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에게 고난은 필수?
(강문호 목사)
(막 10:23-30) “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물 없는 바다가 없고, 나무 없는 산이 없듯이 고난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그림자처럼 반드시 고난은 따라 오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오늘 찾아보려고 합니다.
미국 장로교 잡지 <Presbyterian Survey>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어느 분의 간증담입니다.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천국을 이리 저리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천국에 와서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정말 신비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옆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신앙생활 하다가 천국에 오셨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1860년 동안 이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일찍 온 셈이지요. 나는 바울 시대에 로마에 살았습니다. 나는 예수를 잘 믿고 있었습니다. 네로가 나를 잡아 기둥에 매두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굶어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지나도 죽지 않으니까 내 위에 장작을 쌓더니 불을 질러 나를 죽였습니다.”
“그 때 얼마나 무서웠었습니까?” “아니요. 도리어 기뻤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내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나도 주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때 한없이 기뻤었습니다” 천국을 구경하던 그는 자기 신앙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또 한 사람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귀하는 어디서 신앙생활 하다가 천국에 오셨습니까?” “나는 하늘나라 이곳에 온 지 수백 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저 남해 에로망가 섬에서 왔습니다. 식인종 민족입니다. 죤 윌리암 선교사가 그 섬에 와서 예수님 이야기를 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왜 그렇게 확실하게 믿어지는지 놀랄 정도였습니다. 나는 그 후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로 서약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종족들이 선교사를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도 잡아서 나무에 묶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기진맥진할 때까지 팼습니다. 그들은 내가 죽은 줄 알고 돌아갔습니다. 이튿날 와서 보니 내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머리를 뽀갰습니다. 그리고 나를 요리하여 먹었습니다” “저런 끔찍한 일이 있나?”
“아니요. 당신이 보기에는 끔찍하여도 나는 기뻤습니다. 윌리암 선교사는 나에게 예수님은 내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으셨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때 믿음을 끝까지 당당하게 지킨 것을 나는 기뻐하고 있습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윌리암 선교사와 같은 분을 위하여 얼마나 헌신하였습니까? 우리를 천국으로 부르신 예수님을 위하여 어떻게 헌신하고 살고 계십니까?”
그는 이런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서있었습니다. 그렇게 물어 본 이는 슬픈 얼굴을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는 침대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몇 시간동안 울면서 회개하면서 자기 생활을 점검하여 보았습니다.
“나는 주님을 위하여 헌금 드리는 데는 인색하였고 좋은 옷을 사는 데는 아낌없이 돈을 쓰지 않았는가? 나는 놀러 다니는 데는 많은 시간을 사용하면서 예배드리는 데 시간을 얼마나 바쳤는가? 나는 육적 건강을 위하여는 좋은 것이라면 다 사먹으면서 영적 건강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였고 영적인 책을 사보았는가?”
그는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다가 꿈에서 깨어나 자기 영적 생활을 다시 조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꿈이 준 영적 성장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헌신하였습니다.
재산을 헌신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였습니다. 어느 날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오셔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렇게 순종하였습니다.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히지 않던 고기를 두 배 그득 잡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배와 그물을 갈릴리 해변 가에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관심이 없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맡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아내에 연락하여 팔라고 잘 매어 둔 것도 아니었습니다. 헐값에 당장 팔아 버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 관심 밖이었습니다. 다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가족을 헌신하였습니다.
가족과 완전히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내에게 연락이라고 하고 떠나지 그냥 떠났습니다. 누구에게 연락 좀 하여 달라는 언질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가족관계보다 예수님이 우선이었습니다. 가족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더 중요하였습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재산을 헌신하고, 가족을 헌신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라는 말은 진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면서 숙연하여지며 울고 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헌신하는 사람에게는 <금세에> 즉 살아 있을 때에 100배나 받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금세에도 보상하십니다. 그리고 내세에 영생을 주십니다. 그런데 핍박이 겸하였습니다. 고난이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세 가지는 필수로 따르는 요소입니다. 왜 예수님을 잘 믿는 데 핍박 고난이 따르는 것일까요?
