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요한계시록

하나님아들 2014. 3. 25. 18:08

 

 

 

                          요한계시록

 

           

 

              신구약 성경의 맨 마지막에 있는 이 책은 난해한 여러 가지 상징들로 인해

              어렵게만 느껴지고, 시대마다 바뀌는 해석들로 인해 자칫 가까이해서는

              안될 책처럼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이 처음부터 박해 아래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쓰여졌으며, 다양한 등장인물과 사건만큼이나

              다양하게 성경 전체에서 등장하는 영적 진리들을 재 진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시대적 배경

 

티투스 황제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도미티아누스(A. D 81-96)는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에 대해 병적인 집착을 가지고 사상 유례 없는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평소 기독교의 성장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모든 종교 단체와 부유층과 권력자들로 하여금 박해에 앞장서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로마제국 내 어디에나 기독교인들이 밀고자의 눈을 피해 숨을 곳은 없었고, 체포되는 데로 극형에 처해지거나 사람이 살지 않은 곳으로 유배되거나 했다. 세상의 종말을 경고하던 기독교가 오히려 종말을 고하는 것 같이 보였다. 신자들은 이제 환난보다 더 큰 영생과, 핍박자 보다 더 크신 심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다시 한번 확신할 필요가 있었다. 이 책은 이런 상황에서 쓰여진 것이다.

 

책의 배경 

 

저자와 기록 연대와 장소, 문학 양식

 

이 책은 사도 요한에 의해 아마도 A. D 95-96년경 밧모 섬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저자가 요한이라는 것은 자신의 이름에 별다른 수식을 넣지 않고 다만 “그 종 요한”(1:1) 혹은 “너희 형제 나 요한”(1:9), “나 요한”(22:8)이라고만 지칭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로서 사도 요한 밖에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요한복음과 요한의 서신들에 나오는 신학 사상들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는 어린 양, 태초 이전부터 계신 그리스도, 사단의 활동, 성도의 최후 승리 - 이 자주 발견되기 때문에 요한을 저자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 책이 요한복음과 서신들에서 사용된 문체와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의 묵시문학적 성격상 상징 언어를 자주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 대부분의 교부들 - 순교자 저스틴,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 이 요한을 이 책의 저자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네로 황제의 박해시기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2장과 3장에서 소아시아의 교회들이 쇠퇴기에 접어든 것 같이 보이며, 사도 요한이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직전에 에베소로 옮겨간 것 같으므로 A.D. 68년에 죽은 네로의 박해 때로 보는 것보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다.  

 기록 장소는 몇 가지 이유에서 밧모 섬이 틀림없다. 첫째로, 그는 밧모 섬에서 계시를 받았으며(1:9), 둘째로,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기록하기를 지체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장소에서 기록했을 가능성이 적다(10:4, 14:13, 21:5).

 

 그리고 이 책의 문학 양식은 서신이자, 묵시문학이면서 예언서이다. 그 이유로서는 첫째, 1-3장은 발신인과 수신인, 인사말, 기도, 본문, 맺는 말로 구성된 전형적인 서신들이다.

둘째, 묵시문학의 중요한 요소들 - 장차 오는 심판과 구원과 종말을 다룸, 박해와 인내, 상징 언어의 사용, 시간적 순서에 따라 기록되지 않음 - 이 발견된다.

셋째, 교회를 바로잡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비하도록 주어진 예언이라는 점이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고전 14:3)에서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원 독자와 관련 이슈

 

이 책의 원 독자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의 일곱 도시에 있는 교회의 신자들이다(1:4, 2:1,8,12,18, 3:1,7,14). 그리고 당시 박해 아래에 있는 모든 신자들을 포함한다(1:3, 7:9, 19:9, 22:7,17). 이 책이 기독교 2000년의 역사를 통해 시대마다의 특정한 이슈와 어떻게 잘 들어맞든지 간에 일차적으로는 박해 아래 있던 요한 시대의 신자들을 위해 쓰여진 것은 틀림이 없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슈들이 발견된다.

 * 교회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의 최후

 * 환난과 영적 전쟁

 *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최후승리

 *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 성도의 궁극적 구원

 * 불의하게 죽임당한 자들을 위해 복수해주시는 하나님

 * 세상에 있는 교회의 사명

 * 창조와 구원의 완성

 

요한 계시록을 기록한 이유

 

이 책은 아마도 다음의 몇 가지 이유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첫째, 순교의 위기에 처한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둘째, 환난과 배교와 이단의 위험에 직면한 소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포함한 모든 교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셋째, 그리스도의 재림을 인내로 기다리게 하기 위해(1:9, 2:2,3,19 3:10, 14:12)

 

관련 성경 --- 창세기, 출애굽기, 열왕기서, 시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  외경(에녹서, 바룩서), 마태 복음, 베드로 후서, 요한 복음과 요한 서신들

 

 

 

내용과 구성

 

이 책은 세상 속에 있는 교회가 비록 원수들에 의해 핍박을 당하지만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최후 승리를 얻게 된다는 말세의 줄거리가 일곱 번 반복되어있다. 그리고 그 줄거리들은 또한 일곱 개의 작은 소재들로 구성되어있다. 이것이 지금껏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현대 독자들을 당황하게 하는 가장 큰 요소이다. 이를테면 이 책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구성된 하나의 줄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 번 탄생하시고 여러 번 재림하시는 데서 놀라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이 묵시 문학의 양식으로 기록된 점을 생각한다면 반복되는 사건들이 별개의 사건들이 아니라 한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여러 번 조명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요절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17:14)

 

 요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의 핵심 단어는 ‘ 어린 양 ’으로 26번이나 나온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의 주인공은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지 멸망하게 될 사탄과 그 부하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이지, 장차 세상에 임할 재앙들을 소개하여 겁을 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성도들은 핍박을 당하나  재앙은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귀와 불신자들이 받을 심판과 재앙들을 강조하는 설교자는 전적으로 청중들을 마귀의 자녀로 보고 있는 탓이다.

