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

[스크랩] "여호와의 사자" 정체에 관한 연구

하나님아들 2012. 8. 5. 23:30
심승우


1. 들어가는 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현현(顯現)과 연관되어 자주 등장하는 존재가 바로 여호와의 사자( , 말라크 야웨)다. 그러나 일부 구절에서는 여호와의 사자와 여호와 하나님이 뚜렷이 구분이 되나, 어떤 구절들은 하나님과 동일시되고 있어 그 정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논의된 여호와의 사자 정체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대리인(God’s agents)으로 이해하는 표상이론, 둘째,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동일이론, 셋째, 선재한 로고스(Logos) 또는 그리스도로 이해하는 로고스 이론, 넷째, 신화나 전설이 후대에 삽입되었다고 보는 삽입이론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또한 일부 비평학자들은 이를 외부적 영혼설, 사자양식이라는 문체적 특수성, 천상의 총리대신 등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시무언 김기동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현현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하나님의 전권대사, 하늘의 큰 심부름꾼인 한 천사로 이해한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 본 글은 먼저 여호와의 사자에 대한 어원적 접근을 시도한 후, 역사적인 이해를 살펴볼 것이다. 그 다음에 관련된 주석서와 성서학 저술, 다양한 해석들을 고찰하고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사자에 대한 김기동의 이해를 살펴볼 것이다.

2. 구약성경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총 58회 언급되고, 하나님의 사자(말라크 엘로힘)는 11회 언급되어 있다.1) 여기서 사용된 명사 말라크()는 우가릿어, 아랍어, 에티오피아어, 그리고 다른 셈족 언어들에서 “전달해야 할 메시지를 들려서 보낸다”라는 뜻을 지닌 어근 라크()에서 파생되었다. 말라크의 원 의미는 사자(使者, messenger)라는 뜻이다. 성경에서는 말라크는 초자연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천사, 예언자와 같은 이들로서 하나님의 사자(말라크 엘로힘, 학 1:13, 사 42:19), 다른 사람의 대리자로서의 사자(창 32:3, 삿 9:31) 등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구약성경에 나타난 말라크는 전부 천사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후대에 오면 말라크는 하나님을 수종드는 천사로만 사용된다.2) 여호와의 사자는 단수와 복수형태로 등장하며 통상적으로 처음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만남이 끝날 때는 그들 중 한 명이 하나님으로 현현한다(창 18:2, 22, 삿 6:11, 22; 13:3∼22).
하나님의 사자는 창세기와 사사기에 종종 등장하지만, 후기 시대를 다루는 문서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창세기 안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개인적으로 긴박한 위기의 순간에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창 21:17; 22:11, 15).
때로는 여호와의 사자가 하나님과는 구별되는 전달자로 나타나기도 한다(삼하 24:15∼17, 대상 21:15, 학 1:13, 슥 1:11, 12; 3:1). 그리고 때로는 하나님의 진정한 대표자가 되어서 그 존재가 주군(主君)의 존재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하나님 또는 왕의 조상(彫像)과 비견되는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여호와 자신과 동일시되기도 하며(창 16:7∼14; 22:11, 15, 출 3:2∼14, 삿 6:11∼24) 그의 역할은 인간을 축복(출 32:34)하기도 하며 심판(삼하 24:16)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 여호와와 여호와의 사자와 관계는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3) 따라서 좁은 의미에서 천사가 하나님의 사자로 생각되었느냐 아니면 대표자(representative)로 생각되었느냐에 따라서 강조점이 달라지게 된다. 전자의 견해를 수용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과 여호와와 천사가 확연하게 구별이 되며, 후자의 경우에는 여호와와 천사가 연합되어 있다는 쪽에 강조점이 주어진다.4) 하지만 구약성경은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와의 대표자일 때도 있고 사자일 때도 있다.5)
3. 여호와의 사자에 관한 역사적 이해

3.1. 유대교의 이해

유대교에서는 여호와의 사자를 한 명의 독립된 인격으로 보지 않는다. 단지 하나님의 대리인(God’s agents)으로 본다. 따라서 초기 성경 기록자들은 천사들을 개인화하거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따라서 창세기 32장 30절과 사사기 13장 18절에서 천사들은 “그들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을 거절하였다.6)

