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스크랩] 하나님이 거짓말하실 수 없는 두 가지

하나님아들 2014. 4. 25. 22:37

1. 하나님이 거짓말하실 수 없는 변치 못할 두 가지 사실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

글/이상봉 목사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히6:11-20)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전에 하신 어떤 말씀을 없는 일로 돌리시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어떤 확실한 말씀(사실)이 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어제 이렇게 말씀하시고 오늘 다른 말씀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중에는 근본 정신은 바뀌지 않지만 시대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바뀌게 되는 것들도 있다. 어떤 말씀들은 아주 효력이 상실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를 영구히 하나님의 제사장 지파로 삼으시겠다고 한 약속이나 예레미야 35장에 나오는 레갑 자손에게 주신 약속 곧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끝까지 신실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집안을 영원히 제사장 집안으로 유지시키겠다고 하신 약속 같은 것은 신약시대에 와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 되게 되었으므로) 무의미하게 되었다. 물론 이 약속들도 취소된 것은 아니다. 상황이 허락되는 때까지 그 약속은 지켜졌다. 


 그러나 아주 근본적인 하나님의 약속들 곧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안에서 주어진 약속들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그 내용이 바뀌거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이런 약속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영원한 계획을 약속의 형태로 표현하신 것이므로 너무도 확실하고 견고하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사실’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결코 적당히 넘기거나 거짓말하실 수 없는 변치 못할 사실이란 무엇인가?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이란 첫째,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13절)이고, 둘째, 그 약속을 보증하시기 위해 당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셨다는 사실(17절)임을 알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이 두 가지 변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으므로” 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하신 약속 즉 그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복의 내용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해서 모든 날 마지막에 나타나게 될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이다. 그리스도를 주셔서 사람으로 그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며 택한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이다.


 히브리서 記者가 강조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잘 받아서 약속을 실제로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이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곧 오늘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무슨 약속을 하셨으며 그는 그 약속을 어떻게 믿음으로 받아 누렸는지 알 필요가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복과 약속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 사사로운 사욕을 채워주는 것을 하나님의 최고 축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자녀들에게 주신 최고의 복과 약속은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복과 약속 곧 ‘’과 ‘후사’(後嗣, 자손)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그 나라이다.


 땅은 일차적으로 가나안 지경을 얻는 것으로 약속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 최종적으로는 온 세상을 얻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후사에 관한 약속은 일차적으로 이삭이라고 하는 한 아들을 얻는 것으로 약속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계속 확장되어서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민족이 형성되는 것으로 이어지며 마침내는 거기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일컬어지는 그리스도가 오게 되며 거기서 하나님의 최종 목표인 영광스런 교회가 형성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땅과 자손에 대한 것이며 이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가 땅 위에 온전히 서는 것으로 완성될 것이다. 하나님이 택한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나라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복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며 영원한 약속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그것의 표현인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의 내용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광스러운 교회와 천국으로 이루어진다.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된 약속의 내용은 첫째 이 땅에 세워지고 완성되어져 가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이고, 둘째 그 교회가 주님이 다시 오심으로 말미암아 완성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는 ‘영원한 천국’이다.


 히브리서 3:6에서 기자는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우리가 곧 그리스도의 집이라고 했다. 바로 이 집이 우리의 목표요 약속의 궁극적 내용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을 끝까지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3:14)고 말했다. 여기서 끝까지 잡는다는 것은 약속을 끝까지 붙드는 것을 말하는데 이렇게 약속을 끝까지 붙잡는 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곳이 바로 오늘 우리가 천국이라 부르는 바로 그리스도의 집(나라)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오직 이것을 약속하셨을 뿐 다른 것을 약속하신 일이 없다. 그리고 그것 이상 더 좋은 약속도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것도 없고 또한 우리가 소망하며 추구할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과 약속은 다 자기 속에서 온 것이거나 마귀의 거짓말로부터 온 것이다. 그것들은 부질없는 것이며 이루어질 수도 없고 이루어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얼마나 많은 거짓된 소망 곧 정함 없는 인간의 육적 소망이 자의적으로 해석된 성경 말씀에 의해 뒷받침되고 포장되어 떠돌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 차지하지 못하도록 참된 약속과 소망으로 우리의 마음을 무장해야 한다. 

