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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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아들 2014. 6. 27. 16:03

 

 

 

히브리서

 

서 론
1.힌두교도와 기독교인의 대화를 상정해 보자. 그 힌두교도는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을 간략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주의깊게 듣는다. 그 메시지의 결론을 듣고 그의 마음 속에는 네가지 기본적인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1)질문. 왜 그리스도는 태어나야 했는가? 대답.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2)질문. 왜 그리스도는 죽으셔야 했는가? 대답.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갈 1:4).
(3)질문. 왜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어야 했는가? 대답.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4).
(4)질문. 왜 그리스도는 승천하셔야 했는가? 이에 대답이 곧 히브리서이다.
2.히브리서는 신약성서 가운데서 믿는 자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에 관해 충분한 논의를 하고 있는 유일한 책이다. 이 서신은 "그리스도에게 대체 어떤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질문에 답변을 준다.
3.저자:미상. 저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학설이 있다.
(1)바울이 저자라는 설.
이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1)초대 교회가 그를 저자라고 생각하였다.
 2)서신의 끝맺음이 바울의 독특한 그것과 동일하다(13:25; 비교, 살후 3:17,18).
 3)"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는 구약의 성구가 인용되고 있다. 이 표현은 신약성서에서 세차례 사용된다(롬 1:17; 갈 3:11; 히 10:38).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이 앞의 두 경우에 있어서 인용하고 있는 만큼 아마도 세 번째 경우인 히브리서에서도 그가 이를 다시 인용하였으리라는 것이다.
 4)베드로가 베드로후서 3장 15,16절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에 근거한다. 여기에서 그의 증언에 따르면 바울은 그가 말하고 있는 동일한 사람들에게 즉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쓴 바가 있음을 알 수 있다(벧전 1:1; 벧후 3:1). 이어서 베드로는 바울의 편지를 성서로 언급한다. 히브리서야말로 이와 같은 증언과 정확히 일치하는 유일한 신약성서이다.
 5)이 서신은 당시 옥중에 있던 (10:34)형제 디모데에 의해서(13:23) 이달리야에서 씌어졌다(13:24). 이러한 사실은 사도행전 28장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의 투옥과 연관된다.
(2)바나바가 저자라는 설.
이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1)바나바는 레위 족속이었으며, 히브리서는 아마도 레위인에 의해 씌어진 것 같다.
 2)사도행전 4장 36절과 히브리서 13장 22절이 서로 비교된다.
(3)아볼로가 저자라는 설.
이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1)히브리서가 유창한 헬라어 문체로 기록되어 있다.
 2)바울은 대체적으로 히브리어 구약성서를 인용하는데 반하여, 히브리서의 구약인용은 70인역에서 취하고 있다.
4.서신의 수신자:이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예루살렘. 이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의심스럽다.
 1)히브리서 2장 3절에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라는 말이 있다.
 2)히브리서 6장 10절 및 10장 34절에서 우리는 이 서신의 독자들은 분명코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 이와 달리 예루살렘 교회는 가난에 찌들려 있었다(행 11:27-30).
 3)히브리서 12장 4절은 독자들이 아직 순교당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교회는 순교의 고통을 받고 있었다(행 7:59,60; 12:2).
 4)성전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2)로마
(3)에베소
5.히브리서는 제5복음서라고 불린다.
4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을 묘사한 반면, 히브리서는 현재 그분이 하늘에서 하시고 계시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6.히브리서 10장 11절은 이 서신이 기원 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의 디도 황제에 의해서 파괴되기 전에 씌어졌음을 보여준다.
7.히브리서는 로마서는 비교될 수 있다.
(1)로마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필요성(necessity)을 계시한다.
(2)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최고성(superiority)을 계시한다.
8.이 책에는 여섯 개의 핵심적인 낱말이 있다.
(1)완전한(14회 사용).
(2)영원한(15회 사용).
(3)더 좋은(13회 사용).
(4)참예하는 자(9회 사용).
(5)하늘(17회 사용).
(6)제사장, 대제사장(32회 사용).
9.히브리서에는 최소한 구약의 1백 구절에서 취한 86개의 직접 인용구가 있다.

I.최고이신 분 - 그리스도(1:1-5:10).
1.그는 모든 선지자들보다 크신 분이다(1:1-3).
1.하나님이 그에게 직접 알리셨다. 과거에 하나님을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자신의 말씀을 전하셨다. 그러나 유일하게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한 메시지를 선포하실 수 있다.
2.하나님 아버지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1)그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만유의 후사로 임명받았다(시 2:8; 요 3:35).
(2)하나님께서는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요 1:3).
(3)그는 신의 공동 속성들의 절대적 표현이시다(요 1:18; 롬 9:5).
(4)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다.
(5)그는 만물의 보전자이시다(골 1:17).
(6)그는 모든 죄를 정결케 하시는 분이다.
(7)그는 이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
2절과 3절은 히브리서 가운데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이름과 칭호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다음 사항에 주목하라.

주(Author, 12:2).
사도(3:1).
주(Captain, 2:10; 12:2).
그리스도(3:6).
온전케 하시는 이(12:2).
맏아들(1:6).
앞서 가신 이(6:20).
하나님(1:8).
후사(1:2).
대제사장(2:17).
주(God, 2:3).
중보(8:6).
큰 목자(13:20).
아들(1:2).
보증(7:22).

