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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경옥의 신학사상 2

하나님아들 2013. 1. 26. 16:28

정경옥의 신학사상 2


한숭홍/장신대 교수

4. 해리스프랭클린 롤(Haris Franklin Rall )

1) 정경옥의 신학에 독창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의 공통성은 한국 최초의조직신학 저술가라는 그에게서 그 자신의 신학이나 적어도 약간의 자기 주장 정도만이라도 발견했으면 하는 희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곧 벽에 부딪쳐 깨어지고 만다. 정경옥을 말하는 신학자들의 공통성은 그의 신학사상은 철저히 그의 스승인 해리스 프랭클린 롤(Harris Franklin Rall) 교수의 복사판이므로 정경옥 자신의 신학은 없다고 역설한다. 그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그에게 그 어떤 것이든지 기대하던 사람들에게 허탈감과 좌절감을 안겨준다.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한 바있는 감리교 선교사 박대인(Edward Poitras)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경옥 목사의 신학사상은 하나의 과도기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스승 롤 교수는 물론 종합주의적인 경향이 있었지만, 그에게도 롤 교수의 입장이 뚜렷이 엿보인다. 정목사는 롤 교수의 사상을 거의 모방(模倣)하면서 좀더 막연하게 문제를 취급하며, 또 다른 계통의 신학을 관련시키려고 했다.1

그에 대한 이러한 단정적 평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외에도 감리교 신학자들의 몇편의 논문들에서 우리는 롤의 신학이 정경옥에게 매우 깊이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진술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롤의 신학은 무엇이며, 정경옥은 그에게서 어떤 신학사상을 어느 정도 수용하였는가 하는 것을 밝혀야 할 것이다. 이 두 문제는 정경옥의 신학배경을 정확하게 규명해주는데 큰 공헌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롤의 신학과 사상을 개관하는 일로부터 우리의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롤의 신학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설명될 수 있다. 그만큼 그의 신학사상은 단순하다고 하겠다. 그의 신학은 간단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다양한 색채를 갖고 구성된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는 정경옥에게 끼친 롤의 영향만을 찾아내기 위해서 두가지 점으로 압축 ·진술한다.

첫째, 롤의 신학은 건전한 복음주의(福音主義)에 기초하여 형성되었다. 여기에서 표현되고 있는 복음주의라고 하는 개념은 ①미국 중부지방의 소박한 신앙태도를 대표하는 표현이기도 하고, ②일반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신학과 구별되는 개신교의 신학사상의 결정체를 의미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는 매우 신앙적이고, 신실한 사상가여서 기독교의 신학과 사상을 형성하고 있다. 그가 복음주의적 신학을 구상하는 이유는 유럽에서 밀려오는 극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구상에서 시도된 것이며, 그래서 복음주의적이란 신앙에 대한 긍정적 이해와도 일맥 상통한다.롤에 따르면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 중심적신앙에서 설계될 수밖에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의 중심이다. 그는 그것의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그는 이 세계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에로 가는지, 우리의 삶이 어떤 실제적 의미를 갖고 있는지 또는 어떤 숭고한 목적을 갖고 있는지, 또는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 우리의 필요에서 우리를 위한 도움이 있는지, 우리의 가장 심오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다.2

이렇게 신앙을 개관하면서 그는 4가지로 그의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진술하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①우리는 전능의 하나님을 믿는다(We believe in the God of all power). 그는 만물의원천이다.3

②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We believe in the God that is good). 이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우리는 선함과 능력이 하나인 것을 믿는다.4

③우리는 하나님은 인격적 영이심을 믿는다. '하나님은 영이시다'(We believe Godis personal Spirit.'God is a Spirit').5

④우리는 신약성서에서 계시된 하나님을 믿는다. 신약성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고의 계시를 갖다주었다(We believe in God as revealed in the New Testament. The New Testament brings us the supremerevelation of God ).6

롤은 이러한 4가지로 설명된 신앙유형을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 간주하며, 복음주의적 교회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으로 확신하며 진술하고 있다.7

그러므로 그가 말하는 복음주의적 신앙이나 복음주의적 신학이란 개신교 신학의 신앙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은 경건한 입장을 말한다.8

정경옥도 그의 스승과 마찬가지로 "나의 신앙은 복음주의적이다"라고 고백했다. 그의 고백 역시 어떤 특정한 신학 학파의 신학 입장을 대변하는 복음주의를 수용했다는 고백이라기보다는 성서적 신앙전통을 답습, 수용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점에서 개신교의 신앙보수주의 및 경건한 생활신앙 형태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롤 교수의 신학은 철저히 경험주의의 입장을 조건으로 형성된 종교신학(宗敎神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종교신학이란 신학의 상대주의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즉, 타종교의 신학내용은 물론 타종교의 신앙본질까지도 정당화함으로써 종교간의 차이를 신학이나 신앙에서 찾기보다는 제도나 형식에서 찾으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종교신학은 종교상대주의를 수용하고 있다.

