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선교

전도편지 모음

하나님아들 2021. 8. 11. 18:28

전도편지 모음

 

변하지 않는 진리

 

인생 칠팔십 여 년을 살아오신 부모님을 뵈면 안스러울 때가 있어요. 
빼앗긴 땅에서 태어나시고 광복이라는 새 세상을 맞이하는 가 했더니 
전쟁이 나서 두려움과 공포 속에 피난 생활을 겪으시고 
오랜 나날들을 가난을 겪으며 살아오신 그 세월을 생각하면 말이지요. 
그 풍랑 같은 변화의 시간들을 어떻게 지나셨을까 싶어요. 

진로를 결정하는 일에도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고 
그런 인생의 중요한 일이 아니더라도 업무 내용 하나 변하는 것에도 
가치 판단이 생기고 때론 무조건 받아들여야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데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또 변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보면 늘 마음을 열어두어야 할 것도 같지만 쉽지 않은 일이지요. 
익숙해진 걸 버리기도 어렵고 낯선 것을 배워야 하고,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 잘 될지는 겪어봐야 아는 모험이기도 하고, 
때론 좋지 않은 방향으로의 변화도 종종 있기 마련이지요. 

태풍 속에서도 흔들리거나 휩쓸리지 않는 견고한 성처럼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는 진리가 
갈수록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기준이 되고 그 안에서 나를 지킬만한 무엇, 
제 안에는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요. 
세상이 생기던 그 때, 사람이 처음 있던 그 때부터 계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내 삶을 세심하게 코치하고 계시는 예수님은 
여느 시대사조처럼 변하는 일이 없으시고 
인종과 사는 땅이 달라도 막힘없이 통하는 진리의 근본이시거든요. 

변화 속에서 나를 지키는 힘, 그 변화를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을 저는 예수님께로부터 공급받아요. 
예수 믿으세요. 그 분은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작은 점에 불과한 내 짧은 일생 중에 가장 소중한 일 

 가끔씩 저는 이렇게 제 위치를 더듬어 봐요.
내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거든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의 시간을 일직선상 위에 올려놓고보면

작은 점에 불과한 내 짧은 일생 중에 가장 소중한 일 한가지를 뽑으라면

예수님을 만난 사건일 거예요. 
내 안에 예수님이 없다면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도 없을 테니까요.



예수님을 알기 전 나의 관심은 이 세상이었어요.
눈앞에 보이는 즐거움과 좀 더 많은 소유를 좇아 살았지요.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고 
그러한 것들은 죽음의 문을 통과할 때에 다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잠시 지나는 이 곳에서 좀 더 배부르고 좋은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많이 알려서 내 즐거움을 더한다 해도,
그러한 것들이 영원의 처소를 예비하는 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았지요.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은 다만 예수님 뿐이니까요.



예수님과의 만남은 제 인생에 가장 소중한 기쁨이예요.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만나기까지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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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합니다.

 제가 아는 그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어요.
넓은 집과 다달이 이자만으로도 족한 재산이 있고,
여러 명의 자녀와 배운 학식이 있지요.
그러나,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내 뱉는 한숨 속엔 인생의 허무함이 가득 들어 있었어요.
그에게는 예수님이 없었지요.


그녀는 그리 가진 것이 없어요.
다달이 옷 한 벌 살 돈이 없어 
한 계절내 한 두 벌의 옷을 입고 다녔지만 
없는 것들을 더 가지려 애쓰지도 않았고,
그런 중에도 남에게 주기를 좋아하는 그녀의 입가에는 
늘 풍족한 미소가 머물러 있었지요.
그녀에겐 기쁨과 만족을 주시는 예수님이 계셨어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아도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그 허전함은 예수님의 자리예요.
소유가 넉넉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의 영혼을 꽉 채우시는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지요.


초대합니다.
  월   일(일) 
새순교회로.

 

예수님을 만나는 복된 자리에 
한 번 와 보세요.
만족과 평안, 기쁨과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이 
그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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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아버지세요

 어제보다는 오늘, 그리고 아마도 오늘보단 내일
저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하나님의 사랑법은 정말 멋지거든요.


하나님을 알고서 처음에는, 내가 쥐고 있는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했어요.
"왜 날 이렇게 가슴 아프게 하실까?"
"왜 주시고서 다시 가져 가실까?"
그러나,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들을 주시마 하신 그 성경의 약속들이
어김없이 내게도 이루어져 가는 것들을 보면서,
이젠 하나님 앞에 할 말이 없어졌어요.


