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복교수/(목회자세미나)한국 교회의 전망과 진단
1901년 평양에 세워진 신학교가 한국 교회 신학 교육의 첫 본산지라고 하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습니다. 평양신학교는 1907년에 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같은 해 9월 17일에는 최초의 목사를 세워 교회에서 일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 강의를 준비하는 동안, 그 분들의 자취를 읽어가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은 편하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의 초기 목회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모시게 되는 기쁨과 거의 동시에 1910년 한일 합방이라는 이름아래 민족을 잃는 비극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초기 목회자들은 복음 전파와 민족 구원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양어깨에 걸머지고 나섰습니다. 그 분들은 땀과 눈물, 그리고 피를 아낌없이 흘렀습니다. 그 분들 중에 어느 한 분도 존경받지 않은 분이 없습니다.
오늘의 목회자들은 그 분들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또한 미래까지 맥을 이어 주어야 하는 것도 오늘의 목회자들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저는 '21세기가 불과 9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 과연 그 때까지도 초기 믿음의 선배들의 맥이 이어져 갈 것인가? 그들의 혼이 우리 가운데에 계속 살아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지난 봄의 일이었습니다. 저희 학교(장신대)를 졸업한 신학생들과 지방신학을 졸업한 학생들, 무려 1,199명이 목사 안수를 받으려고 몰려 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목사 안수는 5백명만 받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구름떼 같이 몰려든 젊은이들, 소위 선지 동산에 몰려든 목사 지망생들을 보면서 여러 면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진단할 것인가? 무엇을 바라고 젊은이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드는가? 그리스도가 마셨던 잔을 자신들도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갈보리 산상의 십자가의 의미와 교훈을 알고 있는가? 혹시 변화산에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황홀한 모습만을 보고 오지 않았을까? 예루살렘 입성 때 보았던 '호산나' 환호성 속에서 영광으로 휩싸였던 예수님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오지는 않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답을 찾아보았지만 좀처럼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은 미래의 성직자들이 되십니다. 우리는 1백년의 한국 기독교회사에 남겼던 선배들의 빛나는 역사를 재현시켜야 합니다. 우리에게 도래하는 21세기 목회의 장에서 우리의 큰 책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과거의 교훈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길이 미래를 바르게 진단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에게 펼쳐질 21세기 목회의 장에 대해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교회가 핍박을 받고 민중이라는 집합체로 남아 있을 때 교회는 본래의 모습이 더욱 활발하게 전개됩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예입니다. 한국의 교회는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이러한 범주 안에서 평가되는 것이 타당합니다.
1884년 이 땅에 복음이 들어와 개신교의 신앙의 열정이 불타오르던 시절을 비롯하여서 36년간 일본의 침입에 대한 항거의 모체가 되었던 우리 한국 교회는 거대한 사명을 지닌 교회로서 그 생명력이 차고 넘쳤습니다. 때로는 그 열심히 지나쳐 고유한 민족 문화와 전통마저도 우상의 너울 속에 모두 집어넣고 외면해 버리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12살에 복음을 접했던 저는 바로 이 뜨거운 열심 속에 우리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파묻는 희생을 치렀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삼 대째 외동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기독교인이 아니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늘 벽에다 종이를 덮어 놓으시고 거기다 열심히 묵도를 하셨습니다. 무엇인가 늘 명상을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께서 외출하셨을 때 벽면에 씌워져 있던 종이를 열어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한문으로 무엇인가 가득 써 놓은 게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들 이름과 오신 날짜와 가신 날짜가 모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선조를 생각하고 계셨던 아버지를 우상 숭배의 장본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은 선교사들과 우리 교회 전도사님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스무 살 때 아버님이 돌아가시자마자 저는 그것들을 집어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요즘 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비석을 세워 드릴까 하는데 할아버지 이름을 압니까? 생년월일을 압니까? 6 25 때 없어진 호적을 다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전통과 고유한 미풍 양속조차 전부 다 우상이라는 우리나라 초기 선교사들의 선교 정책 때문에 희생당했던 기록도 없지 않습니다. 복음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부작용도 있었지만 민족을 살리기 위해 피흘린 자 가운데 기독교인이 많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쉼없이 기도하였고, 순교의 대도를 걸으면서 한국 교회의 바른 맥을 지켜주었던 자랑스러운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기록도 있습니다. 1935년 신사참배를 결정했던 장로교 총회의 기록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625 동란 바로 직전에 한국 교회의 분열이 그렇습니다. 