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관련 예화
1.내가 마중을 나가주마
아프리카에서 일하던 한 선교사가 여러해 동안 수많은 열정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에는 휴가를 얻어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되었을 때 은은하게 울리는 군악대들의 예포소리와 함께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부둣가에 나와 있었습니다. 배에서 대통령이 내려올 때 거기에는 붉은 주단이 깔렸고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대통령이 지나가자 붉은 주단은 걷히고 군악대의 나팔소리도 멎었습니다. 그 뒤를 선교사 홀로 고독하게 내려왔습니다. "사냥을 갔다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을 받는데, 큰 아들과 둘째 아들 그리고 부인마저 잃고 선교를 하다가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환영객은 아무도 없구나"하는 생각으로, 고독감과 실패감을 느끼면서 정신없이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군악대의 나팔 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천군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내가 맞이해 주마. 붉은 주단이 문제가 아니라 황금으로 길을 깔고 내가 친히 너를 마중 나오마. 사랑하는 아들아 끝까지 충성하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푯대를 향해 좇아갈 뿐이라"(빌 3:14) 2.본향을 바라보며 사는 삶 어떤 할머니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분은 일찍이 홀로 되셔서 콩나물 장사를 하면서 자녀들을 모두 교육시키셨습니다. 그 자녀들이 장성하여 나름대로 세상에서 인정받고 잘 사는데도 할머니는 자녀들과 같이 살지 않고 작은 오두막집에 혼자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자녀들은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보며 “어머니, 이제 우리들도 모두 잘 사니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리며 살 수 있어요. 이런 보잘것없는 집에서 혼자 살지 마시고 저희랑 좋은 집에서 사세요”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이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애원하니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그렇다면 나를 위해 이런 집을 지어다오. 집 바닥은 온통 유리로 하되 기둥은 12개로 하고 그 기둥 밑바닥에는 반드시 보석을 박아라. 보석은 각기 다른 색깔로 하고 문은 12개가 되어야한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자녀들은 하나같이 “어머니, 농담이시죠. 세상에 그런 집이 어디 있으며, 그런 집을 어떻게 짓나요?”라며 기가 막힌다는 듯이 되물었습니다. 그들의 반응에 대한 어머니의 말은 더 걸작이었습니다. “그런 집이 어디 있냐고? 왜 없냐? 나는 그런 집을 하늘나라에 분양 받았는데…. 그래서 곧 그곳에 살게 될 테니 나보고 더 좋은 집으로 가서 살자고 하지 말려무나.”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며 사십니까?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본향을 바라보며, 그곳을 향해 산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미련을 두지 않는 삶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 1). 3.나의 본향 몇 년 전신문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위스콘신 주 그린 베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푸치’라는 이름의 앵무새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고를 당한 그 새는 야생동물협회의 보호로 기적적으로 살 수 있었다. 그 후 아무도 그 새를 찾는 사람이 없자, 그린 베이에 사는 ‘수 글리슨’이라는 여성이 그 새를 기르겠다고 자청했다. 그녀는 푸치를 엄청나게 사랑했다. 그들은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작은 새가 그녀의 어깨 위로 날아오더니 부리를 그녀의 귓가에 대고 “그린 베이 오네이다 거리 남쪽 1500번지”라고 속삭였다. 글리슨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즉시 그 주소를 확인하여 그곳에 79세의 존 스트루반츠라는 노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선생님, 혹시 댁에 앵무새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노인은 대답했다. “전에는 있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잃어버렸습니다.” 글리슨이 말했다. “제가 지금 즉시 그리로 가겠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앵무새를 보자 너무도 기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을 정도니, 푸치는 정말로 비상한 앵무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인생의 순례 길에서 만나는 그 중간 기착지들을 모두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인생의 최종 기착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마음속에 최종 주소지를 확고하게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 「깊은 은혜 속으로」/ 캘빈 밀러 4.참 고향을 심는 교회 교회당을 지으려는 목회자가 건축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내놓은 건축계획서에는 건축가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니,교회에 고급 콘도를 2채나 마련하라고요? 목사님과 사찰의 거처인가?” 건축가의 질문에 목회자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 말은 정말 엉뚱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목사나 사찰이 교회당에서 사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 콘도는 매주 두 교우 가정이 살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교우들에게 직접 교회당도 관리해보게 하고 교회를 따뜻한 집으로 삼게 해보려는 뜻이지요. 더욱이 우리 교회에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교회를 그리운 고향으로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자라서 명절이 되면 교회당을 찾게 하고 또 교회를 통하여 참 고향인 하나님 나라의 품을 느끼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를 심는 것이 교회의 가장 소중한 사역입니다. 5.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어릴 적 뛰어 놀던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초등학교 운동장 그네 옆에 있던 커다란 은행나무는 사라져 버렸고, 학교 앞으로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선생님이 잠시 말을 멈추곤 했었는데 지금은 방음벽이 설치되어 있어서 소리가 잘 안 들렸습니다. 아, 내가 자주 다녔던 만화방도 그대로 있고 신신문구점도 그대로 있네. 어머니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갈치조림을 해 주셨습니다. 고향에 가니 너무 좋았습니다. 마음이 편하고 몸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의 원래 고향은 천국입니다. 