살다 보면 나를 당황하게 하는 일들이 의외로 많아요.
예상치 못하게 손해를 보기도 하고,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하기도 하지요.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천국을 누리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가져가시거나 포기하게 하시는구나 하는 믿음이 있어요.
날 위해 늘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시는 내 아버지이심을 알기에,
그 결과를 당장에 얻지 못하여도 '우선 감사해요'.


잠깐의 만족을 위하여 꼭 움켜쥔 내 손을 보시며,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그 손 펴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생각해요.


사랑하는 이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부터 영원한 그 시간에
이르기까지 천국을 소유하고 누리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 분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기에 낙심하거나, 아주 넘어지지 않아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으세요. 삶이 해석이 돼요.
그대에게 가장 좋은 것들을 예비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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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위해 누군가 기도하고 있음을 기억하세요

 
제가 살아 계신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은 
그분을 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날 위해 보내신 사람들로부터 받게 하신 
그 거절할 수 없는 사랑을 인함이지요.
갈 길을 몰라 주저앉아 있을 때, 
그래서 내 의지로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었을 때 
날 위해 눈물과 땀으로 기도해 주신 분들이 있어요.


왜 날 내버려두지 않으셨을까?
왜 가족들만큼이나 소중하게 날 끌어안고 
함께 울어 주었을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들 안에 두신 
넘치는 긍휼과 사랑 때문이었어요.


내 영혼이 깊은 낙심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은 줄을 던져 주거나 나오라고 소리치지 않았어요.
내가 있는 곳까지 내려와 그저 함께 울어주고 
내가 하지 못하는 기도를 밤낮으로 하느라 
모든 힘을 다 썼어요. 
그 사랑과 희생을 난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나서 
난 얼마나 많은 이들의 기도가 있었는지 알게 되었지요 .
오늘도 내가 예수님 앞에나가 누군가를 위해 무릎을 꿇는 것은

나를 건지신 그 사랑을 그로 알게 하기 위함이지요.


사랑하는 이여, 
그대를 위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세요.
그대가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내려놓지 않을 
그 사랑의 수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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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입술 앞에 파수꾼을 세워주세요 

 

누구에게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일들이 있다는 생각을 해요.
한마디 말에 상처를 입고 오랫동안 괴로움을 당했다면,
그 또한 잊고 싶은 일이겠지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한 말에도 상처받은 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두려움도 생겨요.


말에 대한 목사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있다보면 내 이야기를 더 하고 싶고, 
나도 이미 알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고, 충고라도 듣게 되면 
어느새 변명부터 준비하고 있는 제 모습을 봐요.
듣는 것보다는 말하는 일에 급하지요.


때로 생각 없이 많은 말들을 하고 나면 그만큼 후회도 많이 해요.

농담도 듣는 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나를 자랑하는 말들에 상대적으로 가난함을 느끼는 이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아직도 어떻게 말을 가려서 해야할 지 혼란스럽지만, 
예수님 안에서 버려야 할 말의 습관이 있고,

때론 하기 싫어도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 해야할 말들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 자랑과 내 이름의 명예를 찾기 위해 많은 말들을 하기보다는

실패하고 깨어지고 부끄러운 일들을 열어 가난함을 함께 나누고

그 사랑으로 여럿이 부요해지기를 원해요.


내 의지로는 안 되는 일이기에

오늘도 내 입술 앞에 파수꾼을 세워주시기를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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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판, 그거 안하고 살순 없나요? 

 
누군가를 비판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참 어려워요. 
내게 해를 끼친 사람이 아니어도 내가 살아가는 기준에 맞지 않으면, 
비판의 말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향해 비판하며 미워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의 평화가 깨어질 때, 
저는 예수님를 생각합니다.


자존심이 강한 것도 자신을 헛되이 지키는 어리석음이겠지만,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것도 극복하기 어렵지요.
단단한 껍질 속에 자신을 가두고서 세상을 좁게 살아가거든요.
예수님께서 내게 행하신 기적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내게, 
그 분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셨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날 무척이나 귀하게 여기신다는 걸 알았을 때 가능했지요.


그 분은 하나님이셨지만,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명예와 존귀함을 찾으려고 하시지 않으셨지요.
예수님 그 분은, 초라한 구유 위로 오셨고, 가난함과 배고픔을 다 아셨으며,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자들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이지요.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날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저는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조건 없이 사랑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비판하며 무시하던 마음을 내려놓게 돼요.
그도 그렇게 예수님께서 사랑하고 계시고, 
예수 안에서 아름답게 변화시키실 것을 믿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을 만나세요.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그로 인해 얻는 평안과 자유를 누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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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날 혼자 두지 않으셨어요. 

