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성령님을 존중하는 삶

하나님아들 2024. 2. 26. 23:49

  성령님을 존중하는 삶                                         2011. 9, 4.

 

  존중하는 삶을 사는 자들은 하나님 그분의 말씀 앞에서 겸손한 태도 유지합니다. 이들은 성령의 음성에도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서- 더 큰 계시와 더 충만한 기름부음 가운데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존중하는 삶을 사는 분들은, 날마다 그 속사람이 새로워지고- 그 성숙함은 날로 더해지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 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심령 바른 태도 영적인 축복을 가져오고, 그 축복을 통해서 우리의 은 다시 강건해짐으로- 또한 바르게  수 있는 능력을 받는 겁니다. 사실, 우리는 거듭난 순간부터 이미 경건  모든 능력을 받았습니다. 바른 심령을 유지하는 능력도, 바르게 선택하는 능력도- 모두 받았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의식하고 그 능력을 얼마큼 활용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 의식으로 충만한가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먼저 존중하기를 배워야  대상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존중하는 삶 근본이 되듯이- 우리가 모든 관계 가운데서 승리하는 을 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성령님과의 관계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요한복음14장 16,17절을 보시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하심이요 또 너희 에 계시겠음이라”하신 말씀을 보시면- 성령님은 다른 보혜사로 오신 분입니다. 곧,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 우리 에 오셨으며-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성령님은 너무나 인격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인도해 주실 때, 우리 앞서서 강권적으로 주장하듯이 역사하는  아니심 아셔야 합니다. 도리어 우리가 다가오기 기다리시 온유하고 겸손하신 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너무도 많이 성령님 무시하고 살지만, 성령님은 약속대로 우리를 결코 떠나시지 않는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겸손하게 자리를 내어드리지 않으면,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에 나타나 우리를 돕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삶을 살기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성령님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령님 존중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을 살 수 있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 5장 19-21절을 보시면-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하고”

  이 구절을 보시면, 마치 우리가 성령님 꺼버릴 도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여기서, “소멸하다”는 말은 에베소서 6장 16절에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 소멸하고”에서 나오는- “소멸하다”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즉, 악한 자가 잘못된 생각 불화살을 쏠 때, 믿음의 방패로 그것을 즉시 받아침으로 없애버리듯이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것은 성령께서 내 안에서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역사하실 때, 우리가 그것을 무시해버리거나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존중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가 한 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그 말을 반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성령님의 말씀을 듣고도 무시하거나 거절하거나 하면, 이는 성령님 존중한다고 할 수 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났을 때- 곧, 어떤 깨달음을 주시거나, 어떤 음성을 들었다면, 우리는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성령의 나타나심을 특별하게 여기고, 우리의 잘못 고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그저 “예, 알겠습니다.”라고만 말하고 아무런 변화 이 그대로 산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성령의 음성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높게 여기는 교만한 태도를 가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께서 우리 영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 무엇입니까? 이를 구체적으로 면, 성령님을 소멸하지 않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14장 26절과 16장 13절을 보면, 성령님의 하시는 일 4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님의 하시는 일 1).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2).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3).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4). 장래 일을 알려주십니다. 이 4가지가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주님이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 인도하심 아래서 지속적으로 삶을 교정하면-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항상, 필요한 위로 인도하심 지혜 공급받을 수 있으며- 또, 영적으로 바르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제가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토록 기쁨이 넘쳤었는데- 그 날은 웬일인지 어두운 생각이 몰려오면서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구원의 확신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왜, 이러지? 하나님이 혹 날 버리신 건 아닐까?’하는 의심이 불현듯 몰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때,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이 생각 난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이 떠오르면서- 그 말씀의 의미가 정확히 깨달아졌고, 그러면서 다시는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지 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도 내가 어려울 때마다, 내가 읽었고, 또, 외우고 있던 말씀들이 생각나면서- 많은 어려움들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젊어서 신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때, 등록비를 내야 할 때가 다 되었는데- 아직 학비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순간 마음이 울적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때, 바로 로마서 8장 32절 말씀이 생각난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는 말씀이 생각나면서 마음에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이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응답하실지 전혀 예상할 수 었지만- 아무튼,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의 누님이 제 등록비를 내준 것입니다. 아마 이런 간증은 여러분에게도 많을 것으로 봅니다.

