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선교

복음 전도학

하나님아들 2021. 8. 12. 23:46

복음 전도학

이승진(실천신대)

 

1. 복음전도학의 정의

- 복음전도학(福音傳道, evangelism)란 말은 복음이란 뜻을 가진 헬라어의 유앙겔리온에서 유래되었다. 한편 복음을 전하다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동사 유앙겔리조라는 단어는 좋은이란 의미를 가진 헬라어 유와 선포하다 혹은 보고하다는 뜻을 가진 앙겔로란 말이 합쳐진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전도란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말하는 좋은 소식이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성취하신 구속사의 완성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를 값없이 받아들이라는 것을 말한다.

 

2. 복음전도의 성격적 근거

- 복음전도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보다도 마태복음 28 18-20절의 대위임명령(the Great Commission)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황상 함께 있으리라”(28:18-20)

복음전도의 성경적인 근거를 대위임명령에서 찾고자 할 때는 이 위임명령의 구속사적인 성격과 삼위일체적 성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1) 구속사와 복음전도

- 첫째로, 열방을 향한 복음전도의 대위임명령은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종말의 재창조로 진행되는 구속사의 흐름 속에서 이 구속사가 최고 정점에 도달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계기로 비로소 주어진다. 그래서 순드클러(Benkt Sundkler)의 지적처럼 그동안 구약시대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지향하던 구심적인 구약 선교는 비로소 신약시대에 이르러, 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오순절 성령강림을 거치면서 온 열방을 향하여 뻗어가는 원심적인 선교 시대로 전환하게 되었다.

2)삼위일체와 복음전도

- 둘째로 복음전도의 대위임명령은 예수가 당시 자신의 제자들에게 위임하는 것이지만 이 위임명령은 삼위 하나님 중에 성부와 성령을 배재하고 예수가 독단적으로 그리고 당시 12명의 제자들에게만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들에게 공적으로 함께 위임하는 것이다. 성 삼위 하나님이 대위임명령에 함께 관련을 맺고 있음은 위임명령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는 구절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3. 복음전도의 내용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중요한 것이 바로 복음전도의 내용이다. 전해야 할 복음의 핵심 내용에 대한 이해가 불분명한 경우에 복음전도의 양상은 특정 교회의 장점과 교회출석의 필요성을 제시하여 불신자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거나 또는 목회자의 설교 메시지를 소개하거나 교회 교인들을 서로 소개하고 관계를 맺도록 하는 형태로 변질되기 쉽다. 또 복음에 대한 합당한 반응, 예를 들어 예수를 믿으라 거나 당신의 죄를 회개하라, “교회에 나와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에 따른 삶을 살아가라와 같은 반응을 복음의 메시지 그 자체로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이런 일들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복음전도의 핵심 내용이 빠져버린 부수적인 일들을 모두가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과 무관할 뿐이다. 따라서 교회가 복음전도를 올바로 감당하고자 할 때에는 전해야 할 복음의 핵심 내용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확신이 필요하다.

 

 복음의 다섯가지 개요

1. 하나님에 관한 복음

-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류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에게는 무한한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그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를 배신하는 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공의와 질서로 응대하시는 공의의 하남이시다.

2. 인간에 대한 복음

- 아담과 하와의 범죄 안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범죄하였으며 하나님과의 은혜의 관계가 파괴되었고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인류는 하나님의 심판과 영원한 파멸을 피할 수 없다. 죄인된 인간은 스스로를 심판과 파멸로부터 구원할 수 없으며,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에게서 그 어떤 용서와 은총을 얻어 낼 수 없다.

3. 예수 그리스리도의 복음

-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심으로써 타락한 피조계를 다시 창조 때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상태로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계획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으며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받아 죽으셨다. 예수는 무한하고 영원한 분으로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시다.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의 형벌을 받아 죽으신 예수는 그분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영생을 지니신 까닭에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셨으며 그 부활을 통해서 스스로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실 뿐만 아니라 자기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나누어 주시며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실 수 있게 되었다.

4. 은혜의 복음

- 영원한 심판에 처할 수밖에 없는 죄인에게 베푸시는 영생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이 선물을 죄인 된 인간이 자신의 능력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럴만한 어떤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죄인과 그가 받을 영원한 저주의 심판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다.

5. 믿음의 복음

-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관한 구원의 도리와 그 안에서 주어지는 은혜를 오직 믿음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믿음은 구원의 도리에 관한 단순한 지식이나 일시적인 신념이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가운데 이를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삶 전체를 그 구원의 도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으로서 이 역시 성령께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생명을 창조하시는 역사로 말미암는다.

