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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훈련을 통한 교회갱신

하나님아들 2022. 1. 12. 14:38
영성훈련을 통한 교회갱신

*출   처|  은혜교회
            

Ⅰ.들어가는 말

오늘날 한국교회는 1천만 교세와 제도적.기구적으로 엄청난 발전과 성장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성장의 요인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불안이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로 몰려오게 하였고, 역사의 혼미 속에서 종교심이 강하고 의타심이 많은 한국인의 심성이 안위감을 얻을 대상을 찾아 교회로 모여 들었고, 목회자들이 순교를 불사한 복음전파의 열의로 교회가 급 성장한 이유이다.

역사적으로 볼때에 교회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부흥할 때에 사회가 도덕적, 정신적으로 바르게 되어 있었다. 그 예로서는 18세기 웨슬리의 부흥운동이나 19세기 미국의 대 각성 운동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범죄율이나 도덕적 타락 현상은 조금도 감소하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존 메퀴리가 "종교 없는 그리스도교"라 하여 본질 없는 형태만 존재학는 종교, 신이 없으면서 신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종교의 모습이 현대의 기독교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이 한국 교회 현장에 나타나고 있다. 세속화 논쟁에 의한 사신신학의 도입, 사회 선교와 개인 구원의 분리, 빗나간 기도원 운동, 말세론 자들의 중심으로 이단 문제, 교파 분열의 문제 등이 바로 허상의 종교를 쫓는 현실에서 기인된 문제이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세속 문화에 염증을 느낀 무리들이 반문화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운동은 신비주의와 연계되어 강신술, 심령술, 심력과학 혹은 전통 민족 종교의 이름을 가지고 교화 안팎에서 현대인의 의식을 파고뜰고 있었다. 뉴 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이 그 단적인 예이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영성을 잃었다. 그리고 영성 신학의 방향을 잃고 현대사회의 가치관과 현세를 지배하는 시대사조와 이데올로기에 몰입되어 교회가 본래 가져야 할 창조적인 영적인 힘을 상실한 채 방황하고 표류하고 있다. 이제 21세기를 향해 선교 한국을 지향해 나아가야 할 한국교회는 내면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드러나게 하며 보다 질적으로 성숙한 성장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영성훈련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께서 내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자신을 드리는 훈련을 의미한다. 이러한 영성훈련은 반복을 통해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영성훈련을 통해 인간성이 회복되고 성령충만한 목회자는 주님께 죽도록 충성을 다하게 된다. 그러한 목회자의 충성은 교회의 양적, 질적으로 성장을 하리라 본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영성훈련은 교회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중요한 과제라 하겠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목회자의 영성훈련과 교회성장과의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 보고, 또한 한국교회의 영성현황과 영성훈련을 통한 교회갱신의 방향과 전망에 대해서 알아 보고자 한다.

Ⅱ. 한국교회의 영성

A. 영성현황

영성이란 단어는 가톨릭교회에 어울리는 말처럼 우리의 귀에 익숙치 않는 느낌이 든다. 가톨릭교회는 중세기의 수도원 운동이 일어난 이후로 영성에 대한 이해와 그 전통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신학적 입장에서도 정립되어 왔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자들로부터 교리적인 면에서는 그것이 잘 전수되었지만 그들이 가졌던 영성은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도 '영성'이란 단어가 가톨릭쪽에 더 친근감이 가는 말이다.

