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과 성경의 권위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성경의 정경은 그 성경의 권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경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 책이 정경에 속했거나 성경의 목록에 속했다는 뜻이며 그 책이 바로 성경이란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 정경이란 무엇인가부터 살펴보고 정경의 결정 요인 그리고 신구약의 정경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1. 정경이란 무엇인가?
영어의 캐논(Canon)이라는 정경이란 말은 헬라어 카논에서 왔는데 적어도 아래 세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1) 갈대 혹은 막대기로 후에 자막대란 뜻이 되었다.
2) 교회회의의 권위있는 결정을 의미했다.
3) 성경에 적용되어서는 표준에 맞으며 만족할 만하며 하나님의 영감된 공인서로 A.D. 350년 후에 곧 성경과 연관되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1)
개신교의 정경에는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이 포함되나 로마 캐토릭에는 몇 권의 외경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개신교의 구약 39권만을
권위서로 인정하고 있다.2)
2. 정경의 결정 요인
예수님께서는 책을 남기지 않으셨으므로 교회는 최고의 권위서의 여부를 그 책들이 사도들에게서 온 것인가에 따라서 판단하였다.
1) 사도적 권위
예수님의 제자 중에 사도바울만큼 활동적으로 글을 쓴 이는 없었다.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이방인 교회에서는 그의 사도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신약의 책들 중에는 바울의 서신들처럼 저자의 이름을 쓴 것은 쉽게 정경으로 수납될 수 있었으나 전혀 저자의 이름이 없는 책들도 있어서 문제가 되었다. 마태와 요한의 사도적 저작권은 전통에서 잘 확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는 어떤가? 누가복음의 경우 그 저자는 일찍이 바울이 사랑하는 의사 누가로 부른 인물이었다(골 4:14). 그것은 그가 바울의 조력자의 한 사람이었으며 바울의 사도적 권위의 어떤 것이 그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경향은 초대교회가 얼마나 정경의 결정 요인에 사도의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의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초기에서까지도 만일 사도적 권위의 어떤 형태가 확립될 수만 있었다면 직접적인 의미에서 사도적 권위를 고집하지는 않았다. 거룩한 가족의 일원이 되는 자격은 명백하게 거의 사도적 신분을 수반하였다. 바울은 실로 주님의 동생 야고보를 사도들에 포함시킨 것 같다(갈 1:19). 그러나 야고보에 관한 한 바울 자신에게서처럼 그 이상 고려할 것이 있었는데 주께서 부활로 그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이다(고전 15:7). 그러므로 만일 흩어진 12지파에게 보내는 그 서신의 저자로서 야고보가 주님의 동생과 동일시되었다면 그것은 그 서신이 사도적 문서 중에 수납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만일 유다가 예수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동생이었다면 그 유다는 그 거룩한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그 서신이 짧은 것이었을지라도 호의로 교회가 수납하는데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또 요한일서는 항상 제 사복음서와 밀접하게 제휴되었으므로 그 복음서가 사도적이요 정경으로 인식되었듯이 비록 그 서신이 복음서처럼 무명이었을지라도 사도적이요 정경서로 인식되었다.
2) 오래됨
만일 한 작품이 사도의 것이거나 사도와 절친한 어떤 사람의 것이었다면 그 책은 사도시대에 속했음이 확실하였다. 그러나 후대의 작품들은 그것들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도적 작품이나 정경에 포함될 수 없었다. 예컨대 헤르마스 목자서(Hshepherd of Hermas)는 무라토리 정경 목록의 편찬자가 높게 평가하였다. 그는 분명 이 책이 예언의 진품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러나 그 책이 나타난 연대가 너무 늦어서 정경 예언서 가운데 포함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정경의 결정 요인은 사도와 그들의 동료들이 쓴 것인가에 달려 있었다.
3) 정통성
정경의 결정 요인은 그 책의 정통성에 있었다. 여기서 정통성은 사도적 신앙을 가리키며 그것은 사도적 책들에서 설명된 신앙이며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 안에서 지속된 신앙이었다. 그들은 가현적(docetic)이
고 그노시스적인(gnostic) 이단에 대항하여 신앙의 규범으로 요약된 사도적 교훈을 변호하였다. 정통성에 대한 표준으로는 그 책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서 무엇을 가르치는가? 예수를 역사적 나사렛 예수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에서 살아나셔서 만주의 주가 되신 높아지신 분으로 사도적 증거를 하고 있는지가 고려되었다.
이런 결과 베드로 행전(Acts of Peter)나 바울의 행적(Acts of Paul) 같은 책은 그 이름이 사도와 연관이 있었으나 그 책들의 내용에서 비사도적 특성때문에 영구하게 신약의 정경 속에 가입될 수 없었다.
