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나의 인생 감사절 시편 50:22, 23

하나님아들 2024. 9. 14. 12:02

나의 인생 감사절

시편 50:22, 23

 

 

서론

오늘 추수감사절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의 감사생활은 어찌했을까, 옛날 초등학교 다닐 때에 1년에 한두 번 용의검사가 있었듯이, 오늘은 감사 검사가 있는 날입니다. 하루에 몇 번 감사하나요? 어쩌다 잊어버릴 듯 감사하나요? 감사가 아예 말라버렸나요?

 

오늘은 이론적인 감사설교보다는 우리들의 인생 감사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감사설교를 한 것도 1년에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우리교회 설립 40년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80회는 했습니다. 성도님들도 신앙의 세월이 만만치 않으니 감사설교를 100번 이상 들으셨을 것입니다.

100번 들었으면 감사 선수! 감사에 챔피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20번을 들어도 50번을 들어도 감사가 체질이 되지 못합니다. 내 안에 감사보다는 아직도 불평불만이 많습니다. 왜 그런가, 인간사에 모든 것들은 어느 이상을 가면 별로 효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교회에 등록하던 때의 그 첫 사랑, 얼마나 갔나요? 어느 음식점이 좋다고 다녔는데 얼마나 갔나요? 부부사이의 사랑의 시효도 3년입니다. 3년이 지나면 사랑보다는 정으로 삽니다.

제가 성경을 많이 읽은 축에 들어도(153독) 부끄럽게도 성경을 읽어도 옛날처럼 새로운 사실에 알아냈다! 유레카~ 감동하고 눈물 흘리고 그런 경험들이 점점 사라집니다. 말씀을 읽어가는 내 마음이 마모(磨耗)되는 것이지요! 마모는 마찰되는 부분이 닳아서 없어지는 것이잖습니까. 그러니 감사에 대한 설교도 감사절을 자주 보내다 보니 이제는 옛날의 감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원리적 감사설교가 아니라 우리들의 감사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영혼 추수감사

본문 50편은 아삽의 시라는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아삽은 다윗과 솔로몬시대의 찬양대의 악장이자(대상6:39) 지휘자입니다. 제금 연주자였고(대상16:5; 15:19) 시편을 12편이나 작시했습니다(50, 73-83). 이 사람이 시험에 들었는데 시험에 든 까닭은 딱 한 가지입니다.

나쁜 사람은 잘 되고 착한 사람은 왜 안 되냐? 하나님은 왜 보고만 계시는가?’

 

성가대장이면서 지휘자가 이런 시험에 들었으니 그 찬양이 어떻겠어요? 기교적으로는 대단했지만 울림을 주지 못했겠지요. 그러던 사람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이리 고백합니다.

73: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그런 확신으로 감사가 회복되고 다시 악장, 지휘자의 사역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됩니다.

바로 그 사람이 오늘 고백하는 거예요!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우리에게 왜 감사가 없고 왜 불평이 많을까요?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감사의 백성으로 돌아가려면 이제 이를 생각하라

하나님의 어떤 면을 생각하라는 것입니까? 당연히 구원입니다! 본문이 꼭 구원을 생각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설교에서는 우리 입장에서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감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구원입니다. 한시적인 이 세상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되고 하늘나라에서 영생하는 것! 최고의 감사조건입니다. 그 외의 모든 감사들은 짧은 현세에서나 필요한 감사조건입니다. 영원한 감사조건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고 말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구원에는 엄청난 감사가 있습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 삼위가 동원된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나의 구원을 예정하고 계획합니다.

성자 하나님-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그 피로 내 죄를 사합니다. 속죄입니다!

성령 하나님-성자 하나님께서 하신 속죄사역을 내게 적용시킵니다.

삼위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도 협력, 동역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만물 창조를 계획하고, 성자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창조된 만물들이 작동하게 에너지원을 공급하셨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창조사역을 하신 삼위가 내 구원을 위해 꼭 같은 노력! 꼭 같은 수고! 꼭 같은 협동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나 하나를 구원하시는 그 일이 우주만물을 창조하던 그 동등한 열심으로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개인의 구원들이 얼마나 큰 구원이며 얼마나 큰 감사의 조건입니까!