2.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천사보다 뛰어나시다(1:4-2:18).
1.그는 서열이 가장 높다.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히 1:4).
2.그는 하나님의 맏아들이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1:5).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하늘의 천사들에게 그를 경배하라고 명하였다(1:6). 존 번연은 한 때 이렇게 쓴 바 있다.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하늘은 우상 숭배가들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3.그의 통치는 영원하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1:8).
4.그는 공의로운 분이다. "주의 나라가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1:8).
첫 번째 경고 -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2:1-4).
히브리서에는 다섯가지 중요한 경고가 있는데 이것이 첫 번째 것이다. 이것의 개략은 다음과 같다. 만약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이 천사의 전하는 말을 거역하였기 때문에 정죄받았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전하신 그의 말씀에 거역하는 것에 대한 심판은 얼마나 더 크겠는가!(창 19장;신33:2; 시 68:17; 행 7:54; 갈 3:19; 비교, 눅 4:18-21; 19:10; 마 16:21; 20:28).
5.그는 구속의 사역을 담당하셨다(2:5-18).
(1)그의 구속 사업의 필요성:왜 예수께서는 자신이 육신을 입으셔야 한다고 생각하셨을까?
 1)우리의 잃어버린 본성을 되찾기 위하여(2:5-9).
  ㄱ)인간은 원래 만물을 지배하도록 창조되었다.
  ㄴ)인간은 잠시 동안(천사의 등급보다 약간 낮은) 유예상태에 두어졌다.
  ㄷ)인간은 죄 때문에 만물을 아직껏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
  ㄹ)예수께서는 인간을 위한 원래의 완전한 목적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오셨다.
작가 레이 스테드먼(Rey C.Stedman)은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의 제자는 다윗이 '만물'(all thing)을 말 할 때 그것은 곧 모든 물건(all thing, every thing)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어서 말하기를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는 것이 하나도 없으나..."라고 하는 때문이다(히 2:8). 바로 이것이 인간의 예정된(intended) 운명, 즉 지배권을 위임받은 인간의 운명인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만유의 지배자로 지음받았다. 분명히 이 구절은 지구에 속한 것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이것은 우주의 무한함과 그것을 넘어 있는 모든 것 가운데서 인간이 발견할 수 있는 한까지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지배 하에 두어질 것이다. 이것은 광대하고 거대한 이상이다. 그러나 인간의 권위는 이차적인 권위이다. 인간 자신은 그 안에 내재하고 계신 하나님께 복종하여야 마땅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자신을 현시해 주는 수단이 되어야 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전인 영혼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표현이어야 했다. 인간이 그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의 지배에 복종하는한 그는 온 우주를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로지 그가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들일 때만 이 우주를 지배할 수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나아가서 인간은 그 지배행위가 의미하는 바를 알도록 잠시 동안 천사보다 낮은 상태에 두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에게는 제한된 영역, 즉 지구가 주어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우주 공간에 있는 수 억 개의 은하계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 대 은하계의 한 궤도를 따라 공전하는 조그만 혹성일 뿐이다. 더구나 인간은 유한한 신체를 부여받았다. 이는 그처럼 지극히 한정된 영역안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지배가 전 우주에 걸쳐 행사될 수 있는 원리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한계가 히브리서에서 '보다 밑'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이 구절은 계속해서 인간의 현재 하잘 것 없는 상태를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다. 인류 역사의 모든 이야기가 이 한 마디 말에 함축되어 있다. 우리는 여지껏 만물이 그에게 복종한 것을 알지 못한다. 이 얼마나 적나라한 표현인가! 인간은 자신의 지배를 실시하려고 시도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것을 적절하게 실행할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지위를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인간은 전인류사를 통하여 지구와 우주에 대한 지배 욕망을 끊임없이 재천명해 왔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은 최고봉을 정복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그곳에 기필코 올라가야 한다. 비록 그 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물건이 전혀 없고 또 그곳을 정복하였을 때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것이 겨우 곰이 보았던 것 즉 맞은 편의 산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여하튼 인간은 그곳을 정복해야 한다. 또한 심해를 탐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주 공간으로 나가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놀라운 인류의 기억,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한 어렴풋한 회상을 간직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이것을 달성하려고 애쓸 때 지극히 위험스러운 폭발 직전의 상태를 창출해낸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그곳에서는 인간에게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의 균형이 파괴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점차 심각한 국면에 직면케 된다. 한 예를 들면, 살충제나 다른 독극물로 해충을 구제하려고 하면 오히려 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생태계의 불균형을 낳는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는 지배권의 행사를 시도함으로써 위기를 끊임없이 더욱 심화시켜 왔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역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고대 인류에 관한 아주 초기의 문헌을 검토해 본다면, 오늘날 우리가 씨름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도덕적 문제를 가지고 그 당시의 사람들도 씨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때부터 줄곧 놀라운 기술진보를 이룩했지만, 도덕적 관계에 있어서는 거의 아무런 발전도 이룩하지 못했다. 어디에선가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해 버렸다.
인간의 타락이 이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이다. 그 이후부터 우주는 하찮은 것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더 이상 결코 성공적일 수 없게 되었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조차 이것은 진실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가졌던 꿈과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었는가? 어떤 사람이 "나는 내가 원했던 일을 하나도 남김없이 이루어냈다. 나는 내가 되고자 했던대로 어김없이 되었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는가?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롬 8:20).
그러나 히브리서의 기자는 "우리가... 예수를 보니"(히 2:8,9)라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유일한 희망이다. 우리는 신아의 눈으로 예수께서 이미 면류관을 쓰시고 우주를 다스리고 계심을 본다. 예수야말로 인간의 잃어버린 운명을 회복시켜 주는 유일한 분이시다"([하나님이 더 이상 무슨 말씀을 하실 수 있겠는가?],pp.20-22).
다음 두 구절은 얼마나 엄청난 대조를 이루는가?
(1)"지금 우리가... 보지 못하고"(히 2:8). 2)"[우리가]예수를 보니"(히 2:9).
이처럼 첫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잃었던 것을 두 번째 아담(그리스도)이 골고다에서 되찾았다.
(2)우리의 깨어진 연합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2:10-13). 그리스도께서는 고난받으심으로 이제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과 연합시켜 주시며, 우리의 맏형제(our elder Brother)가 되신다.
(3)우리의 잃어버린 확신을 해주시기 위하여(2:14-18).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3.그는 모세보다 뛰어나다(3:1-19). 이유:모세는 하나님 집안의 종인데 반하여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시다(3:1-6).
두 번째 경고 -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에 대한 경고(3:7-19; 참조, 4:11).
1.실례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3:8-11).
2.권면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3:12,13).
주:여기서 13절의 "권면하다"라는 말의 헬라어는 파라클레오(paracleo)인데 그 의미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 양식을 따르도록 계속하여 부탁하는 것이다.

