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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구속사의 관점에서 본 미가서 파노라마

하나님아들 2014. 3. 8. 14:38


미가서 파노라마

주제 :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이제부터 미가서를 상고하려고 합니다

. 성경을 기록한 문서 선지자들은 모두 16명입니다.

이들을 세움 받은 시기별로 나눈다면,

예루살렘이 심판 받기 이전에 세움 받은 선지자들이 11명,

포로 기간 중에 세움 받은 선지자들이 2명(에스겔, 다니엘),

포로귀환 후에 세움 받은 선지자들이 3명(학개, 스가랴, 말라기),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기 전후(前後)해서 문서 선지자들을 집중적으로 보내셨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기 이전에 세움 받은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들은 그 이전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메시지를 기록하여 문서로 남기지를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기 위해서

 몇 가지 물음을 제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기 전에 이처럼 여러 명의 선지자들을 세우셔서 경고케 하시고, 이를 기록케 하셔서 후대에 여러 권의 선지서를 물려주신 의도(意圖)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 어찌하여 우리에게는 여러 책의 선지서들이 필요한가?


① 첫째는,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많은 선지서를 주셨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지서들은 한결같이 죄를 책망하고 심판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서 저들(선지자 당시)의 죄만을 본다면 선지서가 우리와는 무관한 것이 되고 결과적으로는 선지서를 상고하면서도,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히 3:7) 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② 둘째는,
선지서를 통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하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서는 "죄와 심판"만을 경고하는 절망(絶望)의 책이 아니라, 한결같이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회복시켜주시겠다는 소망(所望)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선지서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저들을,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 24:25-26) 하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③ 셋째로, 하나님의 신실(信實)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렘 17:9)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바를 묵묵히 이루어 오셨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이를 알았기에 사도 바울은,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롬 3:4) 하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설교자는 이를 증거하기 위해서 세움 받은 자들입니다.

선지서가 16권이나 되는 까닭

마지막으로 계시의 복합성(複合性) 때문입니다.

 선지서의 예언을 관찰해보면,

㉠ 예루살렘의 멸망과 포로귀환이, 주님의 고난(성전을 헐라)을 통한 회복과 겹쳐져 있고,

 ㉡ 예루살렘의 심판이, 재림 때 임하게 될 심판과 겹쳐진 복합적인 계시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지서는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세 단계로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첫째 단계가 선지자 당시입니다.

 둘째 단계가 주님의 초림 때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재림 때 완성될 말씀입니다.

이처럼 선지서는 주님의 초림과 재림, 그리고 그 기간(期間)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 계속적으로, 오늘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크게 네 가지 목적을 위해서 선지서들을 주셨는데,

 선지서가 많은 것은,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함과 같이, 이제도 여러 권의 선지서들을 통해서 부지런히 말씀하시나, 여전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려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렘 25:4) 하십니다.


오늘의 상황이 선지자들이 외치던 시대보다 악하면 악했지 나을 것이 없는데도, 설교자들은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렘 9:1)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외치고 있는가?

 아니면

당시의 거짓 선지자들이 그러했듯이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고 헛된 축복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한 성도들은 이를 좋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미가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는
"심판을 경고하고, 회복을 약속"하는 세 번의 사이클에 의해서입니다.

세 번의 사이클

① 첫째 사이클, ㉠ 심판의 경고, 1:1-2:11절, ㉡ 회복의 약속, 2:12-13절.
② 둘째 사이클, ㉠ 심판의 경고, 3:1-12절, ㉡ 회복의 약속, 4장-5장.
③ 셋째 사이클, ㉠ 심판의 경고, 6;1-7:6절, ㉡ 회복의 약속, 7:7-20절.


이 세 번의 사이클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얼마나 간절한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행위" 중심으로 보면은 심판과 멸망일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언약, 즉 그리스도를 통한 무조건적인 은혜에만 소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멸망과 소망을 교차적으로 보여주는 패턴은

 이미 살펴본 호세아서의 구도에서도 본 바입니다.

그리고 호세아서나 미가서는 심판의 경고로 시작하여, 회복의 약속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인류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서를 통해서 말씀하고자 하는 핵심적(核心的)인 주제(主題)는 교훈(敎訓)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서들의 중심주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많은 선지서를 상고하면서도,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전적타락하고, 전적 부패한 죄인임을 깨닫지를 못하고,


그러하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소망이 있음을 증거하지 못하고,

교훈과 엉뚱한 축복을 말하고 있음은

16개나 주신 선지서가 부족하기 때문이란 말인가?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롬 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 1:1-2),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7).


그러므로 선지서를 통해서도 힘있게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미가서 1:1절과, 이사야서 1:1절을 대조해보면 두 선지자는 같은 시기에 세움을 받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미가서는,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1:2) 하고 시작이 됩니다.

