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 사용된 구약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1세기 기독교인들이 채택해서 쓴 성경이 유대교 안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유대교 문헌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못 된다.
2세기에 접어들자 점차로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의 글 가운데 몇 개는
유대교로부터 물려받은 글들과 동등한 권위를 지니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교회의 첫 성경은 유대교 문헌이었다.
그런데 유대교 문헌 가운데 어떤 것들이 초기 기독교 성경에 포함되었는가에 대해서는 확신 있게 말하기가 어렵다.
*율법, 곧 모세 오경(「창세기」 - 「신명기」)은 모든 유대인들이 인정하였다.
*예언서는 대다수의 유대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모세 오경만 받아들였다.
그리고
사두개인들은 모세 오경만이 권위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세 번째 문서군(群)인 성문서("성경책 각 권의 이름과 순서"를 보라)도 널리 인정되었다.
그러나 권위를 인정받는 책들의 정확한 수는 기독교 교회가 별개의 집단으로 등장했을 때에도 공식적으로 결정된 바 없었다.
구약의 그리스어 역본인 70인역본은 그리스도 탄생 200여년 전에 이집트에서 만들어졌다.
70인역본에는 히브리어 성경에 없는 책도 들어 있다.
이 책들은, 오늘날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경에 있는 외경과 대부분 일치하며, 동방교회에서도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70인역본이 신약 저자들에 의해 폭넓게 이용된 번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신약 저자들은 어디에서도 외경을 성경으로 인용하지 않는다.
최초의 기독교인들의 대다수는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유대교 성경을 읽었다.
그러나 새로운 관점과 시각으로 읽었던 것이다.
그들은 유대교 성경을 메시야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약속의 성취,
그리고 교회의 탄생이라는 관점에서 읽었다.
우리는 구약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신약의 책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바울 서신은 구약의 메아리로 가득 차 있다.
뿐만 아니라 거의 백 개나 되는 직접 인용구가 들어 있는데,
이 사실은 바울 서신을 직접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구약 인용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을 인용할 경우
"기록된 바" 또는 "이 모든 일은 주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 일어났다"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자신들이 구약을 인용하고 있음을 종종 나타냈다.
그러나 때로 그들은 인용구 앞에 그러한 표현을 쓰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원래의 독자들이 인용구임을 알아차릴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이다.
70인역본 인용
대다수의 1세기 기독교인들은 구약을 70인역본으로 읽었으며, 신약 저자들 대다수가 이 역본에서 인용하거나 쉽게 풀어 썼다.
때로 70인역본은 구약 표준 히브리어 본문(*마소라 본문)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70인역본을 번역했던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본문을 상당히 자유롭게 번역하였고,
그 결과 그리스어 번역본은 마소라 본문과 현격한 차이가 난다.
신약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70인역본에서 인용하였다.
결과적으로 구약의 인용구가 구약에 있는 상응하는 구절과는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때에는 신약 저자들이 기억에 의지해 부정확하게 인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70인역본에서 인용을 하였다.
그러므로 히브리어 본문과 다르게 쓰여 있는 곳이 있다.
예를 들어 보면,
한 주석가는 바울이 「로마서」에 58개의 구약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히브리어 구약과 70인역본이 일치하는 구절은 25개이다.
나머지 33개 가운데 바울이 70인역본과 정확하게 일치되게 인용한 것은 9개이고,
18개의 다른 구절에서는 바울의 인용구가 히브리어 본문보다는 그리스어 역본에 더 가깝게 되어 있다.
행 15:16-18과 히 10:15의 두 가지 예를 들어 그 문제를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행 15장에 보면 초기 교회의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만나 유대교의 정결법을 기독교인이 된 이방인이 지켜야 하는지의 문제를 논한다.
야고보는 구약 암 9:11-12(70인역본)를 인용해서 하나님이 이방인을 불러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음을 증명한다.
70인역본의 암 9:11-12는 다음과 같다.
주님의 말씀이라.
"그 날에 내가 다윗 왕국을 다시 회복시키고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일으키고 옛적과 같이 다시 강성케 할 것이며 … '
그러므로 열방이 나에게 올 것이요, 내가 나의 백성으로 부른 모든 이방인도 올 것이라.'"