4.그는 여호수아보다 뛰어나다(4:1-16)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4:8,9).
여기서 "예수"라는 말은 "여호수아"로 번역되어야 마땅할 것이다(참조, 흠정역 성서에는 위 문맥에서 여호수아가 아니라 예수이다 - 역주). 예수께서 주시는 안식은 영원한 반면, 여호수아가 주는 안식은 겨우 25-40년밖에 유지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는 여호수아 보다 낫다.
1.하나님 말씀 안에 있는 권면들. 이 장에는 히브리서에서 열 세 번 나오는 "우리가... 할지니" 또는 "~하자"라는 형식의 권면들 가운데 첫 번째 것이 실려 있다. 이들 열 세 개의 권면은 아래와 같다.
(1)"우리는 두려워할찌니"(4:1).
(2)"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4:11).
(3)"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4:14).
(4)"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6).
(5)"(우리가) 완전한대 나아갈찌니라"(6:1).
(6)"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10:22).
(7)"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10:23).
(8)"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10:24).
(9)"모든 무거운 것...을 버리고(12:1).
(10)"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12:1).
(11)"은혜를 받자"(12:28).
(12)"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13:13).
(13)"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13:15).
여기서 특별히 (4)번을 주목하라. 루터, 쯔빙글리, 칼빈은 히브리서에서 취한 위대한 세 원칙을 종교개혁의 기치로 내걸었다.
-희생은 오직 갈보리뿐!
-제사장은 오직 그리스도뿐
-오직 은혜로만!
2.하나님의 말씀 안의 "안식." 우리는 성서에서 세 종류의 큰 안식을 본다.
(1)창조의 안식(4:4).
(2)구원의 안식(4:10).
(3)거룩하게 함의 안식(4:11).
3.하나님의 말씀의 권능.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4:12,13).

5.그는 아론보다 뛰어나다(5:1-10).
1.그는 아론이 부분적으로 지녔던 것을 완전히 소유하고 계신다.
(1)아론처럼 그는 인간 중에서 취해졌다(5:1).
(2)아론처럼 그는 하나님에 의해서 택함받으셨다(5:4).
(3)아론처럼 그는 자비(긍휼히 여기심)를 갖고 계신다(5:2)
(4)아론처럼 그는 복종을 배우셨다(5:8; 참조, 2:10). -주:그리스도는 그분의 위격(Person)에 있어서 항상 완벽하시지만, 또한 세상에 계실 때 자신의 사역에 있어서도 완벽하셨다.
(5)아론처럼 그는 기도하였다(5:7).
(6)아론처럼 그는 고난받으셨다(5:8; 참조, 빌 2:8).
2.그는 아론이 전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완벽하게 갖추고 계신다.
(1)아론과는 달리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5:5).
(2)아론과는 달리 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시다(5:6).
(3)아론과는 달리 그는 영원한 구원의 주가 되신다(5:9).

II.최고의 목적 - 완전(5:11-6: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6:1,2).
세 번째 경고 -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는 것에 관한 경고(5:11-6:20).

1.이러한 위험의 특색.
1.증상
(1)무감각(5: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2)미숙함(히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작가 레이 스테드먼(Ray Stedman)은 아래와 같이 썼다.
"나는 한 고등학교 교장에 관한 책을 읽었다. 마침 그 교장은 공석 중인 행정직 자리를 채워야 할 형편이었는데 그는 10년의 교단 경험이 있는 한 교사를 그 자리로 승진 발령했다. 발표가 있고 나자 그 학교에 있던 다른 선생이 대경 실색하여 그 교장을 찾아왔다. 찾아온 사람은 여선생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교장 선생님, 왜 그 선생을 그 자리로 발령했습니까? 그 사람은 교단경험이 겨우 10년밖에 되지 않으며, 나는 무려 25년을 교직에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선생을 편애하여 나를 제쳐 두셨군요?' 그러자 교장이 말했다. 당신은 25년 간의 경험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때껏 일년 짜리 경험을 스물 다섯 번 한 것 뿐이예요."([하나님이 더 이상 무슨 말씀을 하실 수 있겠는가?]).
이런 불명확함과 미성숙에 대한 이유가 히브리서 5장 13,14절에 설명된다(참조, 고전 3:1,2; 벧전 2:1,2; 수 5:12). 여호수아 5장 12정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이후에 만나가 중단되었음을 알 수 있다.
(3)배교(6:4-6).
2.다양한 이론들:아마 성서 본문 가운데 히브리서 6장 4절부터 6절까지의 말씀처럼 수많은 토의와 주석의 대상의 된 구절은 없을 것이다. 이들 다양한 학설들에 의하면 이 구절들은 아래와 같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를 가르킨다고 한다.
(1)몇 가지 무서운 죄를 통하여 구원을 잃어버린 구원받은 자. 만약 이 주장이 진실이라면, 바로 그 본문은 그들이 결코 다시는 구원받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가르킨다.
(2)하나님의 것들을 다만 "맛보기"만 하고 실제로 그것을 "삼키지" 않은 자칭 믿는 자들 " 그렇지만 이 주장이 지지받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똑같은 헬라어 단어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신 분이라고 묘사한 히브리서 2장 9절에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3)성전이 건재할 때 살고 있었던 유대의 자칭 믿는 자들. [스코필드 성서]는 아래와 같은 견해를 나타낸다.
"히브리서 6장 4절에서 8절의 말씀은 구원의 문턱에까지 나아간 후에, 즉 심지어 깨달음과 확신을 주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서 성령과 함께 동행한 후에 조차(요 16:8-10),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중도에서 포기한 유대의 자칭 믿는 자들의 경우를 말한다. 이 구절은 그들이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 아니다. 여기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은 마치 가데스바네아 땅을 점탐하고, 그 땅에서 산출된 열매를 손에 들고 다시 돌아온 정탐꾼들(신 1:19-26)과 같은 자이다."(p.1295).
(4)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정하는 경우.
"'타락한 자들은'(6:6)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에는 그리스도가 다시금 십자가에 못박히는 일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히 되풀이하여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히 10:12,14). 그러므로 타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신판 스코필드 관주성서],p.1315).
(5)죽음에 이르는 죄를 저지른 위험에 처한 배교자들(참조, 고전 11:30; 행 5:1-11; 요일 5:16,17). 위의 견해들은 하나같이 문제성이 있다. 그렇지만(본 저자의 심중에는) 마지막 견해가 이 배교를 훨씬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배교자들을 더욱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3.실례(6:7,8).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파괴되는 것은 밭이 아니라 열매라는 점이다(참조, 고전 3:15; 요 15:6; 히 10:30).