 

 이 하나님의 약속은 다른 각도에서 이렇게도 설명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은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소 휘장 안으로 담대히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대속(代贖)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음으로써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해주셨다. 즉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또 다른 각도에서 이렇게도 설명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참으로 알 수 있도록 지혜와 총명을 주신다는 것이다. 타락하여 하나님께 대해 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깊이) 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하나님을 생명 안에서 알 수 있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상식으로 아는 것도 아니요 배운 율법 지식으로 아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마음과 정신을 받아서 속에서부터 하나님을 알도록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히8:10-11에서 기자는 이 사실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언약(言約)이라는 형식으로 주어졌다. 하나님과 사람이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언약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준으로 하여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진다. 구약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주신 약속이다. 구약은 약속과 율법(명령)을 그 속에 포함하고 있다. 구약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한 백성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소개하며 그 하나님을 섬기라고 요구하며 그 방법(절차)을 제시한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요구(명령)한다는 점에서 구약은 율법(법)이다. 법은 지키라고 준 것이다. 지키면 보상(복된 삶)이 따르고 안 지키면 징벌(고생)이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 곧 생명의 길로 가지 않았다. 그래서 환난과 고통의 세월을 살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은 어디까지나 약속이지 법인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약속)은 ‘잘 하면 잘 살고 못하면 못산다’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구약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상호간에 맺은 언약(계약)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맺은 그 언약(약속)에 충실했어야 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이 계약의 주 내용은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잘 섬기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이 되어 복된 삶을 살고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형식은 계약이지만 실제로는 법과 같은 것이다. 계약 역시 법과 같이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준수하면 좋지만 파기하면 안 좋은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을 어겼고 또한 하나님과의 약속(계약)을 어겼다. 그래서 그들은 사는 동안 내내 거의 고생만 했다. 믿음이 없고 본성이 악한지라 도무지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도대체 무슨 약속을 하셨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된 삶을 거의 못 누렸기 때문이다. 


 구약이란 말 자체가 ‘약속’이라는 뜻인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약속을 하셨는가? 여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는 내용이 나온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19:3-6)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지금 무슨 약속을 주시거나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에게 한 약속을 주셨고 계약(언약)을 맺었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그 약속 또는 언약은 언제 누구와 맺은 것인가? 전에 아브라함과 맺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은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이 이미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잘 기억하고 붙들면 약속을 실제로 누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며 이방 나라와 다를 것이 없다는 얘기이다.


 이처럼 구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근본적인 약속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즉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그 자손들과 다시 재계약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형식은 언약(계약)이지만 조건적, 쌍방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라 사실상 일방적인 약속이었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한 가지 약속을 하신 것이다. 그 내용은 무엇인가? 장차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큰 민족이 되며 그들이 실패와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를 나타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약속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로 세우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에 의해 된 것도 아니고 그들의 동의를 받아서 된 것도 아니고 그들의 본성과 능력을 기초로 세운 것도 아니다. 이 약속은 오직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안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 자신의 성실과 열심으로 이룰 약속인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는가? 외형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복된 삶을 살지 못했고 하나님의 나라가 되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다수는 광야에서부터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실패를 시작해서 마침내 주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거듭 실패를 반복했다. 그들은 마침내 그들의 구주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하나님을 완전히 실망시켰다. 그 결과 그들은 로마에 의해 멸망을 당함으로써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었다.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4:22)는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주 예수님과 열 두 제자를 비롯한 신약 교회를 산출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내었고 이로써 하나님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율법으로서 구약은 흠이 있는 것이다. 그 내용에 무슨 흠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율법은 사람이 장차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남으로써) 하나님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사람에게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오직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며 사람의 죄인된 실상을 드러낼 따름이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19,20)


 그러므로 구약은 그 자체로는 아무 흠이 없고 완전한 것이나 사람을 변화시키며 온전케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신약에 비해) 흠이 있고 불완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약은 구약보다 완전하고 더 좋은 언약이다. 신약은 하나님이 그 자녀들에게 아들의 생명을 주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며 온전히 섬길 수 있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신약으로 인해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아들)의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알고 섬기게 되었다.


