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에 대하여
* 구약 성경에 나타난 선지자 제도의 기원의 출처 - 신 18: 9~22 : 이곳에 제시된 선지자가 누구인가? 백성들인 회중은 그의 말을 들어야 하였다. 그의 하는 일은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두고 무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고하는 일을 한 것이다. 백성이 듣지 않으면 벌을 받으며, 선지자 역시 맡겨진 바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지 못하여 방자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죽임을 당한다. 선지자가 참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성취함도 있어야 함을 제시한다. 이곳에 제시된 선지자는 그리스도로 본다. 또는 다른 선지자로도 본다.
*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이심을 증거하는 말씀들
1. 요 6:14 :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
2. 요 4:25 :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고하실 그리스도라 오시는 이라고 하였다.
* 다른 선지자임을 입증하는 말
1. 요 1:20,21 - 침례 요한이 자신을 가리켜 말한 글 중에 나타난다.
2. 요 7:40 - 사람들이 가졌던 견해에 나타난다.
* 주님 자신이 선지자임을 대변하는 말씀들
1. 요 5:45-47 : 모세를 믿었더면 나를 믿었으리라 그가 곧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다고 한다.
2. 요 5:43 - 주님 자신이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시다.
3. 요 12:48,49 : 나를 저버리고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들이 받을 심판에 대하여 언급한다.
4. 마 17: 5 - 나에 대하여 말을 들으라고 하신다.
* 선지자의 기원 - 모세 이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사려된다. 신 18:14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용납되지 않은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환원하여 말하자면 선지자들을 세워 이방인들이 잘못 행하는 길로 들어섬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하는 반증이 된다.
* 선지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확신의 사람으로, 저들의 믿는 바를 담대히 전한 용감한 자들이다. 저들은 또한 위대한 자들로 하나님의 율법에서 멀어져 가는 백성들의 교화를 위하여 바른 안내의 역할을 담당한 당대 유대의 역사에 있어서 지고한 위치에 있던 자들이다. 따라서 저들이 유대 종교와 저들의 역사에서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선지자가 되는 과정
1.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
【성경절 참조】
렘 14:14- 거짓 선지자들의 특성을 열거하면서 하나님 자신이 하시는 일을 언급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명하시고 이르시는 분이시다.
렘 1: 5 - 예레미야를 구별하고 선지자로 세우셨다.
암 7:14,15- 아모스를 예언하라 하심.
출 3: 4- 모세가 가시덤불에서 부르심을 받았다.
사 6: -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께 대한 환상을 봄
겔 1: 1; 2: 2,3 -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이 부르심을 받음
2.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하시는 일의 제시
민 12: 4- 이상으로 알리고 꿈으로 말한다.
이상을 받은 사례 - 창 46: 2 야곱이 하나님의 이상을 본다.
* 선지자가 행하는 일
삼상 9:15-21, 16:1-13 - 왕의 선정으로 사울 왕과 다윗 왕을 지명하였다.
삼상 13:11-14; 삼하 12:1-12; 삼하 24:1-17 : 사울 왕에 대하여 그에 대한 실정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에 대하여 말함과,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함으로써 책망을 받음과, 다윗이 인구 조사로 인하여 갓 선지자로부터 받아야 할 징계를 종용함
왕상 11:29-39 ; 왕상 13:1-10 새로운 이스라엘 왕국을 약속함과 보좌를 빼앗길 것에 대하여 예언함
왕상 17:1 ; 18:25-38 : 기근에 대하여 경고함과 거짓 예언자들과 갈멜산에서의 싸움을 수행함.
왕하 8:7-13 : 하사엘에게 수리아의 왕이 될 것을 말함과 그가 장차 행할 일을 보고 운다.
욘 1: 2; 3: 1, 2 - 이방인에게 보내어져 회개를 설파함.
이상의 일을 이행함에는 결단력과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며 특별한 지도력과 하나님께서 뒷받침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위대한 과업이다. 그들이 하였던 주된 사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받아 그 받은 것을 백성들에게 알림이었다.
왕상 20:22- 선지자가 왕에게로 나아가 왕이 적군의 침략에 대하여 방비할 태세를 갖도록 한다.
* 성경이 사용한 선지자에 대한 용어
나비(איꔩꗺ) - 선지자로 해석됨. 구약에서 300여 번 언급된다.
로에(הꔟꙡ) - 라아(הꘝꙜ)라고 하는 ‘보다’라는 동사에서 나옴
하자(הꕾꕗ) - 보다라는 의미에서 선견자로 번역이 된다.
이쉬 엘로힘(מיꕙꗟꔟשׁיאּ) - 하나님의 사람이란 말로서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되어져 보낸 이란 의미를 갖는다.
위의 용어에 대한 세부적 고찰
1. 나비- 히브리어의 ‘나바’(עבנ)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 나바는 ‘솟아오르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는 ‘나부’라는 어근에서 왔다고 하는 바 ‘말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하나님을 말하는 사람’ 혹은 ‘하나님의 대언자’로 해석한다. 또 어떤 이는 ‘나비’를 가리켜 ‘황홀경의 일관성 없는 외침’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등 각양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어떤 의미로 해석되던 하나님에 의해서 부름 받은 사람과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란 의미를 지닌다.
【사례】
신 18:18 - 내 말을 그의 입에 두어 명한 바를 고한다.
출 7: 1 - 모세에게 바로의 신이 되며 아론이 모세의 대언자가 되라는 말씀 속에서 아론이 모세와 바로 사이에서 중보자가 된다. 모세가 바로의 신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께로부터 메시지를 받음을 의미한다(출 4:15, 16)
렘 1:17 - 예레미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의 소명. 자신은 말을 전하는 일에 대하여 매우 심기가 불편함을 느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별함이 복중에 태어나기 전이다 라고 언급하신다. 그가 전하여야 할 말이 있었던 자이다
렘 15:19 - 하나님의 입이 되어야 하였다.
창 20: 7 -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에 그의 위치가 나비에 해당되었다. 이는 아브라함이 중재자의 입장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특별한 밀접한 관계에서 효과적인 중재를 맡아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게 된다.
2. 로에 -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을 가리켜 ‘선견자’란 의미로 말하고 있다. 사무엘이 사울에 대하여 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한 일이다.
【사례】
삼상 9: 9 - 옛적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로에’(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나비’(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로에’(선견자)라 일컬었더라. 우리는 위의 문장에서 사용된 ‘로에’와 ‘나비’의 차이를 두는 일부의 견해를 보게 된다. ‘로에’를 ‘표적’이나 ‘징조’를 해석하는 사람으로, ‘나비’는 ‘이상’을 보기 위하여 자신의 정신적 힘의 일시적 자극을 통해서 지식을 도출하는 자로 보았다. 그리하여 나비를 가리켜 ‘신에 사로잡힌 자로 격양된 행동을 하는 자로 간주하였다. 그가 행하는 일이 시각적 또는 청각적인 경험을 통하여 정보를 얻어 자문하고 지도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한 차이와 구분을 의미함이 아닌 단지 하나님의 사람인 나비가 선견자로 불리운 당시의 일반적인 명칭이었을 따름이다.
3. 호제(הꖂꖓ) - 사 30:9, 10 - 선견자의 일이 나비의 일과 똑같이 언급되고 있다. '호제' 역시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하여 불러진 명칭으로 아모스를 '호제'로 칭하였다. 선견이란 단지 본다는 뜻이나 역시 하나님이 보여주셔서 보게 되는 것이다. 본다는 말은 ‘라아’에서 유래하였다. 나비는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아 말하는 자로, 로에는 메시지를 보게 되는 경험이 강조된다. 로에와 호제는 동의어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단지 말하는 것보다는 받는 것에 강조를 둔 것이 다소간의 차이일 뿐이다.
* 선지자의 부르심과 저들의 생활상
제사장은 가계에 의하여 되었으나 선지자는 출신 성분이 따로 있지 아니함을 보게 된다. 아모스 - 뽕나무를 재배하던 농부와 목자로서 부름을 받았다. 따라서 그의 생활의 마련은 그가 평소에 행하던 직업에서 충당되었을 것이다.
사무엘과 엘리야와 엘리사 - 무리들을 거닐고 집단 생활을 하였다(삼상 10: 5, 10; 왕하 2: 3, 5, 7, 15)
양의 가죽, 염소의 가죽옷을 입음(왕하 1: 8) - 구별된 삶을 살았다. 위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에 따라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한 부분과 선지자가 고유의 일을 분담하기 위하여 학교를 세우며 제자들을 양성한 곳이 있었는가 하면 어느 때에는 왕의 휘하에서 왕을 위하여 예언하고 즐겁게 하는 일을 돕던 직업인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대항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대표적인 선지자가 미가야이다(왕상 22:13-28). 미가야 선지자 앞서서 사무엘, 나단, 갓. 에후, 하나니 세마야, 아히야, 엘리야, 엘리사도 왕과 대면하였으나 왕에게 종속된 자가 아니라 저들은 특별한 사명이 있을 때에 왕을 상대로 진언하던 자로서 직업적인 자들과는 속성이 달랐다. 이런 일로 인하여 소수의 특별한 훈련을 받은 자들만이 이행할 수 있는 일들이 변질된 거짓 선지자로 되어 가는 발판을 마련케 되었다.
* 선지자가 예언함에 있어서 나타난 현상들
1 암 7: 2~14 - 자신은 선지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언하라 하셨다고 한다. 아모스는 자신이 선지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이 실재로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였을 뿐이지 과거에는 선지자 아니였다고 자신의 신분을 토로하고 있다.
2 민 11:24~28 - 모세가 70인 장로를 장막에 불러모았을 때에 여호와의 신이 임하여 예언을 하게 하였다. 예언의 실상이 무엇이지는 모른다. 무엇인가 다른 이들과 구별하기 위한 모습으로 일순간적으로 임한 현상이다. 이 때에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을 하였다. 이 사건에 대한 보고를 들은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예언을 못하도록 지시하였으나 모세는 그대로 방관시하고 모든 사람이 선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있다. 이는 선지자의 기능의 다양한 면모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선포라고 보기는 어렵다.
3 삼상 10: 9 - 사울에게 임하였던 현상으로, 그에게는 새 마음이 주어진 바 되었고 징조도 응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신이 크게 임하고 무리와 함께 예언도 하게 되었다. 사울이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을 때에는 무엇인가 비정상적인 행위의 면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4 삼상 18:10- 사울에게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이 임하여 예언함. 악신이 임한 결과 발하여진 예언은 하나님의 형벌이었다. 그가 취한 행동은 다윗을 죽이기 위한 비정상적인 미친 행동을 발한 것이다.
삼상 19:20~24 - 사울이 다윗을 잡기 위하여 사자를 보내었을 때에 생겨난 일로 저들은 저들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도록 예언을 하게 되었으며, 사울도 정상적인 행위가 아닌 상태에서 예언을 하였던 일이 발생되었다. 이따금 예언을 함에 있어서 비정상적인 행동이 발하여진 것이다. 왕상 18:29에 거짓 선지자들이 행한 행위에서 예언을 할 때에 나타난 행동이 이상한 짓을 하였던 것과 비추어 생각하여 볼 수가 있다.
5 렘 29:26 - 미친 자와 선지자를 착고에 채우는 일을 함에서 선지자의 행위와 미친 자의 행위를 동일 선상에 두고 있다. 간혹 선지자가 예언을 발함에 있어서 나타난 행동 중에 비정상적인 행동이 있음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이다.
6 호 9: 7 - 선지자의 행위를 어리석고 미친 자의 행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주위의 반감을 가진 자들의 평가로 인한 것이지 실제로 그러한 행동의 소위자가 선지자들은 아닌 것이다.
7 대상 25:1~2에 찬양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사람들이 구별된 행위로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만이 행할 일로 보게 된다. 따라서 70인 장로의 행위와 엘닷과 메닷이 행한 행위는 예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흥분된 감격의 노래와 찬양으로 본다.
* 선지자의 등장과 그에 대한 역할
⑴ 암 2:11,12 -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이후에 선지자와 나시르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⑵ 행 3:24 - 사무엘 때로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함이란 글에서 선지자의 필요에 대하여 언급한다.
선지자들의 역할은 무엇보다 계시에 접한 자인 점이다. 계시는 사람의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정보의 수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영역이다.
⑶ 삼상 10: 5 - 하나님의 산에 이르게 되면 등장하게 될 선지자의 무리가 등장하고 있다. 저들이 어떠한 목적으로 산당에서 내려오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복수의 의미가 사용된 것에 대해서도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과거의 70인 장로와 마찬가지로 선지자의 역할을 보조하는 기능의 수행자일 것으로 보인다.
⑷ 삼상 10:10 -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임하여 예언을 함. 이곳에서의 예언은 하나님의 신이 임한 결과이며 그 어떤 환상적인 도취에서 나타난 일이 아니다. 일단 하나님의 신이 임하게 되면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다소 이탈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사울이 신의 영향으로 인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 함에 대한 의미는 그가 성령으로 중생한 사람으로서의 변화가 아닌 전에 사람과는 달라진 그의 신분에 변화로 인하여 다른 행동을 유발하게 될 면을 보인다. 그가 왕으로서 직분 수행 상에 있어서 지니게 될 각가지 면을 통괄한다. 그가 예언한 것에 대해서는 종전의 선지자와도 같은 것으로 보임으로 선지자 중의 하나로 있었다는 속담을 사용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신의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질 수 없는 값없이 주어지는 은사 중의 하나로 보게 된다.
⑸ 삼상 19:19~24 - 다윗을 잡으러 간 사울의 사자들이 하나님의 신을 받고 예언을 하게 되고 사울도 역시 예언을 하게 된다. 그의 예언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었다. 그가 취한 행동은 종일토록 옷을 벗고 있는 상태를 취하였다. 이렇게 되었던 면에는 사울이 정상적인 면에서 기인되었다기보다는 그가 하나님의 뜻에 완강하게 저항하는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기 위한 면으로 하나님께 대항할 수 없는 자신임을 깨닫게 하기 위한 면으로 주어진 것이다. 사울의 사자들이 다윗을 잡으러 갔을 때의 일도 저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과는 역행됨을 보이기 위한 하나님의 지시인 것이다.
⑹ 선지자의 무리라는 용어가 사용된 이후에는 선지자의 생도란 말로 등장이 되고 있다.
① 왕하 2: 3 -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를 만나러 나옴.
② 왕하 2: 5 -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를 만나러 나옴.
③ 왕하 2 : 7 - 50명의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야와 엘리사를 멀리서 바라봄. 이곳에 사용된 생도는 아들이라는 용어로 표기되었다. 이는 혈연적 의미에서의 아들이 아니라 친분적 관계에서 사용된 말이다. 사무엘 시대에는 이러한 생도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고 엘리야 시대에 사용되어 있다. 엘리야의 아합 왕 시대에는 선지자들이 핍박을 받던 상황이었으므로 기존의 선지자인 엘리야와 엘리사 사이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지니게 된 용어로 보인다. 저들은 결혼하며 공동 거주지를 지니고 있었던 자들로 엘리야와 엘리사를 보조하던 선지자의 기능을 행사하던 자들로 보인다.
④ 왕상 18: 4 -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하였으며, 오바댜는 일백인의 선지자들을 숨기었다. 이곳의 오바댜는 엘리야를 만났을 때에 ‘주’라고 부름으로 영적 지도자로 추앙된 자로 일반적인 선지자들과는 다른 부류의 선지자이다. 또한 바알의 선지자들은 바알을 추종하던 그릇된 역할을 담당하던 자들이다.
⑤ 왕상 20:35 - 선지자의 무리중 한 사람이 동무에게 치라고 한다. 이곳에서의 치는 행위는 그 무슨 황홀한 상태에 몰입하기 위한 자해의 행위가 아니라, 아합이 벤하닷을 놓아주었기 때문에 아합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을 상징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 선지자의 제의 행사에 관련된 기사
① 삼하 29:14 - 다윗에게 여호와의 단을 쌓도록 하나님의 명을 전달한다.
② 대하 29:25 - 성전에서의 음악 행사에 대한 명을 전달한다. 이곳에는 다윗도 함께 언급된 것으로 하나님의 명하심을 따른 것이다.
