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상식 이야기!!

[스크랩] 기복신앙, 무엇이 문제인가? (2) 성경적 재물관 (김진오)

하나님아들 2012. 10. 16. 14:34

기복신앙, 무엇이 문제인가?

(2) 성경적 재물관

 

 

1. 재물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또 제 삼 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 육 시와 제 구 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20:1-16).

  오늘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에 대해서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재물에 대한 것이다.  재물에 대한 오해는 바로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바른 성경적 재물관을 가질 때 하나님을 선하신 하나님으로 섬기게 되고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은 20장에 나오는 "포도원의 품군이야기"는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뚯을 깨닫는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다.  본 장은 직업의식,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하루의 물질의 양, 소외된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생의 원리, 노사문제, 등 이와 같은 것에 대한 기본 원리를 교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주석가들의 주석을 보았지만 대부분이 지나치게 구원에 결부시켜 영적으로 해석을 하였다.  그 중에서 영국의 신학자 F. F. Bruce는 그의 "The International Bible Commentary"(Zondervan, 1986)에서 가장 신뢰성 있는 해석을 주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비유들 가운데 "천국은 마치..."로 시작하는 비유는 대부분이 already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미 임한 천국, 곧 메시아 왕국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비유하시는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물질에 대해서 자유함을 얻지 못하고는 결코 천국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천국은 마치... 집주인과 같으니"  포도원 주인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품군을 상대로 계약을 맺고, 품군을 불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그들에게 삯을 나누어주고, 그들과 하는 대화는 사람들에게 하루동안 일어나는 경제 활동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의 뜻과 기준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천국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 가져야할 재물에 대한 바른 자세를 설명한다. 우리는 이제 집주인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품군들과 집주인의 약속  이 비유에서 품군은 이 세상에서 생계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집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 하나님으로부터 생존을 위한 기본생활을 약속 받고 태어나는 것이다.   어떠한 국가 권력이나 제도, 고용주나 가진 자가 가난한 자들의 기본생존권을 빼앗을 권리는 없는 것이다.  오늘 지구상의 비극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계약관계를 인간스스로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모든 고용인들과 하루에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였다.  여러 립비들의 기록에 의하면 노동자들이 하루에 받는 한 데나리온은 좋은 주인을 만날 때 벌 수 있는 액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에 한 데나리온을 받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곧 하루에 한 데나리온은 사람이 기본생활을 위해서 필요충분조건을 채우는 양이다.  집주인은 일찍 온 자나 늦게 온 자, 일을 많이 한자나 적게 한자 모두에게 한 데나리온을 보상하였다.  만일 일찍 온 자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고 늦게 온 자들에게 1/5데나리온을 주었다면 늦게 온 자들은 최소한의 기본생활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삶은 굶주림으로 황폐하여 인간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이다.  이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많은 주석가들은 품군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 한데나리온을 기본적인 영생의 은혜에 대한 절대적 보상(absolute compensation)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이러한 해석은 복음주의의 극단적 해석이다.  성도의 거룩한 삶은 무시한 체 구원만 받으면 그만이다는 내세 지향적 성도를 낳게 한다.  하루에 한 데나리온을 약정하신 것은 이 세상에서 재물에 대한 탐욕을 제하시고, 하루의 노동에 대해 감사케 하시고,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케 하시기 위함이다.

