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천년왕국에 대한 연구

하나님아들 2023. 7. 8. 16:17

천년왕국에 대한 연구             

 
안 영 복 편

목 차

 

 

 

A. 서론적 고찰 ..................................................................................... 3

 

    1. 천년왕국의 어의 ........................................................................... 3

 

    2. 천년왕국설Millennialism)의 유형 ................................................. 3

 

    3. 천년왕국설의 역사적 고찰 ............................................................ 4

 

 

 

B. 무천년설(Amillenialism) .................................................................. 7

 

    1. 무천년설의 주요 내용(종말 사건의 순서) ..................................... 7

 

    2. 무천년설의 주장자들 ..................................................................... 7

 

    3. 무천년설자의 성경 해석 ................................................................ 8

 

        1) 계시록 20:1-8의 해석 ............................................................. 8

 

        2) 이사야 11:6-9의 해석 ............................................................. 8

 

    4. 무천년설자의 보편적 주장 ............................................................. 8

 

    5. 무천년설의 취약점 ......................................................................... 9

 

 

 

C.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 10

 

   1. 후천년설의 주요 내용(종말 사건의 순서) ...................................... 10

 

   2. 후천년설의 주장자들 ...................................................................... 11

 

   3. 후천년설자의 계 20:1-8 해석 ....................................................... 11

 

   4. 후천년설자들의 보편적 주장 .......................................................... 11

 

   5. 후천년설의 문제점 .......................................................................... 12

 

 

 

D.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 13

 

   1. 역사적 전천년설 ............................................................................. 13

 

      1) 역사적 전천년설의 주요 내용(중말 사건의 순서) ....................... 13

 

      2) 역사적 전천년설의 주장자들 ...................................................... 13

 

      3) 역사적 전천년설의 특징 ................................................................ 14

 

      4) 역사적 전천년설의 취약점 ............................................................. 15

 

   2.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 15

 

      1)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주요 내용(종말 사건의 순서) ................ 15

 

      2) 한국교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 ................................................. 16

 

      3) 세대주의 신학의 강조점(특징) ................................................... 18

 

      4) 개혁주의 관점에서의 세대주의 종말론 비판 .............................. 20

 

 

 

F. 끝맺는 말 ......................................................................................... 26

 

 

 

 

 

 

 

                                        A. 서론적 고찰

 

 

 

계시록을 연구함에 있어 가장 난해하고 어려운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계 20:1-8에 언급된 천년왕국의 주제라고 본다. 성경에 “천년왕국”이란 말은 없지만, 이 말이 나온 근거가 되는 말씀 곧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계 20:4)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천년왕국”이란 신학적 용어가 나오게 되고, 지금까지 3가지 주요한 천년왕국설이 있게 되었다.

 

 

 

1. 천년왕국의 어의

 

“천년왕국”이란 말은 “천년동안 왕 노릇하리라”는 말씀에서 나온 명칭이며, 헬라어로는 키리아 에테(χιλια ετη)라고 한다. 이 말에서 영어 킬레에즘(Chiliasm 천년왕국설)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라틴어로 ‘천’을 가리키는 ‘밀레’(mille)란 말과 ‘년’을 가리키는 ‘아누스’(annus)의 복합으로 밀레니움(millennium 천년기)이란 말이 생겨났으며, 그리고 ‘왕국’은 헬라어로 ‘바실레이아’(βασιλεια)라 하며 영어로는 kingdom 이다. 그래서 ‘천년왕국’을 millennium kingdom 이라고 하고, ‘천년왕국설’을 가리켜 영어로는 millennialism 혹은 chiliasm 이라고 한다.

 

 

 

2. 천년왕국설Millennialism)의 유형

 

계 20:4 “천년 동안 왕 노릇하리라”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 천년왕국설에는 세가지 학설이 있는데, 이러한 설은 “천년”이란 시간과 그 시간 통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나오게 된 것이다. 세가지 학설은 무천년설(Amillennialism),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전천년설(Premillennia-

 

lism)이 있는데, 이 전천년설은 다시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로 나누인다.

 

 

 

3. 천년왕국설의 역사적 고찰

 

 

   기독교 초기 3세기 동안은 전천년설이 지배적인 종말론이었다. 그것은 대환난 후 재림론이었으며, 여러 점에서 매우 간단한 내용을 갖고 있었다. 이 전천년설 입장을 주장한 사람들은 Papius, Baranabas, Irenaeus, Justin Martyr, Tertullian, Hippolytus, Methodius, Commodianus, Lactantius, 그리고 Apollinaris of Laodicea 등이 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어거스틴의 영향으로 17세기까지는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현대에 와서는 J.H.Bengel, J.Gill, J. Prestly, Delitzsch, Zahn, Lange, Godet, Trench, Alford, A. Reese, O.J,Smith, G.Ladd, J.B. Payne, G.R. Beasley-Murray, 그리고 J. Erickson과 같은 학자들이 이 설을 지지하였다.

 

 

 

  주후 1세기로부터 3세기까지 파피아스, 이레니우스, 틸투리아누수, 힛포리투스 등 많은 교부들이 전천년설(=천년기전재림론)을 개진하였다. 그러다가 4세기에 와서는 콘스탄틴 대제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로 무천년설(=무천년기재림론)이 널리 수용되기에 이르렀다. 에베소 대회(431년)는 천년기에 대한 신앙을 심지어 이단으로 정죄하기까지 하였다.

 

 

 

 

  중세시대에 와서는 주후 4세기부터 득세한 [무천년사상]이 계속 교회내에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하였으나, 빈부의 격차와 “평화와 번영의 시대”에 대한 갈망 때문에 천년기 운동이 얀 마티스와 얀 복켈손 등에 의하여 일어난 일이 있었던 것도 기억할만하다.

