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복음
요한계시록 14:6-13
“6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6-13)
서론
‘복음’유앙겔리온,ε?αγγ?λιον은 신약성경 전반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복음’은 명사名辭 자체로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식어修飾語와 관형사冠形詞가 조합을 이루어 그 뜻을 더 빛나게 하거나, 복음의 주체主體를 명확하게 하기도 한다. 다음은 복음서, 역사서, 서신서, 예언서에 다양하게 나타난 용례들이다.
‘천국 복음’(마4:23)으로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1:1), ‘나와 복음’(막 8:35), ‘하나님 나라의 복음’(눅16:16),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행20:24), ‘하나님의 복음’(롬1:1), ‘그의 아들의 복음’(롬1:9), ‘그리스도의 복음’(롬15:19),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고후4:4), ‘너희의 구원의 복음’(엡1:13), ‘우리 주 예수의 복음’(살후1:8), ‘우리의 복음’(살후2:14),‘하나님의 영광의 복음’(딤전1:11) 그리고 ‘영원한 복음’(계14:6)으로 마쳐진다.
‘천국 복음’에서 ‘그리고’ 앞의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까지, 주요 의미는 예수님 초림에 관해서이다. 물론 이 ‘복음’ 안에 재림이 포함되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재림 없이 초림이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유일하게 ‘복음’이 기록된 요한계시록 14장 6절의 ‘영원한 복음’은 그 전에 기록된 ‘복음’과 성격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1) 그 의미하는 바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지만 강조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구절의 문맥을 보면 확연히 구별할 수 있게 된다.
1) 요한계시록 10장 7절에도 ‘복음’(유앙겔리센,ευηγγελισεν)이 등장한다. 그러나 전후 문맥을 보면 일반적 ‘복음’(유앙겔리온,ε?αγγ?λιον)이 갖는 의미와 차이가 있다(“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계10:7)).
전술한바와 같이 요한계시록에서 ‘복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앙겔리온’은 본문에만 나타난다. 이 단어 전후 문장은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로 말씀하고 있다. 헬라어 원문은 ‘에콘타 유앙겔리온 아이오니온 유앙게리사이’?χοντα ε?αγγ?λιον α??νιον ε?αγγελ?σαι이다.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영원한 복음’ε?αγγ?λιον α??νιον, The Eternal Gospel(NIV), The Everlasting Gospel(KJV), An Eternal Gospel(NASB), 성경에 복음이라는 말은 수없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영원한 복음’이라는 용어는 이곳에만 등장한다. 복음 자체가 갖고 있는 뜻이 영원한 것이라는 점과 영생을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익히 알고는 있다. 그러함에도 ‘영원한 복음’이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되지는 않는다. ‘영원한 복음’ 이렇게 두 단어를 묶어서 하나로 부르는 것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복음은 복음인데 ‘영원한 복음’은 무엇을 강조하기 위함일까? 그것은 재림이다. 영원한 복음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신앙을 말한다. 초림과 재림을 함께 전파하는 것을 가리킨다. 초림과 함께 재림을 증거해야 할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깝기 때문이다. 이것이 논지의 당위성이며 목적이다.
결혼을 앞 둔 신부는 그 누가 아닌 오직 신랑만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또한 결혼 약속을 믿고 신랑이 와서 데려가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신랑을 기다리지 않으면 신부가 아니다. 재림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셨기에 믿고 기다려야 한다(계22:20).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명하시는 준비를 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신랑을 맞이하기에 합당하게 준비된 것이 재림의 신앙이다. 바로 영원한 복음을 가진 자이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증거해야 한다. 신부가 누구를 자랑해야하는가? 신랑을 자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은 신부가 신랑을 자랑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앞으로 내가 맞이할 신랑은 이런 분이다”고, 예수를 모르는 불신자에게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고 엉뚱한 곳에 마음이 빼앗겨 있는 신자들에게도 전해야 한다. 이것이 영원한 복음을 가진 자이다. 본고는 ‘영원한 복음’을 제하로 초림과 함께 재림을 전파해야 할 구체적인 성경적 입증을 본문 강해식으로 기술하였다.
본론
1.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다.
