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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카톨릭의 기원

하나님아들 2013. 9. 26. 12:01

   

카톨릭의 기원

 

3세기까지도 로마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던 수 많은 교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던 로마교회가, 중세기를 장악한 로마 카톨릭 교회가 되고, 지방 교회의 일개 장로에 불과했던 로마교회의 감독이, 세계 교회의 머리가 
되어 중세기를 호령한 것은 자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과 그 후의 신성 로마제국의 정치적 군사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콘스탄틴 황제(AD 306-337)와 유스티니안 황제(AD 527-565)는 교황권을 양육하여 중세기의 주인으로 성장시킨 사람입니다.

 
312년 10월 27일 콘스탄틴황제가 꿈과 환상으로 그에게 나타났다는 "불붙는 광채의 십자가"를 힘입어, 적수였던 막센티우스황제를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이긴 뒤,그리스도인에 대한 로마의 태도는 일대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313년 3월에는 「밀란의 칙령」이 반포되어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고, 성직자들에게는 병역, 세금 및 각종 시민의 의무가 면제되고(AD 313), 사법상의 특전도 베풀어져 세상 법정에서 재판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성직제도는 졸지에 타락하여 성직매매가 성행했고, 민중의 호응과 인기를 얻기 위해 교회의 문지방은 낮아질대로 낮아져 세속과 이교(異敎)의 물결이 넘쳐 들어왔습니다. 

예배는 극도로 이교화 하였고, 321년 3월 7일에는 아직도 콘스탄틴황제가 현직 대제사장이었던 페르샤의 태양신 미드라(Mithras)의 예배일인 일요일에 휴업하라는 포고가 내려졌습니다.

 
이러한 틈 새에서 국가의 비위를 맞추며 꾸준히 정치적 기반을 굳혀 온 로마교회의 감독은 황제의 이러한 종교정책을 열렬히 환영하며, 세계교회의 머리가 되기에 안간 힘을 썼습니다. 

326년 콘스탄틴황제는 선동죄로 처형된 것으로 전해지는 황후 파우스타 (Fausta)의 라 테란 궁전을 로마교회 감독 실베스터(Sylvester)에게 주어 공관을 삼게 했습니다.

 
330년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틴노플로 옮기게 되자, 로마교회의 감독은 황제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교권을 확장하게 됐습니다.

 
375년 이제까지 로마황제들이 공식명칭으로 쓰고 있던 이교 대제사장의 칭호인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Maximus)를, 그리스도인인 그라시안(Gracian) 황제가 비로소 포기하자, 자신을 높이기에 급급했던 로마교회 
감독은 즉시 이를 채택하여, 자신의 칭호로 삼아 오늘날까지도 교황의 공식 칭호가 되고 있습니다.

 
476년 서로마가 망한 뒤, 로마교회 감독은 황제의 이미지로 군림하여 정치와 종교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496년 게르만 민족의 강자인 프랑크의 국왕 클로비스(Clovis)를 개종시켜, 로마교회의 양자로 삼음으로써 중세기 동안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했습니다.
특별히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안은 로마교회 감독으로 하여금 세계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서로마의 잃어 버린 통치권을 되찾고, 이전의 통일된 대제국을 이룩해 보려는 목적으로 황제는 로마교회의 영항력을 십분 이용하려 했습니다.

 
유스티니안은 493년 아리안주의(Arianism) 게르만 민족으로 하여금 이탤리 반도와 로마교회를 위협해 온 헤루리를 정복하고, 534년에는 같은 이유로 반달족을 정복했습니다. 


533년에는 로마교회 감독을 "세계교회 머리"로 공식 인정하고 이 사실을 534년에 그의 법전에 편찬했습니다. 

538년에는 아직도 이탤리 반도와 로마교회 감독의 지상권에 도전하는 마지막 아리 안주의 게르만족인 동고드를 군사력으로 정복하여, 마침내 교황권을 중세기의 권좌 (權座)에 앉혀 놓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 서유럽의 실력자가 된 프랑크왕 피핀(Pepin 741-768)은 왕위를 찬탈한 자신에게 왕관을 씌워준 데 대한 감사로, 로마교황을 적극 후원하여, 754년에는 롬바드에게서 빼앗은 동로마제국의 영지를 교황에게 주어 교황령이 되게 함으로써, 로마교회는 이제 영토를 가진 국가가 되었습니다.

 
피핀 왕의 아들 촬스 대제는 군사력을 동원하여 곤경에 빠진 로마교황을 정치적 위기에서 구원한 뒤, 서기 800년 크리스마스에 성 베드로 사원에서 교황 레오 3세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음으로써, 역사적인 신성 로마제국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 제국은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막을 내리기까지 1,000여년 간 교황권의 성실한 보호자 구실을 했습니다. 

