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치유!!! 신유!!!

[스크랩] 치유의 역사적 배경

하나님아들 2013. 2. 15. 00:06
 

치유의 역사적 배경


목회의 치유적 사역의 배경을 찾기 위하여 앞에서는 성서적인 측면과  신학적인 측면을 조명하여 보았으며 여기서는 역사적인 맥락 하에거 찾고자  한다. 역사적인 배경을 찾으려고 하면 자연히 성서의 역사는 물론 교회사적인 내용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고대 교부시대부터 오늘까지의 내려온  치유에 대한 역사를 살펴 보기로 한다.


1. 고대 교부 시대

저스틴 마터(Justine Marter, 100-165 A.D.)는 강조하기를 기독교인들 중 성령의 역사가 다방면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분별의 은사를, 어떤 사람은 상담의 은사를 어떤 사람은 능력의 은사를 받았고 또 어떤 사람은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치유를 영적인 은사로 받아들였다. 사도시대 뿐만이 아니고 고대 교부에도 주어진 영적인 은사롤 생각했었다.

터툴리안(Tertulian,155-230 A.D.)은 당대의 놀라운 저술가인데 그의  저서 "To Scapla"에서 귀신을 추방하고 치유하는 일들이 평민들에게는 물론 수많은 상류층의 사람들에게도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증언한다. 그는  그의 저서중 "육신의 부활에 관하여서" 에서 주장하기를 육체는 영속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육체로 부터 하나의 부활한 형태가  생겨나는데,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의 육체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의 씨앗이 움이트고  자라서 식물이 되는것과 같다고 하였다.

 기독교적 치유를 위한 어떠한 사고방식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터툴리안은 주님의 부활의 능력에서 나오는 치유의 힘을 믿었던  것이다.

오리겐(Origen,185-254 A.D.)은 이집트에서 태어난 경건한 기독교 가정에서 양육을 받았다. 그는 평생을 기독교 서적을 집필하는데 온 정력을 쏟아  바친 사람이다. 그의 저서 "원리"란 책에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혼란을 제거하고 귀신을 추방하며 질병을 제거할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고대 교부시대에도 치유  목회가  행하여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히포(Hippo)의 감독인 어거스틴은 라틴교부중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그의 저서 "성 어거스틴의 고백" 이라는 책을 썼는데 제9권 7장  16절에 치유의 기적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이책에는 한  소경이 눈을 뜬 기적이  나오고 (P.433) 칼타고의 감독인 인노선트가 흉부암에서 나음을  입었다는 기적도 소개하고 있다.(PP.437-438)

그 외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어거스틴이 저술한 책에서 나고 있으며 그런 기적의 내용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쓸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여기에 소개한  것은 단지 치유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치유의  사역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유신적으로 이미 그들과 같이 살고 있지 않는 고대 교부시대에도 역시 교회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치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계셨던 것처럼 고대 교부시대에도 역시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 계셨던 것이다. 램슬리는 치유목회는 그 당시 교회에도 특별은사로 주어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전인 치유인 치유사역이 역사적으로 확고한 배경을 찾을 수 있는 줄로 본다.


2. Roman Catholic 교회시대

많은 사람들은 중세를 가리켜서 암흑시대라고 부른다. 그때에 카톨릭  교회가 서구 시대를 지배하였고 중세에서 교회는 모든 삶의 중심지였다. 암흑기라고 하나 이 때에도 하나님은 교회에 대한 그의 사역을 계속하였고 그중에 치유사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베드( Bede )는  "영국의 교회사" 라는 책에서 기적에 대한  사실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그는 기록하기를 어떤 성직자가 기도하다가 10세의 소녀가 치유 받은 사실과 제2권 2장에서 그는 소경이 눈을 뜬 사실을 언급했고 또 요한이라는 감독이 벙어리를 고치는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으며   (pp.237-238), 제3장에서는 병든 여종이 치유받은 이야기가 실려 있고 (pp.238-240), 제4장에는 요한이 한 백작 부인의 병을 고치는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으며, 제5장에는 그 백작의 종이 죽었다가 살아난 기사가  소개되고 있다.

앗시스의 성자 프란시스는 믿기 어려운 정도의 치유목회를 한 사람이다.  그는 토스키넬라에서 절름발이를 고쳤고 Narni에서는  중풍병자를  고쳤었다. 그는 악령에 시달리어 죽어가는 형제를 자유케 하였고 그가 안코나로  가던 도중 아에토라고하는 어떤 젊은이의 문둥병을 고쳐  주었으며,  귀머거리요 벙어리인 거지를 고쳐주었다고 헤르만은 성 프란시스에 의한 여러가지 치유를 소개하고 있다.

