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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신학 (52주 자료)

하나님아들 2023. 8. 31. 23:36

평신도 신학 (52주 자료)             

 

차 례

 

제 1 장 : 서 론

1. 종교란 무엇인가?

2. 왜 그리스도敎인가?

3.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제 2 장 : 우리가 믿는 하나님 (神論)

1. 하나님의 자기 계시(啓示) 방법

2. 하늘에 계신 하나님(本質)

3. 세상 중에 계시는 하나님(性品)

4. 일하시는 하나님(使役)

5. 인류와 세계의 구원을 예정(豫定)하심

6. 왜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이신가?

7. 이상적 신관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

8. 악의 근원(根原)은 무엇인가?

 

제 3 장 :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基督論)

1. 기독교의 중심, 그리스도

2. 신앙고백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3. 그리스도 이해의 순서, 방법

4. 그리스도의 선재(先在)

5.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6. 그리스도의 높아지심(昇貴)

7.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8.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使役)

9.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贖罪)

 

제 4 장 : 우리가 믿는 보혜사 성령 (聖靈論)

1. 한국교회 성령운동 이대로 좋은가?

2. 성령은 누구이신가?

3. 성령(聖靈), 사람의 영(靈), 악령(惡靈)

4. 성령의 사역(使役)

5. 성령세례(聖靈洗禮)

6. 성령의 은사(恩賜)

7. 바람직한 성령운동

 

제 5 장 : 인간이란 무엇인가? (人間論)

1. 인간은 과연 누구인가?

2. 인간의 기원

3. 하나님의 형상

4. 죄(罪)에 대해서

5. 원죄(原罪)에 대해서

6.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存在)

7. 총체적(總體的) 인간

8.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구원

9. 그리스도 안에 창조된 새 사람

 

제 6 장 : 교회란 무엇인가? (敎會論)

1. 에클레시아의 의미

2. 교회의 근원(根源)

3. 교회의 특징

4. 거룩한 교회

5. 사도적인 교회

6. 교회가 하는 일

7. 교회의 일과 일꾼들

8. 바람직한 교회갱신

 

제 7 장 : 종말은 언제 오는가? (終末論)

1. 시한부 종말론 오류

2. 기쁨의 날, 심판의 날

3. 종말사상의 발전과정

4. 그리스도의 재림

5. 이미 실현된 천년왕국

6. 육체의 부활

7. 최후의 심판과 상벌

 

 

 

 

 

 

 

 

 

 

 

 

 

제 1 장 서 론

 

 

1.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는 인생 문제의 「근본(宗) 가르침(敎)」이다. 인생 문제라 함은 사람이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를 뜻함이다. 그 많은 문제들 중에는 사람이 스스로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는 궁극적인 문제, 근본 문제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가?」 「왜 나는 남자나 여자가 되었나?」 「왜 나는 황인종이냐?」 「왜 한국 땅에서 태어났는가?」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사후의 세계가 있는가? 있다면 그곳에 어떻게 갈 수 있는가?」 「인생에게는 왜 이렇게 많은 고통이 있는가? 고통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이다.

 

이상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에 부딪힐 때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한계를 느끼는 인간은 절망하여 스스로 파멸의 길을 택하든지, 아니면 초월자나 절대자를 찾게 된다. 사람이 절대자를 만나서, 인생의 궁극적 수수께끼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종교라고 한다. 종교는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 줄 뿐 아니라, 우주와 역사의 발전 방향을 따라 힘차게 살아가도록 한다. 종교 학자들 중에는 인간의 종교적 본능이 있다고 주장할 정도로 인생과 종교는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종교는 인류역사의 새벽부터 시작되었고 역사와 더불어 발전하였다.

 

종교가 발전해 온 과정을 보면 부족한 시대에는 자연숭배, 정령숭배, 토템 숭배, 다신교, 일신교들이 성장했고, 한 단계 더 발전한 것이 유대교, 유교, 인도교와 같은 민족 종교라고 볼 수 있고, 그 다음 단계가 세계적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 불교, 회교 같은 고등 종교의 발달이다.

 

종교는 인류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종교는 반드시 문명을 만들었는데, 유대교가 히브리문명을, 기독교가 서구 문명을, 불교가 불교 문명을 힌두교는 인도 문명을, 회교는 이슬람 문명을 애굽의 아문 신종교는 애굽의 문명을 만들어 내었다.

