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 문답 신조

돌트 신경

하나님아들 2020. 1. 7. 22:59
돌트 신경



세 번째 교리 표준문서는 돌트 신경이며, 항론파를 반박하는 다섯 개 조항들이라고도 불린다. 1618-1619년에 돌트 국제대회에 의해서 채택된 교리의 진술서이다. 이 대회는 국제적인 차원이었는데, 왜냐하면 이 대회에는 단지 네덜란드의 개혁교회들의 파견단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외국 교회들의 27명의 대표자들도 참석했기 때문이다.
돌트 대회는 알미니안의 발흥과 확산에 의해서 야기된 개혁교회들의 중요한 소란 때문에 개최되었다. 레이든 대학 신학교수인 알미니우스와 알미니우스 추종자들은 다섯 가지 중요한 논점들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에서 개혁 신앙에서 떠났다. 그들은 예견된 믿음을 근거한 조건적인 선택, 보편적인 속죄, 부분적인 타락, 저항할 수 있는 은혜, 은혜에서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르쳤다. 이러한 견해들이 돌트 국제대회에서 거부되었고, 그리고 이런 견해에 구체화되었던 반대견해가 지금 돌트 신경 혹은 항론파를 반박하는 다섯 가지 교리로 불려지게 되었다. 이 신경들 안에 본 대회는 이 논점들 즉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된 속죄, 전적인 타락, 불가항력적인 은혜, 성도의 견인에 대한 개혁교리를 해설했다.
각 신경들은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자는 그 주제에 관해 개혁교리를 해설하고, 그리고 후자는 상응하는 알미니안의 오류를 반박해 놓았다. 전자 부분에서 비록 네 개항목만 있다고 하더라도, 세 번째 조항과 네 번째 조항을 조합해 놓았고, 우리는 바르게 다섯 가지 신경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며, 그리고 세 번째 조항은 항상 세 번째/네 번째(Ⅲ/Ⅳ) 조항으로 나타내었다.우리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은 벨직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과 마찬가지로 이 신경들에 서명하도록 요청받는다.









첫째 교리: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遺棄)

제 1 장
하나님 앞에서 정죄 받아야 할 모든 인류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범죄하여(롬5:12) 저주 아래 놓여 있어 영원한 죽음을 받기에 마땅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망하도록 버려두어 죄 값으로 형벌을 받도록 하실지라도 불의하게 행하시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사도가 말씀한 것과 같다.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3:1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제 2 장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심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요일4:9),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며, 그리하여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당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요3:16).

제 3 장
복음 설교

사람이 믿음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시게 당신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또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가장 기쁜 이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들을 보내십니다(사52:7). 이들의 사역에 의해서 사람들은 회개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부름받습니다(고전1:23,2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15).

제 4 장
이중적인 결과

하나님의 진노는 이 복음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머물러 있습니다(요3:36). 그러나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으로 이 복음을 받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파멸에서 구원을 받고 또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막16:16;롬10:9).

제 5 장
불신의 원인과 믿음의 근원

다른 모든 죄와 마찬가지로 이 불신의 원인 혹은 죄책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에게 있습니다(히4: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통한 구원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사로서, 다음의 말씀과 같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게 하려 함이라.(빌 1:29)

제 6 장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의 선물을 받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받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서 나온 것입니다(행13:48;벧전2:8). 이는 하나님이 영원부터 당신의 모든 사역들을 아시며, 또 그분은 당신의 뜻의 결정에 따라 만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엡1:11). 이 작정에 따라 하나님은 은혜로이 선택하신 자의 마음을 그들이 얼마나 강퍅한지와 상관없이 부드럽게 하시고, 그들에게 믿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선택되지 않는 자를 하나님은 그들 자신의 악함과 강퍅함에 버려두어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특별히 우리에게 동시에 공히 정죄 받기에 마땅한 사람들 사이에서 심오하고 자애롭고 동시에 의로운 구분을 우리에게 드러내셨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계시된 선택과 유기에 대한 결정입니다. 비록 사악하고 불결하고 정함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파멸에 대한 이 결정을 마음이 꼬인다고 할지라도, 이 결정은 거룩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혼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위로를 공급합니다.

제 7 장
선택은 한정되었다.

선택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목적인데(엡1:4,11), 이것으로 이 세계가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과오 때문에 원래의 순결한 상태로부터 죄와 파멸의 상태로 타락한 모든 인류로부터,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선하신 뜻에 따라, 오직 은혜로서, 한정된 특정한 수의 사람들을(요17:2,12,24), 이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났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공히 비참한 상태에서 그들과 함께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기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모든 선택자와 구원의 토대로 그리스도를 중보자와 머리로서 또한 지명하셨고 그리고 이와 같이 하나님은 구원받을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주시기로 결정하셨고, 그리고 그들을 당신의 말씀과 영을 통해서 당신과 교통하도록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이끄셨습니다(요6:37,44; 고전1:9). 하나님은 당신의 자비하심을 증명하시고 당신의 은혜의 풍성함을 찬송받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을 그들에게 주시고, 그를 의롭다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그리고 강력하게 당신의 아들의 교제 속에서 그들을 강력하게 지키신 뒤에, 최종적으로 그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을 결정하셨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이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세상이 형성되기 전에 선택하셨는데,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엡 1:4-6).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롬 8:30).

제 8 장
선택의 한 가지 작정

이 선택에는 다양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 하에 살았던 구원받을 모든 사람들에게 관한 하나의 동일한 작정이 있을 뿐입니다(신7:7-9;9:6). 왜냐하면 성경이 하나님의 뜻의 선한 즐거움과 목적과 작정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엡1:4,5). 이 목적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와 영광으로, 구원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주신 길로 우리를 영원 전부터 선택하셨습니다(엡2:10).

제 9 장
선택은 예견된 믿음에 토대를 두지 않았다.

이 선택은 선택받기 위해서 사람에게 요구된 근거 혹은 조건으로서 예견된 믿음, 믿음의 순종, 경건이나 어떤 선한 자질에 토대를 두지 않았고, 오히려 사람들은 믿고, 믿음에 순종하고, 경건하도록 선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선택은 모든 구원하는 선행의 원천이며, 선택에서 믿음과 경건과 구원하는 다른 모든 은사들이 흘러나오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원한 생명 그 자체와 그 열매와 결과들이 흘러나옵니다(롬8:30). 이 사실을 사도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에 가르쳤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우리가 그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고(우리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선택하신다(엡1:4).

제 10 장
선택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토대를 두었다.

이 은혜로운 선택의 근거는 오로지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에 있습니다. 이 선하신 뜻은 모든 가능한 조건들로부터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특정한 자질이나 행동을 구원을 위한 조건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공통의 죄인 무리들 가운데서 당신의 소유된 백성이 되도록 특정한 사람들을 양자로 삼으시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록된 바와 같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들이(자녀들)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하였을지라도, 그녀는(즉 리브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롬9:11-13; 창25:23; 말1:2,3). 그리고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었습니다(행13:48).

제 11 장
선택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친히 가장 지혜로우시며 불변하시며 전지하시며 전능하시듯이, 그의 선택은 중단되지 않고, 취소되지도 않고, 변화되지도 않고, 파기되지도 않고, 무효 되지 않습니다(요6:37;10:28). 또한 택함 받은 자는 버림받거나 그 수가 감소될 수도 없습니다.

제 12 장
선택의 확신

선택자들은 적기에 여러 가지 단계와 정도가 다를지라도 그들의 영원하고 불변하는 구원에로의 선택을 확신하게 됩니다. 더욱이 그들은 이 확신을 하나님의 비밀스런 오묘한 일에 대해 호기심으로 탐구함에 의해서가 아니라(신29:29; 고전2:10,11), 영적인 기쁨과 거룩한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지적된 선택받은 자의 확실한 열매를 즉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과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죄에 대한 경건한 슬픔과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얻습니다(고후13:5; 7:10; 마5:6).