1. 핍박 고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르게 살려고 영적으로 산다는 의미입니다. 바르게 살려고 하니까 영적으로 살려고 하니까 사탄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사탄의 공격이 심하기에 예수를 잘 믿으려고 하면 할수록 고난이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를 알고 미리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0-12)
베드로는 자기 경험담으로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후 5:9-10)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말이 여기 숨어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고난을 당하지만 잠간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고난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소망이 있습니다. 믿음 생활 잘 하려는 이들이 고난을 받는 모습을 가장 잘 알려주고 있는 곳이 믿음 장 히브리서 11장입니다. 이곳에 신앙생활 잘 하면서 고난을 당하여야 하는 모습을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리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만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란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 하느니라.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3-38)
이같이 예수를 잘 믿으면 고난이 오게 됩니다. 바르게 살려고 하니까 사탄이 그냥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청부 살인자들이 모여서 사람을 죽일 것을 의논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도저히 용납지 않아 뛰쳐나오며 외쳤습니다. "나 그만 둘란다." 사람들은 그를 죽였습니다. 바르게 살려면 고난이 따릅니다.
아프리카 우독족에게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두 여자 선교사가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 마을 13,000명 모두가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이교도들이 핍박을 시작하였습니다. 죽이려고 모의를 하였습니다. 사막에 가두고 먹을 것 마실 것을 주지 않았습니다. 밤이면 영하로 내려가는 데 덮을 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가끔 가서 예수를 배반한 사람들만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를 배반하지 않으면 그 곳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50명씩 그렇게 하였습니다.
믿음을 지키던 이들 13,000명 모두 수단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 양식으로 한 달을 살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가 된 두 여자 선교사가 그 곳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게 하여 주어서 고맙다고 달걀 한 박스를 선물하였습니다. 그들 한 달 식량이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끼어 안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반드시 고난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바르게 믿으려고 하니 사탄이 그냥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징계 고난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이 따르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죄를 짓게 됩니다.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죄지은 그대로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징계하시기 때문에 고난이 따르게 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히 12:6)
그래서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입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여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7-8)
아들이 자꾸만 삐뚜로 가는 것을 아버지가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참다 못 하여 아들을 화장실로 데리고 들어가서 사정없이 매질을 하였습니다. 거의 죽도록 팼습니다. 드디어 매질이 끝났습니다. 소리 없이 맞고난 아들이 아버지를 껴안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사랑해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다 때리셨어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잘못 했어요"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어요"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하니?"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때리는 모습을 거울로 보았어요. 아버지가 더 아파하셨어요. 울면서 나를 때리는 것을 보았어요." 이것이 하나님 심정입니다. 우리가 잘못 할 때 징계하시되 더 아파하시는 심정입니다.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등장하는 영화는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95년도 승마경기 중에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는 불운하게도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는 역경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타로서 죄를 물마시듯이 저지른 것을 하나님이 장계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잘 나갈 때 주지육립속에서 살았습니다. 잘못 할 때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 드렸습니다. 그래서 낙심하지 않고 무엇인가 할 일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고 영화감독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배우로서 이런 영화를 만들면 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도 좌절하지 않고 휠체어를 타고 영화 촬영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통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일함으로서 분노나 좌절대신 해방감을 느낀다. 많은 것을 빼앗겼지만 창조적인 길을 찾아낼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징계를 통하여 더욱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팽이를 때리면 때릴수록 더 잘 돕니다. 유익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은 불가피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은 조금만 잘못 하여도 징계하시기에 고난은 필수적으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3. 거룩한 고난
예수님을 잘 믿고 바르게 살려고 하니까 사탄이 고난을 줍니다. 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다가도 때로는 곁길로 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잘못 할 때 하나님이 징계로 주시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이 있습니다. 거룩하게 살게 하려는 하나님의 훈련 고난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 하리라"(히 12:14)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거룩이 무엇입니까? 거룩이라는 말은 하기오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어원적으로 <순수하다> <헌신되었다> <구별 되었다>라는 의미가 강하게 들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분리되었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분리>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 20:26)
구별된 것을 거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별된 땅을 성지라고 말합니다. 구별된 쌀을 성미라고 부릅니다. 구별된 사람을 성인이라고 합니다. 구별된 책을 성서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구별된 가구를 성구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구별된 돈을 성금이라고 합니다. 구별된 사람을 성도라고 합니다. 거룩은 구별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구별되어야 합니다. 거룩하여야 합니다.
