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신학!! 구약개론!!

성경개관

하나님아들 2024. 5. 15. 16:19

성 경 개 관

 

 

1. 제목(명칭의 유래):

원래의 명칭은 「태초에(In the Beginning)」이었으나 Genesis를 성경 첫 권의 표제어로 삼게되었다. Genesis(창세기)라는 말은 헬라어에서 라틴어를 거쳐 유래된 것으로 70인역 성서(LXX)에서는 「생명을 줌」, 「기원」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Genesis」를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기원, 원천, 또는 생성"을 의미한다. "태초에"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브레쉬트(bereshith)는 성경에 첫 번째로 나오는 단어이다.

 

2. 중심내용 :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 하시며 이 세상의 기원과 인간의 죄, 구원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직접 관계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택한 인간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3. 저자:

모세를 본서의 신빙성 있는 저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난하다. 창세기는 모세 오경 가운데 첫 번째 책인데 성서와 전승 모두가 본서를 모세의 저작으로 본다. 이스라엘의 삶의 전(全) 영역에 걸친 이러한 역사를 기록하기에 모세보다 더 적합한 인물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운"(행 7:22) 모세는 섭리에 따라 유용한 기록 사본 및 구전(口傳)을 이해할 수 있도록 예비되었다. 시내 산에서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특권을 부여받았던 선지자로서 모세는 그 모든 세대동안 그 시대를 통한 여호와의 활동 모습을 기록할 준비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4. 특징(성격):

창세기는

기원에 대한 책으로 모든 창조, 가정의 형성, 죄의 기원, 하나님의 계시, 동족의 발전, 그리고 선민(選民)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시작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서는 영원한 진리를 제공하며, 불가해한 문제, 신비한 사건 및 까다로운 상황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해결하고 있다. 창세기는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말씀으로 해와 달, 별, 유성, 은하수, 식물 및 움직이는 피조물을 존재케 하시고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경이로운 순간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영감을 받은 저자는 50장(章)에 달하는 본서를 통하여, 죄가 어떻게 은밀히 들어와서 파멸과 손상 및 죽음을 가져왔는가를 말하고, 패배한 죄의 비극적 결과를 보여주며, 또한 그후에 축적된 인간의 사악함이 어떻게 인간 사회에 파국을 몰고 왔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새로운 민족의 성장과 아브라함, 이삭, 야곱 및 야곱의 자녀들에 대한 흥미로운 삶을 더듬어 진술한 다음, 애굽에서의 요셉의 죽음으로 끝맺고 있다.

 

창세기에는 그리스도와 관계된 모형과 예표가 있는데 그리스도의 혈통에 있어서 창3:15(여자의 후손), 4:15(셋의 줄기), 9:26(셈의 자손), 12:3(아브라함의 가계), 18:18(씨), 26:3(이삭의 후손), 46:3(야곱의 후예), 49:10(유다지파), 49:19(실로)등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모형으로는 가시는(3:18)-저주와 가시관으로, 가죽옷은(3:31)-대속물과 , 속죄함으로 , 어린양은 (4:1-5)-화목제물, 희생양으로, 방주는 (7-8장)-교회 및 그리스도 안의 구원을(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되심 엡5:23), 사다리(28:10)-그리스도의 중보(딤전2:5)됨을 모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람들로는 아담(롬5:14)-오실 자의 표상으로, 멜기세댁(14:17,히7:2,3)-의의 왕으로, 여호와의 사자(16:7 - 14;18:22;19:1 ;22:11, 15, 16;31:11, 13)-사람으로 오심, 이삭(22장)-희생양, 순종하심으로, 유다(43:9;44:32)-죄를 담당하심으로, 요셉은(37:28;41:41,42)- 주님이 아버지에 의해 사랑한 바 되었으나 형제에게 미움받아 팔렸으며, 높이 올려지고 형제들의 축복과 구원이 되심을, 실로는 (49:10)-장차 오실 이로 예표된다고 할 수 있다.

5. 시기: 이 책의 내용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약 2350년으로 주전 4004년부터 주전 1689년까지이고 모세가 기록한 시기는 B.C1446 - 1406년 사이 즉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 모세가 느보산에서 죽기 이전까지의 기간일 것이다.

6. 기록목적: 역사의 시작과 우주의 근원을 밝혀주고 있다.

7.핵심단어: 하나님(200), 여호와(144), 창조(8), 죄(21), 아브라함(119), 이삭(92), 야곱(178), 요셉(165), 언약(22).

요절 4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출애굽기(Exodus)는 70인역(Lxx)에서의 명칭인 엑소도스(exodus)의 의역으로 라틴어 성서인 벌게이트(Vulgate)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헬라어로 '출발' 또는 '나감(going out)'을 뜻한다. 본서의 히브리어 제목은 첫 구절인 '이름은 이러하니 또는 이것을 간단히 줄인' 이름이다. 애굽에서의 탈출이 본서의 절반을 거의 차지한다.

2. 중심내용: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한 것과 해방된 것, 그 후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생활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방법을 교훈하고 있다.

3. 저자:

성서는 오경의 나머지 네 권과 아울러 이 책의 저작권을 모세에게 돌리고 있다. 고고학적 발견들이 이 사건들의 사실성(事實性)을 입증하였다.

4. 특징 :

출애굽기는 창세기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요셉과 모세 사이의 시기는 1장 6, 7절로 간략히 이야기되고 야곱 자손의 새로운 상황이 설명된다. 바로와 요셉의 총애를 받던 이스라엘 손님들은 종의 민족이 된다. 바로가 히브리인들을 지배하려 하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 하신다. 먼저 모세가 예비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구원의 사건이 일어난다. 애굽 치하로부터의 구원은 단순한 노예 상태로부터의 해방 이상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친히 예비하신 백성으로서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셨다. 본서의 주제는 단지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고 세우신 것이다. 플랙(E. E. Flack)은, '출애굽기가 지금까지 편찬된 책 중에서 민족의 출범을 다룬 가장 중요한 책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Interpretation of Exodus," Inter-pretation, Jan, 1949). 예언서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히브리의 모든 후속 역사 또는 역사 철학은 출애굽이 히브리인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라고 회고하였다"(Alleman and Flack, Old Testa-ment Commentary, p.207). 출애굽의 연대로 선택할 수 있는 주요한 두 해는 주전 1446년과 1290년이다. 성경이 무오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주전 1446년을 주장하는데, 이는 통계 자료에 의해 그와 같은 계산이 산출되기 때문이다. 열왕기상 6장1절에는 성전 건축이 출애굽 후 480년에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전 건축이 주전966년에 시작되었음을 감안하면 출애굽한 해는 주전 1446년이 된다. 성경의 연대는 매우 다양한 연대기절, 역사적 및 고고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옹호될 수 있다. 일부 성서학자들은 다양한 고고학적 및 역사적 사실들이 후기 연대를 지지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과 같은 셈족 계통의 힉소스족이 통치하던 주전 1700년경에 애굽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어떤 고고학적 증거는 연대가 주전 13세기 중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비돔과 라암셋을 회복(출1:11)시킨 라메세스(Rameses)대왕이 당시의 통치자였다. 라기스에서 하솔에 이르는 수많은 가나안 성읍들의 몰락 시기는 주전 13세기이다. 글루엑(Nelson Glueck)이 트랜스 요르단과 네게브를 탐사한 바에 의하면, 13세기 이전에는 이스라엘의 진출에 저항할 모압, 암몬, 에돔 및 아모리 족속의 국가들이 그곳에 없었다고 한다. (cf. The Other Sideof Jordan and Rivers in the Desert). 이 모든 자료들은 주전 1446년이라는 시기와 일치된다. 출애굽 시기에 관한 견해의 불일치 때문에 본서의 사실성(事實性)이나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그것의 메시지가 손상되어서는 아니 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시기: 이 책의 내용에 포함된 시간은 약 216년으로, 주전 1706년부터 1490년까지임

6.기록목적: 고통중에서 위안을 주며, 노예생활중의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시리라는 소망을 주기 위함.

7.핵심단어: 여호와 353, 구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요절: 3:8;12:51

 

 

 

 

 

1. 제목(명칭의 유래): 레위기란 명칭은 벌게이트의 역의 레비티쿠스에서 온 것인데 이 명칭은 “레위인에 관한”을 뜻하는 레비티콘에서 파생된 것이며 70인 역에도 있다. 유대인에게는 이 책의 명칭이 레위기에 최초로 나오는 히브리어인 와이크라(그리고 그가 부르셨다)로 알려져 있다. 구약 성서의 명칭의 대부분 그 책의 처음에 나오는 단어나 말로 일컫는 것이 유대인의 관습이었다. 레위기의 서두에 '그리고'(And)란 말을 사용한 것은 이 책이 성서의 다른 어떤 부분에 대한 부록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록 이 책은 출애굽기의 사상을 잇고 있지만 그 자체가 독립적인 한 권의 책이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이 거룩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나타낸다. 이 책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경건하고 거룩하게 하는 제사장의 기능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즉, 레위기는 제사장 혹은 레위인의 직분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언급은 신약 성서의 히브리서 7장 11절에 기록 되여 있다.

2. 중심내용: 레위기가 전하는 영적인 메시지는 성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음식에 관한 규례, 제사장의 결례, 희생제사에 대한 규례 그리고 광야로 보낸 신비한 '아사셀'(Azazel)이란 산 염소 등을 포함한다. 레위기의 강력한 메시지는 성결, 희생제사, 속죄에 대한 개념들로 관찰 요약될 수 있다.

3.저자와 저작 연대: "제사장은 그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반차대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되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하니라"(스 6:18). 서기관 에스라는 재건된 성전을 봉헌하는 적절한 절차를 결정하는 데 사용한 자료를 묘사하면서 레위기를 사용했음을 언급한다. 레위기는 바로 성막 의식에서 합당한 예배를 위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규례를 기록함으로서 모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규례가 마련되어야 제사장과 백성이 질서 정연하게 예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중심적인 통제력과 일정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성막 예배를 확립하는 데 있어 모세의 역할이었다.

4.특징: 레위기의 두번째 부분(17-27장)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인간의 근본원리인 '성결법전'(Holi-ness Code)을 묘사한다. 이 부분의 강조점은 레위기의 주요한 두 부분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으로 옮아간다. 레위기는 모세를 통해 새 언약의 영원한 희생제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기했다. 히브리서는 이러한 새 언약을 묘사한다. 레위기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의 보다 중요한 측면에 대한 배경을 제시한다. 레위기에 대한 연구는 오직 그것이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적할 때만 가치를 지닌다.

5. 시기: 이 책에 기재된 법도와 명령은 하나님이 일개월 간의 기간에 걸쳐서 모세에게 분부하신 것으로 그 기간은 대략 이스라엘인의 정월 1일 곧 회막이 건축될 때(출 40:2, 17, 레 1:1)부터 2월 20일, 즉 시내광야를 떠날 때까지(민 10:11-12)이다.

6. 기록목적: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가(성별의 지침서, 제사장, 제물, 그 종류와 그것에 관한 법)를 가르쳐 주며,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율법에 정한 방식으로 제사장의 중보와 희생제사와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야 함을 가르쳐 거룩한 백성으로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7. 핵심단어: 거룩(50), 제사(151), 제물(43)

요절: 레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 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이 책의 옛 명칭들 중에는 현대 히브리 성서에 사용되는 명칭이 있는데, 그것은 "광야에서"를 의미하는 "베미드바르"이다. 이 단어는 이 책의 첫째 줄에 나오는 것으로 전체 내용을 설명해 준다. 영어 명칭은 70인역(LXX)에서 유래한 것으로, 벌게이트 성서을 통하여 "민수기"라 불리게 되었다. 분젠(Bunsen)은 이 책을 “병력 명부”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민수기의 특징에 잘 어울리는 제목으로 보인다.

2. 중심내용: 민수기의 중심 사상은 단일하며 명백하다. 즉 민수기는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께로 부르시는 이스라엘의 소망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민수기에서 백성은 하나의 진(陣)으로서 어떻게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서 배운다. 한 민족으로써 그들이 여행하고 제사하며 정복하는 것을 대비하여 그들의 종교적, 사회적, 및 군사적 체제가 정비된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법적, 의식적인 세부사항에 대한 지시와 율법이 이 책 전체에 걸쳐 군데 군데 들어 있다. 민수기는 시내 광야에서의 마지막 19일부터(1:1, 10:11) 제 40년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민 22:1, 26:3; 33-36:13). 민수기에 나타난 사건들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서 북쪽으로 여행하여 바란 광야에 도착하였다. 정탐꾼들이 "악한 보고"를 하였고, 여호와에 대한 거역을 선동하였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이방인의 손에 패배하였고, 광야에서 38년 이상을 방황하게 되었다. 그 후 그들은 요단 동편 모압 평지로 여행하였고, 아르논 강 북쪽의 요단 동편 전 지역을 점령하였다. 여기서 그들은 모압 및 미디안 여인들과 음행하는 죄를 범하였고 그들의 신을 섬겼다. 새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인구조사를 하였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미디안 사람들을 멸망시켰다.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을 기업으로 얻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하였다. 20-36장은 40년째 되는 해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36:13). (엑셀, 신구약 강해설교 대전))

3. 저자 : 모세 5경의 다른 책들과 같이 민수기의 저자도 모세로 생각된다. 이 책에서는 80번 이상이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가라사대" "모세가 진행한 것을 기록하였으니"(33:2)라는 구절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사에 개입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은 초자연적인 사건이었다. 발람과 발락 이야기는 (민22-24장) 이 책에서 명백하게 모세의 저작이라고 보지도 않으며 모세가 언급되지도 않은 유일한 구절이다. 그러나 이 책의 대부분은 모세가 영감을 받아썼다는 것은 명백하다.

4. 특징: 단지 몇 장만이 인구조사를 다루고 있으며(1-4장, 26장), 이 책의 대부분은 율법, 규례, 그리고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경험을 다루고 있다. 두 번에 걸쳐 시행된 인구조사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첫번째는 광야생활을 준비하며 시내 산에서 이루어졌고, 두번째는 이보다 약 40년 후에 약속의 땅에 들어갈 준비로 요단 강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이 두 차레의 인구조사가 이 책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놓는다. 1-21장은 인구 조사로 시작하여 광야시대를 다루고 있으며, 26-36장은 새 세대의 인구조사로 시작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기 몇 달 전까지의 역사를 말해준다. 이 둘을 나누어 놓는 발람의 이야기는 문학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민수기는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와 함께 연구해야 한다. 출 19:1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후 제3월에 시내 광야에 도착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3월부터 12월에 이르는 동안 그들은 십계명, 성막 건축을 위한 지시, 그리고 레위기에 언급된 상세한 제사제도를 받았다.

5. 시기: 이 책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약 삼십 구 년으로 주전 1490년부터 주전 1451년까지이다. 이스라엘인이 시내 광야로부터 출발하여 마지막에는 모압 평원에 도달하는 것을 포함하여 다루고 있다. 모압 평원은 가나안 땅의 큰 입구이고 강 건너편은 바로 여리고 성임

6. 기록목적: 신앙과 불신앙, 순종과 불순종의 역사를 기록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지 못한 후 세대들에게 간접적인 교훈을 주기 위해서이다.

7. 핵심단어: 봉사(19), 전쟁(1), 광야(46), 원망(11), 제사(67), 요절 10:9;10:29, 14:28-30

 

 

 

1. 제목(명칭의 유래): 문자적으로 신명기는 제 2의 율법을 의미함 - 다시 말해 주는 것, 되풀이 해 말하는 것, 다시 들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신명기는 영어로 Deuteronomy인데 이것은 17:18의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라는 구절을 듀테로노미온 투토(deuteronomion touto)즉 '이 두번째 율법서'라고 오역(誤譯)한 70인역 성서(LXX)와 벌게이트역의 듀테로노미움”(Deuteronomium) 이라는 제목에서 근거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17장 18절에 언급된 등사하도록 명령된 율법서가 이 책을 의미한다고 여겨서 이 책의 이름을 “율법의 반복”(mishneh hattorah)이라고 불렀었다. 등사하도록 명령한 율법이 신명기만을 의미한다고 하는 유대인들의 해석이 옳은 해석은 아니지만, “율법의 반복”이라는 제목은 신명기의 내용과 잘 일치하는 것이다. 히브리 성경에는 그 제목이 '말씀들'을 뜻하는 드바림(debarim)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각 권의 첫 단어를 각각의 제목으로 삼는 관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명기는 "이는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1:1)"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고대에 행해진 종주권 맹약(宗主權 盟約)들의 서두가 이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히브리 성경의 '말씀들'이라는 제목은 신명기의 문학적 성격을 알려 주는 실마리의 하나를 제공해준다. 한편 랍비 저술가들 중의 몇몇은 그들이 성경의 각 책에 제목을 붙일 때 본문의 처음 부분에 등장하는 단어들로 제목을 삼던 습관에 따라 신명기의 제목도 본문의 처음 부분에 나타난 두 단어로 정해서 “재증거의 책”이라고 불렀다. (엑셀/ T.E. Espin, D.D., in "Speaker's Commentary.")

2. 중심내용: 신명기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약의 책들 가운데 하나인데, 신약 성경에는 이 책이 80회 이상 인용되고 있다. 신명기 전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주된 주제는 언약의 갱신이다. 시내산에서 처음 세워진 언약은 이스라엘 자손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던 모압 평지에서 갱신된다. 사십년동안 광야를 유랑하면서 생긴 새 세대에 대하여 율법을 재해석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3.저자 및 저작 시기: 신명기에는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입으로 전했을 뿐만 아니라 쓰기까지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신31:9,24).

4.특징: 1)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통치적 행정에 대하여 말함 청중인 이스라엘 자손도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다루심에 있어서 체험이 많았음. 2) 어떤 종류의 사람이 좋은 땅인 약속된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가에 관하여 민수기를 보충하는 말씀임, 3) 하나님을 사랑과 의의 하나님으로 말함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적 행정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 반응할 것이 요구됨, 4) 과거의 회상에 있어서 이 책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사람의 실패를 지적해 줌 5) 미래에 관해 조망함으로서 이 책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과 통치를 알고 또한 사람의 참된 상태를 알 수 있기를 기대함 결국 이 책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의 백성으로 하여금 그분의 뜻과 미리아심을 따라 그분의 충만한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최종적으로 역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이 책의 내용이 포함한 시간은 약 40년, 곧 주전 1491년부터 주전 1451년까지임, 장소는 모압 평지이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의 실행이라는 틀 속에서만 바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주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완전히 성취된 약속들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 안에서 일시적이며 상징적으로 성취되었다. 시내산 계약에서 신정(神政)정치가 확립되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왕권의 지상 대표자로 모세를 세운 것이었다. 그러나 반역한 출애굽 세대가 광야에서 멸망하고 모세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게 되자 새 세대를 위하여 언약의 갱신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한 의식에 있어서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행위는 종된 백성을 여호와 하나님께 바칠 것을 맹세하는 것이었다. 특히, 하나님의 통치는 중재 역할을 하는 지상의 왕조(王朝)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는데,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복종하겠다는 언질을 받아냄으로써 확증되어야만 한다.

6. 기록목적: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누구나 지켜야 할 규례에 대해서 새로운 세대에게 가르치며 적용하기 위해서이다.

7. 핵심단어: 회상, 순종, 추억, 저주, 계약, 하나님을 사랑함, 그분의 계명들(그분의 말씀)을 순종함, 그분의 축복을 받음. 요절 4:13;5:29;6:11, 10:12,13, 11:26-28, 28:1;29:1

 

1. 제목(명칭의 유래): 히브리어 성경의 명칭은 ‘여호수아’임, 70인역의 명칭은 ‘예수스 나우에이’임. 구약 정경 가운데 두번째로 큰 덩어리인 역사서의 첫 권은 그 주요 인물인 여호수아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이 명칭은 성경의 다른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그 내용에서 유래되었다. 여호수아서의 내용은 여호수아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사명(신31:7, 8)을 완수하는 과정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여호수아가 죽어 장사됨으로써 끝을 맺는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이 책을 여호수아서라고 불렀던 것이다.(엑셀/ T.E. Espin, B.D.)

2. 중심내용: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성전에서 승리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좋은 땅에 관한 약속을 성취하고자 하심은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할 장소를 소유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특히 인성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그분을 이 땅에 이끌어오는 노선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3 저자 및 저작연대: 이 책은 하나로 된 문학작품이다. 여호수아가 이 책 전체의 저자였다고 할 수 없는 것은 본서가 그의 죽음(24:29,30) 및 그가 죽은 후에 발생한 사건들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례상 죽고 난 이후의 일을 추가하여 넣었다 하여도 저자로는 여호수아가 가장 합당하다고 할 것이다. 여호수아서는 사사 옷니엘의 활동기(주전 1367-1327년경)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4. 특징: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성전과 그로 얻게된 지파들간의 실제적인 기업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관계된 예표들이 나온다. 여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가나안으로 인도)-승리를 이루심(롬8:2-4, 히7:18,19), 여호와의 군대장관(5:13_15)-우리를 위해 싸우시는(고후2:14), 라합의 창에 드리운 붉은 줄(2:18)-보혈의 구원(히9:19-22), 그리심산, 에발산(8:30)-저주와 축복을 한 산으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요3:17,18)

5.시기(역사적 배경):이 책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25년으로, 기원전 1451-1426년까지임. 장소: 모압 땅(신 34:8-9)과 가나안 땅

6. 기록목적 : 여호수아는 오경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계속해서 기록하며 족장들과의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각 지파들을 약속된 땅에 정착시킴으로 생겨난 신정(神政)국가를 보여주고 있다(11:23;21:43-45).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가나안족속들에 대한 그의 심판하심과 이스라엘이 모든 악을 추방해야만 한다는 그의 주장에서 나타난다. 본서에서 입증되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의 또 다른 국면은 하나님의 구원이다. 예수의 히브리어 형태, 즉, '여호수아'라고 하는 바로 그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소유하게 되는 이스라엘의 구원사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은(엡 1:19,20;6:10) 투쟁과 승리와 축복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체험을 보여준다(엡 1:3;2:6;6:12). 히브리서 4장에 나오는 가나안에서의 안식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사단을 정복할 수 있게 해주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과 중보 속에서의 영적 안식을 상징한다.

 

7. 핵심단어: 소유하다(8), 기업(50), 진멸(14) 분배(5), 점령(5)

요절: 수 11: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사사기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정경속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 책에 붙여진 사사기라는 명칭은 이 책이 사사(Judges)라고 불리우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의 업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사사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쇼패트(shophet)'라는 말은 심판자 또는 심판관이라는 말보다는 훨씬 더 광범위한 뜻을 가지고 있다. 이하 생략 (엑셀/ Prof.G.F. Moore)

2. 중심내용: 이스라엘이 그들의 땅을 지키지 못하고 그들의 종교 및 문화생활을 강력히 고수하지 못한 것이 계속되는 비극의 원인이었다. 우상숭배가 시작되었고 사악한 압제자들이 등장하여 그들을 못살게 굴었으며 굶주림과 기근이 그들 곁을 떠날줄 몰랐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을 세워주셨다. 고통이 극에 달하여 백성들이 절망적으로 울부짖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압제자의 멍에를 뿌리치고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사사 즉 구원자를 불러 세우셨다. 중요한 또 하나의 교훈은 어떠한 무기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닌 백성을 멸할 수 없으며 전쟁에서의 모든 무기는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수천의 군대보다도 훨씬 강하다. 마지막 교훈은 인간이 자신의 소견에 비추어 옳은 것을 마음대로 행할 때마다 무질서가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행할 때에 문명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모든 면에 있어 에덴 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원죄의 한 모습인 것이다. 인간은 오로지 하나님의 율법과 사랑에 순종함으로써만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누리게 하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엑셀/신구약 강해설교 대전))

3. 저자: 구약의 다른 역사서들과 마찬가지로 사사기도 익명으로 기록되었다.

4. 특징: 여호와를 버렸을 때 그들의 대적 아래서의 비참한 패배들로 가득한 역사서

5. 시기(역사적 배경):이 책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305년으로 주전 1425년부터(여호수아의 죽음 후-1:1) 주전 1120 년까지(삼손이 죽었을 때)임 - 전체 사사 시대는 약 450년 정도이다(행 13:20). 본문의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사사기의 저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그것은 실로의 멸망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삿18:31)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삿17:6)'라는 귀절은 그 시기가 왕정 기간 중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여부스족이 이 때까지도 예루살렘에 거한 것으로 언급되는데(삿1:21) 이것은 그 시기가 다윗 통치 기간 중에 있었던 여부스 정복 이전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또한 게셀에 대한 언급(삿1:29)은 바로가 그 성읍을 솔로몬에게 결혼 선물로 주기 이전이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왕상9:16). 따라서 이러한 본문의 증거자료는 사사기의 저작 시기를 사울의 통치 기간 중 또는 다윗 시대 초기로 제시해 주는데, 그렇다면 그 시기는 대략 주전 1050년에서 1000년 사이가 될 것이다. 탈무드와 초대 기독교 전승은 사사기의 저자가 사무엘이라고 하는데, 증거는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사사기가 사무엘과 동시대인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형태대로의 사사기는 그것이 복잡한 구조의 편집물이 아님을 입증하는 통일성을 보여 준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 기록목적: 사사기는 이스라엘백성들의 타락과 압제와 구언이라는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서 역사속에 작용하고 있는 도덕적인 힘을 보여 주고 있다. 사사기는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신실하심과 자비로우심을 기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백성들의 존속을 위협하는 여러 상황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기적적으로 구출되는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사사기는 보여주고 있다. 또한 누구든지 하나님만 의지하면 놀랄만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점과 하나님의 법을 굳게 지키는 대신 죄악의 세력에 이끌리어 타락하게 되면 어려운점에 처하게 된다는 점을 증거하고 있다. 사사기는 역사적인 시례를 통해서 우리들로 하여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것과 영원한 생명을 굳게 붙잡을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책이다. 끝으로 사사기는 모든 대적을 물리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승리에 우리가 참여하도록 격려하고 있으며 우리가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대적들을 당시의 발 아래에 굴복시키실 때에 그의 나라의 상속자가 될 것임도 보여주고 있다. (엑셀/ Lord Arther Hervey)

7.핵심단어: 이스라엘 자손의 하나님을 신뢰함, 하나님을 버림, 원수들에게 패배 당함, 하나님께 회개함, 사사들로 말미암아 건져내어짐 및 부패하게 됨(1:1-3, 2:11-3:11). 요절: 요절2:19;17:6

1. 제목(명칭의 유래): 룻기는, 이 책의 여주인공, 즉 남편이 죽은 후 과부가 된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모압 여인의 이름을 따서 그 명칭이 붙여졌다. 룻은 다윗 왕(룻 4:18-22)과 예수님(마 1:1,5)의 조상이었으므로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 중심내용: 이방인인 한 모압 여인까지도 그녀를 구속한 거룩한 선민과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에 들 수 있었으며 거룩한 기업에 참여하는 상속자가 되었음. 이 책이 이스라엘에서 보존되고 존경받은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룻이 다윗 왕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의 조상이 순수한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며, 다윗의 계보에 모압 여인 룻을 소개하는 것은 후에 "다윗의 아들" 메시야가 그녀의 후손이 되리라는 것을 의미하였다.

3. 저자와 저작 연대: 이 책의 저작 년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성경학자들은 이 책 자체에서 저작 시기에 관한 몇몇 단서들을 찾아낸다. 다윗이 이 책에 언급되어 있으므로(4:17, 22) 이것이 기원전 10세기 이전에 기록되었을 리는 없다. 저자는 고대의 관습으로 생각되는 몇몇 관습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4:6-8) 이것은 그 관습이 폐지되고 몇 년 후에 이 책이 기록되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룻기가 다윗 시대보다 얼마나 늦게 쓰여졌는가 하는 문제는 추측해 볼 도리밖에 없다. 어떤 학자들은 그 연대를 기원전 4세기로 잡는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바벨론 포로 이전이라고 주장한다. 파이퍼 (Robert Pfeiffer)는 그의 「구약 입문」(p.718)에서 이 책의 저작 년대를 기원전 400년경이라 보고, 후 시대의 유능한 기자가 초기의 형태를 따라서 이 작품을 썼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영(Edward Young)은(구약 입문, p. 358) 이 책의 계보에 솔로몬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것에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후대의 기자가 다윗의 계보를 그 시대를 넘기까지 확장시켰을 것이므로, 이 책은 아마 다윗의 통치 기간 동안에 쓰여졌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성경성구대전)

4.특징: 룻기는 사사기의 부록으로 사사기의 처음 절반과 동시대임을 알 수 있다. 특별히 ‘고엘’제도가 나오는데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사람이나 혹은 유산이 노예처럼 속박되어 팔렸을 때 가까운 친척이나, 유산을 찾을 수 있는 능력자나, 스스로 찾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속박된 사람은 자유로운 몸이 되고 유산은 주인에게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비참한 역사에 대한 책으로 어둡고 악취가 난다 할 것 같으면 룻기는 몇 가지 탁월한 이야기의 기록으로 밝고 향기롭다. 또 룻기에 함축된 예표들로 풍성한 부를 소유한 보아스(2:1)는 신성한 은혜에서 풍성하신 그리스도를(고후 12:9) 예표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좋은 땅의 밭은(2:2-3) 하나님의 선민의 생명 공급을 위한 모든 영적이고 신성한 소산물의 근원이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빌 1:19下) 예표하며, 보리와 밀은(2:23)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모두를 위한 음식을 만드는 재료이신 그리스도를(레 2장, 요 6:9, 33, 35) 예표한다 할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의 수확물의 이삭줍기에 참여하는 권리를 받은, 하나님의 약속들과 동떨어진 이방 죄인인 모압 여인(신 23:3) 룻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녀들의 분깃인 상아래 부스러기들에 참여하도록 혜택을 입은 「이방 개들」을(골 1:12, 마 15:25-28) 예표한다 할 수 있다.

5. 시기(역사적 배경): 이 책의 내용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약 11년으로, 주전 1322년경(1:4)부터 주전 1312년경(4:13)까지임. 이 책의 역사는 모압과 유다에서 발생했다(1:1, 22).

6. 기록목적: 룻기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목적을 가지고 기록되었다. 첫째 룻기는 사사기를 보충하는 부록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룻기는 참다운 이스라엘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셋째 룻기는 구속사의 흐름에 있어서 이스라엘과 이방인과의 미묘한 관계를 해명해 주고 있다. 그런데 룻기가 보여 주고 있는 이방인에 대한 관대함은 후에 이스라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룻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했다. 넷째 룻기는 다윗의 계보를 추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 네가지 사실 중에서 마지막 두 가지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룻기의 가장 주된 목적이 된다고 볼 수가 있다. 왜냐하면 룻기는 다윗의 계보를 밝힘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은 유다 지파의 보아스와 이방 여인 룻의 혈통을 타고 났음을 밝힘으로써 이스라엘과 이방인 간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은근히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엑셀/ A. Edersheim, D.D)

7. 핵심단어: 기업(11)을 무르다(구속), 은혜(4), 요절: 룻 3:9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1. 제목(명칭의 유래): 제목을 '사무엘'이라고 한 이유는 그가 본문에서 전개되는 역사의 중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로 사무엘은 '하나님의 들으심'이란 뜻을 갖고 있다. 사무엘상. 하는 열왕기상. 하와 마찬가지로 히브리 성경에서는 본래 한권의 책으로 되어있었다. 그 후에 칠십인역 성경이 처음으로 '사무엘서'를 두 권의 책으로 나누어 왕국기 α와 β(Books of the kingdoms)라고 불렀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사무엘에서 시작된 역사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열왕기서'는 각각 왕국기 Ⅲ, Ⅳ로 불리어졌다. 그후 제롬이 왕국기 Ⅰ-Ⅳ를 열왕기Ⅰ-Ⅳ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나서 벌게이트 성경에서는 Ⅰ,Ⅱ를 사무엘서로 환원하고 Ⅲ-Ⅳ를 열왕기로 부르기 시작했다. 또한 히브리 성경에서 사무엘서가 상.하 두권으로 확정된 것은 1517년 다니엘 봄버그가 히브리 성경을 개정, 인쇄하면서 부터였다. 그후 히브리 성경도 본래의 히브리어 제목을 계속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 부분을 각각 두 권씩 네 권의 책으로 분류하고 있다. (엑셀/ 강해설교연구대계)

2. 중심내용: 이 역사서 안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열왕기'에 대한 언급이 계속되고 있으며, 왕국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이 보존되었다.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리된 이름들은 각각의 기록들이 왕국 분열 이후에 기록되었음을 나타낸다. 심오한 선지자적 통찰력과 영감을 가진 사람들은 사무엘 시대에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기록하기 위해서 이 자료들을 사용하였다.

3. 저작 시기 및 저자: 사무엘상의 사건들은 대략 주전 1100년에서 1010년 경까지의 일들이다. 사무엘서의 저작시기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 문제가 까다로운 것은 사무엘서의 대부분이 사무엘 사후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엘상의 앞부분은 주전 1000년 경에, 그 나머지 부분은 그후 30년 내지 50년뒤에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무엘은 공직에서 물러나기 전의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부분만을 기록했던 것 같다. 사무엘서의 많은 부분, 특히 다윗의 궁중 생활을 취급하는 부분은 아비아달이 기록했다는 주장이 있다. 아비아달은 피신 중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인 다윗과 친밀하게 지냈다. 또한 그는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고, 역사를 기록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와는 달리 사무엘이 세운 학교들 중 한 학교에서 배운 선지자들의 아들 중 하나가 그의 선생이 시작한 이스라엘 역사의 기록을 계속 수행하였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4.특징: 사무엘서의 기본 사상은 하나님께서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민족의 삶 전체를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때로는 심판하시고 때로는 축복하시면서 당신의 예정하신 목적-세상의 빛이 되도록, 구원의 섭리를 성취하시기 위하여 특별히 세우신 이스라엘을 메시야의 강림을 위해 예비시키시는 것-을 향하여 역사하신다. 이 기본 사상을 드러내기 위해서 몇 가지 부수적인 주제가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나이 어린 사무엘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범죄한 백성 위에 임박한 진노를 계시한 것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제사장과 은혜를 저버린 백성들을 심판하신다는 불변의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 또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울의 역경도 하나님이 버리신 백성들의 비참한 운명을 경고하고 있다.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는 ①‘만군의 여호와’(1:3) :전체 성경 가운데 ‘만군의 여호와’가 약 281번 사용되었는데 삼상 1:3에서 첫 번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전능자요 하늘 위에 모든 군대의 주이심을 의미하는 말이다. ② ‘메시야’(2:10): 한나가 그의 기도에서 첫 번째로 사용하였는데 그 뜻은 ‘기름 부음 받은 자’이며, 신약의 ‘그리스도’이다. ③ ‘이가봇’(4:21) :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④‘에벤에셀’(7:12) :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5. 시기(역사적 배경): 사무엘 상에 기록된 역사는 엘리부터 사울이 전쟁에서 죽을 때 까지로서,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약 150년으로, 주전 1171년부터 주전 1056년까지임. 사무엘 하에 기록된 역사는 약 38년으로 주전 1056년부터 주전 1018년까지임. 주요 장소는 에브라임과 유다이다. 사무엘상, 하의 기록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연대 추정에 있어서 난점의 하나는 본서 내용의 대부분이 사무엘 사후의 일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사무엘상의 전반부는 B.C 1000년경에 기록된 것 같고 그 나머지 부분은 적어도 30-50년 같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 기록목적: 사무엘의 출생에서 부터 사울의 사망까지 선택받은 민족의 역사로 특히 첫 왕 사울과 함께 어떻게 왕국을 시작하였는가를 보여 주며 초기 왕정의 역사를 도덕적, 선지자적 관점에서 기록하여 부패한 인간에게 교훈하기 위해서이다.

7. 핵심단어: 기도(14)하였다, 만군의 여호와(5), 여호와(240), 에벤에셀(3), 왕(108) 요절: 삼상 11:15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 크게 기뻐하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사무엘상, 하에 붙여진 사무엘이라는 명칭은 사무엘상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의 이름에서 연유한 것이다. 히브리어 사무엘은 한나에 의하여 '하나님이 들으신다' 라고 해석되었던 것 같다. 성서 학자들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사무엘하(下)라는 명칭은 원래는 열왕기 이 서였으며 현재의 열왕기상, 하는 열왕기 삼, 사서로 불렸었다. 이 원래의 명칭(열왕기 이서)은 이 책이 이스라엘 왕들을 기록한 두 번째 책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사무엘이 사무엘상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이고 또한 왕정(王政)을 확립할 때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사무엘 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던 것이다. (삼상참조)

2. 중심내용: 사무엘하는 사무엘상의 주제를 계속해서 이어 나간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메시야가 그들을 통해 오실 그 백성을 예비하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적 사건들을 통하여 그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주제이다. 이 책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다윗 왕권의 위대함과 수치스러움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다윗의 위대한 믿음 뿐만 아니라 약점도 보여주고 있다. 다윗의 생애에 나타난 하나님의 축복과 심판은 그 민족의 운명에 대한 축소판이다. 사무엘상에 이어 사무엘하에서 밝히 드러나는 또 하나의 부수적인 주제는 바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다윗의 일생이다. 본서에는 그의 덕과 장점 뿐 아니라 그의 죄악도 숨김없이 기록되었다. 다윗도 엄청난 죄를 저질렀지만 그후 그의 태도에서 다른 사람과의 중요한 차이점이 발견된다. 그는 자신의 죄를 깨달은 후에 울며 회개했다. 다윗이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비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었다. 사무엘서 전반에 걸쳐 개인과 민족의 이야기가 얽혀 있지만 이 모두를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오직 한 분이신 전능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범죄로부터 흉악하고 불순종하는 민족의 큰 죄악에 이르기까지 백성을 위해서 자비와 공의로 다스리신다. 이와같은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은 인간의 삶 전체를 통하여 섭리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엑셀/ ..대전)

3. 저자, 시기: 사무엘서의 많은 부분, 특히 다윗의 궁중 생활을 취급하는 부분은 아비아달이 기록했다는 주장이 있다. 아비아달은 피신 중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인 다윗과 친밀하게 지냈다. 또한 그는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고, 역사를 기록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와는 달리 사무엘이 세운 학교들 중 한 학교에서 배운 선지자들의 아들 중 하나가 그의 선생이 시작한 이스라엘 역사의 기록을 계속 수행하였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4. 특징: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는 위대한 통일 왕국 및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단된 왕국의 혼돈 상태에 대한 완전한 역사를 이루고 있다. 히브리 원전에는 사무엘상, 하가 한 권으로 되어 있다. 심지어는 현대 성경에 있어서도 때때로 사무엘상, 하가 열왕기 일, 이서로, 열왕기상, 하는 열왕기삼, 사서로 부제가 붙여지기도 한다. 사무엘상, 하의 분리는 사울의 통치 말엽의 도중에서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이 이야기의 중요한 계속성을 방해하고 있다. 원전에서는 결코 이런 식으로 분리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사무엘상, 하는 연속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함께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무엘하의 많은 부분에서 독자는 사무엘상에 기록된 내용이 무엇인가를 추측하게 될 것이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사무엘하에 기록된 사건들은 주전 1010년에서 970년 사이의 일들이다. 이스라엘의 선지자 및 사사로서의 사무엘의 부름은 구약 시대의 하나님 왕국의 발전에 중대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사의 통치에서 왕정으로 넘어가게 되는 시기에, 사무엘은 사회적 및 종교적 통일의 재건을 지도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있었다. 그는 출애굽 사건에 버금가는 이처럼 큰 국가적 위기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다. 또한 그는 선지자 직분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그 직분을 제사장직과 왕권의 수준까지 발전시켰다. 사무엘 시대 이후로 선지자들은 민족의 영적 생활을 지속시키고 각성시켰으며 하나님의 뜻을 통치자와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도구가 되었다.

6. 기록목적: 사람이 기뻐하는 사람 사울에게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다윗으로 왕권이 옮기는 과정과 다윗의 즉위에서 만년에 이르기까지 생애와 사역을 그리고 있는데, 다윗언약(7:12-16)으로 다윗의 왕국을 영원히 견고케 하실 약속과 장차 올 메시야 왕국의 모델로서 다윗왕국을 묘사하며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7. 핵심단어: 여호와 앞에(12), 다윗(216), 요절 5:4

1. 제목(명칭의 유래): 현재 열왈기상, 하로 알려진 이 책의 제목은 그 내용으로부터 유래되었다. 70인역 (LXX)과 히브리 원전에서는 열왕기상, 하가 사무엘서에 있는 자료의 속편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이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열왕기삼,사서로 그 제목이 붙여졌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한 권으로 되어 있으며, 그 명칭은 「멜라킴」으로 「왕국들」이라는 뜻임. 70인역에서 열왕기 상·하는 「바시레이온」(왕정의 책들)의 제 3,4권으로 되어 있음. 이 책은 유다 나라와 이스라엘 나라의 여러 왕들의 사적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열왕기」라 이름하였다.(엑셀/ ..대전)

2. 중심내용: 열왕기서는 유다 및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에 대한 완전하고 자세한 역사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은 오므리나 여로보암Ⅱ와 같은 막강한 왕들을 잠깐 언급하고 지나쳐 버리지만 반면에 엘리야, 엘리사 및 별로 세력이 없는 요시야같은 왕들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저자가 단순히 분열 왕국의 왕들에 대한 기술에만 관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의 관심은 위대한 종교적 교훈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는 예언적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 및 사건을 강조하였다. 본서에서는 거의 모든 왕들이 독특한 형식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타국의 왕이 통치한 해를 언급함으로 즉위 연도를 알려주고, 유다 왕의 경우에는 즉위시의 나이와 그 어머니의 이름 및 재위 기간이 언급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가 각 왕들의 치세를 평가하고 있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저자의 목적이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이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어떻게 임하는가 하는 것과 역사의 비극적 사건들이 불순종에 대한 심판의 손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하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저자가 각 왕들을 평가하는 어떤 종교적인 척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역시 분명하다. 그것들은 성전과 성전 예배를 지지하여야 한다. 이것은 북왕국의 왕들에게 불가능함이 분명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성전으로부터 이탈하도록 한 사실은 그늘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의 일부였다. 저자는 북왕국의 멸망을 우상숭배 및 모세 율법에 대한 부주의한 태도로 말미암은 징벌로 보았다. 또 다른 하나의 종교적 관심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 주위에 있는 민족들의 어떠한 종교적 관습과도 절대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왕기서의 주제는 하나님께서는 왕과 민족이 언약을 지킬 때에 그들을 축복하시며, 그의 심판은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불가피하게 분명히 임하신다는 이것이다.(엑셀/신구약 강해설교대전)

3. 저자: 열왕기상은 주전 970-852년 사이의 기간을 다루며 열왕기하는 주전 852-560년 사이의 자료를 제공한다. 이 두 권의 책에는 그 저자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증거가 없으며 일부 유대인들과 기독교 교사들은 예레미야가 저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왕하 참조)

4. 특징: 저자는 자신의 역사 자료로 1)솔로몬의 행장(왕상11:41), 2)유다 왕 역대지략(왕상14:29) 및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왕상14:19)을 취하고 있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유다 왕들에 관한 역사 자료들은 이스라엘 왕들에 관한 역사 자료들과 결코 뒤섞여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위의 두 자료가 각기 분리된 별개의 문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문서들로부터의 인용된 구절들은 그러한 문서들이 열왕기서에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은 자료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일차적 자료의 저자들이 역대기서의 평행 어귀들에서 언급되어지고 있는데, 선지자 나단, 실로 사람 아히야 및 선견자 잇도(대하9:29), 선지자 스마야 및 잇도(대하12:15), 선지자 잇도(대하13:22), 선지자 이사야(대하26:22;32:32), 예후(왕상16:1)등이 그들이다. 이 자료들은 엄밀히 말해서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라 예언자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열왕의 행적에 관한 솔직한 기록을 얻는다. 어떠한 궁중 연대기의 편자도 여기에 기록된 바와 같은 다윗과 여로보암Ⅰ세의 범행을 감히 공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열왕기하 참조

6. 기록목적: 열왕기서는 사무엘서에서 이미 언급된 역사를 계속해서 선명하게 밝히려는 목적을 가지고 집필되었다(열왕기하 참조)

7. 핵심단어: 그의 아버지 다윗같이, 다윗(74), 여호와(215), 솔로몬(143), 여호와의 전(21), 유다(39), 이스라엘(171) 요절: 왕상 9:4, 5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1. 제목(명칭의 유래): 현재 열왕기상, 하로 알려진 이 책의 제목은 그 내용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열왕기상 참조

2. 중심내용: 열왕기상 참조

3. 저자: 열왕기상은 주전 970-852년 사이의 기간을 다루며 열왕기하는 주전 852-560년 사이의 자료를 제공한다. 열왕기하는 주전 560년경 여호야긴이 감금된지 37년만에 옥에서 풀려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고 있다. 이 책이 이 시기 이전에 완성되었을리는 없으며 또한 바벨론 포로귀환에 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빌론에서 귀환한 해인 주전 538년 이후에 완성되었을리도 없다. 이 책은 한 권으로 되어 있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계속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저작시기는 주전 560-538년 사이의 기간이 된다. 여호야긴이 옥에서 풀려난 사건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에게만 의미있는 일이었을 것이므로, 우리는 열왕기서가 바벨론 지역에서 살던 어떤 유대인 포로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권의 책에는 그 저자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증거가 없음. 일부 유대인들과 기독교 교사들은 예레미야가 저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4. 특징: 열왕기상 참조

5. 시대(역사적 배경): 이스라인 백성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역사편찬을 발전시킨 최초의 고대인들이었다. 앗수르, 바벨론 및 애굽 등의 국가들은 연대기를 기록하였으나 이방 민족 가운데서는 헷족속만이 유일하게 역사적 기록을 시도하였다. 다윗 시대에 애굽 세력은 쇠퇴하여고 앗수르는 미약하였고, 따라서 이스라엘의 양즉 국경은 모두 허약한 민족들과 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앗수르는 디글랏 빌레셀Ⅲ(왕하15:19에서는 '불'로 표기되어 있다, 주전745-727년) 치하에서 세력이 증대되었다. 주전 722년에 사마리아가 살만에셀과 사르곤의 공격으로 함락되었으며 그 후 산헤립 치하의 앗수르는 유다를 침략하여 많은 성읍들을 취하였으나 애굽의 후방공격 위협때문에 예루살렘의 탈취는 실패하였다. 에살핫돈과 아술바니발은 애굽에 대한 앗수르의 지배력을 증대시켰다. 요시야 시대에 바로느고는 갈그미스에서 바벨론을 대적하는 앗수르를 도우러 갔으나 이 두동맹군은 패배하고 말았다. 그 직후 느부갓네살은 팔레스틴을 침략하였는데 예루살렘에 대한 3차 공격에서 그 성읍을 약탈하고 멸망시켰으며, 백성들을 마지막 포로로 잡아갔다(주전586년)

6. 기록목적: 열왕기서는 사무엘서에서 이미 언급된 역사를 계속해서 선명하게 밝히려는 목적을 가지고 집필되었다. 열왕기서의 저자는 본서에서,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후손들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예언하셨던 말씀, 즉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삼하7:12-15)고 하신 그 말씀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을 밝히는 것이 열왕기서의 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열왕기서의 저자는 이러한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내용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윗이 행했던 인구 조사의 결과로 예루살렘에 내렸던 3일간의 온역의 재앙과 그에 대한 회개로 끝을 맺는 사무엘서와, 다윗이 노쇠했을 때의 이야기로 부터 시작되는 열왕기서 사이에는 상당한 기간 동안의 사건들이 생략된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이유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모두 그 순서에 따라 기록하는 것이 열왕기서 저자의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왕기서의 저자는 솔로몬 시대의 묘사를 위해 필요한 만큼만 다윗의 후기 시대를 기록했던 것이다. 우리는 열왕기서의 전체적인 내용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자손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친히 이루셨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때문에 열왕기서의 저자는 비록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라하더라도 본서의 저술 목적과 부합되지 않는 것이라면 모두 다 생략해 버렸던 것이다. (엑셀/ J.R. Lumby, D.D.)

7. 핵심단어: 주님의 눈앞에서; 하나님의 사람들; 불구하고; 그러나 주님의 말씀, 왕(321), 엘리야(28), 엘리사(81), 하나님의 사람(33). 아들(119)

요절: 왕하 17:18, 19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 유다도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의 세운 율례를 행하였으므로. 왕하 23:2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뺀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한 이 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1. 제목(명칭의 유래): 히브리 성경에서 역대상 하는 '더브레 하야밈' 즉 '당시의 사건들(문자적으로는 말씀들'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역대기는 열왕기 이후 백년이 지난 뒤에 비로서 기록되었고, 원래는 한 권의 책이었으나 주전 150년경에 만들어진 헬라어 역본에서 현재와 같이 두 권으로 구분되었다. 최초의 정경 배열에서 역대기는 구약성경의 맨 끝에 위치하였다. 그래서 눅11:51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첫번째 책에 있는 아벨(창4장)로부터 마지막 책에 있는 사가랴(대하24장)에 이르는 모든 순교자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히브리어 성경은 역대 상·하가 한 권으로 되어 있다. 히브리어 성경의 명칭은 「디브레 하야밈」으로, 그 의미는 「각 시대의 말씀들」임. 70인역의 명칭은 「파라레이포메논」으로, 그 의미는 「빠뜨린(생략된) 사건들」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2. 중심내용: 아담으로부터 사무엘까지의 계보를 포함시킴으로써 사람의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대한 완전한 연대기를 우리에게 주는 것은 「사람의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이심이 사람으로 하나님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써 인성 안에서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는 길을 예비하는 것임」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선민의 역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온 인류의 역사에 관한 문제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3. 저자: 서론적인 열개의 장(章)에 이어서 역대상은 주전 1010-970년에 까지의 사건들을 취급하고 있고, 역대하는 주전 970-538년 사이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역대기에는 역대기가 언제 누구에 의해 기록되었는지가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유대인들에게 포로에서 귀환하는 것을 허용한(대하36:22) 주전 538년 고레스 조서까지 이르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역대기의 계보에는 여고냐 왕의 손자인 스룹바벨이 언급되는데, (대상3:19) 이는 주전 538년의 귀환시에 유대인들을 인솔하였다. 또한 이 계보는 그의 두 손자들인 블라댜와 여사야를 통하여(대상3:21) 대략 주전 500년경 까지에 이르는 스룹바벨 가계의 개요를 보여준다. 이어서 여고냐 왕과의 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네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그러나 이들 중 마지막 사람인 스가랴(대상3:21)의 가계는 일곱명의 4대손들을 모두 밝히고 있다(대상3:24). 만일 스가냐가 주전 616년에 출생한 여고냐 왕과 동시대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그 후의 4대(代)는 우리에게 주전 500년경 이라는 시기를 다시한번 제시할텐데, 역대기의 내적 증거를 기초로 하여 추론할 수 있는 저작 시기는 아무리 빨라야 주전 500년경이 될 것이다. 히브리 전승은 에스라가 에스라서 뿐 아니라 역대기도 기록하였다고 단언한다. 올브라이트(William F.Albright)같은 현대의 학자도 이 두 책들이 동일한 문체 및 내용상의 형식 -이것은 자주 언급되는 계보들, 의식에 대한 강조 및 모세 율법에 충실함에서 나타난다 - 을 갖고 있다고(JBL, 40, pp.104-124) 주장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4.특징: 사무엘 상·하와 열왕기 상·하의 중심 관심은 하나님의 선민이었지만, 역대기에서는 온 인류임. 이를 위해서는 사무엘로부터 시작되는 계보가 아닌,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에 이르는 계보가 필요한데, 이것은 마태복음 1장에 제시된 계보가 아닌 누가복음 3장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계보와 일치함. 이것은 하나님의 체현으로서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택하신 한 민족을 위하실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인류를 위하신다는 강한 증거임. 하나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을 다루시는 몇몇 중요한 세부 사항들과 징계의 이유들을 우리에게 제시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사무엘 상·하와 열왕기 상·하에는 없는 것들임. 이로써 우리는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아브라함부터 사무엘까지, 그리고 왕권을 이끌어왔던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이 포로 됨에서 귀환하기까지 사람의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대한 완전한 역사를 가질 수 있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기(역사적 배경): 역대기에는 누가, 언제 기록했는지에ㅡ 관한 언급이 없다. 본문에는 B.C. 538년 반포된 고레스의 유대인 포로들의 귀국 허가 조서까지 기록되어 있다. (대하36:22). 역대기의 족보에는 B.C. 537년 유대인을 이끌고 귀국한 여고냐 왕의 손자 스룹바벨(대상3:17-19)과 B.C. 500년경의 인물들인 스룹바벨의 두 손자 블라댜와 여사야(대상3:21)까지 나타나 있다. 그 후에 여고냐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는 네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 중 마지막에 언급된 스가FI라는 인물의 가계는 그의 4대 손자 일곱 명의 이름까지 씌어있다(대상3:24). 그리고 스가FI가 B.C. 616년에 태어난 여고냐 왕과 동시대 인물이었다면 그 후 4세대가 지난 연대는 B.C. 500년 무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같이 성경에 나타난 내적 증거로 미루어 볼 때 본서의 기록 연대는 최소한 B.C.500년 이후일 것이다.

6. 저작목적: 대하참고

핵심단어: 아들(356), 족장(51), 자손(122), 다윗(155), 솔로몬(23), 여호와의 전(17) 요절29:12

 

제목, 중심내용, 저자, 특징 등은 역대상을 참조하기 바람

5. 시대(역사적 배경): 상권은 주전 1056년부터 1015년까지 사십 일년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열조의 기간을 포함하지 않은 것). 아마도 에스라가 포로 됨에서 귀환한 후 예루살렘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역대상 참고)

6. 기록목적: 모세의 율법을 확립하려 하는 에스라의 열정(스7:10)으로 인하여 그는 주전 458년에 바벨론에서 팔레스틴의 유대 공동체로 돌아왔다. 그는 성전 예배를 회복하였으며 (스7:19-23, 27;8:33, 34) 일부 유대인들이 이웃 이방인들과 맺은 통혼(通婚)을 제거하였다(스9-10장). 바사왕으로부터 에스라가 부여받은 폭넓은 권한에 비추어(스7:18,25) 보건대, 그는 예루살렘 성벽의 중건을 시작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스4:8-16). 주전 445년에 느헤미야가 에스라에 가세함에 따라 비로서 성벽이 실제로 중건되었으며(스4:17-23;느6:15, 16) 모세의 율법이 충분히 인식되기에 이르렀다(느8장). 역대기저자의 목적은 이와 같은 신정(神政)의 재건을 고무시키려는 것이었다. 창세기, 사무엘서 및 열왕기서에 기록된 역사들과 비교해 볼 때 역대기는 민족적 종교적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보다 상세한 계보를 싣고 있다(대상1-9장). 합당한 제사장직과 예배 의식을 보존하려는 목적 때문에 역대기는 모세의 율법, 성전(대상22장), 법궤, 레위인 그리고 성전에서 노래부르는 자들(대상 13,15,16장)에 더욱 더 많은 강조점을 두고 있으며 반면에 왕들의 자세한 행적(삼하9장:왕상3:16-28)과 선지자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 (왕상 17-22:40;왕하 1:1-8:15)을 생략하고 있다. 제사장직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사무엘서와 열왕기서가 도덕적인 강조로 인하여 히브리 정경의 둘째 부분인 선지서들로 분류된 것과는 달리 이 책이 셋째 부분(비예언서)에 위치하게된 것의 설명이 될 것이다. 끝으로, 포로후기의 역경으로 환멸을 느꼈던 자들을 격려하려한 이 책의 목표는 이전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유다의 승리가 되풀이하여 이야기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대하 13,14,20,25장). 고대 우가릿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출애굽할 당시 가나안에서 행해지던 정교한 의식의 진정성을 입증하고 있다(J.W. Jack, 라스삼라 서판들: 구약성경과 서판들과의 관계, P29이하). 올브라이트(Alb-right)는 역대기에만 유일하게 언급되는 수많은 역사적 진술들이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입증되어지는 것을 주목하였다(BASOR, 100(1945).P 18). 역대기가 유대 역사의 밝은 면을 강조하면서도 실패의 역사를 부인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이 책은 더 고무적인 사건인 솔로몬의 두번째 기름부음 받은 일 (대상29:22)이나 더 모범이 되는 다윗의 처음 길(대하17:3)를 강조한다. 열왕기서의 예언자적인 심판과 역대기서의 제사장적인 소망은 모두 다 참되고도 필요한 것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① 포로 되었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백성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알도록 하고 다시금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섬기도록 하기 위한 것

② 레위인의 직무와 제사장의 반차와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과 제사와 절기에 대해서 백성들로 율법 책의 기재를 사모하도록 매우 분명하게 함

③ 열왕의 흥망성쇠와 원인과,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친근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는 반드시 축복을 받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는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함

④ 이스라엘 민족의 계보에 대하여서도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을 하나님이 만민 중에서 선택하신 것을 회고하도록 매우 상세하게 기록함

7. 핵심단어: 여호와를 찾으라;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 여호와(311), 솔로몬(75), 범죄(16),

요절 대하 1:1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 가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사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 대하 20:20下 ......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1. 제목(명칭의 유래): 에스라서의 명칭은 이 책의 중심인물에 따라 붙여진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책을 느헤미야서와 한 책으로 생각해 왔으나(탈무드, 마소라 본문 요세푸스 참조), 에스라 2장이 느헤미야7장에 반복된 것으로 보아 두 책은 원래 별개의 책이었다. 성경 중에서 포로 된 이후의 책은 모두 8권-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에스겔, 다니엘, 학개, 스가랴, 말라기-인데, 그 중에서 제 1권이 에스라임.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서와의 내용상 긴밀한 관계 때문에 두 권을 한 권의 책으로 간주함. 70인역에서는 에스라를 한 권의 책으로 독립시켜 「에스드라스」로 칭함. 본서의 명칭은 본서의 저자인 동시에 중심 인물로서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재건에 매진하는(7-10장)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이며 제사장인 「에스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엑셀, 강해설교대전)

2. 중심내용: 바벨론 포로 후의 유다와 예루살렘의 재건을 기록하고 있다.

3 저자: 비록 저자가 명시되지 않고 화자(話者)가 1인칭과 3인칭으로 나타나지만, 에스라가 직접 여러 칙령과 서한, 계보들을 기본 자료로 사용하여 이 책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4. 특징: 에스라는 서기관이요, 가장 학식있는 율법 해석자며, 무엇보다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을 "성경의 백성'으로 형성시킨 인물이었다. 심지어 옛 책들이 모두 분실되자 에스라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그것들을 모두 다시 저술했다는 전승도 있다. 이 때문에 에스라의 예루살렘 귀환과 이스라엘의 신앙생활을 재건하는데 그가 지도적 역할을 한 것은 주전 444년경 또는 아닥사스다(404-358 B.C.)가 선택된 해에 근거하여 그보다 늦은 주전398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증거는 전자의 연대를 옹호하고 있으며, 이 책에 기록된 역사는 포로의 선발대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기 시작한 (주전 538년) 약100년 전에 시작된다. 이 책은 포로 됨으로부터 이스라엘 자손이 귀환하는 것을 강조함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가서 결코 돌아올 수 없었다. 그들이 민족적 실체로서 계속 존재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1)북왕국에는 유다와는 달리 돌과 흙으로 된 것이든 마음속에 있는 것에든 성전이 없었다. (2)이스라엘에는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된 후 왕족 생존자가 없었다. 여하튼 그들은 그 이전에 이미 다윗 혈통을 잃었으며, 이로 인하여 영원한 왕국의 보좌 위에 "다윗의 아들'이 앉을 것이라는 위대한 예언적 이상(理想)이 말살되었다. (3)앗수르는 대부분의 백성들을 북왕국 밖으로 몰아내고 이방인을 그 땅에 이주시켰다. 이로 인해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 사인에 잡혼이 이루어지고,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로부터 그처럼 증오를 받던 혼혈족인 사마리아인이 나타나게 되었다. (4)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앗수르에 있던 이스라엘 포로들 중에는 그들의 종교적,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할만한 계속적인 종교적 지도력이나 예배 중심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고대 중동의 떠돌이 민족들 속으로 사라졌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열 지파"가 되었다. 그러나 유다 왕국의 포로 역사는 이와 달랐다.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 도성을 마지막으로 점령하고 불사른 것은 앗수르가 아니라 바벨론이었고, 정복민에 대한 바벨론의 정책은 매우 달랐다. (1)바벨론은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루고 거주하도록 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을 섬기고, 그들 자신의 학교를 운영하며, 그들의 민족적, 종교적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2)유다도 마찬가지로 다윗의 혈통을 왕으로 삼았고 다윗의 한 후손이 백성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갔다. 이것은 다윗의 후손이 거기에 있어 다윗 왕조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간직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3)바벨론은 앗수르가 사마리아에서 행했던 것과 같이 고의로 유대의 거주민을 교체시키지는 않았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언제나 유대인들이 남아 있었고, 바벨론의 포로들도 거룩한 시온산 위에 폐허로 남아있는 거룩한 도성과 영광스런 성전을 결코 잊지 않았다. (4)가장 중요한 것은 유다에서 끌려간 포로들은 율법 책을 보존하고 가르쳤던 서기관과 제사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포로에서 살아남은 백성은 "성경의 백성"이 되었고, 바벨론께서 귀환한(주전 538년경) 해에 그들은 성경을 가르치는데에 종교생활의 중심을 두는 민족이 되었다. (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이 책의 내용은 주전 536년부터 457년까지 약 팔십 년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6. 기록목적: 기도의 능력(9장, 느9장)과 하나님 말씀의 능력(느8장)을 확인하고 다윗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시며 다윗의 아들 메시야가 언젠가는 예루살렘에서 그 위에 앉아서 통치할 것임을 교훈하기 위해서이다.

7. 핵심내용: 올라옴, 예루살렘(43), 조서(18), 여호와의 집,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전(10), 건축(25)

요절6:21, 22;2:1;7:10

 

 

 

 

1. 제목(명칭의 유래):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서와의 내용상 긴밀한 관계 때문에 두 권을 한 권의 책 으로 간주함 70인역에서는 본서를 에스라서와 구분하여 「느헤미야」라 칭하고 있다.

2. 중심내용: 예루살렘 성은 그 안에 있던 하나님의 전의 보호와 안전이 되었으며, 이는 땅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와 가정인 그분의 집이, 그분의 경륜을 수행하고 그분의 행정을 위해 이 땅에서 그분의 권익을 보호하는 영역이 되는 그분의 왕국이 세워질 것을 필요로 함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전의 재건축은 「타락한 교회의 회복」을 예표하며,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축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왕국을 회복하심」을 예표한며 그분의 집을 건축하시는 것과 왕국을 건축하시는 것을병행하신다.(마 16:18-19). 이 땅 위의 하나님의 집은 이를 보호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기 위한 그분의 왕국을 필요로 하신다. 이 책 전체는 그가 시험과 대적의 공격 가운데서 위로이신 하나님을 신뢰함에 관한 기록이다.

3. 저자: 느헤미야 8장 1-9와 12장 26절에서 보는바대로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같은 시대의 인물이다. 아마 말라기 선지자는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있는 동안 예언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책망한 많은 죄악들이 느헤미야서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저자본문의 여러 곳이 1인칭 단수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 책의 저자가 느헤미야(「여호와의 위로」를 의미함)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가 3인칭으로 언급되는 곳도 있으나(8:9, 10:1, 12:26, 47) 이것은 그가 이 책의 저자라는 것과 관련해서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느헤미야의 때"를 회상하는 12장 26절과 47절은 모두 어떤 다른 사람들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 느헤미야는 총독 자리에서 물러나 지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이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역사성은 요하난을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으로(12:22, 23) 느헤미야의 대적인 산발랏의 아들들을 주전408년에 사마리아의 총독으로 기록하고 있는 엘리판틴 파피루스의 발견으로 확증되었다. 우리는 또한 이 파피루스에서 바고아스가 총독 자리에 오른 것으로 언급되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그 이전에 유다 총독을 물러났음을 알 수 있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4. 특징: 느헤미야는 용기있고 지략있는 지도자인 것 같다. 그는 자기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사 왕실의 안락한 자리를 버리고 귀향하는 포로들과 함께 성도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며 고난을 받을 수 있었다. 느헤미야의 두 가지 큰 관심사는 율법에 대한 충성과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이었다. 그는 매우 온화하고 인정 있는 사람이었으나 이방인과의 결혼 문제에 있어서만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는 엄격한 태도를 지켰다.

5. 시기(역사적 배경): 이 책의 내용은 주전 446년부터 434년까지 약 십 이 년의 기간을 다루고 있음. 느헤미야가 술잔을 따라 올리는 관원으로 섬겼던 아닥사스다 1세는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이었다. 부림절(에 9:20-32)은 주전 474년 3월 8일에 제정되었는데, 이것은 아닥사스다 1세가 왕위에 오르기 8년 전의 일이었다. 주전 457년 봄에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도움으로 유대인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다음 해 봄에 그는 이방 여인과 결혼한 유대인에 대한 조사를 끝마쳤다. 에스라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 신앙부흥운동 중 하나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것이었다. 이것이 르훔과 심새의 분노를 야기시켜, 그들로 하여금 아닥사스다 왕에게 성전 건축을 반대하는 고소장을 올리게 했다(스4:7-16). 왕은 다시 조서를 내릴 때까지 성전건축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스4:21). 르훔과 심새는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력으로 건축을 중지시키고 성벽을 파리하며 성문을 불살라 버렸다(스 4:23; 느1:3). 느헤미야가 충격을 받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바로 이 뜻밖의 파괴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가 바벨론에서 돌아와 주전 432년이래 죄악에 물든 성도 예루살렘과 각 지방을 정화시켰던 주전 445년 12월부터 주전 420년경까지의 약 20년간을 다루고 있다(엑셀, 강해설교대전).

6. 기록목적: 거룩한 성읍에 백성들을 정착시키기 위하여 성벽을 완공하고, 백성사이에 있는 악습을 타파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려 하고 있다.

7. 핵심단어: 건축(16) 성벽(8), 기억, 기도, 사역, 역사, 긍휼

요절 느 2:17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느 6:3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1. 제목(명칭의 유래): 이 책의 명칭은 그 주인공 에스더를 따라 붙여졌는데 에스더는 "별" 을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이다. 그녀의 히브리 이름은 "도금양"을 의미하는 하닷사이었다(2:7참조). 70인역의 명칭 역시 「에스데일」로 히브리어 성경에 근거하여 붙였다.

2. 중심내용: 이 책은 이스라엘의 숨어 계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흩어져 있는 그분의 억압받는 선민들을 비밀하게 돌보시며 또한 그분의 핍박받는 선민들을 포로 됨 가운데서 공개적으로 구원하시는가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음.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그 선민으로 택하신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게 하신 후, 숨어 계신 하나님이 되셔서 은밀하게 그들을 돌보시며 비밀한 중에 공개적으로 그들을 구원하셨다(사 45:15).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4장 3절과 16절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마땅히 언급되어야 하는 경우에도 그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3.저자: 이 책은 아하수에로 왕의(486-465 B.C)통치를 과거시제로 말한 것으로 보아(10:2) 주전465년 이후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저자가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기 동안 일어난 사건들과 수산궁 (주전435년에 화재로 소실됨)의 장식에 관하여 상세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의 저작시기는 아닥사스다1세 치세 (465-424 B.C)이후는 아니다. 요세푸는 모르드개가 이 책을 기록하였다고 생각했지만, 10:2,3절은 이것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 기록된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바사에 살았으며, 메대와 바사 왕들의 공신적 역대기에 접할 수 있었던 유대인임에 틀림없다(2:23;9:20;10:2). 필경 모르드개일 것이다(9:20, 23).