제 13 장
이 확신의 가치

이 선택을 잘 깨닫고 확신을 갖게 될 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 그들의 하나님의 깊은 자비로우심을 찬양하며,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며, 자연스레 참으로 크게 자신들을 먼저 사랑하셨던 그분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큰 이유가 됩니다(요일3:3; 4:19). 그러므로 이 선택의 교리와 이 교리에 대한 숙고는 그들을 하나님의 명령을 준수하는데 나태하게 하거나 혹은 거짓된 안도감을 결코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따라서 이러한 일은 선택의 은혜를 경솔하게 추정하거나 아니면 태만하고 변덕스러운 담소를 일삼으나, 그러나 선택자의 길을 걷기를 거부하는 자에게서 일어납니다.

제 14 장
선택이 가르쳐 져야 하는 방법

하나님의 선택 교리는 하나님의 최상의 지혜로우신 경륜에 따라 선지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친히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고 사도들에 의해서 신약과 마찬가지로 구약시대에도 선포되었고, 그리고 성경 안에 명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의 교회에서 가르쳐져야 합니다(행20:27). 이를 위해서 적당한 장소와 때에 신중하고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가장 거룩한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또 그의 백성의 산 위로를 위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길을 호기심으로 탐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숭고하고 거룩한 방식으로 선택 교리가 선포되어야 할 것입니다(욥36:23-26; 롬11:33; 12:3; 고전4:6).

제 15 장
기술된 유기

성경은 우리에게 특별히 모든 사람이 선택되지 않았고 오히려 어떤 사람은 선택되지 않았거나, 혹은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에서 간과되었다고 진전되게 선언할 때에 이 영원하고 감당할 수 없는 우리의 은혜로운 선택을 묘사하고 있고 적극적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롬9:22; 벧전2:8). 하나님의 지극히 자유로우시고, 지극히 공의로우시고, 비난의 여지가 전혀 없고, 불변하는 선한 뜻으로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신의 과오로 인해 스스로 빠진 공동의 비참함에 내버려두시고(행14:16), 그리고 구원하시는 믿음과 회심의 은혜를 주지 아니하십니다. 이들을 자신들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두시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아래 두시어, 자신들의 불신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들의 다른 죄 때문에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과시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정죄받고 또 영원토록 벌 받도록 결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유기라는 경륜이며, 이것으로 죄를 만드신 장본인으로 하나님을 만들지 않으며(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오히려 그분을 두렵고 측량할 수 없는 그리고 공의로운 재판관이자 보복자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제 16 장
유기 교리에 대한 반응

일부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산 믿음(약2:26)과 마음의 견고한 확신(고후1:12)과 양심의 평안(롬5:11)과 어린아이와 같은 순종을 향한 열심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빌3:3)을 아직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러한 것들을 일하시기 위해서 약속하셨던 방편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유기가 언급될 때에 놀라지 말고, 스스로를 유기된 자로 헤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은 부지런히 이 방편들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더 풍성한 은혜의 때를 열렬하게 갈망해야 하고, 그리고 경외감과 겸손함으로 이를 고대해야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진지하게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죽은 몸으로부터 건짐을 받기를 갈망합니다(롬7:24).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경건과 믿음의 이르는 지점까지 이르지 못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유기교리에 무서워 떨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며 상한 가대도 꺾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사42:3; 마12:20).
그러나 다른 이들은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그리고 이 세상의 걱정과 육신의 정욕에 전적으로 자신을 맡깁니다(마13:22; 히12:29). 이들에게 유기의 교리는 그들이 하나님께 진지하게 돌아가지 않는 한 지독하게 무서운 것입니다.

제 17 장
유아 때에 죽은 신자의 자녀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신자들의 자녀들이 그 본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은혜 언약이라는 덕분으로(창17:7) 거룩하고(사59:21), 이 은혜언약 안에 그들은 그들의 부모와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선언합니다(행7:14).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유아 때에 이생에서 불러 가신 자기 자녀들의 선택과 구원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고전7:14).

제 18 장
반대가 아니라 찬양함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과 준엄한 의로운 유기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에게(욥34:34-37)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도의 이 말씀으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롬9:20)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20:15).
게다가 이 놀라운 신비함에 대해서 경외하는 마음으로 찬송하면서 사도와 같이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11:33-36).

오류들을 배격함

선택과 유기의 참된 교리를 잘 설명했으므로, 대회는 다음의 잘못된 주장들을 배격합니다.

1

오류: 믿고자 하고 또 믿음을 보전코자 하고 또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구원에 이르는 선택의 전체적이고 온전한 작정이다. 이 작정에 관해 그 외의 다른 주장은 성경에 계시되지 않았다.

반박: 이 오류는 기만적이고 또 명백하게 성경의 반대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영원 전부터 특정한 수를 선택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특히 선택하신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견인을 부여하십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17:6). 그리고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 함이라.(엡1:4)

2

오류: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하는 하나님의 선택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적이며 불명확한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특별하고 분명한 것이다. 따라서 전자는 불완전하고 취소될 수 있으며 결정적이지 않고 조건적이든지, 혹은 후자는 완전하고 취소될 수 없으며 결정적이고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하나는 믿음에 이르는 선택이요 또 다른 하나는 구원에 이르는 선택이다. 그러므로 선택은 구원에 이르는 결정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믿음을 의롭다고 할 수 있다.

논박: 이 모든 주장은 성경에 전혀 토대를 두지 않은 채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 발명품입니다. 이와 같이 선택 교리는 부패한 것이고 또 우리 구원의 황금 줄을 끊어버리는 는 것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3

오류: 성경이 선택에 관하여 말씀하는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목적은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들을 선택하셨고 그리고 다른 사람은 선택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가능한 조건들로부터(율법의 행위들과 같은 것들) 구원의 조건이 되도록 믿음의 불완전한 순종과 마찬가지로 믿음 그 자체는 공로가 없는 믿음의 행위를 하나님이 선택하시거나 혹은 선별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로써 이와 같은 믿음을 완전한 순종으로 여기셔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신다.

논박: 바로 모욕적인 오류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그리스도의 모든 공효를 박탈하는 것이며, 그리고 사람을 은혜로운 칭의 진리를 제거하는 것이고 동시에 성경의 단순성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사도의 말씀과 충돌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4

오류: 믿음에 이르도록 선택은 사람이 먼저 본성의 빛을 바르게 사용해야 하고, 또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합당한 경건과 겸손과 온유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에 의존한다.

논박: 만일 이 주장이 진실이라면, 선택은 사람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이 주은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을 연상하게 하며 그리고 에베소서 2장 3-9절에서 사도의 교훈과 충돌됩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5

오류: 특정한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불완전하고 결정적이지 않는 선택은 예견된 믿음과 회심, 거룩함, 경건한 등의 생활 등을 이미 시작했거나 아니면 얼마 동안 계속되었다는 근거로 발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완전하고 결정적인 선택은 믿음과 회심 그리고 거룩함과 경건함에 끝가지 이르도록 하는 견인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선택받은 사람이 선택받지 않는 사람보다 더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은혜롭고 복음적인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믿음, 믿음의 순종, 거룩함, 경건함 또한 견인은 영광에 이르게 하는 불변하는 선택의 열매가 아니다. 대신에 이것들은 완전히 선택받은 사람들 안에서 성취되는 것으로 요구되고 예견된 필수적인 조건들과 근거들이다.

반박: 이 오류는 모든 성경과 충돌되는 것인데, 성경은 변함없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인상지우고 있습니다.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세게 하려 하사.(롬 9:11).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롬 11:6).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요일 4:10).

6

오류: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작정에도 불구하고, 택함받은 사람들 중의 얼마는 과연 멸망받을 수 있으며 또한 실제로 멸망받는다.

반박: 이 막중한 오류는 하나님을 변덕스러운 분으로 만들며, 신자들이 자신들의 선택의 확신으로부터 얻는 위로를 파괴하며, 그리고 성경과 반대됩니다.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리라.(요 6:39)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7

오류: 가변적이고 불명확한 조건과 같은 것에 토대를 둔 것을 제외하고는, 이생에서 영광에 이르는 불변하는 선택의 열매나 의식이나 확신이 있을 수 없다.