십자군을 일으켜 알비젠스, 왈덴스등 개혁파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허스와 제롬을 불사르고, 루터의 종교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편의와 힘을 제공한 것이 바로 신성로마제국이었습니다.

 
따라서 카톨릭은 초대교회를 계승한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초대교회를 핍박하고, 이방종교를 흡수한 혼합종교이고, 정치적 후원으로 성장하였으며, 권력과 금력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세상적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카톨릭의 비 성경적 교리 역사

1. 루시안이 장로를 사제라고 처음으로 부름 --- 2세기 
2. 시프리안이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를 만들어 냄 --- 3세기 
3. 죽은 자를 위한 기도(바빌론 종교의 풍습) --- A.D. 300 
4. 십자가 형상을 만듦 --- A.D. 300 
5. 촛 불 --- A.D. 320 
6. 천사, 죽은 성인들, 형상 숭배 --- A.D. 375 
7. 미사가 매일 드리는 예식이 됨 --- A.D. 394 
8. 에베소 공회를 통해 마리아를 높이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로 부르기 시작 --- A.D. 431 


9. 사제들이 특별한 옷을 입기 시작 --- A.D. 500 
10. 최후의 도유(치유를 위한 의식) --- A.D. 526 
11. 그레고리 1세가 연옥의 교리 확립 --- A.D. 593 
12. 예배 때 라틴어 사용 --- A.D. 600 
13. 마리아, 죽은 성인들, 천사들에게 기도 --- A.D. 600 
14. 최초의 교황 (보니파 3세) --- A.D. 610 
15. 교황의 발에 입 맞춤 --- A.D. 709 
16. 프랑크 왕 페핀이 교황에게 세속 권력을 넘겨줌 --- A.D. 750 
17. 십자가, 형상, 유물 숭배 인정 --- A.D. 786 
18. 소금, 기름을 섞은 물에 사제가 축성해서 성수로 만듦 --- A.D. 850 
19. 성 요셉 숭배 --- A.D. 890 
20. 추기경 대학 숭배 --- A.D. 927 
21. 교황 요한 13세가 종(鐘)에 세례를 베품 --- A.D. 965 
22. 교황 요한 15세가 죽은 사람들을 성인으로 선언함 --- A.D. 995 
23. 금요일과 시순절 금식 --- A.D.  998 
24. 미사가 점차 희생제사로 발전하고, 참석이 강요됨 --- A.D. 11세기 
25. 사제들의 독신생활 --- A.D. 1079 
26. 은둔자 베드로가 묵주 사용(이교도 관행)도입 --- A.D. 1090 
27. 베로나 공회 떼 종교재판소 제정 --- A.D. 1184 
28. 면죄부 판매 --- A.D. 1190 
29. 피터 롬바르트가 일곱가지 성사 확정 --- A.D. 12세기 
30. 이노센트 3세가 화체설 확립 --- A.D. 1215

 
31. 이노센트 3세가 죄를 하나님이 아닌 사제의 귀에 들리게 고백하는 의식(화해의 의식)제정 --- A.D. 1215 

32. 교황 호노리우스 3세가 성병 숭배 제정 --- A.D. 1220 


33. 발렌시아 공회 때 성경이 평신도들에게 금지되고 금서 목록에 포함됨 --- A.D. 1229 

34. 영국의 사이몬 스톡이 성의를 만들어 냄 --- A.D. 1251

 
35. 콘스탄스 공회 때 평신도들은 영성체 때 잔은 받을 수 없게 됨 --- A.D. 1414

 
36. 플로렌스공회 때 연옥이 교리로 확정됨 --- A.D. 1439 

37. 트렌트 공회 때 교회의 전통도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 됨 --- A.D. 1545

 
38. 트렌트 공회 때 외경도 성경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결정됨 --- A.D. 1546 
39. 교황 피오 4세가 만든 신조가 원래의 사도들의 신조 대신 공식 신조로 채택됨 --- A.D. 1560

 
40. 교황 피오 9세가 마리아의 무염시태 (죄없이 잉태됨)을 선언함 --- A.D. 1854

 
41. 교황 피오 9세가 "유설표"를 공표하고 바티칸 공회가 인준함, 로마 카톨릭교회가 승인하지 않는 종교, 양심, 언론, 과학적 발견의 자유를 정죄함, 교황이 세상 통치자들의 세속 권세 위에 권위를 가졌다고 인정함 - A.D. 1864

 
42. 바타칸 공회를 통해 믿음과 도덕적인 모든 문제에 교황의 절대무오류성 선언 --- A.D. 1870 
43. 피오 12세가 마리아의 몽소승천 선언 --- A.D. 1950 
44. 교황 바오로 6세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 부름 --- A.D. 1965 
 
 
3. 교황제도

카톨릭은 교황을 가르켜 베드로의 사도직분을 계승하고, 그리스도의 대리자며, 전체교회의 머리이고, 거룩한 아버지며, 무오한(오류가 없는) 존재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황의 교시를 성경보다 높게 생각합니다.그러나 교황에 대한 이러한 교리는 성경에 근거가 없으며 하나님, 예수님,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입니다.

