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학
이 「현대신학」 강의집은 개혁신학 연구원과 대학원에서 서철원 교수님께서 강의한 내용을 녹음했던 테이프를 그대로 옮겨 정리했던 것을 재차 본인이 정리하여 내놓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로 옮긴이의 부족함 때문에 책이 제대로 되어지지 못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개혁신학의 진수가 많은 분들에게 바로 전달 되어지기를 기대하는 소망으로 오로지 이 일을 하였습니다. 이 작은 수고를 통하여 서철원 박사님의 진리이해가 더욱 개진되어 나타나므로 그를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와 함께 한국교회에 더욱 값진 열매로 나타나지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 책이 더욱 많은 진리를 개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글을 읽는 독자들로 인하여 세상의 헛된 철학과 속임으로 부터 진리를 보수하여 한국교회가 더욱 힘차게 복음의 은혜 아래 서기를 바랍니다.
1992년 정초 남도 어느 하늘아래서. 주용현 목사 識
목 차
제 1장 서론 : 1919년 이전
20세기 이전의 서구 사상의 주도적 경향
20세기의 시작
19세기 내재신학
변증철학인 희랍철학의 기원,동기 그리고 그 전제인 형상과 질료임마누엘 칸트의 현상계와 예지계에 대하여
이성주의적 자연신론의 시대에 불트만의 비신화화 개념역사비평적 방법
제 2장 1919년 이후
바르트의 계시관과 성경관
제 3장 신정통주의
제 4장 양식비평
제 5장 불트만의 비신화화
제 6장 구속사
제 7장 세속화 신학
제 8장 상황윤리
제 9장 소망의 신학
제 10장 역사의 신학
제 11장 진화론의 신학
제 12장 과정신학
제 13장 존재의 신학
제 14장 세대론
제 15장 근본주의
제 16장 신근본주의
제 1장 서론 ; 1919년 이전
20세기가 실제로는 1901년부터 시작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세계 제 2차 대전이 발발했던 1914년부터 20세기가 시작된다고 하며, 신학적으로는 Karl Barth의 로마서 주석이 나오던 1918년 혹은 1919년 부터 20세기라고 한다.
또 미국에서의 20세기 시작은, 소위 대공황이 시작되어 이 땅에 낙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환상을 깨고서 자기 자각에로 되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1929년을 20세기의 시작이라 한다.
20세기 이전의 서구사상의 주도적 경향
19세기는 과학의 발달로 구라파의 산업혁명이 거의 완결된 때였다. 그후 많은 신무기들을 생산하여 많은 식민지를 정복하므로 구라파인들의 시야는 더욱 넓어지며 그들의 통치영역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사상적으로도 무한한 진보의 가능성을 믿는 학설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특별히 1959년경에 나온 다윈의 진화론의 ‘종의 기원’이 서양 사람들에게는 아주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후 서구인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영역도 넓어지고 자연을 지배하는 영역과 세력도 말할 수 없이 확장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19세기 사람들은 무한한 진보와 발전의 가능성을 믿었고 이성을 지도자로 해서 나아가는 한은 모든것이 분명하게 다 실현될 줄로 믿었다. 그뿐 아니라 19세기는 1884년, 그러니까 19세기 말엽에 우리나라가 복음을 받을정도로 기독교가 선교에 있어서 크게 성공하여 전 세계적으로 확장한 해로써, 아시와와 같은 미개지역에 그리고 아프리카, 저 산호반도들에 까지 선교가 확장되었던 선교의 세기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20세기는 선교가 상당히 후퇴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서구가 탈 기독교한 상황이 되고 말았지만 19세기에는 서구가 정말 복음의 전파에 열을 가하여 제세계적으로 복음이 확장되자 이들은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가 온 인류를 포용할 수 있다고 그렇게 믿었다. 또 자기들이 사는 그 사리에도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의 사랑의 원리가 상당히 확장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세계 제 1차 전쟁이 나기전 19세기말 1899년에 Adolf von Harnack은 베를린 전체 學部(신학부만 아니라)를 모아놓고 기독교의 본질을 강의했는데 그때 제일 중요한 주제는 기독교 종교개혁 이후에 300년을 사는동안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인)가 사랑을 실천해 오므로 아직은 만족할 수 없지만 이와 같은 추세로 나아가면 우리의 모든 생활영역이 사랑의 정신으로 완전히 변화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것은 서구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사회복음주의
구라파가 그럴 때 미국에서 같은 경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소위 미국의 사회복음주의를 부르짖던 라우센부쉬(Walter Rauschenbush)도 지금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이 온 미국의 생활영역을 침투했는데 정치와 경제영역만 기독교의 사랑이 정신으로 이루면 이 땅이 완전히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미국이 기독교정신에 의해서 점점 선해지고 잘 되어가는 것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이 라우센부시의 주장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뉴욕 유니온 신학교 교수였던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에 의해서 깨지기 시작했다. 니이버는 사회복음주의가 기독교정신을 가지고 우리의 손으로 좀 더 나은 유토피아에 가까운 사회, 즉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을 깨트렸다. 인간은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지만 사회적으로 단체에 들어가서는 윤리적인 표준으로 일하지 못하고 단체의 유익을 위하여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일하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므로 인간의 이상세계의 건설은 불가능하다고 라우센부시와 미국인의 생각을 정면으로 깨버렸다.
이와 같이 19세기의 사상들은 20세기에 와서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기독교 정신에 의해서, 그리고 자연과학의 활용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사람의 힘의 완력으로 많은 통치영역들을 확대하자 식민지역에서 대량의 쌍 물자들이 구라파와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 왔다. 그러므로 서구인들은 자기의 이상으로 또는 기독교의 힘에 의해서 그러한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하여 진보하고 발전하면 이런 자연과학적인 합리적인 공식과 기독교이 사랑의 정신으로 인간들이 꿈꾸던 이상세계, 즉 유토피아 또는 사랑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1914년 세계 제 1차 대전으로 인해서 자기들이 손으로 건축한 그 찬란한 서구의 문명을 자기들의 손으로 허물어 버린 것이다.
폴 틸리히(Paul Tillich)
특히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20세기 사상에 유명한 공헌을 한다. 그는 제 1차 세계대전 때 군목으로 일하면서 시체들 속에서 잠을 잤다. 그것이 그가 헤겔 철학에 굳게 매였던 데서 실존철학으로 돌아선 계기가 되었다. 틸리히는 이 경험으로 서구 사람들을 지배하던 유토피아적인 이상주의와 그들이 공약한 새로운 세계가 크게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있던 그런 의식구조들은 완전히 허물어지고 새로운 지각에로 되돌아 왔다. 그는 이 때의 경험으로 두 세계가 교차하는 그런 교차라고 제 1차 세계대전을 설명하였다.
헤겔
그러니까 헤겔은 그의 전 철학사에서 모든 인류 역사와 자연의 전체 진보과정을 소위 이념 혹은 절대이성, 또는 세계정신이라고 하는 그와 같은 로고스(Logos)의 작용이 자기를 현시하면서 저 낮은 단계에서 높은 사상적인 단계에로 올라가다가 헤겔과 같은 큰 철학자에 의해서 진보 발전해 가면서 완성되는 것으로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헤겔의 영향에서도 항상 正,反,合에 의해서 새로운 단계로 밑의 것을 지향하면서도 正과 反이 변증법적으로 투쟁하고 충돌할 때에 그 양쪽을 지향해 가면서 그 좋은점들을 포용하여 제 3에 가면서 운동하고 운동해서 항상 변증법적인 발전과 진보를 거쳐서 더 나은 세계로 혹은 자기 자신에로 충분히 이르러 온다. 그리고 혹은 헤겔의 말대로 이데아(Idea) 혹은 절대이데아가 점점 이런 완전에 이르러가는 과정 즉, 그런 완전의식, 혹은 절대의식의 단계가 소위 그들이 말하는 神개념이다.
그러면 그 神이 자기자신(혹은 말을 바꾸어 절대정신)으로 되돌아 가느냐? 그것은 철학자의 의식이다. 철학자의 의식에서 자연과학적인 측정에서 벗어나서 모든 사물의 본질을 다루고 사고하고 깨닫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자연과학적인 발전이 많아지니까 다르지만, 철학은 책상을 만든 사람이 책상 길이를 정확하게 재는 그런 지식을 논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과학이 어떤 지식에 대해서 다 확실하게 옳다해도 철학은 그것이 정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권리, 즉 이성에 의해서 반성되고 사고되어 완전하고 분명하고 확실한 보편타당한(어떤 면에서 “보편타당”이란 말이 맞는 말은 아니지만) 지식인가를 따진다.
그렇게 완전히 반성되고 개발되어 그 안에 자기가 지나온 모든 과거를 다 포용하면서 완전할 수 있는 그런 보편타당한 지식, 그런 의식을 하는 것이 철학이다. 그러니까 모든 학문은 그 대상에 대해서만 맹목적으로 한다.
헤겔은 철학자의 완전한 의식으로 분명하게 사고된 지식, 즉 철학적인 절대 배경인 그 보편개념을 철학자의 의식에 나타난 절대정신의 역활로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19세기까지 그런 철학적사고가 이성으로 포착한 보편타당하고, 영구히 타당한 진리를 포착하고 만들어 낼 수가 있고 계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지식의 무한한 확대 가능성을 생각해 냈던 것이다.
이성으로 획득한 지식의 불확실성
그런데 지금 과학자들은 천체 물리학에서도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더 이상 그 별의 연대를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다. 물질의 기본단위를 따지는 미시세계도 소립자가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상 없는 것이 입증되었고, 그것은 우리가 지어낸 법칙이 아니라 물질 그 자체에 고유한 법칙이 있어서 파장과 소립자가 상반되지만 또 상호 보완하므로 상보성원리 그리고 양자의 법이 세워졌다.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물질의 현상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옳으냐 할 때 고민이 많다고 한다. 왜냐하면 창조 되었으면 물질의 기본단위가 있을 줄 알았는데 물질이 에너지 즉 파동으로 바뀌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지성인들이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많은 사람의 마음의 표현”이라는 그런 사고가 많은 호소력을 갖는 것이다.
그러니까 19세기 혹은 제 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거시세계나 미시세계와 같은 이 현상세계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진리까지도 다 이성으로 탐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큰 벽에 부딛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본질의 정의는, 인간은 본래 합리적인 존재여서 합리성이 인간 본질이라 하면서 인간이 두 다리를 가지는 것은 우연적인 것이지만 이성은 합리적인 것으로 그 지성적인 것이 본질이라고 한다. 이 사고가 서구 2천년사의 계속된 지배적 사상이다. 그래서 이성을 활용하므로 인간에게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다 해결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니까 18세기는 이성이 종교를 생산해 내는 해였다. 그런데 그렇게 이성으로 모든 만능을 이루어낼 것으로 생각했는데 제 1차 세계대전을 만나서 다른 외부의 세력이 아닌 인간 자신의 손으로 자기들이 세운 문명을 다 부숴버린 것이다. 이것은 서구 지성인들에게 참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18세기에도 낭만주의가 한참 팽배하고 있을 때 리스본에 지진이 일어나서 4천 명이 죽었다. 나라 인구도 얼마 안되는데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이때 하나님이 이 세계를 합리적으로 지으셨고 또 다스리면 이런 불합리한 천재지변으로 그 많은 사람이 죽느냐고 반문했다. 그래도 이성에 대한 확신 그 신앙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은 그들에게 의미가 달랐었다.
그렇게 이성을 신뢰하고 확신에 차 있던 서양 지성인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전쟁을 일으켜 제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손으로 세운 문명을 깨트리므로 서구 지성사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그래서 인간의 합리적인 데 대해서, 영원한 진리에 대해서, 진보 발전에 대해서 신뢰를 받았던 그들의 사고가 깨어지게 되었고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불합리적인 존재란 것을 깨닫게 되면서 항상 인간 외부로만 향하던 데서 인간 자신의 내부로 돌아와 인간 실존의 연구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서 실존주의에 대한 좋은 책들이 나오면서 “인간의 기본이 무엇인가? 인간의 본질은 지성이다. 지성은 실용적인 것이 아니고 진리 자체를 탐구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이야 실용주의 시대여서 모든 것이 실용적으로 응용되는 것만 최고로 좋고 또 그런 지식을 좋아하지만 얼마전 까지만 해도 문과대학이나 공과대학 보다 물리대에서도 순수물리학이 훨씬 좋은 것으로 인기가 있었다. 그것은 실존주의 영향으로 순수한 지적인 할동으로 세계의 구조를 바로 탐구하고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철학하는 사람들이 그 지적인 할동에로 일생을 바치기로 작정을 했던 것이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대표적인 사람인데 그는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불합리한 존재란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렇다면 인간의 능력 또한 무한하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유한하고 불합리한 존재는 이 현상계를 넘엇 더 멀리 확대 적용하여 어디든지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 개인이 생을 마치고 죽을 때 무상함을 느끼는 정도를 넘어서 소위 인간의 이성으로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는 그런 확신에서 인간은 불합리하고 유한하며 그 유한이 죽음을 만들어 내므로 실존주의에서는 남의 일처럼 여겼던 죽음을 자기 문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예컨데 옆집에 김아무개가 죽을 때는 별로 심각하지 않으나 중병에 걸려서 정말 죽음이 자기 문제로 다가올 때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절망적이고 좌절이 넘치고 공포에 쌓여서 떨게 되는가? 그러니까 인간이 그토록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불안하고 죽음 앞에서는 죄의식이 있고 불합리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다.
20세기의 시작
그래서 1914년이 20세기을 시작하기 위한 사건이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1918년에서 1919년에 20세기가 시작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Karl Barth가 바로 그 전쟁 기간에 그 로마서 강해를 썼던 것이다. Karl Barth는 회상하기를 그렇게 기독교 본질을 강의하면서 사랑의 종교를 외치던 자기의 선생 Adolf von Harnack으로 부터 시작하여 89명 신학자들이 제 1차 세계대전 수행에 가표를 던져 찬동을 했고 서명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서, 죄의 심각성을 그토록 강조하던 종교개혁자 칼빈의 글로 다시 되돌아간 것이다.
칼빈이 인간의 전적 부패와 무능을 말하면서 인간이 할 수 없음을 탄식하며 절규하는데, 이것은 인간 본성에 대해서 깊고 예리한 통찰을 한 것이다. 계속해서 칼빈이 말하기를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죄를 필연적으로 짓는다고 했다. 이 말은 우리가 죄를 짓고 싶으면 짓고 안짓고 싶으면 안짓는게 아니며 또 강제로 밀어서 짓게한다는 말이 아니라 타락한 본성이 죄를 필연적으로 짓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우리가 죄를 지으면 죄과에 대한 용서를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또 하나의 메커니즘을 형성해서 제 2의 천성으로 역사하여 더 죄를 잘 짓도록 역사하여 끊을 수 없도록 한다. 우리의 경험을 보더라도 내 힘으로 안 하려고 하면 긴장과 함께 더욱 심하게 강박하여 영의 법으로 혹은 복음의 권세가 아니면 도저히 끊을 수 없도록 세력 행사를 하여 죄를 짓게 한다.
Karl Barth는 이렇게 인간의 죄과를 말하는 종교개혁의 글들과 소위 키에르케골의 변증법, 즉 실존주의 사상에로 되돌아 간다. 그러므로 20세기 실존주의는 Karl Barth에게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하이덱거가 20세기 최대의 형이상학자로 인정을 받지만 Karl Barth 이후에 “존재와 시간”이란 책을 썼던 것이다. 그러니 Karl Barth 이전까지 종교는 저 하나님에 대해서 연구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왜 종교적인가를 연구하여 특히 인간의 종교의식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해명하는 것을 신학의 사명으로 여겼다.
루이스 벌콥 교수는 그의 조직신학 서론에서 “인간은 치료 불가능하니 종교적이다”라고 했고 키스트 막커(Simon J. Kistemaker)도 “인간은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다 종교적이라”고 했는데 이 때 철학도 마찬가지 인간이 갖는 이 종교의식을 정교하게 학적으로 분석하고 해명한 것을 철학자의 영역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슐라이허막허(Friedrich Ernst Daniel Schlieiermacher) 이후의 이후의 내재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하나님께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종교 감정을 대상으로 연구하여 인간으로 끝이 난다.
물론 Karl Barth가 완전히 개혁신학으로 돌아왔다고는 할 수 없으나 최소한 이제까지의 신학적 흐름과 판도를 안전히 바꾸는데 유명한 공헌을 한 것이다. 그래서 신학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 이제까지 완전히 내적인 종교체험과 종교의식만 계산하던데서 문제를 다시 제시하여 소위 전통적인 종교개혁이 출발한 하나님 말씀에로 되돌아가는 일이 시작되었는데 그런 면에서 Karl Barth가 로마서 강해를 냈던 1919년이 신학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것이다.
19세기 내재신학
우리는 20세기를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 19세기를 이해해야 되겠다. 19세기가 중요한 것은 이때 부터 전폭적으로 내재신학이라는 것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칸트의 공헌이 결정적으로 크다 하겠다. 언제든지 그랬지만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의 사고방식에서는 이성의 능력과 그 범위가 무한대까지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칸트는 순수한 이성 자체만을 연구하여 그 이성의 능력가 권리가 어떠한지를 밝히기 시작했다.
칸트
칸트 이전에는 소위 합리론이다 해서 인간의 이성으로 논리적인 사고의 전기, 즉 개념에 의해서 모든 체계를 설명할 수 있고 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밖에 있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합리론에서는 밖에 있는 대상경험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개념이고 이성으로 모든 사물의 체계를 구성하고 그 본성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밖에 있는 경험이라든지 현상세계는 어떤 것이냐?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미 이성이 해놓은 것을 증명해 주는 보완조치 밖에 안되었다. 그러니까 합리론에서는 이성 자체에서 모든 사상 체계와 세계의 구조와 본성이 다 흘러 나온다. 그러니 이들은 인간 이성으로 못할 것이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칸트는 이성 자체를 연구 했으면서도 오히려 이성의 능력과 그 활용 범위에 관해서 축소하는 일을 했다. 이제까지는 이성이 영원의 세계, 무한의 세계까지 학장하고 침투하지 못할 부분이 없었지만 칸트에게서는 그 범위를 현세계의 영역으로 좁히고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경험의 내용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보편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 그리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것, 그리고 이성이 진리가 아니라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사물의 이해가 중요했고 그것이 진리의 표준이고 진리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영원한 진리 같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사물의 경험, 구체적인 내용의 이해가 결정적이고 중요하다. 보편 타당한 진리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대에서 구체적으로 경험된 사실이 진리를 결정학 종교의 진리까지고 경험으로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데이빗 흄
그것은 영국의 데이빗 흄의 영향이 칸트에게 작용했던 것이다. 이제까지 다 합리론을 생각했고 칸트도 합리론을 믿고 있었으나 흄의 영향을 받고 부터는 이성으로 마음대로 공상해서 체계를 이루어 놓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험의 근본은 감각인데 우리의 구체적인 감각기관을 통해서 구체적인 외계의 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면 칸트에게 있어서 도대체 경험이 어떻게 성립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 경험에 의존하면서 어떻게 학문이 학문으로써 성립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지금 데이비드 흄은 18세기 사람으로, 지식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그런 인상이 연상작용, 즉 습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경험의 결합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완전한 경험, 많은 사람이 다같이 공통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경험을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이야 다 파편적인 지식개념 이지만 그러나 학문이 성립하려면 눅수든지 다 공통으로 이해되어지는 보편타당성이 있는 지식이라야 한다. 그래서 칸트는 어떻게 순수학이 성립할 수 있느냐를 생각했다.
그럴려면 근본지식의 재료는 단지 이런 외부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그런 인상들 혹은 표상들을 그냥 무질서하게 습간으로 연결하다 보니까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 인과율의 법칙이 그냥 성립한 것이 아니라 이런 감각경험에다 이성이 법칙과 질서를 넣어 주므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감각경험에다 이성이 법과 질서를 넣어 주므로 이 둘이 합치하여서 지식이 성립한다. 그러니 칸트에게 있어서 지식은 단지 경험으로, 경험에서 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고 경험과 함께 시작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 현상내의 경험이 이성 때문에 질서있게 우리 안에 들어 온다.
이전의 합리론에서 처럼 인간이서의 영역은 공간적으로 무한대로 시간적으로 영원한 세계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이성이 스스로 경험까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는 지식은 이성 자체로 공급한 것과 감각기관을 받아들인 표상 혹은 감각기관에서 들어온 재료 그런 것을 합쳐서 이루어지므로 인간 이성이 알 수 있는 영역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감각기관이 경험될 수 있는 세계로 축소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현상세계 혹은 현상계라 한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이니까 이런 말이 실감이 날 것이다. 영일만에 석유가 난다고 믿고 믿음으로 투자를 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했으니 이제 석유가 나오는 줄 알고 정말 좋아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했으니 석유가 나와야 할텐데 왠일인지 석유는 나오지 않아서 낭패가 컸다.