3.2. 초기 교회의 이해

3.2.1. 교부들의 이해

초기의 변증론자들로 시작하여 초기 교회의 교부들은 여호와의 사자를 통한 하나님의 현현을 확대 해석하였다. 이들은 필로(Philo)의 방식을 따라 하나님의 천사 속에서 선재하는 로고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자 했다.7) 저스틴(Justine)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의 사도시며, 때로는 불의 형태로 때로는 천사와 같이 나타났다”고 하여 출애굽기 3장의 여호와의 사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했으며 이레니우스(Irenaeous)도 “그 아들이 모세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내려왔다”라고 해석한다.8) 터툴리안(Tertullian)도 구약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사자는 선재하신 그리스도로 해석한다.9)

구약성경에 있는 계시와 신의 현현과 모든 하나님의 심판은 아들에 의해 중재되었다. 아담 때부터 교부들과 선지자들에 이르기까지 환상이나 꿈, 거울을 통해 희미하게, 그리고 때때로 내려와 인간과 대화한 사람은 바로 아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끝까지 성취하려고 했던 그 과정을 태초부터 항상 준비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비록 하나님이지만, ‘육신을 입게’ 될 ‘말씀’과 결코 다르지 않은 존재인 땅의 인간들과 교제하기 위해 항상 배웠다 .

노바티안(Novatian)은 로고스를 일자(一者)와 다자(多者) 사이의 매개자로 생각하여 신의 현현 사건들을 아들(the Son)의 현현이라고 간주하였다.

3.2.2. 아리우스주의자들의 이해

삼위일체와 관련된 논쟁에서 아리우스(Arius)주의자들은 초기 기독교의 일반적인 해석을 따라 구약의 족장사에 등장한 여호와의 사자를 로고스로 이해한다. 특히, 로고스가 육체로 오신 점을 들어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아들이 아버지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았다. 따라서 로고스는 본성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visible by nature)라는 논리적인 결론으로 몰고 갔다.

3.3. 어거스틴과 중세교회의 이해

한편 제롬(Jerome)과 어거스틴(Augustine)은 여호와의 사자를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활동하는 표상적(representative) 존재로 보고 있다. 어거스틴은 아리우스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삼위일체를 방어하고자 처음에는 성자의 열등성에 대한 이미지를 제거하여 구약의 여호와의 사자의 현현을 성부(the Father)로 간주하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변할 수 없으시기 때문에 천사들의 대리를 통해 일어났다고 제안했다.10)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중세교회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3.4.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의 이해

종교개혁 시대에 와서 칼빈(J. Calvin)은 변증론자들의 입장을 따라 여호와의 사자를 선재하신 그리스도로 보았다. 그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할 때, 사람이나 하나님의 직함을 가지고 이름을 변경하고 있으며, 스가랴 1장과 같이 다른 천사들을 지휘하는 우두머리 천사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를 그리스도께서 미래의 사역를 근거로 ‘그 사자(使者)’의 이름을 취하신 것으로 본다.11)

만일 이 천사를 그리스도로 간주한다면 이 생각은 성경의 일반적인 용법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한 천사가 다른 모든 천사 위에 탁월함을 나타내는 것은 선지자가 천사들과 전 교회 위에 능력을 행사하는 구속주를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라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종종 여호와로 현현한 자가 천사로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사의 이름과 여호와의 이름이 그리스도의 위격(位格)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12)

3.5. 근대 이후의 다양한 이해들

근대 이후에는 성서학 분야에 다양한 발전이 이루어짐으로 여러 이론들이 등장하게 된다. 비평학자들에 의해 논의된 견해들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을 대리한 천사로 간주하는 견해들이 존재한다. 또한 하나님의 현현을 단지 하나의 전설 또는 신화로 가정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현대 비평가들은 여호와의 사자에 대한 말은 구약 원문이 쓰인 지 오랜 후에 신학적 반성을 거쳐서 성경 본문에 삽입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3.6. 종합

이상의 견해들을 모두 종합해 보면 다음의 네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13) 첫째, 표상이론(Representation theory)으로 여호와의 사자를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활동하는 천사라 본다. 둘째, 동일 이론(Identity theory)으로 여호와의 사자를 하나님 자신이라고 본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가시적 존재로 보이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행동하고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셋째, 로고스 이론(Logos theory)으로 혹은 기독론적 해석으로 여호와의 사자를 선재(先在)된 말씀, 즉 로고스로 본다. 그 로고스는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넷째, 삽입 이론(Interplation theory)으로 성경 곳곳에 산재해 있는 하나님과 천사와의 혼란을 후대의 편집자들이 신학적인 반성을 하는 과정에서 삽입한 것이라 본다.