 

 

 

한편 종교개혁가들은 대체적으로 “어거스틴적 무천년설”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으나, 그들 특유의 종말론적 해석으로 인하여 전천년설(=천년기전재림론)에 대한 자극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말틴 루터는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종말론적 예언들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해석하였는데, 이는 17세기에 있었던 전천년설(=천년기전재림론)의 “재기”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으로 본다.

 

 

 

  그리허여 세기에 와서는 독일 칼비니스트 신학자 요한 하인리히 알스테드(Johann Heinrich Alsted, 1588-1638)와 그의 감화를 받은 영국 신학자 죠셉 미드(Joseph Mode, 1586-1638)의 저술들이 지상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욕망을 당시의 크리스챤에게 불러 일으켜서, 1640년대에 영국에서 “청교도 혁명”을 거사케 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다가 “계몽의 시대”(The Enlightenment age)라고 일컬음을 받는 18세기에 이르러서는, 합리적 과학 정신과 낙천적 인생관의 지배 하에 후천년설(=천년기후재림론)이 크게 득세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세상은 복음이 널리 전파되어 더욱 은혜롭고 사랑스러워지며, 유대인들은 그들의 땅을 찾아가 살게 되고 아랍인들은 패배하게 된다는 생각이 만연 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스코틀란드목사 에드워드 어빙(Edward․ lrning, 1792-1834)의 예언대회 개최의 영향을 받은 영국 푸리머트 형제단의 지도자 넬손 다비(J. N. Darvy, 1800-1882)가 전천년설((premillenialism)의 세대주의적 견해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그는 대환난 전에 비밀휴거(a secret rapture)가 있을 것을 가르쳤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적 경륜은 “세대”(dispensation)라고 하는 시기들의 연속을 통하여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그 후 넬손 다비의 이 세대주의적 해석학은, 디 엘 무디(D. L. Moody, 1837-1899), 씨 아이 스코필드(C. I. Scofield, 1843-1921), 죤 에프 월보드(John F. Walvoord) 등에 의하여, 영국과 미국에 널리 보급되었고, 지금은 전세계 복음주의 교회와 신학계에서 세대주의 사상의 대폭적인 득세를 감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또 한편 19세기 미국의 프리스턴 신학교를 중심하여 그 당시의 시대적인 정신이 되었던 실증적 과학주의의 영향을 받은 챨스((Charles, 1797-1878)와 에이 에이 하지(A. A. Hodge, 1823-1886)와 비 비 월필드(B .B. Warfield, 1851-1921) 등은, 후천년설(postmillenialims)을 주장하였고, 20세기에 와서는 로레인 붸트너(Loraine Boettner)와 같은 개혁신학자에 의하여 미국장로교 및 개혁신학계에서 후천년설이 그 세력을 과시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서 화란국 자유대학의 2대 개혁신학자 인 이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와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가 무천년설자(anamillenialist)였다는 사실과 화란개혁신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미국의 필라델피아시 소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무천년설을 표방하고 있다는 사실 등은, 미국의 장로교회와 개혁 신학계가 무천년설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같이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와 해석은, 그 시대적인 상황과 배경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음을 알게 해준다.

 

 

 

 

 

B. 무천년설(Amillenialism)

 

 

 

1. 무천년설의 주요 내용(종말 사건의 순서)

 

   무천년설에 의하면, 계 20:1-3의 사탄의 1000년간 결박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되었다고 본다. 창세기 3:15의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와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다. 이로 인해 사탄은 결박되었으며, 십자가 사건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와 순교자들의 통치기간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1000년이란 기간을 이들은 상징적인 기간으로 보며, 이 상징적인 기간은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 사이의 기간을 의미하며, 사탄에 대한 최후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사탄이 무저갱에 결박된 시간으로부터 잠간 놓이기 전까지의 기간을 천년으로 보며, 이 기간은 마태복음 28:19-20의 복음전파 명령이 수행되는 신약시대의 기간이라고 한다.

 

 

 

   무천년설자들이 보는 종말의 사건 순서는, 천지창조 -- 구약시대 -- 예수 초림 -- 신약시대(천년왕국) -- 7년 환란 -- 아마겟돈, 곡과 마곡의 전쟁과 예수 재림 -- 최후 심판 -- 성도천국, 불신자 지옥이다.

 

 

 

 

 

 

2. 무천년설의 주장자들

 

   무천년설은 주후 4세기부터 교부 어거스틴의 주도하에 널리 인정되었다. 이전 시기에는 전천년설이 지배적이었지만, 점차 쇠퇴하여 주후 431년 개최된 에베소 종교회의에서는 ‘문자적 천년왕국이 있다’는 전천년설이 미신으로 정죄되기까지 하였다. 어거스틴 이후 종교개혁자 존 칼빈을 이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윌리암 콕스(William Cox), 윌리엄 핸드릭슨(William Hendriksen),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레온 모리스(Leon Morris),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 등에 의해 전승되고, 미국 칼빈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이었던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of)와 그의 제자 엔토니 후크마(Anthony Hoekema)에 의해 확고하게 개혁신학적 종말론 해석의 입장으로 굳혀지고 있다.

 

 

 

 

 

3. 무천년설자의 성경 해석

 

 

 

  1) 록 20:1-8의 해석

 

   1-3-- 사탄의 결박

 

  4-6-- 그리스도의 증거와 순교자들의 통치 기간

 

7-8 ---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의해 시작된 사탄의 치명적 패배

 

(1-3의 부연)

 

 

 

* 첫째 부활 -- 중생을 의미, 그러므로 둘째 사망이 없다고 함.

 

* 무저갱과 순교자의 통치 -- “무저갱”은 최후의 심판을 받는 장소가 아니며 “불못”과 무관하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통치는, 현실적인 지상 통치가 아닌 천상의 통치임을 강조한다.

 

* 둘째 사망(20:14) -- 육체적 부활이 있은 후의 영원한 형벌을 의미한다.

