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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의 숨은 명산 화악산] 능선 너머 영남알프스가 시원하다

하나님아들 2024. 10. 17. 00:19

[경상도의 숨은 명산 화악산] 능선 너머 영남알프스가 시원하다

입력2024.10.16. 
 
구름 아래 가을 산, 멀리 영남알프스.
도토리, 밤송이, 대추, 감, 가을은 언제나 떨어진 것들로 가득하다. 시절은 떠나보내는 것이 일상이 됐다. 노랗게 물든 이파리는 바람이 지날 때마다 우수수 떨어진다. 나뭇잎 떨어뜨리는 갈잎나무들. 버리지 않고 어떻게 채울 수 있는가? 남은 여름과 오는 가을, 겹쳐진 계절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또 걷는다.

고즈넉한 마을의 돌담 지나 밭에는 감나무뿐. 탈탈거리는 경운기 소리를 뒤로하고 감나무길 따라간다. 아직도 32℃ 무더위지만 들녘마다 가을빛이 스몄다. 올해는 유난히 더워 열대야가 벌써 35일을 넘었다. 불볕더위 여름이 끝날 때가 되니 젊음과 열정이 지나가는 듯, 한편으론 아쉬움도 남는다. 어설픈 자리공에 걸린 거미줄 걷으며 등산로 입구를 못 찾아 우거진 숲속을 10분 넘게 헤매다 되돌아선다. 자글자글 타오르던 태양은 시멘트 길을 달궈 얼굴이 화끈거리고 길까지 세력을 뻗쳐 밟히고 베어진 여름 풀냄새는 더욱 진하다.

화악산 능선길.
질긴 여름도 꼬리를 내리고

화악산은 해발 931.5m, 경남 밀양시 청도면·부북면과 경북 청도군 청도읍에 걸쳐 있다. 화악산을 중심으로 북쪽에 남산(870m), 남동쪽 철마산(627m), 남부 준령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능선 길이가 대략 7km에 이르며 크고 작은 바위가 어우러진 능선에서 바라보는 시원스러운 조망은 압권이다. 멀리 문복산·구만산·억산·상운산·가지산·운문산 등 영남알프스 산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한재 중리마을 삼거리에서 불당마을, 탕건바위, 불당골 갈림길, 화악산 정상, 운주암 갈림길, 윗화악산 정상, 성지암, 한재 중리마을로 돌아오는 산행 거리는 약 10㎞, 4시간 10분 더 걸린다.

고샅길에 식초 냄새 가득한데 바닥에 떨어진 감마다 발효가 되어 코를 실룩거리게 한다. 오후 2시35분 한재 중리마을 이정표(정상 4.7·윗화악산 2.6·아래화악산 2.3·밤티재, 정상 3.4·불당, 정상 3.3km)를 바라보다 불당마을 쪽으로 간다. 땅바닥에는 팽나무 노거수 풋풋한 열매가 나뒹굴고 가지 사이로 정상이 가까이 보인다.

화악산 바위 능선길, 오른쪽 윗화악산.
감식초 냄새 진동하는 길섶에 자주색 꽃핀 칡덩굴투성이, 개모시풀, 쑥, 칼날 같은 예리한 억새, 뱀 풀로 불리는 한삼덩굴 거친 가시에 베인 것인지 종아리가 아리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탕건바위를 지나 계곡 시멘트 길에서 왼쪽으로 등산 리본이 보이는데 이제부터 산행길이다. 오후 3시, 컴컴한 조릿대 숲길 머리를 숙여도 거미줄은 끈적끈적 걸리적거리고 모기, 하루살이 왱왱거린다. 산딸·생강·층층·비목·박쥐·노린재·고추나무, 수국꽃은 다 졌다.