1950년대 우리나라는 사회와 정치 전반에 걸쳐서 무질서가 지속되었고 한국을 원조하는 미국에 거의 모든 것을 의존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교회마저도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서 좌우되면서 교파의 분열을 비롯한 여러 형태의 미숙한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적어도 미국의 선교사들과 캐나다의 선교사가 이 땅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복음의 확장은 조금 늦어졌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심각한 교회의 분열이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우리의 60년대는 어떠했습니까? 젊은 학생들의 항쟁으로 얻어진 민주화는 군대의 힘에 의해서 무참히 짓밟히고, 교회는 국민들과 함께 가난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간구하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권의 보장이나 사회의 민주화는 모두 집권자의 주장대로 유보 상태를 취하면서 신앙인들은 우선 보릿고개를 없애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때문에 신앙인들은 교회 밖에서는 열심히 일하며 땀 흘렸고 교회 안에서는 영혼과 육신이 범사에 형통해지는 축복을 받으려는 비결을 찾기에 바빴습니다. 이것을 이용해서 교회는 커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적인 교회도 등장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의 교회는 기복신앙의 요람지로 변질되는 아픈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70년대는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정권이 유신이라는 독재의 칼날을 휘두른 때입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은 독재와 군사문화에 시달린 민중의 인권을 위해 부르짓는 의인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오로지 성장 일변도로 교회의 확장에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오며 현실 도피적인 교회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와 정치를 향하여 예언자의 소리를 발하는 교회로 발길을 옮겼고, 악의와 타협하는 목회자들에 대해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80년대의 한국 교회는 더욱 더 그 아픔을 더해가게 되었습니다. 현대사에 가장 부끄러운 독재자가 군림하여서 민중을 수탈할 때 우리의 교회는 저항의 싹을 키우면서 다가올 그 날을 기다리며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집권을 위하여 숱한 젊은 생명을 앗아가는 독재자의 모습을 보며 교회들은 기도로, 또는 행동적인 측면을 통해서 이 땅의 민주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독재자가 물러나고 새로운 시대의 진입로가 열리는 듯했습니다. 이 민족의 꿈인 민주화의 봄이 다가온 듯 하였습니다. 한 맺힌 소원인 통일이 곧 다가올 듯하여 흥분 속에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이북을 찾았고, 우리의 노(老)목사님은 목사님대로 기록을 남기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7년과 4년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과거의 독재자들처럼 집권자의 마음대로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의 어제를 돌아보면서 우리는 솔직히 시인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교회는 언제나 보수와 진보의 날카로운 대립이 쉼없이 전개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대립은 정치와 사회의 흐름에 침묵을 강요하는 교회와 외롭게 예언의 소리를 발하는 교회로 각각 그 길을 달리하기도 했습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목회자들은 번거로운 정치와 사회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보다는 현실을 추구하면서 교회의 양적 성장에만 몰두하기도 했습니다.
1987년 6월 29일 이후로 '껄껄' 하는 목사님들이 많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바로 그 전날인 6월 28일 주일 예배에 예언의 소리를 하지 못한 목사님들이 하시는 말씀들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 땅에 이룩되기 위해서는 독재자가 사라져야 한다는 설교를 한 편이라도 했다면 존경받는 목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후회하는 '껄껄' 목사님들이 등장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한국 교회는 예언의 소리를 발하지 못한 결과로 "교회는 현실 안주를 추구하는 중산층이 모이는 집단"으로 취급당하기도 하였고 소외된 민중을 돌보지 않는다는 원성을 사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실상은 자연적으로 목회자들을 가진 자의 편에 서게 하였고, 민중들의 희노애락을 외면하는 목회자로 변질하게 하였습니다.
1960년에 여대생을 대상으로 결혼 상대자에 대한 설문조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목사는 이발사 다음에 속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목사에게 시집온 여인들은 참으로 헌신적인 사람들입니다. 목사 사모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결혼 상대자로 목사가 두세 번째라고 합니다. 오늘의 사모는 60년대 목사 사모와는 상당히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환언하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직자는 어느 직장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화려한 직업으로 채색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그릇된 개신교의 목사상은 바른 시각을 갖지 못한 젊은이들로 하여금 목회를 사업으로 여기는 착각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생이 많아지는 것이 좋은 현상이기는 하지만 어느 신학교나 할 것 없이 문전 성시를 이루는 것을 볼 때 '과연 이들이 의로운 목회를 할까'하는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2천년 대를 가늠하며
2천년 대의 기독교를 진단해 보십시다. 한국 교회를 반성적인 시각에서 볼 때 부끄러운 면으로 얼룩진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교회 성장에서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경이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에 새로운 선교의 기적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찾아오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자랑했던 한국 교회의 양적인 성장은 계속될 것인지, 그리고 수많은 목사지망생들의 사역의 장은 보장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 없습니다.