2.위험으로부터의 보호(6:1-3,8-20). 만약 믿는 자들이 이러한 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한다면, 보호받기를 희망하는 자들에게 그러한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충분한 보호책이 있는가? 진실로 그렇다.
1.믿는 자들의 행해야 할 바들(6:1-3,8-12).
(1)그는 "완전한데[성숙함에로] 나아가게"한다(6:1). 말하자면, 그는 토대 위에 벽을 세워야 하며 박사 학위를 위해 초보를 면해야 한다.
(2)그는 성도를 섬겨야 한다(6:10).
(3)그는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사랑을 보여야 한다(6:10).
(4)그는 근면해야 한다(6:11).
(5)그는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아야 한다(6:12). 그러므로, 선행이 죄인들을 지옥에서 구원해 주지 않을 것이지만, 그 선행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은 심판을 면할 것이다(참조, 고전 11:31).
2.하나님 아버지의 약속(6:13-18).
(1)이 약속의 사실.
 1)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유효했다.
 2)이것은 또한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2)이 약속의 성격.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6:18).
(3)이 약속에 대한 보증(6:17,18). 이것은 두가지 변치 못할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다.
 1)영원하신 하나님의 품성(하나님의 현존하심).
 2)하나님의 기록된 말씀(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
3.그리스도께서 제사장 되심(6:19,20). 여기에서 예수는 우리의 앞서 가시는 선구자로 일컬어진다. 본래 선구자라는 헬라어는 '유인선'이라고 불리는 조그만 배와 관련된 말이다. 고대 세계에 있어 대형 선박은 수심이 얕은 헬라의 항구에 입항할 때에 곤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러한 난관을 피하기 위해 흔히 조그만 유인선을 보내어 대형선박의 닻을 항구 안에 내리도록 하는 것을 돕게 하였다. 케네드 웨스트(Kenneth Wuest)박사의 설명을 인용하여 보자.
"그러므로 믿는 자의 닻은 하늘에 있는 지성소 휘장 안에 단단히 붙박혀 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비유이다. 현세의 삶이 바다고, 영혼은 배이다... 태풍으로 마구 흔들리는 배와 같은 믿는 자의 영혼은 휘장 안에 닻을 내림으로써 견고하게 되고, 믿음으로써 휘장 안의 신성한 실재에 결속된다."([신약성서 히브리서],p.125).