4. 여호와의 사자에 대한 제 견해들

4.1. 여호와의 사자의 계시론적 이해

여호와의 사자의 존재론적인 측면을 본격적으로 고찰해보기 전에, 먼저 그 계시론적 측면에서의 의의를 살펴보자. 최만공은 신현(神顯, theophany)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알리고자 하는 대상에게 일정 기간 동안 눈에 보이는 형태로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으로 언약적 교제를 나누는 특별계시의 한 형태다”.14)
베스터만(C. Westermann)은 하나님의 행하심(epiphany)과 하나님의 말씀하심(theophany)이라는 계시의 두 가지 형태를 언급한다. 그는 특히 구약 전체를 통해 드러난 여호와의 사자를 다양한 하나님의 말씀하심(God’s speaking) 중에서 특별히 일상 생활 속에서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특징으로 본다. 또한 하나님의 사자가 독자적인 영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명의 사신이라는 노트(Noth)의 입장을 지지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사신에게 임재한 것이 아니라, 그 메시지에 함께 하셨다고 말한다. 여호와의 사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가지고 들, 집, 그리고 여행 중인 사람을 만나는데 이러한 유형의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공간이라는 안전장치도 없이, 그리고 사람들에게 예기치 않게, 또 흔히 원하지도 않았는데 임하는 예언의 말씀을 포함한다고 말하고 있다.15)
노트는 使者라는 표현은 직접적 신접교통(神接交通)과 신적중개(神的仲介) 역할을 하는 선지자 사이의 과도적인 것으로 본다. 베스터만은 사자를 단계별로 다음같이 연구했다.16)
한편 폰 라드(G. von Rad)는 여호와의 사자는 인간적인 모습을 한 하나님 자신이라고 본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영역 안으로 들어오시게 되는 경우에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말이 사용되고, 하나님 자신을 가리킬 때는 여호와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17)

4.2. 동일이론

이 이론은 여호와의 사자란 하나님 자신의 임재에 대한 경외의 표현일 뿐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천사 숭배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나, 말라크란 단어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 즉 별칭(別稱 ; epithet)중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이다.18) 나현규는 출애굽기 3장 4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4절에서 갑자기 ‘여호와’로 전환 됨을 들어 이 둘이 곧 하나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본문에 갑자기 등장한 ‘여호와’란 명칭은 성경 저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그 이후의 각 문단의 처음에 나타나서 그 문단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19)

4.3. 기독론적 이해

여호와의 정체에 대한 기독론적 이해는 여호와의 사자를 선재하고 있던 로고스로 보던 초대교회 교부들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칼빈도 이를 성육신하기로 이미 예정된 성자가 일시적으로 미리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초기 여호와의 사자의 현현을 살펴보면 특히 한 명이 등장하는 경우, 이는 주로 복음이나 구원을 가져오는 행위와 관련이 되어 있으며,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시킨다. 그러므로 복음주의 진영의 많은 학자들은 구약성경에서의 삼위일체의 증거와 함께 연관시켜 이를 이해하고 있다.20)
벌코프(L. Berkhof)는 ‘여호와의 사자가 신적 자격으로 묘사되어 있다’(창 16:7∼13; 18:1∼21; 19:1∼22)는 것을 근거로 구약의 삼위일체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견해는 최근에도 호프만(Hoffmann), 카일(Keil), 델리취(Delitzsch)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21) 보스는 사자(使者)로서의 신현(神顯 ; Angel theophanies)은 구약에서 삼위일체가 계시된 것이라 본다. 즉,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처럼 나타나셨으며 하나님처럼 말씀하시고, 하나님처럼 경배를 받고, 하나님처럼 1인칭으로 이야기함으로써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질성을 지닌다. 한편, “내 사자”, “내 얼굴의 사자”라고 하여 하나님과는 구분된 다른 인격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이는 삼위일체를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22)
헹스텐베르크(Hengstenberg)는 그 사자를 단순히 피조된 존재로만 여긴다면 이는 어이없게도 하나님의 모든 현현이 겨우 비천한 천사들의 중재에만 전적으로 종속되고 만다는 어이없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만다고 주장한다. 또한 말라기 3장 1절에 가면 더욱 직접적으로 여호와의 사자가 기독론과 분명하게 연결되어 나타난다고 본다.23) 또한 베스터만은 여호와의 사자를 통한 계시가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계시 유형들 중에서 신약과 가장 근접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예수께서 성육신하셔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하나님의 행동을 대신하셨다는 사실은 구약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개념과 평행을 이룬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께서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인간이라는 신앙고백은 여호와의 사자에 관한 구약의 이야기(Narrative)들을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시킬 만 이해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24)
이러한 의견을 종합해 보면 비록 그가 바로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라고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의 속성과 기능과 사역은 신약의 그리스도를 충분히 가리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25)


