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서신

[스크랩] 요한일서 - 개론?

하나님아들 2014. 3. 25. 18:34

 

 

 

 

 

요한일서 - 개론

 

 

▣ 요한일서-개요와 서론

 

 

▣ 주제: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시험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하노라... .“(5:13).

 

▣ 서론:예수 그리스도의 실재/1장 1-4절

 

1. 사귐-하나님은 빛이시다/1장 5절-2장 29절

● 핵심 구절-“하나님은 빛이시라“(1:5)

● 핵심 단어-“사귐“(1:3/1:6-7)

● 핵심 사상-“빛은 어두움과 사귈 수 없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사귐에 대한 세 가지 시금석

 

순종/1장 5절-2장 6절

진리를 말함 대(vs.) 행함(1:6/1:8/1:10/2:4/2:6/2:9)

사랑/2장 7-17절

진리/2장 18-29절

 

2. 아들됨-하나님은 사랑이시다/3장 1절-5장 21절

● 핵심 구절-“하나님은 사랑이시라“(4:8)

● 핵심 단어-“하나님께로서 난 자“(3:9/4:7/5:1/5:4/5:18)

● 핵심 사상-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3:3/3:7/4:17)

 

참된 아들인지를 시험하는 시금석

 

순종/3장

사랑/4장

진리/5장요한일서는 “빛 대(vs.) 어두움, 사랑 대 미움, 진리 대 오류“라는 세 가지주요 주제가 반복되는 방식에 기초하고 있다. 이 세 가지의 “요소들“이 본 서신의 안팎으로 짜여져 있어 간단하게 요약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위의 개요는 각 부분마다의 주요한 교훈들에 근거한 것이지만 주의깊게 살펴보면 그 세 가지의 주제들이 혼합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요한일서 서론

 

 

▣ 저자 : 성령께서는 사도 요한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요한복음과 서신서들,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주셨다. 이 세 가지는 사실상 상호 보완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충분하게 제시한다.

 

               요한복음       요한서신       요한계시록

강조점         구원             성화            영화

내용           과거의 역사     현재의 체험      미래의 소망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죽으심 우리 안에 살아계심 우리를 위해 돌아오심

말씀 육신인 됨 우리 안에 실재가 됨 정복함

 

▣ 목표: 요한은 그의 첫 서신서를 기록함에 있어 다섯 가지 목적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우리로 사귐이 있게 하려함(1:3)-“사귐“이란 이 서신의 핵심 단어들 중의 하나로, 여러 군데에서 사용되고 있다(1:3/1:6-7/요이 1:11 -참예하는 자). 사귐은 신자가 그리스도와 가지는 친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 곧 아들됨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사귐은 변하나 우리의 아들됨은 그대로 존속한다.

 

우리로 기쁨을 갖게 하려 함(1:4)-“기쁨“이란 단어는 이 서신에서 여기에만 사용되었지만 기쁨의 축복은 서신 전체에 나타나 있다. 기쁨은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사귐으로 인하여 생기는 결과이다.

 

우리로 범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2:1-2)-죄의 형벌은 죄인이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 해결받는다. 그러나, 일상적인 생활을 지배하는 죄의 세력은 또다른 문제이다. 요한일서는 죄인이 어떻게 죄를 이기고 승리의 생활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설명하며, 또한 죄가 그의 생활에 들어올 때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우리로 오류를 이기도록 하기 위함(2:26)-요한은 그 시대의 거짓된 가르침에 직면하고 있었는데, 이는 우리가 오늘날 거짓 선생들을 직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벧후 2:1-). 요한 시대의 거짓 선생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었다.

-물질은 악하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오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는 실제 인간으로 보였을 뿐이다.-진리에 대한 지식이 진리대로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신령한 소수의 사람“만이 신령한 진리를 이해할 수가 있다. 요한일서를 읽으면 요한이 다음의 사실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물질이 악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죄악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재하는 몸을 가지셨고, 참으로 죽음을 경험하셨다.