 

 

주제들                                          원 독자에게 의의

 

1)예수 그리스도는 교회 가운데 계신다        1)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을 전적으로 신뢰하라

2)예수 그리스도는 역사를 주관하신다         2)세상의 권력자를 두려워 말라

3)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의 구원을 완성하신다 3)두려워 말고 복음을 전하라

4)예수 그리스도는 세상과 악한 존재들을     4)불의한 자들에게 정죄 받는 것을 부끄러워

  최종적으로 심판하신다                      말라                        

5)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신다              5)믿음으로 인내하라                

6)예수 그리스도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성도를  6)핍박 때문에 잃어버리는 것들을 두려워  

  인도하신다                                  말라                                  

7)예수 그리스도만이 경배 받기에 합당하신      7)거짓 선지자에게 현혹되지 말라

   만주의 주이시다

 

내용 연구

 

** 요한 계시록의 7가지 특징 **

 

1. 이 책은 1세기 초대 교회가 믿고 있던 복음과 별개로 주어진 계시가 아니라, 이미 말과 글로 전해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회화적으로 다시 한번 제시된 것뿐이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시작되어 재림으로 완성되는 복음의 줄거리가 상징적인 그림들과 사건의 전개 방식으로 표현되어있다. 예를 들어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마28:20)은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2:1)로 형상화되어 기록된다.

2. 이 책이 보여주는 밑그림은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이다. 계시록에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적들이라도 단숨에 격파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어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핍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은 어느 곳에 있더라도 심판을 받아 괴로움을 당하며, 성도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어린양과 더불어 승리하며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 책에서 노래가 많이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3. 등장 인물들은 선과 악의 두 부류로 갈라진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령, 요한, 성도들, 네 생물, 24 장로, 천사들, 그리스도의 신부, 두 증인, 해를 입은 여인, 순교자들은 선한 역이며, 사탄 즉, 용과 그의 부하 짐승, 거짓 선지자, 큰 음녀, 불신자들, 땅의 임금들은 악역들이다. 그리고 보좌, 금단, 향로, 두루마리, 인, 나팔, 대접, 짐승의 보좌, 우박, 언약궤 등은 소도구들이며, 하늘과 땅, 바다, 해, 달, 별, 광야, 새 예루살렘, 새 하늘, 새 땅, 생명수 강, 무저갱, 불못 등은 계시의 배경이 된다.

4. 이 책은 핍박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지 공포에 떨게 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이마에 짐승의 인을 맞는 것은 불신자들이지 신자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신자들은 이미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인 맞을 일이 없다.

5. 이 책은 묵시 문학인 동시에 예언서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묘사되는 상징적 존재나 사건들은 문자적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큰 음녀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바벨론으로 불려지는 거대한 문명 체계를 의미하며(17:1,5), 열 뿔 가진 짐승은 실제 짐승이 아니라 열 명의 왕을 가리킨다(17:12). 그런 맥락에서 짐승의 수 666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바 코드(Bar Code) 따위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도대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바 코드에 관한 메시지를 격려와 위로의 계시로 받아들일 수가 있었겠는가?

6. 이 책은 복음을 7번 반복해서 강조한 것이다. 매 번마다 강조점이 다르기는 하지만 7이란 숫자가 완전을 상징하는 만큼 요한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구원을 완벽하게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일련의 사건들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7. 이 책은 창세기와 대비를 이룬다. 따라서 창세기에서 시작된 일들이 완성되거나 잃어버렸던 것들이 회복되고 있다. 이를테면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첫 하늘과 첫 땅이 나오는데 계시록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오며, 창세기에는 생명나무가 있는 낙원을 잃어버린 사건이 있는데 계시록에는 그것들을 되찾으며, 창세기에는 사탄의 출현과 죽음과 저주가 시작되나 계시록에서는 그것들이 더 이상 사람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 예고되어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창세기를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창세기는 역사와 계시의 시작을 기록한 반면 계시록은 그것의 완성과 끝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소단원 1    일곱 교회에 보내진 계시  (1:1-3:22)

 

인사와 서론을 포함해서 이 책의 첫 부분에 해당하는 본문은 일곱 교회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이며, 그 메시지의 특징 일곱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곱 교회들은 에베소를 출발점으로 해서 시계의 반대 방향으로 소아시아의 일곱 도시에 있던 실제 교회들이다. 이 책이 쓰여질 당시 소아시아에만도 더 많은 교회들이 있었지만 유독 일곱을 택한 것은 7이라는 숫자로 모든 교회들을 상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앞서 그리스도가 먼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므로 각 교회들이 격려와 경고를 받게 하신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환상을 본 것이나 마찬가지로(사 6장) 그리스도의 이미지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셋째, 각 교회들이 서로의 사정을 알도록 모든 메시지를 한데 묶어놓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겸손히 서로 세워주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어떤 교회도 완벽하지 않으며, 남을 도와줄 수 없을 만큼 약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넷째, 그리스도는 교회 가운데 계셔서 모든 형편을 아시며, 교회의 사자들을 붙들고 계신다. 따라서 아무리 약한 교회라도 버리시지 않았으며, 사자들을 통해 강건케 하기를 원하신다. 비록 별이 교회를 지키는 천사를 가리키는 것인지 혹은 지도자를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다섯째, 각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 또한 일곱 부분 - 인사, 그리스도의 자화상, 교회의 형편을 알아주심, 교정, 회개의 촉구 혹은 격려, 권면, 약속 - 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여섯째, 모든 메시지의 결론은 승리한 성도들로 하여금 그의 나라에 들어가게 해주는 것이며, 이 땅에서 안락하게 살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들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까지 인내하며 싸워야할 것이 요구되었다.

