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강해] 엡 1:22 - 23
- 설교 : 전준식 목사
일단의 청년들이 모여서 밤을 새우면서 자신들이 가진 비젼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청년은 말합니다. 나는 온 세상을 멋지게 다스리는 권력을 가지길 원한다. 한 청년은 온 세상의 비밀을 다 꿰뚫을 수 있는 지식을 갖기를 원한다. 어떤 사람은 나는 속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을 소유하고 싶다. 인기 있는 탈렌트가 되고 싶다. 유능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 그런데 어느 한 청년이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야 너는 비젼이 뭐냐? 이 청년은 깊은 한 숨을 몰아 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격하고 싶다". 여러분 감격해 보신 적이 언제 입니까? 설레여 본적이 언제입니까? 우리는 지난 시간에 셀레임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감격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지금 능력 많으신 예수님이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 역사 중에게 가장 큰 역사는 내가 부활한다는 것이요. 내가 하나님의 우편에 주님과 함께 앉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감격 속에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선머슴처럼 자란 산골 처녀가 있었습니다. 사내들 속에서 같은 또래의 소녀들을 보고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가 남자 인줄 알고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처녀가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도 이 아가씨는 바지입고 댕기 띠고 남자처럼 살다가 어느 날 사랑하는 그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슴속에 감격하며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도 생각 없이 바라보았던 풀잎과 들꽃이 신선하게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 소리가 싱그러웠습니다. 어제도 똑 같이 불던 바람이 어제의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어제도 흘러 내렸던 계곡의 물소리가 자기를 축복해 주는 물소리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축복 받을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산골의 처녀처럼 메마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주변에 온통 나를 축복 해 주고 있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축복을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그 분을 만나면 우리는 하나님이 내리시고 계시는 축복을 보는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서 참으로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선머슴같은 사람 옆에는 여전히 싱그런 바람과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 옆에는 여전히 성령의 바람과 성령의 생명수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감격하며 살고 계십니까? 우리는 다 놀라운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분을 만나면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내가 비록 이 땅에서 힘없이 살아도 나는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을 사람이라는 설레임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감격은 죽으면서 비싼 수의를 입지 않아도 됩니다. 비싼 관에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사람들이라면 모두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런 축복의 감격 속에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보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 22절 만물이 그 발아래 복종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우리는 무엇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세상에게 명령하고 있습니까? 돈을 지배하고 계십니까?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돈을 지배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돈에게 명령하지 못하고 애쓰고 수고해서 돈을 벌어 오는 남편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수고 해서 돈을 벌어 오는 남편을 존경합시다. 남편을 지배하지 마시고 돈을 지배하십시오. 힘들게 공부하고 지쳐서 돌아오는 아이를 잡지 마시고 공부를 지배하십시오. 능력 없는 목사를 지배하려고 하지 마시고 공중권세 잡은 어두운 영에게 명령하십시오. 그러면 왜 만물이 예수님에게 복종하는 것입니까? ---22-23 오늘 본문의 주제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성경적인 교회론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바울은 말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머리가 없는 몸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몸이 없는 머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몸이 없는 머리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몸이 없는 머리는 해골입니다. 머리 없는 몸을 보셨습니까? 그것은 참담합니다. 무서움입니다. 죽음입니다. 몸과 머리는 잠시라도 떨어져 있을 수 없고 늘 같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생명은 바로 예수님과 연합함에 있습니다. 만일 한 순간이라도 교회가 예수님과 분리된다면 그 교회는 참담한 교회가 되고 죽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하늘에 계시지만 몸인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얻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죄 많은 세상을 보시면서 한숨을 지으시다가도 기쁨으로 웃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몸인 우리들 때문입니다. 우리를 보시고 소망을 가지시고 우리를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 날 머리 없이 몸만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교회는 무섭습니다. 머리가 없기에 교회가 어디로 갈 야 할지를 모릅니다. 각기 자신의 소견대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섭게 자기들끼리 싸웁니다. 분열합니다. 진정한 교회는 머리와 몸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몸이 있어야 예수님의 거룩한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몸인 우리를 통하여 예수님은 거룩한 사역을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몸으로서 예수님께서 어떤 사역을 하시기를 원하시는 지 알고 그 사역을 할 때 비로소 그 사역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몸도 있고 머리도 있는데 전혀 성경적인 교회로 가지 못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입니까? 이런 교회는 병원에 병 문안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서 보면 참 안타까운 환자들을 많이 봅니다. 그 가운데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환자들은 몸에 마비가 와서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교통사고로 목이 부러진 사람은 목 아래를 느끼지 못합니다. 