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오경

[스크랩] 십계명의 신학적 의미

하나님아들 2014. 4. 25. 22:57

십계명의 신학적 의미



위에서는 십계명의 구약적 의미와 그 해석을 서술하였다. 그러나 이하에서는 십계명에 대한 신약적 의미를 살펴 보겠다. 신약중 특별히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사상 가운데 나타난 십계명관을 고찰하겠다. 신약의 십계명관은 구약적 십계명의 의미를 보는 윤리적인 면을 강조하는 흔적이 매우 많다. 그러나 신약의 십계명은 구약의 가시적이고 윤리적인 의미를 인정하면서 그 보다 더 영적이고, 신령한 면을 더욱 강조하고 귀하게 여기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신약은 구약의 해석을 크게 보완하고 참되고 싶은 진리를 천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고 왔다"(마5:17)는 뜻이 여기에 적용되는 의미인 것이다. 구약의 예언은 메시야가 재림하여 구속하업을 성취하는 제사장적 사역에도 있으나 십계명의 근본 요소인 사랑의 윤리를 성취하는데 있다.또한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선포하고 해석하여 가르치는 데도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왕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십계명은 메시야 즉 예수그리스도의 신령한 왕국의 현장이다.81)
그러므로 십계명에 대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견해와 해석이 완전하고 그의 구속 사업에서 완성 되었다.


1. 예수님의 십계명 해.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옛님은 십계명을 어떻게 구분하셨으며, 그 내용을 어떻게 본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두 돌비에 기록된 것으로 보셨다(마22:37-40). 예수님은 첫째, 돌비의 내용은 지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것에 대하여 말씀 했다고(마22:37-38)했고, 둘째, 돌비의 내용은 자기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할 것에 대하여(마22:39) 기록된 것으로 생각하셨다. 그것에 대한 제목들은 마태복음 19장 18-19절에 명시된 것과 같다 (막10:19,눅18:20).또 예수님은 자신이 율법을 지켜 행하신 것이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성전에 올라가신 것이나, 유월절을 엄수하시 ㄴ것이나,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킨 것은 그 좋은 예들이다. 그뿐 아니라 성전 세를(The temple tax)지불하신 것이나(마17;24),율법대로 옷을 입으신 것(마9:2014:36)이나, 문둥병자를 고치시고,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는 것(마8:4)이나, 성전의 참된 성질을 지키기 위하여 성전을 청결케하신 것(마21:12,막11:16등)도 그 한 예증이다. 또한 모든 의(Rightousness)를 이르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신 것 등등이다."82)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의 근본이 되는 계명을 잘아심은 물론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지키셨다. 여기의"모든 의를 이르기 위하여"라는 뜻은 예수님의 메이야적이고,대속적인 사업,즉 그의 고난과 죽음을 포함한 사업이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한 것으로 생각하신 사실은 가장 중요한 교훈인 것이다.83) 그것이 곧 율법과 선지자의 대 강령이다(마7:12).즉 계명의 강령도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율법의 핵심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율법의 근거가 되는 계명의 핵심도 사랑이다. 그 사랑은 전에 기록한 바와 같이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할 것과 이웃을 지성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위의 두 계율을 다 지켰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이루신 것이다. 즉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마7:1222:4024:12,막12:34) 십자가에서 성취하셨다. 즉 사랑의 완성자라는 것이다. 인간은 이 사랑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신앙으로 즉 순종으로 접붙임을 받은 신자는 신앙의 힘으로 그 사랑을 영적으로 이룰 뿐만 아니라 성령안에서 성취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명은 자신의 신앙과 행위의 척도요,생활의 규범이다(막1:15,눅4:21).이하에서 예수님의 십계명관과 그 해석을 상고하여 보자!


제 1 계명,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예수님은 공생에 초기에 광야에서 40일동안 금식 기도를 하신 후에 사탄에게 시험을 받게 되었다. 그 시험은 우리가 잘 아는데로 세가지였다. 그 세가지 중에 셋째 시험은 십계명 제1계명과 관계된 것이다. 마태복음 4장 8절에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라대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했다. 이 시험의 목적은 예수님으로 자기에게 셩배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즉 그 마귀는 "만국"이란 상금을 놓고 예수를 미혹하여 자기의 소유로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케 하려 한 것이다. 제 1계명을 범하게 하려했다. 그것은 예수님으로 인간적인 권력욕과 세상의 영광욕을 이르켜서 자기에게 경배케 하려는 것이였다.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늘의 영광과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보좌를 버리시고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려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아무 보잘것 없는 것이었다.