 일곱째,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교회에 있고, 사탄이나 세계 정부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며, 증인들의 집단이며,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말세에 될 일을 기록한 계시록의 첫 부분을 교회에 주는 멧시지로 일관한 이유이다.

 

1:1-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책 전체의 서론에 해당하는 이 부분은 짧은 길이에 비해 많은 것들을 시사해준다. 첫째, 계시(Revelation)는 전체가 하나이다. 둘째,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셋째, 계시의 내용은 반드시 속히 될 일들에 관한 것이다. 넷째, 계시는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전달되었고, 최종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모든 사역자들에게 알려지기 위한 것이다. 다섯째,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환상(Vision)의 방식으로 전달되었다. 여섯째, 더 이상의 계시는 없다. 일곱째, 계시는 교회를 축복하기 위해 주어진 예언이므로 읽혀지고, 들려지고, 지켜져야 한다. 특별히 이 계시가 반드시 속히 될일에 관한 것이라든가(1:1), 때가 가깝다(1:3)는 표현은 극심한 박해가 속히 끝날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인내해야만 한다는 격려의 의미를 지닌다. <주제>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를 주관하신다

 

1:4-8              간추린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과 신성과 구속사역이 짤막하게 진술되었다. 본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 성도의 구원과 불신자들의 멸망이 선명하게 대조되어 있어서 고난과 죽음을 눈앞에 둔 원 독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죽기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하며, 그가 다시 오셔서 모든 원수들을 심판하시기까지 인내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원 독자들은 그리스도가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최종 권세를 가지신 왕이라는 선언에서 환난을 인내할 힘을 얻었을 것이다. <주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최종 권세를 가지신 왕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신다

 

1:9-20               교회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핍박받는 교회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았다. 한때 원수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던 그는 부활하사 교회 가운데 계시며 성도들을 보호하신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그는 죽임 당할 그의 백성들을 위해 그 열쇠를 사용하기 원하신다(1:18). 유대인들은 어떤 문이든지 한번 연 것은 같은 열쇠로 다시 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와 원 독자들이 공유하는 것은 환난과 나라와 참음이다(1:9).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이 곳에 단 한번 나오는 ‘주의 날’이 오늘날의 일요일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주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 가운데 계신다. 그는 하나님이시다.

 

2:1-7                 에베소 교회; 바울에 의해 세워지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동역했으며, 디모데가 두 통의 목회서신을 받았고,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기까지 사역했던 교회이다.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다시 한번 소개된 것은 이 교회가 소아시아 교회들 가운데 지도자격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진리를 파수하기 위해 수고와 인내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칭찬 받았으나, 성도간의 사랑이 식어진 것으로 책망을 받았다. 아마도 니골라당은 영지주의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2:8-11               서머나 교회;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갑이 86세의 나이로 화형을 당하기까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았을 정도로 충성심이 강한 교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주의자들의 밀고로 경제적 빈곤은 물론 정신적 고통마저 컸으나 결코 물러서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칭찬만 받았다. 그리스도가 처음이요 나중이며,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으로 자기를 소개하신 것은 이 교회에 순교자가 많은 까닭으로 여겨진다.

 

2:12-17               버가모 교회; 의료의 신 - 아스클레피어스(뱀) 신전과 제우스 신전이 있던 도시에 세워진 이 교회는 핍박과 종교혼합주의와 영지주의 이단으로 갈등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모습이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소개된 것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이단을 물리치는데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직접 개입해야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18-29               두아디라 교회; 유럽의 최초 개종자 루디아의 고향으로서 상인 조합이 발달하여 조합마다 각자의 신과 우상을 섬기던 도시에 세워진 교회이다. 이 교회는 우상 숭배를 조장하는 여 선지자를 용납했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모습이 불꽃같은 눈과 주석같이 빛난 발을 가지신 분으로 묘사된 것은 교회 안의 악한 무리들을 심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1-6                 사데 교회;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 책망만 받았던 교회이다. 사데는 고대 루디아 지방의 수도였으며, 그곳에 세워진 교회 또한 소아시아를 대표할 만한 교회중의 하나였으나,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는 몇 명의 개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신자들은 이미 교회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한 집단으로 비쳐졌다.

 

3:7-13                빌라델비아 교회;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주신으로 섬기던 도시에 세워진 이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마찬가지로 유대주의자들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았으나 그 인내의 신앙으로 인해 칭찬만 받은 교회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 소개한 것은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은 자들의 거짓된 것을 드러낼 참 유다 지파의 지도자이시기 때문이며,

유대인들이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절한다는 것은 그들이 영적 이방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사60:14).

