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치유
이상신 교수
1. 내적 치유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상담 기법, 약물 치료, 최면술 등과 같은 것을 이용하는 상담 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이러한 상담 학이라는 학문을 기독교 적으로 수용한 것을 기독교 상담 학이라고 할
수 있다. 내적 치유도 이와 유사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기독교 상담학과 내적 치유는
엄연히 다르다. 기독교 상담 학이 상담 학의 기독교적 수용이라면 내적 치유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통한 치유라고 할 수 있다.
2. 인간과 정서
인간의 생각 속에는 의식과 무의식이 있다. 우리는 의식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지만 실제
로 우리가 사용하는 의식은 1~3%정도 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는 무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무의식이 우리의 생활 속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과거의 많은 기억
들을 잊어버리고 산다. 그러나 이러한 잊어버린 기억들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 무의식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기억들은 우리의 성격을 형성 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시기가 되면 드러나기도 한
다. 주로 10대에는 드러나지 않던 것들이 30대가 되면 조금씩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40대가 되면 이러한 현상들이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치매에 걸린 노인들이 불과 몇 시간
전이나 며칠 전의 일은 기억도 못하면서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은 쉽게 기억하는 것이 그 기
억들이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 속에 있다가 다시 드러나기 때문이다.
3. 성격의 형성
우리는 인간의 성장이 어느 시기가 있고 그 기간이 지나면 성장이 멈춘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사실 신체적인 면만 그럴 뿐 정서적인 면까지 한다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인간의 정서는 사이클을 가지고 성장을 하는데 대부분의 성격은 6~7세 정도에 형성
된다고 한다. 이러한 6~7세 정도의 어린 시기에 성격 형성의 4가지 기둥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 신뢰, 이해, 존중(존경, 존귀)이다. 이러한 성격형성의 기둥들은 사랑, 신뢰, 이해, 존중
이라는 차례로 단계적으로 형성된다.
4. 사랑의 시기
첫째의 사랑의 시기는 태어나서 6개월까지이다. 어린아이들의 이러한 시기의 생활은 하루
의 18시간을 자고 그 밖의 시간에도 울고, 먹고, 싸고 하는 아주 단순한 생활을 한다. 사랑
받을 아무런 이유도 행위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들과 주위 어른들은 무조건적인 사
랑을 베푼다.
특히 이때의 외모는 아직 형태가 잡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의 가족들은 이 아이
들이 자기와 닮았다는 것을 찾는데 이것은 아이에 대한 환영을 뜻한다. 또한 이 아이들의
탄생과 더불어 남편과 아내는 아버지와 어머니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관계의 변화가 생기므로 이 아이와 함께 다시 세계를 만들어 가게 된다.
사랑이라는 것은 생명을 받아주는 것이다. '네가 살아서 참 기쁘다.', '네가 태어나서 많은
변화가 있고 이런 변화가 좋다.'라는 것이다. 즉 사랑은 단순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좋아하
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말하는 사랑은 다르다. 그것은 생명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확인과 헌신이
필요로 한다. 따라서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서로의 헌신을 필요로 하고 서로의
육체관계도 사랑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생명의 개념이 있는
이러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5. 거절감
이러한 사랑에 대한 반대의 감정은 거절감이다. 어렸을 때 환영받지 못했고, 삶의 의미가
없으며, 살기가 싫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렸을 때 거절당한 과거가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
기 때문이다.
모태 안에 있는 어린아이들은 산모와 같은 감정을 가진다고 한다. 산모가 흥분을 하면 아
이도 같이 흥분을 하고 산모가 두려워하면 아이들도 같이 두려워한다고 한다. 이러한 효과
를 아드레날린 효과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어린아이들은 생각이 아닌 감정으로 부모의 감정을 받아들이는데 그 감정도
단순한 감정이 아닌 삶과 죽음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즉 산모의 사소한 감정
의 변화를 태속의 어린아이는 삶과 죽음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태속에
서 부터 산모에 의해 죽음의 공포를 많이 느낀 어린아이들은 나중에 자라서 중독성이 강하
고, 정서적 불안정을 보이기도 하며, 평소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을 못하고 나중에 엉뚱한 일
을 저지르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있다.
이러한 거절감의 경험은 결국 두려움으로 발전이 된다. 다른 사람의 자기 평가에 대해 두
려워한다. 이런 두려움은 강박으로 이뤄지는데 다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자신에 대
한 긍정적인 평가를 얻기 위해 완벽주의와 같은 자기 강박을 같게 된다. 또한 이들은 자신
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아무 일도 하려고 하지 않는 수동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리고 결
국은 어떤 일을 해도 의미가 없다는 허무감에 빠지기도 한다.
