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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료) 어윈 루처의 "다빈치 코드 깨기" 요약본

하나님아들 2012. 10. 2. 22:08
 

다빈치 코드 깨기

어윈 루처 지음 / 이용복 옮김

규장 / 2004년 11월 / 199쪽 / 7,500원



▣ 저자    어윈 루처

어윈 루처(Erwin Lutzer) 박사는 시카고의 유명한 무디기념교회의 담임목사이다. 달라스신학교와 로욜라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많은 유익한 책들을 저술했다. 그의 책『히틀러의 십자가』는 미국기독교출판협의회(ECPA) ‘골드 메달리언 상’(the Gold Medallion award)을 받았고,『당신이 죽은 1분 후』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또한 그는 미국과 전 세계 700여 개 기독교 방송망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강사로 출연한다. 그는 ‘밤의 노래들’, ‘무디기념교회의 시간’ 및 날마다 방송되는 ‘승리의 경주’에도 출연한다. 그는 그의 아내 레베카와 함께 시카고에서 살고 있다. 그에게는 결혼한 세 자녀와 여섯 명의 손자들이 있다.


▣ 역자    이용복

이용복은 ‘규장 전문 번역위원’으로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수학했다. 20여 년 동안 기독교 전문 번역가로서 30여종의 도서를 번역했다. 대표적인 역서로는 제임스 패커의『광야의 은혜』, 켄 가디너의『신중한 귀신 축출법』(이상 규장 역간), 로렌스 크랩의『격려를 통한 상담』(나침반), F.F. 부르스의『사도행전 주석』(아가페)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다 빈치 코드』의 저자인 댄 브라운이 역사와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책의 주장이 사실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브라운은 진실을 왜곡하며 기독교가 거짓에 근거한 종교라고 은근히 암시한다. 저명한 신학자요, 성경교사인 어윈 루처는 역사적 진실을 파헤쳐서 브라운의 근거 없는 신화적 허구를 폭로하고,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예수의 삶과 기독교 교리를 둘러싼 혼란스런 의문들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당신이 브라운의 소설을 읽었든 읽지 않았든 간에 이 책에서 당신은 브라운이 제기하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초기 기독교의 역사적 기초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프롤로그

『다 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는 예수에 대해 또 하나의 해석을 내어놓는다. 즉 예수는 결혼한 사람이요, 여권신장주의자(feminist)이며, 죽음을 면할 수 없었던 선지자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초기 기독교의 역사적 뿌리를 파헤칠 것이다. 예수는 누구인가? 신약성경의 기록은 예수의 삶과 사역에 대한 믿을 만한 보고서인가?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답할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참뿌리를 찾는 이 여행에 당신을 초대하는 바이다.


혹시『다 빈치 코드』를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하여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이야기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

●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이 프랑스의 왕족과 결혼했다.

● 이 사실이 알려지면 힘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교회는 이것을 대중이 알지 못하도록 억눌러왔다. 어떤 고도의 비밀조직이 이와 관련된 역사적 진실을 기록한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는데, 이 문서가 세상에 공개되면 현재의 기독교는 완전히 파멸될 것이다.


그러면 이 책의 저자 댄 브라운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분을 주(主)와 구주로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직접 공격하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는 여성을 억압하고 ‘여성적 신성(神性)’을 세상에서 제거하기 위해 조작된 문서와 이론들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성 중심적 지배구조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서는 여신 숭배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의 책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다 빈치 코드』가 세상 사람들에게 단지 소설로 알려진다면, 스릴 넘치는 추리소설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책이 스스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데 있다. 세뇌, 협박 및 집단적 고행의 혐의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는 가톨릭의 한 경건한 분파인 오푸스 데이가 실존하듯이, 시온 수도회 또한 실존한다는 말이 영어판『다 빈치 코드』의 표지 접지에 언급되고 있다. 또한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미술 작품, 조각, 문서 및 비밀 의식에 대한 언급이 모두 정확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이 책의 구성(plot)의 기본 틀은 댄 브라운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 세기 동안 존재해왔던 것이다. 그것은 비교적(秘敎的) 사상이나 뉴에이지(New Age) 사상을 주장하는 여러 책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면 이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마이클 베전트(Michael Baigent)의 책『거룩한 혈통과 성배』(Holy Blood, Holy Grail, 1983년 출간)에서도 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차이점이라면, 댄 브라운이 이 구성을 빌려다가 근거도 없는 사이비 역사 이야기로 포장하여 수백만의 사람들을 현혹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주장 중 전부 또는 일부가 진실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


『다 빈치 코드』에서 댄 브라운은 사실이 아닌 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말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 땅에서 사역할 때 예수는 놀랄 만한 영향력을 끼친 역사적 인물이었으며,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라든지, “300년 동안 계속된 마녀 사냥에서 교회는 무려 5백만의 여자들을 말뚝에 달아 화형시켰다”라는 말들은 분명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일일이 나열하자면 지면이 부족할 것이며, 이런 것들은 기독교에 대한 그의 공격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들을 다루려고 한다. 그 본질적인 문제들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된다:

● 콘스탄틴 대제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날조했는가? 그가 소집한 니케아 종교회의가 어떤 책들이 신약의 정경(正經)으로 채택되어야 할지를 결정했는가?