 

어떤 종교는 생명이 길고 세계인들에게 널리 확산되었으나 어떤 종교는 단명하였다. 어떤 종교가 인류에게 유익을 줄 때 흥왕하였고, 교리 적으로 편협하거나 윤리적으로 반사회적이거나 희망을 주지 못할 때 쇠퇴하였다. 세계 만민에게 유익한 종교가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종교의 구성 요건을 찾아본다면, 첫째로, 창시자가 있어야 하고 둘째로, 교리가 되는 경전이 있어야 하고, 셋째로, 신도들의 모임인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또한 건전한 종교가 되려면 첫째로,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생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에 빠지게 하고 고통의 짐을 무겁게 하는 사이비 종교는 경계해야 한다.

 

둘째로, 인류의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는데 기여하여야 한다. 자유와 평등과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어, 인류 공존공영과 세계 평화를 이룩하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로, 사람이 사람다워지고 사람답게 살도록 가르치는 윤리적 교훈이 있어야 하고 도덕적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인류역사 속에서 종교적 교리 때문에 종교전쟁을 일으키고, 음란과 퇴폐를 조장하는 반사회적이고 반윤리적인 종교들이 많았는데 그런 건전치 못한 종교가 개인과 나라를 망친 사례가 수없이 많았다. 특별히 사이비 종교라고 규정짓는 거짓 종교들은 독버섯처럼 일어나서 극성을 부렸으나, 수많은 사람들을, 패가망신시키고 결국에는 사라지게 되었다.

 

참된 종교는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서 행복한 생활을 하도록 할 뿐 아니라, 인류역사 발전에 크게 공헌하기 때문에 수천 년 동안 계속 발전하고 확산하고 있다. 지금 사람에게 가장 유익을 주는 종교가 무엇인가? 영원한 생명을 가능케 하는 종교가 무엇인가? 불교, 유교, 힌두교, 회교 기독교 중에서 어느 것인가? 만약에 어떤 사람이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기독교라고 말할 때,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에 참 생명이 있다면 그 진리가 무엇일까?

 

 

2. 왜 그리스도敎 인가?

 

종교나 문화를 다른 것과 비교해서 우열을 가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특별히 문화의 경우, 고유한 문화의 특성을 다른 것과 비교해서 좋다 나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문화의 독특성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의 경우는 다소 다른 점은 있다고 본다.

 

모든 종교는 저마다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특수성에는 독선적인 교리(Dogma)가 있다. 자기만이 유일한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종교가 성립되지 않는다. 수많은 종교가 있는데 그 모든 종교가 다 진리이고, 구원이 가능하다고 인정한다면, 굳이 새로운 종교를 또 하나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교 다원주의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타종교를 박해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믿어서는 안될 것이다.

 

건전하고 유익한 종교를 분별하는 표준 중에서 그 종교의 믿음의 대상이 어떤 분이냐 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 대상이 최소한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보다도 못한 인간들을 교주로 섬기는 사이비 종교들이 세상에 물의를 일으킨 사례를 많이 경험하였다.

 

첫째로, 불교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석가모니는 분명한 인간이었으나, 그가 고행을 통해서, 보통 인간 이상의 초인적인 경지에 도달한 존재가 되었다. 그가 큰 깨달음을 통한 진리를 가르침으로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그와 같이 수련함으로 초인적인 경지에 도달하고자 한다. 석가모니를 믿음의 대상으로 하여 따르는 수련 종교가 불교이다.

 

둘째로, 회교나 유대교를 생각해 보자.

여기는 신앙의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 神이다. 사람이 신을 믿고 따르지만, 보통 사람들이 신을 만날 수도 없고 신과 통할 수 없기 때문에 신과 인간 사이에 신과 통하는 사람이 필요하였다. 선지자와 같은 종교 지도자가 그 신을 알려줌으로써, 일반 대중들은 그 신을 믿게 되는 것이다. 유대교는 모세나, 선지자들이 있었고, 회교는 마호멧이 최후 최고의 선지자이다.

