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 사도신경!! 십계명!신앙고백

[스크랩]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마 6:9-13)

하나님아들 2013. 3. 22. 11:59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마 6:9-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 부분은 둘로 나누어져 있으나 이 둘은 각각 나누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자가 소극적인 차원에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기도할 것을 강조하는 반면, 후자는 적극적으로 우리의 악에서의 승리를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의 전반 부분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뜻을 위해, 후반부분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 마지막 부분은 우리의 보호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사하여 주옵소서” 즉 죄사함을 받은 다음에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사함을 받은 다음의 순간이 성도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백함으로 주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을 확신하며 죄사함의 감격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만 그것으로 우리의 기도가 끝난다면 사탄은 곧 우리를 다시 묶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시험이란 시시각각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므로 죄사함 받은 후에 시험에 들지말게 해 달라는 기도가 없다면 우리는 곧장 전날에 범했던 죄 속으로 떨어져 고민하고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자에게 그의 죄를 용서하신 후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치 병고침을 받은 사람이 다시는 병들지 않게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처럼 참으로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열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병고침을 받은 사람이 다시는 재발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은 하나의 방심이며 불행을 초래하는 낙관입니다.

 

바울사도는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죄사함받은 성도들은 끊임없이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이 시험과 대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시 죄를 범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으로부터 우리의 영혼과 삶을 보존하기 위해 주님께서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도록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험을 두가지 의미로 구별해야 합니다.

첫째, 교육적 의미의 시련입니다.

이것은 주께로부터 오는 것으로 테스트(Test) 혹은 훈련(Training)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시험의 목적은 우리의 파괴와 몰락이 아니라 우리의 성숙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험을 잘 극복하면 놀라운 유익과 축복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시험을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험을 보게 하는 것과 흡사한 것으로 어느 선생님도 학생을 골탕먹일 목적으로 시험을 내지 않으며 오직 학생들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평가하여 보다 높은 수준으로 정진하기 위한 배려인 것입니다.

(약 1:2-3)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주께서 시련의 의미로서 시험을 주시는 이유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믿음이 성장할수록 또 성장하기 위해서 시험이 더욱 증대한다고 말하면 ‘그렇다면 시험을 받지 않기 위해서 될수록 내 마음이 성장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어린학생 하나가 장차 어려운 시험문제를 푸는 것이 지긋지긋하므로 낙제를 거듭하여 초등학교 1학년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는 논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에게 미분, 적분을 풀라는 시험은 내지 않습니다. 연령과 처한 상황에 가장 적합한 시험이 주어질 따름이므로 이 시험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여 보다 높은 성숙의 수준으로 향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리고

(신 13:3)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시험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 시험을 통과한 후 가장 어려운 시험도 감당할 만큼 아브라함의 인격이 성숙했던 어느 날 비로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지 얼마 안되어 이 시험을 받았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 시험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주어졌을 때 시험을 허락하셨으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 시험을 감당했습니다.

 

창세기를 통해 아브라함의 생애를 연구할 때 흥미있는 사실 중에 하나는 한 가지씩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아브라함의 인격은 보다 견고해지며 보다 빛나고 영광스럽게 성숙해가는 과정임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을 주십니다.

 

병원에서 젊은 간호사가 간호 책임을 지고 의사를 도와 수술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봉합하는 차례가 되었을 때 간호사가 의사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사용한 가재는 모두 12개인데 11개 밖에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다 빼냈어요. 자, 이제 꿰매도록 하지요.”

“안돼요. 분명히 12개를 사용했어요.”

“내가 책임지겠소. 봉합시다”

“선생님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간호사의 태도는 완강했습니다. 마침내 의사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띠면서 자기의 한쪽 발을 치워 거기 떨어져 있던 12번째의 가재를 보여 주었습니다.