논박: 불확실한 확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신자들의 경험과도 반대됩니다. 신자들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분명한 자각한 결과로서 사도와 함께 에베소서 1장과 같이 하나님의 은총을 자랑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더불어 신자들은 누가복음 10장 20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다는 시실을 즐거워합니다. 신자들은 사단의 화전에 대항하여 자신의 선택을 의식하면서,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롬 8:33)라고 외칩니다.

8

오류: 하나님은 오로지 그의 의로우신 뜻에 따라서 아담이 타락한 이래로 어느 누구도 죄와 정죄의 공통된 상태로 내버려두기로 결정하지 않으셨고, 또한 믿음과 회심에 필요한 그와 같은 하나님과의 은혜를 부여하시는데 어느 누구도 간과하지도 않으셨다.

반박: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롬9:18).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노라.(마13:11). 천지의 주제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다.(마11:25,26).

9

오류: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복음을 보내시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보내시지 않은 이유는 당신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 때문만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받은 사람이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낫고 또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반박: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교할 때에 이 주장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신10:14,15). 또한 그리스도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비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라.(마11:21).
둘째 교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인간의 구속

제1장
하나님의 공의가 요구하는 형벌

하나님은 가장 자비로우실 뿐 아니라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출34:6,7; 롬5:16).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말씀으로 계시하셨듯이, 하나님의 심판은 그분의 무한한 위엄에 반하여 저지른 우리의 죄들은 이 세대만이 아니라 오는 세대에도 몸과 영혼으로 형벌을 받아야한다는 것을 요구합니다(갈3:10).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지 않는 한, 이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제2장
그리스도에 의해 시행된 보속

따라서 우리 스스로는 이 보속을 감당할 수 없고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스스로 해방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자비하심으로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의 보증으로 주셨습니다(요3:16; 롬5:8). 우리를 위해서 혹은 우리를 대신하여 그분이 죄가 되시고 또 십자가에서 저주받으셔서 우리 대신에 하나님의 공의를 보속하셨습니다(고후5:21; 갈3:13).

제3장
그리스도 죽음의 무한한 가치

하나님의 아들의 이러한 죽으심은 죄를 위한 유일하고도 가장 완전한 속죄 제사요 보속이며(히9:26,28; 10:14), 온 세상의 죄를 충분히 보상할 수 있는 무한한 가치와 진가가 있습니다(요일2:2).

제4장
그리스도의 죽음이 무한한 가치가 있는 이유

이 죽음이 무한한 가치와 존엄이 있는 이유(히4:15; 7:26)는 이 죽음에 자신을 내놓으신 그 분이 참되시고 완전하게 거룩한 사람일 뿐 아니라, 성부와 성령과 함께 똑같이 영원하시며 무한하신 본질을 가지신, 우리의 구세주에게 필요했던 자질을 구비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4:9). 게다가 이 죽음이 그렇게도 가치가 있고 존엄한 이유는 이 죽음이 우리가 우리의 죄로 마땅히 받아야 했던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의미를 동반했기 때문입니다(마27:46).

제5장
복음의 보편적인 선포

복음의 약속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것입니다(요3:16). 이 약속은 모든 나라와 모든 사람들에게(마28:19) 차별 없이 보편적으로 공포되고 설교되어 하며(고전1:23),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회개하고 믿으라는 명령과 더불어 복음을 보내십니다(행2:38;16:31).

제6장
일부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유

그러나 복음에 의하여 부름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그들이 회개도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단지 믿지 않음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마22:14). 이 일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드려진 희생이 모자라거나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들의 과오를 통해서 발생하는 것입니다(시95:11; 히4:6).

제7장
다른 사람들이 믿는 이유

그러나 진실로 믿고 또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자신들의 죄에서 해방되었고 그리고 지옥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이 유익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오며,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 전부터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고후5:18). 하나님은 이 은혜를 어느 누구 덕으로 돌리지 않으십니다(엡2:8,9).

제8장
그리스도의 죽음의 효능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성부 하나님의 지극히 자유로운 작정이었기에,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내어주심과 그의 보배로운 죽으심의 구원하는 효능은 모든 선택받은 자에게 미칩니다(요17:9; 엡5:35-27). 택함받은 자들에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고 또 이들에게 확실하게 구원에 이르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지극하신 은혜의 뜻과 의향에서였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을 통해서 그리스도가(이렇게 하여 새 언약을 확증하셔서) 모든 사람과 족속과 민족, 또 영원 전부터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하시고 그리고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만 효과적으로 구속하시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눅22:20; 히8:6; 계5:9). 게다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또 더불어 성령의 구원하시는 은사들을 주시기를 기뻐하셨고, 그분은 당신의 죽음으로만 이것들을 획득하셨습니다(빌1:29). 그분은 믿기 전과 후에 지은 모든 죄들을 그것이 원죄이든 자범죄이든 간에 깨끗케 해주시며(요일1:7), 또 세상 끝 날까지 신실하게 보존해주시고 또 마지막 날에 친히 그들을 점과 흠이 없이 하나님께 드리실 것입니다(요10:28; 엡5:27).

제9장
하나님의 작정의 성취

선택함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영원 전부터 계속되어온 이 작정은 설사 지옥의 권세가 이 작정을 무산시키려고 헛되이 계속 노력할지라도(마16:18) 세상 시작부터 현재까지 강력하게 성취되어 왔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적기에 선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함께 하나로 모이게 될 것이고(요11:52;왕상19:18), 그리고 거기에서 항상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신자들의 교회로 있을 것입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를 자기 구세주(이분은 자기 신부를 위한 신랑으로서 교호를 위해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분이시다)로 변함없이 사랑하며 신실하게 섬길 것이며 그리고 여기에서와 또 영원토록 그분의 영광을 기념하게 될 것입니다(엡5:25).


오류들을 배격함

그리스도의 죽음의 참된 교리와 이 죽음에 의한 사람의 구속을 설명한 뒤에, 대회는 다음과 같은 오류들을 배격한다.

1

오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도록 임명하신 것은 특정하고 한정된 몇몇 사람을 구원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죽음으로 획득하신 모든 것은 비록 그리스도가 획득하신 구속이 실제로 어떤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필연성과 유익성과 그 가치는 그대로이고, 그리고 모든 부분에 있어서 온전하고 완전하고 전혀 변하지 않는다.

반박: 이 교의는 하나님 아버지의 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모욕하는 것이며, 또 성경과 충돌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나는 저희를 안다.(요10:15, 27). 또한 이사야 선지자도 구세주에 관하여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10)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오류는 보편적인 기독교회에 관한 신앙의 조항과 상충됩니다.

2

오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피로 새로운 은혜 언약을 확증하는 것이 그의 죽으심의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는 은혜로든 행위로든 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와 같은 언약을 사람들과 여러 번 세우기 위한 단순한 권리를 아버지를 위해서 얻고자 한 것이 죽으신 목적이다.

반박: 이 주장은 성경에 반하는 것으로서,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더 나은 즉 새 언약의 보증과 중보자가 되셨고, 또 이 뜻은 오직 죽음으로만 효력을 일으킨다고 가르칩니다(히 7:22과 9:15,17).

3

오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보속으로 실제로 구원 그 자체나 혹은 믿음 그 어느 것도 얻으신 것이 아닌데 이것으로 구원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이 보속은 그 자신의 것만 효과적으로 만드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부를 위해서 사람과 다시 교제하기 위해서 권위 혹은 완전한 의지만을 획득하셨고, 그리고 그가 바라시는 대로 새로운 조건들을 규정하셨다. 더욱이 이것은 이 조건들을 감당하는 것은 사람의 자유 의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아무도 이 조건들을 성취하지 못하든 아니면 모든 사람이 이 조건들을 성취하든 모두 가능하다.