5. 근대 비평이론들에서 나타난 다양한 이론들

5.1. 삽입 이론

개스터(Gaster)는 주의 천사가 나타나는 중요한 본문들을 대부분 통속설화(Maerchen)로 보고, 하나님의 사신(a messenger of God)으로 다루고 있다.26) 폰 라드는 이전에 존재했던 전승들에서는 하나님의 현현이 보다 화려했으나, 후대에 와서는 여호와가 아닌 여호와의 천사가 출현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이는 고대 근동(가나안)의 신적 존재들(Numen)의 현현 전승을 이스라엘 내부로 끌어들이면서 크게 변경한 결과로 본다. 즉, 이스라엘 이전에 존재하던 지역 전승들에서는 신적 존재의 현현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이 전승들이 이스라엘 안에 받아들여지면서 이스라엘의 신앙에 맞추어 여호와의 사자 전승으로 바뀌게 된 것으로 본다.
이때 그 교체가 문헌화되면서 의도적으로 첨가된 것인지, 그 이전의 구전 전승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는 알기 힘들다.27) 여기서 신학적 반성의 의미는 에드몽 자콥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28)

창 48:15,16에서 야곱은 그 조상의 하나님과 천사를 구별하고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속성들은 곧 천사들의 속성이다. 즉, 부족의 보호자인 천사는 이들의 삶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인간적인 면모를 강하게 보여주는데, 이러한 특징은 이후의 천사 개념의 발전과정 속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이 부족의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가나안 신들과의 접촉을 통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모세의 계시를 통해서 초월적인 하나님이 된다. 그 후로는 여호와의 사자를 하나님과 그대로 동일시하는 일은 불가능해지고,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한 현현 형태 또는 사자가 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에게 종속된다. 이 여호와의 사자라는 개념 덕분에 이스라엘은 조상들의 종교와 모세의 종교간의 연속성, 더 나아가 동일성을 선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여러 곳에 임재해 계신다고 말하면서도 여호와는 한 분이시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여호와께서 사람들 속에 개입하신다고 말하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초월성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이론은 현재 민담의 최종적 수정자가 그 수정을 통해 무엇을 의도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해명하고 있지 못하다.

5.2. 외부적 영혼설

아돌프 로드(Adolphe Lods)는 한 구절 안에 천사와 여호와가 함께 나오는 현상을 원시 부족들이나 이집트인과 같은 좀더 진보한 부족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외부적 영혼(an outward soul) 개념에 의거해서 설명한다.29) 이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인격의 어떤 부분들은 그 인격의 소속을 상실하지 않는 가운데 분리될 수 있고, 이 때문에 그 인격이 존재하게 된다. 이 분리된 요소들은 그 인격의 속성이기는 하지만 그 인격과 구분된다. 이 외부적 영혼은 물질적인 대상물에 거할 수 있고, 그 대상물이 파괴될 때 죽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구약에도 나오는 증거로 그는 게하시가 선물을 얻으려고 나아만을 뒤쫓아갈 때, 엘리사는 자기 집에 머물러 있었는데도 엘리사의 영이 그 악한 종과 함께 갔다는 성경구절을 이야기한다(왕하 5:26).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하나님에게도 적용되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아이히로트(Eichrodt)는 말라크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애당초 처음부터 위임받은 사자(使者)라는 특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다.