이가 아파서 밤에 잠을 설친 일이 있어요.
밥도 먹기 어렵고,
그 고통을 참느라 온 몸에 힘이 다 빠져 버렸지요.
아주 작은 이 하나가 몸 전체를 지치게 한다는 사실이
참 놀라워요. 그 광경을 생각해 보세요.
이가 아프니까 눈이 찡그려지고, 손을 어쩔 줄 몰라하고,
발은 동동 구르고, 입은 소리 내어 울지요.
함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한 몸일 때만 가능할 거예요.

세상에 날 혼자 두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 드려요.
내가 아플 때 함께 울러주고,
가난할 때 자신의 부요를 나누어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새순의 식구들과 함게 하도록 인도하신 
아버지께 감사 드려요.
병으로 고통을 받거나, 직장을 잃거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 할 때마다 뛰어가 위로하고 자신의 일처럼
서로를 돕는 성도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형상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몸이 결코 여럿이 아닌 하나임을 느끼지요.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외롭고 추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혼자 있어도 허전하지 않아요.
때로 넘어질지라도
새순의 식구들 속에서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자신의 코가 깨졌다고 박수를 치는 손은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님 안에 들어오세요.
세상은 어제와 다른 따뜻함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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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으면 죽음 후도 보장됩니다 


갈수록 지능화 되어 가는 범죄를 이야기하면서 아는 분이 "그러고 보면 사람은 참 머리가 좋아. 
그런데 왜 죽지 않는 법은 아직 못 만들어 냈을까?" 하시더군요.
지능이 고도로 발달되었음에도 죽음을 이길 방법은 찾지 못했다는 말이지요.
그 무엇으로도,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비껴갈 수가 없는 것이 죽음이지요.

죽음, 그것은 무엇이고 그 죽음 후엔 어떻게 될까? 
사실 인생에 있어 이 처럼 중요한 질문도 없을 것 같아요.

"IMF시대를 맞아 산 목숨 부지하기도 힘든데 죽은 다음 걱정까지 하느냐?""죽음을 생각하
기만 하면 두렵고 떨린다. 허무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그래서 난 아예 죽음을 무시하고 산다."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 벌써 죽음을 생각하는가? 
그건 내가 나이가 좀 더 든 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부인 한다고 피할 수 있는 죽음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생각하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 죽음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죽음은 현실이구 실존이잖아요. 

제가 믿는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예요.
죽음을 이기신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지요.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돼요.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어요.
이 단순한 진리가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죽음의 공포없이, 죽음 넘어에 있는 삶을 오늘 여기서 미리 예비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 말
이예요. 

우리의 삶은 여정 속에서 잠시 머무는 나그네 같아요.
때가 이르면 누구나 죽음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예요.
사랑하는 이여
예수님을 믿으세요. 
죽음의 공포가 사라집니다. 
그대의 죽음 후가 보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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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리스도인이예요 


저는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것을 좋아해요.
그리스도와 많이 닮아서 붙여지는 이름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없이는 살수가 없다는 말이지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다가갈수록 뭔가 나도 더 깨끗함을 
느낄 것 같았는데, 반대로 무수한 죄들이 저를 괴롭게 했어요.
마치 어둠 속에서는 안 보이던 더러움이 
환한 곳에서는 다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선 우리의 의가 다 더러운 옷 같다고 하셨지요.
살인, 간음, 도적질 - 적어도 이런 율법들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어느 하나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나는 죄인임을 알게 되었어요.
그 죄의 대가를 내가 치러야 한다면 
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전 그 모든 죄의 매임으로부터 자유해요.
죄와 허물들이 더 이상 저를 괴롭게 하지 못하지요.
내가 갚을 수 없는 죄의 대가를 오래 전 예수님께서 
다 치르셨고, 전 다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함으로 
사함을 받았으니까요.
내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해온 것들을

하나님께서 사람들 앞에 다 드러내신다면 아마도 전 살 수가 없을 거예요.
그러나, 내 은밀한 죄와 허물들을 
하나님께서 다 덮어 주셨지요. 이 사실이 제겐 큰 능력이예요.