4. 특징: 수세기 동안 주석가들은 이 책의 애매한 윤리 기준을 공격해 왔다. 여기에는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으며, 신약성경에서는 이 책이 한번도 인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유대인의 적들을 학살한 사건이 자랑스럽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단호한 심판이다. 증오의 대상인 모르드개를 없애기 위해 교수대를 준비했던 하만이 바로 그 교수대에 매달렸다. 이 책은 원수를 향한 증오로 인해 구약의 일부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충분히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심오하게 계시하는 다른 책들과 이 책을 같은 관점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이 책이 B.C. 2세기 중엽에 널리 읽혀진 것으로 보아 이 책의 가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무렵 유대인들은 견딜 수 없는 압제에 시달려 거의 절망 상태에 있었다. 이와같은 시기에 에스더와 같은 책들은 그들의 운명이 원수들에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 책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왕국을 회복하실 것을 믿게 되었다. 이 책은 복잡한 구성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드라마로 2,000년 이상이나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여주인공 에스더는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건 희생적 인물의 상징이 되었다. 영적인 면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고찰할 때 원수들의 손에서 유대인들이 구출된 것을 기념하는 부림절은 매우 중요하다. 에스더서는 이 유대인들의 즐거운 민간 축제의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는데 부림절의 행사에 관한 기록은 마카비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엑셀, 강해설교대전).

5.시대(역사적 배경): 이 책의 내용은 주전 521년부터 509년까지 십 이 년 동안을 다루고 있다. 스6:15에 따르면, 제 2성전은 다리오 1세 6년인 주전 515년에 완성되었다. 다리오1세의 아들 아하수에로가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푼 것'은(에 1:3) 이로부터 정확히 32년 후였다. 이 책의 사건들은 아하수에로가 큰 잔치를 베푼 때로부터 (484 B.C.) 부림절까지 (474 B.C.) 10년간의 이야기이다. 첫 부림절 이후 16년이 지났을 때 에스라는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스7:9). 따라서 이 책의 사건들은 에스라 6, 7장의 기사와 일치한다.

6.기록목적: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가를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다. 즉 멀리 떨어진 나라에 있어서조차 하나님의 백성은 여전히 그분의 손 안에서 보호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약속의 땅이 아닌 머나먼 이국 땅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에드워드영 구약총론, p.349)

7.핵심단어: 유대인(51);잔치(20), 에스더(47), 모르드개(50)

요절: 에 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1. 제목(명칭의 유래): 본서의 명칭이며 그 주인공의 이름 '이욥'(iyuob)을 주전 2000년에 이미 성서 외의 사본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명칭의 단음절 표기인 '욥'은 벌게이트 성서 (즉, 라틴어 성서)에서 유래되었다. 그 명칭은 「미움을 받다」 또는 「핍박을 받다」를 의미함 - 이는 욥이 하나님의 원수 사탄에게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를 나타내 준다.

2. 중심내용: 본서는 공의의 문제를 매개로 하여 사람들이 주권자이실 여호와께 전적으로 헌신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언약의 길과 초월자이신 창조주에 대한 헌신의 길을 지혜의 길과 동일시하고 있다.

3. 저자: 본서의 저자에 대한 논의는 현재 형태대로의 책의 통일성에 관하여 비평가들이 의혹을 가짐으로 복잡해졌다. 그 증거가 근본적으로는 표면상 드러나지 않는데, 이는 비록 70인역 (LXX)에 실린 본문 내용이 마소라 본문(M aso-retic text)보다 5분의 1가량 짧다 하더라도 생략된 부분은 분명히 후대의 첨가일 것이기 때문이다. 첨가물로 가장 널리 인정되고 있는 부분들은 서언 및 결언, 지혜에 관한 시(28장), 엘리후 자료(32-37장), 여호와의 강화의 일부 또는 전부(38-41장)이다. 또한 24-27장은 심히 뒤섞여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이 완전한 것이라는 강력한 주장은 전체 구조의 통일성 및 각 부분들의 상호 관계에서 볼 수 있다..

4. 특징: 본서의 본론은 시가(詩歌)이며, 서론 및 결론은 긴 산문이다. 이러한 문학 형식은 고대 문학의 다른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잠언, 전도서및 아가와 함께 욥기는 지혜서의 범주에 속한다. 욥기와 여러가지의 성서 외적인 지혜 문학작품들 사이에는 형식상 많은 유사점들이 있는데, 대화체 형식, 그리고 고통의 문제와 죽음에 대한 갈망과 같은 사상들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는 그 본질적인 교훈에 있어서 비성서적인 지혜문학과 완전히 다른데, 그것은 본서가 구원에 관한 계시라는 독특한 메시지를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성의 문제는 문학 형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욥은 분명히 역사상의 인물이었다 (겔14:14,20 및 약5:11을 참조하라). 그의 실제 체험은 사실 본서에 기록된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엄한 시가는 본서의 내용을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다루도록 유도하고 있다. 더구나 서문과 결어의 반(反) 시적인 긴 형식은 몇몇 부분들이 자유롭고도 비유적으로 취급되었음을 시사한다.

5.시대(역사적 배경): 욥의 유목 생활(1:3)과 그의 자녀들을 위해 번제를 드린 방식에 따르면, 이 책은 기원전 약 2000 년 경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시대에 쓰여졌을 것이다(1:5, 창 22:13, 31:54). 이 책의 내용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대략 1년을 넘지 못하며 장소는 에돔에 속하며(애 4:21) 아라비아 광야 서쪽인 우스이다. 욥기의 저작 시기는 정확히 결정하기 어렵다. 본서의 기록시기가 서술되어 있는 역사의 시기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욥은 고대의 족장시대에 살았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욥의 장수, 아브라함의 언약의 범위 밖에서(초자연적 계시를 따른) 참된 종교의 실천, 그리고 본서에 나타난 고대의 경제 및 정치의 발달에 주목하고있다. 본서의 저작 시기에 관한 문제는 족장 욥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스라엘인 저자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전승을 정경인 욥기로 옮기기 이전에,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구전이나 문자로 전해졌는가 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비평가들은 저작시기를 포로기나 또는 포로후기로 보는데 그들의 이러한 판단은 그들이 욥기, 이사야, 예레미야의 상호 의존성을 해석하는 방법과 이사야서의 적절한 본문에 대해 그들이 추정한 연대의 영향을 받았다. 저작시기에 관한 가장 극단적인 견해 (주전 2세기경)는 사해 사본에 포함되어 있는 요반 사본(Joban mamcscripts)의 단편, 특히 히브리 사본의 단편들과 결정적으로 배치되는 듯하다. 본서의 장엄함과 자연스러움, 그리고 계시의 발달 초기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감정을 깊이 공감하고 재 창조한 것은 저작시기가 바벨론 포로 훨씬 이전 즉 선지자들이 교리적, 특히 종말론적인 면에서 기여하기 전임을 보여준다. 많은 보수주의 학자들은 저작시기를 성서 지혜문학의 황금기였던 솔로몬 시대로 보는 견해에 찬성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기록목적: 이 책은 공의의 문제를 중심으로 천지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할 것을 가르친다. 언약을 지키며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초월자이신 창조주께 헌신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지혜인 것을 보여 준다. 본서는 인간이 수 세기를 두고 고민해 온 문제, 즉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이 계시는데 어째서 때로 악인이 득세하고 선한 자가 고통을 당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욥 자신의 공의(Self-righteousness)에 대한 자만심을 없애고 오직 하나님을 완전히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놀라운 믿음의 승리는 미래에 구속자(The Redeemer)께서 오셔서 자신을 변호해 주시리라는 희망으로 더욱 고조된다. 한마디로 고난에 대처하는 인간의 신앙의 태도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7.핵심단어: 비통, 저주, 부르짖어 울다, 죄, 사단, 징계, 어떻게, 어찌하여, 완전한, 의로운, 정당한, 지혜

요절23:10

1. 제목(명칭의 유래): 본서는 150 편의 시가 있으므로 시편으로 불리움. 히브리어 원명은 「테힐름(Tehillim)」으로 그 뜻은 「찬미의 시」임. 70인역에서는 「사모이스(Psalmois)]라고 명했는데, 그 뜻은 「노래 부를 수 있는 곡조가 있는 시」 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각종 경배에서 이 시들을 찬양할 수 있는 시가로 사용했다. 시편을 의미하는 영어의 'Psalms'는 수집물에 프살모이(Psalmoi)라는 제목을 붙인 70인 역에서 유래하였다. 주요 성서 사본들의 하나인 알렉산드라와 사본(Coder Alexandrinus)은 헬라어 프살테리온(Psalterion)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역시 시편을 뜻하는 영어 'Psalter'의 어원이 되었다. 그러나 히브리 성경에서는 '찬양들'을 뜻하는 트힐림(Tehillim)이 제목으로 사용된다. 랍비들의 문헌에서도 이와 동일한 개념이 세페르 트힐림 (Sepor Tehillim)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찬양의 책'을 의미한다. 몇몇 시편들은 그것들이 성가대와 예배자들에 의해 찬송으로 사용된 형적을 보여준다. 수집물 즉 시편 전체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열망하던 바가 무엇인가를 증언한다.

2. 중심내용: 시편의 시들은 주제별로 분류되어 있지 않으며 그 주제들은 인생 경험의 전반에 걸쳐있는데 주된 주제 다섯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음. 2)감사의 필요를 인식함. 3)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함. 4)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역할에 대하여 회상함. 5)대적의 손에서 건지심을 깨달음

궁켈(Gunkel)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주요 형태로 주장한다. 1)찬양 시. 2)민족적 애가. 3)(메시야의 시를 포함한) 제왕시. 4)개인적 애가. 5)개인의 감사. 시편은 그 안에서,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가 계시되고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성인 교회가 예표되는, 경건한 성도들의 체험에서 오는 감상과 감명의 표현이요,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찬양의 표현이다. 그러나 존 H. 왈턴의 “구약의 연대기 도표”에서는 11가지의 분류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개인 비탄시와 민족 비탄시를 합쳐서 열 가지로 분류했다.

3. 저자: 시편의 제목들에서 때로는 저자들이, 때로는 관계가 강조된다. 또는 시편의 저작 동기가 지적되기도 한다. 어떤 제목들은 공공예배라는 지정된 목적에 시편이 사용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바람직한 음악 효과나 악기 사용을 지시해주는 제목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그 시의 근본적인 성격을 1) 노래로 불리우는 찬송(미즈모르, mizmor) 2)노래 (쉬르, shir) 3)성가(마스길, maskil). 그리고 4)애가(믹담, miktam)등으로 묘사하고 있는 제목들도 있다. 서른 네 편을 제외한 모든 시편들은 몇가지 형태의 제목들을 표제어로 사용하고 있다. 제목이 있는 시편들 가운데 일흔 세 편이 'LeDavid'라는 제명(題名)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말이 한글판 개역 성경 뿐 아니라 영어 성경인 AV,RV, ASV,RSV,및 NASB에서 공(公)히 '다윗의 시'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용례로는 '다윗과 관련된', '다윗을 위해' '다윗의 문체로' 또는 '다윗에 의해 '등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제목들은, 다윗에 대한 언급이든 아니면 기타의 다른 누구에 대한 언급이든, 반드시 저자를 지칭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칠십인역(LXX) 성경은 히브리 성경에서 저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열 다섯 편의 시편에 다윗의 이름을 첨가하고 있다. 또한 다윗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일흔 세 편(칠십인 역에서는 여든 여덟 편)외에, 열 두 편은 아삽과, 열 두 편은 고라의 자손들과, 두 편은 솔로몬과 두 편은 각각 에단 및 모세와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제목들은, 원전(原典)에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고대의 전승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것들이 원전의 일부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들이 시편 입문을 기록하고자 하는 인간의 첫 시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4. 특징: 성경의 모든 책들 가운데 시편만큼 다양한 종교적 체험이 기록된 것은 없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정신이 신앙에 관한 수많은 표현들을 통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시편에는 과거 이스라엘의 통찰이 예배와 결합되어 있고, 따라서 그것은 영원성을 갖게 된다. 또한 각 개개인들의 경험이 여기에서는 이스라엘의 공동 생활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책에는 보편성이 있는데, 이것은 수많은 역사의 단계들과 다양한 생활 환경 속에서 겪는 인간의 영적 체험들 이 복합적으로 표현될 때에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체험들은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감정으로 응답하려는 그들의 고유한 욕구에 의해 하나로 결합되었다. 모든 형태의 종교적 경험이 오늘날의 모진 일상생활속에 반영되며 현대의 신자들에게 투영된다. 영원성으로 인하여 이 책은 역사의 어느 시대에나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시편은, 첫째, 이스라엘의 전(全)역사에 걸친 민족 신앙의 산 증거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는 고난과 투쟁을 반영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이 위기의 시대에 있어 의심에서 확신에 이르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절망을 극복하는 것을 항상 지향하고 있다. 둘째, 시편은 예수님의 사역을 위한 중요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자라난 유대 가정에서 기도하실 때에 시편을 배우셨다. 예수님이 세례(침례)받으실 때에 시편의 언어들로 예수님의 사역이 진술되었다.

 

아삽: 50, 73-83(12), 고라자손의 시편: 42-49, 84, 85, 88(1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자들이 사용: 120-134 할렐루야 시편: 105-107; 111-114; 116-118; 135, 146-150

시편에 다윗의 이름으로 서명된 시는 모두 73편임. 서명되지 않은 시도 많음 - 2편(행 4:25), 95편(히 4:7), 96편(대상 16:23-33), 105편(대상 16:8- 22) 등. 기타 저자로는 아삽이 12편, 헤만이 1편, 에단이 1편, 고라의 아들들이 10편, 솔로몬이 2편, 모세가 1편, 이름이 없는 것 50편(다윗의 이름이 서명되지 않은 것 포함)

십자가 상에서 최후를 맞으셨을 때에도 예수님의 마음에 떠오른 것은 시편이었다. 신약 성경에서 시편보다 더 빈번하게 인용된 구약의 책은 없다. 세째, 시편은 예배의 필수 요소임이 입증되어 왔으며, 전세계의 성도들은 예배에서 하나님과의 개인적 교제를 할 때 그것의 도움을 받아왔다. 시편은 간구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체험을 풍부하게 해 주며 근본적인 헌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끝으로, 시편은 모든 세대에 계속해서 전해 내려 온 찬송가집이다. 이 시편처럼 오랜 세월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 찬송가집은 없었다.

1) 시편에 있는 음악상, 시가상의 전문적 용어

①셀라(3:2) : 잠깐 쉬다, 잠깐 멈추다의 뜻. ② 유랑가(7편 해석) : 위험, 곤고, 급난 중의 큰 외침을 가리킴. ③ 영장(4편 해석) : 가창 무리를 인도하는 사람, 즉 아삽, 헤만, 여두둔 등을 가리킴. ④ 깃딧 악기(8편 해석) : 블레셋 사람의 일종의 악기로서 아마 다윗이 깃딧으로 도망할 때 사용했을 것임. ⑤ 뭇랍벤(9편 해석) : 곡명으로서 「아들의 죽음」이라는 뜻임 - 이 곡은 아마도 다윗이 사무엘 하 12:20의 체험 가운데서 썼을 것임. ⑥ 믹담(16편 해석) : 기도, 묵상을 가리킴. ⑦ 아얠렛사할(22편 해석) : 곡명으로서 개들에 의해 에워싸인(22:16) 그리스도를 예표함. ⑧ 백합화(소산님, 45편 원문 직역) : 곡명으로서 백합화의 뜻은 「순결」, 「그윽함」, 「사랑스러움」 등을 나타내며 흙탕물 속에서 자라지만 오염되지 않으므로 주님의 품성을 잘 나타냄. ⑨ 알라못(46편 해석) : 곡이 여자의 목소리처럼 높은 것을 가리킴. ⑩ 마할랏(53편 해석) : 슬프고 병든 곡조를 가리킴. ⑪ 요낫 엘렘 르호김(56편 해석) : 곡명으로서 또한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마치 먼 곳에서 온 지저귀지 않는 비둘기와 같음을 가리킴. ⑫ 알다스헷(57편 해석) : 곡명으로서 이것은 거의가 흩어진 백성이 대환난 중에 기도와 위태로움 중에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 보호를 구하고 「소멸되지 않기」를 구하는 것을 예표함. ⑬ 수산에둣(60편 해석) : 여기서의 「간증」(원문 직역)은 60편 6절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보증을 가리킴. ⑭ 마할랏르안놋(88편 해석) : 곡명으로서 그 뜻은 고통스러운 질병임. ⑮ 상행시 혹은 계단을 오르는 시는 이스라엘 사람이 절기에 참여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는 도중 부르는 노래를 가리킴

5. 시대(역사적 배경): 저작 연대를 정확히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시편의 편집 책임자들은 당대(當代)에 사용할 찬송가집(集)을 마련키 위해 애를 썼다. 압박과 고난의 시대에 그들은 당시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과거의 활력을 재현하려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수의 시편들이 그 본래의 형태보다 더 늦은 시기의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스나이드(N.H.Snaith)는 '이십세기 성경 주석(T-wentieth Century Bible Commentary)'의 P 235에서 "바벨론 포로기 이전이나 이후에 나타나는 시편은 거의 없으며 몇몇 시편들은 그 저작 연대에 있어 일천년 이상까지 차이가 나는 요소들을 내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학자들은 대다수의 시편들이 마카비 시대에 씌여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추세는 이보다 이른 시기로 보는 것이다. '제 2성전의 찬송과 기도 집(集)이라는 표현은 수집된 시편 전체에 아직까지도 적용할 수 있는데 그것은 포로기 이후에 최종 편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양의 시편이 포로기 이전의 작품이며 몇가지 요소들은 그 기원이 다윗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초기 및 후기의 작품을 이와 같이 인정한다면 시편은 선택된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응답한 것의 전(全) 역사를 기록한 것이기에, 그것은 더욱 더 중요한 가치를 띠게 된다. 본서의 내용에 포함된 시간은 매우 오랜 기간이기 때문에 쉽게 계산할 수 없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 기록목적: 시편을 한 권의 책으로 본다면 가장 분량이 많고, 가장 오랜 기간에,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하여 쓴 글이라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기도와 찬양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 정경으로 남겨놓으신 것 같다.

7. 핵심단어: 시편을 좀더 세밀하게 분류하자면 감사 예배시, 찬양시, 비탄시, 민족 애가시, 신정시, 시온시, 참회시, 저주시, 메시야 예언시, 지혜시 등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각 시편마다 주제와 핵심단어와 중요성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마인드 맵은 주제별로, 일반도표로는 각 권별로 분류 편집하였다.

시편의 명칭

시편의 명칭으로 신약에서 언급하고 있는 제목은 ‘시편(Book of Psalms)'인데, 이 명칭은 모든 역본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눅20:42;행1:20). 혹은 집합적인 의미로 ’시편집(The Psalter)‘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헬라어 델타( delta)와 같은 모양으로 생겼으며 하프를 연주하는 방식처럼 비파(Psaltery)라는 나무로 만든 관현악기에서 부터 유래한 명칭이다(왕상10:12

기도

시편 전체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일부분에만 적용될 수 있는 이름으로서 ‘테필롯(The philloth)이란 명칭이 있는데, 이 말은 “기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편 72편 마지막 절은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시편 제 2권의 모든 시편들을 기도라는 제목으로 취급하려고 하는 것 같다. 또한 그 뒤에 나오는 시편 중에서도 86편, 90편, 102편, 117편 등이 ‘기도’로 불려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실 이 ‘기도’라고 하는 명칭은 대부분의 시편들이 갖고 있는 내용으로 보아 적합한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비록 시편 1편, 2편, 33편, 37편 등에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간구와 탄원을 포함하고 있는 다른 많은 시편들도, 전혀 기도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있다 해도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의 눈을 가리켜 기도라고 할 수 있다고 볼 때에, 우리는 모든 시편을 가리켜 기도라 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시편의 참된 명칭을 ‘찬양과 기도’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명칭은 우리에게 시편이 과연 어떠한 글인지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기도와 간구를 드릴 수 있게 할 것이며, 하나님께로 향한 우리의 진정한 소원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해줄 것이다(빌4:6). (Bishop Perowne.)

 

각 시의 표제문

각 시 위에 있는 표제문에는 저자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거나 때로는 암시 정도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각 시편이 쓰여진 동기가 적혀 있으며, 공적제사를 위한 용도를 밝히고 있는 것도 있다. 한편 표제 중 일부는 음악 효과나 배경의 요구를 지시하고 있으며, 그 시의 기본 성격(미스올 : 노래를 위한 가사문, 쉴 : 노래, 마스길 : 선곡집 , 믹담 : 애가)등을 나타내는 표제도 있다. 다시 말하여 각 시의 표제문은 첫째로 그 시의 형태를 지칭하는 기술적 명칭, 둘째로 음악 용어, 셋째로 찬양의 선율, 넷째로 전례의 표기, 다섯째로 역사적 사실 중 하나 또는 일부의 내용을 포함한다. 이 표제문은 히브리어 원문의 첫절에 상응하는 것으로 34편을 제외한 모든 시의 서두에 나와 있다. 물론 표제들은 후대에 와서 편집 과정 중에 붙여진 것이지만 그 역사적 내용은 정확하다.

가장 많이 사용된 기술적 용어는 ‘셀라’와 ‘영장으로’라는 말이다. 시편에서 71회, 하박국 3장에서 3회 사용된 ‘셀라’란 말은 아마도 반주부의 막간이나 변화를 알리는 음악적 표기일 것이다. ‘영장(노래 지휘자)으로’라는 말은 55편의 시와 하박국 3:19에서 볼 수 있는데, 특별한 기회에 사용할 수도 있도록 영장을 위해 준비된 시의 모음을 가리킨다.

 

히브리 시의 특성

히브리 시는 정교한 예술적 기교보다는 오히려 순수한 감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히브리어 자체가 회화적인 언어이므로 각 단어는 시각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히브리어의 원형은 주로 시각적인 행위나 상태를 묘사하는 반면, 그 다양한 용법은 풍부한 상상력을 갖게 한다. 히브리어의 이런 특성은 타오르는 종교적 정열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1. 다른 많은 서구의 시들과는 달리 히브리 시는 음악적 효과를 위하여 운이나 운율을 사용하지 않고 주로 리듬과 대귀법에 의존하고 있다. 아이젤른(F.C. Eiselen)박사는 “리듬은 특수한 음운 체제의 조화된 반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악센트가 조화를 이루며 반복됨으로써 리듬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히브리 시에는 음절이나 강세상으로 어떤 기계적인 규칙성을 지킨 흔적이 없다. 오히려 리듬 효과는 강세 음절과 무강세 음절의 균형 수에 의지하지 않고 중요한 단어 자체를 강조함으로써 얻어진다. 히브리 시의 발성은 단순하지만 부드럽게 높낮이를 되풀이하면서 잔잔한 위로와 비탄, 또는 힘찬 격려 등 여러 가지 벅찬 감동을 묘사한다.

2. 히브리 시의 두 번째 특징은 대귀법이다. 시인이 한 사상을 표현한 후 반복, 변형, 대조의 방법으로 주제를 강조한다. 대귀법 중 시편에 자주 사용된 형태는 다음과 같다.

1) 동의 대귀법 : 둘째 행은 기본적으로 첫째 행의 내용을 반복한다(시1:2;3:17).

2) 대조 대귀법 : 둘째 행은 첫째 행과 날카로운 대조를 보인다(시1:6).

3) 종합 대귀법 : 둘째 또는 그 이후의 행은 첫째 행을 첨가, 또는 발전시킨다(시7:1).

4) 상징 대귀법 : 대체적으로 직유법을 사용하여 둘째 행은 첫째 행의 표현을 심화한다.

대귀법은 두 줄로 제한되지 않고 절과 연까지 확장한다. 또 시편에는 알파벳의 답판체 형식도 사용되었다(시9, 10, 25, 34, 37, 111, 112, 119, 145편).

 

 

 

 

 

 

 

 

 

 

 

 

 

 

 

 

 

 

 

 

 

 

 

 

 

1. 제목(명칭의 유래): 히브리어 제목 ‘미쉘레 쉴로모’는 솔로몬의 잠언들(쉘레)이란 뜻이다. ‘미쉘레’는 ‘마살’의 복수형인데, ‘마살’의 뜻은 ‘골수에 사무치는 말 또는 비유’ 등으로 성경에 씌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짧고 간결한 교훈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잠언은 격언과 속담의 뜻을 함께 갖고 있다.

2. 중심내용: 지혜의 말씀은 백성들에게 인간 생활에서 어떻게 처신하며, 어떻게 성격을 세워야 하는지는 가르쳐 준다.

3.저자들: 솔로몬의 이름이 이 책의 세 부분(1:1;10:1;25:1)에 나타난다. 따라서 3부(22:17-24;22), 4부 (24:23-34), 6부 (30:1-31:31)를 제외한 대부분의 것들은 솔로몬의 저작이라 할수 있다. 열왕기상 4:32에 의하면 솔로몬은 잠언 3,000과 노래 1,005편을 말하였다. 잠언 후반부는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25장부터 29장에 있는 열조들의 잠언을 편집한 것이다. 한편 비록 솔로몬의 말년에 이르러 실정을 하였지만(왕상12:10), 그의 노년 시절의 실책을 이유로 그의 초기 시절의 공적과 인간성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아굴과 르무엘의 잠언을 보충하여 넣었다.

4. 특징: 잠언서(書)의 본질은 도덕적 및 윤리적 원리들에 대한 교훈이다. 본서의 특색은 그것이 주로 대조를 통한 가르침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1 장에서 9 장에 이르는 제 1 부에서는, 선과 악이 대조를 이룬다. 여기에서 선은 몇가지 단어들로 - 지혜, 훈계, 명철, 의, 공평, 지식, 근신, 학식, 모략 - 일컬어지고 있으나, 특히 지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서 23회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서 20회 사용되고 있다. 본서의 주제에 해당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1장 7절의 말씀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이라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말씀이 알파벳순으로 된 시 111:10에 나타나고, 유사한 형태로는 욥 28 장의 절정에서 나타난다. 지혜를 여인으로 의인화(擬人化)한 것이 3장 15절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사실상, 3장15-18절에서 지혜를 언급하는 대명사들은 여성(she)뿐 아니라 중성 (it)으로도 번역될수 있다. 그러나 이후의 언급들로 인하여 의인화한 대명사가 받아들여진다. 의인법은 7장 4절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에서 시작된다. 지혜는 잠언에서만, 그 중에서도 이 제 1 부에서만 의인화된다. 히브리어에서 "지혜"는 여성 명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또한 쉽게 여성으로 의인화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저자가 여기에서 정숙한 여인인 지혜를 음녀인 매춘부와 대조하고 있는 점이다. 또한 지혜가 모든 미덕을 대표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음녀는 모든 죄악을 상징하며 포함한다. 대조는 의도적이고 예술적인 것이다.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9:4)"고 지혜가 길에서 외친다(8:3). 이와는 대조적으로, 도적질한 물로 초대하고 그 객 (客)들이 음부 깊은 곳에 있는 미련한 계집도(9:13,17,18),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9:16)"고 동일한 초대를 하고 있다. 지혜는 어리석은 자를 죄에서 떠나게 하기 위하여 부르며. 매춘부는 그를 죄에 탐닉케 하기 위하여 부른다. 본서에 사용된 지혜는 도덕적 특성을 지닌다. 이것은 특별 용법이라고 말해져야 한다. 구약성경의 대부분에서, 지혜는 단지 솜씨 또는 총명일 뿐이었다. 역사서에 잘 알려진 솔로몬의 지혜조차도 여기에서의 지혜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솔로몬은 자연 (왕상4:33)과 법률(왕상3:16-28)에 대한 해박함, 그리고 그의 뛰어난 머리로 유명하였다(왕상 10:1-9). 잠언서 (書)는 총명함이라는 개념에다가 지능을 가치 있게 만드는 도덕적 올바름을 포함시키고 있다. 제 2부는 10:1-22:16에 이르는 솔로몬의 잠언으로, 교훈이 거의 한 절로 주어져 있다. 15장에서는 거의 모든 절의 중간에 있는 "그러나"라는 말로 드러나는 대조에 의해 교훈되고 있다. 그 이후로는 대조보다는 평행법이 나타난다. 이 부분은 광범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개요를 말하기 어려우나, 그 관점은 매우 일관되어 있다. 솔로몬은 지혜와 어리석음을 대조시키고있는데, 제 1 부에서와 같이 이것도 지식 대(對) 어리석음이 아니라 도덕적 지혜와 죄의 대조이다. <이하생략>(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성경 자체 내에서는 잠언집의 기록 및 수집 연대에 관하여는 아무런 자료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 책은 B.C. 2세기에 정경으로 인정되었고, 이 잠언집의 최종 편집이 우리가 전통적으로 구약 시대의 마지막 시기로 보는 B.C. 400년 이전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솔로몬의 잠언들이 기록된 후 뒷날 다른 부분과 함께 편집된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는 그 기록 연대를 B.C. 950-B.C. 700년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엑셀, 강해설교대전).

6. 기록목적: 잠언이 쓰여진 목적은 「지혜를 추구하는 것」임

7. 핵심단어: 지혜, 지식, 교훈, 어리석음, 여호와를 경외함, 생명, 그러나, 율법, 명령, 악, 공평, 내 아들아

요절1:7;9:10

1.제목(명칭의 유래): 본서의 영역 제목은 "에클레시아스테스"(집회, 회의를 뜻함)라는 제목을 가진 헬라어 역본에서 유래하였다. 70인역에서는, 전도자 또는 토론가로 다양하게 번역되는 히브리어 코헬레트(Koheleth)가 에클레시아테스(ecclesiastes)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코헬레트’는 본서 전체에서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곧 솔로몬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솔로몬이 실재의 기자가 아니라 단지 그의 이름이 문학적 효과를 위해 소위 정당한 수단으로 사칭되었을 뿐이라는 의혹이 전혀 없지는 않다. 전도서의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히브리어로 그 이름은 "모이는 사람"을 뜻하는 코헬레트(전도자, 혹은 선생-qoheleth)이다. 이것은 (1)잠언을 모으는 사람(12:9,10참조) 혹은 (2)집회에서 연설하는 사람, 즉 설교자나 연설가를 뜻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그 중심 의미는 우리들에게 연설할 목적으로 그것들을 모으는 사람을 뜻한다.

2.중심내용: 솔로몬에 의한 서술로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하나님께 돌아온 후에 부패한 세상에 있는 해 아래의 타락한 인류의 인간 생활에 관하여 묘사한 것이다. 그가 마음을 다해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추구하고 살핀즉, 자연 현상에 따라 모든 것이 순환되어 행해지면서 그대로 있고, 대대로 모든 것이 괴로우며 아무것도 새 것이 없음을 관찰함. 그의 결론은 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타락한 인류의 인생에 있어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것임. 지혜로운 왕이 자신의 지혜로 내린 이러한 결론은 타락한 인간의 공허한 인생의 역사로 여겨질 수 있음. 이 책에서 그의 결론은 마치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될 사람의 장송곡과 같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3.저자: 본서의 내용을 보면 그 저자가 솔로몬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솔로몬이 전도서의 저자가 아니며 이 책이 포로기 이후의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으로 이 책의 중심인물이 솔로몬이며, 미상의 저자가 그를 문학적 도구로 사용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정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그의 독자들을 속이려 했던 것은 아니며, 또 한 아무도 속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불확실하다고 하여 이 책의 정경성이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4. 특징: 헤르더(Herder)는 전도서에 대해 “많은 신학자들이 전도서의 구성을 조사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최상의 방법은, 전도서의 용법을 할 수 있는 한 자유스럽게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전도서의 각각의 부분들이 그러한 목적을 잘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전도서는, 잠언의 특별한 부분이나 알파벳 순으로 시작하는 시편 속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전체의 주제와 일목요연하게 관련되어 있는 소단락들의 명료한 줄거리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한 구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본서가 갖고 있는 하나의 독특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으로 말미암아 전도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표현 양식과 더불어 풍부한 인생관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소단락과 유기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는 전도서의 줄거리는 그 당시 시대의 불평과 그에 따른 요구들, 그리고 생활 양식들과 환경들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전도서는 이러한 복잡한 것들로 말미암아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전도서 기자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효과적으로 교훈하기 위해 소위 만인에게 통용되는 훌륭한 인생의 실례들을 제공해 준다. 이러한 인생의 실례들 속에서 전도서 기자는 단지 염세적인 경향을 따르거나 쓸데없는 과거의 회상이나 잡다한 일상사에만 그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 당시 페르시아의 전제 정치 아래서 신음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병든 영혼을 계속적으로 치료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부여한 구원을 선포하고 수행하는 것이 그의 첫째 임무였다. 전도서 기자는 한층 더 새로운 문체와 기사로써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처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차차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지혜를 그들에게 선포하고, 다양한 설교의 전환들 속에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구원의 진리를 그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 전도서 기자가 본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소유하는 소중한 은혜가 무엇인가를 알기에 모든 세속적인 것들의 헛됨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진실을 삶의 경험으로부터 깨달았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엑셀/ E.W. Hengstenberg, D. D.)

5 시대(역사적 배경): 전도서의 기록 시기는 기원전 977년경으로 그의 타락 후임/ 기록 장소는 예루살렘임(1:1, 12)

6. 기록목적: 저자는 세속적인 모든 목표나 축복들이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 불만족과 허무를 가져오며, 인생의 최고선(最高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임을 교훈하기 위해서이다.

7. 핵심단어: 하나님,(40), 수고, 헛됨,(39), 지혜(45)악, 해 아래서(29), 알다, 속이 상함(바람을 잡으려는 것)

 

1. 제목(명칭의 유래): 아가서의 히브리어 제목은 [솔로몬의 노래 중의 노래]라는 표현은 ‘하늘 중의 하늘’이라는 표현처럼 여러 노래 중에서 가장 훌륭한 노래를 가리키는 최상급의 표현이다. 어떤 이들은 ‘사랑’ 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여러 편의 노래와 영창들로 이루어진 한편의 노래라는 의미로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 성경에서 이 책을 ‘아가서’라고 이름한 것은 1장 1절의 ‘솔로몬의 아가라’에 근거한 것이나 원문에서는 ‘아(雅)’?자가 없다.

2.중심내용: 개인적인 믿는 이의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교통에 대한 점진적인 체험

3.저자: 이 책의 저자는 솔로몬이다.(1:1) “솔로몬의 노래 중의 노래”(개역성경에는 ‘솔로몬의 아가라’고 번역되어 있다)라는 서두의 표현은 후대에 첨가된 제목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자기 시를 노래 중의 노래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표현이 아가서 저자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여기 솔로몬이란 말에 붙은 전치사 ‘의(of)'는 시편 표제에 다윗에게 붙여진 히브리 원어와 동일하여 ’의‘ 외에도 ’에게(to)', '위하여(for)', '의하여(according to)‘ 등으로 해석 할 수 있기 때문에 아가서가 정말 솔로몬이 지은 노래인지, 아니면 솔로몬에게 헌정되어진 노래인지, 또는 솔로몬의 사랑을 찬미하기 위하여 후세에 지어진 노래인지 확증할 수 없다(엑셀/ A.M.Macray,B.A.).

4. 특징: 아가서가 문학 쟝르(genre)상 사랑의 시가 (詩歌)라고 하는 것은 명백하다. 의심하는 모든 사도들은 아가서의 강력하고 의미심장한 표현에 의해 일축될 것이다. 이 책은 성서의 다섯 두루마리(megilloth;아가, 룻기, 에스더, 전도서, 예레미야 애가)가운데 하나이며, 유대인들은 연례적으로 유월절 축제의 제8일에 그것을 낭독하였다. 아가서의 영어 제목Song of Songs는 히브리어 '쉬르핫쉬림'(Shirhashshirim)을 직역한 것이다. 명사를 속격 복수의 형태로 반복 사용한 것은 노래의 특별한 성격을 나타내는 히브리적 표준방식이다. 즉, 그것은 그 노래가 노래들 가운데 최고의 것 또는 가장 탁월한 노래임을 의미한다. (반복적 사용외 용례는 다음의 성구를 참조하라. 1)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창9:25; 2)그 장을 갈고리 아래 드리운 후에 증거궤를 그 장안에 들여 놓으라 그 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리라, 출 26:33; 3)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2) 1장1절의 '솔로몬의 아가' 는 솔로몬에 대한 또는 솔로몬에 관한 아가라고도 번역될 수 있지만, 솔로몬 왕을 아가서의 저자로 보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이다. 아가서의 내용이 솔로몬이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진 놀라운 지혜의 능력과 충분히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전통적 견해에는 부정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다. 아가서의 통일성 문제는 좀처럼 제기될 수가 없는데, 그것은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찌니라'는 동일 어구가 세번(2:7,3:5,8:4)반복해서 나타나며, 아가서 전체에 흐르는 비유적 표현이 동일하고, 또한 동일 인물이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가서의 정경론: 아가서의 정경 논의는 A.D. 90년경의 얌니아(jamnia)에서 개최된 유대 학자들의 회합에서 “세계사의 어떤 시대도 아가서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지던 그 찬란했던 시대와 비교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아가서는 성가 중의 성가다”라는 랍비 아키바(Rabbi Akiba : 50-135 당대 최고의 유대교 율법학자-역자주)의 권위있는 해석에 의해 해결될 때까지 계속해서 논쟁의 초첨이었다. 사실 얌니아 회의 이후에도 여전히 아가서의 신성함은 A.D. 2세기까지 때때로 의문시되곤 했었다. 심지어 칼빈주의자이며 인문주의자인 카스텔리오(Castellio:1515-1563)는 1544년, 아가서가 단순한 연애시이기 때문에 정경에서 제외시킬 것을 요구했다가 제네바 시에서 추방당하기도 했다. (엑셀/ Chamber's Encyclopoedia.)

5. 시대(역사적 배경):

6. 기록목적: 유월절에 주로 읽혀졌던 아가서는 결혼의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그리스도의 자기 교회에 대한 사랑을 예증(엡5:22)하며, 신부가 사랑의 성장을 보이듯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성숙해 가며, 주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용납하심을 점점 더 잘 깨달아 갈 수 있도록 우리를 교훈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경으로 보존해 주신 것 같다.

7. 핵심단어: 사랑하는 자(33), 사랑(54), 오는도다, 오다, 어여쁘다(2). 같고(19), 같구나(16)

요절: 2:16;6:3;8:6상

 

1. 제목(명칭의 유래): 저자의 이름을 책명으로 삼음

2. 중심내용: 이 책의 중심 내용은 성육신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오시는 메시야의 예언에 관한 것으로 이사야의 복음, 구약의 복음서라고 말할 수 있다. 신약 성경 가운데서 직접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 적어도 58번 이상이 된다.

3. 저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존경받는 시민이었으며, 또한 히스기야 왕의 신뢰받는 조언자였다. 그는 주전 739년에 웃시야 왕이 사망할 때로부터 므낫세 왕의 통치 때까지에 걸쳐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므낫세의 박해로 순교하였을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는 몸이 두동강 나는 죽음을 당하였다 (히11:37을 참조하라). 그는 주전 697년 므낫세가 즉위한 이후로는 '공중 설교'를 전혀 하지 않고, 자신의 메시지를 40장에서 66장 사이에 보존된 '문서 형태'에만 국한시켰음이 분명하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주전 701년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는데, 이 때는 앗수르가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그 거민들을 노예 및 포로로 잡아가려고 위협하던 시기였다. 그의 중보 기도에 의해, 산헤립의 군대는 전멸하였다 (왕하19:35-37;대하32:21;사37:36-38).이 책의 내용이 포함한 시간은 약 62년으로 주전 760년부터 주전 698년까지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그의 히브리 명칭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예사야’로 히브리 성경에서 전통적으로 불리어진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장형 어미를 가진 ‘예사야후’인데 이 명칭도 히브리 성경에 사용되었다. ‘예사야’라는 이름은 명사로 ‘구원하다’라는 동사인 ‘야샤’에서 유래했고 거기에 하나님을 가리키는 ‘야후’가 접미어로 붙어 ‘예사야후’가 되었으며, 이것을 해석하면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한편 성경에는 그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자들이 있는데, 다윗 시대에 성전 찬양대장 중에 있었고 (대상25:3, 15), 레위인 중에 있었고(대상26:25),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자중에 있었고(스8:7), 베냐민 지파 가운데도 동일한 이름을 가진 자가 있었다(스11:7). 그렇지만 본서의 기자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인데 그의 부친은 예언자 아모스와 동일 인물이 아니다. 그의 출생과 죽음에 관하여 성경에는 더 이상의 언급이 없지만 전통적으로 왕실의 자손, 즉 아마샤 왕의 형제이며 요아스 왕의 손자라고 본다(7:3-16;37:21-35;38:1-22;39:3-8)(엑셀, 강해설교대전).

4. 특징: 이 책 중에서 36-39장의 네 장인 산문을 제외하고, 기타 모든 문체는 시어체임. 고대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시 작품들이 매우 고상하고, 아름답고, 간결하며, 더우기 시격의 불합리한 구속을 받지 않는 뛰어난 작품임을 인정한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이사야가 사역한 장소는 예루살렘임이며 이스라엘 왕국의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유다 왕국의 선지자 미가와 동시대에 활동했었다. 그가 말한 예언의 시기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4왕조에 걸친 것이었고(1:1). 그의 처는 여 선지자였다(8:3 ). 최소한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두 아들의 이름에서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스알야숩‘은 이사야가 예언하기를 소수이지만 포로에서 귀환할 자가 있으리라 하여 지어 준 상징적 이름이며(사 7:3; 8:18; 10:20), ‘마헬살랄하스바스‘는 다메섹과 사마리아에 비운의 날이 올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사야가 지은 자기 아들의 상징적인 이름(사 8:4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긴 바 될 것임이니라)이다. 유대인들 사이의 믿을 만한 유전과 제 2세기의 랍비의 저서에 의하면, 그는 므낫세의 재위 기간에 순교(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함 -히11:37)했다고 전한다(참고 왕하 21:16, 24:4, 마 5:12, 행 7:52).

6. 기록목적: 유다와 열방에 대한 심판의 예언과, 주의 날 회복되는 이스라엘과 영광스러운 메시야 왕국을 그려, 성육신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고난의 메시야를 보여주려 하고있다.

7. 핵심단어: 구원(28), 거룩, 보좌, 영광, 심판, 위로, 영원한, 영, 여호와의,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요절:6:3

 

 

1.제목(명칭의 유래): 예레미야라는 이름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어떤 이들은 그 이름이 “여호와에 의하여 높임을 받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여호와에 의하여” 견고한 기초로서 “세움을 받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보다 근거있는 주장을 하였다. 혹은 구름에서 내려오는 번개나, 활을 떠난 화살처럼, “여호와에 의하여 보내졌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도 보았다. 그 중 어떤 의미를 위하든지 간에 예레미야라는 이름을 통하여 우리는, 그가 수행했고 고난당했던 모든 일이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게 된다. 확실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어둠침침한 밤, 그리고 폭풍이 몰아치는 망망 대해를 비추기 위하여 높이 세워진 견고한 등대로서 부름을 받았다. 즉, 거친 파도와 강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초는 결코 요동치 않았다. (엑셀/ Bishop Chris. Wordsorth.)

2. 중심내용: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여 돌아오지 않는 유다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다.

3.저자: 예레미야-여호와께서 높이심(하나님의 방면) 혹은 여호와께서 허무심(사람의 방면)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4 특징: 민족적 슬픔에 대한 동일한 감정이 애가와 예레미야서 모두에 나타난다. 두 책에서는 민족적 비운이 동일한 원인 탓으로 돌려져 있는데,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 및 미지근한 제사장들 외에 민족적인 죄, 그리고 나약하고 위험한 동맹에 대한 백성들의 헛된 확신이다. 유사한 비유적 표현이 두 책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처녀 또는 딸'이라는 말이 두 책에 각기 스무번 정도씩 나오고 있다. 선지자의 눈물,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할 때 느끼는 두려움, 그리고 예루살렘을 대적하는 자들이 언젠가는 벌을 달게 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 이 모든 것들이 두 책 모두에 현저히 나타난다.<이하생랴>(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기(역사적 배경):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것은 요시야 왕 제 13년이었다. 당시 유다에는 심각한 위기가 다시 한번 몰아닥쳐오고 있었는데, 이에 따라 예레미야에게는 그 어떤 선지자보다도 더욱 직접적으로 정치적 부담이 주어졌다. 히스기야 제 14년(B.C. 693)에 있었던 산헤드립 군대의 전멸 사건이 비록 모든 외침으로부터 그 나라를 완전히 벗어나게 하지믄 못했지만,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유다는 적어도 살만에셀에 의하여 사마리아가 굴복당했던 것과 같은, 앗수르의 집요한 음모에 의하여 침략받는 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유다가 새로이 당하게 된 위기는 애굽과 또 한편으로 바벨론에 의한 것이었다. 애굽의 삼메티쿠스는 분열된 국가를 통일시켜 B.C. 649년에는 스스로 유일한 군주가 되었다. 그는 54년 동안을 통치하였으며, 그의 마지막 18-19년의 통치 기간은 요시야 왕의 시대와 중첩된다. 므깃도에서 요시야 왕을 죽인 사람은 바로 이 삼메티쿠스의 후계자인 느고였다. 이처럼 애굽의 세력이 강성해지고 있을 때, 니느웨는 부분적으로는 스구디아의 침략으로 그리고 보다 직접적으로는 급신장하던 메대의 세력에 의하여, 또한 이제 막 독립을 쟁취한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서서히 쇠퇴해가고 있었다. 므깃도 전쟁 2년 후, 니느웨는 결국 키악사레스의 메대에 나보폴라살의 바벨론의 연합 공격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나보폴라살은 별반 호전적인 왕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런데 애굽은 여호야김 왕 제 14년까지 중동 지역에 대하여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얼마 후(B.C.605)느부갓네살은 갈스미스 전투에서 애굽의 느고를 패퇴시켰다. 자신의 부친으로부터 평화적으로 대권을 물려받은 후, 느부갓네살은 유다로 처들어와서 여호야김을 자신의 봉신으로 만들었다. 모욕적으로 삼년을 보낸 여호야김이 드디어 바벨론에 대하여 반역을 일으켰지만 (왕하24:1), 결국 그는 그 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석달 뒤에는 여호야김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여호야긴과 많은 수의 귀족들, 그리고 기술자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다. 삼마티쿠스의 영도 아래서 이루어진, 애굽의 괄목할 만한 성장은 (렘 2:18,36) 여호야김과 긴밀한 동맹 관계를 맺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청년 예레미야는 애굽과 동맹을 맺은 여호야김에 대하여 책망의 목소리를 높였다.(엑셀, 강해설교대전)

6. 기록목적: 회개치 않는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의 포로됨을 확실하게 예언하여 마지막 경고를 발하며 미래 예루살렘의 회복을 선포함으로 절망중에서라도 소망을 주고자 함이었다.

7. 핵심단어: 돌아오다(47), 사랑(12)했다, 버림받다, 배교, 대항하여, 처녀(6), 딸(30).

요절: 렘1: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렘3: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우리는 예레미야가 저자임을 나타내는 이 제목에 매우 익숙해 있다. 그러나 영어 성경은 히브리 성경과 마찬가지로 익명으로 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독자들을 의아해 하게 한다. 본서의 제목은 창세기나 출애굽기처럼 책의 첫머리에 있는 ‘에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역본들에 붙은 제목은 대체적으로 내용상 특징을 감안하여 정해졌다. 즉, 70인역은 이 시를 ‘비가’라 하였고 시리아 역본과 벌게이트역은 ‘애가’라고 명명하였다. 애가는 그 내용의 특수성 때문에 히브리 성경 중에서 케투빔, 즉 성문서의 부류에 속하여 정리되었다. 서정적인 시이기도 한 애가는 예언서로보다는 시편이나 잠언과 함께 분류되었다. 이러한 분류는 70인역의 번역보다 뒤늦게 이루어진 것으로 애가를 예레미야의 예언서에 첨가하고 바룩의 외경서를 두 권 사이에 끼워 넣어 세 권을 한 권으로 취급하였다. ‘예레미야 애가’라는 완전한 명칭은 시리아 역본과 70인역의 몇 몇 맛소라 사본에서 발견되며 ‘애가’라는 간략한 형태의 명칭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엑셀/ Chamber's Encyclopedia.)

2. 중심내용: 하나님의 거룩한 성과 거룩한 백성들에 대한 예레미야의 슬픔과 사랑의 표현

3. 저자: 예레미야가 본서의 저자라는 전승은 70인역의 서문 “그리고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후 예루살렘은 황폐해졌고 예레미야는 앉아 울면서 이 애가로 예루살렘에 대해 애통해 했다. 그리고 노래하기를 ...”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이 전승은 역대하 35:25에 이미 암시되어 있는데, 당시 유다의 상황에 대해서는 예레미야 애가 4:20에 보충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본서 자체의 내적 증거를 살펴 보면 애가서가 예레미야에 의해 씌어졌다는 사실이 오히려 희석되고 있다. 더욱이 에발트에 따르면 애가서의 문체는 예레미야서와 현격히 다르다고 한다. 즉, 병행하는 몇 몇 서술들이 저자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고, 이스라엘의 부흥을 예견한 내용 또한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문점들은, 애가들이 예레미야가 살던 당시 및 그 전후 시기에 한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에 의해 필사되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체로 인정되는 것들이다. 당시의 모습은 2:9과 4:20에 나오듯이 성은 황폐해졌고 왕은 포로가 되었다. 모든 책들은 당시의 재앙으로 인해 밀려드는 슬픔을 표현하는 것들뿐이었다. 유대 월력에 있어서 ‘아빕월 9일’은 매우 슬픈 날이다. 그들의 성읍과 땅에 대한 민족적 애착심을 본서보다 더 슬프게 표현한 구약성경은 없다. 그리고 본서은 성읍이 황폐해짐으로 인해 흥분된 격한 감정이 하나님께 대한 비신앙심의 형태로 그들 가운데 존재해 있었음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엑셀/ James Robertson.)

4. 특징: 본서는 각 장(章)에 한 편씩, 도합 다섯 편의 아름다운 시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의 네 편은 애도가이고, 다섯번째 것은 한 편의 기도시라 하는 것이 낫다. 처음의 네 편은 각 행(行)의 배열에 있어 히브리어의 알파벳순으로 되어 있고, 각각의 시들은 이십이 연(聯)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연들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철자순으로 시작된다. 제 5장도 역시 이십이 현으로 구성되어 있긴 하나 알파벳순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다. 제1장에서 각 절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제 2장과 제 4장에서는 '아인'과 '페'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는데, 이 자리바꿈은 아직도 만족스럽게 설명되지 않고 있다. 처음 네 장에서 비가적 운율이 사용되는데, 여기에서는 대구(對句)를 이루는 두 요소들 (영시에서의 행) 가운데 두번째 것이 첫번째 것보다 한 박자 짧다. 이것은 보통 삼박자 절이나 행(行)과 균형을 이루는 사박자 절을 나타낸다. 제 5장에서는 일반적인 히브리어의 운율이 사용되는데, 각각의 절 즉 대구의 반절(半節)은 4박자로 되어있다. 유대인들은 본서를 주요 기념일에 낭독되는 다섯 두루마리에 포함시키고있다. 애가가 낭독되는 날은 압월 (月)일인데 이 날은 성전이 불타버린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런데 5장21절은 22절에 뒤이어 반복하여 낭독되는데, 다시 낭독하는 것은 보다 긍정적인 내용으로 마치기 위함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유대인들의 유전과 70인역의 서언에 근거해 볼 때 이 책은 느부갓네살이 최후에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이후에 쓴 것이다. 시간은 주전 588년경이고 장소는 당연히 예루살렘일 것이다. 일설에 성밖 골고다 산 맞은 편에 예레미야 산동굴이라고 불리워지는 은밀한 동굴이라고 한다.

6. 기록목적: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슬픔을 표시하며 하나님은 약속한 말씀과 그 백성에 대하여 여전히 신실하심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7. 핵심단어: 어찌, 슬프다, 감찰하다, 환난, 처녀시온, 회상하다, 통곡, 근심, 처녀(22)

요절:1:5, 2:17, 3:22, 3:39, 5:21

 

1. 제목(명칭의 유래): 에스겔(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뜻)

2. 중심내용: 자기 민족에게 다가오는 칠흙같은 운명을 예시하고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뒤에 오는 열방의 심판을 예고하며 장차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을 선포하고 있다.

3. 저자: 에스겔이다. 에스겔(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뜻)은 사독 계열의 제사장 집안에서 부시의 아들로 태어났다(겔1:3;40:46;44:15). 그는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을 잘 알고 있었으며, 주전 597년에 바벨론으로 끌려 갔다.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1:4-28) 그는 포로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언자와 파수꾼의 책임을 맡았다(2, 3장). 에스겔이 소속된 바 없는 대회당에서 에스겔서가 씌어졌다고 탈무드는 단언하고 있지만, 에스겔서의 출처는 그다지 큰 논란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었다. 쥰츠(Zunz)는 에스겔서가 약 B.C. 400년에 씌여진 것이라고 그 시기를 추정하고 있다. 카일(Keil)과 쿠에넨(Kuenen)은 에스겔이 에스겔서의 저자일뿐더러 편집자였다고 주장한다. 즉, 한 책안에 여러 가지 예언들이 수집되고 결합되었다는 것은 바로 본서가 에스겔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는 주장이다. 그라프(Graf)는 레위기의 일부분(18-23,25,26장)의 저자 역시 에스겔이었다고 주장한다. (엑셀/ Chamber's Encyclopedia.)

4. 특징: 예레미야처럼 에스겔은 유대민족에게는 폭풍우와도 같은 과도기에 처해 살았다. 에스겔은 성숙한 예언자가 되고 경고의 소리로 외칠 비극적인 광경을 이미 젊은 시절부터 보아왔다. 예레미야처럼 에스겔은 자기민족에게 다가오는 암흑같은 운명을 보았다. 따라서 그는 어둠을 꿰뚫고 새벽을 분명하게 보고자 하는 독수리같이 예리하게 빛나는 눈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앗술바니팔(assurbanipal)의 탁월한 통치가 있은 후에(B.C.669-633), 북앗시리아의 유산을 계승하였다. 바빌로니아가 유산을 쉽게 계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언어와 문학에 있어서 서로가 거의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바빌로니아는 보다 고대의 문학들과 언어 그리고 문명과 접촉하게 되었다. 나포폴라살(Nabopolassar)의 아들인 느부갓네살은 앗시리아 군주가 누렸던 자랑스런 지위까지 계승한 바빌로니아 통치자였다.(B.C. 605) (엑셀/ O. C. Whitehouse, D. D. )

5. 시기(역사적 배경): 에스겔의 활동시기는 바벨론 포로기 초기인 주전593/592-571/570년이었다 (겔1:1,2;29:17). 에스겔이 바벨론에서 유다의 몰락과 회복에 대한 환상을 보고 있을 때 예루살렘에서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예레미야가 실제로 유다 왕국의 최후를 목도하고 있었다 (렘 1:1-3). 애굽왕 느고의 군대가 주전605년 유브라데강가의 갈그미스에서 느부갓네살에게 패하였다(렘 46:2이하). 갈대아인들이 새로운 세계의 지배자가 되어 (왕하24:7) 유다를 속국으로 삼았다. 여호야김 (주전 608-597)은 선지자들을 박해하였고(렘 7:26;36장), 유다 민족의 영적 생황을 타락시켰으며 (렘 7:1-15;13:16-20장-겔8장 참조), 소폭군으로 등장하였다(렘 22:13-15,17-19). 그는 주전602년에 느부갓네살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이웃 나라의 공격을 받았다(왕하24:1이하). 그는 느부갓네살이 유다에 이르기 전에 수치스런 죽음을 당하였다.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은 석 달을 다스린후 예루살렘을 포위한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하였다(왕하24:8-17;렘22:24-30;겔19:5-9). 예루살렘을 약탈한 후, 갈대아 군주는 수천명의 상류층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잡아갔다. 예레미야는 이들을 장래 이스라엘의 소망을 나타내는 "좋은 무화과"로 비유하였는데, 이것은 그 땅에 남아 있던 주번자들을 나타내는 "악한 무화과'와 비교를 이룬다.(렘24;29장). 에스겔은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그 해부터 메시지를 선포하였다.이 책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약 21년으로 주전 595년부터 주전 574년까지임. 에스겔이 사역한 장소는 바벨론이다. (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 기록목적: 완전하고 최종적인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계시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며 또 그들에게 본토에 일찍 귀환하리라는 거짓된 희망을 깨뜨리기 위함이다.

7. 핵심단어: 인자(92), 여호와의 영광,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49)

요절: 겔 1:1 제 삼십 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겔 1:28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다니엘은 이 책에 기록된 사건들 가운데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다. 예수께서는 이 책의 예언들을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마 24:15; 막 13:14)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증거는 이 책의 명칭이 단순히 다니엘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예언들이 다니엘에 의해 선포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복음주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책의 저자를 에스겔서에(14:14, 20; 28:3) 노아와 욥과 함께 의인의 표본으로 등장하는 다니엘과 동일한 인물로 본다. (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2. 중심내용: 이 땅 위의 모든 인간 정부들을 다스리는 하늘의 하나님에 의한(2:37, 44) 하늘의 통치는(4:26) 그리스도께서 다음의 항목들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경륜과 부합함.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부활 안에서 새 창조를 발아시키기 위해 옛 창조를 끝내심 - 그분의 초림시에 성취되었음. 인류 역사 전체에 걸친 인간 정부의 총체를 부수고 분쇄하심 - 장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의해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이 세워짐. 이 모든 사항들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본질적으로 이스라엘과 관련되어 왔고 또 관계될 것이다.

3. 저자: 다니엘이다. 몇몇 학자들이 다니엘서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묵시적 예언의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J. E. H. Thomson저, Danie1 in Pulpit Commentary, p.93을 보라). 이러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것이지만 때때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E. G., Ro-bert H. Pfeiffer,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IIlent,p.775). (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3. 특징: 다니엘서는 히브리 정경에서 소위 ‘하기오그라파’(성문서)라 불리우는 세 번째 부분에 분류되어 있다. 제1장은 다니엘서의 서론적인 부분으로서, 바벨론 왕에 의해 수행된 인재의 등용과 교육에 관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등장하는 내용들은 두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2장에서부터 7장까지를 차지하고 있는 첫째 단락은 2:4의 중간 부분부터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 단락은 세계의 네 제국에 관한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왕국이 이방의 왕국에 대해 가지는 관계를 드러내 보여 준다. 그 형태에 있어서는 첫째로 네 부분으로 되어 있는 신상을 보여 주며 그 다음으로는 바다로부터 나오는 네 마리의 거대한 짐승을 보여 준다. 물론 그 마지막 제국에 이어서 하나님의 왕국이 등장할 것이며 그 왕국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한편 본 단락은 이방 왕들의 박해로부터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이 구원과 보호를 받게 될 사실과 성전에 속한 기명들을 더럽게 하고 교만과 우상 숭배 가운데 빠져 있던 이방의 왕들이 비천하게 되어질 사실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본 단락의 처음 세 장과 나중의 세 장이 서로 상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2장은 7장과, 3장은 6장과, 4장은 5장과 서로 상응 관계를 갖고 있다. 나머지 다섯 장을 구성하고 있는 두 번째 단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 단락 또한 수양과 수염소의 환상을 통해 두 번째 왕국과 세 번째 왕국의 운명을 보여 주면서, 하나님의 왕국과 이방 세계의 충돌을 보여 주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메시야의 도래,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 하나님의 왕국과 그 대적들간에 벌어지는 최후의 싸움, 그리고 마지막 부활 등에 관한 주목할 만한 계시들과 함께 가까운 미래에 관한 상세한 사건들이 뒤따른다. (엑셀/ E. P. Barrows, D. D.)

4. 시대(역사적 배경): 에스겔서와 다니엘서는 포로기에 쓰여졌다. 에스겔서와 다니엘서는 포로기에 쓰여졌는데, 이때는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대인의 성전과 도성이 파괴되고 재산을 빼앗긴 후 유대인들이 잡혀가던 시기였다. 이러한 파괴는 세 번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번째는 B.C. 605년에, 두번째 B.C. 597년 느부갓네살의 팔레스틴 원정 중에, 세 번째는 B.C. 587년, 오랜 포위 공격 후에 느부갓네살은 도성과 성전을 파괴하고 전 유대사회를 파괴하였다(왕하 25:1-7; 렘 34:1-7; 39:1-7; 52:2-11). 다니엘은 첫 번재 시기에 느부갓네살 왕이 여호야김을 굴복시키고 포로로 잡아갔는데, 그들 중에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있었다(단 1:1-6).

6. 기록목적: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나라가 회복될 것이라는 소식으로 위로하려고 기록했다.

7. 핵심단어: 꿈(21), 이상(30), 하나님(45), 해석(26)

요절: 단 4:17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선지자의 이름을 따서 그대로 호세아서로 명명했다.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자, 즉 구원자를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즉, 예언에 그 아버지의 이름이 주어지면, 그 아버지도 역시 이들과 마찬가지로 예언자라는 것이다. ‘브에리’는, 그 안에 솟아오르는 물을 지닌 ‘우물’이란 뜻이다.

2. 중심내용: 음란한 아내와 신실한 남편의 이야기를 통하여 음란한 백성과 신실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며 그런 배교자들에게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며 끝까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기술하고 있다.

4. 저자: 브에리의 아들인 호세아는 이사야가 유다에서 예언 활동을 하던 당시에 북왕국(이스라엘, 즉 에브라임)에서 예언 활동을 하였다(호 1:1;사 1:1). 호세아는 자기 민족에게 전달하기 위해 글을 남긴 북왕국의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실의에 빠져서 그들의 임박한 포로 생활(호3:4)과 징계받은 백성들이 여호와의 강력한 요구들을 다시 깨닫게 될 때에 그들이 회복될 것임(호3:5)을 예언하였다. 대부분의 그의 예언 활동은 주전 750-725년 사이에 행해졌음이 분명하다.

4. 특징: 북 이스라엘에 대한 호세아의 활동과 메시지를 기술한 것으로 음란한 아내와 신실한 남편의 이야기를 통하여 음란한 백성과 신실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며 끝까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로 알 것을 권고하고 있다.

5. 시기(역사적 배경): 호세아의 사역은 분명 여로보암 2세의 통치 말기에 이루어졌다. 그 시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될 그러한 상황의 시대였다. 어떤 면에서 여로보암 2세의 통치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탁월했다고 볼 수 있다. 열왕기서는 그 시기에 대해 정치,군사, 경제면에서 절정 상태에 이른 시대였다고 약술하고 있다(왕하 14:28). 그러나 반면에 그 시대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기도 했다. “여로보암이...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4: 23,24). 이는 당시 현실에 대한 호세아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이스라엘의 외적 번영은 속에서 깊게 곪아가고 있는 병들을 잠깐 가리우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번영이 하나님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자연히 무질서와 파괴의 피로 물들 수 밖에 없었다.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인 스가랴가 왕위에 즉위하였다. 그러나 그는 6개월만에 음모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그를 살해하였던 살룸이 등극하였으나, 그 역시 1개월여만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살룸의 후계자이며 곧 그의 살해자이기도 한 므나헴은 10년이라는 제법 긴 기간을 통치하였으며, 그는 앗수르에 많은 공물을 갖다 바쳐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만 했다. 이러한 치욕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그들은 애굽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앗수르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는 굴욕의 수치스러운 세월을 계속하여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재난과 파괴, 유수의 날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매우 분명하다. 정신적 타락이나 도덕적 부패를 일삼는 물질적 번영이나 전시적인 종교 행위는 궁극적으로 멸망되고야 말 것이라는 것이 호세아서가 우리에게 남겨 주는 귀한 교훈인 것이다. (엑셀/ T. C. Straus)

6. 기록목적: 타락하여 회개를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경고하며 남은 자에 대한 소망과 북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기 위함이다.

7. 핵심단어: 알다, 자비, 듣다, 사랑, 돌아오다, 이스라엘(44), 에브라임(37), 유다(15), 내가 하리라, 여호와의(57). 요절:3:1;6:4;10:12;11:3, 8 ;14:4

요절: 호 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호 6: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호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호 11: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호 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호 14:4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요엘이란 히브리 이름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를 뜻한다.

2. 중심내용: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다는 것이 본서의 주된 교훈이다. 그 날은 여호와께서 원수들의 멸망과 형제들의 높이 들리움 가운데 나타나실 날이다. 이 날은 자연계에 특별한 현상의 나타남이 동반될 것이다(2:30,31). 여호와 앞에서의 인간의 마음 자세와 생활태도가 그 날에 대한 그의 반응을 결정할 것이다. 요엘서에 나오는 메뚜기들은 네 시기에 걸쳐 이스라엘을 황폐케 하는 열국을 상징하는 데 바벨론의 첫 번째 왕인 느부갓네살부터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적그리스도까지 네 제국에 걸쳐 이스라엘을 계속 황폐케 할 것을 경고하고 예언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들을 이기시고 종결시키실 것이며, 회복의 시대에 왕국을 수립하고 구원받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리 실(통치) 것이다(계 20:4-6, 마 19:28)

3. 저자: 저자는 '브두엘의 아들 요엘'이다(1:1). 미가라는 이름과 마찬가지로 이 이름은 그의 부모에 의한 신앙 고백을 지칭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엘의 개인 경력은 예언서에 나타난 사실에 국한된다. 구약성경에는 열세명의 또 다른 인물들이 요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선지자 요엘은 이들 중의 어느 누구와도 동일시될 수 없다. 그의 메시지는 주로 예루살렘 및 유다와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언급은 그가 남부 팔레스틴의 시민으로 아마도 예루살렘의 거주자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요엘서는 전통적으로 한 사람의 작품인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주후 1870년경, 버네스(M.Vernes)가 2:28에서 3:21까지는 1:2에서 2:27까지를 기록한 저자가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여 동일한 저자가 이 두 부분을 모두 기록했음을 인정하였으나, 그럼에도 그는 두 부분사이에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외에도 본서가 단일 문학작품이 아님을 입증하려는 하찮은 시도들이 계속 행해졌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고등비평적인 견해는 요엘이 본서의 책임있는 저자이나 수세기에 걸친 성서의 전래 과정을 통하여 후에 수정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4. 특징: 요엘서의 문체는 고어체인데 이는 아모스 및 미가와 유사하다. 이들의 문학적 유사성은 뚜렷하다. 다음을 비교하여 보라 ; 1)욜3:18과 암9:13, 2)욜1:4과 암4:9, 3)욜2:11과 습1:14,15, 4)욜2:3과 겔36:35 및 사51:3. 5)욜2:11과 말3:2, 6)욜3:10과 사2:4..

5. 시대(역사적 배경): 학자들은 본서의 저작 시기에 대하여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제시된 여러 가지 연대들 중에 두 가지 주된 주장이 있는데, 그것들은 각각 (1)이른 연대로, 유다 왕 요아스의 통치시기인 주전830년경과 (2)포로후기로 바사 시대인 주전 400년경이라는 주장이다. 이 가운데 늦은 연대를 지지해주는 논거들이 있다. 포로기 이전의 다른 예언서들과 같이 당대의 왕에 대한 언급이 서두에 없다(1:1). 또한 북왕국(사마리아)이 언급되어있지 않은데 그것으로 보아 북왕국이 멸망한지 오래 되었음이 분명하다. 요엘은 유다에 대해 이스라엘이라는 낱말을 사용하는데, 포로기 이전의 어느 선지자들도 이렇게 한 적이 없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주전 722년(즉 사마리아 멸망) 이전에는 열 지파를 지칭할 때에만 사용되었다. 포로기 이후의 사회에서는 귀족이나 왕이 아닌 제사장이 지도자였다. 또한 3:1, 2, 17은 포로 생활이 이미 발생했었음을 암시한다. 포로기 이전을 저작 시기로 보는 주장 또한 강력하다. 제사장들이 부각되고 귀족과 왕이 빠진 것은 어린 왕 요아스를 대신하여 다스린 대제사장 여호야다 때문이다. 사마리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에서 기인되는 주장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저자는 본래 북왕국의 사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야곱의 영적 축복을 합법적으로 계승한 유다에 대하여 절절히 사용될 수 있었다. 포로귀환(3:1)은 단지 소유의 회복을 의미할 뿐이다(욥42:10을 참조하라). 요엘서 3장에는 포로기 이전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 없다. 욜3:4-6은 오바댜서에 묘사된 것과 동일한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 기록목적: 본서의 직접적인 동기는 메뚜기떼와 가뭄으로 인한 땅의 황폐였다. 비길데 없이 품위있고 강한 시적 운율로 선지자는 메뚜기떼의 침입을 군대와 같은 형태로 묘사하며, 그것들이 여호와의 날의 전조라고 생각한다. 그는 모든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면서,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땅은 회복되어 비옥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또한 하나님의 신이 언약을 내리시고, 백성은 대적들에게 승리할 것이며, 온 우주가 거룩해지고 평화롭게 되는 시대가 임할 것이다.