5.3. 양식 비평적 해석

스티어(F. Stier)는 천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인칭으로 말하는 것을 문체적 특수성 즉, 구약의 사자양식에 의거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이 양식에 의하면 사자는 자신을 보낸 자를 “A, B가 이렇게 말씀하셨다”와 같은 특정한 공식을 써서 소개한 후에 원래는 보낸 자가 사용하였던 “나”를 사용하여 보낸 자의 말씀을 전한다.
그러나 아이히로트는 이에 대하여 일종의 생략법에 의해 사자(使者)양식이 생략된다면, 하나님을 가리키는 “나”는 천상 사자의 말속에 직접적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창세기 21장 18절 또는 민수기 22장 35절과 같은 개별적인 경우들에서는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것은 일반적인 설명 원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다. 또한 다른 것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는 실제 메시지에 사용된 단어들 밖에서의 문법상의 주어의 변화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30)

5.4. 표상이론

일부의 비평 학자들은 여호와의 사자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천사로 보거나 혹은 한 명의 하나님의 사자로 본다.
레만(C. K. Lehman)은 여호와의 사자는 다른 천사들과 구별되어 있는데, 이는 언어학적인 측면에서도 ‘an angel of the Lord’라는 번역은 문법적으로 허용되는 방식이 아니기에 ‘the angel of the Lord’로 보는 것이 옳다고 지적한다. 즉,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천사를 지칭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이를 그 후에 나타날 성육신과 삼위일체의 증거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이러한 형태의 출현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구체적으로 함께 만나심으로써 그의 백성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시고자 하는 의도를 나타내 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 천사는 여호와와 같이 말하고 행동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사자와는 구별되어 더 높이 계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31)
에드몽 자콥32)은 여호와와 천사가 나란히 함께 행하는 것을 말하는 본문들에서조차 그들의 기능은 서로 구별됨에 주목한다. 예를 들면, 창세기 16장 7∼14절에서 하갈에게 여호와께서 그대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말한 것은 여호와의 사자다. 그러므로 천사는 여호와를 대신하여 나타나서 말을 전하는 사자(使者)일 뿐이고, 기도를 들으신 분은 오직 여호와뿐이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22장에서 “그 하나님의 사자”는 하늘의 높은 곳으로부터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여호와의 맹세를 알린다(15, 16절). 여기서 나타나는 천사의 기능은 자기를 보낸 자와 일시적으로는 스스로를 동일시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구별되는 인격체로 남는 예언자의 기능과 비교될 수 있다. 대예언자들이 여호와의 천사를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그는 다른 곳에서 천사가 맡았던 역할을 이제 예언자가 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33)

5.5. 천상의 총리대신설

이는 고대 근동에 등장하는 최고 신(神)의 대표자로서 이 땅에서 그의 뜻을 수행하는 ‘천상의 총리 대신이라는 개념’으로 여호와의 사자를 해석하는 입장이다.34) 궁켈은 왕과 관리들의 관계에서처럼 하나님은 자기 사자(使者)를 갖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이론적으로 발전시킨 스티어에 따르면 고대 근동에서 천상의 총리 대신이라는 개념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에서는 특정한 신들과 결부되어 있다.
하늘 궁정에 속한 이 존재는 바빌로니아에서는 느보(Nebo), 이집트에서는 토트(Thoth)라는 구체적인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바빌로니아에서 마르둑(Marduk)은 자신의 아버지인 에아(Ea)의 본질을 그대로 부여받은 존재로서 사람들이 에아(Ea)를 부르짖으면 그들을 돕는 자로 ‘보냄 받은’ 존재였다. 페니키아에서 아스다롯(Astarte) 또는 타닛(Tanit)은 바알과 그 숭배자들 사이를 중보하는 여신으로 생각되었다.35) 이와 비슷한 권세가 부여된 천사에 관한 산발적인 언급들로 추측해 보건데 이스라엘에서도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로 여호수아 5장 13절, 출애굽기 23장 20, 21절과 사사기 5장 23절의 말씀들을 에스겔 9장 2절(필기도구를 지닌 천사) 및 말라기 3장 1절(계약의 천사)과 비교해 봄으로써 우리는 천상의 총리대신이라는 개념이 존재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논거가 옳다면 출애굽기 14장 19절, 32장 34절, 33장 2절, 민수기 20장 16절과 같은 다른 구절들은 적절한 곳에 있는 것이 된다. 천상의 통치자라는 사상은 그러한 천상의 전권대사라는 인물을 위한 적절한 접촉점들을 제공해 주었음에 틀림없다.
스가랴서에서는 한 천사가 오랫동안 징벌을 받고 있는 이 민족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여 여호와가 곧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는 확신을 얻어낸다(슥 1:12). 또한 하늘 궁정 앞에서 대제사장에 대한 무죄 선언도 그 궁정을 주재하는 한 천사의 역할로 돌려진다(슥 3:1-8). 말라기에서는 계약의 천사가 최후 심판에 대한 이 선지자의 기대 속에서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하늘의 왕의 대표자로서 이 천사는 심판 행위를 위임받으며, 새로운 계약 백성을 깨끗케 할 자도 바로 이 천사이다. 여기서 천사와 신적인 계약 사이에 설정된 연계성은 외경들과 신약에서 발견하는 시내산 계약을 천사들의 중보로 돌리고 있는 것을 생각나게 한다(행 7:53, 갈 3:19, 히 2:2, Jub. 6:19, 22,14:20)36)