 

  한번은 어떤 지체가 저의 권면을 끝내 듣지 않고, 자기 길을 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 속에 그를 판단하는 불편한 마음이 생겼을 때인데- 제 머리 속에서 불현듯 “역지사지”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는 ‘역지사지’란 사자성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단어가 뇌리에 박힌 것입니다. 이전에도 성령께서 사자성어로 가끔 교훈해 주신 일이 있기 때문에- 저는 얼른 가서 사전을 펴보았습니다. ‘역지사지’란 말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본다는 말입니다. 그 의미가 제 마음에 들어왔을 때, 제 마음에 그 지체를 판단하는 마음이 금세 사라지고 그를 충분히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도 저는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살고자 했고, 그것이  나를 관대(寬大)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성령님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고, 때로 저희를 보호하시고, 위로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설교말씀을 들을 때도, 그 말씀을 통해 새로운 영감이나 계시가 주어질 때, 그것도 또한 성령님께서 지금, 나에게 주시는 성령의 음성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저도 가끔은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저는 ‘지금 저 분이 하시는 말씀이 무슨 내용인지’ 보다는 ‘지금 이 자리에서 저 분을 통해 성령님께서 에게 하시는 말씀 무엇인지’를 들으려고 하셔야 합니다. 어떤 설교를 듣더라도 그 말씀을 가지고 지금 나에게 개인적으로 필요한 메시지 계시해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거기서 나에게 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놓친다면 소용 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의 음성 기대하고 들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설교를 들을 때나, 말씀을 읽을 때, 또한  매 순간마다 영적 직감을 통해,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가르치는 일을 하십니다. 결국 이것을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취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영적 삶의 질 결정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장래 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장래 일 아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인생의 모든 사건을 일일이 다 미리 보여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은 늘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우리의 일부로서 기능하기를 하시기 때문에- 모든 일을 특별한 방법으로 나타나시기를 즐거워하지 으시고, 평상시 주로 내적직감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예상치 못한 중요한 사건이나 당황스런 일이 있을 경우 성령께서 미리 알려주시고, 준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부정적인 사건이나 많은 방해 예상되는 경우에도 우리가 낙담하지 않고 까지 선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미리 신호를 주시고 우리를 격려하는 것입니다.

 

  제가 성령사역을 받아들이고, 곧바로 셀 교회 전향하려고 했을 때, 성령님은 미리 저에게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제가 목회했던 관악교회만큼은 이 말씀이 예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관악교회는 대부분 구원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성령이 말씀하신 대로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로 교회 여러 갈레로 나눠지기 직전에- 스가랴13장 7-9절 말씀을 보여주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같이 연단하며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는 말씀을 주셨는데- 이 말씀이 나로 그 후에 일어난 모든 환난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고, 큰 위로의 말씀으로 이 약속이 다 성취될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서 최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것을 듣고 소멸하느냐, 적용하느냐 하는 결정권은 내가 쥐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에 따라 자신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점점 말씀 합당한 자 교정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 옮겨지게 됩니다.

 

  그 다음, 데살로니가전서 5장 20절을 보시면-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하셨습니다.

보통 예언이라고 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 하는 것 생각하기 쉬운데- 그러나 신약시대에 말하는 예언은- 거듭나고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감화를 받고 선포하는 레마 말씀 예언 포함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위 구절에서 이야기하는 “예언”도 그런 의미 예언인 것입니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나를 세워주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 하게 됩니다. 주일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고, 또는 다른 성도 영적 권위자를 통해 권면의 말씀을 듣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것을 내 것으로 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내게 왜 이런 말을 하시지?’ 또는 ‘내가 꼭 그래야만 하나?’하면서 흘려보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굳이 바깥에서 이런 을 듣지 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방향을 항상 일정합니다. 그러나 직접 로 전달 된 이런 말씀을 듣고도- 알아듣지 못하고 순종할 수 없다면, 사실상 그런 사람이 성령의 음성을 따르거나 말씀을 지키며 살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여기서 “멸시한다.”는 말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성령님 멸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성령의 음성을 매일 들으면서도, 은 크게 하지 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음성을 들었느냐가 아니라 들은 것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인 것입니다.

 

  저는 어느 예언하는 청년이 저에게 와서 “목사님이 히브리서와 로마서를 가지고 강의하는 모습을 성령께서 보여주십니다.”라고 말했을 때, 저는 그 을 듣고는 곧바로, 강의할 말씀을 으로 쓰기 시작했었는데- 그  완성되고 난 후, 얼마 있지 않아 실제로, 아가페 신학에서 히브리서와 로마서 강의 요청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예언 멸시 않고, 그것이 현실이 될 줄로 믿었기 때문에 준비해 두었던 것입니다. 과연 그 기회 주어졌을 때, 능히 실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나이 50이 넘어서 이미 그만 두었던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은 어느 여자 분이 제가 영어 설교하는 모습 성령께서 보여주신다는 그 한마디를 말을 듣고 영어공부를 다시 했던 겁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십시오. 실제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결단하고 행동하셔야 합니다.