또한 거절감은 사람을 죄책감(수치)에 빠지게 한다. 이러한 죄책감은 자기 정죄감으로 이어
지는데 '나는 원래 그래'라는 생각이 머리에 자리잡게 된다. 결국 내향적인 사람은 자기학대
로 이어져 자신을 퇴폐적인 곳에 맡겨버리게 되고 자살의를 품게 된다. 그리고 외향적인 사
람은 다 사회 때문이라거나 다 남 때문이라서나 하는 책임 전가를 하게 되고 그들에 대해
적개심을 품게 된다. 그리고 살의와 미움의 감정을 갖게 된다.
6. 원죄와 사랑
사실 아담과 하와는 거절을 당한 게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거절감을 느끼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에는 이미 악이 존재하고 있었
다. 성경을 보면 이미 어두웠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
다. 창조를 히브리어로 '바라' 라고 하는데 이것은 권한을 가지고 선택하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즉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따라서 인간에게는
당시의 악과 선이 공존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선택의 훈련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의 훈련을 위해 하나님은 에덴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인간들을 훈련시키기를 원
했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 이전에 에덴(에덴 말 자체가 기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서
하나님과의 교제, 기쁨, 생명에의 즐거움(사랑)을 느끼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그후 훈련을 통
해 선과 악의 선택을 하며 이 세상을 선으로 정복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에덴 유치원을 졸업하지 못했다. 그들은 중퇴했다. 뱀의 영적
음성도 들을 수 있었던 아담과 하와는 당시 영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타락으로 말
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이 벌거벗음을 알게 되었고
(죄책감, 수치)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오히려 축복에 가깝다. 정녕 죽으리라고 했던 아담에게
일을 통해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길을 주셨고 하와에게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다른 생
명을 잉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
는 하나님의 생명 연장의 제의를 무시하고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제의에 동의했다는 것이고 이 동의 아래에서 죽음에서 다시 생명으
로 옮겨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2절에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는 사탄이 정죄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라
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아벨은 양을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를 지었다. 아벨이 양을 치
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성경에 보면 고기는 노아의 홍수 이후부터 먹었다고 나와 있다.
따라서 아벨이 양을 치는 이유는 제사와 의복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뱀이 간
교하다고 나와 있는데 간교함은 히브리어로 '벌거벗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수치,
죄책감이 사탄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다. 계시록 4장 18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
리의 수치를 덮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약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두려움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신약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영을 주시지 않겠다'고 말씀 하셨다. 즉 사랑으로, 자발적으로 우리의
선택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오는 죄책감과 정죄감은 사탄에게서 오는 것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것들 때문에 하나님께 당당히 우리의 치유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성령의 열매중 처음은 사랑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희락이다. 희락은 기쁨으로 사랑으로 인
해 즉 우리가 다시 얻은 생명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7. 신뢰의 시기
신뢰의 시기는 2~3살 때까지라고 한다. 이때의 아이들은 주위의 모든 것들에 대해 호기심
이 많을 때이다. 따라서 혼자 여기 저기 다니기도 하고 또 이것저것 먹어 보기도 한다. 아이
들이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를 신뢰 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이러한 때의 아이들의 행동은 자신감을 키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때 아
이들의 행동에 과도하게 진압을 하거나 제한을 한다면 나중에 감정 표현을 못하게 되고 자
신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신뢰 즉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아이들이 어머니의 보호를 받드시 우리가 하나님의 세계 안
에 있고 이러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버지의
세계 안에 있으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하는 일
은 저희도 할 것이요. 나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잇다'고 말하고 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요9:1~12에 보면 소경에게 눈에 흙을 바르
고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어 낮게 된 사람이 있다. 실제로 실로암까지는 15분 정도 걸리는
데 소경에게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예수
님의 말에 대한 믿음 ,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8. 이해의 시기
이해의 시기는 젖을 땐 이후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음식을 먹는 것, 배설을 하는 것 등
의 훈련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훈련은 집에서 부모로부터 배워져야 한다. 그러나 아담과 이
브는 아버지로부터 이러한 훈련의 단계로 가지 못함에 따라 아버지로부터 이러한 것들을 배
우지 못했다. 따라서 수많은 선택에서 우리는 아직도 많은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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