● ‘영지주의 복음서들’(Gnostic Gospels)이 신약시대의 역사를 말해주는 신빙성 있는 문서인가?

● 어떤 책들이 신약의 정경으로 채택되어야 하는지 결정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런 결정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 결정이 언제 이루어졌는가?

●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 오푸스 데이는 예수에 대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시온 수도회를 파괴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는가?

● 영지주의는 기존의 기독교를 무너뜨리고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대안 세력인가? 하나님에 대해 견해가 일치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반드시 견해가 일치해야 하는가?



1장 콘스탄틴 대제 코드 - 콘스탄틴 대제가 억지로 예수를 신격화시켰다는 허구를 깬다

『다 빈치 코드』에 따르면, 황제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예수를 신격화했으며, 복음서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고는 남성 중심적 사회구조를 강화하고 자신의 정치적 목적 실현에 부합되는 복음서들을 채택하도록 종교회의를 소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콘스탄틴은 세부적인 신학적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교리적 견해 차이 때문에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 신민을 통합할 수만 있다면 그는 만족했을 것이다. 종교회의의 개회 연설에서 콘스탄틴은 교리적 분열은 전쟁보다 더 나쁘다고 역설했다. 개회 연설이 끝나자 회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여기서,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라 창조된 신이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를 이단이라고 선언했다. 참석자들은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인류의 구속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리스도가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골1:16)는 성경의 교훈에 명백히 위배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다 빈치 코드』는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는 교리가 상대적으로 근소한 표 차이로 통과되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역사가들은 그 종교회의에 참석한 대표의 수가 318명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렇게 300명이 넘는 참석자들 중 단지 다섯 명만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는 교리의 채택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 중에서도 결국에는 단 두 명만이 서명을 거부했다.


『다 빈치 코드』의 등장인물 티빙의 주장과는 달리,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리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죽음을 면할 수 없었던’ 선지자 이상의 존재라고 믿었다. 이에 관한 증거는 많다. A.D 110년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순교하기 위해 로마로 가던 길에 몇몇 교회에 일련의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 나타난 그의 교리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한 분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 하나님”(Christ God)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리기 200년 전에 이미 이렇게 썼던 것이다. A.D 112년에서 118년 사이에 사도 요한의 제자인 서머나의 폴리캅(Polycarp)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교인들은 예수의 신성, 승천 및 영화롭게 되심을 믿고 있었다고 한다. A.D 100년에 태어나 A.D 165년에 순교한 저스틴(Justin Martyr)은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아들이며 사도이며 만유의 주(主)이시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A.D 177년에 리용의 감독이 된 이레니우스(Irenaeus)와 콘스탄틴보다 1세기나 앞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주장했던 터툴리안을 증거로 들 수 있다.


또 다른 증거는 로마의 기독교 박해이다. 이교도들이 그들의 신들에 경배하는 것과 황제 숭배 사이에서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않은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믿듯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이 ‘참하나님의 참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그분과 다른 신들을 함께 경배할 수 없다”고 말하며 황제의 칙령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신앙을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다 빈치 코드』코드의 등장인물 레이 티빙 경은 80개 이상의 복음서들이 신약의 정경으로 채택될 수 있었으나 오직 사복음서만이 채택되었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정경이 바로 콘스탄틴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콘스탄틴과 니케아 종교회의 참석자들이 영지주의 복음서들의 문제와 정경의 문제에 대해서 논의했다고 말하는 역사적 기록은 전혀 없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해주는 문서는 오직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뿐인데. 그의 글에는 이 점이 논의되었다는 암시조차 나오지 않는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정경의 문제를 논의했다는 주장의 근원은 한 저자 미상의 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A.D 887년경에 집필된 것으로 알려진 저자 미상의『세투스 시노디콘』(Vetus Synodicon)이라는 책은 그때까지 열린 전교회적 종교회의들에 관해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각각의 종교회의에 대해 한 장씩 할애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이 책에 의하면 니케아 종교회의가 그리스도의 신성, 삼위일체 및 정경의 문제를 다루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황당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기록할 정도로 엉터리 역사가였다. “니케아 종교회의 참석자들은 이런 방법으로 정경의 자격이 있는 책들과 그렇지 못한 책들을 구분했다. 그들은 회의를 할 때마다 책들을 가져다가 하나님의 집의 거룩한 제단 옆에 쌓아놓고 회의를 했다. 그들은 ‘주님, 성령의 감동으로 된 책들이 위로 놓이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으며, 위에 놓은 책들을 정경으로 채택했다. 백 번 양보해서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가정해보더라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와 결혼했다거나 여권신장주의를 담고 있는 책들을 종교회의가 신약 정경에서 제외했다는 주장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2장 다른 복음서 코드 - 사복음서와 다른 영지주의 복음서들의 허구를 깬다