 

셋째는, 그리스도교의 특수한 경우이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대교의 神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라고 이름한 것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누구이신 가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중요한 것 하나만은 꼭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사람이었는데 수련으로 신적 존재가 된 분이 아니다. 또 선지자와 같이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통하는 분도 아니었다.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神이었으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분이다. 그리스도는 신적 존재가 아니라 곧 신이었고, 신의 능력으로 가르치고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셨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똑같이 믿음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불교나 유대교나 회교와 같이 종교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 신을 찾아가는 종교가 아니라, 신이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함을 얻는 특수성이 있다. 사람이 고행이나 수련을 통해서나 율법을 잘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자기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는 논리에 빠지게 되는데 유한한 인간의 한계가 곧 구원의 한계가 되고 만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절대자의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이 종교를 가지게 되었으나, 그 종교가 다시 구원의 한계를 초래할 때 인간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러한 종교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들려 온 「기쁜 소식」 이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는 "종교적인 가르침" 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구원 소식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을 찾아내려 오셨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열어 놓으신 구원의 문을 믿음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다. 유한한 인간의 노력으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노력을 믿음으로 구원에 도달한다는 「기쁜 소식」은 종교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임에 틀림없다. 왜 그리스도교뿐인가? 영생을 향한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3.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어떤 그리스도인을 붙들고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교회를 믿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당신은 왜 그리스도교를 믿습니까?」라고 질문하면, 「복을 받기 위해서 믿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 믿습니다」 「죽어서 천당 가기 위해서 믿습니다.」 때로는 심심해서 취미 삼아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 교회는 이단들에게 많은 신자들이 약탈당한 쓰라린 상처를 가지고 있다. 지금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 역사 가운데,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부흥을 하였다. 그러나 양적인 성장에 비해서 질적인 성장이 따르지 못하고 있음으로 대단히 염려하고 있다. 아직도 그 신앙적인 기초가 심히 허약하다.

 

그래서 모든 교회가 깊은 깨달음에서 출발하여 성경 공부를 많이 시키고 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평신도들이 성경을 연구하는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단히 다행한 일이다. 기독교 신앙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분명한 신앙의 대상이 있고, 확실한 신앙의 내용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믿느냐?」 「왜 믿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분명하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무속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처럼, 맹목적이고, 무지한 신앙인 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교의 모든 진리를 깊이 연구해서 많이 아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도 우선 기초적인 신앙의 내용을 분명하게 알고 믿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예수님 당시부터 신앙의 내용을 분명하게 정리해 나가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였다. 예수님께서도 3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신 후에 마지막 단계에 가서는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받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였다(마 16:16). 이러한 신앙고백 위에 그리스도교가 세워졌다. 그 이후에 초대 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을 때, 또한 이단의 유혹을 받을 때도 그들의 신앙 내용을 분명하게 정리하여, 고백함으로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확실히 지켜 왔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형상이 없으신 초월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마음으로 영접하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마음의 태도를 믿음이라 하고, 이 믿음의 내용을 조목별로 고백해서 정리한 것을 신조(信條) 또는 신경(信經)이라고 한다.

 

그리스도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조가 백여개 이상 되지마는 가장 오래되고 대표적인 것이 「사도신경」(사도신조)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의 신앙 고백서라는 뜻이다. 사실은 마태복음 16장 16절의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근간으로 해서 그리스도교 교회가 2백여 년에 걸쳐서 발전시킨 것이다. 사도 신조는 그 후 3세기경에 널리 사용하였는데 세례 문답 때 그것으로 신앙고백을 하게 하였고 또한 이단과 박해자들에게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는데 사용하였다.

 

당신이 무엇을 믿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12조항으로 된 사도신조로 자신이 믿고 있는바 신앙의 내용을 분명하게 대답했던 것이다. 신조는 후에 교리로 발전하였고, 이것을 보다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인간의 언어로 연구해 나간 것이 신학이다. 신학이 본격적인 학문으로 연구되어진 것은 「오리게네스」라는 교부로부터 라고 할 수 있다.

 

오리게네스는 최초로 교리 학습 학교를 세워서 교회의 신앙 훈련을 시켰다. 신학은 어디까지나 교회의 학문으로 출발하였고, 교회를 위한 학문이었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 이후부터는 신학이 교회를 떠나서 대학으로, 신학자들의 신학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신앙 없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하나의 학문이 되었다고 한탄한다.

 

세계 교회는 신학이 교회의 신학으로 돌아오도록 갈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인류에게 주신 것은, 연구나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닌 줄 안다. 그 말씀을 믿고 구원받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삶의 규범으로 주신 책이다.

 

「누구를 위한 신학인가?」라는 질문에 성실히 응답해야 할 것이다. 교회 밖에서 민중 가운데 신학의 자리를 잡거나 신의 죽음까지도 거침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신학은 교회가 받아들이기 어렵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살아가도록 확실한 신앙 위에서야 할 것이다. 이일을 위해서 쉽고도 확실한 가르침이 중요하다.

