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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홍도목사/(목회자세미나) 교회성장과 목회자의 지도력

하나님아들 2013. 1. 5. 16:21

김홍도목사/(목회자세미나) 교회성장과 목회자의 지도력


 교회성장을 위해서 우리가 강조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구원의 확신과 체험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성장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 관계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 확신과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는 성장이란 사실상 성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째로 전도와 선교에 대한 강조와 실천입니다. 하나의 생명을 소중히 여김이 없이 성장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구령열에 불타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전도해야 합니다.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전체를 내다보고 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선포하고 그것을 준비하도록 강조해야 합니다. 교회는 종말적이어야 성장합니다. 깨어 기도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뿐 아니라 죄와 행위에 대한 심판의 불가피성과 엄위성도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자 자신의 지도력입니다. 피터 와그너(Peter Wagner)의 현장조사에 따르면 교회의 성장은 목회자의 자질과 지도력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맥가브란 역시 그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에 교회성장에 미치는 목회자의 지도력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교회의 성장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개 지도력을 논함에 있어 다음 두 가지 형태를 비교함으로 교회성장을 위한 지도자의 모델을 찾고있습니다.
 우선, 수동적 지도자의 유형입니다.
 리차드 허츠슨(Richard Hutcheson)에 의하면 수동적 지도자란 일이 성취되는 과정을 이해하며 때로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목적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지만 비교적 일의 성취 과정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자"입니다. 살러 (Shaller)는 수동적 지도자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수동적 지도자란 단어의 의미는 지도자로서의 책임 회피, 소극적인 태도, 사명감의 결여, 그리고 진취력의 부족이다. 교회 성장 현장에서 수동적 지도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입니다.


첫째, 그는 교회성장 현장에 직접적으로 깊이 관여하지 않으려 합니다. 교회 성장을 유도하거나 교인들의 교회 성장을 위한 활동 현장에 최고의 지도자로서 깊이 관여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교회의 현상을 적당히 유지시킴으로 자기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둘째, 그는 교회가 꼭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종말론적인 요구에 대한 무지 때문일 수도 있으며, 교회성장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도자가 지불하여야 할 많은 희생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셋째, 수동적 지도자는 교회성장의 제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책임을 회피합니다. 교회가 성장을 시도한 후, 때로 예기치 않은 이유로 인하여 성장이 좌절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지도자나 교인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 때문에 갈등을 겪게 되며 때로 이 갈등은 심화되어 교회의 내분으로까지 번집니다. 수동적 지도자는 바로 이러한 결과를 두려워하며 아예 처음부터 성장을 계획하거나 시도하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음은, 능동적 지도자의 유형입니다.
 이 형태가 바로 교회성장학에서 요구하고 있는 지도자의 형태입니다. 와그너는 능동적 지도자의 기능과 역할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능동적 지도자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목회의 구체적인 목표를 능동적으로 세우며, 교인들로부터 이 목표 수행을 위한 책임적 지도력을 소유하며, 또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적절한 훈련과 교육을 시키는 지도자이다." 그리고 능동적 지도자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째, 능동적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the will of God)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지도자의 모습 중 '종(Servant)'이라는 개념이 여기에 속합니다. 종은 자신이 주인의 소유물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위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종으로서, 아래로는 인간을 섬기는 종으로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 : 17)고 가르치셨습니다. 바울의 경우, 이 관계성을 그리스도와의 관련 아래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지도력은 '예수 안에서 (Within Christ), 예수와 함께(With Christ), 예수를 위하여(For Christ)'라는 근본 명제에 충실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성장학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이란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간절하신 소원이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윤리적 명령으로 전환되어 나타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명령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있는 '모든 족속'이 여기에 속하는데 희랍어 원어로는 'pantata ethne'입니다. 이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나 그 가운데 한 가지가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으로부터 제외될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성장을 주도하려는 지도자는 하나님의 소원에 전적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가 있음을 깨닫고 순교자의 각오를 가지고 수행할 것을 결심합니다.