그러나 자연과학에서 확실하게 안다고 하는 것은 검증해서 증명이 있어야 되는 것이지 믿음으로 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學”이 체계를 구성해서 학문이 될려면 꼭 뺄 수 없는 중요한 첫째 요건은 주장하는 이론에 대한 확실한 증거, 증명, 즉 신임장이 제시되어야 한다. 어떤 이론이나 가설을 낼 때에 필요 불가결한 것이 증거자료인 것이다. 신학도 마찬가지 학문이기 때문에 누구의 경험적 자료든지 아니면 성경의 증거를 제시하든지 둘 중 하나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경험적인 증거를 대면 자유주의가 되고 신비주의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증거자료로 삼는다. 그러므로 신학도 그냥 되는게 아니라 성경과 교리사적인 증거, 또는 교부들의 증거를 인용해서 한다.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쓸 때에도 쓸데없이 성경을 인용하고 교부들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에는 반드시 증거물, 증명할 재료, 즉 신임장을 제시해야만 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일만에 석유가 있다고 알 수 있는 것은 실제로 탐사를 해서 매장량이 얼마만큼 있는지를 확인해서 증거물을 뽑아 올렸을 때 이런 과학적인 조사를 미리 해서 석유가 얼마만큼 있다는 것을 알고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성은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할 때에는 분명히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접촉할 수 있는 것 만을 안다고 한다. 그래서 칸트는 감각기관이 접촉하여 경험이 가능한 영역까지만 이성이 알 수 있는 영역이며 그것이 현상계라 한다. 그것이 곧 경험세계, 즉 시간과 공간이 있는 세계, 즉 그것은 물질의 세계 뿐이다.
그래서 자연과학에서는 2천년동안 이런 천태만상의 물질의 기본단위가 무엇인가를 찾아 보았다. 그러나 결국은 찾지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말했듯이 원자를 물질의 최종적인 기본단위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전자와 핵이 있고 핵 속에는 양자, 중성자, 중간자들이 수없이 많은데 결국 물질인 입자로 남는데 아니라 파동과 결로 남는데 파동은 물질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물질을 에너지와 등치 시켰는데, 물질을 빛의 속도로 가르면 완전히 에너지로 변화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잡히는 것은 없고 신기루가 되어 물질에 현상계의 설명마저도 없는 것이다. 지금 과학이 상당히 발달했으나 다 허무맹랑한 가설의 영역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두뇌사고에 의해 활동할 뿐 영이 보이지 않아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라 한다. 그것은 감각기관의 경험이 가능한 물질의 세계, 시간과 공간이 있는 세계, 인과율이 적용되는 세계, 에컨데 불을 때면 연기가 나고 난로가 따뜻하고, 햇빛이 비치기 때문에 창가에 서면 따뜻하고, 오래 공부하고 수면이 부족한 원인 때문에 피곤한 결과가 있고 해서, 항상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원인을 추적할 수 있는 세계에 살기 때문에 우리의 이성이 사물을 알 수 있을 뿐, 영이나 내세는 경험 불가능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으로 배척해 버린다.
그러면 어떻게 내세를 말하고 영혼을 증명할 것인가? 성경으로 증명 한다는데 성경은 어디서 왔는가? 성경이 하나님께로 부터 온 계시라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할 길이 있는가? 종교사학적으로 그 출처를 파 헤쳐봐도 그런 증거가 없는데 영감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신학계에 일기 시작했다. 불투만 같은 사람은 궁켈의 제자로서 양식사학파를 완성한 사람인데, 이런 사고 때문에 그의 복음사라고 하는 것이 순수한 계시의 전개가 아니라 초대교회가 예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것이 복음서로 나타났을 뿐, 복음서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예수 그리스도의 산물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산물이라고 하므로 더이상 하나님 말씀으로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슐라이허막허
그래서 칸트 이후 슐라이어막허에 의하면 종교는 증명이 불가능하므로 지식의 일로가 아니라 물질의 세계를 만지면 알 수 있는 느낌, 바로 그 느낌이고 神의 세계는 그 느낌으로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종교를 지식의 영역에서 분리하여 감정의 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백묵을 안다고 할 때, 백묵인지 아닌지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안다. 그렇지만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그것은 느낌으로 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슐라이어막허는 종교란, 절대의존의 감정이라고 정의한다. 슐라이어막허의 아버지가 개혁교회 목사여서 그 영향을 받았던지, 그가 개혁교회 냄새를 풍겨 절대의존이란 말을 쓰는데 그냥 비판없이 그 말이 맞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만일에 그대로 믿는다면 인격적인 절대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의존의 감정, 즉 느낌이 하나님이 되는 귀결에 이르고 만다. 흔히 우리는 믿음의 세계만 이야기하면 되는데, 그 선을 넘어서 다른 학문과 연결을 시키면 말문이 막히는데 변증학 공부를 다시 더 해야할 필요가 많이 있다.
이렇게 슐라이어막허가 종교를 감정의 일로 정의하는 배후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서 있다. 그래서 슐라이어막허를 칸트 이후의 신학자라고 한다. 또 칸트에게는 흄이 서 있다.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라는 말을 했는데 예를 들면 집을 짓다가 그만둔 것을 보면 거기에 시공자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집을 지을 때 시공자가 짓는 것을 여러번 반복적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공되지 않은 집을 볼 때도 배후에 시공자가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확대해 보면 이와 같은 큰 세계는 하나 뿐이어서 여러 집을 건축한 것을 경험하듯 그런 식으로 여러 세계가 건축된 것을 아무도 경험한 일은 없다.
그렇다면 세계는 하나 뿐인데 이 한번의 경험을 가지고 이와 같은 세계의 건축자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낼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흄의 이야기인데 그러니까 세계에 대해서나 하나님에 관한 것은 알 길이 없고 감각기관으로 증명되거나 포착되지 않기 때문에 지식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린다. 칸트는 그런 감각할 수 없는 세계, 드러나지 않은 세계를 예지계라 하고 드러난 세계를 현상계라 한다. 이 현상계는 볼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이런 도식을 전제하는 자연과학에서도 안다는 것은 우리가 달에 대해서 확실한 것은 몰라도 검증이 가능하고 그래서 달에까지 가서 보고 알듯이 검증이 가능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검증이 가능한 영역은 감각기관으로 접촉이 가능한 현상세계 뿐이다.
그러나 영혼의 존재가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 para psychology 혹은 이상심리학인데 여기서는 투시나 원시 같은 서로 감정을 통하는 것을 따지는 學인데 이런 것들은 감각기관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닌가? 그러나 para psychology에서는 분명히 여기 앉아서 볼 수 있는 거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보며, 내가 한번도 본적이나 이야기해 본 일이나 그 사람의 글을 읽어본 일이 없는데 저쪽 사람의 생각과 통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소위 물질로 표현된 것만을 제일로 하는 공산세계의 대학에서 이 이상심리가 제일 많이 연구되고 있다니 괴이한 일이다. 이들까지도 그 이론이 공리공론이 안되기 위해서 자기 생각을 혹은 추측을 사실로 하여 그 생각을 증거로 한다.
나를 따르면 정통이 되고 따르지 않으면 이단시 해 버리는 이런 부류의 사고방식은 학문의 세계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분명히 자기의 말을 할 때는 거기에 상응한 증거물을 제시해야만 그 말의 타당성이 성립한다. 그러나 이들처럼 감각기관의 영역만으로 지식의 영역을 한정한다면 그것에서 벗어나는 일은 알 길이 없게 된다. 그러니 하나님에 대해서, 신에 대해서 혹 영혼이나 내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 수가 없게 되어버리는 귀결에 이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으니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이 깨달아져서 안다고 믿는다. 결국 기독교의 진리를 가지고 기독교를 판단하는 일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주관적인 이야기와는 다른데,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진리를 받게 하시고 혹은 믿게 하셔서 하나님을 믿고 아는 사람으로 변화 시키므로 아는 것이다.
종교에서 제일 기본이 되는 존재가 영혼의 존재 또는 내세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인데, 저들의 도식에 의하면 우리는 전혀 그런 것을 알 수 없고 모른다는 결론이다. 영혼을 본 사람이 있는가? 어떤 시골 할머니 한분이 혼 나가는 불을 보았다는데 왜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가? 또 목사님 같은 신령한 세계를 믿고 전파하는 사람은 왜 보지 못하는가? 어느것이 진짜 바른 경험인가? 그런 것은 보편타당성이 없으므로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한다.
하나님은 물체를 알듯이 알 수 있는 분이 아닌데,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아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실적으로 아는데 아니라 신학체계에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힐난한다. 어느 정도는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사실은 우리가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서 우리의 바른 신학인 개혁신학과 신앙을 정립할 필요를 더욱 느끼면서 반성을 촉구한다.
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듯 그렇게 부름을 받았는가? 혹시 그렇게 음성이 들렸다 해도 목소리가 내 속에서 오는 소리인지 하나님에게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어떻게 구별하며, 또 검증할 수 있겠는가? 증거를 요구할 때 제시할 수 있겠는가? 여의도에 63층 빌딩이 있다고 했을 때는 가서 확인하여 검증이 가능하고 미국에 100층이 넘는 빌딩이 있다면 한국에서 그와 비슷한 계속적인 같은 경험을 하니까 내가 실제로 안봐도 수납할 수 있지 않은가? 또 그것이 어느 때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어떻게 수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줄 안다면 무슨 근거로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흄의 도식을 받은 칸트는 神은 현상계에 속하지 않고 예지계에 속한다고 인간의 감각영역 밖으로 내어쫓고 지식영역을 현상계로 국한하면서 만약에 하나님이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접촉이 가능하고 눈으로 보고 검증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벌써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며, 하나님이기를 그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벌써 현상계에 포함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경험 되었다면 그것은 내 감정이고 그런 감정은 내 속에 일어난 내재적인 사건일 뿐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우리 영역 밖에서 왔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內世界的인 주관적인 이야기로는 하나님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점자를 이용해서 적고 보지는 못하지만 손으로 만지고 느껴서 감각하여 시간과 거리, 그리고 길을 알고 지식을 포착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현상계 밖의 예지계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본다. 그러나 칸트는 믿음으로 보지 않고 우리가 알 수 있는 세계는 감각세계, 현상계 뿐이고 신은 예지계에 속하여 우리의 경험이나 과학에 의해서 검증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우리가 전통적으로 하나님은 존재하고 이와 같은 성품을 가지신 무한한 영적 인격적 하나님으로 알 수 없으니 하나님에 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제껴둔다.
그래도 신학은 하나님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니까 하나님을 말해야 할텐데, 알 수 없으니 말할 수 없다 하여 지식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리는 것이 칸트가 그의 실천이성비판에서 내린 결론이다. 이 결론에 근거하여 슐라이어막허는 그래도 기독교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종교를 감정의 일로 말하여 버리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슐라이어막허는 칸트의 이론에서 신학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기 초월해 계시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서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는 종교를 감정 느낌의 일로 보아 내재신학을 시작한다.
우리 중에도 이와 비슷한 성향을 보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나는가? 어떤 느낌에서 만나는가? 중생의 체험이라고 한다. 예수 믿고 정말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평안한 마음이 생기면 하나님이 와 계시는 것 같이 느끼지 않는가? 그러니까 슐라이어막허의 질문은 그것은 감정의 일이니까 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미국 그랜드캐년에 가면 정말 아름다운 그 경치가 장관이다. 그런데 남편이 그 낭떠러지를 보다가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 하자. 그때 그 여자에게서 감탄이 나오겠는가? 남편이 죽은 그 여인의 감정은 결코 그랜드캐년의 그 경치가 좋을리 없다. 그 여자에게는 결코 좋을리 없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여인의 감정이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린다. 여인의 감정이 아름답다 하면 아름답고 아름답지 못하다 하면 그것은 아름답지 못한 것이 되어 버린다. 많은 경우 우리의 경우가 이와 같을 때가 많다. 결국 우리도 내재주의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말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슐라이어막허가 내재신학을 인간의 감정에서 출발한 것은 그가 진센돌프에게서 나온 경건주의 운동에 가담하여 모라비안파와 접촉을 했고 소위 느낌을 강조하는 낭만주의 시인들, 문인들, 그리고 철학자들과 많이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종교는 느낌, 즉 감정의 일이고 주관적인 체험의 일인 것이다.
루터교의 경우도 루터의 중생체험에서 출발하므로 루터교도 중생체험을 많이 강조한다. 우리는 중생의 체험이 있는가? 아니면 교회를 다니다 보니 기도도 많이 연습하고 성경도 많이 읽어서 교회의 규칙생활에 자연히 훈련되어 젖어들어서 신학교도 오게 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 느낌, 감정으로 그것을 경험한다. 하나님이 내게 와 계신 것 같이 느껴지면, 유대인이 온 세계가 자기들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더 나아가면 율법 지지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믿듯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렇게 역사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니까 세계가 다 나를 위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철저히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느낀다.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 성경이 뭐라고 해도 믿으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중생체험에서 내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려 한다. 그래서 중생을 많이 강조한다. 우리가 중생체험을 가지면 하나님의 신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어 오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성령님이 내게 오시사 나를 새사람 만드시고 이 기쁨과 이 평안의 충만한 감정을 내게 허락하셨다고 좋아한다. 그러니 우리가 중생체험에서 하나님 만나기를 추구하면 종교감정 혹은 체험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내재신학으로 들어가는 문턱에 선 것이다.
그러니까 현대신학에서는 초월해 계시는, 객관적으로 계시는 하나님으로 부터 신학을 출발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내재신학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중생의 체험에서 접촉점을 찾아 기독교로 들어 온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출발점, 즉 출처의 계시가 중생체험이 아닌가? 하나님이 나를 성령으로 변화시키지 않는가? 더 구체적으로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오셔서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새사람 만들고, 나로 하여금 기쁨이 있게 하고, 평안이 넘치게 하고, 그리고 모든 세계가 나를 위해 움직이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자녀로 삼으셨으니, 이런 은혜와 감사가 또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중생의 체험의 자리, 즉 감정의 자리, 느낌의 자리가 아니냐고 악수를 청하면서 교묘히 들어온다. 이것은 개혁신학이 아니고는 막아낼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기독교가 분별 없이 내재신학을 두 팔을 벌리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18세기에 들어와서는 객관적으로 계신 하나님에게서 시작하던 전통적인 신학의 전제를 버리고 인간의 감정에서, 인간의 종교성에서 신학을 출발하여 종교체험을 강조하면서 그 일환으로 중생체험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을 어디서 만나는가? 어쩌다 영을 본 사람이 있어서 좋지만, 어떤 사람은 보고 어떤 사람은 보지 못한다. 또 그 경험의 그본이 다 다르다. 그래서 어느 경험이 진짜 표준되는 경험인지 다 달라서 표준을 정할 수 없다. 그것이 종교적인 경험의 문제점이다. 그러니 종교적인 경험을 표준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의 신앙을 다시 검토해 보고 생각해 보자. 어디서 예수를 만나는가? 우리의 대답은 중생의 체험에서 종교적인 경험에서 만난다는 것이 한결같은 대답일 것이다.
산에 올라가서 만나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를 타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제임스 오웰처럼 인공위성을 타고 달나라 갈 때 실제로 만나는 것도 아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느낀 것이지 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을 지식의 대상으로 알 수 있는데서 시작할 수 없다는 현대신학에 동의하여 종교적 감정에서 중생의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려 하고 구체적 체험을 중요시 한다. 그러니 사변적인 데서 경험적이 된 것이다.
우리 한국도 이처럼 기도원과 성령체험의 부흥회가 난무하고 오순절 운동이 적극적으로 지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개혁신학과 신앙은 감정을 부인하고 목석이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중생하면 영의 사람의 감정으로 순화되어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이룬다. 특히 오순절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체험해 보았느냐면서 아무리 그것이 영원한 보편의 진리라도 개인 경험으로 짓밟아 버린다. 아예 진리를 분별할 분별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신학의 임무는 무엇인가? 그것은 종교적인 감정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기술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모든 신학의 출발점을 하나님에게서 세계 안으로 가져오고, 특히 인간의 경험 안으로 혹은 느낌으로 끌고 와서 이제는 출발점이 인간의 감정이고 최종 참조점도 내 종교적 체험이 되므로 인간에서 출발하여 인간에게 되돌아 간다. 이것이 그의 내재신학이다. 이 내재신학에서는 “우리는 절대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이들이 말한 종교는 절대자가 있는 것처럼 그냥 매어 달린다. 절대자가 있어서 거기에 내가 종속되기를 원할 뿐이다. 절대자는 알 길이 없으므로 있는 것처럼 자신을 내어 맡기는 절대의존의 감정이 종교라 한다.
그러므로 근세신학은 Schleiermacher의 내재신학 이다. 그래서 Schleiermacher를 내재신학의 아버지, 혹은 근세신학의 아버지라고 하여 19세기에 제일 중요한 신학자로 높인다. 그것은 전통적인 신학을 완전히 180도 회전시켰기 때문이다. 그가 쓰는 용어가 19세기 이후 신학 용어와 같기 때문에 근본진리가 같은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가 전통적인 용어를 사용해도 그 내용은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그러니까 전통적으로는 객관적으로 창조주로써 절대적 존재로 계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계시에서 모든 것을 끌어내므로 전통적인 신학을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한 것이다. 소위 “글라벤스레벨”, “복음주의 신학론”이란 책은 완전히 종교적인 체험으로 종교의식에서 그의 모든 신학을 재구성하는 대표적인 책이다.
내재신학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전통적인 견해와 전혀 다르다. 이미 말했듯이 예지계에 속하는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은 알 수 없으므로 우리의 지식의 대상이 못되고 또 형상계에 속하면 그는 神일 수가 없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존재론적인 면에서 초자연적으로 삼위일체로 선재해 계신 하나님의 아들, 즉 삼위일체 제 2위격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우리는 신에 대한 생각이 약하고 또 변하며 때때로 바꾸지만 예수에게는 神意識, 즉 종교적인 체험, 또 그 의식의 도가 무한하다는 그런 면에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가 우리의 구주라고 할 때도 그가 선재해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써 도성인신 하시어 십자가에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큰 역사를 하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구세주라기 보다는 그가 갖는 그 무한한 신의식이 그를 믿을 때 우리에게 전달해 온다는 의미로써 구주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의 기독론이며 구원론에 있어서도 실제로 죄에서 구원받아 천국가는 구원은 없다. 물론 18세기가 슐라이어막허 같은 자가 나오도록 준비를 했지만 19세기 부터 이렇게 하늘과 땅의 차이를 내는 큰 전기를 갖는다. 그러므로 내재신학에서 “믿는다” 할 때 객관적 계시가 있고 계시자가 있기 때문에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적인 의식을 믿음이라고 할 뿐이다.
그가 쓴 “종교에 대하여”(Uber die Religion)이란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현상계, 즉 유한세계는 무엇인가? 무한자 혹은 절대자가 자기를 현시하는 방식 혹은 매개체이다.” 이것은 그가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아서 나온 이야기인데 스피노자는 이 현상세계를 그 유일한 실체, 혹은 절대자를 나타내는 형태 혹은 양태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현상세계에 우리와 전혀 다른 질적인 것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것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비에 속한다. 그 신비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는 없지만 구체적으로 나타날 때는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예컨데 거대한 산 아래 섰을 때 쏟아지는 폭포 그 장관을 볼 때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데 이런 신비한 현상이 종교를 느끼게 하며 종교를 생산해 낸다고 한다. 그러니 Schleiermacher에게 감정은 배제할 수 없는 필수적인 요인이다. 또 그는 종교가 지식의 영역이며 과학이 되며 종교일 수 없으며 감정이기 때문에 배척할 수 없다고 말한다.
Schleiermacher에게는 모든 종교현상은 종교의식일 뿐이며 모든 사건이 계시와 종교적인 현상이 이 세계 내의 사건일 뿐, 초자연적으로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主語도 述語도 모두 다 인간일 뿐이다. 여기서 예수는 저 초자연의 세계에서 온 존재가 아니라 이 현상계에 속한 존재로써 다만 무한한 종교감정으로 신 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분명히 해줄 뿐 아니라 또 다른 이에게 神意識을 갖게 하는 훌륭한 종교교사요, 탁월한 윤리교사일 뿐 아니라 완전한 인간 완성이요, 종교 천재라고 하면서도 그의 초자연성을 부인한다.
