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
(약1:26)
<26)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아멘
우리는 지금 교회력으로 2024년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이 사순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을 말하며 이 기간에는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과 부활을 생각하며 근신하고 회개하며 경건 생활에 힘쓰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은혜 되시기 바라며, 남은 사순절기간 동안 경건생활에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1.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은 말에 있습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26)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약3:2절에 보면,
<2)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경건하다 하는 사람이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못하고 말을 함부로 하면 그 경건은 헛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성도의 경건 생활과 말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성숙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를 기록한 말씀인데, 제일 처음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말과 혀에 대한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말과 혀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쓰실 때 먼저 말부터 고치고 쓰셨습니다.
사6:1-8절의 말씀을 보면,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때에 이사야는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5절)고 말합니다.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모습과 그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 돌리는 천사들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서는 이사야의 첫마디는 ‘나는 망하게 되었다. 내게 큰 화가 임했다“는 부정적인 말이었습니다. 이때 천사가 제단에 핀 숯불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을 지집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사6장7-8절에 <7)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나는 망했다고 하던 입술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에 부정한 그의 말부터 고치고 쓰셨습니다.
행2:1-4절에 보면,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임할 때 먼저 혀에 임하여 말을 바꾸신 후 사도들을 쓰셨습니다.
3, 4절에 보면 <3)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말이 바뀌어야 진정한 일꾼으로 쓰임 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신앙의 성숙도를 판가름 할 수 있습니다. 말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인품과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을 어떻게 해야 할 까요?
첫째,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잘 못했습니다” “내가 실수 했습니다” “내 탓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한줄 알면서도, 누가 봐도 뻔히 아는데도 끝까지 잘했다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서 울면 어른들은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문지방을 때리며 “이 나쁜 놈 우리 아기를 왜 넘어지게 했어”라고 문지방을 야단칩니다.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넘어져 울어도 자기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것이 아니라 괜한 돌부리를 야단칩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하니까 “잘못은 네 탓, 잘한 것은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 잘되면 내 탓”... 어른이 돼서도 자기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 남의 탓 만하게 됩니다. (돌 뿌리에 채어서 너무 아파...돌 뿌리가 뭘 잘못했다고 돌부리를 걷어찬다. 자기 발만 더 아프지...)
우리나라 판사들은 부부싸움한 후 이혼하는 사람들 판단해주는데 외국의 판사들보다 열배는 힘들다고 합니다. 서로 자기만 잘했고 잘못은 상대방에게만 있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허물이 없다고 유능한 사람은 아닙니다.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다보면 도전도 있고,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당당히 인정하는 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자기 잘못이나 실수 그리고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 앞에 신속히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둘째,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
엡4:29절입니다.
<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더러운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다른 사람에 대하여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베지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소아과 전문의 정재원 박사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개발한 것입니다. 이 때 처음에 T.V 광고를 이렇게 했습니다. "우유는 해로우니 콩으로 만든 베지밀을 먹으라"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광고가 먹혀들지가 않아서 회사가 도산위기에 몰리자 판매 전략을 바꿨습니다. ‘베지밀 반 우유 반“을 먹으라는 광고를 했더니 이때부터 베지밀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져서 이제는 베지밀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고, 콩으로 만든 우유제품이 많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유 중에는 파스퇴르 우유가 고가 정책을 펴서 활기를 띠면서 돈을 벌어 민족사관 고등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파스테르 회장이 방송에 출연하여 다른 우유는 고름우유라고 비방을 했습니다. 고름우유 논쟁이 얼마나 사회를 시끄럽게 했습니까? 그러면 파스테르 우유가 잘 팔렸어야 하는데, 우유시장 전체가 침체기를 맞았습니다. 파스테르 역시 스럼프에 빠져 오랫동안 고생했습니다. 남을 인정하지 않으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자신에게도 엄청난 피해가 돌아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말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덕담을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입으로 다른 사람을 많이 축복해 주십시오.
자녀들을 많이 축복하십시오. 남편을 많이 축복하십시오. 아내를 많이 축복하십시오. 부모님을 많이 축복하십시오. 성도들끼리 많이 축복하십시오. 그 축복이 상대에게 뿐 아니라 자기에게도 돌아 올 것입니다.
이스라엘 어머니들은 결혼을 앞둔 딸이 행복한 부부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이런 편지를 써서 전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남편을 왕처럼 섬긴다면 너는 여왕이 될 것이다. 만약 남편을 돈이나 벌어오는 하인으로 여긴다면 너도 하녀가 된다. 네가 지나친 자존심과 고집으로 남편을 무시하면 그는 폭력으로 너를 다스릴 것이다. 만일 남편의 친구나 가족이 방문하거든 밝은 표정으로 정성껏 접대하라. 남편은 너를 소중한 보석으로 여길 것이다. 항상 가정에 마음을 두고 남편을 공경하라. 그러면 그가 내 머리에 영광의 관을 씌워줄 것이다.>
사43:4절입니다.
<4)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하나님 눈에 우리가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럽다 하시니.....옆 사람과 한번 해봅시다.
“당신은 존귀한 사람입니다” 보배롭고, 사랑스럽습니다.
넷째, 말을 기도처럼 해야 합니다.
시19:14절입니다.
<14)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은혜롭게 잘합니다. 그런 아름다운 싯구가 어떻게 나올까? 감탄이 나올 정도로 은혜롭습니다. 기도를 듣다보면 믿음이 절로 생기고 감동이 되고 용기가 생깁니다.
그런데 말은 정 반대입니다. 말하는 것을 듣다보면 은혜 다 떨어집니다. 실족할 지경입니다. 이 사람이 정말 믿음 있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말을 거칠고 함부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신앙적인 말을 서슴없이 내뱉습니다. 기도할 때랑은 전혀 딴판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말을 할 때 기도할 때처럼만 한다면 정말 세상이 좋아 질것입니다.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될까요?