영원한 복음, 초림과 재림을 함께 전파해야 할 구체적인 성경적 입증 첫 번째는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세 천사가 등장한다. 6절에 ‘다른 천사’가 첫째 천사. 8절에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둘째 천사. 9절에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셋째천사이다. 이 세 천사가 순서대로 공중을 날아가면서, 차례대로 하나님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 중 첫째 천사가 7절 중간에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라고 증거하고 있다. 둘째 천사도 그 뒤를 이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8절에 소리쳤다. 여기서 ‘큰 성 바벨론’은 지구를 말한다. 이 땅이 ‘무너졌도다’ 역시 심판을 말하고 있다. 10절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라고 셋째 천사가 외친다.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는 하나님이 내리실 재앙을 말한다. 이것을 ‘마시리니’라는 말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 천사가 공히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다. 심판의 시간이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이다.
심판은 무거운 주제이다. 그렇다고 이 주제를 회피하려고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심판받지 말아야하기 때문이다.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는 심판을 알아야 한다. 들어야 한다. 믿어야 한다. 그래야 심판에 빠지는 일에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요한복음 3장 16절 얼마나 귀한 말씀인가? 이 말씀을 가리켜 성경중의 성경이라고까지 한다. 가장 위대한 문장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이어 17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심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다’고 16절에 이어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은 간절하게 우리를 구원하시기 원하신다. 그 간절한 하나님의 마음이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우리에게 나타난 사랑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러함에도 끝까지 그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는 자들은 요한복음 3장 16, 17절에 이어, 18절에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멸망’과 ‘영생’이라는 말이 나오고, 17절에는 ‘심판’과 ‘구원’이라고 했고, 18절에는 ‘심판받지 않을 자’와 ‘심판받을 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서로 대비하면서, 우리에게 “멸망과 심판, 심판받을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영생과 구원을 얻어 심판받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중의 성경이요. 복음중의 복음이며, 보석 같은 말씀인 요한복음 3장 16절에도, 멸망, 심판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용어들보다 영생, 구원이라는 단어가 친숙하다. 가깝게 다가온다. 듣기 좋다. 기쁨으로 받았다. 이것은 좋은 믿음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멸망과 심판을 듣지 않으려하거나,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영생과 구원도 우리에게 현실로 올 것이고. 멸망과 심판도 불신자가 현실로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분명히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이 분명한데도, 왜! 심판에 대하여 들어야 하는가? 마태복음 11장 20-24절에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고 하셨다(마11:20-24).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자들이 회개하지 않을 때, 그들이야말로 심판 날에 '가장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경고하고 계신다. 그들의 교만에 대하여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하신다. 세계에서 인구 비례 예배당이 가장 많고, 교회의 목회자들과 많은 성도들이 복음을 들고 전함에도, 무반응인 사람들이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러므로 듣지 않는 그들에게 찾고 또 찾아 전해야하는 우리의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몸은 교회에 나오고 겉보기에는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듯이 보이지만, 자신의 심령으로 진정 애통하며 자복할 줄 모르는 목이 곧은 교만한 자들이 되지 않도록 늘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돌이켜 보며, 회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회개는 다른 성도의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멸망 받지 않는 영생을 얻은 성도, 심판받지 않는 구원을 얻는 성도가 된다. 심판의 설교를 왜 들어야 하는지를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로마서 8장 1절에 말씀한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로마서 8장 39절에 결론한다. 이렇게 우리가 받은 구원은 완전하다. 그러므로 성도가 받은 구원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심판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성도의 구원은 완전한 것이다. 그럼에도 심판의 메시지를 들을 때, 우리가 받은 구원이 멸망에서 영생으로 옮긴 것임을 더욱 상기하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임을 감사하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이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한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이 회개치 않고, ‘하늘에까지 높아지’는 교만으로 ‘음부에까지 낮아’짐과 같은 종국을 맞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심판의 설교는 믿지 않는 자는 물론이고. 구원받은 자도 들어야 한다. 심판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구원받은 자가 심판을 들어야 할 중요성은 최후의 심판 날이 가까이 오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 18절에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심판은 이미 시작 된 것이다. 지금도 예수 믿는 자는 천국이지만 믿지 않는 자는 지옥이다. 심판은 이렇게 현재 진행이면서, 마지막 심판 최종적인 심판이 있다. 그 날이 바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다.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은 같은 말이다. 재림과 종말 그리고 최종 심판도 같은 말이다. 이 날이 가깝기에 성도들은 심판의 메시지를 듣기 싫어하거나, 피하려 하면 안 된다. 자신은 물론이고 내가 기도하는 모든 이들이 이 심판에 빠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판의 설교를 귀 담아 듣고,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심판의 날이 가깝기 때문이다. 이 자세가 영원한 복음, 초림과 재림을 함께 전파하는 성도의 성경적 자세이다.