 둘째, 능동적인 지도자는 과학적인 현장 조사와 예측을 통하여 성장의 목표(Goal)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우선 목회자 자신이 스스로 목표를 결정하여 교인들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자신이 제시한 목표는 교인들로부터 약간의 수정과 보완을 받을 수 있다는 개방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제시한 목표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 및 강력한 책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은 '목표'입니다. 목표는 목적(Purpose)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목적은 미래에 대한 일반적이고 막연한 예측임에 비해 목표는 시간 개념으로, 방법론 및 예측된 결과를 숫자로, 구체적으로 표시하는 미래 예측입니다. 따라서 지도자는 목회의 장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교인들에게 확실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함으로 교인들의 책임감을 독려할 수 있고 일정한 시간에 일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이 목표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지도자는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과 과학적인 분석, 예측을 위한 전략적인 태도를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한 과학적 태도가 아니며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아무 근거가 없는 맹목적인 신앙만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의지를 근거로 한 과학적인 태도로 현재를 분석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느헤미야에게서 탁월한 지도력과 뛰어난 현실 감각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이끄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간섭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의 목적과 목표에 대한 전략적 개념을 사용함으로 백성들에게 새 예루살렘 재건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였습니다.


 셋째, 능동적인 지도자는 이 목표를 이루는 전 과정에 영적인 지도력(Spiritual Leadership)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모든 지도자는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권위(Authority)를 지녀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지도자가 권위가 없을 때 결코 권력을 위임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서 속에 나타난 지도자들은 거의 이 권위의 개념을 지도력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구약성서의 '머리'라는 지도력 가운데는 이 '권위'의 개념이 강하게 풍겨납니라. 모세는 탈출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머리였고, 다윗은 진취적인 결단력을 통해 권위를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신약성서에서도 권위의 개념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 권위의 동기가 구약성서와 약간 다르게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을 보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순종하라(Obey)'는 뜻은 '지도자에게 설득 당하도록 자신을 개방하라'는 것입니다. 강제성을 떤 물리적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도자의 영향력 있는 '설득의 행위'를 중요시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이란 지도자로서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복종하라(Submit)'라는 말의 뜻은 강제성을 띤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복종하게 되는 태도를 말합니다. 지도자의 권위의 근거는 물리적인 힘이나 강제성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을 향한 지도자로서의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태도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도자의 이상적인 모델을 살펴봅시다. 바울의 말, 즉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이라는 말에서 찾아집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나에게 들어와 정지된 상태로 머무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이 내 속에서 살아 움직여, 타인에게로 전파되어 가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복음의 기쁜 소식(Good News)이 나에게 와, 죽은 상태로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뜨겁게 번져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 성장학은 목회자를 통하여 교회가 뜨겁게 성장하는 실태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말씀의 확신과 구원의 역사를 빠른 속도로 전파하기 위해 힘쓰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목회자가 교회성장을 위하여 노력할 때 지도자의 절대적인 권위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능동적인 지도자는 교인들로 하여금 목표를 이를 수 있도록 돕고 자기 역할을 발견케 하고 이것을 위한 교육을 실시합니다. 지도자는 교인들 가운데 특별히, 목표를 위한 제 프로그램 속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과 여건을 가진 사람들의 지도력을 개발하여야 합니다. 특별히 교인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평신도 지도자로서의 요건을 갖춘 사람들이 있습니다.
 

 ① 남보다 특별한 믿음의 은사를 지니고 있는 자
 ② 확실한 구원의 체험을 소유하고 있는 자
 ③ 긍정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는 자
 ④ 다른 교인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는 자
 ⑤ 협동적인 일을 잘 하는 자
 ⑥ 비교적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자
 ⑦ 전에 사회에서나 교회 내에서 일정한 분야에 책임자로서 일을 한 경험이 있는 자
 ⑧ 목회자에게 순종을 잘 하는 자
 이러한 요건을 갖춘 평신도 지도자들을 찾아 교회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교인들의 훈련과 교육을 위하여 목회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일을 미리 준비하여야 합니다.
 ① 교육을 시키기 위한 지식과 정보를 미리 터득해야 합니다.
 ② 교회 성장 전문가에게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얻거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③ 교인들의 교육프로그램을 세우는 데 있어서 교인들의 신앙과 지도자로서의 예비적 조건을 고려하여 교육단계, 교과내용, 교육기간을 미리 설정하여야 합니다.
 ④ 교육의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준비해야 합니다.
 ⑤ 교인들의 참여도와 성실 도에 따른 보상을 실시하여야 합니다.