 

  영국의 어떤 목사님, 사모님이 우리 교회에 대한 예언을 해 주셨는데- 그것은 마지막 대 추수 때에 크게 쓰임을 받는 아주 귀한 교회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일꾼들을 일으켜야 하겠구나 생각하고-  뒤늦게라도 저는 예수사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3년 후 쯤엔 이와 비슷한 일꾼학교를 세우기 위해서 그리한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음성이나 레마의 말씀을 통해서 받은 메시지를 결코 소멸하거나 멸시하지 마시고, 이것이 현실로 나타나도록, 을 다하여 수고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을 소멸하지  간직하여 성취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항상 필기구를 가지고 다니면서 주시는 감동을 적어두셔야 합니다. 필기하는 것이 간단한 행동이지만, 성령의 말씀을 항상 기대한다 믿음의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개인기도 시간이나 설교 시간에 성령님께서 에게 말씀하시기 좋은 분위기에 있을 때는 반드시 필기구를 꺼내들고 적극적으로 그분의 메시지 기대해야 합니다. 혼적인 모드에서 오늘 설교의 주제나 내용만을 필기하지 마시고, 영적인 모드에서 설교를 통해 성령께서 지금 에게 개인적으로 주시는 음성을 듣고, 적어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성령의 음성을 보다 민감하게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당장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라도- 우선 적어 두면, 잊어버리지 고 나중에 그  이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님은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성령의 역사 말씀 멸시하거나 소멸해서는  되는 이유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성령님께서 무엇인가 보여주시는 이유는 당신이 그 분야에 대해 가진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내가 다 아는 말씀인데 성령님께서 또다시 말씀하시는 경우는- 내가 그 말씀을 깨달아야 할 만큼, 충분히 깨닫지 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에도 목회자로서 항상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과 목표는 복음전파이다’라고 자주 외치고 있었지만- 언젠가 기도 중에 성령님께서 “복음전파는 성도들의 등뼈와 같다”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즉 우리 에서 등뼈가 다른 모든 지체를 받치는 중심 대들보와 같은 역할을 하듯이- 교회 안에서 영혼구원은 우리의 모든 활동 뒷받침 해주는 중추적인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일 이것을 제가 놓인 영적 영향력에 맞게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면- 성령님께서 굳이 저에게 다른 표현으로 한 번 더 말씀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무언가 비추어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에 대해 더욱 더 밝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를 따라 정확하게 지도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는 안다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도- 새로운 통찰을 얻고 마음 새롭게 하게 됩니다.

 

   둘째, 성령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은 당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생명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 생명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성장할 수밖에 는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공급을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점점 성장하고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마귀의 일은 반드시 사망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귀에게 조금 을 내어주면, 마귀는 그 만큼만 들어오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  비집고 들어와서 마침내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이와 같이 어느 쪽 하든 반드시 그에 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세력에게 한 치도 내어 주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 하여,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생명의 능력을 누리며  향상시켜 나가야합니다.

 

   셋째,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을 소멸한다면, 당신은 그 분야에서 하지 은 채로 남아 있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서 변화가 필요한 부분을 정확히 아시고, 우리가 이런 문제 하게 된 원인 또한 정확하게 고 계십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지금 상황과는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이는 작은 것, 이를테면 누구를 용서하라든지- 마음의 어떤 부분을 해결하든지- 하는 말씀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면 ‘내가 받고 싶은 음성은 따로 있는데 이건 뭐지?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것 맞나?’라고 의아해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수준에 맞게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십니다. 때로는 지금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사실은 내 안에 아직 해결되지 한 어떤 문제에서 비롯될 수도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소멸하지 말고,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따라 하나하나 교정해 갈 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문제의 해결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발전하기 한다면, 성령님께서 설령 나의 부정적인 면 지적하신다 하더라도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그런 말들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자신 하려 하지 으면서- 어떻게든 하나님 움직여서 축복 받기 기대하는데-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축복하기 하시지만, 우리가 그것을 받고, 유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 복을 주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조명하심을 따라 개선되어야 할 약점 발견하게 될 때,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이는 을 잃고 헤매던 사람이 이제는 정확한 지도를 손에 넣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하는 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넷째, 당신이 들은 말씀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당신이 맺는 열매 결정됩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지, 듣지 했는지의 그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들은 말씀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도 있고, 설교 중에 나에게 주시는 레마 말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듣고도 그냥 지나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듣고, 지식으로만 남겨두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1:22)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말씀 으로 반응하고, 그것을 하여  적용함으로- 실재를 불러 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에서 누구보다 빠르고, 역동적인 변화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한 마디는 전인적인 변화를 가져 올 능력이 있습니다. 특별히 현재 삶 수준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계시 필요한데- 그런 계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도전적인 말씀 경우 습니다. 이 때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아직 말씀으로 새로워지지 않은 예전의 생각 고수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계시를 만났을 때 단지, 내가 알던 것과 다르다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확인해 보고 어긋나는 것이 으면, 받아들일 줄 아는 수용적인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성장에는 변화가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성장하지 으면, 하나님이 왕국 안에서 내가 축복 계시 흘려보내야 할 사람들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말씀에 비추어 삶을 변화시키고, 영적으로 성장하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함을 받고,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우리의 영향력은 점점 확장되며, 에서 많은 열매 맺게 될 것입니다.