‘다른 성경’이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우리의 성경은 66권으로 되어 있지만, 이 다른 성경은 약 50권으로 되어 있다. 이 성경 안에는 도마 복음서, 빌립 복음서, 마리아 복음서, 진리의 복음서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영지주의 성경의 주장에 따르면 동정녀 탄생,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부활 같은 기독교의 배타적 교리들을 믿을 필요가 없게 된다. 이 새 성경은 우리의 문화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관용적이다. 이 성경은 누구나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지 거의 다 믿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영지(靈知)’(Gnostic)라는 말은 ‘지식’이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그노시스’(gnosis)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오직 계몽된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숨겨진 지식’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그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특히 여권신장을 강조했다. 때때로 그들은 하나님을 ‘양성적(兩性的) 하나님’으로 묘사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기독교의 성경은 장구한 세월 동안 역사적, 고고학적 비판을 거쳐 살아남은 성경이다. 우리의 성경과는 달리「영지주의 성경」에는 도시, 강, 골짜기나 특정한 사건들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대부분 영지주의 복음서들을 읽어보면, 그것이 실제 사건 기록임을 자처할 만한 의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것들은 단순히 다양한 선생들의 묵상을 담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하나님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을 거부했다. 그 이유는 물질(육신)을 악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악의 기원’의 문제, 그리고 악과 피조세계의 관계 문제에 대한 사상을 발전시켰다.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구원의 길을 찾아야 하며, 인간의 문제는 ‘죄’가 아니라 ‘자기인식의 결여’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들의 구원론이 모든 면에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힘으로 신적 존재를 직접 만남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아무리 급진적인 학자라 할지라도 영지주의 성경의 도마복음서가 신약의 도마에 의해서, 빌립복음서가 빌립에 의해서 씌어졌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초대교회는 가명으로 씌어진 책들을 철저히 거부했다. 이것은 사도들의 이름을 도용하여 신빙성을 얻어 보려는 시도 자체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영지주의 문서들은 신약의 사건들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 씌어지지 않았다. 그 문서들의 전정성을 인정하기 원하는 학자들조차 “그것들의 저작 시기는 아무리 빨리 잡아도 A.D. 150년 정도이다”라고 말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경의 복음서들은 A.D 70년 이전에 목격자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래서 영지주의 문서들은 그 내용이 비역사적이며, 심지어 반역사적이다. 연대기적인 역사 기록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으며, 조사연구, 지리 및 역사적 정황에 대한 관심도 없다. 여기서 우리는 영지주의 복음서들과 외경(外經)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외경은 가톨릭에서는 인정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책들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영지주의 복음서를 받아들이길 원하는 세력이 지금 왜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사는 포스트모던 시대는 역사란 더 이상 객관적인 사실들을 발견하여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우리에게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역사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다 빈치 코드』의 성배 연구 전문가 티빙 경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 두 문화권이 충돌할 때 패자의 문화는 말살되고, 승자가 역사를 기록한다. 이 역사책에서 승자의 대의는 찬양을 받고 패자는 멸시의 대상이 된다. 일찍이 나폴레옹이 말했듯이, ‘역사는 합의된 거짓말(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

오늘날 영지주의 복음서들을 받아들이려는 일부 사람들의 열망은 건전한 역사 연구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여권신장주의를 확산하고 현대인을 닮은 예수를 만들어내려는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성적 엑스터시를 통해 신을 만날 수 있다는 사상은 성(性)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구미에 맞는 꾸며낸 이야기이다. 이런 책들은 진지한 역사적 검증작업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3장 막달라 마리아 코드 -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했다는 허구를 깬다