 

 

 

 

2) 이사야 11:6-9의 해석

 

무천년설자는 이 내용이 하나님의 재창조가 완성된 새 하늘과 새 땅의 상태를 묘사하는 상징적 묘사로 본다.

 

[전천년설자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상에 회복될 다윗왕조의 성격과 범위로 보는데, 그 이유는 이리, 어린양, 표범, 송아지, 새끼 염소, 어린 사자 등은 지상의 생물이지 천상의 피조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3) 이사야 65:17-25

 

무천년설자는 이 본문이 상징적인 천년의 기간을 의미하지 않고, 이 후에 있을 영원한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 전천년설자 -- 문자적 천년왕국 상태를 묘사한다고 해석함]

 

 

 

 

 

4. 무천년설자의 보편적 주장

 

 

 

 

1) 그리스도의 초림은 하나님의 나라를 그의 인격과 사역에 가져왔다고 믿는다.

 

 

 

2)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은 창세기 3:15절의 성취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이며 동시에 미래적인 것으로 믿는다. 즉,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하였으나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3) 최후의 날은 아직 미래에 남아있지만 현재 종말이 시작되었다. 최후의 날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으므로 종말 역시 이에 포함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그러나-아직”의 긴장 상태에 있듯이 최후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 종말은 주후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시작되었다.

 

 

 

4)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사탄의 활동이 제한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존재하는 현재를 의미한다. 즉, 신약시대(현재)를 의미한다.

 

5) 그리스도의 재림은 단 한번 있을 유일한 사건이다.

 

 

 

6)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보편적인 동시의 부활을 믿는다. 그리고 부활시에 갑자기 변형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는다.

 

 

 

 

 

5. 무천년설의 취약점

 

 

1) 계시록 20:1-8에 6회나 기록된 성경의 명확한 표현인 “천년”을 상징적 시기로 해석하는 것이다.

 

2) “첫째 부활”을 영적 부활(중생)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첫째 부활, 둘째 부활을 설명할 틀이 빈약하여 에베소서 1장을 강조하며(신자의 중생), 이 두 부활은 순서대로 이루어지는 연대기적인 1차 2차 부활이 아니다고 한다.(개인의 구속사적 순서의 의미).

 

3) “무저갱”을 ‘억압 상태’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C.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1. 후천년설의 주요 내용 (종말 사건의 순서)

 

후천년설은 역사적 낙관론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어거스틴의 신학을 기초로 출발했다는 부분에서 무천년설과 그 기원을 같이한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 심판 및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의 설립이 천년왕국의 끝에 가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와 같다고 본다. 그 나라가 전 지구상에 그리스도의 영적 통치권을 확립한 후에야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게 될 것이다.

 

 

 

로마제국이 몰락해가던 5세기 경에 이 해석이 크게 대두되었다. 주후 410년에 발생한 알러릭(Alaric)의 인도하의 고트족의 로마 침공, 그리고 뒤이은 야만족의 북아프리카 침입 등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 때 어거스틴은 세상나라는 멸망해도 그리스도께서 통치하는 교회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교회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는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을 저술하였다.

 

 

 

이 책이 출간된 후, 로마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가 세상나라에 대한 통치권을 갖는다는 교리를 제정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지상에 존재하는 가시적인 교회가(단적인 예를 들어 교황) 실제적인,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세속적인 수단과 방법을 통한 교회의 세속통치는 한계를 만나게 되었고 신학적 이해 자체도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천년설이 갖는 확고한 견해는, 교회는 점진적으로 수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그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며 결국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가 점점 진행될수록 교회의 영향력이 커지고 궁극적으로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 후천년설의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이다.

 

 

 

후천년설의 종말 사건의 순서는, 천지창조 -- 구약시대 -- 그리스도의 초림 -- 신약시대 -- 천년왕국 -- 아마겟돈, 곡과 마곡 전쟁과 그리스도의 재림 -- 최후심판 -- 성도 천국, 불신자 지옥 이다.

 

 

 

2. 후천년설의 주장자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어거스틴의 신학을 이어 후천년설을 발전시켰다. 이 견해 역시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았으니, 그 지지자들을 좀 들어보면, Boether, Strong, Hodge, Shedd, Dabney, Warfield 등등이다.

 

 

 

3. 후천년설자의 계 20:1-8 해석

 

요한계시록 20:1-8절의 ‘천년’은 문자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상징적 의미인 이 ‘천년’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재림 때까지 진행된다. 따라서 “첫째 부활”은 영적인 것이었고, 사탄은 “무저갱”에 이미 어거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통치는 날로 확고해지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고전 15:25) 교회의 확장은 성공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본다.

 

 

 

4. 후천년주의자들의 보편적인 주장

 

1) 전천년주의와 같은 급진적인 역사의 진보는 거부하며, 역사의 점진적이며 완만한 진보를 주장한다.

 

2) 황금시대(교회의 절대 통치기간)는 갑자기, 어느 특정한 날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3) 일상생활 전반에 새로운 변화는 모든 학문 분야에서 결실할 것이다.

 

4)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의 영향력의 증대로 인해서 도래한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것이다.

 

5) 그리스도의 통치는 이 지상에서 이루어진다

 

 

 

 

5. 후천년설의 문제점

 

이 주장은 1815년부터 1914년(나폴레옹 전쟁 종결 이후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까지는 역사의 흐름과 잘 조화되었다. 세상은 평화로웠고, 그것은 바로 교회의 영향력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세계 1,2차 대전과 베트남전을 비릇한 수많은 분쟁은 역사가 점차 평화를 향해 나아가며 이 평화가 궁극적으로 천년왕국의 도래를 가져온다는 주장과 일치하지 못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소위 기독교 국가들끼리의 상호 파괴, 전쟁의 후유증으로 말미암는 선교열의 하락, 기독교 국가를 무신론 국가로 만들면서 8억의 백성을 철의 장막 속에 가두어버린 러시아의 공산화, 독일에서의 유대인 대학살과 러시아에서의 우크라이나 농부의 대학살 등은 인간 본성이 기독교인 되기를 거부하며, 천년왕국이 아직도 이르지 않았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최근 급진주의 신학자들은 역시 진화론을 수용하여 후천년설을 사회개혁이론으로 발전시키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육체적이며 실제적으로 있을 재림을 ‘평화’와 ‘정의’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역사와 사회의 진화(또는 발전, 진행)는 ‘평화와 정의 시대’로 향한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점점 향상되어 가는 것으로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너무나 많다.