③ 왕하 4:23 - 수넴 여인의 남편이 그의 부인에게 제안한 말에서 선지자의 행위를 암시 받게 된다. 이곳에서는 선지자들이 백성들의 영적 지도자들로 제사장들이 이행하지 못한 일들을 조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④ 왕상 19:10 - 주의 선지자들이 당한 일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일 가운데 주의 언약을 헐며 주의 단을 헌 행동들이 나온다. 엘리야 선지자는 무너진 단을 수축한 자였다(왕하 18:30). 제사장은 백성들을 하나님께 대표하는 자이고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대신한 자들로 서로의 보완적 관계를 지닌 자들이다.
* 선지자들이 주변의 이교 종교 지도자들과의 다른 관계 :
바루 - 이는 제사장들로 불리우던 명칭으로, 이 말에 대한 의미는 ‘보는 자’이다. 그들이 보는 것은 하나님의 이상을 접하는 봄인 ‘로에’가 아니라 ‘점’(주술)을 치기 위하여 컵 안에 있는 기름과 물을 관찰함, 동물의 내장과 간의 반점들을 관찰함, 천체의 현상과 새들의 날아다님이나 꿈을 통하여 징조를 얻고자 하였다. 저들은 이것들을 얻기 위하여 지식을 전수 받음이 필요하였다.
마후 - ‘날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용어이다. 도취의 현상으로 황홀함이 따른다. 전자인 바루와 특별한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둘 다 전수 받은 지식이나 비밀로 위의 관찰의 행동들을 이행하게 된다. 저들이 이러한 일들을 수행함에 있어서 가졌던 의식들로는 목욕, 기름을 바름. 정화케 하는 행위들이 따랐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선지자는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부터의 직접적인 계시의 전달이자 인간적 지식의 전수나 의식을 통하여 받음이 아닌 하나님의 현현이다(출 3: 1).
* 성경에 제시된 오해될 만한 구절
삿 18: 5 - 단 자손이 미가가 고용한 제사장의 행위에서 나타난 행위 중 하나님께 묻는 행위는 저가 하나님을 정상적으로 숭배하던 인물이 아닌 우상 숭배의 형태로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소견대로 좋을 대로 행동한 자로, 그것은 직접적인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없다. 이곳에 세운 제사장은 선지자의 속성과는 아무러한 상관도 없는 일이나 제사장과 선지자가 함께 사용된 연유로 모순된 행위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삼상 22:15 -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에게 보고한 말 가운데 하나님께 물은 행위가 제시된다. 이곳에서의 제사장 행위 역시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하여 나아간 것이 아니었다. 저들이 행하던 행위로는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하여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응답 여부를 알기 위하여 나아가던 일이 있었다.
신 33: 8~11에 제시된 그 손의 일이란 표현과 판결과 율법을 하나님의 신탁적인 응답을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제사장의 행위가 미신적인 행위가 아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제시한 판결과 율법을 알기 위한 행동으로 사려된다.
시 86:17 - ‘은총의 표징을 보이소서’란 표현 속에서 표징은 징조로 그가 취한 행위는 점이 아닌 자신이 바라는 호소를 하나님께 직접 간구함이다.
시 5: 3 - ‘아침에 내가 주를 위해 벌여 놓고 바라리이다’란 행위 속에서 취한 행동은 신탁이나 응답을 바라기 위한 목적으로 드려진 제사 행위가 아니라 아침에 하나님께 기도로 부르짖는 영적 제사인 예배의 행위였다. 다윗은 제사장이 아니었다.
왕하 16:15 - 나의 물을 일을 쓰기 위하여 있는 놋단에서 묻는 행위와 제단의 기구와 연결된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 수가 없다.
대하 28:23 - 신들에게 제사한 행위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일을 고하고 있다. 제단에서 기도한 행위 모두가 합법적인 일이 아닌 그릇된 종교 행위의 부패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시 27: 4 - 다윗의 행위 가운데 나타난 것 중에 여호와의 전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묻게 하고 여호와의 전에서 사모하게 할 행위들은 무슨 징조를 얻기 위함이 아닌 것으로, 앙망함은 봄으로써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함과 바라봄이며, 묻는 행위는 깊은 묵상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다윗의 기도의 행위의 면들을 묘사하고 있음이다.
* 이상의 모든 행위들을 한 가지로 통일시켜 제사장과 선지자의 행위의 일부가 이교의 행위를 담습한 점을 치는 행위로 볼 수는 없는 일들로, 잘못된 관행과 시편에 나타난 행동들은 그저 보통 사람들의 신앙적 행위였다.
합 2: 1 - 파수하는 곳에 주님의 하시는 말씀을 듣고자 하는 행위를 징조를 보기 위한 장소로 언급한 일련의 해석은 특정한 장소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하여 먼 곳까지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올라가려는 대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한 태도로 보인다.
사 21:6~10 - 주께서 세우신 파숫군이 취할 행동으로 쌍쌍이 오는 마병대와 나귀와 약대 떼에게서 기인될 징조를 언급함이 목적이 아닌 바벨론 함락의 의미를 제시하는 일련의 하나님의 기별인 것이다.
사 28: 7 -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행위 가운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을 행할 때에 실수하는 자들의 행위가 언급된다. 이 모두는 잘못된 행위에 기인되는 비정상적인 것들이다. 하나님의 선지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조잡하고 그릇된 이상을 받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미 3:11 - 돈을 벌기 위하여 점치는 선지자의 행위는 거짓 선지자의 행위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내용들이 아니라 자기 좋을 대로 예언하는 자로 백성들을 유혹하는 자들의 행동이다. 저들이 하나님이 세운 자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함으로 백성들에게 혼동을 가져오곤 하였다. 저들은 선지자로부터 비난받는 일련의 행위를 저질렀다.
왕하 17:13 - 선지자들의 행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들은 여호와의 명령과 율례를 전수 받아 전하는 일을 행한 것이지 그 어떤 주술 행위로 이상을 받기 위하여 행동한 자들이 아닌 것이다. 성경에는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따로 구분하여 사용하지 아니하고 선지자란 이름 하에 발생하고 있는 제반 행위들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은 저들의 행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와의 활동
렘 14:14 - 선지자들이 행하는 일련의 행동으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다. 저들은 여호와께서 보내지도 않고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한 자들이나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예언한 자들이다.
렘 26:16 - 이곳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말을 한 자들이나 왕과 백성 모두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아 왔다.
미 3: 8 - 하나님의 선지자인 미가는 자신이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재능으로 채움을 얻겠다고 말한다. 선지자는 여호와의 신의 역사를 받은 자임을 언급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여호와의 신의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렘 5:11~13에서 이스라엘 족속과 우다 족속이 패역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저희들의 방자한 행위를 열거하고 있다. 재앙이 임하지 않으며 선지자들에게는 말씀이 없다 하고 바람이라는 표현으로 저들의 역사를 무시하고 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으나 백성들이 무시하는 경향에서 보았듯이 선지자는 여호와의 신으로 인한 말씀을 받는 자이다. 여호와의 신의 역사와 말씀의 역사에 대해서는 미 2: 7에 여호와의 신은 편급하지 않고 그의 행위가 또한 그러하며 그의 말이 행위가 정직한 자에게 유익이 된다고 한다.
렘 28: 8 - 이전 선지자들이 행한 일 가운데 여러 나라와 국가들에게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다고 한다. 저들이 그러한 말만을 전함은 전하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저희들의 배역한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벌을 제시하여 돌이키기 위한 행동의 일환이었다. 이러할 때에 등장하는 것으로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등장이 있게 된다. 그가 예레미야를 능멸하며 예레미야가 예언한 것을 뒤집는 처사에 대하여 그가 전하는 평화의 예언이 응하면 그가 선지자임이 판명된다고 하였다. 다시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가 당할 죽음에 대하여 예언하게 하여 그가 죽음을 당하게 된다.
왕상 22: 5~23. 이곳에서는 여호사밧, 아합, 선지자 미가야의 등장이 있고 거짓말하는 영을 부여받은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한다. 아합은 자신이 고용한 선지자들이 있었다. 저들은 왕을 가까이에서 시중하던 자들이다. 아람과의 전쟁 여부를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자신의 동맹 의향을 제시한 다음에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지를 묻게 하는 중에 자신들이 거닐고 있는 400인의 선지자의 의중을 물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라는 말을 들으나 여호사밧은 마음속에 탐탁하지 않았든지 다른 선지자가 있음을 물어 엘리야 대신 미가야를 소개받는다. 아합 왕은 그러나 그가 늘 나에게는 불길한 예언을 하는 자로 언찮아 한다.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오히려 미가야를 부르라고 한다. 이 때에 거짓 선지자들은 여호사밧과 아합 왕이 사미라아 문 어귀 광장에서 보좌 위에 않아 있을 때에 예언하여 아람을 무찌르도록 진언을 듣는다.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자가 미가야에게도 왕에게 길한 예언을 하여 위협을 당하지 않도록 고무시키나 미가야는 거절하고 여호와께서 시키시는 말을 하겠다고 제안하고, 왕에게는 실상 하나님의 뜻과는 역행되는 말로 싸움에 임할 것을 말한다. 왕은 미가야가 하는 말이 빈정대면서 당신의 의향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여 보라는 말을 듣고 불쾌한 감정을 나타낸다. 미가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낸 말을 상기하여 백성들의 상태가 흩어지고 여호와의 말씀에 무리가 주인이 없이 흩어진 모습을 고한다. 또한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합을 죽게 할 양으로 거짓말하는 영으로 모든 선지자의 입에 들어갈 것을 전한다. 바른 말을 고하는 미가야를 시드기야가 뺨을 때리며 그의 말하는 행위를 질타하고 어려움에 봉착하게 만든다. 싸움에 임한 결과 아합 왕은 죽고 만다. 이곳에는 여호와의 말을 전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영의 역사를 받아 거짓 예언을 하고 꾀는 일을 하는 무리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슥 13: 2 -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에 대한 존재가 언급되고 있다.
요일 4: 6 -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로서의 미혹한 영을 지닌 자가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일의 발생은 많은 거짓 선지자의 소행으로 인한 것들이다.
살후 2:10~11 -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할 자들로 하나님께서 거짓 것을 믿게 할 자들이 있을 것임을 유념시키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사단의 역사를 따라 일어난다.
호 9: 7~9 - 형벌의 날이 이르고 보응의 날이 임한 것을 이스라엘이 알리라 하면서 그 때에 선지가가 어리석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다고 한다. 에브라임을 가리켜 하나님의 파숫군인 선지자로 그 모든 행위에서 새 잡는 자의 그물 같고 하나님의 전에서 원한을 품었다고 한다. 선지자들의 행한 행위가 백성들을 속이고 실제로 임할 파멸을 선고한 것이 아니라 듣기 좋은 말만을 늘어놓아 결국은 저들을 멸망으로 이끄는 새 잡는 자의 그물 같은 일을 하고 만 것이다.
사 9:14 - 이스라엘 중에서 꼬리인 자로 묘사된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가 언급되어 그가 하는 일은 백성들을 미혹함이고 망령된 일로 여호와의 노를 받아 멸망케 하는 일을 행한다. 겔 13: 9 - 선지자들의 소행 중에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점을 침으로서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자들이다.
습 3: 4 - 爲人(사람의 됨됨)이 경솔하고, 간사한 선지자들의 면을 파헤치고 있다.
렘 23:14~15 - 사마리아 선지자 중에 우매함을 지녀 바알을 의탁하고 예언한 자들로, 저들은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한 자들이고, 예루살렘 선지자들 중에서도 가증한 일을 행하고 백성들을 회개케 하지 못하게 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쑥을 먹고 독한 물을 마시도록 할 자들로 사악으로 온 땅을 더럽힐 자들이다.
렘 26: 8 - 예레미야 선지자의 전한 말을 듣고 제사장과 백성들과 선지자들이 합세하여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예언한다 하여 반드시 죽겠다고 악담을 발하고 있다.
렘 2: 8 -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는 자들로 선지자가 언급되고 있다. 이곳의 선지자는 백성들로 신앙을 바르게 지도하여야 할 제사장들이 하나님이 계신 곳을 제대로 지시하지 않으며,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여호와를 모르고 관리들도 여호와를 항거하는 부패를 일삼는 무리들 중에 섞여 있는 비행을 저지르고 있다.
사 28: 7 - 독주로 인하여 옆 걸음 치며, 이상을 그릇 풀어 모든 상에 토한 것과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게 할 정도로 백성들에게 도무지 참다운 선지자 기능을 베풀지 못하는 부류들을 언급하고 있다.
결론 : 이토록 구약에 누누이 언급되고 있는 선지자들을 과연 어떠한 자들인가? 저들은 자신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이상한 현상으로 속임수를 다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이상이나 말을 받았다고 스스로 믿고 예언을 발한 자들이다. 또한 저들은 그 일을 직업적으로 행하던 자들인 것이다. 저들이 이런 일을 하게 된 근본적 원인으로는 사람의 마음이 부패됨으로 인함이다. 저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참다운 선지자를 모방하기 위한 흉내로 시작되는 것들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 계시나 지시를 받지 못할 경우에 다른 거짓 신의 영향으로 인하여 잘못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믿을 수 있는 바탕 위에서 믿어야 하고, 바르게 지도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자가 참다운 선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진리에 속한 자들로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하는 자를 따라야 함이다. 백성들에게 유익함을 주지 못하는 자들은 결코 선지자가 될 수 없다.
*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는 것 중에 참 선지자들이 지닐 것들
⑴ 거짓 계시로 인하거나 복술과 허탄한 것과 마음으로 속이는 행위가 거짓 선지자에게 임하였다(신 18: 9~14 ; 렘 14: 4 ; 미 3 7, 11 ; 겔 12:24).
⑵ 참 선지자가 전하는 기별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기별을 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주신 기별의 성격들은 대개가 경고와 책망을 다루고 있다. 거짓 선지자들을 대체로 평강을 전하였고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다(렘 8:11 ; 렘 28: 8).
⑶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보내지도 않았는데 보냈다고 거짓말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하여 복술을 행하는 부도덕성을 지녔다(미 3:11)
⑷ 열매(사람 됨됨의 품성)로 구분한다(마 7:15, 16).
⑷ 참 선지자는 기별을 증거함에 따라서 발생되는 어려운 곤경들을 직면하여 피하지 않고 감수하는 정신을 지녔다. 미가야는 아합의 공갈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려움을 줄 것을 알았다고 말하고 예레미야도 구덩이에 던져 넣어 죽음을 기다리는 마음을 가졌다(왕상 22:27, 28 ; 렘 38: 4~13).
⑸ 참 선지자의 기별은 하나님의 율법이나 다른 선지자들의 기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예는 렘 26장에서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예언한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 파괴에 대하여 히스기야가 처신한 것을 설명하면서 장로 몇 사람이 백성들에게 예레미야를 죽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렘 26:17~19).
⑹ 예언 성취의 여부(렘 28; 9) - 모세는 일찍이 선지자가 이른 말에는 증험과 성취함이 있어야 함을 언급하였다(신 18:21, 22). 미가야는 왕상 22장에서 아합 왕이 장차 당할 불길한 예언을 말하나 거짓 선지자들은 아부하여 전쟁에 참여하여 승리를 쟁취할 것을 조언한다. 이 때에 아합 왕은 죽음을 당하였다. 렘 28장에서의 예레미야의 예언과 하나냐의 기별은 정반대가 되는 것으로,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가 거짓말을 함으로 인하여 죽음을 당하였다(렘 28:15~17).
⑺ 기적의 권위로 판명이 된다. 모세는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10 재앙이 생겨나는 기적을 탄생시켰으며, 여호수아는 선지자는 아니면서도 하나님에 의한 기적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기적을 목도하였고, 사무엘 선지도 건기 중에 천둥과 비가 오도록 간구하여 천둥과 비가 오는 일이 발생되었다(삼상 12:16). 비단 기적의 현상만으로 선지자를 구분하기는 어려움을 예상하게 된다. 거짓 선지자들의 기적의 남발에 대하여 하나님은 경고에 대한 세심함을 들려준다(막 13:22 ; 살후 2: 9 ; 신 13: 1~3). 기적을 발하는 자는 정말 하나님의 신적 기원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결론 : 이러한 참과 거짓 선지자들을 구분하기 위하여는 세심한 주의가 요하는 것이며, 믿는 자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사람이 되어 영적인 분별력을 지니고 잘 식별하여 신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전 2:14).