“미안해요. 내가 당신의 성실함과 능력을 시험해 보았어요. 당신은 훌륭한 간호사가 될 자격이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의 자녀들을 시험에 빠뜨리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참모습을 살피십니다. 욥이 바로 전형적인 실례입니다. 험한 시험과 고난 중에도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둘째, 파괴적인 시험입니다.

이것은 피해야하는 시험으로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며 이를 유혹이라고 합니다.

마이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오르게 하기 위해 시험하시자만 사탄은 우리를 내려가게 하기 위해 시험한다.”

마귀의 시험에 스스로를 던지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며 무모한 짓에 불과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란 기도의 가르침은 바로 이 시험에서의 해방과 보호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이 시험이 초래할 수 있는 깊은 파괴와 타락과 어두운 상황의 미궁 속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바라는 보호의 기도인 것입니다.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은 파괴적인 의미에서, 그 사람을 멸망시킬 목적으로 누구에게도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파괴적인 시험은 오직 마귀로부터 옵니다.

이 시험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것으로 첫 사람들은 이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깊은 시험의 미궁속에서 살아야하는 운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뒷 부분이 시험의 원인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만’이란 말은 ‘그러나’혹은 ‘오히려’란 말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그러나(오히려) 악에서 구하옵소서’ 다시 풀이하면

‘하나님 내가 시험에 들지 않고 악을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악’이라는 단어를 남성명사로 보면 인격적인 존재 악한 존재, 즉 사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이시여 나를 악한 자, ,사탄에게서 구원해 주시옵소서’라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파괴적인 시험의 궁극적인 원인은 바로 사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혹 이를 중성명사로 보면 악한 것, 악한 일, 악한 행위를 가리킵니다만 이 두 가지는 구별할 수 없는 것으로 악은 악마의 행위요, 악마는 바로 이 악의 근본이기 때문에 우리가 악한 자에게 구함을 받지 않고는 악에서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의 도덕적 근본문제는 바로 이 사탄에게 있으므로 사탄을 경계하며 사탄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씨에스루이스는 사람들이 마귀의 시험에 농락당하는 중요한 이유는 마귀를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 악령은 없다.(과소평가)

- 악령은 있고 너무 큰 존재다.(과대평가)

 

그러므로 우리는 내 영혼, 내 사고의 밑바탕 속에 파고 들어와 공격하고 파괴시키는 사탄의 역사를 경계해야 합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우리가 흥분하고 경계해야 할 대적은 사람이 아니라 내 영혼을 파괴시키고 나를 죄 속에 몰아넣는 마귀인 것입니다.

 

(고후 2:11)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계 2: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탄이 인간의 영혼에 들어와 자기를 파괴해 버리며 범죄 속에 빠지게 하는 그의 계략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의 전략을 알아야 합니다.

태초 이래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세 가지 무기가 있는데

(요일 2:15-16)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사탄은 항상 이 세가지 무기 -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를 가지고 공격합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사탄이 찾아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 성경은 기록하길

- 먹음직했으며 : 육신의 정욕 :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 보암직하며 : 안목의 정욕 : 천하 만국을 보여주며 절만하면 모든 영광을 주마

-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 : 이생의 자랑 :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천사들이 받들 것.

첫째 아담은 실패했지만 둘째 아담은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사탄은 오늘도 동일한 세 가지 무기를 갖고 우리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가한 사탄의 시험은 미숙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이후 계속 수많은 사람을 파괴해 온 사탄은 전략은 오늘날 훨씬 더 성숙해 있을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알고 이 약점을 통하여 역사합니다.

유다의 돈을 사랑하는 약점, 삼손의 여인을 사랑하는 젊은 약점, 베드로의 큰소리 치는 기질, 롯의 물질을 사랑하는 약점을 이용하여 이들을 무너뜨리고자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약점을 통해 사탄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예수를 믿는 한 사람이 남의 집에 하인으로 있었다.

하루는 주인이 하인을 조롱하기를

 

"나는 예수믿지 않아도 아무 시험도 없이 잘 만 사는데

너는 예수를 믿는데도 왜 늘 어려운 시험을 당하느냐?

