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 사도신경!! 십계명!신앙고백

[스크랩] 사도신경분해2

하나님아들 2013. 8. 22. 21:46

셋째로;사도신경 본문 주해


1.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1) 개요
사도신경은 누구를 고백하는가? 사도신경은 우리가 곧 고백해야 할 아버지, 전능자,

하늘과 땅의 창조자의 세 규정들로써 고백의 대상을 구체화한다.

여기서 언급한 하나님은 사도신경의 전체에서 표현된 하나님 아버지,

아들,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2) 전능하신 하나님을 고백
전능하신’이란 말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히브리말로 ‘샤다이’의 번역이다.

성경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말은 하나님의 주권의 한 측면을 나타낸다.

곧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주권을 의미한다.

이 사랑이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소개해 주신 것이다.

결국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

사랑의 주권을 행사하는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전능이란 말의 뜻은

전적으로 능하다”,

“모든 것에 있어서 가능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모든 것의 범위에 대한 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일 모든 것의 범위를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은 아름다운 것,

선한 것, 합리적인 것, 이성적인 것, 자연적인 것 등을 하시는 동시에 또한 더러운 것, 악한 것,

 비합리적인 것까지도 하신다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면

기독교 신관은 매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즉 하나님은 악을 행하시기도 하고 또한 감정에 따라

인간을 감정적으로 취급하신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본래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와 같은 당신의 성품에 반대되고

모순되는 일을 하시지 않는다.

 

또한 ‘가능’이라는 의미를 인간적인 사고의 체계에 묶어두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본질적인 성품에 모순되지 않으면서,

그의 큰 뜻에 따라 이렇게도 하시고 저렇게도 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의 시각으로 합리적인 일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때로는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기도 하신다.

그런데 20세기 불투만과 같은 신학자는 사실에 대한 모든 문제들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확정되며, 모든 역사적 진술은 역사가들의 일상적 절차를 통해

 입증될 때 비로소 수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으신 사실과

자신이 생각하기에 신화적이라고 보는 부분을 부정하는 오류를 낳기도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피조물인 인간의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면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창조주 하나님을 과소평가하고 삼차원적인 인간의 기준이하로 끌어내리는

 불신앙된 모습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인간의 편에서는 하나님의 기적이나 이적이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이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무소부재, 무소부지, 무소불능이라고 표현한다.

무소부재란 하나님은 안 계시는 곳이 없다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는 말이고, 무소부지는 사람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시며, 마음속의 생각과 혀의 말까지 다 알고 계시는

그야말로 모르시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또한 무소불능이란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천지창조이다.


3) 우주의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
창조는 기독교 신학의 근본적인 전제이다.

창조 신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증언을 포괄적으로 규정한다.

형식적으로 창조라는 개념은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창조라는 말은 지금도 창조를 해 가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뜻한다.

곧 만물을 신적으로 창조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소극적인 의미에서 창조란 하나님의 창조를 통하여 다양한 현실의 현존재에로 부름 받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이 소극적인 의미의 창조는 자연과 역사 속에 있는 일체와 함께

그 각각의 요소들이 창조주와 불변의 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사도신경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그 안에 서식하고 있는 모든 생물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일체의 것을 창조하셨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전우주의 지배자이시다.

모든 인간의 생명의 주이고 역사를 지배한다.

그의 지배권은 교회와 믿는 자들의 삶의 영역을 넘어서 천체의 세계와 만물에 미친다.

그의 지배권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창조자 하나님 밖에 있는 것은 죽음과 무일 뿐이다.

 

사도신경은 바로 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물의 창조자시며 보존자이심을 고백한다.

세계는 하나님 없이 존재하거나 이해될 수 없다.

하나님은 홀로 계시지 않고 피조물의 자유를 기뻐하시고 피조물을 돌보시면서

세계 안에 피조물과 함께 계신다.


4)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근원
이스라엘은 이 세계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것을 어떻게 알고서 믿었을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신앙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하나님의 역사적인

구원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그의 선택된 백성을 위하여 특정한 시간과 특정한 장소에서

구원과 해방의 역사를 이루셨다. 그러므로 창조주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해방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분리될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다.


5)구별되는 피조물과 창조자 하나님
하나님이 태초에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을

성경 첫머리에 고백하고 있음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것은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는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흘러나왔으므로

신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강이나 산, 나무나 바위 등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은 창조신앙에 배치된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피조물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선한 피조물일 뿐이다.

그러므로 피조물들을 신으로 삼고 섬기는 것은 창조자

하나님을 거스리는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

내가 하늘과 땅의 창조자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신앙고백은 “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라는 십계명을 지키는 신앙의 삶을 형성하는 것이다.


