회, 거짓은 밥 먹듯 하면서도 자신의 논리를 제일이라고 말하는 교회, 행위 속에 있는 영의 말을 보면서 타인의 죄를 위해 사랑으로 기도하지 못하고 육신의 죄를 가리키면서 타인을 죄인이라고 비방하는 교회, 자신도 남의 말에 상처를 받으면서 말로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그런 교회들의 모습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만 그 비밀을 말하시면서 그 비밀을 듣지 못하게 따로 버리신 바리새인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지금 당신은 당신의 행동이 하는 말로 마음에 지어지는 천국을 소망하고 있다고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다고 믿으십니까?
이 말씀을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 육신 세계에서 일어날 종말의 현상으로 풀면서 거짓을 말하는 지금 교회에서 이런 믿음의 현상을 듣거나 보고 이해 할 수는 있어도 행동한 사람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유는 이 믿음이 되기까지 거쳐야 할 신앙의 길이 지성소까지 도달하는 동안 문으로부터 시작하여 각을 뜨는 상, 번제단, 물두멍, 처음 휘장, 떡 상, 분향단, 둘째 휘장 등의 순서와 같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믿음의 날에 이르기 위한 신앙의 시작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작은 지구에 육체를 덧입고 사는 날 동안에 마음에 하나님의 집을 짓고 그 안에 지성소를 꾸며 성삼위 하나님과 같이 사는 복을 누려야 천상에서 가장 귀한 자리에서 호강을 한다는 것을 믿는 믿음부터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주는 고난과 고통을 영이 받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그 인식을 승화 시키고 그 고난에서 자기의 영의 모습과 생각의 모습과 행동의 모습을 발견하여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지금 자신의 현 상태를 놓고 하나님을 생각해 보시고 하나님과 이야기 해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과 성품과 개념 모두를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사랑하십니다.
그 영은 우리들의 마음 그 깊은 곳에 있습니다.
그 속사람의 심장 같은 영이 살아 움직여야 영의 몸인 마음이 하는 행동들이 온전해집니다.
그 속사람이 변화를 받으려면 먼저 영의 뇌인 생각이 변해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에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권세를 꺾습니다.
마음에 이루어지는 천국은 자아도취나 자기의 유익한 것이 이루어짐으로 얻는 평안과 만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인간적인 모든 요소들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경험해보지 못 하셨다고요? 그래도 믿어보십시오.
이 말씀들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그 길을 가고 싶다고, 그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고 싶다고 고백해보십시오. 하나님의 특별하신 만남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대로 사는 것이 죄라고 믿고 사람들과 싸우지 못하는 믿음만 되어도 마음이 평안해 지는 천국을 누립니다(속에서는 자기의 것이 있지만).
그리고 그 믿음이 승화되어 자기의 것이 모두 사라지면 모든 일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천국에 더하여 자기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 더욱 행복해집니다.
믿으시길 바라면서 그 영원한 하나님의 집이 마음에 지어져 지구에 사는 날부터 영원한 천국 그 안에서 사시는 영원한 복을 누리시길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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