머리와 몸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환자는 목 아래로는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때문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아주 쉬운 일들만 합니다. 그러면서 쉽게 좌절합니다. 쉽게 지칩니다. 신경질이 납니다. 이런 환자를 교회로 적용해 보십시오. 머리와 몸은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신경 조직이 연결되지 않아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몸인 우리가 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분리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교회가 활동 해야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겨우 움직인다고 하는 게 쉬운 일들만 합니다. 전도는 어려우니 못한다고 말합니다. 선교도 어려우니 못한다고 말합니다. 조금만 일해도 쉽게 지치고 짜증을 냅니다. 그리고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겨우 예배드리고 썰물 빠져나가듯이 나가 버립니다. 무슨 일을 부탁할 까 무서워서 익명으로 교회를 다닙니다. 대중 속에 자신을 숨겨 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인 교통 사고를 당해서 몸과 머리가 서로 교통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머리와 몸이 진정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겉으로의 연합이 아니라 속으로의 연합니다. 핏줄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난 12월 달에 영국은 성공회와 감리교가 통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그러나 영국 성공회와 감리교가 제도의 연합이요 겉으로의 연합이라면 그것은 마치 교통사고 환자처럼 신경은 분리 된 채 겉만 연합된 마비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어떤 제도로 연합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의 하나됨은 프로그램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의 하나됨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하나됨과 같은 연합니다. 성경적인 결혼의 연합은 남자와 여자가 아교풀로 붙여지는 연합니다. 아교풀은 아주 강력한 접착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붙으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아교풀입니다. 그러나 이런 아교풀이 힘없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두 물건 중에 어느 한쪽이 먼지가 묻거나 더러우면 아교풀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지고 맙니다. 때문에 결혼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순결입니다. 깨끗함입니다. 이 순결함이 우리 부부 사이에서 실종되었을 때 가정은 깨어지는 것입니다. 서로가 분리되는 것입니다. 같이 한 지붕 밑에서 살지만 교통사고 난 마비 환자처럼 쉽게 짜증이 나고 기쁨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부부는 연합하셨습니까? 부부사이에 순결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말 앞에 자신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순결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늘 걱정입니다. 밖에 나가 있는 남편이 걱정입니다. 걱정이 깊어진 나머지 의심도 해 봅니다. 이것은 곧 부부 사이에 순결이 사라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시 순결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다시 연합 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성령의 씻김으로만 가능합니다. 진정한 교회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가 성령의 아교풀로 연합하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저절로 하나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몸인 우리는 모두들 각자의 생각들이 있습니다. 각자의 주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성령을 받으면 생각이 하나가 되기 시작합니다. 서로 다른 방언으로 말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기 시작합니다. 자기의 것을 성령의 공동체에 내어놓습니다. 왜 나를 구원시켜 주셨는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겨우 예배만 나오던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어렵게만 보이던 성경을 읽고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선교가 나하고 상관이 없는 줄 알았는데 성령이 주님과 나를 연합하게 하시니 왜 주님이 이 땅에 선교하러 오신 지를 이해하고 나도 선교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이 능력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다시 한번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충만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우리를 충만한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충만의 충만의 세계로 인도 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인터넷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터넷에는 무한한 정보가 있습니다. 알고 싶은 정보가 거의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인터넷 세계 1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전용선이 시골까지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최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모든 정보를 모두 넘나들며 충분히 그 정보들을 볼 능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의 거의 모든 정보가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고 성령이 충만 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만일 성령의 충만함이 교회에 없다면 우리는 병원에 누워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환자 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병원에 누워 있는 환자가 일어나듯이 우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능력을 행하시는 그 능력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나서 이제 밥도 먹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밥을 먹는 것이 서투를 것입니다. 밥을 떠서 먹을 려고 하지만 입을 늦게 벌리는 바람에 밥을 먹지 못하고 흘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할수록 우리는 입을 정확한 때에 벌려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 테니스를 배울 때 몸 따로 라켓 따로 움직이지만 성숙하면 할 수 록 몸과 라켓은 같이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교회가 성령 충만하면 할수록 몸인 우리들이 서로 따로 놀지 않고 함께 한 방향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정보를 충만히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삶이 풍요로운 삶인지를 알게 됩니다. 저는 우리 신림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머리로 몸인 것을 선포합니다. 이제 몸과 머리가 같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십시오. 연합하게 하시는 성령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무한한 세계로 안내 하십니다.