* 선지자의 기별과 오늘날 시대와의 유효성과의 관계
사 2: 2~4 - 말일에 되어질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서게 될 평화로운 때의 모습을 보인다.
행 3:24 - 사무엘 때로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가 언급한 때란 표현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오심을 언급한다.
행 3:18, 19 -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중에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그리스도 자신이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루심이라고 하시고 이는 저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게 함이라고 한다.
롬 1; 2 - 복음에 관한 설명 중 이도 역시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인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사 8: 1 -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문자를 ‘마헬살랄하스바스’ 라고 쓰라고 한다. 이는 남겨 두어 그 의미를 새기도록 함이다.
사 8:16 -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할 것이다.
30: 8 -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영히 있도록 명한다.
겔 2: 9 - 선지자 앞에 펴진 두루마리 책의 안팍에 기록된 글이 있다.
겔 43:11, 12 - 법도와 규례와 율례를 책에 써서 기록하게 하였다.
합 2: 2 -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묵시도 기록하도록 명하였다.
렘 30: 2 -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 중에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고 명한다.
렘 36:18, 32 -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예레미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에 따라 들려준 모든 말씀들을 책에 기록한다. 여호야김이 두루마리에 쓴 책을 불사른 다음에도 바룩은 다시 예레미야로부터 전해 받은 두루마리를 취하여 구전대로 다시 기록을 더하는 일을 하였다.
렘 51:60 - 바벨론에 임할 모든 재앙을 기록하여 책을 시종장인 스라야에게 읽도록 명한다. 결론 : 이렇게 수없이 반복되어 책에 기록한 목적은 하나님의 기별이 일회성이 아닌 보존되어야 할 필요성을 명백히 함이다. 그리하여 그곳에 내포된 교훈들을 바로 새겨 후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유익함을 주게 함이다.
*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수신자로서의 선지자의 특성들
1 계시는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닌 구약 시대의 아브라함의 시대 이후에 줄곧 계속되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등장하여 엘리 앞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말라기 선지 역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바를 전한다(삼상 2:27, 말 1: 1).
2 저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에 대한 심리적 확신을 가진 자들이다.
3 저들이 발한 예언은 당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미래에 대한 종말론을 다루었다(행 3:24).
* 선지자들이 계시를 받음에 있어서의 발생한 제반 현상들
⑴ 선지자는 자신이 받은 계시가 하나님으로부터 전하여진 것임을 자신 있게 언급한다. 말씀하시는 분이 일인층으로 나 여호와임을 강하게 나타내며 또한 말씀을 받는 선지가 자신 역시 여호와 자신임을 강하게 주지시킨다. 표현 방식으로는 ‘여호와의 입이 그것을 말씀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말씀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하신 말씀이니라’는 등의 표현으로 계시의 객관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저들은 신적 계시의 선물을 받는 자들인 것이다. 이는 일반인으로는 가질 수 없는 독특한 현상이다.
⑵ 저들이 계시에 임하는 방법으로는 매우 다양하다.
사 22:14 - 여호와께서 친히 귀에 들리게 하신다.
민 22:38 - 발람은 발락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입에 말을 주어 말하게 한다고 하였다.
민 24: 3 - 발람에 대하여 언급한 말 중에, 눈을 감았던 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란 표현을 사용한다. 이상의 모습들이 무엇을 나타내는지에 대해서는 모두 알 수 없지만 눈을 감는 중에도 하나님의 이상은 보여지거나 들려질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한다. 엎드려진 동작이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만 이는 하나님의 신으로 인한 영향을 받은 상태로 황홀경의 도취 현상 등으로 설명된다.
왕하 3:15,16 - 엘리사 하나님의 감동을 얻어 여호와의 말씀을 받는 광경이 나타난다. 거문고 타는 음악에 맞추어 마음을 진정시킬 때에 일어났던 현상이다. 그 어떤 흥분이나 도취의 상태는 아니다.
삼상 3: 4 -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신다. 사무엘은 단지 엘리가 자신을 부르는 줄을 알았으나 세 번씩이나 동일한 부름을 듣고 나서야 하나님의 자신에게 말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삼하 8:10에서도 왕을 구하는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발한 말을 길게 열거하고 있는 바 그는 여호와께서 직접 말씀한 것을 받아 전하였다.
출 3: 4 - 여호와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자신이 취한 태도 중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내가 여기 있다라는 표현으로 모세 자신이 이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이 보여주신 이상에서 자신의 무가치한 면을 깨닫고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자신이 가겠다는 답변을 드림에서도잘 나ㄴ타난다.(사 6: 1~8)
대하 24:20, 21 - 하나님의 신으로 감동을 받아 백성 앞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발할 때에 무리들이 왕의 명을 좇아 돌로 쳐죽이는 상황에 직면하는 어려운 이성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발생되고 있다. 이러한 비슷한 유형에는 예레미야 선지자도 구덩이에 던짐을 감수하여야 하였으며(렘 38: 4~6), 미가야도 감옥에 갇히기까지(왕상 22:26~28) 하였다.
왕상 13: 1, 2 -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 여로보암이 단 곁에서 분향할 때에 단을 가리켜 장차 요시야라 이름하는 왕이 나타나며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을 제사하며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는 일을 있겠다고 예언할 때에, 이 일이 그로부터 300년 후에 정확히 성취되었다(왕하 23:16). 또한 이사야 선지자 역시 고레스 왕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사 44:28, 사 45:1~3).
대하 15: 1 - 하나님의 신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여 아사와 유다와 베냐민 무리를 향하여 여호와와 함께 할 것을 명한다. 저들이 여호와를 만날 때에 주요 배경은 강력한 하나님의 신의 역할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예언을 받고 말을 전하게 되는 것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말한 것이다(벧후 1: 2). 감동하심을 받아란 말은 ‘페로’(φέρω)로, 인도함에 의하여 움직인다의 뜻이다.
단 10: 2~6 - 다니엘을 3 주간의 금식을 이행한 후에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계시를 받게 된다.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게 될 때에도 주의 날에 성경에 감동을 받아 전수 받게 된다(계 1:10~16). 이와 같이 하나님께로 계시를 전해 받는 자들의 상태가 저들이 받은 바 계시들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저들의 정신과 지성이 최고조에 달할 때에 받는 것이며, 그것은 온전한 것으로 백성에게 전달되어야만 하였다.
⑶ 계시를 받을 때에 나타나는 것으로 위에서와 같은 직접적인 계시가 아닌 것으로 꿈, 환상, 현현의 범주가 있다.
꿈 - 민 12: 4에는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꿈과 이상으로 알리리란 말 중에서 야곱이 굼에 사닥다리를 본다(창 28:12).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난 사례로는 이 외에도 왕상 3: 5에 기브온에서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며, 욥도 꿈으로 놀랜다고 표현하였으며(욥 7:14), 다니엘도 밤에 이상으로 은밀한 것이 나타났으며(단 2:19), 꿈을 꾸고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을 언급한다(단 4: 5).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뿐만이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하여 꿈을 주었다(창 20: 3 ; 창 41; 7 ; 마 27:19, 마 2: 2 등)
현현(顯現) - 하나님이 직접 나타난 사례이다. 이는 다니엘에게와 그의 동료 삼 인이 풀무불에 던져 넣어 있을 때에 나타났다(단 6:22, 3:25). 아브라함과 여호수아, 기드온, 마노아도 하나님이 직접 나타난 경우이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는 경우는 저들과의 인격적인 접촉을 갖게 함이다.
환상(幻想) - 아브라함이 이상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접한다(창 15: 1). 나단(대상 17:15), 에스겔(겔 1: 1; 8: 3), 다니엘(단 8: 1)이 보았던 것들 모두가 환상이다. 이곳의 환상은 신약 시대에도 계속 아나니아(행 9:10), 베드로(행 10: 3, 17, 19), 바울(행 16: 9)에 이어져 왔다. 신약 시대는 구약 시대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는 현현과 꿈보다는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실 일을 나타내셨다.
⑷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그 것을 먹는 행위와 관련시킴
겔 3: 1~ 3 - 주는 것을 기록한 내용을 먹어 배에 넣고 창자에 채우라는 표현이 실린다.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상징하는 용어이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청각의 현상에서 다시 미각으로 옮겨지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먹을 때에 기분이 어떠하였을까에 대해서는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의 맛이 달고 입에 꿀보다도 더하다 라는 표현을 실렸다. 예레미야는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을 때에 자신에게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이었다고 하였다. 이곳에서는 단지 맛에 대한 감각을 기술하고자 함이 아닌 진리의 상태를 표현함이다. 에스겔 선지가 이러한 경험을 가질 때에도 여호와께서 일으켜 세운 상태에서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듣게 하셨다. 하나님의 이상이 임할 때에는 선지자에게 특별한 행위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인다.
⑸ 하나님의 신의 역사로 들어 옮김.
겔 3: 14 - 주의 신이 선지자를 들어 올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이 때에 선지자는 여호와의 권능으로 감동을 입게 된다. 이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문자적인 방식으로 선지자의 육신을 높이 들어올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선지자 자신이 이상 가운데 자신의 행보가 이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할 것으로 본다.
겔 8: 1~4 -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자신을 들어 올려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 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여호와께서 손 같은 것으로 머리털 한 모숨을 잡아 천지 사이로 올리고 있다. 이상의 경우도 정상적인 행위로는 볼 수가 없다. 이는 하나님의 신이 강하게 역사할 때에 일어나는 광경을 목도함이다.
겔 11: 1 - 여호와의 신이 선지자를 여호와의 전 동문 곧 동향한 문에 이르러 백성의 방백인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랴다를 본다. 에스겔은 자신의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여 보고 있다. 그가 이상에 접하여 예언을 하던 중 블라댜가 죽어 슬픔을 발하고, 다시 여호와의 신이 선지자를 들어 하나님의 신의 이상 중에 데리고 가며, 그가 보던 이상이 자신을 떠나가고 만다. 이에 대한 묘사는 선지자에게 발생한 하나의 체험이다. 에스겔 선지는 내성적이며 매우 신중한 자였다. 이는 에스겔 자신의 몸이 바벨론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먼 곳에서의 일들에 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강력한 신의 역사를 받고 있음을 연상하게 한다.
사 1: 1 - 이사야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본 이상의 내용을 기술하고 있으며, 사 6장에서는 자신이 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습을 기술한다. 이 때에 이사야는 자신의 입술이 부정한 자로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여호와이신 왕을 본 일로 망하게 되었다고 한탄한다. 선지자는 이상에 접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화를 발하고 있다. 선지자가 경험한 일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것으로, 우리들로써는 그 이상이 어떠한 모습인지 말로 나타내거나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분야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선지자들의 활동 시기
⑴ 선지자의 효시는 모세이다(신 34:10).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도 여선지자로 구분된다. 모세가 활동한 시기에 광야에서의 70인의 장로들(민 11:25)과 엘닷과 메닷(민 11:26)이 예언을 한 것으로 언급되나 저들을 선지자라 부르기는 어렵다.
⑵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기 위하여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운 아브라함. 아브라함을 구체적으로 선지자라 부른 구절은 없으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상을 받으며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며 하나님의 일을 이룬 자였다.
⑶ 사사 시대의 선지자 - 드보라(삿 4: 4), 야살의 책이란 문구에서 야살이 언급되고 있다(삼하 1:14, 수 10:13). 사무엘은 선지자 학교를 창설한 자이며 사무엘 당시에 선지자로 일컬어지던 자들이 있음을 나타낸다(삼상 9: 9). 예언자로 불리던 선지자들이 한 사람만이 아니고 직업적으로 종사하던 자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드보라는 여성이다.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도 선지자의 반렬에 포함된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성에 구별을 두지 않고 필요에 따라 여성도 동등한 직위에서 선지자로 사용하신 것이다. 통일 왕국 시대에도 훌다란 여선지자의 활약이 있었으며, 바울 당시에도 예언하던 여인들이 언급된다(빌립의 네 딸 행 21: 9). 예수님 탄생 당시에 안나가 있었다. 여인이 선지가가 된 역사는 이후에 하나님께서 여선지자를 세워 당신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신 사실을 강하게 믿게 하는 배경을 선사한다.
⑷ 예언서를 기록한 예언자들 이전의 선지자들
다윗 시대 - 나단(삼하 7: 2 ; 12:25), 갓(삼하 24:11), 사독(삼하 15:27), 헤만(대상 25: 5).
여로보암 시대 - 하나님의 사람이란 불리운 자(왕상 13: 1~10), 벧엘의 늙은 선지자(왕상 13:11~32)
르호보암 시대 - 스마야(대하 11: 2~4 ; 12: 5~15), 잇도(대하 9:29 ; 13:22)
아사 시대 - 아사랴(대하 15: 1~ 8), 하나니(대하 16: 7)
바사 시대 - 예후(왕상 16: 1~12)
여호사밧 시대 - 야하시엘(대하 20:14), 엘리에셀(대하 20:37)
아합 시대 - 엘리야(왕상 17~19장), 엘리사(왕상 19:19~21), 한 선지자(왕상 29:13~28), 미가야(왕상 22: 8~28)
요아스 시대 - 스가랴(대하 24:20)
아마샤 시대 - 한 선지자(대하 25:15)
이상에서 선지자들이 20여명이 열거되고 있다. 저들은 왕국이 성립된 때로부터 여로보암 2세 때까지의 약 250년 기간에 활동하던 자들이다. 실은 이들보다도 더 많은 수의 선지자들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예로는 벧엘이나 여리고, 길갈에서 살면서 선지자 학교에서 훈련받던 상당수의 예언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엘리야가 요단 강에서 승천할 때에 엘리사와 함께 그 광경을 목도한 젊은 예언자들 50인과 100여명의 예언자들이 길갈에 살고 있었다. 이 외에도 벧엘에서의 한 늙은 선지자라는 표현과 요아스 당시 대제사장이 죽자, 당시의 방백들을 책망하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보내셨다는 기록(대하 24:19) 등으로 볼 때에 상당수의 예언자들이 존재하였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한 시대에 많은 선지자 내지는 예언자들이 있게 된 배경에는 제사장이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보조 요원으로 하나님의 일을 분담해온 것으로 보인다.
⑸ 예언서를 기록한 예언자들 - 선지자 가운데는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가 있으며 성경에 이름이 언급되어 활동이 기록된 선지자로 구분된다. 조금 더 나아가면 성경이 이름만 기입되고 활동에 대해서는 미미한 자들이 있으며, 또한 성경에는 기록이 안 되었으나 그가 기록한 책에 대한 언급이 있다. 책 이외에도 글과 예언이라는 말로 수식어가 된 경우들이 있다. 성경절 참조로는 책이란 표현으로는 야살의 책(수 10:13, 삼하 1:18), 잇도의 책(대하 12:15, 9:25)이 있으며, 글이란 표현으로는 나단 선지자의 글(대상 29:29), 선견자 갓의 글(대상 29:29)이 있고, 예언이란 문구로는 선지자 오뎃의 예언(대하15: 8), 아히야의 예언(대하 9:29),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글(대하 20:34)이 있다. 성경에 기록이 안 되고 책에만 기록된 이유는 그의 내용과 기별들이 당시에만 해당되고 이후의 역사에는 그다지 보전할 가치가 없어 하나님께서 사장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 가운데에도 많은 분량을 기록한 자가 있는가 하면 작은 분량의 내용을 기록한 자들이 있다. 기별의 내용이 많고 적음에 따른 가치 편중이 크고 작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시의 죄악의 내용에 따라 많은 기별을 더하시고 작게 한 것으로 사려된다. 작은 내용은 작은 대로 긴요한 부분을 언급한 것으로 전혀 무시하거나 소홀하게 취급된 것이 아니다. 참고할 것으로는 예언서가 기록된 선지자 시대에도 성경을 기록하지 않은 자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던 나름대로의 선지자도 상당수 등장하고 있다(왕하 21:10 ; 렘 7:25 ; 11: 7 참고). 우선 시대별로 정리하면,
a 9세기의 예언자 - 오바댜와 요엘이 있다.
오바댜 : 여호람 시대에 살았던 자로, 매우 혼란한 시기에 그는 남쪽 에돔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교만으로 인하여 멸망을 예고하였다.