종교상대주의란 기독교 안에서의 교리적 차이를 극복하려는 운동으로부터 타종교의 종교성에 대한 정당화에 이르기까지 관용적 신앙태도로 발전되었다. 롤은 이 문제를 먼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What can we do?)9라는 질문을 던지고 해답하는 형식을 빌어 문제 진술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도록 노력할 수 있다. 기독교 종교(the Christian religion)는 많은 다른 관점들과 요소들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의 필요와 관심에 따라 차이를 갖고있고 그때에는 이러한 관점에, 그리고 지금에는 그와는 다른 관점에 강력한 관심을 보인다. 어떤 종교는 예배의 자유와 자발성을 강조하고, 어떤 종교는 제도적이고 장엄한 의식에서 도움을 구한다. 어떤 종교는 종교의 법인적 모습, 일치와 제휴의 요인을 강조하고, 다른 종교는 극도로 개체적인 것을 강조한다. 교회를 닮은 어떤 종교는 권위로서 말하고, 삶의 신조와 규칙을서술한다. 다른 종교는 자유를 주장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진리와 인도하심을 구한다. 어떤 종교는 실천적, 도덕적, 그리고 사회적인 것을 강조하고, 어떤 종교는 신비적이고 정서적인 것을 강조하며, 또 어떤 종교는 건전한 교리를 강조한다. 이러한 여러 차이점들은 동일한 교파 안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여러가지 강조점들 역시 교파들을 구별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점에서 우리의 관심은 각 종교는 무슨(what) 진리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길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을 어떻게(how) 이해해야 하는지에 있다. 그리고 이런 관심에는 개신교 형제들뿐만 아니라 가톨릭 형제들도 포함할 것이다.10

롤은 종교의 상대적 이해를 역설하면서 종교간의 절대적 차이나 특히 기독교의 절대성에 대한 가치인정에 매우 소극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는 세계 종교들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좀더 광의적으로 본다면, 모든 종교는 각각 그 자체로서 동일가를 갖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종교는 인간의 결핍감(sense of need)과 삶의 추구(search for life)에서 야기한다."고 주장한다.11 그의 이러한 입장은 분명히 그가 미국의 경험론의 영향을 깊이 받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종교는 사물에 대한 설명을 추구하는 인간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전생애(全生涯)와 분리할 수 없는, 그러나 인간의 새롭고 독특한 형식들을 취하는 자기주장과 자기성취에의 충동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함에 있어 전혀 변함이 없다.12

그의 이러한 주장은 기독교의 계시성을 종교신앙을 통해 수용하려는 경향을 띄고 있다. 그의 이러한 경향은 곧 그의 신학하는 자세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것은 그의 신학방법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의 의도는 종교적 진리에 대한 경험주의적 접근방법을 통해 종교 일반의 공통성과 현상을 분석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기독교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해석하는 독특한 종교로서 정립하려는데 있다. 즉, 그는 종교학에서 출발하여 기독교 변증론으로 종합하려는 신학함의 길을 택하고 있다. 경험에서 절대신앙에로 도달하려는 방법이 그의 신학의 길이다.

종교학에 대한 그의 태도는 순수 종교론을 주장하기 위한 종교학자의 태도와는 분명히 다르다. 궁극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을 탐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그는 신앙을 통해서 고백할 수밖에 없는 신앙고백적 경험주의를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에게서 과학적 분석이론에 의한 종교학 탐구나, 순수 사변적 형이상학적 신학이론은 관심밖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일변도에 빠져 신비주의적 신앙양태를 도출하는 그러한 이질화된 신앙을 배척한다. 그는 인간이 그의 삶을 통해서 직접 경험한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근거를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경험자체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길일 수는 없다고 확신한다.