 

그러기에 후천년설은, 성경에 근거를 두기 보다는, 역사적 낙관주의에 편승하여 이 세상이 오히려 악화되어 간다는 점을 간과한 인본주의적 발상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별로 큰 설득력이 없다.

 

 

 

 

 

 

 

D.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천년왕국 교리는 무천년설, 후천년설, 전천년설의 세가지 학설로 나뉘며 또 다시 전천년설은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로 나뉘어 진다.

 

 

 

1. 역사적 전천년설

 

 

 

1) 역사적 전천년설의 주요 내용(중말 사건의 순서)

 

역사적 전천년설의 견해를 취하는 박아론 교수는, 전천년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지상에는 복음의 세계적인 전파와 이스라엘의 회심과 대배교와 적그리스도의 출현 그리고 지상 도처에 전쟁과 기근과 지진 등 기사와 징조들이 발생할 것을 믿으며,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는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나라가 지상에 1000년 동안 건설될 것을 믿으며, 1000년 간의 왕국기간이 지나면 불의한 인류의 반란이 잠시 있겠으나 하나님이 친히 이를 진압하시고 끝으로 불신자 악인들의 부활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심판이 있을 것을 믿는 견해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전천설설의 종말 사건의 순서는, 천지창조 -- 구약시대 -- 그리스도의 초림 -- 신약시대 -- 7년 환난 -- 아마켓돈 전쟁과 그리스도의 재림 -- 천년왕국 -- 곡과 마곡 전쟁 -- 최후심판 -- 성도 천국, 불신자 지옥 이다.

 

 

 

 

2) 역사적 전천년설의 주장자들

 

기독교 초기 3세기 동안은 전천년설이 지배적인 종말론 이었다. 그 내용은 대환난 후 재림론이었으며, 여러 면에서 역사적 전천년설의 입장이었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Papius, Baranabas, Irenaeus, Justin Martyr, Tertullian, Hippolytus, Methodius, Commodianus, Lactantius, 그리고 Apollinaris of Laodicea 등등이 있다. 이 견해는 어거스틴의 영향으로 17세기까지는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는 J.H.Bengel, J.Gill, J. Prestly, Delitzsch, Zahn, Lange, Godet, Trench, Alford, A.Reese, O.J,Smith, G.Ladd, J.B.Payne, G.R.Beasley-Murray, 그리고 J.Erickson과 같은 학자들이 이 설을 지지하였다.

 

 

 

3) 역사적 전년설의 특징

 

 

 

(1) 역사적 전천년설은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과 미래주의적 해석에 근거하고 있다. 이 해석방법에 따라, 요한계시록 20:1-6에 기록된 “천 년”이란 기간과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에 대한 증거를 마지막 때에 일어날 사건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성경 해석 방법이 전천년설과 다른 천년설을 갈라놓는 분기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역사적 전천년설의 핵심은 1000년 간에 걸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통치의 개념이다. 천년 왕국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완전한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는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 기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천년 왕국의 기간에 대해서는 역사적 전천년설자 가운데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그것을 정확히 문자적으로 1000년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그것을 단순히 긴 기간으로 이해한다.

 

 

 

3) 역사적 전천년설은 천년왕국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이며 가시적인 재림에 의해 격변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점진적인 성장이나 발전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거나 인간의 노력 또는 사회적 개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도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더욱 약화된다. 따라서 천년 왕국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에 의해 극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4) 역사적 전천년설은 요한계시록 20장의 두 부활을 동일한 유형의 부활, 즉 육체적 부활로 해석한다. 그것은 천 년 기간에 일어날 두 다른 집단의 부활, 즉 성도와 악인의 부활을 의미한다. 성도들은 첫 부활에 참예하여 천년 왕국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는 반면, 악인들은 천년 왕국이 끝난 후 부활한다. 래드는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을 모두 육체적 부활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육체적 부활을 의미하는 동사 ‘에제산(ezesan)'이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 모두에 똑같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5) 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사건들의 순서에 대한 견해 차이로 말미암아 여러 형태로 나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역사적 전천년설이다. 전자는 “그리스도의 재림 후 그리고 세상의 종말 이전에 이 땅 위에 천년 왕국이 있으리라”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일치하지만, 교회의 대환난 통과와 휴거의 시기 문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후자와 입장을 달리한다.

 

[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휴거가 대환난 전에 있으며, 교회는 대환난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반해, 역사적 전천년설은 휴거는 대환난 끝에 있으며 교회는 환난을 통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전자는 천년 왕국의 성서적 근거를 주로 구약 성서에 두는 데 비해, 후자는 그것을 오직 신약성서에 만 둔다. ]

 

 

 

4) 역사적 전년설의 취약점

 

역사적 전천년설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 치중하며, 재림 이후에 구성될 천년기 동안에도 남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악인의 존재 및 상태에 대한 해명이 힘들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2.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1)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주요 내용(종말 사건의 순서)

 

