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성탄절 예화

하나님아들 2024. 5. 12. 00:00

성탄절 예화

 

방 없어요



미국 어느 작은 마을에 윌리라고 불리는 9세 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나이로는 4학년이지만 지적 능력이 다소 떨어져 2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그해 성탄절 연극에 윌리는 여관집 주인 역을 맡았다. 성탄절이 되어 교회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연극 중에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으로 다가와 여관집 문을 두드렸다. 주인이 나와 여관에 방이 없으니 다른 곳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더욱 간절히 간청하였다. "우리는 너무 멀리서 왔습니다. 아내는 출산할 날이 찼고 쉬어야 할 곳이 필요합니다." 그러자 여관 주인으로 분장한 윌리는 말도 없이 마리아를 오래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윌리가 대사를 잊은 줄 알고 자꾸 읽어 주었다. 한동안 말없이 서 있던 윌리는 "안돼요. 방 없어요. 가요!" 요셉과 마리아는 슬픈 듯이 뒤로 돌아 걸어갔다. 이때였다. 각본과 상관없이 윌리는 문간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요셉, 마리아! 가지 말아요. 마리아를 데리고 돌아와요.", "내 안방을 써요. 내 방에서 쉬란 말이에요!" 물론 각본에도 없는 대사였다. 연극은 그것으로 엉망이 되고 말았지만 이 장면을 지켜 본 수많은 관중은 가장 뜻깊은 성탄 연극을 보았다고 말했다.


루돌프 사슴코

미국의 작가 메이는 젊은 시절을 어렵게 보낸 사람이다. 동화작가로 성공하려고 노력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의 글은 이름도 없는 잡지에나 겨우 실릴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병을 얻어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런 고난의 터널 가운데서 동화 한 편을 발표했다. 성탄절이 되면 즐겨 부르는 '루돌프 사슴코'의 이야기이다.
루돌프는 유난히 코가 붉어 친구 사슴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사슴이었다. 못생긴 빨간 코 때문에 외톨이가 되어 외롭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마을 산타가 찾아왔다. 썰매를 끌어줄 사슴을 뽑기 위해 온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저마다 영광스런 산타 썰매를 끄는 일에 뽑히려고 모여 들었는데 뜻밖에도 루돌프가 뽑혔다. 루돌프가 뽑힌 것은 강한 다리와 무엇보다도 붉은 코 때문이었다. 빨간 코가 산타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루돌프는 친구 사슴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산타의 썰매를 끌고 선물꾸러미를 나누어주는 신나는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붉은 코 루돌프 사슴은 곧 작자 자신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붉은 코 때문에 소외당하며 살았던 루돌프 사슴에게 산타가 찾아와 썰매를 끌고 선물을 나누어 주는 신나는 일을 하도록 한 것처럼 우리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 가운데 죄로 인해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오셨고 짐을 벗어버리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구원으로 오셨다.

성탄절 밤의 이적

어느 추운 겨울, 함박눈이 몹시 내리는 성탄절 날이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남편을 따라 성탄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며 아내는 계속 의심을 토해 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실 수 있지? 난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을수가 없어요!" 남편은 의심하는 아내에게 계속 설명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집 문앞에 이르러 이상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참새들이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먹이를 얻지 못해 집 문앞에 비실비실 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얼른 집으로 들어가 먹이를 가져와서는 새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푸드득 하며 날아 가 버렸습니다. 남편은 실망하여 "새들아! 난 너희들을 해하려는 것이 아니야, 이것을 먹지 않으면 너희들은 굶어서 얼어 죽는다구......" 새들이 사람의 말을 들을리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날아가는 새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뜻을 어떻게 너희에게 전할 수 있겠니? 내가 새가 되지 않고서는 ......"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내의 뇌리에
번쩍 무엇인가 스쳐 갔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속 사랑을 배풀었지만 인간들은 하나님 품을 떠났던거야.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께달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것이야. 그리고 그 사랑을 십자가로 표현 하셨던 거야......" 아내는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가 기도 하였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 : 14)