요즘은 비가 오다 금방 다시 개는 건들장마 계절, 계곡 길 밀림지대에서 한바탕 쏟아지는 비를 맞고 오후 3시 30분 개박달·노각나무를 만나는데 밀림지대는 끝난 듯하다. 바위, 당단풍·생강·비목·신갈·철쭉·진달래·소나무 사이로 금세 햇살 비추고 노각나무 군락지에서 한숨 돌린다. 산 입구에서 이리저리 헤맸으니 벌써 기진맥진한다. 오르막길 미끄러운 흙을 딛는 곳에 여기저기 오소리 굴. 쉼 없는 오르막길 학학거리며 땀을 닦으며 잠시 쉰다. 계곡을 믿고 물도 제대로 챙겨 오지 못해 달랑 작은 페트병 하나. 복숭아 한 입 물고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가을이 오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힘겨워도 감상에 잠긴다. 무더위에 매미 소리 지쳐서 땅에 떨어지면 가을은 온다. 귀뚜라미 날개를 비비기 시작하면 아침저녁 상크름해지고 풀벌레 소리와 같이 가을은 온다.

화악산 표석(왼쪽 청도, 오른쪽 밀양).
바람의 산과 공활한 가을하늘

오후 4시 10분, 바위 숲 지대는 바람이 세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확실히 악岳자 붙은 산은 험준한 산이다. 바위가 많고 골탕 먹는 산, 설악·감악·치악·월악·모악·화악·운악산 등이다. 같은 이름은 경기도 가평·화천에 화악산(1,446m)이 있다. 미역줄나무를 만나는데 능선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한다. 나무 잎몸이 넓고 덩굴 뻗음이 튼튼하고 미역 줄거리처럼 생겨 미역순나무, 미역줄거리나무로 불린다. 노박덩굴과科, 깊은 산기슭에 서식하지만 주로 산 정상에 많이 자란다. 능선 지표식물이라 생각한다. 오후 4시 30분, 드디어 능선(화악산 정상 0.6·윗화악산 1.5·불당골, 한재 2.7·아래화악산 2.8km)에 닿는다.

바람에 거센 억새가 흔들리니 온 산천이 비틀비틀 멀미하는 듯 어지럽다. 바람의 산, 능선길은 발길이 끊겨선지 무인지경, 내려가는 길 윗화악산 방향 반대로 간다. 다시 이 지점으로 돌아오는 데 1.2km 거리. 생채기 져서 이파리들이 날리는 길에는 진달래·철쭉·신갈나무, 억새 길은 여전히 강풍에 밀물처럼 일렁인다. 일본으로 진로를 바꾼 10호 태풍 '산산'의 위력을 실감한다. 멀리 수많은 산 위로 파란 하늘, 유난히 하얀 구름이 양 떼처럼 떠 있다.

윗화악산 표석, 뒤로 화악산 정상.
오후 4시 40분 해발 931.5m 화악산 정상(윗화악산 2.1·아래화악산 3.4·밤티재 1.6·한재 4km)은 밀양과 청도의 경계다. 원래 있던 표석 바로 옆에 밀양에서 세운 정상석이 또 있다. 발아래 비닐하우스 한재마을, 더 넓은 들녘, 오른쪽으로 우리가 걸어갈 위아래 화악산과 철마산, 부북면 벌판과 저수지, 밀양시가지 너머 멀리 영남알프스 산들 재약·천황·운문·가지·문복산 등이 펼쳐졌다. 가을하늘은 비어 있지만 확 트여서 생기 있고 힘이 솟는 듯, 말 그대로 공활空豁하다. 화악산 능선은 경상북도 청도와 밀양의 경상남도 경계를 만든다. 청도 쪽에서 오르는 산길은 세 곳으로 가장 짧은 밤티재, 평지마을 능선 구간과 불당마을에서 오르는 길이다. 밤티재와 평지마을 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재마을과 화악산 미나리

발아래 있는 한재마을은 미나리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했다고 한다. 1990년대 비닐하우스 시설농업이 본격 시작되었고, 화악산 맑은 물로 재배해서 비타민 함량과 향이 좋고 줄기도 굵다고 알려졌다. 한재는 화악산과 남산, 오산 아래의 좁은 계곡이 마치 큰 고개와 같아 대현大峴, 한재로 불리는 지방도. 초현·음지·평양·상리 일대, 동쪽 입구는 초현, 서쪽 입구는 밤티재다.

