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요한계시록 서론

하나님아들 2014. 3. 25. 18:06

 

 

 

 

 

 

요한계시록 서론  

Ⅰ. 내용해설(서론)

  신약성서의 제일 마지막에 수록된 책으로서, 신약성서에서 유일하게 전적인 묵시적 작품이다. 본서는 문학양식에 있어서 구약성서의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서와 매우 흡사하다. 또한 이 성경들과 마찬가지로 박해의 위협을 받았거나 실제로 박해를 받았던 소수집단에 속한 저자의 산물이다.1 그리고 본서는 기독교회가 유대교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로마 정부에 의하여 유대교와는 다른 독립적 종교로 처음 인정을 받았던 A.D. 1세기 후반에 속한 작품이다.2

  요한계시록은 많은 상징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해석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은 요한계시록에 대해 왜곡된 기대감을 가지고 읽기 때문에 생긴다. 주석가들은 세계의 사건들과 요한계시록의 상징들을 대응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설교가들은 그 수가 666인 땅으로부터 나온 짐승을 히틀러나 스탈린 혹은 교황과 후세인 등으로 생각하며 계시록의 사건들을 공산 혁명이나, 원자폭탄, 이스라엘 국가재건, 걸프전쟁, 유럽연합 등과 관련시켜 해석해왔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수많은 예언가들이 계시록으로부터 계산을 통해 세계 종말의 정확한 일자를 예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해석을 더욱더 어렵게 했다.3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성경이 쓰여진 시대의 특정한 역사와 사상과 문화적 배경을 담고 있지만 모든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 진리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이 쓰여진 “그때 그장소”에서 말씀을 연구하여 “지금 여기”에 적용시키는 작업을 함께 해야만 한다.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에도 이 책이 쓰여질 당시의 역사적,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여 해석한 후에 이것을 지금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는 말씀을 성취하는 길이다.



Ⅱ. 저자 문제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1:4, 11). 저자는 자신을 단지 요한으로 밝힌다(1:1, 4, 9; 22:8). 전통적으로는 사도요한을 본서의 기록자로 보았다. 그러나 3세기 때, 디오니시우스로부터 저자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어왔다.4


A. 요한계시록 저자로 거론되는 인물

 1. 세베대의 아들 사도 요한

 2. 장로 요한5 : 사도 요한이 에베소6에 살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서만 성립된다.

              (파피아스7의 두 요한에 대한 언급에 기초)

 3. 유대 기독교인 예언자 요한 : 찰스8가 만들어낸 가공인물이다.

 4. 요한 마가 : 요한 마가가 바울과 함께 아시아에 간 적이 없다.

 5. 익명 : 계시록의 문제 해결보다는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B. 사도 요한 저작설에 대한 의심의 근거와 그에 대한 반론

 1. 비문법적 요소

    요한계시록에는 헬라어 문법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계시록의 언어는 구약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문법이나 용어에 셈어계의 색채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2. 비요한적 요소

    요한 서신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데 반해 계시록에는 주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또 기독론에서 복음서나 서신에는 계시자와 새롭게 하는 자로서 묘사된 데 반해 계시록에는 정복자 메시야로서 부각되고 있다. 종말론에서 복음서와 서신에는 현재적인 면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반해 계시록에는 미래적인 면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주제에 의한 강조점의 차이와 장르상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9


C. 사도 요한 저작설에 대한 근거

 1. 외증

  일찍이 주후 2세기에 순교자 저스틴과 이레니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트, 오리겐, 터툴리안, 히포투리스 등이 저자를 사도 요한으로 밝혔다. 저스틴은 2세기 초에 아직도 요한을 기억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일정 기간동안 에베소에 살았다. 이레니우스는 청년기에 아시아에서 폴리캅의 제자였고, 폴리캅은 요한의 제자였다.10


 2. 내증

  a. 사도적 권위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가 요한이란 이름만으로 그 신분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사도 요한 밖에 없다. 그는 소아시아의 교회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들에 대해 그가 기록한 편지를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일 정도로 그들에 대해 상당한 권위를 지닌 인물이었다.11


  b. 어휘적 유사성

  계시록과 다른 요한의 기록 사이에 신학적인 유사점은 물론이고 어휘적인 유사점까지 있다. 예를 들어 로고스 (lovgo")개념은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요한만의 것이다 (요 1:1, 계 19:13). 또 빛과 어두움, 진리와 거짓, 하나님의 권능과 이 땅의 능력 등에 대한 대조가 계시록과 요한의 다른 기록 사이에 똑같이 나타난다.12


  이러한 내증과 외증에 근거하여 요한계시록의 자자는 세베대의 아들 사도 요한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Ⅲ. 기록 연대와 장소


A. 기록 연대

  계시록은 핍박이 임할 때 기록되었다(계 2:10, 13). 계시록은 짐승의 모습에서 로마제국에 종속된 백성들이 황제를 신으로 숭배할 것이 예상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황제숭배에 참여하는 것을 거절하는 행위는 정치적인 불충을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박해가 언제 일어났는지를 연구하면 계시록이 언제 기록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 요한계시록 기록연대로 거론되는 시기

  a. 네로 통치 시기(54-68)

  계 11:1~2에는 성전이 아직 있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본문이 에스겔 40장의 영적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성전이 무너지기 전인 네로 통치 때 기록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네로 통치 말기(64년)에 로마의 대화재에 대한 책임을 신자들에게 뒤집어씌운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계 13:15을 보면 당시에 황제숭배 같은 것이 왕성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역사적으로 볼 때 이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의 일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


  b. 베스파시아누스(A.D. 69~79) 또는 티투스(A.D. 79~81) 통치 시기

  계 17:10에 나타난 7왕의 언급을 근거로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황제숭배에 대한 강요가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c. 도미티아누스 통치 시기(A.D. 81~96)

  황제숭배를 강요했던 시기였고, 로마의 역사가인 플리니에 의하면 A.D. 92년에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이 심했다고 한다. 또한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도미티아누스는 세금을 엄격하게 부과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의 신분이 조사를 받게 되고 기독교인들이 로마에 정치적인 충성을 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박해를 가했다. 이 시기는 계시록에 묘사된 상황과 가장 잘 일치한다.13 또한 이 견해는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유세비우스 등의 증언을 가지고 있다.