4) 보편성
어느 책이 한 지역에서만 알려진 것은 보편교회의 정경의 일부로 인식되지 않았다. 반면에 보편교회에서 광범위하게 인식되었던 책은 그 즉시나 혹은 후에 보편적으로 수납될 수 있었다. 예컨대 로마교회가 궁극적으로 히브리서를 정경서로 동의한 것은 나머지 정통교회와 공동보조를 취한 결과였다. 서신들의 경우 어떤 것은 아주 지역적으로 인식되었으나 이따금 보편적으로 수납되고 영구적으로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지역적으로 용납되던 서신들이 점차 확산되어 보편적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서신이었으며 복음서나 사도행전까지도 사실은 우선적으로 계획된 독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책들이 정경의 신분을 얻게 된 것은 그것들이 처음보다 점차 넓게 인식 되어진 결과였다.
5) 전통적인 사용
정경의 결정 요인은 역시 전통의 지속에 있었다. 가정된 고안서들은 우리가 항상 배운 바요 우리가 항상 행한 것이라는 논법으로 배격되었다. 그러므로 어느 교회 지도자가 3세기나 4세기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책을 진정한 사도적 저작으로 추천한다면 그는 그것을 수납되도록 하는 데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지도자가 이끄는 회중은 우리들 중에는 아무도 그것에 대해 들은 사람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모든 교회의 전통이 그렇게도 강경하였다.
6) 영 감
영감과 정경은 언제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정경에 포함된 책들은 그것들이 영감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하였다. 영감된 것으로 알려진 책은 그것이 정경 안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서방에서 정경의 원리가 사도성이라면 동방에서는 영감이라고 생각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필로에 의해 시도되었던 성경의 풍유적 해석이나 오리겐의 풍유적인 취급은 다같이 그 본문이 축어적으로 영감되었다는 확신에 근거하였다. 그런 영감된 본문은 풍유적인 방법으로만 나타낼 수 있는 깊은 의미를 지녔다고 보았다.
7) 그 밖의 문제들
그 밖의 정경 결정 요인으로서는 보다 실제적인 문제로 박해 때 그 책 때문에 순교한 책들은 생명자체의 값을 지불한 것이므로 다른 책과 구별되기도 하였다. 또 그 책이 크리스챤의 신앙과 생활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가 정경 결정의 한 요인이 되었다.3) 그 책의 내용이 교화적인 것이며 교회 안에서 대부분이 확실하게 믿는 것이냐는 질문이 또 다른 정경 결정의 원리로 작용하였다.
주
1. Henry C. Thiessen, Lectures in Systematic Theology(Grand Rapids : Eerdmans, 1977). p.102
2. The Zondervan Pictorial Bible Dictionary, Merrill C. Tenney, Edited(Grand Rapids : Zondervan Pub, Co., 1975) p.144
3. F.F. Bruce, The Canon of Scripture,(Downers Grove, Illinois, I.V.P. 1988), pp.255-269에서
요약 인용하였다.
http://revdavidsuh.com/bbs/view.php?id=ntprefac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
구약의 정경
A.D. 400년경 유대 탈무드(Talmud)에는 유대인의 성경이 나오는데 대략 그 순서와 이름은 오늘날 우리의 히브리 성경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았다.
12소선지서를 하나로 묶었으며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그리고 역대기서는 각각 한 책으로 계산해서 24권이었는데 그 내용은 율법서 5권, 선지서 8권 그리고 11권의 책들(시편, 잠언, 욥, 솔로몬서의 아가서, 욥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 느혜미아, 역대기)이었다. 초기에 그들은 사사기와 룻기를 한데 묶었고 예레미야와 예레미아애가를 하나로 묶어 히브리어 알파벳 22자에 일치하는 22권을 만들었다.
250년경에 오리겐(Origen)은 구약 22권의 목록을 작성했으나 탈무드의 순서는 아니었다.
유대인의 역사가 조세푸스(Josephus)는 A.D. 90년경에 아피온(Apion)에 반대하는 그의 작품을 썼는데(:8) 유대인이 받은 22권의 책들은 모세의 율법서 5권, 예언서 13권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과 생활을 위한 교훈서 4권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이런 책들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바꾸거나 부인하기보다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것이라 하였다.
A.D. 90년경에 유대인들은 잠니아(Jamnia)회의를 개최하였다. 거기서 어떤 책들 예컨대 전도서와 잠언 등의 정경성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
제1세기의 애굽계 유대인 필로(Philo)는 22권의 히브리 성경을 수납한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책들에서 많은 것을 인용하였으며 권위가 있는 것으로는 그 책들에서만 인용하였다. 신약의 증거도 일치하는데 구약의 대부분의 책을 인용하지만 7권의 외경에서?는 인용하지 않았다. 신약은 구약의 책들을 순서적으로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3분화보다는 2분화하여 인용하였다. 예를 들어 율법과 선지서 혹은 모세와 선지자들이었다. 여기에 구약의 22권이 포함되었으며 단 한번 다른 곳에서 모세와 선지자와 시편의 셋으로 구분해서 인용되기도 했다(눅 24:44). 그러나 후에 헬라어의 번역본이었던 칠십인역(LXX)에서도 후대의 복사판은 3분화의 구분 대신 2분화를 따랐다.