 

3:14-20               라오디게아 교회; 로마 정부가 제의한 지진 피해복구자금을 거절할 정도로 돈이 많았던 도시에 세워진 이 교회는 그 부족함을 모르는 자주성(Self Sufficiency) 때문에 책망을 받았다. 골로새와 히에라볼리(오늘날의 Pamukale) 사이에 위치한 이 도시의 교회가 비록 골로새에서 나는 찬 물 같지도 않고, 히에라볼리의 온천 같이 뜨겁지도 않았으며, 그리스도가 계실 필요도 느끼지 않았지만 예수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계셨다.  

 

                              소단원 2 일곱 인이 떼어진 계시 (4:1-8:1)

 

고대 사회에서 편지를 보낼 때 남이 보지 못하도록 인으로 봉하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일곱의 숫자가 완전을 의미하는 만큼, 일곱 인은 말세에 되어질 일을 인간 스스로 알 수 없도록 하나님의 권위로 봉함한 사실을 의미하며, 어린양이 그 인을 떼신다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인류 역사를 마로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일곱 인의 계시는 말세에 성도들이 받을 고난과 핍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요한 계시록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의 메시지는 마지막 때가 될 때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이 땅 위에서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인을 뗄 때 인류 역사는 종말을 고하고 새 시대가 열리게 되다. 따라서 일곱 인 환상의 의미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까지 신자들이 인내로 믿음을 지켜야한다는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이다.

 

4:1-5:14                                 하늘 보좌; 말세에 성도들이 받을 고난에 관한 계시를 알기 전에 먼저 하늘보좌의 환상을 본 것은 마치 아사야 선지자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환상을 본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로서 인간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격려의 메시지가 된다. 특히 보좌를 중심으로 하늘에 거주하는 선한 피조물들이 배치되어있는 것은 우주와 인류의 역사가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대로 다스려지므로 핍박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참고로 보좌 주변에 배치되어있는 동심원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보좌(번개, 음성, 뇌서) - 중심

* 일곱 등불,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 - 보좌 앞

* 무지개 - 보좌를 두름(원)

* 네 생물 - 제 1 동심원

* 24 장로 - 제 2 동심원

* 많은 천사들 - 제 3 동심원

* 모든 만물 - 제 4 동심원

이 중에서 네 생물과 24 장로들, 천사들. 만물은 각각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승리자 어린양에게 경배하며 찬양을 드린다.

* 네 생물 -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원하심을 찬양

* 24 장로 -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주관자 되심을 찬양

* 네 생물과 24 장로 - 어린양의 구속사역을 찬양

* 많은 천사들 - 7 번 어린양 찬양(능력, 부, 지혜, 힘, 존귀, 영광, 찬송)

* 모든 만물 - 하나님과 어린양을 영원히 찬양

<주제> 인류 역사와 만물을 다스리시며 경배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다.

 

6:1-2                                 첫째 인을 떼심; 죽음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땅 끝까지 전파될것이 흰 말 타고 면류관을 받은 자가 연전 연승하는 환상으로 소개되었다.

 

6:3-4                                 둘째 인을 떼심; 세계적인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기독교인들이 무참히 살해될 것이 붉은 말 탄 자의 환상으로 소개되었다.

 

6:5-6                                 셋째 인을 떼심; 핍박의 결과로 기독교인들이 빈곤에 시달릴 것이 검은 말을 타고 저울을 든 자의 환상으로 소개되었다.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라는 것은 당시 물가로 따져볼 때 기독교인들이 하루 종일 노동해봤자 평상시의 1/10 에 해당하는 식품밖에 구할 수 없음을 보여주며, 감람유와 포도주가 풍족히 있다는 것은 빈곤이 모든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기독교인들에로 제한되어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6:7-8                                 넷째 인을 떼심: 핍박이 더 심해져서 마침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순교의 제물이 될 상황이 청황 색 말 탄 자의 환상으로 소개되었다.

 

6:9-11                                 다섯째 인을 떼심; 순교자들의 생애가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쉬고 있으며, 핍박이 예상보다 오래 갈 것이 환상을 통해 보여졌다.

 

6“12-17                                 여섯째 인을 떼심; 종말의 때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연상케 하는 우주의 변동과 핍박자들에 대한 어린양의 심판이 시행될 것이 환상으로 예고되었다. (말3:1,2 참조)

 

7:1-8:1                                 일곱 째 인을 떼심; 요한이 본 환상들은 서로 연결되어있다. 일곱 째 인은 악인들에 대한 최후 심판의 과정을 소개하는 일곱 나팔의 시작이다. 따라서 본문은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144000 명과(7:1-9), 이방인 가운데서 대 환난 중에도 믿음을 지킨 큰 무리들(7:9-14)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짐승의 인을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은 소유권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의 소유가 된 신자들은 사탄이 빼앗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요6:39, 10:28,29)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어린양의 인도로 영생을 누리게 된다. 그들은 더 이상 굶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으며, 화형을 당하지도 않는다. 환난 중에 있는 원 독자들에게는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인가.

 

                                                소단원 3 일곱 나팔로 경고된 계시 (8:2-11:18)

 

고대 사회에서 나팔은 공동체의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할 때 사용되었다(민10:1-10).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이 전쟁을 치러갈 때나 절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릴 때 나팔 신호를 흔히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예언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나팔의 이미지가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할 때 사용되었다(렘4:5. 6:1,17, 겔33:5, 욜2:1,15).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나팔들은 세상 사람들이 죄 가운데서 멸망하지 않도록 흔들어 깨우시는 하나님의 경고로 해석되어야한다(벧후3:9 참조).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둘째, 하나님은 계속되는 재앙을 통해 최후심판의 심각성을 경고하신다.