2. 심판의 대상에는 예외가 없다.
영원한 복음, 초림과 재림을 함께 전파해야 할 구체적인 성경적 입증 첫 번째는 이렇게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심판의 대상에는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심판을 행하실 때 그것을 피할 자가 없다.
본문 요한계시록 14장 8절에 둘째 천사가 하늘을 날면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외친다. 여기서 ‘큰 성 바벨론’은 지구를 상징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대양육대주가 ‘무너졌다’고 말씀한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반복하며, 이 세상이 종국에는 멸망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심판으로 무너져버린 이 땅에서 피할 자가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 지금 당장 오시지 않고, 앞으로 20-30년 후에 오실 수 있지 않느냐”. 그럴 수도 있다. 언제 오시는 날을 알 수 없으니 그 때 오실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때가서 지구 말고 다른 행성에 살면 예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한다. 일리 있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지금도 화성에 인간이 살 수 있도록 정착촌을 건설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미 1986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우주위원회에서 ‘달·화성 인간정착촌’을 30년 이내에 세운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었다.
근래에는 테슬라모터스Tesla Motors와 스페이스엑스SpaceX CEO인 엘론 머스크Elon Musk,1971-가 이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종말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2015년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니스트 홀먼 젠킨슨 주니어는 ‘구세주Saviour 일런 머스크'라는 이름의 기명 칼럼을 통해, “50년 뒤 우주에 공장과 호텔이 세워지고 화성에 정착촌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스페이스X의 공"이라며, ”인류의 지성이 태양계 너머로까지 확장되는 먼 미래의 후손들은 머스크에게 감사할 것"이라고 칭송에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오바댜 1장 4절에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하셨다. 이 말씀에 보면 네가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 내리리라’고 하신다. 이 온 우주도 누가 만드셨는가?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이 온 우주를 누가 주관하시는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때, 지구 말고 다른 행성에 살지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심판의 대상에는 예외가 없음에도, 심판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 ‘지옥’을 이야기하면, 성도는 예수님 믿고 천국가고 지옥에 가지 않는데도, 지옥 그러면 기분이 유쾌할 수 없다. 안 믿는 사람들은 어떨까? 겉으로는 “지옥 그까지 것 뭐가 대수라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속으로는 뭔가 불안해한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은 “지옥 가면 나만 가나 저렇게 예수 안 믿는 사람들 숱한데”라는 쓸데없는 군중심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쓸데없는 군중심리의 연장으로 심판 같은 말에도 안중에 없는 것이다.
이 심판에 대하여 8절에 ‘음행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이 나온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큰 성 바벨론이’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이 세상에 사는 예수 안 믿는 모든 자들이 ‘음행’의 죄로 하나님 ‘진노의 포도주’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음행’을 먼저 말하고 있는 것은 ‘음행’ 죄는 심판의 죄와 직결된다는 말이다. 음행은 우상숭배이다. 그러므로 ‘음행’에서 빨리 돌이켜야 한다.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예외 없이 음행한 자이다. “나는 하나님만 안 믿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도 없고 나는 나만 믿고 산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으로 믿는 우상숭배자들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우상숭배 즉 음행하는 자이다. 그들은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도 예전에는 모두 우상숭배자들이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 때’는 우리가 예수 믿기 이전을 가리킨다. 예수 믿기 이 전 누구나 다,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마귀를 따랐다’고 말한다. ‘곧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마귀를 따랐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는 에베소서 2장 3절에 무엇이라고 하는가?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전에는 우리 모두도 다 마귀를 따라 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간 자들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 본문의 ‘진노의 포도주’와 같은 말이다. 이렇게 예수 믿기 이전 ‘음행’, ‘우상숭배’, ‘마귀’를 따르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고 멸망 받을 자였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에베소서 2장 4-5절에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서 돌아오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수밖에 없다고 본문에 말씀하고 있다. 이 지구 어디에 살던 설사 다른 행성에 거하는 자들이라도 말이다.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듣지 않는 자들이 너무 많다. 더 많아지는 것 같다. 필자가 중?고등학생시절 한국교회 최고의 부흥을 이루었을 때, 대한민국 인구 4천 만 명이었다. 1983년에 인구 4천 만 명을 돌파했다. 그 때 개신교 성도 수가 1천만 명이었다. 인구의 1/4이었다. 그런데 지금 인구가 5천 만 명인데 개신교 성도 수는 많이 잡아 7백 만 가량이다. 과거 25%에서 14%, 무려 11% 감소한 것이다. 단순히 수로만 놓고 보아도 심판 받을 자가 점 점 더 많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 76%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심판에 대하여 무감각해 하고 있다. 좀 후하게 쳐줘서, 막연히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되었건 음행, 우상숭배, 마귀를 따르는 불순종 자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나라만도 심판에서 피할 수 없는 이들이 76%나 달함으로 보고 기도해야 한다.