이상에서 본 대로 외경의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비1서와 2서 그리고 에스더나 다니엘에 어떤 추가된 것들은 고대에 권위가 없었으며 그리스도와 사도들 혹은 유대인들에 의해 용납되지 않았다. 다만 1545년 로마 가톨릭의 트렌트(Trent)회의에서만 정경이 되었는데 이것은 개혁자들에 대한 반동의 결과였다.
구약의 정경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는 다니엘서가 선지서의 정경이 마감된 B.C.165년까지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지서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견해가 있었으나 요세푸스의 증언은 초기에 다니엘서가 선지서 중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들은 선지자로 불려졌으며 이들이 없이 영감된 어떤 그룹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대부분의 구약의 저자는 선지자들이었다. 물론 여호수아나 잠언, 솔로몬의 아가 대부분의 시편 등의 다른 저자들도 역시 선지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적어도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민 12:6). 그밖에 책들 예컨대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그리고 열왕기서와 룻기 욥과 에스더서도 선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 확실히 이런 책들은 쿰란(Qumran의 사해사본에서와 신약에서 선지서의 이름에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선지자적 출처의 책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용납되었다면 그것이 구전에서처럼 기록된 교회의 권위서에 대한 검증의 실제적 시험이었다(신 13:1-5, 18:15-22).
신약의 정경
처음에 교회가 정경으로 크게 수납한 책들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동의했으나 세부적으로 각 책에 대해서는 정경에 대한 견해가 일치되지 않았다. 어떤 책들은 한 곳에서는 수납되었으나 다른 곳에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신약의 27권 이외의 책들이 보편적으로 용납된 적은 없었다.
그 책들의 수집역사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주후 170년대
170년경에 무라토리 정경(Muratorian Canon) 목록에 기록된 책들은 사도적이요 교회들에서 읽혀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 목록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의 13서신을 언급하며 어떤 위서들을 경고하고 있는데 아마도 요한 2, 3서와 유다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었을 것이다. 베드로의 묵시는 우리 가운데 있을지라도 교회에서 읽혀지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헤르마스의 목자서(Shepherd of Hermas)도 비사도적인 저작으로 배제되었다. 그 목록에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만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웨스트코트(Westcott)은 생각하기를 이것은 이런 모든 책이 초기에 수납되어 왔으므로 사본에 대한 원형의 파손이었으리라고 하였다.
2. 주후 140년대
이 시기는 순교자 져스틴(Justin Martyr)이 어떻게 사복음서가 구약과 함께 예배에서 읽혔는지를 말해준 시대다. 그는 히브리서를 포함해서 다른 여러 책들을 인용하였다. 이 시기부터 우리는 근래에 애굽에서 발견된 진리의 복음(Gospel)에서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 책은 노스틱파의 발렌티누스(Valentinus)가 쓴 것으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이, 삼서 그리고 유다서를 제외한 신약이 포함되어 있으며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이 포함되어 있다.
3. 주후 95년에서 118년까지
이 시기에는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이그나티우스(IgatiusS) 그리고 폴리갑(Polycarp) 세 사람이 95년과 118년 사이에 글을 썼다. 이 사람들은 인용에 의해서나 암시로?서 누가복음, 계시록,골로새서, 빌레몬서, 베드로후서, 요한이, 삼서 그리고 유다서를 제외한 모든 신약을 알았고 인용하였다. 그런데 그 책들 중에 얼마가 제외된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요한계시록과 요한이, 삼서는 클레멘트가 95년에 글을 쓸 당시 아직 기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부터 신약의 정경 27권이 모두 한결같이 수납되어 온 것은 아니었다. 복음서는 언제나 의심이 없었다. 요한서신은 이단들도 의심했을 정도였다. 히브리서는 애굽에서 바울의 저작으로 수납되었다. 로마에서는 여러 교부들이 사용하였으며 마침내 애굽과 팔레스타인의 견해가 널리 보급되어 완전히 수납되었다.
베드로후서는 외중은 미미했으나 내증이 강했다. 유다서는 무라토리 정경 속에 포함되었고 터틀리안이 베드로후서 3:3로부터 분명하게 인용하므로 수납되었다(1).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제4세기 이래로 신약에 속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27권의 신약은 값진 판단이 아니라 사실의 언급이다.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신약의 정경은 너무 엄격하거나 너무 포괄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견해는 정경의 동일함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정경은 그들이 생각하거나 말한 것 때문에 줄어들거나 더해 지지 않았다.
주
1. The Zonervan Pictorial Bible Dictionary, Morrill C. Tenny, Edited, (Grand Rapids : Zondervan,
1967), pp.144-146
2. F.F. Bruce, The Canon of Scripture (Downers Grove : IVP,1998) p.250
http://revdavidsuh.com/bbs/view.php?id=ntprefac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
'성경 하나님 말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정경과 그 책들의 형성/서춘웅 목사 (0) | 2013.01.30 |
---|---|
[스크랩] 성경의 권위/서충웅 목사 (0) | 2013.01.30 |
[스크랩] 성경의 정경(正經)/김효성 목사 (0) | 2013.01.30 |
[스크랩] 성경의 본문(Text)/김효성 목사 (0) | 2013.01.30 |
[스크랩] 성경의 속성/김효성 목사 (0) | 2013.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