-우리가 믿는 바를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그것을 실천해야만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감동하심을 입어 그분의 진리를 알게 된다.

 

우리로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함(5:13)-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는 것인지를 말해 준다(요 20:31). 그러나, 여기서 그는 우리가 구원받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를 말해 준다. 본 서신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사귐(1-2장)과 아들됨(3-5장)을 진단할 수 있도록 사용할 일련의 “시험 방법들“로 되어 있다. 3-5장에서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에 강조를 두고 있음에 유의하자(3:9/4:7/5:1/5:4/5:18).

 

▣ 분석:개요 부분을 보면 본 서신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1-2장은 사귐에 강조를 두고 있으며, 3-5장은 아들됨에 강조를 두고 있다. 각 부분에서 요한은 세 가지 기본적인 시금석을 제시한다. 즉, 순종(빛 가운데서 행함)과 사랑(사랑 가운데서 행함), 진리(진리 안에서 행함)가 그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 생활에 알려진 죄가 없다면, 주님과 형제들을 사랑하고 있다면, 진리를 믿고 사단의 어떠한 거짓말도 믿지 않는다면, 그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사귐 가운데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도 알 수 있다. 만일 내가 그의 말씀을 순종하며, 그분과 형제들을 사랑하고 진리를 믿어 그대로 살고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자신이 진실로 구원을 받은 것인지 시험해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도 많다. 요한은 이러한 시금석들을 사용하여 충만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영위하기를 부탁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또한 많은 종교인들이 자신을 참된 하나님의 아들들로 여기지만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이러한 시금석들을 사용하여, 우리 자신의 생활을 조심스럽게 검토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 연구:요한일서를 현대어 번역으로 읽으라고 추천하는 바이다. 윌리암스(Williams) 신약성경이 좋다. 본 서신에서는 헬라어 동사가 중요한데, 흠정역은 가끔 그 뜻을 충분히 전하지 못하고 있다. 요한일서 3장 9절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사귐-요한일서 1-2장

 

이 두 장은 사귐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요한은 참된 사귐에 대한 세 가지 시금석을 제시한다. 말하는 것과 생활하는 것과의 대조점을 주목하자. “만일 우리가... 있다 하고“(1:6/1:8/1:10/2:4/2:6). 말은 하면서도 행치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도 많다!

 

1장 1-4절에서 요한은 자기의 주제를 소개하고 있는데,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계시하셨다는 점이다(요한일서 서론 참조). 그는 그리스도께서 참 사람이셨으며 환영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실제 몸을 가지셨음을 설명한다(눅 24:39), 요한 시대의 거짓 선생들은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었다. 만일 우리에게 실재하는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참된 죄사함을 받을 수 있겠는가!

요한은 그가 듣고 본 바를 말함으로써 목격자가 되고 있다(행 4:20 참조).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계시하시기 위하여 나타내신 바되었으며, 우리로 하나님과 사귀도록 하기 위하여 육신을 입으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3장 5, 8절과 4장 9절을 보고, 그리스도께서 오신 다른 이유들을 살펴보라.

 

1. 순종의 시금석(1:5-2:6)

 

요한은 우리에게 빛의 형상에 대해 처음으로 가르친다(요 1:4 참조). 하나님은 빛이시며, 사단은 어두움의 권세자이다(눅 22:53).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며, 불순종하는 것은 어두움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사귐은 빛과 어두움의 문제이며, 아들됨은 생명과 죽음의 문제(3:14/5:11-12)라는 것을 명심하라. 요한은 사람들이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어두운 가운데 살고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여기 나오는 네 가지 “거짓말“에 유의하라.