 

 

제 2 장 우리가 믿는 하나님

 

 

1. 하나님의 자기 계시(啓示) 방법

 

철학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하였으나, 그 결과는 신통치 못하였다. 유한한 인간의 주먹만 한 머리로 우주 만물을 초월해 계시는 신을 연구해서 그 존재 여부를 증명해 낸다는 것이 가능치 않다는 말이다.

 

만약에 어느 누구가 이 일을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 신이 참 신이 아니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아니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사람이 알아낼 만큼 쉽게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신은 우리가 믿을 만한 그런 신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의 능력의 한계이다. 사람이 무엇을 많이 안다고 하지만, 사람의 머리로 무엇을 알아내는 능력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간 스스로가 겸허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신을 알고자 하는 순수한 욕망을 좋게 볼 수 있겠지만, 무리하게 시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임마누엘 칸트와 같은 정직한 철학자들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다.

 

神의 존재 여부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은 神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다. 사람이 모른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이성의 능력으로 아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종교에서는 인간의 이성(理性)으로는 神을 잘 알 수 없지만 신앙으로는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열렬한 신앙 훈련을 통해서 신에게 도달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사람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길이 있다고 한다. 그 유일한 길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류에게 열어 보여주시는 계시(啓示)이다. 계시를 통해서만 신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다.

이를 자연 계시라 한다.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작품이므로, 그 작품을 통해서 그것을 만드신 창조주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연 계시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을 알기에는 부족하다. 인간이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을 알 수는 있지만 간접적이기 때문에 희미하게 밖에 알 수 없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자상하게 알려주신다.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읽고,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으로 성경 속에 나오는 창조와 섭리와 구원과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된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확실하게 계시하셨다.

성경 말씀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인격자이신 하나님을 직접 만나서 분명하게 알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었다. 마치 구약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이며 완전한 방법으로 하나님과 꼭 같은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성자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본질상 완전히 동일하심으로 그를 본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과 꼭 같다. 요한복음은 이상의 사실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말씀이 육신(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 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공동 번역 요한 1:1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8-9)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

 

유한하고, 영적 감각이 마비된 인간이 하나님을 바로 만나 뵙는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먼저 주셨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꼭 같으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보내 주심으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있게 하셨다.

 

 

2. 하늘에 계신 하나님(本質)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 이전부터 자유롭게 계셨다. 피조물과 관계를 맺으시기 전부터 고유하게 지니신 특성을 편의상 하나님의 本質이라고 표현한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이라는 말은 하늘의 어떤 공간을 의미하는 것보다는 모든 피 조계를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하늘에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특수성과 초월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상의 모든 신들과 다르며, 우리 인간들과 모든 피조물과도 다른 점을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후부터는 세계와 인간과 깊은 관계를 맺고 계심으로 그 관계성 가운데 일어나는 성품도 있다. 그러나 그 관계성에 앞서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도록 한다.

 

첫째, 살아 계시는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 분이시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은 그냥 존재하시는 하나님과는 다르다. 모든 피조물은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유한한 존재이다. 생명이 있는 것이나 생명이 없는 것이나, 똑같이 유한하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소멸되지 않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불변하는 권능으로 활동하신다. 생명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신다. 살아 계신다는 것은 우상과 같지 않다는 뜻이요, 관념적으로 존재한다는 다른 신들과 구별되어 활동하신다는 뜻이다.

 

둘째, 자유롭게 우주 만물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은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며, 또한 어떠한 것과도 의존적인 관계를 가지지 않으시고 홀로 서 계신다는 뜻이다. 세계의 모든 신들은 거의가 다 형상이 있다. 그 형상들은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 인간의 머리로 고안해 낸 신들은 참 신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이시다. {영}은 형상이 필요 없으며 언제, 어디든지 시공간을 초월해서 자유롭게 계신다.

 

셋째, 전능 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천지 만물의 창조는 無에서의 창조라 한다(Creatio ex nihilo).

 

有에서 有를 창조한 것은 최초의 창조라 할 수 없다. 창조 이전에 이미 물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無에서 有를 창조한 것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절대자가 아니라면, 믿을 수 없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애굽의 아문(Amun)신이나, 가나안의 바알신이나, 앗시리아와 바벨론의 신들과 싸워서 승리하신 전능하신 신이시다. 그 뿐 아니라 자연도 자유롭게 다스리신다.

