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서신

[스크랩] 요한서신 개론(요한1,2,3서와 요한계시록)

하나님아들 2014. 3. 25. 18:33

 

 

 

 

요한서신 개론(요한1,2,3서와 요한계시록) 

 

   - 조 병 수 교수

 

 

 

  사도 요한은 세 편지를 기록하였다. 세 편지는 길이에 따라서 성경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가장 긴 편지가 앞에 위치하고, 가장 짧은 편지가 뒤에 위치한다. 요한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서신들에서도 예수를 부인하는 이단과 싸우는데 주력한다.

 

1.  요한일서

(1) 요한일서의 구조

0. 도입 (1:1-4)
1. 하나님과 교제 (1:5-2:17)
2. 적그리스도 (2:18-29)
3. 소망자의 삶 (3:1-24)
4. 영분별 (4:1-6)
5.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의 관계 (4:7-5:4)
6. 신앙의 증거 (5:5-12)
7. 결론적 권면 (5:13-21)

(2) 요한일서의 내용

 

  요한일서는 특히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가현설과 싸운다 (요일 4:1-3). 요한일서에는 "우리"와 "그들"의 기독론적인 대립이 요점이다. 여기에 요한일서의 분립와 관련된 갈등구조가 설명된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에 대하여는 먼저 2:18-20에 나온다. 첫째로 "그들"은 "우리"에게서 분립하였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다" (2:19). 이것은 출교가 아니라 탈교를 의미한다. 반대자들에 대한 공식적인 출교는 시행되지 않았다. 남은 자가 있고 나간 자가 있다. 둘째로 "그들"은 다수를 이루었다. "많은 적그리스도" (2:18; 4:1). "그들"은 수적으로 열세한 그룹이 아니었다. 요일서의 공동체는 "그들"에게 위협을 받을 정도로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외부적으로 진출하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 (비기독교적인 주변세계)와 연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4:5). 셋째로 "그들"은 적그리스도라고 불린다 (2:18). 적그리스도는 무엇인가. 우선 기독론적인 문제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2:22). 이들이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인하는 것으로보아 이들의 정체가 유대 (그리스도)인일 가능성이 높다 (참조. 요 7:25-27; 9:22; 10:24,36). 특히 이들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고백하지 않는다 (4:2). 이들이 예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으로보아 이들은 영지주의자들일 가능성이 있다. 사도 요한은 이런 자들을 거절하였다.

 

 

2. 요한이서

(1) 요한이서의 분해

0. 도입 (1-3)
1. 형제사랑 (4-6)
2. 이단경계 (7-11)
3. 결론 (12-13)

(2) 요한이서의 내용

 

  요한이서에서도 기독론이 중요한 논점으로 등장한다. 요한이서는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시는 것을 믿는다 (육체재림설). 이것은 이단을 분별하는 중요한 요점이다. 발신자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미혹자와 적그리스도가 많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7). 이들은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시는 것을 고백하지 않는 자들"이다 (7). 이 교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된다. 첫째로 이것은 기독론에서 문제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거짓된 가르침이다. 이러한 면에서 요일서가 말하는 이단과 관계가 있다 (요일 4:2). 둘째로 이것은 종말론에서 문제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거짓된 가르침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재림을 다룬다 (현재분사에 주의하라). 이러한 면에서 요일서가 말하는 이단과 다르다. 요일서가 말하는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한다 (요일 4:2). 셋째로 이것은 신앙고백에서 문제가 된다. "고백하지 않는 자들". 미혹자는 초대교회의 공동적인 신앙고백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이런 이단에 대하여 엄격하고 냉정하게 거절할 것을 권면하였다 (10-11).

 

3. 요한삼서

(1) 요한삼서의 분해

0. 첫말(1)
1. 첫째 "사랑하는 자여" 단락(2-4): 가이오를 칭찬
2. 둘째 "사랑하는 자여" 단락(5-10): 디오드레베를 반대
3. 셋째 "사랑하는 자여" 단락(11-12): 데메드리오를 추천
4. 끝말(13-15)

(2) 요한삼서의 내용

 

  장로가 가이오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기에는 선교론적인 문제가 등장한다. 장로는 선교지향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장로의 선교정책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첫째로 선교대상와 관련하여 볼때 이것은 이방인선교이다 (7). 둘째로 선교주체자와 관련하여 볼때 이것은 헌신선교이다 (그 이름을 위하여 7). 개인보다 예수가 앞선다는 강조이다. 셋째로 선교방식과 관련하여 볼때 이것은 방랑선교제이며 (나그네 5, 나간다 7). 교회에 정착하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이것은 보고중심제이다 (교회앞에서 증거 6). 선교자와 피선교자를 철저하게 통제한다. 또한 이것은 무보수제이다 (아무것도 받지 아니 함 7). 선교자가 자비량으로 모든 것을 감당한다. 그러나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이 장로의 선교정책에 동의하지 않았다. 디오드레베가 선교지향적이 아닌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장로가 행하는 선교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디오드레베는 많은 말로 (여러 면에서) 장로를 비판하였다 (10). 따라서 디오드레베는 방랑선교자들을 접대하지 않았고 (형제들을 대접하지 않았고 10), 접대하려는 자들을 엄금하고 추방하였다 (10). 사도 요한은 이런 분파주의자를 거절한다. 사도 요한은 이방인선교를 방해하는 것은 악한 행위로서 하나님을 볼 수 없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하였다 (11).