 

-사귐에 대하여 거짓말함(6-7절)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함으로써 우리의 본성에 관하여 거짓말함(8절)

-우리가 범죄하지 않았다고 함으로써 우리의 행위에 대하여 거짓말함(10절)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서도 계명을 지켰다고 함으로써 우리의 순종에 대하여 거짓말함(2:4-6).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신령한 일들에 관하여 말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입으로만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그리스도인들은 죄를 범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모두 다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신자의 생활에 있어서의 죄는 사귐을 깨뜨리지만 아들됨을 깨뜨리지는 않는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용납되지 않을 것 같을지라도 언제나 용납된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죄에 대해서 어떤 대비책을 가지고 계시는가? 그리스도의 천상의 사역을 통해서이다. 우리는 주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으며(롬 5:6-9) 그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죄의 세력으로부터 매일 구원받는다(롬 5:10).

“대언자“란 말은 “그 경우를 대변해 주는 사람“이란 뜻으로, 요한복음 14장 16절에 있는 “보혜사“란 말과 같은 단어다. 땅 위에 있는 우리에게는 성령이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천상의 하나님께는 성자께서 우리를 제시하신다! 그의 상처는 그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증거이며,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할 때에 용서하실 수 있다. 로마서 8장 31-34절을 주의깊게 읽자.

“자백하다“는 말은 “똑같은 것을 말하다“란 뜻으로서, 죄를 자백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동일한 것을 말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범죄했을 때 고해성사를 하거나 희생제사를 드리거나, 스스로를 벌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모두 처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가 범죄해도 되는 자격증이 되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거룩한 생활을 위하여 하나님이 설정하신 대비책을 진실로 이해하는 그리스도인은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려 하지 않는다."

 

 

2. 사랑의 시금석(2:7-17)

 

새 계명(7-11절/ 요 13:34)-사람이 하나님과 사귐 가운데 있을 때, 빛가운데서 행할 때, 그는 또한 사랑 안에서 행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떠나 있으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과도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영적 원리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가족의 지체들이므로 서로를 사랑해야만 한다. 이것은 레위기 19장 18절의 “옛 계명“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새 가족(12-14절)-사랑에 찬 아버지처럼 요한은 성도들을 “자녀들아“ 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용서를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 안에서 성장해야만 하며 믿음 안에서 강한 젊은이가 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아비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체험에 있어서 이 같은 각각의 단계들이 지니는 특징을 살펴보자.

 

새로운 위험(15-17절)-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세상을 향한 사랑 사이에는 갈등이 있다. “세상“이라고 할 때에 요한은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우리 생활에 속한 모든 것을 뜻한다. 세상은 사단의 체제이다. 만일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을 잃게 되고, 그의 뜻 행하기를 중단하게 될 것이다! 생활에 있어서 신령한 일들에 대한 사랑을 둔화시키거나 쉽사리 죄에 빠져들게 하는 것들은 그 어느 것이나 세상적인 것이며, 버려야 할 것이다.

요한은 세 가지 특정 문제를 언급하는데 곧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생의 자랑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세상을 위하여 사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뜻이다! 롯에게 일어났던 바가 바로 이 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살면 우리는 영원히 거하게 된다.

 

사랑이 없이는 아무런 참된 사귐도 있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녀들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빛 가운데서 행할 수 없고 하나님과 사귈 수도 없다."

 

 

3. 진리의 시금석(2:18-29)

 

우리가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모든 것이 진리인 그의 말씀 안에 계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짓말을 믿고서는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없다. 요한은 적그리스도 선생들이 이미 세상에 있다고 경고하며, 이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해 준다.

 

-이들은 진리의 사귐을 그만두었다(19절)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으신 것을 부인한다.

-이들은 신자들을 미혹한다(26절).

 

요한이 말하는 바는 베드로가 쓴 바와 일치한다(벧후 2장). 즉, 이 거짓 선생들은 언젠가 교회 안에 있었으나 진리에서 떠나갔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러한 교사들이 대단히 많이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은 조심해야만 한다!

 

여기서 성령이 개입하신다. 성령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한 하늘의 기름부음이시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전해 주시려고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신다. “너희는... 모든 것을 아느니라“는 20절의 말씀은 “너희 모두가 아느니라“로 번역되어야 한다.