예수 탄생하셨는데



본문 : 마태복음 2장 1 절- 8 절

오래전에 영국 런던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런던 교 외 한 농가를 지나가던 일행 중 한 사람이 농가 주인에게 우산을 하나만 빌릴 수 있겠느냐고 청했 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우산을 빌려 달라고 하니 안 빌려줄 수는 없고 해서 자기가 쓰던 우산 중에서 다 부러진 낡은 우산 하나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인인 한 여인에게 그 우 산을 씌워주고 거기를 떠났습니다. 며칠 후 어떤 사람이 아주 예쁘게 포장된 편지와 함께 그가 주 었던 우산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라는 정중한 인사와 함께 우산을 빌렸던 여인의 사인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왕 엘리자베스 라고 사인이 되어 있었습니 다. 농부는 얼마나 가슴을 치며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줄 알았더라면 내가 정성을 다해서 그 분을 영접했을 것인데, 그 분에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우산을 드렸을 텐데… 오래 전 영국 런던 교외 어느 허름한 농가에서 여왕을 알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던 이 비극적인 실수가 성탄을 맞이했던 팔레스틴 땅에도 일어났습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서 유대 땅에 오셨지만 이 사건의 엄청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 분을 만날 수 있었던 특권을 잃어 버렸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평화의 아기



20세기는 인류가 싸운 100년이었다. 영국에서 발행한 ‘평화 속에 전쟁’이란 보고에 의하면 세계2차대전 후만도 100개국에서 130건의 분규가 있었고 3500만 명이 전쟁으로 희생되었다고 한다. 1차 대전에서만 1000만 명이 죽었고 2차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에서 약 5000만 명이 희생되었다. 인류는 20세기 100년 동안에 세 가지 사실을 배웠는데 이데올로기보다 자유가 낫다는 것과 자원보다 두뇌가 낫다는 것과 대립보다 공존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립이란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 너는 나를 따라야 한다’는 교만에서 나온다. 그러나 공존은 ‘함께 살자. 피차 돕고 의지하자. 함께 잘 되자’는 형제애 정신에서 나온다. 놀랍게도 하나님 자신이 이런 생각을 가지시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공존이란 이름을 붙여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말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평화의 고시였다.
옛날 인도네시아의 이리안 자야 족에 전도한 단 리처드슨 선교사의 이야기는 유명한 선교 사화이다. 그때는 아직 자야 섬에 식인족이 있을 때였다. 그들은 부족간의 싸움이 심하였다. 서로 싸우다가 만일 화해를 청할 때는 자기 마을의 갓난 아기 하나를 적군에게 제물로 주는 관습이 있었다. 이 아기를 ‘평화의 아기’라고 불렀다. 리처드슨 선교사가 이 섬에 도착한지 이태가 되던 해 다시 부족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인 부부가 아기를 안고 언덕에 나타났다. 대치하고 있던 그들은 놀란 눈으로 이 서양인들을 지켜 보았다.선교사 부부는 갓난 자신들의 아기를 ‘평화의 아기’로서 내놓은 것이다. 쌍방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공격의 외침이 아니라 평화의 도래를 가리키는 기쁨의 소리였다. 기독교를 전적으로 거부하고 있던 이리안 자야 족속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유명한 이야기이다.
아기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위하여 오신 평화의 아기시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증오의 벽을 허물기 위하여 오신 평화의 아기이시다. 예수가 탄생되었을 때는 참으로 어수선한 시대였다. 만일 그 당시 신문이 있었다면 아마도 이런 헤드라인들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헤롯왕 재혼, 왕비의 호소 일축되다!”“로마 황제 세금 인상 위해 유다 전역에 인구조사 지시” 이런 때에 팔레스타인 한 구석 목동의 마을에 평화의 왕이 한 아기의 모습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한국전쟁 때 미군 병사 존 토스네스가 참호에서 밤을 새우는데 갑자기 한국인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총을 들이대자 그들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그것은 평화를 노래하는 천사의 음성이었다”고 간증하였다.



빈민촌의 왕자

어느 날 젊은 왕자가 말을 타고 빈민촌을 지나가다가 아름다운 여성을 보았다. 그 후로 왕자는 항상 그 여인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그 빈민촌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왕자는 어떻게 하면 그 여인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만일 내가 왕자 신분으로 나타난다면 그 여인은 도망칠 것이 분명해. 그녀도 나를 사랑할까? 어떻게 해야 그녀에게 환심을 살 수 있을까? 과연 그녀는 미래에 임금이 될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할까? 농부로 가장하고 그녀 앞에 나타나 볼까?'
그러던 어느 날 왕자는 궁전에서 입는 옷을 벗어버리고 그녀가 사는 이웃 가까이 이사를 하여 거기서 목수 일을 직업으로 삼으며 생활했다. 왕자는 일을 마치면 마을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생활 풍습을 배워 그들과 아주 친해졌다. 그렇게 그 마을 사람들과 침해지는 동안 자연히 그 여인과도 만나게 되었고 친해질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얼마 후 그 여인이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생각되었을 때 비로소 그는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아려 주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자기 사랑을 보이시기 위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의 사랑을 외면하겠는가?

