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제5장 6~12절 - 주의 재림을 찬양하라

하나님아들 2014. 4. 18. 16:42

 

 

 주의 재림을 찬양하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셨는 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5:6~)

 

지난주에 요한이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올라가서 장차 되어 질 일에 대하여 공부했다. 인봉한 책을 떼기나 볼 자가 없기로 요한이 크게 울고 있을 때 장로의 말대로 다윗의 뿌리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하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으리라는 내용으로 말씀을 상고하였다.

 

이 기쁨을 나누는 내용이 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아버지의 오른 손에서 책을 받을 때 천사들과 24장로들이 새 노래로 찬양하였다. 모든 만물들도 찬양 드리는 이유는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기 때문이라 하셨다. 또한 이 기도를 받으신 주님께서 어두움의 권세를 멸하시고 하나님의 질서가 새롭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시는 어린양에게 기쁨으로 찬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시고 그것들과 그 가운데서 살고 있는 인류를 어찌하여 멸하시는가? 반문하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의 뜻한 바를 조금이라도 깨달으려하지는 아니하고 자신의 편리대로 생각하면 그러한 의문을 갖게 된다. 또는 이 세상에 몇 만대를 살 것처럼 집 짓고 재산을 모으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으로부터 그러한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먹고 살자고 밤낮으로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고 부를 축적하여 안일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만물을 멸하시면 지금까지 내 재산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나오는 말이다. 다른 면은 세상재물만 생각하고 밤낮 뛰다보니 하나님의 뜻은 하나도 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멸망당할 것을 생각하니 불안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다.

 

하나님은 수천 년이란 오랜 세월을 참으셨다. 주님께서 오시게 되면 만물을 멸하신다고 사도들을 통하여 알려주셨다. 천사들도 올라가신 그대로 오신다고 기록된 성경으로 알려주셨다. 그런데 눈이 가려지고 완악한 마음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 알려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시키려고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리시면서 깨어서 근신하고 때를 알고 준비하라 하신다. 그런데도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으면서도 성경에 쓰여 지지 않은 인간인 목사의 말은 잘 듣는다. 자기주장만 앞세우고 있으니 그날 대 환난에 남겨졌을 때 누구에게 원망할 것인가.

 

진정으로 예수의 사랑을 깨닫고 아버지의 섭리를 알기를 원한다면 그러한 실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고집과 아집 때문에 멸망의 대 환난을 당한들 어느 누가 불쌍히 여기며 가련하다고 위로해 주겠는가! 곧 인봉을 떼기만 하면 대 환난은 시작될 것이다. 봉해진 책이 그리스도에 의해 개봉되려고 그의 손에 옮겨진 것을 요한은 보았다. 두렵고 떨리는 순간이다. 대환난의 시작이 되므로 두렵고 떨리는 순간이다.

 

실제로 이일은 있게 될 것이며 곧 시작될 것이다. 이일은 어떤 공상이거나 허탄한 말로 만들어낸 이론이 아니라 심판 주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요한을 통하여 지금도 말씀하셨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으며 나의 영원한 거처가 어디인가를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한다.

 

일찍 죽임을 당하신 예수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5:6)

 

예수님은 죄악으로 죽게 된 인류를 구하시려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도하셨다. 그런데 선택을 받았다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오신 주님을 죽는데 넘겨주었다. 목이 곧고 마음에 할례 받지 못한 교만 때문에 주님을 죽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많은 선지자를 보내면서 메시야의 길을 알릴 때마다 톱으로 켜서 죽였고, 돌로 때려죽였고, 끝내는 메시야마저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께서 재난이 쓰여 진 책을 개봉하려고 하신다. 지금도 여러 경로를 통하여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알려주면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이지는 못할망정 종말을 전하지 못하도록 죽이려는 행위가 어쩌 옛날과 다르지 않다고 하겠는가?

 

예수께서 어떤 사람들이 이러한 불법을 행하고 있는지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신다.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천사들을 통해서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는 있어도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는 전능자의 눈은 속이지 못한다고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하셨다. 이처럼 만물을 멸하시려고 준비하고 계시는 그분이 어째서 자신이 계획하고 진행할 일들을 모르시겠는가? 하늘의 천사들도 장로들까지도 인봉된 책을 빨리 떼어주시기를 원하면서 찬양을 드린다. 지금 하늘에서는 봉해진 것을 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주님께서 오실 때 함께 올 나팔수 천사들이 나팔을 불 준비를 끝내고 대기 중에 있다. 신부들에게 입힐 세마포를 만들며 또 입혀주는 기간이다.