"경배"는 존경과 사랑과 충성을 결의하고 실천하는 것이다.그러므로 경배는 경배자의 마음과 몸과 생활을 경배하는 대상에게 맡기어 그로 주장하게 하여 그의 지배하에서 오직 그에게만 존경,사랑 그리고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배반 또는 사랑 그리고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배반 또는 반역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주님의 구속사업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사탄에게 경배하면 하나님께 반역함과 구속사업을 져버리는 죄가 될뿐 아니라 사탄과 짝하고 사탄의 사업 동조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마태복음 4장 10절에서 "사탄아! 물러가라,기록하였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하였느니라고 했다. 본문에서 "사탄아! 물러가라"는 것은 사탄의 간교한 계책을 단호히 끊어 버리고, 또 그를 향하여 불가항력적인 능력으로 공격함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사탄을 대항하라 그리하면 그가 피하리라"고 했다. 또 그것은 사탄의 타협안을 일축하는 것이었다.


다음에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했다."경배함"이라는 헬라어(프로쓰쿠네오)는 와 의 합성어인데 는.....을 향하여, 또 는 "입을 맞춘다"84)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경배함"이란 단어 는 "....을 향하여 입을 맞춘다'는 것이다. 즉....을 향하여 존경,사랑,그리고 충성을 바치는 것이다. 마치 요한복음 12장에 기록된 베다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행한 모습이 진정한 경배의 모형이다.


또 "섬김"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라트레오)는 "종"이란 단어 (라트리스)에서 온 것으로 섬기는 것이었으나, 그 말에서 "예배함"(롬9:4),제물을 바침(히9;9)등의 뜻으로 사용되게 되었다.85)

그러므로 그뜻은 몸과 마음과 물질을 드려서 하나님께서 제사드리는 것이다. 즉 헌신과 희생적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을 말한다.

예수님은 위의 시험에서 제1계명을 이론적인 면에서만 아니라 실질적인 면에서 승리의 개선을 하였다. 그는 우리의 모범적인 교수이다.

또 마가복음 12장 28-30절에서 서기관의 시험적인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어라,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니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고 유일하신 분이시고 모든 생명을 주장하시는 영적이고 생명적이신 하나님이시고 감히 누가 당할 수 없는 능력과 생명의 하나님이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을 인간이 자신 전체를 드려 지성껏 섬기고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제 2 계명, 우상을 만들지 말라

출애굽기 20장 4-6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에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했다. 이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귀한 교훈을 사마리아 수가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다섯 남편을 두었던 여자 앞에서 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4장 7-24절에서 그 여자는 예수님께 자기의 조상의 교훈의 권위를 최고로 내세우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권위와 전통적인 권위를 뜻하는 것이다.


다음에 예배 처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서 제사하였던 것 같다. 또 이와 반면에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이 두 곳 중에 어느곳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하였다. 그녀는 계속하여 질문하기를 그 어느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까?였다. 끝으로 그 여자는 예수님께 예배의식 문제에 대하여 질문도 한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사마리아인들의 예배 의식과 유대인들의 예배 의식이 달랐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신(예수님이 속해 있는 유대나라)네 예배 의식이 정당한가? 아니면 우리(사마리아인의 예배 의식)의 것이 정당한가? 하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 여자의 지룸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둘다"NO",즉 부정적이였으며,가장 정당하고 참된 예배는 이런 예배라고 교훈했다. 즉 영적이고 실제적인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 예배를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라는 장소에 제한하여 계시지 않으시며, 또 자기의 육적 백성에게 교제의 특권을 주는 제한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그리고 전지전능하시어서 물질로 된 성전이나, 형상이나, 의식이나, 그리고 협소한 종교적인 편견에 얽매이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인종적 차별도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그의 발등상이시다. 누구든지 어디서나 겸허하고 회개하는 심령을 가질때 그 하나님을 볼 수 있다.86)