  여러 역사적 정황과 증거로 볼 때, 본서의 저작시기는 도키디아누스 통치시기인 A.D. 81~96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B. 기록 장소

  계 1:9에 저자가 밧모섬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저자는 그곳에서 본서를 기록하였거나 혹은 그 후에 에베소에서 그것을 기록하였을 것이다. 밧모섬은 소아시아 반도에서 약간 떨어진 에게해의 작은 바위섬으로서, 그곳에는 로마의 형무소가 있었으며, 로마는 정치범들을 이곳에 보내어 감옥에 수감하거나 혹은 광산에서 강제노동을 시켰다.14



 



Ⅳ. 기록 목적 및 주제


A. 기록 목적

 1. 책망과 경고

  계시록은 오늘날 서부 터키의 일부인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주어진 말씀이다(1:4, 11). 각 교회는 교회의 상태에 따라서 책망과 경고를 받는다.(2:1-3:22). 이러한 책망과 경고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환난의 때에 그들의 신앙을 굳건히 지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2. 위로와 격려

  일부 신자들은 이미 핍박을 받았고 (1:9, 2:9, 13; 3:9), 더 많은 핍박이 다가오고 있다(2:10; 13:7-10). 로마관리들은 황제를 숭배하도록 신자들을 강요하려고 한다. 이단적인 가르침들과 식어가는 열정은 신자들을 이교사회와 타협하도록 유혹한다(2:2, 4, 14-15, 20-24; 3:1-2, 15, 17). 이러한 환란의 시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다.


 3. 약속과 승리

  계시록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상태를 알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모든 유혹을 대항하도록 굳게 서라고 촉구한다. 신자들의 승리는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보증되었다(5:9-10; 12:11). 그리스도는 사탄과 그의 모든 집행자들을 패배시키기 위해서 곧 재림하실 것이며(19:11-20:10), 그의 백성은 그의 앞에서 영원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7:15-17; 21:3-4).15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치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를 완성하실 것이다.”16라는 확실한 약속과 이미 예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는 승리의 선포로서 성도들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의 나라에 대한 소망과 그에 대한 사랑을 더욱 굳게 할 것이다.


B. 주제

  계시록의 주된 주제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치하신다는 사실과 그가 역사를 그리스도 안에서 그 완성에 도달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17

  

  1. 하나님

     하나님은 역사의 전과정을 통제하시고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반역을 심판하신다.


  2. 경배(1:12-20; 4:1-5:14; 7:9-17; 8:3-5; 11:16-19; 12:10-12; 14:1-7; 15:2-8; 16:5-7; 19:1-10; 20:4-6; 21:1-22:5)

     계시록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속성과 역사의 경이를 보여줌으로써 경외함, 경건한 두려움, 찬양, 믿음과 순종으로 반응할 것을 촉구한다.


  3. 어린양

     역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오직 어린양을 통해서 성취될 수 있다(5:1-10).


  4. 이상들(1:12-22:5)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상징적인 양식은 1세기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5. 신현현(하나님의 나타나심)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1:12-16절에서 나타나실 때 나타난다. 그는 이 시대의 마지막에, 곧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결정적으로 나타난다.


  6. 영적인 전쟁

    하나님과 그의 집행자들은 사탄과 그의 집행자들을 대항하여 싸운다. 인류는 이 전쟁 가운데 놓여 있다. 계시록은 세속주의, 거짓 종교 등과의 싸움에 대한 무기(대안)를 제공한다.


  7. 양극의 대조들 : 순결과 부패함, 아름다움과 추함, 진리와 거짓됨.

    계시록은 현재 존재하는 상황들이 고통스러우며 좌절할 만큼 혼돈의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2-3장). 그러나 이러한 혼돈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질서를 잡고 새롭게 될 것이다.


  8. 증거와 순교

    요한은 “그가 본 모든 것을 증거한다”(1:2).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1:2). 예수님은 특별하고 탁월한 의미에서 “신실한 증인”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 때문에 순교를 당하였다. 신자들도 같은 운명을 당할 수 있다.


  9. 상급과 심판

    하나님은 반역자들을 심판하고 그의 충성된 추종자들에게 상급을 주신다.18



Ⅴ. 수신자 문제

  그리스도는 계시록 2-3장에서 필요에 따라 권면, 책망, 권고와 약속으로 각 교회를 대하신다. 그는 교회들의 상태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내가 안다”). 각 메시지는 교회들이 처한 환경이나 도시의 형편들에 대한 암시들을 포함한다. 동시에 모든 교회들은 약속들이 천상의 예루살렘에서 성취될 때까지 충성하고 인내하라는 보편적인 소명을 받는다.