‘세대’라는 말은 오이코노모스(οικονομος)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청지기’ ‘직분’ ‘경영’ ‘경륜’ 등으로 번역되는 말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이 말의 의미를 하나님께서 어떤 일정한 방법으로 인간을 다루시는 기간을 가리키는 뜻으로 설정하였다. 즉 세대주의는 세상을 하나님의 뜻(경륜)이 이루어지는 장(場)으로 간주하고, 시간의 과정 안에서 여러 단계의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다양한 경륜이 성취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시간의 단계마다 확실히 구분되는 하나님의 경륜을 “세대”라는 말로 표현한다. 세대주의자 스코핊드에 의하면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지는 세대를 7세대로 구분하는데, 1)낙원의 무죄시대 2)홍수까지의 양심시대 3)인류 통치세대 4)아브라함의 소명으로 시작되는 약속세대 5)시내산에서 골고다까지의 율법세대 6)은혜세대(교회) 7)그리스도의 인격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세대 이다. 각 세대마다 하나님의 새로운 경륜이 작용하며, 각 세대는 자연인에 대한 새로운 시험(test) 기간으로 생각될 수 있으며, 그 세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난다고 주장한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종말 사건의 순서는, 천지창조 -- 구약시대 -- 그리스도의 초림 -- 신약시대 -- 그리스도의 1차 공중재림과 지상성도 휴거되어 공중에서 7년간 혼인 잔치, 이 기간 지상에는 7년 환난 -- 아마겟돈 전쟁과 그리스도의 2차 지상재림 -- 천년왕국 -- 곡과 마곡의 전쟁 -- 최후심판 -- 성도 천국, 불신자 지옥 이다.

 

 

 

2)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한국교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

 

‘세대주의’란 19세기에 출현한 (종말론적) 신학의 경향으로서 흔히 ‘세대주의 신학’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아일랜드계 영국인 존 넬슨 다비(J. Nelson Darby, 1800-1882)에 의해 주창되었다. 그는 변호사였으나 회심이후에 그의 직업을 포기하고 영국국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목회의 길에 접어든지 일 년 만에 수백 명의 가톨릭교회 신자들을 개신교로 개종시킬 만큼 유능한 목사였으나, 대주교의 교령에 반발하여 국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플리머스 형단’(Portsmouth Brethren)이라는 신령주의적 성경 연구 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신앙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플리머스 교단의 대표로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면서, 그의 예언에 기초한 독창적인 성경해석법을 완성시켜 나가던 중, 스코틀랜드에서 10세의 어린 성령 운동 지도라는 맥도날드 양의 예언(대환난이 있기 전에 휴거되는 환상)을 전해 듣고서, 그녀의 휴거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대주의적 성경해석방식을 구체화하였다.

 

 

 

다비의 대환난 이전의 휴거설과 7년 대환난과 이후에 전개되는 천년왕국 사상이 주장될 때만해도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았지만, 미국의 스코필드(C.I. Scofield) 박사의 손질을 거친 후, 급속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무디 성서신학교 출신으로 회중 교회 목사였는데, 다비의 세대주의적 종말 사상에 심취되어, 자신의 스코필드 관주성경(The New Scofield Reference Bible, 1909, 1917)의 주석에 그 내용을 포함시켰다. 스코필드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가설에 불과했던 다비의 세대주의 종말론은, 스코필드의 주석 성경의 유명세와 더불어 삽시간에 전 세계에 전파되면서, 어느듯 세대주의 종말론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성경적인 종말론 사상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여기에 무디 성서학원의 아이언싸이드(Ironside)를 비롯해서, 달라스 신학교, 그레이스 신학교, 탈봇 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이론화 작업과 D.L 무디와 R.A. 토레이 같은 유명 기독 인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19세기 이후 복음주의권에서 가장 확고하고 보편적인 기독교 종말론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의 세계 선교화의 추세에 따라 한국에 들어 온 미국 복음주의 신학교 출신의 선교사들이, 당시 기독교 종말론의 정설로 인식되던 세대주의 신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은 자연스런 결과이었다. 이로써 한국 교회는 초대교회 시절부터 세대주의 종말론 사상에 깊이 관련되게 되었다. 초창기 한국 교회 지도자들 대부분이 세대주의 종말론 신봉론자였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을 많이 강해한 길선주 목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의 초기 신학자들도 세대주의 종말론의 여자적 논리성에 매료되었는데, 한국 정통 보수주의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박형룡 박사와 성서침례신학교 장두만 교수 같은 분들은, 세대주의 종말론주의에 확신을 가졌던 대표적인 신학자들이다. 그러나 해방이후 세대주의 신학(특히 세대주의적 전천년사상)은 불안한 사회 현실과 맞물리면서 보다 극단적인 종말론 형태로 변형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러한 신학적 오용과 변질의 중심에서, 가장 큰(나쁜) 영향력을 발휘했던 인물은 조용기 목사이다. 조 목사는 세대주의 종말론 사상에 기초해서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기록된 순서대로 문자적으로 이해하면서 말세에 될 일의 시나리오를 작성하였다. 1992년에 한국은 물론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일파의 극단적 종말론 운동은, 조 목사의 세대주의적 종말론 해석의 완곡한 적용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조 목사는 단일교회로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와 산하 집단을 통해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한국적 토착화에 절대적으로 기여하였다. 그 결과 다미선교회의 환상이 비극적인 실패로 끝났음에도, 오늘날 여전히 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세대주의 종말론의 환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 세대주의 신학의 강조점(특징)

 