요엘 : 여호야댜의 지도 하에 어린 나이 7살에 왕위에 오른 요시아 시대에 활동하였다.
b 8세기의 예언자 -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요나가 있다.
아모스 ; 여로보암 2세와 웃시야 시대에 활동하였다. 그의 사역은 웃사야가 전권을 잡았던 기원전 767년과 여로보암이 죽던 해인 기원전 753년 사이이다.
호세아 : 유다의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와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의 기간이다. 그의 활동 기간은 히스기야가 유다의 전권을 행사하던 때인 기원전 715년까지이다.
이사야 :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시대까지 대략 60년의 장기간 동안 유다를 상대로 예언 활동을 하였다.
미가 :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하였다. 이사야와 거의 동시대에 예언 활동을 하였다.
요나 : 니느웨에 대하여 예언을 하였다. 그가 예언한 시기는 여로보암 2세 때의 기간으로 8세기 전반의 일이다.
c 7세기의 예언자 - 나훔, 예레미야, 스바냐, 하박국이 있다.
나훔 : 애굽의 터베와 니느웨가 멸망할 때의 기간 사이로 본다. 니느웨의 멸망이 기원전 612년경이므로 기원전 630년쯤에 활동하였을 것으로 본다.
예레미아 : 요시아 왕 13년에 사역 활동을 한 것으로 되어 있어 이는 기원전 627년이 된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에도 애굽으로 백성들과 함께 내려가 그곳에서 예언 활동을 하다가 예루살렘이 함락한 것을 보았다. 따라서 그가 활동한 시기는 기원전 580년까지로 그의 사역 기간은 대략 47년이 된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왕 당시에 사역을 하였다.
스바댜 : 요시야가 다스리던 시기에 사역을 하였다(습 1: 1). 요시야가 이방 제단을 멸하던 때가 기원전 621년이므로 621년 이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박국 : 하박국은 바벨론 침공을 예언하고 있으므로 바벨론으로부터 함락을 당하기 전으로 본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예루살렘 일차 공격이 기원전 605년이므로 그 해 이전인 요시야가 통치가 끝나던 때로 본다.
d 포로기 중의 예언자 - 다니엘과 에스겔이 있다.
다니엘 : 다니엘은 바벨론에 그의 친구인 동료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가 왕실 교육을 받고 곧 바로 왕궁에서 일을 하다가 다니엘 2장에서 이상을 받아 왕의 꿈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이상을 받으며, 성경을 기록하며 그의 봉사는 고레스 3년까지 지속된다. 그가 바벨론과 메대와 파샤에서의 도합 봉사 기간이 약 70년에 이른다.
에스겔 : 백성과 함께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그곳에서 살았다. 여호와김 왕 때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가 된지 27년이 되는 기원전 571년까지 활동한 것으로 본다.
e 포로기 이후의 예언자 -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있다.
학개 : 다리오 왕 2년에 극히 짧은 기간 동안만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대하여 계시를 발하였다(학 1: 1). 다리오 왕 2년은 기원전 520년이다.
스가랴 : 학개와 동일한 시기에 성전 재건에 대한 용기를 백성들에게 주입시켰다. 스가랴는 학개에 비하여 좀더 길게 봉사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전 재건은 매우 중대한 역사이므로 이 때에 두 사람의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파송하셨다.
말라기 :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기 어려우나 바사의 총독이 다스리던 시기였으며(말 1: 8), 성전에서 종교적 의식들이 거행되고 있던 때이므로 이미 성전이 재건되었던 때로 본다(말 1: 7~10 ; 3: 8). 그가 열거한 백성들의 죄가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지적한 내용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대략 에스라와 느헤미야 이후에 활동한 것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말라기를 구약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보내어진 마지막 선지자 겸 예언자로 본다.
f 신약 시대의 선지자
시므온과 안나 : 시므온 아기 예수를 할례 의식을 집전하기 위하여 데려왔을 때에 그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자신의 눈이 주의 구원을 보며 그가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 또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발하였다. 그는 예수의 부모에게 축복하고, 모친에게는 장차 이 아이가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보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겠다는 슬픔상을 고한다. 시므온에 대해서 직접적인 선지자란 말을 없으나 안나와 함께 연계한 구절 속에서 그가 선지자인 것을 보여준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며 기도하며 금식하다가 아기 예수를 발견하고 이가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대상임을 전한다(눅 2:25~36).
빌립의 네 딸 : 전도자 빌립의 딸로 예언하던 자라고만 언급된다(행 21: 9)
유다와 실라 : 사도 바울과 함께 사역에 종사한 자로서 안디옥에서 무리들을 모아 놓고 권면하여 굳게 하고 평안이 가라는 전송의 말을 듣고 있다(행 15:32).
사가랴와 침례 요한 : 사가랴는 침례 요한의 부친이 된다. 그의 부인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잉태하여 요한을 낳게 될 때에 하나님의 감동을 입어 과거부터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입으로부터 전하여진 바 된 높으신 이의 선지자가 될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다(눅 1:68~79). 침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없다고 하시고 주께서 그가 저들이 보고자 하는 선지자보다 나은 자로 내가 사자를 네 앞에 보내어 네 길을 예비할 자라고 한다(마 11: 9~11).
아가보와 무명의 선지자들 : 안디옥에서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란 호칭을 듣게 되던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천하에 큰 흉년이 들 것을 예언하고 다시 바울이 계속 선교 여행을 강행하여 두로에서 수로로, 수로에서 다시 돌레마이에 이르고, 다시 가아샤에 이르렀을 때에 바울의 신변에 위험이 따를 것을 권하고 예루살렘을 가지 말 것을 종용한다. 따라서 이곳에서 선지자인 아가보가 언급이 되고 또한 주위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선지자들이 함께 거론된다(행 11:27, 28 ; 21:10 13: 1).
바나바, 사울 : 저들은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로 언급된 자 가운데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행 13에 소개된 위의 삼인 외에도 루기오, 마나엔이 추가되고 있으나 누가 선지자인지 교사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바나바는 초대 교회사에서 두드러진 인물로 바울의 최대의 협력자이었다. 사울이야 말로 누구와도 필적한 만한 이가 없는 신약 시대의 선교의 주도적 인물로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위하여 세움을 입은 종이다.
Ⅱ. 선지자의 활동상과 인품면
1장에서는 선지자에 대한 일반적인 것들을 취급한 것이라면, 2장에서는 보다 더 선지자들의 활약상과 저들의 인품면을 다루어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끼친 영향과 믿는 이들로 본 받아야 할 내용들을 다루기로 한다. 저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실현함에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이루었던 자들로, 우리 인간은 스스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믿는 일에 한계에 부딪힘으로 저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저들의 교훈을 따름으로 신앙의 안정을 도모하여야 하며,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상을 성취하는 일에 앞장서야 하겠기에 저희들의 실상을 방기할 수 없어 지면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나마 간략하게 다루고자 한다. 너무 광범위한 기간 안에 많은 선지자들을 다 다룰 수는 없는 일로, 대표적인 인물들로 등장한 인물들을 시대적으로 다루고 또한 저들의 활약상과 인품들을 대략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1 모세 이후에 출현한 인물로 우선 모세와 동시대의 인물인 미리암과 사사 시대에 등장한 드보라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예언자 한 분을 먼저 다룬다.
(a) 미리암
활약상 - 미리암은 모세의 누이로, 출애굽 때에 선두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며 여인들을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여 선지자의 반렬에 두고 있다(출 15:20)
인물상 - 하나님께서는 미리암이 중요한 인물임을 그녀가 죽을 때 백성들에게 기억할 것을 명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모세, 아론, 미리암 삼 인을 함께 언급하면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 보낸 자로 언급한다. 한 때 미리암이 자신의 동생인 모세가 전 부인인 십보라가 죽어 다시 구스인인 그두라를 부인으로 맞았을 때에 시기심이 발동하고, 아론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는 모세하고만 말씀하였느냐고 하며 자신도 모세와 같은 위치에 놓으려던 인간적 욕망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불쾌한 감정으로 그녀에게 문둥병을 발생케 하였으나 아론이 모세에게 간청하여 그녀의 병에서 회복케 한 사실을 보아 그녀가 매우 중요한 요직과 지도적 인물로 부상된 면을 보여준다. 미리암이 비록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지만 그녀의 죄악에 대한 징벌이란 의미도 있겠으나 일시적 교훈을 주기 위한 면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리암이 여인인 입장에서 동생의 부인이 죽어 자신이 그를 보필하다가 자신과 동족이 아닌 여인을 부인으로 맞아 자신의 역할이 감소한 탓과 또한 줏대 없는 아론이 쉽게 동조한 데서 일이 쉽게 발생된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아무리 지도자의 선지자의 위치에 있었던 인물이라도 인간적인 연약함이 있음을 보게 된다.
(b) 드보라
활약상 - 여인으로 사사의 직책을 감당하였다. 가나안인들이 이스라엘을 압제할 때에 바락으로 하여금 원수들에 대항하도록 하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재판 받기 위하여 그녀에게로 나아갔다. 그녀의 일은 백성들이 불화가 있을 때에 저들에게 충고와 지혜 및 법적인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삿 4:4~10). 그녀가 선지자이면서 사사의 기능을 성경에 기술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먼저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나중에 사사로서 백성들을 지도한 입장에 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인물상 - 여호와께서 바락에게 가나안인들을 상대로 싸울 것을 명하신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바, 그녀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말할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을 지녔다(삿 4: 6). 또한 저들의 군사적 힘은 가나안인들과 비교할 수 조차 없는 열세에 있었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믿었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삿 4; 3, 삿 5: 3, 13). 따라서 그녀의 삶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삶으로 하나님을 높였다. 그녀는 이스라엘을 돌보는 어미로 기술한다. 당시에 이스라엘의 형편은 가나안인들을 피하여 산지에 살았고 군사들은 아무런 무기도 없는 극한적인 열세 속에서 백성들을 어미의 입장에서 도닥거리고 동정하는 태도를 보였다(사 6: 7). 이스라엘의 어미가 됨은 그녀의 탁월한 지도력과 능력이 있음을 보인다. 그녀에게는 상당하는 능력과 지도력의 은사를 주심으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가나안인들과 대항하기 위하여 싸울 것을 도우려 기꺼이 찾아오고 있었다(삿 5:14~18). 그녀는 또한 탁월한 문학적 재능이 있는 자로 ‘히브리 시 중에서 최고의 걸작’이며 ‘지금까지 쓰여진 최고의 승리의 노래 중 하나’ 라고 할 노래를 남겼다(삿 5장). 그녀는 백성을 위하여는 자신을 기꺼이 헌신한 자였다. 바락을 상대로 한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이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마다하고 함께 하는 아량의 정신을 발휘하고 있다(삿 4; 8).
(c) 사사기 속에 언급된 익명의 선지자
활약상 - 그는 이스라엘이 미디안인들로부터 가장 치욕적인 침략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미디안인들은 유랑민들로 이스라엘이 수확기를 맞으면 어김없이 급습하여 모든 곡물을 빼앗아 가 급기야는 곡물을 숨기기 위하여 산 위에 구멍과 굴과 산성을 만들면서 살았던 시기였다(삿 6: 2). 하나님의 백성이 이러한 곤경을 당하는 이유는 저희들의 죄악 때문이다. 이럴 때에 하나님은 백성들의 생활 태도를 바로 잡아야 할 필요를 가지셨다. 그는 즉각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전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에서부터 이끌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아모리 사람의 신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인물상 - 그는 백성들의 죄악적 상태에 대해서는 책망을 전하지 않으나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임하였을 때에 하나님이 저들에게 베푼 역사 인식을 새롭게 회상으로 저들이 바알 숭배에 빠져 있는 그릇된 잔재를 말끔히 청산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본격적인 우상 타파의 개혁은 기브온이 행할 일로, 하나님께서 기브온을 사자로 임명하기 위하여 길을 예비한 역할을 감당한 그였다. 우상에 열심한 사람들이 우상을 없앤 기브온을 잡아죽이려는 음모를 지녔던 오브라 지역의 사람들의 행패를 볼 때에 저희의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은 대담한 용기를 지닌 자의 행위였다.
2 사무엘
사무엘은 선지자와 선견자로 불리운 자이다(삼상 3:20, 대하 35:18 ; 삼상 9:11, 18, 19 ; 대상 9:22 ; 26:28 ; 28:29). 사무엘의 등장 시기는 사사 시대가 거의 끝날 무렵에 등장되었다. 당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가나안 주변의 각종 우상들을 섬기던 때로 죄로 물들던 때였다. 죄악은 급기야 성소까지 침입하여 제사장 엘리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드리기 위하여 가지고 온 동물의 고기를 부당하게 취하고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범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았다(삼상 2:12~17 ; 삼상 2:22). 이 당시에 이스라엘은 블레셋으로부터 40년간 압제를 받아 완전히 파멸 상태로 치달렸다. 언약궤는 적에게 빼앗긴 바 되고, 제사장 엘리는 전쟁에 대한 참패의 소식을 듣고 목이 부러져 죽는 비극이 생겨나게 되었다. 힘을 상실한 이스라엘은 주위의 동맹국들과 관계를 맺어 블레셋을 대항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의 양어깨에 무거운 중책을 맡기게 하셨다.
(a) 사무엘의 사역
하나님의 언약궤를 적지에서부터 옮겨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게 된 다음에 백성들을 미스바로 불러모아 경건의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삼상 7: 5~10).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을 하였으며, 그가 하였던 일들은 성막을 실로에서 놉으로 옮겼다. 그가 행한 일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하나님께서 부여한 일을 잘 이행하도록 48개의 성읍을 순회하면서 개인적 접촉을 하였다. 따라서 저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며, 바알을 숭배하는 그릇된 일들을 제거하도록 하고, 이방 족속들과의 동맹에 참여하는 일을 배제하도록 하였다(신 33:10 ; 삼상 7: 3, 4). 사무엘이 행한 일은 그가 사사로서 백성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을 행하였고, 죽은 엘리를 대신하여 비느하스의 아들인 아히둡을 대제사장으로 세우는 일을 하였다. 그는 또한 예언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전달하는 기능을 부지런히 이행하였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후에 선지자의 무리를 거느리고 저들을 양육한 제자들을 위한 학교를 시작한 장본인이다. 홀로 책임을 완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고향인 라마의 나욧에서 제자들을 양육하였다. 이러한 제자들을 위한 훈련 학교는 엘리사 시대로 명맥이 이어진다. 예언자를 위한 학교의 설립은 시대적 특수 상황에 처하여진 상황에서 발생한 일인 바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의 학교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b) 인물상
사무엘은 모친 한나가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인하여 잉태함을 얻어 나은 연고로 일찍부터 하나님께 서원하여 대제사장 엘리에게 맡겨 양육되었다. 그는 대제사장의 보호 밑에서 희생 제도에 대한 교훈에 접하여 율법에 정통하면서 하나님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일찍부터 섭렵한 바 되었다. 대제사장 엘리는 그의 자녀들이 불량하여 잘못되어 감으로 어린 사무엘에게 특별한 총애를 보냈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성막 주위에 머물면서 각가지 일들을 행한 것으로 보인다(삼상 2:18 ; 3: 1). 사무엘은 세마포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있으면서 성전 봉사의 일을 익힌 것이다. 어린 사무엘은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였으며 약관의 나이인 12세(요셉푸스에 의한 기록임)에 여호와로부터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계기를 만난다.(삼상 3: 4) 그가 처음에는 엘리가 부르는 것으로 착각하였으나 세 번의 동일한 음성을 들을 때에는 하나님의 음성인 줄을 알고 여호와여, 말씀하시면 주의 종이 듣겠다는 말로 순종심을 나타낸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나타난 사실을 확신하고 여호와께서 자신을 선지자로 세움을 알은 자이다(삼상 3:20). 그가 성숙하여 이스라엘의 패역으로 인하여 어려움에 직면되어 있을 때에 백성들을 위하여 경건의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전달받은 기별을 증거하기 위하여 각 곳으로 다니는 활동을 한 이면에는 부지런함과 탁월한 설득력과 웅변의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본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으며 그의 대관식에도 참여하였다(삼상 11:14, 15). 사무엘은 나중에 사울에게서 성령이 떠남으로 인하여 장차 왕의 자리에서 폐위의 선언을 들려주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럴 때에라도 사울은 사무엘에게만은 함부로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사무엘이 죽은 후에도 오히려 엔돌의 신 접힌 여인을 통하여 사무엘을 찾게 된다. 사무엘이가 지닌 능력으로 상대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사무엘이은 하나님의 사사로서 또는 선지자로서의 직무를 수행함에 따른 지도력을 지닌 자이며, 순종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라도 잘못한 일에 대하여는 직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전하는 기별을 증거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를 원하지 않고 주변으로부터 보아온 힘있는 국가의 힘의 원천인 왕의 제도를 보면서 왕을 세우라는 요청에, 사무엘은 내심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바를 따라 용납하는 가슴 아픔을 경험하여야 하였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릴 때에는 그 기별을 전하면서도 슬퍼하는 마음을 가졌었다(삼상 15:35), 사울은 연달아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면서 사무엘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사실 이러한 일에는 용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사사로 등장할 시절서부터 백성들의 사기를 추수리고 부흥의 운동을 꾀한 후에는 적으로부터 아무런 침략을 받지 않았다. 사무엘을 20년 이상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동안 인내심을 발휘하였고, 열심히 비난과 반대에 봉착할 때에도 중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대사를 이루어 나간 인물이다. 그의 행적 중 자식들을 잘 선도하지 못하여 불행한 기록을 남기는 불미스러움도 있었다. 엘리의 아들의 결함을 보면서도 자신의 자식들을 잘 다스리는 못한 데에는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하겠다.
