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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빈층도 부자 동네서 살면 중산층만큼 오래 살아

하나님아들 2025. 3. 9. 22:48

극빈층도 부자 동네서 살면 중산층만큼 오래 살아

입력2025.03.09. 
 
[돈의 심리] 돈 많이 벌수록 건강히 오래 산다

 
충분한 운동, 건강한 식생활 외에 높은 소득 수준도 건강 유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GettyImages]
돈이 중요할까, 건강이 중요할까. 당연히 건강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건강을 잃은 자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쓰럽고 불쌍하게 본다. 돈이 없어도 건강한 게 훨씬 낫다.

그렇다고 돈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건강한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몇 가지 있다. 운동을 충분히 한 사람이 건강하다. 식생활이 좋고, 잠을 잘 자며, 스트레스가 적은 사람이 건강하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사람이 건강하다. 그리고 건강과 밀접하게 관련된 요인이 하나 더 있다. 소득이 많을수록, 즉 돈이 많을수록 건강하다. 돈을 많이 버는 게 건강해지는 또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고소득과 저소득 건강수명 격차 8년
정윤선 가천대 의과대학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한국인의 소득별 건강수명 조사’가 있다. 이 조사는 큰 병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는 나이를 기준으로 소득과 건강의 관계를 살폈다. 전 국민이 가입한 국민건강보험과 의료지원 프로그램 자료를 근거로 했다. 소득 수준은 건강의료보험료를, 건강은 병원 치료 기록을 기준으로 분류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2020년 평균 건강수명은 남자 69.43세, 여자 73.98세였다. 같은 해 실제 평균 수명은 남자 81.48세, 여자 87.39세였으니 남자는 약 12년간, 여자는 14년간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노년을 사는 것이다.

소득을 5단계로 구분해 소득별 건강수명을 보면 최고소득층의 건강수명은 74.88세였다. 최저소득층의 건강수명은 66.22세였다. 최고소득층이 최저소득층보다 8년을 더 건강하게 살았다. 남녀를 구분해서 보면 남자 최고소득층의 건강수명은 73.09세, 최저소득층의 건강수명은 63.11세였다. 최고소득층 건강수명이 최저소득층에 비해 10년 길었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여자 최고소득층의 건강수명은 76.23세, 최저소득층의 건강수명은 69.65세로 7년 차이가 났다.

이것만 보면 “잘살수록 오래 산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최고소득층(74.88세) 다음인 고소득층의 건강수명은 73.58세였다. 최고소득층과 1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큰 차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중간소득층의 건강수명은 73.15세로 고소득층과 별 차이가 없었다. 4번째 저소득층의 건강수명은 72.12세였다. 소득이 많을수록 건강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차이는 2년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추세가 제일 가난한 최저소득층(66.22세)부터 확연히 다르게 나타났다. 최고소득층과 고소득층 차이는 1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차이도 1년이었다. 그런데 저소득층과 최저소득층의 차이는 6년이나 됐다. 최저소득층부터 건강수명이 확연히 떨어지는 것이다. 잘살면 오래 산다는 게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보다는 “가난하면 오래 살기 힘들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건강수명의 차이는 실제 수명 차이로 이어진다. 남자의 실제 평균 수명이 81.48세인데, 최고소득층의 평균 수명은 85.12세, 최저소득층의 평균 수명은 75.54세로 격차가 약 10년이었다. 이때도 최고소득층, 고소득층, 중간소득층, 저소득층의 격차는 크지 않았다. 최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에 3년 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저소득층과 최저소득층의 차이는 6년이었다. 여자도 같았다. 최고소득층의 평균 수명은 89.28세, 최저소득층의 평균 수명은 83.85세로 5년 반 차이였고, 그중 저소득층과 최저소득층 차이가 4년이었다. 제일 가난한 사람이 가장 짧게 살았다.