'21세기에도 교회는 번창하고 화려한 기록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에, 2천년 대 교회는 지난날과 같은 기록을 계속 남길 수 없다고 진단합니다. 밝은 전망을 갖고 싶지만 몇 가지 어두운 수치가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2천년대 교회성장의 장애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국민소득의 향상은 교회성장의 장애요소로 등장합니다.
교회 성장을 연구한 분석들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교회 성장은 국민소득과 반비례한다고 합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가난에 시달렸던 육적인 고달픔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합니다 반면에 종말론적인 신앙은 서서히 식어집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믿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있다가 오십시오. 그동안 가난했던 제가, 모처럼 자동차를 샀는데 자동차를 좀 더 타보고요, 그동안 못 가본 데도 가보고요, 세계여행도 다녀오고요, 그런 다음 그 때 오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하는 소위 '재림의 연장론'을 원하는 무리들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기현상이 일어나는 기점은 언제이겠습니까? 세계의 선교역사를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국민소득이 3천 달러일 때 교회 성장이 멈추게 된다고 합니다. 국민 소득이 1천 불 이하일 때는 교회 성장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2천 불까지도 상당히 성장합니다. 그러나 3천 불이 되면 교회 성장은 멈추게 되고 그때부터 서서히 성장률이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목사님들의 교회는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까? 양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새 신자들이 늘은 것인지, 기존 신앙인들의 이전 현상에 의한 것인지를 먼저 분석해야 합니다. 세계 교회를 주도했던 미국도 이제는 서서히 성장을 멈추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의 신앙은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1, 2, 3차 대 각성 부흥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로 살던 시절, 남북전쟁으로 혼돈의 시대를 지냈던 시절, 그리고 1930년대 경제 공황이 휩쓸던 시절의 미국 교회를 생각해보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신앙이었습니다. 미국 교회는 전 세계 교회의 센터였습니다. 전 세계에 선교의 불을 붙여 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그들의 신앙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서히 유럽의 교회를 닮아가고 있는 것이 미국의 교회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을 여행하고 온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유럽교회는 텅텅 비어 관광지가 되어버렀다"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합니다. 또한 미국 교회는 "노인들만 앉아있는 교회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교회도 그럴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젊은이가 없는 우리의 교회가 미국의 교회를 닮아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지난 해 한국인의 국민 소득은 3천 7백 불이었고, 지금은 5천 불에 육박했다고 발표합니다.
실로 꿈같은 기록입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비롯하여 625동란후 60년대까지 계속되었던 그 가난에 비교해 보면 놀라운 성장의 기록입니다. 경제 성장이 확실히 이룩되었고 국민 소득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상대적 빈곤에 의해서 숱한 불만이 쌓여 있고 소외된 민중이 산적해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얼마 전, 직장인을 대상으로 '월급을 올려주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근무 시간을 줄여 주는 것이 좋은가?'라는 문제로 여론 조사를 했습니다. 그 때 일하는 시간을 줄여달라고 택한 답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제한국의 노동자들은 '가장 근면한 노동자'이기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주5일 근무를 주장합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주장합니다. 이제 공장의 일터에서부터 인간다운 삶을, 인간답게 살 권리를 주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확실히 과거에 경험했던 가난과 질병은 서서히 이 땅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몸이 아프더라도 교회를 찾지 않습니다. 병원을 먼저 찾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조금만 아파도 교회를 찾았고, 목사님에게 기도를 부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병원이든지 자유롭게 일찍 진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도해 달라는 신앙인의 수가 줄고 있습니다.
또한 2천년 대에는 더욱 살기 좋은 'My Car'시대가 될 것입니다. 금요일 오후부터 들뜨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마 가정마다 보따리를 싸고서 서해안, 동해안, 남해안으로 길을 떠날 채비를 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채웠던 교회는 비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행지에서 가까운 교회를 찾을 것입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공원 목회(Park Ministry)'가 생겼습니다. 각 교회에서 그 지역에 있는 공원으로 목사를 파견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해수욕 차림으로라도 와서 예배를 드리고 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경제적인 안정은 일시적으로 교회의 재정을 넉넉하게 할지 모르나 성도들의 뜨거운 신앙을 쉬이 식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때문에 저는 부족함을 모르고 자라온 오늘의 젊은이들이 미래에, 부모의 뜨거운 신앙을 열심으로 상속받아 육적인 즐거움보다 영적인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을지, 또한 주일을 성수하기 위하여 국내의 여행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낙관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것은 이미 서구 교회에서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위기 의식이 없어지는 것이 교회성장에 장애가 됩니다.