   직업 소명의식  사람들이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은 각자가 이 세상에서 받은 참된 분복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한다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므로 직업을 선택할 때나 일을 할 때 바른 자세로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이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으므로 재물을 모으기 위해서 비윤리적, 비도덕적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여 무위도식하는 삶을 책망하였다.  그리고 하는 일없이 불로소득으로 살아가는 것도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 허송세월하며 방탕한 삶으로 인생을 목적 없이 살아가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  사람은 누가 존재해야할 가치와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직업을 통해서 일하면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무신론자들 가운데 인생의 목적성을 부인하는 자들도 있다.  쓰레기통을 비우면서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존재목적을 깨닫게 된다.  지금은 아무 쓸모 없는 것이지만 한때는 유용한 용도로 사용된 빈 병이나 빈 통들과 휴지들, 그리고 재활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보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일평생 천직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 생각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소유를 위해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목적을 위해서 창조하셨다.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는 교제하는 자로, 피조세계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대리 관리자로 사람을 존귀하게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그 분의 계획과 섭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천직을 찾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며 방탕과 안일함과 절망과 탄식가운데 살다가 가는 것이다.  인생에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은 자신에게 주어진 천직을 발견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먼저 온 자들의 착각과 나중 온 자들의 권리  집주인이 청지기를 통해서 삯을 나누어주는데 제 십일시에(오후5시) 온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었다.  먼저 온 자들이 더 받을 줄로 생각했는데 그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씩 주었다.  받은 후에 그들이 집주인을 원망하였다.  한 시간 일한 사람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그들과 동일하게 대우한 것에 대해서 불평을 한 것이다.  먼저 온 자들은 집주인과 한 데나리온을 약속한 것을 잊어버리고 늦게 온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받을 것으로 착각하였다.  주인은 그들과 약속한 데로 동일하게 삯을 지불하였다. 이러한 주인의 뜻에 대해서 원망한 것이다. 

 

   불평의 원인은 왜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대우하느냐 이다.  여기서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의 확연한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일찍 온 자들도 자신들이 받은 한 데나리온을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된다.  하루에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은 좋은 주인을 만나야 하루에 받는 일당이므로 한 데나리온 받은 것은 운이 좋은 날이다.  물론 늦게 온 사람들은 한 데나리온 받은 것에 대해서 더 많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먼저 온 자들은 늦게 온 자들을 비교하며 자신들의 수고에 대한 지나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오늘 하루 실업자였다면,  길거리에서 하루를 허송세월 할 처지였다면 종일 일을 가진 것으로 감사했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가장 큰 아픔과 고통은 능력 있고 가진 자들이 무능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 대한 관대한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주인이 삯을 지불하면서 먼저 온 자들부터 한 데나리온씩 지불하였다면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들보다 늦게 온 자들이 적게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유능한 사람은 늘 부요한 자로 무능한 자들은 늘 가난한 자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유능한 자나 무능한 자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기본 생활을 의해서 물질은 동일하게 분배되기를 원하신다.   인간의 욕심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진 자들이 더욱 더 상대적 빈곤에 병들고 있는지 모른다.  그 와중에 가난한 자들은 더욱 더 가난하여 굶주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난하고 병든 자라 할지라도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만일 가난한 자들의 기본적인 삶이 보장받지 못한 다면 이 모든 책임은 부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하신 말씀은 물질의 공정한 분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범한 자들이 받을 심판의 중함을 말씀하신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악인들의 도전  선하신 하나님의 뜻은 악인이나 선인이나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나 함께 공평하게 공존하는 것을 원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역사이래 한 번도 공평한 물질분배를 이룩한 때가 없다.  유일하게 그것이 실행된 예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각 지파를 따라 제비뽑아 공정하게 땅을 분배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월이 자나면서 사람의 능력과 환경에 따라 빈부의 차이가 생길 것을 감안하여 희년을 정하여 50년마다 모든 재산과 권리를 원상 회복하게 하였다.  여러 세대를 지나면서 이러한 하나님의 규례가 지켜지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공평과 공의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것이 북이스라엘과 유대의 근본적인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공평한 분배가 무너지게 된 것은 사람들의 탐욕과 쾌락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그들은 공평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탐욕과 쾌락의 이름으로 불리는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공평한 분배를 방해하는 두 가지 요소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분배 주체인 청지기의 잘못일 수 있다.  재물을 맡은 자들은 청지기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공정한 분배를 해야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그들은 공정한 분배보다 자신들의 치부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하였다.  이것에 대해서 주의 형제 야고보는 준엄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약5:1-5). 둘째는 만족하지 못하는 품군들이다.  품군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고, 일용할 양식이 있으면 감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집단이기주의도 공정한 분배를 방해하는 중요한 한 요소이다.  