그는 분명한 언어로 그의 신앙론을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경험은 하나님을 믿는(belief in God) 이성적 근거를 그에게 주지만, 하나님의 존재(the existence of God)에 대한 강제적인 논증은 가능하지 않다.13

그는 계속해서,

과학의 경험적 방법은 종종 신앙과는 완전히 반대적인 입장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에반해서 신앙(faith)은 과학이 가져야할 필수품이다.14

이처럼 롤은 그의 경험주의에서 신앙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진술하고 있는 아래의 표현은 그의 입장이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 하는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게 한다.

기독교는 사실상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생존의 신앙이며 길(a faith and a way of living)이다. 그 신앙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에 있다. 그 길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에 따른 삶의 길이다. 어린아이도 이 길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평생토록 우리의 생각을 끌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주제들이 있다. 하나님 - 그는 무엇이고, 그는 어떻게 역사 하시며, 우리는 그를 어떻게 알 수 있으며,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 - 그의 죄와 결핍, 그의 본질과 운명; 그리스도 안에서 보았던 바로 그 역사의 의미;교회와 하나님의 왕국;인간과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생명의 길;오고있는 생명을 향한 우리의 소망15

여기에서 우리는 롤의 경험주의적 종교신학입장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있다. 그것은①절대적 지고의 존재에 대한 절대적 관심을 가진 인간의 종교성을 인정하는 일면과②기독교 신앙에 철저히 기초하여 신앙중심주의적 경험의 삶을 살아가는 인생의 면을 보여주고 강변하려는 또 한면이 그것이다.

그에게서 종교는 인간의 "지고의 관심 (thesupreme concern )"이며, 사회의 "지고의 요구(the supreme need)"이다.16 그리고 동시에 "복음주의적인 교회에서 발견될 수 있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 초점을 두고 있다.17 이것이 곧 그의 종교신학의 결론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롤의 신학과 사상이 정경옥의 신학사상에 미친 영향을 찾기위한 목적에서 그 핵심만을 규명해 보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롤의 신학에서 다음의 사실을 발견했다.

①자유주의 신학을 경계하면서 복음주의신학에 집착하고 있던 점,

②지식과 경험, 과학과 신앙의 대립과 일치를 전제하면서 신앙의 확실성을 역설했던점,

③신앙의 내용보다는 형식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교파간에 혹은 종교간에 이해를 증진하려는 에큐메니칼 정신과, 종교다원주의적 색채를 갖고 있던 점,

④신앙의 경험적 요소를 강조하는 점,

한마디로 롤의 신학사상은 슬라이어마허의신학사상을 연상케하는 점이 많다.

2)지금까지 우리는 롤의 신학과 사상을 개관하면서, 정경옥에 흘러들어간 그의 신학을 찾기 위한 전 단계를 걸어왔다.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정경옥의 신학사상을 분석하면서, 특히 그의 스승 롤의 신학사상이 그에게 끼친 영향을 발굴하는 작업을 할 것이다. 정경옥의 신학은 일종의 종교신앙에 기초를 둔 종교신학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그의 종교이해는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하는 것을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정경옥은 "나의 신조" 제1조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의 특수한 종교신앙의 역사적 표현이며 진보 발달하는 생활자체이며 개인과 사회생활의 동적 표준이 되기 때문에 (a)과거의 경험사실을 조직적으로 고찰하여 (b)그 경험사실의 진리성을 이론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18

이것은 기독교란 "종교신앙의 역사적 표현"과"사회생활의 동적 표준"을 통한 종교이해의 차원에서 설명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생활신앙임을 주장하려는 시도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주장을 가능하게 하는가? 이러한 주장의 저변에서 종교신앙이 생활신앙이 되게끔 하는 원소적 요소는 인간의 직접적 경험과 그 경험의 진리성에 의한 이론화 작업이다. 이점에서 그는 인간의 경험에 신앙의 실제성을 두고 있으며, 경험된 신앙 혹은 신앙의 경험을 철저히 강조하고 있다.

종교에 있어서 신앙의 요소는 매우 본질적이며, 종교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 요소이다. 그러므로 신앙에 대한 역설은 모든 종교가 항상 강조하는 바이다. 그런데 정경옥은 이 신앙의 본질이 경험에 의해서 현실적 실체가 된다는 사실을 역설하면서, 신앙의 체험을 말하고있다. 이것은 신앙이 체험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실재를 인간의 체험을 통해서 만날 수 있게 하는 신앙은실제적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신앙은 곧 신인식의 직접적 길이며, 가장 확실한 논증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이나 전승을 통해서, 혹은 교리 적 형식을 통해서 계시되거나 그 자신을 현현하는 것이 아니고, 직접 각개인에게 그들의 신앙의 농도에 따라서 계시되고 현현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각 개인의 개체적 경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이 말의 이면에는 우리는 지식이나 합리적 사고, 혹은 도덕적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신앙의 경험을 통해서는 직접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아래와 같이 고백했다.