위기 의식의 해소는 우리에게 실로 큰 위기 요소로 등장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 교회는 2차대전을 지나서 625라는 처절한 비극을 발판으로 선 교회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제의 손아귀로 인해 우리의 조국이 영원히 없어질 것만 같았던 시절에도 성도들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민족을 구하기 위해 새벽제단을 쌓았고 기도원을 찾아나섰습니다. 전쟁에서 받은 상처들을 신앙으로 치유하며 삶을 살았습니다. 그 숱한 상처와 가족을 잃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종전(終戰)후에도 우리의 성도들은 하나님만을 의지하였습니다. 전쟁의 포화는 멈추었으나 이 땅의 집권자들이 거의 독재로 일관할 때도 고달픈 세월을 말 한 마디 못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독재의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의 머리를 언제나 위기의식으로 채워 놓아야 했던 지난 시대의 주인들 때문에 수많은 성도들은 가장 안전한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들이 많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고 계십니까? 및 년 전의 일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는데 갑자기 지도가 나오고 금강산이 나옵니다. 그런데 금강산에서 물이 내려오기 시작하더니 서울을 채우고 63빌딩 몇 층만 남겨 놓고 서울이 모두 잠기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에서 금강댐을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곧 침몰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 의식을 최고의 아이디어로 발상해서 불어넣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교회 교인들은 기도원에서, 교회에서, 각 도처에서 김일성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도와달라는 간구를 하나님께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얼마나 웃고 계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저의 말이 아닙니다. 워싱턴 포스트 지에 발표된 그 사실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독재자들이 종말을 고하였다고 보고 싶습니다. 6공의 주인을 믿고 싶습니다. 어쨌든 이제는 어떠한 것도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거짓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민중 세력과 수구 세력이 대립하는 혼란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미래는 분명 과거와 같이 위기 의식의 조장이 활개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깨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심한 위기 의식에서 해방될수록 이 땅의 기독교인들은 기도제목을 세워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위협을 느끼며 긴장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던 우리 기도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우리 교회가 종말론적 메시지의 실체를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아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는 스스로의 결론을 내리면서 긴장했던 신앙 생활의 열기를 서서히 잃어갈 것입니다. 이처럼 위기 의식의 해소는 교회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로 2천년 대에 등장할 것입니다.
셋째, 이념과 체제의 약화는 교회성장의 장애요소가 됩니다.
어느 시인이 쓴 컬럼을 읽었습니다. 그 내용은 가난한 신안의 어느 섬을 방문했을 때 본 두 동생을 데리고 사는 소녀 가장의 이야기를 쓴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아이의 엄마는 돈을 벌어서 부쳐 주겠다며 섬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동안 엄마는 돈을 보내오다가 소식이 끊겼고 아버지는 그 엄마를 찾겠다고 길을 나섰는데 "엄마한테 소식이 없냐"는 전화만 가끔 올뿐이지 아무런 소식도,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불쌍하더랍니다.
그런데 더욱 개탄할 일은 그 아이가 학교에 제출한 일기에 자신보다 더 불쌍한 아이들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내용인 즉 "나는 흑백텔레비전도 있고 라면도 먹을 수 있지만, 북한의 나와 같은 어린이들은 텔레비전도 못보고 라면도 없이 쫄쫄 굶어간다는 데 그들이 불쌍해요"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반공 교육은 잘 되어 있습니다. 분단 이후의 모든 세대에게 반공교육은 어느 교육보다도 우선 되었습니다. 그것을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독재자를 모시는 한이 있더라도 공산주의는 거부한다는 지독한 반공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변했습니다. 오늘날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김일성 괴뢰를 김일성 주석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반공이란 말이 없어지고 이제는 파트너로 인정하고 살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동반자'라는 말을 대통령이 합니다. 또한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은 이제, 이념과 체제의 싸움이 급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윤택이 우선적 과제임을 알고 여기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이제 자신의 실권을 위해서는 경제적 발전과 통일을 싹트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알게 되면서 그토록 철저했던 반공사상의 주입을 멈추고 있습니다.