그럴바에야 믿지 않는 게 더 낫겠다"

 

이때 이 사람은

 

"주인님 노하지 말고 들어 주십시오, 가령말입니다.

사냥 중에 사슴 두마리가 있어 쏘았는데 한 마리는 즉사하고

한 마리는 다리에 맞아 피를 흘리며 도망간다면 주인께서는

어느 쪽 사슴을 보고 달려가겠습니까?"

 

"그야 죽은 놈은 내 수중에 든 것이나 다름없으니 산 놈부터 쫓아가 잡아야지"

 

"옳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험이 없는 것은 영혼이 죽어

마귀의 것이 되어버렸으므로 내버려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자는 마귀가 이를 방해하여

자기 수하에 넣을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니 시험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험을 극복하는 승리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는 이 세상이 시험으로 가득 찬 상황임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이 시험을 추종하고, 이 시험을 초래하는 삶의 스타일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더욱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마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오늘날 우리세대에는 이런 시험이 누진된 수많은 상황이 사탄으로부터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유혹의 여러 위기를 구체적으로 직면해 나가기 위해서 우선 이 세상에 시험이 있다는 사실자체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스스로 이 시험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시험을 두려워하십시오. 사탄은 적어도 당신보다는 지혜로우며 능력잇는 존재임을 알고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시험이 기도없이는 결코 통과할 수 없을만큼 심각한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기도하십시다.

지금까지의 내 삶의 완전히 망칠 수 있는 이 시험을 심각히 경계하여 이 시험 속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기도해야 합니다.

즉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아담은 유혹당한 상황을 보면 전혀 기도에 대해 기록이 없지만 사탄의 유혹에 승리한 예수님은 40일 기도를 마친 이후에 승리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기도중에서 잊지 말고 아뢰라고 주기도문에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기도해야합니다.

 

넷째, 시험에 들 수 있는 기회와 장소를 거부하시기 바랍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고는 시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속으로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의 기도의 진실성을 의심해야 합니다. 참으로 시험에 들지 않기를 원한다면 시험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기회를 제공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이 기도를 하면서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걸어가고 그리고는 넘어집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죄악의 자리에 앉기를 거부하시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리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시험에 들지 않도록 생활해야 합니다.

소극적으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시험에 들지 않는 건강한 생활을 누리고 있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의 도덕적 영적 시험은 건강하지 못한 우리의 육체 때문에 비롯될 수 있으므로 우리의 육체적 생활이 건강해야 하며, 정서적 안정과 성숙이 없을 때 시험이 우리를 괴롭힐 수 있으므로 우리의 정신 행활 도한 건강해야 합니다. 아울러 건강한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갖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한 영적 생활을 소유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험의 극복을 위해 가장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나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깨달아 주님 앞에 나와 주님을 의지하여야 하며 또한

우리의 의지의 결단들이 얼마나 수포로 돌아갔는가 하며

우리의 의지의 결단들이 얼마나 수포로 돌아갔는가 하는

과거를 돌이켜보며 참으로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경은 술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충만은 성령의 지배를 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내 여혼의 모든 것 내 생활의 구체적인 모든 것까지 성령이 지배할 수 있도록 주님의 다스림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사탄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의 “구하옵소서”는 ‘풀어버리다’, ‘해방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참된 의미에서 사탄의 결박을 끊어버린 자유인입니다. 그리고 이 참된 자유란 성령안에서의 자유이며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을 우러러 우리의 마음속에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는 자유를 갖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이 충만한 감격의 생활이야말로 자유로운 삶의 극점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 기도야말로 우리의 평생의 삶이 다하도록 적용되어야 하며, 간절히 구하고 붙잡아야할 우리의 가장 절실한 기도제목인 것입니다.

출처 : 하나님의 종 바나바의 자료
글쓴이 : 끝장보는 신앙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