6. 김기동의 여호와의 사자 이해

김기동은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현현하는 천사며, 또한 그 지위와 역할에 있어 매우 특수한 위치에 있다고 본다.37) 즉,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현현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하나님의 전권대사 즉, 하늘의 큰 심부름꾼이며 구약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현현할 때에는 바로 여호와의 사자가 현현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측면만을 보자면 그의 견해는 궁켈과 스티어에 의해 발전된 천상의 총리 대신설과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 오르기 전까지만 하늘에서 하나님의 보좌(이름)를 지키던 한 천사로 본다.
여호와의 사자는 사실상 김기동의 신학 전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해의 바탕에는 ‘이름과 존재의 구별’과 ‘신약 중심의 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38) 김기동은 여호와의 사자와 관련된 문제를 하나님의 이름의 문제와 함께 다룬다. 그는 그 지위와 역할에서 ‘여호와라는 이름’과 ‘그 이름으로 나타나는 존재’를 구별한다.39)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이며, 그 이름으로 온 사자(使者)는 피조물인 천사라고 이해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사 중 하나가 바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대신하여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는 곧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을 계시하는 매개자인 것이다.40)
이처럼 이름을 공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가진 가장 독특한 영적 특성이며 여호와라는 이름은 곧 하나님과 천사가 공유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신약에 근거하여 여호와의 사자를 이해한다. 즉, 그는 사도행전 7장 30∼35절, 53절, 갈라디아서 3장 19절 등을 들어 모세에게 나타난 존재는 천사라고 본다. 그리고 비록 구약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나, 요한복음 1장 18절을 들어 하나님을 본 자는 아들 예수밖에 없다는 구절을 통해 여호와의 사자는 결코 하나님이 아니며 천사라고 본다.41)


7. 나가는 글

이상으로 여호와의 사자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살펴보았다. 이는 대체적으로 표상이론, 동일이론, 로고스이론, 삽입이론 등 네 가지 주요이론들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복음주의 진영의 학자들 중에서 이를 문자 그대로 천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선재(先在)한 그리스도로 볼 것인가를 놓고 볼 때 많은 학자들은 선재한 그리스도로 보는 것에 더 튼 비중을 준다.그러나 이를 논리적 비약이라고 비난하는 학자들도 있다. 굳이 삼위일체라는 관점에서만 여호와의 사자를 선재하신 그리스도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며, 또한 신약의 관점에서 보아도 무리가 되는 해석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명확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의도 신학에서 여호와의 사자라는 개념은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다. 그러므로 성경본문 연구를 통해서 더욱 밀도 있는 연구가 요청된다.
주)