이제 반공에서 공존으로, 공존에서 동반으로 바뀌는 세계의 흐름을 막을 길은 없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들의 철저한 반공사상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으며 낡은 고집으로 규정하고 끊임없이 저항을 계속합니다. 이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면서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민족의 하나됨을 지상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아무리 반공을 주입하려 해도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은 동서간 의 화해 분위기와 젊은이들의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은 공산주의를 '붉은 용'으로 지칭하며 격파의 제1차적 대상으로 여겼던 기독교의 메시지에 변화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언제나 긴장하면서 반공주의로 일관한 우리 교회가 이념과 체제가 변하는 물결에 또 하나의 과녘을 상실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은 자연적으로 내일의 목회의 장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올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2천년 대 그 날의 한국 교회는 이상에서 열거한 것 외에도 많은 변화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세기의 바램과 함께 찾아온 변화들이 한국 교회 성장에 보탬이 될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관심입니다. 오히려 교회가 현실에 밀려 서서히 구세대의 피난처로 굳어지고 새로운 세대와 호흡을 함께 하지 못한 채 외로운 십자가만을 세상 에 보여주고 있는 사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제까지 지속된 성장하는 교회에 초점을 맞춘 목회 방식을 따라 오늘의 목회를 계속한다면 우리는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미래의 무대를 깊이 생각 해 볼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17세기에 영국 교회에 혜성처럼 나타나서 목회자와 학자의 결을 걸었던 리차드 박스터는 「참 목자상」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설교자들은 그들의 청중에게 지옥 형별을 피하라고 수백번 설교했지만 그들 자신은 지금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구원을 제공하면서 자기 자신은 구원을 거절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원하리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은 진리를 등한시하고 학대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말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이야기입니다. 목회자라면 20세기이든, 21세기든 어느 시대이든지 생명이 붙어있는 한 '하나님 안에서의 자아 성찰'은 언제든지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1962년까지 가르침을 받았던 한 보수 신학자를 기억합니다. 그 분은 박형용 학장님이십니다. 한때 그분의 방을 자주 드나들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방에 가면 늘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분 방에 걸려있는 교장으로서의 훈(訓)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이 되시오.
1. 신자가 되시오.
1. 학자가 되시오.
1. 목사가 되시오.
모두가 1로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만 먼저 인간이 된 후 신자가 되고, 신자가 된 다음 학자가 되고, 학자가 된 다음 목사가 되라는 교훈이었습니다. 이러한 교훈은 최근 들어서 더욱 절실하게 우리의 가슴에 와 닿고 있습니다. 참된 목자상이 아쉽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요즘 매스컴의 보도를 듣고 계십니까? 어느 목사가 예배를 드리는 성전에서 부동산 거래를 하다가 총으로 사람을 쏴 죽였다지요? 데이트를 위해 서 있던 여학생을 차로 납치하여서 죽였다고 하지요? 교회를 지으라고 준 부지에 판자촌을 짓게 만들고 아파트 분양 딱지를 팔아서 수억을 챙겼다고 하지요?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이런 보도가 있은 후 사람들이 저를 목사로 알아보는 것이 가장 부끄러웠습니다. 참으로 인간이 먼저 되는 것이 성직자의 삶에서 얼마나 시급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또한 신자가 되는 기본적인 과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시급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학자로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낍니다. 이러한 전제조건들이 해결 되었을 때 참된 목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문교부에서 준 연구비를 가지고 연구하면서 프로젝트를 던져보았습니다. 그것은 "설교 사역자에 관한 평신도의 의식구조 분석"이라는 연구였습니다. 저는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자인 동시에 인간이다'라는 것과 '설교자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 전달자이다'는 두 가지 명제에 대해 찬성 퍼센트를 알아보았습니다. 이때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메신저다. 그리고 인간이다'라는 명제에 50퍼센트가 동의하였고 '설교자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자이다'라는 명제에는 30퍼센트가 동의하였습니다. 이 30퍼센트의 사람들은 설교자가 인간인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설교자의 삶과 메시지의 관계성에 대한 질문에서 '설교자가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자기들의 설교하는 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존재'라고 응답자의 80퍼센트가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시대의 흐름에 오염이 되더라도 성직자만은 바르고 깨끗한 실존으로서 자신들 앞에 서 주기를 바라는 심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 인간으로서의 성직자는 깊은 고민을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구교와는 달리 개신교 성직자는 처자와 함께 살면서 아무런 구별된 표시도 없이 일상생활을 해야 하기에 제도적 성결이나 덕행의 수행이 우리에게는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지금 이 시간부터라도 모든 신학생들은 준성직자의 모습을 하고 다니고, 우리 모든 목사님들은 성직자 표시를 한 성직자 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이 정상이라고 봅니다. 저는 때때로 성직자들과 신앙인들의 부도덕성을 접할 때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을까? 하나님은 세상에 미련하고 약한 것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나 부한 자를 부끄럽게 만드신다고 하시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자기를 합리화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인간의 지혜, 능력, 문벌을 앞세우는 성직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절감한 겸손의 종들로서 하나님의 모습을 닮게 하려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타당합니다. 그러기에 소명을 따르겠다는 결단을 내린 사람은 먼저 스스로의 인격 도야에 힘을 써야 하고 자신이 응답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해 보아야 합니다.