 예레미야나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렘31:33,34, 겔36:26,27)을 통해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또 누구든지 이 생명(영)을 받고 이 생명으로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며 아들의 복(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것은 사람의 할 수 없음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극복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은 구약을 완성한 것이며 흠이 없고 완전한 것이다.


 이 땅 위에 하나님(그리스도)의 나라가 서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이 성취되어야 한다. 즉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성령)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은 반드시 주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약은 주님의 유언과도 같은 것이다. 주님이 죽으심으로써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신약시대는 새 언약의 바탕 위에 서 있는 것이며 이 새 언약은 주님의 피 위에 서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7장부터 10장은 다 이 신약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히브리서 11장과 12장은 약속을 믿음으로 받은 사람들이 끝까지 믿음으로써 추구한 약속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으며 그 약속의 내용인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우리 삶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다는 것을 그 내용 중에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도록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마28:18-20, 막16:15-18, 행1:8, 고후9:8-11)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강과 안전과 쓸 것을 공급하시고 시험 당할 때 피할 길을 내시고 이 모든 것 위에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심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지키도록 하셨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사탄의 공격, 환경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빈손으로 타향에 와서 부자가 되고 큰 집을 이룰 수 있었던가? 그는 어떻게 백세까지 자녀가 없었지만 큰 집을 이룰 수 있었던가? 그는 어떻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수많은 대적들 가운데서도 평안히 큰 집을 이루며 살 수 있었던가? 그것은 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약속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에게 자녀를 주고 건강을 주고 재물을 주고 평안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삭과 야곱과 요셉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우리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삶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이 항상 공급하신다는 약속을 그 속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고 추구할 필요가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이 영원하신 약속 곧 우리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신다는 이 약속만 붙들며 추구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주셨을 때 왜 그냥 약속을 주시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까지 하셨는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권위가 없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걸고 맹세까지 하며 약속을 주신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과 그의 약속은 극히 믿을만하지만 그것을 받는 사람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면 도무지 믿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을 돕기 위해 맹세라는 방법까지 사용하신 것이다


 둘째, 어떤 하나님의 약속은 오랜 시간동안 인내로 기다려야만 성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가장 좋은 때 곧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때 사람은 ‘과연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하는 의심을 가질 수 있다. 이처럼 약속의 성취가 사람의 인내를 넘어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함을 고려하여) 그 약속의 확실함을 보증하기 위해 당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약속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소망을 가지고 약속을 붙들도록 하기 위해 당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신 것이다. 우리를 하나님의 친 자녀로 삼으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복을 누리도록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맹세로 보증되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거짓말하실 수 없는 절대불변의 사실이다. 천지가 무너지는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약속은 결코 변치 않는다.


 그러므로 문제는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실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바로 알고 믿음으로 굳게 붙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두 가지 어리석은 일이 있는데,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으며 그것의 성취를 오래 참고 기다리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약속이 아닌 것 즉 하나님이 약속하지도 않은 것을 약속처럼 붙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약속인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는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이 약속하지도 않은 세상 영광과 육신의 욕망을 추구하며 하나님께 그것을 이루어달라고 조르고 있다. 그것은 어리석고 답답한 일이다. 우리는 눈을 열어서 하나님이 그 이름으로 맹세하기까지 확실하게 주신 약속이 무엇인지 바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이 일이 우리 개인과만 관련된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관련되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개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단체적이며 우주적인 것이다.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바른 소망과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서고 우주적인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다.

 

 만일 우리가 약속에 대한 믿음과 소망 없이 육신대로 산다면 우리 개인만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몸(하나님의 나라)이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영광스러운 교회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전진해야 한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6:11,12)ⓗ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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