사실 Schleiermacher는 예수의 피를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포도주 대신 물을 마시며 성찬식을 한 사람으로 예수의 보혈의 공효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내재신학자에게는 교회도 예수에게 무한히 있는 신의식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모인 단체일 뿐 그렇게 중요한 것이 못된다. 이 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성경이 제시하는 가장 구체적인 예수의 인간성을 어떻게 귀결 지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가장 신뢰할 만한 정확한 예수상을 구현하는 일이 19세기의 중요한 신학의 과제였다.
그러나 19세기 말경 부터 20세기 초까지 진행되었던 역사적 예수 탐구는 학적으로 가장 잘못된 비기독교 사상으로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변증신학자 불투만이 나와서 역사적 예수 탐구를 무너뜨리므로 그 제자들에 의해서 새 역사적 예수 탐구가 시도 되었다. 이렇듯 역사적 에수 탐구의 덕으로 예수는 탁월한 윤리의 교사, 종교의 천재가 되고 모든 것은 인간으로 시작해서 인간으로 끝나는 데에로 더욱 나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헤겔 이후 포이에르바하(Ludwig Andreas Feuerbach)가 신학은 신학이 아니라 인간학이라 했고 또 사람이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에 의해 창조 되었다고 했다. 헤겔의 종교철학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자연풍경을 그린 그림은 사실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상화 혹은 추상화를 그렸을 경우는 대행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화가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 자기 안에 있는 생각 혹은 의식 밖에 있는 나무와 풀들과 같은 자연에 투영해 놓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저 그림을 보면 화가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듯이 저 밖의 사물들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생각으로 저 사물들을 만드셨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물 자체는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나무면 나무로 인식해 주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다. 그러니 자연에서 인간 의식으로 되돌아 온다면 그것은 Idea로 혹은 사상으로 안다. 또한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수준으로 오면 하나님을 경배하고 생각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경배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 자기 자신을 많이 알리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종교의 수준은 아직 종교의 본질을 직접 직관하는 단계는 못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많이 나타내기 위해서 여러 다른 상징들과 상징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른 미술이나 예술의 차원보다 하나님에 대한 것이 직접적으로 가장 많은 데가 종교이지만 신학도 상징적인 지식을 많이 써야 하니까 본질적인 지식 자체를 다루지 못한다. 철학은 하나님을 직접 대상 하면서도 상징적인 용어는 쓰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그 본질 자체대로 의식하는 것이 어딘가? 철학자의 인지 즉 철학자의 마음의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철학자의 마음의 의식에 자기를 가장 많이 알리셨기 때문에 철학자의 의식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자기계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헤겔은 말한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 자신을 계시한 것이 되고 그 말을 바꾸면 결국 인간의 의식이 하나님을 만들어 내는데 귀착한다. 그러니까 헤겔 이후 포이에르바하가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 의해 인간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이라고 하면서 인간을 인간이 논하므로 신학은 결국 인간론, 혹은 인간학이라고 했다.
“도대체 어떤 하나님이기에 신학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문제가 많은가?”라고 질문하면서 최근에 폴 틸리히는 기독교가 너무 작아서 제한이 너무 많으므로 관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 있다(Panen theism). 그런데 결국 현대 기독교가 많은 제약을 만들어서 전능의 하나님을 너무 축소시켰다고 했다. 결국 기독교의 진리에서 벗어나 인간에게 필요한 하나님을 만든 것이다. 여기에 남는 것은 인간 뿐이다.
그런데 19세기 말엽 부터 20세기 초에 들어오면서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각도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예수의 선포에 종말론적 긴장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18세기에서 19세기 까지의 예수는 정말 친숙하고 훌륭한 종교의 교사요, 탁월한 윤리 교사이며 인간의 완성자로써 참으로 우리가 가까이 할 수 있는 친근한 존재였는데 이제 다시 예수의 선포와 행적을 살펴보면 우리와 친근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접근하거나 하나가 될 수 없는 생소함이 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일상적인 종교나 증거를 필요로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선포에는 우리가 이해 못할 생소한 종말론적 선포, 아주 급박한 하나님의 나라가 곧 도래한다는 긴박성이 그에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예수의 선포는 우리가 마음대로 조정하거나 어거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을 결코 말하지 않고 심판으로 오시는 하나님,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오시는 그런 하나님인 것을 선포했다. 그러므로 그런 예수의 삶 속에서 발견한 것은 예수는 우리가 그렇게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Johanes Weiss는 “Die Pkdigt Jesu”, 즉 “예수의 선포”라는 책에서 최초로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바로 그 뒤를 이은 사람이 Albet Schweitzer 이다.
슈바이쳐에 의하면 예수가 자기 일생에 하나님께서 자기 나라를 가지고 오시는 걸로 믿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고 선포했다.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 자기의 인격에서 자기를 심판하시고 자기의 나라를 세우실 것으로 믿고 기대했는데 그것이 실지로 이루어지지 않자 예수는 자기가 비극적인 죽음을 죽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강제로 끌어 들이려 했다. 그런데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 종말론적 예수의 선포의 국면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은 심판주로 오시는 분으로 말을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와 친숙한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Rudolf Otto가 “Des Heilige”, 즉 “거룩”이란 책에서 “종교라고 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 마음대로 내것으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그것은 억압하는 존재가 아니라 Mysterium, 즉 신비이다. 그래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다만 신은 우리와 동질선상에 있는 존재가 아니어서 종교의 대상으로 나타날 때는 두렵고 떨리는 존재로 혹은 두렵고 떨림으로 나타난다.
모세의 경우도 호렙산에서 불이 나타날 때 두려워 했고 그래서 신을 벗었다. 그런 것은 무엇이라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한다. 또 베드로도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 두렵고 떨면서 나를 떠나라고 했다. 그러니 그것은 인력으로 설명될 수 있는 그런 영역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Otto가 하나님을 전통적으로 친숙한 존재에서 우리와 동일선상에 들어올 수 없는 존재, 우리하고는 별개라고 하는 전적 타자라는 개념을 준비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자 이고 또 심판자로 오실, 전적으로 우리와는 다른 존재란 것이다.
슈바이쳐는 이 타자의 관념, 즉 미래 종말에 심판하러 오신다는 것을 변증신학으로 순간, 현재 심판하시는 결단으로 바꿨을 뿐이다. 그러니 슈바이쳐를 비롯한 현대 신학자들의 종말도식은 미래적 종말 도식이 아니라 매 순간 순간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심판으로, 변증법적인 도식으로 바뀌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에서 내려와 심판하는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와 동일선상에 놓인 것이 아니라 벗할 수 없는 전적인 타자로 오신다.
이렇게 헤겔의 영향으로 다윈의 진화론의 힘을 입어 무한한 진보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으로 잘되어 나가는 것으로 철저히 믿고 있던 서구인들에게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자기들의 손으로 건설한 문명을 자기들의 손으로 파괴한 이것을 도저히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이제까지 전쟁중 최악의 전쟁으로 가장 많이 사람을 내세우던 자들이 가장 많은 사람을 죽였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데 큰 충격과 회의가 일어나면서 인간은 죽음 앞에서는 유한한 존재로 우리의 이성도 죽으면 끝나는 불합리한 존재인 것을 깨닫게 되었고 무엇이든지 가능하다고 믿언 이성으로 포착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제 1차 세계대전이 진행중인 그 무렵 Karl Barth가 모든 신학공부를 마치고 처음으로 제네바의 옛날 칼빈의 교회에 와서 부목사로 일을 했다. 그리고는 스위스 Safenwil에 가서 목회를 했다. 그는 선생 Adolf von Harnack에게 배운데로 비평적 방법으로 종교사적으로 열심히 연구하여 설교를 했었다. 그런데 교인들이 자기 설교는 들으러 오지 않고 주말이면 다 산으로 가고 시골이라서 어린 아이들만 온다. 그래서 말씀을 들으러 와야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의 설교를 외면한 것을 보고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목사는 커텐을 열어놓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고민을 했다.
그래도 지각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목회하러 왔는데 답답함과 괴로움이 참으로 많았던 것이다. 그때 그는 자기 선생에게 배운 자유주의 신학 가지고는 도저히 안되는 줄을 안 것이다. 그 때 마침 키에르케골의 저서들이 독일어로 번역되기 시작했고 키에르케골은 변증법적으로 전개하여 하나님은 우리와 전적으로 다른 존재로써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무한한 거리가 있다고 썼다.
스위스에는 두 종류의 종교개혁 교회가 있다. 그것은 칼빈의 노선과 다른 노선인데 Karl Barth는 종교개혁자의 교회로 되돌아가서 무명의 인사로서 그는 로마서 강해를 쓰기 시작했고 그 첫판이 1918-19년에 나왔다. 그는 그 책에서 역사 비평적인 방법으로 서양문화가 갖는 그 선에서 연속되는 그 신학작업을 강렬하게 비판하고 인간과 하나님이 같은 선에 서 있다는 자료를 깨부수기 시작했다. 그때는 전쟁 중이기 때문에 위기의식이 가장 높아져 있었고 또 전쟁이 끝날 무렵의 그 위기의식이 Karl Barth의 변증신학을 탄생시킨 것이다.
Karl Barth의 책이 출판되자 지금까지 내재신학으로 그처럼 평화롭던 곳에 그것이 폭탄으로 작용하기를 시작했고 신학계가 온통 깜짝 놀란 것이다. 사실 Karl Barth 자신도 그렇게 큰 반항이 일어날 줄 상상도 못했지만 전통적으로 놀던 신학자들의 신학의 주제를 빼앗아 간 것이었다. 그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전통적인 개신교 신학의 주제를 다시 찾아주면서 새방향을 선정해 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서구 19세기에서 20세기 사회로 넘어오는 큰 전환점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내적으로 말씀해서 오신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위로 부터 말씀해 오시는데 오실 때 마다 그냥 심판주로 심판하시기 위하여 위기에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렇게 큰 반항을 일으킬 줄 몰랐기에 그 변화를 어린아이가 밤중에 종탑에 올라가서 떨어지려고 해서 붙잡은 것이 종 줄이었다. 그래서 매달렸더니 종이 사방에 울려 사람들이 다 잠에서 깨어 버렸다. 종을 칠려고 했거나 사람을 깨울려고 하지 않았지만 깨우게 되었다는 비유를 들어서 그때는 설명한다.
이때 그의 선생 Adolf von Harnack이 제일 먼저 Karl Barth의 신학적인 전개를 반대하였고 그가 제일 많이 논쟁을 벌인 것은 그의 선생 Adolf von Harnack 이었다. Adolf von Harnack은 “네가 그 길로 가면 이제까지 기독교가 쌓아온 역사적인 비평방법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Karl Barth는 신학 강의를 하러와서 신학 강의를 한 것이 아니라 설교 원고를 읽었던 것이다. 1921년에 재판이 나왔는데 그는 대학교수로 청빙되었다. 여기까지가 Karl Barth에게 오기까지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엽가지의 신학사상의 대략이다.
현대신학은 1919년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200년 이전 계몽주의자 칸트에 의해서 소개되었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부터 인간으로 출발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로 바꾸어졌으니까 쿠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한다. Karl Barth가 로마서 주석을 쓰던 1918년에서 1919년 이전과 이후의 달라진 신학적 배경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계몽주의, 즉 자율주의 이다. 칸트가 계몽, 즉 성숙이 무엇이냐 할 때, “자기 발로 서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주어진 이성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교회의 권위에 의존하여 교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외적 권위에서 놓여나서 자기 이성을 활용하는 것이 계몽인데 칸트와 현대 계몽주의 정신에는 다 이런 사상이 있다.
우리는 Karl Barth 비판이 없어서 Karl Barth가 그전과 차이점이 아직 없고 결국 근본적으로 같다고 하니까 무슨 이야기인 줄 몰라서 Karl Barth가 종교개혁으로 완전히 돌아간 것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결국 Karl Barth는 전통적인 의미의 개혁신학에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근세인의 의식에 의존하고 또 이성에 의해서 표준을 삼는 신학에 머무르고 만다. 결국 Schleiermacher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야 맞다.
결국 이성이 계몽한다는 말은 낙원에서 부터 시작했는데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외적인 그 말씀의 권위에서 벗어나 먹으면 죽는다 했는데도 독립된 이성으로 죽을지 어떨지 내 판단에 의해 먹어본 것이다. 그러니 현대신학은 Karl Barth가 서 있는 공동 地盤 위에 칸트가 같이 서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태도이다. 하나님의 외적인 권위의 말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의 이성으로 자기의 종교적인 의식으로 했기 때문에 Karl Barth가 인간에서 새롭게 하나님 말씀에로 되돌아 간 것 같아도 결국 칸트를 지나서 에덴동산까지 간다.
이런 면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중세의 종합된 사상은 자연을 초자연적인 면에서 해방시켜 놓았다. 사실 인간의 마음을 잘못 전개해 놓았지만 희랍세계에서의 인간 마음은 종교를 어떻게 구성했느냐 이다. 그러니까 모든 사상의 밑바탕에 종교적인 전제가 들어 있다. 그러나 그 전제들은 성경적 기본 전제들을 배척하기 때문에 항상 상호 모순되는 두 개념으로 종교적인 전제들을 만들었다. 그것은 변증법적 철학적 사고인데, 신학과 종교 뿐 아니라 모든 사상을 지배하는 종교적인 공동 전제인데 그것이 희랍적 사고인 형상과 질료이다.
변증철학인 희랍철학의 기원, 동기 그리고 그 전제인 형상과 질료
모든 신학사상을 지배하는 종교적인 전제가 형상과 질료이다. 그러나 희랍사람들에게 있어서 더 기본적인 것은 무한하게 연속하여서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아니하고 살아 움직이며 흘러가는 그런 연속된 흐름인 질료에 더 근본원리를 둔다. 생명도 그냥 흘러가는 것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나는 것은 흘러가는 생명원리에 거스리는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것은 그 흐름을 반대로 거슬러 일어나는 것이다.
왜 죽음이 오느냐? 그 원리를 어기고 형체화, 즉 형상화 되었기 때문에 죽음이 온다고 한다. 희랍철학 사고에서 그런 것은 합리론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생명이 무한히 흘러가고 돈다고 하는 사고방식 저변에 희랍 국민 전체에 종교의 기본이 전제되어 있다.
Dionisus는 장난의 신을 섬기는 흑암의 신이다. 그런데 백성들은 형상이 있는 이런 종교의식 속에서 살았다. 모든 것이 의식 속에서 흘러 내려간다. 그러다가 구체화 되는 것은 남는다. 생명은 영원히 흘러가는 것이며, 구체화 되는 것은 개별화 되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흐름은 개별화 되는 것, 형체화 되는 것을 막는다. 하나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이 흐름에 젖어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개인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다. 희랍사고에는 신이 개인의 운명에 개입해서 돌이키고 간여할 수 없다. 그것은 어둠의 연속적인 흐름, 그런 것을 상징하는 것이고 통속적인 형상의 빛에 나타나는 빛은 계몽된 사람들, 철학자의 계몽된 사고에서 나타난다. 이 두 흐름은 절대로 조화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런데 어둠에 빛, Apollo 신으로 대치되는 형상이 장난의 신으로 나타난 Dionisus와 합쳐졌다. 이 두개의 모순 개념이 함쳐진 것이다. 그래서 이 둘을 조화하기 위한 노력이 희랍철학의 영향이다. 이들은 이 둘을 모든 것의 기본으로 삼았다. 형상과 질료는 조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늘 변증법적으로 전개되고 사회에 긴장이 된다. 하나를 강조하면 절대화(ism)는 발생한다. 왜? 변증법적 긴장이 있으니까!
이들이 하나님을 절대화 하는 것은 변증법적 도식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참 절대자의 근원을 떠나서 다른 것으로 참 절대자를 대체하기 때문에 우상 숭배이다. 그러니까 창조세계의 일부를 절대화하여 참 절대적인 절대자를 대체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의 파기자인 인간은 참 절대자를 배제해 버렸으니까 자기가 절대자를 만들어서 거기에 자기를 종속시켜야 한다. 피조물의 기본 특성은 의존성인데 그래야 자기를 종속시켜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자에게 자기를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참 절대자를 배제했기 때문에 결국 피조물을 절대화하여 대신 대체하면서 자기를 거기에 매달아 종속한다. 그러므로 여기는 긴장과 모슨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반대되는 두 개념을 합쳤기 때문이다. 두 개념 형상과 질료에서 질료는 형체 없이 무 규정적으로 계속해서 흐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체화 되고 형체화 되는 것을 막는다. 결국 그것을 용납하지 않고 없애버린다. 그런 때 형상은 어떤 형태로 나타난 그런 것이다. 그래서 형체화 됨으로 개별적으로 個物이 되어 나타나는데 질료가 그것을 헌다. 이것을 희랍철학은 운명이라 한다. 운명의 경우는 신들도 거기에 전혀 간섭하지 못한다. 그 때 형상은 이데아 혹은 빛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두 개념이 형체화 되는 것은 흐름에 바로 모순 개념이다. 그런데 희랍사상은 이런 반대되는 두 개념을 합해가지고 형상화 하기에 여기에도 변증법적 긴장이 있다. 그러니 항상 한쪽 형상이 우위를 차지하면 질료가 보복을 한다. 결국 철학은 이것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것을 소위 계몽된 지성인들이 종교로 표시한다. 그리고 이 변증법으로 만상을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으로 이것을 정식으로 표현을 했지만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으로 한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모든 個物은 형상과 질료가 합해서 된 것이다. 백묵은 백묵이라는 개념 그것이 형상, 혹은 이데아와 질료가 합해서 된 것이다. 책상은 책상이라는 개념과 나무란 질료가 합해졌다. 그러면 나무는 무엇이 그 형상이고 무엇이 그 질료인가? 책상을 만드는데 나무는 방금 책상이라는 개념의 질료였다. 그러면 나무는 다른 하나의 형상으로써 무엇과 무엇이 합친 것인가? 나무라는 개념에다 무엇을 합해서 나무가 되었는가? 이것은 형이상학적인 도식이지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못된다. 흙은 어떠한가? 흙이라는 개념에다 어떤 질료를 합한 것인가? 흙이라는 질료를 합치면 흙이 되는데 그러면 결국 무 규정자에 도달한다. 결국 그것이 원시 질료인 것이다. 물질은 결국 규정되지 않는 규정될 수 없는 그런 것에로 되돌아가고 만다. 그래서 플라톤에게는 흙과 먼지와 머리카락 같은 그런 이데아가 저 천상 세계에 있다고 그랬다. 사실 이것도 한계개념에 봉착한다. 흙이나 나무에 이르면 무엇이라고 정의될 수 없는 원시 질료재료에 돌아간다. 그러니까 둘은 상관개념이지 명확히 구분된 것이 못된다. 그래도 항상 질료는 흐름으로, 형상은 형체로 나타날려고 하는데 이렇게 나타나려는 것을 흐름은 없애려고 한다. 두 개의 모순 개념이 합쳤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변증법적인 일이 야기 된다. 이것이 희랍철학의 존재론을 설명하는 기본 도식이다. 그러니까 형상도 철학적인 개념 같고 질료도 그냥 철학적인 개념 같아도 그 근본은 두 개의 대립된 종교의 전제들이 합친 것이다.
이런 형이상학적인 것 하나가 중세에 건너 왔는데 중세에는 자연에다 은혜를 합친 도식에 선다. 자연에다 은혜를 합친 것, 자연은 본래 주어져 있는 것이요, 그래도 고유한 존재로 있는 것이다. 그런 개념은 형상과 질료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 독자적인 면이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가 못된다. 불완전하고 미비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에다가 은혜가 온다. 자연은 고유적으로 있는 것이고 은혜가 와서 끌어올려 앙양을 한다.
로마교회도 기독교이니까 앙양만 말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로마교회도 은혜가 와서 죄 문제를 해결하고 치료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은혜는 부족한 자연을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린다. 자연개념은 희랍철학에서 왔고 은혜는 기독교에서 온다. 은혜가 와서 죄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그러나 죄문제의 해결은 회복이 아니라 죄를 해결함과 동시에 높은 차원으로 앙양시킨다. 이렇게 함으로 처음 기독교의 은혜가 가져온 자연에 내린 과격 선언은 없어지고 은혜와 자연이 둘이 조화함으로 은혜를 첨가하면 그저 있는 것보다 좀더 나은 상태로 되는 것으로 말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비단도 그 자체로 좋은 것이지만 수를 놓으면 얼마나 좋은가? 부드럽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보기는 더 좋아서 금상첨화격 이듯이 은혜가 와서 자연을 끌어 올린다고 한다. 이렇게 자연과 초자연, 자연과 은혜의 이원론적 2층 구조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자연이성으로 자연영역을 알 수 있으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삼위일체 신비 같은 것은 은혜로 아는 것이지 자연이성으로 자연을 탐구함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못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영역은 자연이성으로 자연을 탐구함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연의 사물 본성의 이치 같은 것을 탐구하는게 아니다. 빵을 굽는 사람은 빵 굽는 일에 바빠서 사물의 일이 어떻고 그 본질이 어떻고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다. 물론 우리 한국에는 쌀을 자급자족하니까 농사짓는 사람은 쌀로 돈 바꾸기 바쁘지 쌀의 본질이 어떻고 따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농부가 해준 쌀밥을 먹고 여유있어서 쌀의 본성이라든지 이런 것을 따지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조금 더 보편화하면 하나의 學으로 될 때에 그런 것은 자연의 이성으로 했어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성 그 자체와 자연 그 자체가 죄 때문에 타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부족한 정도이다. 그래서 은혜가 와서 그 부족을 보충한다. 그리스도 성육신의 은혜와 삼위일체 신비같은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없다. 그러니까 그런 경우에는 신앙을 통해서 믿음으로 은혜로만 알 수가 있다.