반박: 이 오류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모독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얻게 되는 가장 중요한 열매나 유익들을 완전하게 부인하는 것으로서 펠라기우스의 엄청난 잘못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4

오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중재를 통하여 사람과 맺은 새로운 은혜 언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고 또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공로를 받아들이는 한 구원받은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율법의 완전한 순종을 철폐시키셨고 그리고 믿음 그 자체와 믿음의 순종이라는 것을 비록 불완전하지만 율법의 완전한 순종으로 여기신다는 사실을 구성한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기에 이것을 영원한 생명의 보상에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신다.

반박: 이 교리는 성경과 상반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라.(롬3:24-25). 이 오류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온 교회가 가르치는 교훈의 내용과 어긋나는 것이며, 마치 불경건한 소시누스의 가르침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의롭다함을 받는 문제를 새롭고도 낯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5

오류: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화해되고 은혜언약 안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리하여 그 누구도 원죄로 인해 결코 저주를 받지 않으며, 그리고 아무도 이것은 원죄로 인해 저주받지 않게 되며, 오히려 원죄의 죄책에서 해방되었다.

반박: 이 견해도 성경과 충돌되며, 또 성경은 우리가 본질상 진노의 자식(엡 2:3)이라고 가르칩니다.

6

오류: 하나님에 관한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의해서 획득된 유익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부여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죄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또 얻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 이런 구분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고, 그리고 이것은 그 자체를 예외 없이 누구에나 주어진 은혜일 뿐 영생을 받는다는 것이 그들 속에 역사하는 어떤 특별한 자비를 입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반박: 이런 교의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구원의 획득과 구원의 적용 사이의 차이점을 오용한 것이며 그리고 경박하고 미숙한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건전한 의미에서 이 차이점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펠라기우스의 독소를 사람들의 마음에 불어넣는 것입니다.

7

오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사 영원한 생명에로 작정한 사람들을 위해서 죽을 수도 없었고, 죽으실 필요도 없었으며, 더욱이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박: 이 교의는 사도의 가르침과 반대됩니다. 그리고 사도는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롬8:33,34). 또한 구세주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5).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요15:1,13).


셋째와 넷째 교리: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께의 회심, 그리고 회심 후의 태도

제 1 장
타락의 효과

태초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다(창1:26,27). 그는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와 영적인 일들에 대해 참되고 건전한 지식으로 마음에 광채를 발했다. 즉 그의 의지와 마음은 의로웠고, 그의 모든 감정은 순수했고, 고로 사람은 완전하게 거룩했다.
그러나 사람은 사단의 유혹과 자유 의지로 하나님을 거역하여 이 탁월한 은사들을 박탈당하였으며(창3:1-7), 대신에 스스로 눈이 멀었고, 비참한 어두움과 헛됨과 왜곡된 판단력을 가지고 즉 그의 의지와 마음이 악하고 반역하고 완고하여졌으며, 모든 감정이 불순하게 되었다(엡4:17-19).

제 2 장
부패의 확산

사람이 타락한 후에 부패하여져서(욥14:4), 부패한 아비로서 부패한 자녀들을 낳았다(시51:7). 이러한 부패가 단 그리스도를 예외로 하고(히4:15), 마치 옛날 펠라기안들이 언급했듯이, 모방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에 의하면 왜곡된 본성의 유전으로 아담에서 그의 모든 후손에 이르기까지 이르게 되었다(롬5:12).

제 3 장
사람의 전적인 무능력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서 잉태되어 진노의 자녀로 태어나(엡2:1,3), 구원받을 만한 어떤 선행도 할 수 없고, 죄악으로 기울어져(요8:34),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의 종이 되었다(롬6:16,17; 요3:3-6). 또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은혜가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께로 올 수 없고 타락한 본성을 개혁할 수 없고, 개혁하고자 준비조차도 할 수 없다(딛3:5).

제 4 장
본성의 빛의 불충분성

분명히 사람이 타락한 후에도 본성의 빛이 조금 남아 있어서(롬1:19,20; 2:14,15), 하나님과 자연과 사물에 관해 그리고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에 관하여 약간의 관념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덕과 외적인 질서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존경을 보인다. 그러나 자연의 빛을 통하여서는 사람이 도저히 하나님의 구원하는 지식과 참된 회심에로 이르게 할 정도가 되지 못하며, 사람은 자연의 빛을 자연과 시민문제들에 있어서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 오히려 사람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 빛을 전적으로 오염시키고 또 자신의 악함으로 이 빛을 억제시킨다. 그렇게 함으로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결코 변명할 수 없다(롬1:18,20).

제 5 장
율법의 불충분성

자연의 빛을 붙잡고 있는 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특히 유대인들에게 주셨던 십계명을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록 이 십계명이 죄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더욱 더 사람에게 자기 죄를 깨닫게 할지라도, 사람을 치유하지도 못하고 이 비참함으로부터 건져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롬3:19,20; 7:10,13),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롬8:3), 저주 아래 범죄자를 방치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율법을 통해서 구원하는 은혜를 획득할 수 없다(고후3:6,7).

제 6 장
복음의 필요성

따라서 자연의 빛이나 율법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화목케 하는 말씀 혹은 사역을 통해 수행하신다(고후5:18,19). 그리고 이 말씀은 메시아에 관한 기쁜 소식이며, 구약이나 신약 아래 있는 누구든지 이 소식을 믿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전1:21).

제 7 장
복음이 어떤 이에게는 전달되고 다른 이에게는 전달되지 않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비밀스러운 뜻을 구약 시대에는 오직 소수에게만 계시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약 시대에 여러 민족들 간의 구별을 없애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계시하셨다(엡1:9; 2:14; 골3:11). 이렇게 복음을 반포하시는 이유는 어느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한 탓도 아니며(롬2:11), 이 자연의 빛을 더욱 잘 사용해서도 아니며, 다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기쁘신 뜻과 무조건적인 사랑에 기인한다(마11:26). 따라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과는 정반대로 넘치게 큰 은혜를 받은 우리는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은혜를 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관련하여서, 우리는 사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준엄하심과 공의를 찬양해야지 의심쩍은 방편들로 그 일들을 캐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롬11:22,3; 계16:7; 신29:29).

제 8 장
복음에 의한 열렬한 부르심

그러나 복음에 의해 부르심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사55:1) 진지하게 부름을 받았다(마22:4).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진지하고도 신실하게 당신의 말씀으로 당신을 기쁘시게 하는 것 즉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당신에게 와야 한다는 것을 계시하셨기 때문이다(계22:17). 진실하게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복음에 의해 부름 받은 사람이다(요6:37; 마11:28,29). 하나님께서는 또한 진지하게 당신에게로 와서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영혼에게 안식을 주실 것과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제 9 장
부름을 받았던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이유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와서 회심하지 않은 것은 복음에 결점이 있거나 복음에 의해 제시된 그리스도에게 과오가 있거나 하나님에게 있지 않다. 그 잘못은 그들에게 있다(마11:20-24; 22:1-8; 23:37). 그들 중에 일부는 생명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참으로 받아들이나, 그러나 그들은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따라서 일시적인 믿음의 즐거움이 사라져버려, 타락해버린다. 또한 어떤 이들은 생명의 말씀이 이생의 근심과 즐거움의 가시에 의해서 질식되어, 아무런 열매도 산출하지 못한다. 우리의 구세주께서 이 사실을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르쳐주셨다(마 13장).

제 10 장
부름을 받았던 사람들이 오는 이유

복음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은 다른 사람들은 와서 회심했다. 이렇게 한 것을 그들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롬9:16). 그는 믿음 혹은 회심을 위해 동등한 혹은 충분한 은혜를 받았던 다른 사람들보다 초월해서 자기의 자유 의지에 의해서 자신을 구별시킨 것이 아니다(마치 거만한 펠라기안들이 주장하듯이).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 덕분이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백성을 선택하셨고 그리고 시간 속에서 이들을 효과적으로 부르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과 회개를 주신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둠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그의 아들의 사랑의 나라로 옮기신다(골1:13; 갈1:4). 이 모두를 하나님이 그들이 자신들을 어둠에서 그분의 기이한 빛으로 부르셨던 그분을 찬양하도록 하며(벧전2:9; 고전1:31), 그리고 여러 곳에서 사도들이 증거하는 대로 자신들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을 자랑하려 함이다(고후10:17; 엡2:8,9).