셋째, 지역적으로 1/3, 시간적으로 다섯 달, 인구 1/3에 미치는 정도의 재앙은 세상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준다.

넷째, 계속되는 재앙에도 사람들이 끝끝내 회개하지 않는 것은 최후 심판의 정당성을 말해준다.

다섯째, 기근, 메뚜기, 강대국들의 전쟁, 핍박받는 선지자들은 이미 구약 시대에 있던 일이다.

여섯째, 일곱 나팔의 계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전파된 복음의 확인일 뿐이다(10:7).

일곱째, 모든 재앙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거나,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 나타나는 것은 인류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8:2-6                                 하늘 보좌; 모든 재앙은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며,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해 경고하신다. 하늘 보좌는 천사들이 시위해 있고, 성도들의 기도가 올라가는 곳이다. 천사가 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 땅에 쏟을 때 지진과 뇌성과 음성과 번개가 났다는 것은 핍박자들을 인해 부르짖는 성도들의 기도가 응답된다는 격려의 메시지이다. <주제> 예수 그리스도는 악인들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신다.

 

8:7                                 첫째 나팔의 경고; 가뭄으로 인한 농업의 피해가 맨 처음 재앙으로 등장한 것은 하나님이 인간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데 사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8:8-9                                 둘째 나팔의 경고; 수산업과 해운업이 타격을 입게 되는 것도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싸인이다.

 

8:10-11                                 셋째 나팔의 경고: 출애굽 시대에 모든 물 근원이 피로 변한 재앙과 같이 계속되는 재앙에도 바로처럼 회개하지 않고 강퍅한 시대인 것을 말해준다.

 

8:12-13                                 넷째 나팔의 경고; 역시 출애굽 시대에 흑암 재앙을 연상하게 해주는 경고이다. 인간의 고집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대조되어있다.

 

9:1-12                                 다섯째 나팔의 경고; 메뚜기 재앙 역시 출애굽 시대에 바로의 백성들에게 임한 재앙을 연상하게 하는데,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임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9:4).

 

9:13-11:14                 여섯째 나팔의 경고; 악한 영의 미혹을 받아 세계 인구의 1/3이 죽는 전쟁의 참화에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는다(9:20,21). 그러므로 종말에 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처럼 최후 심판이 임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10:7). 그러나 교회는 핍박 속에서도 영적 권세를 가지고 증인의 사명을 다하게 된다.

 

11:15-18                                 일곱째 나팔의 경고; 세상의 권세는 다 무너지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원토록 다스리시는 때가 온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핍박하던 악인들은 멸망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킨 성도들은 상급을 얻게 되기까지 인내해야한다.

 

 

                                소단원 4 일곱 표적으로 확증된 계시 (11:19-15:4)

 

앞서 나온 일곱 교회나 일곱 인 혹은 일곱 나팔과 마찬가지로 일곱 표적의 계시 또한 말세에 되어질 사건과 의미들을 설명한 것이지만 특별히 교회에 가해지는 핍박의 영적 배후를 밝히는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따라서 말세에 벌어지는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사탄과 그의 부하들 사이에 있는 영적 전쟁의 단순구도로 설명해가면서 누가 최종 승리자이며, 누가 패배자인가를 상징적 그림들로 심도 있게 그려나간다. 이를테면 본문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쓴 여인과 일곱 면류관을 쓴 용의 대결, 미가엘과 그의 사자가 용과 그의 사자와 싸움, 용과 여자의 남은 자손과의 대결 등이 묘사되어 있고,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아이를 삼키려 하다가 실패하는 용이 다시 천사들과의 싸움에서도 패배해서 하늘로부터 쫓겨나고,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다가 실패하며, 권력과 우상을 숭배하던 불신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심판을 받는다. 그와는 반대로 해를 입은 여인과 어린양, 천사들, 성도들은 승리자가 되어 영원한 즐거움으로 노래 부르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상징적 묘사들의 목적은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인내하도록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다(13:10, 14:12). 그리고 각각의 표적마다 “내가 보니”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도 흥미롭다.

 

11:19                                 하늘 보좌; 일곱 표적의 계시를 받기 전 열린 성전의 환상을 본 것은 우주와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다시금 새롭게 해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이후 잃어버렸던 언약궤가 하늘 성전에서 보인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주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성도들과 교통하시는 하나님

 

12:1-17                                 첫째 표적 - 예수의 생애; 해를 입은 여인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인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옛 뱀은 그의 탄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헤롯 대왕의 베들레헴 유아학살이나, 아하수에로의 신하 하만의 유대인 말살정책은 비근한 예가 된다. 그러면 왜 뱀은 여인의 후손을 그토록 미워했는가? 그 이유는 창 3:15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이 또한 여인과 여자의 남은 자손까지 사탄이 미워한 이유이다. 흥미로운 것은 여인이 광야로 피신간 기간이 1260일로서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활동하는 42개월과 같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표적들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기록된 다른 사건이 아니라 말세에 교회가 고난받는 기간을 반복적으로 묘사하고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죽기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13:1-10                                 둘째 표적 - 바다에서 나온 짐승; 바다가 무엇을 상징하며 짐승의 열 뿔과 일곱 머리가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이 짐승이 용의 부하이며 하나님의 이름과 하늘 거주자들을 훼방하며 땅의 성도들을 박해하고 자기를 경배하게 하는 것을 볼 때 황제 숭배를 강요하던 로마 정부에서 따온 이미지임에 틀림없다.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인내이다(13:10).