3 왕국 시대의 예언자들
특별히 이 시기는 사사 시대에서 사울이 왕권 제도를 설립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많은 어려움을 야기시킨 때였다. 이 장에서는 다윗과 솔로몬과 여로보암의 시대에 이어서 르호보암과 아비암과 아사와 여호사밧과 바아사 시대와, 아합 시대의 엘리야와, 아핮과 요아스와 아마샤 시대와 여호람 시대로부터 요아스 시대까지의 엘리사편을 다루기로 한다.
A 다윗과 솔로몬과 여로보암 시대
사울은 하나님의 영이 떠난 자가 됨으로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자가 되어 다윗을 증오하며 살해하려는 음모를 지니고 추적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블레셋의 침략을 받아 끝내는 전장에서 죽음을 당한다. 사울은 하나님의 제사에 관련된 종교적 임무의 수행자인 아히멜렉을 다윗과 모종의 밀약을 맺은 것으로 간주하여 제사장 85인을 죽이는 일을 하였다(삼상 22:17~19). 다윗은 왕국이 분렬된 상태에서 백성들을 연합시켜 새로운 왕국을 설립하였다. 한 동안 사울이 죽은 후에 과도기적 시간이 있었으나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동안 다스린 후에 북쪽 지파들의 요구에 따라 왕의 요청을 수락한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영토를 계속 확장시켜 나갔다. 그가 한 때 불륜의 간음죄와 살인을 저지름으로 크나 큰 불행을 자초하였다. 죄는 죄를 불러온다는 원리에 따라 그의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왕권 도전을 받아 피하여 다니는 각고를 갖기도 하였다. 다윗은 이러한 형편 중에서도 종교적 지도자들과는 좋은 유대 관계를 맺어 갓과 나단 같은 선지자의 보필을 받으며 제사장들의 중앙 성소의 봉사를 위한 개혁을 착수하였다. 그가 행한 일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솔로몬은 다윗의 부인인 밧세바로부터 낳은 아들로 왕위를 계승하여 일생을 각가지 만족을 취하여 살았던 자이다. 그는 전투에 한번도 참여하여 본 일이 없이 국방을 튼튼히 하는 데에 주력하였던 바 평화의 사람이었다(왕상 9:17~19). 솔로몬의 생애의 말년에는 이방인의 여인을 부인으로 맞아 하나님으로부터 싫어함을 여김을 받는 각종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음을 지녀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하고 부친으로부터 물러 받은 대부분의 영토를 읽게 된다. 그가 한 때는 경건한 삶을 살아 하나님과 대화의 관계를 갖고 성전 봉헌 때에 아름다운 기도와 훌륭한 설교를 행하였던 자였으나 그의 생애의 말년에는 예언자 아히야로부터 솔로몬의 신하인 여로보암으로부터 왕국이 분렬되리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되어 점차로 자신의 왕국을 이루어나가게 된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솔로몬이 아들인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방탕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 신하들로부터의 조언을 받아 실정을 하는 바람에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하고 대신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한 데에서 기인된다. 여로보암은 북왕국의 백성들을 위하여 따로 예배 처소를 만드는 누를 범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금송아지의 우상을 만들고 임의로 일반인인 백성 중에 제사장을 세웠다(대하 11:13, 14). 이러한 비행들의 연고로 인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하고 주위의 나라들로부터 침략을 받아 영토를 상실당하며 자주 정변이 일어나 왕들이 암살당하고 마는 일련의 불행한 일들이 발생되었다. 이 때에 등장하였던 선지자들로는 갓, 나단, 사독, 헤만, 아히야, 이름을 밝히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과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거론된다.
(1) 갓
(a) 사역 활동
갓은 다윗이 사울로부터 피난해 있을 때에 처음으로 등장한다(삼상 22: 2). 갓은 다윗의 선견자로 불리운다(대상 21: 9). 따라서 그의 임무는 왕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해 주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갓이 다윗에게 처음 말씀을 전한 것으로는 사울로부터 피하여 자신의 부모가 유다를 떠나 모압으로 이동하여 있을 때에, 다윗이 있던 요새에서 피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전하였다. 갓이 다윗에게 두 번째 나타나 하나님의 기별을 전한 것은, 다윗의 인구조사로 인한 죄과로 인하여 세 가지 재앙 중에 하나를 택하도록 제안을 받았을 때 3일 간의 역병으로 인하여 7만 명의 인구가 죽은 발생되었다. 세 번째 사역은 히스기야 왕이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의 명한 대로 레위 사람을 여호와의 전에 둔 것이다. 갓은 나단과 함께 다윗의 명한 바를 조력하여 돕는 일을 추진하였다(대하 29:25).
(b) 인물상
왕의 선견자로 왕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특별한 신분의 영적인 사람이며, 왕인 다윗을 상대로 듣기에 별로 좋지 않는 내용 전달에 대하여 존경심을 갖고 대하던 인물이다. 다윗이 모압에 피신하여 있을 때에 유다로 돌아가라는 말이라든가 자신이 범한 죄악에 대하여 재앙을 가져온 일을 택하라는 지시는 참으로 전하기 어려운 제안이며 받아 수용하기에 거북한 것들이나, 그는 주저하지 않고 용감하게 전하였으며 왕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달게 받아들였다. 또한 그는 왕의 정사에도 참여하여 조력한 중요한 인물이며 다윗의 행실을 기록한 문학적 재능을 소유한 자였다.
(2) 나단
(a) 사역활동
나단이 다윗의 선지자로 등장하여 행한 일은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성전을 짓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을 때에 그러한 계획을 추진하대 집의 완성은 아들에 의해서 완성될 것이라고 전하였다. 두 번째의 만남은 다윗이 밧세바와의 동침으로 인하여 임신하여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살해하는 비정한 일을 저질렀을 때에 그의 잘못을 탄핵하고, 이에 대한 징벌로 아들이 죽을 것이며, 집안에 끊임없는 문제가 발생할 것을 전하였다. 또한 다윗의 넷째 아들인 아도니야의 배역에 대하여 그의 음모를 저지시키기 위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솔로몬에게 대관식을 갖도록 주선하였다. 나단은 갓과 같이 레위인들을 조직함에 다윗에게 충고하는 일을 하였으며 다윗의 행적에 대하여 기록하는 일을 하였다.
(b) 인물상
왕인 다윗을 상대로 전한 기별들은 매우 중대한 것들로 하나님의 지시를 전달하는 중요한 신분의 사람이며, 그는 왕이 듣기에 매우 언잖은 기별들에 대하여 멸시지 않고 존경심을 대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기별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모두 그러하였듯이 용기가 있는 자였다. 그는 또한 왕의 아들의 반역에 대하여 상황 대처를 신속히 하여 왕을 도운 기지를 발휘한 자였으며, 왕을 보필하여 각별한 충성심을 보였다. 그는 또한 뛰어난 판단력을 가지고 레위인의 직책에 대하여 가르치고 조직하는 일로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일을 하였으며, 갓과 같이 다윗과 솔로몬의 행적에 대하여 기술한 문학적 재능의 소유자로 왕을 위하여 갓보다 더 오랫동안 돕는 일을 수행하였다.
(3) 사독과 헤만
(a) 사독 -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후의 선지자로 사독은 대제사장의 신분을 지닌 자였다. 다윗 왕은 사독에게 삼하 15:27에 그가 선견자로서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고 있다. 다윗은 사독이 자신에게 무엇인가 행할 일을 구하고 있다. 사독은 대제사장의 신분으로서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시를 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선견자의 역할을 대행한 것으로 보인다.
(b) 헤만 - 헤만은 악기를 연주하던 자로 선견자의 역할을 담당한 것은 예외적인 일로 보인다. 아마 그의 활동에 대한 언급을 별로 언급된 바가 없으나 제사 의식이 거행될 때에 악기 연주를 통하여 영감을 통하여 전달된 무슨 일이 있음을 상기하게 한다.
(4) 아히야
(a)사역활동
아히야는 실로 사람으로 솔로몬 통치 때에 여로보암과 처음 접촉한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성 안에서 계획한 일을 수행하는 책임자로 봉사하던 자로 있던 때에 아히야는 그에게 입고 있는 새 옷을 12 조각으로 찢으면서 솔로몬으로부터 나라를 빼앗아 10 지파를 얻게 되겠다는 말을 전하여 듣는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백성들이 시돈인들과 모압인들과 암손 자손의 신을 숭배하는 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서 돌아선 연유이다. 12 조각 중에서 2 조각은 남겨진 상태로 다윗의 왕가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여로보암은 말기 때에 아히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리라는 기별을 받는다. 이 때에 여로보암은 자신의 아들 아비야의 병으로 인하여 근심을 가지며 자신의 아내를 아히야에게 보내어 아들의 병세가 회복될 것인지에 대하여 묻는다. 아히야의 아내는 변장을 하고 나타났으나 아히야는 사전에 알아보고 그녀를 여로보암의 처라고 부른다(왕상 14: 6). 이 때에 아히야는 그녀에게 여로보암이 왕 위에 올라 잘못한 행악에 대하여 언급하며, 그 일에 대한 결과로 재앙을 선고하며, 그 아이가 죽으리라고 고하며,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계통을 파하고 새 왕을 일으켜 세울 것을 예언한다. 아히야는 솔로몬의 행적에 관하여도 기록하였다(대하 9:20).
(b) 인물상
아히야는 두 번이나 하나님의 기별을 여로보암에게 전하였다. 처음에는 왕위를 얻게 되리라는 기별을 전하였고, 나중에는 왕위를 폐하게 되리라는 기별로 하나님만이 믿을 수 있는 자에게 전하는 기별로 하나님과의 치밀한 관계를 지닌 자이다. 그는 변장하여 자신을 찾아온 여로보암의 처를 대번에 알아보는 계시의 은사를 받은 자이다. 그가 전한 기별의 내용면으로 볼 때에 솔로몬으로 신변의 위협을 받을 기별이지만 용기를 지닌 자였다. 여로보암이 장차 왕위를 잃게 될 예언도 매우 불길한 것들이나 기별을 듣는 당사자로부터 그대로 받아들이고 신변의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여로보암으로부터도 존경을 받은 자이다. 그는 또 솔로몬의 행적을 기록한 문학적 재능을 지닌 자였다.
(5) 하나님의 사람
(a) 사역활동
왕상 13:1~24에 한번 언급되는 무명의 사람으로 유다로부터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거짓 제단으로 보냄을 받았다. 그는 여로보암 면전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기를 단을 상대로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며,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하며,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고 한다. 왕은 위에 말에 분노하여 저를 잡으라고 외치나 여로보암의 손이 말라서 거두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의 예조대로 단이 갈라지고 재가 단에서 쏟아졌다. 여로보암은 다시 저에게 내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으로 성하게 하도록 기도하기를 요청하매 나음을 얻게 된다. 이런 일로 인하여 왕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음식을 함께 할 것을 권하나 그 일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치 않은 바의 일로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일 후에 벧엘의 한 늙은 선지가가 그를 추적하여 발견하고, 자신도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그와 함께 떡을 먹고 물을 마시도록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거짓을 말하여 젊은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벧엘로 돌아가므로 늙은 선지자로부터 그가 뜻을 돌이킨 일에 대하여 책망하고 그가 죽으리라고 예언하매 그가 길에서 사자를 만나 죽음을 당하였다.
(b) 인물상
그가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기별을 증거하면서 초인간적인 기적을 재현시키는 일을 하였던 자였으나 어느 한 순간에 선지자라 칭하는 이로부터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일을 택하여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고 마는 비운의 생애를 마감하였다. 한 때는 믿음을 발휘하여 믿음의 진가를 높였으나 어느 한 순간에는 유혹이라는 것에 그만 인간의 나약한 기질로 실패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지 않고 형벌로 다스린다. 그는 여로보암을 상대로 그가 행한 우상 숭배에 대하여 단을 향하여 기별을 선포하는 담대함을 가진 자였다.
(6) 벧엘의 한 늙은 선지자
(a) 사역 활동
이름이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그가 행한 일이란 고작 하나님의 사람인 젊은이의 출현에 자신의 아들을 시켜 저를 추적하여 발견하여 자신의 집에 가자고 설득하여 함께 식사하고 그를 벧엘로 가게 하여 죽음에 처하게 하는 일을 하였던 것이다. 그는 젊은이가 길에서 사자에게 죽음을 당한 시체를 나귀에 얹고 돌아와 자신의 묘에 안장시키는 일을 하였다.
(b) 인물상
하나님의 사람인 젊은이를 죽게 한 행동에 대해서는 패역한 일이나 젊은이의 죽음에 대한 예고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신 기별이었다. 그가 비록 죽음에 처하긴 하였으나 그에 대한 지극한 동정을 가졌다. 자신이 행위로 인하여 죽은 자에 대한 깊은 애도가 포함되어 있는 바 그는 인간미를 지닌 사람으로 볼 수 있으며, 내심으로는 자신도 감히 선포하지 못한 벧엘의 단이 파괴될 것에 대한 젊은이의 용감한 행위에 대하여 저를 만나고 싶은 존경심을 지녔던 것이다. 이곳의 늙은 선지자는 아마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소 야비한 행동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불찰로 인하여 젊은이의 죽음을 초래한 일로 인하여 자신의 묘에 안장하여 주고 자신도 그곳에 죽게 하여 달라는 유언을 남김으로 사는 날 동안 수치와 후회스러움을 안고 살은 것으로 보인다.
B 르호보암, 아비얌, 아사, 여호사밧, 바아사 시대
위의 시대적 특징은 분열된 두 왕국의 면을 지닌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라 백성들의 요구를 무시하여 지파들은 나뉘어지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맞는 일이 발생된다. 르호보암은 17년 동안 왕권에 있으면서 산당을 짓고, 아세라 상을 세우며, 남창을 두는 일을 하였었다(왕상 14:23, 24). 르호보암은 여로보암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리면서 애굽 왕 시삭으로부터도 참패를 맛보아야 했다. 아비야는 르호보암의 아들로 3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아비의 죄를 계속 범하고 여로보암과 대치하여 스마라임산, 에브라임 근처에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 남부의 종교적 중심지인 벧엘을 점령하고 또 여사나와 에브론을 점령하였다(대하 13: 3~19). 그러나 곧 바로 바아사의 침략으로 인하여 곤경에 처하였다.
아사는 41년간을 다스리면서 유다의 선한 왕으로 종교적 개혁을 꾀한 왕이었다. 남창과 우상을 제거하며 그의 모친이 아세라 여신에게 우상을 만들자 그를 폐위시켰다. 그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북 이스라엘의 에브라임, 므낫세, 시므온 지파를 초청하였다. 아사 왕은 구스인 세라가 이끄는 애굽과의 교전하여 승리를 쟁취하기도 하였고,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도 전쟁을 하여 경제적 실리를 취하려고도 하였다. 아사 왕은 한 때는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편으로 도움을 받았으나 후자에서는 다메섹의 벤하닷 1세에게 도움을 구하므로 선지자 하나니로부터 문책을 당하기도 하였다. 바아사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24년 동안 다스렸다. 유다와 계속 분쟁을 가졌으며, 그는 여로보암과 나답의 행위를 본받아 악을 저지르고 그의 불성실한 행위로 인하여 예언자 예후로부터 여로보암의 집과 동일한 운명에 처하는 파멸을 선고받았다(왕상 16: 1~7).
