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에 대해
[답변 1]
자유의지를 영어로 번역할 때 free will로 하기도 하고 freedom of the will로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우리에게 free will이 주어진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산에 있는 과일을 네 임의로 따 먹으로고 할 때 여기서 네 임의로라는 말 자체가 네 자유껏, 네 마음대로, 네 자유의지대로, 네 free will 대로 따먹으라는 것이었으니까요.
아담에게 주어진 free will은 그런 의미에서 선을 향할 수도 있었고, 악을 향할 수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에게 주어진 free will은 선악 사이에서 중립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죠.
문제는 아담이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방향 즉 악의 방향으로 자신의 free will을 사용한 다음에, 아담은 선을 향하여 의지할 수 있는 freedom of the will을 상실하게 되었고, 악을 향하여 의지할 수 있는 freedom만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아담에게 원초적으로 주어졌던 free will은 악과 죄와 사단에게 노예가 된 enslaved will to sin and the devil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자연인은 날 때부터 악에 노예가 된 노예 의지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의지는 선을 향한 자유를 상실한 의지입니다.
문제는 선을 향한 자유를 상실한 노예의지 조차도, 자연인들이 사용할 때 심리적인 자유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죄인이 죄를 지으면서 좋아서, 자유롭게 짓지, 억지로 누가 떼밀어서 짓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자연인은 심리적으로는 자기의 의지를 사용함에 있어서 자유로움을 느끼지만, 실재로는 죄악과 사단에 노예가 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유의지라는 신학적 문제에 얽힌 복잡성이 있는 것이죠.
여기까지 읽어 보시고 질문이 있으면 또 올려 주세요.
[질문 2] 자유의지의 다른 정의는 없나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원래부터 없다는 말과 있었던 자유의지가 상실되었다는 말이 다른가요?
그럼 아담과 하와에게만 자유의지가 잠시 동안 있었다는 말인가요?
임의로 따 먹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아닌가요?
그럼 순수한 자유의지라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자유의지의 다른 정의는 없나요?
[답변 2]
계속되는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생각하시는 순수한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와 허락이라는 한계를 벗어나는 그야말로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는 절대적 자유의지를 의미한다면 단연코 인간에게 그런 의지는 없다고 말씀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란 피조물이라는 한계 내에서의 자유고, 피조물이라는 한계 내에서의 자유의지입니다.
여기서 피조성은 한계성, 유한성, 상대성을 포함하는 개념이지요. 절대적이고 무한한 자유의지는 하나님만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피조물의 수준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거나 그 명령을 거역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선으로 향하는 자유마저 상실 한 채 죄인은 악을 향한 자유의지 즉 노예의지만을 가지고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죠.
물론 아담이 타락한 것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면 아담의 자유의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란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는 피조성의 한계 내에서 사람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선택하는 자유인을 창조하시기 원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은 로보트가 아닙니다. 자신의 한계 내에서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인격자이지요.
좀 쉽게 설명을 드리면 어항속에 있는 물고기와 비교할 수 있겠지요. 어항속에 있는 물고기는 그 어항이라는 한계내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립니다. 마찬 가지로 사람은 피조성이라는 한계내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고기가 어항이라는 한계를 떠나게 될 경우 죽음으로 내 몰리는 것처럼, 우리 역시도 피조성이라는 한계를 떠날 경우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죠. 피조물이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아담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질문 3] 따먹지 않을 자유를 주셨으면 따먹었다고 벌하실 수도 없는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는 피조성의 한계 내에서 사람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선택하는 자유인을 창조하시기 원하셨는데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유의지와는 반대로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했으니 하나님의 의지는 무한하지 않으시고 전능하지도 않으신거네요?
하나님은 결국 인간의 행위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는 무기력한 신이시네요.
결국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란 선물은 선물이 아닌 백설공주가 먹은 독사과와 다름없네요.
따먹을 자유와 따먹지 않을 자유를 주셨으면 따먹었다고 벌하실 수도 없는 거잖아요. 따 먹은 것이 죄도 아닐테구요.
[답변 3]
아담의 타락도 하나님의 허용적인 작정에 따라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할 것을 아셨고, 또 그것을 허용하기로 작정하신 것이죠. 그렇게만 끝났다면 문제가 심각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타락을 작정하심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실 것을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누리는 영혼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원망이나 불평을 하기 보다는 그저 감사와 찬양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완벽하게 조화롭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좀 이해하셨으면 좋겠네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죄가 되는 것은 그가 자유로운 결정에 의해서 하나님의 명령 즉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저의 티타임을 자세히 읽어보시기를 권면합니다. 06.01.15 15:20
예정론과 자유의지
성경은 하나님의 예정된 계획이 있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성경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폐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확립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 역시 하나님의 예정을 폐기하지 못합니다.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조화되는지 우리는 다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성경이 양자를 모두 부정하지 않고 함께 가르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정과 자유의지는 우리들의 머리속에서만 모순될 것처럼 보일 뿐,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어떤 모순도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고백이어야 하겠죠.
하나님의 예정을 강조하는 신학을 우리는 개혁신학 또는 칼빈주의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신학을 우리는 알미니안주의라고 부릅니다.
저는 칼빈주의 전통 즉 개혁신학이 더 성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미니안주의자들을 정죄하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들이 여전히 예수님을 그들의 구주와 주님으로 고백한다면요..
정성욱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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