27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에게 목사나 선생이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다. 만일이 뜻이라면 에베소서 4장 8-16절은 신약에 없어야 할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신자들이라면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그들을 가르치시도록 해야 하며, 언제나 사람들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중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가르침을 받으므로 성경을 읽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28-23절에서 요한은 베드로가 가르친 대로 거짓 교훈과 거짓된 삶이 함께 다닌다는 점을 암시한다. 만일 우리가 성심으로 진리를 믿는다면, 그리고 자신을 거기에 맡긴다면, 사람들 앞에서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거룩한 삶을 유발시키는 가장 큰 동기 중의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신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지 않았던(교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돌아오실 때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인데, 이것은 참으로 비극이다!

 

이 두 장에는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세세한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주된 교훈은 뚜렷하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매일 그리스도와 사귐이 있기를 원한다면 그는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형제를 사랑하고, 진리를 믿어야 한다. 죄가 들어올 때는 언제나 즉시로 그것을 자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는 말씀에서 진리를 배우는 것과 진리가 그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사로잡게 하는 데에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적으로 보며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말씀을 소홀히 하며 하나님의 백성과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귐 가운데 있지 않고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하여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 “화목제물“에 대한 연구(2:2/4:10)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 편에서, 그리고 인간편에서 각기 의미를 지닌다. 인간 편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사죄를 가져왔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허물된 죄인을 용서하실 수 있기 전에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케 되어야만 하였다. 여기에 화목제물이 개입된다. 그 말은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만족시킨다는 개념을 전해 준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진노해 계시므로, 그가 죄인들을 사랑하시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죽어야만 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법이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켰으며,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의 장벽을 헐고 하나님께서 죄를 없애는 일을 가능케 하였다.

히브리서 9장 5절에 나오는 “속죄소“라는 말은 “화목제물“과 동의어이다(출 25:17-22 참조). 속죄소(시은소) 위에 뿌려진 피는 법을 어긴 것을 덮어 가리워 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처리하실 수 있게 하였다."

 

 

 

▣ 하나님의 자녀와 죄-요한일서 3장

 

이제 우리는 “아들됨“에 대해 다루고 있는 본 서신의 두번째 부분으로 나아간다. 여기서는 “사귐“이라는 단어가 전혀 나오지 않는 대신 “하나님께로 난 자“에 강조를 두고 있다(3:9/4:7/5:4 참조). 이것은 요한복음 3장과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4:8). 본 장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참된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영적인 출생을 입증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는 순종을 위한 다섯 가지 동기를 제시한다.

 

1.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3:1)

 

문자 그대로 보자면, 그는 “보라, 참으로 낯선 종류의 사랑이로다!“라고 쓰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 5장 6-10절을 쓸 때 이러한 심정으로 썼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동기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한다면 그의 말씀을 순종할 것이다. “만일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키라“. 물론 세상은 이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를 미워한다. 세상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므로 그리스도의 소유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약속된 재림(3:2-3)

 

우리가 지금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는 더욱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그와 같이 될 것이다!“ 이 말은 주님의 몸처럼 영광스러운 몸이 될 것을 가리킨다(빌 3:20-21). 곧 그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할 것을 말한다(요 17:24).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기를 진실로 바라는 성도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며, 그의 생활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이지만 또한 “그의 행하시는 대로“ 우리도 행해야 하며(2:6)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게“ 되어야 한다(3:7). 성도는 자신을 정결케 해야만 된다. 즉, 자신의 생활을 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고후 7:1)."

 

 

3.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으심(3:4-8)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이유를 몇 가지로 제시한다.-아버지 하나님을 계시하고 사람들이 그와 사귐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함(1:2-3)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함(3:4/3:5)

-마귀의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함(3:8)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함(4:9). 죄가 그리스도께 고난과 죽음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미워하고 죄에서 떠나야 한다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요한은 죄를 불법이라고 정의한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1-2장에서의 사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법을 고의적으로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죄를 범하며, 죄인 것을 모르고 범하기도 한다(시 19:12).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고의로, 그리고 거듭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그에게 불순종하는 일은 없다.