이 두 개념은 상당히 많은 경우에 희랍적 사고와 기독교적인 것과 합친 것이기 때문에 아주 어려운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나중에 인간의 이성만 취택하게 되면 자연은 필요없게 되고 은혜만 강조하게 되고 은혜를 취택하면 이성의 길이 배척되게 된다. 그래서 중세가 끝날 때 이성과 자연을 많이 택하여 근세 계몽주의가 되고 은혜만을 택하는 종교개혁이 나왔다. 이것과 함께 세번째 기본전제가 있는데 이것은 희랍적 사고, 즉 자연개념에다가 기독교의 은혜 두 개의 전혀 상반된 것을 합친 것이다.
그 다음에 근세에 들어와서 소위 자연과 자유이다. 자연은 그대로 두고 은혜라는 개념을 자유로 바꾼다. 그런데 이제는 중세 때와는 다른 의미로 자유와 자연이 역사하는 것이다. 자연은 인과율이 적용되는 그런 세계로써, 완전히 물질의 자연법칙이 적용되는 그런 세계이다. 인과율이 그 기본이고 인간은 그것을 넘어서서 자유를 가진 인격이어서 자유를 가진다. 그래서 근세인은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것이 그 理想이었다.
이제까지 인간이 너무 자기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하고 외적인 권위에 얽매여 살면서 하나님 말씀의 권위, 그리고 모든 것을 신부에게 물어서 하고 신부님 가르쳐 준대로 하고 신부님 해석한대로, 상담한대로 했다. 신부님 말이 곧 하나님 말씀이었고 교황의 말이 곧 하나님 말씀인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이성을 활용해서 자기가 판단하는게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율법적인 속박에서 또 자연의 속박에서 해방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지만 종교개혁이 가져다 준 그 자유는 죄로 부터 자유이고 나를 얽어매는 악으로 부터 자유이며 해방이었다. 그런 은혜가 가져오는 자유와 해방의 개념을 근세인들은 역으로 바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은혜로 부터 오는 죄로 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외적인 권위의 종속화된 것에서 자기 스스로 자기 발로 서는 것, 더 이상 외적인 권위를 어떤 형태로든지 받지 않는 것, 그것을 진짜 자유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외적인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제 발로 자기의 주어진 시점에서 주어진 재능을 활용하여 자기가 판단하고 선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외적인 권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유를 다시 해석했다. 또 인간은 자연으로 부터 많은 속박을 받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자연과학이 발달하니까 길을 다니기 편리하게 만들고 질병도 막아 전염병도 막을 수 있고 홍수도 막을 수 있고, 한재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 자연은 신들의 거소요, 영역이어서 거기서 일어난 것은 신들의 영역이기 때문에 감히 사람들이 접근했다가는 사람이 크게 벌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마음껏 다스리고 통제하고 다스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학이 발달하게 되므로 자연의 이치와 법칙을 알아서 적용하면 자연을 어거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베이컨이 한 말 가운데 “지식이 힘”이란 말은 그것을 두고 한 말이다. 질병은 다 하나님의 진노로 생각했는데 병명이 무엇인가 연구해서 주사를 맞으니까 전염병이 없어졌다. 자연의 이치를 알아서 자연을 어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자연을 마음껏 지배하므로 자유를 100%로 누릴려고 했다. 자연을 지배함으로 자연 위에 자유를 누리는 것이 근세인의 이상이요 모든 외적인 권위로 부터 해방되고 또 자연의 억압으로 부터도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의 비밀을 하나씩 하나씩 캐내어 그것을 지배하므로 인간의 자유를 확대해 갔다. 무서운 동물들도 그 동물의 생리를 잘 이용하면 다 다룰 수 있다. 호랑이 하면 벌벌 떨었는데 지금은 다 잡아다가 동물원에 넣어놓고 구경한다. 그렇게 이성을 활용해서 자연을 마음껏 지배하므로 자유를 확보하려고 한 것이가. 그것이 근세인의 이상이요 이성을 마음껏 활용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성의 무한한 탐구의 영역을 이성에게 열어준 것이다. 이성으로 못할게 없이 이성으로 다 할 수 있도록 믿게 했다.
그런데 자연과 자유, 이 둘이 서로 상반된 개념이다. 자연은 필연의 법칙이요, 다위의 세계요, 자유는 인격의 세계, 인간의 세계인 것이지, 자연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현재처럼 자연과학이 발달해서 자연 위에 큰 행사를 한 때가 없었다. 그러나 자연계에 행한 이러한 자유의 행사가 인간에게 까지 적용되므로 굉장히 자우로운 것 같지만 말할 수 없이 제한되어 있다. 근세 현대인 만큼 개인의 내적 무력감을 절감한 때가 없었다. 자연은 필연의 법칙이고 자유는 당위의 세게이다.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상반된 두 개의 개념, 자연과 자유가 서로 다툰다. 그러니 늘 긴장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위를 말하면 실존주의가 되는데 그래서 실존주의는 인간의 존엄, 인간의 자유를 위해 기계문명을 막으려 한다. 그렇지만 어디 막아지는가? 현대문명이 가는 길을 막을 길이 없게 되었다. 우리 교회들도 전부 다 개교회주의로 있는 한은 해결할 길이 없는 것이다. 정책의 문제를 항의해 보아도 개교회 뿐이니까 힘이 없다. 자유의 이 두 개념은 그 전체에 있어서 서로 상반된 두 개념이 합친 것이니 변증법적 긴장이 있다. 참 자유는 종교개혁이 가져온 은혜에서 온 자유이고 다른 것은 세속화한 자유이다. 그러니 상반된 두 개가 합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현대인 만큼 무력하고 무능감을 절감하는 때가 일찌기 없다. 왜 그런가? 다 그릇된 종교적인 전제 위에 입각해서 서 있기 때문이다. 자유가 근세인의 신앙이요, 자연도 마찬가지인데 그렇기 때문에 바른 學이 안 나오고 ism(이데올로기)이 나와서 사회를 파멸로 이끈다. 소위 모든 사람들에게 이 모든 철학의 전제에 있는 종교적인 전제를 발견해 내는 일을 도예베르트가 했다. 그것이 그의 훌륭한 공이다.
그러면 성경은 어떤 전제이냐? 창조와 타락과 구속이다. 여기서만이 변증법적인 긴장이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인간에게 참 자유와 생이 보장된다.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바르트의 이야기 중에는 근세인의 기본 전제되는 자연과 자유의 원리가 그의 신학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로 되돌아가는 것 같아도 그것이 아니고 근세인의 근본 종교적인 전제가 바르트 신학에도 지배하고 있다.
여기 무한정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자연이다. 그리고 자유도 인간의 이성으로 마음껏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그런 이치를 말한다. 그래서 자기 사고를 지배하는 아무런 외적 통제가 없는 것을 자유라고 하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기본 전제가 그 바탕에 흐르고 있다. 이 자연과 자유의 개념으로 근세인들이 세계를 다 설명하였다. 이 자연의 개념으로 기독교를 배척하기 위해서 최초로 나온 것이 영국의 理神論 혹은 自然神論이다. 이신론에 의하면 그 이상 외부의 간섭과 보충이 필요없이 자연은 그 자체로 충족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연이라는 큰 기계를 만들어 놓으시고 그 이상 자기가 간섭하지 않아도 돌아가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자기가 직접 지은 자연에서 후퇴하신 것이고 더 이상 간섭하실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무신론의 원조상이 되었다. 그게 그럴듯 하고 좋게 보인다. 하나님이 전능하시사 천지를 만드셨으면 게속해서 간섭하고 일하실 필요가 있겠는가? 자식들도 늘 간섭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스스로 서게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자율이 생긴다. 인간이 인간 자신에게 법이 되는 것이다. 그 말은 인간이 이성을 표준으로 해서 이성을 지도자로 해서 이성이 내린 판단을 바르고 합당한 것으로 믿고 그렇지 않는 것은 배척한다는 뜻이다.
근세인은 참이고 거짓이고를 이성에 의해서 판단한다. 그리고 선악의 판단도 마찬가지로 이성으로 한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의해서 선악과 진위를 판단하고 믿는게 하니다. 이성의 판단에 비추어서 맞으면 옳고 안맞으면 틀린 것으로 결정한다. 2+3=6, 이것은 수학공식에 안맞으니 틀린 것이다. 1+1=1, 이것은 될 수 있다. 만년필 뚜껑을 열면 두개, 다시 끼우면 하나가 된다. 1+1=1의 경우 사과를 하나 놓고 또 하나를 놓으면 둘이 된다. 2+3=5인데 6이라고 하면 착각을 한 것이다. 지각에 안맞기 때문에 거부한다. 진위와 선악을 이성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한다. 그러니까 모든 진위와 선악의 최후 심판이 이성이다.
그러니까 자율이란 말은 인간은 피조물인데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 법을 그 권위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그것을 버리고 자기의 이성과 판단을 모든 것의 표준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거짓 자율이다. 물론 자율해서 스스로 서야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 의존심이 많아서 제 정신으로 제 스스로 서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자율이 아니다. 현대인은 진리에 대한 궁극적인 표준, 그리고 최후의 심판관을 바로 이성으로 삼는데 이렇게 되면 안된다.
칸트에게 있어서 인간의 자율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서 자기 자신을 계시하신, 自證하신 그 하나님의 계시 대신 인간의 자율적인 이성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더 이상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이 결정한다. 그런데 그 이성이 개개인들에게 있는 것도 되지만 누구든지 다 보편타당할 수 있는 이성, 온 인류에게 공통된 그 이성, 어느 특수한 사람들이 갖은 그와 같은 이상한 직관, 통찰, 투시, 그런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갖는 보편한 이성, 그런 것이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에 합당히 이르도록 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내가 한다고 한다. 할 수 없는 죄인이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구원자가 밖으로 부터 오실 필요가 없게 된다. 인간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성을 신적인 높은 존재로 본다. 보통 탁월한 존재가 아니어서 인간의 이성을 神的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 사고 때문에 그런다.
임마누엘 칸트의 현상계와 예지계에 대하여
근세 칸트 이후의 신학은 다 칸트의 기본원리를 집행한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이 이성으로 알 수 있는 영역이 현상계라 해서 그 위에 혹은 그 밖의 세계를 예지계라 한다. 그리고 현상계만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무엇을 안다고 할 때는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백묵이라고 하는 것도 보고 만져서 아니까 백묵이라고 한다. 그러나 귀신 이야기나 물 위로 걸어서 강을 건너는 이야기나 지옥에 갔다온 이야기는 감각적 감각기관으로 알 수 있는 경험의 대상이 못된다. 그 영역은 우리 인간의 감각능력으로 알 수 있는게 못되기 때문이다. 안다고 할 때 들여다 볼 수 없다고 해도 그것의 특징이 외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것을 가져다가 실험해 보고 분석해 보고 검증해서 말하고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정확하게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시추를 해 본다. 실제 금이 있는지 은이 있는지 확힌해 보고 그 증거들이 나오면 금, 은이 있다고 한다. 그냥 봐서 표증은 안 나타나도 그 속에 있다고 투시하는 사람이 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면 지옥에 가 보았는가? 마음 속에 있는 지옥을 보았다는데 부인해 버리라는 것이다. 실제 고통을 느끼는 것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거절해 버리면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할 때는 경험으로 가능한 것을 안다고 한다. 하나님을 안보고도 믿는다는데 감각기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존재는 현상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을 우리가 알려면 하나님이 현상계, 시공의 제약속에 들어오셔야 우리가 알 수 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원인을 추적할 수 있는 그런 것만 과학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믿어서 아는 것 말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만지고 우리의 이성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세계를 칸트는 현상계라 하고 그 이상은 예지계라고 하여 하나님을 초월의 세계, 저 예지계로 추방해 버린다.
칸트에 의하면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역은 현상계이고, 그 이상의 세게, 예지계, 혹은 물 자체의 세계는 알 수 없다. 그러니 하나님도 物자체, 즉 예지계에 속한 분이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알려면 우리의 감각기관에 접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칸트가 이처럼 이성의 한계와 능력에 대한 설정을 했기 때문에 칸트 이후의 모든 신학과 철학는 칸트의 원리를 그대로 이해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하였다. 철학도 경험을 강조하게 되었고, 신학도 현상계 밖에 있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체럼을 강조한다. 계시하고 하는 것도 저 현상계 밖의 초월의 세계에서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世界內事件, 혹은 內世界的事件으로 간주하였다. 다시 말하면 밖에서 계시가 온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으로 부터 계시된 사건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일은 계시란 구체적으로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 안에서 순간 순간 결정되고 일어나는 결단이라는 것이다. 즉 계시는 명제 형태로 오는 것 즉 주어와 술어를 가진 문장의 형태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계시가 內世界的事件으로, 밖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니라 안으로 부터(ab inter) 나오기 때문이다. 모든 경우에 계시는 안으로 부터 인간의 신적 요소로 부터 오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편을 우리가 계시로 수납하는데, 그러면 시편이 안으로 부터(ab inter)인가, 혹은 밖으로 부터(ab extra)인가? 우리는 시편은 초자연적 계시이고 밖으로 부터 온 것을 믿는데, 그러나 칸트 이후 도는 슐라이어막허 이후에 완전히 경우가 바뀌었다. 모든 것을 內世界的 현상으로 혹은 분명한 용어로 설명하도록 되어졌다. 이것이 현대의 신학작업 이다. 18세기에 정착한 중요한 신학 작업의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모든 신앙의 내용을 그 당대의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18세기의 개신교신학 작업의 원칙이 되었다. 기독교가 혹은 계시가 당대의 그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당대인들에게 말해야 하며 다른 방법으로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철학이 18세기 이후 부터는 초자연의 영역을 생각하지 않고 內世界的 사상으로 진행되는데 이런 사상에다 기독교를 변형시키고 있다. 계시가 초자연적에서 오지 않고 內世界的 사건이면, 신의 존재도 초자연적으로 있는지 없는지 말할 수 없게 된다. 다만 현상계 내로 들어온 일에 대해서만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성주의적인 자연신론의 시대에 불트만의 非神話化 개념
불트만의 비신화화도 근세인의 사상과 같다. 그리고 칸트의 원칙에 의해 충성되이 일을 진행한다. 우리가 믿는대로는 성육신을 보좌에 계신 이가 땅에 내려 오셔서, 여인의 몸으로 들어가서, 육을 입으시고, 사람으로 나오셨다. 그들에 의하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정말 그런 존재가 저 밖에 계시는 분인지 우리는 알 길이 없어지게 된다. 그것은 알 수 있는 것이 현상세계 뿐이어서 칸트에 의하면 이런 것들은 현상계에 맞지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기적중의 기적이고 신비이지만 이들에게는 어려운 문제중의 하나로 대두되게 된다.
하나님이 여인의 몸에 들어가시고 사람으로 오신 성육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러니 18세기 이후의 신학책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진술했어도 그 내용은 전통적인 신학이해와 반대가 된다. 그런 초자연적으로 계시다가 초월해 계신이가 어떻게 들어 오셨는지 초월을 연결할 길이 없다. 그래서 완전히 시공내에 역사안에 살았던 사람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만 생각한다. 역사에서 출생하고, 낳고, 죽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어떤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겠는가? 뭐라고 전도해서 예수 믿으라고 해야할 것인가? 이런 과학적 사고로 예수는 완전히 역사에 소속되어 역사에서 출생하고 역사에서 죽게 되어 버린 것이다.
어떤 의미로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그러면 고난주간, 부활주간에 어떤 설교를 해야 하는가? 예수의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로 입증되었다 해도 문제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그러니 성육신도 內世界的, 生物學的 사건이 되고 만다. 불트만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동정녀 탄생을 부인해 버린다. 그는 우리가 안다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분이 없는데, 초자연적 존재를 우리가 만났으며, 만남의 증거는 예지계에 속하지 않고 현상계에 속한다는 결론이 된다. 그처럼 증명이 된다고 한다면, 감각세계, 시공세계에 속하게 된다. 그런 것은 하나님의 존재로 볼 수 없다.
키엘르케골이 역설적으로 강조하는데, 무한한 질적으로 다른 영원하신 이가 시간 속으로 들어 오셨다. 즉 무한하신 이가 유한한 세계로 들어 오셨다. 그러면 유한 속에 무한이 담기워질 수 있는가?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는 것이 불가능하듯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신학의 문제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남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기독인들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면 믿지 않는 실정이어서 계시가 합리적이 아니고 불합리한 것인데 어떻게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1+2=3이 아니고 2 라고 한다면 어떻게 그런 계시를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처녀 탄생과 성육신, 부활은 현대인들에게 그와 같이 불합리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은 종교현상학적 사건으로 처리하고 內世界的 사건으로서 다루어 버린다. 神을 만난 사람이 어디 있으며,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 입증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도 역사적 산물로 귀속해 버린다.
좀 더 심각한 문제는 계시가 오면 이성을 희생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니 성경에서 시작해서는 일이 안되게 되어 있다.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 두 부류가 있는데 자연과학자들은 초자연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리학의 법칙을 이야기 하는데 그 배후에 지성이 있고,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창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물질로 나타난 것만 보아 알기 때문이다. 물질로 표현된 것을 형상과 질료라고 할 때, 경험론이 대두되기 전까지 강조점이 질료에 있었는데 경험론이 들어 오면서 부터 질료가 문제가 아니라 물질에 표현된 것 뿐 그걸 넘어서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존재와 경륜과 창조를 믿음으로 전제하는 것이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증명으로 나아가면, 증명할 길이 없다. 그러니 존재하는 것을 믿는 것 뿐이다. 즉 그것을 넘어서서 믿는 것이며, 믿음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다. 그러니 그들은 믿음은 지식의 분야가 아니라 한다. 그것은 지식으로 증명해 버리면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학문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의 영역을 학문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심을 전제 한다.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무한하신 분을 전제하고 믿는데 전제한다는 것은 믿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만이 전제로 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과학 역시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자연의 제 일성 때문에 자연을 탐구해서 법칙을 발견한다. 물론 그것이 얼마만큼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자연의 제 일성을 모든 자연과학이 증명함 없이 전제하고 시작할 뿐, 증명하지 못한다. 왜 제 일성인가를 자연과학자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 일성을 바르게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는 창조주 하나님의 경륜 뿐이다. 현대신학이 항상, 멀리 있는 사람들,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이런 요소는 우리 안에 있다. 다만, 자연과학자들은 훨씬 더 일관성 있게 전개하고 그러나 우리는 단지 신앙이라는 것 때문에 다소 주춤할 뿐이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바로 이런 문제에 칸트가 분기점이다. “칸트 이전에 칸트 없고, 칸트 이후에 칸트 없다”는 말은 칸트 이전의 사상과 칸트 이후의 사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바른 개혁신학과 바른 진리는 안 가르치고 부흥가 축복만 가르치며,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제는 고등학교에서도 철학과 논리학을 가르치는데, 우리는 철학 책을 읽을 때 혹은 그런 사상을 분별할 눈이 없다. 칸트 이전과 이후의 용어는 같으나 안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받아 들인다. 그리고 그것은 철학의 일이니 성경만 가지고 된다고 하지만 지금 철학과 신학이 구분된 것이 아니다.
데이빗 흄은 18세기 영국 스코틀란드의 철학자인데 개혁교회 출신이다. 스코틀란드의 개혁교회인데 교회의 분위기들이 너무 그를 배타하도록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죤 낙스 때문데 스코틀란드는 장로교이며 개혁신앙 아래 있어 왔지만 지금은 바르트 영향 아래 다 있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지식의 영역에 있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감각 뿐이다. 감각적 재료 곧 표상이다. 즉 외부에서 들어온 인상이다. 이런 것들은 습관이 지배적이다.