저소득층에 돈 준다고 안 건강해져
수명뿐 아니라 일반 건강지표도 소득별로 차이가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는 소득별 국민 건강도 차이를 제시하고 있다. 국민소득을 5분위로 구분해 소득별 건강 관련 지표들의 차이를 표시하는데, 가장 최근 발표 자료인 2023년 현황을 보면 소득에 따라 건강지표들에 분명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선 남자의 경우 고소득층은 60%가 정기적으로 유산소운동을 하는 데 비해 저소득층은 46.6%에 그쳤다. 고소득층이 운동을 13.4%p 더 많이 했다. 건강에 좋지 않은 흡연율은 고소득층 26.2%, 저소득층 39.2%였다. 소득이 많을수록 흡연율이 낮았다. 또 중독성이 있는 고위험 음주율은 고소득층 18.7%, 저소득층 22%였다. 여자도 동일했다. 정기적으로 유산소운동을 하는 비율이 고소득층 54.2%, 저소득층 50%였다. 흡연율은 고소득층 3%, 저소득층 10.8%였다. 여자에게서 음주율보다 더 유의미한 지표인 비만 유병률은 고소득층(17.9%)보다 저소득층(32.5%)이 월등히 높았다. 고혈압 유병률, 당뇨 유병률 등 다른 건강지표들도 고소득층일수록 양호했다.

소득이 많을수록 건강지표들이 더 나은 게 2023년에만 그런가 하면 그렇지 않다. 10여 년 전 자료에서도 마찬가지로 고소득층 건강지표가 저소득층보다 좋았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면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미국에서 기본소득 실험의 일환으로 저소득층에게 한 달에 1000달러(약 145만 원)씩 현금을 지급한 뒤 건강이 나아지는지를 살펴본 적이 있다. 1000달러면 최저소득층이 저소득층, 중간소득층으로 살 수 있는 돈이다. 3년간 매달 1000달러씩을 계속 나눠줬는데, 그럼에도 최저소득층의 건강 수준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이 연구의 결론 또한 “최저소득층에게 돈을 준다고 더 건강해지지 않는다” “현금을 지급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쪽으로 났다.

건강은 생활 습관, 먹거리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주변 환경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지, 단지 돈이 더 생긴다고 건강해지는 게 아니다. 소득이 많을수록 건강한 이유는 그냥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운동을 대하는 태도, 음식을 선택하는 기준 등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여건이 더 낫기 때문이다.

돈 자체보다 생활 습관과 주변 환경이 건강에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경제학자이자 구글 데이터과학자였던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는 미국의 소득별 수명 얘기가 나온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극빈층의 기대수명이 가장 낮다. 그런데 같은 극빈층이라도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수명이 달라진다. 부자가 많은 지역에 사는 극빈층이 극빈층 중에서도 가장 오래 산다. 그 차이는 무려 5년이다. 부자가 많은 지역의 극빈층은 보통 도시의 중산층만큼 오래 살 수 있다.

부유층 생활 방식 극빈층에 전파
부자들에게서는 이런 지역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다. 어디에 살건 부자의 평균 수명은 비슷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같은 저소득층이라 해도 사는 장소에 따라 평균 수명이 달라졌다. 잘사는 지역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이 더 오래 살았다. 그 이유를 책에서는 “부유층의 생활 방식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파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유층이 많으면 그들의 생활 방식이 전체 도시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더 깨끗한 환경을 만들고, 건강식을 중요하게 여기며, 운동을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런 환경을 계속 접하다 보면 극빈층도 생활 방식을 모방하게 되고, 결국 극빈층임에도 다른 지역 극빈층보다 훨씬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소득이 많을수록 건강하게 살고 평균 수명이 길어진다는 건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버는 게 건강해지는 수단 중 하나가 된다. 운동을 하고, 건강하게 먹고, 술·담배를 줄이는 것 이외에 돈을 더 많이 버는 것도 건강할 확률을 높이는 방법인 셈이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돈을 벌자는 얘기가 우습게 들릴 수 있지만, 돈이 많으면 건강하게 살 가능성이 더 커지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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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락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