에베소서 2장 1-3절을 보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육신과 마귀를 위하여 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죄를 범한다고 명백히 밝힌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안에 새로운 성품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더이상 사단의 노예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이 다음의 항목으로 이끌어 간다.

 

 

4. 새로운 내적 본성(3:9-18)

 

3-5장에 나오는 핵심 사상은 아들됨이며, 이것은 믿는 자의 내부에 있는 새로운 본성을 뜻한다. 하나님은 옛 본성을 파괴하거나 뿌리째 뽑으시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믿는 자에게 신령한 것들을 바라게 하는 새로운 본성을 심으신다. 9절은 이런 말이다. “하나님께로 난 자는 어느 누구나 습관적으로나 고의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안에 새로운 본성의 씨앗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본성은 죄를 범할 수 없다!“ 물론 신자가 옛 본성에 굴복한다면 걸려 넘어지게 될 것이다(갈 6:1-2 참조).

 

요한은 가인과 아벨을 예로 들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대조시킨다. 아벨은 믿음을 지녔고 용납되었으나, 가인은 믿음이 없었고 행위로 구원얻으려 한 나머지 결국 용납되지 못하였다(창 4장). 가인은 마귀와 같은 거짓말장이요 살인자였다(요 8:44). 그는 자기의 형제를 살인하였으며 이 일에 관하여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은 사단의 씨(자녀들)가 하나님의 씨를 반대할 것이라고 언급한다(마 3:7/마 24:33 참조). 마지막 날에는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대결이 그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사단의 자녀들이 종교적이라는 데에 유의하라. 가인도 제단을 쌓았으며, 바리새인들도 그들 당대에는 최고의 종교인들이었다. 올바로 판별해 낼 수 있는 시금석은 종교심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참된 사랑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미워하거나 살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랑을 나타내 보이며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 한다. 이는 중생할 때 심겨진 새로운 본성으로 인한 것이다."

 

 

5. 성령의 증거(3:19-24)

 

참된 기독교는 마음의 문제이지 머리나 혀의 문제가 아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마음속에서 증거하신다(롬 8:14-16). 물론 19절은 2장 28절과 연관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 마음에 확신을 가진 신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확신을 신장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베드로는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 1:10)고 말한다. 19절은 우리가 진실로 형제를 사랑하며, 진리에 속해 있고 구원을 받은 것임을 확신시킨다(3:14 참조).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의 개인적인 자질들로 인하여 그들을 좋아할 수가 있으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만은 전혀 낯선 사람이라도 그가 그리스도인임을 알면 사랑할 수가 있다! 로마서 5장 5절의 말씀이 바로 이런 말씀이다.

슬픈 일은 우리의 마음(양심)이 우리를 정죄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땅히 해야 하는데도 우리가 늘 형제를 사랑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은 우리의 느낌이 어떠하든지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우리를 돕는다. 구원과 확신이 마음의 느낌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21절은 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담대하게(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만일 마음에 죄가 있다면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이 죄를 깨닫게 하시면 그것을 자백함으로써 다시 아버지와의 사귐이 있게 된다. “신자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에서 떠날 때는 언제나 마땅히 해야 하는 기도를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은 실로 굉장한 계시이다.

 

베드로전서 3장 1-7절을 읽고, 이 일이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어떻게 적용되는 것인가 살펴보라.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를 기쁘시게 하려고 힘쓰는 데에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며, 우리가 그 안에 거하면 우리는 능력있게 기도할 수가 있다(요 15:7).

 

믿음과 사랑은 늘 수반된다(23절).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며,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힘쓰기 때문에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땅의 부모들도 자녀들이 서로 사랑할 때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모든 신자들이 놀라운 사랑의 교제로 연합하는 것 즉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7장 20-21절에서 기도하셨던 그러한 신령한 연합을 이루기를 갈망하신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신다. 우리는 성령께 굴복하고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주님 안에 거해야 한다. 하나님께로서 났다고 주장하면서도 거듭거듭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그가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그의 마음을 진단해 보아야한다."