내 경험으로도 웨스트민스터에 있을 때 3년 내내 동쪽과 서쪽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잠실 살다가 서초동으로 갔을 때도 어디가 남쪽인가를 오랫동안 따져야 했다. 습관이 쉽게 무엇을 생성해 내는 것이다. 흄은 인과율이라는 것을 자연의 법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인과율이란 반복해서 경험하므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즉 모든 경우에 인가율의 형성은 우리의 습관이며 관습이다. 인과율을 자연의 법칙이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인상과 그것에서 나오는 Idea(관념), 그것이 부합해서 여러 세계가 되었을 뿐이지 우리가 밖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생래적 관념, 즉 神 존재를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래적으로 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들도 알아야만 된다. 인도에서 이리에 의해 키워진 두 아이들이 있었는데 이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영국의 경험론이 제기하는 바는 생래적 관념이 있으면 어린 아이들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리 소년은 아무 것도 몰랐다. 그래서 안다는 것은 속에서 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 밖에서 끌어들여 오는 것, 경험으로 부터 가져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주장은 좋은 생각도 일단 밖에서 들어와 가지고 나가는 것이며 독창적이 아니라 한다. 이렇게 되면 많은 경우의 인과율이 습관게 관한 것이 된다. 즉 난로 가까이 가면 따뜻해지는 것도 자꾸 경험했으므로 따뜻하다고 느낀다. 그러면 인과율이라 하는 것이 밖에 객관적으로 쓰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도 분명히 말할 수 없다. 늘 우리에게 있으니까 있는 것으로 인정할 뿐이다. 그러나 자연과학도 수치가 나오니까 사실인 것 같아도 가설의 영역에 속한다. 인간의 규정을 수치화한 것이다. 뉴우톤 때는 절대적인 공간, 절대적인 시간을 상정해서, 여기에 타당한 법칙이 반드시 그대로 나탕하다고 믿었다. 지금은 그렇게 말할 물리학자는 없다. 절대적 공간이 어디 있겠는가? 여기서 적용되는 만유인력 법칙이 그대로 다른 것에 타당하다는게 성립되지 않게 되었다. 또한 밖에 어떤 사물이 존재하는 것도 정말 확실히 증명할 수 없다. 더구나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은 증명할 길이 없어지고 말게 되었다.
앞에 집을 짓다가 헐어버렸는데 우리는 헐기 전에 수많은 경험으로 집을 완성할 줄 알았다. 그것은 계속 같은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것, 이 세상의 불완전한 것들이 앞으로 재림 때 완전해진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경험하지도 못한 것이다. 경험이 반복되어야 증명할 수 있다고 흄은 말한다. 그러니 이 세계에 조물주(author)가 있다고 상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인과율도 확실한 것을 알 수 없다. 영국의 대부분의 경험론에 의하면 회의주의가 대부분이다. 감각재료를 가지고 있을 뿐 그 이상은 없다. 즉 인과율을 그 배후에로 증명할 길이 없다. 태양동승도 우리가 보아왔던 우리의 습관의 산물이지 우리의 주거지를 떠나면 그것이 똑같이 반복된다고 주장할 수 없다. 인과율은 습관에 의해 우연적으로 연결된 것 뿐이다.
이 기본 입장을 칸트가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 인과율을 생각하면 학문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칸트는 인과율을 인간이 세운 보편 타당한 법칙으로가 아니고 우리의 이성이 넣어준 법칙으로서 보편 타당하다고 한다. 인과율을 무한정 적용하면 안되고 인과율을 적용할 수 있는 한계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시공세계 거기에만 국한을 한 것이다. 그 외에 그걸 넘어서서 하나님이라든지 구원이라든지 불멸같은 것은 경험할 길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지식의 영역에서는 도저히 다룰 수 없는 영역이 된다. 그러면 현대인에게 하나님이 어떤 존재로 요청되느냐?
우리의 모든 경험을 다 합쳐보자. 우리의 경험, 서울에 있는 사람의 경험, 대한민국 사람의 경험, 온세계 사람의 경험을 다 합치면 그것은 뭐가 되는가? 어떤 개념에 이르러 가는가? 모든 사람의 경험을 다 합치면 그것이 세계라는 개념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는 개념이다. 세계 경험헤 보았는가? 얼마만큼 경험을 했는가? 그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일하는 한 규제개념이지 세계를 누가 경험했는가? 그런 것은 전부 다 현상과 우리의 경험 전체를 다 통괄하는 통일 원리로 서 있을 뿐인데, 이 궁극적인 개념을 하나님으로서 상정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경험을 다 모으니까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한계개념에 이른다. 그건 한계개념이지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 세계보다도 그렇게 만들어 주는 기본개념 그것을 하나님이란 개념으로 한계개념으로 설정한다. 하나님은 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한계개념으로, 모든 것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고 한계개념으로, 체계를 위한 하나의 한계개념으로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 경험해 본 사람 있는가? 그러나 우리의 의식구조, 우리의 속에서 좋은 것도 나오고, 선한 것도 나오고, 음탕한 것도 나온다. 이런 모든 현상들이 어디서 나오는가? 그냥 우리의 육체에서만 나오는가? 근원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영혼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 다 나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영혼을 보고 또 경험을 했는가? 그러니 영혼도 경험의 통일개념으로 근원되는 개념으로 한계개념으로 필요하다. 실제로 있는 것을 누가 알 것인가? 영혼, 세계, 하나님 은은 우리의 경험의 영역으로 접촉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계개념, 즉 체계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전제함이 필요하다고 칸트는 말한다. 지식의 영역으로는 하나님과 세계와 영혼의 존재를 알 길이 없다. 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한계개념으로 설정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이 지식 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인간 공동체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니 지식만 가지고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윤리로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그의 윤리관을 살펴보자. 윤리를 이야기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참된 선행 아닌가? 방아쇠를 들이대서 내놓는 것은 죽기싫어 내놓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낼려면 사람이 자유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유를 증명할 수 있는가? 많은 경우에 객관적으로 가치가 같은 것을 두 가지 놓고 선택하라고 하면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까 중세 때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말(馬)이 있는데 양쪽에 동등한 가치 있는 먹이를 주었다. 어느쪽을 먼저 먹는가? 결국은 어디를 선택할 줄 몰라 결국 말라 죽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있는 자유는 완전한 자유인가? 선택하고는 이미 어떤 일이 일어난 다음에 후회한다. 자유가 있으면 후회하도록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증명할 길이 없지만 윤리생활이 바로 될려면 자유를 전제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칸트는 실천에서, 윤리의 영역에서 자유를 전제한다.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 짧은 세상에 이걸로 그친다면 뭐가 되겠는가? 우리 인간의 근본이 윤리적, 도덕적인 존재로 세상에서 완전한 사람이 못되고 덕을 현세에서는 완성시키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세까지 연장시켜 우리의 덕을 완성시켜야 되지 않겠는가? 즉 우리의 삶이 현세에서 끝나버린 것이 아니고 내세에까지 연장된다고 전제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세를 요청한다. 그저 내세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셔서 우리의 선악을 벌하시고 상주시는 그런 분이 계셔야 할 것으로 요청한다.
지금 이런 이야기는 단지 20세기 후반부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플라톤의 국가론과 법을 읽어도 세상에서는 의로운 것, 좋은 것이 아니고 불의한 것, 악한 것이 좋다. 왜? 악을 크게 일으키면 영웅이 되고 사령관이 되고 정치인이 되고 나라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악하고 불의한 것이 좋다. 그렇게 국가론이 시작되고 이야기를 전개할 때, 그것이 2천년 전의 일이 아니라 그것은 오늘의 이야기도 된다. 지금이야 우리 한국사회도 7계를 범해도 다 관대해서 다 그럴 수 있는 것으로 통상화 된다. 그런데 하나님이 안계시고, 내세가 없으면 얼마나 자유롭게 하겠는가? 그러니 하나님란 존재가 계셔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하나님을 알 길이 어디 있는가? 천지를 창조한 신이 어디 있는가? 그렇지만 그 하나님이 윤리세계를 위해 있으면 좋다는 것이다. 있기를 바라고 요청할 뿐, 실제 있는지는 모른다. 이것이 칸트가 말하는 神觀이다.
윤리의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의 관념의 필요성 때문에 하나님의 관념을 생성해 낸다. 없어도 되지만 윤리생활을 하려면 하나님과 내세와 자유가 전제 되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영혼의 존재도 전제해야 한다. 우리도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지 않는가? 어떻게 생겼는가? 그래서 그런 정도의 한계개념으로 인간 필요의 요청으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런 하나님은 현대 칸트철학 이후에서는 자리가 없다. 그러니 하나님이 인간에게서 분리되어 있고, 더 이상 알 수 있도록 연결되는 길이 없다. 단지, 하나님이 계시다 하는 것이 무엇인가? 칸트에 의하면 우리 인간이 윤리의식을 갖는 것이다. 칸트가 인정한 유일한 신 존재 증명으로 우리가 윤리의식을 갖는다는 것 그것이 神意識을 갖는 것이다.
그러니 칸트가 현상계와 예지계로 구분하는 것이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Historie와 Geschichte, 즉 달력상의 역사와 의미로서의 역사로 분리되었다. Historie는, 아침에 일어나면 해가 뜬다. 그러면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학교에 가고 피곤하니 저녁에 자고 더 이상은 없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삶이 뭐 대단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요, 달력상의 시간, 날짜의 일일 뿐이다. 그러다가 그 사람에게 큰 轉機가 일어났다. 술을 먹고 늘 방탕하던 사람이 어느날 改過遷善해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살기로 결심했다 하자. 그때 그 사람이 새로 시작한 삶은 이전의 삶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선포에 그 사람 마음이 변화되어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물론 해는 뜨고 진다. 밥은 먹고 잠은 잔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살던 삶의 차원은 전혀 다른 차원이 되었다. 정말 그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때의 그 시간은 시간적으로는 짧아도 그 의미에 있어서는 얼마나 귀중한가? 그것이 바로 Geschichte 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분명히 Historie에서 발생했다. 달력상의 역사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달력상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고 하고 의미없게 생각한다. Geschichte에서 생긴 일로 돌린다. 그걸 구분 못하니 뭐가 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 Historie에서 생겼으면 누구든지 가서 사진을 찍어야 되지 않겠는가? 예수 부활을 사진 찍어야 될게 아닌가? 이들에 의하면 사진 찍어둘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부활을 만났는가? 생각해 보자. 불신앙이니까 자유주의자들이니까, 그렇게만 해버리지 말고 생각해 보자. 다 만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엠마오로 가는 길에도 두 제자 밖에 만나보지 못했다. 달려갔던 두 제자들 중에 요한은 못 만나고 베드로는 만났다. 같이 갔던 여인들도 막달라 마리아만 주님을 만났다.
지금 현대신학의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는 우리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불트만과 바르트의 이런 역사관이 즉 Geschichte가 그와 같은 의미의 역사라면 불트만에 와서는 새로운 시간의 구분이 생겼는데 현재, 미래, 이 세상, 현재세계는 부조화의 세계이다. 악이 성한 세상이다. 그러나 미래가 오면 자유가 생기는 것으로 인간이 자유로워지고 압제와 탈취로 부터 해방된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이 본래 자기 자신의 인생에로 되돌아가고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자유의 세계에 도달한다. 이런 미래가 불트만의 이야기이다. 전에는 밑에서 위로 생각하던 것이 이제는 앞에서 자유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 앞에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소망을 미래에 두고 미래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그의 역사관과 신학을 전개한다.
역사비평적 방법
계몽주의는 역사적 비평적 방법을 수집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독교의 전통적인 신앙의 내용을 권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일단 인간의 자유성에 의해서 판단하게 되었다. 이것은 최근 현대의 역사주의(Historicism)가 그 공헌이 크다 이 역사주의가 등장하기 전에는 그래도 이성의 영원한 진리를 믿었다. 그런데 사고가 더욱 역사적이 되고 부터는 모든 시대에 타당한 영구한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다 그 시대의 역사적 산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으로 말한 그 진리는 역사적인 시대제약성을 갖고 만세에 타당한 진리가 못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 자연까지도 역사화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도 역사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진리가 그 시대에 타당한 것이라고 해서 지금도 이 시대에 맞는 타당한 진리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귀결에 이르렀다. 그러니 성경이 어떻게 해서 역사적인 문서로 이루어졌는지를 역사적, 비평적 방법으로 탐구하는 것이 역사 비평적 방법이다. 이 역사비평적 방법으로는 모든 것이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타당한 객관적 진리라는 그런 지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들은 기독교 계시라는 것도 역사적인 상황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그 시대 상황에서 살피고 과감하게 비판을 시도한다.
또 자연과 하나님에 관한 理神論的 개념은 초자연적 하나님의 개입을 배제하며, 축자영감설의 교리도 다 배제한다. 이것은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무신론이란 논의가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역사를 다스리고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참 하나님은 한분 뿐이라고 하는 그와 같은 주장을 반동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부정하는 무신론이 가능한데 그 무신론을 시작하게 하는 그 이론이 소위 理神論 혹은 自然神論이다.
이 자연신론 혹은 이신론은, 하나님이 세계라는 기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세계기계(창조)는 참으로 훌륭한 기계여서 만들 때 그 안에 법칙과 질서와 사물의 본성을 넣었다. 그래서 그것으로 완전해서 신이 더이상 간섭하고 섭리하는 그와 같은 일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라고 하는 큰 기계를 만들어서 저절로 돌아가게 해 놓았으니 하나님은 더 이상 자연의 일에 또 인간세상의 일에 개입하시고 보존하시고 섭리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 만들 때 부터 저절로 굴러가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창조로 부터 또는 인간세계로 부터 하나님의 섭리를 배제하므로 이 역사적 비평적 방법이 본격적으로 가능하게 되는 地盤을 조성했다. 자동기계 처럼 모든 자연은 절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이 들여다 보고 계속 만질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결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인간세계와 그의 창조를 간섭하신다는 그와 같은 주장을 완전히 배격하게 되었다.
이런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계셔서 그 섭리 때문에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있는 역사적인 산물이 된다. 그리고 여기서 논리는 잘 안맞게 되었지만 첫째,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神言)과 둘째, 성경을 구분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성경에 보면 귀신의 말도 있고 사울이 신접한 여인들과 대화한 말도 있다. 그것도 하나님 말씀인가? 또 성경 역사서에 보면 다른 것을 인용한 말도 있다. 역사서에 보면 첫째, 사건의 기록이 있고 둘째, 인용이 많다. 역사서 뿐 아니라 여호수아서에도 인용이 있다.
그리고 선지서를 보면 선지자가 받은 멧세지가 기록으로 옮겨가기 전에 계시가 말씀과 환상의 형태로 왔다. 그런데 이 말씀과 환상으로 온 형태가 그대로 성경에 다 기록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단 계시를 수납한 사람의 이해과정을 통과해서 왔다. 그래서 선포된다. 그 다음에 기록된다. 그러나 이 기록도 선포될 때 즉각 기록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시일의 간격이 있다. 예례미야의 경우를 보더라도 예례미야가 선포를 했고 그 후에 바룩이 기록을 했다. 그리고 불러주어서 기록한 것도 있다. 그러나 처음 계시가 왔을 때 그냥 기록되는 것도 아니고 바로 선포된 것도 아니고 상당한 시간을 두고 기록되었다. 그러니까 처음에 온 계시와 기록간에 상당한 시일과 내용의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동일재생산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계시는 기록된 계시 뿐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특별계시의 범위가 기록된 성경의 계시보다 더 넓다. 왜냐하면 받은대로 다 기록하고 쓴게 하니며 선포된 대로 다 쓴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선지자에게 멧세지가 왔을 때 그대로 동일 재생산이 아니다. 선지자의 이해과정을 거쳐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성경으로 기록되었다. 그렇게 되니 이런 과정들 때문에 비평주의자들은 중심 메세지와 나변의 것을 구분하고 하나님 말씀(神言)과 성경을 구분한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진정으로 하나님 말씀이 무엇인가를 찾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러니까 이 성경 기록 속에는 역사서나 선지서의 사건도, 인용도 많다. 그러니 그중 직접 선지자가 처음 받은 계시의 핵심 내용이 무엇이냐를 찾고 그것만 하나님 말씀이라 한다. 역사 비평주의자들(자유주의)은 이런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들은 성경 속에 神言 즉 하나님 말씀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하나님 말씀이 담겨져 있지만 기록된 성경이 모든 하나님 말씀 자체라고 믿는다.
다음 단계로 그것은 성경에서의 기록, 혹은 계시의 이야기고 우리들의 현실적인 설교로 옮아가 보자. 목사들이 고난주간에는 고난주일 설교를 많이 할 것이다. 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면 그것만 읽지 않고 설교를 하고 그 설교를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는가? 성경을 이해하도록 우리는 풀어서 설교한다. 어느 것이 진짜 하나님 말씀인가? 성경이 진짜인가? 설교가 진짜인가? 성경과 설교가 다 하나님 말씀이라면 설교 듣는이들이 졸거나 또 은혜를 못받는 경우는 어떤가? 선지자들이 말씀을 선포할 때는 선지자가 나라가 망하리라 하면 그 말씀과 함께 나라가 망한다. 지금은 설교후에 “수고 하였습니다”라고 말은 해도 “감사합니다”란 말은 좀처럼 드물다. 왜 그런가? 설교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자유주의가 멀리 있는게 아니다. 그럼 설교 내용 전부가 다 하나님 말씀인가?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면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야 되고 또 성령 받고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기쁨과 평안이 생겨나야 된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기쁨의 역사도 일어난다. 그런데 왜 냉냉한가? 또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데 교회안에서 하나님 말씀 듣는 사람이나 교회 밖의 사람이나 다른게 무엇인가? 어떤 선교사의 이야기를 빌리면 현재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과 틀린 것이 별로 없다. 구분이 있다면 불신자는 주일날 놀러가고 신자는 교회에 와서 예배하려고 모이는 차이 밖에 없다 하는데 우리가 이미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그동안 교회 부흥 성장 많이 하고 민족 복음화는 많이 했는데 한국사회는 달라진 것이 없다. 그리스도인이 이처럼 많이 생겨났으면 이 사회가 변화되어야 하는데 우리 현실은 별 변화가 없다. 정말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선포했다고 할 것인가?
그러면 선포한 내용이 어디까지 하나님 말씀인가? 또 왜 설교가 하나님 말씀이 되는가 생각해 보자. 왜 은혜를 받는가? 우리의 실제 문제이다. 결코 멀리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자유주의가 아니다. 하지만 실제 방법상에서 자유주의적 요소들을 크게 벗어났다고 할 수 일을런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목사들이 하는 설교에 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그 설교 속에 하나님 말씀도 있도 내 말도 있고 잘못이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성경은 설교를 안하고 덮어두어도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하는가? 잘 생각해 보자. 기록된 말씀이 있고 선포하지 않아도 말씀으로 역사하는가? 선포해야 말씀으로 역사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설교로 선포한 것 만이 하나님 말씀이다”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록된 자체가 선포된 것이라는 말과 설교자는 안내한 것 뿐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많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역사 비평주의자들은 하나님 말씀과 성경 사이에 구분을 자꾸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 말씀이 성경에 들어 있다면 그 핵심 진리만 분명하면 다른 부분에 오류가 있어도 상관 없다고 하는 귀결점에 이른다. 그러니까 성경을 연구할 때 다른 과거의 문서들 처럼 역사적인 방법으로 연구한다. 그래서 성경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유주의의 근본은 그 핵심진리, 즉 하나님 말씀이라고 인정된 수 있는 부분은 믿을만 하고 권위가 있지만 그 나변의 역사적인 사실들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기록된 말씀이 혹은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선포되지 않고도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하는가? 또 사건 전달만으로 역사하는가를 잘 생각해 보자. 그리고 선포된다 해도 어떻게 될 때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하느냐?