 

13:11-18                                 셋째 표적 - 땅에서 나온 짐승;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실력자로서 정치와 종교를 함께 장악한 사탄의 부하이다. 그는 확실히 사람들의 영혼을 소유하기 원하는 의미에서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영적 분별력이다(13:18).

 

14:1-5                                 넷째 표적 - 시온 산에 선 어린양; 다윗 왕국의 상징인 시온 산이 여기서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보좌를 의미하며, 144000의 성도들이 보좌 앞에서 노래 부른다는 것은 모든 원수들이 사라질 날이 올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정절이 요구되었다(14:4,5).

 

14:6-13                                 다섯째 표적 - 네 천사의 경고; 하나님은 아직도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도록 천사를 보내 계시를 확증하신다. 첫째 메시지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임할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며, 두 번째 메시지는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이 이미 임한 것처럼 선포하는 것이며, 셋째 메시지는 거짓 선지자에게 현혹된 불신자들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전도자가 사람이 아니라 천사인 것은 메시지의 신적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그들이 세 명인 것은 확실히 이루어질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 같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낙심하지 말고 인내할 것이 요구되었다(14:12).

 

14:14-15:1                 여섯째 표적 - 네 천사의 추수; 만약에 구름 위에 앉은 이를 천사로 볼 수 있다면 네 명의 천사가 등장하는 셈이된다. 즉, 이한 낫을 가지고 구름 위에 앉은 천사, 성전으로부터 나와 추수를 명령하는 천사, 제단으로부터 나온 불을 다스리는 천사, 이한 낫을 가지고 땅의 포도를 거두어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지는 천사이다. 아마도 땅의 곡식을 거두는 것과 포도송이를 거두는 것은 악인에 대한 최후 심판을 두 번에 걸쳐 경고한 것 같다(욜3:13 참조). 악인들의 피가 300km 반경에 1.5m 깊이로 퍼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각성을 강조하여 성도들을 격려할 목적으로 사용된 과장법적 묘사이다. 이제 요한은 악인들에게 임할 재앙들만 모아놓은 일곱 재앙 시리즈가 시작되는 것을 본다.

 

15:2-4                                 일곱째 표적 - 승리자의 경배; 유리 바닷가에 서서 노래 부르는 성도들은 짐승이 다스리는 시대에서 믿음을 지킨 자들이다. 이 환상의 의의는 환난이 아무리 극심해도 하나님은 신자들이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우실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를 받을까봐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다 짐승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소단원 5 일곱 대접 재앙의 계시 (15:5-16-21)

 

말세에 되어질 사건들에 대해 요한이 본 계시는 지상 교회가 받는 고난이나 핍박자들의 정체를 드러내는 데서부터 점점 더 미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강조되는 쪽으로 발전되어간다. 본문에서는 불신자들과 핍박자들이 최후 심판을 받기 전에 먼저 땅위에서 받을 재앙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앞서 살펴본 나팔 재앙과 다른 점은 그것이 부분적이고 일시적이었던 데 비해 대접 재앙은 전 세계적이며 최종적이라는 데 있다.

 

15:5-16:1                 열린 성전; 새로운 계시가 시작될 때마다 요한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먼저 보게 되는데 일곱 대접 재앙의 계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곱 재앙이 다 시행되기 전에는 성전에 가득찬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악인들의 죄가 사해지도록 누구도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될 때 아무의 변호도 받을 수 없었던 성도들은 이 계시에서 무한한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주제> 예수 그리스도는 악인들을 심판하신다.

 

16:2                                 첫째 대접의 재앙; 출애굽기에서 바로와 그의 신하들에게 내려진 독종의 재앙을 연상케 하는 재앙으로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모든 우상숭배자에게만 임하며, 첫째 나팔 재앙처럼 땅위에 부어진다(8:7).

 

16:3                                 둘째 대접의 재앙; 둘째 나팔 재앙처럼 바다에 부어지나 훨씬 더 심각하며 회생이 불가능하다(8:8,9).

16:4-7                                 셋째 대접의 재앙; 셋째 나팔의 재앙처럼 강과 샘(물 근원)에 임하며(8:10,11) 출애굽기의 피 재앙을 연상케 한다. 바로가 이스라엘의 남자아이를 강물에 빠뜨려 죽게 했을 때 나일강물이 악어 밥이 된 아이들의 피로 물들어 그런 재앙을 받았던 것과 같다.

 

16:8-9                                 넷째 대접의 재앙; 넷째 나팔의 재앙처럼 천체에 부어지며(8:12), 사람들이 재앙을 받고도 회개하지 않고 강퍅한 것은 흑암 재앙을 받고도 회개를 거부했던 바로와 같다(출10:27,28).

 

16:10-11                                 다섯째 대접의 재앙; 다섯째 나팔의 재앙처럼 불신자들이 통증으로 고통받는 재앙이며(9:1-11), 역시 바로 왕처럼 회개하지 않는다.

 

16:12-16                                 여섯째 대접의 재앙; 여섯째 나팔의 재앙처럼 거짓 선지자의 꾀임을 받아 유브라데 강을 중심으로 군대가 모여 세계 대전을 치르다가 멸망당한다(9:13-21). 마치 바로의 군대 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는 이스라엘을 따라 뛰어들었다가 몰살당한 것을 연상케 한다.

