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 문답 신조

개혁주의 신앙고백

하나님아들 2023. 9. 22. 22:37

개혁주의 신앙고백        

 

 

 

1. 성경을 주신 목적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주신 목적은 사람으로 온전한 성도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신약에서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말씀하고 있다.

 

2. 신약의 교훈

신약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말씀이 디모데후서 3장 16절인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함이니라”고 하였다.

 

물론 이 말씀에 대한 학자들의 주관과 주석의 내용에 차이가 있으나 한 가지 변함없고 절대적인 사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함”과 “선한 일을 하게 함”이다.

 

그러면 성경이 무엇이기에 온전케 하며 선한일을 하게 하는가? 베드로후서 1장 20절에 의하면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아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3. 구약의 교훈

구약에서는 성경을 “하나님의 법”(The Law of God)이라고 했고(느 10: 28), 어떤 곳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책”(The Book of the Law of God)이라고 했다. 그 율법책은 사람에게 복과 저주의 길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율법, 이 진리에 따라 축복을 받기를 원하신다. 그 진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선한 일을하여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생사화복의 길이요 척도이다.(신 11: 26-28, 28: 1-68). 이것은 자기 자신만 아니라 자기의 후손에게도 그렇다. 그래서 성경은 첫째 구속의 법이며, 둘째는 신앙의 법이다. 셋째는 생활의 법이 되며, 넷째 생사화복의 법도 된다.

 

4. 벨기에 신앙 고백(1561년)

 

1) 제 3조 성서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뜻으로 전달된 것이 아니고 사도 베드로가 말한대로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대로 한 것이라고 믿는다.

 

나중에 하나님은 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특별히 배려 하셔서 자기의 종들, 즉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자기의 계시된 말씀을 글로 쓰도록 마ㄸ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글을 성서라고 부른다.

 

2) 제 4조 성서의 정경들에 관하여

우리는 성서가 구약과 신약의 두 책으로 되어 있고 이 책들은 정경이어서 이 책들에 대한 어떤 이의도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구약성서의 책들:

모세5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 명 기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의 두책들, 파라리포메논이라는 열왕기의 두 책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다윗의 시편, 솔로몬의 세 책들, 즉 잠언, 전도서,아가서 : 네 대예언언자들, 즉 이사야, 예레미야,에스겔 및 다니엘: 그리고 12 소예언서들, 즉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나,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

 

신약성서의 책들 :

4복음서들,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바울의 14편지들, 즉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두 편지, 갈라인들에게 보낸 편지,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편지, 골로새인들에게 보낸 편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편지, 디모데에게 보낸 두 편지:

 

디도에게 보낸편지,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베드로의 두 편지, 요한의 세 편지, 유다의 편지: 사도 요한의 계시록 등이다.

 

3) 제 7조 성서의 완전성에 관하여

우리는 성서가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사람이 구원을 위하여 믿어야 할 것은 거기서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체 방식이 성서 안에 대체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사도라 할지라도 지금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과 다르게 가르치는 것은 부달하다.

 

사도 바울이 말하듯이 “아니, 비록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어떤 것을 보태든지 혹은 거기서 어떤 것을 빼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성서에 있는 교리는 모든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다.

 

사람이 쓴 어떤 신성한 책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성서와 비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리는 지고하기 때문에 관례, 대중, 고전, 연륜, 전승, 회의들, 법령들, 혹은 제도 등 등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스스로 속이는 사람들이며 공허 그 자체보다도 더 공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것이든지 이 절대무오한 규칙과 조화되지 않은 것을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배격하는 것은 사도들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대로 이다.

 

“영들이 하나님에게로부터 왔는지 시험해 보라”, 또한 “만일 누가 노희에게 와서 이 교리를 전하지 않거든 그를 너희 집에 받아들이지 말라”.

 

4) 제 8조 동일 신성의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단 한 분의 하나님을 믿는데, 그는 하나의 단일 신성을 가지신 삼위이며, 그 삼위의 교환할 수 없는 특질, 곧 성부, 성자 및 성령은 실질적으로, 참으로, 그리고 영원히 구별된다.