크리스마스 찬가



놀라와라 눈부시어라,
하늘의 당신이
어떻게 이 땅의 아기로 오셨습니까.
어떻게 하늘 보좌에서
가난한 시골 말구유로 옮겨오셨습니까.
고마워라 가슴 설레어라,
하나님 당신이
어찌 미천한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친히 오셨습니까.
낭패한 우리를 위로하고 용서하시려고
병든 우리 대신 아프시고 곤욕을 치루시려고,
죄많은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을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해마다 당신은 강보에 쌓여
어여삐 오십니까.
냉냉하게 식어가는 우리들 품안에
추운 겨울 한 밤중에 오십니까.
눈물겨워라 가슴 뛰어라,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
임성숙


나눔 섬김으로 최고의 성탄을 열자

자크 아탈리는 19세기는 자유의 시대요, 20세기는 평등의 시대요, 21세기는 사랑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꼭 맞는 말은 아니지만 공감이 갑니다. 지난 세기가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는 시대였는데 왜 혼란과 갈등과 전쟁이 그렇게도 많은 시기였는가 반문하며 반성해 봅시다. 그것은 사랑이 부족한 자유, 사랑이 부족한 평등의 추구였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자유는 방종과 타락을 가져오고 사랑이 없는 평등은 폭력과 대립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자유와 평등은 사랑의 바탕에서만 평화롭게 정착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는 사랑의 시대가 되어야만 합니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현재를 위기문명이라고 진단하면서 생존조건으로 인류가 하나되는 통일정부 수립과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함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바탕은 사랑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요한1서 4장을 인용하였습니다.“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 안에서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느니라”
새시대가 사랑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미래학자와 역사학자의 이야기인 동시에 그 이전에 이미 성서에 계시된 말씀입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거리에는 캐럴이 울려퍼지고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러 이 땅에 오셨으며 사랑과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섬기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새 세기가 되었으나 그 첫해부터 온세계는 테러와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사랑의 주님을 본받아 섬기는 삶을 살므로 이 땅에 자유와 평등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참된 평화와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새벽송이 듣고싶다

성탄절 새벽을 깨우던 새벽송이 사라진지 오래다. 흥청거리는 연말 분위기를 바로잡는다는 구실로 군사정권 시절 성탄 캐럴도,성탄 장식도 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 분위기에 주눅든 교회들마저 마치 죄지은 사람 생일잔치하듯 조용한 성탄절을 내세우며 움츠렸던 때가 있었다.
그때 필자는 “이래선 안된다 축제가 있고 노래가 있고 감동이 있는 성탄절을 회복해야 된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교회학교 아이들 가정을 대상으로 새벽송을 부활시켰고 12월 첫 주일이면 교회 안과 밖에 장식을 끝내고 점등식을 가지는 등 성탄절 축제를 벌였다. 물론 성탄절을 상품화하거나 주인 없는 생일잔치로 전락시키는 것은 반대다. 그러나 교회가 앞장서서 성탄축제의 불을 꺼서는 안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호호 불며 이 동네 저 동네를 돌며 불렀던 새벽송 소리가 그립다.황금문명의 불빛에 밀려버린 사랑의 호롱불빛이 그립다.우리 모두 작은 불빛이 되고 함께 노래가 되어 세상을 밝히고 울리는 소리가 되어야 한다.


역사상 최초의 캐롤은?

역사상 최초의 캐럴은 천사들이 불렀다. 천사들이 예수의 탄생을 알리며 “하늘엔 영광,땅에는 평화”라며 부른 찬양이야말로 최초이자 최고의 캐럴이다.
캐럴이란 말은 피리 연주에 맞춰 추는 춤을 일컫는 헬라어 ‘choraulien’에서 기원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이런 종류의 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중세시대까지 프랑스 남부에서 ‘캐럴’은 원을 돌며 추는 춤을 뜻했다.
12세기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가 마구간 앞에서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행사를 연 것이 오늘날 캐럴의 시초다.중세시대 교회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엄격한 형식의 성가로 제한되면서 민간에서 흥겨운 캐럴이 유행하게 됐다. 17세기 청교도 운동 당시에는 캐럴이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성탄절을 앞두고 마을 광장에 성가대가 모여 지나가는 행인들을 위해 캐럴과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찬양을 즐겨 불렀다. 요즘도 12월에 영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거리 곳곳에서 캐럴을 부르는 찬양대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성탄예배에도 꼭 캐럴 공연이 곁들여진다.
옥스퍼드 사전은 캐럴을 ‘단순하고 유쾌하며 부드럽게 유행되는 현대적이며 종교적인 노래’라고 정의하고 있다.
요즘에는 코미디언들도 캐럴 음반을 내며 성탄절 분위기를 돋운다. 예수 탄생의 기쁨을 더 많은 사람이 즐기는 것은 좋지만 흥겨움에 취해 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를 잊어선 안될 것이다.