다빈치의 그림들에 숨겨진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으며 성배(聖杯)는 잔(盞)이 아니라 바로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이다.『다 빈치 코드』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은 역사적인 기록의 일부”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이 장에서 우리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 대답은 일련의 다른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의 걸작 ‘최후의 만찬’에 정말 요한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를 그려 넣었는가? 막달라 마리아가 성배라면, 그것에 관한 역사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예수가 결혼하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다 빈치 코드』에 의하면, 예수에 관한 비밀을 알고 있던 다 빈치는 그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오른쪽에 요한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더욱이 이 그림에는 식탁 위에 잔이 없는데, 이는 마리아가 바로 성배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 다 빈치가 일부러 그렇게 그렸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중 하나인 로버트 랭던은 “레오나르도는 사실상 교회에 의해 말살된 여성적 신성(神性)과 여신을 상징하기 위해 최후의 만찬에 마리아를 등장시켰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카고 예술학교의 브루스 바우처(Bruce Boucher)는 댄 브라운의 해석에 반박하며 이렇게 말한다. “예수의 오른편에 앉은 자가 요한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라는 댄 브라운의 해석은 억지이다... 전통적으로 플로렌스의 화가들이 그린 최후의 만찬은 성찬의 제정과 성찬용 잔보다는 유다의 배신과 그리스도의 희생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레오나르도의 작품도 그런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요한의 얼굴을 마치 여자처럼 그린 것은 레오나르도뿐만이 아니다. 플로렌스의 다른 화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그 잔을 ‘성배’(the Holy Grail)라고 부르며 그 잔에 마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는다는 이야기가 12세기에 떠돌았다. 이런 종류의 전설은 그릇을 정신적인 개혁과 갱생의 상징으로 보는 켈트족의 미신에 근거한 것이다. 또한 이런 전설 중 상당수가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에 만들어진 희랍신화에서도 발견된다. 15세기 무렵에 성배는 물건이 아니라 가계(家系)라는 사상이 생겨났다.『다 빈치 코드』는 예수의 혈통이 바로 성배라고 말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기를 잉태함으로써 예수의 혈통을 계승시켰으며, 예수의 후손 중 한 명이 프랑스의 메로빙 왕조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예수와 결혼했다는 증거가 있는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녀에게서 일곱 귀신이 쫓겨났다는 것과 그녀가 예수 부활의 최초 목격자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20:14-17절에 부활하신 예수의 발을 마리아는 꼭 붙들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그분을 찾았기에 다시 그분을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혹자는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였다는『다 빈치 코드』의 주장을 옹호하면서 “당시의 관습은 여자가 남자를 만지는 것을 금하였으므로 두 사람이 부부임에 틀림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리아가 예수를 만지려고 했던 것은 그분을 향한 깊은 신앙심과 존경심에서 나온 본능적 행동이었다. 마태복음 28장9절은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했다고 기록한다. 예수를 만질 수 있도록 허락받은 여성은 마리아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 구주는 여성이 필요한 경우에 남자를 만지는 것까지 금한 당시의 관습에 얽매인 분이 아니셨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여성들에게 정당한 사역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예수는 최초의 여권신장주의자이다”라는『다 빈치 코드』의 주장은 거부되어야 한다. 영지주의 복음서인 빌립복음서에는 예수가 그녀의 (  )에 입을 맞추었다고 기록되어있다. 빌립 복음서의 원본을 담고 있는 파피루스는 훼손되기 쉬운 재질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 내려온 원본에 한두 단어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오직 추측할 수 있을 뿐인데,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의 손이나 뺨에 입을 맞추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중동 지역에는 빰에 입을 맞추는 관습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기록이 예수와 마리아 사이의 결혼 사실에 증거가 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다 빈치 코드』는 “‘반려’라는 말이 당시에는 ‘배우자’를 뜻했고 이점에 대해서는 어떤 아람어 학자라도 동의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빌립 복음서는 아람어가 아닌 콥트어로 전해 내려왔으며 ‘반려’라는 단어는 친구 사이를 나타내는 데 종종 사용되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도대체 빌립 복음서라는 것이 믿을 만한 것인가? 거기에는 “이 세상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동물들이 많다”, “겨울은 세계이며, 여름은 다른 세계이다. 겨울에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등과 같은 교훈도 나온다. 빌립 복음서에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써넣은 이유는 이미 3세기경에 그녀에 관한 전설들이 떠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이 익명의 저자는 예수와 마리아의 관계에 대해 제멋대로 추측하여 자기 글에 집어넣은 것이다.