“저들이 속히 심판이 임박함으로 알고 그 심판의 자리에서 피함을 얻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목사님에게 권능을 주셔서 설교를 듣는 자들이 회개하고 심판에서 구원 받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한다. “성도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미정착자와 새신자를 돌볼 때 교회로 인도되고 심판에서 구원 받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한다. “교우들 기업과 교회의 재정에 권능을 주셔서 심판에서 구원 받는 역사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많은 물질을 허락 하옵소서!” 기도해야 한다. 이 자세가 영원한 복음, 초림과 재림을 함께 전파하는 성도의 성경적 자세이다.
3. 심판이 시작되면 구원은 없다.
영원한 복음, 초림과 재림을 함께 전파해야 할 구체적인 성경적 입증 첫 번째는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심판의 대상에는 예외가 없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심판이 시작되면 더 이상 구원은 없기 때문이다.
본문 요한계시록 14장 9-10절에 셋째 천사가 하늘을 날면서 큰 음성으로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하였다.
“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계14:9-10)
먼저 ‘짐승’이 등장한다. 짐승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도 좋은 단어가 아니다. 그런데 성경에 등장하는 짐승은 상징인데 이 상징인 짐승의 실제는 적그리스도이다. 지난 금요일 성도들과 함께 신년산상기도회를 위해 한 기도원에 갔다. 그 날 강사가 설교 중에 “적그리스도는 예수를 잘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적그리스도다”라고 했다.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적그리스도는 영어로 ‘안티크라이스트’Antichrist이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자적 의미만 보면,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는데, 방해하는 사람이던, 사상이던, 환경이던 다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짐승은 그러한 것이 아니고, 단일 인격체를 말한다. 장차 종말에 등장할 한 인물이다. 똑같은 인간이나 많은 사람들을 심판에 이르게 할 자이다. 이 자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6장에는 ‘청황색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근데 이 자의 이름이 ‘사망’이다. 짐승, 적그리스도의 또 다른 이름을 성경은 ‘사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이름이 사망이나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고 하였다. 음부는 지옥이다. 적그리스도를 따르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본문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와 같은 말씀이다.