 

성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원인이며 기원이시다. 성자는 말씀이니, 성부의 지혜이며 형상이시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 영원한 능력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별에 의하여 하나님이 셋으로 분리되지 않았으니,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대로 성부, 성자, 및 성령은 각각 자기 품격을 가지시며 그들의 특질에 의하여 구별된다.

 

그러나 이러한 모양으로 삼위는 단 한 분의 하나님이시다. 그리하여 성부는 성자가 아니며,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또한 성령은 성부도 아니고 성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별된 삼위는 나눠지거나 서로 혼돈되지 않는다.

 

성부는 육신을 입지 않으셨고 성령도 또한 그러하고 성자만이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이다. 성부는 성자없이, 또한 성령없이 계신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삼위는 다같이 영원하고 동일한 본질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진리와 능력과 선과 자비에 있어서 삼위는 한 분이시기 때문에 첫째되는 분도, 또 나중되는 분도 없다.

 

5) 제 9조 성서가 증거하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 모든 진리는 성서의 증거들은 물론 삼위의 역사, 특별히 으리 자신들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에 의하여 우리가 안다.

 

이 삼위일체를 믿도록 우리를 가르치는 성서의 증거들은 구약성서의 여러 곳에서 기록되고 있는데, 그것을 열거할 필요는 없으나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

 

 

창세기 1장 26, 27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하나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 ”

 

또 창세기 3장 22절에서 말하기를 “이제 이 사람들이 우리들 처럼 되었다,” 우리가 우리의 형성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신 말씀에서 하나님 안에는 한 품격 이상의 품격들이 있는 듯하다.

 

또 그가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말할 때는 통일성을 의미한다. 몇 품격이 계시지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구약성서에서는 우리에게 애매했던 것이 신약성서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된다.

 

우리 주님이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성부의 소리가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성자가 물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이 형식은 또한 모든 신자의 세례의식에 쓰이도록 그리스도가 제정하셨다.“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백성에게 세례를 베풀라.” 누가복음에서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 우리 주님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성령이 아가씨에게 내려 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또 같은 모양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노희와 함께 하시리라.” 그리고 “하늘에 기록된 자,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 세 분이 계시며 이 세분은 곧 한 분이시라.” 위의 모든 곳에서 보면, 세 품격이 계시되 한 거룩한 본질을 가지신 것을 충분히 가르친다.

 

그리고 이 교리는 인간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믿되 내세에 하늘에서는 완전한 지식과 은총을 향유할 것을 기대한다.

 

더구나 우리는 이 삼위의 우리를 위한 특수한 직책과 역사를 살펴야 한다. 성부는 그의 능력에 따라 우리의 창조주로, 아들은 그의 피에 따라 우리의 구주이며 구원자로, 그리고 성령은 우리 마음에 내재하심에 따라 성화자라고 불리운다.

 

사도시대 이후로 바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된 교회는 유대교인, 마니교인, 어떤 거짓 크리스찬들과 이단들, 즉 마르키온, 프라키아스, 사벨리우스, 사모사태누스, 아리우스와 그리고 정통교부들로부터 정식으로 정죄된 사람들에 대항하여 이 삼위일체 교리를 언제나 변호하고 보존하여 왔다.

 

그러므로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사도신조와 니캐아 신조와 아다나시우스 신조를 받아들인다. 또한 이 신조들에 일치하는 것으로서 고대의 교부들이 합의한 신조들도 받아들인다.

 

5.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

1) 제 1장 성서에 관하여

(1) 자연의 빛과 창조와 섭리의 업적이 하나님의 선과 지혜와 권능을 잘드러 내므로 사람이 핑계할 수 없게 되어 있으나 그것들은 구원을 얻는데 필요 한 하나님과 그의 뜻에 관한 지식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므로 주님은 여러 가지 경우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자기 자신을 계시 하시고 자기의 뜻을 자기 교회에 선포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그 진리를 보다 잘 보존하며, 육의 부패와 사탄과 세 상의 악에 대비하여 교회를 보다 더 확고하게 설립하고 안심시키기 위하 여 그 진리를 전적으로 기록하여 두시기를 원하셨으니 이것이 성서를 가 장 필요한 책으로 삼으신 이유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하나님이 자기 뜻을 자기 백성에게 계시하시던 종전의 방법들은 중지되었다.