크리스마스 선물

10여년전 김사장은 집에 틀어박혀 앉아 술과 담배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사업은 부도가 나고 되는 일이 없었다.가족 친구 등을 만나기 싫었다.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그저 하루에 담배를 3갑씩이나 피우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어느날 아들과 딸이 김사장에게 이야기했다.“아빠,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 해주세요” 아이들의 말에 김사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크리스마스 선물,그래 아빠가 어떤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줄까?” 아이들은 “아빠 꼭 해주셔야 해요”하면서 “아빠,크리스마스 선물로 담배를 끊어주세요. 아빠의 건강이 저희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에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김사장은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김사장은 고마움과 더불어 미안함을 느꼈다.“그래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빠가 오늘부터 담배를 끊겠다” 김사장은 가족들 앞에서 담배를 끊겠다고 굳게 공약했다. 가족은 박수을 치면서 좋아했다. 모처럼 가정에 생기가 감돌았다.
다음날부터 김사장은 담배를 끊었다. 담배 생각이 나면 가족을 생각했다.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꼭 주겠다고 결심했다. 그 이후 김사장은 담배를 끊은 것은 물론 사업도 재기할 수 있었다. 가족에게 줄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라. 물건만이 선물이 아니다. 공약을 가족 앞에서 하라.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될 것이다.




전쟁 중의 성탄절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성탄절을 맞아 영국과 독일 병사들은 서로 합의한 바도 없이, 성탄 저녁에 쌍방의 병사가 싸움을 중단하고 며칠 동안을 서로 친구같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유명한 작가인 처킨스와 타카리 두 사람은 싸운 일 때문에 오랫동안 서로 대화를 끊고 지냈다. 성탄 맞을 즈음에 타카리는 이런 일이 예수 정신이 아닌 줄 알고서 처킨스에게 가서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였다.
그 때 처킨스의 말이 자신도 똑같이 생각되어 그 대에게 가서 고백하고자 했다고 대답했다. 그 후에 두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되었다. 성탄의 정신은 합심하지 못한 여러 가정의 부부나, 혹은 자녀들을 화합하게 함에 있다


선행은 행복한 삶의 열쇠다


미국의 기독실업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아더 미다스 장로가 있다.
그는 한때 미국의 10대 재벌 중 한 사람이었다.미
다스 장로는 한국의 대학생 선교단체에 50만달러를 기증했다.
또 7억달러를 쾌척해 선교재단을 설립하는 등 남을 돕는 일
에 많은 물질을 사용했다.어느 날,그는 한 기자로부터 신앙과 인생의 성공비결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
다.

“내게는 아주 간단한 다섯 가지의 인생철학이 있다.첫째는 주일성수,둘째는 온전한 십일조다.셋째는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로 시작하는 것,넷째는 내 가정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모셔들이는 것이다.
다섯째는 시간과 돈을 선한 사업에 사용하
려고 노력했다.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원하신다.
다만 우리가 그 뜻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풍요로
운 삶을 누리지 못한다”

선행은 행복한 삶의 열쇠다.이기적인 부자에게 ‘풍요’는 있어도 ‘행복’은 없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마음

미국 워싱턴대학의 토머스 홈스 교수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때를 조사했더니 가장 큰 변화가 오는
것은 배우자가 죽었을 때였다.이 경우를 100으로 하고 그밖의 다른 경우들을 점수화했는데 이혼의 경우가 73,임신했을
때가 40,집을 옮기거나 고쳤을 때가 25였다.그런데 놀라운 것은 크리스마스가 무려 12나 된다는 것이었다.매년 맞이하
는 크리스마스는 마침 연말과 겹쳐 무엇인가 마음의 변화를 가져 오기 쉬운 때이다.