  계시록 2-3장에 언급된 교회들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 일곱이다. 일곱 교회는 그 당시와 우리 시대의 모든 교회를 대표한다. 사실, 이들 교회들의 승리와 실패와 투쟁들은 역사의 전반에 걸쳐서 우리가 모든 교회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일종의 소형목록이다. (일부 해석가들은 일곱 교회들을 교회역사의 일곱 시대에 할당했다. 계시록은 이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관점에 따르면 모든 교회들이 다 동일하게 건강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성실함과 나태함, 그리고 자만함 또는 거짓 교리의 허용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고 어떻게 심판을 받느냐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교회상황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신실하게 반응하려면 이와 같이 성령과 일곱교회의 본보기들로 조명 받은 그리스도의 분별력이 필요하다.19

일곱교회에 보낸 편지20

     교회

구분

에베소

(2:1-7)

서머나

(2:8-11)

버가모

(2:12-17)

두아디라

(2:18-29)

사데

(3:1-6)

빌라델비아

(3:7-13)

라오디게아

(3:14-22)

이름의 뜻

인내

유향

성채(요새)

성읍, 희생

남은 물건

형제우애

정의

그리스도의 모습

통치하시는 주님

부활하신 주님

전쟁하시는 주님

심판하시는 주님

전능하신 주님

권위를 가지신 주님

신성을 가지신 주님

칭찬

정통

인내

충성

근면

소수의 순결

인내

없음

책망

처음 사랑을 버림

없음

거짓교훈

불충성

영적 죽음

없음

미지근함

권면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죽도록 충성하라

회개하라

회개하고 굳게 잡으라

받고 들은대로 지키어 회개하라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

영적 수치를 깨닫고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약속

낙원의 생명나무의 과실

생명의 면류관, 둘째 사망의 해를 면함

감추었던 만나와 새이름이 새겨진 흰돌

만국을 다시리는 권세, 새벽별

흰옷을 입음, 아버지와 천사 앞에서 그 이름을 시인함

성전의 기둥이 되고 새 예루살렘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 위에 기록

보좌에 함께 앉게 함

특징

정통적, 하나님과 교제 소홀

가난하나 부요함

세속과 결탁

악한 여선지자의 교회

죽은 교회

연약하나 충성됨

부요하다 하나 가난함


  “교회의 사자들”은 누구인가?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단지 “심부름꾼(messenger)" 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문서를 교회들에게 친히 전달한 배달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메시지 전달자로서 역할을 하는 교회들의 목회자들을 지시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계시록의 이상적인 문맥은 이 표현이 실제 천사들을 염두에 둔 것임을 시사한다. 다니엘 10:12-11;:1절에서 하늘의 ”대군들“이 구체적인 나라들과 관련된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특정한 천사들은 특정한 교회들과 관련하여 분명하게 임무를 부여받았다.21



Ⅵ. 문학적 특징


A. 장르적 특징

 1. 서신서

  발신자와 수신자, 인사말(1:4-6), 본문, 추신(22:21) 등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서신은 의도된 수신자들의 특별한 필요나 구체적인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다. 요한계시록이 서신이라는 점은 요한계시록이 수신자들의 역사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관심이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에는 바울, 요한, 베드로의 서신을 읽을 때 중점을 두었던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관심과 의문들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22


 2. 예언서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자신의 문서를 예언이라고 언급한다(1:3). 요한은 여기에서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를 말한다. 즉, 요한계시록이 예언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예언자들의 글과 말처럼 독자들을 훈계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용기를 주기 위한 책이다. 이것은 회개, 순종, 신실함, 인내를 요구한다. 요한계시록은 해독의 대상이 아니라 듣고 순종해야 할 선포이다.23


 3. 묵시서

  주전 200년부터 주후 400년 기간 동안에 다양한 “묵시적인” 글들이 출현했다. 그것들 가운데는 쿰란에서 나온 전쟁 두루마리, 모세의 승천서, 에녹 1-3서, 바룩 2-3서, 에스라 4서, 베드로의 묵시록, 바울의 묵시록, 도마의 묵시록과 이사야의 승천서가 있다. 성경 내의 묵시적인 책들은 민수기 23-23장, 다니엘서, 에스겔서, 이사야 24-27장, 데살로니가전서 4-5장, 데살로니가후서 1-2장, 감람산 종말강화(마 24장; 막 13장; 눅 21장)와 계시록이다.24

  요한계시록은 현대 학자들이 묵시문학이라고 부르는 고대(기원전 200년에서 기원후 200년) 유대교와 유대 그리스도교 문학의 한 장르에 속한다. 폭로나 계시를 의미하는 헬라어 아포칼립시스(ajpokavluyi")는 요한계시록의 서두(1:1)에 나오며 ‘계시(Revelation)’로 번역되었다.

  요한이 본서를 묵시적으로 기록한 이유는 이교를 상대로 하여 생사를 건 결전을 벌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준비시키려는 자기의 의도를 로마 세계가 알 수 없도록 감추고자 했던 것이다.25 오늘날 우리에게 정치 풍자만화와 같이, 수신자들은 저자가  그들에게 익숙한 “묵시적인”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이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했다.26

  묵시는 대체로 1인칭 산문체로 된 내러티브다. 화자는 환상이나 여행을 통해 받은 하늘에 대한 계시들을 내러티브로 기록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일반적인 묵시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갖는다.


   1) 익명성

  일반적인 묵시문학이 책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또는 동시대의 사건을 예언으로 가장하기 위해서 과거의 권위있는 인물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요한계시록은 저자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다(1:9).27  이는 요한이 수신인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의 증언이 확실하다는 신뢰감을 더하게 한다.