세대주의 신학의 세계화가 있었던 만큼 세대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고 복잡한 해석이 있지만, 다비와 스코필드를 이 이론의 창시자로 볼 때, 두 사람이 주장한 범위 안에서 세대주의 신학의 포괄적인 신학적, 교리적 요점들을 찾을 수 있다. 이것들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문자적인 구약과 신약 해석에 근거하여 미래를 연속적인 시대의 도 식으로 묘사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계시록 4장은 교회의 휴거를 예언하며, 계6-10장까지는 전환난 3년 반을, 계 11-19장은 후환난 3년 반을 예언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후환난 시대의 마지막에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며, 그리스도는 지상에 강림(둘째 강림)하여 천 년간 사단을 무저갱에 가두고 천년왕국을 건설한다. 그 후 사단은 잠시 놓였다가 백보좌 심판이 있으며, 신천신지(새 하늘과 새 땅)가 건설된다고 말한다. 특히 조 목사는 <요한계시록 강해>에서 이러한 계시록의 문자적 성취 과정을 세대주의 종말론에 기초해서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2)스코필드의 일곱 세대 구분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스코필드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지는 시대를 7세대로 구분하였다 -- ① 낙원의 무죄세대 ② 홍수까지의 양심세대 ③ 인류 통치세대 ④ 아브라함의 소명으로 시작하는 약속세대 ⑤ 시내산에서 골고다까지의 율법세대 ⑥ 은혜세대(교회) ⑦ 그리스도의 인격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세대 이다. 세대주의는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새로운 경륜이 작용하며, 각 시대는 자연인에 대한 새로운 시험(test) 기간으로 생각될 수 있으며, 그 시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난다고 주장한다.

 

 

 

(3) 이스라엘과 교회는 다르다.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지연되었기에, 하나님이 교회의 우회로를 택했다. 교회세대는 결국 과거의 이스라엘과 미래의 이스라엘 사이에 놓인 중간단계이다. 그러나 주의 재림으로 교회 세대는 막을 내리게 되고, 7년 대환난이 끝난 이후에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진다고 본다. 그러므로 교회는 종말의 7년 대환난 이전에 ‘하늘로 들림’ 즉 ‘휴거’가 되기 때문에 이 땅에서 임하는 7년 대환난을 겪지 않게 된다고 한다.

 

 

 

(4)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중재림이다.

 

세대주의는 주님의 첫 번째 공중 재림 때에 교회와 성도들은 첫 번째 부활을 경험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휴거라고 한다. 주님의 첫째 공중재림은 심판의 재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데리러 오시는 재림이다. 이후에 지상에서의 7년 대환난과 아마겟돈 전쟁이 있은 이후에, 주께서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 7년 공중혼인잔치를 마치고 지상 강림하시는데, 이것이 둘째 재림이요, 마지막 ‘지상 재림’이라고 한다. 이때 비로소 주님은 모든 원수, 마귀를 멸하시고 천년동안 무저갱에 가두심으로서 성도들과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하는 천년왕국 시대가 열리게 된다고 한다. 이 지상재림은 모든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궁극적인 심판과 구원의 재림이라고 말한다.

 

 

 

(5) 문자적 해석에 집착한다.

 

세대주의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대부분의 숫자를 문자적 의미 그대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계 7장과 14장에 언급된 ‘144,000’이라는 숫자 역시 주님의 첫 번째 공중 재림과 더불어 부활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혼인 잔치를 즐길 때, 지상에 남겨진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들의 실제적인 숫자이며, 이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하게 된다고 본다. 계 20장의 천년왕국도 문자적 해석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스도의 지상재림 이후에 땅위에 문자적이고 가시적인 천년왕국을 건설해서, 직접 왕으로 통치하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외에도 7년 대환난의 7년과 심지어 계 21장의 새 예루살렘의 보석으로 묘사된 모습까지 문자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4) 개혁주의 관점에서의 세대주의 종말론 비판

 

세대주의 종말론에 대해 세부적으로 말씀드린다면, 한도 끝도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몇 편의 논문으로도 모자를만큼 세대주의 신학은 복잡, 다양한 양상으로 진화(?)되어 왔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특징을 보더라도 세대주의가 얼마나 심각하고 치명적인 신학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제 언급한 내용을 중심으로 개혁주의 신학적 견지에서 세대주의 종말론을 평가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세대주의 종말론의 해석법의 문제

 

보통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① 문자적 해석 방법 ② 영해적(spiritualizing) 방법 ③ 문자적 - 영해적 방법이다. 이 세 가지 범주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을 무조건 적용할 수 없지만, 대체로 개혁주의자들은 세 번째 해석 방법을 존중한다. 요한계시록은 단순한 어떤 문학 형태로 고정할 수 없을 만큼, 저술 원인과 방식에서 그 어느 성경보다도 독특하다. 계시록은 요한이 하늘의 환상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신탁을 직접 보고 듣고 기록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늘의 천상적 경험이 지상의 문자적 형식으로서 기술된 것이다. 계시록은 우리의 이성과 경험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적 초월성을 함유한 동시에 세상에 내재된 관념으로 실제로 추론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계시록에 나타난 모든 진술을 한쪽 방향에서 고정된 채 해석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예를 들어, 계시록 21 장에 언급된 새 예루살렘의 모습은 소위 천국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의 ‘내가 본 천국“ 간증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되는데, 과연 환상가운데 요한에게 보여 진 새 예루살렘이 진귀한 보석으로 치장된 새로운 문명 세계를 나타내는 것일까? 또한 계시록의 ’144,00‘ 명이라는 숫자는 새 예루살렘에 입성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특정 소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천년’은 과연 인류가 경험할 10세기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일까?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수많은 하나님 관점에서의 초월성과 상징성과 묵시성을 지극히 인간적인 상식과 이성의 차원으로 끌어내린 억지스런 시도가 바로 세대주의 종말론의 특징인 동시에 한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계시록의 환상과 상징은, 구약과 신약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라는 구도 속에서 성경의 유기적 진술에 근거하여 해석되어야 한다.

 

 

 

 

(2) 이스라엘과 교회를 분리 해석하는 문제

 

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교회 관계를 대립 혹은 단절로 설명하려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언약적 통일성 안에서 보는 개혁신학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옛 언약(출 20:1-17, 24장)은 이스라엘과만 맺은 것이 아니다. 이방인 개종자들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는 언약이었다. 또한 새언약 역시 교회와만 맺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새 언약은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과 맺은 것이지만, 이스라엘과 이방인과 구분 없이 하나님의 백성 전체와 맺은 언약이다(히 8:10-11). 새 언약은 또한 옛 언약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옛 언약의 성취로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유대인에게, 교회를 이방인 중에서 구원받은 성도로 적용하는 이분법적 도식은, 언약의 통일성적 유효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오류이다.