"예배바른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영적인 사랑의 교제이다."87) 다시 말하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고 했다.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의 마음과 자세는 어떠하여야 하는가를 가리킨다. 즉
(1) 하나님은 종족적 편견을 초월한 존재이시다(요4:9)
(2) 그는 性을 초월하신 분이시다(요4:9)
(3) 그는 인간적인 수단을 초월하신 분이시다(요4:11)
(4) 그는 인간적 선조 이상의 분이시다(요4:12).
(5) 그는 인간의 수요 이상의 것을 갖고 계신 분이시다(요4:12-14).
(6) 그는 인간의 가사를 초월하신 것을 갖고 계신 분이시다(4;4)
(7) 그는 인간의 사기를 초월하여 아시는 전지자이시다(요4:18).
(8) 그는 공간을 초월하신 존재자이시다(요4:21)
(9) 그는 시간을 초월하신 존재자이시다(요4:23)
(10)그는 생리적인 욕구를 초월하신 분이시다(요4:32).
(11)그는 자기 본위적인 인간생활을 초월하신 분이시다(요4:34)
(12)그는 현재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들에게 [하나님 살아계신 말씀]이시다(요4:26).88)


제 3 계명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출20:7)

마태복음 5장 33-37절에 헛 맹세를 하지말 것과 맹세한 것은 주께 지키라고 했다.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만 피하고 하는 맹세는 어떤 맹세든지 안지켜도 허물이 아니라고 하는 풍습이 있었다"89)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호를 사용한 맹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호를 사용하지 않은 맹세도 지켜야 할 것이다.하나님의 백성이 한 맹세는 직접 하나님의 성호를 사용하지 않았을 지라도 하나님의 성호에 간접적인 영향이 있으며, 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감정에 치우쳐 하나님의 성호를 불러도 안되고 또 남에게 욕이나 저주도 극력 금하는 것이다. 또한 마가복음 7장 5-8절에 보면 의식적인 경배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는 것도 하나의 하나님의 성호 모독이다. 이는 나를 인하여 타인으로 하나님의 성호를 모독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디도서 1장 16절에는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했다.


제 4 계명,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록히 지키라(출20:8-11).

안식일에 이삭을 따먹는 제자들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켰다. 누가복음 6장 6절에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가르쳤다. 이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림을 의미하는 것 같다.마가복음 3장 1-6절에도 같은 기사가 나타나 있다. 이 말씀이 보여 주는 것은 신령한 사업을 하신 것이다. 유대이들도 이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사상이 예수님의 사상과의 차이는 안식일에 행하는 일을 무조건 금하고 또정죄하는 것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떠나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들에게 적용한 것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셨다(눅 6:6-11). 그때에 유대인들은 이것을 보고 분내어 예수님을 해하려고 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안식일의 정의를 말씀하셨는데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가 악을 행하는 것,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하셨다(눅 6:914:3).또 누가복음 6장 1절에 예수님은 안식일에 제자들과 같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때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는 것을 바리새이들이 보고 항의하실 때에 예수님은 그것을 변호하셨고, 안식일을 정의하여 말씀하시기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막 2:28)고 하셨으며,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막 2:27)고 했다. 그뜻은 "신약시대에 이르러 안식일을 대신하는 주일을 지키는 법은 그날이 주님의 날이니 만큼 예배를 위주하되 자비와 긍휼을 의미하는 활동과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이 된다."90)


또 요한복음 5장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시고 나서 그 일로 박해하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고 하셨다. 이상의 말씀들을 종합하여 보면 안식일은 주님의 날이다. 이 날은 주님께 얘배하고 또 선한 일과 생명을 구원하고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일들을 할 것이 주님의 뜻이다.


제 5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예수님도 이 부모 공경에 대하여 취급하셨다. 예수님은 모세의 명령을 말씀하셨고, 그것에 대한 유대인드의 그릇된 해석과 범죄를 지적하셨다. 유대인들은 부모에게 할 일은 하지 않고 그 대신에 하나님께 하면 된다는 것과 부모에게 마땅히 할 것을 하지 않은 것이다. 즉 부모에게 할 일을 폐하고 부모에게 행할 공대를 무시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 속을 드려다 보니 악한 것이 가득하여 그렇게 되었다(막 7:20-23)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를 통하여 말씀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부모의 일을 잘 돕고 잘 공대한 분이시다(눅 2:51-52). 그 예로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기의 어머님을 제자 요한에게 부탁한 것은 부모 순종과 공경의 좋은 표본이다.