III.최고의 제사장직 - 멜기세덱(7-10장).
앞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론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라고 진술하였다. 이는 곧 바로 네 가지 잇점을 준다.
1.그것은 훨씬 나은 원천을 제공한다(7장). 아론과 멜기세덱의 차이.
1.그리스도에게 왕 -제사장직이주어졌다.멜기세덱은 제사장이자 왕이었다(창 14:18).
2.그리스도에게 권위있는 제사장직이 주어졌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다(창 14:20). 히브리서 7장 4절부터 10절에서 성서기자는 레위(레위 족속의 시조로 제사장직의 창시자. 아론도 이 족속 출신이었다)가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던 까닭에 레위(그는 아브라함의 증손자이다)는 실제로 아브라함을 통하여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결론은 율법 하에서 레위 족속의 제사장들은 백성들로부터 십일조를 받았으나, 창세기 14장으로 돌아가 보건대 그들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는 것이다.
3.그리스도에게는 시작도 끝도 없는 제사장직이 주어졌다. 멜기세덱은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었다"(7:3). 그러나 아론은 죽었다(히 7:8; 비교, 민 20:23-29).
-주:이 말은 멜기세덱이(비록 그가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을지라도) 실제로 반드시 그리스도라는 뜻이 아니며, 그의 출생과 죽음에 대한 기록이 없는 까닭에, 그가 직분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출신에 있어서까지 그리스도의 모형(즉 그림자)이 된다는 뜻이다.
4.그리스도에게는 독자적인 제사장직이 주어졌다. 멜기세덱은 서약에 의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임명을 받은 것이지 레위 족속이라는 이유로 성직을 수여받은 것이 아니다. 구약성서에서는 아론의 후손이 아니면 제사장으로 봉직할 수 없었다(스 2:61,62). 그렇지만 멜기세덱도 그리스도도 이 지파의 태생이 아니었다(히 7:14,22-24).
5.그리스도에게 영원한 제사장직이 주어졌다(히 7:17; 시 110:4).
6.그리스도에게 영영한 제사장직이 주어졌다(히 7:24).
7.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제사장직이 주어졌다. 이러한 사정 하에서 그리스도에게 제물(offering)이 바쳐진게 아니고, 실제로 그리스도는 제물이 되셨다(히 7:27). 작가 레이 스테드먼은 27절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사장으로서 자기 외에 달리 바칠 수 있는 흠없는 제물을 찾을 수가 없었으며, 그래서 그분은 자신을 희생으로 드렸다. 그와 같은 희생의 제물로 드리기에 합당한 다른 제사장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제사장이자 희생제물이었다"([하나님이 더 이상 무엇을 말씀하실 수 있겠는가],p.115).
이러한 이중의 직분은 그가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일곱 마디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앞의 세 말씀은 그의 제사장적 사역에 관한 것이고 뒤의 네 말씀은 자신의 희생적 역할을 말하고 있다.
8.그리스도에게는 거룩한 제사장직이 주어졌다(히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이는 곧잘 부패와 우상숭배에 물들곤 했던 레위 제사장과는 현격한 대조를 이룬다(출 32:1-6,21-25; 삼상 2:12-17; 8:1-3참조).
9.그리스도에게 완전하게 하는 제사장직이 주어졌다(히 7:19,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이 구절은(이 끝에서 저 끝까지 잃어버린 자(곧 지옥에 떨어질 자)의 구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통 해석되지만 본문에서 실제로 그 말은 구원받은 자들의 보존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의 갈보리에서 죽으셨으며 현재에는 우리를 구원받은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서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 위에 살아 계신다(참조, 롬 8:34; 계 1:8).

2.그것은 더 좋은 성서를 제공한다(8장).
옛 언약(구약)과 새로운 언약(신약)의 차이:'언약'에 해당하는 구약성서의 히브리어는 브리쓰(berit)인데, 이는 '나누다'혹은 '쪼개다'는 뜻이다(창 15:10; 렘 34:18,19). 쪼갠다는 것은 희생 동물을 자르는 것을 말한다. 이들 피흘리는 고기 조각들 사이로 계약(언약)의 두 당사자가 지나갔다. 그렇지만 창세기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잠들게 하시고 홀로 그 사이를 지나셨다(17절).
이는 특별한 그 언약이 무조건적이었음을 뜻한다. 이러한 의식은 또한 언약이라고도 한다. 구약성서의 이 개념은 신약성서에서 디아테케(diatheke)라는 헬라어로 나타난다. 이 디아테케란 두 당사자 간의 협정인데, 한쪽 상대방이 설정한 조건에 따라 오직 다른 상대에게만 구속력을 갖는 협정이다. 이 중요한 말은 히브리서에서 적어도 22차례 이상 나온다.
이 말은 항상 "계약"(covenant)또는 "언약"(testament)으로 번역되었다(눅 22:20; 고전 11:25; 고후 3:6).
그리고 협정을 나타내는 일상적인 헬라어로는 순테케(suntheke)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성서에서 단지 4차례 사용되었으며 그것도 항상 나쁜 의미로만 쓰이고 있다(참조, 요 9:22; 눅 22:5; 행 23:20; 24:9).
히브리서 8장에서 기자는 새 언약과 어떤 옛 언약(아브라함과 맺어진 언약이 아니다)을 대조시킨다.
1.옛 언약.
(1)이것은 모세에 의해 중재되었다(출 19;요1:17; 갈 3:19).
(2)이것은 조건적인 언약이다(참조, 신 28).
(3)이것은필요한의를 산출해 낼 수 있다(히 8:8).
(4)이것은 죽은 석판 위에 씌어졌다(출 32:15).
2.새 언약.
(1)이것은 그리스도에 의해 중재되었다(히 9:15; 요 1:17).
(2)이것은 무조건적이다(히 8:9).
(3)이것은 필요한 의를 산출해 낼 수 있다(히 8:11)
(4)이것은 살아 있는 마음 위에 새겨졌다(히 8:10).

이 새로운 언약의 수신자에 대해서는 다음 네 가지 이론이 있다.
1.교회가 이스라엘 대신 새로운 언약의 참예자가 되었다. 이 주장은 바울에 의해서 완전히 거부된다(참조, 롬 9-11장).
2.새로운언약은 오로지 이스라엘 민족하고만 관계이다. 이 주장은 히브리서 8장의 문맥과 어긋하는 것으로 보인다.
3.이 장에는 두 개의 새로운 언약이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에 관계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와 관련된 것이다.
4.새로운 언약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종말론적으로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성취될 것이다. 현재에 있어서 교회는 구원론적으로 그 언약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세 번째는 가능한 견해인 것 같고 네 번째는 보다 확실한 견해인 것 같다.