 

  이제 “범사에 헤아려”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을 소멸하거나, 예언을 멸시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밖에서 들리는 을 하나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라 의미 아닙니다. 이에 성경에서는 범사에 헤아리라”고 말합니다. 어떤  하기 이전에, 소중히 여길만한 것인지 점검하고 증명해 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유리 조각 같은 것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귀한 다이아몬드라고 주장한다면, 아무 증거도 없이 그 을 즉시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일단 보석상에 가져다가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검증 과정을 거친 에, 이것이 정말 다이아몬드가 맞는지 판정을 받으면- 그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다이아몬드인 것을 믿고 소중히 다루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것이든 하게 다루기 이전에는 검증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귀한 것으로 확인이 되어야만 하게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감동이나 말씀을 들었다면,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맞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요구하는 바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과정 무시하기 때문에- 진짜 하나님의 말씀 치거나, 반대로 진리가 아닌 것을 붙잡고 많은 시간 에너지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체크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점검할 것은- 내가 받은 음성이 “하나님의 말씀 일치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이나 선포된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을 판단하기 위한 가장 우선적인 기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때 단지 성경에 그런 구절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만을 보거나 또는 한 구절만 떼어서 임의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전체 맥락 가운데 두고, 하나님께서 이 구절 또는 단락을 통해 의도하시는 바에 맞게 해석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또한 “본문이 본문을 해석하게 하라”는 말처럼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다른 구절과 비교하여 뜻이 일관되게 하는지 확인하고, 또한 그 구절이 기록된 시대 배경, 저자의 특징도 고려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아버지께서 내개 개인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맞는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성품과, 나와 그분의 현재 관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노 심판하는 분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선한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말씀이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나에게 하실만한 사랑 권면, 방향 제시를 넘어선 비판이나 정죄, 질타의 말이라면,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나에게 개인에게 주시는 말씀 맞는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세 번째 점검해야 할 질문은 “이것을 적용하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겠는가?”입니다. “그가(성령님) 내(예수님)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16:14)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성령의 감동이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대로 행동했을 때,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오히려 하나님 오해하게 하고 그분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면, 좀 더 점검해 보는 것이 습니다. 특히 초 신자들은 자신의 열정이나 열망이 계시보다 앞서 엉뚱한 인도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경우 스스로 말씀을 분별할 능력 자체가 부족할 수 있으므로, 믿음의 선배들이나 영적 권위자에게 확인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와 같이 몇 가지 질문을 통하여 범사 헤아림으로 말미암아 하게 여길 것만을 골라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꾸준히 인식하고 훈련하다 보면 우리의 생각이 점점 말씀 일치함으로 말미암아 굳이 이러한 의식적인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귀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자연스럽게 구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좋은 것을 취하고”입니다.

취한다.’는 말은 단순히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강하게 붙잡는다.”라는 뜻입니다. 즉 검증을 통해 진리 확인 된 것은 “내 것으로 꽉 붙잡아 소유하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당신이 무언가를 참으로 ‘취했다면’,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삶의 일부가 되도록 허락했다는 의미이고, 그것의 가치 인정했다는 뜻이며- 동시에 그것보다 가치 는 다른 것들을 거절하기로 결단했다는 의미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 최고의 위치 두기 한 것입니다.

 

  초 신자들은 세상의 나쁜 것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의 좋은 것으로 옮겨온 자들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의 좋은 것 나서 최고의 것 붙잡는 자입니다. 지금의 계시도 좋은 것이겠지만, 우리는 항상 더 위의 것 추구하므로 언제든지 지금의 것에서 나서 보다 가치 있고 온전한 것 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존중하는 삶을 사는 자로서, 우리는 가장 먼저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성령님 존중하고 그분의 음성 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령님은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 우리를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승리의 길, 형통의 길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하나 됨 이루셨습니다. 그분의 참된 인도하심을 잘 분별하여- 그것을 소멸하거나, 멸시하지 말고- 그 계시를 꽉 붙잡아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으로 사는 자입니다. 매 순간 에 보이는 상황이나,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따라  것이 니라, 나는 새 피조물이며 영적 존재임 인식하고 하나님의 말씀 성령 존중하는 태도를 가질 때, 그 선한 영향력  모든 관계 영역으로 확장될 것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대사로서, 또한 하나님의 왕국 백성으로서, 온전하고 충만한 승리의 삶 경험하게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