1909년에 설립된 시온 수도회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이 단체가 설립될 당시에 어떤 전설들이 떠돌아다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 사실을 목격한 사람이 기록한 문서는 없다는 것이다. 1928년에 설립된 오푸스 데이가 시온 수도회의 입을 영원히 막아버리려고 시도했다는 증거도 없다. 이 모든 이야기는 소설로서는 통할지 몰라도 역사로는 황당한 이야기이다. 진실의 바람이 조금만 불어와도 이런 ‘거짓의 집’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성전 기사단의 진실」에서는 “예수에게 기름을 부은 것은 이교도의 의식이었으며, 그것을 행한 여인, 즉 베다니의 마리아는 여사제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녀가 예수 공동체의 핵심 그룹의 여사제로서 ‘입문자(入門者)를 위한 성교의식’을 집례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라고 주장한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교도의 종교 의식에는 성교의식이 늘 거행되었다. 이 점을 기억하라. 그러나 신약성경은 성교의식이 하나님을 만나고 거룩함에 이르는 방법이라는 사상에 대해 경고한다. 신약성경은 이런 행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결혼의 고결함과 도덕적 순결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라고 가르치신 예수가 오컬트적 성교 의식을 인정하고 거기에 참여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마치 인간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는 예수가 인간이면서 동시에 그분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내밀한 육체적 관계를 죄인과 맺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만일 그분이 결혼을 하셔야 한다면 그분만큼 거룩한 존재와 해야 하는데 그런 존재는 없다. 물론, 미래의 언젠가 그분은 결혼을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지금 그분의 신부가 될 교회와 약혼한 상태이시다. 그 혼인잔치는 결혼의 절정을 이룰 것이며 그 절정은 육체적이고 성적인 연합이 아닌 가장 복되고 깊은 영적 연합이 될 것이다. (계19:7-9)


4장 정경 코드 - 정경의 결정 과정에 조작이 있었다는 허구를 깬다

이 장에서는 ‘어떤 책들은 정경에서 배제되고 또 어떤 책들은 정경에 포함되었는데, 그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다룰 것이다. 구약의 정경은 종교회의에서 각 책들의 장점에 대해 논의한 후 결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 채택됨으로써 정경으로 결정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삶을 책임진 지도자들이 구약에 포함될 책들을 결정했다. 때로는 그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겠지만, 정경은 소위 ‘정경결정위원회’같은 것을 거치지 않고 결정되었다. A.D. 90년에 얌니아(Jamnia)에서 종교회의가 개최되어 구약의 정경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그 회의는 유대인들이 이미 500년 전에 받아들인 책들을 인정했을 뿐이다. 이미 그 이전에 옥석이 가려졌으며,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의 진가가 입증되었던 것이다.


유대인들과는 달리 초기의 교회는 그들의 책들을 보관할 중심적 예배 장소가 없었다. 박해 때문에 교회는 사방으로 흩어졌고, 기독교는 유대교의 울타리를 넘어서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으나 어떤 특별한 곳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권위를 갖지는 않았다. 신약의 책들은 1세기 후반에 기록되었다. 그것은 대부분 지역 교회에, 일부는 개인에게 보낸 글이었다. 바울 서신들은 대부분 에베소나 빌립 등 도시에 있는 교회들로 보내졌다. 로마서는 유럽으로, 베드로전서는 아시아의 동부 지역으로, 요한계시록은 아시아의 서부지역으로 보내졌다. 이렇게 다양한 지역에서 기록되고 다양한 지역으로 보내졌던 까닭에 모든 교회가 즉시 그 문서들을 접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교회에는 매우 초기부터 실질적으로 정경의 구실을 하는 책들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심지어 다른 책들이 씌어지기도 전에, 어떤 책들은 권위 있는 책들로 받아들여졌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살전 5:27)라고 명령했다. 또한 그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골4:16)라고 썼다. 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계1:3)라고 약속했다. 바울의 편지들은 기록되자마자 거의 즉시 권위있는 성경으로 간주되었다. 다른 책들도 역시 권위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유다서 17절과 18절은 베드로후서 3장3절에서 인용했으며, 디모데전서 5장18절에서 바울은 누가복음을 성경으로 인용하였다(눅10:7). 초기 교회 신자들은 일단(一團)의 문서들을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으로 인정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문서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많아졌다. 1세기 말이 되었을 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신약성경의 3분의 2 이상이 ‘영감된 말씀’으로 간주되었다. 나머지 책들은 비록 아직 널리 읽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권위 있는 말씀으로 알려져 인용되었다.


물론, 일각에서 이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자가 누군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히브리서를 의심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후서는 베드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유다서를 참고로 쓴 책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요한계시록이 초기의 일부 목록에 빠져 있었는데, 이는 어떤 지역에서 그것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헤르마스의 목자』같은 몇 권의 책들은 금서 취급을 당했다. 그 책은 일부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됐으나 결국에는 거부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뒤늦게 기록되었으며, 또한 그 신학이 정경의 다른 책들의 신학과 모순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만일 자꾸 죄를 지으면 구원받을 수 없으며, 우리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단 한 번만 주어진다고 가르친다.『헤르메스의 목자」가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A.D. 325년의 니케아 종교회의가 끝난 후 40년이 지났을 때 비로소 신약의 정경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논의해보자. 1장에서도 언급했듯이, 콘스탄틴은 어떤 책들이 정경으로 인정되어야 할지 결정하지 않았으며,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정경의 문제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렸을 때 교회가 읽고 있던 성경은 이미 200년 전에 교회에서 표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결정했던 책들이었다.