  2) 구약성서의 인용

  계시록은 348개의 간단한 구약 인용과 암시에 기초하고 있다. 헬라 성경에는 이러한 인용들이 고딕체로 되어 있어서 더욱 확실하게 이를 느끼도록 해준다. 신약의 마지막 책이 구약의 교리적 내용들 위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은 깊은 의미를 가진다. 계시록은 성경의 통일성과 아울러 하나님의 계시의 진전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는 창세기의 처음 장들이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계시록의 마지막 장이 새하늘과 새땅의 창조를 기록하고 있음을 볼 때 가장 생생하게 드러난다.28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의 비교29

창세기 1-3장

요한계시록 20-23장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

또 내가 새하늘과 새땅을 보니(21:1)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1:5)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21:25)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1:16)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21:23)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2:17)

다시 사망이 없고(21:4)

사탄이 인간을 속이는 자로 등장(3:1)

사탄이 영원히 사라짐(20:10)

가증한 것이 들어온 에덴동산(3:6-7)

가증한 것들이 그리로 들어오지 못함(21:27)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중단됨(3:8-10)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다시 시작됨(21:3)

최초로 승리한 뱀(3:13)

어린양의 최후의 승리(20:10; 22:3)

내가 네게 고통을 더하리니(3:16)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21:4)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3:17)

다시 저주가 없으며(22:3)

첫사람 아담으로 인간의 지배권이 깨어짐(3:19)

새사람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서 인간의 지배권이 회복됨(22:5)

첫 낙원이 닫힘(3:23)

새 낙원이 열림(21:25)

아담으로부터 생명나무로 갈 수 있는 길이 박탈당함(3:24)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나무로 나아갈 수 있음(22:14)

하나님 앞에서 쫓겨남(3: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22:4)



Ⅶ. 신학적 특징

A. 신론

  요한은 하나님에 대한 호칭으로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계 1:6), 유일한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계 7:11, 12; 11:16-18; 19:4, 10; 22:9)을 언급하고 있다. 요한은 로마의 황제들이 모든 신민들의 예배를 강요하고 있던 시대에 살면서도 그의 저술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가장 강조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계 1:8; 4:8; 11:17; 15:3; 16:7; 19:6,15; 21:22), 거룩하신 하나님(계 4:8; 6:10), 의로우신 하나님(계 15:3; 19:2)을 언급하면서 창조의 하나님(계 4:11)을 말하고 있다. 성경의 가장 놀라운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창조의 광경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21:2).


B. 기독론

 1. 말씀(lovgo")이신 예수님(계 19:13)

  요한복음 1:1에서 ‘태초부터 계신 말씀’으로 표현된 예수님은 요한일서 1:1에서는 ‘생명의 말씀’으로, 계시록 19:13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의 말씀(lovgo")이 육신이 되어 생명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면 육신에 말씀(lovgo")이 들어가 생명을 얻게 된 존재가 인간이다. 예수님과 인간은 바로 이 말씀(lovgo")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요1:7).


 2.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계 2:18)

  요한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아들과 아버지의 동일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계2:18)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하나님께서는 신이라고 칭하셨다(요10:34-35).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이요, 신이다. 이는 ‘인자’라는 예수님의 칭호와도 관련된다.


 3. 인자이신 예수님(계 1:13; 14:14)

    계시록에는 1:13과 14:14에 인자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여기서의 ‘인자’는 요한복음에서의 '인자‘라는 용어와 다른 형태이다. 요한복음에서는 'The Son of Man'(oJ uiJo;" tou' ajnqrwvpou) 으로 관사를 사용하는데 계시록에서는 ’a son of man'(uiJo;" ajnqrwvpou)으로서 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30 인자는 성경에서 종말과 관련해서 예수님께 붙여졌던 칭호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인자는 마지막 때에 오실 ‘바로 그 분’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하신 용어이고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이 말한 인자는 마지막 때에 부활하여 새로운 육체를 입고 신의 존재가 된 사람들의 대표로서 예수님을 가리켜 사용한 용어이다.


 4. 메시아이신 예수님(계 1:1, 2, 5)

  요한은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메시야라는 칭호로 부른다.

  

 5. 빛이신 예수님(계 21:23-24; 22:5)

  요한은 요한복음에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빛으로 묘사한다. 이 빛은 창세기 1:3의 빛을 의미하며 모든 빛의 근원이며 만물의 에너지원으로서의 빛을 말한다.

  

 6.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계 5:6-13; 7:9, 10, 14; 12:10; 13:8; 14:1; 15:3; 17:4; 19:9; 21:9-14, 22-27; 22:1-5)

  요한은 계시록에서 ‘어린양’이라는 용어를 스물아홉 번이나 사용하였다. 요한은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피를 흘림으로써, 사람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렸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예수님의 메시아적 위치를 더욱 강하게 독자들에게 심어주고자 한 것이다.31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바꾼 존재들이기에 우리의 구원은 확실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7.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계 1:18; 2:7, 10; 3:6; 13:8; 20:4, 5; 21:6, 27; 22:1-5, 14, 17)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영원히 살아있음을 말씀하신다(계 1:18). 이 후에는 계시록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도들의 부활과 생명을 언급하면서 부활의 첫열매 되시는 예수님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8.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계 1:4, 5; 3:21; 6:16, 17)

  예수님께서 보좌에 앉으셨다는 것은 지상에서의 메시야 사역을 끝내고 세상의 모든 나라와 전우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9. 재림하시는 예수님(계 1:7; 2:25; 3:3, 11; 16:5; 22:7, 12, 20)

  예수님의 재림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구절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계시록 전체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말하고 있다.


C. 성령론(계 1:10; 2:7, 11, 17, 29; 3:6, 13, 22; 4:2; 14:13; 17:3; 21:10; 22:17)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계시록을 기록한다고 고백한다(계 1:10). 그리고 7개 교회에 보내는 책망과 위로의 메시지 각각의 마지막에 이 말씀이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언급한다(2:7, 11, 17, 29; 3:6, 13, 22). 또한 성령께서는 요한을 인도하여 곧 있을 일들을 보여주신다(4:2; 14:13; 17:3; 21:10; 22:17).