 교회성장을 주도하는 지도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태도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요구는 성서적인 교훈과 교회성장학자들의 교회성장 현장조사에서 얻은 경험적 결론과 부합되는 것입니다.
 회개
 교회성장을 이끄는 지도자는 분명한 회개의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서 속에 나타난 여러 지도자의 경험은 대부분 회개의 경험을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세가 자기 휘하의 지도자를 선출할 때도 하나님 앞에 진실하며, 불의를 미워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깊은 신앙적 유대감을 지도력의 근본으로 여겼습니다. 비록 밧세바와 불륜의 관계를 맺었지만 철저한 회개를 통하여 다시 지도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바울은 스스로 고백하기를, 다메섹에서의 회개의 사건이 사도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맥가브란 교수는 일찍이 세계 교회 현장을 조사한 후에 교회성장의 제 이유들을 분석했습니다. 그는 교회성장의 원인 중의 하나로 지도자의회개를 들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우선 하나님 앞에 전인격적인 회개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근세에 감리교의 부흥운동을 통하여 전세계적인 선교열을 일으키고 교회성장에 중요한 동기를 부여한 요한 웨슬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도자의 회개 경험은 교회 현장에서 성장을 향한 시발점이 됩니다.
 그런데 지도자의 회개는 다음의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는 것이 한국의 교회성장학자인 이요한의 주장입니다.


 첫째로 일회적인 회개입니다. 이 회개는 기독교인이 구원을 경험할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일생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예수께 향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요한 웨슬레의 경우 올더스게이트(Aldersgate)의 경험이 이에 속하며 바울에게 있어서는 다메섹으로 향하는 도상에서의 경험입니다.
 둘째, 절기적 회개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기간을 설정하여 하는 회개입니다. 지도자의 회개는 일회적인 회개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흔히 일회적인 회개로 만족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지향적인 태도로서 자신의 죄에 대한 부분적인 회개에 그치게 합니다 지도자는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시간을 정하고, 그 일정한 시간 안에서 회개의 행위를 계속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일정한 시간이란 일 년에 몇 차례 시간을 정하여 외부와 단절한 채 홀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경험 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셋째, 매일의 회개입니다. 이것은 지도자가 매일 기도할 때마다 행해야 하는 회개입니다. 현대사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악의 세력이 팽창되어있는 세대입니다. 죄의 공해 현상이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일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세대입니다. 마귀는 배고파 우는 사자와 같이 그 어느 때보다 지도자를 넘어뜨리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잠시도 쉬지 않고 긴장된 상태에서 자신을 거룩하게 정화시켜 계속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사용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성장이란 지도자의 계속적인 회개의 경험을 통하여 그 불길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
 지도자는 분명히 자기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 없이 구령열에 불탈 수 없으며 구원의 소식을 교인들과 교회 밖의 세계에 선포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경험은 하나님과 지도자의 근본적인 관계에서 생깁니다.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 10 : 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여 하나님과의 근본적 관계를 밝히고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근본적인 사랑의 관계를 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계의 성립은 지도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역자로서 사명감을 깨닫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 관계성 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인간은 듣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실한 경험은 지도자에게 '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종말론적 확신을 심어 주게 됩니다. 따라서 그는 거침없는 용기를 가지고 타인들에게 구원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현장에서 발견되어지는 부정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가 지도자들이 교인들에게 구원의 경험을 향해 강력한 도전을 하도록 권하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필요성을 외치는 대신, 위로와 기복적인 내용에 치우침이 대부분의 목회자들의 메시지입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구원의 필요성을 강력히 역설할 때 종종 교인들로부터 심리적인 반발을 경험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는 자신의 구원 경험을 근거로 하여 교인들에게 구원의 확실한 경험을 갖도록 강력히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성장학의 이론에 의하면 목회자를 통한 교회 내의 신앙부홍운동(Renewal Evangelism of Church Member)을 E-O(Evangelism Zero:교회의 내적 성장)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성장을 E-O의 단계에서부터 출발할 때 구원의 역사가 무르익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계속되는 성장의 제과정은 바로 이 E-O의 과정임을 알고 목회자는 구원의 경험을 교회 내에 확산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절대적인 순종
 교회성장을 주도하는 지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명령을 절대적인 명령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 명령을 준행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데 적극적입니다. 교회성장학의 용어로 표현하면 교회성장을 위한 값을 지불하는 데(Paying the Price for Church Growth)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와그너는 교회성장을 시도하지 않는 목회자는 교회성장을 위한 값을 지불하려는 태도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성장은 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성장을 위하여 지도자는 다음의 몇 가지의 대가를 즐겁게 지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지도자는 교회성장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Assuming the responsibility for growth).
 둘째,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야 합니다(Working hard).
 셋째, 교인들과 일을 나누어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Sharing the ministry).
 넷째, 교인과 개인적인 접촉을 희생할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Having members you can not pastor).
 다섯째, 교회성장을 방해하는 신학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Revising non-growth theology).
 신약성서의 지도력의 핵심은 바로 순종의 개념에서 나옵니다. 종은 주인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표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종의 의무를 설명하시면서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였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선교를 위한 마지막 명령으로 순교를 하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복종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의 명령인 '복음의 증인'은 희랍어 원어로 '순교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제자 베드로와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순교의 자리까지 서슴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이란 언어적으로 시인하는 '예'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자신을 희생할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자기 부정
 빌립보서 2장에는 예수님의 지도력을 묘사하는 가운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은 바울 사도의 자기 부정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제 조건과 자랑들을 선교를 위해 버렸으며 계속적인 고통을 자기 부정의 방법으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성장을 이끄는 지도자는 자신을 부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미국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은 한국 교회의 성장 현장을 보면서 호기심과 부러움에 찬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도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자기를 부정하는 데 적극적임을 알게 됩니다. 이요한은 한국 목사들의 자기 부정의 현장 가운데 특별히 목사 가정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 목사들에 비해 한국의 목사들은 교회성장을 위해 자기 가정을 쉽게 희생시킵니다. 물론 희생을 시키고 싶어서가 아니라 열심을 다하여 교회성장을 이끌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가정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국 목사는 가정의 희생에 대해 죄책감에 젖어 이렇게 변명합니다. 이 다음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상을 주실 때 목사인 나의 몫은 10%, 내 아내의 몫은 60%, 내 자녀의 몫은 30%일 것입니다."