7. 핵심단어: 메뚜기, 여호와의 날(5), 기뻐함, 회복/ 요절: 욜1:2, 2:12, 2:28-32.

 

1. 제목(명칭의 유래): 아모스는 히브리어로 「부담을 진 자」란 뜻이다.

2. 중심내용: 이스라엘과 열국의 심판하시되, 여호와께서 열국을 징벌하시고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삼으신 것은 다윗 왕국-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한(계 11:15) 회복의 시대(마 19:28)가 도래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3. 저자: 아모스는 히브리어로 「부담을 진 자」란 뜻으로 그는 목자요(1:1) 뽕나무를 재배하던 사람이다.(7:14). 유다 왕 웃시야와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재위 기간에 예언하였으며(1:1) 사역 시기는 주전 787년경(1:1上)이고 사역의 대상은 북조 이스라엘(1:1下), 사역의 장소는 북조 이스라엘에 있는 벧엘이다.

4. 특징: 아모스는 우리의 삶이 마땅히 바르고 선하며 참된 행위로만 이루어지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거룩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선지자들 가운데 위대한 도덕론자였다. 요컨대 구약성경에서의 아모스는 신약의 야고보와 같은 인물이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예배 행위가 배교적이긴 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지키는 데 매우 열성이었다. 그들은 이른 새벽부터 벧엘과 길갈에 있는 신당에 열심으로 희생을 갖다 바쳤으며, 3일에 한번씩 십일조를 드렸다. 그러나 아모스는 그들에게서 악이 함께 행하여지고 있음을 목격하였다. 따라서 그는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5:15)라고 명령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라고 하면서 그분의 법도대로 살기를 거절하는 자들의 예배를 결코 기쁘게 받으시지 않는다. (엑셀/ Original Secession Magazine.)

5. 시기(시대적 배경): 아모스의 예언 활동은 주전 780년 이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추측하는 데에는 몇 가지의 이유가 있다. 즉,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힘차게 꾸짖은 아모스가 앗수르에 관하여는 한 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 당시 앗수르가 북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정치적으로 예전처럼 그렇게 세력을 떨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디글랏빌레셀의 무서운 침공으로 앗수르가 다시금 맹위를 떨쳤을 때는 호세아 선지자의 활동 기간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아모스가 예언 활동을 할 때는 시리아가 불니라리 3세(Vulnirari)의 엄청난 침략으로부터 복구 단계에 있었을 때라고 보아야 한다. 다행히도 성경은 그 기간 동안의 북왕국의 사회적 , 도덕적, 종교적 상황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자료를 제공하여 준다. 성경의 역사서에 나타나 있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호세아서는그 당시와, 그리고 아모스 시대 전체에 걸쳐서 많은 지식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의 종말기라 할 수 있는 중대하고도 비극적인 세기의 상활에 대해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감지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는 탁월한 지도력으로 국가의 지경을 확장시켰다. 시리아는 하맛에서 사해에 이르는 넓은 땅을 그에게 봉납했으며 암몬과 모압 족속은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처럼 정복 사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수세기 동안을 초강국으로 군림해 왔으며 당시에는 불니라리 3세의 강력한 영도아래 서쪽으로 영토를 넓혀가고 있던 앗수르의 세력에 의하여 시리아가 위기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리아는 앗수르의 불니라리 3세로부터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다. 요컨대 여로보암이 시리아의 통치령이던 요단 지역을 회복한 것은 분명 시리아와 주변 국가들이 전복되어 무력하게 된 일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에 대한 개념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모스에 의하여 특별히 강조되었으며, 그의 예언의 핵심이 되었다. 그의 모든 메시지는 바로 이러한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엑셀/ H. R. Reynolds, D. D.)

6. 기록목적: 북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으로 당시 북 이스라엘의 상황은 아주 살기 좋은 시대로 정치적으로 안정되었고 군사적으로 힘이 막강하였으며 사람들은 태평성대를 누리는 시기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망각하였으며 간절한 기도가 없고 타성적인 예배로 종교 생활이 무의미해졌다. 이런 북이스라엘에게 몇 십년 후에 멸망할 것임을 경고하기 위해 기술되었다.

7. 핵심단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범죄, 내가 행하리라, 찾다

요절: 암 1:2 저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암 4: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오바댜서(書)는 (이름을 제외하고) 오바댜선지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있으며 또한 저작시기도 명시하고 있지 않다. 구약성경에는 열두 명 정도가 오바댜로 표기되어 있으나 모두 이 예언서를 기록한 선지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선지자의 가문, 사회적 지위 및 생업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오바댜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종' 또는 '여호와를 경배하는 자'를 의미 한다.

2. 중심내용: 오바댜의 예언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증오의 노래라는 비난을 정당화할 만큼 신랄하지는 않다. 이 시의 강한 어조는 정의감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같은 혈족이 혈연을 저버리고 무서운 죄를 범하였다. 그들이 저지른 죄는 징벌되어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족속들을 징벌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하나님을 만국(萬國)의 심판자로 인정하였으며, 그 분이 저질러진 범죄에 대하여 응징하실 것이라고 믿었다(1:15). 하나님은 그 권능에 있어서 우주적이시다. 어떤 민족도 만물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벗어날 수 없다. 그 분은 압제 당하는 자에 관심을 가지시고 그들을 들어 올리실 것이며, 그들이 빼앗겼던 것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3. 저자: 본 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오바댜 선지자의 내면적인 성격과 외면적인 경력에 관해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오바댜 선지자는 자신의 이름 외에는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선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이름을 기록했다. 이 이름이 지니는 의미는 중대하므로 이에 대해 주목해 보자. 오바댜란 이름은 ‘여호와의 종’ 혹은 ‘주의 경배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바댜가 자신의 이름을 거명한 후, 잠시 사이를 두었을 때는 마치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본인은 지금부터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는 일을 전혀 꺼리지 않을 것이다. 본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진정한 경배자 중 한 사람으로 생각되어지는 일을 매우 기쁘고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주의 경배자가 받는 영예와 면류관은 본인이 매우 간절하게 소망하던 바요, 쾌히 쓰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바댜가 온전하고 흠없는 경건을 소유한 진정한 선지자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사람들이 선지자의 경력에 관해 알고자 했으나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신상에 관해 침묵을 지켰고 널리 알려지는 것을 사양했다. <중략>. 그러나 우리는 선지자들의 예언서를 읽으면서 그 책을 기록한 당사자의 얼굴 모습과 외형, 삶의 태도와 경험에 관해 가능한 자세히 알고 싶어한다. 오바냐는 과묵한 선지자였다. 우리는 그의 저서에서 그의 이름 외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고귀하고 거룩한 사람들 중에 자기 자신을 남에게 설명하는 일에 분망했던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본서의 저자가 엘리야 선지자와 동시대의 인물로서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던 아합의 궁내 대신 오바댜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오바댜는 우상 숭배하는 이세벨에게 핍박을 받은 수 많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굴에 숨겨준 일이 있었다(왕상18:3-16). 또 다른 사람들은 오바댜가 유다 여러 성읍에 여호와의 도를 가르치라고 여호사밧에 의해 파견된 방백일 것이라고 말한다(대하17:7). 또 어떤 사람들은 그가 유다의 마지막 선한 왕 요시야 왕이 통치할 때, 성전의 복구를 위해 감독으로 임명받았던 사람일 것이라고 말한다(대하34:12). 이 모든 주장들이 다 본서의 저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것이지만, 과연 누가 본서의 저자인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엑셀, 강해설교대전)

4. 특징: 야곱의 형인 에둠에대한 심판과 경고를 기록한 책으로 같은 혈족인 에둠이 혈연을 저버리고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무서운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하나님을 만국(萬國)의 심판자로 인정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러한 범죄에 대하여 응진하실 것이라고 믿었다(1:15). 에돔은 이스라엘의 큰 대적으로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전쟁을 일삼았으며 주전 583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되었다.

5. 시기(역사적 배경): 오바댜는 에돔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대적들과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약탈에 가담했던 역사적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1:10-14). 예루살렘은 여호람 시대인 주전 9세기 중엽에 블레셋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에게 약탈을 당했다 (대하21:16,17). 에돔은 주전 5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바벨론 및 다른 국가들과 연합하였고 이 성읍의 약탈에도 가담하였다. 오바댜서의 저작 시기는 이 기간중에 있었다고 추정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6. 기록목적: 교만으로 이스라엘을 대적한 형제나라 에둠의 멸망을 예고하며 여호와의 날이 대적에게는 두려움이요 멸망이지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회복과 구원의 날임을 보여주고 있다.

7. 핵심단어: 소유하다, 에둠. 요절:1:15

 

 

1. 제목(명칭의 유래): 본서의 제목은 중심인물인 요나의 이름을 따라 붙여졌는데,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로 '비둘기'를 뜻한다. 이 선지자는 열왕기하 14장25절에 잠깐 언급된다. 그는 현재의 갈릴리에 해당하는 스불론 땅의 가드 헤벨 출신이었다.(아밋대 란 말은 아멘 에서 파생된 단어로 신앙의 가정에서 자람을 보여준다)

2. 중심내용: 요나서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1)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시고 그들에게 심판을 경고하도록 그의 종들에게 요구하신다. 2)어려움에 직면할 때 인간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3)하나님은 전승하셔서 자신의 뜻하심에 따라 자현의 힘을 이용하실 수 있다. 4)비록 하나님께서 불순종을 벌하시지만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시기를 원하신다. 5)가장 가망이 없는 선교지가 종종 가장성과 있는 선교지가 된다. 6)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비와 긍휼로 대하시고 싶어하신다.

3. 저자: 제 2장에 나오는 기도가 1인칭 단수 형태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어떤 곳에도 선지자 자신이 본서를 기록했다는 언급이 없다. 전승은 요나가 저자인 것으로 이어 내려 왔다.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본서가 요나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요나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본서는 요나가 손수 쓴 책이라고 생각된다. 요나는 생을 마감하기 전에 조용히 앉아서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니느웨 여행을 회고하면서 펜을 잡아 손수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요나는 어떤 태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했을까? 매우 겸손한 태도로, 누가 보아도 공명 정대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큼 냉정한 태도로 사실을 서술했다. 요나는 스스로 자신의 그릇됨을 기록한다는 사실에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배타심, 하나님을 향한 불평 불만의 어리석은 태도를 낱낱이 기록했다. 그는 자신을 냉혹하게 비난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순종과 사랑이 결핍되었는지를 솔직히 기록하였다. 대신에 하나님의 자애하심과 따뜻한 자비를 강조했다. 요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반면에 자신은 꾸짖으며 경계했던 것이다. 우리는 또한 본서를 읽으면서 어거스틴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거스틴 역시 자신의 방탕하고 타락했던 청년시절을 그대로 기록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쏟았다. [천로역정]의 저자인 존 번연의 일생을 생각해 보자. 그는 죄인 중의 죄인인 자신이 일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했다고 술회했다. 요나도 틀림없이 새롭게 변화되었을 것이다. 자만심, 퉁명스러움, 불순종과 같은 옛 습관을 완전히 벗어버린 후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어 본서를 손수 기록했음에 틀림없다. 본서는 다른 예언서와 다르다. 요나서는 어떤 이야기의 서술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특수하고 기적적인 체험을 생생하게 그린 체험담이다. 요나서의 극적인 장면은 3막으로 구성된다 . 이 3막 전부가 흥미진진한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 (엑셀, 강해설교대전)

4. 특징: 본서의 의미와 그 해석에 있어서 많은 이론들이 있으며 그 해석여하에 따라 교단이 갈라졌다는 사실을 나는 뼈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과 요나의 도피, 그리고 요나의 회개와 니느웨성의 회개와 박넝쿨사건을 통해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알 수 있으며 또 이스라엘을 어떻게 사용하시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다.

5. 시기(역사적 배경): 신언자 엘리사 시대(주전 896-838년)인 주전 862년경. 사역의 대상은 큰 성읍 니느웨 사람들임(1:2). 사역의 장소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임

6. 기록목적: 하나님은 이방 민족까지도 사랑하고 계시며 그 이방민족 중에서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이스라엘에 대한 참된 목적을 요나를 들어서 보여 준다. 또 불순종하는 종들에 대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와 유다 백성의 교만한 애국주의가 눈을 가려 이방 민족을 향한 사랑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점을 강하게 꾸짖고자 본서가 기록되었다.

7. 핵심단어: 큰, 예비하사, 여호와의 말씀(3), 여호와(22), 회개

요절: 2:1, 2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욘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욘 4:2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음이니이다. 욘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1. 제목(명칭의 유래): 본서의 선지자인 미가의 이름을 따서 그대로 붙였다. 미가는 미가야의 축약형으로 「야(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이랴?」는 뜻이다.

2. 중심내용: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이스라엘을 책망하셨으며 천년 왕국(계 20:4, 6) 안에서의 회복(마 19:28)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실 것과 모으실 것을 약속하신다.

3. 저자: 미가는 미가야의 축약형으로 「야(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이랴?」는 뜻임(렘 26:18). 미가는 유다 왕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재위 기간에 예언했으며 미가의 사역 시기는 이사야와 호세아의 시대인 주전 750-710년경으로 약 40년간이며 사역의 대상은 북조 이스라엘(유다도 포함)이다. 사역의 장소는 유다이다. 저자인 미가 선지자는 도시가 아닌 조그마한 마을의 평민 출신이었다. 그는 모레셋이라는 블레셋의 국경 지방에서 태어났다. 미가는 근검하고 부지런한 유다의 농부 출신이었다. 그는 평범한 서민에 속했다. 우리는 미가서를 읽으면서 미가가 천민 계급, 즉 땅을 대상으로 일하는 사람들, 곡식단을 묶고 집을 지으며 무덤을 파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동정심을 가지게 된 경위를 알 수 있게 된다. 민중의 편에 서서 부자와 귀족의 폭정에 항거하는 그의 어조 속에는 불붙는 듯한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지주의 손에서 착취당하는 민중의 고통을 친히 목격했으며 그 부패의 실상을 실감있게 그려냈다. 자만심이 강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모두 다 자신들을 위한 존재에 불과했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2:2)했다. 가난한 경작자들은 날마다 재산을 약탈당하고 거짓 재판과 폭력에 시달려야만 했다. 따라서 미가는 유다의 극악한 원수는 앗수르인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 즉 하나님을 대적하며 사람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거만한 귀족들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돌보심을 받고 있는 가난한 사람, 의지 없는 가련한 사람,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압제했기 때문이다. 미가는 선지자일 뿐만 아니라 사회개혁자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미가가 맹령한 어조로 비난했던 죄악이 성행했던 시기는 국가가 부귀를 누리던 황금시대였으며, 또한 종교적인 계율이 엄격하게 준수되던 시기로서 국가의 외적인 측면은 전혀 나무랄 데 없는 시기였다. (엑셀/ Original Secession Magazine.)

4. 특징: 미가서는 이사야와 동시대인으로 이사야서의 축소판으로 불린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냉냉한 종교의식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6:7)과 용서를 보여주고 형식 종교에 대한(6:7) 혐오감과 사회 정의에 대한 그의 관심(6:8),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7:18), 또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7:20)이 강조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야곱의 하나님으로(4:2), 열국의 심판자로(4:3), 베들레헴에 태어날 이스라엘의 주권자(5:2;마2:1-6)로 예언하고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로는 그분의 영원한 기원에 있어서(5:2下- 요1:1). 베들레헴에서 사람으로 출생하심에 있어서(5:2上 - 마2:1). 그분이 천년 왕국(계 20:4, 6) 안에서 통치자, 목자, 이스라엘의 평강이 되심에 있어서(5:2中, 4上, 5上). 그분이 크게 되심에 대해서(5:4下). 그분이 앗수르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에 있어서(5:6下), 그리스도의 긍휼(7:19 -요13:1) 에 대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

5. 시기: 사역의 대상은 북조 이스라엘(유다도 포함)임. 사역의 장소는 유다이며 미가서의 역사적 배경은 왕하 15-20장에서 알 수 있다. 미가의 사역 시기는 이사야와 호세아의 시대인 주전 750-710년경으로 약 40년간이다

6. 기록목적: 범죄로 인한 전 이스라엘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과 마지막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회복을 선포함으로 바른 신앙의 삶을 권면하고자 기술하였다.

7. 핵심단어: 야곱, 시온, 만국, 남은 자, 행하다, 듣다, 공의

요절: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7: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 제목(명칭의 유래): 본서에 기록된 선지자의 이름을 따서 나훔이라 하였다.

2. 중심내용: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원수인 앗수르를 심판하여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임을 예언한 것으로 나훔은 주전 607년경 예언한 요나보다 약 150년 후에 등장하여 요나 후 약 100년 지난 후에도 여전히 강포한 민족 니느웨를 대상으로 심판 선언하고 있다.

3. 저자: 나훔 선지자의 출생은 오랬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나훔서는 “엘고스 사람 나훔”(1절)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러나 엘고스란 명칭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결정적인 근거 자료가 없다. 교부 제롬(Jerome:340-420 고대 로마의 종교가-역자주)은, 엘고스라고 불리우는 마을은 갈릴리에 있으며 엘고스에 남아 있는 몇몇 유적이 나훔이 이곳에 살았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증거는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제롬은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보냈으므로 이 지방에 있는 마을들과 도시들에 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주석가들은 나훔이 갈릴리 사람이라는 신빙성 있는 증거를 들어 나훔이 이스라엘의 북부 갈릴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났다고 말한다. 갈릴리는 가버나움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이곳은 선지자 나훔보다 더 위대한 그리스도의 생애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가버나움은 ‘나훔의 마을’, 또는 ‘나훔의 촌’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가 이러한 의미로 이 지방의 이름을 지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지명은 바로 조국의 대적들이 멸망을 선포한 하나님의 예언자 나훔이 이 지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민족에 의해 자연스럽게 명명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훔 선지자가 날마다 거닐었던 한 작은 마을이 얼마 후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성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시고 거니시면서 명상에 잠기셨던 그 호숫가를 나훔도 똑같이 걸어다녔고 기도와 명상에 잠겼던 것이다. 나훔이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보냈던 그의 고향에 육 백년 후에 하나님의 아들의 발자취가 남겨지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라. (엑셀, 강해설교대전)

4. 특징: 나훔의 득의양양하고 강렬한 표현들은 바로 그의 조상의 땅 이스라엘의 평화와 번영과 생명 그 자체를 늑탈한 거대한 앗수르 제국을 향한 분노로 더욱 강하게 채색되어 있다. 나훔의 무자비한 표현이 앗수르에게는 무시무시하고 암울한 재앙의 말이라면 이스라엘에게는 빛나는 위로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나훔의 단호한 예언은 앞으로 앗수르의 감옥이 열리고 찬란한 날의 여명이 밝아 온다는 확신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다. 나훔은 참으로 진정한 시인이며, 히브리 예언자였다. 많은 사람들은 나훔의 문장이 매우 간결하면서도 박진감이 넘치고 힘차며 생동감이 넘치고 타는 듯한 열정이 숨겨져 있음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나훔은 적 앗수르를 향하여 매우 비정하고 가혹했다. 그러나 우리는, 앗수르는 나훔과 그의 백성의 원수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대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나훔의 무정하고 가혹한 표현은 경건한 믿음에서 솟아 나온 열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나훔의 말은 모두가 승리의 용기를 주는 음악이며 승전의 전장에서 부르는 나팔 소리였다. 그는 마치 니느웨 멸망의 전말을 친히 주목한 사람처럼 생생하게 그려냈다. 또한 그는 니느웨가 그의 눈앞에서 방금 멸망한 것처럼 그 황폐를 기뻐했다. 이처럼 나훔의 문체는 구구절절이 힘차고 생동감이 넘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기: 나훔서는 주전 663-612년내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고고학적 조사로는 니느웨가 612년에 멸망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나훔의 예언은 아마도 니느웨의 멸망 얼마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주전 713년경으로 히스기야 왕 14년.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후(주전 720년경). 애굽이 앗수르에 의해서 패배 당한 후(주전 714년경, 참고 사 20장). 유다가 앗수르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있을 때 큰 성 니느웨에 대하여 선포한 것이다. 사역의 장소는 남조 유다이다.

6. 기록목적: 나훔은 예레미야, 하박국, 스바냐와 함께 남왕국 유다에서 선포한 선지자이다. 북왕국의 이스라엘은 약 1년전에 앗시리아에 사로잡혀 갔다(주전722년이나 721년). 니느웨 사람들(앗수르인들)은 나훔서가 기록되기 100년 전에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으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그들의 후손에게 물려주지 아니하였으며 백성들은 금방 심한 우상숭배에 빠졌다. 그들은 이미 사마리아(북왕국)를 멸망시키고 주전 701년에는 예루살렘을 거의 점령하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백성을 멸해야 했다. 이제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막대기로 사용했던 백성을 징벌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본서는 피의 도성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을 선포하고 장래의 구원으로 유다를 위로하고자 기록한 것이다.

7. 핵심단어: 내가 네 대적이 되어, 진멸, 니느웨

1. 제목(명칭의 유래): 하박국이란 히브리어는 「품에 안다」 혹은 「달라붙다」를 의미하며,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품에 안거나 하나님께 달라붙음으로써 그분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2. 중심내용: 하박국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제3장의 내용이 앞의 두 장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승리의 절정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는 본서 전체를 통하여 신정론(神政論)을 보게 된다. 이 예언서의 구조는 구약에서 독특한데 그것은 신학적인 내용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처음 두 장에는 여호와와 선지자 사이의 대화가 들어있는데 그 대화 속에서 선지자는 몇몇 시편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함과 아울러 거룩하신 분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러한 악을 참으실 수 있는지를 알려 달라고 여호와께 요구하기도 한다. 제 3장은 기도이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목적을 성취하여 달라고 즉, 수년내에 주의 일을 부흥케하여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함으로 시작하고 있다(2절). 이 기도에 이어 그는 하나님께서 권능을 발휘하시고 세상에서 영광을 드러내시는 이상을 받게된다. 그 이상의 결과로 선지자는 경외와 확신에 휩싸이게 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3. 저자: 하박국의 의미는 ‘강하게 껴안는 자’ 혹은 ‘견고하고 친밀하면서도 부드럽게 포옹하는 자’이다 루터는 그의 이름에 관해 다음과 같이 간단 명료하게 해석했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의 민족을 껴안아 자신의 팔로 데리고 가는 사람’이다 즉, 하박국은 마치 어머니가 칭얼대는 아기를 껴안아 울음을 달래어 주듯이 그의 백성을 품에 안아 높이 들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다. 그는 그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머지 않아 모든 것을 의롭게 만드실 것이라고 위로하면서, 백성들의 불평을 그치게 해준다.”(엑셀, 강해설교대전)

4. 특징: 이 간단한 소책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영적 통찰력으로 인해 종교 문학사에서 주목할 만하다. 2장4절에서 하박국은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불후의 진리를 말한다. 죄는 파괴된 관계, 즉 하나님을 거역하며 멀리하는 행위이다. 믿음은 회개하고 하나님을 겸손히 신뢰함으로써 그처럼 파괴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믿음이 하박국에게 있어서는 겸손히 신뢰하는 것 이상의 것인데 그것은 믿음의 생활을 특징짓는 하나님께 대한 변함없는 순종 즉 충성심이다. 이러한 영적 진리가 참 종교와 거짓 종교를 구분하여 준다. 믿음에 대해 이처럼 깊이 이해함으로써 본서는 신자들의 영적 생활에서 소멸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믿음은 단순히 신봉되는 어떤 교리가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방식이다. 그것은 매 순간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잘못되고 모든 소유를 잃으며 먹을 것이 하나도 없을 때에도 자신은 여전히 구원의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것이라고 하박국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만 계시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이 믿음이며 모든 사람은 삶의 종국에 이르게 될 때 그것을 알게될 것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하박국 선지자는 므낫세(기원전692-642년 재위, 히스기야의 아들)의 통치 기간 말기에 사역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박국이 므낫세 왕 이후에 생존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즉 유다가 멸망의 일로를 걷고 있던 여호야김(기원전 608-597년 재위-역자주)왕의 통치 기간에 하박국이 생존하여 사역했다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하박국이 바벨론의 침략이 있기 전에 예언하였으며 이는 그가 바벨론의 침략에 관해 눈 앞에 보는 것같이 생생하고 강력한 어조로 예언했기 때문이다. 선한 왕 요시야가 애굽 왕 느고와 함께 앗수르를 치다가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되자 유다는 곧 바벨론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이런 재난이 닥치게 되자 예루살렘과 유다는 요시야 왕이 생존했었더라면 그런 참화를 면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요시야 왕을 생각하며 애통해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가 갑작스런 큰 재앙을 막기 전에 있었던 유다의 짧은 황금기에 생존하면서 예언서를 쓰고 노래를 지어 하나님을 찬미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 의와 심판의 선지자 하박국은 단호하게 예언하였다. 왜냐하면 이 때는 짧은 부흥의 기간이었으나 아직도 패역한 죄악이 땅에 충만했으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불원간에 이들에게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엑셀, 강해설교대전)

6. 기록목적: 악한 갈대아인을 심판하므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고 유다의 신실한 자를 위로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성도에게 신앙의 용기를 주고자 기록되었다.

7. 핵심단어: 어찌하여(3), 화(5)

요절:2:2, 4,20;3:2

1. 제목(명칭의 유래): 스바냐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숨기신다' 또는 '여호와께서 숨기셨다' 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여호와께 예배하는 자를 환난 중에 숨겨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2. 중심내용: 여호와의 날에 바벨론의 침략을 예시하며 열국과 유다의 예루살렘에 내릴 심판을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계속되는 심판의 경고속에서도 이방에 대한 축복과(3:9) 유다를 위한 회복을 약속하고 있음이 특이하다.

3. 저자: 본서의 저자인 스바냐에 대해서는 구가 본서 서두에서 밝힌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본문에서도 역시 그의 개인적인 신상에 대한 언급은 없다. 1장 초두에서 스바냐는 자신을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1절)고 소개하고 있다. 보통 부계족의 이름만 기록하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는데, 본문의 계보는 스바냐의 제 4대까지를 밝혀주고 있다. 여기서 맨 처음 언급된 히스기야는 아마도 경건하기로 유명했던 유다 13대 왕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런 추측이 절대 정확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 추측이 사실이라면 잠언25:1이나 이사야38:9에서처럼 본문에서도 분명 ‘유다 왕 히스기야’라고 명시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물론 본문에 기록된 4대의 계보가 히스기야 왕으로부터 요시야 왕 사이의 기간과 일치한다고 생각할 여지는 충분히 있으나, 히스기야라는 이름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전혀 사용되지 않았던 바가 아니었으므로, 그 이름만 갖고서 본문의 인물이 바로 히스기야 왕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마도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일 것이다. 즉, 본문에 기록된 계보 중에서 히스기야 왕과 똑같은 이름이 언급 되고는 있으나, 그에 대한 어떤 뚜렷한 증거는 없다고 말이다. 스바냐라는 이름은 여러 가지 의미로 풀이되는데 대개 ‘여호와께서 숨기신다’는 한 가지 의미로 종합할 수 있다. 성경에는 이 이름을 가진 자들이 여럿 등장한다(왕하25:18;대상6:36;슥6:10,14). (엑셀/ Anonymous.)

4. 특징: 서두에 본서의 저자를 말하는데 보통 부계족의 이름만 기록하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음에도 본문에서는 스바냐의 제 4대까지를 밝혀주고 있다. 바로 4대조가 히스기야 왕이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5. 시기(역사적 배경): 스바냐는 므낫세왕의 재위 기간(즉,주전 697-642년) 중에 출생하였지만, 요시아왕의 재위 초기에 이르러 (즉, 주전 627-626년) 비로소 선지자 직분을 맡게 되었다. 아마도 스바냐서는 이 기간에 쓰여진 것 같다. 주전 697-642년의 므낫세왕의 재위기간과 주전 642-640년의 아몬왕의 재위기간에 걸쳐 행해진 악정(惡政)은 막을 내렸다. 요시아왕이 유다의 왕위에 올랐을 때에도 반 세기 이상 만연된 배교적 상황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요시아왕의 통치 초기인 주전 627-626년경에, 스바냐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경고하기 시작하였다. 요시아왕의 치하에서 잠시 동안 다시금 율법이 준수되고 여호와께 예배가 드려지긴 했으나, 백성들은 여전히 비밀리에 우상을 숭배하였다. 이러한 위선적 행동을 알게 됨으로써 젊은 선지자 스바냐가 활동을 하게 된다. 비록 왕이 이 선지자를 개혁 운동에 동참시켰지만 악한 풍조는 계속되었다. 사악한 풍조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을 그의 진노하심의 막대기로 사용하시게 되었다. 주전 722년에 일어난 사마리아의 멸망은 하나님의 권능과 정의를 엄숙히 상기시켜 주는 사건이었다. 그의 사역시기는 하박국과 예레미야의 시대인 주전 630년경으로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아의 시대이며(1:1, 참고 왕하 22-23장, 대하 34-35장) 사역의 대상은 유다와 예루살렘이고 사역의 장소는 유다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 기록목적: 다가올 심판에 대하여 여러 국가들에게 경고하고 장차 다가올 구원을 예언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들어내고자 기술하였다.

7. 핵심단어: 심판, 회복,

요절: 습 1:15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습 2: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1. 제목(명칭의 유래): 학개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나의 절기」 혹은 「여호와의 절기」를 뜻하며, 이는 신언자 학개가 포로된 데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절기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대했음을 상징한다.

2. 중심내용: 여호와의 전 건축은 오늘날은 하나님의 백성의 번영과 관련되며, 회복의 시대에는 메시야와 함께 한 천년 왕국의 도래와 관련되었다.

3. 저자 및 저작연대: 저자는 구약에서 유일하게 학개라는 이름을 가진 자인데 이 이름의 의미는 "축제의" 또는 "즐거운"이다. 그는 개인적인 생애가 알려져있지 않은 선지자들 가운데 하나이다. 에스라에 의해 언급되고 있는(스5:1;6:14) 그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남은 자들을 위하여 사역한 포로기 이후 최초의 선지자였다. 그의 예언의 시기는 다리오왕 2년인 주전 520년이었음이 명백하다. 학개는 아마도 포로기인 주전 6세기초에 출생했을 것이다. 그와 동시대에 선지자 직분을 수행한 자는 스가랴였다 (학 1:1및 슥1:1을 비교하여 보라, 스5:1및 6:14도 참조하라).

3. 특징: 학개는 지금 우리 세대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을 경시하지 말기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는 나중에 재건되고 있던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보다 영화롭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옛 성전에서보다 새 성전에서 더욱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것이라고 말하였다. 학개가 문제시하였던 경향은 오늘의 우리 가운데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과거에 우리가 구원받은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구원이 오늘날에도 있을 수 있을지에 대하여 의심한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소유하였던 신앙과 영적 투쟁 그리고 그밖에 성취했던 일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후손들이 그들처럼 행할 수 있을지를 온전히 믿지 못한다. 우리는 오래 전 ‘지존자’께서 오른손을 펴사 큰 역사를 이루시던 그 때를 회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지상에서 여전히 운행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지금도 우리 인간들과 친근한 관계를 맺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잠을 주무시거나 혹은 낙담하고 계시지 않는 것이다. 이 선지자는 또한, 만일 우리 스스로가 거룩하지 못하다면 거룩한 의식을 많이 거행한다고 해도 우리를 깨끗하게 하거나 갱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고대의 레위기적 율법으로부터 도출해 낸 그 비유는 그 자체가 갖는 의미 때문에 오늘날에도 가치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외적인 종교 행위만을 하더라도, 그러한 종교 행위가 자신들이 살면서 범한 죄와 실수 그리고 연약함 또는 이기적 허물 등을 속죄해 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중대하고도 사악한 오류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외면이 아니라 그 중심을 살피고 계시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겉옷이 아닌 마음을 찢기 원하신다.(엑셀/ Original Secession Magazine.)

5. 시기(역사적 배경): 포로(주전 586년) 이전의 선지자들은 유다왕국이 새로운 바벨론 제국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또한 70년 후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을 고국으로 귀환케하시리라는 것도 계시되었다(렘 25:11,12;단9:2). 바사왕 고레스가 바벨론 군대를 무너뜨렸을 때 그는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으로 귀환하여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도록 호의를 베풀었다. 새성전의 기초가 놓이고 공사가 시작되자 그들을 대적하는 이웃 나라들이 공사를 중단시키려고 간계를 꾸몄다. 공사를 중지시켰으나 외적인 반대만이 유일한 문제였다. 하나님의 전을 재건키로 작정하고 귀환한 5만명의 포로들은 무관심하게 되어 다리오가 바사의 왕위에 오르기까지 성전은 16년동안 방치되었었다. 백성들이 성전 재건에 착수하도록 그들을 깨우치고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학개(에 이어 스가랴)를 보내셨다. 학개의 메시지가 단지 건축의 문제에만 관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것은 그가 그러한 문제에서부터 시작하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임재 장차 세워질 하나님의 지상 왕국, 사악한 세상 권세들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민족들을 위해 예비된 축복 등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6. 기록목적: 주님은 성전 영광의 회복자로(2:7-9), 이 세상 왕국을 멸망시키는 자(2:22)로, 이스라엘의 인장 반지로(2:23)로 계시하면서 낙담하거나 우선순위를 상실하여 성전공사를 계속하지 못하는 백성들을 권고하며 성전공사를 완료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7. 핵심단어: 살펴볼지니라, 여호와의 말씀, 만군의 여호와(13), 여호와의 전(3), 성전, 영광(4)

요절: 학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스가랴는 선지자요 제사장이며 그 이름은 다.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뜻이다.

2. 중심내용: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

3. 저자 및 저작 연대: 스가랴는 학개와 동시대 인물로서 주전 520년에 예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책에 나타난 가장 늦은 연대는 다리오 왕 4년인 주전 518년이다. (다리오왕 사년 구월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슥7:1). '스가랴'라고 불리운 사람이 스물 아홉 명에 이를 정도로 이 이름은 구약 성경에서 흔한 이름이었는데,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뜻이다. 자유주의 학자들은 문체 및 주제상의 차이점을 연구하여 1장에서 8장과 9장에서 14장은 서로 다른 저자에 의해 쓰여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9장에서 14장은 메시야의 도래 및 여호와의 지상 왕국과 관련된 묵시적 사건들을 드러내기 위해 나중에 기록된 듯 하며 이러한 사실이 문체 변화의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스가랴서의 모든 내적 증거를 볼 때 저자는 여러 사람이라기 보다는 한 사람이라 하겠다. 스가랴: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 베래가: 여호와께서 축복하신다. 잇도: 정해진 때 이 셋이 또한 이 책의 내용이 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4. 특징: 바사 왕 다리오 휴스타페스(Darius Hystaspis)가 성전을 재건하라는 명을 다시 내렸을 때, 성전을 재건할만한 능력과 열정이 유대인들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도 목도하였다. 성전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성전을 재건하는 것에 무관심하는 것은 곧 영적 퇴락과 죄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전을 다시 재건하려는 유대인들의 열정을 고취시키고, 동시에 그 열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일이 시급하였다. 그래서 학개 선지자는 처음으로 그들에게 성전을 재건하도록 촉구하였으며, 두 달 후에 스가랴 역시 학개와 동일한 메시지를 선포하였던 것이다. 한편 스가랴 선지자의 메시지는 학개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백성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들이 연관시켜 설명하였기 때문이다.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참다운 여호와의 종교를 회복하게 하고, 또한 그들이 성전을 재건하는 데 있어서 지체지 않고 즉각적으로 실행하도록 격려하는데 그 주안점이 있었다. (엑셀/ T. V. Moore, D. D.)

5. 시기(역사적 배경): 바사 왕 고레스는 주전 538년경 성전을 재건키 위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귀환을 허락하는 칙령을 내렸다. (대하36:22 ,23, 스1:1-4). 약 오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포로들이 이 관대한 정책에 따라 그들의 땅에 다시 정착하여 성전을 복구하였다. 그들은 주전 536년 제 2월에 성전의 기초를 놓았다. 그러나 성전 재건에 참여를 거절당한 사마리아인들이 이 계획을 방해하여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하였으며,스4:5) 거의 14년 동안 작업이 중단되었다. 다리오가 바사 왕으로 즉위한 주전 522년에 학개와 스가랴는 백성들을 일깨워 재건 작업을 다시 시작하도록 하였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가 각각 재건 작업을 이끌어 나갔다. 유브라데강의 서편 총독 닷드내가 왕에게 올린 글로 인하여 또 다시 작업이 중단되었으나 다리오왕은 고레스 왕이 내렸던 칙령을 재확인하였다. 그러나 이 때에 이르러서는 불행하게도 유대 백성들의 태도가 변하였다. 그들은 성전 재건에 있어 방해를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학개와 스가랴는 백성들의 무관심을 일깨우려고 애를 썼다. 백성들이 이에 호응하여 성전은 다리오 왕이 즉위한지 여섯해가 되는 주전 516년에 완성을 보았다. 스가랴가 비록 성전의 복구라는 주제로 출발하긴 하였으나 그는 백성들의 영적 생활 및 메시야의 통치와 재림으로 이어지는 예언적 사건들에 대한 것도 다루고 있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 기록목적: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는 섭리자이시며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분이심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본서를 기록했다.

7. 핵심단어: 헥심단어: 만군의 여호와(52), 질투, 순 ,왕, 내가 보니, 목자, 예루살렘

요절: 슥8: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슥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1. 제목(명칭의 유래): 말라기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나의 사자」를 의미하며, 이는 말라기가 여호와의 말씀을 사역하도록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보내심 받은 하나님의 사자였음을 상징한다.

2. 중심내용: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자로 오시기 위해 이스라엘 중 제사장들의 잘못을 바로잡고 그리스도께서 의로운 해로 나타나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권고하신다.

3. 저자와 명칭: "말라기"(1:1)는 "여호와의 사자"를 의미하는 히브리 인명, 말라기아의 단축형인 것 같다. 전승에 의하면 말라기는 "대회당“의 회원이며 레위인이었다고 한다.

4. 특징: 말라기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 선지자는 언약의 머리되신 분께 반역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외치고 있다. 그는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할 자(3:1 - 마3:3, 언약의 사자(3:1 - 갈3:20, 딤전5:2), 그리스도의 사랑(1:2 - 요13:1; 15:9), 참 제사장(2:5,6 - 히9:26; 10:20,21)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5. 시기(역사적 배경): 말라기에 기록된 상황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의 성전재건, 에스라가 가르쳐준 율법의 지식 (스 7:10, 14, 25, 26), 그후 모세의 율례로부터의 이탈 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느헤미야가 통치했던 주전 450-425년 경에 기록되었던 것 같다. 말라기의 사역시기는 주전 400년경, 느헤미야 시대 사역의 대상은 귀환한 이스라엘인들 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말라기 선지자가 살았던 세계와 당대인들의 성격, 그리고 그가 예언했던 사람들의 형편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당시는 학개와 스가랴가 바벨론의 포로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에게 선포하기 시작한 지 90년 이상, 즉 거의 1세기가 지난 때였다. 그 당시 바사의 왕위에는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Artaxerxes Longmanus)가 앉아서 유대의 히브리인들로부터 조공과 충성을 받고 있었다. 이때는 B.C.425년경을 전후로 하는 시기일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것이 정확한 연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거의 비슷한 시기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성전 재건은 이미 완수된 터였다. 스가랴 선지자가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 일어나서 일을 하도록 환상과 징조를 보여준 것이 효력이 없지 않았다. 또한 주님께 아낌없이 드림으로써 번영이 왔다는 학개의 선포로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자의 외침을 듣고 사람들은 무가치하고 이기적이며 무기력한 상태에서 떨쳐 일어났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성전을 지었다. 오래지 않아 시온 언덕은 또다시 여호와의 성소로 치장되게 되었다. 영적인 생명력과 기쁨이 소생된 것이다. 제사장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제물을 드렸고 성전 안에서 사람들을 대신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 그렇지만 이러한 화합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학개와 스가랴의 외침을 듣고서 반응을 보였던 세대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그 이후의 사람들은 열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은 나태하고 게을렀다. 그들은 자기들의 선조들이 그렇게 재건하고자 애썼던 예루살렘 성읍을 미완성인 채로 버려 두었으며 선조들이 일으켜 세운 성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또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도 않았다. 설혹 주님의 제단에 희생제를 드릴 짐승을 가지고 올 때에도 가장 형편없는 것들을 가져오기가 일쑤였다. 그들이 데리고 온 짐승들은 바사의 통치자에게 바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형편없는 것들이었다. 사정은 제사장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성의 없이 드려지는지에 대해 아예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맡은 직무를 명확히 깨닫지도 못한 실정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을 부르신 하나님께 대하여 매일 불명예를 안겨 드리는 일을 행하였다. (엑셀, 강해설교대전).

6. 기록목적: 성전 재건 후 한 세대가 지나고 남은 자들은 그들 조상의 영적 열심은 상실했고 제사장과 백성은 타락했다. 그래서 사회적, 도덕적 부패를 꾸짖으며 타락한 남은 자들에게 경고하며 메시야의 도래를 선포하기 위해서 본서를 기록했다.

7. 핵심단어: 만군의 여호와(2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20), 어디 있느냐 하는도다, 사자(2), 여호와의 날, 기억하라.

요절: 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1. 제목(명칭의 유래): 대부분의 사본에 나타나 있는 이 복음서의 명칭은 “-- 에 의한 복음”으로 실제로 영어 번역본과 일치한다.(마가복음 참조)

 

2. 중심내용: 영적 메시지

마태복음의 위대한 신학적 주제는 다음과 같다. 즉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기 위하여 오신 히브리인에게 약속된 메시야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자신의 백성들로부터 거절당했으며 "유대인의 왕"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마태복음 어느 곳을 읽어보든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구약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모든 율법과 예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3. 저자

초대교회의 많은 역사적 증거로부터 마태복음의 저자가 마태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강화들을 모두 기록할 수 있었으며 숫자에 익숙했다는 것과 돈에 관한 그의 빈번한 언급과 많은 액수에 대한 그의 관심(마18:24:25:15), 그리고 통계에 관한 그의 관심(마1:17)등에서 전직이 세리였던 마태야 말로 이러한 복음서를 기록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4. 특징:

마태복음은 분명히 새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이 책에서는 예수님의 교훈이 뚜렷하게 5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이것은 아마 모세 5경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연대기적 구성안에서 전반부는 (1-13장)는 뚜렷하게 주제중심으로 기술되어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마태복음 저작 당시(A. D. 63-65년)의 팔레스타인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위기에 처해 있었다. 사회는 급속도로 무정부화 되고 있어서 다른 어떤 방면으로도 구제될 것 같지 않았다. 따라서 유대인 개종자들을 위해 오랫동안 구전과 독자적이고 단편적인 기사들로만 전해져 오던 복음의 사실을 어떤 확고 부동한 형식으로 확립하려고 열망한 데에는 납득이 갈만한 이유가 있었다.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은 후 유대 국가를 둘러 싼 위기는 더욱 분명해졌다. 총독 벨릭스는 “온갖 잔인함과 욕망에 사로잡혀 모든 혼과 정성을 기울여 왕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정복자와 자존심이 강한 정복된 민족 사이에 상존한 오랫동안의 상호 불신으로 인하여 굳건한 정부를 세운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베스도(Festus; A.D. 60-62)의 2년간의 정직한 노력도 유대를 이 무정부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를 계승한 알비누스(Albinus; A.D.62-64)는 어느 지역에서든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단지 금만을 긁어모으는 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유대를 다스리는 동안 모든 감옥의 문을 열어 “감옥은 텅 비워 두고, 온 땅을 도둑으로 득실거리게 만들었다.” 촛불이 그 강렬한 백색광으로 말미암아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우듯이 알비누스의 비행도 그 후계자들의 비행 때문에 그다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게시우스 플로루스(Gessius Florus; A. D. 64-66)는 산적이 왕좌를 훔쳐 그 자리에 오른 격이었다. 요세푸스는 그의 행실을 표현할 적절한 말을 거의 찾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이렇게 해악이 끊이지 않고 계속됨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회는 분열되었고 박해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사도들은 복음이 더 이상 전승에 의해서만 보존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었음이 틀림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 세상을 떠났고 마태도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따라서 마태는 교회가 간직하고 있던 복음의 비밀을 이 복음서에다 기록해 놓았다. (엑셀/ Archbishop Wm. Thomson)

 

6. 기록목적: 마태복음이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을 위하여 쓰여졌다(이레니우스와 오리겐의 증언)

 

7. 핵심단어: 자 보라 이루어 졌도다, 의의 왕국, 아버지께 드릴 경배, 천국(36), 하나님(46), 예수(264)

요 절: 1:2:2

 

 

 

1. 제목(명칭의 유래): 현재의 마가복음은 마가 자신에 의해서도, 그리고 그 이후의 신약성서 편집자들에 의해서도 마가“의” 복음(the Gospel "of" Mark)이라 지칭되지는 않았다. 복음서 기자들의 시대에는 ‘복음’이라는 단어를 어느 특수한 종류의 책이나 인물의 전기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 말은 더욱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복음은 기쁜 소식‘(good news)'을 뜻했으며,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그 말을 모든 기쁜 소식 중에서도 가장 기쁜 소식, 즉 죄인들의 거룩한 구세주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뜻하는 것으로 특별하게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4복음서 기자들의 저작을 모두 합하여 집합적으로 ’복음서(the Gospel)'라 불렀다. 이 개개의 복음 기록은 그것을 편집한 각 복음서 기자들에 “의한” 복음서였다. 그런데 그것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막1:1)이라는 면에서 볼 때 하나였다. 그러나 각 복음은 나름대로 특수한 전기적인 진술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각 복음의 이름에 "...에 따른“이라는 구절이 붙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이 주장했던 바와는 달리 ”...에 따른”이라는 어귀는 “...의”와 정확하게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복음서는 저자의 정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노력의 산물이 아니었다. 한편 각 복음서들의 형식을 “질그릇”에 비유될 수 있다. 질그릇이 일정한 크기와 형태를 가지고 대칭적 조화를 이루고 있듯이 각 복음서들의 형식은 특유한 형태를 띠고 나름대로 전파, 전승되었다. 대부분의 사본에 나타나 있는 이 복음서의 명칭은 실질적으로 또는 전적으로 영어 번역본과 일치한다. 수리아 펄럭시니어(Syriac Philoxenian 판에서는 복음서라는 단어 앞에 거룩한 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에 따른 이라는 어귀는 바뀌어진다. 다시 말해서 거기에는 마가의 거룩한 복음서로 되어 있다. 수리아 퍼쉬토역에서는 적절하지는 않지만 전치사에 의해서 제시되어지는 관념을 보다 더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 즉, 거기에는 전도자 마가가 선포한 거룩한 복음서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엑셀/ J. Morison, D. D.)

 

2. 중심내용: 고난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죽음을 통한 구원을 기술하고 있다.

 

3. 저자: 마가복음 자체는 익명으로 되어 있으나 여러 가지 내 외증을 보아 마가가 틀림없다.

 

4. 특징: 마가의 문체와 있는 그대로를 사실대로 보고하는 점에서 마가의 생생한 사실주의적 특성이 나타난다. 사건들은 상세한 해석없이 서술되고 있는바 사건의 묘사는 목격자만이 서술할 수 있는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진다. 놀라운 생동감과 긴박감이 이 복음서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이 행동적인 복음서에 나타나는 특징적인 단어는 '유두스'(euthys)인데. 이것은 약41회 정도 나오며 "즉시, 바로, 당장, 곧"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본서의 많은 부분에서 특별히 강한 의미의 단어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다른 두 공관복음에는 "이끌리다"(마4:1; 눅4:1)로 나오나 마가복음에는 "몰아내다"(1:12)로 나오는 것 등이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신약성서에는 본서가 쓰여진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언급이 나타나 있지 않지만 가장 적합한 연대는 주후 67-70년경이 될 것이다. 비록 크리소스톰이 마가복음은 애굽에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기록 장소로서는 로마가 더 타당한 것 같다.

 

6. 기록목적:

마가복음이 로마 사람들에게 보낸 두번째 복음이라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한다. 마가복음의 목적은 1:1절에 표현한데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술하여 전도를 중심으로(1:-10:) 한 예수님의 행적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대속적 성격을(11:-16) 기술함에 있다.

 

7. 핵심단어: 곧(59), 예수(241), 인자(14), 복음(8), 비유(12)

요절: 막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대부분의 사본에 나타나 있는 이 복음서의 명칭은 “-- 에 의한 복음”으로 실질적으로 또는 전적으로 영어 번역본과 일치한다.(마가복음 참조)

 

2. 중심내용: 누가복음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치심은 인간을 죄에서 건져내고 생명과 희망으로 이끄시는 일에 집중되어 있으며 구세주 되시는 예수님의 품성과 목적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중심 주제이다. 예수님의 기적과 비유 및 교훈과 활동들은 그의 구원의 능력과 의지를 예증하고 있다.

 

3. 저자: 교회의 공통된 증언에 따르면 이방인 의사이며 바울의 동역자였던 누가가 제 3복음서의 저자였다고 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밀접한 관련성은 두 책의 저자가 동일 인물이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그 사실은 저자의 신원을 밝혀주는 단서들이 한 책에서 제시될 수 있다면 그것들은 다른 책의 모두 해석에도 적용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두 저작은 모두 동일한 사람, 곧 데오빌로(눅1:3; 행 1:1)에게 서신으로 보내진 것이다. 문체의 유사성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가르침의 연속성, 성령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것 이방 선교에 대한 관심, 그리고 당시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인식등은 두 책이 의도적으로 통일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을 근거로하여 저자에 관해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실들은 또한 누가복음에도 적용될 것이다.

 

4. 특징: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내용과 일치하는 누가복음의 대부분은 사도들의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가르침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널리 인정받고 있는 견해에 따르면, 누가는 마태와 마찬가지로 마가복음과 특별한 강화(講話) 자료를 이용했다고 한다. 누가 자신의 증거에 의하면 그가 다른 기록들에 대해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지만(눅1:1,2), 그것들을 어느 정도 참조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누가가 사용한 자료 중 많은 부분은 독특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된 사건들에 대한 그의 보고는 관점과 몇 가지 세세한 면에 있어서 마태의 그것들과 다르다. 그는 예수님의 비유들을 더 많이 수록하였고 비유 각 등장 인물들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부활에 대해 기록하면서 그는 다른 복음서에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엠마오 도상에서의 사건을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독특한 기사들을 목격자들로부터 수집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묘사한 사건들의 현장에 직접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첫머리에서도 그는 자기가 그렇게 했음을 밝히고 있다(눅1:2). 또한 그는 후에 자기에게 증거를 제공해 준 사람들을 언급한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복음서의 처음 두 장(chapter)의 내용을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다른 여인들(눅8:3)이 그에게 자신들의 기억을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만약 누가가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팔레스틴 지방을 여행했다면 그는 예수께서 전파하시고 가르치시는 것을 직접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들은 바 있는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는 많은 교훈의 적용들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사도행전이 갑작스럽게 끝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누가는 바울이 로마에서 2년간 투옥되었던 끝 무렵에 그의 글을 끝맺은 것 같다. 사도행전 서론에 나타난 바와 같이(행 1:1) 만일 누가복음이 사도행전보다 먼저 기록되었다면, 그것은 늦어도 로마에서의 감옥생활이 끝나던 62년 이전에 기록되었음에 틀림없다. 아마도 누가는 바울과 함께 사역하던 10년 동안 복음서 기록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했을 것이다.

그리고 로마 여행차 바울과 함께 팔레스틴을 떠나기 전에 그것을 가이사랴에서 그의 친구인 데오빌로에게 보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누가복음은 보다 일찍 즉 58년에 기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포위와 함락에 대한 암시(눅21:20-24)를 근거로 일부 사람들은 누가복음이 틀림없이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6. 기록목적: 누가복음은 사도 시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것으로서 예수님의 생애를 가장 완벽하게 묘사한 기록이다. 그것은 구세주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생애를 충분히 소개하기 위하여 계획된 것이다.

 

7. 핵심단어: 인자. 요절 19:10; 24:19

 

 

1. 제목(명칭의 유래): 대부분의 사본에 나타나 있는 이 복음서의 명칭은 “-- 에 의한 복음”으로 실질적으로 또는 전적으로 영어 번역본과 일치한다.(마가복음 참조)

 

2. 중심내용: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됨을 메시야의 표적과 이적을 기술함으로 증거하고 있다.

 

3. 저자:저자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그는 '사랑하시는 제자(21:20, 23, 24)'요 베드로의 측근에 있는 동역자라고 지적되어 왔다. 이레니우스는 이 사람이 세베대의 아들 요한(21:2을 참조하라)이라는 고대 교회의 증언을 이야기한다.

 

4. 특징: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들보다 신학적이며 해석적인 성격이 많고 성격상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데 초기 유대전도의 모든 사건을 기록(2:13-3:36)하고 있으며 본서에 기록된 8개의 기록중 2개를 제외하고는 요한복음에만 있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특히 강조( 2:11, 23, 3:2, 4:54, 9:3을 20:30,31와 비교)하고 있으며 본서는 대부분을 주님의 마지막 20일 되어진 일에 전승시키고 있다. (본서의 2/5가 수난주간사건) 또 예수에게 많은 칭호를(말씀, 하나님의 양, 세상의 빛, 선한 목자, 문) 붙여 사용하고 있다.

또 요한복음만의 특수 자료로 가나의 혼인잔치(2), 예수와 니고데모(3), 예수와 사마리아여인(4), 베데스다 병자치유(5),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심(7), 간음하다 잡힌 여인(8), 실로암 맹인 치유(9), 나사로 소생(11), 세족식(13), 보혜사 성령약속(14, 16), 예수의 대제사장적 기도(17),등이 사용되고 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전승에 따르면 요한은 그의 말년을 에베소에서 보냈는데 그 곳에서 그는 설교하고, 가르치며 저술 활동을 하였다. 도미티안 황제가 통치할 때에 그는 바로 이 곳에서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다. 그의 복음서는 공관복음서에 대한 지식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으며, 따라서 복음서들 가운데 마지막에 자리하였고 그 시기는 대략 주후 80-90년 사이로 볼 수 있다. 애굽에서 발견된 본서의 단편들이 주후 2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 저작 시기는 주후 1세기 이내임을 알 수 있다.

 

6. 기록목적:

이것은 요20:31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자료의 선택은 정확히 이러한 결론이 내려지도록 계획되어진다. 부수적인 목적으로는, 예수님의 참된 인성을 부인하는 가현설에 대한 논박(1:14을 참조하라), 그리고 유대교가 약속된 메시야를 거절함으로써 죄중의 죄를 범한 부적합한 종교체계임을 폭로하는 것(1:11)등을 들 수 있다.

 

7. 핵심단어: 믿다(98), 세상(78), 유대인(71), 알다(55), 영광을 돌리다(42), 내 아버지(35)

요절: 20: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우리가 사도행전으로 알고 있는 책명은 본래 붙여 있던 이름이 아니었으며, 주후 2세기에 붙여진 것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두권으로 된 한 책이며 원래의 복음서에 붙여 있던 명칭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이 두권 모두에 사용되었다. 두번째 책인 사도행전이 따로 분리되어 배포되기 시작했을 때에 그 내용을 나타내기 위해 이 명칭이 사용되었다.

 

2. 중심내용: 성령의 역사가 사도들을 통해서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베드로와 바울을 중심으로, 복음의 확산이라는 점에서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라는 구조로 기술하고 있다.

 

3. 저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어느 곳에도 그 저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아마도 바울의 친구요 동역자인 누가라고 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저자를 알게 하는 단서는 세개의 '우리-구문'(we-sections)인데 이것들은 일인칭 복수구문으로서(행 16:10-17,20:5-21:18,27:1-28:16) 사도행전의 저자가 바울의 동역자이며 자신의 여행일지를 자료로 사용했음을 암시한다. 교회의 전승은 한결같이 누가를 바울의 동역자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사도행전의 자료들이 이러한 전승을 뒷받침해 준다.

 

4. 특징: 사도행전의 주된 강조점은 성령의 활동이다. 그 제목을 '성령의 행전'으로 부르자고 하는 학자들도 실제로 있다. 이러한 주장은 특별히 의미있는데 그것은 누가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집중적으로 다룬 누가복음과 성령을 통해 계속 되는 예수님의 사역을 다룬 사도행전을 모두 집필하였기 때문이다. 누가는 사도행전 서두에 예수님의 계속되는 사역을 기록하려 한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 행 1:1).

 

5. 시대(역사적 배경): 사도행전이 쓰여진 시기를 우리가 알지는 못하나, 이 책의 이야기가 끝난 직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대략 주후 62년경에 쓰였다고 볼 수 있다.

 

6. 기록목적: 첫째 교회사를 기술하기 위함이다. 사도행전의 전체 내용은 “베드로의 행적과 바울의 행적”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전자는 1-5, 10-12, 15장에 잘 나타나 있으며, 후자는 7:58과 9장,11:25-30,13-27장에 잘 나타나 있다. 사도행전이라는 명칭을 종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그 명칭을 “교회의 기원”, 즉 교회의 성장과 발전, 더 나아가 이방 선교의 역사라고 붙이는 것이 더 좋을 듯 싶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사도행전의 시작과 끝은 매우 중요하다. 사도행전이 시작되는 곳은 예루살렘이요, 끝나는 곳은 로마이다. 사도행전 첫 부분에서는 세례와 할례를 강조하고 있지만, 외형적으로 볼 때 교회는 120명이 모이는 유대교의 한 분파에 불과했다. 사도행전 끝 부분에 가서야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무너지고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교회가 성립되기에 이른다. 교회의 확장 단계를 지리적인 측면과 교회의 가르침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 사도행전의 주된 목적이다. 둘째 사도 바울의 입장을 변호하고 설명하기 위함이다. 누가가 화평을 목적으로 사도행전을 기술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누가가 무척이나 따랐던 사도 바울을 그 당시 사람들은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 더 신랄하게 공격했다. 그리하여 누가는 다음과 같은 바울의 세가지 면을 널리 고취시키고자 사도행전을 기술하게 되었다. 첫째로 바울의 가르침은 다른 사도들의 가르침과 서로 어긋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둘째로 바울은 상당한 과정을 거쳐서 폭넓은 사상의 경지와 목회 경륜을 쌓게 되었다는 점이다. 셋째로 바울은 유대인들만이라는 편협한 세계관에서부터 교회를 구해냈다는 점이다. 사도행전은 사도행전 이후에 나오는 서신들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내용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사도행전, 그것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놀라운 이야기이다. 더욱더 만족스러운 사실은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 자신들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몸짓을 보고 그들의 어조를 들으면서, 그들의 말 가운데서 그들의 이야기 감각을 찾아낼 수 있다. (엑셀/ D. Fraser, D. D.)

 

7. 핵심단어: 증인 요절:1:8

 

 

1. 제목(명칭의 유래): 로마서

 

2. 중심내용: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이신칭의의 복음을 강조하고있다.

 

3. 저자: 저자와 연대

바울이 이 서신의 저자라는 것에는 거의 의견이 일치한다. 이러한 견해는 1장과 15장의 진술들, 이 사이의 장들 속에 나타난 문체와 논증, 그리고 고대로부터 이 서신을 인용한 사람들의 증언에 근거한 것이다. 이 서신은 바울이 세번째 전도여행 중에 쓴 것이다. 바울이 헬라에서 세 달 머물렀고(행 20:3) 서신을 로마에 보낼 사람으로 겐그리아(고린도 동쪽의 항구 도시) 출신의 여집사 뵈뵈를 추천한 것으로 보아 로마서는 고린도에서 기록된 듯 하다. 그러나 빌립보와 같은 헬라 도시에서 기록되었을 수도 있다. 로마서의 저작 연대는 A.D.53-58년 사이이며, A.D. 55년이나 56년이 가장 가능한 연대이다.

 

4. 특징: 사상의 전개

바울은 그가 독자들이 쓰고자 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약간의 예비적인 설명으로 시작해서(1:1-17) 자신과 독자 사이의 매우 친밀한 관계를 확립한다. 그런 후에 그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나타난 의의 중요성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다(1:18-8:39). 그는 먼저 인간은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지적하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로와질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 신중하게 답변한다. 또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논술함으로써 의의 주제를 더욱 보강하고 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인류를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두 계층으로 분류하여 생각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가 어떻게 이러한 분류를 생각했을까?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계획을 개관하면서 이 문제에 답변한다(9:1-11:36). 여기서 그는 기독교 역사 철학의 명백한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적용하면서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의 사고방식, 태도 및 행동에 대해 특별한 권고를 한다(12:1-15:13). 결론에서 그는 로마의 신도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인다(15:14-16:27). 그들은 그의 전도영역 내에 있었으므로, 그는 그들을 방문하려 했다. 방문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는 서신으로 문안하고, 마지막 경고를 하며, 그들을 세우실 수 있는 단 한 분 하나님에게 그들을 맡겨야 했다.(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로마서는 주후 57년 겨울, 바울이 그의 제 3차 전도여행을 끝마칠 무렵, 즉 고린도에 3개월 간 체류하는 마지막 때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행20:1-6)

 

6. 기록목적: 사도 바울은 이방 교회에서 모금했던 헌금을 가지고 헬라를 떠나 팔레스틴으로 갈 계획이었다. 바울은 여러 이방 교회의 대표자들과 함께 직접 이 헌금을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그는 이방인의 이러한 행동이 팔레스틴의 기독교 형제들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보여주며, 교회의 일치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후 로마로 가려고 했으며, 로마에서 다시 스페인으로 떠나려 했다. 바울은 서방 전도여행을 잠시 중단하고 예루살렘으로 떠나감에 앞서, 그는 이 위대한 로마서를 기록하여 그것을 로마에 보냈다. 로마서는 어떤 종류의 서신인가? 이것은 로마에 사는 일단의 신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이 서신에는 하나님에 대한 심원하며 숭고한 사상이 있으나, 이 사실이 서신으로서의 성격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독자들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했으며(1:9,10) 그들과 교제를 가지기를 갈망했다(1:11). 바울은 임박한 위험 때문에 자기를 위해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15:30-32). 그러므로 로마서는 조직적이고 교리적인 논문이 바니다. 바울의 사상이 논리적으로 전개되고는 있지만 그는 확실히 교리적 가르침만을 말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의 교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중요한 복음의 진리를 다루고 있는 교훈적 서신이다. 이방인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로마나 골로새에 있든지 비슷하므로 보편적 내용이 그 교훈 안에 있다.

 

7. 핵심단어:율법, 의, 믿음, 믿다, 죄, 사망, 육, 모든, 영 / 요절:1:16,17

 

 

1. 제목(명칭의 유래): 고린도전서

2. 중심내용: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의 지혜, 성도의 신앙윤리(성화), 즉 생활면을 강조하고 있다.

3. 저자: A.D. 95년경 로마의 클레멘트는 이 서신을 "복된 사도 바울"의 것으로 인정한다. 이것은 신약성서의 기자에 대해 이름으로 밝혀진 인용문의 최초의 실례이다(IC C. P. XVii). 이그나티우스와 폴리캅과 그외 다른 사람들은 많은 외쳐 증거들을 제공해 준다. 문체, 어휘, 내용과 같은 내적 증거들은 우리가 바울과 고린도에 대해 알고 있는 바와 일치되고 있다.

 

4. 특징: 이 위대한 서신은 13장에 나오는 사랑에 대한 위대한 서정시로 인해 가장 유명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에 사로잡힐 때 신령한 글을 쓰는데 있어서 얼마나 높은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를 보게 된다. 여기에서 인간 바울의 천재성이 형언할 수 없는 감동 속에서 번득이고 있다.

1.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는 어떤 면에서 독특하다. 바울은 그 교회를 개척했을 뿐만이 아니라 계속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고린도 교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서 사도 바울은 깊은 염려와 근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때로는 순종하는 면도 있어서 그의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에 대한 그의 사랑은 특별한 것이었다. 그 사랑은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가운데 있기는 하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고린도서는 다른 어느 서신들보다 바울의 개인적인 성품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이 서신은 이교도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반대자와의 갈등을 겪는 그를 한 인간이며, 목회자이며, 상담자로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서신은 그의 지혜와 열정, 인내, 사랑, 온유, 옳고 그른 일에 있어서의 엄격함, 겸손함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2. 고린도서는 신약 성경의 다른 어느 부분들보다도 기독교와 이교의 갈등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우리는 세속적이고 타락된 사람들 가운데에 교회를 세울 때 바울이 어떠한 방법을 택하였으며, 그리스도인들과 그 주변의 이교도들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문제들에 대하여 그가 어떻게 대응하였는가를 보게된다. 오늘날은 그때의 상황과 많아 다르기는 해도 그들의 상황에 적용되었던 원리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교회의 규울, 사회적인 관계와 규제, 공공예배, 교회와 성례 의식의 본질이 추상적인 원리가 아닌 구체적인 실천강령으로서 여기에 제시되어 있다. 요컨대 이교도들 가운데 교회를 세우는데 따른 기본지침과, 기독교국가에서의 교회의 올바른 위상 정립과 관련하여 고린도서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엑셀/ C. Hodge, D. D.)

 

5. 시대(역사적 배경): 기록된 시기는 절대 확정적으로 정할 수 없으나 아마도 바울의 에베소 체류 기간 후반에 기록된 듯 하다(참조, 행 19:1-20:1). 만일 그렇다면 그 시기는 A. D. 55년경이 될 것이다. 또 흠정역 성서에서는 빌립보에서가 아니라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참조: 고전16:8고 한다.

 

6. 기록목적: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가 분실되고(참조: 고전 5:9) 바울의 소식을 기다리던 성도들의 근심스런 소식을 들은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했으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황급히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게 된다. 후에 매우 준엄한 어조로 편지를 보내는데(고후2:4) 편지전달자인 디도를 드로아에서 기다릴 수 없어서 급히 마게도냐로 가게된다. 그곳에서 디도를 만나 그 편지가 좋은 성과를 거두었음을 알게 된다.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후에 바울은 기록상으로 볼 때 마지막으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했다(참조: 행 20:1-4). 교회의 분쟁에 관한 소식이 바울에게 전해졌다(참조: 고전 1:11. 16:17). 더욱 심각한 것은 아마 유대 주의자들이었을 것이다(참조 1:12; 9:1). 또한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고린도 교회에서 에베소로 왔다(참조, 고전 16:17). 그들은 바울의 답변을 요구하는 문제들을 포함한 편지를 가져 왔다. 그 문제들은 "...에 대하여는"이란 반복되는 중심 어귀에게 나타나고 있다(참조: 고전 7:1, 25. 8:1. 12:1

 

7. 핵심단어: 너희(146), 사랑, 부활, 십자가, 영, 몸, 은사, 부패, 지혜, 요절 15:57

 

 

 

 

1. 제목(명칭의 유래): 고린도 후서

 

2. 중심내용: 바울의 사도직과 개인적 종말론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3. 저자: 사도 바울

 

4. 특징: 바울 서신 가운데 가장 자서전적이며 바울의 개인적 생활과 전도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 서신은 우리에게 바울이 몹시 사랑했던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 회중들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말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대담하고 도전적인 말을 사용했다. 또한 그는 서로 다투고 분리된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 인해 괴로워했다. 바울은 주님 안에서 분노한 아버지 같이 그 자녀들을 위해 변호하고 책망하고 한탄하고 있다. 또한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 있는 가난하고 고난 받는 형제들을 도와 주기 원한다. 그러한 사실은 교회의 하나됨을 증명해 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관심의 표현일 것이다. 어떤 다른 서신도 우리에게 교회들에 대한 바울의 관계성을 이토록 많이 보여 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어떤 다른 곳에서보다도 고린도후서에서 더욱 명확하게 사도로서의 소멸과 권위를 밝히고 있다. 비록 바울이 열 두 제자중 하나는 아니었지만 그는 주님으로부터 직접 임한 사도로서의 소명을 믿었고 그의 권위를 위해 어떤 사람이나 어떤 제도도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바울은 어떤 직책이나 지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그의 권위의 닻을 내렸다. 이것은 언제나 모든 그리스도의 선지자, 사도 혹은 사역자의 본원적인 권세가 된다. 그는 이 권세를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전도자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선도들을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멀어지게 할려고 했던 "거짓 사도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할 때, 그는 바로 그 영혼을 드러내고 있고, 감추어진 그의 삶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추가하고 있다. 이 서신은 생동적이고도 영감이 넘치는 바울의 불후의 저작이다. (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이 서신이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중에 기록되었다는 데는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다. 고린도전서를 기록한지 몇 개월 후 혹은 일년 후나 혹은 그 이상이 지난 후에 기록되었다(A. D. 57). 그리고 이 서신은 마게도냐에서 기록되었는데 아마도 빌립보였던 것 같다.