 

그런데 어리석고 무지한 백성들은 아들도 모른다면서 주님의 전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모른다고 고집할지라도 주님은 당신의 계획대로 때를 아신다. 조만간에 그분이 나타나면 준비한 신부들은 다 데려가신다. 반대하며 부정하며 준비하지 아니한 자들은 대 환난에 남겨서 연단을 통하여 온전하지 못했던 믿음을 깨닫도록 할 것이다.

 

대환난의 고통은 눈물의 환난이요, 아픔의 환난이요, 배 고품의 환난이 될 것이다. 들림 받지 못하고 이 땅에 남는 자들이 당해야 되는 고통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창세후로 전에도 없었고 후일에도 없을 대환난이 될 것이라 하셨다. 베드로후서 2장에서는 주의 재림을 무시하고 조롱하며 부정하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은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은 사람” 이라고 하였다.

 

이성이 없기 때문에 짐승과 같이 구원사역을 훼방한다. 자신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훼방한다고 성경은 교훈한다. 짐승은 사람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마귀를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불에 들어간다고 성경은 경고한다.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었다 하는 말이,”(벧후2:22)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여기에 대하여 베드로는 이렇게 증거 했다. 여기에 해당되는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말)이 어디 있느뇨”할 것이다. 그들은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가운데서 행하는 자들”이라 했다. 또 그들은 “호색을 좋아하고 탐심이 많아서 거짓으로 말을 한다.” 또한 그들은 “본래 잡혀죽기 위하여 태어났고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은 자들”이라 했다. 짐승은 주님의 재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훼방한다.

 

하나님께 올라가는 기도

 

각 족속과 백성들과 나라 가운데서 예수를 위해 죽어갔던 성도들의 기도는 아름다운 향으로 변하여 하나님께로 올라갔다고 증거 한다. 일찍이 세례 요한이나 스데반도 예수를 증거 하다가 피를 흘리고 죽었다.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제자들도 죽었고 교부들도 그랬고 선진들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다가 피를 흘리며 죽었었다. 세계 곳곳에서 종족이 다른 족속들과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위해 죽었다.

 

수많은 선교사들이....복음을 전하던 목사들이....성도들이 모두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예수의 부활을 외치다가 피를 흘리며 죽었다.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없는 순교는 결코 헛되지 않으므로 피 흘리며 부르짖는 기도는 아름다운 향으로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이것은 골고다에서 흘려주신 예수님의 피의 대가였다. 나를 위하여 죽어주신 주님을 생각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분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된다. 이런 자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고, 제사장을 삼으시고 장차 왕 노릇을 하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1장6절에서 공부한 내용이다. 아무리 구원을 받았네, 예수를 믿네 할지라도 이 땅에 남아서 대 환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은 버린다고 호세야 선지를 통해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못하게 한다.” 너를 버리고 제사장이 되지못하게 한다는 말씀은 이 땅에 버려두어서 대 환난을 당하고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과, 받지 않으려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된다.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려고 죽임을 당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장자의 총회에 참여하는 권세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아들의 자리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나라 제사장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군가를 분명히 알고 그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분의 사랑을 받는다. 이런 사람에게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하늘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땅덩어리만 있으면 나라인줄로 알 것이다. 땅덩어리가 아무리 많고 커도 사람이 없으면 ‘나라’ 라는 이름이 붙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도 천사들만 있어도 안 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이 있어야 되고, 하나님의 속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피로 사셨다. 이처럼 엄청난 사랑을 받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나라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주시는 예수는 지금도 사역하신다.

 

학자들 간에는 벧전2:9의 말씀에서 제사장을 만인제사장이란 의미로서 하나님의 나라인 하늘이 아니라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하늘나라 제사장으로 삼으신다 하심을 깨닫고 항상 감사해야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 두 가지 사명을 알아야 된다.

 

첫째는; 자기 자신과 타인을 위한 제사장이 되어야한다. 모든 허물과 어려움과, 약점과, 고통을 내가 지고 매

           일 기도하며 헌신하는 생활이다. 구약에서 제사장들은 자기와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과 같은 삶이되어야 한다.