여기에서 역사와 신앙의 과격한 분리 문제가 있는데, 가령 판넨베르그가 예수의 부활을 빈무덤으로 말하기 이전까지 우리가 예수의 부활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분명히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 그렇다면 역사적 증거가 있는가? 누가 사진 찍었는가? 제자들 몇 사람 외에 부활자 그리스도를 누가 만났는가? 대제사장이 만났는가, 서기관이 만났는가, 바리새인이 만났는가? 복음서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도 보고가 서로 상충된다. 베드로도 부활하신 주를 처음 만났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마가복음도 그렇다. 좀 자세히 반복해서 4복음서를 함께 대조해서 자꾸 반복해서 읽어보기 바란다. 어떻게 같이 일치하고 어떤 것이 차이가 있는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우리는 2천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다고 분명히 믿고 선포해 왔다. 그 증거가 무엇이냐고 요구할 때 이 세계가 이렇게 변화하여 새로워진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다 신앙인 이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만난적이 없다. 대제사장, 제사장, 서기관, 왕이 만나지 못했다. 만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와 몇명의 여인과 베드로, 엠마오로 간 두 제자, 갈릴리 바닷가의 11명의 제자였다. 그리고 바울에 의하면 그의 동생 야고보에게 나타났고 오백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역사적인 증거자료로 제시할 수 있느냐? 증거가 무엇인가? 빈무덤이 증거인가? 그렇게 설명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자들이 밤중 미명에 찾아가니까 그것이 예수 무덤인 줄 알았더니 다른 곳이었다고 그들의 착각으로 돌린 사람도 있다. 반박할 수 있는가? 무덤에 예수의 시체가 없으니 부활했다고 한다. 십자가와 부활의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부활이 해가 뜨는 달력사건에서 몇월 몇일 몇시에 일어난 사건이면 사진을 찍어야 되지 않느냐고 역사주의자들은 다그친다. 사진 찍을 수 있었다면 대제사장도 천부장도 부활하신 예수를 만날 수 있었어야 할 터인데 그러지를 못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자들은 이미 예수를 믿는 자들 이었다. 그러니 신앙의 눈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만났다. 그러면 부활을 대표적인 증거의 사실로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역사적인 사건에 기초를 둘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레싱의 말을 빌리면 “기독교 신앙은 대표적인 사건과 넘지 못할 큰 도랑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그런 문제점 때문에 현대 역사주의자들은 기독교의 역사적인 사건은 부인해 버리고 기독교의 핵심진리만 취하고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 그 진리의 내용, 그것만 붙잡는다.
불트만 이야기도 다른게 아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으니까 예수가 부활했다고 선포한 내용을 받으면 받아들인 사람의 마음에서 부활한 것이라고 한다. 반대로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고 믿으면 부활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니 그 내용을 받은 사람의 마음의 일이지 객관적, 역사적 사실로 실제 부활한 예수에 대해서 알 길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수가 사실로, 실제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즉 부활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는 차이가 발생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변화를 부활이라고 한다. 그들은 예수가 사실적으로 부활했다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냥 받아들여 믿으면 그 믿음에로 믿는 그 심리 현상에로 부활한 것이다.
레싱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 마찬가지 이다. 계몽주의 이후에 모든 자유주의 근본이 그렇다. 그런데 2천년 동안 교회는 부활을 선포해 왔다. 그러니 이들도 같은 용어를 쓰기 때문에 우리도 쉽게 받아들인다. 예수 자신이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했다 하나님 아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대제사장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처형했다고 한다. 나사렛의 예수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대제사장들이 받아들였으면 처형하지 않았을 것인데 거부했으니까 처형했다고 한다. 여기서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경륜 때문에 돌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들은 단순히 안죽을 수도 있었는데 영웅적인 죽음으로 혹은 실패로 본다.
제 2장 1919년이후 슐라이허막허가 전통적인 신학을 180도 회전시켜 놓았다. 하나님 말씀에서 인간의 감정으로 초월해계신 하나님, 말씀하시는 하나님에서 인간의 체험내에 들어온 하나님으로 전환시키면서 인간의 종교 감정을 모든신학과 종교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러니까 신학이 하나님에게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인간에게서시작하여인간을통해서다시인간에게되돌아오게되었다. 主語도 述語도 마지막 目的도모두가다인간이궁극적이되어버렸다. 神學은人間學외에다른것이못되게되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모두가 인간의 감정안에 들어오게되었다. 슐라이허막허는개신교전통에서나왔다. 루터의종교개혁때큰중생의체험, 그것이합리주의교의학인데그반박으로모라비안파의경건주의로나왔다. 결국루터에의해서계속되었다. 그것이다시웨슬레에게넘어간다. 웨슬레도영국교회를떠날려고한것은아니었다. 그렇지만칼빈주의예정론을배척하고선행에이르는데좋게한예정에이르는선행의강조를많이했다. 그리고웨슬레가갔던그신앙의길로감리교회가가고있다. 그것이알미니안신학과합세를해서미국의부흥운동이되고성결운동이되고오순절운동이되었다. 오늘날한국교회가멀리있는알미니안은배척하지만오순절운동은좋아한다. 교회를부흥시켜주기때문에그렇게좋아하는데, 웨스트민스터신앙이되었든지알미니안에서왔든지알바아니요, 교회부흥이라는결과만좋으면좋다는태도가아니겠는가? 그러면하나님은어디에서만나는가? 깊은산으로가서만나는가? 큰기도원에서만나는가? 금식기도를하면거기서하나님이기다리고계시는가? 언제어디서만나는가? 회개하고중생할때만나지않는가? 일반적으로어디서부터하나님을이야기할수있는가? 우리민족은경험을강조한다. 중생의체험이있고특별한은사체험이있어야된다고주장한다. 그러니우리개신교는한결같이중생의체험을강조한다. 하나님만나는자리가어디인가? 중생때만나지않는가? 중생하므로오는그기쁨, 뿌듯한느낌, 온천하가콩알만큼작아져보이는그느낌, 거기서하나님을만난다. 그러니까개신교가출발점으로한그것으로슐라이어막허가돌아온다. 이상과같은질문을따라서가다보니까출발점이하나님에게서인간의감정으로, 인간으로, 내체험으로간다. 그리고인간으로시작하여인간을거쳐마지막결정도인간이내리는결론에이르렀다. 하나님이말씀하시는것이아니라인간이, 인간의종교심이, 인간의그종교성이모든物의근원으로삼게되었다. 그런데칼바르트는그것을 180도로다시역회전시키는일을시도했다. 본래하나님이말씀하셨다(Deusditit)는데로, 하나님말씀하신데로되돌아간다. 그럴때하나님은어떤분인가할때우리와같은내재해있는그런분이아니다. 그러나바르트의하나님도우리와구분되지않는다. 하나님은이제까지우리가해오던윤리, 즉우리의인간성을잘개발시켜서나아가는그윤리, 그윤리가무엇인가? 서로사랑하는것, 법도좋지만사랑이라하여하나님을그윤리, 즉사랑과일치시킨다. 전쟁하지않고권력자들이자기만살려고하지않는그런사랑이실현되는사랑의길을목표로한다. 그러니기독교의윤리도이들에게는하나님이초월적으로주신계시가아니다. 이들은궁극적으로종교가목표한길이무엇인가를사랑의길에서찾는다. 사랑의길에하나님이붙어있는것이다. 그러니문화에대해우리가어찌해야되는가? 간음하면되는가? 그러면안된다. 왜냐하면우리문화가그렇게규정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윌커스의“십자가와깡패”란책에보면창녀로서마약을사용하던여자가성령의역사로변화되어신학을하고결혼을해서목회일을했다. 깨끗한숙녀가되어, 미국사회의중류이상의사회가바른생활의법으로사는데거기에들어가게되었다. 그전에는깡패소굴에서창녀로마약을쓰고술을마시고타락했는데변화했다. 윤리가그를변화시켰다고한다. 그윤리는하늘에서왔는가? 아니다. 우리문화가그러면안된다고해서, 그윤리에의해변화된것이다라고하여문화의영역과기독교윤리와동일시취급한다. 지금자유주의이야기를하고있다. 하나님도자유주의자들에의하면그들이제시하는윤리와다른것이아니다. 본질적으로서구가지향하던그이상적문화와하나님이구분되지않는다. 그러니하나님과문화, 즉윤리는한동일선상에선다. 하나님은단지인간의문화, 즉이상세계를말하는대명사에불과하게되었다. 실제로계신분도아니며우리와상관없고이상을이루는표어에불과하다. 그러니칼바르트는슐라이어막허의내재주의를때려부수기위해서하나님을전적인他者로해야했다. 그분은그냥우리속에서말씀하시는분이아니라밖으로부터말씀으로오셔야한다. 와서우리의소유가되면또내재가되어버리기때문에말씀이내안에들어와일을이루는것을부인하고다만밖에서위기의식만일깨우고떠난다고한다. 우리는하나님말씀을받아가지며우리마음대로할수있는자가아닌가? 바르트의주장에의하면말씀하실때거기에계셔서순간적으로말씀하시고그것로심판하신다. 그말씀이와서우리의소유가되면다시내재가된다고생각한다. 그러니우선적인타자로보고우리에게말씀하신다고주장한다. 이런말씀은순간적으로반짝하는불꽃이고계시의말씀은아니다. 바르트의 계시관과 성경관바르트에의하면성경과계시가일치하지않는다. 다만성경은과거계시사건의기록일뿐이다. 과거계시사건의기록은그사건자체는아니라는것이다. 예를들어보자. 신문에어떤사건이생겼으면그사건기록을보고사건의전모를쉽게안다. 그렇지만바르트는그렇게말하지않는다. 성경에기록되어있는인간의말을통해서하나님께서말씀을하시면그때성경이하나님말씀으로효력을발생한다는것이다. 바르트는분명히성경이하나님말씀이라고섰다. 그러나그의미는우리가생각하는하나님말씀의의미와는전혀다르다. 성경이하나님말씀이라고할때 Diebibelist의 ist가하나님말씀과성경의等値의의미가아니라‘된다’는뜻이다. 그냥‘ist'는’이다‘란뜻인데바르트가사용하는 ist의의미는그냥등치가아니라말씀이된다는의미에로의’이다‘로써하나님말씀이된다. 그러면어떻게해서하나님말씀이되느냐? 성경에기록되어있는사람의말을통해서하나님께서말씀하시면그때우리에게비로소하나님말씀이된다는 것이다. 우리의설교문제와생각해보자. 우리는바르트를철저히반대하는입장에있지만그러나바르트가그냥허공에서만들어내서이런말을하는것은아니다. 우리가성경말씀을늘읽어도잘깨닫지못하다가훌륭한말씀의설교를듣고그말씀을깨닫게된다. 그리고는은혜를받았다고감사를표한다. 그러면은혜를받았다고할때어떻게은혜를받는가? 그은혜받았다고하는말을하는데어떤뜻인지잘생가해볼필요가있다. 바르트는성경에있는인간의말을통해서하나님이말씀하시면하나님말씀이된다고한다. 그러니설교가성경의핵심을전달할경우에하나님이함께말씀하시므로하나님말씀이된다는것이다. 특별히예수그리스도의구속의사건을말하면그것이우리에게은혜가되고영향력을미친다고한다. 우리는예수믿으면옛사람이죽고그리고새사람이산다고말한다. 어떻게그렇게되는가? 예수그리스도를믿으면, 그십자가의권세로우리의옛사람이죽는다고믿는다. 사실믿을때원리적으로옛사람이죽고새사람이된다. 그러나옛사람이다없어져버린것은아니다. 그리고실제로옛사람과새살람을시기적으로나눌수있는것이아니다. 옛사람과새사람을역사적으로시간상에줄을그어놓고명확하게구분하여말할수있는가? 물론옛사람과새사람을나누는분기점을시간적으로정할수있다. 그전에는옛사람뿐이었는데예수믿어서그순간에새사람이되기때문이다. 그렇지만언제라고규정하기는불가능하다. 옛사람이다없어지고새사람만현재진행되는것은아니다. 우리안에는옛사람과새사람이동시적으로역사한다. 그러면어떻게해서옛사람이죽는다고말할수있는가? 그것은십자가를하나님의심판의선포로믿고그래서내죄를사죄해주신것으로믿고받아들이며그십자가의권능이내옛사람을처형했다고믿음으로된다. 그러니까하나님말씀을믿음으로받아들일때내게큰역사가온다. 여기까지는우리가믿는바와같다. 그러나이런주관적인십자가의효능은이미하나님의경륜안에서객관적으로예수그리스도안에서이루어진것이다. 바르트는이것을부인한채결과만을보고믿음으로받아들일때비로소그것이하나님말씀이된다고말한다. 바르트의주석은변증법적이라고한다. 여기서변증법적이라고할때이말은하나의진술이진술대로있는것이아니고동일하게역진술이가능한것을말한다. 이것은실존주의철학자키에르케골의변증법에서빌려왔는데, 사실우리가갖는신학적진술은역설적이지종합할수없다. 헤겔처럼무엇이든지두루두루뭉치면더높은단계로올라가는그런것이되는게아니고역설적이다. 가령우리가계시자혹은성육신을생각해보자. 성육신은하나님의사건이다. 그런데하나님은무한하신분이시다. 무한하신분이어떻게유한시공세계에공간으로들어오실수있는가? 들어오실수없지않는가? 우리는당연한것으로받아들이지만하나님은천지를창조하신무한하신분이다. 그런무한하신절대자가유한세계에들어오시는것이성육신인데, 어떻게유한이무한을붙들고있을수있는가? 종교개혁의전통적인명제중의한원칙이“유한은무한을파악할수없다”인데어떻게이일이가능하단말인가? 이절대자가어떻게상대자의속에오시며그영원하신분이어떻게시간내에들어오시는가? 하나님은하나님이신데어떻게여인의몸으로들어가시는가? 우리는전통적으로당연하게믿어왔는데이런기독교의진리는모두역설적이다. 내게있어서도제일견디기힘든것이하나님이여인의몸으로들어가셨다는이진리이다. 그러니바르트는어떻게그것을하나의문장으로바로말할수있느냐? 그러니까부정되는문장이동시에와야한다고한다. 그러니변증법적이다. 그러면우리의경우어떻게받아들이는가? 지성으로는안된다. 그러니신앙으로신앙의도약으로받아들인다. 그러니이역설은기독교신앙에있어서의우연적인것이아니라본질이요, 핵심이다. 하나님이어떻게사람이되시는가? 어떻게무한자가유한자가되시는가? 그런데하나님은감추어지셨지만계시되었다고했다. 우리는하나님이자기자신을혹은자기의뜻을계시하시니까안다. 특별히하나님의삼위일체의본성도중요하지만하나님의뜻, 즉하나님의구원경륜을우리에게알리셨다. 그것이십자가와부활의사건이다. 우리가하나님을안다는것은그가계시하셨으니까아는 것이다. 그런데여기바르트는다음과같은질문을한다. 그러면다알수있는가? 만일다알수있다면하나님이하나님으로서계시를그친것이라고반론을편다. 그리고“하나님이더계시할필요가없을정도로다계시했으면하나님이계시를그친것이고그귀결은하나님이이현상계의사물의하나가된다”라고역진술을하면서우리가믿는근본진리를뒤엎는다. 사실하나님은자신을자세히알리셔도우리는다알수없다. 그것이하나님의不可解性인데그것도인식론으로생각해보면또어려운문제이다. 그것은하나님의不可解性을늘말하면서도우리는하나님을안다고말하기때문이다. 그러면안다고할때어떻게아느냐고하면이것은사변적인문제가된다. 종교개혁자루터의후계자멜랑톤(Melanchton)이유명한말을했는데그것이멜랑톤이후독일신학을지배했다. 그것은그리스도를아는것은그본질을아는것이아니라그사역을앎이다. 예수그리스도가우리를위하여성육신하시고고난받으시고십자가에못박혀죽으시고부활하신것을아는것이다. 그러면그것을넘어서서하나님의본질자체를알수있는것이냐? 요한복음 1장 14절에보면, “말씀이육신이되어우리가운데거하시매우리가그의영광을보니아버지의독생자의영광이요은혜와진리가충만하더라”했는데언제제자들이그의영광을보았는가? 내가리델보스(Herman Ridderbos)와이야기할때그내용을한번토론해본적이있었다. 불트만학파에서는부활의사건을가지고이야기하는데어떻게생각하느냐? 언제그영광을보았겠느냐고물었는데리델보스도예수님在世기간에다보았다는것이다. 그래서내가말하기를부활전사건을가지고말해야바르지않느냐고반문했더니아무런답이없었다. 그러니바르트는하나님은예수그리스도로자신을계시하셨지만백성들은알지못했다. 더구나부활체를보이신것은누구에게나보이신것이아니고믿는자들에게만자신을나타내시고타인에게는은폐하셨다. 그리고하나님의지식과우리의지식을생각해보면우리는하나님은무한하다고신학을배워서안다. 그러나무한이무엇인가? 또하나님은영원하다고배운다. 그러나영원이무엇인가? 하나님이단순하다고할때단순하다는것이무엇인가? 그리고여기모든사람이그리스도안에서선택되고유기되엇다고말했는데그런逆陳述은완전히辨證法的思考이다. 바르트는우리가믿는대로일부가선택되고일부가유기되었다는것은믿지않는다. 바르트의선택교리는어떤사람의말대로찬란한빛뿐이고바르트는유기가없다. 칼빈주의같은일정한수가선택되고일정한상당수가유기되는그와같은빛과어두움이동시에있는것이아니라빛만있다. 그이유는예수그리스도가하나님에게서유기되었으므로예수그리스도와함께모든인류는유기되었다. 주님은“엘리엘리람마사박다니, 나의하나님나의하나님왜나를버리셨습니까?”하고십자가상에서말했다. 예수그리스도가단하나의대표로하나님에게서유기되었으므로모든인류는그리스도안에서그리스도가유기되므로유기?ㅆ다. 그리고하나님께서그리스도를다시선택하셨다. 그러므로그안에서모든인류가선택되었다고한다. 바르트에게는선택뿐이고유기는없다. 그러니만인구원이가능하다. 그러니까화해론이바르트에게서나온이유가있는데, 그것은그리스도의성육신으로모든인류의인성이귀한값을가지고앙양되는것이다. 그러니우리처럼천당갈사람과지옥갈사람이나누이는것이아니라한밝은빛뿐이어서선택뿐이다. 그리고예수그리스도를하나님의 Yes와 No로, 십자가에못박으셨으나다시부활시키셨다. 버리셨으나다시선택하셨다. 그러니 Yes라한다. 그리고죄인이하나님앞에의롭다함을받고그러면서도죄인이라한다. 이것은루터가한말인데, 루터는우리인간은의인이자곧죄인이라했다. 우리는그리스도안에서의롭다함을받았다(Dustus Sum et peccator). 그러니까그리스도안에서우리가그리스도의의를덧입은면에서는의인이지만우리자체로는죄인이라는뜻이다. 이렇게하면기독교신학은역설적으로전개할수밖에없다. 그러니까이런역설적인면을바르트는변증법적으로끌고간다. 그리고 Yes와 No에있어서마지막은 No로기울어지면서결국부정적인면으로기울어진다. 그리고계시라고하는것은요한복음 9장에보면원칙적으로하나님께서는죄인의말을들으신것이아니라의인의말을들으신다고했다. 그러면하나님께서말씀하신다면죄인에게말씀하실수없다. 그렇지만죄인에게계시가이르러온다. 어찌그럴수있는가? 이제까지하나님께서죄때문에못오셨는데어떻게죄인에게오실수있느냐? 그런데성육신으로오시고계시가이른것을보아서우리가의인이라는것을안다고한다. 이런변증법적모순으로진리를결정하려는것은결국기독교의복음진리를파괴하는귀결에이른다. 이제까지는전적으로하나님의내재였는데바르트는그반대극인하나님의전적인초월을말한다. 그러니까완전히우리와같은존재여서이제전적인他者로, 하나님을우리하고는무한한질적인차이를갖는그러한존재라고한다. 바르트의초월성은우리의사물중에하나처럼다룰수있는존재가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어떤형태로계시되는가? 사람형태인가? 관념의형태로계시는가? 바르트에의하면하나님은세계내에있는어떤대상을다루듯이결코대상으로취급할수없다. 하나님이말씀하시니까우리는들어야되는것이지우리가하나님에대해서논할수있는그런대상이아니다. 무엇을논한다는것은그것을대상으로다룬것이아닌가? 