 

(2) 성서라는 이름으로,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것이 이제 구약과 신약 의 모든 책들을 포함하니 다음과 같다.

 

구 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 상, 사무엘 하, 열왕시 상, 열왕기 하, 역대기 상, 역대기 하, 에스라, 느혜미 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의 애 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 약 :

마태복음, 마가복음,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 전서, 고린 도 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서, 데살로 니가 후서, 디모데 전서, 디모데 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전서, 베드로 후서, 요한 1서, 요한 2서, 요한 3서, 유다서, 요한 계시 록.

 

이 모든 책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이어서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 된다.

때문에 불명예와 진노를 받도록 정하시는데, 이것은 자기의 영광스러운 정의 를 찬양하기 위함이다.

 

(8) 가장 신비한 이 예정의 교리가 특별한 분별력과 신중성을 가지고 다뤄져야 할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그의 뜻에 따르며, 또 그 뜻에 복종하 는 사람들이 실제로 부름을 받은 확신을 가지고 자기들의 영원한 선택을 확신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하면 이 교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존경하고 높일 수 있게 해줄 것이 며, 또 진실하게 복음에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과 근면과 풍부한 위로를 줄 것이다.

 

6. 칼빈주의 체계에서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경

하나님이 주신 또 한권의 책이 있으니 그것은 성경이다. 본래는 한 책만 있 었으니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한 개의 계시이니 곧, 자연이다.

 

또 다음 세계에서도 한 책만 있을 것이니, 곧 새 자연인데 거기서 사람이 하 나님을 보게될 것이요, 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담이나 구속받은 사람은 자기의 마음과 자기 주위에 둘러있는 자영계에서 분명히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이미 보았으며 장차 영원세계에서도 그렇게 볼 것이다. 그러므로 그 세계에서는 성경과 같은 특별계시가 필요없을 것이다.

 

위에 말한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겐 성경 곧 특별계시인 둘째 책이 있을 필요 를 설명하여 준다. 이 책은 죄 때문에 있을 필요가 생겼다. 사람이 범죄한 때 에 그와 자연이 다 변하여졌다.

 

사람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사물들을 그대로 바라 볼 수 없었다. 창세기에 “가시와 엉겅퀴”에 대하여 말한 것과 같이 자연이 변하여 버렸다. 금일에도 자연은 하나님의 덕행을 반사해 주는 거울이지만 죄 때문에 그 거울은 아주 흐려졌다.

 

그래서 이 거울은 자연 자체가 본래와 다르게 보이기 한다. 이제 사람은 흐 려진 마음과 변한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주를 어떻게 바로 알며 자기의 참 성품과 자기의 존재하는 목적을 어떻게 하는가?

 

이것은 사람이 전 우주를 보는데 기본이 되는 세 가지 근본적 문제이다. 이 러한 형편 아래서 사람이 어떻게 궁극적 문제들을 정당하게 볼 수 있을까?

그 유일의 해결책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다른 책을 한 권 주신 것이니 곧 성 경이다. 그 책에서 하나님은 분명하고 틀림없이 사람에게 만물에 대하여 계 시하시고 또 사람의 어두어진 마음을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밝히시므로 이 성 경적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하신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자연에 대한 성경의 역할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계시 인 성경은 자연과 같은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파괴된 자연에서 가져오는 잘못된 인상을 고치는 일을 한다.

 

성경은 신관과 우주관을 우리에게 보여주나 오늘의 자연은 그것들을 우리에 게 바로 가르쳐 주지 못한다. 칼빈이 말한 것과 같이 우리는 반드시 성경의 안경을 쓰고 자연을 보아야 한다.

 

그렇다. 하나님이 자기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두 가지 계시를 주시고 그것들 을 연구하라고 하셨으나, 결국은 성경이 신자의 인생관 전체의 궁극적 기초 가 된다.

 

그 이유는 자연과 인생의 생활을 적당히 설명하기 위하여는 성경적 견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자연을 해석하는 일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 이유는 그것이 죄인의 구원에 대한 특별계시도 포함히기 때문이 다. 그렇게 중요한 구원관계의 지식을 자연은 우리에게 줄 수 있다.

 

그 단순한 이유는 죄인 구원의 문제가 생기기 전에 자연이 벌써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연이 죄인의 구원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겠는 가?