- 설교 : 전준식 목사
일단의 청년들이 모여서 밤을 새우면서 자신들이 가진 비젼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청년은 말합니다. 나는 온 세상을 멋지게 다스리는 권력을 가지길 원한다. 한 청년은 온 세상의 비밀을 다 꿰뚫을 수 있는 지식을 갖기를 원한다. 어떤 사람은 나는 속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을 소유하고 싶다. 인기 있는 탈렌트가 되고 싶다. 유능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 그런데 어느 한 청년이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야 너는 비젼이 뭐냐? 이 청년은 깊은 한 숨을 몰아 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격하고 싶다". 여러분 감격해 보신 적이 언제 입니까? 설레여 본적이 언제입니까? 우리는 지난 시간에 셀레임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감격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지금 능력 많으신 예수님이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 역사 중에게 가장 큰 역사는 내가 부활한다는 것이요. 내가 하나님의 우편에 주님과 함께 앉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감격 속에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선머슴처럼 자란 산골 처녀가 있었습니다. 사내들 속에서 같은 또래의 소녀들을 보고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가 남자 인줄 알고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처녀가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도 이 아가씨는 바지입고 댕기 띠고 남자처럼 살다가 어느 날 사랑하는 그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슴속에 감격하며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도 생각 없이 바라보았던 풀잎과 들꽃이 신선하게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 소리가 싱그러웠습니다. 어제도 똑 같이 불던 바람이 어제의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어제도 흘러 내렸던 계곡의 물소리가 자기를 축복해 주는 물소리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축복 받을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산골의 처녀처럼 메마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주변에 온통 나를 축복 해 주고 있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축복을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그 분을 만나면 우리는 하나님이 내리시고 계시는 축복을 보는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서 참으로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선머슴같은 사람 옆에는 여전히 싱그런 바람과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 옆에는 여전히 성령의 바람과 성령의 생명수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감격하며 살고 계십니까? 우리는 다 놀라운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분을 만나면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내가 비록 이 땅에서 힘없이 살아도 나는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을 사람이라는 설레임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감격은 죽으면서 비싼 수의를 입지 않아도 됩니다. 비싼 관에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사람들이라면 모두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런 축복의 감격 속에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보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 22절 만물이 그 발아래 복종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우리는 무엇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세상에게 명령하고 있습니까? 돈을 지배하고 계십니까?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돈을 지배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돈에게 명령하지 못하고 애쓰고 수고해서 돈을 벌어 오는 남편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수고 해서 돈을 벌어 오는 남편을 존경합시다. 남편을 지배하지 마시고 돈을 지배하십시오. 힘들게 공부하고 지쳐서 돌아오는 아이를 잡지 마시고 공부를 지배하십시오. 능력 없는 목사를 지배하려고 하지 마시고 공중권세 잡은 어두운 영에게 명령하십시오. 그러면 왜 만물이 예수님에게 복종하는 것입니까? ---22-23 오늘 본문의 주제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성경적인 교회론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바울은 말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머리가 없는 몸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몸이 없는 머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몸이 없는 머리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몸이 없는 머리는 해골입니다. 머리 없는 몸을 보셨습니까? 그것은 참담합니다. 무서움입니다. 죽음입니다. 몸과 머리는 잠시라도 떨어져 있을 수 없고 늘 같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생명은 바로 예수님과 연합함에 있습니다. 만일 한 순간이라도 교회가 예수님과 분리된다면 그 교회는 참담한 교회가 되고 죽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하늘에 계시지만 몸인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얻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죄 많은 세상을 보시면서 한숨을 지으시다가도 기쁨으로 웃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몸인 우리들 때문입니다. 우리를 보시고 소망을 가지시고 우리를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 날 머리 없이 몸만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교회는 무섭습니다. 머리가 없기에 교회가 어디로 갈 야 할지를 모릅니다. 각기 자신의 소견대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섭게 자기들끼리 싸웁니다. 분열합니다. 진정한 교회는 머리와 몸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몸이 있어야 예수님의 거룩한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몸인 우리를 통하여 예수님은 거룩한 사역을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몸으로서 예수님께서 어떤 사역을 하시기를 원하시는 지 알고 그 사역을 할 때 비로소 그 사역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몸도 있고 머리도 있는데 전혀 성경적인 교회로 가지 못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입니까? 이런 교회는 병원에 병 문안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서 보면 참 안타까운 환자들을 많이 봅니다. 그 가운데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환자들은 몸에 마비가 와서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교통사고로 목이 부러진 사람은 목 아래를 느끼지 못합니다. 머리와 몸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환자는 목 아래로는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때문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아주 쉬운 일들만 합니다. 