청교도들의 생활 철학의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거룩함.> 이것이 청교도들의 삶이었습니다. 감리교를 창설한 요한 웨슬리은 감리교를 창설하면서 말했습니다. “성경에 의한 하나님의 거룩함을 전 세계 알리기 위하여 감리교를 창설한다.”
피비 팔머, 핸드리 모울, 앤드류 머레이, 재시 펜 루이스, F.B 마이어, 오스왈드 챔버스, 호레이시우스 보나르, 에이미 카마이클, L.B 맥스웰 이런 분들은 19세기 영의 거성들입니다. 이들의 핵심은 거룩이었습니다. 이들은 19세기에서 20세기를 지나면서 거룩으로 성결 운동을 일으킨 영계의 거성들입니다. 종교 개혁 전 영적인 거성은 성 테레사,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마담 기용, 뻬루 그루입니다. 이들도 거룩을 제일로 삼았던 이들이었습니다.
6.25 직후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이 문둥병 수용소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문둥병자에게서 흐르는 피고름을 다 닦으며 받아내고 치료하였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특파원 사진 기자들이 이 사진을 찍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사진은 100만 불짜리 사진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100만불을 주어도 이런 일을 못 하겠습니다.” 그 때 고름을 닦아주던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나도 못합니다.” 기자가 말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고난을 주셔서 훈련시키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고난이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보면 고난은 은혜입니다.
보석 중에 가장 비싼 보석은 진주입니다. 다른 보석은 모두가 광물질입니다. 산에서, 땅에서, 돌 속에 캐내는 보석입니다. 그러나 진주만은 생명 속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조개 속에 모래알이 들어가면 아프니까 감싸고 감싸다 생기는 보석이 진주입니다. 고난은 보석을 만들어 냅니다.
아픔을 느끼고 싶어서 발버둥치는 병이 문둥병입니다. 문둥병에 걸리면 아픔을 모릅니다. 코가 떨어져 나가도 모릅니다. 손가락이나 발가락 떨어져 나가도 고통을 느끼지 못 합니다. 난로 가에서 자기 발이 타는 데 모르고 말합니다. "어디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난다." 그렇기에 문둥병자들은 고양이를 기릅니다. 미국 문둥병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 카라우파파에 갔더니 고양이 떼가 온통 득실거리고 있었습니다. 잘 때 쥐들이 와서 살점을 뜯어 먹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취제 없이도 수술하는 병이 문둥병입니다. 고통을 느끼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병이 문둥병입니다. 물론 요즈음은 문둥병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고난은 은혜입니다. 예수 믿으면 큰 복이 있습니다. 100배의 복이 있습니다. 죽으면 분명히 영생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신유 은사가 강하여 자기가 사용하던 손수건만 대도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가시와 같은 병으로 평생 시달리는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종교 개혁을 이룬 마틴루터의 별명은 종합병원이었습니다. 평생 병의 고난이 그를 그림자처럼 따랐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병이 너무나 심하여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단 5분만이라고 아픔 없이 평안함을 맛보게 하여 주옵소서." 고난의 근원이 사탄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을 모르면 영적 문둥병자입니다. 난은 은혜입니다. 고난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비 없는 무지개는 없습니다. 사탄이 주든지, 하나님이 주시든지 고난은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아픔과 고난을 주를 위해 달게 받으면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현세와 내세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당하셨던 고난 후에 우리가 그의 죽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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