 

죄인 구원의 문제는 성경의 중심제목이 되어 있고 또 성경이 제시하는 우주 관이나 인생관에서 뗄 수 없이 한데 붙어 있다. 성경을 과학 교과서인 것처 럼 성경의 목적을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경은 그러한 목적을 가지려고 한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과학을 위하여 그가 조사하는 여러 부문에서 사실들을 모을 때에 자연 역사, 심리학 또 그 런 것들과 관계된 연구부문에서 사실들을 수집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실들을 설명하고 연결시키며 어느 하나의 과학에 속한 진리를 전체의 지식에 관계시킬 때에는 성경이 보여주는 통일적 해석이 필요 하다. 성경이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과 우주와 사람과 또 역사를 바로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에게 구원얻는 길을 가르쳐 주눈 것 이외에 또 우리의 사색적 도덕적 생활 전체를 주장하는 원리도 제공하여 준다.

 

과학과 예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장생활과 직업과 사회문제와 정치문제들 도 성경에 비추어 보고 또 해결하며 또 성경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철학에서도 그러하다.

 

철학은 원리의 과학이므로 기독교 철학도 이성 위에 세워야 될 것이라고 생 각할 수가 있다. 성경의 증거를 기초로 인정하지 않고 순수한 합리적 기초 위에서 모든 철학적 난제들을 설명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칼빈주의자는 자기의 철학에 비추어 성경진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경의 기본적 진리를 자기 철학의 기초로 삼는다. 그의 철학은 계시에 기초된 것이다.

 

모든 철학적 체계가 증명되지 않은 기본적 가설들에서 출발하는 것과 꼭 같 이 기독교인은 계시의 진리를 자기의 가설 전제로하여 출발한다. 성경이 철 학 위에 근거하고 놓인 것이 아니라 기독교 철학이 성경 위에 근거하고 놓였 다는 것이 칼빈주의자의 차서이다.

 

성경은 구원 얻는법에 대한 진리와 동시에 신앙과 생활의 원리들을 역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 그 원리들은 성경이 인류와 모든 민족의 역사 에 대하여 말한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이 가르치는 것은 모두가 꼭 같은 정도로 중요한 것이 아니요 또 모두가 신앙생활의 법칙으로 고려될 수도 없다.

 

성경 기사 중 어떤 사실들은 생활법칙에 정반대되는 것이니 이를테면 압놈이 자기 아버지 다윗을 불측하게 대우한 것과 같은 사실이다. 또 성경 중 어느 시대에는 고정적 법칙으로 되어있지 않고 어떤 특별한 시대만을 위한 법칙으 로 되어 있다.

 

그리하여 모세의 율법 중 더러는 조금도 현 시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만 옛날 그 당시에만 중요한 것이었음을 칼빈이 우리에게 주의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의 이면에는 영원한 원리 곧 생활의 법칙이 흐르고 있다.

 

성경은 이 원리에 따라서 역사를 취급하여 우리도 이 원리를 따라서 생활하 여아 할 것을 가르친다. 그런데 이원리는 구약에서와 동시에 신약에서도 발 견되고 있다.

 

7. 최종적 권위로서의 성경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최종적인 진리라고 믿는 어떤권위에 근거해서 사고하 고 행동한다. 이것은 유한한 인간에게는 필연적인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면에 서 볼 때 그리스도인이란 자신의 최종적인 권위가 성경인 것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인간이 역사를 통해 물려받은 어떤 책과도 다른 책이다. 이 책은 저 작의 동기와 과정과 내용 그리고 전승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하나도 인 간의 힘만으로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는 뚜렷한 특징을 소유하고 있다.

 

먼저 성경이란 용어는 그들이 이미 영감된 책으로 믿었던 구약(딤후 3:16, 롬 3: 2)과 신약(벧후 3: 16)의 거룩한 책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리 고 “하나님의 말씀”이란 표현은 기록된 형태의 신구약 모두에 대해 사용되었 다(마 15: 6, 요 10: 35, 히 4: 12).

 

이들 각각의 용어는 “뛰어난 책”,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계시를 기 록한 유일하고도 공인된 책”을 가리키고 있다. 한편 헬라어를 사용했던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성경을 “타 비블리아”즉 뛰어난 책들이라고 불렀다.