제 11 장
하나님께서 회심을 일으키시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택한 사람 안에서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시는데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 안에서 참된 회개를 일으키신다. 하나님은 복음이 그들에게 선포되도록 하여 돌보시고, 그리고 성령에 의해 강력하게 그들의 마음에 비추시어(히6:4,5;고전2:10-14), 그렇게 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에 속한 일들을 바르게 이해하며 분별토록 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중생시키시는 성령의 효과적인 사역으로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미치게 하신다(히4:12;행16:14). 하나님께서는 닫힌 마음 문을 여시고 강퍅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할례받지 못한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고(신30:6), 새로운 성향을 의지에 주입하신다(겔11:19;36:26). 하나님께서는 죽어 있는 의지를 살리시는데, 이 의지는 고집 센 마음을 푸시고, 완고한 마음을 순종하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강화시키시어 좋은 나무처럼 선한 행위의 열매들을 산출하도록 하신다(마7:18).

제 12 장
중생은 오직 하나님만의 사역이다.

성경에서 지극히 분명하게 말씀하는 바와 같이, 이 회심은 중생이며, 새로운 창조이며,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며, 우리 자신과 무관하게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다(요3:3; 고후4:6;5:17). 그러나 이 중생은 결코 외적인 가르침으로나 도덕적 권면으로나 이와 같은 실시 방식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결코 아니며,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다 하신 후에, 중생의 여부와 회심의 여부가 사람의 능력 안에 여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중생은 분명히 초자연적이고 가장 강력하며, 동시에 가장 기쁘고 놀랍고 결코 분명하게 다 표현할 수 없다. 중생케 하는 사역을 시작하시는 분에 의해 영감된 성경에 따르면, 중생은 창조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는 능력보다 열등하지 않다(요5:25;롬4:1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속에서 놀라운 방식으로 일하시는 모든 사람에게는 분명하고도 정확하면서 효과적으로 중생케 하며 또 실제적으로 믿음을 얻게 한다(빌2:13). 그러므로 이렇게 하여 분명하게 새롭게 된 의지는 하나님에 의해서 이뤄지고 효력을 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 일구어진 의지 그 자체도 활동적인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몸소 자신이 받은 은혜로 인하여 믿고 회개함에 이른다고 말함이 옳다.

제 13 장
중생은 다 이해할 수 없다.

이생에서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중생사역을 일으키시는 것을 완전하게 다 이해할 수 없다(요3:8).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신자들은 자신의 구세주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는 것을 충분히 알고 경험한다(롬10:9).

제 14 장
믿음이 어떻게 하나님의 선물인가

그러므로 믿음이란 하나님의 선물인데(엡2:8), 이는 사람의 자기 뜻에 따라 하나님께서 제공해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오히려 사람에게 실제적으로 제공되고, 불어넣어, 주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믿는 힘과 능력을 주시고 그렇게 한 다음 사람이 자유의지를 행사하여 기꺼이 믿거나 혹은 믿기를 기다린다는 측면에서 선물이라는 말이 아니다(빌2:13).

제 15 장
하나님의 감당할 수 없는 은혜에 대한 올바른 태도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베푸시는데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어찌 빚지실 수가 있는가?(롬11:35) 자신이 보답 받을 수 있도록 먼저 누가 하나님께 베풀었는가? 어찌 하나님께서 단지 가진 것이라고는 죄와 거짓밖에 없는 사람에게 덕을 입으실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오로지 하나님께 덕을 돌리고 영원토록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이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은 이 영적인 은사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으며 자기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거나 위험을 전혀 모르고 자기가 갖지도 않은 것을 헛되게 자랑한다(암6:1; 렘7:4). 더 나아가 입으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며 개선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하여,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 우리는 가장 호의적인 태도로 그들을 판단하고 말해야 한다(롬14:10). 왜냐하면 그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부르심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 관하여,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한다(롬4:17). 그러나 마치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그들과 구별되는 것처럼, 우리는 결코 거만하게 처신해서는 안 된다(고전4:7).

제 16 장
사람의 의지가 제거되지 않았고 다시 살아났다.

사람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지력과 의지를 부여받은 사람이 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온 인류에게 퍼져 있는 죄가 사람에게서 인간성을 박탈시킨 것은 아니며, 부패와 영적인 죽음을 가져왔다(롬8:2; 엡2:1). 그래서 또한 하나님의 이 중생의 은혜는 마치 사람들이 돌덩어리인 것처럼 취급해서는 안 되며 그리고 사람의 의지와 그 자질을 제거하는 것도 아니며, 의지를 격렬하게 억압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의지가 영적으로 살아나도록 만들며, 치유하며, 교정하며, 즐겁게 또 동시에 강력하게 굽힌다(시51:12; 빌2:13). 결과적으로 이전에 육신의 반역과 저항이 지배되던 곳을 이제 성령의 즉각적이고도 신실한 순종이 압도하기 시작하며, 이곳에서 참된 영적인 회복과 우리의 자유의지가 성립한다. 그리고 만일 모든 선한 것의 경이로운 창조주께서 이 방식으로 우리를 다루지 않으신다면, 사람은 이 자유 의지를 통해서 자신의 타락에서 살아날 희망이 없을 것이며, 사람이 서 있다고 생각할 때에, 스스로 파멸의 구덩이로 빠져 들어갔다.

제 17 장
방편들을 사용함

우리의 이 자연적인 생명을 산출하시고 보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한 사역은 방편들의 사용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요청하며, 이것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무한하신 지혜와 선하심에 따라 당신의 능력을 기꺼이 실행하신다(사55:10,11).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를 중생시키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도 결코 복음의 사용을 무시하거나 무제하지 않으며, 이것을 가장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중생의 씨앗과 영혼의 양식이 되도록 정해놓으셨다(벧전1:23,25; 2:2). 이런 이유로 사도들과 그들을 이은 교사들은 경건하게 하나님의 이 은혜에 관하여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리고 모든 교만을 낮추도록 가르쳤다. 게다가 동시에 사도와 교사들은 하나님 말씀과 성례들과 권징 아래서 거룩한 복음으로 권하여 그들을 지키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다(행2:42; 고후5:11-21; 딤후4:2). 그래서 오늘날 교회 안에서 교훈을 하거나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하신 뜻으로 하나로 긴밀하게 엮어놓으신 것을 떼어놓음으로 하나님을 감히 모욕해서는 안 된다(롬10:14-17). 왜냐하면 은혜는 훈계를 통해서 수여되며,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수행하면 할수록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 은총이 대개는 그 자체를 찬란하게 드러내며,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역이 잘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 방편들과 또 구원하는 열매와 효력에 대해서 모든 영광이 오직 하나님께만 영원토록 돌려야 한다(유24,25). 아멘.


오류들을 배격함

사람의 부패와 하나님께로 회심에 대한 참된 교리를 해설하고 난 뒤에, 대회는 다음과 같은 오류들을 배격한다.

1

오류: 올바르게 말하자면, 이와 같은 원죄가 온 인류를 정죄하기에 충분하다거나 혹은 일시적인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되어서는 안 된다.

반박: 이 주장은 사도가 로마서 5장 12절에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하는 선언한 이 말씀과 충돌된다. 그리고 16절에서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느니라고 하며, 6장 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다.
2

오류: 선, 거룩, 의와 같은 영적인 은사와 선한 자질과 덕은 사람이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에 사람의 의지에 속한 것도 아니고 타락한 이후에 없어진 것도 아니다.

반박: 이 오류는 사도가 에베소서 4장 24절의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묘사와 어긋나는 것이다. 거기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형상이 의와 거룩함이라고 했는데, 이는 분명히 의지에 속한 것이다.