 

6. 기록목적: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비교적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바울의 사도직 수행자세를 자신들의 지나친 행동에 대한 빌미로 삼던 방종한 무리들의 오만한 태도는 꺾이고 말았다. 사도가 에베소에서 곧바로 오지 낳은 데 대한 오해(1:15-2:1)와, 이방인들과의 무분별한 교제에 대한 염려(6:14-7:1)가 있었지만 대체로 고린도 교인들은 순종하고 있었다. 그들은 디도를 열린 마음으로 영접했고(7:13-16), 고린도전서의 주된 주제의 하나였던 근친상간에 대해서도 깊이 뉘우쳤다(7:7-11). 그들은 회의를 열어 범죄자를 징벌했다(2:6). 사도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지 않았다. 사도는 대체로 그들 사이의 신뢰가 회복되었다는 확신을 느끼고 있었다(6:11;7:16).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나(고전9:1-6) 바울에게는 좋지 못한 소식도 들려왔다. 그리스도의 이름과 함께 베드로의 이름을 강조하던 고린도의 유대인들이 고린도전서가 쓰여질 때는 미미했으나 이제는 사도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르럿다(고전9:1-6). 어떤 당국(아마 예루살렘)의 천거서를 가지고 교사들이 오면서부터(3:1;10:12)사도의 적대자들은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2:17). 사도를 공격하며 추종자들에 대한 전체적인 주권을 주장하기도 했다(1:24;2:17;11:13,20). 이들은 유대적 기원(11:22)과 그리스도와의 특별한 관계(5:16;10:7;11:13-23;13:3)와 사도적 특권(11:5,13)을 주장했다. 이와같이 고린도 교인들의 전반적인 순종과 일부 유대인 무리들이 그릇된 주장이 디도가 바울에게 전한 소식의 두 가지 큰 주제였다. 그 중요성은 덜하지만 바울이 다루어야 했던 셋째 주제는 유대의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모금 활동의 촉진이었다.(엑셀/ Dean Stanley.)

 

7. 핵심단어: 은사, 근심, 영광, 복음, 섬기다, 고난, 고생, 육, 위로, 영광(15)

요 절: 9:15;4:5;5:20-21

 

 

 

1. 제목(명칭의 유래): 갈라디아서

 

2. 중심내용: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다른 교리와 유대주의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경고와 바울의 사도직의 강조하고 있다. 유대주의자들의 가르침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거짓 교사들은 구원의 방법 중 의식적인 율법의 준수가 증대 한 요소라고 주장하였다

 

3. 저자: 저자: 사도 바울, 대상자: 소아시아에 있는 갈라디아의 교회들

 

4. 특징: 갈라디아서는 율법과 복음(믿음) 문제등 구원론이 주요주제(로마서의 축소판)이며 바울의 복음과 사도직을 변호하고 있다. 서두에 감사나 축복의 말이 빠져있고(격앙된 바울), 반대자들과의 신학논쟁, 복음을 위한 투쟁(안디옥 사건 2:11~14),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조(4~5장)하며 바울 자신의 친필서신(6:11)이라는 특징이 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A.D. 55-6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

 

6. 기록목적: 제 2차 전도 여행 중의 갈라디아 방문 동안,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 내에 많은 거짓 교사들이 있으며, 그들의 가르침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쳐 성도들을 혼란 가운데 빠뜨리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1:6-9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가르침이 복음을 파괴시키는 것이며, 기독교의 진리를 근본적으로 왜곡시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서신의 다른 부분에서 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에 대한 믿음에 의한 칭의를 거부하는 내용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스스로의 의를 이루며, 그것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점이 제기된다.

1. 거짓 교사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켜 생명을 얻는다고 가르쳤는데, 그렇다면 과연 완전한 거룩함과 순종을 요구하는 율법을 어떻게 지킬 수 있다고 가르쳤는가? 그들은 아마도 율법을 자세히 가르쳤을 것이다. 마치 인간의 노력으로 완전히 지켜질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나서 그들은 성경에 나타난 유월절 사건을 통해 대속에 의한 제사법을 가르쳤을 것이다. 유대인 공동체는 이 관습을 오래 전부터 준수해 왔으며, 이를 통해 그들은 성결과 거룩함을 성취해 왔다고 주장할는지도 모른다. 거짓 교사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그들의 가르침을 확증하려 했으며, 모세의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주 예수가 거룩한 삶의 본이며 모든 민족의 장래의 구주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율법 준수를 요구하였던 것이다.

2. 그렇다면 율법이 배타적으로 유대인에게만 주어졌던 이 시대에 거짓 교사들은 이방인들이 어떻게 율법을 지킴으로써 생명을 얻을 소망을 갖게 된다고 가르쳤을까? 이 문제에 대해 그들은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즉, 할례에 동참함으로써 유대인이 되어야 하며, 그에 따라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인 영생을 얻게 된다고 가르쳤다(출12:48, 49;민9:14). 그리고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도 이에 의해서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결론적으로 거짓 교사들은 모세의 율법을 전적으로 오해하였으며, 율법을 복음과 맞바꿔 버렸다. (엑셀/ John Venn, m. A.)

 

7. 핵심단어: 율법(31), 믿음(22), 육(18), 성령(15), 그리스도(43), 자유, 약속, 종노릇, 할례, 복음

요 절: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에베소서

 

2. 중심내용: 골로새서와 함께 이 서신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머리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울은 일찌기 로마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이와 같은 진리를 언급한바 있는데 여기에서 그것을 더욱 충분히 진전시킨다. 이 서실에 나타난 바대로, 신자를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그로 하여금 이 고상한 부름에 합당하게 살도록 권고하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계시는 없다. 실제로 이 서신은 세 장씩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1-3장에서 사도 바울은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말하고, 4-6장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이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말한다.

 

3. 저자(또는 수신자): 사도바울

 

4. 특징: 이 서신의 신학적 통찰력과 깊이가 너무 위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이 서신을 성경 전체에서 가장 심오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의 어느 책도 창세 전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기까지 하나님의 구속목적을 이처럼 일관된 흐름으로 보여 주고 있지는 않다. 성경 전체의 메시지가 이 간결한 서신 안에 집약되어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고 은총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죄에서 떠나 살게 하셨으며,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묶인 자와 자유한 자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헐어버리심으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새사람으로 만드셨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도록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한 주님 안에서, 한 믿음 안에서 한 세례 안에서 평강의 띠를 띠고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지키며 그분의 부르심에 할당하게 행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이 서신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바’되었을 때(3:1;4:1), 특별히 그들에게 오히려 ‘영광’이 되는 ‘여러 환난’을 당했을 때 기록된 것이며, 그의 처지는 이 일을 위하여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6:20)상황이었다. 사도행전28:20에서와 같이, 여기 사용된 이 말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행28:16)된 상태를 묘사한다. 이렇게 보면, 지금 상황은 소위 사도 바울이 첫 번째 로마 감옥에 갇혔던 때임이 틀림없다. 이 기간은 주후 61년에 일어나서 그후로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는데, 최소한 만 2년 정도는 된다. 오네시모 편으로 보낸 빌레몬서에서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머물 곳을 마련해 주길 기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그가 확실히 기대하였던 갑작스런 출발에 대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서신은 아마도 주후 63년경 옥중 생활 말기에 씌어진 것이 분명하다. 온갖 야망과 사치, 그리고 피의 유희가 들끊는 거대한 도시 로마의 한 감옥에서, 이 문명의 온갖 탁월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는 하나님의 복음이 기록되어 전해졌던 것이다.

(엑셀/ A. Barry, D. D.)

 

6. 기록목적: 이 서신의 목적은 일반적인 견해보다 훨씬 명백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구속받은 자들의 영광과 이 서신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에 대하여 기록하는 것 이상으로, 또 기독교 공동체를 특징짓는 영적 생명에 대하여 혹은, 교회의 근거와 경로와 종국에 대하여 기록하는 것 이상의 명백한 어떤 의도를 갖고 있다. 교회의 위대함에 대하여, 교회의 생명을 서술함에 있어서, 신랑이신 주님과 연합된 그 이상적인 영광의 상태를 보여줌에 있어서, 사도 바울은 보다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 이상적인 영광스런 상태가 처음부터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동일한 특권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이 완전해지려면 이방인의 구원과 연합이, 유대인들에게 베풀어지는 것만큼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며, 이는 이 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그의 충만하심이 실현되고 드러날 때임을 보여 준다. 만물이 창조 때의 상태로 회복되어야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다. 이 회복과 충만이 실제로 자유롭게 그리고 온전히 성취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엑셀/ prof. W. Miligan.)

 

7. 핵심단어: 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서, 을 따라, 능력, 풍성, 영광, 그러므로, 비밀

요절: 2:19 ,20;1:22, 23

 

 

1. 제목(명칭의 유래): 빌립보서

 

2. 중심내용: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안에서의 일치와 기쁨을 기술하고 있다.

 

3. 저자: 바울 저작설은 결코 의심받은 적이 없다. 그 외적 증거가 매우 일찍부터 유력하게 있어 왔다. 일부 학자들은 로마의 클레멘트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주후96년경)에서 그러한 암시를 받는다. 2세기 중엽에 폴리캅은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바울은 ...자신이 떠나 있을 때 여러분에게 편지를 보냈읍니다'라고 썼다

 

4. 특징: 빌립보서는 바울의 가장 개인적인 서신으로 그의 확신 및 강하고 개인적인 애착이 담겨 있다. 서신의 내용 중에 공식적인 교리가 빠져 있는 것이 주목할만하나 이 서신에서 특출한 것은 기쁨인데 그것은 '삶의 폭풍과 긴박감 가운데에서 빛을 발하는 인물'로서의 사도 바울을 드러내 준다.

 

5. 시대(역사적 배경): 빌립보서가 옥중에서 쓰여졌다는 것은 명백하다.

 

6. 기록목적: 바울이 본서를 기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로마의 옥에 투옥된 채 심히 불안한 가운데 있던 그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 준 몇 가지의 기쁜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것은 일찍이 사랑과 지대한 관심을 갖고 바울의 궁핍을 도와준 바 있던 빌립보 교회의 수석 장로인 에바브로디도가 또 다시 그에게 도와 줄 구호물자를 가지고 방문한 것이었다. 사실 로마의 감옥 안에서 손에 차꼬가 채워진 채 감시를 받고 있던 바울은 생계 유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그를 특별히 취급해 주기를 청원하는 변호인단의 진술도 없었다. 혹자는 로마 교회 성도들의 수가 상당히 많았으며, 그들 가운데는 부유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의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는 것쯤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바울에 대해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들의 무관심과 그것에 대한 바울의 불만은, 그들에게서 어떠한 사랑의 표시도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과, 아무도 열렬한 존경심을 갖고 바울을 문안하기 위해 찾아오는 자가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물론 그들이 바울을 도우려고는 했지만, 바울 자신이 그러한 지원을 꺼려하고 거절했으리라는 것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아버지인 바울의 궁핍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그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의 특권임을 믿고, 확신하여 그를 돕는 일에 헌신적이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사랑의 선물을 통해 수감자의 어려운 처치를 덜어주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인 관습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형편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바울에게 도움을 줄 능력이 있는 루디아와 다른 개종자들이 그를 위로할 수 있는 기회를 즉시 포착했으리라 확신하게 된다. 복음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던 에바브로디도는 건강에 해로운 로마의 기후로 말미암아 병에 걸려 거의 죽을 지경에 있었다. 이 소식은 곧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알려졌으며, 그것은 저들로 하여금 적지 않은 걱정을 하게 되었다(2:26). 옥중에 있는 바울에게 수많은 시련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거기에다 만일 사랑하는 ‘형제인’ 에바브로디도마저 죽었다면, 그는 더없는 비탄에 빠졌을 것이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병낫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실제로 은총을 베푸셨다. 에바브로디도는 병에서 회복되었으며, 따라서 실망과 염려 가운데 있던 바울에게는 그가 자기 곁에 있다는 것이 더없는 기쁨이 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사적인 유익을 접어둔 채 목회자가 없는 빌립보 교회를 위해 그를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고자 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게 되었는데, 그 편에 평소 자신에 대해 지극한 사랑으로 위로를 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 대한 감사의 편지를 발송하였다. 바울이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교회를 세웠지만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물질적으로 원조를 받은 곳은 빌립보 교회뿐이었다. 바울은 이것을 매우 고맙게 여겼으며(4:1), 바울과 빌립보 교회의 우정은 깊이 무르익어 있었다. 따라서 그는 빌립보 교인들의 지속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에 대해 글로써 자신의 고마움을 표하기 원하였다. (엑셀/ Archdeacon Farrar.)

 

7. 핵심단어: 기쁨, 그리스도의 날,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 성령, 마음, 사랑, 모든

요 절: 1:21

 

 

 

 

1. 제목(명칭의 유래): 골로세서

 

2. 중심내용: 이 서신의 구성은 바울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즉 교리편이 먼저 나오고 그 후에 어떻게 행해야할 것인가를 권면하는 실행편이 뒤따라 온다. 창조주로서 예수는 신성의 충만을 육체로 나타내신다. 교회의 머리는 그 백성의 화해자로서 예수는 그의 인격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효과적으로 중재하여 구원하는 일을 하신다(골 1:15-22. 2:9). 바울은(영지주의의 고행을 통한 대속과 중재하는 권세들의 숭배에 반하여) 주님이시요 구속자이신 예수 한 분 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확정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다같이 강조한다.

 

3. 저자: 골로새서의 사분지 일이 에베소서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은 사도 바울이 비슷한 주제에 대해 기록하고 있으므로 골로새서가 의식적으로든 혹 무의식적으로든 사도 바울 자신의 정신에서 나온 것으로 가장 쉽고도 적절하게 이해 된다.

 

4. 특징: 골로새의 이단은 유대적인 요소와 헬라적인 요소가 서로 결합된 것이었다. 음식물에 대한 규정과 안식일 법과 할례의식과 또한 천사의 중재적인 임무는 유대적인 관습과 신앙의 잔재이다(골 2:11, 16, 18). "지혜"와 "지식"과 우주의 권세들(천사들)의 숭배와 몸에 대한 학대를 강조하는 것은 헬라적 사상을 반영한다(골 2:3, 8, 23). 아마도 어떤 유대인 개종자들이 유대주의로부터 이 혼합된 사상들을 가져와서 발전시켰을 것이다. 바울은 이단자들의 가르침을 공격하기 위해 그들이 사용하던 용어를 사용하여 우주적 인 그리스도의 교리를 전개시킨다. 유일하신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그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주의 모든 권세들이 패배를 당하고 그에게 굴복되었다(골 2:3, 9, 10, 15). 인간을 성숙과 완전에로 인도한다는 미명 아래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비하시키는 가르침은 모두 왜곡된 신앙이다. 이리하여 사도 바울은 골로새 이단의 정체를 밝혀내고 그 뿌리를 깨낸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유대주의의 의식적인 부분과 영지주의적 사상과 페르샤의 점성학및 혼합주의 적 사상이 활발하게 전파되어 가고 있었다. 물질은 악이며 악의 근원이라는 특이한 동방교리는 골로새 교회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참된 신과 썩은 세상을 가능한 멀리 떼어놓으려는 노력은 여러 가지 이상한 교리들을 부지런히 생산해 내었다. 악한 물질적 육체를 가진 인간이 거룩한 하나나님께 나아가려면 천서나 성자같은 중재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상에 쉽게 빠질 위험속에 골로세 교회가 있었다.

 

6. 기록목적: 바울이 이와 같은 이단들을 반대했던 진리의 말씀은 모든 세대를 통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 진리는 곧, 그리스도의 인간되심은 오직 하나님의 현현이시며, 그 분은 하나님과 우주를 연결시키셨고, 우주의 창조자와 보호자가 되시며, 인간의 생명과 빛이시며, 교회의 주인으로서 그곳에 영감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서로 손을 잡고 계신다. 천사의 무리나 그림자 같은 추상적 개념이 그 깊은 간격에 다리를 놓을 이유가 없으며 또한 그럴 수도 없다. 그리스도의 인간되심은 그 깊은 간격에 있는 유일하고 단단한 문을 날려버리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충만한 곳에는 악의 근원이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생명과 거룩함의 근원이 되셨다. 그러므로 금욕주의자의 고행은 물론 유대인의 근실함도 더 이상 아무 소용이 없다. 이와 같은 진리를 주장하기 위해 이 편지가 기록되었다.

이 진리의 중심 원리는, 그리스도께서 주권자이시며, 유일의 중보자이시며,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시며, 죽은 사색들을 반대하시는 분이시며, 오늘날의 모든 의심과 혼동을 정복하시는 예정된 정복자이시라는 것이다. 이 진리를 마음과 정신에 확고히 뿌리박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인내할 수 있으며, 그 인내로써 빛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는 어두움과 불확실성 뿐이다. (엑셀/ A. Maclaren, D. D.)

 

7. 핵심단어: 비밀, 지식, 지혜, 충만, 온전, 모든, 믿음, 몸, 사랑, 기도

요 절: 3:11하

 

 

1. 제목(명칭의 유래): 데살로니가 전서

 

2. 중심내용: 바울 사도는 성도들이 복음을 뜨겁게 받아들이던 것을 회상하고는, 자신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던 그 상황을 상기시켰다. 바울 사도의 관심이 핍박받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견고하게 하려는 데 있다는 것은 바울 사도가 디모데와 기꺼이 헤어졌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디모데의 긍정적인 보고는 바울 사도의 짐을 가볍게 했고, 그로 하여금 실제적인 문제에 대한 권면을 하도록 했다. 이교 문화의 유혹을 알아차린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성적 타락의 위협과 다툼과 분쟁의 위험에 관하여 경고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두 가지 특별한 문제를 일으켰는데, 하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해서 생활이 나태해지는 것과 다른 하나는 죽은 성도들은 그 놀라운 부활 사건의 영광에 동참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해서 바울 사도는 근면할 것을 권면하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산 자와 죽은자들의 역할에 관하여 올바로 설명하고 있다.

 

3. 저자: 바울

 

4. 특징: 데살로니가서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의 종말론적 교훈 가운데 특징은 살전 4:17에 아주 잘 나타나 있다.“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이 구절(4:13-18)은 마태복음의 종말론적 교훈(24-5장),고전 15장의 부활장 및 계시록과 함께 신약의 예언서에 해당된다. 많은 종말론적 교훈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초대 교회에서 새 교인들에게 가르친 기본 교리였음을 알 수 있다(행 17:7,살전 5:1-2, 살후 2:5).(신성종, 신약총론)

 

5. 시대(역사적 배경): 누가가 역사적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의 저작 연대는 비교적 확실하게 확정지을 수 있다. 또한 누가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체제한 것과(행 18:12) 관련시켜서 갈리오 총독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델피에서 발견된 비문에 의하면, 갈리오 총독의 재임기간은 글라우더오 황제의 치세 때라는 것이 밝혔졌다. 갈리오 총독은 A. D. 51년 여름 동안에 재임한 것으로 추정된다. 갈리오 총독이 부임하기 전 약 18개월 동안 바울 사도께서 고린도에 머물렀다는 것을 누가가 명백히 시사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행18:11) 아마도 바울 사도는 A. D. 50년 초에 고린도에 도착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실라와 디모데가 돌아와 보고한 것은(행 18:5; 살전 3:16) 아마도 A. D. 50년 중반이었을 것이다. 이 때에 데살로니가전서가 기록되었다. 몇 개월 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살로니가후서가 기록되었다.(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6. 기록목적: 사도바울은 비록 데살로니가를 떠나 있었지만 아직 연약한 상태에 있었던 데살로니가 교회를 언제나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적어도 한두 번(2:18) 그곳을 방문하고자 심히 애를 썼으나 ‘사단이 그를 방해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줄어들기를 열망하였지만, 사역자들의 추방 등 박해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아직 체계도 잡히지 않고 훈련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견뎌내기에 그들에게 닥치는 시험이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닐까 마음을 졸이게 되었다(3:10). 그러한 마음의 극한 염려 속에서, 그는 비록 자신이 그들을 직접 방문할 수는 없을지라도, 디모데를 그곳 낯선 땅에 보내어 그들이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들을 도울 방법은 없는지를 알아오도록 보내고자 결심하였다. 디모데는 대체로 반가운 소식들을 전해왔고, 이에 사도 바울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분명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심각한 잘못들이 많이 행해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성격의 사도 바울은 너무 큰 발전을 그들에게서 기대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 정도의 소식에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3:8). 사도 바울의 서신중 가장 초기의, 그리고 아마도 신약성경 전체에서 최초로 기록된 것인 듯 싶은 본 서신은 당시 디모데의 보고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견해와 언급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다. (엑셀/ A. J. Mason, M. A.)

 

7. 핵심단어: 주, 형제들아(17), 성화, 환난, 오심, 복음, 말씀, 낮

요 절: 5:23하

 

1. 제목(명칭의 유래): 데살로니가 후서

 

2. 중심내용: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생활에 관 한 권면을 하고있다.

 

3. 저자: 사도 바울

 

4. 특징: 이 서신의 종말론적 가르침들은 그 중요성을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일어날 사건의 전말과 그때 죽은 성도들의 역할에 관하여 이처럼 길게 다룬 곳은 없다. 더우기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만 역사의 마지막 때에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사탄의 전형적인 모습, 즉 적그리스도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누가가 역사적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의 저작 연대는 비교적 확실하게 확정지을 수 있다. 갈리오 총독이 부임하기 전 약 18개월 동안 바울 사도께서 고린도에 머물렀다는 것을 누가가 명백히 시사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행18:11) 아마도 바울 사도는 A. D. 50년 초에 고린도에 도착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실라와 디모데가 돌아와 보고한 것은(행 18:5; 살전 3:16) 아마도 A. D. 50년 중반이었을 것이다. 이 때에 데살로니가전서가 기록되었다. 몇 개월 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살로니가후서가 기록되었다.

 

6. 기록목적: 1. 바울의 첫 번째 서신의 가르침으로 일어난 주의 재림에 대한 기대는 광신적인 교사들의 흉계와 불건전한 활동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심지어 바울의 이름을 도용하여 편지를 위조하기까지 함으로써 그 결과 그 교회를 혼란과 드려움에 빠뜨렸던 것이다. 이렇게 혼란된 상태는 바울의 첫 번째 서신에 대한 단순한 오해가 수많은 비난자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소망의 인내”(살전 1:3)를 가지라고 부탁한 고요한 예언의 말들이 그렇게 왜곡되어야만 하는가 하는 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그 자신의 서신을 통하여(2:2)가짜 서신에 대해 말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단호함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구절에 나오는 ‘영’은 곧 거짓 예언이며, ‘말’은 성경의 권위를 빌은 거직된 것이다. 그리고 ‘편지’ 또한 가짜 편지인 것이다. 더욱이 ‘우리에게 받았다하는’ 말에서 ‘-했다 하는’이라는 표현은 바울이 그 자신의 서신에 대해서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 어법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바울이 가짜 서신에 대하여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실제로 바울이 언급하고 기록한 것으로 의심없이 믿음으로써 속은 것이다. 바울은 미래에도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될 것을 염두에 두고서 그의 모든 서신에 진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신의 친필서명과 문안 인사를 곁들여 자신의 친서임을 명백히 표명하였던 것이다.(3:17).

2. 당시 또 다른 상황은 이전 서신, 즉 데살로니가 전서에 나타난 중요한 권고를 무시한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전 서신에서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대해 완곡하게 암시적으로 표현해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다(살전4:11). 그러나 그의 이러한 암시는 부적당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왜냐하면 교회 내에서는 세상에 대파국이 있으리라 예상하고서 일상 생활의 의무를 등한시하는 무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만드는 자들”(3:11)이었다. 예부터 이와 같은 종교적 광신주의로 이기적인 나태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에 따라 교회의 가장 고결한 소망은 마치 천박한 구걸 행위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악을 고치는 매섭고 단호한 처방은 출교였다. 그러나 그러한 죄인을 대할 때에도 유순하게 대하여야 하는 것은, 우리도 때로는 진리의 고결함에 이르고자 할 때 오독을 하거나 오해를 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며, 그 또한 우리처럼 다시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엑셀/ S. G. Green, D. D.)

7. 핵심단어: 주, 불법, 나타남, 감사, 죄

요절: 2:15

 

 

 

1. 제목(명칭의 유래): 디모데전서

 

2. 중심내용: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를 향해서 가져야 될 목회자의 자세와, 특히 교회내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대하는 바른 처신에 관하여 교훈한다. 복음 전파의 사명에 관한 권고와 교회의 사명과 여자의 처신에 관한 권고와 지도자들의 자격에 관한 권고를 하고있다.

 

3. 저자: 사도 바울

 

4. 특징: 서신의 구조를 가장 간략한 형식으로 나누어보면 (A)권면, (B)찬양, (A)권면으로 되어 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 보면 (A)산문 (B)시, (A)산문과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송영이나 찬가의 형태로 연결된 이 간결한 형식의 엄숙한 권면은 서론, 본론, 결론에서 세 번 반복된다. 모든 부분이 기술적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많은 주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디모데에 대한 바울의 권면에 주의를 집중시키도록 기여한다.

서신의 결론에서는 또 다른 권면이 다시 중복되어 나오는데, 그것들은 6장 16절 하반절의 송영(찬송시)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시 동일한 부분이 제시되는데, 앞 부분은 보다 긴 부분으로서(6:3-16 a)이 서신의 중요한 주제가 요약되어 있고 보다 짧은 뒷부분(6:17-21)은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는 심금을 울리는 간절한 호소로 되어 있다. 같은 방식으로 이 서신의 본론은(2:1-6:2) 내용이 바뀌는 구절에 의하여 나누어지는데(3:14-4:5) 그 중심 부분에는 바울이 지었을 가능성이 큰 초대교회의 찬송시 구절이 있다(3:16). 이 본론의 첫번째 부분은 기억할만한 찬송시 구절로 마무리지으면서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직제상의 문제나 공적인 면을 다루고 있다. 두번째 부분은 대응시키면서 첫번째 부분에 기술된 주제와 뚜렷하게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첫번째 부분에서 여자에 대한 언급은 교회내에서 남자의 지도력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반하여 두번째 부분에서의 여자에 대한 언급은 도움이 필요한 과부들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문제에 관해서 다루고 있다. (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이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어 풀려난 후 다시 투옥될 때까지의 선교여행 중에 쓰여졌다. 일반적으로 바울의 순교연대는 기원후 65년에서 68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으며(4:6-8) 바울이 순교 직전에 사도로서 남긴 마지막 말들이 디모데후서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디모데전서의 저작 연대는 기원후 61년에서 63년의 어느 시기로 추정된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이방인과의 혼인은 경건한 유대인에게는 천한 행위로 취급받았고, 또한 유대 사회에서는 가장 낮은 계층에서만 통용되던 관습이었다. 그런데, 후기의 유대 역사에 이르러서는 이방인과의 결혼이 유대 사회에서 그다지 드문 행위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방인이 유대교에 입교하는 조건에 있어서 혼인이 전혀 도움이 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본래 하나님의 계약의 자손들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도행전에는 디모데의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 츠측컨대,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적에 돌아가셨거나, 그와 멀리 동떨어진 곳에서 살았을 것이다. 디모데의 양육은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에 의해서 모두 이루어졌다. 디모데의 연약한 기질은 이러한 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디모데는 약한 체질에다가(5:23), 자신이 맡은 책임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철저했으며(4:12-16;5:20;6:11-14;딤후2:1-7), 눈물도 많았고(딤후1:4),핍절할 정도로 금욕생활을 했으며(5:23), 때로는 청년의 정욕을 조금씩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던 듯하다(딤후2:22) 그는 원래의 성격이 온화했기에 “젊은 사람들을 대할 때도 나이 많은 어른들을 대하듯 하라”는 바울 사도의 부탁을 충분히 감당해냈을 것이다(5:2). (엑셀/ Dean Plumptre in Dict. of Bible.)

 

6. 기록목적: 딤전 3:14, 15절(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의 말씀처럼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의 일을 가르치고자 함이다.

 

7. 핵심단어: 경건, 교훈, 믿음, 복음, 가르치다, 전파하다, 명하다. 요 절 4:16

 

 

1. 제목(명칭의 유래): 디모데후서

 

2. 중심내용: 본 서신서의 본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1:6-4:8).

1. 디모데의 태도. 사도 바울은 그에게 주어진 은사를 확신시켰고 두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제언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확실한 소망(1:6-2:13)에 대하여 언급함으로 디모데를 격려하였다.

2. 교회. 이곳은 단지 무익한 가르침과 쓸데없는 분쟁으로 혼란을 겪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는 거룩함을 지니고 있는 진정한 신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낙망하지 말아야 하며 확고하고 이미 어떤 그리스도인은 잘못된 길로 나아갔다. 이들이 미칠 영향을 막기 위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충고를 하고 있다.

1) 바울에게서 보았던 불편함을 기억해야만 한다.

2)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진 성경 말씀을 계속 공급받아야만 한다.

3) 복음 사역에 더욱 열심을 내야만 한다(2:14-4:5).

3. 사도바울은 다가오는 순교에 관해 언급하면서 가능한 한 빨리 디모데가 자신에게 자신에게 올 것을 부탁하는데, 그 이유는 누가를 제외한 모든 동역자들이 그의 곁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가가 그와 함께 오기를 촉구했으며, 자신이 소아시아에 놓고 왔던 겉옷과 책을 가져오기를 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황제의 재판석 앞에 있던 자신의 1차 투옥 때의 모습에 관해 언급하였는데, 그 재판은 오히려 그에게 복음전파의 기회를 주었을 뿐이며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지는 못하였다. 결론 부분에서 그는 부수적으로 그의 두 동역자들이 곁에 없음(4:20)을 알렸다. 그리고나서 그는 로마식 이름을 지니고 있는 몇몇 형제들에게 문안하고 있다.(엑셀/ Prof. F. Godet.)

 

3. 저자: 바울

 

4. 특징: "사랑하는 아들"에게 보낸 그의 두번째 서신에서 바울은 디모데 전서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는 두 부분으로 된 엄숙한 권면이 찬송시에 의해 연결되는 가장 단순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구절들은 인사와 감사로 시작하여 개인적인 견해와 기도로 끝맺고 있다. 전체적 구성은 중심부에 있는 교리적 진리에 대한 찬양이 크게 두드러지도록 짜여져 있다(2:11-13). 중요한 내용은 바울이 위탁한 복음을 진리로서 보전하고 소중히 할 것을 신앙인들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의 마지막 말이기 때문에 특별한 엄숙성과 중요성을 지닌다.

 

5. 시대(역사적 배경):

본 서신서는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 로마에서 기록되었다. 본 서신서는 주로 그리스도를 섬김으로 인해 떠나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두고 유독 디모데에게 속히 오도록 재촉하는 글을 담고 있다. 이 편지에는 디모데에게 서둘러 오도록 재촉하는 글이 씌어져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전도에 대한 권면을 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특별히 좋지 않은 일들이 자신에게 닥쳐 올 줄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 모든 일을 슨리케 하실 것이라는 신앙의 확신을 표현하고 있다(4:18). (엑셀/ M. F. Sadler, M. A.)

 

6. 기록목적: 공동서신을 쓰게 된 이유는 신앙을 지키고 예수그리스도의 교회에 영속성을 확고히 하려는 필요때문이었다. 목회서신의 핵심적 요지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 1:14)고 하는 엄숙한 권면이다. 여기서 모든 교회와 더불어 디모데와 디도에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쓰여진 기록과 부탁한 것, 그리고 믿음을 지킬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쓰게된 보다 직접적인 필요성은 에베소와 그레데에서 생긴 많은 문제들을 바로 잡아야했기 때문이었다.

 

7. 핵심단어: 부끄러워 말고, 고난을 받다, 참다, 말씀, 명하다, 부지런함 요절: 4:5

 

 

1. 제목(명칭의 유래): 디도서

 

2. 중심내용: 디도서에는 기독교 신앙의 중요 교리들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선택, 영생, 그리스도의 메시야성과 신성, 영감 , 하나님의 은혜, 구원의 보편적 성격, 그리스도의 재림, 대속적 속죄, 전적 타락,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중생, 성령의 인격과 사역, 칭의, 상속권등이 바로 그것이다.

 

3. 저자: 이 편지가 디모데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이전에 쓰였는지, 이후에 쓰였는지를 확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디모데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이전에 쓰여진 것만은 확실하다. 첫 번째 편지 이전에 받았다는 근거는 불충분하지만 두 번째 편지 이전에 받았다는 근거는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서가 씌어진 정확한 연도와 장소에 대해서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만족해야 한다. 디모데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나 두 번째 편지가 본서의 내용에 대해 많은 정보를 시사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사도가 자기 자신의 상황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레데에서 관심 가졌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바울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썼기 때문이다. (엑셀/A. Plummer, D.D.)

 

4. 특징: 이 서신의 주제는 신실한 자들에게 맡겨진 교리와 경건한 생활과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구원에 관한 위대한 교리로서의 은혜는 2:11-15와 3:4-8, 두 곳에서 선행과 잘 조화되는 가운데 연결되어 있다. 두곳 모두 복된 소망을 강조하며 (2:13; 3:76) 선행을 강조함으로써 끝맺고 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디모데전서와 이 서신의 두드러진 유사점은 같은 해에(A.D. 67년)씌어졌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아마도 그것은 사도가 니고볼리로 가는 도중 소아시아에서 썼을 것이다.(엑셀/ J. A. McClymont, B.D.)

그레데와 그레데 교회: 그레데는 그리스의 바다에 있는 큰 섬이며, 그곳에는 동쪽에서 서쪽까지 전체가 높은 언덕으로 이루어진 산맥이 있다. 또한 해안선을 따라 계속되는 평평한 해변에는 비옥한 계곡들이 접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자연적으로 생긴 좋은 항구들이 있다. 그레데의 전성기 때에 곡류, 포도, 올리브유를 풍부하게 생산했었으나 차츰 그레데는 인구 조밀의 산업으로 바뀌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혈통을 이어받은 초기의 그곳 주민들 중 일부는 내륙에서 경작자로 일했으며 또한 일부는 선원생활을 했다. 그들은 덜 성화된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성격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결점들을 강하게 드러내는 소위 무례하고 난폭하며 독립성이 강한 민족이었다. 이런 결점들 중에서도 특히 허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그들은 교묘하게 남을 한 수 앞지르거나 배반하곤 했다. 바로 이런 악덕함에 빠진 자들이 사도 바울의 시대에 있었으며, 에게 해의 해안에 사는 그리스인들 중에는 음탕하고 약삭빠르며 무례하게 대소동을 일으키는 오만 불손하기 짝이 없는 자들도 있었다. (엑셀/ J. Oswald Dykes, D.D.)

 

6. 기록목적:

디도서를 기록한 목적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디도를 바울이 있는 니고볼리로 빨리 오게 하여 그레데의 일을 맡기게 하고(딛3:12), 둘째는 율법학자인 세나와 전도자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레데인들로 하여금 영적 궁핍함이 없도록 하게 하고, 세째는 그레데 교회의 목회상의 여러 문제들들 해결하며 격려하려는데 있었다,.

 

 

7. 핵심단어: 교훈, 선한 일, 가르치다, 사랑, 우리 구주 하나님, 믿음, 빛나게 하다

요절: 2:10;3:14

 

 

 

 

 

1. 제목(명칭의 유래): 빌레몬서

 

2. 중심내용: 성도들간의 용서와 형제애를 간곡하게 권하고 있다.

 

3. 저자: 본문가운데 세 번이나 자신을 바울이라고 불렀고(1, 9, 19절), 사상이나 감정표현등이 철저하게 바울적이다. 바워(F.C Baur)를 중심으로 한 튜빙겐 학파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학자들에 의해 인정되고 있다. 이그나티우스의 편지 가운데도 빌레몬서 20절을 시사하고 있고 터툴리안, 오리겐, 유세비우스, 무라토리의 정경 및 구 라틴역, 구 수리아역에서 인정되고 있다(신성종, 신약총론).

 

4. 특징: 개인적 성향이 강한 사도서신으로 노예제도에 대한 신앙적 해결의 방법을 교훈하고 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우리는 먼저 로마서에서 바울의 생활상을 그려보아야 한다 그는 자기 셋집에 감금된 상태로 2년 동안 로마에 체류하고 있었다(행28:30). 친구들과 방문객들의 접근은 허용되어 있었다. 바울이 세웠던 교회들이 그가 로마에 체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선물과 개인적인 도움의 제안 및 애정어린 추억과 더불어 사자를 보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사자들은 빌립보의 에바브로디도와 골로새의 에바브라 그리고 에베소의 두기고 및 오네시보로 등이었다. 그때는 대단히 위험한 시기였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험했으나 로마를 방문한다는 것은 또 다른 특별한 위험을 겪는 일이다. 당시 로마에는 그 사회의 모든 계층에 심각한 전염병이 만연해 있었으며 황제까지도 피하지 못하고 발병하였기 때문에 모든 사원에는 그의 회복을 기원하는 제물이 바쳐지고 있었다. 빌립보서 2: 25-27을 보면,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어 거의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가운데서 주인에게서 도망친 죄수를 만나게 되고 그를 개종시키게 된다.

 

그때 바울은 복음 사업을 위한 모든 기회로부터 차단되어 갇힌 몸이 되었지만 기도를 통하여 죽음으로부터 한 영혼을 구해 내고 하나님과 자신을 위해 거듭난 영적 아들을 얻었음을 기뻐했을 것이다. 새로운 생명은 뿌리를 내렸고, 자신을 이끌어 준 스승에게 사랑과 존경을 나타내었다. 사도를 모시고, 그의 쇠악한 몸을 돌보고, 그가 갇혀 있기에 피할 수 없는 불편함을 경감시키는 것, 그리고 자식이자 곧 형제로서의 애정으로 대하는 것, 이것이 곧 보다 고귀한 영적 삶으로 거듭나게 된 위대한 축복에 대해 오네시모가 열심을 다해 갚으려 한 보상이었다. 바울은 기쁜 마음으로 그 종이 이제 자신에게 “유익(11절)하며, 그가 이전의 주인을 섬김에 있어서도 유익하리라고 생각했다. 다시 받아들임, 이것이 곧 빌레몬에게 보낸 서신의 목적이었다. (엑셀/ Dean Plumptre.)

 

6. 기록목적: 바울은 빌레몬의 종인 오네시모를 위하여 이 서신을 썼는데, 오네시모는 바울의 전도로 개종한 자였다. 교회가 이 서신을 성경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사도의 가르침으로 인정한 데에는 몇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 (1)'교회'라는 말이 인사 말에 나온다(2절). (2)주인과 종의 관계는 빌레몬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전체 교회에게 중요한 문제였다(빌레몬이 골로새 교회에서 유일한 노예 소유자가 아니었다:'상전들아'가 복수라는 사실에 유의하라, 골4:1). 주인에게서 도망친 후 그리스도인이 되어 바울의 심복이 된 종 오네시모를 주인에게 돌려 보냄으로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자들의 관계에 대한 원리를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이러한 원리들이 '억지'가 아니라 '자의로' 실현되어야 한다(14절)는 것을 깨닫게한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세상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완전히 새로운 준거 틀이 있는데, 그것은 형제애가 모든 다른 관계들의 마땅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바울이 노예제도를 거부하는 논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세기를 거쳐 내려오는 동안 그리스도교 신앙은 노예 제도를 바울이 빌레몬서에서 공표한 원리들과 양립될 수 없는 것으로 보게되었다.

 

7. 핵심단어: 사랑, 간구하다, 유익하므로, 종 요절 10, 18

 

 

1. 제목(명칭의 유래): 히브리서

 

2. 중심내용: 첫번째 사상은 3:1과 12:3의 "생각하라"는 말에서 나타난다. 이 두 예에 담긴 권고는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3:1에서는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으로 12:3에서는 믿음 생활의 궁극적 모본이신 참으신 자로 생각될수 있다. 서신의 논법에 의해, 독자들은 제사장이시며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된다. 서신 전체에 걸쳐 드러나는 대조들은 천사, 모세, 아론, 멜기세덱, 레위의 제도, 그리고 구약에 기록된 신앙 생활의 가장 좋은 실례까지도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결정적으로 입증하고 있다(제 11장).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하나님께서 열납 하실 만한 희생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임재하신 바로 그 곳에 들어갈 것을 보증하시고 탄원과 요구를 즉시 들으시겠다고 확증하시면서 성소 내에서 지금 말씀하시고 있다(4:14-16). 두번째 사상은 그것과 짝을 이루는 동사와 함께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13:22)라는 권면(헬라어로는 파라클레시스)의 말에서 나타난다. 이 말은 히브리서의 비공식적인 제목이라고 불려 왔다. 파라(Farrar)는 서신에 기록된 모든 지식이 독자들을 권면 할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유대인이기도 한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생각"(12:3)하고 또한 "권면의 말을 용납"(13:22)했다면 박해와 시험과 어려움이 보다 쉽게 여겨졌을 것이다.

 

3. 저자: 사도 바울, 아볼로, 바나바, 누가, 디모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실라, 아리스티온 그리고 집사 빌립 등이 모두 지지할만한 논거를 지닌 저자로 제기되어 왔다. 동방과 서방에 걸쳐 초대 교회 및 교부들의 전승을 조사해보면 견해들이 다양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서신 자체에는 저자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본서의 저자를 입증함에 있어서 두가지의 주된 견해들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먼저는 바울이 저자라는 견해로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영향을 받은 알려지지 않은 저자를 포함시킬 수 있는데까지 이르렀으며 따라서 독특한 바울적 취향을 히브리서에 전하였으며 다음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전승과 영향을 받았다는 견해로 구약에 유형론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근거하였다. 여기서는 히브리서의 유비의 근원이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의 작품에 들어있는 유비와 같다고 추정한다.

 

4. 특징: 본서의 주된 관심이 실제적이므로 저자는 실제적인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신학적 개념들을 권면, 경고 및 위로에 대한 언급이라는 특수한 틀 속에 담고 있다. 그의 관심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신학 사상 및 개념에 집중되어 있다. 저자는 주된 주장을 옹호하여 다른 진리 위에 하나의 진리를 내세우며 이러한 사상들을 말한 사람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히브리서의 저작 시기는 많은 요인들에 의해 정해진다. 이러한 요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후 68년 이후의 유대인과 로마인의 갈등과 주후 70년의 성전 파괴이다. 갈등, 성전 또는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본서신은 주후 68년 이전 아니면 80년 이후에 기록되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주후 68년 이전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우리는 그 시기를 디모데(13:23) 및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13:24)에 대한 언급과의 관련속에서 보아야 한다. 또한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주후 95년)에서 드러난 히브리서에 대한 지식에는 본서의 저작 시기 및 목적이 담겨있다.

 

6. 기록목적: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단일 집단이거나 아니면 지역적으로 넓게 퍼져있거나 간에 그리스도로부터 모세에게로 되돌아갈 배교의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배교의 상황은 불신앙(3:12), 행위(5:13,14), 공중 예배의 무시(10:25), 연약한 기도(12:12), 교리상의 불안정(13:9), 가르치기를 거부함(5:12) 및 성서의 경시(2:1)에 근거된 당면한 위험이었다. 그러한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교의 열등함을 드러낼 목적으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7. 핵심단어: 더 나은, 피, 믿음, 희생제물, 대제사장, 언약, 안들, 섬김, 온전한, 영원한, 함께 하는 자, 하늘 / 요 절 4:14

 

 

1. 제목(명칭의 유래): 야고보서

 

2. 중심내용: 야고보서는 살아있는 기독교를 위한 호소이다. 때때로 예루살렘에 올라오던 사람들은 세상적인 것들과 교만, 모순, 편견, 고집, 외식, 불만, 비판 등을 나타내었는데, 이러한 것들은 당시 신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본 서신은 그러한 결점들을 바로잡는 데 충분한 역할을 감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본 서신을 통해 그들에게 선지자처럼 책망하기도 하고 선생처럼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야고보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단순히 생산적이지 못한 교리를 복음의 믿음으로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염려하고 있으며, 나아가 그는 그들이 그 믿음을 정결하고 거룩한 생활로 발전시켜 나가길 바라고 있다. 또한 성령의 열매를 맺어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하고, 인내와 사랑으로써 훌륭한 삶을 나타내 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는 또한 그들에게 다가올 시험을 준비하며 온전한 구원과 상급이 주어지게 되는 때, 즉 주님의 재림을 바라라고 권고하고 있다. 의와 화평이 있는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살라는 것이다.(엑셀/ W. Ormiston, D.D.)

 

3. 저자: 야고보서의 서두는 저자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라는 것을 말하고 있으나,(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약1:1) 이 야고보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신약 성경에는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주의 형제 야고보, 두 사람 만이 본 서신의 저자로 주장되어왔다. 그러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저자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그가 주후 44년에 순교했으며 교회내에서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견해는 주의 형제 야고보를 본서신의 저자로 보고 있다. 사도행전 15장에 있는 야고보의 연설과 야고보서의 어투의 유사성, 유대전통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점, 그리고 내용이 주의 형제 야고보에 관하여 신약 성경에 언급된 역사적인 사실들과 일치되는 것 등은 모두 그의 저작설을 뒷받침해 준다.

 

야고보서의 수신인

전통적으로 '열 두지파'라는 말은 유대 민족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유대 민족이 디아스포라(Diaspora)시절에 아무리 넓은 지역에 흩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들 전체가 팔레스틴밖에 존재하였을리는 없었으므로, 야고보서의 서두는 상징적으로 이해하는 것아 가장 타당할 것 같다. 야고보는 '새로운 이스라엘' 즉 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이 서신을 쓰고 있다.

 

4. 특징: 유대적 성향이 강하고 행위가 없는 믿음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외경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바울의 이신칭의 복음과의 관계속에 오해를 불러일이키고 있다. 마태복음과 비슷한 점이 많으며 윤리적 교훈이 많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이 서신의 저작시기를 주후 40년대 중엽이나 야고보가 죽기 직전인 60년대 초로 보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인데, 익명의 야고보를 저자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훨씬 후대인 주후 150년경으로 보고 있다.

 

6. 기록목적: 이 서신의 주된 목적은 죄에 대한 회개의 교리를 흩어져 있던 열 두 지파에게 선포하려는 데 있다. (엑셀/ F. T. Bassett, M. A. )

 

7. 핵심단어: 온전한, 믿음, 행함, 행하라, 심판, 말하다, 복을 받으리라, 열매

요절: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1: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1. 제목(명칭의 유래): 베드로 전서

 

2. 중심내용: 베드로는 소아시아의 다섯 지방에 사는 유대인 및 이방인 성도들에게 이 서신을 써보냈다. 그가 이방인 성도들까지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서신을 보면 매우 명백하다. 그는 2:10에서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는 이방인 성도들의 과거 생활을 이방인들의 죄많은 욕망 가운데 살아온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벧전4:3).

아마도 베드로는 주님의 명령들, 즉,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2)'하신 명령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내 양을 먹이라(요21:15-17)"하시는 명령을 상기하였을 것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전의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적인 충성심과 변하기 쉬운 이기주의가 복합된 유동적인 인간이다.

십자가를 지지 말라! 바로 이것이 주님에 대한 베드로의 충고였다(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16:22). 그러나 성령이 충만히 내린 오순절 사건은 급격한 변화를 몰고 왔다. 그리하여 이미 헤롯의 손 아래서 채찍질을 당하고 죽음에도 직면해 보았던 베드로는 아시아의 사랑하는 형제들을 격려하고 더욱 강하게 하여 이미 잔인한 네로의 박해를 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그가 그들에게 임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임박한 갈보리의 십자가를 직시할 수 있도록 하고자 앞으로 나서고 있다.

(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3. 저자: 이 서신은 사도 베드로에 의해 쓰여졌다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 벧전1:1-2). 저자는 또한 자신을 장로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부른다(...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 벧전5:1). 그는 실루아노의 도움으로 쓰고 있으며 (내가 진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 벧전5:12).

 

4. 특징: 베드로 전서에 현저하게 나타나는 박해와 고난에 대한 언급은 초대 기독교인들의 박해에 대한 역사 기록과 얼마만큼 일치하는가를 알고자 하는 학자들에 의해 세밀히 연구되어 왔다. 케이스 박사(Dr S. J. Case)는 초기에 있었던 세번의 혹심한 박해시기를 구분하는데, 이것들은 네로 통치시대 (주후54-68년), 도미티안 통치시대(주후81-96년), 트라얀 통치시대(주후98-117년) 등이다. 그는 베드로 전서를 가혹한 박해가 절정에 다다른 시대 뿐 아니라 벧전1:1에 언급된 소아시아 지방까지 확산된 시대의 반영이라고 보는 학자들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다른 학자들은 베드로 전서를, 이미 당시에 조짐을 보이고 있던대로, 다가오는 박해에 대한 사전 경고로 해석한다. 빅스(Biggs)는 초기의 박해들이 대체로 유대 산헤드린에 의해 고무되었으나, 로마인들은 기독교에는 이교주의와 양립될 수 없는 생활 방식이 있으며, 그들의 관점에서 볼때 그것은 반드시 중지되어야한다는 것을 곧 알게되었다고 주장한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당한 박해는 이러한데 연유한 것이며 유대인의 선동은 없었던 것 같다.

 

5. 시대(역사적 배경): 1:1, 5절에 보면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살고있는 성도들이 그들의 신앙 때문에 고난 당하고 있음을 볼 때 베드로가 네로황제에게 순교당하기 전인(주후 64) 주후 63-64년경에 기록되어졌다고 봐야 한다.

 

6. 기록목적: 핍박중에 흩어져있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산 소망을 가지고 믿음에 굳게 설 것을 권고하려고 한 것이다.

 

7. 핵심단어: 고난, 시련, 소망, 나타나심, 영광, 기쁨, 은혜, 거룩, 고귀한 요 절: 1:7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1. 제목(명칭의 유래): 베드로 후서

 

2. 중심내용: 베드로의 저술 목적은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정체는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가르침의 위험성은 사도의 통렬한 탄핵과 그들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베드로는 거짓 가르침이 분명히 교회에 뿌려놓은 무법한 정신을 책망하고, 이단 사상 곧 그리스도인은 도덕적일 필요가 없다고 하는 도덕폐기론의 팽배를 경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성경 학자들은 거짓 교사를 이단 영지주의의 초기 선구자와 동일하게 보려고한다.

이러한 독소(즉 거짓 교훈)에 대한 베드로의 해독제 (즉 거짓 교훈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는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성장이 그러한 거짓 교훈을 멸절시키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이라고 강변한다. 사실상 이것이 맨 처음의 내용이며 제 1 장의 요지이다. 베드로 후서의 주제는 베드로가 이 서신의 수신인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스스로 준비해야한다고 경고하는 내용의 제 3장에서 더욱 심화된다.

베드로는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회의적 태도를 조장하는 냉소주의자들을 공공연히 비난하면서, 그의 형제들에게 영광스런 그 날을 예기하고 은총 가운데 성장해 나가며 계속 신앙을 지키라고 권면한다. (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3. 저자: 사도인 시몬 베드로

 

4. 특징: 전서는 핍박을 받고있는 성도들에게 보낸것이고 후서는 거짓교사와 거짓교훈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서 기록된 서신이다. 또 전서가 박해사상을 배경으로 한데 반해서 후서는 유대 묵시 사상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신성종, 신약총론)

유다서와의 유사점이 많으며 재림의 지연(지연된 종말사상 3:8~10)과 거짓교사에 대한 경고(2:1~22). 묵시적 종말사상(3:10~13)등이 포함되어 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베드로 후서는 네로의 통치 시대 말기에 로마에서 집필된 듯하며, 소아시아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정확한 저작 시기는 밝혀 내기 어려우나 주후66년으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

이 서신 자체는 시몬 베드로에 의해 집필되었다고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벧후1:1), 저자 자신이 그리스도의 변모하심을 친히 보았음을 증언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벧후1:16-18).

 

6. 기록목적:

베드로 후서의 목적은 3:1,2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즉 영지주의적 이단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는 유대인 성도들에게 경고함으로써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하자는 데 있다. 이것은 세번에 걸친 기억하라(1:12, 13;3:1)는 말과 이와 관계되는 말인 잊어버리다, 도는 잊어버리지 말라는 단어가 두 번식이나 사용된 것6으로 그 성격을 알수 있다. 즉 베드로는 그의 독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생활의 표준이 됨을 기억하고 거짓교훈으로 인해 재림의 주님에 대한 소망을 잊지 않도록 경고하려 한 것이다. (신성종, 신약총론)

 

7. 핵심단어: 고난, 시련, 소망, 나타나심, 영광, 기쁨, 은혜, 거룩, 고귀한 / 요절:1:7

 

 

 

1. 제목(명칭의 유래): 요한1서

 

2. 중심내용:

1. 본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윌 자신,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해서 알아야 할 사실들의 핵심들을 정리해 볼 수 있다.

2. 신앙의 교리적인 면들 뿐 아니라 신앙생활의 실제적 규범들도 찾아 볼 수 있다. (N. Hardy, D.D.)

 

3. 저자: 종종 제기되는 문제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들을 기록한 요한이 정말로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었는가 아니면 장로 요한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문헌에는 에베소의 장로 요한이 언급되어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 에베소의 요한과 다른 인물이었으며 복음서와 서신들을 기록한 요한은 후자 즉 에베소의 요한이었다고 결론짓게 되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따르면 이레니우스, 파피아스, 폴리크라테스 등이 이에 속하며 무라토리 경전도 이것을 주장한다).

 

4. 특징: 아마도 이 서신 다음에 나오는 짧은 두 서신들과 함께 신약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영감에 가득찬 말씀들이 될 이 서신서에서, 우리는 제 4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 관련되어 기술되었던 하나님과의 사귐에 관한 놀라운 진리들이 신자들의 생활이라는 측면에서 다시 한번 묘사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요한의 복음서는 역사적이면서도 교리적이다. 그런데 이 교리적인 부분들이 여기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실제적인 삶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서신은 성도들을 그리스도와의 교제 가운데로 부르심을 받은 새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복음서에 이어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5:13과 1:4을 요20:31과 비교해 보라)

이 서신의 주요한 사상은 주로 빛과 사랑이며 의의 띠로 하나로 묶여진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이중적 개념에서 솟아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바울의 서신에서 발견하게 되는 수고스러운 논증이 없다. 여기서 진리가 증명되는 방식은 논리의 추론과 차근차근한 전개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명증성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비록 차원이 높고 영적이기는 하지만 이 서신의 가르침은 동시에 매우 실제적인 것들이다. 이것은 실천에 비해서 지식, 특별한 지식들을 지나치게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점차 중대해감에 따라 이에 대한 반작용로 의도된 것이 분명하다. 요한의 강조점은 구세주께서 그의 신적 사역을 세례시 뿐 아니라 그의 죽음에서도 수행하셨다고 하는 데에 있었다. 요한은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가 예수시라는 사실을 다시 말해 그 연합의 실제성을 증거하고자 했다. 그것은 요한에게 있어서 신자의 믿음의 본질적인 요소였던 것이다. 참과 거짓에 대하여 한 치의 틈도 허락지 않으면서 이 서신은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에 대한 권고로 넘치고 있다. (엑셀/ J. A. McClymont, D.D)

 

5. 시대(역사적 배경): 저자가 지난 일을 회고하고 있음이 복음서에 분명히 드러나는데 (요7:39;21:19). 그것은 요한이 저자이기 때문에 요한복음의 기록은 주후85-90년 이전에 이루어졌을 수도 있으나 소개된 것은 이 기간이었음에 틀림없음을 의미한다. 교회의 장로들은 요한이 그들에게 말로써 가르치고 있었던 사항들을 그가 죽기 전에 글로 옮길 것을 원하였다. 요한1서의 메시지가 요한복음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고 있고, 주후 95년 도미티안 치하에서의 박해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본서의 저작 시기는 대략 주후 90년 경인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2서 및 3서도 이와 동일한 시기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믿을만한 전승에 의하면 요한 서신들은 모두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

 

6. 기록목적: 당시의 이단사상인 그리스도의 가현설에 대하여 경고하고(요일 2:26) 영생에 대한 확신(요일 5:13)을 주려는 데 있다. 그밖에도 기쁨이 충만케 하려함(요일1:14) 과 이단 사상에 물들어 죄를 짓지 않도록 (요일2:1)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신성종, 신약총론)

 

7. 핵심단어: 알다, 사랑, 아들, 사귐, 어두움, 빛, 영, 쓰다., 아버지, 자녀들아, 믿다

요 절: 1:7

 

요한 1서에 계속해서

 

4. 특징:

-요한2, 3서는 모두 다 저작 시기나 장소에 대하여 아무런 암시도 하고 있지 않다. 이처럼 시기나 장소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고 또한 그 반증도 없는 것으로 보아 주변 여건은 요한1서의 저작 시기 및 장소와 동일하였던 것 같다. 본서의 수신지는 알려져 있지않다. 어떤 이들은 '택하심을 입은 부녀'라는 구절이 전체 교회를 지칭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어떤 특정한 교회군(밖)을 지칭하는 비유적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은유적 용법은 엡5:22-33 및 계21:9과 유사한 것 같다. 이렇게 보면 '택하심을 입은 자매'는 요한을 따르던 공동체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 그러나 이 짧은 편지의 단순함은 그처럼 의미심장한 비유의 가능성을 배제하며, 그 반면 어조의 부드러움은 본서가 개인적인 서신이라는 인상을 준다. (Dav-id Smith ,EXPGT, IV, 162). 또한 다른 한편에서는 본 서신이 한 여인 및 그녀의 가족들에게 보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이름이 구리아(Kyria)인지 아닌지는 미해결된 문제이다. (요삼1:1과 벧전1:1에서의 거듭 설명되는 형식을 참조하라). 그녀의 이름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녀는 분명히 에베소 근처에 거주하였으며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 내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녀의 집은 그 지역 교회가 모이는 장소였을 것이다). 이미 고인이었던 듯한 그녀의 한 자매에게는 에베소에 거주하며 요한을 따르던 교회와 관련이 있던 가족들이 있었다. '택하심을 입은 부녀의' 자녀들 가운데 몇 명이 에베소에 거주하던 사촌들을 방문했을 것은 명백하다. 요한은 그들과 아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어머니에게 이 서신을 보냈던 것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요한2, 3서는 모두 다 저작 시기나 장소에 대하여 아무런 암시도 하고 있지 않다

 

6. 기록목적: 거짓교사에 대해서 경고하며 자신의 방문계획을 알리려는데 본서의 목적이 있다.

 

7. 핵심단어: 알다, 사랑, 아들, 사귐, 어두움, 빛, 영, 쓰다. 아버지, 자녀들아, 믿다

요절:1:17

 

 

 

 

 

 

 

 

 

 

 

 

 

 

 

 

 

 

 

 

 

 

제목: 요한 3서

 

중심사상:

성도의 신앙생활에 대해 권면하고 있다. 가이오의 관대함에 대한 칭찬과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비판하고 데메드리오의 모범을 칭찬하고 있다.

 

저자:

이 서신은 사도 요한의 두 제자였던 교부 폴리캅과 파피아스에 의해 인용되고 있다. 또한 이 서신은 폴리캅의 제자였던 이레니우스에 의해 서신으로서 인용되었다. 알렉산드이아의 클레멘트와 터툴리안은 이 서신을 자유롭게 인용했으며, 무라토리 단편에도 이것이 언급되어 있고, 구 시리아 역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 서신의 내적인 성향이나 특징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 서신의 저자가 제4복음서의 저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점을 확신케 한다. 이 서신과 제4복음서는 인간의 모든 정황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동일한 기독교적 신앙의 범주들을 채택하고 있는 바, 빛과 어둠, 진리와 거짓, 선과 악, 사랑과 미움, 생명과 죽음, 하나님과 악마 등이다. 이렇듯 두 책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라이트푸트 주교는 요한 서신이 요한복음의 후기로 기록되었다고 말하였다. (엑셀/ J. A. McClymont, D.D.)

 

목적:

요한 3서에서는 이단 사상이나 그 비판은 없고 다만 가이오에 대한 사도요한의 사랑과 기도를 알려주고 교회에 말썽이 되고있는 디오드레베를 본받지 말고 데메드리오 같은 이의 본을 따르라고 권고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즉 본서의 목적은 11절에 잘 나타나 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그뿐 아니라 사도요한의 방문계획도 도한 알려주고 있다.

 

핵심단어: 진리, 행하다, 받다, 선한 것, 악한 일, 일, 증거 요절:2:4

 

 

 

 

 

 

 

 

 

 

 

 

 

 

 

 

 

 

 

 

 

 

1. 제목(명칭의 유래): 유다서

 

2. 중심내용:

영지주의의 비윤리적인 삶을 경고하며 성도로서 선한 삶을 권고하고 있다.

 

3. 저자: 저자 및 저작시기

일반서신(또는 공동서신) 가운데 마지막 서신인 유다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이 주장의 진정성에 관한 논쟁은 유세비우스에게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되었는데, 그는 히브리서와 아울러 본 서신을 의심스러운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역사적 증거 및 내적 증거가 본서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마13:55과 막6:3은 유다와 야고보를 예수님의 형제라고 부르고 있는데 본 서신에서 야고보가 간단히 소개되는 것은 그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였다는 증거이다.

 

4. 특징:1. 유다가 이 서신에서 사용한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은 그가 경고와 책망을 하기에 정당한 자격이 있음을 나타내 준다. 교훈을 하고 위로를 베푸는 것만이 성직자의 의무는 아니다. 설교에는 경고와 비난의 영역도 또한 있으며, 성직자로서의 성실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분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책망을 하기 위해 언짢고 상스러운 말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 우리는 오만과 무례함의 자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겸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독설을 사용하지 않으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성실로써 경고와 책망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2. 한편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에 상당한 정도까지 이르렀다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유다가 경고와 비난의 말을 하고 있다는 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다. 유다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입어서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성숙한 이들에게도 그들이 참고 견뎌내야 할 시련과 믿음의 훈련이 필요했다. 그러한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순수함을 더럽히고 파괴시키는 죄악에 감염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자신이 결코 타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하는 사람은 끝까지 죄를 경계하고 자신을 삼가지 못한다.

3. 유다는 경고와 책망의 말을 하면서 그들에게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넘치기를 함께 소망하였다. 호된 꾸지람 후에는 관용을 함께 베풀었으며, 이것이 바로 사랑의 증거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어떠한 성격이나 상황에 대해서도 성실히 사랑을 베풀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추위와 눈보라의 한가운데서 우리의 동행자에게 갑자기 무기력함이 엄습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우리가 그를 그 상황에서 구해 주었다는 이유로 그가 우리에게 화를 낸다면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죄악으로부터 구해내려는 시도에 대해 감사의 고백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죄악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거나 죄악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하찮게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엑셀/ W. Muir, D. D.)

 

5. 시대(역사적 배경): 저작 연대는 확실하게 결정될 수 없지만 주후 1세기 후반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부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본서는 무라토리 정경 (1740년에 무라토리에 의해 발견된 라틴어 사본이며 주후 2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된다)에 수록되어 있으며, 주후 3세기의 교부들인 터틀리안, 클레멘트, 오리겐 등에 의해 언급되었다. 유다서는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한 에녹서와 모세의 승천기를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지위가 격하(格下) 되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으나, 주후 350년에 이르러 정경에 포함될 자격이 널리 인정되었다.

 

6. 기록목적: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일반 서신인 유다서는 이단인 영지주의에 대해 경고하며,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권위에 대한 저항, 불경, 주제넘은 언동, 방탕한 정신 등의 범죄에 대하여 책망하며, 불안정한 신자들을 미혹하고 주님의 식탁을 더럽히는 거짓 교사들을 꾸짖기 위해서 이다.

 

7. 핵심단어: 기억하다, 지키다, 경건치 않는, 사랑하는자, 심판

요 절: 1:3하, 21

 

 

 

 

1. 제목(명칭의 유래): 요한계시록

 

2. 중심내용: 요한계시록은 예언서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자신의 왕권을 확립하시겠다고 선포하신 뜻의 실행을 반대하고 방해하기 위하여 사단이 주관하고 계속적이며 점차 격렬해지는 범세계적 규모의 시도들을 특별히 강조한다. 그러한 강조는 이 싸움이 악의 세력의 완전 멸망과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의 수립으로 종결지을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해준다. 이 오랜 싸움은 크고 흰 보좌 앞에서의 최후 심판, 새 예루살렘의 출현 및 영원함의 시작으로 끝나게 된다.

 

3. 저자: 사도 요한을 저자로 입증하는 여러 자료들이 있는데 (1)네번에 걸쳐 저자의 이름이 게재된다(1:1, 4, 9; 22:8). (2)주후 2세기 전반에 이미 교회는 요한이 저자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는 '유대인 드리보와의 대화 (Dialogue With Tryp-ho the Jew)' 제81장에서 "또한 그리스도의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요한이라 하는 자가 우리와 함께 했는데, 그리스도께서 계시 중에 그로 하여 ... "라고 솔직히 진술하고 있다. (3)본서의 특색이 무엇이든지 간에 요한복음과 묵시록의 어휘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유사점들이 있다.

 

4. 특징: 성 어거스틴은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현상 가운데는 우연히 일어나거나 원인 없이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섭리는 마침내 순결하고 거룩하며, 공의롭고 진실한 것이 승리하도록 모든 것을 인도하고, 조정하며, 통제한다.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순종하는 자마다 선택받은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도성”으로 들어간다. 그런 반면 그 옆에는 다음과 같이 저속한 자들로- 성도에 대한 멸시와 폭력 그리고 핍박을 일삼는- 가득 차 있는,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 세상의 도시가 있다. 동쪽의 바벨론이나 서쪽의 로마가 바로 그러한 성읍이었다. 그것들은 모두가 제국의 수도들로 하나님의 계시를 각각 전해야 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은 전 세계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땅히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어야 했다. 구약의 율법이 신약에 대한 예비적 역할을 해왔던 것처럼 그전까지의 모든 세계 역사는 로마와 그리스도의 강림이라는 대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그리스도 강림 후의 모든 사건은 우리의 최후 승리와 기독교 신앙의 보편적 원리에 맞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가 이처럼 중요한 개념을 의식할 때, 우리는 표면적으로 다른 것들과 서로 상층되는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해석들이 결국은 일치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계시록에 예언되어 있는 것들의 완전한 성취로 간주되는 계속적인 역사적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와 세상을 다스리시고 계시다는 하나의 단순한 실증-말하자면, 하나의 예에 불과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계시록에 근거한 역사의 해석 방법은 대체로 3가지로 분류된다. 그것은 과거주의파와 역사주의파 내지는 연속주의파, 그리고 미래주의파의 견해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다 성 어거스틴이 앞에서 언급한 대개념을 중요한 원리로 인정하는 역사적 해석방법을 첨가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해석 원리에 대해 그것을 ‘영적’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에브라드는 이렇게 말하였다. “계시록은 거짓된 예언이나 우연한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지 않으며, 그리스도와 그 대적간의 투쟁에 등장하는 주도적인 세력에 관한 경고이며, 위로의 예언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시대의 인간을 향해 적그리스도에 대해 철저히 무장할 것을 경고하는 훈계로 가득 차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핍박받고 있는 세상의 교회가 놀라운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엑셀/ Archdeacon Lee.)

 

5. 시대(역사적 배경): 기록시기에 관하여는 여러 설이 있으나 사도 요한이 도미티안 황제(주후81-96)에 의해 밧모 섬(1:9)에 유배되었으며 그의 유배 시기인 도미티안 황제의 재위 14년인 주후 95년으로 잡는다. 이것은 초대 교회의 이레니우스의 견해에 부합될 뿐만 아니라 황제 숭배를 강요했고, A.D. 92년에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이 심했다는 역사가인 플리니의 말과도 일치한다.

 

6. 기록목적: 첫 장의(1:1-3) 말처럼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다.