성직자들은 내면적인 갈등을 많이 겪게 됩니다. 내면적인 갈등은 지금만이 아니라 21세기에도 갖게 됩니다. 깊은 고뇌를 연속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우리 목회자들은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메시지 앞에서 자신이 먼저 실천해야 한다는 엄격한 요구를 받습니다. 육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도저히 그 요구를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설교하기 전에 당신이 준비한 설교를 자신에게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주문이 우리에게 얼마나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까? 또한 "나는 매번 그렇게 하고 있다"고 대답하실 분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 인간인 목사가 위선자로 전락하기도 하고 자신의 모습을 상실한 채 신들린 인간처럼 춤을 추어야 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더욱이 불만과 불평을 거침없이 토로할 수 없고 자신의 야심과 감정을 다 표현할 수도 없는 한계성에 목회자는 언제나 직면하기 쉽습니다. 또한 설교자를 언제나 성자로 보는 성도들의 시선에 상당한 부담이 있습니다. 인자한 미소, 부드러운 말씨, 겸손한 인격, 선견적 사리판단, 인품있는 외모까지, 실로 인내할 수 없는 인간적인 고단함을 늘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목회자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이 갈등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목회자들에게 남아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목회자들의 갈등은 포근한 가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요즘에는 맞벌이 부부가 많다보니까 목사의 가정이 그래도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목회자는 '함께 하는 시간이 제일 긴 부부'로 통계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직자의 삶이란 철저하게 공개하고 살아야 하는 세계입니다. 사람이 사는데 가정의 모든 부분을 철저하게 공개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목회자의 길에 들어선 한국의 성직자는 개인의 삶과 가정의 구석구석이 노출되고 자신의 아늑한 보금자리가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목회자 가정은 시간의 제약이 없이 문을 두드리며 찾아오는 양들을 맞아들여야 하고, 수많은 분들이 지적하는 사항들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시정해나가야 합니다. 처자를 향한 지적마저도 감당할 수 있어야합니다. 또한 처자를 향하여 큰소리로 말하지 못하고, 자녀들을 향하여 매를 들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모의 화장에서부터 옷 맵시까지,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의 언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주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목사의 가정사정을 생각하면서 찾아오는 교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아직도 목사사택이 교회 곁에 있어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목사이기를 바라고 교회의 사찰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에서 '목사'에 대한 이러한 기대는 아마 꽤 오래 갈 것입니다. 목회자의 자녀들은 아버지를 교회에 빼앗긴 채 살아가야 합니다.
목회자들의 내면적 갈등은 또 있습니다 설교의 수가 많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목사들은 1년 동안 많으면 156편 정도 설교를 하고, 부교역자가 있으면 52~100편 정도의 설교를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 목회자의 설교수는 세계 어느 설교자보다도 단연 몇 배를 능가하기도 합니다. 설교는 생명력을 지닌 만나입니다. 만나는 어제 받아놓고 이웃집에서 남은 것을 가져와서 다시 자신의 식구들에게 먹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썩어버립니다. 설교는 은혜의 만나입니다. 그 날 받아서 그 날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횟수의 설교를 어떻게 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목회자들은 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목사는 거의 다 검은 유혹에 빠집니다. 고달픈 현장에서 목사들은 남의 설교집을 도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사들이 제일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첫번째로 꼽는 것이 복사기입니다. 어디에 쓰기 위해서냐고 물으면 대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짐작이 갑니다. 설교집을 복사해서 내 설교인양 외쳐보고 싶은 심정에서 그 기계를 갖고 싶은 것입니다. 검은 유혹에 못 이겨서 남의 설교를 도용하고 그것을 위장하기 위해서 더욱 높은 소리를 지르면서 강단을 두드리며 '아멘'을 강요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자신의 말을 신의 계시로 여기라며 철저하게 권위적으로 살아왔습니다.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이렇게 하고도 신실한 목회자로서 다가오는 2천년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까? 긍정적인 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교회처럼 '아멘'이 많은 나라도 많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이 이 땅에 나왔다가 아무리 살고 싶어도 결국 수명이 다하면 죽기 마련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하나님은 인간을 맘대로 살도록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때가 되면 젊은 때나 늙을 때나 언제든지 되돌아가야 합니다. 믿습니까?" "아멘" "이 땅에 오신 우리 예수님, 그는 분명히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리신 한 인간이었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갈수록 아멘 소리가 더욱 커져 갑니다.
