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나아갈 길 (김성재 교수)
1. 문제의 인식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하는 문제인식은 자기정체성과 방향성을 상실하고 표류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문제인식은 매우 포괄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 해결의 길이 쉽게 찾아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가 자기정체성을 상실하고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최소한 한국교회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하면 이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본다.
첫째, 한국교회가 교단 차원을 넘어서 공동으로 자기정체성과 방향성을 모색한 것은 기독교 전래 초기부터였지만 현재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시켜 볼 때 우리의 문제인식을 1970년을 기점으로 하여 전과 후를 나누어 인식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는 일제식민지 하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일제로 부터 해방된 이후 1970년까지는 현실의 문제를 자기의 선교적 과제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1945년 해방과 함께 민족이 분단될 때 이것을 막기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고 비극의 남북전쟁 시기에도 이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킬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또한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대해서도 눈감아 버렸다. 아니 이승만이 교회의 장로라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민주주의를 외면하고 그를 계속 지지하는 잘못도 범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의 자기 정체성과 방향성을 찾는 길은 지나온 자기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자기정체성은 교회내부에서 규정하고 판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교회 밖의 사회가 교회를 보고 판단하는데 근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점에서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자기 안에서만 자기정체성과 방향성을 찾았기에 이제는 한국사회가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
둘째, 한국교회가 해방이후 한국현실의 문제를 전 교회의 선교과제로 인식한 것은 1970년 이후 특히 유신체제 때부터이다. 이때부터 한국교회는 인권, 사회정의, 민주주의 등을 자기의 선교과제로 삼았다. 그러나 1992년 이후 국내적으로는 형식상 군사정권이 종식되고 민간정부가 출범하였고, 일정정도의 경제성장도 이룩되었고, 국외적으로는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미국주도의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면서 한국교회는 이렇게 변화된 국내외의 보수적 정세에 편승하여 이런 선교과제를 상실하거나 포기하였다.
다른 한편 197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정부의 경제성장 정책에 의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부자가 되려는 욕구와 미국으로부터 불어온 성령운동 열풍이 맞물려 교회성장을 지상목표로 삼아왔다. 빌리 그레함 목사 등의 미국 부흥사가 인도하는 성령폭발 대성회로부터 비롯된 성령운동은 한마디로 과거에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는 복음전도 구호에서 한 걸음 발전해서 '예수 잘 믿고 성령 받으면 부자 되고 하늘나라 간다'는 것이었다.
교회성장과 경제성장의 상호관계는 여러 측면에서 전문적 분석과 연구가 있어야 하지만 예수 잘 믿으면 입신출세한다는 위복주의와 인간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경제성장 제일주의에서 비롯된 정신적 공황이 교회성장을 촉진시킨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한국교회는 성령운동과 함께 각 교단별로 경쟁적인 성장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결과 수많은 교회가 개척되었고 경제성장 보다 더 급속한 교회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더 이상 성장이 되지 않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교인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고 있다. 이에 따라 큰 교회를 비롯해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진 교회들은 이제는 성장이 아니라 현상유지를 염려하게 되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교회를 유지시킬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될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물음을 진지하게 묻는데서 한국교회의 자기정체성과 방향성이 찾아질 것이라고 본다.
셋째, 지금 한국사회가 자체가 방향성을 상실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그동안 군사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던 각종 사회운동은 많은 희생을 하였지만 이로 인해 한국사회는 생동감 있게 발전되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운동들이 생명력을 잃고 맥없이 무너지고 사라지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오직 경제성장만을 목표로 삼고 치달려왔는데, 이제 어느 정도 경제성장이 되고 보니 그 후유증이 너무도 크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사회는 인간이 없는 사회가 되었다. 가진 자들은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지 못해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고 못 가진 사람들은 생존의 위기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가진 자들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경제공황 보다 더 심각한 정신적 공황에 빠져 '전생의 신드롬'이 전 사회에 번져가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이런 현실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아니 한국 교회 마져 이런 정신적 공황에 헤메이고 있고, 그 결과 다른 의미의 전생의 신드롬에 빠져있다. 이런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 희망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중병에 걸린 한국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생명력도 없다. 이점에서 지금 한국교회는 왜 한국사회에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절대 절명의 물음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러한 문제 인식에서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본다.
2.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
첫째, 한국교회는 무엇보다도 교회와 사회,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신앙과 정치, 영의 생활과 육의 생활 등으로 나누는 이원론적인 신앙을 극복해야 한다. 본래 이원론적인 신앙은 성서적 신앙이 아니라 희랍 종교 신앙이다. 오늘 서구교회가 퇴락한 근본 원인은 희랍종교의 이원론 신앙을 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이 사회와 세계를 부정하고 도피하는 이원론의 신앙을 극복하여 한국사회와 세계에 희망을 주는 생명력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둘째, 한국교회는 가이사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한마디로 한국교회가 약하고 가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가 강하고 재력이 풍부해야 많은 선교사업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교회가 강하고 부자가 되면 교회는 필연적으로 권력자와 부자의 편에 서게 되고, 약자와 가난한 자를 외면하게 된다. 또한 교회가 강한 힘과 재력을 갖게 되면 하나님을 외면하거나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한다.