34.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지식에 제한이 있고 하느님 자신이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인간경험의 대상이 되어 있다는 점으로 보아서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지식은 제한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을 믿는다.19

정경옥의 이러한 신앙고백은 매우 경험론적이다. 그는 신앙은 경험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님을 깨닫게 되는 것은 신앙경험에서 가능함을 설파하고 있다. 즉, 개인의 신앙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계시되는 것이며, 그래서 신앙경험은 하나님의 계시를 알 수 있는 유일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맥락에서 그는 롤의 신학사상의 일면을 직접 받아들였던 것이다. 롤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 즉 하나님의 자기 계시성은 "말로서(by words)"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삶의 경험을 통해서(in the experiences of life)" 자기자신을 현현 한다고 주장한다.20 그러기 때문에 그는 인간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서 그를 알 수 있고, 하나님 자신도 인간의 삶에서 계시된다는 사상을 강조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롤은 이러한 종교가 곧 "영의 종교(the religion of the sprit)"이며, 바로 이것이 기독교 신앙인을 단정적으로 서술했다.21 따라서 롤은 인간은 경전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사상으로서 시작하며, 바로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성서를 갖고 있는 종교이지만, 성서종교(a book religion)는 아니라고 분명히 단정하고 있다.22

위에서 우리는 정경옥과 그의 스승 롤의 신앙론에서 전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경옥은 철저히 롤의 입장을 수용하여 자신이 신앙론으로 정립했음을 단편적으로나마 보게 되었다.

정경옥은 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절대계시보다는 개인의 신앙경험에서 하나님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믿으려는 다분히 감성적·경험론적 신앙론에 정주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신인식론이나 신관 등은 신앙의 척도에서 신앙되어야 하는 경험주의적 입장이다.

그리고 정경옥은 신앙의 질적 차이를 구별하는데 매우 소극적이며, 사실상 거의 개인의 신앙경험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갖고 신의 계시성을 설명하려는 주관주의적 신앙이론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23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철저히 슐라이에르마허의 절대의존 감정에서 본질규명된 종교성과 롤의 경험론적 종교 신앙론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그래서 그의 신학사상은 매우 주관주의적이며 경험론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대인 교수가 정경옥의 신학을 롤의 모방(模倣)이라고 한마디로 단정한 것은 바로 정경옥은 거의 "제2의 롤"이었으며, 롤의 신학의 번역판이거나 복사제본된 신학이라는 것을 강하게 말하고 있다.24

여기에서 몇가지 정경옥 자신의 진술을 들어보기로 한다.

나는 '신앙에 있어서 보수주의이요 신학에있어서 자유주의 '란 입장을 취한다.25

"나는 계시가 역사(歷史)인 것을 믿는다. 그리고 역사는 그것이 하느님의 창조와 섭리아래 있는 이상 계시인 것을 믿는다. 이와같이 '일반적 계시'를 용인한다고 하여서 결코 '특수적 계시 '를 부정한다는 아무런이유가 되지 못할 것 같다.

신앙은 모든 것을 세계와 인간의 피방(彼方)에 있는 '주관'의 자기부여 행위(自己賦與行爲)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한다.27

기독교 신학은 먼저 기독교가 실질상으로 역사 가운데 끼쳐준 경험 일반을 고찰한다.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 신학의 시야는 먼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자원에 유의할 것이란 말이다.28

종교적 신앙은 진리 아니면 동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깨달음이 없이는 아무 일에도 손을 대지 아니하려는 정신이 포함된다. 나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면 비록 움직일지라도 힘이 없고 일을 할지라도 뜻있는 일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신학의 특징은 연구자의 내적 경험과 그 학문 자체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29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독자적인 전통을 존중히 여기어 그 진리 파악을 확실히 하고 또 한편으로는 명석한 관찰과 식별을 가지고 시대가 이해하고 요구하는 방법에 의하여 신학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이 시대는 각각자기문화에 대한 자아반성(自我反省)을 요구하고 있다. 기독교는 세계의 소유(所有)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해석하는 방법(方法)과 그 형태(形態)는 각자의 문화형태(文化形態)에 비추어 향토화(鄕土化 )하고 시대화(時代化 )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이것이 이 시대에 있어서의 신학의 임무일 것이다.30

이상의 진술에서 우리는 그의 신학사상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직접 알게되었다. 신학이 토착화되어야 하는 것, 그리고 동시에 상황적이어야 하는 것은 신학의 생명력을 역설하려는 것이다. 이미 신학은 생명이어야 하며, 삶이어야 한다는 그의 사상에서 오늘의 신학의 모습을 보게 된다.