우리는 우리의 입으로 하는 모든 말이 주님께 열납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말을 기도처럼 해야 합니다. 성도의 말은 하나님께서 다 들으십시다. 그러므로 성도의 말은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잘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 다. 기도처럼 말해야 합니다.
돈은 함부로 써버린 후 다시 벌면 만회가 되지만, 말을 함부로 하면 만회하기 어렵습니다. 기도처럼 말하는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불신자나 신자나 동일하게 아무 생각 없이 많이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죽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속상해 죽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속이 상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죽겠다는 말을 이어 붙이는 것입니다. “배고파 죽겠다”, “짜증나 죽겠다”, 심지어는 “좋아 죽겠다”, “재미있어 죽겠다”, “행복해 죽겠다”는 말도 합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자살율 1위가 된 것과 말끝마다 “죽겠다”고 말하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이 표현을 못 쓰게 하면 우리나라 자살율도 떨어질 것이라 생각 됩니다.
또 <미치고 환장 하겠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미치는 것도 모자라 환장까지 합니다. 우리나라가 그래서 우울증환자 정신병자가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많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것도 조사해보면 다 나올 겁니다.
우리는 음식만 골라먹지 말고 말도 골라서 해야 합니다. 하루 온종일 불평불만으로 보낸 일은 없는지... 곰곰이 생각 해 봅시다. 아무리 박사학위 열 개를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이요, 성숙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어떻게 말 하는가”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주는 척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건생활은 말에 있습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말을 기도처럼 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은 절제에 있습니다.
벧후1:5-7절입니다.
<5)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절제생활입니다.
초대 기독교에서는 절제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절제 중에 제일은 금식이었는데, 초기 기독교의 사순절의 식사는 저녁 전에 한 끼 식사하는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에는 생선이나 육류뿐만 아니라 우유와 달걀로 만든 음식도 금지시켰습니다. 그리고 연극, 무용, 오락 등도 금지하였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는 것도 금지하였습니다. 대신 예배에 참석하는 것과 기도를 권장하였습니다.
절제의 의미는 사전적으로는 ‘알맞게 조절하는 것’란 뜻입니다. 윤리학적으로는 ‘방종하지 않도록 감성적 욕구를 이성으로 통제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의미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정결하여 우리의 행위를 알맞게 조절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가 기뻐하시는 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에서 절제운동과 기독교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인의 경제적 궁핍을 걱정하여 근검절약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의 건강저해 요인으로 술과 담배 그리고 도박 등을 지목하였습니다. 착하게 신앙생활 잘하다가도 술 먹으면 개가 되어 사람들과 시비가 붙고, 부인 두들겨 패고 하니까 덕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인들에 대한 금주와 금연의 규율을 권면하기 시작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기독교인 민족지도자들은 국채보상운동의 일환으로 전국적으로 절제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24년 8월 28일에는 "조선여자기독교절제연합회"가 이화학당에서 창설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절제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그리고 썩지 않게 보전하는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절제란 모든 육체적 기쁨과 인간에 영합하는 것을 경멸하고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절제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갈5:23절입니다.
<23)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합니다.
절제는 인간에게 필요한 성품이지만 인간 스스로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절제를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고전7:9에는 절제를 육체적 욕망에 대한 극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고전9:25에는 절제를 "악덕에 대한 극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절제란 갈5:21의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대조되는 성령의 역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로서 절제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문제를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의 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내 스스로는 절제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우리 스스로는 절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말도, 돈도, 성질도 모든 것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절제할 수 없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절제가 가능합니다.
우리가 절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감정의 노예가 되어 살기 때문입니다. 감정의 지배를 받아서는 절제할 수 없습니다. 그때그때 기분 때문에 공부하지 못하고, 일을 망치고, 성경 읽기를 포기하고, 기도를 못하고, 낙심하고, 원망하고, 성내며 감정의 노예로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절제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절제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교회의 일꾼들의 자격을 보세요. 감독의 자격을 기록한 디모데전서 3:2에는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라고 하여 절제를 말합니다. 같은 내용의 디도서 1:8에도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라고 합니다.
여성 직분자의 자격을 기록한 디모데전서 3:11에도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고 합니다.
절제는 교회를 섬기는 모든 직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절제가 필요합니다. 먹는 것에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입는 것에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시간을 관리하는데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전 삶에 절제는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필요하지만, 아무리 많이 있지만 절제하지 못하면 없는 것보다 못합니다. 나무에 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물이 너무 많으면 나무가 죽습니다. 약이 건강을 보살피지만 약을 남용하면 해가 됩니다. 사람에게 주신 본능을 적절히 사용하면 선물이지만 지나치면 파멸이 오고, 인간성이 파괴된 동물적으로 사는 인간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든 면에서 절제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알맞게 조절합시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방종하지 맙시다. 우리의 감성적 욕구에 이끌려 살지 맙시다. 우리의 말을 절제하여 우리의 입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달되게 합시다. 우리의 음식을 절제하여 우리의 몸이 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이 되게 합시다. 우리의 의복을 절제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사는 삶이 되게 합시다. 우리의 힘을 절제하여 우리의 남은 힘을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사용하게 합시다. 우리의 시간을 절제하여 우리의 시간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유익한 시간이 되게 합시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은 말에 있습니다.
자기 잘 못을 인정할 줄 아는 말, 은혜 끼치는 말, 타인에 대하여 좋은 말, 말을 기도처럼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은 절제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절제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입으신 것, 잡수신 것, 말씀하신 것, 사신 모든 것이 절제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닮아 그분의 고통에 동참하는 사순절이 됩시다.
사순절뿐만 아니라 매일매일 우리의 삶이 늘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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