D. 인간론(죄론)

  계시록에서는 인간의 죄의 본질에 관하여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14:8에 음행으로 인해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바벨론은 하나님을 잊게 하는 이 세상의 사상, 문화 등을 말한다. 이러한 사상과 화려한 문화에 젖게 되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이는 곧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의 사상과 문화를 이기면 마지막 때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어 영원히 살게 된다(계 2:10, 11).


E. 구원론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그를 두려워하며(6:16, 17), 악의 세력에 쉽게 굴복하고(9:4; 13:3, 14; 17:8), 그들 자신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운명에 처해 있다(20:12, 13).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보장되어 있다(7:3). 하나님께 반항하고 그를 믿지 않는 자들은 불구덩이에 떨어질 운명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21:8),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의 시민이 된다(22:14).32


F. 교회론

  요한계시록은 1세기 말경의 교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이미 예언하셨던 대로 환난을 경험하고 있었다. 교회와 세상 사이의 대결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특히 2장-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의 모습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어떤 시험과 환난을 경험하게 되는지, 그 대안은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다.


G. 천사론(1:1, 2; 5:2, 7:1-3; 11-12; 8:2)

   천사는 요한에게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해 주는 사자로 나온다(계 1:1, 2). 천사들 사이에는 능력의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땅과 땅에 있는 것들을 주관하는 네 천사(계 7:1)가 있고 이 네 천사에게 지시를 전하는 천사(2절)가 있다. 이들의 임무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것이었다(3절). 천사들은 하나님과 어린양 앞에서 찬양하며 경배하기도 하며(7:11, 12), 성도들의 기도와 합한 향을 하나님께 드리기도 한다(8:3). 그 후에 천사들은 이 세상의 심판을 불러오는 일(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을 한다. 천사들은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거나 집행하는 역할을 한다.


H. 종말론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적인 강조점과 함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에 관련되어 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서신들은 미래에 초점을 두고 있다. 즉 각 교회들에 대한 최종적인 약속은 “내가 시행하리라”는 말로 시작되어 있으면 또한 앞으로 올 상이나 징벌에 대한 언급들이다(2:7, 10, 17, 28; 3:5, 12, 20). 또한 본서의 주요부분은 분명히 “이 후에 일어날 일들”을 다루고 있다.33

  계시록 20:4-6에는 천년왕국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천년왕국이란 순교당했다가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가 천년간 통치하심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악하고 한시적인 현재와 하나님의 지배를 받게 될 의롭고 영원한 미래 사이에 나타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시작된다.34 이 천년왕국에 대한 이해에 따라 다음과 학은 이론35들이 등장했다.


 1. 전천년설

  전천년설은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지상에 범세계적인 7년 대환란이 있으며 그후에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가시적으로 재림하셔서 땅 위에 문자적이고 가시적인 천년왕국을 건설해 직접 통치한다는 것이다.


 2. 후천년설

  후천년설이란 하나님의 나라가 복음전파와 성령의 구원 사역을 통해서 현재 전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세계는 결국 기독교화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은 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긴 시기 즉 천년왕국 말기에 있을 것이라고 보는 종말론적 견해이다.


 3. 무천년설

  무천년설주의자들은 문자적이고 가시적인 지상의 천년왕국은 없으며,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긴 기간, 즉 교회시대가 바로 천년왕국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무천년설"이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천녀왕국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문자적이고 가시적인 천녀왕국을 부인하는 것이지, 영적인 천녀왕국은 있다고 믿는다.



Ⅷ. 역사적 특징36


A. 역사적 배경

  본서의 배경은 주로 아시아의 로마제국 영토였던 아이오니아 연안의 도시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는 수많은 종파들이 범람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종파들은 모두 다 기독교회의 윤리와 신학에 적대감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 종파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기독교회의 비판과, 유일신교에 대한 기독교회의 강력한 주장은 기독교회가 내세웠던 엄격한 도덕규범과 함께 곧 기독교회에 대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또한 기독교회의 빠른 성장은 그 종파들의 재정상태를 위태로운 지경에 빠뜨렸는데, 이는 기독교회가 그 종파들에 속한 신도들을 흡수하고 이로써 우상 만드는 자들과 희생제물로 짐승들을 파는 자들의 생계수단을 박탈하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에 로마 황제들, 특히 네로(54~58)와 도미티아누스(81~96)는 그들 자신에게 신에 대한 경배와 다를 바 없는 경의를 표할 것을 모든 백성들에게 요구하였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들에게 그와 같은 경의를 표하기를 거절하였으며, 이러한 연고로 그들은 비로 실제로 위험한 자들로 간주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로마 제국과 황제에 대하여 불충한 자들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B. 사회적 배경

  기독교회에 가해진 압박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은 그들 자신의 독자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 자신의 입장을 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서의 저자는 분명히 그의 신앙으로 인해 옥에 갇혔는데, 본서가 온 로마제국에 만연해 있던 로마정부의 부패와 타락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본서에는 로마 정부의 모습이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계 17:6) 주홍빛과 자줏빛의 옷을 입고 있는 음녀로 묘사되어 있다. 본서에 기록된 예언들은 꼭 당시의 사건들에만 적용될 수는 없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은 분명히 당시의 사건들에 관계되어 있으며 또한 당시의 교회의 상황으로부터 이끌어낸 상징을 지니고 있다.


C. 종교적 배경

  기독교의 유대교로부터의 분리는 아마도 A.D. 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에 완결되었을 것이다. 율법의 준수와는 달리 믿음에 의한 의인화라는 교의는 정통 유대교 옹호자들과 기독교 신도들의 공동체 사이를 분리시켰고,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 남아있던 약간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고 말았다.