IV. 정경옥의 신학사상에 대한 평가

정경옥이 한국신학사상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를 논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모험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가 그의 신학적 저력을 펼쳐보지 못하고 생을 마쳤으므로 그의 신학사상의 완성된 구조물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의 글들이 점점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읽혀지기 시작했고, 더욱이 1960년대부터는 감리교 신학자들에 의해서 정경옥 신학 발굴작업과 평가작업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어 어느정도 그의 신학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먼저 그의 신학사상의 한국신학사상사적 위치와 의미, 그리고 그의 영향 등을 평가하도록 할 것이다.

1) 정경옥이 한국신학사상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그는 한국신학계에서 최초의 종교신학을 체계적으로 역설한 종교신학자라고 평가될 수 있다. 몇몇 감리교 신학자들이 최병헌을 한국 최초의 종교신학자로 서술하고 있지만, 그러나 최병헌은 정직하게 표현한다면 종교신학자 라기보다는 종교편람자라고 말하여야 할 것이다. 그의 「만종일련」은 사실 신학저서가 아니고 종교교과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경옥의 논문들이나 저서들 가운데는 여러 곳에 종교일반에 대한 상대주의적 평가와 종교간의 상호인정을 전제로 한 다양한 이해가 역설되어 있다. 특히 그의 신학의 핵심을 간추려 신앙고백 형식으로 진술한 71개조의'나의 신조'에서도 비록 종교 신앙론으로 표명되어 있기는 하지만 종교신학을 논하는 내용이 그 심저에 깔려있다.

둘째, 그가 이러한 연구활동을 하던 1930년대 초의 한국신학계에서는 그의 종교신학이 거의 최첨단의 주장, 다시 말해서 전위적 사상이었다고 하겠다. 이처럼 그는 한국신학계에서 종교신학의 효시가 되었으며, 그의 신학적위치는 그 뒤 한국감리교 신학의 전통을 세워주는데 큰 공헌을 했다. 윤성범 교수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론적 기초 위에서 다양한 신학함을 강변하였고, 또 지금에는 좀더 전위적 해석까지 수용하는 감리교의 종교신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정경옥의 종교신학, 혹은 좀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종교상대주의신학에 그 생존의 터를 두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감리교 종교신학자 유동식 교수도 인정하고 있다.

일반계시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자유주의의 입장은 자연히 타종교의 의미와 가치를 찾게 한다. 초기 최병헌을 비롯하여 정경옥의 종교 일반에 대한 관심, 그리고 오늘의 감리교 신학자들의 재래종교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하나의 공통된 전통에 속하는 것이다.31

2) 정경옥에 대한 한국신학사상적 의미는 다양한 관점에서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긍정적으로든지 부정적으로든지 간에 그는 한국신학을 학적으로 형성하는데 공헌했을 뿐만아니라, 그 자신이 신학의 새로운 본질규정을 통해서 한국신학의 율법주의적 보수주의성 혹은 편향된 신학주의를 분쇄하는데 일조했다는 점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학을 아무런 주저함없이 "자유주의"라고 독백했다. 이 말속에서 그는 신학은 철저히 경험적 실재론에 의한 이론화작업이어야 하며, 동시에 신학은 종교신앙과 연결되어야 함을말하고 있다. 그는 이런 신학사상의 맥락에서 신학을 정의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신학이론을 자신의 신학이론으로 수용, 역설한다. 그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신학이전(神學以前)의개념'으로 신학의 여재(與材)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신학은 아무런 비판이 없는 전통을 분쇄(粉碎)하고 최후의 확실한 점에 이르도록 그 길을 개척한다.

신학은 신앙생활을 성찰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종교적 체험에 사유(思惟)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으로 보아서 사유 자체가 곧 신앙을 구성한 주요한 부분이 된다. 그러므로 사유는 신앙을 살리는 운동의 하나이다. 우리는 종교생활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신학이 있다고 말하였다.32

이러한 그의 신학입장은 "신학의 향토화"로 그가 표현한 새로운 신학운동을 펼치는 가능성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것은 사실상 신앙의 토착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종교신앙"이라는 그의 용어속에 함축되어 있다. 이점에서 그는 한국신학사상사에서 한국적 신학, "향토신학'을 최초로 역설한 토착화 신학자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그는 동시에 "신학의 시대화"도 역설했다. 이것은 신학의 상황화를 의미하며, 상황신학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3. 정경옥의 신학에 대한 간추린 평가 :

①신학함을 다양화했다.