"예수님은 분명코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었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인간이 죽으면 다시 살지 못하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그렇기 때문에 인간인 예수가 산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는 데도 그 말을 믿고 '아멘'으로 답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시는 목사님이 계십니까? 반성해 볼 문제입니다. '아멘'에 대해서 저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분석 연구했습니다. 국문학자도 만나 보고 많이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인칭 단수인 '나'라는 주어를 빼고도 언제든지 의사소통이 됩니다. "참으로 사랑합니다." 이 문장의 주어는 '나'입니다. "나는 당신을 참으로 사랑합니다"라는 문장입니다. 이처럼 우리말은 '나(I')'라는 단어를 빼더라도 뜻이 통합니다. 이것이 한국 설교를 병들게 하였습니다. 외국에서는 설교에서 'I'를 쓸 때 그 다음에 단어 하나를 붙입니다. 그것은 조동사 'Dare'라는 단어입니다. '감히~한다'는 뜻의 조동사입니다. "I dare belived that."
"I dare want." "나는 감히 믿기를‥‥‥" "나는 감히 원하기를"이라고 설교합니다. 우리는 무서운 설교 병을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많은 설교를 도용하고 있으며 설교에서 성삼위 하나님이 차지해야 할 문장의 주어를 내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2천년 대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 또 하나의 갈등이 있다면 '16세기 초기 종교개혁이 2천년대에도 올 것인가'입니다. '월리암 맥스웰'이라는 사람은 「기독교 예배의 역사」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16세기초에 서방교회에서 집례된 성만찬은 하나의 연극적인 장면이었다. 그것은 성찬이라기 보다는 화체설을 기점으로 절정을 이루었고 순수하지 못한 미신적 경배 속에 성만찬이 행하여졌다. 미사는 알지 못하는 언어속에서 청취를 불가능하게 하였고 설교는 무덤 속으로 타락되었으며 대부분의 신부들은 설교를 하기에 너무도 무식하였다. 성경말씀이 선포되어야 할 자리가 성직자들의 생활담과 전설이 채워졌고 성경은 예배자들의 모국어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리고 미사의 헌금과 면죄부의 구입은 성직매매와 착취의 근원이 되었다. 그러기에 종교개혁은 시급하고도 필연적인 것이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속에 여러가지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한국 교회와 비교해 보았습니다. 마치 16세기처럼 미신적 경배 속에 빠진 한국 교회는 없는가? 우상 앞에서 복 받기를 빌던 사람들을 오늘날 그대로 교회로 끌어와서 교인수만 늘게 하는 양적인 성장에만 관심을 두지는 않았는가? 우리들 설교에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만이 전해지고 있는가? '미사의 헌금과 면죄부가 성직매매와 착취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처럼 한국 교회가 헌금을 많이 바치는 것을 너무 자랑으로 삼지는 않는가? 바쳐진 많은 예물들이 교회의 가시적인 발전을 위해서 써진다면 그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헌금, 그것은 교회의 교육관을 짓고 성전을 늘이는데 쓰여지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소위 '구제'를 위한 헌금이었습니다. 원래 봉헌은 성물 곧 빵과 포도주로 성찬 예식 때 떼기 위해서 바쳐진 성물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헌금을 바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많이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투기성은 교회가 먼저 조장하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월리암 맥스웰의 말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맞아 떨어지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우리는 21세기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다음의 몇 가지에 대하여 성령님이 꼭 동행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노력할 때만이 우리의 21세기는 밝게 열릴 것입니다.
바람직한 21세기의 목회자상
첫째, 근본적으로 섬김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많은 생명들을 위하여 대속물로 자신을 내놓으시려고 오셨습니다. 이 사실에 근거하는 목사이어야 21세기를 살 수 있습니다. 환대를 받아가며 살아가는 성직자는 교주적인 존재는 될지언정 진실된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는 타당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신기합니다. 개척할 때 그렇게 겸손하고 친절했던 목사도 교인들이 5백명 정도가 되면 그 목사의 몸가짐이 교주적인 모습으로 변해있는 것을 봅니다. 이 가운데도 그런 분이 계십니까? 성직을 부여받아서 광야에 나간 자가 부드러운 옷을 입고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낸다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주인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거기에 인간의 욕정이 연결된다면 그는 이미 성직의 몸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섬김을 받으려는 존재가 아닙니다. 섬기려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 섬김에 적당한 성직자만이 21세기에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모습을 재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자상을 이사야서에 인용하시면서 선명하게 밝힌바 있습니다. 또한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도 똑같은 내용으로 목회의 방향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 내용은 지금도 우리 성직자들이 그대로 수용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들입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눈이 어두운 무리들이 있고 죄악의 사슬로 포로된 자가 가득하며 각종 질병으로 정신과 육체가 병든 자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신음소리를 심각히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목사만이 예수님의 삶처럼 섬기는데 그 땀을 다 흘릴 것입니다. 내일의 성직자는 그리스도의 삶을 재현해서 이웃을 섬기고 돌보며 주를 섬기는 데 집념을 불태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국 교회가 살 수 있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될 것입니다.