  한편 기독교회 자체에 있어서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서신들 속에 반영되어 있는 바와 같이 퇴락의 조짐들이 있었다. 기독교회 안에 타오르던 초기의 열심은 식어버렸으며, 부도덕한 생활과 이교적인 사고가 가르치는 자들과 회중들 모두에게 똑같이 스며들어 있었고 방종함이 날로 늘어만 갔다. 본서에서 저자는 이 시대의 긴박성을 예고하고 본서의 독자들에게 심판 가운데 도래하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권면함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열심을 다시 부활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Ⅸ. 기타 사항 (번 포이쓰레스, 『요한계시록 맥잡기』를 요약발췌하였음.)


A.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주의할 점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겸손해야 한다.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며 지금까지 알고 있는 성경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다른 성경과 마찬가지로 계시록의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계시록의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계시록으로부터 영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록을 주신 것은 우리의 공상을 만족시키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하기 위함이다.37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종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주어졌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특정한 사람만 알 수 있는 비밀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명료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계시록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계시록을 그릇된 목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계시록의 상징적인 단어나 숫자에 집착하다 보면 계시록의 큰 그림을 무시하게 된다. 계시록은 일종의 그림책이지 수수께끼 책이 아니다.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고, 성도들에게 갈채를 보내며, 짐승을 증오하고, 마지막 승리를 사모해야 한다.38

  요한계시록은 먼저 1세기에, 로마의 박해 하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이해하고 전체적인 주제를 잡아 나가면서 읽어야 여러 가지 오류를 피할 수 있다.


B. 큰 그림(주제)을 가지고 해석하기

  우리는 계시록의 중요한 주제들 중의 하나인 영적인 전쟁의 주제를 가지고 계시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예를 들 수 있다. 악의 세력들의 우두머리인 사탄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하여 싸우나,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궁극적으로 패배를 당한다.39

  계시록 12:3절에서 용과 계시록 13:1-8절에 묘사된 짐승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짐승은 놀랍게도 용과 흡사하다. 사실 그는 용의 한 형상이다.


사탄의 형상과 보조자인 짐승40

사탄(12:3)

보조자(13:1)

모형

짐승

짐승

일곱머리

일곱머리

열 뿔

열 뿔

머리들 위의 면류관들

머리들 위의 면류관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 1:27). 용은 사탄의 한 그림으로(계 12:9) 하나님께서 창세기 1:27절에서 하신 것을 계시록 13:1절에서 흉내낸다.41


  골로새서 1:15-16절에서 따르면 심지어 만물의 창조 전에 삼위 하나님의 제2위인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이는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에 모방의 관계를 본받고 있다.


  사탄은 모방자이다. 그는 거짓된 아들, 짐승을 만듦으로써 성자 하나님을 흉내낸다. 짐승은 분명히 아들 그리스도의 모조품이다. 사탄은 하나님이 되고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통제하기를 열망한다. 사탄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유사한 계획을 가진다. 사탄은 그의 집행자 짐승을 통하여 이 계획을 실현할 것이다. 42


그리스도의 위조품 짐승43

 

짐승

그리스도

면류관들

13:1

19:11-12

이름

13;1

19:11-13, 16

능력

13:2

12:5, 10

부활

13:3, 12 (~처럼)

행 2:32, 눅 24:6 (실재(

경배

13:4, 8

1:6

찬양

13:4

출 15:3, 11이하

13:16

7:3, 14:1

만국의 충성

13:7이하

5:9


  계시록 13:11-18절에는 성령의 모조품도 나온다. 여기에 보면 땅에서 나오는 다른 짐승이 언급되었다(13:11). 이 짐승은 나중에 “거짓 선지자”로 밝혀진다(16:13). 거짓 선지자가 행하는 기적적인 표적들(13:13)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과 같이 성령이 행하신 기적적인 표적들을 상기시킨다. 기적적인 표적들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경배하도록 사람들을 이끄셨다. 이와 유사하게 거짓 선지자는 짐승의 경배를 장려한다(13:12). “다른 보혜사”로서 성령은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진다(요 14:16, 18). 유사하게 거짓 선지자는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한다”(계 13:12).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신다(요16:13). 거짓 선지자는 속인다(계 13:14).

  그러므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일종의 위조된 삼위일체를 형성한다. 그들은 마지막 전쟁을 위해서 백성들을 동원하여 조직할 때 삼인조로 함께 연결되어 있다(계 16:13).44


위조된 삼위일체45

원형

위조

기능

아버지

창작하고 계획한다.

성자 그리스도

짐승

집행한다.

증인으로서의 성령

거짓 선지자

증거하고, 선전한다.


  우리는 계시록에서 흉내내기의 또 하나 다른 양식을 연급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탄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로 구성된 부정한 삼위일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이루어진 거룩한 삼위일체를 흉내내고 있음을 보았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들은 계시록 19:7-9절에서 어린양의 순결한 신부로 묘사된다. 신부를 모조한 형상은 계시록 17-18장의 음녀이다. 음녀의 부패성과 부도덕성은 신부의 순결성과 대조된다. 음녀의 몰락은 신부가 나타나는 계기가 된다(19:1-6). 신부는 참된 경배자이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을 대표하기 때문에 우리는 음녀가 거짓 경배자, 위조된 교회를 대표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사탄은 속임수와 교리의 혼잡을 통하여 교회를 직접적으로 공격한다. 그는 교회를 진리로부터 떠나게 하려고 애쓴다(12:15). 하지만 그는 역시 짐승과 음녀의 모양으로 그의 부하들을 일으켜 교회를 공격하게 만든다. 짐승은 국가권력을 대표하고 그것을 숭배하지 않는 자들을 박해하려고 위협한다. 그것은 위협과 고통과 죽음을 통해 신자들이 우상에게 굴복하도록 공포를 조성하려고 한다.(강압책, 채찍) 그것은 만일 당신이 굴복하지 않으면 일어날 일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러한 경향을 일반화하여 우리가 인간의 조롱이든, 육체적인 고통이든, 빈곤이든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경배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의 치유책은 사람과 대립적인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이다.