교회는 강한 힘과 재력으로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때문에 참으로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교회가 되려면 역설적으로 한국교회는 약하고 가난해야 한다.
세째, 한국교회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고, 감옥에 갇히고, 병든 우리의 이웃으로 오시는 예수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한다. 한국교회는 성서가 증언하는 대로 예수님이 본 사람을 보아야 하고, 예수님이 만난 사람을 만나야 하고, 예수님이 함께 먹고 마신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시는 교회가 될 때만이 참 그리스도의 교회가 된다.
네째, 한국교회는 현재의 성령운동이 참 하나님의 영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맘몬주의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잘 헤아려 보아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신앙의 거룩한 체험을 사유화하지 않고 사회화하고 역사화하도록 해야 한다.
호렙산에서 거룩한 체험을 한 모세는 이 체험을 개인의 종교적 능력을 드러내는 방편으로 사용하지 않고 사회화하고 역사화하여 이스라엘의 해방을 이루었다.
또한 사도 바울도 다메석 도상의 거룩한 체험을 사회화하고 역사화하였기에 오늘의 교회가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신비한 체험을 개인의 영적 능력을 드러내는 수단, 또는 종교적 수단으로 사용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마귀의 영에 사로잡힌 것이다.
다섯째, 한국교회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수용하고 이것을 기독교문화로 발전시켜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거의 다 미국의 팝과 재즈에 사용하는 악기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복음성가라는 것이 거의 다 이런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보수교회들은 이런 악기들은 속된 것이라고 교회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기타를 가지고 찬송을 부르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즈음은 이런 악기가 없이는 청소년을 불러모을 수가 없기 때문에 보수교회가 더 앞장서서 이 분야의 최신식 악기들을 구입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신앙적으로 이단시 해왔던 한국의 전통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는 노력을 해야한다.
여섯째, 한국교회는 신학교육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신학생의 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 신학생의 수를 줄이지 않는 한 목사의 자질을 높일 수 없고 교회자리를 둘러싼 검은 교회정치를 근절시킬 수 없다. 사실 한국교회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교역자들의 도덕성을 회복하고 자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서구신학의 노예화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신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변의 신학에서 실천의 신학으로, 어제의 책을 가지고 하는 신학에서 오늘의 삶의 문제를 가지고 하는 신학으로 전환해야 한다.
일곱째, 한국교회는 해외선교의 목적과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전환하여 해외선교에 힘을 기우리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해외선교의 목적과 방식이 19세기말 서양선교사들이 서구교회의 확장을 위해 피선교국의 자주권과 문화를 무시했던 종교 제국주의적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특히 해외선교가 교회성장의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해외선교는 한국인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보다 그 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선교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식이다.
여덟째,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 대한 책임, 한반도에 대한 책임, 지구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에큐메니칼 운동을 새롭게 전개해야 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단순한 교회연합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많은 교단이 가입했다고 해서 에큐메니칼 운동이 잘되는 것도 아니다. 교회적 관점이 우선하면 결코 에큐메니칼 운동을 할 수 없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관점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관점에 설 때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한국사회를 사랑과 정의가 있는 사회로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 지구촌 곳곳의 약자들과 연대하고, 자연의 생명을 보전하고, 과학, 기술, 정보에 대한 가치기준을 마련하고, 성서의 빛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념과 비젼을 세계에 제시하는 새로운 에큐메니칼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아홉째, 한국교회는 배타주의와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타종교에 대해 너무 배타적이고 적대적이다. 또한 어떻게 보면 한국교회 안에 있는 지역주의 병폐가 한국사회보다 더 심한 것 같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의 망국적인 지역차별주의를 극복하려면, 그리고 한국사회를 건강하고 도덕적인 공동사회로 발전시키려면, 교회내의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타종교에 대한 관용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
열번째, 한국교회는 부도덕한 과소비를 줄여야 한다. 현재 한국교회는 막대한 헌금을 거의 다 자기 유지를 위해 쓰고 교회를 사치스럽게 치장하는데 쓰고 있다.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어떠한 종교든지 종교의식과 건물이 가장 화려했을 때 그 종교는 가장 타락한 종교가 되고 그런 종교가 있는 사회가 어둠의 사회가 되었다.
지금 서구교회는 그 웅장하고 화려했던 예전의 교회를 유지하고 보수할 돈이 없어 싸게 팔고 있다. 이런 면들을 고려할 때 한국교회는 과감하게 소비적 교회구조와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이것이 개혁교회의 신앙과 전통이다. 이점에서 한국교회는 우선 상징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높이 쌓아 올라간 교회의 종탑을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제공하는 신앙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님은 그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원하신다. 한국교회가 종탑에 들어가는 비용을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마련하는 데 사용할 때 한국교회는 참 하나님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성령의 교회가 된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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