7. 핵심단어: 어린 양(29), 보좌(44) 요절 1:19:1:1
1. 제목(명칭의 유래): 원래의 명칭은 「태초에(In the Beginning)」이었으나 Genesis를 성경 첫 권의 표제어로 삼게되었다. Genesis(창세기)라는 말은 헬라어에서 라틴어를 거쳐 유래된 것으로 70인역 성서(LXX)에서는 「생명을 줌」, 「기원」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Genesis」를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기원, 원천, 또는 생성"을 의미한다. "태초에"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브레쉬트(bereshith)는 성경에 첫 번째로 나오는 단어이다.

 

2. 중심내용 :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 하시며 이 세상의 기원과 인간의 죄, 구원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직접 관계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택한 인간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3. 저자: 모세를 본서의 신빙성 있는 저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난하다. 창세기는 모세 오경 가운데 첫 번째 책인데 성서와 전승 모두가 본서를 모세의 저작으로 본다. 이스라엘의 삶의 전(全) 영역에 걸친 이러한 역사를 기록하기에 모세보다 더 적합한 인물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운"(행 7:22) 모세는 섭리에 따라 유용한 기록 사본 및 구전(口傳)을 이해할 수 있도록 예비되었다. 시내 산에서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특권을 부여받았던 선지자로서 모세는 그 모든 세대동안 그 시대를 통한 여호와의 활동 모습을 기록할 준비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4. 특징(성격): 창세기는 기원에 대한 책으로 모든 창조, 가정의 형성, 죄의 기원, 하나님의 계시, 동족의 발전, 그리고 선민(選民)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시작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서는 영원한 진리를 제공하며, 불가해한 문제, 신비한 사건 및 까다로운 상황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해결하고 있다. 창세기는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말씀으로 해와 달, 별, 유성, 은하수, 식물 및 움직이는 피조물을 존재케 하시고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경이로운 순간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영감을 받은 저자는 50장(章)에 달하는 본서를 통하여, 죄가 어떻게 은밀히 들어와서 파멸과 손상 및 죽음을 가져왔는가를 말하고, 패배한 죄의 비극적 결과를 보여주며, 또한 그후에 축적된 인간의 사악함이 어떻게 인간 사회에 파국을 몰고 왔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새로운 민족의 성장과 아브라함, 이삭, 야곱 및 야곱의 자녀들에 대한 흥미로운 삶을 더듬어 진술한 다음, 애굽에서의 요셉의 죽음으로 끝맺고 있다.

창세기에는 그리스도와 관계된 모형과 예표가 있는데 그리스도의 혈통에 있어서 창3:15(여자의 후손), 4:15(셋의 줄기), 9:26(셈의 자손), 12:3(아브라함의 가계), 18:18(씨), 26:3(이삭의 후손), 46:3(야곱의 후예), 49:10(유다지파), 49:19(실로)등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모형으로는 가시는(3:18)-저주와 가시관으로, 가죽옷은(3:31)-대속물과 , 속죄함으로 , 어린양은 (4:1-5)-화목제물, 희생양으로, 방주는 (7-8장)-교회 및 그리스도 안의 구원을(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되심 엡5:23), 사다리(28:10)-그리스도의 중보(딤전2:5)됨을 모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람들로는 아담(롬5:14)-오실 자의 표상으로, 멜기세댁(14:17,히7:2,3)-의의 왕으로, 여호와의 사자(16:7 - 14;18:22;19:1 ;22:11, 15, 16;31:11, 13)-사람으로 오심, 이삭(22장)-희생양, 순종하심으로, 유다(43:9;44:32)-죄를 담당하심으로, 요셉은(37:28;41:41,42)- 주님이 아버지에 의해 사랑한 바 되었으나 형제에게 미움받아 팔렸으며, 높이 올려지고 형제들의 축복과 구원이 되심을, 실로는 (49:10)-장차 오실 이로 예표된다고 할 수 있다.

5. 시기: 이 책의 내용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약 2350년으로 주전 4004년부터 주전 1689년까지이고 모세가 기록한 시기는 B.C1446 - 1406년 사이 즉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 모세가 느보산에서 죽기 이전까지의 기간일 것이다.

6. 기록목적: 역사의 시작과 우주의 근원을 밝혀주고 있다.

7.핵심단어: 하나님(200), 여호와(144), 창조(8), 죄(21), 아브라함(119), 이삭(92), 야곱(178), 요셉(165), 언약(22).

요절 4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출애굽기(Exodus)는 70인역(Lxx)에서의 명칭인 엑소도스(exodus)의 의역으로 라틴어 성서인 벌게이트(Vulgate)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헬라어로 '출발' 또는 '나감(going out)'을 뜻한다. 본서의 히브리어 제목은 첫 구절인 '이름은 이러하니 또는 이것을 간단히 줄인' 이름이다. 애굽에서의 탈출이 본서의 절반을 거의 차지한다.

2. 중심내용: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한 것과 해방된 것, 그 후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생활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방법을 교훈하고 있다.

3. 저자: 성서는 오경의 나머지 네 권과 아울러 이 책의 저작권을 모세에게 돌리고 있다. 고고학적 발견들이 이 사건들의 사실성(事實性)을 입증하였다.

4. 특징 : 출애굽기는 창세기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요셉과 모세 사이의 시기는 1장 6, 7절로 간략히 이야기되고 야곱 자손의 새로운 상황이 설명된다. 바로와 요셉의 총애를 받던 이스라엘 손님들은 종의 민족이 된다. 바로가 히브리인들을 지배하려 하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 하신다. 먼저 모세가 예비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구원의 사건이 일어난다. 애굽 치하로부터의 구원은 단순한 노예 상태로부터의 해방 이상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친히 예비하신 백성으로서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셨다. 본서의 주제는 단지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고 세우신 것이다. 플랙(E. E. Flack)은, '출애굽기가 지금까지 편찬된 책 중에서 민족의 출범을 다룬 가장 중요한 책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Interpretation of Exodus," Inter-pretation, Jan, 1949). 예언서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히브리의 모든 후속 역사 또는 역사 철학은 출애굽이 히브리인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라고 회고하였다"(Alleman and Flack, Old Testa-ment Commentary, p.207). 출애굽의 연대로 선택할 수 있는 주요한 두 해는 주전 1446년과 1290년이다. 성경이 무오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주전 1446년을 주장하는데, 이는 통계 자료에 의해 그와 같은 계산이 산출되기 때문이다. 열왕기상 6장1절에는 성전 건축이 출애굽 후 480년에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전 건축이 주전966년에 시작되었음을 감안하면 출애굽한 해는 주전 1446년이 된다. 성경의 연대는 매우 다양한 연대기절, 역사적 및 고고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옹호될 수 있다. 일부 성서학자들은 다양한 고고학적 및 역사적 사실들이 후기 연대를 지지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과 같은 셈족 계통의 힉소스족이 통치하던 주전 1700년경에 애굽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어떤 고고학적 증거는 연대가 주전 13세기 중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비돔과 라암셋을 회복(출1:11)시킨 라메세스(Rameses)대왕이 당시의 통치자였다. 라기스에서 하솔에 이르는 수많은 가나안 성읍들의 몰락 시기는 주전 13세기이다. 글루엑(Nelson Glueck)이 트랜스 요르단과 네게브를 탐사한 바에 의하면, 13세기 이전에는 이스라엘의 진출에 저항할 모압, 암몬, 에돔 및 아모리 족속의 국가들이 그곳에 없었다고 한다. (cf. The Other Sideof Jordan and Rivers in the Desert). 이 모든 자료들은 주전 1446년이라는 시기와 일치된다. 출애굽 시기에 관한 견해의 불일치 때문에 본서의 사실성(事實性)이나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그것의 메시지가 손상되어서는 아니 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시기: 이 책의 내용에 포함된 시간은 약 216년으로, 주전 1706년부터 1490년까지임

6.기록목적: 고통중에서 위안을 주며, 노예생활중의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시리라는 소망을 주기 위함.

7.핵심단어: 여호와 353, 구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요절: 3:8;12:51

 

 

 

 

 

1. 제목(명칭의 유래): 레위기란 명칭은 벌게이트의 역의 레비티쿠스에서 온 것인데 이 명칭은 “레위인에 관한”을 뜻하는 레비티콘에서 파생된 것이며 70인 역에도 있다. 유대인에게는 이 책의 명칭이 레위기에 최초로 나오는 히브리어인 와이크라(그리고 그가 부르셨다)로 알려져 있다. 구약 성서의 명칭의 대부분 그 책의 처음에 나오는 단어나 말로 일컫는 것이 유대인의 관습이었다. 레위기의 서두에 '그리고'(And)란 말을 사용한 것은 이 책이 성서의 다른 어떤 부분에 대한 부록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록 이 책은 출애굽기의 사상을 잇고 있지만 그 자체가 독립적인 한 권의 책이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이 거룩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나타낸다. 이 책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경건하고 거룩하게 하는 제사장의 기능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즉, 레위기는 제사장 혹은 레위인의 직분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언급은 신약 성서의 히브리서 7장 11절에 기록 되여 있다.

2. 중심내용: 레위기가 전하는 영적인 메시지는 성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음식에 관한 규례, 제사장의 결례, 희생제사에 대한 규례 그리고 광야로 보낸 신비한 '아사셀'(Azazel)이란 산 염소 등을 포함한다. 레위기의 강력한 메시지는 성결, 희생제사, 속죄에 대한 개념들로 관찰 요약될 수 있다.

3.저자와 저작 연대: "제사장은 그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반차대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되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하니라"(스 6:18). 서기관 에스라는 재건된 성전을 봉헌하는 적절한 절차를 결정하는 데 사용한 자료를 묘사하면서 레위기를 사용했음을 언급한다. 레위기는 바로 성막 의식에서 합당한 예배를 위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규례를 기록함으로서 모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규례가 마련되어야 제사장과 백성이 질서 정연하게 예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중심적인 통제력과 일정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성막 예배를 확립하는 데 있어 모세의 역할이었다.

4.특징: 레위기의 두번째 부분(17-27장)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인간의 근본원리인 '성결법전'(Holi-ness Code)을 묘사한다. 이 부분의 강조점은 레위기의 주요한 두 부분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으로 옮아간다. 레위기는 모세를 통해 새 언약의 영원한 희생제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기했다. 히브리서는 이러한 새 언약을 묘사한다. 레위기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의 보다 중요한 측면에 대한 배경을 제시한다. 레위기에 대한 연구는 오직 그것이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적할 때만 가치를 지닌다.

5. 시기: 이 책에 기재된 법도와 명령은 하나님이 일개월 간의 기간에 걸쳐서 모세에게 분부하신 것으로 그 기간은 대략 이스라엘인의 정월 1일 곧 회막이 건축될 때(출 40:2, 17, 레 1:1)부터 2월 20일, 즉 시내광야를 떠날 때까지(민 10:11-12)이다.

6. 기록목적: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가(성별의 지침서, 제사장, 제물, 그 종류와 그것에 관한 법)를 가르쳐 주며,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율법에 정한 방식으로 제사장의 중보와 희생제사와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야 함을 가르쳐 거룩한 백성으로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7. 핵심단어: 거룩(50), 제사(151), 제물(43)

요절: 레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 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이 책의 옛 명칭들 중에는 현대 히브리 성서에 사용되는 명칭이 있는데, 그것은 "광야에서"를 의미하는 "베미드바르"이다. 이 단어는 이 책의 첫째 줄에 나오는 것으로 전체 내용을 설명해 준다. 영어 명칭은 70인역(LXX)에서 유래한 것으로, 벌게이트 성서을 통하여 "민수기"라 불리게 되었다. 분젠(Bunsen)은 이 책을 “병력 명부”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민수기의 특징에 잘 어울리는 제목으로 보인다.

2. 중심내용: 민수기의 중심 사상은 단일하며 명백하다. 즉 민수기는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께로 부르시는 이스라엘의 소망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민수기에서 백성은 하나의 진(陣)으로서 어떻게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서 배운다. 한 민족으로써 그들이 여행하고 제사하며 정복하는 것을 대비하여 그들의 종교적, 사회적, 및 군사적 체제가 정비된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법적, 의식적인 세부사항에 대한 지시와 율법이 이 책 전체에 걸쳐 군데 군데 들어 있다. 민수기는 시내 광야에서의 마지막 19일부터(1:1, 10:11) 제 40년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민 22:1, 26:3; 33-36:13). 민수기에 나타난 사건들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서 북쪽으로 여행하여 바란 광야에 도착하였다. 정탐꾼들이 "악한 보고"를 하였고, 여호와에 대한 거역을 선동하였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이방인의 손에 패배하였고, 광야에서 38년 이상을 방황하게 되었다. 그 후 그들은 요단 동편 모압 평지로 여행하였고, 아르논 강 북쪽의 요단 동편 전 지역을 점령하였다. 여기서 그들은 모압 및 미디안 여인들과 음행하는 죄를 범하였고 그들의 신을 섬겼다. 새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인구조사를 하였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미디안 사람들을 멸망시켰다.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을 기업으로 얻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하였다. 20-36장은 40년째 되는 해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36:13). (엑셀, 신구약 강해설교 대전))

3. 저자 : 모세 5경의 다른 책들과 같이 민수기의 저자도 모세로 생각된다. 이 책에서는 80번 이상이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가라사대" "모세가 진행한 것을 기록하였으니"(33:2)라는 구절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사에 개입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은 초자연적인 사건이었다. 발람과 발락 이야기는 (민22-24장) 이 책에서 명백하게 모세의 저작이라고 보지도 않으며 모세가 언급되지도 않은 유일한 구절이다. 그러나 이 책의 대부분은 모세가 영감을 받아썼다는 것은 명백하다.

4. 특징: 단지 몇 장만이 인구조사를 다루고 있으며(1-4장, 26장), 이 책의 대부분은 율법, 규례, 그리고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경험을 다루고 있다. 두 번에 걸쳐 시행된 인구조사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첫번째는 광야생활을 준비하며 시내 산에서 이루어졌고, 두번째는 이보다 약 40년 후에 약속의 땅에 들어갈 준비로 요단 강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이 두 차레의 인구조사가 이 책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놓는다. 1-21장은 인구 조사로 시작하여 광야시대를 다루고 있으며, 26-36장은 새 세대의 인구조사로 시작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기 몇 달 전까지의 역사를 말해준다. 이 둘을 나누어 놓는 발람의 이야기는 문학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민수기는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와 함께 연구해야 한다. 출 19:1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후 제3월에 시내 광야에 도착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3월부터 12월에 이르는 동안 그들은 십계명, 성막 건축을 위한 지시, 그리고 레위기에 언급된 상세한 제사제도를 받았다.

5. 시기: 이 책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약 삼십 구 년으로 주전 1490년부터 주전 1451년까지이다. 이스라엘인이 시내 광야로부터 출발하여 마지막에는 모압 평원에 도달하는 것을 포함하여 다루고 있다. 모압 평원은 가나안 땅의 큰 입구이고 강 건너편은 바로 여리고 성임

6. 기록목적: 신앙과 불신앙, 순종과 불순종의 역사를 기록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지 못한 후 세대들에게 간접적인 교훈을 주기 위해서이다.

7. 핵심단어: 봉사(19), 전쟁(1), 광야(46), 원망(11), 제사(67), 요절 10:9;10:29, 14:28-30

 

 

 

1. 제목(명칭의 유래): 문자적으로 신명기는 제 2의 율법을 의미함 - 다시 말해 주는 것, 되풀이 해 말하는 것, 다시 들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신명기는 영어로 Deuteronomy인데 이것은 17:18의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라는 구절을 듀테로노미온 투토(deuteronomion touto)즉 '이 두번째 율법서'라고 오역(誤譯)한 70인역 성서(LXX)와 벌게이트역의 듀테로노미움”(Deuteronomium) 이라는 제목에서 근거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17장 18절에 언급된 등사하도록 명령된 율법서가 이 책을 의미한다고 여겨서 이 책의 이름을 “율법의 반복”(mishneh hattorah)이라고 불렀었다. 등사하도록 명령한 율법이 신명기만을 의미한다고 하는 유대인들의 해석이 옳은 해석은 아니지만, “율법의 반복”이라는 제목은 신명기의 내용과 잘 일치하는 것이다. 히브리 성경에는 그 제목이 '말씀들'을 뜻하는 드바림(debarim)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각 권의 첫 단어를 각각의 제목으로 삼는 관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명기는 "이는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1:1)"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고대에 행해진 종주권 맹약(宗主權 盟約)들의 서두가 이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히브리 성경의 '말씀들'이라는 제목은 신명기의 문학적 성격을 알려 주는 실마리의 하나를 제공해준다. 한편 랍비 저술가들 중의 몇몇은 그들이 성경의 각 책에 제목을 붙일 때 본문의 처음 부분에 등장하는 단어들로 제목을 삼던 습관에 따라 신명기의 제목도 본문의 처음 부분에 나타난 두 단어로 정해서 “재증거의 책”이라고 불렀다. (엑셀/ T.E. Espin, D.D., in "Speaker's Commentary.")

2. 중심내용: 신명기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약의 책들 가운데 하나인데, 신약 성경에는 이 책이 80회 이상 인용되고 있다. 신명기 전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주된 주제는 언약의 갱신이다. 시내산에서 처음 세워진 언약은 이스라엘 자손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던 모압 평지에서 갱신된다. 사십년동안 광야를 유랑하면서 생긴 새 세대에 대하여 율법을 재해석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3.저자 및 저작 시기: 신명기에는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입으로 전했을 뿐만 아니라 쓰기까지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신31:9,24).

4.특징: 1)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통치적 행정에 대하여 말함 청중인 이스라엘 자손도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다루심에 있어서 체험이 많았음. 2) 어떤 종류의 사람이 좋은 땅인 약속된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가에 관하여 민수기를 보충하는 말씀임, 3) 하나님을 사랑과 의의 하나님으로 말함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적 행정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 반응할 것이 요구됨, 4) 과거의 회상에 있어서 이 책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사람의 실패를 지적해 줌 5) 미래에 관해 조망함으로서 이 책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과 통치를 알고 또한 사람의 참된 상태를 알 수 있기를 기대함 결국 이 책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의 백성으로 하여금 그분의 뜻과 미리아심을 따라 그분의 충만한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최종적으로 역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이 책의 내용이 포함한 시간은 약 40년, 곧 주전 1491년부터 주전 1451년까지임, 장소는 모압 평지이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의 실행이라는 틀 속에서만 바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주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완전히 성취된 약속들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 안에서 일시적이며 상징적으로 성취되었다. 시내산 계약에서 신정(神政)정치가 확립되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왕권의 지상 대표자로 모세를 세운 것이었다. 그러나 반역한 출애굽 세대가 광야에서 멸망하고 모세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게 되자 새 세대를 위하여 언약의 갱신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한 의식에 있어서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행위는 종된 백성을 여호와 하나님께 바칠 것을 맹세하는 것이었다. 특히, 하나님의 통치는 중재 역할을 하는 지상의 왕조(王朝)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는데,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복종하겠다는 언질을 받아냄으로써 확증되어야만 한다.

6. 기록목적: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누구나 지켜야 할 규례에 대해서 새로운 세대에게 가르치며 적용하기 위해서이다.

7. 핵심단어: 회상, 순종, 추억, 저주, 계약, 하나님을 사랑함, 그분의 계명들(그분의 말씀)을 순종함, 그분의 축복을 받음. 요절 4:13;5:29;6:11, 10:12,13, 11:26-28, 28:1;29:1

 

1. 제목(명칭의 유래): 히브리어 성경의 명칭은 ‘여호수아’임, 70인역의 명칭은 ‘예수스 나우에이’임. 구약 정경 가운데 두번째로 큰 덩어리인 역사서의 첫 권은 그 주요 인물인 여호수아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이 명칭은 성경의 다른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그 내용에서 유래되었다. 여호수아서의 내용은 여호수아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사명(신31:7, 8)을 완수하는 과정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여호수아가 죽어 장사됨으로써 끝을 맺는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이 책을 여호수아서라고 불렀던 것이다.(엑셀/ T.E. Espin, B.D.)

2. 중심내용: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성전에서 승리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좋은 땅에 관한 약속을 성취하고자 하심은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할 장소를 소유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특히 인성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그분을 이 땅에 이끌어오는 노선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3 저자 및 저작연대: 이 책은 하나로 된 문학작품이다. 여호수아가 이 책 전체의 저자였다고 할 수 없는 것은 본서가 그의 죽음(24:29,30) 및 그가 죽은 후에 발생한 사건들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례상 죽고 난 이후의 일을 추가하여 넣었다 하여도 저자로는 여호수아가 가장 합당하다고 할 것이다. 여호수아서는 사사 옷니엘의 활동기(주전 1367-1327년경)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4. 특징: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성전과 그로 얻게된 지파들간의 실제적인 기업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관계된 예표들이 나온다. 여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가나안으로 인도)-승리를 이루심(롬8:2-4, 히7:18,19), 여호와의 군대장관(5:13_15)-우리를 위해 싸우시는(고후2:14), 라합의 창에 드리운 붉은 줄(2:18)-보혈의 구원(히9:19-22), 그리심산, 에발산(8:30)-저주와 축복을 한 산으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요3:17,18)

5.시기(역사적 배경):이 책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25년으로, 기원전 1451-1426년까지임. 장소: 모압 땅(신 34:8-9)과 가나안 땅

6. 기록목적 : 여호수아는 오경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계속해서 기록하며 족장들과의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각 지파들을 약속된 땅에 정착시킴으로 생겨난 신정(神政)국가를 보여주고 있다(11:23;21:43-45).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가나안족속들에 대한 그의 심판하심과 이스라엘이 모든 악을 추방해야만 한다는 그의 주장에서 나타난다. 본서에서 입증되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의 또 다른 국면은 하나님의 구원이다. 예수의 히브리어 형태, 즉, '여호수아'라고 하는 바로 그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소유하게 되는 이스라엘의 구원사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은(엡 1:19,20;6:10) 투쟁과 승리와 축복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체험을 보여준다(엡 1:3;2:6;6:12). 히브리서 4장에 나오는 가나안에서의 안식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사단을 정복할 수 있게 해주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과 중보 속에서의 영적 안식을 상징한다.

 

7. 핵심단어: 소유하다(8), 기업(50), 진멸(14) 분배(5), 점령(5)

요절: 수 11: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사사기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정경속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 책에 붙여진 사사기라는 명칭은 이 책이 사사(Judges)라고 불리우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의 업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사사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쇼패트(shophet)'라는 말은 심판자 또는 심판관이라는 말보다는 훨씬 더 광범위한 뜻을 가지고 있다. 이하 생략 (엑셀/ Prof.G.F. Moore)

2. 중심내용: 이스라엘이 그들의 땅을 지키지 못하고 그들의 종교 및 문화생활을 강력히 고수하지 못한 것이 계속되는 비극의 원인이었다. 우상숭배가 시작되었고 사악한 압제자들이 등장하여 그들을 못살게 굴었으며 굶주림과 기근이 그들 곁을 떠날줄 몰랐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을 세워주셨다. 고통이 극에 달하여 백성들이 절망적으로 울부짖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압제자의 멍에를 뿌리치고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사사 즉 구원자를 불러 세우셨다. 중요한 또 하나의 교훈은 어떠한 무기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닌 백성을 멸할 수 없으며 전쟁에서의 모든 무기는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수천의 군대보다도 훨씬 강하다. 마지막 교훈은 인간이 자신의 소견에 비추어 옳은 것을 마음대로 행할 때마다 무질서가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행할 때에 문명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모든 면에 있어 에덴 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원죄의 한 모습인 것이다. 인간은 오로지 하나님의 율법과 사랑에 순종함으로써만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누리게 하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엑셀/신구약 강해설교 대전))

3. 저자: 구약의 다른 역사서들과 마찬가지로 사사기도 익명으로 기록되었다.

4. 특징: 여호와를 버렸을 때 그들의 대적 아래서의 비참한 패배들로 가득한 역사서

5. 시기(역사적 배경):이 책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305년으로 주전 1425년부터(여호수아의 죽음 후-1:1) 주전 1120 년까지(삼손이 죽었을 때)임 - 전체 사사 시대는 약 450년 정도이다(행 13:20). 본문의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사사기의 저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그것은 실로의 멸망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삿18:31)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삿17:6)'라는 귀절은 그 시기가 왕정 기간 중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여부스족이 이 때까지도 예루살렘에 거한 것으로 언급되는데(삿1:21) 이것은 그 시기가 다윗 통치 기간 중에 있었던 여부스 정복 이전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또한 게셀에 대한 언급(삿1:29)은 바로가 그 성읍을 솔로몬에게 결혼 선물로 주기 이전이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왕상9:16). 따라서 이러한 본문의 증거자료는 사사기의 저작 시기를 사울의 통치 기간 중 또는 다윗 시대 초기로 제시해 주는데, 그렇다면 그 시기는 대략 주전 1050년에서 1000년 사이가 될 것이다. 탈무드와 초대 기독교 전승은 사사기의 저자가 사무엘이라고 하는데, 증거는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사사기가 사무엘과 동시대인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형태대로의 사사기는 그것이 복잡한 구조의 편집물이 아님을 입증하는 통일성을 보여 준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 기록목적: 사사기는 이스라엘백성들의 타락과 압제와 구언이라는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서 역사속에 작용하고 있는 도덕적인 힘을 보여 주고 있다. 사사기는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신실하심과 자비로우심을 기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백성들의 존속을 위협하는 여러 상황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기적적으로 구출되는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사사기는 보여주고 있다. 또한 누구든지 하나님만 의지하면 놀랄만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점과 하나님의 법을 굳게 지키는 대신 죄악의 세력에 이끌리어 타락하게 되면 어려운점에 처하게 된다는 점을 증거하고 있다. 사사기는 역사적인 시례를 통해서 우리들로 하여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것과 영원한 생명을 굳게 붙잡을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책이다. 끝으로 사사기는 모든 대적을 물리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승리에 우리가 참여하도록 격려하고 있으며 우리가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대적들을 당시의 발 아래에 굴복시키실 때에 그의 나라의 상속자가 될 것임도 보여주고 있다. (엑셀/ Lord Arther Hervey)

7.핵심단어: 이스라엘 자손의 하나님을 신뢰함, 하나님을 버림, 원수들에게 패배 당함, 하나님께 회개함, 사사들로 말미암아 건져내어짐 및 부패하게 됨(1:1-3, 2:11-3:11). 요절: 요절2:19;17:6

1. 제목(명칭의 유래): 룻기는, 이 책의 여주인공, 즉 남편이 죽은 후 과부가 된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모압 여인의 이름을 따서 그 명칭이 붙여졌다. 룻은 다윗 왕(룻 4:18-22)과 예수님(마 1:1,5)의 조상이었으므로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 중심내용: 이방인인 한 모압 여인까지도 그녀를 구속한 거룩한 선민과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에 들 수 있었으며 거룩한 기업에 참여하는 상속자가 되었음. 이 책이 이스라엘에서 보존되고 존경받은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룻이 다윗 왕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의 조상이 순수한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며, 다윗의 계보에 모압 여인 룻을 소개하는 것은 후에 "다윗의 아들" 메시야가 그녀의 후손이 되리라는 것을 의미하였다.

3. 저자와 저작 연대: 이 책의 저작 년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성경학자들은 이 책 자체에서 저작 시기에 관한 몇몇 단서들을 찾아낸다. 다윗이 이 책에 언급되어 있으므로(4:17, 22) 이것이 기원전 10세기 이전에 기록되었을 리는 없다. 저자는 고대의 관습으로 생각되는 몇몇 관습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4:6-8) 이것은 그 관습이 폐지되고 몇 년 후에 이 책이 기록되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룻기가 다윗 시대보다 얼마나 늦게 쓰여졌는가 하는 문제는 추측해 볼 도리밖에 없다. 어떤 학자들은 그 연대를 기원전 4세기로 잡는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바벨론 포로 이전이라고 주장한다. 파이퍼 (Robert Pfeiffer)는 그의 「구약 입문」(p.718)에서 이 책의 저작 년대를 기원전 400년경이라 보고, 후 시대의 유능한 기자가 초기의 형태를 따라서 이 작품을 썼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영(Edward Young)은(구약 입문, p. 358) 이 책의 계보에 솔로몬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것에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후대의 기자가 다윗의 계보를 그 시대를 넘기까지 확장시켰을 것이므로, 이 책은 아마 다윗의 통치 기간 동안에 쓰여졌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성경성구대전)

4.특징: 룻기는 사사기의 부록으로 사사기의 처음 절반과 동시대임을 알 수 있다. 특별히 ‘고엘’제도가 나오는데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사람이나 혹은 유산이 노예처럼 속박되어 팔렸을 때 가까운 친척이나, 유산을 찾을 수 있는 능력자나, 스스로 찾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속박된 사람은 자유로운 몸이 되고 유산은 주인에게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비참한 역사에 대한 책으로 어둡고 악취가 난다 할 것 같으면 룻기는 몇 가지 탁월한 이야기의 기록으로 밝고 향기롭다. 또 룻기에 함축된 예표들로 풍성한 부를 소유한 보아스(2:1)는 신성한 은혜에서 풍성하신 그리스도를(고후 12:9) 예표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좋은 땅의 밭은(2:2-3) 하나님의 선민의 생명 공급을 위한 모든 영적이고 신성한 소산물의 근원이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빌 1:19下) 예표하며, 보리와 밀은(2:23)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모두를 위한 음식을 만드는 재료이신 그리스도를(레 2장, 요 6:9, 33, 35) 예표한다 할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의 수확물의 이삭줍기에 참여하는 권리를 받은, 하나님의 약속들과 동떨어진 이방 죄인인 모압 여인(신 23:3) 룻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녀들의 분깃인 상아래 부스러기들에 참여하도록 혜택을 입은 「이방 개들」을(골 1:12, 마 15:25-28) 예표한다 할 수 있다.

5. 시기(역사적 배경): 이 책의 내용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약 11년으로, 주전 1322년경(1:4)부터 주전 1312년경(4:13)까지임. 이 책의 역사는 모압과 유다에서 발생했다(1:1, 22).

6. 기록목적: 룻기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목적을 가지고 기록되었다. 첫째 룻기는 사사기를 보충하는 부록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룻기는 참다운 이스라엘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셋째 룻기는 구속사의 흐름에 있어서 이스라엘과 이방인과의 미묘한 관계를 해명해 주고 있다. 그런데 룻기가 보여 주고 있는 이방인에 대한 관대함은 후에 이스라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룻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했다. 넷째 룻기는 다윗의 계보를 추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 네가지 사실 중에서 마지막 두 가지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룻기의 가장 주된 목적이 된다고 볼 수가 있다. 왜냐하면 룻기는 다윗의 계보를 밝힘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은 유다 지파의 보아스와 이방 여인 룻의 혈통을 타고 났음을 밝힘으로써 이스라엘과 이방인 간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은근히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엑셀/ A. Edersheim, D.D)

7. 핵심단어: 기업(11)을 무르다(구속), 은혜(4), 요절: 룻 3:9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1. 제목(명칭의 유래): 제목을 '사무엘'이라고 한 이유는 그가 본문에서 전개되는 역사의 중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로 사무엘은 '하나님의 들으심'이란 뜻을 갖고 있다. 사무엘상. 하는 열왕기상. 하와 마찬가지로 히브리 성경에서는 본래 한권의 책으로 되어있었다. 그 후에 칠십인역 성경이 처음으로 '사무엘서'를 두 권의 책으로 나누어 왕국기 α와 β(Books of the kingdoms)라고 불렀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사무엘에서 시작된 역사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열왕기서'는 각각 왕국기 Ⅲ, Ⅳ로 불리어졌다. 그후 제롬이 왕국기 Ⅰ-Ⅳ를 열왕기Ⅰ-Ⅳ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나서 벌게이트 성경에서는 Ⅰ,Ⅱ를 사무엘서로 환원하고 Ⅲ-Ⅳ를 열왕기로 부르기 시작했다. 또한 히브리 성경에서 사무엘서가 상.하 두권으로 확정된 것은 1517년 다니엘 봄버그가 히브리 성경을 개정, 인쇄하면서 부터였다. 그후 히브리 성경도 본래의 히브리어 제목을 계속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 부분을 각각 두 권씩 네 권의 책으로 분류하고 있다. (엑셀/ 강해설교연구대계)

2. 중심내용: 이 역사서 안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열왕기'에 대한 언급이 계속되고 있으며, 왕국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이 보존되었다.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리된 이름들은 각각의 기록들이 왕국 분열 이후에 기록되었음을 나타낸다. 심오한 선지자적 통찰력과 영감을 가진 사람들은 사무엘 시대에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기록하기 위해서 이 자료들을 사용하였다.

3. 저작 시기 및 저자: 사무엘상의 사건들은 대략 주전 1100년에서 1010년 경까지의 일들이다. 사무엘서의 저작시기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 문제가 까다로운 것은 사무엘서의 대부분이 사무엘 사후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엘상의 앞부분은 주전 1000년 경에, 그 나머지 부분은 그후 30년 내지 50년뒤에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무엘은 공직에서 물러나기 전의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부분만을 기록했던 것 같다. 사무엘서의 많은 부분, 특히 다윗의 궁중 생활을 취급하는 부분은 아비아달이 기록했다는 주장이 있다. 아비아달은 피신 중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인 다윗과 친밀하게 지냈다. 또한 그는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고, 역사를 기록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와는 달리 사무엘이 세운 학교들 중 한 학교에서 배운 선지자들의 아들 중 하나가 그의 선생이 시작한 이스라엘 역사의 기록을 계속 수행하였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4.특징: 사무엘서의 기본 사상은 하나님께서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민족의 삶 전체를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때로는 심판하시고 때로는 축복하시면서 당신의 예정하신 목적-세상의 빛이 되도록, 구원의 섭리를 성취하시기 위하여 특별히 세우신 이스라엘을 메시야의 강림을 위해 예비시키시는 것-을 향하여 역사하신다. 이 기본 사상을 드러내기 위해서 몇 가지 부수적인 주제가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나이 어린 사무엘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범죄한 백성 위에 임박한 진노를 계시한 것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제사장과 은혜를 저버린 백성들을 심판하신다는 불변의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 또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울의 역경도 하나님이 버리신 백성들의 비참한 운명을 경고하고 있다.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는 ①‘만군의 여호와’(1:3) :전체 성경 가운데 ‘만군의 여호와’가 약 281번 사용되었는데 삼상 1:3에서 첫 번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전능자요 하늘 위에 모든 군대의 주이심을 의미하는 말이다. ② ‘메시야’(2:10): 한나가 그의 기도에서 첫 번째로 사용하였는데 그 뜻은 ‘기름 부음 받은 자’이며, 신약의 ‘그리스도’이다. ③ ‘이가봇’(4:21) :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④‘에벤에셀’(7:12) :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5. 시기(역사적 배경): 사무엘 상에 기록된 역사는 엘리부터 사울이 전쟁에서 죽을 때 까지로서,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약 150년으로, 주전 1171년부터 주전 1056년까지임. 사무엘 하에 기록된 역사는 약 38년으로 주전 1056년부터 주전 1018년까지임. 주요 장소는 에브라임과 유다이다. 사무엘상, 하의 기록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연대 추정에 있어서 난점의 하나는 본서 내용의 대부분이 사무엘 사후의 일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사무엘상의 전반부는 B.C 1000년경에 기록된 것 같고 그 나머지 부분은 적어도 30-50년 같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 기록목적: 사무엘의 출생에서 부터 사울의 사망까지 선택받은 민족의 역사로 특히 첫 왕 사울과 함께 어떻게 왕국을 시작하였는가를 보여 주며 초기 왕정의 역사를 도덕적, 선지자적 관점에서 기록하여 부패한 인간에게 교훈하기 위해서이다.

7. 핵심단어: 기도(14)하였다, 만군의 여호와(5), 여호와(240), 에벤에셀(3), 왕(108) 요절: 삼상 11:15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 크게 기뻐하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사무엘상, 하에 붙여진 사무엘이라는 명칭은 사무엘상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의 이름에서 연유한 것이다. 히브리어 사무엘은 한나에 의하여 '하나님이 들으신다' 라고 해석되었던 것 같다. 성서 학자들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사무엘하(下)라는 명칭은 원래는 열왕기 이 서였으며 현재의 열왕기상, 하는 열왕기 삼, 사서로 불렸었다. 이 원래의 명칭(열왕기 이서)은 이 책이 이스라엘 왕들을 기록한 두 번째 책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사무엘이 사무엘상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이고 또한 왕정(王政)을 확립할 때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사무엘 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던 것이다. (삼상참조)

2. 중심내용: 사무엘하는 사무엘상의 주제를 계속해서 이어 나간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메시야가 그들을 통해 오실 그 백성을 예비하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적 사건들을 통하여 그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주제이다. 이 책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다윗 왕권의 위대함과 수치스러움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다윗의 위대한 믿음 뿐만 아니라 약점도 보여주고 있다. 다윗의 생애에 나타난 하나님의 축복과 심판은 그 민족의 운명에 대한 축소판이다. 사무엘상에 이어 사무엘하에서 밝히 드러나는 또 하나의 부수적인 주제는 바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다윗의 일생이다. 본서에는 그의 덕과 장점 뿐 아니라 그의 죄악도 숨김없이 기록되었다. 다윗도 엄청난 죄를 저질렀지만 그후 그의 태도에서 다른 사람과의 중요한 차이점이 발견된다. 그는 자신의 죄를 깨달은 후에 울며 회개했다. 다윗이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비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었다. 사무엘서 전반에 걸쳐 개인과 민족의 이야기가 얽혀 있지만 이 모두를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오직 한 분이신 전능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범죄로부터 흉악하고 불순종하는 민족의 큰 죄악에 이르기까지 백성을 위해서 자비와 공의로 다스리신다. 이와같은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은 인간의 삶 전체를 통하여 섭리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엑셀/ ..대전)

3. 저자, 시기: 사무엘서의 많은 부분, 특히 다윗의 궁중 생활을 취급하는 부분은 아비아달이 기록했다는 주장이 있다. 아비아달은 피신 중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인 다윗과 친밀하게 지냈다. 또한 그는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고, 역사를 기록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와는 달리 사무엘이 세운 학교들 중 한 학교에서 배운 선지자들의 아들 중 하나가 그의 선생이 시작한 이스라엘 역사의 기록을 계속 수행하였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4. 특징: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는 위대한 통일 왕국 및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단된 왕국의 혼돈 상태에 대한 완전한 역사를 이루고 있다. 히브리 원전에는 사무엘상, 하가 한 권으로 되어 있다. 심지어는 현대 성경에 있어서도 때때로 사무엘상, 하가 열왕기 일, 이서로, 열왕기상, 하는 열왕기삼, 사서로 부제가 붙여지기도 한다. 사무엘상, 하의 분리는 사울의 통치 말엽의 도중에서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이 이야기의 중요한 계속성을 방해하고 있다. 원전에서는 결코 이런 식으로 분리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사무엘상, 하는 연속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함께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무엘하의 많은 부분에서 독자는 사무엘상에 기록된 내용이 무엇인가를 추측하게 될 것이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사무엘하에 기록된 사건들은 주전 1010년에서 970년 사이의 일들이다. 이스라엘의 선지자 및 사사로서의 사무엘의 부름은 구약 시대의 하나님 왕국의 발전에 중대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사의 통치에서 왕정으로 넘어가게 되는 시기에, 사무엘은 사회적 및 종교적 통일의 재건을 지도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있었다. 그는 출애굽 사건에 버금가는 이처럼 큰 국가적 위기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다. 또한 그는 선지자 직분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그 직분을 제사장직과 왕권의 수준까지 발전시켰다. 사무엘 시대 이후로 선지자들은 민족의 영적 생활을 지속시키고 각성시켰으며 하나님의 뜻을 통치자와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도구가 되었다.

6. 기록목적: 사람이 기뻐하는 사람 사울에게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다윗으로 왕권이 옮기는 과정과 다윗의 즉위에서 만년에 이르기까지 생애와 사역을 그리고 있는데, 다윗언약(7:12-16)으로 다윗의 왕국을 영원히 견고케 하실 약속과 장차 올 메시야 왕국의 모델로서 다윗왕국을 묘사하며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7. 핵심단어: 여호와 앞에(12), 다윗(216), 요절 5:4

1. 제목(명칭의 유래): 현재 열왈기상, 하로 알려진 이 책의 제목은 그 내용으로부터 유래되었다. 70인역 (LXX)과 히브리 원전에서는 열왕기상, 하가 사무엘서에 있는 자료의 속편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이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열왕기삼,사서로 그 제목이 붙여졌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한 권으로 되어 있으며, 그 명칭은 「멜라킴」으로 「왕국들」이라는 뜻임. 70인역에서 열왕기 상·하는 「바시레이온」(왕정의 책들)의 제 3,4권으로 되어 있음. 이 책은 유다 나라와 이스라엘 나라의 여러 왕들의 사적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열왕기」라 이름하였다.(엑셀/ ..대전)

2. 중심내용: 열왕기서는 유다 및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에 대한 완전하고 자세한 역사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은 오므리나 여로보암Ⅱ와 같은 막강한 왕들을 잠깐 언급하고 지나쳐 버리지만 반면에 엘리야, 엘리사 및 별로 세력이 없는 요시야같은 왕들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저자가 단순히 분열 왕국의 왕들에 대한 기술에만 관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의 관심은 위대한 종교적 교훈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는 예언적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 및 사건을 강조하였다. 본서에서는 거의 모든 왕들이 독특한 형식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타국의 왕이 통치한 해를 언급함으로 즉위 연도를 알려주고, 유다 왕의 경우에는 즉위시의 나이와 그 어머니의 이름 및 재위 기간이 언급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가 각 왕들의 치세를 평가하고 있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저자의 목적이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이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어떻게 임하는가 하는 것과 역사의 비극적 사건들이 불순종에 대한 심판의 손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하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저자가 각 왕들을 평가하는 어떤 종교적인 척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역시 분명하다. 그것들은 성전과 성전 예배를 지지하여야 한다. 이것은 북왕국의 왕들에게 불가능함이 분명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성전으로부터 이탈하도록 한 사실은 그늘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의 일부였다. 저자는 북왕국의 멸망을 우상숭배 및 모세 율법에 대한 부주의한 태도로 말미암은 징벌로 보았다. 또 다른 하나의 종교적 관심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 주위에 있는 민족들의 어떠한 종교적 관습과도 절대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왕기서의 주제는 하나님께서는 왕과 민족이 언약을 지킬 때에 그들을 축복하시며, 그의 심판은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불가피하게 분명히 임하신다는 이것이다.(엑셀/신구약 강해설교대전)

3. 저자: 열왕기상은 주전 970-852년 사이의 기간을 다루며 열왕기하는 주전 852-560년 사이의 자료를 제공한다. 이 두 권의 책에는 그 저자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증거가 없으며 일부 유대인들과 기독교 교사들은 예레미야가 저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왕하 참조)

4. 특징: 저자는 자신의 역사 자료로 1)솔로몬의 행장(왕상11:41), 2)유다 왕 역대지략(왕상14:29) 및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왕상14:19)을 취하고 있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유다 왕들에 관한 역사 자료들은 이스라엘 왕들에 관한 역사 자료들과 결코 뒤섞여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위의 두 자료가 각기 분리된 별개의 문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문서들로부터의 인용된 구절들은 그러한 문서들이 열왕기서에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은 자료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일차적 자료의 저자들이 역대기서의 평행 어귀들에서 언급되어지고 있는데, 선지자 나단, 실로 사람 아히야 및 선견자 잇도(대하9:29), 선지자 스마야 및 잇도(대하12:15), 선지자 잇도(대하13:22), 선지자 이사야(대하26:22;32:32), 예후(왕상16:1)등이 그들이다. 이 자료들은 엄밀히 말해서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라 예언자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열왕의 행적에 관한 솔직한 기록을 얻는다. 어떠한 궁중 연대기의 편자도 여기에 기록된 바와 같은 다윗과 여로보암Ⅰ세의 범행을 감히 공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열왕기하 참조

6. 기록목적: 열왕기서는 사무엘서에서 이미 언급된 역사를 계속해서 선명하게 밝히려는 목적을 가지고 집필되었다(열왕기하 참조)

7. 핵심단어: 그의 아버지 다윗같이, 다윗(74), 여호와(215), 솔로몬(143), 여호와의 전(21), 유다(39), 이스라엘(171) 요절: 왕상 9:4, 5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1. 제목(명칭의 유래): 현재 열왕기상, 하로 알려진 이 책의 제목은 그 내용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열왕기상 참조

2. 중심내용: 열왕기상 참조

3. 저자: 열왕기상은 주전 970-852년 사이의 기간을 다루며 열왕기하는 주전 852-560년 사이의 자료를 제공한다. 열왕기하는 주전 560년경 여호야긴이 감금된지 37년만에 옥에서 풀려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고 있다. 이 책이 이 시기 이전에 완성되었을리는 없으며 또한 바벨론 포로귀환에 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빌론에서 귀환한 해인 주전 538년 이후에 완성되었을리도 없다. 이 책은 한 권으로 되어 있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계속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저작시기는 주전 560-538년 사이의 기간이 된다. 여호야긴이 옥에서 풀려난 사건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에게만 의미있는 일이었을 것이므로, 우리는 열왕기서가 바벨론 지역에서 살던 어떤 유대인 포로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권의 책에는 그 저자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증거가 없음. 일부 유대인들과 기독교 교사들은 예레미야가 저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4. 특징: 열왕기상 참조

5. 시대(역사적 배경): 이스라인 백성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역사편찬을 발전시킨 최초의 고대인들이었다. 앗수르, 바벨론 및 애굽 등의 국가들은 연대기를 기록하였으나 이방 민족 가운데서는 헷족속만이 유일하게 역사적 기록을 시도하였다. 다윗 시대에 애굽 세력은 쇠퇴하여고 앗수르는 미약하였고, 따라서 이스라엘의 양즉 국경은 모두 허약한 민족들과 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앗수르는 디글랏 빌레셀Ⅲ(왕하15:19에서는 '불'로 표기되어 있다, 주전745-727년) 치하에서 세력이 증대되었다. 주전 722년에 사마리아가 살만에셀과 사르곤의 공격으로 함락되었으며 그 후 산헤립 치하의 앗수르는 유다를 침략하여 많은 성읍들을 취하였으나 애굽의 후방공격 위협때문에 예루살렘의 탈취는 실패하였다. 에살핫돈과 아술바니발은 애굽에 대한 앗수르의 지배력을 증대시켰다. 요시야 시대에 바로느고는 갈그미스에서 바벨론을 대적하는 앗수르를 도우러 갔으나 이 두동맹군은 패배하고 말았다. 그 직후 느부갓네살은 팔레스틴을 침략하였는데 예루살렘에 대한 3차 공격에서 그 성읍을 약탈하고 멸망시켰으며, 백성들을 마지막 포로로 잡아갔다(주전586년)

6. 기록목적: 열왕기서는 사무엘서에서 이미 언급된 역사를 계속해서 선명하게 밝히려는 목적을 가지고 집필되었다. 열왕기서의 저자는 본서에서,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후손들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예언하셨던 말씀, 즉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삼하7:12-15)고 하신 그 말씀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을 밝히는 것이 열왕기서의 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열왕기서의 저자는 이러한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내용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윗이 행했던 인구 조사의 결과로 예루살렘에 내렸던 3일간의 온역의 재앙과 그에 대한 회개로 끝을 맺는 사무엘서와, 다윗이 노쇠했을 때의 이야기로 부터 시작되는 열왕기서 사이에는 상당한 기간 동안의 사건들이 생략된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이유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모두 그 순서에 따라 기록하는 것이 열왕기서 저자의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왕기서의 저자는 솔로몬 시대의 묘사를 위해 필요한 만큼만 다윗의 후기 시대를 기록했던 것이다. 우리는 열왕기서의 전체적인 내용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자손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친히 이루셨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때문에 열왕기서의 저자는 비록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라하더라도 본서의 저술 목적과 부합되지 않는 것이라면 모두 다 생략해 버렸던 것이다. (엑셀/ J.R. Lumby, D.D.)

7. 핵심단어: 주님의 눈앞에서; 하나님의 사람들; 불구하고; 그러나 주님의 말씀, 왕(321), 엘리야(28), 엘리사(81), 하나님의 사람(33). 아들(119)

요절: 왕하 17:18, 19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 유다도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의 세운 율례를 행하였으므로. 왕하 23:2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뺀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한 이 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1. 제목(명칭의 유래): 히브리 성경에서 역대상 하는 '더브레 하야밈' 즉 '당시의 사건들(문자적으로는 말씀들'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역대기는 열왕기 이후 백년이 지난 뒤에 비로서 기록되었고, 원래는 한 권의 책이었으나 주전 150년경에 만들어진 헬라어 역본에서 현재와 같이 두 권으로 구분되었다. 최초의 정경 배열에서 역대기는 구약성경의 맨 끝에 위치하였다. 그래서 눅11:51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첫번째 책에 있는 아벨(창4장)로부터 마지막 책에 있는 사가랴(대하24장)에 이르는 모든 순교자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히브리어 성경은 역대 상·하가 한 권으로 되어 있다. 히브리어 성경의 명칭은 「디브레 하야밈」으로, 그 의미는 「각 시대의 말씀들」임. 70인역의 명칭은 「파라레이포메논」으로, 그 의미는 「빠뜨린(생략된) 사건들」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2. 중심내용: 아담으로부터 사무엘까지의 계보를 포함시킴으로써 사람의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대한 완전한 연대기를 우리에게 주는 것은 「사람의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이심이 사람으로 하나님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써 인성 안에서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는 길을 예비하는 것임」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선민의 역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온 인류의 역사에 관한 문제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3. 저자: 서론적인 열개의 장(章)에 이어서 역대상은 주전 1010-970년에 까지의 사건들을 취급하고 있고, 역대하는 주전 970-538년 사이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역대기에는 역대기가 언제 누구에 의해 기록되었는지가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유대인들에게 포로에서 귀환하는 것을 허용한(대하36:22) 주전 538년 고레스 조서까지 이르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역대기의 계보에는 여고냐 왕의 손자인 스룹바벨이 언급되는데, (대상3:19) 이는 주전 538년의 귀환시에 유대인들을 인솔하였다. 또한 이 계보는 그의 두 손자들인 블라댜와 여사야를 통하여(대상3:21) 대략 주전 500년경 까지에 이르는 스룹바벨 가계의 개요를 보여준다. 이어서 여고냐 왕과의 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네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그러나 이들 중 마지막 사람인 스가랴(대상3:21)의 가계는 일곱명의 4대손들을 모두 밝히고 있다(대상3:24). 만일 스가냐가 주전 616년에 출생한 여고냐 왕과 동시대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그 후의 4대(代)는 우리에게 주전 500년경 이라는 시기를 다시한번 제시할텐데, 역대기의 내적 증거를 기초로 하여 추론할 수 있는 저작 시기는 아무리 빨라야 주전 500년경이 될 것이다. 히브리 전승은 에스라가 에스라서 뿐 아니라 역대기도 기록하였다고 단언한다. 올브라이트(William F.Albright)같은 현대의 학자도 이 두 책들이 동일한 문체 및 내용상의 형식 -이것은 자주 언급되는 계보들, 의식에 대한 강조 및 모세 율법에 충실함에서 나타난다 - 을 갖고 있다고(JBL, 40, pp.104-124) 주장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4.특징: 사무엘 상·하와 열왕기 상·하의 중심 관심은 하나님의 선민이었지만, 역대기에서는 온 인류임. 이를 위해서는 사무엘로부터 시작되는 계보가 아닌,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에 이르는 계보가 필요한데, 이것은 마태복음 1장에 제시된 계보가 아닌 누가복음 3장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계보와 일치함. 이것은 하나님의 체현으로서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택하신 한 민족을 위하실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인류를 위하신다는 강한 증거임. 하나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을 다루시는 몇몇 중요한 세부 사항들과 징계의 이유들을 우리에게 제시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사무엘 상·하와 열왕기 상·하에는 없는 것들임. 이로써 우리는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아브라함부터 사무엘까지, 그리고 왕권을 이끌어왔던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이 포로 됨에서 귀환하기까지 사람의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대한 완전한 역사를 가질 수 있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기(역사적 배경): 역대기에는 누가, 언제 기록했는지에ㅡ 관한 언급이 없다. 본문에는 B.C. 538년 반포된 고레스의 유대인 포로들의 귀국 허가 조서까지 기록되어 있다. (대하36:22). 역대기의 족보에는 B.C. 537년 유대인을 이끌고 귀국한 여고냐 왕의 손자 스룹바벨(대상3:17-19)과 B.C. 500년경의 인물들인 스룹바벨의 두 손자 블라댜와 여사야(대상3:21)까지 나타나 있다. 그 후에 여고냐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는 네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 중 마지막에 언급된 스가FI라는 인물의 가계는 그의 4대 손자 일곱 명의 이름까지 씌어있다(대상3:24). 그리고 스가FI가 B.C. 616년에 태어난 여고냐 왕과 동시대 인물이었다면 그 후 4세대가 지난 연대는 B.C. 500년 무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같이 성경에 나타난 내적 증거로 미루어 볼 때 본서의 기록 연대는 최소한 B.C.500년 이후일 것이다.

6. 저작목적: 대하참고

핵심단어: 아들(356), 족장(51), 자손(122), 다윗(155), 솔로몬(23), 여호와의 전(17) 요절29:12

 

제목, 중심내용, 저자, 특징 등은 역대상을 참조하기 바람

5. 시대(역사적 배경): 상권은 주전 1056년부터 1015년까지 사십 일년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열조의 기간을 포함하지 않은 것). 아마도 에스라가 포로 됨에서 귀환한 후 예루살렘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역대상 참고)

6. 기록목적: 모세의 율법을 확립하려 하는 에스라의 열정(스7:10)으로 인하여 그는 주전 458년에 바벨론에서 팔레스틴의 유대 공동체로 돌아왔다. 그는 성전 예배를 회복하였으며 (스7:19-23, 27;8:33, 34) 일부 유대인들이 이웃 이방인들과 맺은 통혼(通婚)을 제거하였다(스9-10장). 바사왕으로부터 에스라가 부여받은 폭넓은 권한에 비추어(스7:18,25) 보건대, 그는 예루살렘 성벽의 중건을 시작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스4:8-16). 주전 445년에 느헤미야가 에스라에 가세함에 따라 비로서 성벽이 실제로 중건되었으며(스4:17-23;느6:15, 16) 모세의 율법이 충분히 인식되기에 이르렀다(느8장). 역대기저자의 목적은 이와 같은 신정(神政)의 재건을 고무시키려는 것이었다. 창세기, 사무엘서 및 열왕기서에 기록된 역사들과 비교해 볼 때 역대기는 민족적 종교적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보다 상세한 계보를 싣고 있다(대상1-9장). 합당한 제사장직과 예배 의식을 보존하려는 목적 때문에 역대기는 모세의 율법, 성전(대상22장), 법궤, 레위인 그리고 성전에서 노래부르는 자들(대상 13,15,16장)에 더욱 더 많은 강조점을 두고 있으며 반면에 왕들의 자세한 행적(삼하9장:왕상3:16-28)과 선지자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 (왕상 17-22:40;왕하 1:1-8:15)을 생략하고 있다. 제사장직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사무엘서와 열왕기서가 도덕적인 강조로 인하여 히브리 정경의 둘째 부분인 선지서들로 분류된 것과는 달리 이 책이 셋째 부분(비예언서)에 위치하게된 것의 설명이 될 것이다. 끝으로, 포로후기의 역경으로 환멸을 느꼈던 자들을 격려하려한 이 책의 목표는 이전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유다의 승리가 되풀이하여 이야기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대하 13,14,20,25장). 고대 우가릿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출애굽할 당시 가나안에서 행해지던 정교한 의식의 진정성을 입증하고 있다(J.W. Jack, 라스삼라 서판들: 구약성경과 서판들과의 관계, P29이하). 올브라이트(Alb-right)는 역대기에만 유일하게 언급되는 수많은 역사적 진술들이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입증되어지는 것을 주목하였다(BASOR, 100(1945).P 18). 역대기가 유대 역사의 밝은 면을 강조하면서도 실패의 역사를 부인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이 책은 더 고무적인 사건인 솔로몬의 두번째 기름부음 받은 일 (대상29:22)이나 더 모범이 되는 다윗의 처음 길(대하17:3)를 강조한다. 열왕기서의 예언자적인 심판과 역대기서의 제사장적인 소망은 모두 다 참되고도 필요한 것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① 포로 되었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백성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알도록 하고 다시금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섬기도록 하기 위한 것

② 레위인의 직무와 제사장의 반차와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과 제사와 절기에 대해서 백성들로 율법 책의 기재를 사모하도록 매우 분명하게 함

③ 열왕의 흥망성쇠와 원인과,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친근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는 반드시 축복을 받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는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함

④ 이스라엘 민족의 계보에 대하여서도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을 하나님이 만민 중에서 선택하신 것을 회고하도록 매우 상세하게 기록함

7. 핵심단어: 여호와를 찾으라;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 여호와(311), 솔로몬(75), 범죄(16),

요절 대하 1:1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 가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사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 대하 20:20下 ......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1. 제목(명칭의 유래): 에스라서의 명칭은 이 책의 중심인물에 따라 붙여진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책을 느헤미야서와 한 책으로 생각해 왔으나(탈무드, 마소라 본문 요세푸스 참조), 에스라 2장이 느헤미야7장에 반복된 것으로 보아 두 책은 원래 별개의 책이었다. 성경 중에서 포로 된 이후의 책은 모두 8권-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에스겔, 다니엘, 학개, 스가랴, 말라기-인데, 그 중에서 제 1권이 에스라임.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서와의 내용상 긴밀한 관계 때문에 두 권을 한 권의 책으로 간주함. 70인역에서는 에스라를 한 권의 책으로 독립시켜 「에스드라스」로 칭함. 본서의 명칭은 본서의 저자인 동시에 중심 인물로서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재건에 매진하는(7-10장)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이며 제사장인 「에스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엑셀, 강해설교대전)

2. 중심내용: 바벨론 포로 후의 유다와 예루살렘의 재건을 기록하고 있다.

3 저자: 비록 저자가 명시되지 않고 화자(話者)가 1인칭과 3인칭으로 나타나지만, 에스라가 직접 여러 칙령과 서한, 계보들을 기본 자료로 사용하여 이 책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4. 특징: 에스라는 서기관이요, 가장 학식있는 율법 해석자며, 무엇보다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을 "성경의 백성'으로 형성시킨 인물이었다. 심지어 옛 책들이 모두 분실되자 에스라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그것들을 모두 다시 저술했다는 전승도 있다. 이 때문에 에스라의 예루살렘 귀환과 이스라엘의 신앙생활을 재건하는데 그가 지도적 역할을 한 것은 주전 444년경 또는 아닥사스다(404-358 B.C.)가 선택된 해에 근거하여 그보다 늦은 주전398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증거는 전자의 연대를 옹호하고 있으며, 이 책에 기록된 역사는 포로의 선발대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기 시작한 (주전 538년) 약100년 전에 시작된다. 이 책은 포로 됨으로부터 이스라엘 자손이 귀환하는 것을 강조함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가서 결코 돌아올 수 없었다. 그들이 민족적 실체로서 계속 존재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1)북왕국에는 유다와는 달리 돌과 흙으로 된 것이든 마음속에 있는 것에든 성전이 없었다. (2)이스라엘에는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된 후 왕족 생존자가 없었다. 여하튼 그들은 그 이전에 이미 다윗 혈통을 잃었으며, 이로 인하여 영원한 왕국의 보좌 위에 "다윗의 아들'이 앉을 것이라는 위대한 예언적 이상(理想)이 말살되었다. (3)앗수르는 대부분의 백성들을 북왕국 밖으로 몰아내고 이방인을 그 땅에 이주시켰다. 이로 인해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 사인에 잡혼이 이루어지고,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로부터 그처럼 증오를 받던 혼혈족인 사마리아인이 나타나게 되었다. (4)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앗수르에 있던 이스라엘 포로들 중에는 그들의 종교적,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할만한 계속적인 종교적 지도력이나 예배 중심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고대 중동의 떠돌이 민족들 속으로 사라졌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열 지파"가 되었다. 그러나 유다 왕국의 포로 역사는 이와 달랐다.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 도성을 마지막으로 점령하고 불사른 것은 앗수르가 아니라 바벨론이었고, 정복민에 대한 바벨론의 정책은 매우 달랐다. (1)바벨론은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루고 거주하도록 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을 섬기고, 그들 자신의 학교를 운영하며, 그들의 민족적, 종교적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2)유다도 마찬가지로 다윗의 혈통을 왕으로 삼았고 다윗의 한 후손이 백성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갔다. 이것은 다윗의 후손이 거기에 있어 다윗 왕조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간직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3)바벨론은 앗수르가 사마리아에서 행했던 것과 같이 고의로 유대의 거주민을 교체시키지는 않았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언제나 유대인들이 남아 있었고, 바벨론의 포로들도 거룩한 시온산 위에 폐허로 남아있는 거룩한 도성과 영광스런 성전을 결코 잊지 않았다. (4)가장 중요한 것은 유다에서 끌려간 포로들은 율법 책을 보존하고 가르쳤던 서기관과 제사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포로에서 살아남은 백성은 "성경의 백성"이 되었고, 바벨론께서 귀환한(주전 538년경) 해에 그들은 성경을 가르치는데에 종교생활의 중심을 두는 민족이 되었다. (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이 책의 내용은 주전 536년부터 457년까지 약 팔십 년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6. 기록목적: 기도의 능력(9장, 느9장)과 하나님 말씀의 능력(느8장)을 확인하고 다윗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시며 다윗의 아들 메시야가 언젠가는 예루살렘에서 그 위에 앉아서 통치할 것임을 교훈하기 위해서이다.

7. 핵심내용: 올라옴, 예루살렘(43), 조서(18), 여호와의 집,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전(10), 건축(25)

요절6:21, 22;2:1;7:10

 

 

 

 

1. 제목(명칭의 유래):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서와의 내용상 긴밀한 관계 때문에 두 권을 한 권의 책 으로 간주함 70인역에서는 본서를 에스라서와 구분하여 「느헤미야」라 칭하고 있다.

2. 중심내용: 예루살렘 성은 그 안에 있던 하나님의 전의 보호와 안전이 되었으며, 이는 땅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와 가정인 그분의 집이, 그분의 경륜을 수행하고 그분의 행정을 위해 이 땅에서 그분의 권익을 보호하는 영역이 되는 그분의 왕국이 세워질 것을 필요로 함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전의 재건축은 「타락한 교회의 회복」을 예표하며,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축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왕국을 회복하심」을 예표한며 그분의 집을 건축하시는 것과 왕국을 건축하시는 것을병행하신다.(마 16:18-19). 이 땅 위의 하나님의 집은 이를 보호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기 위한 그분의 왕국을 필요로 하신다. 이 책 전체는 그가 시험과 대적의 공격 가운데서 위로이신 하나님을 신뢰함에 관한 기록이다.

3. 저자: 느헤미야 8장 1-9와 12장 26절에서 보는바대로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같은 시대의 인물이다. 아마 말라기 선지자는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있는 동안 예언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책망한 많은 죄악들이 느헤미야서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저자본문의 여러 곳이 1인칭 단수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 책의 저자가 느헤미야(「여호와의 위로」를 의미함)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가 3인칭으로 언급되는 곳도 있으나(8:9, 10:1, 12:26, 47) 이것은 그가 이 책의 저자라는 것과 관련해서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느헤미야의 때"를 회상하는 12장 26절과 47절은 모두 어떤 다른 사람들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 느헤미야는 총독 자리에서 물러나 지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이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역사성은 요하난을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으로(12:22, 23) 느헤미야의 대적인 산발랏의 아들들을 주전408년에 사마리아의 총독으로 기록하고 있는 엘리판틴 파피루스의 발견으로 확증되었다. 우리는 또한 이 파피루스에서 바고아스가 총독 자리에 오른 것으로 언급되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그 이전에 유다 총독을 물러났음을 알 수 있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4. 특징: 느헤미야는 용기있고 지략있는 지도자인 것 같다. 그는 자기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사 왕실의 안락한 자리를 버리고 귀향하는 포로들과 함께 성도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며 고난을 받을 수 있었다. 느헤미야의 두 가지 큰 관심사는 율법에 대한 충성과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이었다. 그는 매우 온화하고 인정 있는 사람이었으나 이방인과의 결혼 문제에 있어서만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는 엄격한 태도를 지켰다.

5. 시기(역사적 배경): 이 책의 내용은 주전 446년부터 434년까지 약 십 이 년의 기간을 다루고 있음. 느헤미야가 술잔을 따라 올리는 관원으로 섬겼던 아닥사스다 1세는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이었다. 부림절(에 9:20-32)은 주전 474년 3월 8일에 제정되었는데, 이것은 아닥사스다 1세가 왕위에 오르기 8년 전의 일이었다. 주전 457년 봄에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도움으로 유대인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다음 해 봄에 그는 이방 여인과 결혼한 유대인에 대한 조사를 끝마쳤다. 에스라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 신앙부흥운동 중 하나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것이었다. 이것이 르훔과 심새의 분노를 야기시켜, 그들로 하여금 아닥사스다 왕에게 성전 건축을 반대하는 고소장을 올리게 했다(스4:7-16). 왕은 다시 조서를 내릴 때까지 성전건축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스4:21). 르훔과 심새는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력으로 건축을 중지시키고 성벽을 파리하며 성문을 불살라 버렸다(스 4:23; 느1:3). 느헤미야가 충격을 받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바로 이 뜻밖의 파괴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가 바벨론에서 돌아와 주전 432년이래 죄악에 물든 성도 예루살렘과 각 지방을 정화시켰던 주전 445년 12월부터 주전 420년경까지의 약 20년간을 다루고 있다(엑셀, 강해설교대전).

6. 기록목적: 거룩한 성읍에 백성들을 정착시키기 위하여 성벽을 완공하고, 백성사이에 있는 악습을 타파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려 하고 있다.

7. 핵심단어: 건축(16) 성벽(8), 기억, 기도, 사역, 역사, 긍휼

요절 느 2:17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느 6:3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1. 제목(명칭의 유래): 이 책의 명칭은 그 주인공 에스더를 따라 붙여졌는데 에스더는 "별" 을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이다. 그녀의 히브리 이름은 "도금양"을 의미하는 하닷사이었다(2:7참조). 70인역의 명칭 역시 「에스데일」로 히브리어 성경에 근거하여 붙였다.

2. 중심내용: 이 책은 이스라엘의 숨어 계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흩어져 있는 그분의 억압받는 선민들을 비밀하게 돌보시며 또한 그분의 핍박받는 선민들을 포로 됨 가운데서 공개적으로 구원하시는가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음.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그 선민으로 택하신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게 하신 후, 숨어 계신 하나님이 되셔서 은밀하게 그들을 돌보시며 비밀한 중에 공개적으로 그들을 구원하셨다(사 45:15).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4장 3절과 16절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마땅히 언급되어야 하는 경우에도 그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3.저자: 이 책은 아하수에로 왕의(486-465 B.C)통치를 과거시제로 말한 것으로 보아(10:2) 주전465년 이후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저자가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기 동안 일어난 사건들과 수산궁 (주전435년에 화재로 소실됨)의 장식에 관하여 상세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의 저작시기는 아닥사스다1세 치세 (465-424 B.C)이후는 아니다. 요세푸는 모르드개가 이 책을 기록하였다고 생각했지만, 10:2,3절은 이것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 기록된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바사에 살았으며, 메대와 바사 왕들의 공신적 역대기에 접할 수 있었던 유대인임에 틀림없다(2:23;9:20;10:2). 필경 모르드개일 것이다(9:20, 23).

4. 특징: 수세기 동안 주석가들은 이 책의 애매한 윤리 기준을 공격해 왔다. 여기에는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으며, 신약성경에서는 이 책이 한번도 인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유대인의 적들을 학살한 사건이 자랑스럽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단호한 심판이다. 증오의 대상인 모르드개를 없애기 위해 교수대를 준비했던 하만이 바로 그 교수대에 매달렸다. 이 책은 원수를 향한 증오로 인해 구약의 일부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충분히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심오하게 계시하는 다른 책들과 이 책을 같은 관점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이 책이 B.C. 2세기 중엽에 널리 읽혀진 것으로 보아 이 책의 가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무렵 유대인들은 견딜 수 없는 압제에 시달려 거의 절망 상태에 있었다. 이와같은 시기에 에스더와 같은 책들은 그들의 운명이 원수들에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 책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왕국을 회복하실 것을 믿게 되었다. 이 책은 복잡한 구성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드라마로 2,000년 이상이나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여주인공 에스더는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건 희생적 인물의 상징이 되었다. 영적인 면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고찰할 때 원수들의 손에서 유대인들이 구출된 것을 기념하는 부림절은 매우 중요하다. 에스더서는 이 유대인들의 즐거운 민간 축제의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는데 부림절의 행사에 관한 기록은 마카비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엑셀, 강해설교대전).