천국은 '서로 사랑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서로 사랑을 하게 되면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 편안해집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잠시 천국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천국이 고향인 사람들이 모여 다시 고향에 돌아갈 때까지 서로 사랑하는 곳이지요. 만약, 어떤 교회에서 천국을 맛볼 수 없다면, 그 교회는 최우선적으로 천국을 회복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최용우 6.돌아갈 고향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셀 병원에 한 세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존경받는 지성인이 폐수종으로 입원해 있는 한 달 동안 문자 그대로 발악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를 아내에게도 묻지 못했고 아내조차도 그의 병명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소리치며 괴로워하고 있는 남편의 곁에서 위로조차 하지 못하고 지켜 보아야만 했던 이 불쌍한 여인과 그 사람! 그런데 그 사람처럼 글로써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을 남긴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한 세기에 가장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말로였습니다. 1980년 4월 16일, 그는 입원한 지 한 달만에 병원에서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사르트르가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각 언론이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떤 독자가 한 신문사에 이런 기사를 투고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마도 비그리스도인이었는지 모릅니다. 사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그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습니다. / 기독신문사 출판기획부 7.더 나은 본향 **비둘기의 귀소본능은 특별해 옛날부터 군에서 전령으로 활용하였다. 한번은 영국의 부호가 카나리아를 한 마리 사서 발목에 금가락지도 끼워주고 머리에 꽃관도 씌워 주면서 18년동안 애지중지 키웠다. 어느날 집에 불이 나서 새장의 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새장 문이 열려 카나리아가 날아가버렸다. 부호는 매우 슬퍼하면서 카나리아를 찾기 위해 사람을 풀고 사방에 수소문하였다. 그 후 2개월이 지나서 카나리아를 아프리카 키네아 지방에서 발견하여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카나리아는 고향을 찾아 4800㎞를 날아간 것이다. 무려 18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어떻게 고향을 찾아갔을까? 그것은 풀 수 없는 미스터리다. 부호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카나리아를 완전히 해방시켜 고향으로 날려보냈다. /장자옥 목사(간석제일성결교회) **동물들의 귀소본능은 참으로 놀랍고 기이하다. 예를 들면 개는 아무리 먼길을 가서도 한번 간 길이면 반드시 그 집을 다시 찾아 돌아온다. 이는 개가 길을 걸을 때에 독특한 냄새를 끼치면서 가는데 취각이 강한고로 자기가 걸어온 길의 냄새를 맡고 길을 찾아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비둘기들은 몇 백마일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곧장 자기 고향을 향해 날아가고 연어나 숭어는 산란을 위해 출생한 강으로 돌아간다. 또한 일벌이 아주 미지의 땅에 옮겨졌을 때에도 정위치로 날기만 하면 매우 먼 장소에 방치되어도 돌아올 수 있다. 이와같이 동물들이 일정한 주기, 육아의 장소 등을 가질 때에는 거기에서 먼 곳에 가더라도 다시 되돌아 오고자 하는 본능이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8.연어의 회귀본능 우리는 연어의 회귀본능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연어는 원래 민물에서 태어나 자랍니다. 그러나 얼마쯤 자란 다음에는 반드시 바다로 내려가 삽니다. 바다에서 짜디짠 물을 먹고 그들의 뼈가 자라고 살이 자랍니다. 그들은 넓고 깊은 바다를 마음껏 휘저으며 삽니다. 3-4년을 이렇게 살고 나면 산란할 때가 되어 반드시 본능적으로 자기의 본향인 민물가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연어 떼들은 강기슭으로 향합니다. 원래 나이가라 폭포에선 연어가 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짓굿은 어류학자가 미시시피 강으로 산란하러 올라오는 연어를 잡아다가 나이애가라 폭포 위쪽에 산란하도록 했답니다. 이렇게 해서 연어 치어가 태었고 그 치어들은 대서양으로 가서 자랐습니다. 어류학자의 관심은 대서양으로 간 그 연어 치어들이 과연 나이애가라 폭포쪽으로 올라오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연어의 회귀본능이 얼마만큼인가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몇 년 후 그 연어들은 산란의 때가 되자 어김없이 나이애가라 폭포 밑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 폭포위로 점프를 시작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세차고 거대한 폭포, 연어는 그 폭포의 쏟아지는 물에 도전했던 것입니다. 점프에 실패해 주둥이가 깨지고 아가마미가 터져 피가 철철나지만 연어느 svhrl하지 않았습니다. 피로물든 몸으로 사생결단해 마치매 연어는 나이개가라 폭포를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그곳이 바로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회귀본능 본향인 천국 하늘에 향한 향수심입니다./국민일보 중에서 9.또 하나의 고향 중국 한나라의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가 전쟁을 할 때였습니다. 유방이 항우의 10만 군사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유방은 가을 달밤에 자기 군사들로 하여금 퉁소로 구슬픈 초나라의 가락을 불게 하였습니다.그러자 초나라 군사들은 고향의 구슬픈 가락을 듣고 향수병에 걸려 뿔뿔이 흩어져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퉁소 가락으로 유방은 대승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고향이란 인간에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전통 명절인 추석이 되면 수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갑니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깊은 향수를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향은 어머니의 아늑한 품과 같고 동경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동심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막상 고향을 찾으면 허무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고향을 가보아도 내 마음의 빈 공간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이유는 우리에게 또 다른 고향,영원한 본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하나님이 계시는 그곳이 우리의 본향이요,돌아갈 나라입니다./소강석 목사(분당 새에덴교회) <옮긴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