    물질의 공정한 분배는 분배하는 주체와 분배받는 객체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분배 주체는 공정하게 분배하야 하고, 분배 객체는 상대적 빈곤에 대한 불평을 제해야 한다.  오늘날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노사와 계층의 대립은 재물을 축적하려는 탐욕에서 오는 분쟁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겸손히 수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악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천국의 질서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 "Thus the last shall be first, and the first last")  천국의 질서는 세상의 질서와 처음과 끝이 바꿔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지혜로운 자 가진 자가 대우를 받지만 천국에서는 미련한 자 가난한 자가 대우받는 곳이다.  이렇게 되어지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천국복음은 부자의 복음이 아니라 가난한 자의 복음이다.  가난한 자들이 가장 우선되어 지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이것이 희년의 복음이요, 성령의 복음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사역에 대해서 기록하시기를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61: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한자, 마음이 상한 자, 포로된 자, 갇힌 자, 슬픈 자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주님의 이러한 착한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이 일을 해야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2. 교회와 공산주의의 공정한 분배에 대한 이해차이

  공산주의 이론에 대해서는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공정한 분배에 대해서 말하면 오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공산주의 유물론의 근본적인 주장은 '존재하는 것은 모두 물질이다'라는 사상이다.  존재의 모든 실체를 물질에 두는 사상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신세계와 영적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종교를 아편으로 간주한다.


   공산주의 유물사관은 그들만의 유치한 환상이었다.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하면 이 세상의 모든 악이 사라질 것으로 그들은 착각하였다.  그들은 영적인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오직 물질세계에서 인간의 존재의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  그들은 물질의 공정한 분배만 이루어지면 유토피아가 찾아 올 것처럼 생각하였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는 물질의 공정한 분배의 주최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역사의 비극을 예견하고 있다.  부르조아 (자본가 계층)와 프롤레타리아트 (노동자 계층)의 갈등에서 결국 프롤레카리아트의 혁명을 통해서 공정한 분배가 실행된다는 주장이다.  변증법적 유물사관은 진화의 반복을 통해서 하등의 생물이 고등의 생물로 진화한다는 진화론적 사상을 인간의 역사 발전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결과로 보면 오히려 공산주의 사회는 2중 구조의 고착화된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지배하는 공산주의자들과 다수의 피지배 민중들이다.  

      
   공산주의 사회이론은 인간집단을 고등 동물집단으로 전락시켰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진화론의 특성을 인간사회에 도입한 저급한 이론으로 막연한 환상을 좇는 것이다.  막연한 환상의 목표를 세워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집단이 공산주의이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자면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양계장의 닭들이 가장 낙원에서 사는 것이 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물질은 생물적 존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그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인간은 생물적 존재 이상의 정신과 영을 가진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사회에는 선과 악이 있고, 법과 도덕과 윤리가 있고, 학문과 종교가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절대적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없다.  악에 대한 대가도 없다.  그러므로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에 대하여 무자비한 악을 자행한 것이다.  만일 공산주의 사회에도 이러한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공산주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공산주의 이론은 공정한 분배 그것 자체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다.  공정한 분배가 목적이요 최고의 선이다.  공산주의 지배자들은 모든 권력을 동원하여 공정한 분배에는 성공하였는지 모르지만, 결국 그것으로 인하여 공산주의 사회는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물질의 공정한 분배는 영적인 삶을 위하여 물질적 탐욕을 제하고, 성도의 소망을 땅에 것에 두지 않고 영원한 것에 있게 함이 목적이다.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제는 양극단이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하든지 아니면 인류애를 통해서 공생할 수 있는 사회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평등만 있고 자유가 없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는 평등은 없지만 자유가 있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 평등은 곧 동물집단이나 감옥이나 포로수용소와 같은 곳이 된다. 그러나 평등은 없지만 자유가 있는 곳에서는 자유를 선하게 사용하면 얼마든지 평등을 이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 평등을 말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자유가 인간의 사악한 탐욕에 오용되면 더욱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인간사회는 평등한 사회이기 이전에 자유주의 사회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유주의 사회에 공평과 공의가 살아 있다면 사람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이러한 곳이 바로 교회 공동체이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사건 이후에 초대교회에 나타나는 유무상통한  공동체를 가리켜 원시적 공산주의의 사회의 모형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생각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물질의 공정한 분배가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한다고 주장하는 무산계급이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에서 나온 곧 불의한 사회에 대항하는 파생물로 보아야 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공의(구약에서는 물질의 공정한 분배를 공의의 측도로 보았다)는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과 소명에 따라 노동은 하되 물질과 재물은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양이면 족하게 여기고, 그 이상의 것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축재를 위하여 그 이상의 것을 바라는 것은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하신 마태복음 20장 1절에서 16절 말씀은 인간의 탐욕을 제하지 않고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다.      