 

이런 삼위의 수고와  협력으로 제주도 시골마을에 살던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제주도는 세계지도로 보면 점으로도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곳에 있는 나를 보시고 아시고 예배당을 짓게 하시고 전도자를 보내주시고 나의 구원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망망대해에 있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 엄청난 항공모함을 보내는 일과 같습니다. 항공모함이 뜰려면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수고합니까? 기름값은 얼마나 많습니까? 시간은 얼마나 많이 걸립니까? 국가적으로는 낭비입니다. 국민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냥 둡시다! 

 

그러나 대통령은 결단을 내립니다. 저도 내 백성이다! 그래서 나의 구원을 위해 엄청난 희생을 하면서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도 이런 감사가 없습니다. 구원을 위한 감사! 나를 구원해 주신 그 은혜에 대한 감사! 아브라함도 티끌이라면(18:27) 우리는 뭐가 될까요? 그런 우리를 구원해주심에 감사를 하는 날입니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어떤 하나님을 잊어버렸나요? 나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하신 그 하나님! 22, 이제 이를 생각하라! 되새겨보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구원만 감사하면 다른 것은 조금 부족하고 섭섭해도 불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구원이 너무 큰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그물을 걷어 올리는 감사절이 됩시다

 인생 추수감사

감사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感謝)할 때의 사()를 보세요! 감사의 사()는 언()+()+()의 합성어입니다. 말씀언() 입으로 감사, 몸신() 몸으로 감사, 마디촌() 수시로 감사입니다. 여기다 감사(感謝)의 감()? 다함()+마음심()=마음을 다해 감사하라!

 

한 소년이 물에 빠져 죽어가는 것을 선교사가 구명정을 양보하고 대신 그를 살려주었습니다.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합니까?”

내가 목숨을 바쳐서 구원해 줄 가치가 있구나 그것을 증거해 보거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이렇게 살기를 주문하십니다. 구원해 줄 가치가 이는 삶! 그런 삶을 살았나요? "우리들은 그렇게 살았다"고 그 시대를 대표해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우선 1970년대를 살았던 우리들은 열심히 살았습니다. 대부분 가난하고 어려운 세월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결혼하고 자녀들을 키우고 성실히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일궈냈고 가정을 세웠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의 그 덕수들이 여러분들이었고 저였습니다.

 

저도 일찍 서울로 올라와 고학하면서 개척하고 남들이 잘 때 깨어 있었고 놀 때에 열심히 일하고 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주도까지 오셔서 구원해 주신 그 은혜에 나름 응답하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왔다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이지요, 요즘 한번 씩 나 자신을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납니다. 누가 기특하고 사랑스러우면 안아주고 싶잖아요? 열심히 살아왔으면 잘 했다고 안아주고 싶잖아요?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내가 안아주고 싶어요! 열심히 살았다고! 사느라 수고 많이 했다고! 욥이 그렇잖아요? 나는 내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27:6).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한 대로 자기를 껴안아 주세요! 수고했다고우리가 대단하게 성공을 하지 못했다고 남들은 부러워하지 않아도, 우리도 자기를 껴안아 주세요! 내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겠다고!

 

23,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우리가 세상에서도 열심히 살았지만 교회생활도 얼마나 열심했나요? 예배당을 닦고 청소하고 건축하고 주일학교를 섬기고 찬양대를 섬기고 경조사에 정말 열심했잖아요? 그렇게 열심히 믿음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코로나 이후 우리 믿음의 질이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비대면수업으로 학생들의 실력이 하락된 것처럼 우리 믿음들이 왕년의 믿음들로 박제된 부분들도 많지만 하나님나라에서 지나온 세월 열심히 봉사했던 일들까지 사라지겠습니까? 그런 우리들을 껴안아 주세요!

 

그동안 열심히 잘 믿느라 수고했다고! 수고했어. 그게 모두 감사이지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무슨 힘으로 믿고 섬기고 봉사했겠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기에 돌아보면 눈길 가는 하나하나가, 떠오르는 장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은혜가 묻어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 그걸 회상하며 감사하자는 것입니다.

교회 추수감사

한국교회는 1970~2020년 딱 50년 최고의 부흥시대였습니다. 이전에는 개인들은 물론 대한민국도 교회도 너무 가난해서 고생도 많고 슬펐습니다. 지금은 세속화가 되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재림신앙은 있는 것인지 옛날 분들이 보면 요즘은 믿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왔던 1970년대~2020년대의 50, 여의도에서 빌리그레함집회도 참석했고 엑스폴로74도 참석해서 큰 은혜들을 받았습니다. 부흥회 때마다 울고불고 기도원집회들은 얼마나 많이 다녔습니까? 그러니 저절로 은혜를 받고 저절로 믿음이 자랐습니다.