 지도자는 교인들을 향하여 섬기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와그너교수는 지도자가 교인들로부터 섬기려는 태도를 가질 때 지도력을 소유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 : 12)고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높이는'과 '자기를 낮추는'이라는 능동형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낮아질 것이요'와 '높아질 것이요'라는 수동형을 사용하였습니다. 즉, 스스로 자기를 낮추면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며, 스스로 자기를 높이면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신다는 교훈입니다.
 목회자는 문화적인 관점에서 자기를 부정합니다. 목회자가 생각하는 교인들의 문화적 요구와 교인들이 실제적으로 갖고 있는 문화적 요구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때 목회자는 자신의 문화를 부정하고 교인들의 문화에 적응해야합니다. 이요한은 한국 교회의 성장현장을 분석한 후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我死敎會生, 我生敎會死", 즉 지도자가 죽으면 교회는 살고, 지도자가 살면 교회는 죽는다는 뜻입니다.
 지도자가 자기 부정을 꾀한다는 사실에는 자기의 물적 자산과 육체적 에너지의 희생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회성장을 시도하는 목사는 교인들이 보는 앞에서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보기에 지나친 물질적인 풍요는 그들로 하여금 목사의 권위를 인정치 않게 하는 동기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의 희생적인 노력은 한국 교회 성장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잠을 자지 않고 노력합니다. 한국 교회가 미국 교회보다 성장률이 높은 것은 새벽기도회를 통한 목사들의 수면 부족 상태를 지적해 봄이 좋을 것입니다.


 공리주의
 성장을 이끄는 지도자는 교회 현장에 대한 공리주의(Pragmatism)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공리주의란 교회성장을 위한 형이상학적인 태도가 아니라 실제적인 방법론을 개발하고 이를 교회성장에 직접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9 장 22절에 바울의 공리적 태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바울은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기 위하여 모든 방법(all means)을 동원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는 말은 그가 복음에 위배되는 부정적인 방법을 동원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복음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구체적인 온갖 방법을 찾아내고 개발하여 이를 목회 현장에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교회성장학은 오늘날 여러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개발하여 교회성장을 위해 사용하도록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실상 교회성장의 현상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만일 지도자들이 원한다면 많은 방법론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지도자의 태도입니다.