 

 

▣ 하나님의 자녀와 세상-요한일서 4장

 

당신은 요한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빛, 사랑, 그리고 진리에 대한 주제는 이 짧은 서신 전체를 통해 교차되어 나타난 듯하다. 4장은 누구든지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면 그의 사랑으로 그것을 입증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요한이 3장에서는 순종의 동기로 내세운 것을 본 장에서는 사랑의 동기로 같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된 신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서로 사랑할 것이다.

 

1. 우리에게는 새로운 상품이 있다(4:1-8)

 

요한은 세상에 있는 거짓 영들에 관하여 경고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 당시에는 신약이 완성되지 않았을 뿐더러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음과, 신약 성경이 완성될 때까지는 지교회들이 신령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의 사역에 의존했음도 아울러 잊지 말자(고전 12장).

믿는 자는 어떤 설교자가 하나님께로 난 자인지 아니면 마귀에게서 난 자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아무튼 사단은 모방자이다! 요한은 거짓 영들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전 12:3 참조). 거짓 이단들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그를 인간에 지나지 않거나 영감받은 선생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새로운 성품을 소유하고 있어서, 이러한 요인들이 그에게 이길 힘을 준다.

 

오늘날 세상에는 두 가지 영이 있다. 곧, 영감된 진리의 영과, 거짓말을 가르치는 사단의 영이 그것이다(딤전 4장).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로서 온 말씀을 말할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것들을 알아볼 것이다. 반면에 사단의 일꾼들은 세상의 지혜에 의존하여 세상에서 들은 말을 말할 것이다(고전 1:17-2:16).

참된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요 10:1-5/요 10:27-28). 또한 서로를 알며 서로를 사랑한다. 사단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이며 파괴자이나, 그리스도는 사랑으로 그들을 하나 되게 하신다.

 

 

2.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4:9-11)

 

세상은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진실로 믿지 못한다. 이들은 세상에서 죄가 저지르는 무서운 파괴의 맹위를 보고는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필요가 결코 없다. 하나님은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 입증하셨다!

성경은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려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진술한다. 즉,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며(요일 4:9), 그를 위하여 살며(고후 5:15), 그와 더불어 살수 있도록(살전 5:9-10)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논리는 명백하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십자가는 “더하기“ 기호이다. 십자가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며, 사람들을 서로간에 화해시킨다. 만일 두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이미 십자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3.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신다(4:12-16)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으나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볼 수는 있다. 이 사랑은 우리가 성취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인한 것이다(롬 5:5).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성령께 굴복할 때에 우리에게서 넘쳐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좋은 특성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나쁜 특성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임하신다(4:17-18)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하나님께 대해 담대함을 갖는다(3:21-22). 서로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는 때에도 담대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가 강림하실 때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2:28).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에서 서로 나란히 마주 대하게 될 것인데, 여기 있을 때부터 서로 사랑하기를 시작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에 대한 참된 사랑이 있는 곳에는 미래의 심판을 두려워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이 생에서 사랑으로 우리를 마땅히 징치하실 수는 있으나, 그가 돌아오실 때 그분 대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부끄러워할지는 모르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향하여(4:1) 우리 안에서(4:12), 그리고 이제 우리와 더불어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흠뻑 젖어 있는 생활이다! 이러한 류의 사랑은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하며, 세상에 대해 아무런 흥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심판의 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랑의 증거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결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17절의 끝에 나오는 놀라운 진술에 주목하자.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현재 하늘에서) 우리도 그러하리라(현재 이 땅에서)!“ 주님은 하늘에 계시며 하나님 앞에서 나를 대신하고 계시는데 이 땅에 있는 죄악된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대신하고 있다. 주님이 하늘에 계시는 한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서 하시는 것처럼 이 땅에서 일을 잘 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결코 사람들이 두려워해야 할 분은 아니다. 사단과 죄가 등장하기까지는 이 땅에 두려움이 없었다(창 3:10). 아담을 두려워서 숨었었는데, 오늘날 사람들도 두려워한다.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심판이 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딤후 1:7/롬 8:15)."