한국교회도 이 영성의 전통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다. 선교 2세기를 맞이하면서 놀라운 성장을 이룩하였다. 특히 지난 30년간 한국교회는 세계가 놀랄 정도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는 과정 속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러한 어려움 과정 속에서도 성숙을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60년대의 신학의 토착화논쟁에서 70년대의 사회적 영성운동인 사회선교 논쟁과 성령운동의 도입, 그리고 각 교회 기도원 설립과 기도운동의 활성화등에 이어서 80년대에 들어와서는 교회교육에 중심을 두고 교육목회 지향적 태도등은 나름대로 정체성을 확립을 위한 노력의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정체성 확립을 위한 과정속에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소들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예수 운동', '성령운동' 등의 성령의 사역을 인간이 처한 정치, 경제사회의 모든 분야로 확대시킨 사회선교의 분리, 잘 못괸 기도원 운동, 복을 받기 위해 예수를 믿는 기복신앙과 신비주의의 오류, 그리고 그릇된 성령운동의 영향으로 즉각적인 성화성취, 급속한 경제성장, 도시화, 산업화의 결과로 나타난 물량주의가 교회안에 침투되어 한국교회는 신학적으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혼란을 거듭하게 되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부터는 그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교회안에 일기 시작힌 성서 연구운동이었다. 루터교의 벧엘성서, C.C.C.의 십단계, 네비게이토의 성겨교재, I.V.F의 성경교재등을 한국교회 청.장년층이 주축이 되어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이 성서 연구열은 단순히 성서를 지식적으로 아는데 그치지 않고, 삶에 적용시키고 생활화하는데 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서연구는 한국교회의 성숙이라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하고 건전한 면을 가지고 있다. 이전 성경연구 모임과 더불어 진정한 영성을 추구하는 노력이 기독교인들에게 새로운 신앙운동으로 전개 되었다. 그것은 'Q.T훈련'과 건전한 기도원 운동등이다. 70년대 성령운동은 심령대부흥회, 대중집회, 순복음교회의 성령운동등 이 네 운동들은 성령체험을 강조하면서 은사를 강조하고 개인의 회개와 물질적 축복을 강조하였다. 이런 운동은 대중을 회개시키고 그들의 삶에 활기와 기쁨을 주고 교회의 양적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자칫하면 샤머니즘으로 오해되어 기독교신앙을 하나의 미신으로 변질 시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각 교단의 교세확장운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이런 모습속에서 요청되는 영성신학은 신학교육과 목회현장이라는 흐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B. 영성생활의 문제점

한국교회는 양적 성장이 급속하게 이루어진 만큼 문제점도 있었다. 1984년 8월에 한국 개신교 백주년 기념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 전후하여 한국 개신교회에 대한 반성의 소리가 높았다.거기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문제점은 첫째로는 물량주의이다. 70년대 한국 사회가 급속한 경제성장, 도시화 및 산업화에 더불어 경제 제일주의, 물질 우선주의가 편만하게 되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도덕과 인간의 존엄성은 평가절하 되었다. 이와 같은 가치의 아노미 현상와 중에서 교회는 마땅히 서야할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이 물결에 휩쓸리게 되었다. 이 현상이 교회 안에서 들어오게 되어 교회가 교세확장, 즉 외적인 겉치레만 중요시 하게 되었다. 물질의 노예화에서 해방을 외쳐야 할 교회가 스스로 소유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교회의 참된 능력을 잃어버렸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세속주의 빠진 교회를 향하여 '아니오'를 외치고 청빈을 목표로 삼았던 수도사들의 영성을 재 발견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는 교회분열이다. 개신교회의 분열은 해방이후 노골화되면서부터 극심하였다. 보수 진영과 자유진영의 분열, 선교적으로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양극화 현상, 같은 교단안에서도 지연, 혈연등으로 인한 불열 현상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국교회는 남북 분단의 아픔을 안고 있는 현실에서 통일의 과제를 실현하려면 먼저 화해와 평화 그리고 일치의 신학과 목회의 주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

셋째로는 한국교회 안에서 불건전한 신비운동, 역사와 사회를 외면하고 극단으로 달리는 사이비 성령운동들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기독교 안에는 풍부한 신비가 있다. 하나님의 성육신 자체가 신비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그의 통치가 신비이다. 이러한 신비가 때로는 종교적 경험이나 영성적 경험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한 신비는 기독교 진리를 전파하고 기독교적인 삶을 영위 하는데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신비경험이나 거기서 얻는 쾌락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면 신비주의에 빠져 버리고 만다. 이와 같은 신비주의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크리스찬에게는 큰 장애물이 되어 왔다.

넷째로는 한국교회는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신자들이 개인구원에 역점을 지나치게 두고 공동적 책임에는 매우 둔감하기 때문에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즉 우리만 구원받고 우리 교회만 부흥되고 우리교만 천국을 이루면 그만이라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다섯쩨로는 20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오순절 카리스마적 현상문제이다. 오순절 성령운동을 주장하는 방언, 방언통역, 신유은사를 절대시하는 신자들이나 신위적 영권을 과시하는 지도자들은 몇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20세기를 성령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은 전 세계에 걸쳐 가장 급속한 성장을 보여 줌으로 장로교를 위시한 여러 교단의 교회들까지 '카리스마적 운동'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에도 오순절 계통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을 모방하는 교회가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여섯째로는 영과 육에 관한 이분법적인 사고이다. 영적인 것에 대한 반물질적, 반시간적, 비사회적 이해이다. 한국교회의 영적인 것에 대한 이해는 영지주의적 양태에 가깝고 그리스적인 영육 이원론에 깊이 젖어 있다. 한국교회의 수많은 기도원과 부흥회가 한국교회 성장에 공헌한 점을 우리는 공정하게 평가해야 하고 도식적 비판은 삼가해야 한다. 많은 대중집회의 영성 방향이 기복신앙에 영합하거나 현대사회의 불안 심리에 영합하지 않았나 반성해 보아야 한다.