 세계 교회에 대한 관심
 교회성장을 주도하는 지도자는 목회 관심의 범위가 자기 교회를 뛰어 넘어 범세계적인 교회 현장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맥가브란 교수는 개체 교회 성장의 궁극적인 목적은 복음을 좀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많은 개척 교회를 설립함에 있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성숙치 못한 지도자는 교회성장의 궁극적인 범주를 자기 내부에 둠으로 인하여 자기의 이기심을 만족시키는 일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성장에 성공하여 얻은 영적 및 물적 축적을 자기 교회에서만 소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참된 교회성장을 원하는 지도자는 자기 교회의 성장을 통하여 얻은 힘을 하나님의 교회들을 위하여 과감히 투자합니다. 교회는 인간의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마태복음 16장 18절을 통하여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I will build up my church)"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다운 교회성장의 지도자는 국내외에 많은 개척 교회를 설립함을 교회성장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요한은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세계 선교의 필요성을 알리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지금 이 순간 한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은 왜 하필, 국내에도 비 기독교인들이 많은데 국외로까지 우리의 선교적 희생이 확산되어야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문은 베드로가 예루살렘교회의 대표적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던 그의 목회 경험의 초창기에 가졌던 사고와 연결됩니다. '왜 하나님의 복음이 비유대인에게까지 전달되어야만 하느냐'는 질문은, 선교에 대한 유아기적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후에 베드로는 기도하는 중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인에게까지 전달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게 됩니다.


 넓은 선교 현장에서 하나님의 신비가 발견됩니다. 그것은 해외선교에의 투자가 국내 교회의 악화를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장의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힘과 희생을 통한 '세계 교회(World Chruch)'의 성장은 국내 교회의 성장을 위한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에 의해 세계 선교가 진행되고 있던 초대 교회 시대에 이스라엘국내에 도대체 몇 개의 교회가 있었으며, 그 교회의 교세 또한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당시 국내보다는 국외에 더 많은 교회가 개척되어 있었으며 국내 교회의 교세보다 국외 교회의 교세가 더 강했습니다. 국내 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도리어 이방 교회들로부터 경제적인 보조를 받고 있었음이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국외 교회는 국내 교회에 의하여 개척되며, 동시에 국내 교회는 국외 교회의 성장과 함께 자기의 성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의 관계를 간단히 도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
 R=국내 교회 혹은 내 교회의 현 상태
 S=국내 교회 혹은 내 교회가 희생한 양
 B=국내 교회 혹은 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잉여의 축복의 양
 순교자의 정신
 교회성장을 시도하는 지도자의 마지막 자세는 순교자의 정신입니다. 에즈베리(Asbury)신학교 내 세계선교대학원 원장인 죠지 헌터(George Hunter)는 교회성장에 관한 세미나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지난 몇 해 동안 미국 교회들을 조사하는 동안 책을 읽으면서 가설로 지니고 있던 저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검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교회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지도자는 교회를 위하여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교회 현장에 가서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목사가 당신의 교회를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그랬더니 성장되고 있는 교회의 교인들은 그렇다"라고 대답했고, 성장하지 않는 교회의 교인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세계 교회 성장의 역사 배후에는 순교의 피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세계 복음화를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을 준행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순교하셨습니다. 바울과 베드로도 예수의 명령에 준행하기 위해 순교하였습니다. 지도자의 순교의 피는 복음이 확장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성장을 이끄는 지도자는 자신의 구원 경험을 온 교회 내에 확대시켜야 합니다. 구원의 관점에서 볼 때 교회 안에는 아직도 구원을 경험하지 못한 자와, 이미 오래 전에 구원을 경험했으나 그 구원의 경험이 식어 버린 자가 있습니다. 지도자는 구원의 경험이 없는 자들에게 구원경험을 하도록 도와야 하며, 또한 이미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예수를 향한 첫사랑의 뜨거움을 항상 간직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교회성장을 위한 값을 지불하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즉 교회 내에 공동체적 순종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교인들로 하여금 이기적인 신앙 자세에서 벗어나 예수의 지상 명령을 준행키 위해 절대적인 자기 부정을 결단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교회성장은 교인들이 성장을 위한 값을 얼만큼 지불하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지도자는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 현장에 대한 현실적 감각을 지니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교회가 왜 성장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성장하는지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성장의 이유와 그 실천 사항을 숙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평신도인 자신들이 교회성장을 위하여 지니고 있는 약점을 깨닫게 하여 이에 대한 현실적인 보충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목회자는 교회로 하여금 자기 교회성장의 궁극적 목적이 세계 교회의 성장임을 알게 해야 합니다. 개체 교회성장의 궁극적인 목적이 세계 선교의 참여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때 궁극적으로 그 교회의 성장의 의의는 사라지고 맙니다. 실상 교회내에서 자기들을 희생하여 다른 교회, 혹은 다른 나라 교회를 위하여 투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한국 교회 내에는 아직도 선교의 당위성에 대한 평신도들의 이해가 부족한 편입니다. 지도자는 한국 교회의 계속적인 성장과 세계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특별히 시대적 사명감을 가지고 이일을 추진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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