 

 

 

 

(3) 이중 재림설에 대한 해석 문제

 

세대주의는 7년 환난을 전후로 있을 그리스도의 이중 예정을 기정사실로 여긴다. 그러니까 환난 전에 첫 번째 (공중) 재림이 이루어지는데, 이때에 교회와 성도들이 들림(휴거)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휴거되지 못하고 지구상에 남아 있는 자들은 불신 세계의 심판을 위해 대환난을 겪게 되고, 그 후에야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이 다시 한 번 반복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이중 재림에 대해 말하는 곳을 찾을 수 없다. 존 T. 샤프트라는 사람은 그의 책 『세상을 진동시키는 종말사건』을 통해 교회와 성도가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는 성경 구절을 단 한 구절이라도 찾는 사람에게는 1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약 4만 명의 목회자들에게 통지를 했으나 상금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단회적 재림은 정통 교부들과 어거스틴으로부터 칼빈과 루터,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에게 공히 지지받고 있는 성경적인 견해이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적어도 19세기 세대주의가 출현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중 재림을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7년 대환난을 전후로 각각의 다른 대상을 전제한 첫 휴거와 재림에 대한 견해를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는 말씀대로, 인격적이며, 육체적이며, 가시적이며, 갑작스러우며, 영광스러운 승리의 단 한 번의 재림이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시기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세상의 종말, 죽은 자의 육신의 부활, 그리고 모든 악의 세력의 파멸과 마지막 심판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4)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 문제

 

계시록 20:1-3에 나와 있는 ‘천년동안’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셋 또는 네 가지 해석의 입장을 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점으로 천년이 앞에 오면 전천년설이요, 뒤에 오면 후천년설이다.이 두 가지 견해는 천년의 위치는 정반대이지만, 천년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공통점이 있다. 한편 무천년설은 형식상 후천년설에 속하지만 천년을 문자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중 전천년설은 두 가지로 구분되어지는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역사적 전천년설이다. 후자는 전자의 지나친 주장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주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전자와 비교해 가장 큰 차이점은 재림을 단일 사건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진술을 문자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서 역사적 사건 중심으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유사점이 많다. 하지만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개의 천년설은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또한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지지하는 입장에 따라 다소 견해차가 있다.

 

 

 

기독교 3세기의 이레니우스, 저스틴, 터툴리안, 락탄티우스와 같은 정통 교부들은 전천년설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4세기에 들어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으로 교회 시대를 천년왕국으로 보는 무천년설이 유행하였다. 어거스틴의 지지가운데 무천년설은 중세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일어날 즘, 로마 교회에 반대하는 신령주의적 급진적 개혁세력들에 의해 현세적 천년왕국 사상이 번성하였다. 칼빈과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 대부분은 신학적으로는 어거스틴의 무천년설에 머물면서도 재세례파와 같은 극단적인 세력의 전천년주의 운동의 폐해를 지켜보면서, 천년왕국설을 개진하는데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다가 17세기 청교들의 신대륙 이주 이후, 기독교 복음의 번성과 함께 낙관적인 후천년주의 사상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조나단 에드워즈를 비롯해서 프린스톤 3인의 핫지, 댑니, 워필드에 이르기까지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수혜자였던 신학자들에 의해 후천년설이 정통교회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세기 들어와서 프랑스 혁명 시대 이후 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면서 전천년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세상에 대한 염세적인 사상과 천국에 대한 열정적인 기대가 맞물려 예언 집회가 유행하던 때에, 다비와 플리머스 형제단을 통하여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나타났다. 불과 몇 십년만에 이 사상은 20세기의 복음주의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 있는 기독교적 종말론으로 자리 잡히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는 천년왕국설은 교회가 처한 역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게 된다. 네 가지 입장 모두 나름대로의 성경과 현실에 대한 주장과 근거가 있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배제하고, 세 가지 주장 중에 어느 것 하나가 유일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이전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왕성하게 이루어진 천년왕국에 대한 논의 과정을 지켜볼 때, 문자적-영해적 해석을 근간으로 한 무천년설이 가장 성경적이며, 개혁주의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천년은 문자적 의미에서의 천년이 아니며,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심판의 순서들 역시 문자적인 예언이 역사적 순서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천년왕국은 문자적 지상의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상과 천상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영원한 축복 상태로 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까지의 시간을 집약적으로 상징화한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천년 동안 왕노릇하다’는 계 20:4 말씀 역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재적 사건인 동시에, 현재의 성도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천상의 미래적 사건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은 지상과 하늘에서 메시아 왕권이 발휘되는 이중적 개념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지상과 천상을 통(通)하는 메시야의 ‘천년왕국’은 사단과 그의 대행자인 악의 세력들이 받을 아마겟돈 최후 전쟁과 더불어 임하게 될 주의 재림과 마지막 대심판으 끝이나고, ‘새 하늘과 새 땅’ 가운데 ‘새 예루살렘’의 영원한 축복 상태가 완성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5) 144,000과 짐승의 표(666), 적그리스도에 대한 해석 문제

 