C. 영성운동의 방향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을 앞으로 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가를 살펴 보면,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첫째, 기독인들의 삶의 스타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방향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성서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훈련이다.

둘째, 묵상훈련이 크게 강조 될 것이다.

셋째, 성례전적인 영성의 회복을 해야 한다.

넷째, 교파를 초월하고 영성을 겸한 평화와 일치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Ⅲ. 골방훈련

A. 골방훈련의 원리와 방법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은밀한 골방을 찾아,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과 골방의 시간을 가지라고 가르친다. 골방훈련은 오직 하나님께만 문을 열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훈련이다. 예수님은 가끔씩 조용히 하나님 아버지와 시간을 사용하셨다. 소란스런 세상에서 따나 한적한 곳과 광야와 들판과 산위로 물러나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이것은 골방훈련을 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방법들
조사내용(대상교회)
비고

말씀훈련
교사대학(과천,모라

성경통독(초읍,

제자훈련(정동제일, 과천

새신자성경공부(정동제일,

장년성경공부(

평신도 대학(정동제일)

수요성경공부(경동

TBC성서연구(과천

비디오 성서대학(과천

지도자 임상훈련(남서울

어린이 디모데(동안

사랑방 성서 모임

성서통신강좌

신혼부부, 고부성경공부
말씀훈련은 대부분 교회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마다 비슷한 교과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다.

기도훈련
새벽기도회

특별새벽기도회

심야기도회

산상기도회

24시간릴레이기도회

교사기도회

제직기도회

금식기도





B. 말씀훈련

말씀훈련의 접근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씀훈련을 통하여 정보를 발견하고 지식을 습득하고 진리를 깨달으려고 하는 지식훈련과 말씀훈련을 통하여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 속에 넘치게 하여 우리의 인격을 변회시키는데 중점을 생명훈련의 방법이다. 전자는 '나'가 주체가 되어 성경을 나의 삶 속에 채워 나가는 방법이다. 후자는 '성경'이 주체가 되어 나의 삶을 깨드리고 변화시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게 하는 방법이다.

말씀훈련은 이 양자가 균형을 지켜야 하며, 여러 가지 성경공부 유형들이 가지고 있는 역점을 보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말씀훈련은 세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 성경 통독 훈련

성경통독 훈련은 신 구약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나가는 훈련이다. 성경을 통독할 때 너무 지나친 율법주의적 접근은 말씀훈련의 맛을 잃어버리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통곡훈련을 할 때는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로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언제든지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성경 앞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처럼 말씀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말씀을 읽어 나가야 한다.

둘째로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민감해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 가는 동안에 민감하게 거기에 임재하신 성령께 마음을 열고 귀를 귀울일 때 그분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하시고 새로운 삶을 결심하게 하신다.

셋째로 그날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해야 한다. 성경말씀을 우리의 양식으로 삼아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그 말씀을 읽는 동안에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기록하여야 한다.

넷째로 기도로 그날의 훈련을 마무리해야 한다. 이 때의 기도는 반드시 그 날 읽은 말씀을 우리가 처한 환경에 적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2. 성경공부 훈련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성경공부 방법들은 유형 별로 나누어 보면 네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강의식 성경공부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전문적으로 성경을 배운 지도자가 제목별로 성경말씀을 정리하거나 성경 한권 한권을 조직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성경의 지식습득의 접근 방법에 치우쳐 생명력 훈련에 약하며, 성경 자체에 대한 친밀감을 갖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둘째는 모자이크식 성경공부 방법이다. 이 방법은 성경 전체를 교리적인 바탕위에 제목별로 정리하여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려 한다. 이 방법은 강의식 성경공부의 약점인 간접적인 공부 방식을 보완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저자의 신학과 신앙에 따라 성경을 공부하는 자의 신학과 신앙이 좌우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로 조감도식 성경공부 방법이다. 이 방법은 하난의 관점에 의해 신구약 성경 전체를 조직적으로 정리하고 성경 전체를 보는 눈을 길러 주는 벧엘 성서연구와 크로스웨이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방법의 장점은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의 통일성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의 문제는 성경 한절 한절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넷째로 귀납적 성경연구 방법이다. 위의 세가지 방법은 생명훈련보다는 지직훈련에 많이 치우쳐 있으나 이 방법은 지식훈련과 생명훈련의 조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이 방법은 우선 성경의 본문에서 출발하여 그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며,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삶에 적용시키고자 한다. 이 방법은 관찰, 해석, 적용의 세단계를 거쳐 성경을 공부한다. 이러한 성경공부 유형들은 장점과 단점이 있기 때문에 상호 보완적으로 교회의 상황과 공부하는 대상에 따라 실시해야 할 것이다.