저는 그리스도인이예요. 예수님 없이는 살수가 없어요.
예수님으로 인해 또한 모든 것이 가능한 
행복한 사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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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위한 편지

현대인이 가장 많이 쓰는 언어 중에 하나가 '피곤하다'일 것입니다.

데일 카네기는 피로의 3대 원인은 
첫째는, 직장
둘째는, 긴장
셋째는, 감정적 격분으로 사랑하지 못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남을 사랑할 때 피로가 사라진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일에 지쳐 피곤해 있더라도 
사랑하는 이를 만날 생각으로 퇴근시간 무렵이면 
생기가 넘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삶의 행복은 사랑스런 만남입니다.
당신에게 영원한 삶의 활기를 주는 만남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당신의 생수가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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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땅을 넓혀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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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으면 저렇게 안 한다.’하며 또 누군가를 비판할 때
“그래, 그 사람은 네가 아니잖니?”하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 싶어요. 
참 바쁜 11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이 많을 때일수록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기 마련이지요.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된다는 식으로 
내 맘에서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을 때 내가 사는 땅의 지경이
좁아지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내가 누리는 세상의 크기는 날마다 달라집니다.
어떨 땐 겨우 내 몸 하나 설만큼 좁은 곳에 서 있기에 
다른 누군가를 배려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그러다가 그 사람을 이해하고 품게 되면 세상이 확 넓어진 것 같아요.
내 안에서 천국이 넓어질 때 세상도 넓어지지요.

아파본 사람은 아픈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고
가난을 겪어본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형편을 알 수 있겠지만
내가 그 모든 걸 겪어보고 난 후에야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아마 평생이 걸려도 몇 사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주시지요.
사람은 판단이나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걸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가르쳐주시거든요.

세상을 바라보면 내 안의 세상이 좁아지고
예수를 바라보면 내 안의 세상이 넓어지기에 
나는 어제 찾았던 예수를 오늘도 찾고 또 내일도 찾을 것입니다.
날마다 넓은 땅을 누리며 달려 나가고 싶어서지요. 
예수 믿으세요. 지경이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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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슈퍼스타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어두운 광야, 성전 꼭대기에 조명이 비춰지면서 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 …뛰어내리라.” “내게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를 주겠다.”
갑자기 돌들이 떡으로 변하면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는 순간 슈퍼맨처럼 멋지게 하늘을 날았다면
주인공은 일약 스타가 되었을 텐데 
영화는 우리의 일반적인 상상과는 다르게 화려해보이지를 않네요.

떡, 명예, 인기, 권세, …. 외면할 수 없는 유혹이지요.
인기라는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만족을 주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지나가는 그 것이 또한 사람을 그만큼 비참하게도 만들지요.
주인공이 원하는 게 그런 것이었다면 아마도 그는 뛰어내렸을 테지요.
그 주인공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까닭을 저는 가끔 가슴 깊게 느낄 때가 있어요.
환경은 힘이 들 만한데 내 안에서 새로운 힘이 생겨날 때,
때론 부담스러운 일을 맡았는데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솟아오를 때,
일의 결과는 좋지 않은데 사람을 생각하고 감사할 수 있을 때
저는 그런 상황들이 내 안에서 살아 역사 하시는 
예수님의 일하심이라는 걸 알 수 있지요.

그가 자신을 위해 떡덩이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으셨기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로 인해 배가 부르고
그가 사람을 살리는 일에 온통 그의 사랑을 쏟으셨기에
예수는 많은 사람들 속에 살고 계셔 우리의 경배를 받고 계시지요.
그는 세상의 주인공 예수님, 진정한 우리의 슈퍼스타이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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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자 예수님

 

 

짙은 마스카라, 빨간 립스틱으로 나이를 감추고 싶은 늙은 여배우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가리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이 보기엔 크게 웃는 것 같은데 실은 안으로 우울해하기도 하고
겉으로는 태연해 보이지만 두려움으로 떨고 있기도 하지요.
화장 뒤에 숨어있는 그 사람만의 모습이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안 보이던 자아가 계속 안 보일 것 같아도 어느 순간
말 속에 묻어 나오기도 하고, 그 생각 속에 빠지다 보면
남이 보기엔 돌발적인 것 같은 행동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돌발이 아니기도 하며, 때론 극단적인 결말도 맺곤 하지요. 어찌 보면
겉모습은 빙산의 일각이고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은 것도 같아요.
겉사람이 병이 들면 진단이 비교적 쉬운데 
속사람은 병이 깊어지도록 혼자서만 상처를 안고 사는 경우가 많은 건
사람에게 보이면 부끄럽거나 더 큰 상처로 돌아오기 때문이지요.