  그러나 사탄은 다른 방식의 공격도 한다(회유책, 당근). 음녀는 섹스와 돈과 쾌락을 대표한다. 협박과 두려움 대신에 음녀는 유혹과 쾌락의 매력을 이용한다. 이것의 치유책은 새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면전에 있고자 하는 욕망이다(계 22:4).46


두 가지 양식의 반대에 대응하는 방법47

교회의 사명

반대

반응

빛을 지닌 증거

짐승의 핍박하는 권세

인내(13:10)

처녀의 순결성

음녀의 유혹적인 사치품

분리(18:4)


흉내내기에서 배우는 교훈들48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거나 그를 대적한다.

사탄은 단지 하나님을 모방할 수 있을 뿐이다(고후 11:13-14)

모조품을 믿을 위험이 있다.

사탄은 창조자가 아니다.

우리는 모조품의 혐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추종자들에 대한 적절한 심판은 짐승 아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을 지배하신다(욥 1-2장, 시 76:10, 롬 8:28).


C. 해석의 학파들

  해석가들은 6:1-18:24절에 기록된 이상들이 성취되는 시기와 방식에 관하여 의견을 달리한다. 네 가지 주요 접근 방식 혹은 해서학파들은 수세기 동안 발전해왔다. 과거주의자들은 그 성취가 예루살렘의 멸망 때와 로마 제국의 멸망 때 혹은 로마 제국의 멸망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래주의자들은 성취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마지막 위기 때에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주의자들은 1세기부터 재림까지 교회사의 과정에 대한 연대기적인 기본적인 개요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이상주의자들은 계시록의 장면들이 구체적인 사건들보다는 영적인 전쟁의 원리들을 묘사하는 것으로 본다. 이들 원리들은 교회시대 전 기간동안 적용되고, 반복된 구현을 가질 수 있다.


계시록의 해석방법49

해석학파

성취의 시기

1-3장

4-19장

20-22장

과거주의자

(로마제국의 멸망까지)

                  

 

역사적 교회

현상황의 상징

하늘과 승리의 상징

미래주의자

(마지막 위기 중에)

                  

 

역사적 교회 또는 교회사의 7단계

미래의 고난,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교회의 배교에 대한 심판에 집중 :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 사악한 자는 심판을 받아서 죽음 : 영원한 도성

역사주의자

(교회역사 전기간 동안)

                  

 

역사적 교회

역사사건을 상징 : 로마의 함락, 회교의 성행, 교황권의 타락, 종교개혁

최후의 심판, 천년왕국, 영원한 도성

이상주의자

(반복된 모형 속에)

                  

 

역사적 교회

선과 악의 갈등을 상징

선의 승리


  우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계시록 13:1-8절을 해석하는지 고찰함으로써 해석학파들의 차이점을 예증할 수 있다. 짐승의 이미지는 언제 어떻게 성취되는가? 과거주의자들은 짐승 속에서 로마황제에 의한 기독교인들의 박해를 본다. 미래주의자들은 미래의 적그리스도, 곧 데사로니가후서 2:3-12절에 묘사된 불법의 사람을 본다. 역사주의자들은 종교개혁자들을 박해한 교황을 여기서 발견한다. (그러나 일부 로마 카톨릭 역사주의자들은 마틴 루터가 묘사되었다고 말하곤 한다!) 이상주의자들은 언제 어디에서든지 기독교인들을 위협하는 국가와 그 박해하는 권력을 생각한다.50


  이러한 견해들의 결합은 아마도 진리에 가장 가깝다. 계시록에서 상징적인 표현은 다중적인 측면을 가지며 원리상 다중구현이 가능하다. 이상주의자들은 일반적인 원리들이 표현되었다고 주장한다. 만일 그렇다면, 이들 원리들은 1세기의 일곱 교회들과 그들의 고통에 구체적인 적합성을 가졌다(1:4). 원리들은 또한 재림의 마지막 위기에 결정적으로 표현될 것이다(22:20). 우리 자신들은 동일한 영적인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원리들은 우리들 자신과 우리의 시대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많은 구절들은 적어도 세 개의 주된 적용, 다시 말해서 1세기, 마지막 위기, 우리가 처해 있는 시대에 각각 적용된다.51

  1. 이상주의로부터 얻는 통찰 : 성취의 반복된 유형

  - 계시록은 “그의 종들”(1:1; 22:6)에게 주어졌다. 이로써 모든 장소와 모든 시대의 모든 신자들을 포함한다(22:18).

  - 2-3장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들은 모든 곳에 있는 모든 교회를 대표한다.52


  2. 미래주의로부터 얻는 통찰 : 마지막 위기 때의 성취

  - 어린양의 혼인 만찬에서 축하(19:6-9)와 마지막 전투를 치르기 위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19:11-21)은 틀림없이 재림을 가리킨다.

  - 21:1-22:5절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상은 재림의 다른 편에 있는 완전함을 보여준다.

  - 1:3절에 언급된 “때”는 22:10-12절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때이다.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다”는 1:7은 재림을 묘사한다.