 

 

5.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4:19-21)

 

3장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이 말로 본 장을 끝맺고 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죄인들은 사랑에 대하여 거의 아는 바가 없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보여 주셨고(롬 5:8) 우리 마음에 사랑을 심으셨다(롬 5:5/요일 4:10).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라고 로마서 3장 11절은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창 3장),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눅 19:10) 사람을 찾으러 오셨다.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와는 반대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 것이 모순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여기 이 땅에서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저 하늘나라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요한은 본 서신에서 “형제들“ 또는 “형제“라는 말을 17회나 사용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3:11/요 13:34-35/요 15:17/골 1:4 참조). 우리의 마음이 이처럼 냉냉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의무를 다시 말씀하시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된 일이다 !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란 어떤 형제가 생각하거나 행하는 모든 것에 동의해야만 한다는 뜻이 아님을 명심하라. 우리는 그의 개인적인 성격의 어떤 면을 좋아하지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서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대신 이기심이 다스릴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려면 야고보서 4장을 참조하라."

 

 

 

▣ 하나님의 자녀들과 그리스도-요한일서 5장

 

5장은 아들됨에 대한 세번째 시험, 곧 진리의 시험을 다룬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아느니라“는 말이 핵심 구절인데(2, 15, 18-20절), 본 장에서는 “우리가 아는 바“에 대한 몇 가지 확실한 점들이 발견된다.

 

1.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하여(5:1-5)

 

세상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란 어떠한 존재이며, 또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가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들은 종교적인 활동과 선한 취지들을 신뢰하며, 언제나 육신적인 힘에 의존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다시 태어났다고 말씀하신다! 불순종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사역을 믿는 믿음에 있다(요 1:12-13/약 1:18/벧전 1:3). 요한은 여러 군데에서 “하나님께로 난“이라는 구절을 사용했는데, 이는 “믿는 자의 모반“(母斑)을 가르치는 것이다.

 

-의를 실천함(2:29)

-죄를 행하지 않음(3:9)

-다른 그리스도인을 사랑함(4:7)

-세상을 이김(5:4)

-사단에게서 자기를 지킴(5:18).

 

요한은 다시 참된 아들됨에 대한 시금석으로서 사랑과 순종과 진리를 강조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사랑은 순종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요 14:21/요 15:10). 사랑이 있는 곳에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기쁘게 하려는 자발성이 있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에게 진절머리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모든 도시마다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법으로 정하여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부모들이 자녀들을 돌보기 위하여 희생하는 것은 짐이 되는가? 또는 부모들은 이 법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이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법에 순종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짐이라고 불평하는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마 11:30 참조).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며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는 정복자로서, 세상을 이기며 마귀를 이기고(2:13-14) 거짓 선생들을 이긴다(4:4). 그는 자신의 지혜나 힘으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 정복하는 것이다."

 

 

2.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하여(5:6-13)

 

죄인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나 자신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믿어야 한다. 5절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강조하며, 6-7절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그의 사역을 강조한다.

“물과 피“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명이 있다. 이것을 요한복음 19장 34-35절과 연관시킬 수도 있는데 이 구절에서 요한은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오는 것을 보았으며, 이것은 그가 세상의 죄들을 위하여 정말로 죽으셨다는 것을 입증한다. 또는 요한이 이 말을 할 때에 거짓 선생들을 염두에 두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학파는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이었지만 세례(침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가 예수님 위에 임했고 그가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십자가 상에서 외쳤을 때 그를 떠나갔다고 가르쳤다. 이 말은 우리에게는 전혀 구세주가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런 말이 아니다.