 

4. 복음전도의 동기와 목적

- 교회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동기가 있으며 또 복음을 전함으로써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도 있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복음전도의 동기와 목적이 성경이 제시하는 바에 부합하는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올바른 궤도에서 이탈하여 불순한 동기와 목적에 따라 진행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전도의 동기와 목적을 올바로 이해하고 교회의 전도사역을 이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일은 복음전도의 가시적인 결과 이상으로 중요하다.

 

5. 복음전도의 방법

 교회와 복음전도자의 준비

- 복음전도의 간단한 방법은 앞에서 살펴본 복음의 메시지를 불신자들에게 그대로 전하는 것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에 있어서 준비되어야 한다. 즉 복음전도의 동기와 목표에 대한 성경적 인식과 아울러 복음전도의 내용에 대한 전도자의 분명한 이해와 확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복음전도를 통해서 잃어버린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은 그 잃어버린 자의 영생과 사망의 문제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건인 동시에 사단의 왕국에서 떠나 그리스도의 나라로 가입하는 결정적인 순간이도 하다. 그래서 복음전도는 전도자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전도 메시지에 대한 지식적인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뒤바꾸는 총체적인 사건인 동시에 죄와 사탄의 결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운명적인 사건이며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가 대립하는 영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도자나 교회는 복음전도를 위해서 그리고 그 현장에서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전도자를 사용하셔서 효과적인 복음전도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효과적이고 적절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들과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

 

6. 복음전도에 대한 다양한 반응

- 사도행전 17 32-34에는 사도들의 복음전도에 대한 세 가지 대표적인 반응이 기록되어 있다.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다오누시오와 다마리라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1) 복음전도를 거부하고 조롱함

- 복음을 전하는 경우에 불신자들에게서 분명이 나타나는 반응은 복음과 그 전도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다. 때로는 복음전도에 대해서 화를 내거나 모욕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복음전도자는 이러한 반응을 충분히 예상하면서 불신자가 복음전도를 거부하고 조롱하는 이유가 복음 전도자의 무례한 태도나 방법 때문이니 아니면 복음 자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를 지혜롭게 구분 할 줄 알아야 한다. 불신자가 복음전도를 거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복음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다. 인간이 본성상 죄인이라고 지적하는 복음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그 주도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는 복음의 메시지는 인본주의적 관점에 깊게 사로잡힌 불신자들에게는 매우 거슬리는 내용이다. 또 죄의 저주를 대신 해결해 주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복음도 자신이 그만큼 악한 죄인이라는 고발이기 때문에 그러한 고발과 그리스도에 대한 일종의 책무에 대해서도 부담감을 느끼거나 거부하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는 복음전도자의 지나치게 무례한 행동이나 지혜롭지 못한 처신 때문에 복음전도를 배척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지나치게 독선적인 방법으로나 일반상식에 비추어 무례할 정도로 복음을 전하면서도 그에 대한 방법으로나 일반상식에 비추어 무례할 정도로 복음을 전하면서도 그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의 이류를 그저 복음에 대한 거부감 때문으로 치부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2) 복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되 최종적인 수락을 보류함

- 복음을 전했을 때 즉시로 그리스도를 사진의 구세주로 영저하지는 않고 또 주 예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할 준비는 아직 되어 있지 않더라도 기독교의 복음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은”(12:34)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최종적인 믿음의 고백을 보류하면서도 복음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는 이유는 전도자가 전한 복음이 잘 이해되지 않거나 또는 주변의 시선에 대한 의식, 믿음을 고백했을 때 자신이 희생해야 할 어떤 조건들에 대한 멱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그래서 전도자는 최종적인 판단을 보류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피면서 각각의 사례에 대해서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다음의 기회를 살펴보아야 한다.

 

3)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고백함

- 이 경우는 복음전도의 현장에서 목격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반응이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분명히 알고 나면 겸손한 회개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온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로 이끌기로 작정하신 자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믿음의 세계로 인도할 때 불가항력적으로, 머뭇거리지 않고, 또 때로는 감동되어 그리스도에게로 나온다.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의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기로 결단을 하면 이제 전도자는 앞으로의 지속적인 신앙생활과 영적 성장을 위해서 필요로 하는 단계들을 제시하여야 한다. 즉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음 단계로서 교회생활로 안내해 주어야 한다. 이 단계에서 교회로 연결하는 것이 지나치게 교회성장을 위한 방편이나 이것을 목적삼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교회생활은 성도 자신의 영적인 유익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각자의 형편 속에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배려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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