콘스탄틴이 한 일이란, 역사가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에게 전문적인 필사자들을 시켜 콘스탄티노플의 교회들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50권의 성경을 만들게 명령했다는 것이다.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라일랜즈 석좌교수로서 20년동안 성경비평학과 성경해석학을 가르친 F.F. 브루스는 이렇게 말한다. “콘스탄틴 명령에 따라 필사된 신약성경에 어떤 책들이 포함되었는지 알려주는 사료는 현재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아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유세비우스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책들’이라고 부른 책들이 전부 들어 있었다. 그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책들’이란 다름 아닌 현재 우리의 신약 27권이다.” 우리는 이 모든 증거로 '유세비우스는 그 이전에 교회가 이미 ‘영감된 성경’으로 받아들였던 책들을 받아들였을 뿐이다'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초대교회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씌어진 책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어떤 교회나 종교회의도 권위 없는 책들을 가져다가 신적 권위를 부여하는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정경 채택의 기준은 첫째, 사도성이다. 즉 사도가 직접 기록한 책이거나 사도가 인정한 책이 정경으로 채택되었다는 말이다. 둘째, 교리적 일치성이다. 다시 말해서 구약의 선지자들의 교훈 및 신약의 사도들의 교훈과 일치하는 책은 정경의 자격을 가진 책이었다. 셋째, 어떤 책이 얼마나 오랫동안 교회 내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졌느냐 하는 것이다. 많은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읽혀지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정경으로서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오류를 범했을 가능성은 없는가? 논리적으로 말하면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가 오류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다. 나는 교회가 오류를 범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주장을 상세히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말해보시오. 아무 근거 없이 추측하지 말고, 어떤 책들이 정경에 포함되어야 하는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밝히시오”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상당히 많은 정황적 증거들을 고려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경화 작업을 ‘인도하셨기’ 때문에 교회가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고 본다. 교회들을 둘러싼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다양했고, 통신 수단이 지극히 원시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교회가 정경의 결정에 일치를 보였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지 않으셨다면 이런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5장 예수 신화 코드 - 신약성경의 예수는 전설과 신화라는 허구를 깬다

“하지만 당신은 내게 신약성경이 꾸며낸 이야기들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랭던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소피, 이 세상의 모든 신앙은 꾸며낸 이야기들에 근거하고 있소, 그것이 바로 신앙의 정의(定義)요. 우리가 진짜라고 상상하는 것, 즉 우리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란 말이오.” “신앙의 이야기들이 ‘은유’라는 것을 이해한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신앙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들입니다. .... 종교적인 비유들은 현실 구조의 일부가 되어버립니다. 이런 현실 구조를 ‘사실’이라고 믿는 수백만의 사람들은 그 믿음 때문에 고난을 극복하기도 하고 더욱 선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요컨대『다 빈치 코드』에 나오는 이 말은 예수의 이야기는 거짓이지만 그것을 믿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장(章)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할 것이다. 전통적 예수, 즉 기독교 신경들에서 주장하는 예수를 아직도 믿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가? 최근의 ‘예수 재해석 운동’은 예수를 우리 마음대로 바꾸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신약성경의 예수를 파괴하는가?


신약성경이 그려주는 예수를 파괴하기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한 학자들의 모임을 들라면 소위 ‘예수 세미나’ 그룹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 중 단지 18%정도만이 실제로 예수가 하신 말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머지는 초대교회가 마치 예수의 말씀인 것처럼 꾸며서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성경을 기존의 종교적 교리에서 해방하기 원하는 그들은 우리의 문화가 새로운 예수 해석을 요구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예수는 여권신장주의, 종교다원주의, 생태학, 정치적 정의 등과 같은 현대적 문제들에 대해 발언하는 예수를 의미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예수는 오로지 인간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급진적인 견해는 그들의 주관적 직감에 전적으로 근거하고 있다. 그들은 무조건 기적을 믿지 못하겠다는 그들의 선입견에 근거하여 모든 결정들을 내린다. 그렇다면 예수를 목격한 사람들의 말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예수를 본 적도 없으면서 2,000년이 지난 지금 그를 재해석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말을 믿을 것인가? 확실한 증거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아니겠는가?