셋째, 자신을 완전히 도구화해야 합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사역의 내용과 헌신의 근거를 사도들에게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오늘의 목회자들은 사도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눈여겨 보아야 하고 오늘의 목회자들도 거기에 준하는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목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모두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며 행동할 때 2천년 대에 바르게 목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오니 주의 뜻대로 쓰이는 도구가 되길 원합니다. 주의 도구로 제공되지 아니 하고서는, 인간 욕정 그대로 남아 있고서는, 주의 종이 될 수 없사오니 당신이 쓰고자 하는 대로 써 주소서'라고 하는 전(全)생명을 포기하는 존재가 될 때만이 하나님의 도구로서 21세기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순교의 의미를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수천 년 지켜온 구교의 전통에서는 제일된 영광이 하나님을 위한 순교에 있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순교의 길에 허다한 성직자들이 뛰어들었고, 그들은 최고의 성인으로 섬김 받았습니다. 현대의 구교에서는 목숨을 버리는 순교의 길은 비록 없지만 거기에 버금가는 주님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외칩니다. 순교에 버금가는 준순교의 길을 가라고 신부와 수녀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덕행의 실천을 준순교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면서 예언자적 용기로 말합니다. 즉, 버림받은 민중의 천막을 찾아나서는 것도 준순교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과거에 독재자가 아무리 시퍼런 칼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바른 말을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바른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준순교, 바른 순교의 영광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나설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개신교의 목사님들도 이를 닮아야 하겠습니다. 구교에서 말하는 준순교의 예언자적 용기로 말을 할 줄 알아야겠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개신교는 기독교의 본질인 행함의 신학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단계입니다. 잘 사는 종교, 병 고치는 종교, 수양적인 측면에 더 많이 치중하는 교회로 변모되고 있음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참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증인'이란 말은 '마르튀스'이고 마르튀스는 '순교자'로도 번역이 됩니다. 즉 그리스도의 증인은 그리스도의 순교자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순교자', 여기에 미래의 목회자들이 진실하게 순종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2천년 대 목회의 성패가 좌우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를 버린 사람으로 생활을 할 때 그곳에서 진실한 목회가 시작될 것입니다.
듀북신학교에서 목회신학을 강의하는 칼리암 교수는 그의 명저 「미래세계에 있는 오늘의 목사」에서 미래지향적인 목사에게 바라는 평신도의 기대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첫째, 확고한 믿음과 사명이 분명하고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둘째, 명설교자로서 의미있는 예배를 인도해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의 모형에 대한 소명자로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넷째, 개인과 단체가 필요로 하는 사연들에 대하여 민감해야 한다.
다섯째, 교인들의 믿음과 성장에 깊은 관심과 기술 개발에 헌신적이어야 한다.
여섯째, 따뜻한 인간애와 뜨거운 영혼의 힘을 소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
일곱째, 회중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여야 한다.
여덟째, 조직관리의 기술과 당면하는 어려움도 풀어나갈 줄 알아야 한다.
참으로 자신이 없습니다. 이 여덟가지 질문에 대해 만점을 받을 수 있는 목회자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을 위한 결단을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로써 우리의 일을 다했다고 말하지 맙시다. 오늘에 만족하지 말고 미래를 향하여 눈을 뜹시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간구하며 하나님께 돌릴 수 있는 영광을 위해 준비합시다. 우리가 지닌 모든 것을 총동원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거대한 교회에서 보았던 화려하고 존경스러운 목사님들이 되려는 노력을 이제 포기해 버립시다. 2천년 대는 이러한 것들이 허황된 착각일 수밖에 없다는 것임을 알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눈물을 흘리면서 "유럽의 교회, 미국의 교회처럼 한국의 교회를 텅비게 만드시겠습니까? 주님! 저희들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절실한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이제는 새롭게 눈을 떠야 합니다. 새롭게 마음을 다져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이 땅을 위하여 내 눈물과 내 피를 흘리면서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영광된 21세기를 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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