②신학의 포용주의를 주장했다.

③신학의 토착화(=향토화)와 상황화(=시대화)를 역설하며 자기 신학을 강조했다.

④신학의 상대화를 인정했다.

⑤복음주의 신앙과 자유주의 신학을 절충하려 했다.

⑥신앙체험을 강조했다.

⑦기독교 변호론을 강조하면서 때로는 기독교의 배타주의를 비판했다.

⑧그의 역사관은 창조적 진화를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⑨그의 신학에는 원죄론이 없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념, 그릇된 태도, 그릇된 행동, 그룻된 결과를 스스로 의식하는 것"이라는 그의 죄론은 종교심리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죄의식에 불과하다.

⑩그에게는 삼위일체론이 약하며 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과 부활사건에 대한 고백이 약하다.

⑪그의 신학사상은 잡다한 사상의 유입·혼합, 다양한 이론의 수용·나열, 그리고 다양한 개념의 수집·전시로 인해서 그 자신의 신학함을 명료하게 부각시키지 못하고있다.

⑫그는 거의 자신의 신학을 롤의 신학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정경옥 교수의 신학사상을 볼 때에 그는 지나치게 자기 스승 롤 교수의 사상에 의존하지 않았나 하는 점을 문제삼을 수 있다고 본다. 사상의 전체적인 방향, 자세, 구조로부터 그 구체적인 문제처리까지 유사점이 너무 많이 있다.

주(註)---------------------------------

1. 박대인, "정경옥 교수의 신학사상에 나타난 미국신학의 배경", 「신학과 세계」, 제6호(198O ), p.203.

2. Harris Franklin Rall, The Christian faith and way(New York, Nashville:Abingdon Press, 1947), p.9.

3. Ibid.

4. Ibid

5. Ibid., p. 10.

6. Ibid., p. 10.

7. Ibid., p. 5.

8. Ibid., p.91.

9. Ibid., p. 9.

10. Ibid., pp.91~99.

11 . Harris Franklin Rall, Chirstianity:An Inquiry into its Nature and Truth (New York:Charles Srribner's Sons,1953, C. 1940), p.4.

12. Ibid.

13. Ibid., p.239.

14. Ibid.

15. H.F. Rall The Chiristian and Faith, p. 15.

16. H. F. Rall, Christianity, ⅶ

17. H.F. Rall, op. cit., p. 5.

18. 정경옥, "나의 信條', 제1조, 「기독교신학개론」(京城: 감리교회신학교, 彫花四十年 ), p. 522.

19. Ibid., pp. 527-28.

20. Harris Franklin Rall, Modern Premillennialism and the Christian Hope(Now York:The Abingdon Press,

1925), p. 181.

21. Ibid., p. 180.

22. Ibid

23. 정경옥, op. cit., p. 4.

24. 박대인, op. cit., p.93.

25. 정경옥, ibid., 序, p. 3.

26. ibid, 序, p.5.

27. Ibid., p. 3

28. Ibid., p. 4

29. Ibid., p. 6

30. Ibid., p. 20

31. 유동식, 「한국신학의 광맥」(서울 : 전망사, 1990), p.142.

32. 정경옥, 「기독교신학개론」, p. 28.

33. 박대인, op. cit., p. 202. 박교수의 정경옥에 대한평가에는 몇 가지 문제 가 있다. 우선 그는 정 경옥의 신학사상이 미국에서 체계화된 점에 너무 역점을 두면서, 그에게 끼친 롤의 영향만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정경옥이 롤의 신학사상을 거의 표절한 것처럼 서술하고있다. 그리고 박 교수는 롤을 미국신학의 대단한 인물로서 암시하며 지나치게 의미화하고 있다. 미국신학이 서구신학, 특히 독일신학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던 당시 상황에서 롤은 수많은 미국 신학자들 가운데 한명이었는데, 그가 마치 미국신학을 주도하던 인물처럼 서술한 것은 너무 감상적 평가, 혹은 조국애적 우월의식을 그 저변에 깔고 있음이 아닐까. 사실 롤 자체의 신학의 깊이도 문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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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최경복의 희망광장
글쓴이 : 최경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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