 

그 후에 문헌들의 총체를 가리키는 단수인 “Bible”(책 또는 두루마리의 뜻)을 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데 사용한 사실은 이 성경이 하나님의 확실하게 증거 한 다양한 문서의 선집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섭리로 통합된 한 권 의 완전한 책이라는 기독교인들의 확신을 나타내 준다.

 

성경은 유일한 책이다. 또한 이 책은 1500여년 동안 약 40명의 저자가 기록 했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모순이 없는 한 권의 책이다. 왜냐하면 이미 알 고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유쾌한 것과 불쾌한 것,

 

인간의 성공과 실패, 과거와 미래, 그 모두를 쉽고도 권위있게 말해 주기 때 문이다. 성경처럼 광범 위한 책도 없지만 또한 성경처럼 완전하고 정확한 책 도 없다.

 

8. 교부시대부터 현대까지 여러사람들의 성경관

초대의 교부였던 어거스틴은 “구약과 신약은 인간의 젖가슴이다”고 하였으 며, “하나님은 그의 대리자에게 자기의 말씀을 대서시켰다”고 했다. 유명한 교부요, 사도 요한의 제자였다고 하는 폴리갑은 “성경은 지극히 높이신 자의 음성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것을 폐하는 자는 사탄의 맏아들이다.”고 했다.

그레고리 나지안스는 “성경의 지극히 작은 부분을 기록할 때에도 성령께서는 저자들을 간섭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성경의 지극히 작은 부분에 대해서도 지 극히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으며, 종교 개혁전의 개혁자인 위클 리프는 “성경을 무시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이다”고 했다.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적은 진리가 없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천지가 혼란이 되는 것이 낫다”고 했으며, “우리는 우리의 이성으로 성경을 비난하거나 평가할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기도하면서 그것을 전하고 그 뜻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가 그 당시의 정권과 교권의 위압과 위험을 당할 때 “성경에 의해서 유죄 로 판결되지 아니하고, 그 이유가 명백하지 않는 한, 나는 교황과 이 종교회 의 결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은 서로가 모순되어 왔기 때문이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 혀 있다. 나는 아무 것도 취소할 수 없으며, 취소할 마음도 없다.양심에 거리 끼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것이며, 안전하지도 못한 것이다.

 

나는 주장할 뿐이다. 나는 이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나를 도 우신다. 아멘.”이라고 했다. 죤 칼빈도 주장하기를 “성경은 안경과 같은 것으 로 그 초점을 통하여 현재를 명백히 보게 한다.

 

이 안경이 없이는 모든 것이 혼동된 것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고 했고, “성서를 연구해온 경험에서 볼 때, 성령은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오늘의 말 씀으로 살려 주신다.

 

만일 우리가 성경에서 무엇을 배우겠다는 기대심을 가지고 읽으면 옛날 예언 자들이 자기들 당시의 문제들을 직면했듯이 오늘 우리도 우리의 문제에 대하 여 결정적으로 할 말과 할 태도를 배우게 된다”고 하였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였던 죤 로우에는 “그들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놓을 때 그들은 그것에 의하여 첫째 교리에, 그리고 다음에 훈련에, 끝으로 개혁을 한다”고 하였다. 실로 성경을 가지고 있는 자는 천하에서 무서운 강력한 사 람이다.

 

그래서 “성서를 가지고 있는 한 평신도가 성서가 없는 강력한 교황보다 더 힘이 있는 것이다”(마틴루터). 빌리 선데이는 “매일 15분간 하나님이 너에게 말하는 것을 들으라, 매일 15분간 하나님에게 말하라. 매일 15분간 하나님에 관하여 다른 이에게말하라”고 하였다.