3. 불의한 재물과 공평하신 하나님

   오늘 우리사회는 풍요로운 사회(affluent society)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사람들은 재물에 혈안이 되어 있는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부정부패 비리는 매스컴을 접할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이제 몇 천 만원 정도는 뇌물로 보지 않을 정도로 돈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다.  돈 앞에서는 대통령도 장관도 CEO도 그들의 명예와 인격을 헌신짝처럼 내어버린다.  대통령이란 자리도 장관이란 자리도 CEO란 자리도 믿지 못할 자리가 되었고, 오직 돈만이 자자손손이 행복하게 하는 전적인 의지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재물이 이제 현대인의 가슴에 재물신(Mammom)이 되어 버렸다.


   주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이미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의 문제로 고민한 때는 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복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태초의 인간이나 삼 천년 전의 인간이나 현대의 인간이나 마음속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는 사악한 탐욕에는 전혀 변함 없이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악과를 숭배하던 그들이 바알을 숭배하였고 이제는 재물신(Mammom)을 숭배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재물신을 섬기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다.  이들이 바로 기복신앙인들이다.


   바벨론과 로마와 같은 많은 세속의 문명과 나라들이 그들에게 절정의 번영의 시기가 곧 그들의 종말의 출발점이 되었다.  사람들은 번영과 풍요를 누릴 때 그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온갖 종류의 쾌락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사회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개인주의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 옳은 대로 판단하기 때문에 자신을 만족시킬 상대주의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는 급격하게 도덕과 윤리가 상실되고, 사회 결속력이 이완되게 된다.  분파와 파당이 많이 일어나게 되고, 공동체의식이 상실되고, 급기야는 가족해체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이쯤이면 거대한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것처럼 그 문명과 사회는 운명의 순간을 향해서 기울어 가는 것이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먹고 마시고 입고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만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은 과욕에 불과한 것이다. 재물을 모으는데 사용하는 에너지를 이제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에 그 힘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물질은 제한되어 있다. 한 사람이 많이 가지면 다른 사람들은 굶주리게 되어 있다.  만약에 물질이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만큼 공정하게 분배된다면 처참하게 굶주려 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한의 음식쓰레기가 북한의 한해 먹는 식량보다 많다는 기사를 접하고 가슴이 아팠다.  지난 몇 년에 300만 명의 어린아이들이 굶주려 죽었다는데, 엄청난 양의 음식을 버려야 하고,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서 천문학적 돈을 지불하고 있다.  오늘날 지구상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전쟁과 분쟁의 책임은 부강한 나라와 부유한 자들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현재 미국이 행하고 있는 힘의 논리는 정죄받아 마땅하다.  군비에 투자하는 엄청난 돈의 1/10을 가난한 나라에 구제하면 지구상에 일어나는 분쟁의 90% 이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 나라와 문명의 생리상 이러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손해보는 곳에 절대로 물질을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을 전적으로 담당해야하는 기관이 바로 교회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메시아 왕국에 대해서 예언하기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렘23:5)고 하였다.  오늘 이 땅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해야 하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의 재정집행의 제일 원리는 공평이다.  교회의 헌금은 교회 사역자들의 최소한의 생활비와 교회운영비를 제하고는 이웃의 가난한자, 나라 안에 가난한 자, 나라 밖의 가난한자(가난한 나라)에게 사용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교회 재정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스스로 가슴에 손은 놓고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재정 집행에 가장 큰 문제를 더러 내는 곳이 바로 대형교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부끄러운 사례들을 열거하지 않을 것이다.