3

오류: 영적인 죽음에 있어서 영적 은사들은 사람의 의지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닌데, 그 이유는 의지가 그 자체에 있어서 결코 부패된 것이 아니요 다만 깨달음이 어두워졌고 또 마음이 둔화되어 의지가 방해를 받았을 뿐이다. 만일 이 방해되는 요인이 제거된다면, 의지는 그 본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의지 그 자체로서는 원함으로 선택하든지 원치 않음으로 버릴 수 있든지 등의 온갖 선한 행위를 보일 수 있다.

반박: 이 주장은 다음의 예레미야 선지자가 17장 9절에서 말씀하는 바와 모순 되는 자유 의지의 능력을 지나치게 높이고자 하는 임의로 만들어낸 잘못된 주장이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그리고 사도 바울도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불순종하는 가운데에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라고 말씀했다(엡 2:3).

4

오류: 중생하지 않은 사람은 실제적으로나 혹은 전적으로 죄 가운데서 죽은 것이 아니요, 영적인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직 중생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의와 생명에 주리고 목말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통회하는 상한 심령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반박: 이런 주장들은 다음과 같은 성경의 분명한 증거와 충돌된다. 너희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어 있다(엡 2:1,5). 그리고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8:1). 더 나아가 오직 중생하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만이 비참과 이후 삶에서 구원 받고자 주리고 목마르며, 그리고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릴 수 있다(시 51:17; 마 5:6).

5

오류: 타락한 자연인도 일반 은총(알미니안들은 이 일반 은총을 자연의 빛을 이해하는데)을 잘 사용할 수가 있으며, 또는 타락 후에라도 이 은사들이 사람에게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이것을 점점 더 잘 사용할 수 있는데, 즉 복음 혹은 구원하는 은혜, 구원 그 자체로 잘 사용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들에게 계시하실 준비가 다 되어 있음을 보이시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믿음과 회심에 필요한 방편들을 충분히 그리고 효과 있게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시기 때문이다.

반박: 이런 주장들이 틀렸다는 것을 모든 시대의 경험만이 아니라, 성경이 증거한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다 할렐루야(시 147:19,20),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행 14:1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행 16:6-7).

6

오류: 사람이 참된 회심을 하는 데에 그 어떤 자질이나 능력과 은사도 하나님에 의하여 사람의 의지 속에 주입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통해서 처음으로 회심하여 신자라고 불리게 된 이 믿음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입된 자질이나 은사가 아니라 다만 사람의 행위일 뿐이다. 이 믿음을 얻으려는 능력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 믿음이 선물이라고 말할 수 없다.

반박: 이 주장은 성경의 말씀과 충돌되는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믿음과 순종의 새로운 자질과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마음을 우리 마음속에 넣어주셨다고 선언한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렘 31:33).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사 44:3).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또한 이 주장은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렘 31:18)라고 기도한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기도와 같이, 교회가 지금까지 가르쳐온 바와 충돌된다.

7

오류: 우리가 하나님께로 회심할 수 있었던 바의 이 은혜는 단지 부드러운 충고에 불과하다, 이 충고를 이루고 있는 이러한 사역의 방식은 사람의 회심 시에 가장 고상한 방식이며 그리고 사람의 본성과도 일치한다. 오직 이 충고하는 은혜만이 사람의 본성을 영적인 것으로 만들 수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참으로 하나님은 이러한 도덕적인 설득을 통하지 않고는 사람의 의지에 찬동을 일으키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역의 능력은 사단의 능력을 능가하며, 사단이 단지 일시적인 것들을 약속하는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것을 약속하신다는데 있다.

반박: 이 주장은 철저하게 펠라기안적인 입장이며 그리고 성경 전체와 반대된다. 위의 내용은 마치 에스겔서 36장 26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사람의 회심 속에서 나타난 성령의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

8

오류: 하나님께서 사람을 중생케 하실 때에 강력하고도 무한하게 사람의 의지를 굽혀 믿고 회심하도록 하기 위해서 전능하신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설사 하나님께서 사람이 회심하도록 이 모든 은혜의 사역을 다 이루신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설사 하나님께서 사람의 중생을 꾀하시고 그리고 그를 기꺼이 중생케 하신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나님과 성령을 저항할 수 있으며, 참으로 자주 저항하며, 사람이 전적으로 자신의 중생을 방해한다. 따라서 중생의 여부는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다.

반박: 이와 같은 주장은 사람의 회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충족성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며, 전능한 하나님의 사역을 사람의 의지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사도는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엡 1:19), …우리 하나님이…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살후 1:11),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벧후 1:3).

9

오류: 은혜와 자유 의지는 회심 초기에 같이 일하는 부분적인 근거일 뿐이다. 이 근거들의 순서에서 은혜는 자유의지의 발동에 앞서지 않는다. 사람의 자유의지 그 자체가 작용하여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는 이 자유 의지를 효과적으로 돕지 않으신다.

반박: 오래 전 초대 교회는 다음과 같은 사도의 가르침을 좇아서 이런 펠라기우스의 교리를 정죄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니라(롬 9:16).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고전 4:7).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느니라(빌 2:13).


다섯 번째 교리:
성도의 견인(堅忍)

제 1 장
중생한 사람은 죄 가운데 거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따라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 속으로 부르시고, 또 성령으로 중생케 하신 자들은, 하나님께서 죄의 지배와 노예에서 자유케 하셨으나, 이생에서 죄의 육신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롭지는 않다(요8:34; 롬6:17; 7:21-24).

제 2 장
연약함으로 인해 날마다 죄를 지음

그러므로 사람이 날마다의 연약함에서 죄가 솟아나고 또 성도가 행하는 최상의 일에서조차도 결점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요일1:8). [이런 이유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겸손해야 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게 도망해야 하고, 기도의 성령을 통해서 또 경건의 거룩한 연습으로(딤전4:7) 점점 더 육신을 죽여야 하고(골3:5) 그리고 마지막까지 완전한 목표를 갈망하고 애써(빌3:12,14) 이 죽을 몸에서 구원받아 하늘에서 하나님의 어린양과 더불어 왕 노릇한다(계5:6,10).

제 3 장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존하신다.


내재하는 남아 있는 죄와 세상과 사단의 유혹 때문에, 이미 회심한 사람들도 자력으로는 이 은혜 안에 계속해서 거할 수 없다(롬7:20). 그러나 하나님이 신실하시고, 그리고 그분은 자비로우셔서 그들을 은혜 안에 깊이 머물게 하셔서 마지막 날까지 이 은혜 안에서 강력하게 보존하실 것이다(고전10:13; 벧전1:5).

제 4 장
성도들이 심각한 죄에 빠질 수도 있다.

비록 하나님께서 은혜 안에서(엡1:19) 참된 신자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보존하시는 그의 능력이 너무 커서 육신에 의해서 결코 정복되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심한 사람이 항상 하나님에 의해 인도받고 감동받는 것은 아니며 그러하기에 그들도 어떤 특정한 행동의 경우에는 자신의 결점을 통해서 은혜로운 인도하심에서 벗어나 육신의 정욕에 유혹을 받아 넘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부단하게 경성하고 기도해야 한다(마26:41; 살전5:6,17). 그들이 경성하면서 기도하지 않을 때에, 그들은 육신과 세상과 사단에 의해서 지독하고도 잔인한 죄 가운데로 빠져 들어갈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허락하심으로 실제적으로 이러한 죄악에 빠지게 된다. 다윗과 베드로와 다른 성도들의 탄식할만한 타락이 성경에 기술되어 있고, 이 사실을 증명한다(삼하11장; 마26장).

제 5 장
이와 같은 지독한 죄를 지은 결과들

그러나 성도들이 큰 죄를 범함으로써(삼하12장), 그들은 하나님께 심히 불쾌하게 해드리고, 죽을 지경에 이르는 죄책을 초래하며, 성령님을 근심시키며(엡4:30), 믿음의 실행을 방해하며, 자신들의 양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히고(시32:3-5), 그리고 때로는 잠시 동안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의식을 상실하는데, 그들이 참된 회개를 통해서 바른 길로 돌아서게 될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빛이 그들에게 다시 비취게 된다(민6:25).