구체적으로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이라고 말씀한다. 짐승 즉, 적그리스도를 따르거나,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는 그 적그리스도의 동상에 절하는 행위를 말한다. 또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666’, ‘육백육십육’ 짐승표 적그리스도의 표를 말한다(계13:16). 이 ‘짐승’으로 상징된 적그리스도는 지금 존재해 있지는 않다. 혹 현존해 있다하더라도 그가 활동할 시기가 아직은 아니다. 본문에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는 이 세상의 종국을 말한다. 그러나 아직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한 것처럼, 마지막 날 예수님 재림 이 전에 등장하여, 성도들을 미혹할 적그리스도도 아직은 출현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지금 알아야 하는 것은 종말의 때 이 자를 따르거나, 이 자를 본 뜬 우상에 경배하거나, 이 자가가 주는 표를 받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짐승, 적그리스도에 미혹되면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지옥 형벌을 말한다.11절에는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고 하였다.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은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적그리스도는 종말에 세계의 영웅이다. 인류를 구할 자이다. 물론 그 정체는 가짜인데 깨어있지 못한 자들은 속게 된다. 이렇게 적그리스도는 마지막 시대에 모든 민족과 나라를 미혹하게 할 자이. 그럼으로 절대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를 따르거나, 그 자를 그리스도로 오인하고, 그 자의 동상에 경배하고, 그의 표를 받아서는 안 된다. 적그리스도를 따르면 곧장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 ‘불과 유황으로 고난’ 받는다. 이 지옥에서 ‘밤낮 쉼을 얻지’못하고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된다. 이 때에는 회개해도 용서받을 수 없다. 그래서 재차 삼차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하셔서 심판을 행하실 때는 끝이다. 적그리스도에 미혹된 죄를 회개해도 용서받을 수 없다. 더 이상 구원은 없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고린도후서 6절 2절에 말씀한다. 지금은 누구나 어떤 죄를 범하였어도 회개하면 다 용서함 얻고 구원을 받는다.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은혜의 시대가 마쳐지고 종말의 때, 배교에 빠져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회개해도 용서 받을 수 없다. 은혜의 시대가 마감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심판이 시작되면, 구원은 더 이상 없기에 우리는 지금 강권해야 한다.
인격으로 대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싫으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강권한다는 말은 상대방이 원치 않아도 말해야 한다. 오늘 본문의 세 천사가 순서대로 하늘을 날면서 차례대로 이 심판을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는 강권이 필요하다. 때로는 강권으로 상대방과 마찰을 빚고, 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차라리 말하지 않은 것이 좋을 뻔하였다”는 생각지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그에게 전하라 예수 믿지 않으면 심판이다”고 하시면, 그에게 전해야 한다. 왜 강권해야 하는가? 안타까우니까 강권하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3장 9절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같이 안타까움을 갖기에 강권하게 되는 것이다. 강권하다가 부딪힘보다 강권으로 심판을 듣지 못해 멸망 받는 자가 되도록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자세가 영원한 복음, 초림과 재림을 함께 전파하는 성도의 성경적 자세이다.
결론
심판이 시간이 이른 이때 우리는 심판의 설교를 들어야 한다. 심판의 메시지를 듣기 싫어하거나 피하려 하면 안 된다. 자신은 물론이고 내가 기도하는 모든 이들이 이 심판에 빠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판의 설교를 귀 담아 듣고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또한 심판에는 예외가 없기에 기도해야 한다. 심판을 피할 수 없음에도 그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들이 속히 심판이 임박함으로 알고, 그 심판의 자리에서 피함을 얻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있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목사님에게 권능을 주셔서 설교를 듣는 자들이 회개하고 심판에서 구원 받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성도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미정착자와 새신자를 돌볼 때 교회로 인도되고 심판에서 구원 받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교우들 기업과 교회의 재정에 권능을 주셔서 심판에서 구원 받는 역사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많은 물질을 허락 하옵소서!”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심판이 시작되면 더 이상 구원은 없기에 강권할 수 있어야 한다. 성령께서 감동하시면 심판을 상대가 듣기 싫어해도 입을 열어야 한다. 강권하다가 부딪힘보다 강권으로 심판을 듣지 못해 멸망 받는 자가 되도록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자세가 영원한 복음, 초림과 재림을 함께 전파하는 성도의 성경적 자세이다.
본문 요한계시록 14장 12절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은 앞 구절들과 연결하면 초림과 재림의 말씀과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영생과 멸망, 구원과 심판을 말한다. 심판을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심판에 빠지는 일에 가까이 가지 않게 된다. 기도해야 된다. 다른 것보다. 심판의 자리에서 구원에 이르도록 말이다. 이러한 권능을 있는 교회 그리고 목사님과 성도님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강권해야 한다. 이러한 데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다’고 말씀한다. 예수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13절에는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하셨다.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죽음에도 복있는 죽음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논술한 바와 같이 예수님을 믿고, 심판받지 않고, 구원받은 자의 죽음이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말씀한다. 구원받은 자의 천국에서 참된 안식을 말한다.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이 땅에서 예수 믿지 않았으면 심판으로 예수 믿었으면 구원으로 그 결과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심판의 설교를 들어야하고 심판의 임박함을 알고 당함을 받는 자가되지 않도록 기도해야하며, 그들에게 강권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영원한 복음을 가진 자이다.
민병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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