3.그것은 더 좋은 성소를 제공한다(9장).
지상의 성소와 천상의 성소와의 비교.
1.지상의 성소. 이것이 열등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그것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다(히 9:1).
(2)그것은 잠정적인 것이다(참조, 히 9:8; 8:13).
(3)그것은 참된 것의 모형(그림자)이다(히 9:9).
(4)그것은(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번 들어갈 수 있다)(히 9:7).
(5)그것은 하나님의 첫 번째 창조 역사와 연관된다(히 9:11). 흠정역에는 "건물"(building)에 속하지 아니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보다 더 적절한 번역은 "창조"(creation)에 속하지 아니한 것이다(한글개역은 후자의 경우를 따르고 있음-역주).
(6)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히 9:24).
(7)그것은 각종 동물의 피로 그리스도를 피를 대신한 것이다(히 9:13).
(8)그것은 영원한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전혀 효력이 없다(히 9:9).
(9)그것에는 변치않는 소망이 없다(히 9:10).
2.하늘의 성소:이것이 뛰어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그것은 하늘에 속해 있다.
(2)그것은 영속적이다.
(3)그것은 참된 것이다.
(4)그것은 모든 사람이 전적으로 접근 가능한 것이다(히 4:16; 10:19).
(5)그것은 하나님의 두 번째 사역 즉 구속과 관련되어 있다.
(6)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히 9:24).
(7)그것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피이다(히 9:12).
(8)그것은 영원한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완전히 유효하다(히 9:12).
(9)그것에는 변치않는 소망이 있다. 9장 24,26,28절에 있는 짤막한 표현들을 특히 주목해 보자.
"그가... 나타나셨느니라"(히 9:26) - 과거에 그의 직임은 예언자였다.
"...이제...나타나시고"(히 9:24) - 그의 현재 직임은 제사장이다.
"(그리스도도)...나타나시리라"(히 9:28) - 그는 미래 직임은 왕이시다.
여기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주님이 온전히 이루신 일곱가지 사역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다.
 1)성육신(히 1:2,2:16,17).
 2)공생애(히 5:7-9).
 3)십자가에 못 박히심(히 6:6; 7:27; 2:9).
 4)부활(히 13:20).
 5)승천(히 4:4; 6:20).
 6)중보(히 7:25; 8:1; 9:12,24).
 7)계시(시 9:28).

4.그것은 더 좋은 희생을 제공한다(10장)
어린양(동물)과 하나님의 어린양의 비교.
1.하나님의 어린양이 필요한 이유: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 10:4).
이러한 희생 제물들은(잠시 동안) 죄를 가릴수 있을 따름이며 그것을 깨끗케 할 수 없다(참조, 히 10:6,11; 사 1:11; 렘 6:20; 호 6:6; 암 5:21,22).
2.하나님의 어린양의 순종: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히 10:5,7)
이 구절은 우리 주님의 지상 사역과 관련하여 기록된 최초의 그분의 말씀인 듯 하며, 아마도 그분이 누추한 인간의 몸을 입기 위해 마리아의 태로 들어가려고 영광의 상아궁을 떠나실 때 하신 것 같다.
3.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이루신 업적:
(1)구속의 환성.
(2)현재의 축성.
(3)장차 영광에 이르게 함.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히 10:11-13).
4.하나님의 어린양으로부터의 권면:
(1)죄의 용서에 대한 확신.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17,19,22; 참조 10:35-37).
(2)성도들에 대한 의식:믿는 자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복지에 책임이 있는가? 진실로 그분께서는 그러하셨다. 다음 구절에 주목하라.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4,25; 참조, 10:34).
네 번째 경고 -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는 처사에 관한 것(히 10:26-31).
이 무서운 구절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일까? 아니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일까? 어느 누구도 여기서 자신의 독단을 네세울 수 없다. 30절의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라"는 말씀에서 추측컨대 기자는 믿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만약 그것이 옳다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를 기자는 심중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므로(만약 이것이 진실이라면) 이 구절은 히 6장4-6절과연결될수있다.