치유적 사역은 암흑기라고 하는 중세에서도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통하여서 계속적으로 이어져 나왔고 교회역사 밖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고  바로 교회사의 흐름 속에서 계속되어 온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이것이 곧 역사를 통하여 도도히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권능이기도 한 것이다.


3. 종교개혁시대 및 그 이후

마틴 루터는 초기에는 치유의 사역을 부인하였다. 자기의 시대에는  치유역사가 일어나지 아니한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기도를 통하여 치유의 체험을 함으로써 비로소 치유의 기적을  인정한  것이다. 그의 친구였던 멜랑히톤이 여행중에 병으로 쓰러졌다.

 어떤 사람이 이 소식을 루터에게 전하자 루터는 친구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였는데 멜랑히톤은 곧 치유의 경험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그때 상황을 설명한다. "루터가 나에게 기도를 해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루터도 자기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고 있다. "내가 그에게 갔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지. 그러나 명백한 하나님의 기적으로 그는 살았어요!"

존 칼빈은 영혼의 구원을 강조하였고 카톨릭의 치유기적에 대하여 무엇인가 그릇된 요소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더우기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오는 힘을 믿었었다. 그의 치유의 시대가 지났다고 하면서도 충분한  성경을 지적하여 말하지는 못했다. 그가 이처럼 치유에 대한 반감을 가진 것은 중세 로마 카톨릭의 부패한 여러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이후 시대의 인물로서 진젤돌프는 우리 사람으로는 치료불능인 난치병, 다시 말하면 암이나 폐병같은 것으로 환자들이 죽음의 고뇌속에 있을 때에 믿음으로 치유된 확실한 증거를 수없이 가지고 있다. 치유가 되는  증거와 사건을 많이 접하고 있다고 하였다.

요한 웨슬레도 하나님의 치유의 기적을 여러곳에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 그가 치유목회를 통하여 친히 체험한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윔버는  그밖의 여러 단체들에서도 일어난 치유 역사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즉 모라비안교도들 퀘이커 교도들, 복음주의적 계약교회등은 신앙단체들로서 많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4. 현대 목회에서의 치유

켈시는 오늘날의 기독교가 치유에 대하여 전과 다른 태도를 가지게  된 데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신관과 인간관이 미묘하게도 점차적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구 세계의 문명의 퇴보와도 연관된 것이다.

 둘째는, 신학적 사고의 변천 때문이다. 플라톤의 세계관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 의해서 대치되어 신학적 사고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직접적인 접촉보다는 이성주의적 관점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치유의 역사가 설 자리가 부족하게 된  것이다.

 세째는, 이 기간 동안에 미신적인 신앙이 치유의 역사를 지지하고  나왔기 때문에 순수한 신앙으로서 치유의 역사도 오해를 받아 희생을 당하게 된 것이다.

프란시스 톰슨은 치유와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고 1905년 "건강과 성결"이라는 책을 썼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는 더 이상 육체와 영혼을 대립적인 관계로 놓아서는 안된다.  육체와 영혼이 서로 굳게 연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혼의 구원을 강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육체의 구원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말씀을  전하셨고 또한 육신의 병을 치유하시기 위하여 많은 병자에게 접근 하셨다.

임마누엘 운동 의 가장  큰 특색은 기독교의 과학을 솔직하게 모두  인정하고 서로 연합을 통하여 인간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운동이다. 이들은 서로 대립관계가 아니고 상호간에 같이 서로  역사함으로  병을 치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결합된 존재이기  때문에 영혼을 위하여 영적인 방법이 필요하고 육체를 위하여 과학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이상 반드시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가 또한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도움을 받아야 건강하게 살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물질세계와 영적인 세계 모두를 창조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도 육신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혼을 위하여 성령의 도움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 이상 또한 인간의 육신을 위하여 도움을 주는  것도 하나님의  일인 것이다. 이 운동은 여러 곳으로 확산되어 갔으나 기대 이상으로 널리 보급은 못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래의 지도자들을 훈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이 운동은 진행되어 나가고 있다. 어떤 교회나 교단은 치유적 사역을 부정하려 하나 그것을 부정할만한  성서적 근거는 없다. 치유적 사역은 이런 의미에서 예나 지금이나 전인  치유를 목표로 하는 목회자의 치유적 사역에 있어서 성서와 신학 그리고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출처 : 말씀의 공간
글쓴이 : 착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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