성경공부를 균형 있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성경공부는 전문적으로 성경을 배운 지도자에게 배우는 성경공부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성경공부는 지식훈련과 생명훈련을 균형 있게 조화 시켜야 한다. 생명훈련이 없는 지식훈련은 냉냉한 율법주의자로 만들 뿐이고 지식 훈련이 없는 생명훈련은 혼란과 당파를 조장할 뿐이다. 넷째로 성경공부 훈련운 교인들을 예수의 제자화 시킨다는 기본 전제를 가지고 시작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로 성경공부 훈련은 모임의 원칙을 정하고 시작과 끝나는 시간을 엄격히 지키도록 해야 한다.


3. 말씀묵상 훈련

묵상은 말 그대로 '눈을 감고 말 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대상과 내용에 대해 정신을 집중한다는 면에서는 명상과 같지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말씀,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때 묵상이란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리차드 포스트는 동양종교의 묵상은 심령을 비우는 노력이요, 기독교의 묵상은 심령을 채우기 위해 비우려는 노력이다. 또한 기독교의 묵상은 우리를 내면의 온전함으로 이끌어 가는데 있었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데 꼭 필요한 상태이다. 그리고 묵상은 우리를 영적인 인식으로 이끌어 가는데 었어서 사회의 악을 공격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다. 인간생활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을 다시 잡게하는 수단이다.라고 말한다.

묵상은 하나님과 개인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기도의 한 형태이다. 묵상은 한 개인이 자신의 전 존재를 드려 하나님을 찾아 느끼고,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 안에 머물며,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투신하는 전인적이며 존재론적인 기도이다.

묵상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따라 말씀을 묵상할 경우는 추론적 묵상(Meditation)과 관상적 묵상(Contempletation)으로 나눈다. 전자는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알기 위해 추리력이나 이해력을 사용하는 방법이고, 후자는 똑같은 목표에 이르기 위해 상상력을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 묵상이란 추론묵상을 뜻한다. 묵상의 기본적인 자세는 먼저 우리에게 주어진 초자연적 진리를 고찰하고, 그 진리를 일상생활에 적용하며, 적용된 진리를 실천하려고 결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기본 구조를 가지고 묵상방법을 선택하려 할 때 지나친 엄격과 변덕을 피해야 한다.

묵상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묵상을 위한 일정한 시간을 내어야 하며, 아무것도 방해 받지 않은 조용한 장소이어야 하며,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 추론묵상을 하는 순서는 1) 몸과 마음을 준비. 2) 준비한 묵상 자료를 천천히 읽는다. 3) 성령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4) 상상과 추리를 통해 성경 말씀 속에 들어간다. 5) 예수님과 대화를 한다. 6) 예수님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봄으로 그분의 현존 안에 머물게 한다. 7) 묵상자료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8) 말씀을 생활에 적용시킨다. 9)실천을 위한 결심을 한다. 10) 감사기도를 드린 후 묵상을 마친다. 11) 묵상 내용을 기록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한다.


C. 기도훈련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며,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힘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영성의 뿌리이고 기도훈련은 영성훈련의 가장 핵심적인 훈련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이나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부르짖는 기도, 음성기도, 묵상기도, 찬양기도, 관상기도, 고백기도, 감사기도 등 수 많은 기도의 형태들이 실천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도들은 크게 부르짖는 기도, 음성기도, 침묵기도로 분류할 수 있다.


1. 부르짖음의 기도

부르짖음의 기도는 어떠한 형식이나 방법이 필요 없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위기를 당한 사람들이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사람들을 존중하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신다.