요한이 말하는 바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침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선포되었으며(마 3:17)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입증되었다는 뜻이다(요 8:28/요 12:28-33). 물론 구약의 성막에 나오는 놋제단(피)과 물두멍(말씀의 물)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성령께서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신다.

 

삼위께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동의하시며 지상에서는 성령과 말씀(물)과 십자가(피)가 같은 내용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예수께서 자기의 아들이심을 세상에 증거하고 계시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이들은 사람의 증거는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증거는 거부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 증거를 거절한다면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바는 그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라는 것이다. 물론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내적 증거가 있다(10절/ 롬 8:16).

 

11-13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갖는 확신, 곧 영생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가능한 한 명확히 요약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를 증거하셨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증거를 믿는다면 이 생명은 우리 안에서 진실이 된다.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종교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며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3. 담대히 기도하는 법에 대하여(5:14-17)

 

기도는 하나님의 싫어하시는 것들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붙드는 것이다(죠지 뮬러).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 대담하게 기도할 수가 있다. 이것이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인데(유 1:20), 하나님의 말씀의 외적 증거를 받아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과 내적 증거를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이다.

요한은 특히 범죄하는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언급한다. 아들의 죄는 징계와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고전 11:30). 만일 성도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었다면 그를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란 한 성도가 경솔하게 범한 “용서받지 못할 죄“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데에 유의하자.

사단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죄를 너무 많이 지어서 하나님께서는 이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1장 9절-2장 2절을 보라. 사망에 이르는 죄도 있는데, 그것은 완고한 반역이 그 절정에 이르는 죄이다(히 12:9 참조).

 

참된 기도는 하나님께 말하는 것 이상의 일이다. 그것은 말씀을 상고하고 하나님의 일들을 성령으로 살피게 하는 것이며(롬 8:26-28), 또한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걸리고 영적인 훈련을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값을 지불하려는 그리스도인이 많지 않다."

 

 

4.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하여(5:18-19)

 

다시 헬라어 동사의 도움을 받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사단은 믿는 자의 옛 성품을 통하여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스도인 자신이 자기의 구원을 지키는 것은 아니나, 마귀의 함정에서 자신을 지킨다. 유다서 21절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두고 하는 말이며, 그가 믿는 자를 사단에게서 안전하게 지키신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둘 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려면 우리가 그리스도께 굴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승리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는 승리한 상태 곧,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승리로부터 싸우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방심하지 말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온 세상이 악한 자의 수중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부인할 것이며 모든 것들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단이 이 세대의 신이며 흑암의 권세여서 어두움과 거짓말로 덮여 있는 온 세상을 그가 소유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진술한다."

 

 

5. 진리에 대하여(5:20-21)

 

5장 7절에서 요한은 “성령은 진리니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서 그는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고 말한다. 성령과 말씀은 언제나 일치한다. 마음에서의 성령의 증거는 성경에 있는 성령의 말씀과 결코 모순될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을 부음받음으로써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2:27). 요한이 반대하고 있는 거짓 선생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인 집단“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요한은 가르치기를 어떠한 그리스도인이라도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진리를 알게 된다고 한다.

참되신 하나님은 우상이나 거짓 신들에게 반대를 받으신다. 우상은 인간의 신개념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는데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형상에 따라 신들을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거짓으로 향한다. 로마서 1장 21절 이하를 읽고 무지함이 우상 숭배로, 그리고 우상 숭배가 부도덕으로 인도해 간 것을 주목하자. 사람들이 한때 참하나님을 알았지만 진리에 순복하는 것을 거절하고 나면 결과는 죄와 심판이 왔다.

 

순종, 사랑, 진리, 이것은 요한일서의 세 가지 핵심 사상이다. 이것은 아들됨을 증거하는, 그리고 사귐을 위한 세 가지의 필수 요건이다. 당신의 삶에 이러한 것들이 있는가?"

 

 

 

 

 

 

 

 

 

 

 

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