제 6 장
하나님은 선택하신 자를 잃어버리도록 놔두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한 변함없는 목적에 따라(엡1:11), 자비에 풍성하신(엡2:4)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심지어 지독하게 타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완전하게 거두어들이지 아니하신다(시51:13).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이 대단히 심히 가라앉도록 허용하시어 그들이 양자의 은혜(갈4:5)와 의인의 상태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시거나, 아니면 죽음에 이르는 죄를 저지르게 하시거나(요일5:16-18), 성령님을 대항하는 죄를 저지르거나, 전적으로 그분에 의해서 완전히 버림을 받거나, 영원한 파멸에 멸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신다(마12:31,32).

제 7 장
하나님은 선택하신 자들이 회개하여 다시 새롭게 하실 것이다.

그 까닭은 우선 성도들이 타락하였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소멸되지 않는 중생의 씨앗을 그들 안에서 보존하시어(벧전1:23; 요일3:9), 이 중생의 씨앗이 소멸되거나 폐기되지 않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확실하고도 효과적으로 그들이 회개하여 새롭게 되도록 하신다. 이 결과로 그들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경건한 슬픔으로 진심으로 애통하도록 하신다(고후7:10; 시32:5; 51:19). 그들은 믿음을 통해서 통회하는 마음으로 중보자의 보혈로 죄 사함을 추구하고 얻는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은총을 경험하며 그리고 그분의 자비와 신실하심을 찬송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그들은 훨씬 더 부지런하게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고자 한다(빌2:12).

제 8 장
삼위 하나님의 은혜가 보존된다.

성도 자신의 공로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자비를 통해서 성도들이 믿음과 은혜에서 완전하게 떨어져나가거나 은혜가 파멸 속에 계속적으로 거하든지 아니면 최종적으로 잃어버린바 되지 않는다. 성도 스스로와 관련하여 이 일은 쉽게 일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틀림없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련하여 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데(시33:11),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작정이 변하지 않고(히6:17),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하지 않고(롬8:30,34), 하나님의 목적에 따른 부르심이 취소될 수 없고(롬9:11),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재와 보존하심이 취하될 수 없고(눅22:32), 그리고 성령의 인치심이 좌절되거나 파기될 수 없기 때문이다(엡1:13).

제 9 장
이 보전하심의 확신

신자들 스스로가 구원에로 선택하신 자들의 보전하심과 믿음 안에서 참된 신자들의 보전하심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다(롬8:31-39). 그리고 그들은 참으로 자신의 믿음의 정도에 따라 확신할 수 있으며(딤후4:8,18), 이것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항상 교회의 참되고 살아 있는 회원들로 남게 될 것과 자신들이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견고하게 믿는다.

제 10 장
이 확신의 근거

이 확신은 하나님 말씀 곁이나 혹은 밖에서 어떤 사적인 계시에 의해서 산출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며, 이 약속들을 하나님께서 우리의 위로를 위해 지극히 풍성하게 계시해 놓으셨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자 상속자라는 사실을 성령의 증거(롬8:16,17)와 우리 영의 증거에 의해서(요일3:1,2),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결한 양심의 진지하고도 거룩한 추구와 선행에 의해서이다(행24:16). 그리고 만일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들이 이생에서 승리를 얻을 견고한 확신과 영원한 영광의 확실한 보증을 가지지 못한다면(롬8:37), 성도들이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이다(고전15:19).

제 11 장
이 확신을 항상 실감할 수는 없다.

동시에 성경은 신자들이 이생에서 살아갈 때 여러 가지 육신적인 의심으로 마음의 갈등을 갖게 되며, 극심한 유혹을 받게 되고, 믿음의 이런 충만한 확신과 견인에 대한 확실성을 항상 느끼지 못한다고 증거한다. 그러나 모든 위로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고(고후1:3), 오히려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시고,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들 안에 견인의 확신을 되살아나게 하신다(고전 10:13).

제 12 장
이 확신은 경건한 생활을 자극한다.

그러나 견인의 확신은 참된 신자들을 자만심이나 혹은 자기만족에 빠지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겸손, 자녀다운 경외감, 진정한 경건, 모든 투쟁에서 인내, 열렬한 기도, 하나님 안에서 지속적인 즐거움의 뿌리이다(롬12:1). 더 나아가 성도들이 이 유익을 묵상함으로 진지하고도 지속적인 감사의 태도를 갖고 선행을 하도록 자극한다(시56:12,13; 116:12; 딛2:11-14). 이는 성경의 증거들과 성도들의 본보기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요일3:3).

제 13 장
이 확신은 부주의하도록 이끌지 않는다.

이 새로워진 확신은 타락 후에 회복된 사람들에게 결코 부주의한 생활을 하거나 경건한 생활을 무시하도록 하지 않는다(고후7:10). 오히려 주님의 계명들을 신중하게 준수하도록 훨씬 더 큰 관심을 그들 속에 산출하며, 이렇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놓으셨다(엡2:10). 그들은 이 계명을 따라감으로 이 견인의 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 계명들을 준수한다.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의 부성적인 선하심을 남용하기 때문에 다시 그들의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리실 것이며, 그 결과로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마음의 고뇌에 빠지게 될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묵상하는 것은 생명보다 더 달콤하나(시63:4; 사64:7), 그러나 침륜에 빠지는 것은 죽음 보다 더 통렬하다(렘33:5).

제 14 장
견인 안에서 방편들을 사용함

하나님께서 복음 설교로 우리 안에 이 은혜로운 사역을 시작하신 것을 기뻐하셨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듣고 읽음으로, 묵상함으로, 권면하고, 위협하고, 약속하고, 성례들을 사용하심으로써 이 은혜로운 사역을 유지하시고 계속 진행시키시고 완성하신다(신6:20-25; 딤후3:16,17; 행2:42).

제 15 장
이 교리를 사단이 증오하나 교회는 사랑했다.

참된 신자와 성도들의 견인에 관한 이 교리와 견인에 대한 확신의 이 교리(계14:12)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의 영광과 경건한 자들의 위로를 위해서 지극히 풍성하게 계시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사실을 신자들의 마음속에 새기신다. 이 교리는 육신이 이해하지 못하고, 사단이 증오하고, 세상이 조롱하고, 무지한 자와 위선자들이 남용하고, 이단들이 공격하는 중요한 교리이다(엡5:32).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는 지극히 친절하게 이 교리를 항상 사랑했고,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보석으로 견고하게 이 교리를 방어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대적하는 자들의 모략을 폐하시고 힘을 마르게 하셔서(시33:10,11) 교회가 계속해서 그렇게 하도록 하실 것이다(벧전5:10,11). 삼위 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만이 영원토록 존귀와 영광이 있으시기를. 아멘.

오류들을 배격함

성도의 견인에 대한 참된 교리를 해설하고 난 뒤에, 대회는 다음과 같은 오류들을 배격한다.

1

오류: 참된 신자들은 선택의 열매나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서 획득된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새 언약의 조건인데, 이는 사람이 자신의 이른바 결정적인 선택과 의로움 앞에서 자신의 자유의지를 통해서 이 조건을 감당해야만 한다.

반박: 성경은 견인이 선택에서 오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중재에 덕분으로 택자들에게 주어진다고 증거한다.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롬 11:7).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한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2-35).

2

오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신자들에게 견인할 수 있도록 충분한 힘을 공급해 주시며, 그리고 만일 신자가 자신의 의무를 이행할 때에 이것을 인내하도록 준비하신다. 그러나 설사 신자들이 믿음을 인내하기에 필요하고 또 하나님이 믿음을 인내할 수 있도록 제 자리에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다 하더라도, 신자들이 견인하는 여부는 자신들의 결정에 항상 달려 있을 뿐이다.