그러므로 에베소 6장 1-4절에 "자녀들아 !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다. 이 말씀들이 내포하고 있는 교훈은 하나님께 할 일은 하나님께 하고 부모에게 할 일은 부모에게 하시는 일을 잘 돕고 부모의 은공에 보답하는 것이다. 그것은 육신적인 것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까지 다 포함이 된다. 이것은 인륜의 최고의 덕이요, 근본이다.


제 6 계명 살인하지 말지니라(출20;13)

예수님은 제 6계명에 대하여 해석하실 때에 살인만이 아니라 정신적이고,대인적인 관계의 선하지 못한 것도 포함해서 말씀하셨다. 정신적이고 대인적인 관계에 있어서 선하지 못한 것은
(1) 형제에게 노하는 자이다(마5:22)."신자는 자기와 같이 믿는 형제에게 증오를 발표하는 것은 역시 큰 죄임을 말한다.91)
(2)"라가"는 입으로 나타나는 욕설,즉 악담이다.
(3) "미련한 놈"이라 함은 타인의 인격을 모독함이다.이것은 아주 나쁜 욕이니, 하나님을 모르는 놈이란 내용을 가진 말이다.92)
(4) 형제에게 원망을 들음.이것은 다른 신도의 것에 손해나 또는 오해를 해결하여야 할 것을 가르킨다. 그러므로 형제와 화목을 강조하고 있다(마5:24).
(5) 원수를 사랑함, 마태복음 5장 43-48절에 기록 되었는데
ㄱ) 원수의 실수 용서.
ㄴ) 원수를 사랑.
ㄷ) 원수를 위해 기도.
ㄹ) 원수를 위해 축복을 비는 것 등이다.
요한일서 3장 15-18절에는 살인의 요소인 미움에서 초월하여 사랑의 깊은 경지에 들어가 하나님의 성품을 입으라는 적극적인 면을 제시한다.


제 7 계명 , 간음하지 말찌니라(출20:14)

예수님은 제 7계명을 외면적으로 실제적인 문제만 취급하신 것만 아니라 내면적이고 비실제적인 것의 동인이 되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을 취급하셨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27-32절에 보면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고 하셨다.다시 말하면 음행에는 두가지면이 있다. 그 첫째면은 외면적이고 실제적인 면이고, 그 둘째 면은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것으로 이것은 첫째 면보다 더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이다. 예수님은 둘째 면인 정신적인 것,즉 의식적이든지 무의식적이든지 간에 음행의 목적을 가지고 이성을 대하는 정신적인 자세는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 이혼 문제에 있어서도 신명기 24장1-4절에 기록된 말씀을 회상하면서 음행의 연고 없이 하는 이혼은 불법적인 것이며, 또 이혼을 한 후에 다른 사라모가 결혼하는 것도 음행이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사전에 정신적인 면에 의식적이든지 무의식적이든지 간에 다른 이에 대한 음욕이 있었기 때문이다.즉 결혼을 위한 이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음행의 죄가 그의 속에 잠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요한복음 8장 3-11절에는 무리들이 현장에서 음행하다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주님에게 고소를 했는데 예수님은 그 문제를 잘 해결하셨다. 여기서 생각되는 것은 예수님은 육체적인 음행 못지않게 정신적인 면을 더 중요시 했다는 것, 그리고 마음에 범죄하고 그 죄를 깨닫지 못하는 철면피보다는 그 죄를 범하고 깨닫는 것,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타인을 정죄하려고 그 막중한 죄악을 범하는 그들보다는 차라리 범죄한 후에 회개하고 자기를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행하는 것이 귀하다는 것같이 생각이 된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것이 중요하고 죄가 되나 그 보다는 정신적인 죄가 더 크고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제 8 계명, 도적질 하지 말찌니라(출20:5)

예수님은 도적질에 관하여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셨으며 또 가롯유댜에게도 말씀하신 것이 있다. 요한복음 12장 6절에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마리아에게 대한 가롯 유다의 그릇된 태도를 나무랐다. 사도요한은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가롯 유다는 도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돈궤를 맡고 거기에 넣어 두는 것을 훔쳐감이아니라고 했다.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을 첫째 그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어드리는 향유의 값을 탐한 것이고, 둘째는,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은 30에 판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도적질한 자이고, 수전노이다 그렇다고 이에 적합한 예수님의 교훈이 마가복음 12장 30-31절에 나타나 있는데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에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기도하는 자니라"고 했다.