  -“그렇다, 내가 곧 오리라”는 마지막 약속(22:20)은 재림을 가리킨다.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란 경배의 반응(22:20)은 원래 아람어로 (마라나타, Marana tha) 초대교회의 기도 “오소서, 오 주여”를 반영한다(고전 16:22).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주님의 만찬에서 그들과 교제하기 위해서 일반적인 의미로 “오실 수도” 있고, 예루살렘의 멸망 때와 같이 불신에 대한 심판을 행하기 위해서 “오실 수도” 있는 것을 알았다(눅 21:20-24). 그러나 우리는 이 기도에서 가장 흥분되고, 결정적이며, 모든 것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그의 재림에 대한 언급을 배제시킬 수 없다(살전 4:13-5:11). 재림은 초대교회의 가장 큰 소망이었고, 1세기 신자들은 이 소망을 염두에 두고 계시록을 읽었을 것이다.53


  3. 과거주의로부터 얻는 통찰 : 로마제국에서 성취

  과거주의적인 해석의 가장 강력한 증거는 계시록과 일곱 교회들의 상황과의 연결에 있다. 2-3장에 등장하는 모든 메시지는 도시 내의 더 넓은 환란에 대한 미묘한 암시와 1세기 교회상황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포함한다.

 - 계시록은 묵시문서다 묵시문서는 먼 미래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당대의 시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많은 묵시문서들은 먼 미래에 대한 예언을 포함한다.

 - 때가 가깝다(1:1, 3; 22:10)

  그리스도의 오심은 가까울 수도 있고, 곧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은 가능성의 진술이 아니라, 확신에 찬 주장을 제공한다.54


  4. 역사주의로부터 얻는 통찰 : 성취는 교회역사 전반에 나란히 펼쳐있다55

 이것은 시간의 선을 계시록 2-3장에 언급한 1세기부터 19:11-21절에 나오는 재림까지 늘어뜨리고, 그 사이에 있는 이상들을 세계역사의 사건들과 연결하려고 시도한다. 계시록의 이상들은 단순히 연대기적이 아니고 주제적이다. 그러므로 역사주의 접근은 그것이 엄격한 연대기적인 순서를 가정하는 한 포기되어야 한다.


 D. 해석학파의 통찰들을 통합하기

  역사주의 학파를 제외하고 모든 학파들은 상당한 장점을 가진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가 이것들을 통합할 수 있는가? 만일 우리가 이상주의 접근법으로 출발한다면, 이것들이 어떻게 통합되는지 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계시록에 있는 이미지들은 다중적인 성취를 즐긴다. 이것들은 일반적인 유형을 구현하기 때문에 그렇다 미래주의를 지지하는 논쟁들은 계시록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직전에 있는 마지막 위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준다(살후 2:1-12 참고). 그러나 마지막 위기 때의 성취는 일반적인 유형과 마지막 위기 때의 그 유형의 구체적인 구현을 모두 가진다.

  이와 같이 과거주의를 지지하는 논쟁들은 계시록이 일곱 교회와 그들의 역사적인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상징들은 1세기 때 구체적인 구현을 가지며, 우리는 이 사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교회역사 속 어딘가에, 다시 말해서, 계시록이 적용되는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 어딘가에 있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오늘 우리들의 상황에 적용해야 한다. 이것은 역사주의 접근 속에 약간의 진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계시록의 주요 상징들은 하나의 반복된 유형을 제시한다. 이 유형은 일곱 교회들은 1세기 상황 속에 실현을 가진다. 우리는 계시록의 교훈들을 우리가 처해있는 곳에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적인 구현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56


Ⅹ. 내용 분해

A. 요한계시록의 전체 구조

    계 1:19에 근거하여 본서의 전체구조를 나누면 다음과 같다.57

 

  1. 머리말(1:1-8) : 계시자, 기록자, 축복, 인사

  2. 과거계시(1:9-20) : 요한의 환경, 요한이 받은 명령, 인자의 환상

  3. 현재계시(2:1-3:22) :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4. 미래계시(4:1-22:5) :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심판, 일곱 사건

  5. 맺는말(22:6-21)


B.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심판

  일곱 번째 봉인은 나중에 나오는 일곱 나팔 심판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또 일곱 번째 나팔은 나중에 나오는 일곱 대접 심판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즉, 일곱 번째 봉인은 일곱 나팔 심판을 포함하고, 일곱 번째 나팔은 일곱 대접 심판을 포함하는 구조이다. 이 심판 후에 그리스도의 재림, 아마겟돈 전쟁, 사단의 결박, 천년왕국, 마지막 사단의 활동, 흰 보좌 심판으로 이어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함으로써 영원의 시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C.‘교회의 최후 승리’를 주제로 한 요한계시록 분해


  1. 1:1-3:22 교회의 최후 승리를 위한 준비


  2. 4:1 - 22:5 교회의 최후 승리를 확인하는 싸움


  3. 22:6 - 22:21 교회의 최후 승리에 대한 약속





 


Ⅺ. 참고문헌

도날드 거쓰리,『신약개론』.나용화, 박영호 공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8.

레이몬드 E. 브라운, 『신약개론』. 김근수, 이은순 공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3.

번 포이쓰레스, 『요한계시록 맥잡기』. 유상섭 역. 서울: 크리스찬 출판사. 2002

브루스 윌킨슨 외, 『한눈에 보는 성경』. 정인홍, 곽철호 공역. 서울: 디모데. 1999.

성종현. 『신약성경연구』.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94.

신성종. 『신약총론』.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77.

체스터 레만, 『성경신학Ⅱ』. 김인환 역. 서울: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1994.

F. F. 브루스, 『신약사』. 나용화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78.

H. 웨인 하우스, 『차트 신약』. 박용성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1.

P. J. 악트마이어 외,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소기천, 윤철원, 이달 공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기독교대백과사전』. 서울: 기독교문사. 1984

조용기 편저. 『은혜로운 주해성경』. 서울: 서울말씀사. 2002.

 

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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