IV.최고의 원칙 - 신앙(11-13장).
1.신앙의 사람(11장).
히브리서 기자는 믿는 자와 그의 위대하신 대제사장에 관한 개략적인 진술로서 10장을 마무리한다. 그 마지막 구절은 "이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히 10:39)이다.
여기까지 읽어온 독자들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정확하게 어떠한 것일까? 어떤 사람이 예전에 이와 같이 살았던 적이 있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답변한다. 이 장은 거룩한 영예의 전당이며 성서의 웨스터민스터 사원이라고 비유되었다.
1.신앙의 묘사(히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1)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히 11:1의 의역임).
(2)"믿음이란 믿는 이들로 하여금 미래를 현재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대할 수 있도록 한다"(오스월드 샌더스).
(3)3절에 의하면, 만약 우리가 창세기 1장 1절을 넘어서고자 한다면 믿음이야말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참조, 히 11:6).
(4)믿음이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신뢰이다(참조, 히 11:27).
(5)"믿음이란 바라는 것에 대한 권리증서이다"(무울턴 밀리건).
2.믿음의 예증(히 11:4-40).
이 서신의 기자는 이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이룩된 놀랄만한 성과를 예증하기 위해서 많은 구약 성서의 인물을 상기시킨다. 하나님과 신령한 동맹을 맺은 영웅들과 그들의 쾌거를 주목해 보자.
(1)영웅들
 1)아벨
 2)에녹
 3)노아
 4)아브라함
 5)사라
 6)이삭
 7)야곱
 8)요셉
 9)모세
10)모세의 양친
11)여호수아
12)기드온
13)라합
14)바락
15)삼손
16)옙다
17)다윗
18)사무엘
19)그타 인물들
(2)믿음의 쾌거.
 1)믿음으로 온전한 제사를 드림(아벨 - 4절).
 2)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늘로 옮기워짐(에녹 - 5절).
 3)믿음으로 대홍수를 면한 8명(노아 - 7절).
 4)믿음으로 어려운 명령에 순종함(아브라함).
  ㄱ)그의 공향 땅을 등짐(히 11:8-10).
  ㄴ)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드림(히 11:17-19).
-주:19절에 대해 말해두어야 할 것은 아브라함이 그 이전에는 약속이건 실례이건 육체적 부활의 선례가 전혀 없었던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을 믿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할 때(히 11:8-10), 어떻게 인지도 알지 못할 때(히 11:11,12), 언제인지도 알지 못할 때(히 11:13-16), 그리고 왜인지 알지 못할 때,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했다는 것이다(히 11:17-19).
 5)믿음으로 불임이었던 여자가 아이를 낳게 되었다(사라 - 12,13절).
 6)믿음으로 다음과 같은 위대한 예언이 선포되었다.
  ㄱ)야곱의 결혼과 가계에 관하여(이삭 - 20절; 참조, 28:1-4).
  ㄴ) 메시야의 족보에 관하여(야곱 - 21절; 참조, 창 49:10).
  ㄷ)출애굽에 관하여(요셉 - 22절; 참조, 창 50:24,25).
 7)믿음으로 한 어린 아기가 석달간 숨겨질 수 있었다(모세의 양친 - 23절).
 8)믿음으로 한 민족이 노예살이에서 풀려나게 되었다(모세 - 24-29절).
  ㄱ)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로 한 모세의 결심(히 11:24).
  ㄴ)이 결심의 이유(히 11:25-27).
  ㄷ)이 결심의 결과(히 11:28,29).
 9)믿음에 의해 한 도시가 함성만으로 무너졌다(여호수아 - 30절).
10)믿음으로 인하여 한 기생이 구원받았다(라합 - 31절).
11)믿음으로 군사적 개혁자들이 이스라엘을 구하였다(기드론, 바락, 삼손 및 옙다 - 32절).
12)믿음을 인하여 한 목동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다(사무엘 - 32절; 참조, 삼상 16장).
13)믿음으로열방들을 정복하였다(다윗 - 32,33절; 참조, 삼상 8장).
14)믿음으로의로운 행위가 이뤄졌다(33절). 구약성서의 많은 선지자들, 제사장들 및 왕들도 그러하였다.
15)믿음으로 약속을 얻었다(33절). 구약성서의 많은 실례가 있다.
16)믿음으로 말미암아 사자의 입이 닫혔다(33절; 참조, 삿 14:5,6; 삼상 17:34-37; 단 6:22).
17)믿음으로 말이암아 사나운 불길이 꺼졌다(34절; 참조, 단 3:25).
18)믿음을 인하여 칼날을 모면하였다(34절; 참조, 왕하 6:14-17).
19)믿음으로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었다(34절).
20)믿음으로 싸움에서 용맹스러워졌다(34절).
21)믿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방 원수들을 물리쳤다(34절).
22)믿음을 인하여 여자들이 죽은 자녀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목격하였다(35절; 참조, 왕상 17:24; 왕하 4:35).
23)믿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견뎠다(35절).
24)믿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투옥 당하는 것까지도 견뎠다(36절; 참조, 대하 16:10).
25)신앙으로 어떤 사람들은 시험을 견뎠다(37절; 참조, 창 39:12).
26)신앙으로 어떤 사람들을 돌로 쳐 죽임이나, 톱으로 켜서 죽임이나 칼에 맞아 죽임 당하는 것을 견뎠다(36,37절; 대하 24:20-22; 마 23:35).
3.믿음의 저축(히 11:13-16,38-40). 이 모든 구절을 읽고 나면 아마도, 이처럼 고통받는 성도들의 신앙을 밑받침해 주는 목적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하고 묻게 될 것이다. 대답은 역시 위 구절안에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믿음을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천국의 금고에 예금하였던 것이다(히 11:10).