사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를 거부하고 자기들 나름대로 역사적 예수를 찾아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역사적 예수’는 “하나님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도 아닌 인간 예수”이며, ‘신앙의 그리스도’는 “전설과 신화가 만들어낸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결국 그들이 발견한 역사적 예수는 학자들마다 제각기 달랐다. 예수의 전기(傳記)를 쓰겠다고 나선 학자들은 결국 예수의 전기를 쓴 것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 자신의 전기를 쓰고 말았다! 사람에 따라서 예수는 반문화적인 히피로, 유대의 복고주의자로, 가라스카적 랍비로, 심지어 동성연애 마술사로 제각각 제시되었다. 자기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전기를 쓴 유명한 인도주의자 알버트 슈바이처는 예수가 정신이상 때문에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고 결론 내렸다.


중구난방으로 쏟아내는 제각각의 의견들과 그들 사이에 상충하는 주장들을 읽다보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그리하여 많은 학자들이 분노하면서 “역사적 예수를 찾는 작업은 실패했다”라고 선언했다. 그들은 날카로운 면도날을 성경에 들이대어 난도질했지만 결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결국 양자택일에 직면하게 된다. 신약성경이 그려주는 예수를 그대로 전부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그에 대해서 모른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입맛대로 예수의 이런 부분은 취하고 저런 부분은 버리는 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존 워윅 몽고메리(John Warwick Montgomery)는 그의 책『역사와 기독교』에서 신약성경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 첫째 방법 / 성경 본문의 전승(傳承)과정을 확인하는 방법

이것은 본문이 우리에게 전달된 과정을 조사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는 성경의 원본(原本)이 없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문서가 기록된 시기 사이에는 250년의 간격이 있는데, 그동안 본문 전승의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지는 않았는가?” 영국박물관 관장과 수석 사서를 지낸 프레드릭 케년(Frederic Kenyon)경의 말을 들어보자. “원본이 기록된 시기와 그것에 대한 현존하는 최고의 문서가 기록된 시기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가장 짧은 것은 신약성경이다. 현존하는 소포클레스의 일곱 편의 연극 대본은 그가 죽은 지 1,400년 이상이 경과한 뒤 씌어졌다. 아이스킬로스, 아리스토파네스, 그리고 투키디데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플라톤은 그의 사후 1,300년 후에 그들의 사상을 담은 문서들이 기록되었다.”


당신은 아직도 250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이 걱정되는가? 그렇다면 다른 사실들이 더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첫째, 이집트에서 발견된 A.D 125년경의 파피루스 사본에 신약성경의 단편(斷片)이 있다. 둘째, 신약성경은 초기 교부들의 글에서 광범위하게 인용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신약성경의 본문을 알고 있었고 또한 우리와 동일한 본문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다.


② 둘째 방법 / 내재적 증거를 확인하는 방법

이것은 신약성경 기자들의 주장을 증거로 삼는 방법이다. 요한은 자신이 그의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들을 친히 목격했다고 주장하며, 특히 십자가 사건의 현장에 있었다고 분명히 말한다(요19:35). 신약성경의 많은 책들은 거기에 기록된 사건의 목격자들이 살아 있을 때 기록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을 주장하면서 바울은 그의 주장을 증명해줄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지적했다(고전 15:6).


③ 셋째 방법 / 외재적 증거를 확인하는 방법

이것은 다른 역사적 자료들이 신약성경 본문의 내용을 확증해 주는가, 아니면 부정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많은 고고학적 발굴은 성경의 정확성을 확인해준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이야기, 히타이트족속의 실존, 솔로몬의 통치에 관한 세부적인 사실들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유명한 역사가 요세푸스도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그 당시 예수라는 현인이 있었는데, 그의 행위는 선했고 덕스러웠다... 빌라도는 그를 정죄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그를 계속 따랐다. 그들은 십자가 사건 후 3일 만에 그가 그들에게 나타나서 다시 사심을 증거하셨다고 보고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제자들이 인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기 위해 이야기들을 조작했을 가능성은 없는가? 몽고메리는 이런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예수는 제자들이 신격화하려 할 만큼 그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수는 당시 유대인들이 메시아에 대해 품었던 기대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교훈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무력으로 로마인들을 쫓아내어 히브리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기를 열망했다. 둘째, 예수 당시에 아무 근거 없이 어떤 사람을 하나님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기존의 히브리 종교를 뒤흔드는 중대한 범죄였다. 이것을 아는 예수의 제자들이 아무 이유 없이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했을 리 없다.