5.시대(역사적 배경): 이 책의 내용은 주전 521년부터 509년까지 십 이 년 동안을 다루고 있다. 스6:15에 따르면, 제 2성전은 다리오 1세 6년인 주전 515년에 완성되었다. 다리오1세의 아들 아하수에로가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푼 것'은(에 1:3) 이로부터 정확히 32년 후였다. 이 책의 사건들은 아하수에로가 큰 잔치를 베푼 때로부터 (484 B.C.) 부림절까지 (474 B.C.) 10년간의 이야기이다. 첫 부림절 이후 16년이 지났을 때 에스라는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스7:9). 따라서 이 책의 사건들은 에스라 6, 7장의 기사와 일치한다.

6.기록목적: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가를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다. 즉 멀리 떨어진 나라에 있어서조차 하나님의 백성은 여전히 그분의 손 안에서 보호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약속의 땅이 아닌 머나먼 이국 땅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에드워드영 구약총론, p.349)

7.핵심단어: 유대인(51);잔치(20), 에스더(47), 모르드개(50)

요절: 에 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1. 제목(명칭의 유래): 본서의 명칭이며 그 주인공의 이름 '이욥'(iyuob)을 주전 2000년에 이미 성서 외의 사본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명칭의 단음절 표기인 '욥'은 벌게이트 성서 (즉, 라틴어 성서)에서 유래되었다. 그 명칭은 「미움을 받다」 또는 「핍박을 받다」를 의미함 - 이는 욥이 하나님의 원수 사탄에게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를 나타내 준다.

2. 중심내용: 본서는 공의의 문제를 매개로 하여 사람들이 주권자이실 여호와께 전적으로 헌신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언약의 길과 초월자이신 창조주에 대한 헌신의 길을 지혜의 길과 동일시하고 있다.

3. 저자: 본서의 저자에 대한 논의는 현재 형태대로의 책의 통일성에 관하여 비평가들이 의혹을 가짐으로 복잡해졌다. 그 증거가 근본적으로는 표면상 드러나지 않는데, 이는 비록 70인역 (LXX)에 실린 본문 내용이 마소라 본문(M aso-retic text)보다 5분의 1가량 짧다 하더라도 생략된 부분은 분명히 후대의 첨가일 것이기 때문이다. 첨가물로 가장 널리 인정되고 있는 부분들은 서언 및 결언, 지혜에 관한 시(28장), 엘리후 자료(32-37장), 여호와의 강화의 일부 또는 전부(38-41장)이다. 또한 24-27장은 심히 뒤섞여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이 완전한 것이라는 강력한 주장은 전체 구조의 통일성 및 각 부분들의 상호 관계에서 볼 수 있다..

4. 특징: 본서의 본론은 시가(詩歌)이며, 서론 및 결론은 긴 산문이다. 이러한 문학 형식은 고대 문학의 다른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잠언, 전도서및 아가와 함께 욥기는 지혜서의 범주에 속한다. 욥기와 여러가지의 성서 외적인 지혜 문학작품들 사이에는 형식상 많은 유사점들이 있는데, 대화체 형식, 그리고 고통의 문제와 죽음에 대한 갈망과 같은 사상들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는 그 본질적인 교훈에 있어서 비성서적인 지혜문학과 완전히 다른데, 그것은 본서가 구원에 관한 계시라는 독특한 메시지를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성의 문제는 문학 형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욥은 분명히 역사상의 인물이었다 (겔14:14,20 및 약5:11을 참조하라). 그의 실제 체험은 사실 본서에 기록된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엄한 시가는 본서의 내용을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다루도록 유도하고 있다. 더구나 서문과 결어의 반(反) 시적인 긴 형식은 몇몇 부분들이 자유롭고도 비유적으로 취급되었음을 시사한다.

5.시대(역사적 배경): 욥의 유목 생활(1:3)과 그의 자녀들을 위해 번제를 드린 방식에 따르면, 이 책은 기원전 약 2000 년 경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시대에 쓰여졌을 것이다(1:5, 창 22:13, 31:54). 이 책의 내용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대략 1년을 넘지 못하며 장소는 에돔에 속하며(애 4:21) 아라비아 광야 서쪽인 우스이다. 욥기의 저작 시기는 정확히 결정하기 어렵다. 본서의 기록시기가 서술되어 있는 역사의 시기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욥은 고대의 족장시대에 살았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욥의 장수, 아브라함의 언약의 범위 밖에서(초자연적 계시를 따른) 참된 종교의 실천, 그리고 본서에 나타난 고대의 경제 및 정치의 발달에 주목하고있다. 본서의 저작 시기에 관한 문제는 족장 욥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스라엘인 저자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전승을 정경인 욥기로 옮기기 이전에,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구전이나 문자로 전해졌는가 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비평가들은 저작시기를 포로기나 또는 포로후기로 보는데 그들의 이러한 판단은 그들이 욥기, 이사야, 예레미야의 상호 의존성을 해석하는 방법과 이사야서의 적절한 본문에 대해 그들이 추정한 연대의 영향을 받았다. 저작시기에 관한 가장 극단적인 견해 (주전 2세기경)는 사해 사본에 포함되어 있는 요반 사본(Joban mamcscripts)의 단편, 특히 히브리 사본의 단편들과 결정적으로 배치되는 듯하다. 본서의 장엄함과 자연스러움, 그리고 계시의 발달 초기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감정을 깊이 공감하고 재 창조한 것은 저작시기가 바벨론 포로 훨씬 이전 즉 선지자들이 교리적, 특히 종말론적인 면에서 기여하기 전임을 보여준다. 많은 보수주의 학자들은 저작시기를 성서 지혜문학의 황금기였던 솔로몬 시대로 보는 견해에 찬성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기록목적: 이 책은 공의의 문제를 중심으로 천지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할 것을 가르친다. 언약을 지키며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초월자이신 창조주께 헌신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지혜인 것을 보여 준다. 본서는 인간이 수 세기를 두고 고민해 온 문제, 즉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이 계시는데 어째서 때로 악인이 득세하고 선한 자가 고통을 당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욥 자신의 공의(Self-righteousness)에 대한 자만심을 없애고 오직 하나님을 완전히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놀라운 믿음의 승리는 미래에 구속자(The Redeemer)께서 오셔서 자신을 변호해 주시리라는 희망으로 더욱 고조된다. 한마디로 고난에 대처하는 인간의 신앙의 태도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7.핵심단어: 비통, 저주, 부르짖어 울다, 죄, 사단, 징계, 어떻게, 어찌하여, 완전한, 의로운, 정당한, 지혜

요절23:10

1. 제목(명칭의 유래): 본서는 150 편의 시가 있으므로 시편으로 불리움. 히브리어 원명은 「테힐름(Tehillim)」으로 그 뜻은 「찬미의 시」임. 70인역에서는 「사모이스(Psalmois)]라고 명했는데, 그 뜻은 「노래 부를 수 있는 곡조가 있는 시」 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각종 경배에서 이 시들을 찬양할 수 있는 시가로 사용했다. 시편을 의미하는 영어의 'Psalms'는 수집물에 프살모이(Psalmoi)라는 제목을 붙인 70인 역에서 유래하였다. 주요 성서 사본들의 하나인 알렉산드라와 사본(Coder Alexandrinus)은 헬라어 프살테리온(Psalterion)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역시 시편을 뜻하는 영어 'Psalter'의 어원이 되었다. 그러나 히브리 성경에서는 '찬양들'을 뜻하는 트힐림(Tehillim)이 제목으로 사용된다. 랍비들의 문헌에서도 이와 동일한 개념이 세페르 트힐림 (Sepor Tehillim)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찬양의 책'을 의미한다. 몇몇 시편들은 그것들이 성가대와 예배자들에 의해 찬송으로 사용된 형적을 보여준다. 수집물 즉 시편 전체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열망하던 바가 무엇인가를 증언한다.

2. 중심내용: 시편의 시들은 주제별로 분류되어 있지 않으며 그 주제들은 인생 경험의 전반에 걸쳐있는데 주된 주제 다섯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음. 2)감사의 필요를 인식함. 3)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함. 4)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역할에 대하여 회상함. 5)대적의 손에서 건지심을 깨달음

궁켈(Gunkel)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주요 형태로 주장한다. 1)찬양 시. 2)민족적 애가. 3)(메시야의 시를 포함한) 제왕시. 4)개인적 애가. 5)개인의 감사. 시편은 그 안에서,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가 계시되고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성인 교회가 예표되는, 경건한 성도들의 체험에서 오는 감상과 감명의 표현이요,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찬양의 표현이다. 그러나 존 H. 왈턴의 “구약의 연대기 도표”에서는 11가지의 분류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개인 비탄시와 민족 비탄시를 합쳐서 열 가지로 분류했다.

3. 저자: 시편의 제목들에서 때로는 저자들이, 때로는 관계가 강조된다. 또는 시편의 저작 동기가 지적되기도 한다. 어떤 제목들은 공공예배라는 지정된 목적에 시편이 사용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바람직한 음악 효과나 악기 사용을 지시해주는 제목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그 시의 근본적인 성격을 1) 노래로 불리우는 찬송(미즈모르, mizmor) 2)노래 (쉬르, shir) 3)성가(마스길, maskil). 그리고 4)애가(믹담, miktam)등으로 묘사하고 있는 제목들도 있다. 서른 네 편을 제외한 모든 시편들은 몇가지 형태의 제목들을 표제어로 사용하고 있다. 제목이 있는 시편들 가운데 일흔 세 편이 'LeDavid'라는 제명(題名)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말이 한글판 개역 성경 뿐 아니라 영어 성경인 AV,RV, ASV,RSV,및 NASB에서 공(公)히 '다윗의 시'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용례로는 '다윗과 관련된', '다윗을 위해' '다윗의 문체로' 또는 '다윗에 의해 '등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제목들은, 다윗에 대한 언급이든 아니면 기타의 다른 누구에 대한 언급이든, 반드시 저자를 지칭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칠십인역(LXX) 성경은 히브리 성경에서 저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열 다섯 편의 시편에 다윗의 이름을 첨가하고 있다. 또한 다윗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일흔 세 편(칠십인 역에서는 여든 여덟 편)외에, 열 두 편은 아삽과, 열 두 편은 고라의 자손들과, 두 편은 솔로몬과 두 편은 각각 에단 및 모세와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제목들은, 원전(原典)에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고대의 전승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것들이 원전의 일부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들이 시편 입문을 기록하고자 하는 인간의 첫 시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4. 특징: 성경의 모든 책들 가운데 시편만큼 다양한 종교적 체험이 기록된 것은 없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정신이 신앙에 관한 수많은 표현들을 통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시편에는 과거 이스라엘의 통찰이 예배와 결합되어 있고, 따라서 그것은 영원성을 갖게 된다. 또한 각 개개인들의 경험이 여기에서는 이스라엘의 공동 생활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책에는 보편성이 있는데, 이것은 수많은 역사의 단계들과 다양한 생활 환경 속에서 겪는 인간의 영적 체험들 이 복합적으로 표현될 때에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체험들은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감정으로 응답하려는 그들의 고유한 욕구에 의해 하나로 결합되었다. 모든 형태의 종교적 경험이 오늘날의 모진 일상생활속에 반영되며 현대의 신자들에게 투영된다. 영원성으로 인하여 이 책은 역사의 어느 시대에나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시편은, 첫째, 이스라엘의 전(全)역사에 걸친 민족 신앙의 산 증거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는 고난과 투쟁을 반영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이 위기의 시대에 있어 의심에서 확신에 이르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절망을 극복하는 것을 항상 지향하고 있다. 둘째, 시편은 예수님의 사역을 위한 중요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자라난 유대 가정에서 기도하실 때에 시편을 배우셨다. 예수님이 세례(침례)받으실 때에 시편의 언어들로 예수님의 사역이 진술되었다.

 

아삽: 50, 73-83(12), 고라자손의 시편: 42-49, 84, 85, 88(1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자들이 사용: 120-134 할렐루야 시편: 105-107; 111-114; 116-118; 135, 146-150

시편에 다윗의 이름으로 서명된 시는 모두 73편임. 서명되지 않은 시도 많음 - 2편(행 4:25), 95편(히 4:7), 96편(대상 16:23-33), 105편(대상 16:8- 22) 등. 기타 저자로는 아삽이 12편, 헤만이 1편, 에단이 1편, 고라의 아들들이 10편, 솔로몬이 2편, 모세가 1편, 이름이 없는 것 50편(다윗의 이름이 서명되지 않은 것 포함)

십자가 상에서 최후를 맞으셨을 때에도 예수님의 마음에 떠오른 것은 시편이었다. 신약 성경에서 시편보다 더 빈번하게 인용된 구약의 책은 없다. 세째, 시편은 예배의 필수 요소임이 입증되어 왔으며, 전세계의 성도들은 예배에서 하나님과의 개인적 교제를 할 때 그것의 도움을 받아왔다. 시편은 간구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체험을 풍부하게 해 주며 근본적인 헌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끝으로, 시편은 모든 세대에 계속해서 전해 내려 온 찬송가집이다. 이 시편처럼 오랜 세월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 찬송가집은 없었다.

1) 시편에 있는 음악상, 시가상의 전문적 용어

①셀라(3:2) : 잠깐 쉬다, 잠깐 멈추다의 뜻. ② 유랑가(7편 해석) : 위험, 곤고, 급난 중의 큰 외침을 가리킴. ③ 영장(4편 해석) : 가창 무리를 인도하는 사람, 즉 아삽, 헤만, 여두둔 등을 가리킴. ④ 깃딧 악기(8편 해석) : 블레셋 사람의 일종의 악기로서 아마 다윗이 깃딧으로 도망할 때 사용했을 것임. ⑤ 뭇랍벤(9편 해석) : 곡명으로서 「아들의 죽음」이라는 뜻임 - 이 곡은 아마도 다윗이 사무엘 하 12:20의 체험 가운데서 썼을 것임. ⑥ 믹담(16편 해석) : 기도, 묵상을 가리킴. ⑦ 아얠렛사할(22편 해석) : 곡명으로서 개들에 의해 에워싸인(22:16) 그리스도를 예표함. ⑧ 백합화(소산님, 45편 원문 직역) : 곡명으로서 백합화의 뜻은 「순결」, 「그윽함」, 「사랑스러움」 등을 나타내며 흙탕물 속에서 자라지만 오염되지 않으므로 주님의 품성을 잘 나타냄. ⑨ 알라못(46편 해석) : 곡이 여자의 목소리처럼 높은 것을 가리킴. ⑩ 마할랏(53편 해석) : 슬프고 병든 곡조를 가리킴. ⑪ 요낫 엘렘 르호김(56편 해석) : 곡명으로서 또한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마치 먼 곳에서 온 지저귀지 않는 비둘기와 같음을 가리킴. ⑫ 알다스헷(57편 해석) : 곡명으로서 이것은 거의가 흩어진 백성이 대환난 중에 기도와 위태로움 중에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 보호를 구하고 「소멸되지 않기」를 구하는 것을 예표함. ⑬ 수산에둣(60편 해석) : 여기서의 「간증」(원문 직역)은 60편 6절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보증을 가리킴. ⑭ 마할랏르안놋(88편 해석) : 곡명으로서 그 뜻은 고통스러운 질병임. ⑮ 상행시 혹은 계단을 오르는 시는 이스라엘 사람이 절기에 참여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는 도중 부르는 노래를 가리킴

5. 시대(역사적 배경): 저작 연대를 정확히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시편의 편집 책임자들은 당대(當代)에 사용할 찬송가집(集)을 마련키 위해 애를 썼다. 압박과 고난의 시대에 그들은 당시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과거의 활력을 재현하려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수의 시편들이 그 본래의 형태보다 더 늦은 시기의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스나이드(N.H.Snaith)는 '이십세기 성경 주석(T-wentieth Century Bible Commentary)'의 P 235에서 "바벨론 포로기 이전이나 이후에 나타나는 시편은 거의 없으며 몇몇 시편들은 그 저작 연대에 있어 일천년 이상까지 차이가 나는 요소들을 내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학자들은 대다수의 시편들이 마카비 시대에 씌여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추세는 이보다 이른 시기로 보는 것이다. '제 2성전의 찬송과 기도 집(集)이라는 표현은 수집된 시편 전체에 아직까지도 적용할 수 있는데 그것은 포로기 이후에 최종 편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양의 시편이 포로기 이전의 작품이며 몇가지 요소들은 그 기원이 다윗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초기 및 후기의 작품을 이와 같이 인정한다면 시편은 선택된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응답한 것의 전(全) 역사를 기록한 것이기에, 그것은 더욱 더 중요한 가치를 띠게 된다. 본서의 내용에 포함된 시간은 매우 오랜 기간이기 때문에 쉽게 계산할 수 없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 기록목적: 시편을 한 권의 책으로 본다면 가장 분량이 많고, 가장 오랜 기간에,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하여 쓴 글이라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기도와 찬양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 정경으로 남겨놓으신 것 같다.

7. 핵심단어: 시편을 좀더 세밀하게 분류하자면 감사 예배시, 찬양시, 비탄시, 민족 애가시, 신정시, 시온시, 참회시, 저주시, 메시야 예언시, 지혜시 등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각 시편마다 주제와 핵심단어와 중요성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마인드 맵은 주제별로, 일반도표로는 각 권별로 분류 편집하였다.

시편의 명칭

시편의 명칭으로 신약에서 언급하고 있는 제목은 ‘시편(Book of Psalms)'인데, 이 명칭은 모든 역본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눅20:42;행1:20). 혹은 집합적인 의미로 ’시편집(The Psalter)‘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헬라어 델타( delta)와 같은 모양으로 생겼으며 하프를 연주하는 방식처럼 비파(Psaltery)라는 나무로 만든 관현악기에서 부터 유래한 명칭이다(왕상10:12

기도

시편 전체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일부분에만 적용될 수 있는 이름으로서 ‘테필롯(The philloth)이란 명칭이 있는데, 이 말은 “기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편 72편 마지막 절은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시편 제 2권의 모든 시편들을 기도라는 제목으로 취급하려고 하는 것 같다. 또한 그 뒤에 나오는 시편 중에서도 86편, 90편, 102편, 117편 등이 ‘기도’로 불려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실 이 ‘기도’라고 하는 명칭은 대부분의 시편들이 갖고 있는 내용으로 보아 적합한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비록 시편 1편, 2편, 33편, 37편 등에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간구와 탄원을 포함하고 있는 다른 많은 시편들도, 전혀 기도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있다 해도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의 눈을 가리켜 기도라고 할 수 있다고 볼 때에, 우리는 모든 시편을 가리켜 기도라 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시편의 참된 명칭을 ‘찬양과 기도’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명칭은 우리에게 시편이 과연 어떠한 글인지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기도와 간구를 드릴 수 있게 할 것이며, 하나님께로 향한 우리의 진정한 소원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해줄 것이다(빌4:6). (Bishop Perowne.)

 

각 시의 표제문

각 시 위에 있는 표제문에는 저자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거나 때로는 암시 정도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각 시편이 쓰여진 동기가 적혀 있으며, 공적제사를 위한 용도를 밝히고 있는 것도 있다. 한편 표제 중 일부는 음악 효과나 배경의 요구를 지시하고 있으며, 그 시의 기본 성격(미스올 : 노래를 위한 가사문, 쉴 : 노래, 마스길 : 선곡집 , 믹담 : 애가)등을 나타내는 표제도 있다. 다시 말하여 각 시의 표제문은 첫째로 그 시의 형태를 지칭하는 기술적 명칭, 둘째로 음악 용어, 셋째로 찬양의 선율, 넷째로 전례의 표기, 다섯째로 역사적 사실 중 하나 또는 일부의 내용을 포함한다. 이 표제문은 히브리어 원문의 첫절에 상응하는 것으로 34편을 제외한 모든 시의 서두에 나와 있다. 물론 표제들은 후대에 와서 편집 과정 중에 붙여진 것이지만 그 역사적 내용은 정확하다.

가장 많이 사용된 기술적 용어는 ‘셀라’와 ‘영장으로’라는 말이다. 시편에서 71회, 하박국 3장에서 3회 사용된 ‘셀라’란 말은 아마도 반주부의 막간이나 변화를 알리는 음악적 표기일 것이다. ‘영장(노래 지휘자)으로’라는 말은 55편의 시와 하박국 3:19에서 볼 수 있는데, 특별한 기회에 사용할 수도 있도록 영장을 위해 준비된 시의 모음을 가리킨다.

 

히브리 시의 특성

히브리 시는 정교한 예술적 기교보다는 오히려 순수한 감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히브리어 자체가 회화적인 언어이므로 각 단어는 시각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히브리어의 원형은 주로 시각적인 행위나 상태를 묘사하는 반면, 그 다양한 용법은 풍부한 상상력을 갖게 한다. 히브리어의 이런 특성은 타오르는 종교적 정열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1. 다른 많은 서구의 시들과는 달리 히브리 시는 음악적 효과를 위하여 운이나 운율을 사용하지 않고 주로 리듬과 대귀법에 의존하고 있다. 아이젤른(F.C. Eiselen)박사는 “리듬은 특수한 음운 체제의 조화된 반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악센트가 조화를 이루며 반복됨으로써 리듬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히브리 시에는 음절이나 강세상으로 어떤 기계적인 규칙성을 지킨 흔적이 없다. 오히려 리듬 효과는 강세 음절과 무강세 음절의 균형 수에 의지하지 않고 중요한 단어 자체를 강조함으로써 얻어진다. 히브리 시의 발성은 단순하지만 부드럽게 높낮이를 되풀이하면서 잔잔한 위로와 비탄, 또는 힘찬 격려 등 여러 가지 벅찬 감동을 묘사한다.

2. 히브리 시의 두 번째 특징은 대귀법이다. 시인이 한 사상을 표현한 후 반복, 변형, 대조의 방법으로 주제를 강조한다. 대귀법 중 시편에 자주 사용된 형태는 다음과 같다.

1) 동의 대귀법 : 둘째 행은 기본적으로 첫째 행의 내용을 반복한다(시1:2;3:17).

2) 대조 대귀법 : 둘째 행은 첫째 행과 날카로운 대조를 보인다(시1:6).

3) 종합 대귀법 : 둘째 또는 그 이후의 행은 첫째 행을 첨가, 또는 발전시킨다(시7:1).

4) 상징 대귀법 : 대체적으로 직유법을 사용하여 둘째 행은 첫째 행의 표현을 심화한다.

대귀법은 두 줄로 제한되지 않고 절과 연까지 확장한다. 또 시편에는 알파벳의 답판체 형식도 사용되었다(시9, 10, 25, 34, 37, 111, 112, 119, 145편).

 

 

 

 

 

 

 

 

 

 

 

 

 

 

 

 

 

 

 

 

 

 

 

 

 

1. 제목(명칭의 유래): 히브리어 제목 ‘미쉘레 쉴로모’는 솔로몬의 잠언들(쉘레)이란 뜻이다. ‘미쉘레’는 ‘마살’의 복수형인데, ‘마살’의 뜻은 ‘골수에 사무치는 말 또는 비유’ 등으로 성경에 씌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짧고 간결한 교훈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잠언은 격언과 속담의 뜻을 함께 갖고 있다.

2. 중심내용: 지혜의 말씀은 백성들에게 인간 생활에서 어떻게 처신하며, 어떻게 성격을 세워야 하는지는 가르쳐 준다.

3.저자들: 솔로몬의 이름이 이 책의 세 부분(1:1;10:1;25:1)에 나타난다. 따라서 3부(22:17-24;22), 4부 (24:23-34), 6부 (30:1-31:31)를 제외한 대부분의 것들은 솔로몬의 저작이라 할수 있다. 열왕기상 4:32에 의하면 솔로몬은 잠언 3,000과 노래 1,005편을 말하였다. 잠언 후반부는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25장부터 29장에 있는 열조들의 잠언을 편집한 것이다. 한편 비록 솔로몬의 말년에 이르러 실정을 하였지만(왕상12:10), 그의 노년 시절의 실책을 이유로 그의 초기 시절의 공적과 인간성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아굴과 르무엘의 잠언을 보충하여 넣었다.

4. 특징: 잠언서(書)의 본질은 도덕적 및 윤리적 원리들에 대한 교훈이다. 본서의 특색은 그것이 주로 대조를 통한 가르침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1 장에서 9 장에 이르는 제 1 부에서는, 선과 악이 대조를 이룬다. 여기에서 선은 몇가지 단어들로 - 지혜, 훈계, 명철, 의, 공평, 지식, 근신, 학식, 모략 - 일컬어지고 있으나, 특히 지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서 23회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서 20회 사용되고 있다. 본서의 주제에 해당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1장 7절의 말씀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이라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말씀이 알파벳순으로 된 시 111:10에 나타나고, 유사한 형태로는 욥 28 장의 절정에서 나타난다. 지혜를 여인으로 의인화(擬人化)한 것이 3장 15절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사실상, 3장15-18절에서 지혜를 언급하는 대명사들은 여성(she)뿐 아니라 중성 (it)으로도 번역될수 있다. 그러나 이후의 언급들로 인하여 의인화한 대명사가 받아들여진다. 의인법은 7장 4절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에서 시작된다. 지혜는 잠언에서만, 그 중에서도 이 제 1 부에서만 의인화된다. 히브리어에서 "지혜"는 여성 명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또한 쉽게 여성으로 의인화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저자가 여기에서 정숙한 여인인 지혜를 음녀인 매춘부와 대조하고 있는 점이다. 또한 지혜가 모든 미덕을 대표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음녀는 모든 죄악을 상징하며 포함한다. 대조는 의도적이고 예술적인 것이다.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9:4)"고 지혜가 길에서 외친다(8:3). 이와는 대조적으로, 도적질한 물로 초대하고 그 객 (客)들이 음부 깊은 곳에 있는 미련한 계집도(9:13,17,18),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9:16)"고 동일한 초대를 하고 있다. 지혜는 어리석은 자를 죄에서 떠나게 하기 위하여 부르며. 매춘부는 그를 죄에 탐닉케 하기 위하여 부른다. 본서에 사용된 지혜는 도덕적 특성을 지닌다. 이것은 특별 용법이라고 말해져야 한다. 구약성경의 대부분에서, 지혜는 단지 솜씨 또는 총명일 뿐이었다. 역사서에 잘 알려진 솔로몬의 지혜조차도 여기에서의 지혜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솔로몬은 자연 (왕상4:33)과 법률(왕상3:16-28)에 대한 해박함, 그리고 그의 뛰어난 머리로 유명하였다(왕상 10:1-9). 잠언서 (書)는 총명함이라는 개념에다가 지능을 가치 있게 만드는 도덕적 올바름을 포함시키고 있다. 제 2부는 10:1-22:16에 이르는 솔로몬의 잠언으로, 교훈이 거의 한 절로 주어져 있다. 15장에서는 거의 모든 절의 중간에 있는 "그러나"라는 말로 드러나는 대조에 의해 교훈되고 있다. 그 이후로는 대조보다는 평행법이 나타난다. 이 부분은 광범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개요를 말하기 어려우나, 그 관점은 매우 일관되어 있다. 솔로몬은 지혜와 어리석음을 대조시키고있는데, 제 1 부에서와 같이 이것도 지식 대(對) 어리석음이 아니라 도덕적 지혜와 죄의 대조이다. <이하생략>(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성경 자체 내에서는 잠언집의 기록 및 수집 연대에 관하여는 아무런 자료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 책은 B.C. 2세기에 정경으로 인정되었고, 이 잠언집의 최종 편집이 우리가 전통적으로 구약 시대의 마지막 시기로 보는 B.C. 400년 이전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솔로몬의 잠언들이 기록된 후 뒷날 다른 부분과 함께 편집된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는 그 기록 연대를 B.C. 950-B.C. 700년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엑셀, 강해설교대전).

6. 기록목적: 잠언이 쓰여진 목적은 「지혜를 추구하는 것」임

7. 핵심단어: 지혜, 지식, 교훈, 어리석음, 여호와를 경외함, 생명, 그러나, 율법, 명령, 악, 공평, 내 아들아

요절1:7;9:10

1.제목(명칭의 유래): 본서의 영역 제목은 "에클레시아스테스"(집회, 회의를 뜻함)라는 제목을 가진 헬라어 역본에서 유래하였다. 70인역에서는, 전도자 또는 토론가로 다양하게 번역되는 히브리어 코헬레트(Koheleth)가 에클레시아테스(ecclesiastes)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코헬레트’는 본서 전체에서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곧 솔로몬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솔로몬이 실재의 기자가 아니라 단지 그의 이름이 문학적 효과를 위해 소위 정당한 수단으로 사칭되었을 뿐이라는 의혹이 전혀 없지는 않다. 전도서의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히브리어로 그 이름은 "모이는 사람"을 뜻하는 코헬레트(전도자, 혹은 선생-qoheleth)이다. 이것은 (1)잠언을 모으는 사람(12:9,10참조) 혹은 (2)집회에서 연설하는 사람, 즉 설교자나 연설가를 뜻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그 중심 의미는 우리들에게 연설할 목적으로 그것들을 모으는 사람을 뜻한다.

2.중심내용: 솔로몬에 의한 서술로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하나님께 돌아온 후에 부패한 세상에 있는 해 아래의 타락한 인류의 인간 생활에 관하여 묘사한 것이다. 그가 마음을 다해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추구하고 살핀즉, 자연 현상에 따라 모든 것이 순환되어 행해지면서 그대로 있고, 대대로 모든 것이 괴로우며 아무것도 새 것이 없음을 관찰함. 그의 결론은 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타락한 인류의 인생에 있어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것임. 지혜로운 왕이 자신의 지혜로 내린 이러한 결론은 타락한 인간의 공허한 인생의 역사로 여겨질 수 있음. 이 책에서 그의 결론은 마치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될 사람의 장송곡과 같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3.저자: 본서의 내용을 보면 그 저자가 솔로몬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솔로몬이 전도서의 저자가 아니며 이 책이 포로기 이후의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으로 이 책의 중심인물이 솔로몬이며, 미상의 저자가 그를 문학적 도구로 사용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정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그의 독자들을 속이려 했던 것은 아니며, 또 한 아무도 속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불확실하다고 하여 이 책의 정경성이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4. 특징: 헤르더(Herder)는 전도서에 대해 “많은 신학자들이 전도서의 구성을 조사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최상의 방법은, 전도서의 용법을 할 수 있는 한 자유스럽게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전도서의 각각의 부분들이 그러한 목적을 잘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전도서는, 잠언의 특별한 부분이나 알파벳 순으로 시작하는 시편 속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전체의 주제와 일목요연하게 관련되어 있는 소단락들의 명료한 줄거리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한 구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본서가 갖고 있는 하나의 독특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으로 말미암아 전도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표현 양식과 더불어 풍부한 인생관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소단락과 유기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는 전도서의 줄거리는 그 당시 시대의 불평과 그에 따른 요구들, 그리고 생활 양식들과 환경들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전도서는 이러한 복잡한 것들로 말미암아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전도서 기자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효과적으로 교훈하기 위해 소위 만인에게 통용되는 훌륭한 인생의 실례들을 제공해 준다. 이러한 인생의 실례들 속에서 전도서 기자는 단지 염세적인 경향을 따르거나 쓸데없는 과거의 회상이나 잡다한 일상사에만 그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 당시 페르시아의 전제 정치 아래서 신음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병든 영혼을 계속적으로 치료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부여한 구원을 선포하고 수행하는 것이 그의 첫째 임무였다. 전도서 기자는 한층 더 새로운 문체와 기사로써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처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차차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지혜를 그들에게 선포하고, 다양한 설교의 전환들 속에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구원의 진리를 그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 전도서 기자가 본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소유하는 소중한 은혜가 무엇인가를 알기에 모든 세속적인 것들의 헛됨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진실을 삶의 경험으로부터 깨달았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엑셀/ E.W. Hengstenberg, D. D.)

5 시대(역사적 배경): 전도서의 기록 시기는 기원전 977년경으로 그의 타락 후임/ 기록 장소는 예루살렘임(1:1, 12)

6. 기록목적: 저자는 세속적인 모든 목표나 축복들이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 불만족과 허무를 가져오며, 인생의 최고선(最高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임을 교훈하기 위해서이다.

7. 핵심단어: 하나님,(40), 수고, 헛됨,(39), 지혜(45)악, 해 아래서(29), 알다, 속이 상함(바람을 잡으려는 것)

 

1. 제목(명칭의 유래): 아가서의 히브리어 제목은 [솔로몬의 노래 중의 노래]라는 표현은 ‘하늘 중의 하늘’이라는 표현처럼 여러 노래 중에서 가장 훌륭한 노래를 가리키는 최상급의 표현이다. 어떤 이들은 ‘사랑’ 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여러 편의 노래와 영창들로 이루어진 한편의 노래라는 의미로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 성경에서 이 책을 ‘아가서’라고 이름한 것은 1장 1절의 ‘솔로몬의 아가라’에 근거한 것이나 원문에서는 ‘아(雅)’?자가 없다.

2.중심내용: 개인적인 믿는 이의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교통에 대한 점진적인 체험

3.저자: 이 책의 저자는 솔로몬이다.(1:1) “솔로몬의 노래 중의 노래”(개역성경에는 ‘솔로몬의 아가라’고 번역되어 있다)라는 서두의 표현은 후대에 첨가된 제목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자기 시를 노래 중의 노래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표현이 아가서 저자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여기 솔로몬이란 말에 붙은 전치사 ‘의(of)'는 시편 표제에 다윗에게 붙여진 히브리 원어와 동일하여 ’의‘ 외에도 ’에게(to)', '위하여(for)', '의하여(according to)‘ 등으로 해석 할 수 있기 때문에 아가서가 정말 솔로몬이 지은 노래인지, 아니면 솔로몬에게 헌정되어진 노래인지, 또는 솔로몬의 사랑을 찬미하기 위하여 후세에 지어진 노래인지 확증할 수 없다(엑셀/ A.M.Macray,B.A.).

4. 특징: 아가서가 문학 쟝르(genre)상 사랑의 시가 (詩歌)라고 하는 것은 명백하다. 의심하는 모든 사도들은 아가서의 강력하고 의미심장한 표현에 의해 일축될 것이다. 이 책은 성서의 다섯 두루마리(megilloth;아가, 룻기, 에스더, 전도서, 예레미야 애가)가운데 하나이며, 유대인들은 연례적으로 유월절 축제의 제8일에 그것을 낭독하였다. 아가서의 영어 제목Song of Songs는 히브리어 '쉬르핫쉬림'(Shirhashshirim)을 직역한 것이다. 명사를 속격 복수의 형태로 반복 사용한 것은 노래의 특별한 성격을 나타내는 히브리적 표준방식이다. 즉, 그것은 그 노래가 노래들 가운데 최고의 것 또는 가장 탁월한 노래임을 의미한다. (반복적 사용외 용례는 다음의 성구를 참조하라. 1)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창9:25; 2)그 장을 갈고리 아래 드리운 후에 증거궤를 그 장안에 들여 놓으라 그 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리라, 출 26:33; 3)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2) 1장1절의 '솔로몬의 아가' 는 솔로몬에 대한 또는 솔로몬에 관한 아가라고도 번역될 수 있지만, 솔로몬 왕을 아가서의 저자로 보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이다. 아가서의 내용이 솔로몬이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진 놀라운 지혜의 능력과 충분히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전통적 견해에는 부정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다. 아가서의 통일성 문제는 좀처럼 제기될 수가 없는데, 그것은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찌니라'는 동일 어구가 세번(2:7,3:5,8:4)반복해서 나타나며, 아가서 전체에 흐르는 비유적 표현이 동일하고, 또한 동일 인물이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가서의 정경론: 아가서의 정경 논의는 A.D. 90년경의 얌니아(jamnia)에서 개최된 유대 학자들의 회합에서 “세계사의 어떤 시대도 아가서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지던 그 찬란했던 시대와 비교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아가서는 성가 중의 성가다”라는 랍비 아키바(Rabbi Akiba : 50-135 당대 최고의 유대교 율법학자-역자주)의 권위있는 해석에 의해 해결될 때까지 계속해서 논쟁의 초첨이었다. 사실 얌니아 회의 이후에도 여전히 아가서의 신성함은 A.D. 2세기까지 때때로 의문시되곤 했었다. 심지어 칼빈주의자이며 인문주의자인 카스텔리오(Castellio:1515-1563)는 1544년, 아가서가 단순한 연애시이기 때문에 정경에서 제외시킬 것을 요구했다가 제네바 시에서 추방당하기도 했다. (엑셀/ Chamber's Encyclopoedia.)

5. 시대(역사적 배경):

6. 기록목적: 유월절에 주로 읽혀졌던 아가서는 결혼의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그리스도의 자기 교회에 대한 사랑을 예증(엡5:22)하며, 신부가 사랑의 성장을 보이듯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성숙해 가며, 주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용납하심을 점점 더 잘 깨달아 갈 수 있도록 우리를 교훈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경으로 보존해 주신 것 같다.

7. 핵심단어: 사랑하는 자(33), 사랑(54), 오는도다, 오다, 어여쁘다(2). 같고(19), 같구나(16)

요절: 2:16;6:3;8:6상

 

1. 제목(명칭의 유래): 저자의 이름을 책명으로 삼음

2. 중심내용: 이 책의 중심 내용은 성육신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오시는 메시야의 예언에 관한 것으로 이사야의 복음, 구약의 복음서라고 말할 수 있다. 신약 성경 가운데서 직접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 적어도 58번 이상이 된다.

3. 저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존경받는 시민이었으며, 또한 히스기야 왕의 신뢰받는 조언자였다. 그는 주전 739년에 웃시야 왕이 사망할 때로부터 므낫세 왕의 통치 때까지에 걸쳐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므낫세의 박해로 순교하였을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는 몸이 두동강 나는 죽음을 당하였다 (히11:37을 참조하라). 그는 주전 697년 므낫세가 즉위한 이후로는 '공중 설교'를 전혀 하지 않고, 자신의 메시지를 40장에서 66장 사이에 보존된 '문서 형태'에만 국한시켰음이 분명하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주전 701년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는데, 이 때는 앗수르가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그 거민들을 노예 및 포로로 잡아가려고 위협하던 시기였다. 그의 중보 기도에 의해, 산헤립의 군대는 전멸하였다 (왕하19:35-37;대하32:21;사37:36-38).이 책의 내용이 포함한 시간은 약 62년으로 주전 760년부터 주전 698년까지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그의 히브리 명칭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예사야’로 히브리 성경에서 전통적으로 불리어진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장형 어미를 가진 ‘예사야후’인데 이 명칭도 히브리 성경에 사용되었다. ‘예사야’라는 이름은 명사로 ‘구원하다’라는 동사인 ‘야샤’에서 유래했고 거기에 하나님을 가리키는 ‘야후’가 접미어로 붙어 ‘예사야후’가 되었으며, 이것을 해석하면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한편 성경에는 그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자들이 있는데, 다윗 시대에 성전 찬양대장 중에 있었고 (대상25:3, 15), 레위인 중에 있었고(대상26:25),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자중에 있었고(스8:7), 베냐민 지파 가운데도 동일한 이름을 가진 자가 있었다(스11:7). 그렇지만 본서의 기자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인데 그의 부친은 예언자 아모스와 동일 인물이 아니다. 그의 출생과 죽음에 관하여 성경에는 더 이상의 언급이 없지만 전통적으로 왕실의 자손, 즉 아마샤 왕의 형제이며 요아스 왕의 손자라고 본다(7:3-16;37:21-35;38:1-22;39:3-8)(엑셀, 강해설교대전).

4. 특징: 이 책 중에서 36-39장의 네 장인 산문을 제외하고, 기타 모든 문체는 시어체임. 고대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시 작품들이 매우 고상하고, 아름답고, 간결하며, 더우기 시격의 불합리한 구속을 받지 않는 뛰어난 작품임을 인정한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이사야가 사역한 장소는 예루살렘임이며 이스라엘 왕국의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유다 왕국의 선지자 미가와 동시대에 활동했었다. 그가 말한 예언의 시기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4왕조에 걸친 것이었고(1:1). 그의 처는 여 선지자였다(8:3 ). 최소한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두 아들의 이름에서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스알야숩‘은 이사야가 예언하기를 소수이지만 포로에서 귀환할 자가 있으리라 하여 지어 준 상징적 이름이며(사 7:3; 8:18; 10:20), ‘마헬살랄하스바스‘는 다메섹과 사마리아에 비운의 날이 올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사야가 지은 자기 아들의 상징적인 이름(사 8:4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긴 바 될 것임이니라)이다. 유대인들 사이의 믿을 만한 유전과 제 2세기의 랍비의 저서에 의하면, 그는 므낫세의 재위 기간에 순교(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함 -히11:37)했다고 전한다(참고 왕하 21:16, 24:4, 마 5:12, 행 7:52).

6. 기록목적: 유다와 열방에 대한 심판의 예언과, 주의 날 회복되는 이스라엘과 영광스러운 메시야 왕국을 그려, 성육신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고난의 메시야를 보여주려 하고있다.

7. 핵심단어: 구원(28), 거룩, 보좌, 영광, 심판, 위로, 영원한, 영, 여호와의,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요절:6:3

 

 

1.제목(명칭의 유래): 예레미야라는 이름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어떤 이들은 그 이름이 “여호와에 의하여 높임을 받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여호와에 의하여” 견고한 기초로서 “세움을 받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보다 근거있는 주장을 하였다. 혹은 구름에서 내려오는 번개나, 활을 떠난 화살처럼, “여호와에 의하여 보내졌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도 보았다. 그 중 어떤 의미를 위하든지 간에 예레미야라는 이름을 통하여 우리는, 그가 수행했고 고난당했던 모든 일이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게 된다. 확실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어둠침침한 밤, 그리고 폭풍이 몰아치는 망망 대해를 비추기 위하여 높이 세워진 견고한 등대로서 부름을 받았다. 즉, 거친 파도와 강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초는 결코 요동치 않았다. (엑셀/ Bishop Chris. Wordsorth.)

2. 중심내용: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여 돌아오지 않는 유다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다.

3.저자: 예레미야-여호와께서 높이심(하나님의 방면) 혹은 여호와께서 허무심(사람의 방면)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4 특징: 민족적 슬픔에 대한 동일한 감정이 애가와 예레미야서 모두에 나타난다. 두 책에서는 민족적 비운이 동일한 원인 탓으로 돌려져 있는데,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 및 미지근한 제사장들 외에 민족적인 죄, 그리고 나약하고 위험한 동맹에 대한 백성들의 헛된 확신이다. 유사한 비유적 표현이 두 책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처녀 또는 딸'이라는 말이 두 책에 각기 스무번 정도씩 나오고 있다. 선지자의 눈물,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할 때 느끼는 두려움, 그리고 예루살렘을 대적하는 자들이 언젠가는 벌을 달게 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 이 모든 것들이 두 책 모두에 현저히 나타난다.<이하생랴>(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기(역사적 배경):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것은 요시야 왕 제 13년이었다. 당시 유다에는 심각한 위기가 다시 한번 몰아닥쳐오고 있었는데, 이에 따라 예레미야에게는 그 어떤 선지자보다도 더욱 직접적으로 정치적 부담이 주어졌다. 히스기야 제 14년(B.C. 693)에 있었던 산헤드립 군대의 전멸 사건이 비록 모든 외침으로부터 그 나라를 완전히 벗어나게 하지믄 못했지만,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유다는 적어도 살만에셀에 의하여 사마리아가 굴복당했던 것과 같은, 앗수르의 집요한 음모에 의하여 침략받는 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유다가 새로이 당하게 된 위기는 애굽과 또 한편으로 바벨론에 의한 것이었다. 애굽의 삼메티쿠스는 분열된 국가를 통일시켜 B.C. 649년에는 스스로 유일한 군주가 되었다. 그는 54년 동안을 통치하였으며, 그의 마지막 18-19년의 통치 기간은 요시야 왕의 시대와 중첩된다. 므깃도에서 요시야 왕을 죽인 사람은 바로 이 삼메티쿠스의 후계자인 느고였다. 이처럼 애굽의 세력이 강성해지고 있을 때, 니느웨는 부분적으로는 스구디아의 침략으로 그리고 보다 직접적으로는 급신장하던 메대의 세력에 의하여, 또한 이제 막 독립을 쟁취한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서서히 쇠퇴해가고 있었다. 므깃도 전쟁 2년 후, 니느웨는 결국 키악사레스의 메대에 나보폴라살의 바벨론의 연합 공격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나보폴라살은 별반 호전적인 왕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런데 애굽은 여호야김 왕 제 14년까지 중동 지역에 대하여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얼마 후(B.C.605)느부갓네살은 갈스미스 전투에서 애굽의 느고를 패퇴시켰다. 자신의 부친으로부터 평화적으로 대권을 물려받은 후, 느부갓네살은 유다로 처들어와서 여호야김을 자신의 봉신으로 만들었다. 모욕적으로 삼년을 보낸 여호야김이 드디어 바벨론에 대하여 반역을 일으켰지만 (왕하24:1), 결국 그는 그 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석달 뒤에는 여호야김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여호야긴과 많은 수의 귀족들, 그리고 기술자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다. 삼마티쿠스의 영도 아래서 이루어진, 애굽의 괄목할 만한 성장은 (렘 2:18,36) 여호야김과 긴밀한 동맹 관계를 맺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청년 예레미야는 애굽과 동맹을 맺은 여호야김에 대하여 책망의 목소리를 높였다.(엑셀, 강해설교대전)

6. 기록목적: 회개치 않는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의 포로됨을 확실하게 예언하여 마지막 경고를 발하며 미래 예루살렘의 회복을 선포함으로 절망중에서라도 소망을 주고자 함이었다.

7. 핵심단어: 돌아오다(47), 사랑(12)했다, 버림받다, 배교, 대항하여, 처녀(6), 딸(30).

요절: 렘1: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렘3: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우리는 예레미야가 저자임을 나타내는 이 제목에 매우 익숙해 있다. 그러나 영어 성경은 히브리 성경과 마찬가지로 익명으로 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독자들을 의아해 하게 한다. 본서의 제목은 창세기나 출애굽기처럼 책의 첫머리에 있는 ‘에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역본들에 붙은 제목은 대체적으로 내용상 특징을 감안하여 정해졌다. 즉, 70인역은 이 시를 ‘비가’라 하였고 시리아 역본과 벌게이트역은 ‘애가’라고 명명하였다. 애가는 그 내용의 특수성 때문에 히브리 성경 중에서 케투빔, 즉 성문서의 부류에 속하여 정리되었다. 서정적인 시이기도 한 애가는 예언서로보다는 시편이나 잠언과 함께 분류되었다. 이러한 분류는 70인역의 번역보다 뒤늦게 이루어진 것으로 애가를 예레미야의 예언서에 첨가하고 바룩의 외경서를 두 권 사이에 끼워 넣어 세 권을 한 권으로 취급하였다. ‘예레미야 애가’라는 완전한 명칭은 시리아 역본과 70인역의 몇 몇 맛소라 사본에서 발견되며 ‘애가’라는 간략한 형태의 명칭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엑셀/ Chamber's Encyclopedia.)

2. 중심내용: 하나님의 거룩한 성과 거룩한 백성들에 대한 예레미야의 슬픔과 사랑의 표현

3. 저자: 예레미야가 본서의 저자라는 전승은 70인역의 서문 “그리고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후 예루살렘은 황폐해졌고 예레미야는 앉아 울면서 이 애가로 예루살렘에 대해 애통해 했다. 그리고 노래하기를 ...”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이 전승은 역대하 35:25에 이미 암시되어 있는데, 당시 유다의 상황에 대해서는 예레미야 애가 4:20에 보충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본서 자체의 내적 증거를 살펴 보면 애가서가 예레미야에 의해 씌어졌다는 사실이 오히려 희석되고 있다. 더욱이 에발트에 따르면 애가서의 문체는 예레미야서와 현격히 다르다고 한다. 즉, 병행하는 몇 몇 서술들이 저자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고, 이스라엘의 부흥을 예견한 내용 또한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문점들은, 애가들이 예레미야가 살던 당시 및 그 전후 시기에 한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에 의해 필사되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체로 인정되는 것들이다. 당시의 모습은 2:9과 4:20에 나오듯이 성은 황폐해졌고 왕은 포로가 되었다. 모든 책들은 당시의 재앙으로 인해 밀려드는 슬픔을 표현하는 것들뿐이었다. 유대 월력에 있어서 ‘아빕월 9일’은 매우 슬픈 날이다. 그들의 성읍과 땅에 대한 민족적 애착심을 본서보다 더 슬프게 표현한 구약성경은 없다. 그리고 본서은 성읍이 황폐해짐으로 인해 흥분된 격한 감정이 하나님께 대한 비신앙심의 형태로 그들 가운데 존재해 있었음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엑셀/ James Robertson.)

4. 특징: 본서는 각 장(章)에 한 편씩, 도합 다섯 편의 아름다운 시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의 네 편은 애도가이고, 다섯번째 것은 한 편의 기도시라 하는 것이 낫다. 처음의 네 편은 각 행(行)의 배열에 있어 히브리어의 알파벳순으로 되어 있고, 각각의 시들은 이십이 연(聯)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연들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철자순으로 시작된다. 제 5장도 역시 이십이 현으로 구성되어 있긴 하나 알파벳순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다. 제1장에서 각 절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제 2장과 제 4장에서는 '아인'과 '페'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는데, 이 자리바꿈은 아직도 만족스럽게 설명되지 않고 있다. 처음 네 장에서 비가적 운율이 사용되는데, 여기에서는 대구(對句)를 이루는 두 요소들 (영시에서의 행) 가운데 두번째 것이 첫번째 것보다 한 박자 짧다. 이것은 보통 삼박자 절이나 행(行)과 균형을 이루는 사박자 절을 나타낸다. 제 5장에서는 일반적인 히브리어의 운율이 사용되는데, 각각의 절 즉 대구의 반절(半節)은 4박자로 되어있다. 유대인들은 본서를 주요 기념일에 낭독되는 다섯 두루마리에 포함시키고있다. 애가가 낭독되는 날은 압월 (月)일인데 이 날은 성전이 불타버린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런데 5장21절은 22절에 뒤이어 반복하여 낭독되는데, 다시 낭독하는 것은 보다 긍정적인 내용으로 마치기 위함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유대인들의 유전과 70인역의 서언에 근거해 볼 때 이 책은 느부갓네살이 최후에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이후에 쓴 것이다. 시간은 주전 588년경이고 장소는 당연히 예루살렘일 것이다. 일설에 성밖 골고다 산 맞은 편에 예레미야 산동굴이라고 불리워지는 은밀한 동굴이라고 한다.

6. 기록목적: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슬픔을 표시하며 하나님은 약속한 말씀과 그 백성에 대하여 여전히 신실하심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7. 핵심단어: 어찌, 슬프다, 감찰하다, 환난, 처녀시온, 회상하다, 통곡, 근심, 처녀(22)

요절:1:5, 2:17, 3:22, 3:39, 5:21

 

1. 제목(명칭의 유래): 에스겔(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뜻)

2. 중심내용: 자기 민족에게 다가오는 칠흙같은 운명을 예시하고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뒤에 오는 열방의 심판을 예고하며 장차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을 선포하고 있다.

3. 저자: 에스겔이다. 에스겔(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뜻)은 사독 계열의 제사장 집안에서 부시의 아들로 태어났다(겔1:3;40:46;44:15). 그는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을 잘 알고 있었으며, 주전 597년에 바벨론으로 끌려 갔다.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1:4-28) 그는 포로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언자와 파수꾼의 책임을 맡았다(2, 3장). 에스겔이 소속된 바 없는 대회당에서 에스겔서가 씌어졌다고 탈무드는 단언하고 있지만, 에스겔서의 출처는 그다지 큰 논란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었다. 쥰츠(Zunz)는 에스겔서가 약 B.C. 400년에 씌여진 것이라고 그 시기를 추정하고 있다. 카일(Keil)과 쿠에넨(Kuenen)은 에스겔이 에스겔서의 저자일뿐더러 편집자였다고 주장한다. 즉, 한 책안에 여러 가지 예언들이 수집되고 결합되었다는 것은 바로 본서가 에스겔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는 주장이다. 그라프(Graf)는 레위기의 일부분(18-23,25,26장)의 저자 역시 에스겔이었다고 주장한다. (엑셀/ Chamber's Encyclopedia.)

4. 특징: 예레미야처럼 에스겔은 유대민족에게는 폭풍우와도 같은 과도기에 처해 살았다. 에스겔은 성숙한 예언자가 되고 경고의 소리로 외칠 비극적인 광경을 이미 젊은 시절부터 보아왔다. 예레미야처럼 에스겔은 자기민족에게 다가오는 암흑같은 운명을 보았다. 따라서 그는 어둠을 꿰뚫고 새벽을 분명하게 보고자 하는 독수리같이 예리하게 빛나는 눈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앗술바니팔(assurbanipal)의 탁월한 통치가 있은 후에(B.C.669-633), 북앗시리아의 유산을 계승하였다. 바빌로니아가 유산을 쉽게 계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언어와 문학에 있어서 서로가 거의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바빌로니아는 보다 고대의 문학들과 언어 그리고 문명과 접촉하게 되었다. 나포폴라살(Nabopolassar)의 아들인 느부갓네살은 앗시리아 군주가 누렸던 자랑스런 지위까지 계승한 바빌로니아 통치자였다.(B.C. 605) (엑셀/ O. C. Whitehouse, D. D. )

5. 시기(역사적 배경): 에스겔의 활동시기는 바벨론 포로기 초기인 주전593/592-571/570년이었다 (겔1:1,2;29:17). 에스겔이 바벨론에서 유다의 몰락과 회복에 대한 환상을 보고 있을 때 예루살렘에서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예레미야가 실제로 유다 왕국의 최후를 목도하고 있었다 (렘 1:1-3). 애굽왕 느고의 군대가 주전605년 유브라데강가의 갈그미스에서 느부갓네살에게 패하였다(렘 46:2이하). 갈대아인들이 새로운 세계의 지배자가 되어 (왕하24:7) 유다를 속국으로 삼았다. 여호야김 (주전 608-597)은 선지자들을 박해하였고(렘 7:26;36장), 유다 민족의 영적 생황을 타락시켰으며 (렘 7:1-15;13:16-20장-겔8장 참조), 소폭군으로 등장하였다(렘 22:13-15,17-19). 그는 주전602년에 느부갓네살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이웃 나라의 공격을 받았다(왕하24:1이하). 그는 느부갓네살이 유다에 이르기 전에 수치스런 죽음을 당하였다.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은 석 달을 다스린후 예루살렘을 포위한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하였다(왕하24:8-17;렘22:24-30;겔19:5-9). 예루살렘을 약탈한 후, 갈대아 군주는 수천명의 상류층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잡아갔다. 예레미야는 이들을 장래 이스라엘의 소망을 나타내는 "좋은 무화과"로 비유하였는데, 이것은 그 땅에 남아 있던 주번자들을 나타내는 "악한 무화과'와 비교를 이룬다.(렘24;29장). 에스겔은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그 해부터 메시지를 선포하였다.이 책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약 21년으로 주전 595년부터 주전 574년까지임. 에스겔이 사역한 장소는 바벨론이다. (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 기록목적: 완전하고 최종적인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계시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며 또 그들에게 본토에 일찍 귀환하리라는 거짓된 희망을 깨뜨리기 위함이다.

7. 핵심단어: 인자(92), 여호와의 영광,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49)

요절: 겔 1:1 제 삼십 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겔 1:28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다니엘은 이 책에 기록된 사건들 가운데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다. 예수께서는 이 책의 예언들을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마 24:15; 막 13:14)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증거는 이 책의 명칭이 단순히 다니엘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예언들이 다니엘에 의해 선포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복음주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책의 저자를 에스겔서에(14:14, 20; 28:3) 노아와 욥과 함께 의인의 표본으로 등장하는 다니엘과 동일한 인물로 본다. (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2. 중심내용: 이 땅 위의 모든 인간 정부들을 다스리는 하늘의 하나님에 의한(2:37, 44) 하늘의 통치는(4:26) 그리스도께서 다음의 항목들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경륜과 부합함.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부활 안에서 새 창조를 발아시키기 위해 옛 창조를 끝내심 - 그분의 초림시에 성취되었음. 인류 역사 전체에 걸친 인간 정부의 총체를 부수고 분쇄하심 - 장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의해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이 세워짐. 이 모든 사항들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본질적으로 이스라엘과 관련되어 왔고 또 관계될 것이다.

3. 저자: 다니엘이다. 몇몇 학자들이 다니엘서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묵시적 예언의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J. E. H. Thomson저, Danie1 in Pulpit Commentary, p.93을 보라). 이러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것이지만 때때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E. G., Ro-bert H. Pfeiffer,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IIlent,p.775). (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3. 특징: 다니엘서는 히브리 정경에서 소위 ‘하기오그라파’(성문서)라 불리우는 세 번째 부분에 분류되어 있다. 제1장은 다니엘서의 서론적인 부분으로서, 바벨론 왕에 의해 수행된 인재의 등용과 교육에 관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등장하는 내용들은 두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2장에서부터 7장까지를 차지하고 있는 첫째 단락은 2:4의 중간 부분부터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 단락은 세계의 네 제국에 관한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왕국이 이방의 왕국에 대해 가지는 관계를 드러내 보여 준다. 그 형태에 있어서는 첫째로 네 부분으로 되어 있는 신상을 보여 주며 그 다음으로는 바다로부터 나오는 네 마리의 거대한 짐승을 보여 준다. 물론 그 마지막 제국에 이어서 하나님의 왕국이 등장할 것이며 그 왕국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한편 본 단락은 이방 왕들의 박해로부터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이 구원과 보호를 받게 될 사실과 성전에 속한 기명들을 더럽게 하고 교만과 우상 숭배 가운데 빠져 있던 이방의 왕들이 비천하게 되어질 사실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본 단락의 처음 세 장과 나중의 세 장이 서로 상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2장은 7장과, 3장은 6장과, 4장은 5장과 서로 상응 관계를 갖고 있다. 나머지 다섯 장을 구성하고 있는 두 번째 단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 단락 또한 수양과 수염소의 환상을 통해 두 번째 왕국과 세 번째 왕국의 운명을 보여 주면서, 하나님의 왕국과 이방 세계의 충돌을 보여 주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메시야의 도래,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 하나님의 왕국과 그 대적들간에 벌어지는 최후의 싸움, 그리고 마지막 부활 등에 관한 주목할 만한 계시들과 함께 가까운 미래에 관한 상세한 사건들이 뒤따른다. (엑셀/ E. P. Barrows, D. D.)

4. 시대(역사적 배경): 에스겔서와 다니엘서는 포로기에 쓰여졌다. 에스겔서와 다니엘서는 포로기에 쓰여졌는데, 이때는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대인의 성전과 도성이 파괴되고 재산을 빼앗긴 후 유대인들이 잡혀가던 시기였다. 이러한 파괴는 세 번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번째는 B.C. 605년에, 두번째 B.C. 597년 느부갓네살의 팔레스틴 원정 중에, 세 번째는 B.C. 587년, 오랜 포위 공격 후에 느부갓네살은 도성과 성전을 파괴하고 전 유대사회를 파괴하였다(왕하 25:1-7; 렘 34:1-7; 39:1-7; 52:2-11). 다니엘은 첫 번재 시기에 느부갓네살 왕이 여호야김을 굴복시키고 포로로 잡아갔는데, 그들 중에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있었다(단 1:1-6).

6. 기록목적: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나라가 회복될 것이라는 소식으로 위로하려고 기록했다.

7. 핵심단어: 꿈(21), 이상(30), 하나님(45), 해석(26)

요절: 단 4:17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선지자의 이름을 따서 그대로 호세아서로 명명했다.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자, 즉 구원자를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즉, 예언에 그 아버지의 이름이 주어지면, 그 아버지도 역시 이들과 마찬가지로 예언자라는 것이다. ‘브에리’는, 그 안에 솟아오르는 물을 지닌 ‘우물’이란 뜻이다.

2. 중심내용: 음란한 아내와 신실한 남편의 이야기를 통하여 음란한 백성과 신실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며 그런 배교자들에게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며 끝까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기술하고 있다.

4. 저자: 브에리의 아들인 호세아는 이사야가 유다에서 예언 활동을 하던 당시에 북왕국(이스라엘, 즉 에브라임)에서 예언 활동을 하였다(호 1:1;사 1:1). 호세아는 자기 민족에게 전달하기 위해 글을 남긴 북왕국의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실의에 빠져서 그들의 임박한 포로 생활(호3:4)과 징계받은 백성들이 여호와의 강력한 요구들을 다시 깨닫게 될 때에 그들이 회복될 것임(호3:5)을 예언하였다. 대부분의 그의 예언 활동은 주전 750-725년 사이에 행해졌음이 분명하다.

4. 특징: 북 이스라엘에 대한 호세아의 활동과 메시지를 기술한 것으로 음란한 아내와 신실한 남편의 이야기를 통하여 음란한 백성과 신실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며 끝까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로 알 것을 권고하고 있다.

5. 시기(역사적 배경): 호세아의 사역은 분명 여로보암 2세의 통치 말기에 이루어졌다. 그 시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될 그러한 상황의 시대였다. 어떤 면에서 여로보암 2세의 통치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탁월했다고 볼 수 있다. 열왕기서는 그 시기에 대해 정치,군사, 경제면에서 절정 상태에 이른 시대였다고 약술하고 있다(왕하 14:28). 그러나 반면에 그 시대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기도 했다. “여로보암이...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4: 23,24). 이는 당시 현실에 대한 호세아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이스라엘의 외적 번영은 속에서 깊게 곪아가고 있는 병들을 잠깐 가리우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번영이 하나님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자연히 무질서와 파괴의 피로 물들 수 밖에 없었다.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인 스가랴가 왕위에 즉위하였다. 그러나 그는 6개월만에 음모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그를 살해하였던 살룸이 등극하였으나, 그 역시 1개월여만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살룸의 후계자이며 곧 그의 살해자이기도 한 므나헴은 10년이라는 제법 긴 기간을 통치하였으며, 그는 앗수르에 많은 공물을 갖다 바쳐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만 했다. 이러한 치욕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그들은 애굽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앗수르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는 굴욕의 수치스러운 세월을 계속하여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재난과 파괴, 유수의 날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매우 분명하다. 정신적 타락이나 도덕적 부패를 일삼는 물질적 번영이나 전시적인 종교 행위는 궁극적으로 멸망되고야 말 것이라는 것이 호세아서가 우리에게 남겨 주는 귀한 교훈인 것이다. (엑셀/ T. C. Straus)

6. 기록목적: 타락하여 회개를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경고하며 남은 자에 대한 소망과 북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기 위함이다.

7. 핵심단어: 알다, 자비, 듣다, 사랑, 돌아오다, 이스라엘(44), 에브라임(37), 유다(15), 내가 하리라, 여호와의(57). 요절:3:1;6:4;10:12;11:3, 8 ;14:4

요절: 호 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호 6: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호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호 11: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호 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호 14:4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요엘이란 히브리 이름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를 뜻한다.

2. 중심내용: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다는 것이 본서의 주된 교훈이다. 그 날은 여호와께서 원수들의 멸망과 형제들의 높이 들리움 가운데 나타나실 날이다. 이 날은 자연계에 특별한 현상의 나타남이 동반될 것이다(2:30,31). 여호와 앞에서의 인간의 마음 자세와 생활태도가 그 날에 대한 그의 반응을 결정할 것이다. 요엘서에 나오는 메뚜기들은 네 시기에 걸쳐 이스라엘을 황폐케 하는 열국을 상징하는 데 바벨론의 첫 번째 왕인 느부갓네살부터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적그리스도까지 네 제국에 걸쳐 이스라엘을 계속 황폐케 할 것을 경고하고 예언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들을 이기시고 종결시키실 것이며, 회복의 시대에 왕국을 수립하고 구원받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리 실(통치) 것이다(계 20:4-6, 마 19:28)

3. 저자: 저자는 '브두엘의 아들 요엘'이다(1:1). 미가라는 이름과 마찬가지로 이 이름은 그의 부모에 의한 신앙 고백을 지칭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엘의 개인 경력은 예언서에 나타난 사실에 국한된다. 구약성경에는 열세명의 또 다른 인물들이 요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선지자 요엘은 이들 중의 어느 누구와도 동일시될 수 없다. 그의 메시지는 주로 예루살렘 및 유다와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언급은 그가 남부 팔레스틴의 시민으로 아마도 예루살렘의 거주자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요엘서는 전통적으로 한 사람의 작품인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주후 1870년경, 버네스(M.Vernes)가 2:28에서 3:21까지는 1:2에서 2:27까지를 기록한 저자가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여 동일한 저자가 이 두 부분을 모두 기록했음을 인정하였으나, 그럼에도 그는 두 부분사이에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외에도 본서가 단일 문학작품이 아님을 입증하려는 하찮은 시도들이 계속 행해졌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고등비평적인 견해는 요엘이 본서의 책임있는 저자이나 수세기에 걸친 성서의 전래 과정을 통하여 후에 수정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4. 특징: 요엘서의 문체는 고어체인데 이는 아모스 및 미가와 유사하다. 이들의 문학적 유사성은 뚜렷하다. 다음을 비교하여 보라 ; 1)욜3:18과 암9:13, 2)욜1:4과 암4:9, 3)욜2:11과 습1:14,15, 4)욜2:3과 겔36:35 및 사51:3. 5)욜2:11과 말3:2, 6)욜3:10과 사2:4..

5. 시대(역사적 배경): 학자들은 본서의 저작 시기에 대하여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제시된 여러 가지 연대들 중에 두 가지 주된 주장이 있는데, 그것들은 각각 (1)이른 연대로, 유다 왕 요아스의 통치시기인 주전830년경과 (2)포로후기로 바사 시대인 주전 400년경이라는 주장이다. 이 가운데 늦은 연대를 지지해주는 논거들이 있다. 포로기 이전의 다른 예언서들과 같이 당대의 왕에 대한 언급이 서두에 없다(1:1). 또한 북왕국(사마리아)이 언급되어있지 않은데 그것으로 보아 북왕국이 멸망한지 오래 되었음이 분명하다. 요엘은 유다에 대해 이스라엘이라는 낱말을 사용하는데, 포로기 이전의 어느 선지자들도 이렇게 한 적이 없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주전 722년(즉 사마리아 멸망) 이전에는 열 지파를 지칭할 때에만 사용되었다. 포로기 이후의 사회에서는 귀족이나 왕이 아닌 제사장이 지도자였다. 또한 3:1, 2, 17은 포로 생활이 이미 발생했었음을 암시한다. 포로기 이전을 저작 시기로 보는 주장 또한 강력하다. 제사장들이 부각되고 귀족과 왕이 빠진 것은 어린 왕 요아스를 대신하여 다스린 대제사장 여호야다 때문이다. 사마리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에서 기인되는 주장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저자는 본래 북왕국의 사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야곱의 영적 축복을 합법적으로 계승한 유다에 대하여 절절히 사용될 수 있었다. 포로귀환(3:1)은 단지 소유의 회복을 의미할 뿐이다(욥42:10을 참조하라). 요엘서 3장에는 포로기 이전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 없다. 욜3:4-6은 오바댜서에 묘사된 것과 동일한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 기록목적: 본서의 직접적인 동기는 메뚜기떼와 가뭄으로 인한 땅의 황폐였다. 비길데 없이 품위있고 강한 시적 운율로 선지자는 메뚜기떼의 침입을 군대와 같은 형태로 묘사하며, 그것들이 여호와의 날의 전조라고 생각한다. 그는 모든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면서,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땅은 회복되어 비옥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또한 하나님의 신이 언약을 내리시고, 백성은 대적들에게 승리할 것이며, 온 우주가 거룩해지고 평화롭게 되는 시대가 임할 것이다.

7. 핵심단어: 메뚜기, 여호와의 날(5), 기뻐함, 회복/ 요절: 욜1:2, 2:12, 2:28-32.