여호사밧은 아사의 아들로 25년간 왕위에 있었다. 그는 바알 신당과 산당들을 제거하였으며 레위인들에게 율법책을 가르치도록 특별한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여호사밧은 모압과 암몬과 에돔의 연합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에 투철한 믿음으로 금식과 기도로 승리하였으며 율법 집행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였었다. 이처럼 여호사밧의 선정이 있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아합과 아햐시야와 더불어 동맹을 갖는 바람에 종교적 손실을 자초하기도 하였다. 여호사밧은 라못 길르앗에서 벤하닷과의 교전에서 아합을 도우려다가 거의 죽을 뻔하였고, 아하시야와 더불어 아카바만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다가 출항 전에 모두 파괴당하였고, 여호람과 합세하여 모압을 공격하다가 죽을 뻔 하는 고비를 가졌다(왕상 22:48, 49 ; 대하 20:35~37). 이 시대에 활약한 선지자로는,
(1) 잇도
(a) 사역 활동
성경에 단지 3번 언급된다(대하 9:29 ; 12:15 ; 13:22). 그는 여로보암과 솔로몬과 르보호암의 행적에 관하여 기록하고 또한 아비얌의 행위와 말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그는 왕들의 행위를 주목하여 보면서 책을 기술하였다. 그는 성경에서 선지자와 선견자로 불리워지고 있다. 그는 여로보암에 대하여 묵시를 기록할 정도로 여호와께로부터 계시를 직접 접하고 그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였다. 그는 솔로몬 때로부터 르호보암과 아비얌에 이른 근 20년간 봉사를 하였다.
(b) 인물상
그는 20여 년 간 중단 없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한 자이며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에 대하여 기록한 지식을 겸비한 자였다. 그는 매우 활동적인 사람으로 왕들의 행위를 알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과의 교통을 한 사람으로 보이며, 그는 또한 문학적인 재능을 갖고 아비얌의 사적과 행위와 말에 대한 주석을 집필한 자이다.
(2) 스마야
(a) 사역활동
잇도와 동시대의 인물로 그에 관한 기록은 르호보암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언급된다. 르호보암이 유다와 베냐민지파로부터 18만 명의 군사를 모집할 때에 스마야는 왕의 행위를 중단시킨다. 그 결과 북왕조인 이스라엘이 설립되었다. 다시 르보보암 5년에는 애굽 왕 시삭이 이스라엘을 병합시키기 위하여 침략하였을 대에 예루살렘에 지도자를 모집하는 일에 그는 왕을 상대로 하나님께서 저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다는 기별을 전한다. 이 때에 르보보암과 그의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행위를 의롭다고 하매 하나님은 스마야를 통하여 저들의 겸비함을 보고 저들을 멸하지 않고 대강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으로 예루살렘에 쏟지 않겠다고 한다. 이 때에 시삭은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와 여호와의 전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몰수히 빼앗아 갔다. 예루살렘은 파멸로부터는 다소 구원받은 것으로 보인다. 잇도가 선견자라면 스마야는 선지자로 하나님께서 보낸 기별을 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그는 문서를 기록하는 일도 하였다(대하 12:15).
(b) 인물상
그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서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서의 내전의 중단을 왕에게 요구하였으며 또한 그는 유다에 심한 심판을 유보시키고, 애굽 왕 시삭으로부터의 침략에 유다의 성읍들을 보호하는 기별을 전하였다. 르호보암이 북 왕국을 공격하려는 사업에 착수할 때에 계획을 취소케 하는 일에는 반대가 있을 법한 일이지만 왕과 그의 일행들은 저를 존경하여 기별에 순응하였다. 시삭이 쳐들어 왔을 때에도 르호보암은 책망의 기별에 존경심을 가지며 순종하여 심판의 유보를 가져왔다. 스마야 역시 용기 있는 자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별을 왕에게 증거하였으며 여늬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문학적인 재능을 갖고 기록하는 일도 하였다.
(3) 아사랴
(a) 사역 활동
아사랴의 기록은 대하 15: 1~ 8에 한번 언급된다. 1절에는 하나님의 신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라고 언급되어 있으나 8절에는 대신 선지자 오뎃이 말을 아사랴가 듣고 전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다소 해석이 모호하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나 일반적으로 아사랴는 오뎃의 아들로 선지자 역할을 감당하여 기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때는 애굽 왕 시삭의 침략이 있은 지 30년 후에 구스인 세라의 침략으로 인하여 그는 아사 왕에게 그간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은 일로 인하여 환난을 받음을 상기시키고 하나님을 신뢰하여 저로부터 상급을 받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b) 인물상
아사랴은 일회에 걸쳐 하나님의 기별을 아사 왕에게 전하는 일을 행한 자이다. 그가 전문적인 선지자의 역할을 수행한 자는 아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들려온 기별을 지체 없이 고한 용기 있는 자로 하나님의 기별을 즉각 전한 순종심의 사람이며 아사 왕은 그의 기별을 경청하여 그에게 존경심을 나타내어 그가 명한 바를 즉각 시행에 옮겼다(대하 15: 8).
(4) 하나니
(a) 사역활동
하나니는 아사 왕 시대에 활동한 자로 예후의 아버지로 언급된다. 아사 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로부터 경제적인 압박을 당할 때에 다메섹에 사람을 보내어 도음을 요청하여 군대가 철수하게 되자 왕은 자만하여 자신을 칭찬하여 주기를 기대하던 차에 책망을 아사 왕에게 고하여 그가 이방 왕에게 도움을 요청한 일로 인하여 장차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는 대하 16: 9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할 강력한 기별을 보낸다.
(b) 인물상
하나니는 성경에 3번 선견자로 언급이 되고 있다(대하 16: 7, 10 ; 19: 2).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별을 즉각적으로 전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을 것이고, 아사 왕에게는 자신을 자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제시한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며, 왕에게 책망을 고한 일로 인하여 더러운 곳인 감옥에 갇히는 불운을 당하여야 하였다. 특별히 그가 중요한 인물을 제시함에는 예후가 하나니의 아들이라는 점을 네 번이나 반복하여 실리고 있음에 알 수 있다.
(5) 예후
(a) 사역활동
예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유다 왕 여호사밧과 접촉하였다. 그는 특히 아버지에 이어 아들로 이어지는 선지자의 가계를 이어받은 유일한 자이다. 그는 바아사 말기에 사역하여 여호사밧이 다스렸던 25년 기간에 사역을 감당한 자로서 왕상 16: 3에 바아사에게 파멸을 선고하고, 다시 대하 19: 2에서는 여호사밧 왕이 아합 왕과 동맹을 맺어 길르앗에서 다메섹의 아랍인들과 싸운 일에 대하여 책망을 가한다. 하나니는 선견자로 불리움에 반하여 아들인 예후는 선지자로 일컬어졌다.
(b) 인물상
그는 두 번이나 왕 앞에서 파멸과 잘못한 일에 대하여 책망을 가하는 일을 행한 매우 용감한 선지자상을 지닌 인물이며, 문학적 재능을 갖고 여호사밧의 행적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6) 야하시엘
(a) 사역활동
야하시엘은 여호사밧이 모압, 암몬, 에돔의 동맹국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백성들 앞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저들로 인하여 두려움을 갖지 말고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리며, 항오를 이루고 여호와께서 구원하시는 장면을 보라는 격려의 말을 전하며, 레위인들을 세워 여호와께 감사하는 찬송을 발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여호사밧은 전쟁에 큰 힘을 드리지 않고 쉽게 승리하여 전리품을 모으는 일을 하였다(대하 20:15~17). 그가 행한 역사는 위의 기사 하나 뿐이며, 그가 선지자라는 말은 없으나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예언을 발한 면에서 선지자로 본다.
(b) 인물상
왕과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구원하는 모습을 바라보도록 고무시킨 영의 사람이며 탁월한 말의 재능을 가진 자로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 자이다.
(7) 옐리에셀
(a) 사역활동
여호사밧 통치 기간 중에 활동한 자로 성경에 한번 언급된다. 여호사밧이 바다에서의 전투를 위하여 아합 왕의 장남 아하시야와 결탁하여 배를 건조하려던 때에 여호사밧에게 아하시야와 교제하는 일로 인하여 배를 파하겠다는 전달을 보낸다. 따라서 배를 지어서 통상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대하 20:37).
(b) 인물상
왕이 엄청난 물자와 인력을 공급한 일에 대하여 중지를 선언하며, 왕이 불의한 자와 동맹을 맺은 일에 대하여 날카롭게 잘못을 추궁하며 하나님의 징벌을 선고한 용기 있는 자였다.
C 아합시대의 엘리야
엘리야가 선지자 역할을 하던 시기는 아합 왕 시대로 가장 암울한 때였다. 아합의 부친 오므리는 북 이스라엘에서 강력한 군주였다. 그러나 그가 잘못한 일은 며느리를 베니게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 동맹을 가짐으로써 이교의 종교를 가지고 들어와 순수한 이스라엘의 종교를 무산시키고자 악랄한 일을 방임한 것이다. 아들인 아합은 힘있는 왕으로 그가 재위하고 있는 동안 상아궁을 만들며 내성과 외성을 건축하는 일을 하였다(왕상 22:39). 엘리야는 간사한 이세벨의 영향과 아합의 잘못된 치세 동안에 이스라엘의 역사 중에서 가장 악한 때에 등장한 괄목할만한 선지자였다.
(a) 사역활동
엘리야는 선지자 중에서 특별한 신분의 사람이다. 그는 성경 중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하늘로 승천한 인물이다. 엘리야의 승천은 엘리사가 보는 중에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랐다(왕하 2:11). 그리했던 엘리야는 예수께서 그의 사랑하는 삼 인의 제자와 함께 변화산에서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자이며, 말라기 선지에 의하여 다시 보낼 엘리야로 등장하고 있다. 엘리야의 행위들을 열거하면,
⑴ 기근에 대한 예언 - 엘리야는 아합을 상대로 자신이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여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않겠다고 한다(왕상 17:1). 이 때는 이세벨의 거짓 종교로 인한 악이 만연한 탓이다.
⑵ 그릿 시내가로 피함 - 기근이 임하므로 엘리야 자신은 은둔할 수 있는 은신처와 동굴이 있는 곳인 계곡으로 형성된 강에서 숨어 지냈다. 아합이 엘리야를 추적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시돈과 두로 사이에 있는 사르밧으로 옮겨 그곳에서 한 과부의 집에서 유숙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하여 그 여인의 핍절한 양식과 기름을 공급하였으며, 훗날 과부의 아들이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에 다시 살리는 기적을 베풀었다(왕상 17:17~19).
⑶ 갈멜산에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과 대결을 가짐
3년 반 동안의 기근이 끝나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보내어 아합의 궁내 대신 오바댜를 만나 자신이 이곳에 있음을 아합에게 알리게 한 다음, 엘리야는 아합을 만난 자리에서 바알을 섬기는 450명의 예언자들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400명의 아세라 예언자들을 갈멜산으로 불러모아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한바탕 대결을 벌린다. 당시에 바알은 폭풍과 비의 신이었으므로 3년 반이나 비가 없었음은 저들의 신이 거짓임이 판명된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당시에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자들을 모두 불러모아 저들에게 진정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대결 방식으로는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이 자신의 신을 불러 제단 위에 벌려 놓은 제물에 불이 임하면 되는 것이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정오까지 계속하여 부르짖으며 자신들의 몸에 피를 내면서까지 발광하였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엘리야는 그 후에 여호와의 작은 제단 위에 올라 각 지파를 상징하는 12 돌을 취하고, 제단 주위에 도랑을 파서 12 항아리의 물을 부어 제단을 완전히 적시어 불을 인위적으로 붙일 수가 없게 하였다. 그 후에 엘리야는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과 저희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분임을 기도하여 불의 응답을 받아 백성들로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임을 알게 하였다(왕상 18:36, 37 ; 18:39). 이 때에 엘리야는 백성들을 시켜 거짓 선지자 모두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모두를 죽였다. 이 일로 인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켰으며, 그 날 저녁 엘리야는 비가 내리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러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간다. 한참 기도한 후 사환에게 비가 오는가 알아보게 한 다음, 일곱 기도한 후에 비가 옴에 대한 소식을 듣고 아합에게 비가 옴으로 기손 골짜기가 범람함에 대한 우려로 고하도록 하고, 자신도 급히 아합 앞으로 달려간다.
⑷ 이세벨의 위협에 직면함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 정황을 보고 받은 뒤에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기로 작정을 한다. 이세벨은 자신의 사람들을 모두 죽인 것에 대한 분풀이로 신의 이름을 빌려 엘리야를 죽이려 함에, 엘리야는 사환을 브엘세바에 머무르게 하고 로뎀 나무로 가서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취하여 사도록 나약한 기도를 드린다(왕상 19: 4).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먹을 떡과 물을 공급하여 원기를 차리게 하여 주고 천사의 도움으로 기력을 회복하여 호렙산에 당도하게 된다.
⑸ 호렙산에서 세미한 음성을 들음
자신의 비겁하고 연약함으로 동굴로 도망 나온 엘리야를 상대로, 하나님은 그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물으신다. 그리고 나서 동굴 밖에서 가시적인 교훈으로 강한 바람을 일으켜서 산 위의 돌들을 산산조각으로 부서뜨리며, 지진을 일으켜서 온 산을 뒤흔들고, 엘리야가 서 있는 곳에서 강력한 불을 붙이셨다. 이러한 일련의 기적들이 있은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시어 하나님 자신을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위력으로만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조용한 중에서도 당신의 하실 일을 나타내는 분이심을 의기소침하여 피하여 도망 온 엘리야를 상대로 정신적 재무장을 갖추게 한다.
⑹ 엘리사를 부름
엘리사는 요단 강 계곡에 위치한 아벨므흘라에 살았던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자신을 부르는 엘리야의 초청에 부리던 소를 중지하고, 엘리야에게 자신의 부모에게 정중하게 작별 인사를 드리도록 요청하여 허락을 받고, 엘리사는 돌아가 소를 잡아 연회를 베풀고 부모와 친구를 작별하고 엘리야를 따라 나선 제자의 삶을 살았다(왕상 19:19~21).
⑺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한 아합의 행위를 책망함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갖기를 요청하였으나 나봇이 거절하매 이에 대한 형편을 들은 이세벨이 연회를 베풀어 나봇이 왕에게 불경한 죄를 범하였다고 거짓 증거하게 하여 성밖으로 끌어가서 돌에 맞아 죽게 하는 비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나서 포도원을 강제로 빼앗은 아합을 상대로 자신의 집이 멸망당할 것을 고한다(왕상 21:22). 아울러 이세벨에게도 죽을 것을 고한다(왕상 21:23). 이 때에 아합은 회개하여 당대에는 화를 면하나 그의 아들 때에 심판이 임한다(왕하 9:14~10:11).
⑻ 아하시야를 책망함
아합의 장남이며 후계자인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매 그가 회복을 위하여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사자를 보낸 일에 대하여 죽음을 선고한다. 아하시야는 자신에게 기별을 보낸 자가 엘리야임을 확인하기 위하여 50인의 사람들을 보내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게 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려 모두를 사르게 하였다. 두 번이나 반복된 일을 행하다가 세 번째 보낸 50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겸손하게 요청한 덕분에 생명을 구하고, 왕을 만난 자리에서 왕이 행한 처사가 잘못된 일임을 고하여 그로 인하여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하매 아하시야는 2년을 다스리지 못하고 죽었다(왕아 1: 1~17).