히브리어 본문 암 9:11-12는 70인역본과 다르게 되어 있다.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히브리어 본문에 따르면,
아모스는 사실 이방인들이 기꺼이 하나님께 와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을 선언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이 다윗 왕의 시대처럼 다시 강성케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스라엘은 *에돔 땅을 다시 정복할 것이며 전에 다윗 왕국에 속했던 주변 국가도 다시 정복할 것이다.
히브리어 본문에 보면, "에돔은 회복된 이스라엘 왕국이 다시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70인역본의 번역자는 이 구절에서 "에돔"을 "아담"(=사람)으로 읽었고,
따라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올 것"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또 다른 예로 히 10:5가 있다.
이 구절은 70인역본을 인용한 것인데 히브리어 본문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는 시 40:6을 인용하여 예수의 말씀으로 바꾼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몸을 예비하셨도다.
시 40:6의 히브리어 본문은 다르다.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러므로 신약을 읽는 독자들이 70인역본의 인용구, 쉽게 풀어 쓴 구절, 70인역본 구약에 있는 구절을 암시하는 듯한 구절 등을 알게 하고,
또 히브리어 본문과 차이가 있는 곳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본문 아래에 설명을 두었다.
마소라 본문 인용
신약 저자들이 마소라 본문에서 직접 인용을 하였을 때에도, 그들은 항상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물론 그들이 사용한 해석 방법은 당시에 쓰이던 방법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은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마 2:15)는 구절을 예수에 대한 예언의 성취로 인용한다.
예수는 헤롯 왕이 죽자 부모와 함께 애굽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호 11:1에 보면, 여기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이스라엘 민족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구원하였던 것이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구약의 본문을 새롭게 해석했는데,
곧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의 빛으로 본문을 비추었던 것이다.
신약 저자들은 때로 구약을 한 곳에서만 인용하지 않고 여러 곳에서 인용해 쓰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롬 3:10-18에는 여러 곳에서 인용한 구약 구절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쓰이고 있다).
그들은 또 구약을 한 곳에서만 인용한 것처럼 쓰기도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여러 곳에서 인용해 쓴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막 1:2-3을 보라. 2절과 3절 모두 「이사야」의 글로 인용하고 있으나,
사실 2절은 「말라기」를 인용한 것이고 3절만이 「이사야」에서 인용한 것이다).
구약이 신약에 끼친 일반적 영향
구약이 신약에 끼친 영향은 직접인용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다.
신약에는 구약에서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닐지라도 구약에서 발췌된 것으로 추측되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히 11:36을 보면 구약 본문을 토대로 쓴 것이 분명하다.
요일 3:12에서 가인과 아벨은 창 4장을 암시한다.
구약은 1세기 기독교 교회가 신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였다.
하나님의 본성, 죄, *구원, 용서, 메시야 등과 같은 개념들은 모두 구약에 근거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구약은 특별히 예수의 생애와 죽음이 지닌 의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예를 들어, 막 12:35에 인용된 시 110:1; 행 2:34-35; 고전 15:25; 히 1:13; 신약에 자주 나오는 사 53장 등).
「히브리서」의 전체 주제도 구약에 있는 희생제도의 배경을 알 때에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신약의 윤리적 가르침도 대개가 구약의 영향을 받고 있다(예를 들어, 롬 12:16,19-20; 엡 4:25-26; 6:2-3).
우리는 하나님을 온 마음과 온 영혼과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예수의 가르침(막 12:30-31)도 신 6:4-5와 레 19:18에 근거한 것이다.
이런 가르침은 바울 서신(롬 13:9; 갈 5:14)과 약 2:8에서도 나타난다.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이 예수의 탄생과 교회의 등장으로 성취되었다고 믿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옛적에 주신 언약이 성취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구약이 쓰여진 것도 사실은 기독교인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었다고 한다(롬 15:4; 딤후 3:16; 히 3:13과 벧전 1:1-12를 보라).
그들은, 성령이 그랬던 것처럼(히 10:15-17을 보라), 구약의 선지자들과 저자들이 예수에 대해 예언을 하였고(롬 1:2를 보라),
구약을 통해 하나님 자신이 예수에 대해 말씀하셨다고 믿었다(히 1:5-13을 보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만이 유대교의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고후 3:12-18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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