 

 

4. 요한계시록

  사도 요한의 신학은 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밝히는 것으로 절정에 달한다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반드시 속히 될 일과 관련된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말하다가 체포를 당해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에 이 계시를 받았다. 예수의 계시는 일곱 교회 (1-3장) - 일곱 인 (4-7장) - 일곱 나팔 (8-14장) - 일곱 대접 (15-20장)의 도식을 가진 종말론으로 구성된다.

1) 예수의 명칭

 

  요한계시록에서도 기독론이 중요하다. 요한계시록은 기독론을 전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명칭을 사용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11:15-19; 12:10-12; 20:4-6 두 번), 어린양 (29번 사용), 하나님의 아들 (12:18), 알파와 오메가 (21:6; 22:13), 하나님의 말씀 (19:13) 등으로 표현된다. 특히 예수의 고난과 부활과 승귀를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를 충성된 증인, 죽은 자들가운데 먼저 나신 자, 땅의 왕들의 머리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1:5).

2) 예수의 관계성

 

  예수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관계성에서 이해된다.

(1) 교회의 그리스도

 

  예수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그리스도이시다 (계 1:10-18). 예수는 "인자같은 이"의 신분을 가진다 (1:13). 그의 외모는 다음과 같이 상징적으로 설명된다 (1:13-16). 발에 끌리는 옷과 가슴에 금띠는 권위를 (13), 머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과 눈같음은 성결을 (14), 눈이 불꽃같음은 통찰을 (14). 발은 풀무에 단련된 주석같음은 능력을 (15), 음성은 많은 물소리같음은 세계통치를 (15),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은 교회통치를 (16),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은 말씀의 권세를 (16), 얼굴이 해처럼 비치는 것은 생명수여자를 상징한다 (16). 예수께서는 자신의 신분을 자증하신다 (1:17-18). 예수는 처음과 나중이시며 (17), 산 자이시며 (18), 전에 죽었으나 이제 영원히 살아계시면서 열쇠지니어 사망과 음부를 지배하신다 (18). 이와 같은 예수의 모습은 일곱교회에 대한 말씀에서 다시 한번 각각 반복적으로 설명된다 (2-3장).
에베소 - 일곱 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서머나 - 처음과 나중,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
버가모 -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
두아디라 - 눈이 불꽃같고 발이 빛난 주석같은 이
사데 -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 (흰 옷 입으라)
빌라델비아 - 다윗의 열쇠가진 이
라오디게아 - 창조의 시작

(2) 우주의 그리스도

 

  요한계시록에서 우주는 무지개에 둘러싸인 하나님의 보좌와 우편에는 어린 양이 있고 전면에는 일곱 영이 있고 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강이 중심이다. 이것을 중심하여 네 생물, 24장로, 144천의 유다의 성도, 흰 옷을 입은 허다한 무리, 천사들, 만물이 배치된다.
  예수는 우주를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5:1-14). 어린 양이신 예수가 보좌와 네 생물, 장로들 사이에 계신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는 책이 들려있다.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 인봉을 떼고 책을 펼 자가 없다.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이 없다. 이때 유대지파, 다윗의 뿌리이신 (5:5), 어린 양 예수께서 이 책을 취한다. 찬양이 드려진다. 네 생물과 24 장로가 노래하고 (5:9-12), 많은 천사들이 노래하고 (5:12), 만물이 노래한다 (5:13). 이 노래들은 그리스도께서 중보자로 승천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따라 우주를 다스릴 권세를 받으셨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려준다. 하나님은 어린양을 통하여 우주를 다스리신다. 예수께서는 또한 심판의 그리스도이시다 (14:14-16). 그는 흰 구름에 앉으시고, 금면류관을 쓰시고,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을 거두신다.

(3) 영계의 그리스도

 

  예수는 전투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음녀 바벨론 (14:8; 16:19; 17:5; 18:10)을 비롯하여 세 가지 지원세력인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 (16:13)와 싸우신다. 이들이 하르마겟돈에 집결한다 (16:16). 하르마겟돈은 히브리어로 므깃도의 산이라는 뜻이다. 야빈과 시스라의 군대는 철병거 900승을 가진 강한 병력이기에 이스라엘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인데 바락과 드보라가 이겼다 (삿 5:19).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전쟁에서도 음녀 바벨론과 세 더러운 영과 온 왕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나 큰 세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여도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16:15) 이 대적들을 무찌르실 것이기 때문이다 (19:19-20:10).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 (16:14)이 될 것이다.

  사도 요한은 유배를 당하는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예배한 사람이었다. 고난이 신앙을 이기지 못하였다. 비록 그의 육신은 밧모라는 지중해의 먼지처럼 작은 섬에 갇혀 있었지만 그의 영안은 하늘보다도 넓은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비록 그는 고난과 핍박이라는 현재를 살고 있었지만 영광과 승리라는 미래를 기대하였다. 사도 요한의 삶은 하나님의 나라에 의하여 세상나라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며, 영광과 승리라는 미래로부터 고난과 핍박으로 점철된 현재를 이해하는 삶이었다. 이런 시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렬하게 소망하였던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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