이상의 주님의 말씀에서 깨닫는 진리는 대인관계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범하는 죄이고, 또 남의 눈을 피해서 훔치는 것도 도적질이 되지만 그보다도 약자의 것을 빼앗고 타인의 것에 대하여 탐심을 가지는 것도 도적질이 된다. 또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 횡포를 행하는 것만 아니라 인간 생활에서 마음과 몸을 가지고 자기의 처지를 떠나 타인의 처지에 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딛 2:7-10).


제 9 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지니라(출20:16)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33절에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지니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너희 말은 옳다.옳다,아니라,아니라 하자.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레위기 19장 12절에 근거하여 자기의 편견을 부쳐서 꾸며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며 거짓된 것을 거짓되지 아니한 것 같이 가리워서는 안되며, 진실한 신앙과 양심으로 말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참 사랑에 근거하여서만 진실하게 말할 수 있으며, 바른 증거를 할 수 있다. 마가복음 12장 31절에 의하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다.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이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다른 여러 제물들 보다 나으니라"고 한 청년의 지혜있는 대답이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그의 대답에 찬성했다. 이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의 입 밖에도 내지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에게 은헤를 끼치게 하라"(엡4:29)고 하였고, 고린도전서 10장 31절 이하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를 구원을 얻게 하라"고 했다. 실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모든 면에서 유익과 덕을 끼쳐야 한다.


제 10 계명,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출20:7)

우리는 끝으로 탐심문제에 대하여 생각하자! 예수님은 이 탐심에 대하여 실질적인 교훈을 하여 주셨다. 즉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 형에게 유업을 나누어 주게 하소서 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셨고, 어떤 부자의 어리석음을 들어 교훈하여 주셨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결론을 내리시기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데(눅 12:22-29), 그 물질에 대하여 탐심을 품지 말고 반면에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고(마6:19-21),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살 것이라(마6:33-34)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계명의 근본 요소를 말씀하여 주셨다. 예수님은 외면적이고 실제적인 것에 관하여 말씀했으나 그 보다 그것의 근거가 되는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들어 잘 교훈하셨다. 이 십계명을 지키고 행동함에 있어서도 그 근본이 되는 사랑,즉 믿음에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2.사도들의 십계명관

사도들의 십계명관은 위에 생각한 예수님의 교훈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배우고 익힌 바를 그대로 선포하였고 그대로 기록하여 주었다. 그들이 기록한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교훈하신 바를 기록하거나,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신앙과 사상이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십계명관은 예수님의 교훈과 같다고 하여도 잘못이 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이 된다.이에 대한 참고 서적은 구레인박사가 쓰고, 김규당 목사다 번역한 "조직신학" 상권을 참고하기를 바란다.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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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그러므로 "십계명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전체의 구속적 구조를 보여 준다.종되었던 집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은 율법의 구성된 요소를, 그리고 다른 편은 십계명의 다른 증거가 있다.그것은 의식적인 계명(Ceremonical Commandments)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신성한 운동의 처음과 나중을 서로 결합하여 준다.즉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활동과 거룩한 합리인 국가와 신적 정체를 세우기 위하여 계획하신 하나님의 성격과 뜻에 적합하게 하신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필요 적절한 법과 생활의 요소들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94)

또 하나님은 모세시대에 모세에게 십계명의 특성을 보이고 깨우쳐 주어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하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웰 하우젠(Wellhausen)이나,킬(Kyle)이나, 파이퍼(Pfeiffer)나, 드라이버(Dri- ver)의 이론과 같이 바벨론의 하무라비 법전의 영향이나,애굽, 헷과 앗수르 법전의 영향을 받아 후대에 기록된 것이 아니다. 그 어의적인 면이나, 영적이고 내용적인 면이 잘 보여 주고 있으며, 또 모세의 법은 다른 모든 법에서 볼 수 없는 필연적인 법이 더 구성되어 있어 그것이 독특한 특성이다.