 

1. 제목(명칭의 유래): 아모스는 히브리어로 「부담을 진 자」란 뜻이다.

2. 중심내용: 이스라엘과 열국의 심판하시되, 여호와께서 열국을 징벌하시고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삼으신 것은 다윗 왕국-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한(계 11:15) 회복의 시대(마 19:28)가 도래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3. 저자: 아모스는 히브리어로 「부담을 진 자」란 뜻으로 그는 목자요(1:1) 뽕나무를 재배하던 사람이다.(7:14). 유다 왕 웃시야와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재위 기간에 예언하였으며(1:1) 사역 시기는 주전 787년경(1:1上)이고 사역의 대상은 북조 이스라엘(1:1下), 사역의 장소는 북조 이스라엘에 있는 벧엘이다.

4. 특징: 아모스는 우리의 삶이 마땅히 바르고 선하며 참된 행위로만 이루어지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거룩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선지자들 가운데 위대한 도덕론자였다. 요컨대 구약성경에서의 아모스는 신약의 야고보와 같은 인물이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예배 행위가 배교적이긴 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지키는 데 매우 열성이었다. 그들은 이른 새벽부터 벧엘과 길갈에 있는 신당에 열심으로 희생을 갖다 바쳤으며, 3일에 한번씩 십일조를 드렸다. 그러나 아모스는 그들에게서 악이 함께 행하여지고 있음을 목격하였다. 따라서 그는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5:15)라고 명령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라고 하면서 그분의 법도대로 살기를 거절하는 자들의 예배를 결코 기쁘게 받으시지 않는다. (엑셀/ Original Secession Magazine.)

5. 시기(시대적 배경): 아모스의 예언 활동은 주전 780년 이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추측하는 데에는 몇 가지의 이유가 있다. 즉,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힘차게 꾸짖은 아모스가 앗수르에 관하여는 한 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 당시 앗수르가 북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정치적으로 예전처럼 그렇게 세력을 떨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디글랏빌레셀의 무서운 침공으로 앗수르가 다시금 맹위를 떨쳤을 때는 호세아 선지자의 활동 기간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아모스가 예언 활동을 할 때는 시리아가 불니라리 3세(Vulnirari)의 엄청난 침략으로부터 복구 단계에 있었을 때라고 보아야 한다. 다행히도 성경은 그 기간 동안의 북왕국의 사회적 , 도덕적, 종교적 상황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자료를 제공하여 준다. 성경의 역사서에 나타나 있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호세아서는그 당시와, 그리고 아모스 시대 전체에 걸쳐서 많은 지식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의 종말기라 할 수 있는 중대하고도 비극적인 세기의 상활에 대해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감지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는 탁월한 지도력으로 국가의 지경을 확장시켰다. 시리아는 하맛에서 사해에 이르는 넓은 땅을 그에게 봉납했으며 암몬과 모압 족속은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처럼 정복 사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수세기 동안을 초강국으로 군림해 왔으며 당시에는 불니라리 3세의 강력한 영도아래 서쪽으로 영토를 넓혀가고 있던 앗수르의 세력에 의하여 시리아가 위기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리아는 앗수르의 불니라리 3세로부터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다. 요컨대 여로보암이 시리아의 통치령이던 요단 지역을 회복한 것은 분명 시리아와 주변 국가들이 전복되어 무력하게 된 일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에 대한 개념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모스에 의하여 특별히 강조되었으며, 그의 예언의 핵심이 되었다. 그의 모든 메시지는 바로 이러한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엑셀/ H. R. Reynolds, D. D.)

6. 기록목적: 북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으로 당시 북 이스라엘의 상황은 아주 살기 좋은 시대로 정치적으로 안정되었고 군사적으로 힘이 막강하였으며 사람들은 태평성대를 누리는 시기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망각하였으며 간절한 기도가 없고 타성적인 예배로 종교 생활이 무의미해졌다. 이런 북이스라엘에게 몇 십년 후에 멸망할 것임을 경고하기 위해 기술되었다.

7. 핵심단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범죄, 내가 행하리라, 찾다

요절: 암 1:2 저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암 4: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오바댜서(書)는 (이름을 제외하고) 오바댜선지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있으며 또한 저작시기도 명시하고 있지 않다. 구약성경에는 열두 명 정도가 오바댜로 표기되어 있으나 모두 이 예언서를 기록한 선지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선지자의 가문, 사회적 지위 및 생업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오바댜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종' 또는 '여호와를 경배하는 자'를 의미 한다.

2. 중심내용: 오바댜의 예언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증오의 노래라는 비난을 정당화할 만큼 신랄하지는 않다. 이 시의 강한 어조는 정의감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같은 혈족이 혈연을 저버리고 무서운 죄를 범하였다. 그들이 저지른 죄는 징벌되어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족속들을 징벌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하나님을 만국(萬國)의 심판자로 인정하였으며, 그 분이 저질러진 범죄에 대하여 응징하실 것이라고 믿었다(1:15). 하나님은 그 권능에 있어서 우주적이시다. 어떤 민족도 만물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벗어날 수 없다. 그 분은 압제 당하는 자에 관심을 가지시고 그들을 들어 올리실 것이며, 그들이 빼앗겼던 것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3. 저자: 본 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오바댜 선지자의 내면적인 성격과 외면적인 경력에 관해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오바댜 선지자는 자신의 이름 외에는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선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이름을 기록했다. 이 이름이 지니는 의미는 중대하므로 이에 대해 주목해 보자. 오바댜란 이름은 ‘여호와의 종’ 혹은 ‘주의 경배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바댜가 자신의 이름을 거명한 후, 잠시 사이를 두었을 때는 마치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본인은 지금부터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는 일을 전혀 꺼리지 않을 것이다. 본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진정한 경배자 중 한 사람으로 생각되어지는 일을 매우 기쁘고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주의 경배자가 받는 영예와 면류관은 본인이 매우 간절하게 소망하던 바요, 쾌히 쓰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바댜가 온전하고 흠없는 경건을 소유한 진정한 선지자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사람들이 선지자의 경력에 관해 알고자 했으나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신상에 관해 침묵을 지켰고 널리 알려지는 것을 사양했다. <중략>. 그러나 우리는 선지자들의 예언서를 읽으면서 그 책을 기록한 당사자의 얼굴 모습과 외형, 삶의 태도와 경험에 관해 가능한 자세히 알고 싶어한다. 오바냐는 과묵한 선지자였다. 우리는 그의 저서에서 그의 이름 외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고귀하고 거룩한 사람들 중에 자기 자신을 남에게 설명하는 일에 분망했던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본서의 저자가 엘리야 선지자와 동시대의 인물로서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던 아합의 궁내 대신 오바댜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오바댜는 우상 숭배하는 이세벨에게 핍박을 받은 수 많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굴에 숨겨준 일이 있었다(왕상18:3-16). 또 다른 사람들은 오바댜가 유다 여러 성읍에 여호와의 도를 가르치라고 여호사밧에 의해 파견된 방백일 것이라고 말한다(대하17:7). 또 어떤 사람들은 그가 유다의 마지막 선한 왕 요시야 왕이 통치할 때, 성전의 복구를 위해 감독으로 임명받았던 사람일 것이라고 말한다(대하34:12). 이 모든 주장들이 다 본서의 저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것이지만, 과연 누가 본서의 저자인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엑셀, 강해설교대전)

4. 특징: 야곱의 형인 에둠에대한 심판과 경고를 기록한 책으로 같은 혈족인 에둠이 혈연을 저버리고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무서운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하나님을 만국(萬國)의 심판자로 인정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러한 범죄에 대하여 응진하실 것이라고 믿었다(1:15). 에돔은 이스라엘의 큰 대적으로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전쟁을 일삼았으며 주전 583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되었다.

5. 시기(역사적 배경): 오바댜는 에돔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대적들과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약탈에 가담했던 역사적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1:10-14). 예루살렘은 여호람 시대인 주전 9세기 중엽에 블레셋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에게 약탈을 당했다 (대하21:16,17). 에돔은 주전 5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바벨론 및 다른 국가들과 연합하였고 이 성읍의 약탈에도 가담하였다. 오바댜서의 저작 시기는 이 기간중에 있었다고 추정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6. 기록목적: 교만으로 이스라엘을 대적한 형제나라 에둠의 멸망을 예고하며 여호와의 날이 대적에게는 두려움이요 멸망이지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회복과 구원의 날임을 보여주고 있다.

7. 핵심단어: 소유하다, 에둠. 요절:1:15

 

 

1. 제목(명칭의 유래): 본서의 제목은 중심인물인 요나의 이름을 따라 붙여졌는데,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로 '비둘기'를 뜻한다. 이 선지자는 열왕기하 14장25절에 잠깐 언급된다. 그는 현재의 갈릴리에 해당하는 스불론 땅의 가드 헤벨 출신이었다.(아밋대 란 말은 아멘 에서 파생된 단어로 신앙의 가정에서 자람을 보여준다)

2. 중심내용: 요나서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1)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시고 그들에게 심판을 경고하도록 그의 종들에게 요구하신다. 2)어려움에 직면할 때 인간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3)하나님은 전승하셔서 자신의 뜻하심에 따라 자현의 힘을 이용하실 수 있다. 4)비록 하나님께서 불순종을 벌하시지만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시기를 원하신다. 5)가장 가망이 없는 선교지가 종종 가장성과 있는 선교지가 된다. 6)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비와 긍휼로 대하시고 싶어하신다.

3. 저자: 제 2장에 나오는 기도가 1인칭 단수 형태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어떤 곳에도 선지자 자신이 본서를 기록했다는 언급이 없다. 전승은 요나가 저자인 것으로 이어 내려 왔다.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본서가 요나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요나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본서는 요나가 손수 쓴 책이라고 생각된다. 요나는 생을 마감하기 전에 조용히 앉아서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니느웨 여행을 회고하면서 펜을 잡아 손수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요나는 어떤 태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했을까? 매우 겸손한 태도로, 누가 보아도 공명 정대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큼 냉정한 태도로 사실을 서술했다. 요나는 스스로 자신의 그릇됨을 기록한다는 사실에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배타심, 하나님을 향한 불평 불만의 어리석은 태도를 낱낱이 기록했다. 그는 자신을 냉혹하게 비난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순종과 사랑이 결핍되었는지를 솔직히 기록하였다. 대신에 하나님의 자애하심과 따뜻한 자비를 강조했다. 요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반면에 자신은 꾸짖으며 경계했던 것이다. 우리는 또한 본서를 읽으면서 어거스틴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거스틴 역시 자신의 방탕하고 타락했던 청년시절을 그대로 기록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쏟았다. [천로역정]의 저자인 존 번연의 일생을 생각해 보자. 그는 죄인 중의 죄인인 자신이 일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했다고 술회했다. 요나도 틀림없이 새롭게 변화되었을 것이다. 자만심, 퉁명스러움, 불순종과 같은 옛 습관을 완전히 벗어버린 후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어 본서를 손수 기록했음에 틀림없다. 본서는 다른 예언서와 다르다. 요나서는 어떤 이야기의 서술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특수하고 기적적인 체험을 생생하게 그린 체험담이다. 요나서의 극적인 장면은 3막으로 구성된다 . 이 3막 전부가 흥미진진한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 (엑셀, 강해설교대전)

4. 특징: 본서의 의미와 그 해석에 있어서 많은 이론들이 있으며 그 해석여하에 따라 교단이 갈라졌다는 사실을 나는 뼈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과 요나의 도피, 그리고 요나의 회개와 니느웨성의 회개와 박넝쿨사건을 통해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알 수 있으며 또 이스라엘을 어떻게 사용하시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다.

5. 시기(역사적 배경): 신언자 엘리사 시대(주전 896-838년)인 주전 862년경. 사역의 대상은 큰 성읍 니느웨 사람들임(1:2). 사역의 장소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임

6. 기록목적: 하나님은 이방 민족까지도 사랑하고 계시며 그 이방민족 중에서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이스라엘에 대한 참된 목적을 요나를 들어서 보여 준다. 또 불순종하는 종들에 대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와 유다 백성의 교만한 애국주의가 눈을 가려 이방 민족을 향한 사랑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점을 강하게 꾸짖고자 본서가 기록되었다.

7. 핵심단어: 큰, 예비하사, 여호와의 말씀(3), 여호와(22), 회개

요절: 2:1, 2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욘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욘 4:2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음이니이다. 욘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1. 제목(명칭의 유래): 본서의 선지자인 미가의 이름을 따서 그대로 붙였다. 미가는 미가야의 축약형으로 「야(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이랴?」는 뜻이다.

2. 중심내용: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이스라엘을 책망하셨으며 천년 왕국(계 20:4, 6) 안에서의 회복(마 19:28)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실 것과 모으실 것을 약속하신다.

3. 저자: 미가는 미가야의 축약형으로 「야(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이랴?」는 뜻임(렘 26:18). 미가는 유다 왕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재위 기간에 예언했으며 미가의 사역 시기는 이사야와 호세아의 시대인 주전 750-710년경으로 약 40년간이며 사역의 대상은 북조 이스라엘(유다도 포함)이다. 사역의 장소는 유다이다. 저자인 미가 선지자는 도시가 아닌 조그마한 마을의 평민 출신이었다. 그는 모레셋이라는 블레셋의 국경 지방에서 태어났다. 미가는 근검하고 부지런한 유다의 농부 출신이었다. 그는 평범한 서민에 속했다. 우리는 미가서를 읽으면서 미가가 천민 계급, 즉 땅을 대상으로 일하는 사람들, 곡식단을 묶고 집을 지으며 무덤을 파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동정심을 가지게 된 경위를 알 수 있게 된다. 민중의 편에 서서 부자와 귀족의 폭정에 항거하는 그의 어조 속에는 불붙는 듯한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지주의 손에서 착취당하는 민중의 고통을 친히 목격했으며 그 부패의 실상을 실감있게 그려냈다. 자만심이 강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모두 다 자신들을 위한 존재에 불과했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2:2)했다. 가난한 경작자들은 날마다 재산을 약탈당하고 거짓 재판과 폭력에 시달려야만 했다. 따라서 미가는 유다의 극악한 원수는 앗수르인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 즉 하나님을 대적하며 사람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거만한 귀족들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돌보심을 받고 있는 가난한 사람, 의지 없는 가련한 사람,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압제했기 때문이다. 미가는 선지자일 뿐만 아니라 사회개혁자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미가가 맹령한 어조로 비난했던 죄악이 성행했던 시기는 국가가 부귀를 누리던 황금시대였으며, 또한 종교적인 계율이 엄격하게 준수되던 시기로서 국가의 외적인 측면은 전혀 나무랄 데 없는 시기였다. (엑셀/ Original Secession Magazine.)

4. 특징: 미가서는 이사야와 동시대인으로 이사야서의 축소판으로 불린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냉냉한 종교의식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6:7)과 용서를 보여주고 형식 종교에 대한(6:7) 혐오감과 사회 정의에 대한 그의 관심(6:8),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7:18), 또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7:20)이 강조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야곱의 하나님으로(4:2), 열국의 심판자로(4:3), 베들레헴에 태어날 이스라엘의 주권자(5:2;마2:1-6)로 예언하고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로는 그분의 영원한 기원에 있어서(5:2下- 요1:1). 베들레헴에서 사람으로 출생하심에 있어서(5:2上 - 마2:1). 그분이 천년 왕국(계 20:4, 6) 안에서 통치자, 목자, 이스라엘의 평강이 되심에 있어서(5:2中, 4上, 5上). 그분이 크게 되심에 대해서(5:4下). 그분이 앗수르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에 있어서(5:6下), 그리스도의 긍휼(7:19 -요13:1) 에 대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

5. 시기: 사역의 대상은 북조 이스라엘(유다도 포함)임. 사역의 장소는 유다이며 미가서의 역사적 배경은 왕하 15-20장에서 알 수 있다. 미가의 사역 시기는 이사야와 호세아의 시대인 주전 750-710년경으로 약 40년간이다

6. 기록목적: 범죄로 인한 전 이스라엘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과 마지막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회복을 선포함으로 바른 신앙의 삶을 권면하고자 기술하였다.

7. 핵심단어: 야곱, 시온, 만국, 남은 자, 행하다, 듣다, 공의

요절: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7: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 제목(명칭의 유래): 본서에 기록된 선지자의 이름을 따서 나훔이라 하였다.

2. 중심내용: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원수인 앗수르를 심판하여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임을 예언한 것으로 나훔은 주전 607년경 예언한 요나보다 약 150년 후에 등장하여 요나 후 약 100년 지난 후에도 여전히 강포한 민족 니느웨를 대상으로 심판 선언하고 있다.

3. 저자: 나훔 선지자의 출생은 오랬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나훔서는 “엘고스 사람 나훔”(1절)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러나 엘고스란 명칭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결정적인 근거 자료가 없다. 교부 제롬(Jerome:340-420 고대 로마의 종교가-역자주)은, 엘고스라고 불리우는 마을은 갈릴리에 있으며 엘고스에 남아 있는 몇몇 유적이 나훔이 이곳에 살았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증거는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제롬은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보냈으므로 이 지방에 있는 마을들과 도시들에 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주석가들은 나훔이 갈릴리 사람이라는 신빙성 있는 증거를 들어 나훔이 이스라엘의 북부 갈릴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났다고 말한다. 갈릴리는 가버나움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이곳은 선지자 나훔보다 더 위대한 그리스도의 생애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가버나움은 ‘나훔의 마을’, 또는 ‘나훔의 촌’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가 이러한 의미로 이 지방의 이름을 지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지명은 바로 조국의 대적들이 멸망을 선포한 하나님의 예언자 나훔이 이 지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민족에 의해 자연스럽게 명명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훔 선지자가 날마다 거닐었던 한 작은 마을이 얼마 후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성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시고 거니시면서 명상에 잠기셨던 그 호숫가를 나훔도 똑같이 걸어다녔고 기도와 명상에 잠겼던 것이다. 나훔이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보냈던 그의 고향에 육 백년 후에 하나님의 아들의 발자취가 남겨지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라. (엑셀, 강해설교대전)

4. 특징: 나훔의 득의양양하고 강렬한 표현들은 바로 그의 조상의 땅 이스라엘의 평화와 번영과 생명 그 자체를 늑탈한 거대한 앗수르 제국을 향한 분노로 더욱 강하게 채색되어 있다. 나훔의 무자비한 표현이 앗수르에게는 무시무시하고 암울한 재앙의 말이라면 이스라엘에게는 빛나는 위로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나훔의 단호한 예언은 앞으로 앗수르의 감옥이 열리고 찬란한 날의 여명이 밝아 온다는 확신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다. 나훔은 참으로 진정한 시인이며, 히브리 예언자였다. 많은 사람들은 나훔의 문장이 매우 간결하면서도 박진감이 넘치고 힘차며 생동감이 넘치고 타는 듯한 열정이 숨겨져 있음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나훔은 적 앗수르를 향하여 매우 비정하고 가혹했다. 그러나 우리는, 앗수르는 나훔과 그의 백성의 원수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대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나훔의 무정하고 가혹한 표현은 경건한 믿음에서 솟아 나온 열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나훔의 말은 모두가 승리의 용기를 주는 음악이며 승전의 전장에서 부르는 나팔 소리였다. 그는 마치 니느웨 멸망의 전말을 친히 주목한 사람처럼 생생하게 그려냈다. 또한 그는 니느웨가 그의 눈앞에서 방금 멸망한 것처럼 그 황폐를 기뻐했다. 이처럼 나훔의 문체는 구구절절이 힘차고 생동감이 넘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기: 나훔서는 주전 663-612년내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고고학적 조사로는 니느웨가 612년에 멸망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나훔의 예언은 아마도 니느웨의 멸망 얼마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주전 713년경으로 히스기야 왕 14년.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후(주전 720년경). 애굽이 앗수르에 의해서 패배 당한 후(주전 714년경, 참고 사 20장). 유다가 앗수르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있을 때 큰 성 니느웨에 대하여 선포한 것이다. 사역의 장소는 남조 유다이다.

6. 기록목적: 나훔은 예레미야, 하박국, 스바냐와 함께 남왕국 유다에서 선포한 선지자이다. 북왕국의 이스라엘은 약 1년전에 앗시리아에 사로잡혀 갔다(주전722년이나 721년). 니느웨 사람들(앗수르인들)은 나훔서가 기록되기 100년 전에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으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그들의 후손에게 물려주지 아니하였으며 백성들은 금방 심한 우상숭배에 빠졌다. 그들은 이미 사마리아(북왕국)를 멸망시키고 주전 701년에는 예루살렘을 거의 점령하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백성을 멸해야 했다. 이제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막대기로 사용했던 백성을 징벌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본서는 피의 도성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을 선포하고 장래의 구원으로 유다를 위로하고자 기록한 것이다.

7. 핵심단어: 내가 네 대적이 되어, 진멸, 니느웨

1. 제목(명칭의 유래): 하박국이란 히브리어는 「품에 안다」 혹은 「달라붙다」를 의미하며,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품에 안거나 하나님께 달라붙음으로써 그분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2. 중심내용: 하박국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제3장의 내용이 앞의 두 장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승리의 절정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는 본서 전체를 통하여 신정론(神政論)을 보게 된다. 이 예언서의 구조는 구약에서 독특한데 그것은 신학적인 내용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처음 두 장에는 여호와와 선지자 사이의 대화가 들어있는데 그 대화 속에서 선지자는 몇몇 시편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함과 아울러 거룩하신 분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러한 악을 참으실 수 있는지를 알려 달라고 여호와께 요구하기도 한다. 제 3장은 기도이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목적을 성취하여 달라고 즉, 수년내에 주의 일을 부흥케하여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함으로 시작하고 있다(2절). 이 기도에 이어 그는 하나님께서 권능을 발휘하시고 세상에서 영광을 드러내시는 이상을 받게된다. 그 이상의 결과로 선지자는 경외와 확신에 휩싸이게 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3. 저자: 하박국의 의미는 ‘강하게 껴안는 자’ 혹은 ‘견고하고 친밀하면서도 부드럽게 포옹하는 자’이다 루터는 그의 이름에 관해 다음과 같이 간단 명료하게 해석했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의 민족을 껴안아 자신의 팔로 데리고 가는 사람’이다 즉, 하박국은 마치 어머니가 칭얼대는 아기를 껴안아 울음을 달래어 주듯이 그의 백성을 품에 안아 높이 들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다. 그는 그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머지 않아 모든 것을 의롭게 만드실 것이라고 위로하면서, 백성들의 불평을 그치게 해준다.”(엑셀, 강해설교대전)

4. 특징: 이 간단한 소책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영적 통찰력으로 인해 종교 문학사에서 주목할 만하다. 2장4절에서 하박국은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불후의 진리를 말한다. 죄는 파괴된 관계, 즉 하나님을 거역하며 멀리하는 행위이다. 믿음은 회개하고 하나님을 겸손히 신뢰함으로써 그처럼 파괴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믿음이 하박국에게 있어서는 겸손히 신뢰하는 것 이상의 것인데 그것은 믿음의 생활을 특징짓는 하나님께 대한 변함없는 순종 즉 충성심이다. 이러한 영적 진리가 참 종교와 거짓 종교를 구분하여 준다. 믿음에 대해 이처럼 깊이 이해함으로써 본서는 신자들의 영적 생활에서 소멸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믿음은 단순히 신봉되는 어떤 교리가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방식이다. 그것은 매 순간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잘못되고 모든 소유를 잃으며 먹을 것이 하나도 없을 때에도 자신은 여전히 구원의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것이라고 하박국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만 계시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이 믿음이며 모든 사람은 삶의 종국에 이르게 될 때 그것을 알게될 것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하박국 선지자는 므낫세(기원전692-642년 재위, 히스기야의 아들)의 통치 기간 말기에 사역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박국이 므낫세 왕 이후에 생존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즉 유다가 멸망의 일로를 걷고 있던 여호야김(기원전 608-597년 재위-역자주)왕의 통치 기간에 하박국이 생존하여 사역했다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하박국이 바벨론의 침략이 있기 전에 예언하였으며 이는 그가 바벨론의 침략에 관해 눈 앞에 보는 것같이 생생하고 강력한 어조로 예언했기 때문이다. 선한 왕 요시야가 애굽 왕 느고와 함께 앗수르를 치다가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되자 유다는 곧 바벨론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이런 재난이 닥치게 되자 예루살렘과 유다는 요시야 왕이 생존했었더라면 그런 참화를 면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요시야 왕을 생각하며 애통해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가 갑작스런 큰 재앙을 막기 전에 있었던 유다의 짧은 황금기에 생존하면서 예언서를 쓰고 노래를 지어 하나님을 찬미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 의와 심판의 선지자 하박국은 단호하게 예언하였다. 왜냐하면 이 때는 짧은 부흥의 기간이었으나 아직도 패역한 죄악이 땅에 충만했으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불원간에 이들에게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엑셀, 강해설교대전)

6. 기록목적: 악한 갈대아인을 심판하므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고 유다의 신실한 자를 위로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성도에게 신앙의 용기를 주고자 기록되었다.

7. 핵심단어: 어찌하여(3), 화(5)

요절:2:2, 4,20;3:2

1. 제목(명칭의 유래): 스바냐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숨기신다' 또는 '여호와께서 숨기셨다' 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여호와께 예배하는 자를 환난 중에 숨겨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2. 중심내용: 여호와의 날에 바벨론의 침략을 예시하며 열국과 유다의 예루살렘에 내릴 심판을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계속되는 심판의 경고속에서도 이방에 대한 축복과(3:9) 유다를 위한 회복을 약속하고 있음이 특이하다.

3. 저자: 본서의 저자인 스바냐에 대해서는 구가 본서 서두에서 밝힌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본문에서도 역시 그의 개인적인 신상에 대한 언급은 없다. 1장 초두에서 스바냐는 자신을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1절)고 소개하고 있다. 보통 부계족의 이름만 기록하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는데, 본문의 계보는 스바냐의 제 4대까지를 밝혀주고 있다. 여기서 맨 처음 언급된 히스기야는 아마도 경건하기로 유명했던 유다 13대 왕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런 추측이 절대 정확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 추측이 사실이라면 잠언25:1이나 이사야38:9에서처럼 본문에서도 분명 ‘유다 왕 히스기야’라고 명시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물론 본문에 기록된 4대의 계보가 히스기야 왕으로부터 요시야 왕 사이의 기간과 일치한다고 생각할 여지는 충분히 있으나, 히스기야라는 이름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전혀 사용되지 않았던 바가 아니었으므로, 그 이름만 갖고서 본문의 인물이 바로 히스기야 왕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마도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일 것이다. 즉, 본문에 기록된 계보 중에서 히스기야 왕과 똑같은 이름이 언급 되고는 있으나, 그에 대한 어떤 뚜렷한 증거는 없다고 말이다. 스바냐라는 이름은 여러 가지 의미로 풀이되는데 대개 ‘여호와께서 숨기신다’는 한 가지 의미로 종합할 수 있다. 성경에는 이 이름을 가진 자들이 여럿 등장한다(왕하25:18;대상6:36;슥6:10,14). (엑셀/ Anonymous.)

4. 특징: 서두에 본서의 저자를 말하는데 보통 부계족의 이름만 기록하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음에도 본문에서는 스바냐의 제 4대까지를 밝혀주고 있다. 바로 4대조가 히스기야 왕이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5. 시기(역사적 배경): 스바냐는 므낫세왕의 재위 기간(즉,주전 697-642년) 중에 출생하였지만, 요시아왕의 재위 초기에 이르러 (즉, 주전 627-626년) 비로소 선지자 직분을 맡게 되었다. 아마도 스바냐서는 이 기간에 쓰여진 것 같다. 주전 697-642년의 므낫세왕의 재위기간과 주전 642-640년의 아몬왕의 재위기간에 걸쳐 행해진 악정(惡政)은 막을 내렸다. 요시아왕이 유다의 왕위에 올랐을 때에도 반 세기 이상 만연된 배교적 상황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요시아왕의 통치 초기인 주전 627-626년경에, 스바냐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경고하기 시작하였다. 요시아왕의 치하에서 잠시 동안 다시금 율법이 준수되고 여호와께 예배가 드려지긴 했으나, 백성들은 여전히 비밀리에 우상을 숭배하였다. 이러한 위선적 행동을 알게 됨으로써 젊은 선지자 스바냐가 활동을 하게 된다. 비록 왕이 이 선지자를 개혁 운동에 동참시켰지만 악한 풍조는 계속되었다. 사악한 풍조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을 그의 진노하심의 막대기로 사용하시게 되었다. 주전 722년에 일어난 사마리아의 멸망은 하나님의 권능과 정의를 엄숙히 상기시켜 주는 사건이었다. 그의 사역시기는 하박국과 예레미야의 시대인 주전 630년경으로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아의 시대이며(1:1, 참고 왕하 22-23장, 대하 34-35장) 사역의 대상은 유다와 예루살렘이고 사역의 장소는 유다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 기록목적: 다가올 심판에 대하여 여러 국가들에게 경고하고 장차 다가올 구원을 예언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들어내고자 기술하였다.

7. 핵심단어: 심판, 회복,

요절: 습 1:15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습 2: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1. 제목(명칭의 유래): 학개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나의 절기」 혹은 「여호와의 절기」를 뜻하며, 이는 신언자 학개가 포로된 데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절기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대했음을 상징한다.

2. 중심내용: 여호와의 전 건축은 오늘날은 하나님의 백성의 번영과 관련되며, 회복의 시대에는 메시야와 함께 한 천년 왕국의 도래와 관련되었다.

3. 저자 및 저작연대: 저자는 구약에서 유일하게 학개라는 이름을 가진 자인데 이 이름의 의미는 "축제의" 또는 "즐거운"이다. 그는 개인적인 생애가 알려져있지 않은 선지자들 가운데 하나이다. 에스라에 의해 언급되고 있는(스5:1;6:14) 그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남은 자들을 위하여 사역한 포로기 이후 최초의 선지자였다. 그의 예언의 시기는 다리오왕 2년인 주전 520년이었음이 명백하다. 학개는 아마도 포로기인 주전 6세기초에 출생했을 것이다. 그와 동시대에 선지자 직분을 수행한 자는 스가랴였다 (학 1:1및 슥1:1을 비교하여 보라, 스5:1및 6:14도 참조하라).

3. 특징: 학개는 지금 우리 세대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을 경시하지 말기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는 나중에 재건되고 있던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보다 영화롭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옛 성전에서보다 새 성전에서 더욱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것이라고 말하였다. 학개가 문제시하였던 경향은 오늘의 우리 가운데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과거에 우리가 구원받은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구원이 오늘날에도 있을 수 있을지에 대하여 의심한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소유하였던 신앙과 영적 투쟁 그리고 그밖에 성취했던 일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후손들이 그들처럼 행할 수 있을지를 온전히 믿지 못한다. 우리는 오래 전 ‘지존자’께서 오른손을 펴사 큰 역사를 이루시던 그 때를 회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지상에서 여전히 운행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지금도 우리 인간들과 친근한 관계를 맺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잠을 주무시거나 혹은 낙담하고 계시지 않는 것이다. 이 선지자는 또한, 만일 우리 스스로가 거룩하지 못하다면 거룩한 의식을 많이 거행한다고 해도 우리를 깨끗하게 하거나 갱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고대의 레위기적 율법으로부터 도출해 낸 그 비유는 그 자체가 갖는 의미 때문에 오늘날에도 가치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외적인 종교 행위만을 하더라도, 그러한 종교 행위가 자신들이 살면서 범한 죄와 실수 그리고 연약함 또는 이기적 허물 등을 속죄해 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중대하고도 사악한 오류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외면이 아니라 그 중심을 살피고 계시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겉옷이 아닌 마음을 찢기 원하신다.(엑셀/ Original Secession Magazine.)

5. 시기(역사적 배경): 포로(주전 586년) 이전의 선지자들은 유다왕국이 새로운 바벨론 제국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또한 70년 후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을 고국으로 귀환케하시리라는 것도 계시되었다(렘 25:11,12;단9:2). 바사왕 고레스가 바벨론 군대를 무너뜨렸을 때 그는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으로 귀환하여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도록 호의를 베풀었다. 새성전의 기초가 놓이고 공사가 시작되자 그들을 대적하는 이웃 나라들이 공사를 중단시키려고 간계를 꾸몄다. 공사를 중지시켰으나 외적인 반대만이 유일한 문제였다. 하나님의 전을 재건키로 작정하고 귀환한 5만명의 포로들은 무관심하게 되어 다리오가 바사의 왕위에 오르기까지 성전은 16년동안 방치되었었다. 백성들이 성전 재건에 착수하도록 그들을 깨우치고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학개(에 이어 스가랴)를 보내셨다. 학개의 메시지가 단지 건축의 문제에만 관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것은 그가 그러한 문제에서부터 시작하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임재 장차 세워질 하나님의 지상 왕국, 사악한 세상 권세들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민족들을 위해 예비된 축복 등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6. 기록목적: 주님은 성전 영광의 회복자로(2:7-9), 이 세상 왕국을 멸망시키는 자(2:22)로, 이스라엘의 인장 반지로(2:23)로 계시하면서 낙담하거나 우선순위를 상실하여 성전공사를 계속하지 못하는 백성들을 권고하며 성전공사를 완료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7. 핵심단어: 살펴볼지니라, 여호와의 말씀, 만군의 여호와(13), 여호와의 전(3), 성전, 영광(4)

요절: 학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스가랴는 선지자요 제사장이며 그 이름은 다.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뜻이다.

2. 중심내용: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

3. 저자 및 저작 연대: 스가랴는 학개와 동시대 인물로서 주전 520년에 예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책에 나타난 가장 늦은 연대는 다리오 왕 4년인 주전 518년이다. (다리오왕 사년 구월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슥7:1). '스가랴'라고 불리운 사람이 스물 아홉 명에 이를 정도로 이 이름은 구약 성경에서 흔한 이름이었는데,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뜻이다. 자유주의 학자들은 문체 및 주제상의 차이점을 연구하여 1장에서 8장과 9장에서 14장은 서로 다른 저자에 의해 쓰여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9장에서 14장은 메시야의 도래 및 여호와의 지상 왕국과 관련된 묵시적 사건들을 드러내기 위해 나중에 기록된 듯 하며 이러한 사실이 문체 변화의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스가랴서의 모든 내적 증거를 볼 때 저자는 여러 사람이라기 보다는 한 사람이라 하겠다. 스가랴: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 베래가: 여호와께서 축복하신다. 잇도: 정해진 때 이 셋이 또한 이 책의 내용이 된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4. 특징: 바사 왕 다리오 휴스타페스(Darius Hystaspis)가 성전을 재건하라는 명을 다시 내렸을 때, 성전을 재건할만한 능력과 열정이 유대인들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도 목도하였다. 성전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성전을 재건하는 것에 무관심하는 것은 곧 영적 퇴락과 죄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전을 다시 재건하려는 유대인들의 열정을 고취시키고, 동시에 그 열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일이 시급하였다. 그래서 학개 선지자는 처음으로 그들에게 성전을 재건하도록 촉구하였으며, 두 달 후에 스가랴 역시 학개와 동일한 메시지를 선포하였던 것이다. 한편 스가랴 선지자의 메시지는 학개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백성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들이 연관시켜 설명하였기 때문이다.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참다운 여호와의 종교를 회복하게 하고, 또한 그들이 성전을 재건하는 데 있어서 지체지 않고 즉각적으로 실행하도록 격려하는데 그 주안점이 있었다. (엑셀/ T. V. Moore, D. D.)

5. 시기(역사적 배경): 바사 왕 고레스는 주전 538년경 성전을 재건키 위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귀환을 허락하는 칙령을 내렸다. (대하36:22 ,23, 스1:1-4). 약 오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포로들이 이 관대한 정책에 따라 그들의 땅에 다시 정착하여 성전을 복구하였다. 그들은 주전 536년 제 2월에 성전의 기초를 놓았다. 그러나 성전 재건에 참여를 거절당한 사마리아인들이 이 계획을 방해하여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하였으며,스4:5) 거의 14년 동안 작업이 중단되었다. 다리오가 바사 왕으로 즉위한 주전 522년에 학개와 스가랴는 백성들을 일깨워 재건 작업을 다시 시작하도록 하였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가 각각 재건 작업을 이끌어 나갔다. 유브라데강의 서편 총독 닷드내가 왕에게 올린 글로 인하여 또 다시 작업이 중단되었으나 다리오왕은 고레스 왕이 내렸던 칙령을 재확인하였다. 그러나 이 때에 이르러서는 불행하게도 유대 백성들의 태도가 변하였다. 그들은 성전 재건에 있어 방해를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학개와 스가랴는 백성들의 무관심을 일깨우려고 애를 썼다. 백성들이 이에 호응하여 성전은 다리오 왕이 즉위한지 여섯해가 되는 주전 516년에 완성을 보았다. 스가랴가 비록 성전의 복구라는 주제로 출발하긴 하였으나 그는 백성들의 영적 생활 및 메시야의 통치와 재림으로 이어지는 예언적 사건들에 대한 것도 다루고 있다.(장안문화사, 주제별성서대전)

6. 기록목적: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는 섭리자이시며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분이심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본서를 기록했다.

7. 핵심단어: 헥심단어: 만군의 여호와(52), 질투, 순 ,왕, 내가 보니, 목자, 예루살렘

요절: 슥8: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슥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1. 제목(명칭의 유래): 말라기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나의 사자」를 의미하며, 이는 말라기가 여호와의 말씀을 사역하도록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보내심 받은 하나님의 사자였음을 상징한다.

2. 중심내용: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자로 오시기 위해 이스라엘 중 제사장들의 잘못을 바로잡고 그리스도께서 의로운 해로 나타나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권고하신다.

3. 저자와 명칭: "말라기"(1:1)는 "여호와의 사자"를 의미하는 히브리 인명, 말라기아의 단축형인 것 같다. 전승에 의하면 말라기는 "대회당“의 회원이며 레위인이었다고 한다.

4. 특징: 말라기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 선지자는 언약의 머리되신 분께 반역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외치고 있다. 그는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할 자(3:1 - 마3:3, 언약의 사자(3:1 - 갈3:20, 딤전5:2), 그리스도의 사랑(1:2 - 요13:1; 15:9), 참 제사장(2:5,6 - 히9:26; 10:20,21)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5. 시기(역사적 배경): 말라기에 기록된 상황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의 성전재건, 에스라가 가르쳐준 율법의 지식 (스 7:10, 14, 25, 26), 그후 모세의 율례로부터의 이탈 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느헤미야가 통치했던 주전 450-425년 경에 기록되었던 것 같다. 말라기의 사역시기는 주전 400년경, 느헤미야 시대 사역의 대상은 귀환한 이스라엘인들 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말라기 선지자가 살았던 세계와 당대인들의 성격, 그리고 그가 예언했던 사람들의 형편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당시는 학개와 스가랴가 바벨론의 포로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에게 선포하기 시작한 지 90년 이상, 즉 거의 1세기가 지난 때였다. 그 당시 바사의 왕위에는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Artaxerxes Longmanus)가 앉아서 유대의 히브리인들로부터 조공과 충성을 받고 있었다. 이때는 B.C.425년경을 전후로 하는 시기일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것이 정확한 연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거의 비슷한 시기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성전 재건은 이미 완수된 터였다. 스가랴 선지자가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 일어나서 일을 하도록 환상과 징조를 보여준 것이 효력이 없지 않았다. 또한 주님께 아낌없이 드림으로써 번영이 왔다는 학개의 선포로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자의 외침을 듣고 사람들은 무가치하고 이기적이며 무기력한 상태에서 떨쳐 일어났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성전을 지었다. 오래지 않아 시온 언덕은 또다시 여호와의 성소로 치장되게 되었다. 영적인 생명력과 기쁨이 소생된 것이다. 제사장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제물을 드렸고 성전 안에서 사람들을 대신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 그렇지만 이러한 화합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학개와 스가랴의 외침을 듣고서 반응을 보였던 세대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그 이후의 사람들은 열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은 나태하고 게을렀다. 그들은 자기들의 선조들이 그렇게 재건하고자 애썼던 예루살렘 성읍을 미완성인 채로 버려 두었으며 선조들이 일으켜 세운 성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또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도 않았다. 설혹 주님의 제단에 희생제를 드릴 짐승을 가지고 올 때에도 가장 형편없는 것들을 가져오기가 일쑤였다. 그들이 데리고 온 짐승들은 바사의 통치자에게 바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형편없는 것들이었다. 사정은 제사장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성의 없이 드려지는지에 대해 아예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맡은 직무를 명확히 깨닫지도 못한 실정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을 부르신 하나님께 대하여 매일 불명예를 안겨 드리는 일을 행하였다. (엑셀, 강해설교대전).

6. 기록목적: 성전 재건 후 한 세대가 지나고 남은 자들은 그들 조상의 영적 열심은 상실했고 제사장과 백성은 타락했다. 그래서 사회적, 도덕적 부패를 꾸짖으며 타락한 남은 자들에게 경고하며 메시야의 도래를 선포하기 위해서 본서를 기록했다.

7. 핵심단어: 만군의 여호와(2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20), 어디 있느냐 하는도다, 사자(2), 여호와의 날, 기억하라.

요절: 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1. 제목(명칭의 유래): 대부분의 사본에 나타나 있는 이 복음서의 명칭은 “-- 에 의한 복음”으로 실제로 영어 번역본과 일치한다.(마가복음 참조)

 

2. 중심내용: 영적 메시지

마태복음의 위대한 신학적 주제는 다음과 같다. 즉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기 위하여 오신 히브리인에게 약속된 메시야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자신의 백성들로부터 거절당했으며 "유대인의 왕"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마태복음 어느 곳을 읽어보든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구약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모든 율법과 예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3. 저자

초대교회의 많은 역사적 증거로부터 마태복음의 저자가 마태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강화들을 모두 기록할 수 있었으며 숫자에 익숙했다는 것과 돈에 관한 그의 빈번한 언급과 많은 액수에 대한 그의 관심(마18:24:25:15), 그리고 통계에 관한 그의 관심(마1:17)등에서 전직이 세리였던 마태야 말로 이러한 복음서를 기록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4. 특징:

마태복음은 분명히 새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이 책에서는 예수님의 교훈이 뚜렷하게 5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이것은 아마 모세 5경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연대기적 구성안에서 전반부는 (1-13장)는 뚜렷하게 주제중심으로 기술되어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마태복음 저작 당시(A. D. 63-65년)의 팔레스타인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위기에 처해 있었다. 사회는 급속도로 무정부화 되고 있어서 다른 어떤 방면으로도 구제될 것 같지 않았다. 따라서 유대인 개종자들을 위해 오랫동안 구전과 독자적이고 단편적인 기사들로만 전해져 오던 복음의 사실을 어떤 확고 부동한 형식으로 확립하려고 열망한 데에는 납득이 갈만한 이유가 있었다.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은 후 유대 국가를 둘러 싼 위기는 더욱 분명해졌다. 총독 벨릭스는 “온갖 잔인함과 욕망에 사로잡혀 모든 혼과 정성을 기울여 왕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정복자와 자존심이 강한 정복된 민족 사이에 상존한 오랫동안의 상호 불신으로 인하여 굳건한 정부를 세운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베스도(Festus; A.D. 60-62)의 2년간의 정직한 노력도 유대를 이 무정부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를 계승한 알비누스(Albinus; A.D.62-64)는 어느 지역에서든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단지 금만을 긁어모으는 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유대를 다스리는 동안 모든 감옥의 문을 열어 “감옥은 텅 비워 두고, 온 땅을 도둑으로 득실거리게 만들었다.” 촛불이 그 강렬한 백색광으로 말미암아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우듯이 알비누스의 비행도 그 후계자들의 비행 때문에 그다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게시우스 플로루스(Gessius Florus; A. D. 64-66)는 산적이 왕좌를 훔쳐 그 자리에 오른 격이었다. 요세푸스는 그의 행실을 표현할 적절한 말을 거의 찾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이렇게 해악이 끊이지 않고 계속됨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회는 분열되었고 박해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사도들은 복음이 더 이상 전승에 의해서만 보존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었음이 틀림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 세상을 떠났고 마태도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따라서 마태는 교회가 간직하고 있던 복음의 비밀을 이 복음서에다 기록해 놓았다. (엑셀/ Archbishop Wm. Thomson)

 

6. 기록목적: 마태복음이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을 위하여 쓰여졌다(이레니우스와 오리겐의 증언)

 

7. 핵심단어: 자 보라 이루어 졌도다, 의의 왕국, 아버지께 드릴 경배, 천국(36), 하나님(46), 예수(264)

요 절: 1:2:2

 

 

 

1. 제목(명칭의 유래): 현재의 마가복음은 마가 자신에 의해서도, 그리고 그 이후의 신약성서 편집자들에 의해서도 마가“의” 복음(the Gospel "of" Mark)이라 지칭되지는 않았다. 복음서 기자들의 시대에는 ‘복음’이라는 단어를 어느 특수한 종류의 책이나 인물의 전기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 말은 더욱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복음은 기쁜 소식‘(good news)'을 뜻했으며,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그 말을 모든 기쁜 소식 중에서도 가장 기쁜 소식, 즉 죄인들의 거룩한 구세주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뜻하는 것으로 특별하게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4복음서 기자들의 저작을 모두 합하여 집합적으로 ’복음서(the Gospel)'라 불렀다. 이 개개의 복음 기록은 그것을 편집한 각 복음서 기자들에 “의한” 복음서였다. 그런데 그것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막1:1)이라는 면에서 볼 때 하나였다. 그러나 각 복음은 나름대로 특수한 전기적인 진술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각 복음의 이름에 "...에 따른“이라는 구절이 붙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이 주장했던 바와는 달리 ”...에 따른”이라는 어귀는 “...의”와 정확하게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복음서는 저자의 정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노력의 산물이 아니었다. 한편 각 복음서들의 형식을 “질그릇”에 비유될 수 있다. 질그릇이 일정한 크기와 형태를 가지고 대칭적 조화를 이루고 있듯이 각 복음서들의 형식은 특유한 형태를 띠고 나름대로 전파, 전승되었다. 대부분의 사본에 나타나 있는 이 복음서의 명칭은 실질적으로 또는 전적으로 영어 번역본과 일치한다. 수리아 펄럭시니어(Syriac Philoxenian 판에서는 복음서라는 단어 앞에 거룩한 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에 따른 이라는 어귀는 바뀌어진다. 다시 말해서 거기에는 마가의 거룩한 복음서로 되어 있다. 수리아 퍼쉬토역에서는 적절하지는 않지만 전치사에 의해서 제시되어지는 관념을 보다 더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 즉, 거기에는 전도자 마가가 선포한 거룩한 복음서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엑셀/ J. Morison, D. D.)

 

2. 중심내용: 고난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죽음을 통한 구원을 기술하고 있다.

 

3. 저자: 마가복음 자체는 익명으로 되어 있으나 여러 가지 내 외증을 보아 마가가 틀림없다.

 

4. 특징: 마가의 문체와 있는 그대로를 사실대로 보고하는 점에서 마가의 생생한 사실주의적 특성이 나타난다. 사건들은 상세한 해석없이 서술되고 있는바 사건의 묘사는 목격자만이 서술할 수 있는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진다. 놀라운 생동감과 긴박감이 이 복음서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이 행동적인 복음서에 나타나는 특징적인 단어는 '유두스'(euthys)인데. 이것은 약41회 정도 나오며 "즉시, 바로, 당장, 곧"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본서의 많은 부분에서 특별히 강한 의미의 단어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다른 두 공관복음에는 "이끌리다"(마4:1; 눅4:1)로 나오나 마가복음에는 "몰아내다"(1:12)로 나오는 것 등이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신약성서에는 본서가 쓰여진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언급이 나타나 있지 않지만 가장 적합한 연대는 주후 67-70년경이 될 것이다. 비록 크리소스톰이 마가복음은 애굽에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기록 장소로서는 로마가 더 타당한 것 같다.

 

6. 기록목적:

마가복음이 로마 사람들에게 보낸 두번째 복음이라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한다. 마가복음의 목적은 1:1절에 표현한데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술하여 전도를 중심으로(1:-10:) 한 예수님의 행적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대속적 성격을(11:-16) 기술함에 있다.

 

7. 핵심단어: 곧(59), 예수(241), 인자(14), 복음(8), 비유(12)

요절: 막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대부분의 사본에 나타나 있는 이 복음서의 명칭은 “-- 에 의한 복음”으로 실질적으로 또는 전적으로 영어 번역본과 일치한다.(마가복음 참조)

 

2. 중심내용: 누가복음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치심은 인간을 죄에서 건져내고 생명과 희망으로 이끄시는 일에 집중되어 있으며 구세주 되시는 예수님의 품성과 목적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중심 주제이다. 예수님의 기적과 비유 및 교훈과 활동들은 그의 구원의 능력과 의지를 예증하고 있다.

 

3. 저자: 교회의 공통된 증언에 따르면 이방인 의사이며 바울의 동역자였던 누가가 제 3복음서의 저자였다고 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밀접한 관련성은 두 책의 저자가 동일 인물이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그 사실은 저자의 신원을 밝혀주는 단서들이 한 책에서 제시될 수 있다면 그것들은 다른 책의 모두 해석에도 적용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두 저작은 모두 동일한 사람, 곧 데오빌로(눅1:3; 행 1:1)에게 서신으로 보내진 것이다. 문체의 유사성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가르침의 연속성, 성령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것 이방 선교에 대한 관심, 그리고 당시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인식등은 두 책이 의도적으로 통일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을 근거로하여 저자에 관해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실들은 또한 누가복음에도 적용될 것이다.

 

4. 특징: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내용과 일치하는 누가복음의 대부분은 사도들의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가르침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널리 인정받고 있는 견해에 따르면, 누가는 마태와 마찬가지로 마가복음과 특별한 강화(講話) 자료를 이용했다고 한다. 누가 자신의 증거에 의하면 그가 다른 기록들에 대해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지만(눅1:1,2), 그것들을 어느 정도 참조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누가가 사용한 자료 중 많은 부분은 독특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된 사건들에 대한 그의 보고는 관점과 몇 가지 세세한 면에 있어서 마태의 그것들과 다르다. 그는 예수님의 비유들을 더 많이 수록하였고 비유 각 등장 인물들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부활에 대해 기록하면서 그는 다른 복음서에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엠마오 도상에서의 사건을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독특한 기사들을 목격자들로부터 수집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묘사한 사건들의 현장에 직접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첫머리에서도 그는 자기가 그렇게 했음을 밝히고 있다(눅1:2). 또한 그는 후에 자기에게 증거를 제공해 준 사람들을 언급한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복음서의 처음 두 장(chapter)의 내용을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다른 여인들(눅8:3)이 그에게 자신들의 기억을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만약 누가가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팔레스틴 지방을 여행했다면 그는 예수께서 전파하시고 가르치시는 것을 직접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들은 바 있는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는 많은 교훈의 적용들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사도행전이 갑작스럽게 끝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누가는 바울이 로마에서 2년간 투옥되었던 끝 무렵에 그의 글을 끝맺은 것 같다. 사도행전 서론에 나타난 바와 같이(행 1:1) 만일 누가복음이 사도행전보다 먼저 기록되었다면, 그것은 늦어도 로마에서의 감옥생활이 끝나던 62년 이전에 기록되었음에 틀림없다. 아마도 누가는 바울과 함께 사역하던 10년 동안 복음서 기록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했을 것이다.

그리고 로마 여행차 바울과 함께 팔레스틴을 떠나기 전에 그것을 가이사랴에서 그의 친구인 데오빌로에게 보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누가복음은 보다 일찍 즉 58년에 기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포위와 함락에 대한 암시(눅21:20-24)를 근거로 일부 사람들은 누가복음이 틀림없이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6. 기록목적: 누가복음은 사도 시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것으로서 예수님의 생애를 가장 완벽하게 묘사한 기록이다. 그것은 구세주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생애를 충분히 소개하기 위하여 계획된 것이다.

 

7. 핵심단어: 인자. 요절 19:10; 24:19

 

 

1. 제목(명칭의 유래): 대부분의 사본에 나타나 있는 이 복음서의 명칭은 “-- 에 의한 복음”으로 실질적으로 또는 전적으로 영어 번역본과 일치한다.(마가복음 참조)

 

2. 중심내용: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됨을 메시야의 표적과 이적을 기술함으로 증거하고 있다.

 

3. 저자:저자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그는 '사랑하시는 제자(21:20, 23, 24)'요 베드로의 측근에 있는 동역자라고 지적되어 왔다. 이레니우스는 이 사람이 세베대의 아들 요한(21:2을 참조하라)이라는 고대 교회의 증언을 이야기한다.

 

4. 특징: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들보다 신학적이며 해석적인 성격이 많고 성격상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데 초기 유대전도의 모든 사건을 기록(2:13-3:36)하고 있으며 본서에 기록된 8개의 기록중 2개를 제외하고는 요한복음에만 있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특히 강조( 2:11, 23, 3:2, 4:54, 9:3을 20:30,31와 비교)하고 있으며 본서는 대부분을 주님의 마지막 20일 되어진 일에 전승시키고 있다. (본서의 2/5가 수난주간사건) 또 예수에게 많은 칭호를(말씀, 하나님의 양, 세상의 빛, 선한 목자, 문) 붙여 사용하고 있다.

또 요한복음만의 특수 자료로 가나의 혼인잔치(2), 예수와 니고데모(3), 예수와 사마리아여인(4), 베데스다 병자치유(5),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심(7), 간음하다 잡힌 여인(8), 실로암 맹인 치유(9), 나사로 소생(11), 세족식(13), 보혜사 성령약속(14, 16), 예수의 대제사장적 기도(17),등이 사용되고 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전승에 따르면 요한은 그의 말년을 에베소에서 보냈는데 그 곳에서 그는 설교하고, 가르치며 저술 활동을 하였다. 도미티안 황제가 통치할 때에 그는 바로 이 곳에서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다. 그의 복음서는 공관복음서에 대한 지식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으며, 따라서 복음서들 가운데 마지막에 자리하였고 그 시기는 대략 주후 80-90년 사이로 볼 수 있다. 애굽에서 발견된 본서의 단편들이 주후 2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 저작 시기는 주후 1세기 이내임을 알 수 있다.

 

6. 기록목적:

이것은 요20:31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자료의 선택은 정확히 이러한 결론이 내려지도록 계획되어진다. 부수적인 목적으로는, 예수님의 참된 인성을 부인하는 가현설에 대한 논박(1:14을 참조하라), 그리고 유대교가 약속된 메시야를 거절함으로써 죄중의 죄를 범한 부적합한 종교체계임을 폭로하는 것(1:11)등을 들 수 있다.

 

7. 핵심단어: 믿다(98), 세상(78), 유대인(71), 알다(55), 영광을 돌리다(42), 내 아버지(35)

요절: 20: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우리가 사도행전으로 알고 있는 책명은 본래 붙여 있던 이름이 아니었으며, 주후 2세기에 붙여진 것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두권으로 된 한 책이며 원래의 복음서에 붙여 있던 명칭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이 두권 모두에 사용되었다. 두번째 책인 사도행전이 따로 분리되어 배포되기 시작했을 때에 그 내용을 나타내기 위해 이 명칭이 사용되었다.

 

2. 중심내용: 성령의 역사가 사도들을 통해서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베드로와 바울을 중심으로, 복음의 확산이라는 점에서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라는 구조로 기술하고 있다.

 

3. 저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어느 곳에도 그 저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아마도 바울의 친구요 동역자인 누가라고 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저자를 알게 하는 단서는 세개의 '우리-구문'(we-sections)인데 이것들은 일인칭 복수구문으로서(행 16:10-17,20:5-21:18,27:1-28:16) 사도행전의 저자가 바울의 동역자이며 자신의 여행일지를 자료로 사용했음을 암시한다. 교회의 전승은 한결같이 누가를 바울의 동역자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사도행전의 자료들이 이러한 전승을 뒷받침해 준다.

 

4. 특징: 사도행전의 주된 강조점은 성령의 활동이다. 그 제목을 '성령의 행전'으로 부르자고 하는 학자들도 실제로 있다. 이러한 주장은 특별히 의미있는데 그것은 누가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집중적으로 다룬 누가복음과 성령을 통해 계속 되는 예수님의 사역을 다룬 사도행전을 모두 집필하였기 때문이다. 누가는 사도행전 서두에 예수님의 계속되는 사역을 기록하려 한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 행 1:1).

 

5. 시대(역사적 배경): 사도행전이 쓰여진 시기를 우리가 알지는 못하나, 이 책의 이야기가 끝난 직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대략 주후 62년경에 쓰였다고 볼 수 있다.

 

6. 기록목적: 첫째 교회사를 기술하기 위함이다. 사도행전의 전체 내용은 “베드로의 행적과 바울의 행적”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전자는 1-5, 10-12, 15장에 잘 나타나 있으며, 후자는 7:58과 9장,11:25-30,13-27장에 잘 나타나 있다. 사도행전이라는 명칭을 종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그 명칭을 “교회의 기원”, 즉 교회의 성장과 발전, 더 나아가 이방 선교의 역사라고 붙이는 것이 더 좋을 듯 싶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사도행전의 시작과 끝은 매우 중요하다. 사도행전이 시작되는 곳은 예루살렘이요, 끝나는 곳은 로마이다. 사도행전 첫 부분에서는 세례와 할례를 강조하고 있지만, 외형적으로 볼 때 교회는 120명이 모이는 유대교의 한 분파에 불과했다. 사도행전 끝 부분에 가서야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무너지고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교회가 성립되기에 이른다. 교회의 확장 단계를 지리적인 측면과 교회의 가르침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 사도행전의 주된 목적이다. 둘째 사도 바울의 입장을 변호하고 설명하기 위함이다. 누가가 화평을 목적으로 사도행전을 기술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누가가 무척이나 따랐던 사도 바울을 그 당시 사람들은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 더 신랄하게 공격했다. 그리하여 누가는 다음과 같은 바울의 세가지 면을 널리 고취시키고자 사도행전을 기술하게 되었다. 첫째로 바울의 가르침은 다른 사도들의 가르침과 서로 어긋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둘째로 바울은 상당한 과정을 거쳐서 폭넓은 사상의 경지와 목회 경륜을 쌓게 되었다는 점이다. 셋째로 바울은 유대인들만이라는 편협한 세계관에서부터 교회를 구해냈다는 점이다. 사도행전은 사도행전 이후에 나오는 서신들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내용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사도행전, 그것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놀라운 이야기이다. 더욱더 만족스러운 사실은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 자신들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몸짓을 보고 그들의 어조를 들으면서, 그들의 말 가운데서 그들의 이야기 감각을 찾아낼 수 있다. (엑셀/ D. Fraser, D. D.)

 

7. 핵심단어: 증인 요절:1:8

 

 

1. 제목(명칭의 유래): 로마서

 

2. 중심내용: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이신칭의의 복음을 강조하고있다.

 

3. 저자: 저자와 연대

바울이 이 서신의 저자라는 것에는 거의 의견이 일치한다. 이러한 견해는 1장과 15장의 진술들, 이 사이의 장들 속에 나타난 문체와 논증, 그리고 고대로부터 이 서신을 인용한 사람들의 증언에 근거한 것이다. 이 서신은 바울이 세번째 전도여행 중에 쓴 것이다. 바울이 헬라에서 세 달 머물렀고(행 20:3) 서신을 로마에 보낼 사람으로 겐그리아(고린도 동쪽의 항구 도시) 출신의 여집사 뵈뵈를 추천한 것으로 보아 로마서는 고린도에서 기록된 듯 하다. 그러나 빌립보와 같은 헬라 도시에서 기록되었을 수도 있다. 로마서의 저작 연대는 A.D.53-58년 사이이며, A.D. 55년이나 56년이 가장 가능한 연대이다.

 

4. 특징: 사상의 전개

바울은 그가 독자들이 쓰고자 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약간의 예비적인 설명으로 시작해서(1:1-17) 자신과 독자 사이의 매우 친밀한 관계를 확립한다. 그런 후에 그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나타난 의의 중요성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다(1:18-8:39). 그는 먼저 인간은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지적하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로와질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 신중하게 답변한다. 또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논술함으로써 의의 주제를 더욱 보강하고 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인류를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두 계층으로 분류하여 생각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가 어떻게 이러한 분류를 생각했을까?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계획을 개관하면서 이 문제에 답변한다(9:1-11:36). 여기서 그는 기독교 역사 철학의 명백한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적용하면서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의 사고방식, 태도 및 행동에 대해 특별한 권고를 한다(12:1-15:13). 결론에서 그는 로마의 신도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인다(15:14-16:27). 그들은 그의 전도영역 내에 있었으므로, 그는 그들을 방문하려 했다. 방문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는 서신으로 문안하고, 마지막 경고를 하며, 그들을 세우실 수 있는 단 한 분 하나님에게 그들을 맡겨야 했다.(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로마서는 주후 57년 겨울, 바울이 그의 제 3차 전도여행을 끝마칠 무렵, 즉 고린도에 3개월 간 체류하는 마지막 때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행20:1-6)

 

6. 기록목적: 사도 바울은 이방 교회에서 모금했던 헌금을 가지고 헬라를 떠나 팔레스틴으로 갈 계획이었다. 바울은 여러 이방 교회의 대표자들과 함께 직접 이 헌금을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그는 이방인의 이러한 행동이 팔레스틴의 기독교 형제들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보여주며, 교회의 일치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후 로마로 가려고 했으며, 로마에서 다시 스페인으로 떠나려 했다. 바울은 서방 전도여행을 잠시 중단하고 예루살렘으로 떠나감에 앞서, 그는 이 위대한 로마서를 기록하여 그것을 로마에 보냈다. 로마서는 어떤 종류의 서신인가? 이것은 로마에 사는 일단의 신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이 서신에는 하나님에 대한 심원하며 숭고한 사상이 있으나, 이 사실이 서신으로서의 성격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독자들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했으며(1:9,10) 그들과 교제를 가지기를 갈망했다(1:11). 바울은 임박한 위험 때문에 자기를 위해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15:30-32). 그러므로 로마서는 조직적이고 교리적인 논문이 바니다. 바울의 사상이 논리적으로 전개되고는 있지만 그는 확실히 교리적 가르침만을 말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의 교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중요한 복음의 진리를 다루고 있는 교훈적 서신이다. 이방인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로마나 골로새에 있든지 비슷하므로 보편적 내용이 그 교훈 안에 있다.

 

7. 핵심단어:율법, 의, 믿음, 믿다, 죄, 사망, 육, 모든, 영 / 요절:1:16,17

 

 

1. 제목(명칭의 유래): 고린도전서

2. 중심내용: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의 지혜, 성도의 신앙윤리(성화), 즉 생활면을 강조하고 있다.

3. 저자: A.D. 95년경 로마의 클레멘트는 이 서신을 "복된 사도 바울"의 것으로 인정한다. 이것은 신약성서의 기자에 대해 이름으로 밝혀진 인용문의 최초의 실례이다(IC C. P. XVii). 이그나티우스와 폴리캅과 그외 다른 사람들은 많은 외쳐 증거들을 제공해 준다. 문체, 어휘, 내용과 같은 내적 증거들은 우리가 바울과 고린도에 대해 알고 있는 바와 일치되고 있다.

 

4. 특징: 이 위대한 서신은 13장에 나오는 사랑에 대한 위대한 서정시로 인해 가장 유명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에 사로잡힐 때 신령한 글을 쓰는데 있어서 얼마나 높은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를 보게 된다. 여기에서 인간 바울의 천재성이 형언할 수 없는 감동 속에서 번득이고 있다.

1.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는 어떤 면에서 독특하다. 바울은 그 교회를 개척했을 뿐만이 아니라 계속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고린도 교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서 사도 바울은 깊은 염려와 근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때로는 순종하는 면도 있어서 그의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에 대한 그의 사랑은 특별한 것이었다. 그 사랑은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가운데 있기는 하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고린도서는 다른 어느 서신들보다 바울의 개인적인 성품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이 서신은 이교도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반대자와의 갈등을 겪는 그를 한 인간이며, 목회자이며, 상담자로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서신은 그의 지혜와 열정, 인내, 사랑, 온유, 옳고 그른 일에 있어서의 엄격함, 겸손함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2. 고린도서는 신약 성경의 다른 어느 부분들보다도 기독교와 이교의 갈등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우리는 세속적이고 타락된 사람들 가운데에 교회를 세울 때 바울이 어떠한 방법을 택하였으며, 그리스도인들과 그 주변의 이교도들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문제들에 대하여 그가 어떻게 대응하였는가를 보게된다. 오늘날은 그때의 상황과 많아 다르기는 해도 그들의 상황에 적용되었던 원리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교회의 규울, 사회적인 관계와 규제, 공공예배, 교회와 성례 의식의 본질이 추상적인 원리가 아닌 구체적인 실천강령으로서 여기에 제시되어 있다. 요컨대 이교도들 가운데 교회를 세우는데 따른 기본지침과, 기독교국가에서의 교회의 올바른 위상 정립과 관련하여 고린도서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엑셀/ C. Hodge, D. D.)

 

5. 시대(역사적 배경): 기록된 시기는 절대 확정적으로 정할 수 없으나 아마도 바울의 에베소 체류 기간 후반에 기록된 듯 하다(참조, 행 19:1-20:1). 만일 그렇다면 그 시기는 A. D. 55년경이 될 것이다. 또 흠정역 성서에서는 빌립보에서가 아니라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참조: 고전16:8고 한다.

 

6. 기록목적: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가 분실되고(참조: 고전 5:9) 바울의 소식을 기다리던 성도들의 근심스런 소식을 들은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했으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황급히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게 된다. 후에 매우 준엄한 어조로 편지를 보내는데(고후2:4) 편지전달자인 디도를 드로아에서 기다릴 수 없어서 급히 마게도냐로 가게된다. 그곳에서 디도를 만나 그 편지가 좋은 성과를 거두었음을 알게 된다.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후에 바울은 기록상으로 볼 때 마지막으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했다(참조: 행 20:1-4). 교회의 분쟁에 관한 소식이 바울에게 전해졌다(참조: 고전 1:11. 16:17). 더욱 심각한 것은 아마 유대 주의자들이었을 것이다(참조 1:12; 9:1). 또한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고린도 교회에서 에베소로 왔다(참조, 고전 16:17). 그들은 바울의 답변을 요구하는 문제들을 포함한 편지를 가져 왔다. 그 문제들은 "...에 대하여는"이란 반복되는 중심 어귀에게 나타나고 있다(참조: 고전 7:1, 25. 8:1. 12:1

 

7. 핵심단어: 너희(146), 사랑, 부활, 십자가, 영, 몸, 은사, 부패, 지혜, 요절 15:57

 

 

 

 

1. 제목(명칭의 유래): 고린도 후서

 

2. 중심내용: 바울의 사도직과 개인적 종말론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3. 저자: 사도 바울

 

4. 특징: 바울 서신 가운데 가장 자서전적이며 바울의 개인적 생활과 전도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 서신은 우리에게 바울이 몹시 사랑했던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 회중들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말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대담하고 도전적인 말을 사용했다. 또한 그는 서로 다투고 분리된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 인해 괴로워했다. 바울은 주님 안에서 분노한 아버지 같이 그 자녀들을 위해 변호하고 책망하고 한탄하고 있다. 또한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 있는 가난하고 고난 받는 형제들을 도와 주기 원한다. 그러한 사실은 교회의 하나됨을 증명해 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관심의 표현일 것이다. 어떤 다른 서신도 우리에게 교회들에 대한 바울의 관계성을 이토록 많이 보여 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어떤 다른 곳에서보다도 고린도후서에서 더욱 명확하게 사도로서의 소멸과 권위를 밝히고 있다. 비록 바울이 열 두 제자중 하나는 아니었지만 그는 주님으로부터 직접 임한 사도로서의 소명을 믿었고 그의 권위를 위해 어떤 사람이나 어떤 제도도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바울은 어떤 직책이나 지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그의 권위의 닻을 내렸다. 이것은 언제나 모든 그리스도의 선지자, 사도 혹은 사역자의 본원적인 권세가 된다. 그는 이 권세를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전도자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선도들을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멀어지게 할려고 했던 "거짓 사도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할 때, 그는 바로 그 영혼을 드러내고 있고, 감추어진 그의 삶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추가하고 있다. 이 서신은 생동적이고도 영감이 넘치는 바울의 불후의 저작이다. (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이 서신이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중에 기록되었다는 데는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다. 고린도전서를 기록한지 몇 개월 후 혹은 일년 후나 혹은 그 이상이 지난 후에 기록되었다(A. D. 57). 그리고 이 서신은 마게도냐에서 기록되었는데 아마도 빌립보였던 것 같다.