반박: 이 주장은 노골적인 펠라기우스의 사상을 보여준다. 이 사상이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대신에, 오히려 사람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탈취하는 강도로 만든다. 이 사상은 복음의 일관된 가르침과 충돌되며, 복음은 자랑할 모든 근거를 사람에게서 취해서, 이 유익에 대한 모든 찬송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돌린다. 이러한 펠라기우스 사상 역시 다음과 같은 사도의 증거와 정반대된다.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라.(고전 1:8).

3

오류: 참된 중생한 신자들도 의롭함을 받은 믿음과 은혜와 구원에서 완전하고도 확실하게 떨어질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참으로 종종 이런 믿음과 은혜와 구원에서 벗어나 영원히 버림받을 수도 있다.

반박: 이 견해는 그리스도에 의한 칭의와 중생과 계속적인 견인의 은혜를 무효화시키며,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말과 모순된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롬5:8,9). 또한 사도 요한의 다음의 말과도 모순된다. 하나님께서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났음이라(요일3: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8,29).

4

오류: 참된 중생한 신자들도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을 수 있으며 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범할 수 있다.

반박: 사도 요한은 그의 첫 번째 서신인 요한일서 5:16-17에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는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또 그들을 위한 기도를 금한다고 말한 후에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5

오류: 우리는 특별한 계시 없이 이생에서 미래에 있을 성도의 견인에 대한 아무런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반박: 이러한 주장으로 참된 신자들의 확실한 위로가 박탈당하며, 그리고 교황파 추종자들의 의구심이 다시 교회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성도의 확신을 추론하고, 그 어떤 특별하고 비정상적인 계시가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특별한 표지들과 하나님의 일관된 약속들에서 찾았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9). 또한 요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3:24).

6

오류: 견인과 구원의 확신에 관한 교리는 그 본성상 거짓 안도감을 유발하며, 그리고 경건과 선한 도덕적인 생활과 기도와 다른 거룩한 행습에 해롭다. 정반대로, 이러한 확신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반박: 이 오류는 하나님의 은혜의 효과적인 능력과 우리 속에 내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무시한다. 이 주장은 또한 사도 요한의 첫 번째 서신에서의 다음의 말과 모순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2,3). 게다가 이들의 주장은 신약과 구약에 나오는 성도들의 본보기와도 모순되는데, 비록 신·구약의 성도들은 믿음의 인내와 구원에 관하여 확신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기도하며 경건한 생활을 계속 영위하였다.

7

오류: 잠시 동안 믿음의 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믿음은 의롭다함을 받고 또 구원받은 믿음과는 단지 그 기간에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반박: 그러나 마태복음 13장 20절과 누가복음 8장 13절 등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분명하게 이 기간 이외에도, 잠시 동안 믿은 사람과 참 신자와의 차이가 세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선언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전자는 돌 위에 씨앗을 받으나, 그러나 후자는 좋은 땅 위에, 혹은 좋은 마음에 씨앗을 받는다고 선언하신다. 다시 말해서 전자는 뿌리가 없으나, 후자는 견고한 뿌리가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열매가 없으나, 그러나 후자는 부단하고도 확실하게 많은 결실을 맺게 된다고 하셨다.

8

오류: 첫 번째 중생을 상실한 사람이 다시 새롭게 된다든지 또는 자주 새롭게 된다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다.

반박: 이 교의는 하나님의 씨앗은, 이것으로 우리가 거듭나는데,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사도 베드로의 다음과 같은 말씀과 모순된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9

오류: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이 믿음에 계속해서 확고하게 거해야 할 것을 그 어디에서도 기도하신 적이 없다.

반박: 이 주장은 그리스도 자신과 충돌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시몬)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라(눅 22:32). 이 주장은 사도 요한과도 모순되며, 그는 그리스도께서 단지 사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을 뿐 아니라, 사도들의 말을 통해서 믿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도 기도하셨다고 선언한다.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라(요17:11,15,20).

결 론

돌트 신경은 네덜란드에서 논쟁되었던 다섯 조항에 관한 정통 교리를 분명하고 간결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해설한 것이며, 동시에 얼마 동안 혼란을 일으켰던 잘못된 주장을 배격하였다. 이 대회는 이 해설과 반박을 하나님의 말씀과 개혁교회의 고백서들과 일치되도록 취하여서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돌트 신경은 일부 사람들이 대중들을 설득하려는 바람에서 모든 진리와 공의와 사랑을 거스르면서 매우 부당하게 처신하였음이 분명하다.
-- 예정론과 관련된 몇몇 주제들에 관한 개혁교회의 교리는 그 특징과 경향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을 모든 경건과 신앙에서 멀어지게 한다.
-- 이 교리는 사단에 의해서 조작된 육신의 마취제이며, 사단의 견고한 요새이며, 여기에서 사단은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며, 치명적으로 실망과 거짓된 안도감이라는 화살로서 많은 사람들을 꿰뚫는다.
-- 이 교리는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시며, 불의한 독재자이자 위선자로 만들며, 이 교리는 개조된 스토이즘, 마니교, 자유주의, 모하멧교에 지나지 않는다.
-- 이 교리는 사람들을 죄된 부주의함으로 유도하는데, 그 이유는 이 교리가 사람들을 선택받은 자의 구원은 그들이 어떻게 살든 관계없이 아무 것도 방해할 수 없다고 믿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들이 안전하게 아주 지독한 죄를 저지르도록 한다. 다른 한편 설사 유기된 자들이 성도다운 행위를 다 행하다고 할지라도 자신들의 구원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한다.
-- 이 동일한 교리는 하나님이 그의 단순한 의지의 독단적인 행위로 어떤 죄도 고려하지 않고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영원한 정죄로 예정하시고 창조하셨다고 가르친다.
-- 동일한 방식으로 선택이 믿음과 선행의 근원이자 근거이며, 유기는 불신과 불경건의 근거이다.
-- 신자들의 많은 무죄한 자녀들이 어머니의 가슴에서 떼어내어져 잔악하게 지옥에 떨어뜨리며,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피도 그들의 세례도 세례 시 교회의 기도도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개혁교회는 인정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배척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가르침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이 돌트 대회는 주님으로 이름으로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건하게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기저기에서 주서 모은 비방으로 개혁 교회의 모든 신앙을 판단하지 말 것을 탄원하는 바이다. 이 사람들은 종종 잘못된 신앙을 인용하거나, 아니면 문맥에서 벗어나거나 그 의미와 정반대되게 해석하는 고대 혹은 근대 일부 교사들의 개인적인 진술에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개혁교회들의 신앙을 공적인 신앙고백 그 자체와 정통 교리에 관한 현 해설로부터 판단해야 하고, 전 대회의 회원들이 한 사람도 남김없이 만장일치로 동의한 것에 의해서 확증해야 한다.
게다가 대회는 중상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많은 교회가 참여한 고백에 반대하여 잘못된 증언을 하였고 약한 자들의 양심을 괴롭히고 참된 신자들의 단체를 미혹하였기에 그들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도록 경고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본 대회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는 모든 동료 사역자들에게 경건하게 살아갈 것을 권면하는 동시에 대학이나 교회 안에서 이 교리를 조심스럽게 가르칠 것을 권하는 바이다. 말할 때든 글을 쓸 때든 이 교리를 가르침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추구하며, 경건한 생활을 이루며, 고난당한 영혼을 위로하도록 해야 한다. 이 교리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말은 믿음의 유비에 따라 성경과 일치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성경의 참된 의미의 규정된 한계들을 넘어서는 모든 표현을 삼가해야 하며 그리고 오만한 궤변가들에게 개혁교회의 교리에 대해서 조잡하게 공격하고 혹은 욕하도록 하는 구실을 제공하는 표현들을 삼가야 할 것이다.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셔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진리로 거룩케 하시며, 그릇된 사람들에게 진리를 이끄시고, 건전한 가르침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시며, 당신의 말씀에 신실한 사역자들에게 지혜와 분별의 영을 내려 주셔서,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며,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세워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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