또 십계명에 대한 명칭이 여러가지가 있다."증거판"이라든지,"법판"또는 "두 돌비",또는 "그 말씀들"이라든지,여러 칭호가 있으나, 성격상으로 보아 "십계명"이라 하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또 십계명이라 한 곳이 몇 곳 있다(출34:28,신4:13).십계명은 두 돌비에 기록되어 있었는데 첫 돌비에는 제 1계명에서 제4계명까지, 둘째 돌비에는 제 5계명에서 제10계명까지가 기록되어 있은 것 같다.그리고 십게명의 해석은 구약에서는 외형적이고 육신적이고 실제적인면인데 반하여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사도들)은 내면적이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면에 더욱 중점을 둔 것 같다. 즉 제1계명의 근본 진리를 기술하고 그 진리에 근거한 교훈을 찾아 해석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대하여 오직 사랑이라는 것을 인정하시고, 그 사랑이 모든 것의 가장 근본적인 것임을 말씀하셨다.


십계명의 실제적인 성격은 종교적인 면과 윤리적인 면이 있는데,그것은 외면적인 죄악만 말씀하고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근거가 되는 근본적인 죄악의 연합체를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형벌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인데,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악한 욕망이다."95)


그러므로 그 마음속에 자리잡은 악한 욕망을 주 안에서 십자가에 못박고,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씻음을 받고, 성령으로 중생함으로 새사람이 되어 그 계명을 이룰 수 있다. 즉 믿음으로 의인이 되어 사랑을 실천하므로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이 없음으로 계명을 범하고, 사랑을 가지고 그 사랑을 발휘하므로 그것을 지키는 것이다. 온전한 사랑을 나타냄으로 그것을 성취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므로 완수하는 것이다. 주님은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계명의 별명은 사랑이다. 그 사랑을 행함은 계명을 완수 함이다. 주님이 율법을 완수한 것도 십자가 위에서 사랑을 완성함에 의한 것이다. 우리도 대속하시므로 율법과 계명의 완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사랑가운데서 사랑을 실천함에 있다. 또 그것은 언약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즉 하나님으로 같다. 시내산에서 설정하신 언약은 실질적으로 아브라함과의 언약과 동일하며 그 형식도 매우 같은 것이다. 이 사실이 늘인식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오직 시내산에서 출발하여 지상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언약이 하늘에서 출발하여 천상의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언약과 비교된 것이다."36)


그러므로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언약 즉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었다. 그 언약은 형식적인 외적인 면만 아니라 내용적 질적인 면과 영적인 면을 동시에 완성하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예수께서 율법사들과 유대인들의 율법을 보는 그 견해를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보다 깊고 신령적인 면에 충실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 증거는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구약 성경 구절을 많이 사용하셨다.(눅 24:27)는 점이다. 이 원리는 예수님에게 진리가 될 뿐아니라 또한 성경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도 된다."97)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원리는 하나님의 공의만 보신 것이 아니라 사랑도 보신 것이다. 엄한 율법만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가장 보배로운 은헤도 보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일면적인 교훈과 견해를 깨우치고 바른 교훈과 견해를 주시고 바른 교훈과 진리를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과 은헤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결합이 되어 있다(요1:17).십계명은 이 세사에서 모든 도덕의 율법(All Moral Law)과 "윤리적 이상들"(Ethical Ideals)의 근거로서 인정이 되고 있다."98)


그렇기 때문에 "십계명은 율법의 핵심이요,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의 기초이다."99) "은헤는 하나님이 인간과 같이 교제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기초였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율법을 주심으로 하나님 자신의 자비를 보여 주셨다.100)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님의 언약은 사랑과 은혜와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통하여 관계(Regard)와 규정(Prinison)을 사랑하는 백성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각 계명은 순종하고 지킬 때에 생명과 축복을 충만히 가져다 준다. 계명은 잔혹한 것이 아니고, 또 자기를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에게 자유와 안전과 선한 존재를 가져다 준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은 그 최고의 자유와 안전(Liberty) 가운데서 생활의 넓이를 가지게 한다.101)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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