혼자 마음의 병이나 짐을 안은 채로 살아가지 마세요. 너무 힘들어요.
믿을만하고 안전하고 능력 있는 의사 한 분 소개시켜 드릴게요.
내 체질을 잘 아시는 분, 어디가 아프고 약한지 이미 다 아시는 분,
우리의 살과 뼈와 골수와 심령 깊은 곳까지 치료의 광선을 비추어
치료하는 의사시지요.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사람에게 보이지 못하는 부끄러운 마음이나 실수도 그 분께 말하세요.
정죄하거나 탓하지 않고 다 받아주시며 비밀도 보장해 주시거든요.
아픈 속사람을 다 보여 드리세요.
나도 모르는 내 맘을 예수님께서 비춰주시고 다 치료해 주세요.
그는 우리를 모태에서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거든요.
예수님 앞에서는 화장을 하지 않아도 돼요.
있는 모습 그대로를 예수님은 가장 사랑하시지요.
예수 믿으세요. 그는 치료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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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비추는 거울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한쪽 머리는 눌리고 다른 쪽은 삐쳐 올라가고 부은 눈에, 심지어 
어쩔 땐 베게 자국까지 선명하게 나 있기도 하네요.

아휴~!그래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다듬고 화장을 하고 나서
다시 거울 앞에 서면 아까와는 다른 내 모습에 만족을 느끼지요.

거울이 있어 외모를 보고 다듬을 수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나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내 마음은 거울 앞에 섰습니다.
음식처럼 사람의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우릴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나오는 소위 ‘마음’이란 것에서 악한 것이 나온다고 하시네요.
어제 예배 때도 같은 말씀을 들었기에, 본래 살아 운동하는 말씀이나
오늘은 더욱 내 안에서 달음박질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 말씀 앞에 나를 비추어 보니 다른 여러 가지보다 
‘비방’과 ‘교만’이란 것이 내 마음을 더럽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흐트러진 머리를 다듬듯 오늘 나의 모습을 단장하리라 다짐을 했는데
아침부터 또 누군가를 비방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엔 그 모습조차 느끼지를 못했는데 이젠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말씀이라는 거울을 앞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하곤 말을 멈추었습니다.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것이 이 마음이란 것이기에
아침에 거울을 보고도 밥을 먹으면 또 보고 하루에도 몇 번을 보듯
한 번 묵상한 말씀을 부러 자주 떠올리며 애써 자꾸 기억을 합니다.
이에 고춧가루가 끼어 있지 않도록 점검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내 안의 악하고 더러운 것들을 발견하게 하신 후엔 
정결하게 씻으시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날마다 기쁨으로 
그 분 앞에 흐트러진 머리와 옷차림으로 나아갑니다.
예수 믿으세요. 그 분은 우리 마음의 거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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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짐 내려놓기

 


버거운 짐을 지고서 웃음을 보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누가 봐도 힘들 것 같은데 늘 환하게 웃는 선배가 있습니다.
마치 아무 짐도 들고 있지 않은 것처럼 편안해 보이지요.
선배는 자기 짐을 예수님께 다 내려놓고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지고 가는 삶의 짐이 다들 있다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작은 일에도 세상 짐을 다 진 양 사는 사람도 있듯
각자가 느끼는 삶의 무게감은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작든 크든 짐을 내려놓은 사람은 가볍게 걸을 수가 있겠지요.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짐을 맡기는 이 과정을 '기도'라 부릅니다.

과거를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걷기도 하지요.
예수님을 믿으면 먼저 이 과거의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어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담당하셨기에
예수님을 믿고 죄와 허물을 고백하면 용서받을 수가 있지요.
죄의 짐을 벗으면 앞으로 당당히 걸어갈 용기가 생겨요.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짐으로 여겨지기도 하지요.
가족들에게서, 직장에서 감당해야할 일들이 짐처럼 여겨지기도 해요. 
마음이 무겁고 힘이 들 때 고개를 들어 예수님을 또 바라봅니다.
기도로 예수님께 그렇게 의뢰를 하면 예수님께서는 감당할 힘과 
지혜를 주시기도 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도 하시지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장래의 일이 염려나 걱정이 되어 나를 누를 때도
기도로 평안함을 얻을 수 있는 건 날 위해 목숨을 주신 예수님께서 
항상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하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지요.
예수 믿으세요. 짐을 내려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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