2.믿음의 모양(히 12장).
1.하나님의아들을 바라보자(12:1-3).
(1)앞에서 우리는 바울이야말로 히브리서의 기자라는 우리의 확신을 진술한 바 있다. 이 놀라운 사도는 여러 가지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선교사였고 영혼의 구원자였으며, 목회자이자 위대한 신학자였고, 또한 장막 짓는 자였다. 그러나 또한 그는 여가가 나면 운동경기를 즐겼던 사람인 듯 하다. 바울은 자신의 저작들에서 그의 말하는 바를 납득시키기 위해 운동경기를 비유로 자주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1)씨름:"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2)권투:"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고전 9:26).
 3)달음질:"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고전 9:24,26).
(2)여기 히브리서 12장에서 바울은 세 번째 유추 즉 경주를 예로 사용한다.
(3)"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 12:1).
 1)허다한. 우리는 엘리야가 한 때 그랬던 것처럼 우리만이 모두라고(흔히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왕하 19:10,14,18).
 2)구름. 이것은 "허다한"(great)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여기 사용된 헬라어는 홀로 떠다니며 선명한 윤곽을 지닌 구름을 뜻하는 네펠레(nephele)가 아니라, 하늘 전체를 가리고 있는 큰 구름 떼를 뜻하는 네포스(nephos)이다.
(3)증인. 이 증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천사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사용된 헬라여는 마르투로스(marturos)인데 이 말은 일반적으로 당시에 고난을 당하면서 어떤 것을 보고 듣고 또한 행한 자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자질이 뛰어난 전문가를 가리킨다. 본문이 강력하게 암시하는 것은 이런 증인들이 11장에서 언급된 신앙의 영웅들임을 알 수 있다.
(4)"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 버리고"(히 12:1). 여기서 무거운 것이란 헬라어로 온코스(onkos)이며, 크기나 양에 대해서 사용하는 말이다. 헬라경주자의 관심은 어떤 거싱 그저 부도덕한가 아닌가, 도덕적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경주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그러므로 최선에 대적은 때로 최악이 아니라 그냥 선이었다.
(5)"얽매이기 쉬운 죄"(히 12:1). 여기서 "얽매다"라는 단어는 "에워싸다, 단단히 포위하다, 메복하다"의 뜻이다. 이 단어는 헐거운 치마(의복)에 대해서 사용된다. 아마도 바울은 여기서 불신앙의 죄를 언급하고 있는 듯 한데, 이것은 또한 믿는 자가 자신을 엉망으로 만드는 죄를 가리키기도 한다.
(6)"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1). 이 구절에 함축된 의미를 주목하라.
 1)모든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 경주에 참여하게 한 것이다. 이는 비단 목사나 선교사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주:여기서는 통상적으로 경주를 나타내는 단어 드로모스(dromos)가 쓰인게 아니라 아곤(agon)이란 말이 사용되었다. 바로 이 말에서 고뇌를 의미하는 영어의 agony가 파생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 경주는 중대한 경주인 것이다.
 2)각 경주자의 발걸음은 하나님에 의해서 내디뎌진다.
 3)경주의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보상을 얻은 것이다. 그것의 종착점은 하늘나라가 아니다.
 4)모든 경주자에게는 이길 것이 기대된다(하나님은 모든 경주자가 경주에서 이기기를 바라신다).
(7)"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이 표현은 한 눈팔지 않고 계속적으로 집요하게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그분을 아예 외면하거나, 한눈 팔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어쩌면 우리의 왼쪽에는 우리 뒤를 쫓아 달려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한 경주자가 오른쪽 우리 앞에 저만치서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왼쪽뒤를 보고 자만하며 오른쪽 앞을 보고 질투를 느낄 수 있다. 이 두가지는 모두 죄이며 우리로 하여금 쳐지게 하는 요소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는 대신 오로지 계속 예수를 응시하여야 한다.
 1)만약 여러분이 실망하게 되기를 바라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라.
 2)만약 여러분이 의기소침하게 되기를 바라거든,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라.
 3)만약 여러분이 기뻐하고자 하면 예수를 바라보라.
(8)"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히 12:2).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소성케 하는 장본인이요 그것을 온전케 하시는 완성자이시다. 공자, 석가, 모하멧은 범세계적 종교운동을 창시했지만, 이 세 사람은 모두 죽음을 이기지 못했다.
(9)"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히 12:2). 이 기쁨의 성격은 유다서 24절에서 설명된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유 1:24; 참조, 요 17:6-12,26).
(10)"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11)"...자(그리스도)를 생각하라"(히 12:3). 우리는 몇 번이고 복음서의 기록자들이 기록한 복음으로 되돌아 간다.
2.하나님의 계율에 복종하라(요 12:4-11).
(1)계율의 근거.
 1)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함.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히 12:5). 망각! 바로 이것이 우리의 문제다. 다윗은 이렇게 훈계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 103:2). 여기 히브리서 12장 5,6절의 권면은 잠언 3장 11,12절을 인용한 것이다.
 2)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입증함(히 12:5)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여기서 "징계하다"라는 말은 옳은 행위에로의 인도를 가르킨다. 그리고 "꾸짖다"라는 말은 잘못된 행위의 교정을 가리킨다.
 3)우리가 진실로 하나님께 속함을 입증함(히 12:7,8).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4)우리를 더욱 그리스도에 가깝게 함(히 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2)계율에 대한 반응들(히 12:5,11).
 1)믿는 자가 계율을 업신여길 수 있다(마치 에서가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듯이).
 2)믿은 자는 계율 밑에서 기가 꺽일 수 있다. 이는 계율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우이다.
3.믿는 자는 그것에 의하여 훈련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한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지르느냐가 아니라, 그가 그러한 실수를 통하여 얼마나 많이 깨닫느냐 하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 시편은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시 94:12).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시 119:72).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시 119:75).
(3)계율의 결과(히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3.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라(히 12:12-29).
(1)너희의 피곤한 손을 일으켜 세우라.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일을 시작하라(히 12:12).
(2)너희의 연약한 무릎을 강하게 하라. 이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라(히 12:12).
(3)너희 발을 위하여 길을 곧게 하라. 호머 켄트는 아래와 같이 썼다.
"만약 어떤 사람의 발이 불구라면 그가 걸어가는 길에 위험스런 장애물이 없도록 특별한 조처가 취해져야 한다. 영적으로 비유하자만 신앙이 허약한 사람은 그의 영적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곳으로 함부로 걸음을 내댇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불구의 신자는 ... 자신의 불구르르 더욱 악화시켜 탈구 상태에 이르게 할지도 모른다"([히브리서], p.265).

3.믿음의 실천(히 13장).
1.그의무.
(1)형제를 계속 사랑할 것(히 13:1).
(2)낯선 나그네들에게 언제나 환대할 것(히 13:2). 이 구절에서 "천사들을 대접한 ..."것이란 말은 창세기 18장을 가리키는 것 같다.
(3)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들을 생각할 것(히 13:3). 이들 갇힌 자들이란 (바울처럼) 자기들의 증거로 인하여 속박 당한 자들일 수 있다.
(4)무엇보다 혼인을 귀히 여길 것(히 13:4). 일곱째 계명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지만, 계속 하나님은 인간(구원받은 자나 구원받지 않은 자나 모두 포함)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신다. - "간음하지 말지니라."
(5)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하게 여길 것(히 13:5).
(6)너희를 이끌어 너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을 기억할 것(히 13:7).
(7)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 것(히 13:9).
(8)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릴 것(히 13:15; 참조, 벧전 2:5,9). 이에 덧붙여 믿는 자에게는 그 자신의 몸(롬 12:1)과 선행(히 13:16)을 희생으로 드릴 것이 요구된다.
(9)너희의 선생에게 순종하고 그들에게 복종할 것(히 13:17). 이에 대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언젠가 이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지도록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10)그리스도인들의 지도자, 특히 히브리서의 저자를 위해 기도하라.
2.그 기쁨 : 우리의 지극히, 특히 히브리서의 저자를 위해 기도하라.
(1)"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2)"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3)"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4)"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을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게 먹을 권이 없나니"(히 13:10).
(5)"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히 13:14).
(6)"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히 13:20,21).

 
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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