1) 창 16:7∼13; 21:17, 18; 22:11∼18; 24:7, 40; 28:10∼18(cf. 31:11∼13); 32:24∼30(cf. 48:15,16; 호 12:3, 4); 출 3:2∼6; 13:21(cf. 14:19); 23:20∼23(cf. 33:14, 15); 32:34; 민 22:21∼35; 삿 2:1∼5; 6:11∼24; 13:3∼22; 삼하 24:16; 왕상 19:7; 왕하 19:35; 사 63:9; 슥 1:10,11; 12:8; 말 3:1.
2) Geoffrey Wigoder(ed.) The Encyclopedia of JUDAISM, New York: Macmillan Publishing Company, 1989. pp. 58-60.; Ludwig Koehler, Walter Baumgartner,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 II 1994, Leiden: The Netherlands. pp. 585-586.
3) Gordon J. Wenham, “Genesis”, WBC (Waco, Texas: Word Books, Publisher, 1987), pp. 74-75.
4) BDB에서는 위 구절에서 등장한 천사들을 단순한 천사로 간주하지 않고 “신현현천사”(Theophanic Angel)로 보았다. Francis Brown, S.R. Driver, Charles A. Briggs, The Brown-Driver-Briggs Hebrew And English Lexicon; With an Appendix containing the Biblical Aramaic, (USA: Hendrickson Publishers Inc. 1996), p. 521.
5) Edmond Jacob, 『구약신학』 박문재 역(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9), p. 84.
6) Jewish Encyclopaedia, (1901), p. 584. 김정우,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 『구약해석학 논문집1』(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1995), p. 293에서 재인용.
7) 고덕신은 필로가 장자인 로고스를 천사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이며 태초, 하나님의 이름, 말씀, 보는 자, 이스라엘 등의 여러 가지 이름을 가졌다는 것을 언급하며 이를 유대적 기독교에 있어서의 천사 기독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덕신, “유대적 기독교의 천사 기독론”, (신학석사학위논문, 연세대학교 대학원, 1981), pp. 60-61.
8) Adversus Haereses, 3.6.2. 헨리 비텐슨, 『초기기독교 교부』 박경수 역(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7), p. 109.
9) Adversus Praxean, 16. 헨리 비텐슨, op. cit., p. 170.
10) 로이 배튼 하우스편, 『아우구스티누스 연구 핸드북』 현재규 역(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4), pp. 288-299.
11) John Calvin, Calvin's Commentaries Volume. II Harmony of Exodus, Leviticus, Numbers, Deuteronomy trans. by Charles William Bingham,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81), pp. 60-63.
12) John Calvin, Calvin's Commentaries Volume. XV, Habakkuk, Zephaniah, Haggai, Zechariah, Malachi, trans. by Charles William Bingham,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81), p. 87.
13) 고덕신, “유대적 기독교의 천사 기독론”, (신학석사학위논문, 연세대학교 대학원, 1981), pp. 34-36.
14) 최만공 “모세 오경에 나타난 신현의 계시사적 이해”, (신학석사학위논문, 고신대학신학대학원, 1992), p. 8.
15) Claus Westermann, 『구약신학의 요소』 박문재 역(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9), pp. 18-31.
16) 요성실, “창세기 22:1∼19에 대한 주석적인 연구”, (신학석사학위논문, 서울신학대신학대학원 2000), p. 72에서 재인용.
17) G. Von Rad, Theologic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Vol. I. (Grands Rapids: Eerdmans, 1964), p. 77.
18) 그러나 이는 다소 불명확하며, 김태형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을 사자(使者)로 묘사하는 것은 창 48:16 ‘나를 모든 환란에서 구원하신 사자(使者)’ 한 곳만이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사마리아 오경에서는 말라크 대신 멜렉이 사용되고 있다. 김태형,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 이름에 대한 연구: 하나님 별칭(epithet)을 중심으로”, (신학석사학위 논문, 장로회신학대학교대학원, 2000), pp. 118-119.
19) 나현규, “출애굽기 3:1∼15의 주해적 접근을 통한 ‘야웨’ 의미와 속성 연구”, (신학석사학위 논문,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1999), p. 36.