 

6. 기록목적: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비교적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바울의 사도직 수행자세를 자신들의 지나친 행동에 대한 빌미로 삼던 방종한 무리들의 오만한 태도는 꺾이고 말았다. 사도가 에베소에서 곧바로 오지 낳은 데 대한 오해(1:15-2:1)와, 이방인들과의 무분별한 교제에 대한 염려(6:14-7:1)가 있었지만 대체로 고린도 교인들은 순종하고 있었다. 그들은 디도를 열린 마음으로 영접했고(7:13-16), 고린도전서의 주된 주제의 하나였던 근친상간에 대해서도 깊이 뉘우쳤다(7:7-11). 그들은 회의를 열어 범죄자를 징벌했다(2:6). 사도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지 않았다. 사도는 대체로 그들 사이의 신뢰가 회복되었다는 확신을 느끼고 있었다(6:11;7:16).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나(고전9:1-6) 바울에게는 좋지 못한 소식도 들려왔다. 그리스도의 이름과 함께 베드로의 이름을 강조하던 고린도의 유대인들이 고린도전서가 쓰여질 때는 미미했으나 이제는 사도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르럿다(고전9:1-6). 어떤 당국(아마 예루살렘)의 천거서를 가지고 교사들이 오면서부터(3:1;10:12)사도의 적대자들은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2:17). 사도를 공격하며 추종자들에 대한 전체적인 주권을 주장하기도 했다(1:24;2:17;11:13,20). 이들은 유대적 기원(11:22)과 그리스도와의 특별한 관계(5:16;10:7;11:13-23;13:3)와 사도적 특권(11:5,13)을 주장했다. 이와같이 고린도 교인들의 전반적인 순종과 일부 유대인 무리들이 그릇된 주장이 디도가 바울에게 전한 소식의 두 가지 큰 주제였다. 그 중요성은 덜하지만 바울이 다루어야 했던 셋째 주제는 유대의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모금 활동의 촉진이었다.(엑셀/ Dean Stanley.)

 

7. 핵심단어: 은사, 근심, 영광, 복음, 섬기다, 고난, 고생, 육, 위로, 영광(15)

요 절: 9:15;4:5;5:20-21

 

 

 

1. 제목(명칭의 유래): 갈라디아서

 

2. 중심내용: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다른 교리와 유대주의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경고와 바울의 사도직의 강조하고 있다. 유대주의자들의 가르침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거짓 교사들은 구원의 방법 중 의식적인 율법의 준수가 증대 한 요소라고 주장하였다

 

3. 저자: 저자: 사도 바울, 대상자: 소아시아에 있는 갈라디아의 교회들

 

4. 특징: 갈라디아서는 율법과 복음(믿음) 문제등 구원론이 주요주제(로마서의 축소판)이며 바울의 복음과 사도직을 변호하고 있다. 서두에 감사나 축복의 말이 빠져있고(격앙된 바울), 반대자들과의 신학논쟁, 복음을 위한 투쟁(안디옥 사건 2:11~14),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조(4~5장)하며 바울 자신의 친필서신(6:11)이라는 특징이 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A.D. 55-6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

 

6. 기록목적: 제 2차 전도 여행 중의 갈라디아 방문 동안,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 내에 많은 거짓 교사들이 있으며, 그들의 가르침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쳐 성도들을 혼란 가운데 빠뜨리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1:6-9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가르침이 복음을 파괴시키는 것이며, 기독교의 진리를 근본적으로 왜곡시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서신의 다른 부분에서 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에 대한 믿음에 의한 칭의를 거부하는 내용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스스로의 의를 이루며, 그것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점이 제기된다.

1. 거짓 교사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켜 생명을 얻는다고 가르쳤는데, 그렇다면 과연 완전한 거룩함과 순종을 요구하는 율법을 어떻게 지킬 수 있다고 가르쳤는가? 그들은 아마도 율법을 자세히 가르쳤을 것이다. 마치 인간의 노력으로 완전히 지켜질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나서 그들은 성경에 나타난 유월절 사건을 통해 대속에 의한 제사법을 가르쳤을 것이다. 유대인 공동체는 이 관습을 오래 전부터 준수해 왔으며, 이를 통해 그들은 성결과 거룩함을 성취해 왔다고 주장할는지도 모른다. 거짓 교사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그들의 가르침을 확증하려 했으며, 모세의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주 예수가 거룩한 삶의 본이며 모든 민족의 장래의 구주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율법 준수를 요구하였던 것이다.

2. 그렇다면 율법이 배타적으로 유대인에게만 주어졌던 이 시대에 거짓 교사들은 이방인들이 어떻게 율법을 지킴으로써 생명을 얻을 소망을 갖게 된다고 가르쳤을까? 이 문제에 대해 그들은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즉, 할례에 동참함으로써 유대인이 되어야 하며, 그에 따라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인 영생을 얻게 된다고 가르쳤다(출12:48, 49;민9:14). 그리고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도 이에 의해서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결론적으로 거짓 교사들은 모세의 율법을 전적으로 오해하였으며, 율법을 복음과 맞바꿔 버렸다. (엑셀/ John Venn, m. A.)

 

7. 핵심단어: 율법(31), 믿음(22), 육(18), 성령(15), 그리스도(43), 자유, 약속, 종노릇, 할례, 복음

요 절: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 제목(명칭의 유래): 에베소서

 

2. 중심내용: 골로새서와 함께 이 서신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머리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울은 일찌기 로마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이와 같은 진리를 언급한바 있는데 여기에서 그것을 더욱 충분히 진전시킨다. 이 서실에 나타난 바대로, 신자를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그로 하여금 이 고상한 부름에 합당하게 살도록 권고하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계시는 없다. 실제로 이 서신은 세 장씩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1-3장에서 사도 바울은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말하고, 4-6장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이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말한다.

 

3. 저자(또는 수신자): 사도바울

 

4. 특징: 이 서신의 신학적 통찰력과 깊이가 너무 위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이 서신을 성경 전체에서 가장 심오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의 어느 책도 창세 전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기까지 하나님의 구속목적을 이처럼 일관된 흐름으로 보여 주고 있지는 않다. 성경 전체의 메시지가 이 간결한 서신 안에 집약되어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고 은총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죄에서 떠나 살게 하셨으며,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묶인 자와 자유한 자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헐어버리심으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새사람으로 만드셨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도록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한 주님 안에서, 한 믿음 안에서 한 세례 안에서 평강의 띠를 띠고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지키며 그분의 부르심에 할당하게 행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이 서신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바’되었을 때(3:1;4:1), 특별히 그들에게 오히려 ‘영광’이 되는 ‘여러 환난’을 당했을 때 기록된 것이며, 그의 처지는 이 일을 위하여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6:20)상황이었다. 사도행전28:20에서와 같이, 여기 사용된 이 말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행28:16)된 상태를 묘사한다. 이렇게 보면, 지금 상황은 소위 사도 바울이 첫 번째 로마 감옥에 갇혔던 때임이 틀림없다. 이 기간은 주후 61년에 일어나서 그후로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는데, 최소한 만 2년 정도는 된다. 오네시모 편으로 보낸 빌레몬서에서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머물 곳을 마련해 주길 기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그가 확실히 기대하였던 갑작스런 출발에 대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서신은 아마도 주후 63년경 옥중 생활 말기에 씌어진 것이 분명하다. 온갖 야망과 사치, 그리고 피의 유희가 들끊는 거대한 도시 로마의 한 감옥에서, 이 문명의 온갖 탁월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는 하나님의 복음이 기록되어 전해졌던 것이다.

(엑셀/ A. Barry, D. D.)

 

6. 기록목적: 이 서신의 목적은 일반적인 견해보다 훨씬 명백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구속받은 자들의 영광과 이 서신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에 대하여 기록하는 것 이상으로, 또 기독교 공동체를 특징짓는 영적 생명에 대하여 혹은, 교회의 근거와 경로와 종국에 대하여 기록하는 것 이상의 명백한 어떤 의도를 갖고 있다. 교회의 위대함에 대하여, 교회의 생명을 서술함에 있어서, 신랑이신 주님과 연합된 그 이상적인 영광의 상태를 보여줌에 있어서, 사도 바울은 보다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 이상적인 영광스런 상태가 처음부터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동일한 특권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이 완전해지려면 이방인의 구원과 연합이, 유대인들에게 베풀어지는 것만큼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며, 이는 이 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그의 충만하심이 실현되고 드러날 때임을 보여 준다. 만물이 창조 때의 상태로 회복되어야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다. 이 회복과 충만이 실제로 자유롭게 그리고 온전히 성취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엑셀/ prof. W. Miligan.)

 

7. 핵심단어: 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서, 을 따라, 능력, 풍성, 영광, 그러므로, 비밀

요절: 2:19 ,20;1:22, 23

 

 

1. 제목(명칭의 유래): 빌립보서

 

2. 중심내용: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안에서의 일치와 기쁨을 기술하고 있다.

 

3. 저자: 바울 저작설은 결코 의심받은 적이 없다. 그 외적 증거가 매우 일찍부터 유력하게 있어 왔다. 일부 학자들은 로마의 클레멘트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주후96년경)에서 그러한 암시를 받는다. 2세기 중엽에 폴리캅은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바울은 ...자신이 떠나 있을 때 여러분에게 편지를 보냈읍니다'라고 썼다

 

4. 특징: 빌립보서는 바울의 가장 개인적인 서신으로 그의 확신 및 강하고 개인적인 애착이 담겨 있다. 서신의 내용 중에 공식적인 교리가 빠져 있는 것이 주목할만하나 이 서신에서 특출한 것은 기쁨인데 그것은 '삶의 폭풍과 긴박감 가운데에서 빛을 발하는 인물'로서의 사도 바울을 드러내 준다.

 

5. 시대(역사적 배경): 빌립보서가 옥중에서 쓰여졌다는 것은 명백하다.

 

6. 기록목적: 바울이 본서를 기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로마의 옥에 투옥된 채 심히 불안한 가운데 있던 그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 준 몇 가지의 기쁜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것은 일찍이 사랑과 지대한 관심을 갖고 바울의 궁핍을 도와준 바 있던 빌립보 교회의 수석 장로인 에바브로디도가 또 다시 그에게 도와 줄 구호물자를 가지고 방문한 것이었다. 사실 로마의 감옥 안에서 손에 차꼬가 채워진 채 감시를 받고 있던 바울은 생계 유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그를 특별히 취급해 주기를 청원하는 변호인단의 진술도 없었다. 혹자는 로마 교회 성도들의 수가 상당히 많았으며, 그들 가운데는 부유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의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는 것쯤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바울에 대해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들의 무관심과 그것에 대한 바울의 불만은, 그들에게서 어떠한 사랑의 표시도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과, 아무도 열렬한 존경심을 갖고 바울을 문안하기 위해 찾아오는 자가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물론 그들이 바울을 도우려고는 했지만, 바울 자신이 그러한 지원을 꺼려하고 거절했으리라는 것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아버지인 바울의 궁핍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그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의 특권임을 믿고, 확신하여 그를 돕는 일에 헌신적이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사랑의 선물을 통해 수감자의 어려운 처치를 덜어주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인 관습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형편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바울에게 도움을 줄 능력이 있는 루디아와 다른 개종자들이 그를 위로할 수 있는 기회를 즉시 포착했으리라 확신하게 된다. 복음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던 에바브로디도는 건강에 해로운 로마의 기후로 말미암아 병에 걸려 거의 죽을 지경에 있었다. 이 소식은 곧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알려졌으며, 그것은 저들로 하여금 적지 않은 걱정을 하게 되었다(2:26). 옥중에 있는 바울에게 수많은 시련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거기에다 만일 사랑하는 ‘형제인’ 에바브로디도마저 죽었다면, 그는 더없는 비탄에 빠졌을 것이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병낫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실제로 은총을 베푸셨다. 에바브로디도는 병에서 회복되었으며, 따라서 실망과 염려 가운데 있던 바울에게는 그가 자기 곁에 있다는 것이 더없는 기쁨이 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사적인 유익을 접어둔 채 목회자가 없는 빌립보 교회를 위해 그를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고자 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게 되었는데, 그 편에 평소 자신에 대해 지극한 사랑으로 위로를 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 대한 감사의 편지를 발송하였다. 바울이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교회를 세웠지만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물질적으로 원조를 받은 곳은 빌립보 교회뿐이었다. 바울은 이것을 매우 고맙게 여겼으며(4:1), 바울과 빌립보 교회의 우정은 깊이 무르익어 있었다. 따라서 그는 빌립보 교인들의 지속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에 대해 글로써 자신의 고마움을 표하기 원하였다. (엑셀/ Archdeacon Farrar.)

 

7. 핵심단어: 기쁨, 그리스도의 날,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 성령, 마음, 사랑, 모든

요 절: 1:21

 

 

 

 

1. 제목(명칭의 유래): 골로세서

 

2. 중심내용: 이 서신의 구성은 바울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즉 교리편이 먼저 나오고 그 후에 어떻게 행해야할 것인가를 권면하는 실행편이 뒤따라 온다. 창조주로서 예수는 신성의 충만을 육체로 나타내신다. 교회의 머리는 그 백성의 화해자로서 예수는 그의 인격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효과적으로 중재하여 구원하는 일을 하신다(골 1:15-22. 2:9). 바울은(영지주의의 고행을 통한 대속과 중재하는 권세들의 숭배에 반하여) 주님이시요 구속자이신 예수 한 분 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확정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다같이 강조한다.

 

3. 저자: 골로새서의 사분지 일이 에베소서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은 사도 바울이 비슷한 주제에 대해 기록하고 있으므로 골로새서가 의식적으로든 혹 무의식적으로든 사도 바울 자신의 정신에서 나온 것으로 가장 쉽고도 적절하게 이해 된다.

 

4. 특징: 골로새의 이단은 유대적인 요소와 헬라적인 요소가 서로 결합된 것이었다. 음식물에 대한 규정과 안식일 법과 할례의식과 또한 천사의 중재적인 임무는 유대적인 관습과 신앙의 잔재이다(골 2:11, 16, 18). "지혜"와 "지식"과 우주의 권세들(천사들)의 숭배와 몸에 대한 학대를 강조하는 것은 헬라적 사상을 반영한다(골 2:3, 8, 23). 아마도 어떤 유대인 개종자들이 유대주의로부터 이 혼합된 사상들을 가져와서 발전시켰을 것이다. 바울은 이단자들의 가르침을 공격하기 위해 그들이 사용하던 용어를 사용하여 우주적 인 그리스도의 교리를 전개시킨다. 유일하신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그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주의 모든 권세들이 패배를 당하고 그에게 굴복되었다(골 2:3, 9, 10, 15). 인간을 성숙과 완전에로 인도한다는 미명 아래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비하시키는 가르침은 모두 왜곡된 신앙이다. 이리하여 사도 바울은 골로새 이단의 정체를 밝혀내고 그 뿌리를 깨낸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유대주의의 의식적인 부분과 영지주의적 사상과 페르샤의 점성학및 혼합주의 적 사상이 활발하게 전파되어 가고 있었다. 물질은 악이며 악의 근원이라는 특이한 동방교리는 골로새 교회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참된 신과 썩은 세상을 가능한 멀리 떼어놓으려는 노력은 여러 가지 이상한 교리들을 부지런히 생산해 내었다. 악한 물질적 육체를 가진 인간이 거룩한 하나나님께 나아가려면 천서나 성자같은 중재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상에 쉽게 빠질 위험속에 골로세 교회가 있었다.

 

6. 기록목적: 바울이 이와 같은 이단들을 반대했던 진리의 말씀은 모든 세대를 통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 진리는 곧, 그리스도의 인간되심은 오직 하나님의 현현이시며, 그 분은 하나님과 우주를 연결시키셨고, 우주의 창조자와 보호자가 되시며, 인간의 생명과 빛이시며, 교회의 주인으로서 그곳에 영감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서로 손을 잡고 계신다. 천사의 무리나 그림자 같은 추상적 개념이 그 깊은 간격에 다리를 놓을 이유가 없으며 또한 그럴 수도 없다. 그리스도의 인간되심은 그 깊은 간격에 있는 유일하고 단단한 문을 날려버리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충만한 곳에는 악의 근원이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생명과 거룩함의 근원이 되셨다. 그러므로 금욕주의자의 고행은 물론 유대인의 근실함도 더 이상 아무 소용이 없다. 이와 같은 진리를 주장하기 위해 이 편지가 기록되었다.

이 진리의 중심 원리는, 그리스도께서 주권자이시며, 유일의 중보자이시며,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시며, 죽은 사색들을 반대하시는 분이시며, 오늘날의 모든 의심과 혼동을 정복하시는 예정된 정복자이시라는 것이다. 이 진리를 마음과 정신에 확고히 뿌리박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인내할 수 있으며, 그 인내로써 빛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는 어두움과 불확실성 뿐이다. (엑셀/ A. Maclaren, D. D.)

 

7. 핵심단어: 비밀, 지식, 지혜, 충만, 온전, 모든, 믿음, 몸, 사랑, 기도

요 절: 3:11하

 

 

1. 제목(명칭의 유래): 데살로니가 전서

 

2. 중심내용: 바울 사도는 성도들이 복음을 뜨겁게 받아들이던 것을 회상하고는, 자신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던 그 상황을 상기시켰다. 바울 사도의 관심이 핍박받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견고하게 하려는 데 있다는 것은 바울 사도가 디모데와 기꺼이 헤어졌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디모데의 긍정적인 보고는 바울 사도의 짐을 가볍게 했고, 그로 하여금 실제적인 문제에 대한 권면을 하도록 했다. 이교 문화의 유혹을 알아차린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성적 타락의 위협과 다툼과 분쟁의 위험에 관하여 경고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두 가지 특별한 문제를 일으켰는데, 하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해서 생활이 나태해지는 것과 다른 하나는 죽은 성도들은 그 놀라운 부활 사건의 영광에 동참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해서 바울 사도는 근면할 것을 권면하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산 자와 죽은자들의 역할에 관하여 올바로 설명하고 있다.

 

3. 저자: 바울

 

4. 특징: 데살로니가서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의 종말론적 교훈 가운데 특징은 살전 4:17에 아주 잘 나타나 있다.“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이 구절(4:13-18)은 마태복음의 종말론적 교훈(24-5장),고전 15장의 부활장 및 계시록과 함께 신약의 예언서에 해당된다. 많은 종말론적 교훈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초대 교회에서 새 교인들에게 가르친 기본 교리였음을 알 수 있다(행 17:7,살전 5:1-2, 살후 2:5).(신성종, 신약총론)

 

5. 시대(역사적 배경): 누가가 역사적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의 저작 연대는 비교적 확실하게 확정지을 수 있다. 또한 누가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체제한 것과(행 18:12) 관련시켜서 갈리오 총독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델피에서 발견된 비문에 의하면, 갈리오 총독의 재임기간은 글라우더오 황제의 치세 때라는 것이 밝혔졌다. 갈리오 총독은 A. D. 51년 여름 동안에 재임한 것으로 추정된다. 갈리오 총독이 부임하기 전 약 18개월 동안 바울 사도께서 고린도에 머물렀다는 것을 누가가 명백히 시사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행18:11) 아마도 바울 사도는 A. D. 50년 초에 고린도에 도착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실라와 디모데가 돌아와 보고한 것은(행 18:5; 살전 3:16) 아마도 A. D. 50년 중반이었을 것이다. 이 때에 데살로니가전서가 기록되었다. 몇 개월 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살로니가후서가 기록되었다.(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6. 기록목적: 사도바울은 비록 데살로니가를 떠나 있었지만 아직 연약한 상태에 있었던 데살로니가 교회를 언제나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적어도 한두 번(2:18) 그곳을 방문하고자 심히 애를 썼으나 ‘사단이 그를 방해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줄어들기를 열망하였지만, 사역자들의 추방 등 박해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아직 체계도 잡히지 않고 훈련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견뎌내기에 그들에게 닥치는 시험이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닐까 마음을 졸이게 되었다(3:10). 그러한 마음의 극한 염려 속에서, 그는 비록 자신이 그들을 직접 방문할 수는 없을지라도, 디모데를 그곳 낯선 땅에 보내어 그들이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들을 도울 방법은 없는지를 알아오도록 보내고자 결심하였다. 디모데는 대체로 반가운 소식들을 전해왔고, 이에 사도 바울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분명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심각한 잘못들이 많이 행해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성격의 사도 바울은 너무 큰 발전을 그들에게서 기대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 정도의 소식에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3:8). 사도 바울의 서신중 가장 초기의, 그리고 아마도 신약성경 전체에서 최초로 기록된 것인 듯 싶은 본 서신은 당시 디모데의 보고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견해와 언급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다. (엑셀/ A. J. Mason, M. A.)

 

7. 핵심단어: 주, 형제들아(17), 성화, 환난, 오심, 복음, 말씀, 낮

요 절: 5:23하

 

1. 제목(명칭의 유래): 데살로니가 후서

 

2. 중심내용: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생활에 관 한 권면을 하고있다.

 

3. 저자: 사도 바울

 

4. 특징: 이 서신의 종말론적 가르침들은 그 중요성을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일어날 사건의 전말과 그때 죽은 성도들의 역할에 관하여 이처럼 길게 다룬 곳은 없다. 더우기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만 역사의 마지막 때에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사탄의 전형적인 모습, 즉 적그리스도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누가가 역사적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의 저작 연대는 비교적 확실하게 확정지을 수 있다. 갈리오 총독이 부임하기 전 약 18개월 동안 바울 사도께서 고린도에 머물렀다는 것을 누가가 명백히 시사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행18:11) 아마도 바울 사도는 A. D. 50년 초에 고린도에 도착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실라와 디모데가 돌아와 보고한 것은(행 18:5; 살전 3:16) 아마도 A. D. 50년 중반이었을 것이다. 이 때에 데살로니가전서가 기록되었다. 몇 개월 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살로니가후서가 기록되었다.

 

6. 기록목적: 1. 바울의 첫 번째 서신의 가르침으로 일어난 주의 재림에 대한 기대는 광신적인 교사들의 흉계와 불건전한 활동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심지어 바울의 이름을 도용하여 편지를 위조하기까지 함으로써 그 결과 그 교회를 혼란과 드려움에 빠뜨렸던 것이다. 이렇게 혼란된 상태는 바울의 첫 번째 서신에 대한 단순한 오해가 수많은 비난자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소망의 인내”(살전 1:3)를 가지라고 부탁한 고요한 예언의 말들이 그렇게 왜곡되어야만 하는가 하는 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그 자신의 서신을 통하여(2:2)가짜 서신에 대해 말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단호함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구절에 나오는 ‘영’은 곧 거짓 예언이며, ‘말’은 성경의 권위를 빌은 거직된 것이다. 그리고 ‘편지’ 또한 가짜 편지인 것이다. 더욱이 ‘우리에게 받았다하는’ 말에서 ‘-했다 하는’이라는 표현은 바울이 그 자신의 서신에 대해서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 어법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바울이 가짜 서신에 대하여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실제로 바울이 언급하고 기록한 것으로 의심없이 믿음으로써 속은 것이다. 바울은 미래에도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될 것을 염두에 두고서 그의 모든 서신에 진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신의 친필서명과 문안 인사를 곁들여 자신의 친서임을 명백히 표명하였던 것이다.(3:17).

2. 당시 또 다른 상황은 이전 서신, 즉 데살로니가 전서에 나타난 중요한 권고를 무시한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전 서신에서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대해 완곡하게 암시적으로 표현해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다(살전4:11). 그러나 그의 이러한 암시는 부적당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왜냐하면 교회 내에서는 세상에 대파국이 있으리라 예상하고서 일상 생활의 의무를 등한시하는 무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만드는 자들”(3:11)이었다. 예부터 이와 같은 종교적 광신주의로 이기적인 나태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에 따라 교회의 가장 고결한 소망은 마치 천박한 구걸 행위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악을 고치는 매섭고 단호한 처방은 출교였다. 그러나 그러한 죄인을 대할 때에도 유순하게 대하여야 하는 것은, 우리도 때로는 진리의 고결함에 이르고자 할 때 오독을 하거나 오해를 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며, 그 또한 우리처럼 다시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엑셀/ S. G. Green, D. D.)

7. 핵심단어: 주, 불법, 나타남, 감사, 죄

요절: 2:15

 

 

 

1. 제목(명칭의 유래): 디모데전서

 

2. 중심내용: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를 향해서 가져야 될 목회자의 자세와, 특히 교회내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대하는 바른 처신에 관하여 교훈한다. 복음 전파의 사명에 관한 권고와 교회의 사명과 여자의 처신에 관한 권고와 지도자들의 자격에 관한 권고를 하고있다.

 

3. 저자: 사도 바울

 

4. 특징: 서신의 구조를 가장 간략한 형식으로 나누어보면 (A)권면, (B)찬양, (A)권면으로 되어 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 보면 (A)산문 (B)시, (A)산문과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송영이나 찬가의 형태로 연결된 이 간결한 형식의 엄숙한 권면은 서론, 본론, 결론에서 세 번 반복된다. 모든 부분이 기술적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많은 주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디모데에 대한 바울의 권면에 주의를 집중시키도록 기여한다.

서신의 결론에서는 또 다른 권면이 다시 중복되어 나오는데, 그것들은 6장 16절 하반절의 송영(찬송시)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시 동일한 부분이 제시되는데, 앞 부분은 보다 긴 부분으로서(6:3-16 a)이 서신의 중요한 주제가 요약되어 있고 보다 짧은 뒷부분(6:17-21)은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는 심금을 울리는 간절한 호소로 되어 있다. 같은 방식으로 이 서신의 본론은(2:1-6:2) 내용이 바뀌는 구절에 의하여 나누어지는데(3:14-4:5) 그 중심 부분에는 바울이 지었을 가능성이 큰 초대교회의 찬송시 구절이 있다(3:16). 이 본론의 첫번째 부분은 기억할만한 찬송시 구절로 마무리지으면서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직제상의 문제나 공적인 면을 다루고 있다. 두번째 부분은 대응시키면서 첫번째 부분에 기술된 주제와 뚜렷하게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첫번째 부분에서 여자에 대한 언급은 교회내에서 남자의 지도력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반하여 두번째 부분에서의 여자에 대한 언급은 도움이 필요한 과부들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문제에 관해서 다루고 있다. (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이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어 풀려난 후 다시 투옥될 때까지의 선교여행 중에 쓰여졌다. 일반적으로 바울의 순교연대는 기원후 65년에서 68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으며(4:6-8) 바울이 순교 직전에 사도로서 남긴 마지막 말들이 디모데후서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디모데전서의 저작 연대는 기원후 61년에서 63년의 어느 시기로 추정된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이방인과의 혼인은 경건한 유대인에게는 천한 행위로 취급받았고, 또한 유대 사회에서는 가장 낮은 계층에서만 통용되던 관습이었다. 그런데, 후기의 유대 역사에 이르러서는 이방인과의 결혼이 유대 사회에서 그다지 드문 행위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방인이 유대교에 입교하는 조건에 있어서 혼인이 전혀 도움이 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본래 하나님의 계약의 자손들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도행전에는 디모데의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 츠측컨대,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적에 돌아가셨거나, 그와 멀리 동떨어진 곳에서 살았을 것이다. 디모데의 양육은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에 의해서 모두 이루어졌다. 디모데의 연약한 기질은 이러한 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디모데는 약한 체질에다가(5:23), 자신이 맡은 책임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철저했으며(4:12-16;5:20;6:11-14;딤후2:1-7), 눈물도 많았고(딤후1:4),핍절할 정도로 금욕생활을 했으며(5:23), 때로는 청년의 정욕을 조금씩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던 듯하다(딤후2:22) 그는 원래의 성격이 온화했기에 “젊은 사람들을 대할 때도 나이 많은 어른들을 대하듯 하라”는 바울 사도의 부탁을 충분히 감당해냈을 것이다(5:2). (엑셀/ Dean Plumptre in Dict. of Bible.)

 

6. 기록목적: 딤전 3:14, 15절(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의 말씀처럼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의 일을 가르치고자 함이다.

 

7. 핵심단어: 경건, 교훈, 믿음, 복음, 가르치다, 전파하다, 명하다. 요 절 4:16

 

 

1. 제목(명칭의 유래): 디모데후서

 

2. 중심내용: 본 서신서의 본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1:6-4:8).

1. 디모데의 태도. 사도 바울은 그에게 주어진 은사를 확신시켰고 두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제언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확실한 소망(1:6-2:13)에 대하여 언급함으로 디모데를 격려하였다.

2. 교회. 이곳은 단지 무익한 가르침과 쓸데없는 분쟁으로 혼란을 겪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는 거룩함을 지니고 있는 진정한 신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낙망하지 말아야 하며 확고하고 이미 어떤 그리스도인은 잘못된 길로 나아갔다. 이들이 미칠 영향을 막기 위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충고를 하고 있다.

1) 바울에게서 보았던 불편함을 기억해야만 한다.

2)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진 성경 말씀을 계속 공급받아야만 한다.

3) 복음 사역에 더욱 열심을 내야만 한다(2:14-4:5).

3. 사도바울은 다가오는 순교에 관해 언급하면서 가능한 한 빨리 디모데가 자신에게 자신에게 올 것을 부탁하는데, 그 이유는 누가를 제외한 모든 동역자들이 그의 곁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가가 그와 함께 오기를 촉구했으며, 자신이 소아시아에 놓고 왔던 겉옷과 책을 가져오기를 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황제의 재판석 앞에 있던 자신의 1차 투옥 때의 모습에 관해 언급하였는데, 그 재판은 오히려 그에게 복음전파의 기회를 주었을 뿐이며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지는 못하였다. 결론 부분에서 그는 부수적으로 그의 두 동역자들이 곁에 없음(4:20)을 알렸다. 그리고나서 그는 로마식 이름을 지니고 있는 몇몇 형제들에게 문안하고 있다.(엑셀/ Prof. F. Godet.)

 

3. 저자: 바울

 

4. 특징: "사랑하는 아들"에게 보낸 그의 두번째 서신에서 바울은 디모데 전서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는 두 부분으로 된 엄숙한 권면이 찬송시에 의해 연결되는 가장 단순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구절들은 인사와 감사로 시작하여 개인적인 견해와 기도로 끝맺고 있다. 전체적 구성은 중심부에 있는 교리적 진리에 대한 찬양이 크게 두드러지도록 짜여져 있다(2:11-13). 중요한 내용은 바울이 위탁한 복음을 진리로서 보전하고 소중히 할 것을 신앙인들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의 마지막 말이기 때문에 특별한 엄숙성과 중요성을 지닌다.

 

5. 시대(역사적 배경):

본 서신서는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 로마에서 기록되었다. 본 서신서는 주로 그리스도를 섬김으로 인해 떠나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두고 유독 디모데에게 속히 오도록 재촉하는 글을 담고 있다. 이 편지에는 디모데에게 서둘러 오도록 재촉하는 글이 씌어져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전도에 대한 권면을 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특별히 좋지 않은 일들이 자신에게 닥쳐 올 줄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 모든 일을 슨리케 하실 것이라는 신앙의 확신을 표현하고 있다(4:18). (엑셀/ M. F. Sadler, M. A.)

 

6. 기록목적: 공동서신을 쓰게 된 이유는 신앙을 지키고 예수그리스도의 교회에 영속성을 확고히 하려는 필요때문이었다. 목회서신의 핵심적 요지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 1:14)고 하는 엄숙한 권면이다. 여기서 모든 교회와 더불어 디모데와 디도에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쓰여진 기록과 부탁한 것, 그리고 믿음을 지킬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쓰게된 보다 직접적인 필요성은 에베소와 그레데에서 생긴 많은 문제들을 바로 잡아야했기 때문이었다.

 

7. 핵심단어: 부끄러워 말고, 고난을 받다, 참다, 말씀, 명하다, 부지런함 요절: 4:5

 

 

1. 제목(명칭의 유래): 디도서

 

2. 중심내용: 디도서에는 기독교 신앙의 중요 교리들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선택, 영생, 그리스도의 메시야성과 신성, 영감 , 하나님의 은혜, 구원의 보편적 성격, 그리스도의 재림, 대속적 속죄, 전적 타락,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중생, 성령의 인격과 사역, 칭의, 상속권등이 바로 그것이다.

 

3. 저자: 이 편지가 디모데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이전에 쓰였는지, 이후에 쓰였는지를 확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디모데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이전에 쓰여진 것만은 확실하다. 첫 번째 편지 이전에 받았다는 근거는 불충분하지만 두 번째 편지 이전에 받았다는 근거는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서가 씌어진 정확한 연도와 장소에 대해서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만족해야 한다. 디모데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나 두 번째 편지가 본서의 내용에 대해 많은 정보를 시사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사도가 자기 자신의 상황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레데에서 관심 가졌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바울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썼기 때문이다. (엑셀/A. Plummer, D.D.)

 

4. 특징: 이 서신의 주제는 신실한 자들에게 맡겨진 교리와 경건한 생활과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구원에 관한 위대한 교리로서의 은혜는 2:11-15와 3:4-8, 두 곳에서 선행과 잘 조화되는 가운데 연결되어 있다. 두곳 모두 복된 소망을 강조하며 (2:13; 3:76) 선행을 강조함으로써 끝맺고 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디모데전서와 이 서신의 두드러진 유사점은 같은 해에(A.D. 67년)씌어졌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아마도 그것은 사도가 니고볼리로 가는 도중 소아시아에서 썼을 것이다.(엑셀/ J. A. McClymont, B.D.)

그레데와 그레데 교회: 그레데는 그리스의 바다에 있는 큰 섬이며, 그곳에는 동쪽에서 서쪽까지 전체가 높은 언덕으로 이루어진 산맥이 있다. 또한 해안선을 따라 계속되는 평평한 해변에는 비옥한 계곡들이 접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자연적으로 생긴 좋은 항구들이 있다. 그레데의 전성기 때에 곡류, 포도, 올리브유를 풍부하게 생산했었으나 차츰 그레데는 인구 조밀의 산업으로 바뀌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혈통을 이어받은 초기의 그곳 주민들 중 일부는 내륙에서 경작자로 일했으며 또한 일부는 선원생활을 했다. 그들은 덜 성화된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성격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결점들을 강하게 드러내는 소위 무례하고 난폭하며 독립성이 강한 민족이었다. 이런 결점들 중에서도 특히 허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그들은 교묘하게 남을 한 수 앞지르거나 배반하곤 했다. 바로 이런 악덕함에 빠진 자들이 사도 바울의 시대에 있었으며, 에게 해의 해안에 사는 그리스인들 중에는 음탕하고 약삭빠르며 무례하게 대소동을 일으키는 오만 불손하기 짝이 없는 자들도 있었다. (엑셀/ J. Oswald Dykes, D.D.)

 

6. 기록목적:

디도서를 기록한 목적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디도를 바울이 있는 니고볼리로 빨리 오게 하여 그레데의 일을 맡기게 하고(딛3:12), 둘째는 율법학자인 세나와 전도자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레데인들로 하여금 영적 궁핍함이 없도록 하게 하고, 세째는 그레데 교회의 목회상의 여러 문제들들 해결하며 격려하려는데 있었다,.

 

 

7. 핵심단어: 교훈, 선한 일, 가르치다, 사랑, 우리 구주 하나님, 믿음, 빛나게 하다

요절: 2:10;3:14

 

 

 

 

 

1. 제목(명칭의 유래): 빌레몬서

 

2. 중심내용: 성도들간의 용서와 형제애를 간곡하게 권하고 있다.

 

3. 저자: 본문가운데 세 번이나 자신을 바울이라고 불렀고(1, 9, 19절), 사상이나 감정표현등이 철저하게 바울적이다. 바워(F.C Baur)를 중심으로 한 튜빙겐 학파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학자들에 의해 인정되고 있다. 이그나티우스의 편지 가운데도 빌레몬서 20절을 시사하고 있고 터툴리안, 오리겐, 유세비우스, 무라토리의 정경 및 구 라틴역, 구 수리아역에서 인정되고 있다(신성종, 신약총론).

 

4. 특징: 개인적 성향이 강한 사도서신으로 노예제도에 대한 신앙적 해결의 방법을 교훈하고 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우리는 먼저 로마서에서 바울의 생활상을 그려보아야 한다 그는 자기 셋집에 감금된 상태로 2년 동안 로마에 체류하고 있었다(행28:30). 친구들과 방문객들의 접근은 허용되어 있었다. 바울이 세웠던 교회들이 그가 로마에 체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선물과 개인적인 도움의 제안 및 애정어린 추억과 더불어 사자를 보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사자들은 빌립보의 에바브로디도와 골로새의 에바브라 그리고 에베소의 두기고 및 오네시보로 등이었다. 그때는 대단히 위험한 시기였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험했으나 로마를 방문한다는 것은 또 다른 특별한 위험을 겪는 일이다. 당시 로마에는 그 사회의 모든 계층에 심각한 전염병이 만연해 있었으며 황제까지도 피하지 못하고 발병하였기 때문에 모든 사원에는 그의 회복을 기원하는 제물이 바쳐지고 있었다. 빌립보서 2: 25-27을 보면,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어 거의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가운데서 주인에게서 도망친 죄수를 만나게 되고 그를 개종시키게 된다.

 

그때 바울은 복음 사업을 위한 모든 기회로부터 차단되어 갇힌 몸이 되었지만 기도를 통하여 죽음으로부터 한 영혼을 구해 내고 하나님과 자신을 위해 거듭난 영적 아들을 얻었음을 기뻐했을 것이다. 새로운 생명은 뿌리를 내렸고, 자신을 이끌어 준 스승에게 사랑과 존경을 나타내었다. 사도를 모시고, 그의 쇠악한 몸을 돌보고, 그가 갇혀 있기에 피할 수 없는 불편함을 경감시키는 것, 그리고 자식이자 곧 형제로서의 애정으로 대하는 것, 이것이 곧 보다 고귀한 영적 삶으로 거듭나게 된 위대한 축복에 대해 오네시모가 열심을 다해 갚으려 한 보상이었다. 바울은 기쁜 마음으로 그 종이 이제 자신에게 “유익(11절)하며, 그가 이전의 주인을 섬김에 있어서도 유익하리라고 생각했다. 다시 받아들임, 이것이 곧 빌레몬에게 보낸 서신의 목적이었다. (엑셀/ Dean Plumptre.)

 

6. 기록목적: 바울은 빌레몬의 종인 오네시모를 위하여 이 서신을 썼는데, 오네시모는 바울의 전도로 개종한 자였다. 교회가 이 서신을 성경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사도의 가르침으로 인정한 데에는 몇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 (1)'교회'라는 말이 인사 말에 나온다(2절). (2)주인과 종의 관계는 빌레몬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전체 교회에게 중요한 문제였다(빌레몬이 골로새 교회에서 유일한 노예 소유자가 아니었다:'상전들아'가 복수라는 사실에 유의하라, 골4:1). 주인에게서 도망친 후 그리스도인이 되어 바울의 심복이 된 종 오네시모를 주인에게 돌려 보냄으로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자들의 관계에 대한 원리를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이러한 원리들이 '억지'가 아니라 '자의로' 실현되어야 한다(14절)는 것을 깨닫게한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세상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완전히 새로운 준거 틀이 있는데, 그것은 형제애가 모든 다른 관계들의 마땅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바울이 노예제도를 거부하는 논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세기를 거쳐 내려오는 동안 그리스도교 신앙은 노예 제도를 바울이 빌레몬서에서 공표한 원리들과 양립될 수 없는 것으로 보게되었다.

 

7. 핵심단어: 사랑, 간구하다, 유익하므로, 종 요절 10, 18

 

 

1. 제목(명칭의 유래): 히브리서

 

2. 중심내용: 첫번째 사상은 3:1과 12:3의 "생각하라"는 말에서 나타난다. 이 두 예에 담긴 권고는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3:1에서는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으로 12:3에서는 믿음 생활의 궁극적 모본이신 참으신 자로 생각될수 있다. 서신의 논법에 의해, 독자들은 제사장이시며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된다. 서신 전체에 걸쳐 드러나는 대조들은 천사, 모세, 아론, 멜기세덱, 레위의 제도, 그리고 구약에 기록된 신앙 생활의 가장 좋은 실례까지도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결정적으로 입증하고 있다(제 11장).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하나님께서 열납 하실 만한 희생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임재하신 바로 그 곳에 들어갈 것을 보증하시고 탄원과 요구를 즉시 들으시겠다고 확증하시면서 성소 내에서 지금 말씀하시고 있다(4:14-16). 두번째 사상은 그것과 짝을 이루는 동사와 함께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13:22)라는 권면(헬라어로는 파라클레시스)의 말에서 나타난다. 이 말은 히브리서의 비공식적인 제목이라고 불려 왔다. 파라(Farrar)는 서신에 기록된 모든 지식이 독자들을 권면 할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유대인이기도 한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생각"(12:3)하고 또한 "권면의 말을 용납"(13:22)했다면 박해와 시험과 어려움이 보다 쉽게 여겨졌을 것이다.

 

3. 저자: 사도 바울, 아볼로, 바나바, 누가, 디모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실라, 아리스티온 그리고 집사 빌립 등이 모두 지지할만한 논거를 지닌 저자로 제기되어 왔다. 동방과 서방에 걸쳐 초대 교회 및 교부들의 전승을 조사해보면 견해들이 다양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서신 자체에는 저자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본서의 저자를 입증함에 있어서 두가지의 주된 견해들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먼저는 바울이 저자라는 견해로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영향을 받은 알려지지 않은 저자를 포함시킬 수 있는데까지 이르렀으며 따라서 독특한 바울적 취향을 히브리서에 전하였으며 다음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전승과 영향을 받았다는 견해로 구약에 유형론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근거하였다. 여기서는 히브리서의 유비의 근원이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의 작품에 들어있는 유비와 같다고 추정한다.

 

4. 특징: 본서의 주된 관심이 실제적이므로 저자는 실제적인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신학적 개념들을 권면, 경고 및 위로에 대한 언급이라는 특수한 틀 속에 담고 있다. 그의 관심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신학 사상 및 개념에 집중되어 있다. 저자는 주된 주장을 옹호하여 다른 진리 위에 하나의 진리를 내세우며 이러한 사상들을 말한 사람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히브리서의 저작 시기는 많은 요인들에 의해 정해진다. 이러한 요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후 68년 이후의 유대인과 로마인의 갈등과 주후 70년의 성전 파괴이다. 갈등, 성전 또는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본서신은 주후 68년 이전 아니면 80년 이후에 기록되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주후 68년 이전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우리는 그 시기를 디모데(13:23) 및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13:24)에 대한 언급과의 관련속에서 보아야 한다. 또한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주후 95년)에서 드러난 히브리서에 대한 지식에는 본서의 저작 시기 및 목적이 담겨있다.

 

6. 기록목적: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단일 집단이거나 아니면 지역적으로 넓게 퍼져있거나 간에 그리스도로부터 모세에게로 되돌아갈 배교의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배교의 상황은 불신앙(3:12), 행위(5:13,14), 공중 예배의 무시(10:25), 연약한 기도(12:12), 교리상의 불안정(13:9), 가르치기를 거부함(5:12) 및 성서의 경시(2:1)에 근거된 당면한 위험이었다. 그러한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교의 열등함을 드러낼 목적으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7. 핵심단어: 더 나은, 피, 믿음, 희생제물, 대제사장, 언약, 안들, 섬김, 온전한, 영원한, 함께 하는 자, 하늘 / 요 절 4:14

 

 

1. 제목(명칭의 유래): 야고보서

 

2. 중심내용: 야고보서는 살아있는 기독교를 위한 호소이다. 때때로 예루살렘에 올라오던 사람들은 세상적인 것들과 교만, 모순, 편견, 고집, 외식, 불만, 비판 등을 나타내었는데, 이러한 것들은 당시 신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본 서신은 그러한 결점들을 바로잡는 데 충분한 역할을 감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본 서신을 통해 그들에게 선지자처럼 책망하기도 하고 선생처럼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야고보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단순히 생산적이지 못한 교리를 복음의 믿음으로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염려하고 있으며, 나아가 그는 그들이 그 믿음을 정결하고 거룩한 생활로 발전시켜 나가길 바라고 있다. 또한 성령의 열매를 맺어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하고, 인내와 사랑으로써 훌륭한 삶을 나타내 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는 또한 그들에게 다가올 시험을 준비하며 온전한 구원과 상급이 주어지게 되는 때, 즉 주님의 재림을 바라라고 권고하고 있다. 의와 화평이 있는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살라는 것이다.(엑셀/ W. Ormiston, D.D.)

 

3. 저자: 야고보서의 서두는 저자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라는 것을 말하고 있으나,(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약1:1) 이 야고보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신약 성경에는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주의 형제 야고보, 두 사람 만이 본 서신의 저자로 주장되어왔다. 그러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저자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그가 주후 44년에 순교했으며 교회내에서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견해는 주의 형제 야고보를 본서신의 저자로 보고 있다. 사도행전 15장에 있는 야고보의 연설과 야고보서의 어투의 유사성, 유대전통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점, 그리고 내용이 주의 형제 야고보에 관하여 신약 성경에 언급된 역사적인 사실들과 일치되는 것 등은 모두 그의 저작설을 뒷받침해 준다.

 

야고보서의 수신인

전통적으로 '열 두지파'라는 말은 유대 민족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유대 민족이 디아스포라(Diaspora)시절에 아무리 넓은 지역에 흩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들 전체가 팔레스틴밖에 존재하였을리는 없었으므로, 야고보서의 서두는 상징적으로 이해하는 것아 가장 타당할 것 같다. 야고보는 '새로운 이스라엘' 즉 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이 서신을 쓰고 있다.

 

4. 특징: 유대적 성향이 강하고 행위가 없는 믿음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외경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바울의 이신칭의 복음과의 관계속에 오해를 불러일이키고 있다. 마태복음과 비슷한 점이 많으며 윤리적 교훈이 많다.

 

5. 시대(역사적 배경): 이 서신의 저작시기를 주후 40년대 중엽이나 야고보가 죽기 직전인 60년대 초로 보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인데, 익명의 야고보를 저자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훨씬 후대인 주후 150년경으로 보고 있다.

 

6. 기록목적: 이 서신의 주된 목적은 죄에 대한 회개의 교리를 흩어져 있던 열 두 지파에게 선포하려는 데 있다. (엑셀/ F. T. Bassett, M. A. )

 

7. 핵심단어: 온전한, 믿음, 행함, 행하라, 심판, 말하다, 복을 받으리라, 열매

요절: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1: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1. 제목(명칭의 유래): 베드로 전서

 

2. 중심내용: 베드로는 소아시아의 다섯 지방에 사는 유대인 및 이방인 성도들에게 이 서신을 써보냈다. 그가 이방인 성도들까지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서신을 보면 매우 명백하다. 그는 2:10에서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는 이방인 성도들의 과거 생활을 이방인들의 죄많은 욕망 가운데 살아온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벧전4:3).

아마도 베드로는 주님의 명령들, 즉,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2)'하신 명령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내 양을 먹이라(요21:15-17)"하시는 명령을 상기하였을 것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전의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적인 충성심과 변하기 쉬운 이기주의가 복합된 유동적인 인간이다.

십자가를 지지 말라! 바로 이것이 주님에 대한 베드로의 충고였다(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16:22). 그러나 성령이 충만히 내린 오순절 사건은 급격한 변화를 몰고 왔다. 그리하여 이미 헤롯의 손 아래서 채찍질을 당하고 죽음에도 직면해 보았던 베드로는 아시아의 사랑하는 형제들을 격려하고 더욱 강하게 하여 이미 잔인한 네로의 박해를 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그가 그들에게 임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임박한 갈보리의 십자가를 직시할 수 있도록 하고자 앞으로 나서고 있다.

(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3. 저자: 이 서신은 사도 베드로에 의해 쓰여졌다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 벧전1:1-2). 저자는 또한 자신을 장로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부른다(...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 벧전5:1). 그는 실루아노의 도움으로 쓰고 있으며 (내가 진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 벧전5:12).

 

4. 특징: 베드로 전서에 현저하게 나타나는 박해와 고난에 대한 언급은 초대 기독교인들의 박해에 대한 역사 기록과 얼마만큼 일치하는가를 알고자 하는 학자들에 의해 세밀히 연구되어 왔다. 케이스 박사(Dr S. J. Case)는 초기에 있었던 세번의 혹심한 박해시기를 구분하는데, 이것들은 네로 통치시대 (주후54-68년), 도미티안 통치시대(주후81-96년), 트라얀 통치시대(주후98-117년) 등이다. 그는 베드로 전서를 가혹한 박해가 절정에 다다른 시대 뿐 아니라 벧전1:1에 언급된 소아시아 지방까지 확산된 시대의 반영이라고 보는 학자들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다른 학자들은 베드로 전서를, 이미 당시에 조짐을 보이고 있던대로, 다가오는 박해에 대한 사전 경고로 해석한다. 빅스(Biggs)는 초기의 박해들이 대체로 유대 산헤드린에 의해 고무되었으나, 로마인들은 기독교에는 이교주의와 양립될 수 없는 생활 방식이 있으며, 그들의 관점에서 볼때 그것은 반드시 중지되어야한다는 것을 곧 알게되었다고 주장한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당한 박해는 이러한데 연유한 것이며 유대인의 선동은 없었던 것 같다.

 

5. 시대(역사적 배경): 1:1, 5절에 보면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살고있는 성도들이 그들의 신앙 때문에 고난 당하고 있음을 볼 때 베드로가 네로황제에게 순교당하기 전인(주후 64) 주후 63-64년경에 기록되어졌다고 봐야 한다.

 

6. 기록목적: 핍박중에 흩어져있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산 소망을 가지고 믿음에 굳게 설 것을 권고하려고 한 것이다.

 

7. 핵심단어: 고난, 시련, 소망, 나타나심, 영광, 기쁨, 은혜, 거룩, 고귀한 요 절: 1:7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1. 제목(명칭의 유래): 베드로 후서

 

2. 중심내용: 베드로의 저술 목적은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정체는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가르침의 위험성은 사도의 통렬한 탄핵과 그들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베드로는 거짓 가르침이 분명히 교회에 뿌려놓은 무법한 정신을 책망하고, 이단 사상 곧 그리스도인은 도덕적일 필요가 없다고 하는 도덕폐기론의 팽배를 경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성경 학자들은 거짓 교사를 이단 영지주의의 초기 선구자와 동일하게 보려고한다.

이러한 독소(즉 거짓 교훈)에 대한 베드로의 해독제 (즉 거짓 교훈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는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성장이 그러한 거짓 교훈을 멸절시키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이라고 강변한다. 사실상 이것이 맨 처음의 내용이며 제 1 장의 요지이다. 베드로 후서의 주제는 베드로가 이 서신의 수신인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스스로 준비해야한다고 경고하는 내용의 제 3장에서 더욱 심화된다.

베드로는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회의적 태도를 조장하는 냉소주의자들을 공공연히 비난하면서, 그의 형제들에게 영광스런 그 날을 예기하고 은총 가운데 성장해 나가며 계속 신앙을 지키라고 권면한다. (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3. 저자: 사도인 시몬 베드로

 

4. 특징: 전서는 핍박을 받고있는 성도들에게 보낸것이고 후서는 거짓교사와 거짓교훈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서 기록된 서신이다. 또 전서가 박해사상을 배경으로 한데 반해서 후서는 유대 묵시 사상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신성종, 신약총론)

유다서와의 유사점이 많으며 재림의 지연(지연된 종말사상 3:8~10)과 거짓교사에 대한 경고(2:1~22). 묵시적 종말사상(3:10~13)등이 포함되어 있다.

 

5. 시대(역사적 배경):

베드로 후서는 네로의 통치 시대 말기에 로마에서 집필된 듯하며, 소아시아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정확한 저작 시기는 밝혀 내기 어려우나 주후66년으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

이 서신 자체는 시몬 베드로에 의해 집필되었다고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벧후1:1), 저자 자신이 그리스도의 변모하심을 친히 보았음을 증언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벧후1:16-18).

 

6. 기록목적:

베드로 후서의 목적은 3:1,2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즉 영지주의적 이단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는 유대인 성도들에게 경고함으로써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하자는 데 있다. 이것은 세번에 걸친 기억하라(1:12, 13;3:1)는 말과 이와 관계되는 말인 잊어버리다, 도는 잊어버리지 말라는 단어가 두 번식이나 사용된 것6으로 그 성격을 알수 있다. 즉 베드로는 그의 독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생활의 표준이 됨을 기억하고 거짓교훈으로 인해 재림의 주님에 대한 소망을 잊지 않도록 경고하려 한 것이다. (신성종, 신약총론)

 

7. 핵심단어: 고난, 시련, 소망, 나타나심, 영광, 기쁨, 은혜, 거룩, 고귀한 / 요절:1:7

 

 

 

1. 제목(명칭의 유래): 요한1서

 

2. 중심내용:

1. 본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윌 자신,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해서 알아야 할 사실들의 핵심들을 정리해 볼 수 있다.

2. 신앙의 교리적인 면들 뿐 아니라 신앙생활의 실제적 규범들도 찾아 볼 수 있다. (N. Hardy, D.D.)

 

3. 저자: 종종 제기되는 문제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들을 기록한 요한이 정말로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었는가 아니면 장로 요한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문헌에는 에베소의 장로 요한이 언급되어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 에베소의 요한과 다른 인물이었으며 복음서와 서신들을 기록한 요한은 후자 즉 에베소의 요한이었다고 결론짓게 되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따르면 이레니우스, 파피아스, 폴리크라테스 등이 이에 속하며 무라토리 경전도 이것을 주장한다).

 

4. 특징: 아마도 이 서신 다음에 나오는 짧은 두 서신들과 함께 신약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영감에 가득찬 말씀들이 될 이 서신서에서, 우리는 제 4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 관련되어 기술되었던 하나님과의 사귐에 관한 놀라운 진리들이 신자들의 생활이라는 측면에서 다시 한번 묘사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요한의 복음서는 역사적이면서도 교리적이다. 그런데 이 교리적인 부분들이 여기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실제적인 삶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서신은 성도들을 그리스도와의 교제 가운데로 부르심을 받은 새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복음서에 이어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5:13과 1:4을 요20:31과 비교해 보라)

이 서신의 주요한 사상은 주로 빛과 사랑이며 의의 띠로 하나로 묶여진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이중적 개념에서 솟아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바울의 서신에서 발견하게 되는 수고스러운 논증이 없다. 여기서 진리가 증명되는 방식은 논리의 추론과 차근차근한 전개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명증성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비록 차원이 높고 영적이기는 하지만 이 서신의 가르침은 동시에 매우 실제적인 것들이다. 이것은 실천에 비해서 지식, 특별한 지식들을 지나치게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점차 중대해감에 따라 이에 대한 반작용로 의도된 것이 분명하다. 요한의 강조점은 구세주께서 그의 신적 사역을 세례시 뿐 아니라 그의 죽음에서도 수행하셨다고 하는 데에 있었다. 요한은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가 예수시라는 사실을 다시 말해 그 연합의 실제성을 증거하고자 했다. 그것은 요한에게 있어서 신자의 믿음의 본질적인 요소였던 것이다. 참과 거짓에 대하여 한 치의 틈도 허락지 않으면서 이 서신은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에 대한 권고로 넘치고 있다. (엑셀/ J. A. McClymont, D.D)

 

5. 시대(역사적 배경): 저자가 지난 일을 회고하고 있음이 복음서에 분명히 드러나는데 (요7:39;21:19). 그것은 요한이 저자이기 때문에 요한복음의 기록은 주후85-90년 이전에 이루어졌을 수도 있으나 소개된 것은 이 기간이었음에 틀림없음을 의미한다. 교회의 장로들은 요한이 그들에게 말로써 가르치고 있었던 사항들을 그가 죽기 전에 글로 옮길 것을 원하였다. 요한1서의 메시지가 요한복음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고 있고, 주후 95년 도미티안 치하에서의 박해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본서의 저작 시기는 대략 주후 90년 경인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2서 및 3서도 이와 동일한 시기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믿을만한 전승에 의하면 요한 서신들은 모두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

 

6. 기록목적: 당시의 이단사상인 그리스도의 가현설에 대하여 경고하고(요일 2:26) 영생에 대한 확신(요일 5:13)을 주려는 데 있다. 그밖에도 기쁨이 충만케 하려함(요일1:14) 과 이단 사상에 물들어 죄를 짓지 않도록 (요일2:1)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신성종, 신약총론)

 

7. 핵심단어: 알다, 사랑, 아들, 사귐, 어두움, 빛, 영, 쓰다., 아버지, 자녀들아, 믿다

요 절: 1:7

 

요한 1서에 계속해서

 

4. 특징:

-요한2, 3서는 모두 다 저작 시기나 장소에 대하여 아무런 암시도 하고 있지 않다. 이처럼 시기나 장소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고 또한 그 반증도 없는 것으로 보아 주변 여건은 요한1서의 저작 시기 및 장소와 동일하였던 것 같다. 본서의 수신지는 알려져 있지않다. 어떤 이들은 '택하심을 입은 부녀'라는 구절이 전체 교회를 지칭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어떤 특정한 교회군(밖)을 지칭하는 비유적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은유적 용법은 엡5:22-33 및 계21:9과 유사한 것 같다. 이렇게 보면 '택하심을 입은 자매'는 요한을 따르던 공동체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 그러나 이 짧은 편지의 단순함은 그처럼 의미심장한 비유의 가능성을 배제하며, 그 반면 어조의 부드러움은 본서가 개인적인 서신이라는 인상을 준다. (Dav-id Smith ,EXPGT, IV, 162). 또한 다른 한편에서는 본 서신이 한 여인 및 그녀의 가족들에게 보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이름이 구리아(Kyria)인지 아닌지는 미해결된 문제이다. (요삼1:1과 벧전1:1에서의 거듭 설명되는 형식을 참조하라). 그녀의 이름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녀는 분명히 에베소 근처에 거주하였으며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 내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녀의 집은 그 지역 교회가 모이는 장소였을 것이다). 이미 고인이었던 듯한 그녀의 한 자매에게는 에베소에 거주하며 요한을 따르던 교회와 관련이 있던 가족들이 있었다. '택하심을 입은 부녀의' 자녀들 가운데 몇 명이 에베소에 거주하던 사촌들을 방문했을 것은 명백하다. 요한은 그들과 아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어머니에게 이 서신을 보냈던 것이다.(장안문화사, 주제별 성서대전)

 

5. 시대(역사적 배경):

요한2, 3서는 모두 다 저작 시기나 장소에 대하여 아무런 암시도 하고 있지 않다

 

6. 기록목적: 거짓교사에 대해서 경고하며 자신의 방문계획을 알리려는데 본서의 목적이 있다.

 

7. 핵심단어: 알다, 사랑, 아들, 사귐, 어두움, 빛, 영, 쓰다. 아버지, 자녀들아, 믿다

요절:1:17

 

 

 

 

 

 

 

 

 

 

 

 

 

 

 

 

 

 

 

 

 

 

제목: 요한 3서

 

중심사상:

성도의 신앙생활에 대해 권면하고 있다. 가이오의 관대함에 대한 칭찬과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비판하고 데메드리오의 모범을 칭찬하고 있다.

 

저자:

이 서신은 사도 요한의 두 제자였던 교부 폴리캅과 파피아스에 의해 인용되고 있다. 또한 이 서신은 폴리캅의 제자였던 이레니우스에 의해 서신으로서 인용되었다. 알렉산드이아의 클레멘트와 터툴리안은 이 서신을 자유롭게 인용했으며, 무라토리 단편에도 이것이 언급되어 있고, 구 시리아 역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 서신의 내적인 성향이나 특징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 서신의 저자가 제4복음서의 저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점을 확신케 한다. 이 서신과 제4복음서는 인간의 모든 정황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동일한 기독교적 신앙의 범주들을 채택하고 있는 바, 빛과 어둠, 진리와 거짓, 선과 악, 사랑과 미움, 생명과 죽음, 하나님과 악마 등이다. 이렇듯 두 책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라이트푸트 주교는 요한 서신이 요한복음의 후기로 기록되었다고 말하였다. (엑셀/ J. A. McClymont, D.D.)

 

목적:

요한 3서에서는 이단 사상이나 그 비판은 없고 다만 가이오에 대한 사도요한의 사랑과 기도를 알려주고 교회에 말썽이 되고있는 디오드레베를 본받지 말고 데메드리오 같은 이의 본을 따르라고 권고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즉 본서의 목적은 11절에 잘 나타나 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그뿐 아니라 사도요한의 방문계획도 도한 알려주고 있다.

 

핵심단어: 진리, 행하다, 받다, 선한 것, 악한 일, 일, 증거 요절:2:4

 

 

 

 

 

 

 

 

 

 

 

 

 

 

 

 

 

 

 

 

 

 

1. 제목(명칭의 유래): 유다서

 

2. 중심내용:

영지주의의 비윤리적인 삶을 경고하며 성도로서 선한 삶을 권고하고 있다.

 

3. 저자: 저자 및 저작시기

일반서신(또는 공동서신) 가운데 마지막 서신인 유다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이 주장의 진정성에 관한 논쟁은 유세비우스에게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되었는데, 그는 히브리서와 아울러 본 서신을 의심스러운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역사적 증거 및 내적 증거가 본서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마13:55과 막6:3은 유다와 야고보를 예수님의 형제라고 부르고 있는데 본 서신에서 야고보가 간단히 소개되는 것은 그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였다는 증거이다.

 

4. 특징:1. 유다가 이 서신에서 사용한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은 그가 경고와 책망을 하기에 정당한 자격이 있음을 나타내 준다. 교훈을 하고 위로를 베푸는 것만이 성직자의 의무는 아니다. 설교에는 경고와 비난의 영역도 또한 있으며, 성직자로서의 성실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분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책망을 하기 위해 언짢고 상스러운 말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 우리는 오만과 무례함의 자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겸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독설을 사용하지 않으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성실로써 경고와 책망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2. 한편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에 상당한 정도까지 이르렀다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유다가 경고와 비난의 말을 하고 있다는 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다. 유다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입어서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성숙한 이들에게도 그들이 참고 견뎌내야 할 시련과 믿음의 훈련이 필요했다. 그러한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순수함을 더럽히고 파괴시키는 죄악에 감염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자신이 결코 타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하는 사람은 끝까지 죄를 경계하고 자신을 삼가지 못한다.

3. 유다는 경고와 책망의 말을 하면서 그들에게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넘치기를 함께 소망하였다. 호된 꾸지람 후에는 관용을 함께 베풀었으며, 이것이 바로 사랑의 증거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어떠한 성격이나 상황에 대해서도 성실히 사랑을 베풀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추위와 눈보라의 한가운데서 우리의 동행자에게 갑자기 무기력함이 엄습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우리가 그를 그 상황에서 구해 주었다는 이유로 그가 우리에게 화를 낸다면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죄악으로부터 구해내려는 시도에 대해 감사의 고백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죄악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거나 죄악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하찮게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엑셀/ W. Muir, D. D.)

 

5. 시대(역사적 배경): 저작 연대는 확실하게 결정될 수 없지만 주후 1세기 후반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부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본서는 무라토리 정경 (1740년에 무라토리에 의해 발견된 라틴어 사본이며 주후 2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된다)에 수록되어 있으며, 주후 3세기의 교부들인 터틀리안, 클레멘트, 오리겐 등에 의해 언급되었다. 유다서는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한 에녹서와 모세의 승천기를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지위가 격하(格下) 되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으나, 주후 350년에 이르러 정경에 포함될 자격이 널리 인정되었다.

 

6. 기록목적: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일반 서신인 유다서는 이단인 영지주의에 대해 경고하며,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권위에 대한 저항, 불경, 주제넘은 언동, 방탕한 정신 등의 범죄에 대하여 책망하며, 불안정한 신자들을 미혹하고 주님의 식탁을 더럽히는 거짓 교사들을 꾸짖기 위해서 이다.

 

7. 핵심단어: 기억하다, 지키다, 경건치 않는, 사랑하는자, 심판

요 절: 1:3하, 21

 

 

 

 

1. 제목(명칭의 유래): 요한계시록

 

2. 중심내용: 요한계시록은 예언서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자신의 왕권을 확립하시겠다고 선포하신 뜻의 실행을 반대하고 방해하기 위하여 사단이 주관하고 계속적이며 점차 격렬해지는 범세계적 규모의 시도들을 특별히 강조한다. 그러한 강조는 이 싸움이 악의 세력의 완전 멸망과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의 수립으로 종결지을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해준다. 이 오랜 싸움은 크고 흰 보좌 앞에서의 최후 심판, 새 예루살렘의 출현 및 영원함의 시작으로 끝나게 된다.

 

3. 저자: 사도 요한을 저자로 입증하는 여러 자료들이 있는데 (1)네번에 걸쳐 저자의 이름이 게재된다(1:1, 4, 9; 22:8). (2)주후 2세기 전반에 이미 교회는 요한이 저자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는 '유대인 드리보와의 대화 (Dialogue With Tryp-ho the Jew)' 제81장에서 "또한 그리스도의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요한이라 하는 자가 우리와 함께 했는데, 그리스도께서 계시 중에 그로 하여 ... "라고 솔직히 진술하고 있다. (3)본서의 특색이 무엇이든지 간에 요한복음과 묵시록의 어휘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유사점들이 있다.

 

4. 특징: 성 어거스틴은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현상 가운데는 우연히 일어나거나 원인 없이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섭리는 마침내 순결하고 거룩하며, 공의롭고 진실한 것이 승리하도록 모든 것을 인도하고, 조정하며, 통제한다.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순종하는 자마다 선택받은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도성”으로 들어간다. 그런 반면 그 옆에는 다음과 같이 저속한 자들로- 성도에 대한 멸시와 폭력 그리고 핍박을 일삼는- 가득 차 있는,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 세상의 도시가 있다. 동쪽의 바벨론이나 서쪽의 로마가 바로 그러한 성읍이었다. 그것들은 모두가 제국의 수도들로 하나님의 계시를 각각 전해야 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은 전 세계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땅히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어야 했다. 구약의 율법이 신약에 대한 예비적 역할을 해왔던 것처럼 그전까지의 모든 세계 역사는 로마와 그리스도의 강림이라는 대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그리스도 강림 후의 모든 사건은 우리의 최후 승리와 기독교 신앙의 보편적 원리에 맞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가 이처럼 중요한 개념을 의식할 때, 우리는 표면적으로 다른 것들과 서로 상층되는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해석들이 결국은 일치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계시록에 예언되어 있는 것들의 완전한 성취로 간주되는 계속적인 역사적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와 세상을 다스리시고 계시다는 하나의 단순한 실증-말하자면, 하나의 예에 불과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계시록에 근거한 역사의 해석 방법은 대체로 3가지로 분류된다. 그것은 과거주의파와 역사주의파 내지는 연속주의파, 그리고 미래주의파의 견해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다 성 어거스틴이 앞에서 언급한 대개념을 중요한 원리로 인정하는 역사적 해석방법을 첨가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해석 원리에 대해 그것을 ‘영적’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에브라드는 이렇게 말하였다. “계시록은 거짓된 예언이나 우연한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지 않으며, 그리스도와 그 대적간의 투쟁에 등장하는 주도적인 세력에 관한 경고이며, 위로의 예언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시대의 인간을 향해 적그리스도에 대해 철저히 무장할 것을 경고하는 훈계로 가득 차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핍박받고 있는 세상의 교회가 놀라운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엑셀/ Archdeacon Lee.)

 

5. 시대(역사적 배경): 기록시기에 관하여는 여러 설이 있으나 사도 요한이 도미티안 황제(주후81-96)에 의해 밧모 섬(1:9)에 유배되었으며 그의 유배 시기인 도미티안 황제의 재위 14년인 주후 95년으로 잡는다. 이것은 초대 교회의 이레니우스의 견해에 부합될 뿐만 아니라 황제 숭배를 강요했고, A.D. 92년에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이 심했다는 역사가인 플리니의 말과도 일치한다.

 

6. 기록목적: 첫 장의(1:1-3) 말처럼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다.

7. 핵심단어: 어린 양(29), 보좌(44) 요절 1:19:1:1
 출처 :다니엘 영재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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