6)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과 인간의 책임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생명체들은 상호관계 안에서 번성한다.

그들은 깊은 영향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풍부한 생명력을 발휘한다.

그들은 조화 속에서 찬란한 빛을 발한다.

 

인간은 창조자의 이 깊은 지혜와 섭리에 따라서 창조되고 보존되는

창조의 세계를 관리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피조물을 돌보는 선한 목자로서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하나님의 지배의 방식처럼 모든 生物들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섬세한 관심과 생에 대한 경외감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자연을 지나치게 이용하고 오용하고 착취만 거듭해 왔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의 죄악된 행동과 탐욕적인 착취로 중병에 걸려 신음하게 되었다.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만물, 인간을 기르고 먹이는 땅,

우리의 젖줄인 강물들은 오염되어 죽어가고 있다.

 

공기의 오염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져 가고 공장의 폐수와 세제 거품으로

물고기는 멸종되고 바다와 강은 악취를 풍긴다.

이리하여 인류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되어가고 있고,

자연환경이 죽어가므로 인간도 병들고 죽어간다.

 

이러한 위기에 기독교의 창조주 신앙은 자연에 대한 이해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계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들을 긍정하고 찬양하고 감사한다는 것은 피조물들의 겉모양에

피상적으로 도취하는 태도일 수 없다. 이제 피조물들의 수난,

고통, 치명적인 병들이 일어나는 인간적인 원인들을 근본적으로 규명하여 그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살아있는 신앙고백을 이루리라 생각한다.


7)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시는 하나님
무소불능하신 능력으로 천지와 만물을 만드시고 무소부재하신 능력으로

천지와 만물을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어

우리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신다는 고백이다(시편19:1-6, 139:7-10).
아버지라는 말은 사랑하는 자기 백성의 유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하시려 하신다는 말이다. 전적으로 우리의 모든 필요 즉 영적, 육체적, 정신적 필요를 책임져 주시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1. 개요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에 해당하는

예수 그리스도 곧 성자 하나님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사도신경의 대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개에서 시작한다.

즉 그의 신분과, 출생, 죽으심, 장사지냄, 부활, 승천, 재림 등으로

세분적으로 구분해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측면에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속에서 비로소

주관적으로 구속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본 항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인 성자 예수님의 신분과 속성

그리고 인간을 향한 역할을 암시하고 있다고 본다.


2. 문자적인 의미
‘그 외아들’이란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를 분명하게 나타낸 것이고,

 외아들은 맏아들로 모든 유업을 이을 자로 하나님의 참 생명을 영원히 이을 자를 뜻한다. “

우리 주”에서 ‘우리’라는 말은 세계 만민을 의미하며 ‘주(Lord)'는

모든 생명과 역사와 생사화복의 주관자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주님이 되신다는 이 고백은 단순한 교리 이상의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첫째로, 지배권이 주님에게 있다는 말이다.

즉, 나를 지배하고 내 가정을 지배하는 이는 내가 아니고 주님이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소유권이 주님에게 있다는 뜻이다.

나의 인격, 재능, 소유, 재산, 자녀 등,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는 뜻이다.

 

셋째로 명령권이 주님에게 있다는 뜻이다.

 

넷째로 생명권이 주님에게 있다는 뜻이다.

오늘 우리는 과연 이런 신앙으로 주님을 부르고 고백하고 있는가?

우리는 각자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의 ‘예수’는 헬라어로 ‘구원’이란 뜻이며, ‘

그리스도’란 말은 히브리어로 ‘메시야’란 말로써 ‘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 임금, 제사장, 선지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신앙이다. 또한 ‘믿사오니’는‘믿습니다’라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망 중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3. 종합적 의미
사도신경에서 두 번째 고백에 해당하는 성자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역사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주님이요

그리스도 즉 메시야가 되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고백이다.

 

예수님에 대한 주장은 기독교의 시금석인 동시에 기독교를 유일무이한 것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신약성경 전체가 이것을 주장하고 입증하기 위하여 기록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도신경이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에 대하여 가장 상세히 천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놀랄 필요는 없다.

 

사도신경에서 성자 예수님에 대한 부분은 사도신경의 구도상 중심에 놓여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긴 대목이 두 개의 짧은 대목,

즉 아버지와 성령에 대한 대목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주장은 사도신경에 나타난 믿음의 중심이 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삼위일체나 구원, 부활, 영생에 대하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대속하심으로 이 모든 진리를 나타내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출처 : 점촌 반석 교회
글쓴이 : 별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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