부르짖음의 기도가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인 것은 사실이나 모든 기도를 다 부르짖음의 기도로 생각하여 부르짖는 것은 문제이다.


2. 음성기도(Vocal Prayer)

음성기도는 주로 공적 기도나 예전적 기도로 많이 쓰이는 형식이지만, 개인기도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기도의 양식은 주기도문을 비롯하여 많은 기도들이 성경에 나타나 있다. 음성기도는 하나님을 부르는 '아버지', '하나님' 등의 부름으로 시작하며, 내용은 찬양, 감사, 죄의 고백, 중보기도, 간구의 순서로 이루어지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로 마친다. 기도할 때에는 자신이 기도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누구에게 드리는지를 유의해야 한다.


3. 침묵의 기도

우리의 상상력을 사용하는 기도이다. 이 침묵기도의 필수적인 준비단계는 육체적 정신적 긴장을 푸는 것이다. 긴장완화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우리와 대화하시며 교제하시는 것을 깨닫을 수 있게 우리 속에 심령의 그릇을 비우는 훈련이다. 긴장완화 훈련은 기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긴장완화 훈련없이 침묵기도를 드리는 것은 병마개를 막은 채로 물을 길으려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1)묵상기도

묵상은 두 가지의 정신활동을 포함한다. 첫째로 묵상은 우리의 정신 기능의 하나로 주체적인 의식을 가지고 마음 가운데 하난의 상을 일어나게 하는 상상에 가까운 작용이다. 이러한 묵상의 측면은 우리의 의도蓢인 노력과 계획적인 성찰과 합리적인 조작을 중시한다. 두 번째로 묵상은 오른쪽 뇌의 기능을 더 많이 활용하는 것이다. 즉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영상들, 감정들, 깨닫음과 직관적인 조명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먼저는 의도적으로 영상이 떠오르도록 정신을 집중하며, 차츰 의지의 작용을 정지시키고 마음에 그대로 떠오르는 직관적인 깨달음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도록 한다.


2)영상기도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빛과 치유하는 힘을 보내는 통로 중의 하나이다. 이 기도는 친구나 이웃을 위해 기도할 때에 그 친구나 이웃의 영상을 마음에 떠오르게 상상하고 나와 그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여 삼자간에 대화를 나누는 것을 영상으로 그리며 기도하는 것이다.


3)관상기도

관상기도는 침묵의 기도 가운데서도 전적인 침묵을 요구한 기도이다. 이 기도는 입술의 침묵뿐만 아니라 내면의 모든 사고와 의지와 계획까지도 침묵을 요하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관상기도는 완전히 나를 비우고 하나님께 거침없이 나에게 들어오셔서 말씀하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 기도를 드리는 동안 '나'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으로만 가득 할뿐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하시고자 하는 이웃을 하나님과 함께 볼 수 있게 된다.

Ⅳ. 성도의 교제

A. 성도의 교제 원리와 방법들

성도의 교제는 신앙생활의 감격과 기쁨을 체험하게 하는 영성훈련의 한 유형이다. 예수님은 약속하셨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 약속은 두 세 사람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주님께서 현존하여 계신다는 사실을 밝혀 준다. 특히 사도행전 1과 2장에서 성령강림 사건은 주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소수의 무리들이 주 에수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기도하는 중에 일어난 것이다. 즉 성도의 교제는 성령강림의 현장인 것이다. 성도의 교제는 우리 주님의 명령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이 말씀은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는 사랑의 삶에 우리가 참여하여 , 그 사랑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하나님 중심의 복음을 가르치며, 내가 너를 사랑함과 같이 너도 나를 사랑해야 하는 공동체적인 사랑을 가르친다. 즉 성도의 교제가 주님의 명령이요,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가지신 가장 중요한 뜻이다.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 성도의 교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헤를 나눌 때 오는 교제의 방법이다. 둘째, 음식을 나눌 때이다. 초대교회가 성경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 셋째, 물질을 나누는 것도 성도의 교제이다. 넷째, 죄를 서로 고백하며 용서를 나누는 것도 성도들 간에 하여야 할 교제이다.

