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말 탄자를 누구라 생각하는가?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레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τόξον)을 가졌고 면류관(στέφανοs)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6:1~2)
첫째 인부터 넷째인 까지는 대환난의 서술로 되어있다. 다섯째인은 구원을 얻게 될 거룩한 세마포 옷이 입혀지는 수를 채우는 기간이다. 6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새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인류의 구원을 어찌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성자 하나님의 십자가 고난이 없었다면 어찌 영광스러운 천국을 소망하며 바라볼 수 있겠는가? 또한 하나님의 예정을 깨우치게 하는 내용이 이 말씀에 들어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 인과 흰말 탄자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τόξον)을 가졌고”(6:2a)
네 말들은 마지막 환난에 대한 종합적인 요약을 설명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시키시려고 애쓰는 내용을 오해하되 크게 오해하고 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라고 말하면서도 사단으로 바꾸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다. 어째서 예수님을 사단이라고 오해하는 것일까? 학문이라는 어리석음이 자신의 영혼이 구원주로부터 진노를 쌓고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백마를 탄분은 예수님이시고 흰말을 탄분은 사단이라고 말한다. ‘흰’이나 ‘백(白)’ 모두 같은 색깔이다. 색깔하나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면서 어찌 백성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라 하겠는가?
1. 활(τόξον)
가장 중요한 것은 “활을 가졌고”라는 문맥을 잘못 알고 있다는 점이다. 헬라어 원전에서 ‘활’을 ‘토죤(τόξον)’이라 하였다. τόξον을 영어 성경은 ‘bow’로 변역되었고, 한글성경은 ‘활’로 번역되어있다. bow로 번역된 영어는 잘못되었고 ‘활’로 번역된 것은 바른 번역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활’이라는 단어는 잘못해석하고 있다.
‘활’은 한문용어이다. 삼수변(氵)에 혀설(舌)을 합한 ‘살 활(活)자가 토죤(τόξον)이다. 주어 앞에 능동태 ‘엨온(ἔχων)’ 이라는 기뻐하고 자원이란 ‘살 활(活)’자 이므로 승리를 위해 ‘기쁨으로 자원한다’는 뜻이 이기고 이기려 한다는 말이다. 주어 ‘엨온(ἔχων)’은 ‘얻음’이므로, ‘활(τόξον)’은 생명(life)이다.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를 ‘그(그리스도)가 살리는 생명을 가졌고’로 변역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요3:17) 뜻이라고 성경은 교훈한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요5:21)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5:26~27)
활(τόξον)은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만세전부터 살리는 생명을 가지셨다. 인류를 살리기 위해 육신으로 오실 때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심판하는 권세를 받으(ἔχων)셨다. 그러므로 성자 예수가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자원 한다’는 뜻이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말이다. 따라서 흰말을 탄자는 그리스도 예수시다.
흰말은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사자이기 때문이다. 어두움의 권세는 결코 성결할 수 없고, 또 의의 면류관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의 손에는 활을 가지고 이기고 또 이기려 하더라는 말씀은 일찍이 아담 때 빼앗긴 인류에게 주어진 권리를 다시 찾으시려는 그리스도의 노력을 말한다. 이 말들에 대하여서 스가랴는 하나님이 부리시는 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색 마와 백마가 있기로....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슥1:8-9)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병거는 흑마들이, 셋째병거는 백마들이, 넷째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매였는지라.(슥6:2-3)
그리고 6장5절에서 천사가 말하기를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므로 말들은 어두움의 권세가 아니라 시대적인 문화로 해석해야 된다. 일찍이 학자들이 해석하였던 견해들은 어두움의 권세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 학설로는 설득을 얻지 못한다. 네 바람인 말들은 시대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적인 변화의 색깔이다. 아담의 잘못으로 죽어가는 인류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시키시려는 사랑과 은혜를 말한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6:17~19)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도말하시고 영생을 주시려는 노력이 이기려는 일이다. 악한 자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류를 지옥으로 끌어가려고 거짓말로 미혹시킨다. 이러한 생명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힘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어두움의 권세는 인류를 지옥자식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어두움의 손에 끌려들지 않도록 하려고 기쁨으로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으로 생명을 주셨다.
따라서 6장에서 말하는 인 떼심은 오래전에 시작 되였고, 지금은 마지막 인을 뗄 때가 되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앞에서처럼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첫째 인도 떼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주님은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별할 줄 알면서 어찌하여 이 시대는 분별하지 못하느냐”하셨음을 기억해야 된다.(눅12:56)
2. 면류관(στέφανοs)
“면류관(στέφανοs)을 받고,”(6:2b)
면류관은 두 가지가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은 ‘스테파노오(στέφανοs)’가 있고 자신이 스스로 쓰는 ‘디아데마(διάδημα)’가 있다. 스테파노오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머리에 씌워지는 면류관을 ‘στέφανοs’라 한다. 그리고 διάδημα는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주권자라는 표시로 쓰는 것이 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에게 영광으로 면류관(στέφανοs)을 주셨을 뿐이다. 어린양이 쓴 면류관은 διάδημα가 아니라 στέφανοs이다. 심판주께서 지상재림하실 때 쓴 면류관은 이미 받은 것을 스스로 쓰기 때문에 διάδημα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면류관(στέφανοs)을 주신 적이 없다. 13장 1절에 나오는 짐승, 곧 사단이 쓴 면류관은 διάδημα이었다. 그러므로 흰말을 탄자는 예수님이라고 두 번째 확인시켜주신다.
3. 이기고(νικάω)
“나가서 이기고(νικάω) 또 이기려고 하더라.”(6:2c)
니카우(νικάω)는 정복을 위한 승리를 말한다. 이러한 말씀을 근거할 때, 희다는 뜻은 성결을 말한다. 그리고 어두움의 권세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씌워지는 면류관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어두움은 결코 성결할 수 없기에 흰말은 하나님이 부리시는 존재들이라고 성경은 증거한다.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여호와의 자들이니라.”(슥1:10)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셋째 병거는 백마들이, 넷째 병거는 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매었는지라.”(슥6:1-7)
흰말 탄자가 이기려 하더라할 때 νικάω의 과거 능동 니케세(νικήσῃ)라 하였으므로 첫째 인은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자발적인 기쁨의 노력이다. 이러한 진리를 외곡하거나 잘못 해석하는 무리들로 인하여 순진한 성도들이 억울하게 환난에 남겨져서 고난을 당하게 됨에 대하여 종들은 그 죄 값으로 환난으로 남겨지게 된다.
따라서 흰말을 탄자를 사단이라고 말하는 지도자들을 거짓선지라 한다. 또한 이러한 이설을 만들어 낸 지도자는 ‘거짓말 하는 자’가 된다. 헬라어 원전에서 거짓말을 ‘페우도스(ψεῡδοs)’라 하였는데 이 뜻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다. 예수님은 이러한 무리들은 “성 밖에 있으리라”(계22:15)고 하셨다. 성 바깥 어두운 곳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무리는 환난에 남겨졌다가 바깥 어두운 곳으로 가게 된다. 예수님은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라.”(계21:8)고 하였다. 그렇다면 구원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므로 지도자는 바로해석하고 바로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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