아직도 이 땅에는 예수 없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그러나 만일 크리스마스를 즐거운 파티 기분
으로만 넘긴다면 그것은 예수 탄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나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주지 못하는 허망한 시간이
되고 말 것이다.낮은데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하신 깊고 높은 뜻을 헤아려 그 사랑을 실천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
다.

성탄절에 우리 모두의 마음이 작은 구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탄절 자료

크리스마스 선물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의 작품 '크리스마스 선물'이 생각난다. 한 도시에 가난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부부 짐과 델라가 살았다. 성탄절이 다가오자 두 사람은 각각 걱정이 되었다. 서로에게 선물은 하고 싶은데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 짐은 아내의 긴머리에 꽂을 머리핀을 사기로 마음먹고 갖고 있던 시계를 팔기로 결정했다. 아내 델라는 남편에게 시계줄을 선물하기로 하고 자신의 긴 머리를 잘라 팔았다.
두 사람은 시장으로 나가 선물을 구입했다. 짐과 델라는 서로를 기쁘게 할 마음으로 거의 같은 시간 집에 도착했다. 짐은 머리핀을 들고 아내의 머리에 꽂아 주려고 했으나 아내의 머리는 이미 짧게 깎여 있었다. 델라 역시 시계줄을 들고 있었으나 남편에겐 이미 그 시계가 없었다. 준비된 선물은 쓸모 없게 됐지만 둘은 곧 부둥켜안고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사랑은 추위를 녹인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넘치게 나누는 성탄절이 되길 기도하자.

기쁨

한국의 슈바이처인 장기려 박사는 의학을 공부한 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헌신적인 진료를 했다. 그는 80회 생일을 맞았을 때 몇 가지 생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했다.
첫째는 결혼한 후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이 주신 아들로 천하를 얻은 기쁨이었다고 감사했다. 둘째는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했을 때 민족 감정에 의해 기뻐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졌을 때의 기쁨에 비교하면 위의 기쁨은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이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죽음의 세계로부터 우리들을 해방시켜 주고 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2:14)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번 성탄절에 이 평화와 기쁨이 온누리에 임하기를 기도한다.(고수철 목사)

잃어버린 크리스마스

현대인들에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잃어버린 채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세속 문화가 날로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날. 이 날 우리가 누리는 기쁨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의 아픔 위에 생겨난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종은 언제 울리나



먼 옛날 어떤 나라 도시 한복판에 교회가 있었고 종탑이 높
다랗게 있었다. 종탑에는 종은 있으나 종을 치는 줄은 없었
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종은 성탄절 아기 예
수께 가장 값진 선물을 드릴 때 저절로 울린다고 한다. 그래
서 많은 사람들이,부자가,왕이, 값진 선물을 바쳤으나 종소
리를 듣지 못했다. 어느 해 성탄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물
을 바쳐 종소리를 들으려고 몰려들었다. 어떤 사람은 보석을
어떤 사람은 금화를 가득히, 어떤 작가는 자기의 책을,심지
어 왕은 자신의 왕관을 바쳤다. 그러나 종탑에서는 바람소리
뿐이었다. 사람들은 종소리에 대하여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성가대가 마지막 찬송을 부르려 할 때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토록 아름다운 종소리를 울리게 한 것은 눈길에 쓰러진
사람을 구해주느라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던 형 대신에 아기
예수께 은전 하나를 예물로 바친 동생의 손길을 통해서 였다.




참 기쁨


1942년 성탄절 때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중국의 북경에 있는 엑스베리교회의 버튼 청 목사님이 중국 사람들 만으로 만들어진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을 때 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되어 헨델의 메시아를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연습하고 있는 동안에 갑자기 소프라노를 맡은 여자대원 중 한 사람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빠진 대원대신 소프파노를 맡을 사람을 금방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청 목사님의 입장은 매우곤란 했습니다. 그때 다행히 청 목사님은 일본인 선교사 부인 중에 소프라노를 썩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북경은 연합군의 점령하에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그 지시대로 살고 있었으므로 침략자인 일본 사람을 중국 사람으로 구성된 합창단에 같이 넣는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침략한 나라인 일본에 대하여 감정이 좋지 않을때 인지라 청 목사님도 여러 가지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 목사님은 일본인 선교사 부인이 합창대에 들어오도록 하는 승락을 받았습니다.
성탄 축하 음악회가 열리는 밤이었습니다. 일본인 부인은 중국인 합창대에 섰여 헨델의 메시야를 불렀습니다. 일본 부인은 평화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월등히 많은 대원들 가운데서도 맡은 일을 충실히 잘 해내었습니다. 많은 관중들은 얼마동안 일본인 부인에 대하여 흥분하여 야단스럽게 법석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일본인 선교사의 부인은 겸손함으로 힘있는 용기를 발휘 하였습니다. 부인의 겸손과 용기에 모든 관중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정복 당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관중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곧 세계적인 평화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국가적인 하나의 감정으로써 그리스도의 마음을 섭섭하데 할 수 없다는 마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사랑의 정신은 일본인 부인을 통하여 온 관중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관중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은 곧 국가의 충성심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청 목사님은 이 기쁨 속에서 즐겁게 다음의 찬양을 ,지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중적인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지휘봉은 힘차게 성가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주는 기쁨
 