이사야서도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사 1:2) 하고 시작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사 1:4) 하고 슬픈 음성으로 말씀하고 있듯이, 미가 선지자도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애통하리니"(1:8) 하고 울면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왜 슬퍼하며 애곡하고 있는가?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 내리기를 계획하노니"(2:3) 하신

심판의 경고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지자가 마찬가지입니다만,

미가 선지자도 주로 그 시대의 지도계급의 잘못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① 첫째로,
"야곱의 두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들아"(3:1) 하고 정치 지도자들의 죄를 고발합니다.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3:2-3) 하고 원색적으로 책망합니다.


② 둘째로
선지자들을 고발합니다.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3:5) 하고 책망합니다.


③ 셋째로
제사장의 죄를 고발합니다.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3:11)한다고 책망합니다. 3:11절은, "왕, 제사장, 선지자"를 통틀어 책망하고 있는데,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하고 지도자들 모두가 타락하였음을 말씀합니다.


가증한 것은, "오히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점을 예레미야서에서는,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렘 5:30-31) 하십니다.


우매한 백성들은 거짓말하는 선지자들을 환영하고,

 미가와 같은 바른 말을 하는 선지자를 향해서는,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어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2:6) 하고,

 그들의 말을 "욕하는, 저주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지도자들의 책임

왜 이처럼 지도자들을 책망하고 있는가?

 예루살렘이 심판 받아 멸망하게 된 책임이 지도자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3:10) 합니다.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3:12) 경고합니다.

이 경고는 문자적으로 성취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경고는 자기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인하여,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 하신 제 2차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증거는 주님의 재림의 날에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인가? 오늘의 지도자들은 이를 바라보면서 눈물로 죄와 심판을 경고해야할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나실 왕

그러나 미가는 절망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사명을 한 몸에 지니신 참 통치자가 나시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예상과는 달리 예루살렘이 아닌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합니다.


 어찌하여 베들레헴인가?

그리스도는 다윗에게 언약하신 다윗의 자손으로,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베들레헴 출신이 아니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5:2) 하고 태초로부터 예정된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분은 아득히 먼 창세기 3: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이라는 한 점으로 계시되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워주신 언약을 거쳐,

 유다 지파 다윗의 자손으로 우리를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계셨던 것입니다.


미가와 함께 세움을 입은 이사야 선지자도,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사 9:6) 하고 그 분이 한 아기로 태어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하고 그 분의 선재를 말씀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5: 4-5) 합니다.

미가서에도
"남은 자", "구속"교리가 현저합니다. "남은 자"가 다섯 번(2:12, 5:3, 7, 8, 7:18)이나 언급되어 있습니다.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2:12),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7:18) 합니다. 즉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종노릇하는 집에서 속량"(6:4) 하심과 같이, 바벨론에서도 속량하여 내시리라(4:10) 말씀합니다.

그런데 궁극적인 속량,곧 구원하심은

미가서의 결론에 이르러 계시되어 있습니다.


"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7:18-19).


미가서의 결정적인 구도

미가서의 결정적인 구도(構圖)를 파악하시기를 바랍니다.
① 미가서는,
"이는 다 야곱의 허물을 인함이요 이스라엘의 죄를 인함이라"(1:5) 하고 시작이 되었습니다.

멸망당하게 되는 원인이"허물과 죄"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류가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멸망당하게 될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경고대로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했습니다.


② 그런데 미가서는 마지막 장에 이르러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 구도인가? 7:18-19절에는,
"죄악, 허물, 우리의 죄악, 우리의 모든 죄"가 강조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어떻게 처리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사유하시며, 넘기시며, 발로 밟으시고,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즉 다시는 기억지도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지는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그 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서뿐입니다.


④ 하나님은 어디에 근거하여 이렇게 해주신다고 말씀하는가?

"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7:20) 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그 언약과 맹세를 지키시기 위해서(창 22:18) 이처럼 인애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⑤ 이 찬양을 신약성경에서 처녀의 몸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한 마리아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된다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눅 1:49, 55)
.

형제여, 하나님은 언약하신 바를 신실하게 지켜주셨습니다.

 당신의 거룩함으로 언약하시고 맹세하신 바를 어떻게 성실하게 지켜주셨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성경의 계시오,

이를 증거하여 하나님 아는데 자라가게 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더욱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기 위한 것이 성경을 구속사의 관점에서 보는 목적입니다.

 저는 이를 증거하기 위해서 미가서를 상고할 것입니다.


제여, 우리도 이렇게 찬양을 하십시다.

 "주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사유하시며,

우리의 허물을 넘기시며,

긍휼히 여기시사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셨나이다.

 진실로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아멘.

출처 : 구속사 파노라마
글쓴이 : 바람이어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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