하나님은그런분으로생각할수없고다만하나님은말씀하시며그말씀을듣고말씀을건낼수있는분이지결코사물처럼대상으로삼을수없다. 그러니까바르트는성경도마찬가지여서하나님이말씀하시되그것이현상계내로들어오는것이아니다. 그리고우리가붙잡을수있는게못딘다. 만일붙잡으면벌써하나님말씀이기를그친다. 그것은우리가말슴을붙잡는다면우리가마음대로요리할수있기때문이다. 하나님을타자로생각하듯그의말씀(계시)도우리의논의의대상이못된다. 그래서하나님말씀이우리에게오되탄젠트(Tangent) 형식으로온다. 그래서그림에서와같이 A란점에서만난다. 그러나 B 지점같이안으로오지는못한다. 안으로들어오면그것은우리의소유가되기때문에그때는벌써우리가그말씀을어거하고조종하게되기때문에말씀이기를그친다. 그래서자유주의나보수주의나다같이그렇게하나님말씀을소유했다고하는자들은“복된소유자들”(Possident beati)이라했다. 하나님의말씀이우리에게들어와서하나의대상으로우리의것으로다룰수있을만큼들어와버리면그사람에게는하나님말씀이말씀되기를그친다는것이다. 그러니말씀이수직으로오시는오는데그경우말씀이안으로들어오는것이아니라탄젠트형태로오는데그때는반드시심판으로온다. 질적으로우리와전혀다른분이우리에게오셔서말씀하실때는우리의죄악을심판하시는심판주로오신다. 그것을받아들이며그것이곧의미로서의역사, 즉부활이라고한다. 어떤가? 우리의설교가심판하는설교가아니기때문에하나님을잘못만나는것은아닌가? 우리의설교가교인들이그저들어도좋은정도로, 그저통상쓰는용어로은혜되는정도가아닌지...? 진짜하나님을만나면통회하고애통하고할텐데그런것이없고“그것들어서좋다”, “교회올만하다”는반응이다. 그러니까자유주의는성경에하나님말씀이들어있다고믿었다. 그래서그하나님의말씀을찾아내는것이자유주의의작업이었다. 그렇지만칼바르트는그렇게말하지않는다. 바르트는그성경말씀을통해서하나님이말씀하실때에우리에게하나님말씀이된다고한다. 그럴경우는위에서직접말씀하시는형태로와서심판한다고한다. 바르트에게있어서하나님은전적인타자로항상주체로계신분이지우리의대상이되실수없는분이다. 그러니우리가소유하고어거할수있는존재가못되는데, 그런존재를우리가말해야되니까항상역설적인진술밖에는못한다. 무한한존재를유한한말로해야하기때문에역설적으로밖에할수없다. 그리고말씀하실때는위에서직접순간순간말씀하신다. 말씀이우리의시공내로들어와버린것이아니다. 그러면우리가마음대로어거할수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소위하르낙(Harnack)과빌레몬헤르만(V. Hermann)등유명한바르트의선생들에의하면성경속에서비평적방법으로우리가믿을수있는가장확고한예수상을건설하는것이바르트이전까지의자유주의신학의목표였다. 복음서에나타나있는신앙으로착색되지아니한예수상을구체적으로 믿을수 있는 재료들을 모아가지고 정말 예수가 어떤존재인가를 구성해 내는 것이 그들의 과제였다. 그방법으로는 역사적 비평적 방법들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는 예수상을 건설하는데 복음서에서 핵심되는 것들을 찾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그래서 가장 정확한 신뢰 할만한 예수상을 건설하는 일이 주과제였는데 불트만과 함께 바르트는 전적으로 이것을 배척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말씀이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는 그들의 신학 이론 때문이다. 이미 설명했지만 하나님의계시, 즉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속으로 혹은 시공내로 들어오는 것이아니라 원의 외부의 한점에서 탄젠트식으로 만나고 지나 간다. 그 순간 위에서부터 직접 심판하는 형태로 오는것이지 그것이 우리의 소유가 되도록 오는것이아니다. 이에 근거해서한 예수상을 건설하는 시도가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만일 역사적인 사실들에 의해서 예수상을 건설해서 신앙한다면, 예수가 어떤 존재 인가를 믿을 수 있는 여부를, 역사가 결정하게 되고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믿는다 해도 역사가 믿을수 있는 재료들을다모아서 정리하여 완전한 예수상을 만들어 놓기까지 우리는 예수를 믿을수 없다고 키에르케골이 말했는데 그것을 그대로 이들이 말한다. 이러한 역사주의는 예수가 진짜로 부활했는지의 여부를 역사적인 사실에 의해서 받아 들이려면 역사가 정확한 검증을 해 가지고 사실을 구성해야 한다. 그때까지 기다려야하니 역사가의 손에 우리의 신앙이 결정되고 좌우된다. 그렇게되면 우리의 믿음의 도약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못되게 된다. 그 이유는 역사는 과거의 사건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이 역사가결정한 역사적 사실에 의존하기 때문에 죽고 사는 사활의 문제가 못되게 된다. 만약 다른 역사가가 다른 이론을 내세우면 회의주의에 빠져 버린다. 그러니 바르트에게는 역사적 사실이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의 선생 빌레몬 헤르만과 하르낙등에 의해서 20세기초엽에 역사적 예수탐구가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반동으로 후기 불트만학파에서새역사적 예수탐구가 나왔다. You quest historical Jesus. “역사적인예수에 대한 새탐구 혹은 새물음”. 왜여기 You가붙었는지이배경을알아야이해할수있다. 그러니 바르트는 신앙의 역사는 역사적 사실에 의존하는것이아니다. 아브라함에게 임해온 하나님의 음성은 아브라함만이 받았고그에게 만죽고 사는 명령이었지 다른사람에게는 별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러니우리의 믿음의 도약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변증학파 불트만이나 바르트는 역사를 둘로 나눈다. 믿음은 지식에 의거하거나 역사적인 사실에 의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만으로 되었으니 구원에 이르는 것은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역사적인 예수 지식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Historie와 Geschichte 둘로 나누는데 Historie는 달력의 역사로써 해가 뜨고지고 그리고 우리가일어나서 세수하고 법먹고 출근하여 일하고 웃고 울고 싸우고 다투고즐거워하고 좋은 음식과 좋은 환경과 욕망을 충족하므로 만족해 하는 달력상의 일기장의 역사를 말하는데 그런 인간사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사람의 생에 큰삶의 轉機가 일어났다. 그가 죽을 병에 들었다. 죽을 병이든사람에게 고급 자동차나 절세 미인이나 좋은 불갈비며 하려한 권세나 명예가 무슨 가치와 의미가 있는가? 모든 것이다 허무로 떨어진다. 그 불치의 병으로는 그 고통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물론 세상에 견디기 힘든 일이많지만 그래도 힘든 것은 육체적인 고통 같다. 병으로 오는 고통 십자가예수의고통은 마취주사도 없이 당했는데 그래도 로마 군인들은 인정이 있어서 어떤 성경에는 쓴 쓸개즙을 탄 포도주를 주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일종의 마취제이다. 그들은 너무 예수의 고통이 크니 마취를 시키려고 했다. 예수는 거절하셨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조직이 무너져 내리는 그 고통, 정말 힘들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내가 지금까지 잘살려고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분망하던 삶이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죽음앞에 모든 것이 허무로 떠내려가는데 무슨의미가 있겠는가? 그때부터 얼마동안은 물질과 탐욕에 연연한데서 벗어나서 선한 생각을하며 자기 본래적인 삶에로, 인간적인 본래의 심정으로되 돌아온다. 이제까지 인색하던 생각을 버리고 나누어 주기도하고다 그런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그런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生과 돈을 모으려고 아둥바둥하는 生과는 그의미에 있어서 같은 生이 아니다. 시간의 의미나 인생의 가치가 같은 것이 아니다. 바로 그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생의 역사를 가리켜서 Geschichte 라하는데 독일어 밖에 이런 구분의 단어가 없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으로 발생되었느냐 하는 것은 의미없으니 부활했든지, 神話가 되었든지, 거짓이 되었든지, 있든지 없든 지상관할바 아니고 그부활의 의미를 받아들여서 내가 기쁨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고 평안이 오면되기 때문에 구태어 빈 무덤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그자체로 인정하지 않고 그안에 오류도 많이 있고 고대동방종교들의 神話들도 많이들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하나님말씀이된다고하니 그는 현대주의자이다. 그러니 바르트에 있어서는 글자 하나에 오류가있고없고에죽고살고따질필요가없어진다. 나는죽고살게하는책을아직발견하지 못했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러니 성경도 오류가 있는인간의책이라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할 때 그것이 내게 神言이 되니까 성경 자체에 오류가 있느냐 없느냐, 어느게 진짜냐 가짜냐를 따질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는 옛날 자유주의자들도 옳은게 아니고 보수주의도 옳은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 계시를 전적인 他者로 강조한다. 바르트의 눈에 자유주의자 들까지도 옳은게 아닌 것은 성경을 하나님말씀이요 계시의 문서라고 마음대로 비평적방법으로 쪼개고 나누고 어거했기때문이다. 그러니까 바르트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을, 계시를, 전적인他者로하여하나님말씀을성경책하고일치시키는데서떠나서분리시켰다. 그런 의미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했어도결국계시가성경으로 형태화하여 나타나지 못하게 막는다. 만약 계시와 성경을 일치하지 않고 분리하면 성경은 인간의 심리의 결정으로 끝나고만다. 그래서결국바르트도 근세주의자이다. 그러면 성경이 성경계시로써와 하나님 말씀이 된다는 것과의 차이가 무엇인가하는 점인데, 어떤가? 어디를 읽으면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할것인가? 일본에서강도가성경을읽다가손이범죄하거든찍으라는말씀을읽고손을찍었다는 예가있다. 그러면 그런말씀은 현실적이어서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했다고 한다. 도적질 하던자가 그때 그말씀이 임하니 말씀의 큰세력을행사하여 손을 찍게 했으니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 했다고 했다. 바르트는 항상 진리가 변증법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바르트에게는 진리가 항상 명제형태로 오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결국 진리의 개념만을 가르친다. 본래 진리는 그말의 진실이 사실과 일치해야 되지 않는가? 말이 한가지 진술을 했어도 그다음 반대되는 부정적인 진술로 보충되게 되면 주된사실과 맞지 않는것이라고 Harvie M. Conn이 비판했는데 그도 단순하게 비판하고있다.변증법적 방법으로 이해하면 하나님을 전적인 他者로 강조하니까 계시하셔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그러면 결국 알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나님과 무한한 거리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혹은계시)을 결국 알 수 없다는데 이르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본질에 대해서 다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신그사역을 보고 아는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서 계시된만큼은바로 아는 것이 확실하다. 계시를 Geschichte 영역에 넣으면 우리 기독교는 역사적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종교인데 역사적 사실이 사건으로 취급되지 않으면 기독교가 기독교로 존립 할 수 없다. 그러니까 항상 내재론의 신학자들처럼 하나님의말씀계시를 마음대로 조종하고 가르치는 것을 교정하려는 시도는 그런대로 인정할 수있지만 부활을 Historie 달력상의 역사에서의 일이 아니라고 부인하고실존주의線의 영역의 일로 하면 기독교가 서있는 그기초가 상실된다. 결국기독교를 허는일이 된다. 제 3장신정통주의 이제신정통주의가독일을넘어서서세계에퍼지고일본이특히열열하여한국에까지건너왔다. Karl Barth는계시가수직으로와서시공내에한사건이되지않는다. 특히성경계시의핵심이예수그리스도와그의사역이고특별히고난주간부터부활후 40일간까지의사건이라면성경은그사건을기록한증거들, 기록이고증거물이다. 성경, 그자체가계시가아니라혹은지시봉이라한다. Karl Barth는성경자체가계시자체라하지않는다. 성경은계시사건을지시하는지시물에불과하고증거물, 기록뿐으로서다만계시사건, 예수그리스도의십자가와부활그리고그후 40일을회상하게하는보조물이다. 그러면언제하나님말씀이되느냐? 그것에대한하나님말씀이위에서내려와성경을통하여증거하는그십자가사건과일치할때비로소성경이하나님말씀이된다고한다. 혹은하나님말씀으로쓰였다고한다. 브룬너도마찬가지진영에있기때문에브룬너에있어서도계시는둘의만남이다. 만남없이무슨사건이생겼다고할수없기때문이다. 우리야별연애경험도없이만나니까만남의의의가별의미가없지, 소설들을읽어보면한남자와여자가만날때얼마나큰사랑의사건이연출되는가? 둘이말하는자와듣는자가만나대화하는사건이계시라하여계시가객관적으로와있는것을부인한다. 신정통주의자의눈에는객관적으로와있으면그것은전통적인자유주의가되고보수주의가된다. 그러니변증법적신학자들의눈에는보수주의와자유주의가다같이보인다. 이는다같이하나님의말씀, 계시를소유했다고하며성경책을가지고있으면서자유주의자들은성경안에하나님의말씀이들었다고하고보수주의자들은성경이계시자체라고하기때문에 Karl Barth는이를둘다배척한다. Karl Barth는계시곧하나님의말씀이무엇이냐할때, 바로예수그리스도라하여예수그리스도가하나님의말씀이라한다. 왜냐하면예수그리스도안에서神人의구속이이루어졌는데구속의궁극이무엇인가? 神人의연합이다. 그러면 Karl Barth의그다음단계는계시, 즉하나님말씀은예수그리스도보다더올라간다. 그것은예수그리스도가신인연합을이루는길이기때문이다. 그러니계시는전부다예수그리스도에게만있다. 특별히부활부터 40일간이계시의사건이라한다. 죄도예수그리스도아연관해서생각한다. 사람이언제죄인임을아는가? 예수믿게될때안다. 그러면죄의문제가어찌되었는가? 이미해결되었다. 예수를떠나서죄를아는가? 모른다. 예수를만날때는이미예수안에서죄의문제가해결되어버렸을때이다. 그러니까예수믿지않는가? 그렇기때문에 Karl Barth는자연계시를인정하지않고예수그리스도로나타난특별계시뿐이다. 우리에게는받을만한능력이없기때문이라고한다. 그리고예수그리스도에게도변증법이있는데예수그리스도가하나님이시다. 그런데사람이되셨으므로정반대가되었다. 하나님이하나님되시기를포기하고사람으로존재하다가부활하므로다시하나님의존재로되돌아간다. 그러니까우리처럼단순하게하나님이육신을입으셨다고생각하지않는다. 하나님이반대극으로변화되었다고한다. 칼세돈신경에의하면예수그리스도의兩本性이혼합없이변동없이분리없이분별없이계시지만 Karl Barth에의하면그것이아니고하나님이사람이되는정반대극이된다. 그러니까엄밀한의미에서 Karl Barth에게는성육신이없다. Karl Barth에의하면하나님이하나님으로써높으시다고하면무슨의미가있겠느냐? 그러니하나님이성육신해서그반대극으로완전히사람이된것이다. 그래서다시높아지신다. 하나님이하나님으로높으신것은의당한것이라하니이것은칼세돈신경에전적으로배치(背馳)된다. 그러나 Van Til이나 Harvie M. Conn이잘모르고성육신을인정해주는데변증법적인신학자들에게실제로성육신이있는것이아니다. 다만그들에게변증법적으로있는것이지실제로성육신이있는것이아니다.Karl Barth에의하면하나님께서인류의인간성자체를높이셨다. 그리고높이보시되하나님이성육신하시므로그인간성을그전보다더높은차원으로앙양시키셨다. 그러니인간성자체가존귀하다. 그것은그인간성에로하나님이인성을입으시고성육신하셨기때문이라고한다. 이것은하나의언어사건일뿐실제역사적사실은아니다. 인성이얼마나하나님께존귀하게여김을받는존재인가? 그가나치를반대하고그탄압을반대할때바로이교리를내세웠다. 모든사람이그리스도안에서다유기되었고또다선택되었다. 그리스도가바로하나님의유기된자이고선택된대표자이다. 그러니까그리스도안에서유기되어지옥갈자가아무도없다. 모두가다하나님의큰구원에이른다. 왜그런가? 하나님의사랑이크기때문에모든인류를다그사랑이포용하신다. 그래서다구원을얻는다. 그러므로전도할필요도별로절박하지않다. 왜냐하면모든인류가모두다그리스도안에서구속이되어있기때문이다. 그러니신자와불신자를나누어서적대시할필요가없어진다. 그러니까그회해교리가한국에도도입되면서부터화해하자해서화해교리가유행했다. 그래서죄악을함께나누기도했다. 왜그리스도인이라고술마시지않고담배안피운다고선을그어놓고그것을적대시하느냐? 그럴필요가없는것이다라고한다. 흔히 Karl Barth에게있어서는하나님의진노가역사의한지점에서진노가공의로건너감이없다. Karl Barth에게는타락도마찬가지이다. 에덴동산이어디있는가? 성경에는동쪽에위치한다고되어있다. 그러면동쪽이어디인가? 우리가볼때는메소포타미아와티그리스강과유프라테스강이발원하는어느지역으로본다. 지금도두루도는화염검으로지키는가? 볼수있으려면땅에있는것이어야하는데안보이니땅에있는것이아니다. 하나님이회수시켰다고하는데언제회수시켰는가? Karl Barth에의하면에덴은지도상의한지점이아니라고한다. 성경의명확한지점이없다. 그러니 Karl Barth는에덴동산은지도상에점을찍을수있는지점이아니라는것이다. 그러니타락도지구상에한점을찍고하루이틀을셀수있는역사상에일어난실제사건이아니라고한다. 그런데분명히우리기독교는역사상에서생긴사건이라고믿는다. 아담의존재를역사적인인물로인정하지않으면예수그리스도는꼭인정할필요가어디있는가? 그럴필요성이없어져버린다. 내가그문제를가지고암스텔담에서토론할때에하나님께서노아홍수로에덴동산을쓸어버리셨다했는데그것도증거는없는이야기이다. 그러나낙원을홍수로헐어버리셨다. 그런데 Karl Barth에의하면역사상원죄상태에서타락으로넘어간그런것이없다. 타락은 Geschichite 의미로서의역사에서이루어진것이지실제 Historie 사건이아니다. Karl Barth가그렇게훌륭한신학책을많이내고성경신학을많이했어도 Karl Barth 신학으로교히가새로워지지못했다는것이자유주의자들의평이다. 재래신학과 Karl Barth 신학의차이점이있다. 