 

 

미국의 유명한 전기 작가인 글랏스톤는 “나는 현대 세계의위인 중 95명을 알 고 있는데 그 중 87명은 성경을 신봉하는 자다. 성경은 그 기원에 있어 특색 을 나타냄이 다른 모든 책보다 앞서는 무한한 책이다”라고 하였고, 미국의 창립자요, 초대 대통령이었던 죠지 워싱톤(George Washington)은 “하나님과 성경 없이 이 세상을 올바르게 통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더욱이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은 “나는 성경을,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이래 인류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이라고 믿는 다. 구세주로부터 발한 일체의 선한 것은 이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세계를 주름잡고 호렬하던 군장 나폴레옹도 “성경은 단순한 서작이 아니다. 실로 산 것이다. 그것에 반대하는 모든 것을 정복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 였고 영국의 빅토리아(Victoria)여왕은 “성경은 영국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것 을 설명한다”고 하였다.

 

세계의 대저술가와 성경에 관하여 높이 평가하기를 다니엘 웹스터(Danier Webster)와 같은 사전 저술가는 “만약 우리들이 성경의 가르치는 원리를 잘 지킨다면 우리들의 나라는 번영하고 번영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에 그 성경의 교훈과 권위를 잊어버란다면 최후의 파멸이 우리를 누르고 우리들의 영광을 암흑의 심연에 매장하여 버릴 것도 누구나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고 했고, “성서는 인류의 영혼으로부터 밝혀진 언어에 의한 가장진실한 발언이며,

 

내가 저작한 것에 어떤 공적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 내 어머님께서 매일같이 성경의 어떤 부분을 읽어주고 그곳을 나에게 암송하게 하였다는 사 실에 기인한다”고 죤 러스킨은 말했다.

 

화라 휄톤은 “성서 안에서 우리들은 인류에게 우주를 열고, 또 인류에게 그 자신의 비밀을 열어주는 유일한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했고, “나의 곤혹과 비상할 때, 성경은 항상 나에게 광명과 힘을 주심에 있어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일본의 쓰가모도 도라지씨는 “날마다 성서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고 했는데, 실로 그렇다. 위드로 윌슨 대통령은 “나는 대통령으로서 의 나의 앞에 놓인 문제들을 내가 성경을 얼마나 충실히 연구하는지 그 비례 에 따라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그는 “성경을 읽으면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니 이는 그대의 마음, 그대의 행 복, 그대의 의무의 열쇠가 이것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완전한 인생을 지시해 주는 확실한 인도자이다. 그것은 영적 양식의 근원이요, 선량한 생활로 인도하는 영감이다(J.에드가 후버). 이 성경은 평안하고 행복할 때만이 아니라 오히려 괴롭고 답답하고 실망과 위기 와 사망의 위기에 더욱 좋은 인도자요, 고귀한 생명과 기쁨과 기쁨과 소망을 주는 선생이다.

 

9. 결 론

1)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하는 안내자요 교사로서 필요하다.

 

(1)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자신을 알리신 것은 성경에서 뿐이다.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모든 사람의 눈에 명백하게 비치는 광채는, 인 간들로 하여금 배은망덕에 대한 일체의 변명을 못하게 하는데 충분하 고도 남음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동일한 죄책하에 두시기 위해, 피조물 에게서 생생하게 표현된 자신의 임재를 그들 하나 하나에게 예외 없 이 보여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정확히 우리를 우주의 창조주 앞으로 인도할 다른 훌륭한 조력자가 더 첨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말씀의 빛을 더하셔서, 이 말씀으로 구원을 알게 하셨던 것은 조금도 헛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에게 더 가깝고 더 친밀하게 모으고자 하셨던 자들을 이 특권을 누리기에 합당한 자로 간주하셨다. 그리하여 하나 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시고, 유대인을 자기 백성으로 정하신 후,

 