교황은 인간에 불과하며 역사상 많은 부도덕한 일(살인, 신성모독, 치부, 성직매매, 술취함, 간음, 동성연예, 근친상간)을 자행해 왔습니다.


중세시대 때에는 왕을 능가하는 부와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이는 예수님이 제시한 섬기는 지도자 상과는거리가 먼 일입니다.

교황 세르기우스 3세(A.D. 904~911)는 살인을 통해 교황직을 얻었고, 여자과 관계해 불법으로 사생아를 낳았습니다.

교황 요한 12세(A.D. 955~964)는 성적으로 문란해 교황청에 창녀들을 불러들였고 도덕적 부패가 극에 달했습니다.주교 50명이 성베드로 성당에 모여 교황을 절도, 성직매매, 위증, 살인, 간음, 근친상간으로 고소했으나, 교황 요한
12세는 오히려 추기경과 주교들을 채찍으로 때리고 팔과 코와 귀를 자르는 보복을 하였습니다.


교황 요한 15세(A.D. 985~996)는 교회 재정을 자기 친척들에게 나누어 줘 부패한 자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교황 베네딕트 8세(A.D. 1012~1024)는 공개적으로 뇌물을 주고 교황직을 산 부도덕한 인물입니다.

교황 베네딕트 9세(A.D. 1033~1045)는 대낮에 살인과 간통을 자행했고, 순례자들을 강탈하다가 추방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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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이노센트 3세(A.D. 1160~1216)는 종교재판소를 창설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을 백만명 이상 살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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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23세(A.D. 1410~1415)는 주교와 사제로 구성된 37명의 증인에 의해 음행, 간통, 근친상간, 남색, 성직매매,도둑질, 살인죄로 고소당했고, 300명의 수녀들을 겁탈하였습니다.

바티칸 기록에 의하면 그는 자기 형제의 아내와 변태 성행위를 자행하였고, 수백명의 처녀들과 성관계를 가졌고,결혼한 여자들과 간음을 행함으로써 공개적으로 악마의 화신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교황 비오 2세(A.D. 1458~1464)는 육욕에 빠지는 방법을 가르쳤고, 많은 사생아의 아버지였습니다.

교황 바오로 2세(A.D. 1464~1484)는 비싸고 호화로운 왕관을 쓰고, 궁전에 많은 첩을 두었습니다.


교황 식스투스 4세(A.D. 1471~1484)는 교회 직분을 경매로 팔아 전쟁자금을 충당했고, 친척들에게 치부한 돈을 나누어 주었으며, 어린 조카 8명을 추기경으로 임명하였고, 사치스럽고 화려한 잔치를 종종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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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이노센트 8세(A.D. 1484~1492)는 여러 여인과 성관계를 통해 16명의 자녀를 두었고, 자녀 중 몇 명은 바티칸에서 결혼식을 거행하였고, 교회 직분을 늘려 돈을 받고 팔았고, 성 베드로 광장에서 투우 경기를 벌였습니다.

교황 알렉산더 6세(A.D. 1492~1503)는 추기경을 뇌물로 매수해 교황직에 선출되었고, 품행이 나쁜 자기 젊은 아들을 발렌시아의 대주교로 앉혔으며, 자기의 두 누이와 근친상간하고, 자기의 딸 루크레티아에게서 자녀를 두었습니다.


교황 레오 10세(A.D. 1513~1521)는 8세에 수도원장이 되었고, 13세에 추기경이 되었으며, 값비싼 유흥과 연회를 통해 술 마시고 흥청망청 놀았으며, 교황의 궁전에서 12명의 벌거벗은 소녀에게 저녁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교황 바오로 3세(A.D. 1534~1549)는 전에 추기경으로 있을 때 자녀를 두었었고, 십대의 어린 조카 두 명을 추기경으로 임명하였고, 가수와 무희와 어릿광대를 동원해 축제를 후원했고, 점성가를 불러 조언을 구했습니다.

교황이 머리에 쓰는 관은 바빌론의 인어 모양의 신인 다곤 신이 썼던 것과 비슷합니다.

출처 : 푸른초장 나눔의집
글쓴이 : 은혜와 평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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