 

둘째는; 구약 제사장들은 주의 성전에 모여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나아가서 전하는 직임

           이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제단 앞에 모여서 자기와 타인을 위하는 기도가 있어야 된다. 헌

           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복음을 교회 밖으로 나아가서 사람들에 전하는 일이 제사장의 사명이

           하늘나라의 제사장이 되는 일이다.

 

또한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라고 약속한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부활신앙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에 다시 와서 열 고을(각자 보상)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보실 때 합당한 삶을 살아야한다. 합당한 삶으로서 나의 허물이 없어져야 되고 죄악에서 떠나야 된다. 담대함을 가지고 악을 물리치고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여 언제나 승리하는 삶이되어야 한다. 그래야 성령과 교통함이 있게 된다. 성령과 교통하는 사람은 예수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삶속에서 고통이 물러가고 병마가 물러간다. 저주가 물러가고 희락이 넘치며 기쁨 속에서 항상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일만 있게 된다.

 

천사들의 찬양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 만이요 천 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 하도다 하더라.”(5:11-12)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피의 대가로 하늘나라 백성을 삼으시고 제사장을 삼으시고 장차 왕노롯 하도록 허락하신다. 주님의 은혜에 대하여 천사들은 찬양 드리며 천사들의 수는 만만이요 천 천이라 하셨다. 숫자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수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하늘나라의 모든 천사들을 뜻하는 내용이다. 천사들의 외침 속에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능력과 부를 찬양하고 지혜와 힘을 찬양한다. 존귀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찬양하고 있는데 찬양 속에는 무한한 속성을 나타내주는 내용이다.

 

어린양의 능력은 어느 누구에게도 비길 수 없다. 하늘위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나 땅위에 있는 그 어떤 존재나 땅 아래 있는 그 어느 피조물일지라도 예수의 능력까지 도달할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예수에게는 능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은 부자라고 하신다. 세상에서 아무리 부자가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의 부에는 따를 자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세계가 주님의 손에 있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 천국의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어졌다 하였고 아버지의 것이다 내 것이라 하신다. 이토록 부자이신 우리 주님께서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하시고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는 말씀이다.

 

지금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신부를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삶을 살고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셋째하늘에 집을 짓고 있다. 그분의 지혜와 능력으로 짓는다. 나무나 시멘트로 짓는 것이 아니라 정금과 보석으로 짓고 계신다. 예수님의 능력과 지혜와 힘보다 능가하는 존재는 없다. 마귀가 아무리 방해할지라도 그분의 능력으로 멸하게 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만을 의지하고 그분의 재림을 찬양하고 사모하는 성도에게 영원한 축복이 있다고 성경은 교훈한다.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8)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영광을 받게 되실 분은 오직 어린양이라고 천사들은 찬양한다. 이토록 뭇 천사들이 찬양할 때 모든 만물들도 영광으로 찬양 드린다. 하늘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이 찬양으로 영광을 드린다. 이때 네 생물들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한다. 모든 동식물들이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어린양께 존귀와 영광을 드리고 찬양을 드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존귀하신 어린양을 만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성도의 온전함을 나타내야 된다고 요구한다. 신자가 어린양 예수를 만나고 그의 신부가 되려면 마음이 찬양으로 넘쳐나야 된다. 요한도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으로 찬양하였다. 시편기자는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하였다. 시편 146편부터는 찬양으로 꽉차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들의 영혼이 여호와를 찬양하고 우리들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고 우리의 평생에 하나님께 찬양할 때 주님은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그분의 능력을 찬양하고 그분의 지혜를 찬양할 때 고통이 떠나가고 깨끗한 세마포를 얻게 된다. 찬양은 질병이 물러가고 가난이 물러가고 마귀가 물러간다. 저주의 권세가 물러가고 훼방이 물러가고 흑암의 권세도 물러간다.

 

하나님은 찬양의 보좌에서 찬양을 받으시고 회중이 찬송할 때 능력으로 나타내신다. 말씀이 있으면서 실천하는 신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복이 있다. 사랑이 있으면서 순교가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얻는다. 모임이 있으면서 역사가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기도가 있으면서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영원한 시온의 복이 주어진다. 범사에 감사하면서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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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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