 

그런 성령 충만한 교회 시절에 함께 했던 나날들!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교회다웠습니까? 닭 한두 마리로 닭죽을 써서 30, 40명이 먹으면서도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발암 물질이라는 슬레이트에 삼겹살을 구워먹으면서 얼마나 우리는 행복했습니까? 지나온 세월, 그 어느 것 하나 주님의 손길 안 미친 것이 없는 행복했던 교회생활입니다. 지난 50년! 가장 부흥했떤 그런 시절,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런 시절을 보내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교회를 통한 감사가 더 큽니다.

-개척교회에서 자립교회로, 주는 교회로 지금은 중진교회로 성장하니 얼마나 감사해요?

-40여년을 바라보는 지금 큰 분란 없이 온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물론 의견대립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걸로 세()를 형성하고 무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교회는 장로님들을 비롯해서 중직자들이 참 좋습니다. 한번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분들이 없었고 재미가 없을 정도로 제직회나 당회 공동의회는 밋밋합니다. 싸우지 않으니 재미도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얼마나 좋은 교회입니까!

-내 개인적으로는, 목회에서 가장 좋은 것이 감사합니다~ 입에 달고 사는 감사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모두가 고맙고 좋으니 이게 목회성공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어디 목회 성공이라는 단어를 기대나 하겠습니까?

설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느 분이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제가 잘한 결정 세 가지는... 1985년 늘빛교회로 와서 목사님 만난 것... 1991년 회사를 만든 것... 1995년 서연 엄마와 결혼한 겁니다...그 세 가지 만으로도 제 인생은 행복하고 성공했습니다...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합니다~~>

 

한 사람을 위해 등불을 켜는 친정어머니 친정아버지의 심정으로 이름을 늘빛이라 정하며 개척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누군가 저를 만난 것이 잘한 결정 중의 하나랍니다! 그리고 행복하다면 목회에 성공한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스스로를 안아 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결론>

지난 8월 천안의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에서 불이나서 666대의 승용차가 불에 탔습니다. 그중 170대가 외제차라고 합니다. 우리가 외제차를 이리도 많이 사용하는 국가가 되었다니, 6.25전쟁 70년만에 얼마나 큰 경제적인 축복입니까?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런 축복과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고소고발건이 연간 대략 70만 건, 일본은 2만 건 정도입니다. 대한민국은 이만큼 사는데도 불평불만공화국입니다. 감사 결핍증이 살만한 데도 불평공화국을 만든 것입니다.

 

국가경쟁력은 정치력, 국사력, 경제력보다 감사의 크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중국대국은 미국대국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중국에는 아무리 경제가 성장해도 감사가 없고 미국은 온갖 하위(下位)문화, 허접한 대중문화들이 휩쓸고 있어도 청교도 정신이 살아만 있다면 몇 백 년은 탄탄할 것입니다. 청교도 정신은 감사문화입니다. 성탄절보다 추수감사절을 더 요란하게 보내는 국가는 아마 미국이 유일할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입버릇처럼 땡큐~” “땡큐~” 싫다는 표현조차 노 땡큐~” 땡큐를 사용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을 누기 이기고 감사하는 국가를 어느 국가가 경쟁할 수 있습니까?

 

이런 면에서는 일본도 우리가 마냥 무시하고 대적하기만 할 국가가 아닙니다. 일본은 2차대전의 패전에서 누구보다 증오와 원한이 가득 찬 민족성이 될 수 있을텐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사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감사합니다! 일본 여행 다니면서 식당이나 쇼핑몰 등 어딜 가도 직원들이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감사합니다! 그게 마음에 있든 없든 습관화되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가 말했잖아요, “그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그 사람의 정체라고요! 감사합니다! 하면 그때마다 행복이 달라붙습니다. 감사에는 행복을 끄는 자석이 붙어있으니까요!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를 하지 않으면 찢어버리겠답니다! 그만큼 감사가 귀한 것입니다.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즐겁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은 즐거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즐거우시면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가장 큰 상급은 감사 제사를 드리는 자들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감사하다는 감사의 인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