그러면서 쉽게 좌절합니다. 쉽게 지칩니다. 신경질이 납니다. 이런 환자를 교회로 적용해 보십시오. 머리와 몸은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신경 조직이 연결되지 않아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몸인 우리가 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분리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교회가 활동 해야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겨우 움직인다고 하는 게 쉬운 일들만 합니다. 전도는 어려우니 못한다고 말합니다. 선교도 어려우니 못한다고 말합니다. 조금만 일해도 쉽게 지치고 짜증을 냅니다. 그리고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겨우 예배드리고 썰물 빠져나가듯이 나가 버립니다. 무슨 일을 부탁할 까 무서워서 익명으로 교회를 다닙니다. 대중 속에 자신을 숨겨 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인 교통 사고를 당해서 몸과 머리가 서로 교통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머리와 몸이 진정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겉으로의 연합이 아니라 속으로의 연합니다. 핏줄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난 12월 달에 영국은 성공회와 감리교가 통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그러나 영국 성공회와 감리교가 제도의 연합이요 겉으로의 연합이라면 그것은 마치 교통사고 환자처럼 신경은 분리 된 채 겉만 연합된 마비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어떤 제도로 연합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의 하나됨은 프로그램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의 하나됨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하나됨과 같은 연합니다. 성경적인 결혼의 연합은 남자와 여자가 아교풀로 붙여지는 연합니다. 아교풀은 아주 강력한 접착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붙으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아교풀입니다. 그러나 이런 아교풀이 힘없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두 물건 중에 어느 한쪽이 먼지가 묻거나 더러우면 아교풀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지고 맙니다. 때문에 결혼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순결입니다. 깨끗함입니다. 이 순결함이 우리 부부 사이에서 실종되었을 때 가정은 깨어지는 것입니다. 서로가 분리되는 것입니다. 같이 한 지붕 밑에서 살지만 교통사고 난 마비 환자처럼 쉽게 짜증이 나고 기쁨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부부는 연합하셨습니까? 부부사이에 순결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말 앞에 자신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순결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늘 걱정입니다. 밖에 나가 있는 남편이 걱정입니다. 걱정이 깊어진 나머지 의심도 해 봅니다. 이것은 곧 부부 사이에 순결이 사라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시 순결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다시 연합 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성령의 씻김으로만 가능합니다. 진정한 교회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가 성령의 아교풀로 연합하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저절로 하나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몸인 우리는 모두들 각자의 생각들이 있습니다. 각자의 주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성령을 받으면 생각이 하나가 되기 시작합니다. 서로 다른 방언으로 말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기 시작합니다. 자기의 것을 성령의 공동체에 내어놓습니다. 왜 나를 구원시켜 주셨는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겨우 예배만 나오던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어렵게만 보이던 성경을 읽고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선교가 나하고 상관이 없는 줄 알았는데 성령이 주님과 나를 연합하게 하시니 왜 주님이 이 땅에 선교하러 오신 지를 이해하고 나도 선교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이 능력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다시 한번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충만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우리를 충만한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충만의 충만의 세계로 인도 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인터넷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터넷에는 무한한 정보가 있습니다. 알고 싶은 정보가 거의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인터넷 세계 1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전용선이 시골까지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최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모든 정보를 모두 넘나들며 충분히 그 정보들을 볼 능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의 거의 모든 정보가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고 성령이 충만 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만일 성령의 충만함이 교회에 없다면 우리는 병원에 누워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환자 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병원에 누워 있는 환자가 일어나듯이 우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능력을 행하시는 그 능력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나서 이제 밥도 먹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밥을 먹는 것이 서투를 것입니다. 밥을 떠서 먹을 려고 하지만 입을 늦게 벌리는 바람에 밥을 먹지 못하고 흘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할수록 우리는 입을 정확한 때에 벌려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 테니스를 배울 때 몸 따로 라켓 따로 움직이지만 성숙하면 할 수 록 몸과 라켓은 같이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교회가 성령 충만하면 할수록 몸인 우리들이 서로 따로 놀지 않고 함께 한 방향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정보를 충만히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삶이 풍요로운 삶인지를 알게 됩니다. 저는 우리 신림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머리로 몸인 것을 선포합니다. 이제 몸과 머리가 같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십시오. 연합하게 하시는 성령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무한한 세계로 안내 하십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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