성탄절날 아침 보브와 누이 베티는 아주 시무룩 했어요.
왜냐하면 모든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는 이 아침에 그들에게는 아무런 선물도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며칠전, 멀리 떨어진 아버지께로부터 온 편지에 의하면 어머님의 병환 때문에 성탄절을 같이 지낼 수 없다는 것이며 때문에 아무런 선물도 못 보내서 미안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들은 삼촌 벤의 농장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가까이 친구들도 없어서 쓸쓸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누나 베티는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보브를 달래기 시작했요.
"얘 보브야 ! 우리에게 비록 선물이 없어도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나으셨다니 그게 제일 좋은 선물이 아닐까?: 하면서 달래 버았지만 보브는 역시 시무룩 하기만 했어요.
조금 후 베티는 어떻게 하면 멋진 성탄을 지낼까 생각하다 좋은 방법을 발견했어요. 그것은 쓸쓸하게 지내는 동물들-소, 말, 고양이, 양들을 위해 츄리를 세우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들을 위해 파티를 여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둘은 츄리를 만드느라 매우 바쁜 아침을 보냈어요. 정원에다 조그만 나무를 캐서 세우고 여러가지 카드를 붙였어요.
그리고 옥수수대를 소에게 갖다 주고, 말에게는 당근을, 고양이에게 생선을, 양들에게는 시금치들을 갖다주었어요. 동물들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랐어요. 보브와 베티에게는 이제 선물같은 것은 아무런 상관없이 즐겁기만 했어요.




역사의 주인공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져서 불바
다를 이루고 있을 당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어거스타 선
상의 갑판 위에서 식사를 들고 있었다. 그때 백악관 참모인
프랭크린 그래함(Franklin Grahaam)은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
은 메세지를 건네 주었다. `대통령 각하! 워싱톤 시간으로
8월 6일 7시15분에 일본 히로시마에는 커다란 원자폭탄이 떨
어졌읍니다.`라고 하였다.
트루먼 대통령은 오랜 시간동안 어리벙벙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그 후에 하는 말이 `그래함 참모! 아마도 이것은 인
류 역사를 전환시킬 가장 커다란 사건이군!` 이라고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이 히로시마 원자탄 투하로 인하여 4년간이
나 질질끌던 태평양 전쟁은 끝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트루
먼 대통령은 말을 잘못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전환시킨
가장 큰 사건은 히로시마의 원자탄 투하가 아니라 이 세상에
강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
탄은 인류의 역사를 주님 오시기 이전 시대와 이후의 시대
즉, 주전과 주후로 갈라 놓았다.


 기쁜 소식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
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리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0-11). 성탄이 왜 큰
기쁜 소식일까? 성탄절하면 그 축제무드와 싼타크로스와 캐
롤과 파티와 휴가, 크리스마스 휴전과 크리스마스 특사, 어
려운 이웃들에게 베푸는 구제와 선물들, 사랑의 캠페인 이런
것들이 연상된다.
예수의 복음때문에 당장 지상천국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
람들이 천사처럼 되는것도 아니다. 그런 왕국은 예수재림
이후에야 온다. 그러나 하나님을 영접하는 사람마다 그 독
생자를 선물로 주셨다. 천국은 이미 그 생활속에서 나무처
럼 자라고 있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새 생명은 애기처럼 그
속에 성장하고 있다. 필요한 모든 것은 다 주신다.
복음을 받은 사람은 자연법칙 세계에서 초자연법으로 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사람들이다. 그의 기쁨은 빼앗을 자
가 없다. 절대적인 복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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