 

넷째, 한 분이시며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 성경의 하나님은 유일신이시다. 특별히 구약성경은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증언으로 일관한다. 참 신은 한 분 밖에 없고, 다른 모든 자연계나, 인간과, 신들도 모두가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세계 모든 만물은 땅위에 있다. 구약의 유일신 사상은 다른 어떤 신들도 인정하지 않는다. 구약 성경은 야훼 하나님께서 여성신의 도움 없이도 생명을 창조하셨음을 선포한다. 이러한 신앙은 다른 신들이나 우상을 타파하고 참 신은 오직 한분뿐이라는 신앙으로 발전하였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제 일 계명은 {나} 외에 다른 것들은 참 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 분이신 야훼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는 본질이시다. 이 세상 만물 중에 변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유한하고 변화무쌍한 세상 가운데서 절대적으로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 계심으로 우주 만물이 파멸하지 않고 지탱되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변덕이 심하신 분이시라면 우리는 믿을 수 없다. 또한 여러 분이라고 한다면 아무도 참 신이 아니라는 말도 된다. 그러므로 참 신은 한 분이라야 하며, 불변하시는 분이라야 한다.

 

끝으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살아 계시고, 스스로 자유롭게 계시며, 우주 만물을 초월해서 언제 어디에든지 계신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며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그러면서도 유일하신 분이시며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다.

 

 

3. 세상 중에 계신 하나님(性品)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초월해서 자유롭게 계시는 본질적인 성품을 가지셨지만, 지으신 만물과의 관계성 속에서 여러 가지 성품을 나타내신다. 성경에는 창조 이전에 홀로 계시던 하나님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고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일관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셨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를 증거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류의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목자와 양과의 관계, 그리고 토기장이와 질그릇과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홀로 계시기를 좋아하시지 않으시고, 지으신 모든 피조물과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알리시고, 지으신 만물을 섭리하신다.

 

하나님에게는 초월적인 본질 외에도 인류와의 관계와 교제를 통해서 인류에게 끼치는 감화력이나 영향력이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님의 속성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 인류와 근본적으로 구별된 다른 분이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과 같은 성품도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인간과 하나님이 관계를 맺고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롬 1:18-26).

 

출애굽기 29장 45-46절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하신 것은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사시기를 기뻐하시는 뜻을 분명하게 밝혀 주신 것이다. 그러한 뜻을 가지신 하나님은 회막이나 성전에 영적으로 임재 해 계시다가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친히 세상에 내려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사셨다 (요 1:14, 빌 2:5-7).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이시다.

 

만남을 강조하는 신학자 칼 바르트(K. Barth)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만나 함께 존재하는 역사와 대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오셨다가 다시 승천하신 이후에는 보혜사 성령으로 강림하셔서 온 우주와 인류 가운데 임재 해 계신다. 인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속성은 어떠한가?

 

첫째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6).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때나, 지으신 만물을 섭리하실 때 나타내신 성품의 근본이 사랑이셨고, 죽어 가던 인류를 용서 하사 구원하신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서 사람이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은 의(義)로우시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바르고, 공평하고, 흠이 없는 세상을 건설하는 기초가 된다. 하나님의 법이 바르게 지켜지고, 사람들끼리도 공평하고 역사가 바르게 굴러가도록 영향력을 끼쳐 주시는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를 세우기 위해서 율법도 주시고 선지자도 보내시고, 종내 에는 십자가에 그리스도를 못 박으시는 일까지도 하셨다. 사람들이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정의를 실천하여, 바르고, 밝고, 공평하게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미가 6:7).

 

셋째로,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너희는 거룩하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하셨다. 「거룩하다」는 말은 「속된 것과 구별된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죄와 악으로 오염되어 있는 이 세상의 것으로부터 깨끗이 구별되어 계신다. 우주 만물은 타락하기 이전에 창조 당시의 원형을 회복하여 거룩하여지도록 해야 한다.

 

넷째로,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만물의 선함의 근원이시다. 모든 선한 것들이 그로부터 나온다. 그는 어떤 가치의 판단이 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는 모든 가치를 초월하시는 동시에 모든 가치의 근원이 되신다. 이러한 신을 철학자 플라톤은 지고선(Summum Bonum)이라고 불렀다. 출애굽기 34:6에서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을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다.

 

다섯째로, 하나님은 길이, 길이 참으신다.

하나님은 지으신 만물을 향하여 어머니와 같은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길이 참으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 신가를 알고 그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4. 일하시는 하나님(使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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