6장 미트라 코드 -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모방했다는 허구를 깬다

“기독교에는 독창적인 것이 전혀 없다. ‘신의 아들’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불린 미트라(Mithra) 신이 기독교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 미트라는 12월 25일에 태어났으며, 죽어서 바위 무덤에 장사되었고, 3일 만에 부활했다.” 이것은『다 빈치 코드』에서 티빙 경이 한 말이다. 그는 신약의 교회가 이교도의 전승에 나오는 다른 신에 관한 이야기를 빌려다가 사용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가 고대 로마에서 유행했던 미트라의 전설을 빌려다가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 결코 아님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미트라에 관한 미신적인 이야기가 생기기 수백 년 전에 이미 구약성경은 메시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예언했다. B.C. 7세기 경에 기록된 이사야서에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사7:14), 예수의 채찍질 당함(사53:5),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사건(사53:1-11)에 대한 예언이 포함되어 있다. 시편 16편 10절은 메시아의 부활을 미리 보여준다. 이외에도 예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예언들이 성취된 경우를 들라면 수십 개는 더 이야기할 수 있다. “신약은 구약 안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 안에서 드러난다.”


기독교와 미트라교 사이의 교리적 유사성에 관해 말하자면, 미트라가 기적적으로 탄생하여 ‘구원의 신’이 된다는 신화는 기독교가 1세기에 로마에 전파된 후 예수의 이야기를 모방하여 만들어진 교리라고 보는 것이 가장 유력한 해석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정신(영적)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어느 서점에 가더라도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책들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많은 책과 TV 프로그램이 영성과 치유, 영성과 자기이해, 영성과 섹스에 대해서 말한다. 많은 길들이 제시되며, 개인은 자기의 목적을 위해 필요한 길을 선택하게 된다. ’영지주의‘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지주의의 기본 사상들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영지주의가 어떤 것인지 이해한 사람은 그것이 종교다원주의와 자력구원에 매료되는 세대에게 왜 그토록 인기가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영지주의 안의 다양한 분파 안에 가장 대중적인 형태의 영지주의자들은 예수의 죽음과 장사지냄과 부활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깨달음을 통한 ‘계몽된 지식’(득도의 지식), 즉 ‘그노시스'(gnosis)를 얻는 것이었다. 영지주의자들은 너나없이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을 부인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어떻게 체험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은유‘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영적 환상(Vision)'을 체험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신적 구속자요, 중보자로 경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믿었으며, 구원의 길은 우리 밖에서 우리에 찾아오시는 구주 예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는 빛에 의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세계종교협의회’(the Parliament of the World Religions) 같은 것을 좋아할 것이다. 내가 1993년에 참석한 바 있는 ‘세계종교협의회’에서는 전 세계에서 약 6,500명의 대표들이 몰려와 세계 종교의 통합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그 논의의 기본 전제는 다음과 같았다:


● 어떤 종교도 다른 종교들보다 우월하지 않다.

● 교리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수정되어야 할 주관적 견해일 뿐이다.

● 타종교의 사람들을 자기의 종교로 개종시키려는 시도는 금지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의 종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우월하다는 배타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 자신의 기호와 성향에 따라 정의된 종교적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세계종교협의회’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나는 기독교적 불교신자입니다” 또는 “나는 뉴에이지 기독교를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거기 모인 어떤 사람들은 여러 종교의 장점들만 취하여 자기 입맛에 맞는 종교를 만들어내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현재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여러 그룹에 다시 침투하고 있다. 그 이유는 현대 사회에서 계속 확산되는 종교다원주의적 분위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미트라 신화나 영지주의자들의 신비주의와 어떻게 다른가? 먼저 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원죄와 그에 따른 우리의 죄악된 행동을 인정하는 교리가 진리라는 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 완벽하게 증명된다. 성경은 하나님이 죄와 흠이 없는 깨끗한 분이라고 가르친다. 그분은 인격적인 창조주이며, 만물을 유지하고 계신 분이며, 언젠가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실 심판자이시다. 인간에게 신의 속성이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나 큰 죄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인류를 타락과 저주로 몰아넣는 최초의 거짓말은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라는 사탄의 거짓말이었다(창 3:5).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은 사실이지만 본질적으로 우리는 그분과 영원히 다르다.


그렇다면 예수는 어떤 분인가? 그분은 구주의 자격을 가진 유일한 분이시다. 즉 성경의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다시 복원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분이 바로 그분이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그리고 그분이 어떤 조건에서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지 가르쳐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 바로 예수이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부인하고 단지 그분의 교훈만을 취하는 사람들은 신약성경의 ‘복된 소식’의 핵심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 즉 성육신 사건은 기독교와 영지주의를,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갈라놓는 결정적 차이점이다. 알라가 세상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없다고 믿는 이슬람 신자들에게 성육신 교리는 최대의 신성모독으로 보일 것이다. 또한 인간 스스로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는 사상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가르치는 성경의 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도저히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이 두 사상의 충돌은 기독교와 영지주의 사이의 타협을 불허한다. 따라서 영지주의를 가리켜 ‘새로운 기독교’라고 말하는 사람은 기독교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이다.


출처 : 수원노회
글쓴이 : 최광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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