   목회자들은 무엇이 참된 복이며, 무엇이 바른 재물관 인지 가르쳐야 한다.  오늘 병든 한국교회의 가장 뿌리깊은 암 덩어리는 왜곡된 재물관에 있다고 생각한다.  길을 걷다보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수많은 점집들을 보고 놀라게 된다.  온 백성이 기복신에 사로 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복에 빠진 사람들은 점집이건 교회이건 그들에게 풍요와 번영만 약속하면 구름떼처럼 몰려오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한 여교수가 TV에서 철학강의를 하며 한국교회의 기복신앙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를 예를 들어하는 것을 들었다.  모교회에 산부인과 의사 집사님이 계셨는데, 엄청난 돈을 벌어서 병원을 증축하고 재산을 불려나갔다.  담임 목사님께서 심방을 오셔서 의사 집사님께 집사님 하나님께서 집사님의 믿음을 보시고 큰복을 주셨습니다라고 믿음 좋은 것을 칭찬하였다고 한다.  물론 이 집사님은 많은 액수의 십일조도 하였다.   그러면서 여교수가 하는 말이 산부인과 의사가 무엇해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였다.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되기 전에 이 산부인과 의사는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낙태수술을 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 유명한 기생이 평생을 모은 엄청난 재산을 절에 시주하였다는 이야기가 목회자들 사이에 나돌았다.  애석하다는 듯이 그 많은 재산을 자신의 교회에 바쳤으면, 단일 건물로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당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데 하는 눈치들이었다.  과연 이러한 물질을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겠는가 생각해 보라.  말라기서를 읽을 때 주로 십일조에 대해서만 강조를 하는 경향이 있다.  말리기서의 본질은 바른 십일조에 있다.  부정한 것과 흠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십일조 하지 말라는 것이다.  곧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것으로 하나님께 십일조로 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바르게 모은 물질로, 정액으로 바르게 드리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성실하고 진실하고 깨끗한 삶에서 나오는 십일조를 받으시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황금만능주의 사회이다.  돈이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  돈이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돈은 인간의 행복과 미래를 약속한다. 재물이 원하면 무엇이던지 행하는 사람들은 재물이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재물을 신으로 섬기는 재물신(Mammom)이 되어버린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물 앞에서 인간은 참된 인간이기 위한 명예나 인격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재물을 축적하는 목적은 장래에 대한 두려움과 자기 과시의 교만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 평생을 먹고 살수 있는 재물을 가진 부자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욕심은 여전하여 끝이 없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자자손손이 먹고 살 것을 걱정하며 재물을 모으는지도 모른다.  예수께 누가복음 16장 1절에서 10절로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들려주신다.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을 불의하게 사용하므로 책망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불의한 청지기가 자신의 장래에 대한 준비에서는 세상적 지혜의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이것에 대해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16:8)고 하셨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셨다.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사용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재물로 공평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이다.(마6:20,눅12:33,마19:21,25:31-46).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곧 주님께 꾸이는 것이라고 하셨다.  주께서 이후에 그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실 것이다.   불의한 청지기는 불의한 재물로 현세를 위하여 불의하게 사용하였지만, 의로운 청지기는 하나님의 공평하신 뜻을 따라 불의한 재물로 공평하게 하는 일에 사용한다.  재물은 사람을 끊임없이 불의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다.  불의한 재물을 공평과 공의로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것만이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라는 책망을 피하는 길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이제까지 가장 잘못 알고 잘못 가르쳐 온 부분이 성경적 재물관이라 생각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재물관을 가져야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하신 하나님을 악한 자로 만들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에 뿌리깊은 기복신앙은 공평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나만 잘되면 거만이라는 이기주의 신앙인을 길러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개교회주의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신앙인들이다.  자기만 잘되면 거만이라는 기복신앙이 한국교회가 하나됨을 이루지 못하고 분열되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기복신앙은 모든 교회와 성도들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빼앗아 간다.

김 진오 목사
교회 하나됨을 위한 연구모임 청지기
CORI: (Church Oneness Research Institute)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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