다른 백성들처럼 하나님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한 울타리 안에 둘러 싸셨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와 똑같은 방 법으로 자신에 대한 순수한 지식 안에 우리를 붙잡아 두시는 것은 이 유가 없는 것이 아닌데 이는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 앞에 견고하 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곧 넘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노인이나 눈이 흐린 사람, 또는 시력이 약한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책 한 권을 내보이면, 어떤 종류의 책인지는 겨우 알 수 있겠지만 거의 두 낱말도 해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안경 을 쓰면 똑똑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혼란하 지식을 우리 마음에서 바로잡고 우리의 우둔함을 쫓아 버리며, 참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러 므로 교회를 교훈하시기 위하여 무언의 교사를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장 거룩하신 입을 여시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함받은 자들이 어떤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가르치 실 뿐만 아니라, 바로 자신이 경배를 받아야 할 그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신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교회를 위하여 이 계획을 세우시고, 일반적 인 증거 외에 자신의 말씀을 첨가하셨다. 이 말씀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보다더 확실한 표준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에 관한 두 가지 지식)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과 그 밖의 족장들이 자신들을 불신자와 구별짓 게 한, 하나님에 관한 그 깊은 지식에 도달한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 이 이러한 도움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영생의 소망을 가지도록 그들을 조명하여 준 그 특수한 신앙 교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 왜냐하면 사망에서 생명 으로 옮겨지기 위하여는, 하나님을 알되 창조주로서만이 아니라 구속 주로서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조금도 의심 없이 말씀을 통하여 이 두 지식에 다같이 도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순서적으로 볼 때 하나님을 세계의 창조주 요 통치자로 파악하는 그런 종류의 지식이 먼저 오게 된다.

 

다음으로, 죽은 영혼을 소생시키는 다른 내적 지식이 여기에 가해졌는 데, 이 지식에 의해 하나님을 우주의 창조주요, 지음받은 만물의 유일 한 원작자, 통치자로 알 뿐만 아니라, 중보자의 위격으로 나타나신 구 속주로서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세계의 타락과 자연의 부패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구제책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기로 하겠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양자로 삼으신 언약에 대하여, 그리고 신자들을 항상 불신자에게서 성별 하였다는 일부의 교리에 대하여 논 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들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께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명백히 언급하고 있는 율법서와 예언서에서 여 러 가지 증거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증거의 목적은, 성경에는 세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계시되어 있다는 것과 또한 미 로에서 어떤 불확실한 신격을 찾지 않도록 하나님에 대하여 마땅히 생 각해야 할 것이 성경에 설명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데 있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

말씀이나 환상으로 나타내셨든지 혹은 사람들의 사역이나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족장들에게 계시하셨든지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 자손들에게 전승하여야 할 것을, 그들의 마음에 알리셨다.

 

그들 마음에 교리에 대한 견고한 확실성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 이 배운 지식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확신하고 이해 하였던 것은 조금 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말씀을 통해 일체의 인간적인 견해를 능가하는 확실한 신앙, 곧 영원히 불변하는 신앙을 주셨기 때문이다.

 

마침내는 진리가 계속적인 교훈을 통하여 대대로 이 새상에 영원히 남겨 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족장들에게 맡기셨던 그 말씀을, 말하자면 공적인 기록으로 엮으실 것을 결심하셨다.

 

이러한 계획 밑에서 율법이 공포되었으며, 그 후에 율법의 선지자들이 해석자로서 또한 첨가되었다. 율법은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 논하게 될 때 더 명백하게 볼 수 있겠지만 그 유용성이 다양할지라도 특별히 하나 님과 인간과의 화목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율법의 마침”(롬 10: 4)이라고 부른 것은 바로 여기 서 연유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삼는 신앙과 회개의 특수한 교 리 외에도, 성경은 하나님이 거짓된 일군의 신들과 혼동되지 않도록 하 기 위해, 명백한 특징과 증거들로써, 우주의 창조주요 통치자이신 유일하 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다 이 가장 영광스러운 극장의 관객으로 자리잡 고 있기 때문에, 눈을 돌려 하나님의 사역을 신중히 생각하는 것이 타당 하겠지만, 그러나 보다더 월등한 유익을 얻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흑암에서 태어난 자가 점점 더 둔감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 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한계를 잘 지켜서 순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 씀을 순종하는 사람은 극소수요, 오히려 자신의 허망에 부풀어 있기 때 문이다. 그런데 참된 종교의 빛을 받기 위하여는, 마땅히 하늘의 교리에 서 그 시초를 찾아야 하며, 그리고 성경의 제자가 되지 않고는 아무도 참되고 건전한 교리를 극히 일부분이라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야 한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자신에 대하여 증거하고자 하신 것을 경건한 마음으 로 받아들일 때, 참된 이해의 시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하고 모든 면에서 원만한 신앙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일체의 올바른 지식은 다 순종에서 나온다. 확실히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대에 걸쳐서, 자신의 탁월한 섭리에 의해 인간을 특별히 고려하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