방법
조사내용(대상교회)
비고

구역집회
구역예배

교구별 찬양대회


남.여선교회

제직수련회

전교인 체육대회

전교인 야외예배

전교인 수련회

남선교주최 찬양대회

성경퀴즈대회

여선교회주최 바자회

연합예배





B. 단순화훈련

단순화라는 훈련은 내면의 본질이 외부생활 양식에 결과를 맺는 것이다. 단순성에 대하여 토마스 케리는 '거룩한 중심'으로 살아감을 의미한다고 했으며, 키에르케고르는 '마음의 순결함은 단 하나만을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신구약에 나타난 '단순'은 언제나 아기, 어린이의 태도와 비교된다. 어린아이는 꾸밈과 교활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단순화는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며 살아가는 삶이라 할 수 있다. 단순성은 우리를 해방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을 선물로 받아들이도록 해준다. 성경에서 보면 단순화훈련의 중심점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단순성의 참 모습에는 소유를 중시하지 않는 즐거운 삶이 따른다. 리차드 포스터는 단순성의 바깥 표현을 위해 지킬 바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로 물건을 살 때 위신에 관계없이 실용성을 살펴 사라. 둘째로 담배, 커피 등 탐닉하지 말라. 셋째로 물건들을 주는 습관을 가져라. 너재로 광고에 넘어가지 말라. 다섯째로 소유하지 않고 즐기는 법을 배우라. 여섯째로 '지금 사고 값은 나중에'라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 일곱째로 꾸밈이 없고 정직한 말을 하라. 여덟째로 남을 억압하게 될 일을 모두 물리치라. 아홉째로 당신의 주요목표에서 다른 곳으로 정신이 팔리게 하는 것을 모두 물리치라. 열번째로 삼라만상을 좀더 깊이 감상하라.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추구해야 할 단순성은 소유 중심의 삶에서 존재중심의 삶으로의 전환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 단순한 훈련은 오늘날 물량주의에 병들어 가고 있는 목회자와 신자들에게 참으로 필요한 훈련이라 생각한다.


Ⅴ. 공동 훈련

A. 공동훈련 원리와 방법들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찬양하며,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훈련이다. 이처럼 공동훈련은 다수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교육을 받으며, 세미나를 하고 공동으로 훈련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다른 훈련보다 공동훈련을 더 중시해 왔다. 오날 같이 한국교회가 성장하게된 밑거름은 한구교회의 공동훈련이다. 특히 새벽기도회는 매우 긍적적인 신앙훈련의 장이 되어 왔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가 되어왔다. 예배, 사경회, 부흥회, 기도회, 세미나, 성경공부, 여러 가지 이름의 특별집회 등 한국 교회는 공동훈련에 강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몇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 성례전에 소홀하다. 성례전은 예배에 있어서 중요하다. 성례전은 대부분 교회에서 년 1-2회 정도로 국한시킴으로서 참여하여도 좋고 않 참여하여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없다. 성례전을 통해서 우리 속에 새사람을 창조하며, 우리에게 큰 은혜를 체험케 하는데 우리가 귀중한 성찬에 참여하지 아니함으로써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의 기회를 상실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며 한국교회는 성례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실천을 해야 한다.

둘째, 공동훈련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과 신학을 충분히 성도들에게 전달해 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예배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며, 예배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며, 예배를 인도하는데 참여하는 자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하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선물을 주시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훈련을 해야 한다.

셋째, 한국교회는 지나치게 예배중심의 공동훈련을 고집하고 있다. 모든 모임은 예배의 형식적 절차를 거쳐 시작된다. 이것은 예배와 삶을 분리시키고, 신앙과 실천을 분리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모임은 그 형식이 예배의 형식이든 아니든 이미 예배의 행위이다.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임 위에는 우리 주님께서 그 모임 위에 임하여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일 때에 주의 이름으로 모인다. 주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주님께 대한 헌신이다. 즉 예배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임에 앞서 예배드리는 형식 절차를 수행하기 보다는 그 모임 전체가 하난의 예배행위가 되도록 연구하고 훈련할 필요가 있다.