⑼ 엘리야의 승천
엘리야가 하늘로 올리움을 받을 때에 엘리사에게 자신을 따르지 말 것을 권유하였으나 엘리사는 계속 그럴 수 없다 하여 길갈, 벧엘, 여리고까지 따라 나섰다. 엘리야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제자들을 만나 이별의 순간을 가질 때에 저들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는 엘리사는 끝까지 동행하여 요단강까지 따라 나섰다. 엘리야가 자신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칠 때에 물이 갈라지게 된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자신이 하나님께로 떠나게 될 때에 자신에게 물을 것이 있음을 알고 저에게 무엇을 구하느냐는 물음에, 엘리야가 지녔던 갑절의 성령을 구한다. 자신은 그것을 처음에는 줄 수 없다고 거절하였으나 자신이 떠나감을 하나님이 허락하면 그 일이 있을 것임을 알린다. 이 일 후에 엘리야는 떠나고,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을 취하여 자신의 몸에 걸치고 요단강에서 그 겉옷으로 물을 치니 물이 갈라지게 되며, 자신에게도 동일한 성령이 임함을 알게 되어 엘리사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왕하 2: 1~14).
(b) 인물상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으로 기도로 이루어질 일이 무엇인지를 안 자이었다. 땅에 3년 반 동안이나 기근이 임하게 하고, 다시 비를 구하여 응답을 받았으며, 갈멜산에서 바알신을 숭배하던 무리들과 이세벨을 추종하던 자들을 불로 대결하여 하나님의 위용을 발휘하였었다. 그는 이 땅 위에 기근이 임하는 원리가 백성들의 죄인 것을 알았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로 강력한 인상을 보였다. 특히 그는 많은 기적을 발휘하였다. 기적의 행사가 선지자들의 전유물은 아니었으나 엘리야만은 기적을 대행하여 개인들의 어려운 고충을 구해주며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하였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쓰시는 도구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는 인간적 연약함을 지니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낙망에 처하여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와 주셔서 먹을 것을 주시며, 그에게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심으로써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를 마음에 간직하도록 하여 그의 임기 말년에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우고, 하늘로 승천하는 불멸의 영광을 입은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엘리야의 행위 중에서 돋보이는 것은 그가 믿음의 사람인 점이다. 기근이 내릴 것에 대하여 기도하는 행위라든가 또한 아합 왕에게 나아가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않겠다고 공언한 행위는 다 믿음의 행위이다. 다시 비를 구한 이도 그의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음에 처하여 있을 때에 죽은 자가 살 수 있다는 신념을 행동으로 나타낸 일은 엘리야가 살아온 시기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그는 마음에 바라오던 일을 실제로 이루어낸 인물이다. 갈멜산에서의 하나님의 불의 응답을 받아낸 것은 실로 큰 믿음의 행위였다. 그 날 이후에 다시 비 오기를 구하고 아합 왕에게 나아가 비가 올 기미도 안 보이는데 비의 소리를 전한 자였다(왕상 18:41). 그가 비가 올 것을 기대하면서도 비가 단 번에 온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7번이나 기도하여 비가 오는 일을 이루게 한 열렬한 그의 믿음이 돋보인다.
엘리야의 인물됨에 있어서 그는 믿음에 이어 용기를 지진 자이다. 아합 왕에게 나아가 기근을 전한 일이며 그가 이세벨의 충동으로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한 일에 대하여 악한 행위를 비난하는 일은 보통 사람으로는 행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는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 왕에게도 불순한 동기로 하나님을 찾지 아니한 일에 대해서도 책망하고 죽음을 선고하였다. 누군가가 들으려고 하지 않을 때에 들어서 기분 나쁘고 자신에게 해가 될 일을 할 수 없는 일을 행함에는 실로 용기가 따를 일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모든 일에는 솔선수범하여 따르는 순종심을 보였다. 아합 왕에게로 가라고 하였을 때 그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랐으며, 사르밧 과부에게도 보냄을 받았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응하였다. 엘리야는 기진맥진하여 죽기를 바라며 낙망하여 있을 때에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그의 분부를 따라 이스라엘로 돌아가 하나님을 섬기며 남은 사역을 마치는 순종심을 나타냈다.
엘리야가 믿음의 사람으로 용기 있는 행동을 발휘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대사를 이룰 수 있는 일에는 무엇보다 기별을 듣는 사람으로부터 존경심을 얻어 함부로 그를 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합 왕도 갈멜산의 450인의 거짓 예언자들도 엘리야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하였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도 그의 전하는 기별을 듣고도 그를 맞이하고 그의 기별의 진상을 알아내기 위하여 세 차례에 걸쳐 사자들을 파송한 일도 엘리야에게 보여준 존경심의 발로였다(왕하 1: 1~16).
이상 나타난 좋은 행실의 면모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는 실로 우리들과 같은 성정을 지닌 자로 인간적인 연약함도 지녔다. 간교한 이세벨로부터 위협을 받은 그는 그 동안에 발휘하였던 용기와 믿음은 저 멀리 하고 자신의 목숨 하나만을 위하여 줄행랑치다가 급기야는 죽기를 갈망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하여도 역경을 만나면 인간적인 나약함을 갖게 마련이다. 무슨 일에 성공이 따른 다음에는 실패나 낙망이 있을 때에 대비하는 여유가 필요한 것인데 엘리야는 이 면에 대비하지 못하여 낙망하여 소망을 잃고 죽기를 바란 것은 결단코 엘리야다운 행동은 못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실수와 허물을 다 덮고 불멸의 영광으로 하늘로 승천함을 입은 주인공이 되게 하여 우리 모두에게 살아서 구원받을 수 있는 모범자가 되게 하신 것이다.
D 아합, 요아스, 아마샤 시대
아합 왕 당시에 활동한 선지자로 엘리야 이외의 세 명에 대한 선지자와 요아스와 아마샤가 유다를 다스리던 때에 등장하는 두 명의 선지자가 등장한다. 요아스와 아마샤 당시에는 이미 성경을 기록한 예언자인 오바댜와 요엘이 등장하고 있었으나 이 중에서 다룰 두 명의 선지자는 요아스 통치의 말기와 아마샤 시대에 활동하였다. 시대적 상황으로는 다메섹의 아람인들이 바아사 시대에 이스라엘을 침략한 후에 아합 시대의 말기까지 침략을 일삼았다. 벤하닷이 두 번에 걸쳐 이스라엘을 침공하였다. 벤하닷은 32명의 동맹국 왕들과 함께 아합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공격하여 아합의 아내들과 자녀들과 그가 지닌 보물들을 요구하였으나 아합은 저들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쉽게 굴복하고 재차 벤하닷의 부하들이 이스라엘을 쳐서 저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갈 것을 허락할 때에 저들의 요구를 묵살하였다. 이 때에 아합이 저들의 위협을 불사하여 물리치게 된 배경에는 선지자의 활동이 있었다. 다음 해에 벤하닷이 다시 군사를 몰고 공격하였을 때에 다시 선지자의 조력으로 저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 때에 아합 왕은 적장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낼 상황이었는데 쉽게 풀어줌으로 선지자의 마음을 슬프게 하였다. 당시에는 앗시리아의 왕인 살만에셀 3세의 위협에서 자발적인 안정을 위하여 벤하닷을 풀어준 것이다. 이후에 아합은 벤하닷과 라못 길르앗에서 참전하다가 미가야의 예언대로 죽고 만다. 유다 왕 여호사밧과 함께 연합하여 싸우다가 죽을 뻔한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위의 시기에 비하여 20년 후인 기원전 835년에 요아스가 일곱 살에 왕위에 오른다. 요아스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섭정으로 나라를 다스려나가면서 종교적 개혁을 단행하여 모세의 율법과 직분들이 제정되고 하나님께 대한 실질적인 예배가 드려지게 된다.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모든 것들이 순탄스러웠으나 그가 죽은 후에는 왕도 마음이 변하여 바알 숭배에 젖게 된다. 이러한 요아스의 행위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은 거두워진 바 되어 아람의 왕인 하사엘과 전투에서 패배를 맛보고,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왕자를 포함하여 포로로 잡혀간다. 요아스는 하사엘에게 많은 공물을 바침으로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멸을 맞음에서 가까스로 면하게 되었다(왕하 12:17,18). 그 후에 요아스는 반역자들의 손에 의하여 자신의 심복과 함께 암살당하고 만다(왕하 12:19~21).
아사랴은 요아스의 후계자로 자신의 부친을 살해한 자들을 처벌하고, 두 개의 큰 전쟁을 치루었다. 첫 번째는 남쪽 에돔과의 전쟁이었다. 그는 에돔을 점령하기 위하여 은 100 달란트를 지불하고 이스라엘의 용병을 고용하기도 하였으나 이에 대하여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군사들을 도로 물리었다. 왕은 자신의 군대로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저들의 신상을 갖고 와 하나님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두 번째 전쟁은 이스라엘의 여호야스와 전쟁을 벌린 무모한 행위였다. 아사랴는 먼저 번 전쟁에서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교만한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는 이 전쟁에서 참패하고, 성곽이 파괴당하며, 전리품과 포로들을 빼앗기는 불운을 당하고 자신도 그러한 처지로 몰락된다. 후에 아마샤는 라기스로 피하여 도망을 가나 그곳에서 불행한 죽음을 맞았다.
(1) 한 선지자
(a) 사역활동
이름이 언급됨이 없이 등장하는 이 선지자는 다메섹의 벤하닷이 아합에 의하여 패배를 당하였을 때에 기별을 아합에게 보낸 자이다. 당시에 아합의 군대는 매우 열약한 열세에 있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여 상대를 아합 왕에게 붙여 이를 이루실 자가 여호와 하나님인 줄을 알리라고 하며,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을 통하여 승리할 것을 알린다(왕상 2);13, 14). 이로 인하여 아합 왕이 출정하여 승리를 하게 되고, 예언자는 아합에게 군사력을 튼튼히 하라고 경계를 명하여 다음에 다시 공격을 할 것을 알린다. 이차에서 실패한 벤하닷이 자신의 모사들로부터 이스라엘의 신은 평지의 신이 아니고 산의 신이므로 평지에서 싸우면 승리하리라고 고무하여 재차 공격하였을 때에 아합은 이 때에도 예언자로부터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승리를 얻게 된다. 벤하닷으로부터는 자신의 부친이 잃었던 성읍을 도로 찾게 되고, 벤하닷의 요구인 아합 왕을 위하여 다메섹의 거리를 만들라는 청탁을 받아 서로 약조한다(왕상 20:34). 아합이 완악한 왕이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람 신을 믿는 벤하닷의 위세를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위대성을 보여주기 위함으로 승리를 주도하게 하셨다.
(b) 인물상
하나님께서는 이 예언자에게 하나님에 의하여 제시된 소망과 격려의 말을 통하여 악한 왕인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하실 일을 전한 인물이다. 아합 왕에게는 선지가 엘리야가 있었으나 책망의 기별이 아닌 고무적인 기별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다른 예언자를 사용함으로써 그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동일한 역사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능력을 지닌 자로 여겨진다.
(2) 선지자의 한 사람
(a) 사역활동
왕상 20:35~43에 언급된 자로, 아합 왕이 벤하닷을 상대로 굴욕을 가하지 않고 가벼운 조건을 제시하여 융화를 꾀한 일에 대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해를 입히도록 한다. 요청을 받은 자가 이를 거절하지 다른 이에게 그리 행할 것을 명하여 자신이 다침을 입고, 자신의 얼굴에 재를 뿌려 가장하여 왕이 지나는 길에서 대기하다가 왕을 만난다. 그는 왕에게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소임을 다하지 못한 타인의 행위에 대하여, 왕은 사람을 놓친 일에 대하여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답을 얻는다. 사실 이 일에 대한 얘기는 남의 얘기가 아니라 왕의 행위에 대하여 문책성의 발언이었다. 왕은 위의 책망의 말에 대하여 근심하였다(왕상 20:42).
(b) 인물상
위의 인물이 실상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엘리야의 문하생으로 그의 학교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던 생도로 보여진다. 그가 왕을 상대로 책망의 말을 직접 하지 않고 간접으로 우회하여 알린 일로 보아 용기 있는 사람이었으며, 비록 첫 번째 사람이 자신이 청한 일에 대하여 죽음을 당할 것을 전하였으나 이는 私心에서 따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전하였을 뿐이다(왕상 20:36). 저가 비록 왕 앞에서 가장하여 나타났으나 이는 그의 비겁함을 보임이 아니라 왕에게 풍유적인 말을 하기 위함이며, 자신을 직접 알아보면 교훈적 의미가 삭감됨을 알았을 것으로 보여진다. 가장을 풀게 되었을 때에 왕은 그의 신분이 누구임을 알아보게 된다.
(3) 미가야
(a) 사역활동
미가야는 아합 왕 시대의 선지자이다. 미가야는 벤하닷이 아합 왕에게 참패를 당하고 난 뒤 이스라엘을 재차 공격할 때에 등장한 선지자이다. 이 때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아합을 방문하였다.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아람인에 의해서 점령당한 라못 길르앗과 그 주변을 회복하기 위하여 공동 전략을 구상하자고 제안하여 여호사밧이 이에 동의한다. 여호사밧은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를 아합 왕의 거느린 400명의 예언자들로부터 그렇게 하도록 말하나 여호사밧은 저들을 일축하고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아 아합으로부터 미가야 선지자를 소개받는다. 아합은 미가야가 자신에게 좋은 것을 예언하지 않는 고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자, 여호사밧은 왕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며 그를 불러오게 한다. 미가야는 왕이 원하는 바의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로 아합은 그에게 내가 몇 번이나 너로 맹세케 하여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만 내게 고하겠느냐는 짜증나며 불유쾌한 불만을 늘어놓는다(왕상 2216). 미가야는 이에 대하여 즉각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진 비운에 처하게 될 형편을 아합에게 고한다(왕상 22:17). 아합은 이미 마음이 굳어져 전쟁에 참여할 의사를 갖고 있는 터이라, 선지자의 반대를 받으면서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로 아합을 꾀어 선지자의 입에 거짓 영을 불어넣어 왕에게 화를 선고한다. 이 때에 거짓 예언자인 시드기야가 마가야의 뺨을 때리면서 여호와의 영이 네게 말씀하더냐고 야지를 놓는다. 아합도 불쾌하게 생각하여 그를 옥에 가두도록 명한다. 미가야는 자신의 신변에 위험이 있을 것을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면서 이 일을 전한다고 담대하게 왕에게 진언하였다(왕상 22:28). 이 일로 인하여 아합과 여호사밧이 전쟁에 임하여 여호사밧은 죽음의 혼줄을 당하고, 아합 왕은 전사하게 된다(왕상 22:33~35).
(b) 인물상
하나님이 자신에게 전한 기별에 충실하기 위하여 왕으로부터 위협을 당함에 아랑곳하지 않은 용감한 인물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의 사람이면서도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거짓 영을 넣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이 이루어짐을 보았다. 미가야는 아합 왕에게 충정어린 말로 이스라엘이 목자 잃은 양과 같이 흩어질 운명 속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듣도록 간언한다. 왕이 비록 자신이 간하는 말을 반대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을 열어 말하는 바를 알도록 끝까지 충성하는 신하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미가야는 영감을 지닌 자로 왕에게 말할 때와 거짓 예언자인 시드갸의 공갈과 조롱 속에서도 직설적으로 답변하지 않고 여유 있게 문학적 시상을 갖고 느긋하게 답변하는 재능을 보인 인물이다(왕상 22:17, 25, 28).
(4) 스가랴
(a) 사역활동
스가랴는 유다의 왕인 요아스 통치 말기에 사역하였다. 요아스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선정을 베풀었으나 여호야다가 죽음으로 하나님을 떠나 거짓 신을 섬기는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선고를 듣게 된다. 스가랴는 대제사장 여호야댜의 아들로 백성 앞에 서서 왕과 방백들에게 여호와께서 전하는 말을 고한다(대하 24:20). 왕은 책망의 말을 발하는 스가랴를 돌로 쳐서 죽이는 일을 자행하여 스가랴의 아비인 여호야댜가 옹 자신에게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한 악행을 행한다. 스가랴는 죽을 때에 자신의 죽음을 감찰하고 신원하여 달라고 함에 따라 왕 자신도 그의 신복에 의하여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된다(대하 24:25). 스가랴의 행적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가 행한 일은 하나님의 영의 역사에 의하여 왕에게 고한 것이다.