 

16:17-21                                 일곱째 대접의 재앙; 하늘로부터 나는 음성으로 인류 역사가 종말을 고하 는 최후심판의 일곱째 나팔 재앙처럼(11:15-18) 일곱째 대접의 재앙으로 큰 성 바벨론이 최후 심판을 받아 종말을 고하고,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훼방할 뿐 회개하지 않는다.

 

                                                소단원 6 일곱 심판의 계시 (17:1-20:15)

 

악의 무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최종적으로 일곱 대상들로 요약된다. 앞서 살펴본 일곱 대접 재앙이 진노의 심각성을 강조했다면, 본문은 하나님의 대적들이 남김 없이 심판을 받는데 초점이 맞 춰져있다.

 

17:1-18                                 큰 음녀와 열 뿔 짐승;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첫 번째 대상이 도시문명 (음녀)과 왕들(짐승)이라는 사실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사치와 향락과 잔인한 여흥 경기를 좋아하는 도시문명과 권력자는 언제나 동반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의 거주자들과 황제들이 어떤 게임을 즐겼는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피에 굶주린 로마인들은 죄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노리개 삼아 권태를 달랬던 것이다. 앞서 일곱 머리에 열 뿔 달린 용(12:3)과 바다에서 나온 일곱 머리에 열 뿔 달린 짐승(13:1)을 통해 기독교를 핍박하고 황제 숭배를 강요하는 왕들에 대해 반복적으로 살펴보았기 때문에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어떤 왕도 기독교를 박멸할 수 없다는 것과(17:13), 왕들이 자신의 세력기반인 도시문명을 스스로 파괴한다는 것이다(17:16). 도시문명을 음녀로 부르는 것은 구약 예언자들의 상투적 용어이기도 했다(훔3:3, 사23:15-17).

 

18:1-10                                 땅의 왕들; 큰 음녀 로마제국의 멸망은 결과적으로 속주국 왕들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 되는 것은 핍박자의 앞잡이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조가를 불러 바벨론의 멸망을 애도하게 될 것이다.

 

18:11-24                                 땅의 상고들;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핍박의 절반은 장사꾼들에게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3:16,17, 행16:19, 19:23-27, 24:26). 또한 그들이 권력자의 시녀 노릇을 자처하여 핍박에 앞장섰기 때문에 심판 받는 것이 마땅하다(18:24). 그들 또한 바벨론의 멸망에 조가를 부르며 애도하게 된다.

 

19:1-21                                 거짓 선지자; 하늘 거주자들이 승리하신 어린양에게 드리는 찬양과 노랫말

의 배경은 심판자 그리스도와 지옥에 던져지는 악의 무리들이다. 그 가운데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며 기독교 박해에 앞장서던 거짓 선지자가 들어있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못된다.

 

20:1-10                                 용;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피조물의 배후세력인 마귀도 마침내 유황 물못에 던져진다. 이로써 성도들은 더 이상 괴롭힘을 받지 않게 된다. 그런데 신 구약 성경을 통 털어 여기에 한 번만 나오는 천년 왕국에 대해 지나치게 논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해석을 하자면 둘째 사망이 지옥의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20:6, 21:8), 첫째 사망은 당연히 육체적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첫 번째 부활(20:5,6 상)은 몇몇 신자들의 육체가 부활하는 것이라고 하기 보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되는 보증으로서 모든 신자들의 영혼이 죽었던 상태로부터 거듭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20:6 하)?

 

20:11-15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 앞에는 두 종류의 책이 펴있는 데 하나는 생명책이고, 다른 하나는 정죄의 책이 아닌가 한다(20:12). 사람들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용서받지 못한 채 죽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했기 때문에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다시 말하면 지옥은 사람들이 가야할 곳이 아니라 사탄과 그의 부하들을 위해 예비된 곳이지만 구원 받기를 거부한 어리석은 사람들이 무지하여 가게 되는 것 뿐이다(마25:41).

 

                                                소단원 7 일곱 새 것이 예비된 계시 (21:1-22:21)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한 환상으로 시작된 말세의 일곱 계시는 마지막 부분에서 성도들이 누릴 천국 생활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완성되며, 인간의 타락으로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교통과 낙원의 축복이 회복된다. 더 이상 성도를 괴롭히는 것들이 따라오지 못하며, 모든 것이 새로워지게 된다. 따라서 본문에는 7가지 없어진 것과 7가지 새것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없어진 것 7가지는 처음 하늘과 땅과 바다(21:1하), 처음 사람(21:4), 성전(21:22), 해와 달의 비췸(21:23), 밤(21:25), 부정한 것(21:27), 저주(22:1)이며, 7가지 새 것은 새 하늘과 새 땅(21:1), 새 예루살렘(21:2,10-27), 새 사람(21:3,4), 새 만물(21:5), 새 성전(21:22), 새 빛(21:23, 22:5), 새 낙원(22:1-5)이다.

 

21:1-22:5 일곱 새 것;

1) 새 하늘과 새 땅 - 첫 하늘과 첫 땅이 없어지고 새로 만들어지리라는 예언의 성취(벧후3:10-13)로서 환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소망이 되는 메시지이다

2) 새 예루살렘 - 가인이 만들기 시작한 무신론적 도시문명이 종말을 고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반영되는 완전한 축복의 장소에서 살게 될 것을 의미한다.

3) 새 사람 - 범죄한 처음 인간이 받은 고통과 슬픔과 죽음(시90:9,10)이 끝나고 영생의 새 사람으로 살게 되는 구원의 완성을 의미한다.