방법
조사내용(대상교회)
비고

예배
주일낮

각 가정 예배


성례전
년 2-3회

년 4-6회

년 7회이상


찬양집회
주일 밤

목요찬양


기도회
새벽

금요심야기도회

철야기도회

사순절기도회

특별40일 기도회


부흥회
년 1-2회(모라


사경회
년1회


세미나
성가대

교사

전도

재직

성서대학

교사대학


수년회
전교회수련회

기관별수련회

구역장수련회

권찰수련회

교직원수련회



야외예배
전교인

전교인체육대회


산상집회
기관별산상기도회


성경공부
권찰, 구역, 교구장 성경공부

전도

새신자









B. 고백과 용서훈련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중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삶을 용서하오니 우리 지도 사하여 주옵시고"에 사용된 지의 용어는 '하마르티아'가 아니라, '오페일레마'를 사용한다. 이것을 그대로 번역하면 "우리가 우리의 빚진 모든 이들을 용서해 주듯이"이다.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의 빚은 갚든 탕감 받든하여 해결하지 않으면 두 사람 사이에 그것으로 인한 문제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기독교 공동체에 있어서 할 고백과 용서의 교훈을 요셉이 형들에게 한 용서에서 찾을 수 이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 와 나중 형들을 만난 것은 22년의 세월이 흘러서이다. 그들이 요셉인 줄 알았을 飁 그들은 근심하며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근심은 자기들이 과거에 한 일에 대한 요셉의 보복이 두려운데서 이루어지는 감정이요, 한탄은 후회와 양심의 가책을 되살리면서 자신이 한 일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양심의 가책은 자신이 저지런 일을 기억하면서 자신을 증오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그러나 요셉은 이들을 용서해 준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형제들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선하게 인도하심을 의식했기에 형제들을 용서하는 행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냈다.

양심의 성찰이란 하나님과 말씀, 그리고 성령의 역사 아래 우리의 이웃에 대한 잘못들을 구체적으로 깨닫는 것이다. 고백을 잘 할려면 슬픔이 따라야 한다. 그것은 죄 지은 것에 대한 혐오와 이웃에게 상처 준 것에 대한 아픔이다. 고백훈련을 하면서 거룩한 삶을 사모하고 속된 삶을 미워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드리며 결단하는 것이다.

고백과 요서의 훈련은 공동체의 협동적인 훈련이다. 또한 고백과 용서는 공동체의 치유의 역사를 일으킨다. 그것은 고백이 개인에게 있어 겉치레를 없애고 솔직함에서 나오기에 개인을 변화시키며, 더불어 공동체를 변화시키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고백과 용서훈련은 모든 공동체에서 일어나야 하며, 자신의 치유와 함께 공동체의 성숙을 가져올 있는 길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Ⅵ. 참여와 봉사

A. 참여와 봉사 원리와 방법들

신앙훈련의 모든 출발지점이다. 참여와 봉사훈련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보내신 세상,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은 세상 속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가지고 나가는 훈련이다.

기독교 역사는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한 봉사와 참여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적 요소이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셨느니라"(약 2:5)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목마른 자, 나그네, 헐벗은 자, 병든자, 옥에 갇힌 자들을 만날 때 예수님 자신을 만나는 것이요. 그들을 섬김으로써 그리스도 자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슬픔에 잠기고 고난 당하는 우리에게 보여주신 바로 동일한 사랑을 이웃에게 보여주도록 요청 받고 있다.

고난당하는 자들의 삶에 참여하여 드들을 구제하며 자비를 베풀며 봉사하는 동안에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참여의 삶을 영성훈련의 목표지점이요, 동시에 다시 주님을 만나기 때문에 영성훈련의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한국교회는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방법 때문에 심각한 갈등과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를 분명히 드러내야 하낟. 그러기 위해서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방법의 다양성을 받아 들이고 갈등과 혼란을 극복하여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세상 속에 들어가는 훈련을 개발하고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참여와 봉사는 한 차원 높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봉사하는 것이다. 교회봉사를 영성훈련의 한차원로 생각하고 개발하고 훈련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 몸의 각 지체로 비유하고 있다.(고전 12:12-27) 그는 몸의 지체는 자기가 받은 기능과 사명대로 열심히 봉사하고 서로에게 덕을 세우기 위하여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참여와 봉사"라는 하나의 훈련의 장인 것이다.

방법들
조사내용(대상교회)
비고

교회 밖
사회교육관

복지회관

걸식아동 돕기

고아원, 양로원 돕기

우리 농산물 직거래


교회 안
선교원

불우아동돕기

가장소녀소년 돕기

노인대학

헌열

어버이주일

바자회





B. 섬김훈련

기독교 영성의 외적 표현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섬김이다. 이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기독교인의 삶의 특징이 '자기중심'에서 떠나 '주님중심', '타인중심'으로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예수님께서도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20:28)"고 말씀하였다. 주님은 '섬김'의 삶을 사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섬김의 삶을 명하신 것이다.