밀양 운주암 갈림길.
10분쯤 지나 다시 한재 중리마을 갈림길, 왼쪽으로 올라왔던 길을 두고 곧바로 윗화악산 쪽으로 간다. 오른쪽 소나무 무덤, 멧돼지 흔적, 예리한 칼잎 억새와 싸리가 덮여 불분명한 산길을 헤쳐 간다. 오후 5시, 운주암 갈림길(운주암 0.5·아래화악산 2.3·정상 1.2km), 15분쯤 능선을 걸어 바위 전망대에 걸터앉는다. 바닥난 물병으로 목만 축인다. 예전에 왔던 이곳은 고즈넉하고 정겨운 맛이 있었는데 이제는 우거진 숲으로 덮여 황성옛터가 됐다. 철제난간 위험한 바위 지대를 지나 이끼처럼 덮인 실사리, 물푸레·쇠물푸레·진달래·철쭉·신갈·소나무. 뒤로 걸어온 바위 능선을 바라보니 햇빛은 뒤에서 역광이 되어 눈 부신다.

오후 5시 반 암릉 위에 837m 표지석 있는 윗화악산(한재 중리마을 2.6·아래화악산 1.3·정상 2.1km)에 닿는다. 뒤로 화악산, 오른쪽 밀양 평밭·퇴로마을 두고 중리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잠깐 사이 한재 중리마을 갈림길(한재 중리마을 1.8·아래화악산 0.5·평밭마을 2.8·정상 2.9km), 오후 6시경 돌 부스러기 지대 애추崖錐·석력지石礫地 근처에서 나무껍질이 군복 무늬를 닮은 노각나무를 어루만져 본다. 왕거미는 튼튼한 줄을 쳐 놓아 헤쳐가기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걷으며 내려간다.

예전의 등산길은 사라지고 표지판도 없는 난장판 같은 곳. 울창한 소나무림과 두 번의 임도를 가로질러 엎어지고 미끄러지고 가시에 찔리며 자작나무 숲을 지나 겨우 성지암, 미나리꽝에 스프링클러 물을 내뿜는 비닐하우스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오후 6시 40분 중리마을로 되돌아왔다. 어스름 내릴 무렵 청도역 추어탕집에서 잔을 기울이며 1970년대 맛을 느끼고 있다. 오늘 산행 이야기는 기차 소리에 묻혀버렸다.

산행길잡이

한재 중리마을(등산 기점) ~ 불당골 탕건바위 ~ 능선 갈림길 ~ 화악산 정상 ~ 능선 갈림길 ~ 운주암 갈림길 ~ 바위 전망대, 능선길 ~ 윗화악산 정상 ~ 한재 중리마을 갈림길 ~ 석력지, 자작나무 숲 ~ 성지암 ~ 한재 중리마을

※ 대략 10km, 4시간 10분 넘게 걸림(어설픈 산길, 안전사고 유의)

교통

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청도 IC)

※ 내비게이션 목적지 → 경북 청도군 청도읍 양지길 180-1 평양1리노인회관 (목적지에서 마을 길 더 올라가면 '한재 중리마을' 등산로 표지 있음, 버스 진입 불가)

※ 청도역이나 밀양 상동역에서 내려 택시 타도 됨.

숙식

청도 읍내, 밀양 시내 다양한 식당과 모텔, 여관 등이 많음, 청도역 추어탕집 유명

주변 볼거리

청도역, 운문사, 밀양 영남루, 밀양읍성, 청도 읍성, 자계서원 등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김재준 '한국유산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