4) 새 만물 - 인간의 타락으로 함께 고통하게 된 만물(창3:17,18 롬8:19-22)이 원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고 성도들에게 복된 환경이 될 것을 의미한다.

5) 새 성전 - 성전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마12:6)와 하나님이 친히 성전이 되시는 것은 모형과 임시방편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필요가 없이 하나님과의 교통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로 성도의 구원이 완성된 것을 의미한다.

6) 새 빛 - 여호와가 영영한 빛이 되시리라는 예언(사60:20)과 내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증거(요8:12)의 성취이다.

7) 새 낙원 -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접근이 금지된 생명나무(3:22-24)가 언제나 영생의 과실을 제공하며(22:2),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교제(3:8-10)가 완전히 회복된 곳이다(22:3,4).

 

22:6-21                 속히 오리라; 세 번이나 반복되어있는 약속으로서(22:7,12,20)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소망 가운데 인내해야할 유일한 이유가 된다. 그리고 이 예언을 기록하게 한 일곱 가지 이유는 첫째,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22:6,10), 둘째, 복을 주시려고(22:7,14), 셋째, 행위대로 상 주시려고(22:12), 넷째, 자신의 하나님 되심을 알려 경배 받으시며(22:9,13) 메시야 되심을 믿게 하시려고(22:16), 다섯째, 영생을 주시려고(22:17), 여섯째, 핍박자와 불신자들이 받을 형벌을 알려 성도들이 인내로써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일곱째, 잘못된 신앙(이단)의 위험을 경고하시려는 것이다(22:18,19). 그러므로 성도들에게는 오직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의 신앙고백이 요구되었으며,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것을 실천하여 만날 때마다 ‘마라나타’를 외치며 서로를 격려했던 것이다.

 

 

성경 연구 클리닉 

 

묵시 문학의 숫자에 담긴 상징

 

언어의 발달이 초보적인 수준에 그쳤던 고대 사회에서는 숫자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숫자는 도덕적, 영적 교훈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는데, 이러한 개념들은 원시적인 연상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러한 숫자들은 하나의 상징일 뿐 수학 공식처럼 정확히 사용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이를테면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정방형의 새 예루살렘 한 변은 일만 이천 스다디온(2220km)인 동시에 일백 사십 사 규빗(65cm)이라는 식이다.

 

* 숫자 1은 독특하고 유일한 것을 상징하나 요한 계시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 숫자 2는 언제나 강화된 힘, 배가된 에너지, 확증된 능력을 의미하는데, 아마도 야생동물들에 대한 공포와 적들의 위협에 직면한 개인이 함께 있음으로 해서 용기를 얻었던 데서 연유한 것 같다. 확실히 둘은 하나보다 훨씬 강하고 효율적인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두 증인(11:3-12)과 두 짐승(13:1,11)도 그러한 의미를 가진다.

* 숫자 3은 아마도 가족관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위시하트(Wishart)는 원시시대의 사람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에서 온전함을 느끼게 해주는 숫자 3을 발견하고 그것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대한 희미한 이해에 토대를 제공했을 것이다.

* 숫자 4는 동서남북의 땅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부터 얻게된 세계와 우주에 대한 개념이다. 요한 계시록에는 세상의 짐승을 상징하는 네 생물과, 세상을 파괴하는 힘을 가진 네 명의 말 탄 자가 나오는데 그러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가 있다.

* 숫자 5는 아마도 생산활동의 주역인 다섯 손가락과 발가락에서 나온 것 같다. 그러므로 성한 두 손 있는 열 손가락과 성한 두 발에 있는 열 개의 발가락은 완전함을 나타내는데 충분했을 것이다. 용과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열 개의 뿔을 가졌다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 7은 신성함을 상징하는 3과 세상을 상징하는 4를 더해 얻은 복합 숫자임에 틀림이 없으며, 거기에다 완전수 10을 곱해 얻은 70은 매우 신성하며 거룩한 숫자이다. 산헤드린 공회원이 70 명이었고, 예수님도 70 명의 증인들을 파송하셨다.

* 숫자 12는 4와 3을 곱해서 얻은 숫자로서 히브리적 사고방식에서 종교 조직의 상징이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열 두 진주 문, 열 두 지파, 열 두 사도의 이름 등이 그 좋은 예가 된다. 그리고 12를 제곱해서 얻은 숫자인 144에다 열을 세제곱해서 얻은 1000을 곱한 것이 144000이므로 요한 계시록에서는 구원받은 성도의 완전한 숫자로 이것을 사용했다.

* 숫자 7을 반으로 나눈 2/3은 완성되지 못한 것, 불완전함을 나타낸다. 이 숫자는 끝없이 갈망하지만 충족되지 못한 상태나 성취되지 못한 소망을 상징한다. 따라서 요한 계시록에는 간절히 기다리고 있으나 아직 오지 않은 평화의 상태, 지금은 혼란의 상태를 상징할 때 이 숫자를 사용했다. 단지 3년반을 마흔 두 달 혹은 일천 이백 육십일로 표현했을 뿐이다.

* 숫자 6은 7이 못된 불길한 숫자이다. 완전한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한 숫자이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짐승의 숫자로 6을 세 번 붙여 사용하므로 세상 권력이 하나님 나라를 박멸하지 못하고 실패할 것을 상징하고 있다.

 

                자료 출처: Worthy is the Lamb by Ray Symmers. Published by Broadman Press,c. 1951

 

 

 

 

 

 

 

 

 

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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