재래신학을보면성경만인용해놓고말지만 Karl Barth의조직신학책의다른점은주석을실제로해서자기신학을전개하니책이방대해졌다. 그런데문제점은누구는선택되게하고누구를유기되게할수있느냐? 아직그들은선택된것을모르고있는것뿐이라한다. 그러니그것만선포하면된다는것이다. 결국은전도할필요성이없어진다. 있다해도소극적이다. 있다면그큰사랑과선택을알려주는것뿐이다. 그래서그들로선택된자들로깨우쳐살게하는것뿐이다. 그러니 Karl Barth는역사상에하나님의진노가자비로넘어가는시점이없다. 그의선태가유기도마찬가지선으로구분할수없다. 그러니선택교리만있다. 밝은빛만있지배면에어두움이없다. Karl Barth가계시를강조하는데하나님의말씀을선포하는게아니라만남이라고한다. 언제만나는가? 매순간만난다. 성경이그자체로하나님말씀이아니라선포될때내심령에서내존재깊이에서만나면하나님말씀이된다. 만남, 대면, 대하로된다. 그러니까구체적인명제형태로계시가오는것이아니다. 문장형태로계시가오는것이아니다. 계시가내게사건으로와야계시가된다고한다. 神話(Myth)와史話(Saga) 즉, 전설은다르다. 불트만이말한대로神話는이세계의일을저쪽세계의일로말하는것, 혹은神의일을인간의일인것처럼말하는것이다. 불트만은칸트가설정한두세계의일을충실히한사람이다. 그래서저초월의세계가있는것이아니다. 하나님이어디초월의세계의보좌에앉아계시다가우리에게오셔서여인의몸에들어가시고십자가에못박히시고그피가무슨마력이있어서죄를씻겠는가? 그런데전설은완전히역사성을결여하지는않는다. 상당히많은경우역사와연관되어있다. 그런데그것이본래우리의인간구조와연관되어있는것이다. 그런것을바꾸어투사한것, 그것이전설이고 Saga라한다. 그러니에덴동산의첫조상의타락같은것도역사적인시점에서생긴것이아니라고한다. 그러니까원죄라고하는것도칸트의말처럼우리에게있는근본악을말하는것이지실제로어느시점에서선한사람이악한사람으로전이되는것이아니다. 그리고그리스도안에서구속같은것도 Karl Barth에의하면실제로그큰구속은神人의연합이고하나님과合一인데예수그리스도의변증법적성육신은그일을위해서이루어졌다. 그러면실제로 Karl Barth는솔직하고단순하다. 동정녀탄생을못믿으니까전통적인성육신을못믿는다고했다. 그렇지만 Karl Barth에게성육신이있는가? 변증법적으로만있다. 하나님의아들예수그리스도가영원부터선재해계셨다는그런것은하나님께두神의교리를도입하는것이라고한다. 예수그리스도가성부와구별된第二位格, 혹은인격으로선재해계셨다고하는것은 Karl Barth에게있어서는神話일뿐이다. 그러니까우리도사변적으로생각하면머리가멍멍하고해결할길이없다. 하나님말씀의가르침에늘매어있어야할것이다. Karl Barth 신학의용어들은다반복을하는데그안에들어있는내용은전혀다르다. 그러니그런것들은사실을혹은실제를지시하는지시물이다. 예를들어타락이나아담의원죄같은것은우리의인간본래의구조를말해주는것뿐이라한다. 그러니까창세기 3장같은것도역사적으로실제로일어난사건이아니다. 하나님지식과하나님의경배란제목으로 Karl Barth가사도신경강해를했다. 그때한질문자가질문을했다. 낙원에서뱀이말한것이발생했느냐? Karl Barth에의하면그것이역사적인어느시점에서타락이생긴것이아니다. 그러니뱀이말했다는것이무슨의의가있는가? 계속 Geschichite 이야기를했을터인데청중들이너무단순했고못알아들은것이다. 타락이 Geschichite에서의미상생겼지우리사는 Historie 이런역사상에서사진찍을수있도록타락이생긴것이아니라는것이다. 그러니그런질문을하니까그게무슨상관이있느냐는것이었다. 그러니우리가성경말씀에부착하지않고사변적으로이야기하려면정말이해하기어렵다. 우리의설교에서이와같은어려운것을과학적으로증명하려고노력해서는참으로어렵다. 성경적으로제시해야하고하나님말씀의권위로가야한다. 그리고성령의역사가있도록해야한다. Karl Barth는모든계시가그리스도와연관해서그리스도안에서이루어지기때문에자연계시를소홀히하고도외시한다. Karl Barth는자연계시라는것은없다는것이다. 그러나그자연계시도그리스도안에서다왔다. 그리고창조자체에서하나님께로갈수없어도거기에모든계시가나타나있다. 그렇기때문에종교개혁이강조한특별계시가정점에이르렀는데도모든것을은혜화해버리니까자연신학이 Karl Barth에게흥한다. 변증법적으로말하니까요한복음도그런이야기를하는데그리스도가십자가에매달림을영화로생각했다. 십자가가그리스도에게있어서제일치욕의극치인데요한이그것을영광으로보았다. 그래서 Karl Barth도예수의수난을변증법적으로본다. Karl Barth에게는하나님의신이사람이되신그런성육신이없다. 실제사건으로있는것이아니고그냥변증법적의미에서만개념적으로논리상있는것뿐이요, 언어사건이지실제사건이아니다. 말장난일뿐이다. 전통적인견해로산위일체제 2위격은 Karl Barth에게는없는데없는하나님이어떻게사람에게내려와있겠는가? 다시반복하지만칼세돈신경이변화없이, 변동없이, 혼합없이, 분열없이, 분리없이그리스도의양본성이있다는그내용중에변동이라고한그구절에의해서 Van Til이 Karl Barth의성육신교리를비판하지만내가보는대로는 Van Til이그면에서는 Karl Barth를잘못보았다. 전통적인성육신이 Karl Barth에게있는것이아니다. 그래서하나님이자기자신을주권적인자의에의해서반대극인자리로가서인간이되었다가또반대극에서다시반대극인하나님으로되돌아오는자유와능력을가지신다고말한다. 그러니까완전히하나님이사람이되었다가완전한그사람에서다시완전한하나님에로되돌아가는주권적인자유를갖는다고 Karl Barth가말했다. 그런데내가이해한대로는 Karl Barth에게는진정한의미의성육신이없고변증법적인말장난뿐이지실제로는없다. 그렇게따져서전통적인성육신교리가 Karl Barth에게없으면결국 Schleiermacher를 180도되돌이키려고하는것이설득력이없어진다. 예수도한낱사람으로머물러있을뿐이기때문이다. Karl Barth에게제일중요한것은소위화해교리, 혹은구속인데그구속은하나님과사람이연합하고사람과사람이연합하는것이다. 이것이그에게제일중심이다. 그래서연합함으로인간의존재를하나님이존재까지끌어올린다. 그것을예수그리스도를통해서하신다고한다. 그러니예수그리스도의십자가의그죽음가피로하나님과화해했다는성경적교리와는맞지않는것이다. 근본이무엇인가? 그것은인간의존재를이피조수준에서하나님의자기존재의수준까지끌어올리는것이다. 이것이하나님의구원사역의궁극의목표라한다. 지금성경의선포대로하나님과사람사이에원수되어있는것을그의아들의죽으신그피로회복하고화해하여화목하는것을말하지않는다. Karl Barth의화해가무엇인가? 神人合一, 즉연합으로피조물이하나님의존재의수준까지올라가는것이다. Karl Barth의주장은종말에인간이피조수준을넘어가는데그것을구원이라고말한다. 그런면에서 Karl Barth와로마카톨릭이완전히일치한다. 그래서로마교회가 Karl Barth를카톨릭이라한이유가여기에있다. Karl Barth에게서만인구원설은불교도와유교도와힌두교도다포함한다. 한스킹(Hans Kung)은그런방면에서는전제는안했지만, 현대사상들이다같다. 한스킹은교황무오설을반대해교황의노여움을사서교수직에서물러나간, 튀빙겐대학의교수였다. 그런데종교개혁으로로마교회가구라파의많은교회를빼앗겼다. 영국, 스칸디나비아제국들, 뎀마아크, 화란, 독일등. 그러나전통적인라틴계, 이태리, 불란서, 스페인, 포르투갈, 오스트레리아그리고서구의반정도는전통적인로마교회의영역으로남아있었다. 그래서그실세회복을아시아선교에서추구했다. 그러므로종교개혁이한창일때로마교회는아시아로선교사를보낸이유가거기있다. 인도, 중국, 일본으로선교사를파송했고그들이와서열심히 16세기부터 400년가까이아시아에서선교했다. 그러나구라파에서잃은것을결코회복하지못했다. 그러면신대륙은어찌되는가? 미국과카나다가전통적인개신교의아성으로남았다. 물론그위 19세기에미국에서로마교회가반동종교개혁을일으켜미국을카톨릭화하는데숫자로는열세여도상당히많은영역에서로마교회가미국에서그실세를많이회복했다. 그래서남미는다로마교회이다. 그러면기독교의복음은만인을위한복음인데선교를해도실패하고되지않는다. 그리스도의복음으로교회에로들어와야할텐데아시아가들어오지않는다. 일본이 1억이넘는인구에개신교가 50만, 카톨릭이 100만이나 200만정도될까한다. 그러니전체에비해서얼마나되는가? 중국은 10억인구이니까좀많을것이다. 그러나전체비율로얼마안된다. 그런데하나님께서온인류를위하여구속하셨다는사실에선교의당위성이성립하는데이렇게오래도록전도해도(그들은전교라고하는데) 성공하는것이없다. 그러면그들을구원의밖에두어야하느냐? Karl Barth에게는구원의길에다른길이없다. 불교도자비를말하지않는가? 유교도仁(어짐)을말한다. 그리고높은윤리적인차원을제시하지않느냐? 그렇다면그종교들은결국은하나님께가는것이다. 출발은달라도귀결은같다는것이다. Karl Barth는하나님이만인을위해서구속의사건을이루셨으니까만인이다그리스도안에서유기되었고선택되었으니까그리스도가최종적으로선택된자라고한다. 그러니그리스도안에서다선택되고다구원에이르는것이다. 그러니까우리만천당가고불신자는못간단말인가? 그런식의구원은 Karl Barth에게없다. 그러니까 Karl Barth가신학운동을구라파에서크게일으켰어도선교사를보낸교회가몇되는가? 제 4장 양식비평-불트만의방법(Form Criticism-Bultman's Method) 불트만의비평을양식비평이라하는데불트만이처음시작한것이아니고헤르만궁켈이소위양식비평을구약의연구에도입했다. 불트만은궁켈의제자이다. 그런데마틴디벨리우스(Martin Dibelius)가신약학에는처음도입했다. 그리고완전히정착한사람이불트만이다. 그러나많은사람이불트만의과격한이양식비평을반대하고비판해도, 상당히많은사람들이이를수납한다. 이비평적방법은성경도고대의다른종교적문헌과역사적문헌과똑같이다루어야한다고최초에말한사람이있는데소위경건주의학파에서나온 Semler란사람인데성경도완전히역사적인책으로생각하고그러니역사적비평적방법으로다루어야한다고했다. 성경이계시에의해서이루어진것이아니라고대역사적인종교적산물로이루어진것이라고하여실제로성경을말해도계시를부인한다. 불트만이전학파의 A. von Harnack이나 V. Hermann이다불트만의선생인데이들중에헤르만의영향이더크다. 왜냐하면하르낙과거의동시대사람으로불트만에게실존적인사고를본격적으로시작할수있도록준비하고, 일을연사람이헤르만이다. 그런데 19세기말엽에서 20세기초엽까지이들에의해서역사적예수탐구가있었다. 이것은역사적비평적방법으로가장믿을만한예수상을건설하려고하는것이 19세기말엽에모든학자들의이상이었다. 복음서가제시한가장믿을만한신빙성있는역사적인예수상의건설, 그것을비평적방법으로공관복음서를연구하기시작했다. 이것이변증신학이등장하기전의역사적예수탐구이다. 그런데불트만은자기선생들의그런주장에대해서전면적으로반대를했다. 공관복음서를아무리연구를해도믿을만한예수상을건설할수없다. 그것은공관복음서는예수의전기집이아니기때문에역사적인사실을전달하는데의미를가지는것이아니라초대교회신앙으로완전히조직된초대교회(여기에서한국의미신적토속신앙이단군을역사적인물로만들고그들이믿는내용을논리화하고조직화해서그들의경전을만들듯이) 신앙고백의산물로성경을생각한다. 이들은성경을순전히역사적인사실의보고같아도초대교회의믿는내용, 즉신앙으로활동했던역사적인예수상을건설할수없다고했다. 그리고불트만이변증법에서이신득의의교리에근거해서우리가예수믿어구원얻음이역사적인예수에관한지식을얻어서그지식에근거한신앙을가져야구원을얻는다고하지않는다. 우리가구원얻은것은행위로말미암지않고믿음으로의롭다하듯이선포된말씀을믿음으로우리가의롭다하고구원에이르는것이지역사적지식을소유하므로의롭다함을갖는것이아니라고한다.그러면공관복음서에나와있는것은무엇이냐? 순전히초대교회신앙의산물이다. 그래서이들이말하기를공관복음서를보면초기단계에서는역사적인나사렛예수를랍비라고만했다. 그다음단계는주님으로, 그다음은하나님의아들로, 메시야로, 세상의구속주로점점더높은단계로표현하여말하여진다는것이다. 그러니교회가어떤상황에처했을때예루살렘교회는예수를퀴리오스예수스(κㄷρθξζⅩΘσξυζ) 즉主예수라고불렀다. 그리고메시야라고까지발전했는데이교회가예루살렘을벗어나서희랍세계로들어가서는그희랍의종교사상들과동방의여러신비종교들을만났다. 그때그들이자기들의신앙고백의대상을채택했다. 그상황에서예수에대한이해, 예수에대한교회의신앙고백이복음서라는내용으로결과한것이라고한다. 그러니그들에의하면복음서가역사적인예수의실제를기록한것이아니다. 그렇기때문에복음서는실제로예수가말한것이아니라이들이자기들의(초대교회) 신앙을정당화하기위해서실제로예수가말하고행한것처럼꾸몄다. 그러니초대교회의그상황에따라예수의신앙고백내용도변화되고변천한다. 그래서그냥일률적으로나타난것이아니라일정한양식으로나타난다. 그러니까불트만은계시고뭐고그런것은관계도없고그냥이방종교들의발전과정과똑같이취급하므로이세상여러종교들중에조금고등한종교정도를만들었다. 예를들면퀴리오스(κㄷρθξζ)를어떻게예수에게붙일수있었느냐? 로마황제들에게붙인퀴리오스(κㄷρθξζ), 主란칭호를초대교회가예수에게붙였다고말한다. 하나님의아들이란칭호도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는메시야, 혹은주님이란칭호도예수자신이한것이아니고초대교회가그런신앙고백을했을뿐이다. 그러니까복음서는초대교회의신앙의산물이며실제역사가결코아니다. 그런데그신앙이희랍세계로가면서넓어지므로예수에대한이해의영역도넓어지는데이것이공관복음으로표현되었다는주장이다. 그런데이양식사학파다음, 후기불트만의제자들이편집사학파라는편찬가설을말한다. 이것은양식사학파가공관복음을초대교회의신앙고백이라고하는데편찬가설은초대교회신학이공관복음을결정했다고했다. 그러니까편찬가설은초대교회라고하는공동체가아니라편찬자들이자기들의신학에따라편찬해낸그편찬자들의신학이복음서를만들었다고한다. 그러니양식비평과편찬가설은큰차이가있는것이아니다. 신성종박사는템플대학에서학위를받았는데주임교수가인정을했다. 그는편찬가설을박사학위논문으로써서학위를받았다. 거기다한국의토착화신학까지겸했다. 웨스트민스터에서한국학생들이요청해그논문발표를했다. 그런데공격하고문제를지적한사람이아무도없고나만문제를지적하고공격했다. 그러니까한국에토착화를부르짖는사람은다불트만의이신학을이용해서말한다. 옷을한국식으로하고, 노래를한국식으로, 그림을한국식으로표현해야한다고한다. 한국사람이신앙체험을우리식으로설명한다고하는것은반대할사람이별로없을것이지만, 그러나뒤에있는신학이문제가된다. 그런것을일관성있게밀게되면윤성범의단군신화격으로표현하는데로귀착하지않겠는가? 현대신학도모두다자기시대의사상의토착화인것이다. “그러면한국의무속신앙을인정하여표현하란말인데다를것이무엇인가? 소박한수준에서는어느정도이해가가지만그것을신학으로일관성있게믿는다면어떻게되겠는가? 윤성범의단군신화의삼위일체로하나님의삼위일체를푸는데로귀착하지않는가?”그랬더니어떤사람이말하기를편찬가설은사탄의신학이아니라고큰소리로일축해버렸다. 사탄의역사에서나온것이지어떻게성경을허는이신학이사탄적이아니라고하겠는가? 이사람들의주장은예수님자신이자기를하나님의아들로주장한것이한번도없도신학자들이그렇게꾸몄을뿐이라고한다. 나도편찬가설을잘모르지만양식사학파와별다른것이없다. 다만양식사학파는복음서를초대교회의산물로보고편찬가설은편찬자의신학적산물로보는차이뿐이다. 불트만에게는본래예수그리스도가하나님의아들이고초월해계신하나님이시라는그런것은찾아볼수없다. 그런것은초대교회신앙공동체가자기들의신앙을한갖인간인예수에게채색하여덧입힌신화적인것이지다른것은없다고한다. 불트만은바울의인간이해를기독교이전의영지주의인간이해로전부풀었다고했다. 그이해를지금현대적으로바꾸는데좋은것이무엇인가? 하이덱거의실존주의철학이라고한다. 그러니까초대교회당시고대인들의인간이해를그당시형식을빌려서했다. 그러니우리는현대적방법으로이해하는데제일좋은방식이하이덱거의실존철학이라고한다. 예수가하나님의아들이요, 메시야요, 구주라는것은다신화라는것이다. 우리의일을저쪽(하나님의일)의일로투영해내는것뿐이기때문에신화이지다른것이아니라한다. 그러니복음서가역사적인하나님이아들된인간예수에게서비롯된것이아니라는것이다. 초대교회가예수에대한신앙을가지고자꾸헬라세계로확장해갈때그들의종교에서자기들의신앙의대상을주님으로호소해가고하나님의아들로고백하고하나님으로고백하고메시야로취택했을뿐이다. 갈수록신학적이해가깊어짐에따라교회가도를신격화시킨것이라고한다. 그들은신약을보면그렇다는것이다. 그러니까우리가믿는대로예수께서자기가하나님의아들이라고주장하고그리고말씀으로제자들을가르쳐서신앙을성장시키고또사도들이그복음을전파하고가르쳐서교회를세운것이아니고초대교회가그와같은신앙을가지고복음서를썼다는것이다. 초대교회신앙이혹은초대교회신학이복음서를만들었다고한다. 양식사학파와다른것은편찬가설이편찬자의혹은편찬학파의신학이복음서를만들었다고하는차이만있다. 그러니까그들의주장대로그시대의사상들의영향을완전히다받은것이며예수는한낱나사렛사람이지계시가어떻고하는것은다신화적인이야기라고말한다. 물론우리도예수를나사렛사람이라고인정을한다. 또그들이한가지는인정하는데예수그리스도의십자가가하나님의세상을향한마지막최후의선언이다하는데그것은맞는다. 그러면부활은무엇이라고하는가? 그십자가의의의를받아들이는것을부활이라고할뿐역사상의실제부활은이들에게없다. 하나님의최종심판을믿음으로받아들이면내가죄에서놓여난다는것이다. 지금현대교회의추세를생각하지말고우리가한번생각해보자. 예수믿으면세상것을추적하고사는데서벗어나지않는가? 하이덱거의분석에의하면일상생활은항상조르게(Sorge)라한다. 이조르게란말은근심과염려란말도되지만관심이란말이다. 우리는항상대상을바란다. 우리의의지도그냥허공으로올라가는것이아니라무엇을, 어떤대상을바란다. 우리가안다고할때도그냥허공에구름잡듯아는게아니라어떤대상을지향한다. 대상지향주의로우리는일상의관심을항상대상을지향한다. 좋은주택, 좋은음식, 좋은가구, 좋은자동차, 아름다운장식, 호화로운세상榮華에로, 은숫가락금젓가락으로향한다. 하이덱거에의하면우리는항상대상에매어물질적인것에매여서산다. 우리가그런대상지상주의로대상에매어사는데우리가죽음에직면하면무슨의의가있겠는가? 그러니까죽음앞에서는세상에그와같이귀한것들이다無와같은것이된다. 그때본래적인자아에로되돌아온다고한다. 기독교신앙을소유한우리도세상을전부로하고사는데서그리스도의십자가의선포를받아들여신앙을가지면그전의것은별로중요하지않은것처럼참신앙은본래적인자아에로돌아와서이제는주님을전부로하고산다. 그와비슷한이야기로하이덱거가실존을멋지게잘묘사를했다. 바로그런하이덱거의실존주의식으로현대적으로번역할수있다는것이非神話化다음에실존주의적인해석이다. 그러니까양식사학파에의하면성경에나와있는예수의말이라는것들도예수가실제로한이야기가아니라는것이다. “배에서”, 혹은“때에”, “길가실때에”이런단어들은편찬자가전부다예수가한말인것처럼만든말이라는것이다. 그러니우리는예수에대해서직접알수있는길이없고제삼자들의예수에대한대강적인이야기만가지고있을뿐이다. 초대교회가다그렇게만들었다. 초대교회신앙의산물이곧복음이된것이다. 그러나복음서는다역사적사실이다. 겨우예수의인간적인행적만기록한정도가아니다. 왜냐하면지금하나님의큰구원사건이진행되고있는데“공자님이어디가시고자공에게말씀하기를”하는그런식의논어와같은것이아니다. 그러니가한동안진짜예수가존재했느냐하는이야기까지나왔다. 안그러겠는가? 그런주장을적극적으로밀면그런결론에도달하지않겠는가? 예수가實在했느냐, 가공의인물이냐를의심하게된다. 내가“인도에서예수의생애”란책을한권사놓았는데다읽으면서평을쓸려고한다. 그책에서는예수가십자가에못박히기까지는인정을한다. 그런데죽지않고인도로갔다는것인데, 인도와연결된것에대해서내가이해하기로는초대교회의중요한사상하나가가현설(可顯設)이었다. 이것은영지주의주장의영향으로물질은악하다고생각하므로하나님이신, 영이신그리스도가실제로인간예수와결합할수없었는데실제로결합하신것처럼나타났다고하는것이가현설이다. 실제로성욱신한것이아니고가현이었다. 영지주의영향에의해서... 그러면예수는물질은악하기때문에물질과결합할수없다는귀결이다. 그러니까예수는실제로십자가에못박혔느냐? 도마가쓴것이아니고도마의이름으로영지주의사상이많이들어가서쓰여진도마복음에의하면그리스도를십자가에못박을때예수는변형하여구레네시몬이되었고, 구레네시몬이실제로는예수자리에대신들어가고말았다. 그런에도마가인도로전도하러갔기때문에그렇게연결시켜서소설을하나쓴것이다. 그런책은사기꾼의거짓말일뿐이다. 양식비평으로따지면복음서는예수에게서실제로나온말이아니고예수와그제자들에관한이야기일뿐이며계속밀면예수가존재했다고꼭할필요도없고존재할아무런의의도갖지않는다. 한동안그와같은예수가실재했느냐는가설들에대한책이나온일도있다. 지금이렇게여기저기돌아다니는구전들혹은단위들을교회가엮었는데지금복음서이전에원천이되는것이단위로돌아다녔다. 그것들이어떤형태를거쳐서교회신앙에서인위적으로결합되었느냐? 그러니그껍데기를벗기면처음출발한본래알맹이가나올것이다하여전승의기본되는기본단위를찾아내자고한다. 이것이양식비평인데이것은오히려온건한것이다. 다시말하면어떤복음서의기본단위에서지금의복음서까지왔느냐? 그역사를추적하는것이양식사들의하는일이다. 그런데불트만의이야기는십자가를인정하니까역사적인예수를인정하는것같으나그렇게생각하지않고단지예수에관한이야기들이교회에서만들어져서돌아다닌것이다. http://cafe.daum.net/wansu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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