20) 게세니우스(Gesenius)와 바빌로니아 탈무드(Babylonish Talmud)도 이와 같은 견해에 동의한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에서는 ‘이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그 거룩한 자(the Holy One)이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Thomas V. Moore, A Commentary on Zechariah, 윤영탁 역 (서울: 도서출판엠마오, 1983. p. 76 에서 재인용.
21) 카일은 그의 주석에서 “not in a created angelbut in the Angel of Jehovah, the visible manifestation of the visible God”이라 했다. C. F. Keil- F.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l I. (Michigan: Grand Rapids, 1983), p. 304.
22) Geerhardus. Vos, op. cit. pp. 84-88.
23) E. W. Henstenberg, “모세 오경과 여호수아서에 나타난 여호와의 使者”, 『구약해석학논문집8』 김정우 편(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1995), p. 44.
24) Claus Westermann, 『창세기 주석』 강성열 역 (서울: 도서출판한들, 1998), p. 197.
25) 김정우, op. cit. pp. 292-298.
26) 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I (Naschville: Abingdon press, 1962), pp. 128-130.
27) G. von Rad, 『구약성서신학I』 허혁 역(경북: 분도출판사, 1976. pp. 287-289. G. von Rad,『국제성서주석 창세기』(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0), pp. 210-211.
28) Edmond Jacob, op. cit., pp. 84-85.
29) Ibid., pp. 32-33.
30) Walther Eichrodt, 『구약성서신학 2』 박문재 역(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4), pp. 31-32
31) Chester, K. Lehman, 『성경신학 1(구약)』 김인환 역(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pp. 134-135.
32) Edmond Jacob, op. cit. pp. 84-87.
33) 학개에게 부여된 여호와의 사자라는 호칭은 이러한 방향으로의 해석을 시사해준다. 아울러 이 천사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내린 지시들을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 ’라고 말한다. (창 22:16)
34) F. Stier, Gott und sein Engel im AT, (1934), Walther Eichrodt, op. cit. pp. 33-35, 217-219에서 재인용.
35) 아이히로트는 자연 종교에서는 모든 지상의 것들 위에 높이 계신 지존의 신과 지상의 삶의 문제들로의 그 신의 실제적인 개입의 필요성 사이에 존재한다고 느껴졌던 간격은 계시의 담지자인 새로운 신적인 존재를 도입함으로써 신화적인 허구를 통해 메워졌다고 이를 설명하고 있다.
36) 하늘의 주와 그의 백성 사이의 간격을 강조하는 뚜렷한 경향이 예언주의운동(나비즘)에 있었다는 점과 아울러 이러한 예들 가운데 대다수가 그러한 집단에 밀접하였던 J기자로부터 나왔다는 점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37) 김기동,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서울: 도서출판베뢰아, 1996), pp. 66-67, 『성경에 나타난 세 영적 존재』(서울: 도서출판베뢰아, 1999), pp. 39-51, 『영의 세계를 알자』(서울: 도서출판 베뢰아, 1993), pp. 11-17를 참고하라. 아울러 여호와의 사자와 관련된 시무언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하라. 손정분, “김기동의 신명론과 하나님의 의도”, (신학석사학위논문, 서울침례신학교, 1996), 김정태, “하나님의 이름과 여호와의 사자(使者)”, 『한국신학』 통권 제8호, (1999·6), 김윤아, “하나님의 경륜에 나타난 이름과 형상의 관계 연구”, 『한국신학』 통권 제15호, (2002·3).
38) 김정태, “하나님의 이름과 여호와의 사자”, 『한국신학』 통권 제8호, (1999·6), pp. 108-114.
39) 손정분, “김기동의 신명론과 하나님의 의도”, (신학석사학위논문, 서울침례신학연구원, 1996), p. 15.
40) 김윤아, “하나님의 경륜에 나타난 이름과 형상의 관계 연구”, 『한국신학』 통권 제15호, (2002·3), pp. 79-81.
41) 이에 대하여 배경국은 이 구절에서 하나님을 본 자가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본체를 본 자가 없다는 말이지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인간 형상으로 현현(顯現)하신 것을 본 자가 없다는 말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며, 히 1:7도 시 104:4의 인용으로 비유와 은유를 통한 시적 표현으로 이 귀절의 불꽃, 바람, 구름 등을 천사의 현현과 동일시하여 구약의 모든 신(神)적 현현을 천사로 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주장한다. 배경국, “창세기에 나타난 신의 현현에 대한 연구” (신학석사학위 논문,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1986), pp. 96-97.

출처 : 예수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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