세대주의자들은 계 7장과 14장에 언급된 숫자 ‘144,000’을 민족적, 혈통적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과 함께 교회와 성도들이 휴거된 이후, 지상의 7년 대환난 기간 중에 살아남은 자의 이스라엘(유대인)의 숫자가 144,000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이전에 땅 위에 남아 있는 성도들 중에서 구원의 기회를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무리(유대인들)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요한계시록 말씀을 문자적으로 과도하게 해석한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144,000’은 하나님의 백성의 완전한 총수를 상징화한 숫자로 볼 수 있다. 즉 이 숫자는 12×12×1000으로서 약속시대의 구약의 백성(구약의 12지파)과 그 성취로서의 신약의 백성(신약의 12사도)에다 완전성과 무한성을 나타내는 숫자인 1000을 곱하여 나온 숫자로 말이다. 따라서 이 숫자는,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본다(딤후 2:19). 계시록 7장에서는 이들이 마지막 때의 환난과 사단의 시험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고, 14장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들이 받을 최종적인 운명(영벌과 영복)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 13장을 보면 ‘짐승의 표’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세대주의는 이 ‘표’를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한다. 그래서 실제로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오른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계시록 전후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억지보다 더한 주장이다.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컴퓨터의 영자 철자를 아라비아 숫자로 환원하여 합하면, 666이라는 숫자를 얻게 된다고 말하고, 더러는 상품의 통상부호인 바 코드(bar cord)도 666으로 환원된다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666이라는 숫자를 적그리스도와 연결해서 설명하기 위한 수많은 억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계시록에 언급된 ‘표’는 당시 군인들, 노예들, 신전 봉사자들에게 소유물의 증거로서 낙인을 찍는 통상적인 전통에서 빌려 온 상징어라고 본다. 즉 ‘표’는 소유, 충성, 보호를 상징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 적그리스도와 666이라는 숫자가 직접 언급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정체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교회 역사를 보면, 666을 로마의 불신 황제들(네로, 칼리굴라, 도미티안 등)과 관련시키거나 히브리어 원어를 환산하는 방식을 통해 설명하려했던 시도가 많았다. 믈론 이러한 노력을 전부 무익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와 666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놓쳐서는 안 되는 점은 짐승의 수를 판독하는 일보다 짐승의 도덕적 본질을 파악하는 통찰력이다. 적그리스도는 짐승의 머리이고, 짐승은 적그리스도의 하수인이다.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을 부정하며, 복음의 본질을 파괴하려 한다. 집단적 권력의 총체로서 등장하는 “적그리스도”가 초대 교회에서는 네로로, 중세시대에는 교황으로 지목되었고, 그것은 바른 지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계시록에 언급된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아니다. 마지막 때에는 이전의 적그리스도 보다 훨씬 더 가공할만한 능력과 속임을 가진 인격체로서 드러날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는 적그리스도와 짐승이 언제 어느 때에 그 실체를 드러낸다고 할지라도, 결코 흔들리지 말며 인내와 믿음가운데 굳건히 서야 할 것이다(계 13:10).

 

 

 

 

(6) 대환난 이전에 나타날 징조에 대한 해석 문제

 

세대주의는 7년 대환난을 매우 강조한다. 왜냐하면 7년 대환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교회와 성도의 공중 들림(휴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7년 대환난이 다가올 시기와 징조에 대해 유난히 관심이 많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세대주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한국의 세대주의 신학의 대표적인 전도자라고 할 수 있는 조용기 목사의 해석을 살펴보기만 해도, 얼마나 황당하고, 억지스러운지를 확인할 수 있다.

 

 

 

조 목사는 그의 『요한계시록 강해』과 『지금이 말세인가?』, 『다가올 미래』라는 책에서, 7년 대환난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세계적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는 EC통합을 로마 제국의 부활로 보면서 다니엘이 예언하고 계시록이 말하고 있는 열 발가락시대, 열 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본다. 또 마지막 전쟁을 중동전쟁으로 보고, 1991년 1월의 걸프전을 전주곡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페라스토로이카의 실패로 경제가 위축된 소련이 아랍의 동조를 얻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 3차 대전과 같은 전지구적 전쟁이 발생하는데, 소련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은 예기치 않은 천재지변으로 패하게 되고, 마침내 승리한 이스라엘이 시온산에 솔로몬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통일 유렵과 평화조약을 맺게 되며, 이것이 7년 대환난 직전에 일어날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기록한다. 성경적 근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런 식의 세계 종말 시나리오는 너무나 많다.

 

 

 

 

 

E. 끝맺는 말

 

 

 

성경 중에 요한 계시록만큼 관심이 많은 반면, 잘못 오해하고 있는 성경도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전혀 비성경적인 계시록 해석과 주해와 설교가 이 땅에 넘쳐나고 있다. 아마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적으로 드리운 불안하고 암담한 시대 정서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영혼의 도피처를 찾는 많은 성도들에게, 계시록에 대한 잘못된 호기심과 열심을 불러일으김으로 야기되는 일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상에서 우리가 살펴본 학설들 중,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성경해석학적 관점에서 문제가 많아서 받아들일 수 없으며, “후천년설”은 성경에 근거를 두기 보다 역사적 낙관주의에 편승하여 이 세상이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는 점을 간과한 인본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 설득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나머지 “역사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은 개혁신앙을 지닌 사람들에게도 다같이 서로 인정되고 있는 입장이다. 어느 입장을 택할 것인가는 본인의 양심과 성경해석학에 근거하여 받아드리면 된다고 본다.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필자는 총신에서 교의신학을 가르쳤고 7권으로 된 그의 교의신학을 책으로 출판한 바 있는 고 박형룡 박사가 그의 교의신학 제 7권인 [내세론]에서 말한 내용을 참고로 들고 싶다 -- 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귀환이 천년기 후에 온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에 곤란하며, 무천년설은 계시록 20:1-10에서 6회나 기술된 ‘1000년’에 대하여 그것을 영적으로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천상 성도들의 행복상”이라고 함으로 성경적인 뒷받침이 허약하다고 비판하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지상천년의 그리스도의 왕권통치 기간이 역사적으로 있을 것으로 믿는 “역사적 전천년설”의 입장이 가장 편리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고 하였다.[박형룡, 교의신학 제 7권(내세론), 재림의 시기, PP. 198-206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