(b) 인물상
스가랴는 왕이 불손한 방백들의 꼬임에 빠져 잘못된 길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부단히 뛰어들어 모든 백성들이 볼 수 있는 자리에서 책망의 말을 고하는 영적인 통찰력의 사람으로 용기를 갖고 대처하였다. 그가 기꺼이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이행할 때에 백성들로부터 왕의 명령에 따라 돌로 맞아 죽는 위험을 감수하여야만 하였다. 성전 뜰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한 선지자로 남게 되었으며, 예수께서는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를 언급하시면서 의인과 선지자를 핍박한 자들에 대한 앙갚음을 선언하신다(눅 11:49~51).
(5) 한 선지자
(a) 사역활동
이곳의 선지자는 아마샤가 에돔인과 싸우기 위하여 유다의 남쪽으로 내려갔을 때에 등장하고 있다. 이 때에 아마샤는 무력으로 에돔을 정복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용병을 고용하고자 할 때에 저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은 100 달란트의 비용을 지불하고서도 왕은 이 선지자의 말에 따라 순종하여 자신의 군대로써 에돔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만 명을 죽이고 만 명을 포로로 잡아왔다. 왕은 이곳에서 에돔인들의 우상을 가지고 와 경배하는 어리석은 짓을 행함으로 예언자의 질책을 받았다(대하 25:15). 왕이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질책하자 왕은 듣지 않음에 재차 하나님이 왕을 멸하기로 한 뜻을 전한다(대하 25:16).
(b) 인물상
왕이 행한 어리석은 행위를 전면에서 질책한 자이다. 왕이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라 찬사를 받아야 할 입장에서 하나님의 기별을 전한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며, 왕의 내심에 원하지 않을 일을 과감하게 행하도록 명한 용기 있는 자이다. 끝내 하나님이 보낸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음에 대하여 재차 경고를 전한 결코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다. 왕이 10만 명의 용병을 고용하여 막대한 재정을 소모한 일에 대하여 돌릴 것을 요청 받았을 때에 왕은 이렇다 할 반대를 하지 않고 순순히 응한 것으로 보아서 그에게 존경심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는 왕이 자신의 기별을 전함에 대하여 듣지 않음을 천명한 것으로 자신이 그로 인하여 당하게 될 어떠한 고난도 감당할 마음의 자세를 지녔다고 본다.
E 여호람시대부터 요아스까지의 엘리사
엘리사의 사역은 여호람의 통치 초기에 엘리야의 승천과 함께 시작된다. 성경에 엘리사에 관한 기사는 18 가지가 기록되었다. 이 중에 16 가지는 여호람 통치 기간에, 나머지 둘은 여호와하스의 통치 기간 중에 생겨났다. 여호람은 아합 왕의 둘째 아들로 아하시야에 이어서 왕이 된 자이다. 여호람은 그의 부친과 모친에 의하여 좋지 못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여호람의 통치 기간 중에 생겨난 일로는, 사해 동쪽에 위치한 모압과의 전쟁이 있다.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에 조공 드리기를 거부함에 따라 여호람은 경제적 부를 챙기기 위하여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모압을 공격하고자 했던 것이다. 여호람이 일시적으로 승리하였으나 저들의 바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여호람은 북쪽 다마섹의 아람인들과 고전하였다. 여호람은 아람인과의 교전에서 길르앗 라못에서 중상을 당한 후에 에후에 의하여 아하시야와 함께 죽임을 당한다. 예후는 무력에 의하여 28년간 장기간 왕권을 장악하여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폭정을 거듭하였다. 이 때에 다메섹의 새로운 왕 하사엘은 이스라엘의 모든 요단 강 건너편 지역을 점령하였다. 또한 앗시라에 의해서도 침략을 당하여 조공을 바치는 수모를 가져야 하였다.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를 물러 받아 17년간을 다스리다가 그의 아들 요아스가 왕위를 계승한다. 요아스 시대에 이스라엘이 엘리사의 조언을 받고 군사적으로 재기하는 계기를 맞게 된다. 요아스는 아람인들과 세 번에 걸친 싸움에서 승리하고 과거에 빼앗겼던 성읍들을 회복하게 된다(왕하 13:25).
(a). 엘리야의 사역 활동
엘리사는 비교적 부요한 가정에서 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엘리야를 만나 자신을 부르는 초청에 따라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특별히 엘리사는 엘리야의 사역과는 다소 구분이 된다. 엘리사는 자신의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었으며 이따금 왕을 만났다. 엘리야는 불같은 기질을 가진 자로, 때로는 절망의 순간을 갖기도 하였으나 엘리사는 조용하면서도 침착한 사람이며 엘리야와 같이 바알의 거짓 신을 숭상하는 자들과 대결을 하지 않았다. 엘리사는 궁핍한 자들을 돕는 일에 기여를 많이 하였다. 엘리사의 생애에 나타난 대부분의 성경의 기록들은 여호람의 통치 시대에 속하나 엘리사는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시대에 걸쳐 봉사하는 동안에 수많은 봉사를 이룬 것으로 추정되며 성경적 기록 기사는 그 중에 선정된 몇 가지의 것으로 추론된다. 이제 그가 이룬 기적들을 정리하면,
⑴ 엘리사는 엘리야가 승천할 때에 엘리야의 겉옷을 갖고 돌아와 요단 강에서 물을 칠 때에 물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구한 성령을 배로 받아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 때에 50명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엘리야의 영감이 그 위에 머무름을 알게 된다(왕하 2:13, 14).
⑵ 여리고의 물이 나쁨에 대하여 소금을 뿌려 수질을 좋게 하여 백성들의 불평을 잠재웠다(왕하 2:19~22).
⑶ 벧엘에서 젊은 아이들이 엘리사를 향하여 대머리라고 조롱한 일에 대하여, 저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여 수풀에서 곰이 나와 저들의 무리 42인을 죽이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되었다. 선지자에 대한 모독이 바로 하나님을 모독한 것으로 직결되어 혹독한 징벌을 받게 된 것이다(왕하 2:23, 24).
⑷ 여호람이 유다의 여호사밧과 동맹을 맺어 모압인들을 공격하려고 할 때에 물이 없음을 보고 왕들이 저를 찾아와 물을 구하매 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하여 거문고 타는 자들을 부르라고 명하고, 왕들에게 구덩이를 파면 물이 가득할 것을 고하여 저들이 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을 마실 수 있게 된다(왕하 3:1~27).
⑸ 예언자 학교에서 훈련받던 생도의 과부가 빚을 갚기 위하여 두 아이를 팔아야 할 처지에서 여인에게 빈 항아리를 빌어다가 그 안에 물을 부어 기름을 만들어 빚을 갚고 두 아들과 모친이 함께 살아갈 비용을 만들어 주었다(왕하 4:1~7).
⑹ 수넴에서 자신에게 방을 제공한 여인에게 장차 아이를 갖게 될 것을 예고하여 아들이 태어나자, 그 아들이 이듬해에 병이 들어 죽게 되어 여인이 다시 엘리사를 찾게 되었을 때에 그녀의 소원을 알고 아이 위에 엎드리어 살려내는 기적을 발하여 엘리사에게 큰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⑺ 기근으로 인하여 식물이 귀하게 되었을 때에, 길갈에서 음식을 장만하라는 선지자인 스승의 말에 따라 독 있는 음식을 국 속에 넣어 독이 퍼지자 가루를 솥에 넣어 독성을 사라지게 하여 국을 먹을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이 때에 바알살리사에서부터 보리떡 20개와 채소로 생도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였을 때에 식물의 양이 부족하여 사환이 염려를 발하자, 엘리사는 저들의 불평을 잠재우고 배불리 먹게 하여 마치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방불케 하였다(왕하 4:38~44).
⑻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이 걸렸을 때에 이스라엘로부터 포로로 잡아온 계집 종으로부터 엘리사에 대한 소개를 듣고 나아만은 벤하닷을 통하여 여호람에게 도움을 요청받게 되었을 때에 나아만에게 요단 강에 가서 몸을 7번 씻으라는 전갈을 보낸다. 나아만은 자신을 영접하러 나오지 아니하고 더러운 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는 말에 처음에는 분을 발하나 현명한 부하의 진언을 듣고 가서 몸을 씻어 치유함을 얻는다. 이 때에 나아만은 감사의 예물을 보냈으나 엘리사는 사양하였다. 이 때에 게하시가 재물에 욕심을 내어 그것을 주인 몰래 속여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는 일로 인하여 그가 종신토록 문둥병이 걸리게 되었다(왕하 5:1~27).
⑺ 예언자 학교를 증설하기 위하여 한 생도가 도끼를 빌려 가지고 와서 나무를 자르다가 그만 실수로 도끼자루를 물 속에 빠뜨리는 일이 발생되었다. 당시에 도끼는 매우 귀한 물건이라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때에, 저의 곤경에 처한 입장을 듣고 막대기로 건져 올려 주었다(왕하 6:1~7).
⑻ 다메섹의 벤하닷이 이스라엘의 여호람과 대전 중 번번히 패전을 당하매 내부의 배신자가 있어 사전 정보를 제공하는 까닭이라고 윈인 규명을 단행하였을 때에, 사실은 이스라엘에는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어 왕의 모든 계획은 안다는 보고를 듣게 된다. 따라서 엘리사는 여호람을 도와 전쟁에서의 승리를 주도하게 하였다. 얼마 후에 벤하닷은 다시 엘리사를 체포하기 위하여 도단에서 붙잡도록 군사를 보낸다. 상황이 매우 불리하여 위험에 처하여 있을 때에 엘리사는 사환에게 두려움을 제거하게 하고, 눈을 들어 하나님의 군대가 저들을 포위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한다. 엘리사는 이 때에 기도하여 저들의 눈을 멀게 하도록 기도하여 패전하게 하고, 저들이 사마리아로 돌아와서야 눈을 들어보게 된다. 여호람 왕이 적군을 어떻게 하려느냐는 물음에 저들을 먹여서 살려 보낼 것을 명한다. 이 일로 인하여 벤하닷은 다시는 이스라엘 땅을 넘나보지 못하게 된다(왕하 6:8~23).
⑼ 다메섹의 군대가 사마리아를 포위하여 성읍에 기근이 임하게 되었을 때에 사람까지 삶아 먹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여호람은 이런 일에 대하여 엘리사를 위협하였으나 엘리사는 다음날이면 기근이 사라지고 먹을 양식이 있을 것을 예언한다. 이런 일의 성취는 적군이 물러섬으로 실현하게 되는데, 이 때에 4명의 문둥이들이 어차피 죽을 목숨으로 아람 군대에 투항하여 목숨이나 연명하자는 기지를 발휘하여 적진으로 들어갈 때에 저들은 그곳에서 남겨 주고 도망간 식량과 전리품을 발견하여 이 사실을 저들만이 그대로 간직할 수 없어 성읍에 들어가 기쁜 소식을 전하여 백성들이 당면한 위기를 건져내게 된다. 이 때에 엘리사의 말을 비웃던 왕의 신하는 백성들에게 짓밟혀 죽음을 당케 된다(왕하 6:24~7:20).
⑽ 수넴 여인은 기근이 생겨나자, 엘리사에 의하여 블레셋으로 가서 7년간 머무르게 된다. 7년이 지난 후에 돌아와서 왕을 만나 자신의 재산을 되돌려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바로 이 때에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가 엘리사가 죽은 아들을 살린 모친에 대하여 말하고 있을 때에, 장본인인 여인과 맞다들여 왕은 여인의 간청을 들어주게 된다. 이 일을 주도할 수 있도록 사전에 말을 하여 준 역할을 엘리사가 하였다(왕하 8:1~6).
⑾ 엘리사는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이 벤하닷의 뒤를 이어 왕이 될 것을 예언한다. 당시 에 벤하닷은 병이 들어 자신의 신하를 보내어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인지를 묻게 한다. 엘리사는 병이 나을 것을 말하나 반드시 죽을 것을 말한다. 이 때에 엘리사는 하사엘을 바라보면서 울기 시작한다. 우는 이유를 물을 때에, 하사엘이 왕이 되어 장차 가져올 무서운 파멸로 인함이라고 설명한다. 이 후에 하사엘은 벤하닷을 질식시켜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왕아 8: 7~15).
⑿ 여호람의 군대 장관인 예후를 장차 왕이 되도록 자신의 생도 중 한 분을 보내어 기름 부음을 받게 한다. 이 일은 아합의 패륜과 오므리가(家)의 모든 집안을 파멸토록 한 예언의 일부였다(왕하 9:14~10:28).
⒀ 요아스가 엘리사를 만나러 왔을 때에 엘리사는 그에게 활과 살을 집으라고 하고, 자신의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왕에게 창문을 통하여 화살 하나를 쏘라고 명한다. 이 때에 엘리사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라고 말하고, 왕의 손에 들고 있는 화살로 땅을 칠 것을 명한다. 왕이 세 번을 치자, 엘리사는 실망하면서 왕은 오직 세 번만 원수들을 격퇴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왕이 만일 여러 번 땅을 쳤더라면 원수를 더 많이 격퇴할 수 있었을 일에 대한 아쉬움을 갖는다(왕하 13:14~19).
⒁ 엘리사가 살아서 베푼 이적들이 다양하였으나 마지막 이적은 그가 죽은 후에 생겨난 일이다. 장사지내는 자들이 장사를 지낼 때에 모압인들이 자신을 향하여 공격하여 오자. 저들을 두려워 떨면서 저들의 시신을 엘리사가 묻힌 곳으로 던질 때에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살아나서 일어나게 된다(왕하 13:20, 21).
(b) 인물상
엘리사는 다양한 이적을 이루어낸 인물로 하나님께서 크게 쓰신 선지자이셨다. 요단강이 갈라지며, 샘이 정결케 되고, 양식을 공급하며, 죽은 자를 살리며, 자신의 뼈에 시체가 닿아 살리는 놀라운 이적을 베푼 자로 살아서와 심지어는 죽어서조차 이적을 만들어낸 자는 없었다. 엘리사는 자신의 기별을 전함에 있어서 상대가 어떠한 분인지에 대한 구분이 없이 책망을 가하는 일을 하였다. 이러한 엘리사가 하나님의 계시를 구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기꺼이 응하여 주신 일들로 그는 하나님께서 존귀히 여김을 받는 영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와 사람들 편에서도 존경심의 대상이 되었다. 여러 왕들은 엘리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권위에 순종하였다. 엘리사는 누구보다도 동정심을 보인 자였다. 의지할 곳 없는 과부의 빚을 갚아 생활할 수 있도록 하여 주었으며, 아들을 잃은 수넴 여인의 간청에 응답하여 죽음에 살린 일이며, 독성 있는 물질로 인하여 위험에 처하여 있을 때에 독을 제거시킨 일이며, 기근 시에 생도들이 먹을 수 있는 떡과 채소를 준비하였으며, 물에 빠진 도끼를 건져내어 염려 중에 있는 자의 곤궁함을 해결시킨 일들이며, 적군을 포로로 삼지 않고 먹을 것을 주어 돌려보내게 하는 일련의 처사들을 타인에 대한 남다를 동정심의 소유자임을 보여준다. 그는 또한 부에 대하여는 무관심한 면을 보였다. 자신의 스승인 엘리야에서 구한 일은 성령의 갑절을 구하였으며, 나아만이 베푼 선물의 제시에 대해서도 순수하게 거절한 청빈의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직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용기를 가지고 대처한 자였다. 세 명의 왕들이 자신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였을 때에 명령한 일이며, 사마리아가 아람인들에게 포위가 되어 여호람이 자신을 비난한 일에 대해서도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벧엘에서 자신을 조롱한 젊은이들을 죽게 한 사건도 자신에게 닥쳐올 불행을 예견한 일이나 이에 대해서 굴하지 않았다. 엘리사는 엘라야하고는 다소 다른 극단적인 사람이 아닌 침착한 감정의 사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이행하던 자였다. 그는 또한 열정적인 사람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곳을 방문하였다. 갈멜산도, 수넴 여인의 집도, 모압의 남쪽도 방문하여 왕을 접견하였으며,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에서 선지자 학교를 순방하면서 생도들을 훈육하는 일을 맡으,며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호소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엘리사는 죽어서조차 기적을 행사한 자로 평생을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한 대표적 사람이다.
'선지자들!! 제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 교부 (0) | 2023.03.18 |
---|---|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0) | 2023.01.10 |
이스라엘 선지자들 (0) | 2022.08.25 |
12제자 관련자료 (0) | 2022.08.23 |
구약의 선지자 (0) | 2022.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