참다운 섬김을 이해하고 실천하려면 그것을 독선적인 섬김과 분명히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독선적인 섬김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로 인간의 노력에 의한다. 둘째로 큰 사업과 결고에 관심을 가진다. 셋째로 외적인 보상을 요구한다. 넷째로 봉사할 대상과 일을 자신이 선택한다. 다섯째로 기분과 변덕에 좌우된다. 여섯째로 공동사회를 파괴한다. 그러나 참다움 섬김은 첫째로 마음속 깊은 곳, 거룩한 다른 분과의 관계에서 온다. 둘째로 작은 봉사와 큰 봉사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봉사를 중요하게 본다. 셋째로 결과를 계산하지 않고 봉사 자체를 기뻐한다. 넷째로 직분을 행하면서 차별하지 않고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한다. 다섯째로 봉사해야 하기 때문에 충실하게 움직이며, 행동하기 전에 온유하고 참을성 있게 귀 기울인다. 여섯째로 공동체를 건설한다.

섬기기를 배우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을 낮추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겸손이 우리의 삶 속에 침투하려면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섬김의 훈련을 거쳐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의 평화는 겸손에서 가능하고 겸손은 추구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훈련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섬김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숨은 봉사가 있어야 한다. 생명의 말씀을 듣고 서로 나누는 봉사가 있다.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은 참으로 은혜로운 봉사이다. 그러므로 참된 섬김에는 기쁨과 생명력이 있다. 이러한 섬김의 삶이 우리 가운데 적용되려면 자신의 섬김을 평가해보고 어떤 섬김이 타인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주었는지 기억하고 나누어야 한다.


Ⅶ. 영성훈련을 통한 교회갱신

교회가 성장할려면 교회다와야 한다. 즉 교회가 교회되면 성장한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성령께서 역사 하실 때에만 가능하다. 영성훈련은 새사람을 만들어 나가는 인간의 훈련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새 창조의 역사를 행하실 수 있도록 성령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훈련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내 속에서 역사 하실 수 있도록 철저히 자신을 내어드리는 순종훈련이 영성훈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영성훈련으로 다져진 목회자는 성령께서 그 안에 역사 하실 것이고 성령이 역사 하실 때에 교회갱신이 이루어자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다. 초대교인들은 합심기도하고 말씀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 봉사, 구제, 청빈훈련, 금식훈련, 말씀전도, 섬김훈련 등의 훈련을 통해 영성을 함양해 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영성훈련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과 은혜가 넘쳐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인격이 형성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며, 질그릇 같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과 전도가 일어나는 것도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아무리 우리를 사용하시고 싶어도 우리가 성령께 순종하여 성령께서 내 안에서 그 일을 행하시도록 해야 한다. 초대교회는 모든 영성훈련을 성령께서 내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나'를 성령께 드리는 훈련으로 생각했다.

영성훈련은 성령께서 일할 수 있도록 '나'를 드리는 훈련이요, 하나님의 영광과 기적은 자기를 드리는 사람을 통해서 행하시는 성령의 역사라고 이해했다. 또한 여성훈련은 성령께서 자기들에게 주시는 은사로 생각했다. 즉 은혜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성령께서는 그들의 끊임없는 영성훈련을 통한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신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영성훈련은 그들 안에서 성령이 역사하게 했고 이것은 초대교회의 부흥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개발되지 않은 영성은 무력하고 비굴해질 수 밖에 없다. 개발되지 않는 영성은 그리스도인 됨을 포기하는 것이며, 성령의 능력을 방해하는 것이다. 아이리스 컬리는 "영적 생활은 개발되어 가는 것이다. 개발은 하나의 양육과 교육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영성이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생활 양식을 통하여 밖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삶의 과정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영성훈련은 성화의 과정이요, 약사와 삶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책임적인 존재로 사는 훈련이다.

따라서 영성훈련을 통해 함양된 영성을 가진 목회자는 성령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라 그분의 형상을 본받으며 교회와 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교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진리대로 바로 가르치고 삶으로 모밤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목회자를 교인들은 존경하고 신뢰하게 된다. 이러한 목회자에게 훈련받은 교인들은 변화된 인격과 삶으로 가족과 이웃에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되고 또한 그들은 주님의 지상 최대의 명령인 영혼 구원을 위힌 전도와 병든 자, 가난한 자, 고통당하는 자에 대한 관심과 봉사와 헌신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영성훈련은 결국 교회의 양적 성장과 더불어 성숙한 교회에로의 질적 성장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성훈련이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며, 교회갱신하는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